소설리스트

46화 (47/93)

   @@[제4장 용병 사이론@@]

 용병.

 전쟁, 호위, 토벌 등 여러 가지 위험한 일을 처리하며, 돈을 받는다. 용병들의 대부분이 돈을 벌기 위해서 위험한 일을 자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돈을 벌기 위한 일이 결코 쉬울 수 없다. 생존이 달린 위험한 일이 많이 발생한다. 따라서 용병들의 대부분은 거칠고, 난폭하다.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본능에 충실해진 것이다.

 또한 자유롭게 살아가는 습성상 누군가의 밑에서 오랜 시간 생활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용병들도 위험한 일을 할 때에는 여러 용병들 간에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것을 안다. 혼자서는 절대 용병 일을 해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안 용병들은 단체를 만들게 되었다. 강한 용병을 중심으로 단체들이 생겨났고, 단체들 간에서도 이권을 다투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좀더 큰 단체일수록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용병들은 강한 단체에 들어가려고 한다.

 대륙 5대 용병단.

 최소 단위가 5천에 달하는 용병을 가지고 있으며, 각 용병 단의 단장은 S급 용병으로 대륙의 5대 용병으로 이름을 날린다. 대륙 5대 용병단은 카이저 용병단, 스톰 용병단, 다크 용병단, 쉐도우 용병단, 볼러드 용병단으로 구성된다.

 이들 다섯 용병단이 대륙에서 가장 강력한 용병단으로 평가받으며, 대륙의 모든 용병들에게 선망이자 공포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가장 강력한 용병단으로 카이저 용병단이 손꼽힌다. 1만의 용병들 모두 B급 이상의 실력을 가졌다고 알려졌으며, 특히 용병단의 단장인 호크아이(매의 눈) 카이저는 진급 중에서도 그 실력이 발군으로 평가받는다. 일설에 따르면 카이저의 실력이 익스퍼트 상급의 실력자와 동등하거나 그 이상일지 모른다는 말이 들린다.

 “허억! 허억!”

 거대한 바스타드 소드를 한 손에 들고 도망치는 인물이 있었다. 몸은 크고 건장하며, 얼굴 전체적으로 투박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전형적인 용병의 모습처럼 보인다. 그의 전신은 곳곳에 상처가 나 있었으면 오른쪽 눈가에 예리하게 잘린 상처에서는 핏물이 흘러내려 시야를 가렸다.

 “빌어먹을!”

  재수가 없다는 듯이 욕을 한 용병이었다. 하필이면 그 당시에 죽인 인물이 블러드 용병단 단장의 동생일 줄 몰랐다. 블러드 용병단은 대륙 5대 용병단 중에서 최하위에 속한다.

 하지만 블러드 용병단은 온갖 더러운 일을 도맡아하며 극악한 짓만 골라서 하는 용병단으로 악명을 날렸다. 상대가 약세를 보였다고 생각하면 집요하게 공격하여 죽이는 잔인한 단체였다. 그래서 다들 블러드 용병단과 악연을 맺기를 꺼린다. 건드려 봤자 결과가 좋지 않았다.

 도망치는 용병은 사이론이었다.

 사이론은 용병들 사이에서도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광속의 용병이라고 하면 A급 용병 중에서도 상위에 속하여, 차기 은급 용병이 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를 받는다.

 사이론은 며칠 전에 술집에 들렸다. 그 술집에서 조용히 술을 마시는데, 용병 5명이 나중에 들어왔다. 용병들에게 조용히 술을 마시라는 것은 무리였다. 장사를 하는 입장에서 어느 정도까지는 입을 다물며 대접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들 중에 대장으로 보이는 놈이 일하는 종업원을 희롱하는 것이 아닌가! 여인의 옷을 찢고, 발가벗기려고 했다. 사이론은 정도를 넘어서는 용병들의 행위에 눈살을 찌푸리며, 그만하라고 했다. 사내로서 당연한 행동이라 여겼다. 그런데 그놈들이 덤벼드는 것이 아닌가! 사이론은 어쩔 수 없이 상대를 해주었다.

 결과적으로 사이론이 나서는 바람에 일이 생겨버렸다. 사이론과 용병들 간의 실력 차이는 확연했다. A급 용병인 사이론에게 B급도 되지 않는 놈들이 상대가 될 리 없었다. 사이론은 5명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원래부터 덩치가 크고, 완력이 강한 사이론이었다. 주먹 한 방에 한 명씩 기절했다. 그런데 일이 벌어진 것은 그놈들 중에 한 명이 뒤로 넘어지면서 머리를 바닥에 처박은 것이다. 주먹 한 방에 뒤로 넘어 져서 죽어버렸으니 사이론으로서는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악연이 겹친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죽은 놈이 블러드 용병단 단장인 블러드 울프 칼릭스의 동생이었다. 사납고, 잔인하기로 소문난 칼릭스였다. 그는 동생이 죽자 사이론에게 추격령을 내렸다. 블러드 용병단의 추격은 빠르고, 매서웠다. 어느 용병단에도 가입하지 않은 사이론으로서는 5백이나 되는 용병들을 상대하기가 어려웠다. A급 용병이라고 해도 수적인 차이를 극복하지 못했다.

 거의 대륙의 반을 가로지르며 도주했다. 앞의 방향보다 블러드 용병단의 추격권 밖으로 도주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아니!”

 사이론은 도주하다가 전면에 블러드 용병단이 포위한 것을 발견했다. 어느새 자신을 앞질렀던 것이다. 5시간 전부터 놈들의 추적이 뜸하다고 생각했는데, 방향을 가로질러 앞을 가로막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도주하는 것도 이제 끝이다!”

 칼릭스가 사납게 사이론을 쏘아보았다. 동생을 죽인 놈을 그대로 둘 수 없었다. 블러드 용병단에서도 가장 뛰어난 녀석들만 모아서 5백 명을 추렸다. 5백 명을 5개조로 나누어 서서히 사이론의 목을 조이며 추적했다. 먹이를 잡기 위한 늑대의 집요함이었다.

 사이론은 바스타드 소드를 두 손으로 단단히 잡았다. 어차피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했다. 여기까지 온 마당에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반항해 봐야 소용없다!”

 “닥쳐랏! 더러운 짓만 골라서 하는 놈들이 어디서 큰소리 냐!”

 “어차피 곱게 죽이지 않는다! 애들아! 쳐랏!”

 블러드 용병단의 특급용병들 10명이 사이론을 향해 덤벼 들었다. 용병들은 검만 사용하지 않는다. 각자의 특성에 맞게 무기를 선택하여 사용하기에 기사들보다는 다양한 편이다.

 사이론은 광속의 용병이라는 별호를 가졌다. 큰 덩치답지 않게 무척이나 빠르다. 상대의 공격이 오기도 전에 앞으로 나아가 용병 1명의 다리를 쳐내었다. 다리가 잘린 용병이 바닥에 뒹굴자 옆에서 검과 도끼가 날아왔다.

 타타탕!

 두 번의 검속으로 막아낸 사이론이 세 번째 검속으로 놈들의 옆구리를 베어냈다.

 “사아악! 크아악!”

 순식간에 3명의 용병을 처리한 사이론은 쉴 사이가 없었다. 어느새 7명이 한몸이 되어 사이론을 쇄도했다. 피할 공간을 최소한으로 만들어서 사이론으로서는 쉽지 않은 상황 이었다. 오랫동안 추적을 피하느라 사이론은 너무 지쳐 있었다. 식량이나 물 한 모금 제대로 마시지 못한 사이론의 체력이 온전할 리 만무했다.

 ‘젠장! 이번 한 번뿐인데!’

 패스트 심법을 이용하여 검속을 날릴 수 있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었다. 응축한 힘을 빠르게 회전하여 검속을 날린다. 패스트 검법의 오의였다. 사이론은 보통의 용병이 아니었다. 심법과 검법의 오의는 일반적으로 용병이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아 있는 오러를 짜내듯이 끌어올린 사이론이 빠르게 검을 휘둘렸다. 사방에서 공격하는 적들의 요소요소를 찔러 들어갔다.

 털썩! 털썩!

 사이론의 정면으로 달려들어 공격했던 블러드 용병단의 용병 10명을 쓰러뜨렸다. 한 호흡을 쉬는 사이에서 벌어진 굉장한 연격이었다.

 사이론도 무척이나 힘들어하고 있었다. 바스타드 소드를 들 힘조차 부족할 지경이었다. 칼릭스는 용병들의 죽음에는 별다른 동요가 없었다. 오히려 힘이 빠져 숨을 몰아쉬고 있는 사이론을 조소하였다.

 “크하하하! 어차피 너도 거기까지다!”

 “이놈! 차리라 나와 일대일을 하자!”

 “웃기는군. 지쳐 있는 네놈이 내 상대가 될 수 있다고 보는 거냐! 그것보다 재미난 것을 보여주지. 애들아! 데려와라!”

 “까아아아악! 놔줘요!”

 우락부락한 용병의 투박하고, 거친 손아귀에 잡힌 여인이 비명을 내질렀다. 여인의 옷 군데군데는 찢겨져서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사이론은 여인을 보며 놀라고 말았다. 여인은 자신이 구해준 종업원이었다.

 “고작 이따위 계집 때문에 내 동생이 죽었다! 네놈이 보는 앞에서 이년을 정복하고 난 후 네놈을 죽여주마!”

  “네놈들이 사람이냐! 어찌 인간의 탈을 쓰고 이처럼 잔인할 수 있느냐!”

 “흥! 힘도 없는 놈이 지껄이는 말이 소용 있을 것이라 생각하나! 네놈은 그 나약함을 원통해하며 죽을 것이다!”

 칼릭스는 동생을 죽게 한 원인에 관계된 모든 것들을 죽여버렸다. 식당에 자리한 놈들까지 찾아서 죽인 잔인성으로 인해 수하들조차 공포에 질렸다.

 사이론은 자신의 힘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 분했다. 아직도 490명이나 되는 놈들이 남아 있다. 저들을 처리하고 난 후 칼릭스를 처단할 능력이 되지 못했다. 이제는 한 명도 처리하지 못할 것 같았다.

 ‘세상은 정의보다 힘이 먼저구나!’

 힘이 없으니 할 말도 없다. 그것이 진리처럼 느껴지는 사이론이었다.

 스윽!

 칼릭스의 뒤로 붉은색 복장을 한 인물이 나타났다. 언제 거기에 있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유령처럼 나타나서 말을 거는 것이 아닌가!

 “좋냐?”

 “응?”

 휘익!

 칼릭스는 등에 소름이 돋았다. 누군가가 등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어떻게 자신의 등 뒤를 점령했는지 알지 못했다. 수하들도 어리둥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목소리가 들릴 이유가 없기에 더욱 당황스럽다.

 그와 동시에 블러드 용병단 사이로 핑크색의 거인이 나타났다. 무척이나 원색적인 옷을 입고 있는 녀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용병들은 절대 웃지 못했다. 핑크색 옷을 입은 거인이 휘두르는 창 때문이었다. 창은 용병들을 파고들어 다시는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마치 미친 드래곤이 광기에 휩싸여 포효하는 것처럼 보인다.

 - 광룡창법 제1식 광격살

 푸아아앙!

 10명이나 되는 용병들이 순식간에 찢겨나가 버렸다. 괴물 중에 괴물이 나타났다. 광폭하기로는 블러드 울프 칼릭스보다 더했다.

 핑크색 복장의 괴물이 난동을 부릴 때 바로 옆 사각에서 무섭도록 날카로운 검기가 뿌려졌다. 벼락 같은 검기가 뻗어 나가 용병들의 미간을 여지없이 꿰뚫었다. 순식간에 10명의 용병이 지옥의 입구로 들어가 버렸다.

 “뭐냐?”

 “움하하하하하!”

 붉은색 옷을 입고, 이상한 마스크를 쓴 인물이 드디어 회심의 웃음을 날렸다. 이제까지 기다린 것을 한 번에 쏘아내는 듯하다. 호쾌하게 웃음을 낸 붉은색 복장의 인물이 폭포 수처럼 말을 꺼냈다.

 “그 말을 기다렸다. 나는 세상의 안녕과 평화를 지키는 대륙의 수호신인 파이브 스타즈의 레드 1호 스콜피온이라고 한다!”

  “뭐... 이런 미친!”

 칼릭스와 용병들의 입에서 똑같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가르딘은 칼릭스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레드 1호의 전형적인 자세를 취했다. 용병들로 둘러싸인 자리에서 홀로 우아하게 자세를 취한다. 삥 둘러쳐진 용병들은 모두 얼이 빠져 버릴 지경이다. 미친놈이 미친 지랄을 하는 것 같았다.

 “너희들의 악행을 보신 라이니언께서 노하셨다! 대륙의 수호신인 내가 너희들에게 단죄의 철퇴를 내려주마!”

 부들! 부들!

 미친놈들은 분명하건만 무척이나 강하다. 5백 명의 용병들 중에서 백 명이나 죽어나가고 있었다. 가끔 그런 이야기가 전해진다. 너무 힘든 수련을 하다 정신이 돌아버리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경우를 접하는 것은 드래곤이 바늘 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

 비현실적인 일을 겪게 된 블러드 용병단은 정신적으로 공황상태에 빠져들었다.

 칼릭스의 눈에 살심이 뻗쳐올랐다. 갑자기 나타나서 순간 당황했고, 정신적 공황상태를 겪어 가만히 있었다. 이런 미친 놈에게 잠시 라도 시간을 줬다는 것이 분했다. 자신의 행동에 화가 더 치솟은 것이다.

 “뭐 하는 것이냐! 고작 3명이다! 놈들을 죽여랏!”

 핑크색과 블랙의 미친놈 2명은 수하들에게 처리하라고 명령하고, 가르딘에게 다가오는 칼릭스와 용병들이었다. 미친 놈들 중에서 가장 미친놈이 이놈이었다. 나중에 주둥이는 따로 잘라서 본보기를 보여줄 생각이었다.

 “잠깐!”

 “뭐냐? 이제 와서 겁이 나는 것이냐!”

 “나는 아직 말을 끝내지 않았다. 영웅의 말을 끝까지 듣는 것도 악당의 예의다! 예의를 지켜라!”

 “닥쳐! 언제까지 헛소리를 하나 두고 보겠다!”

 끝까지 미친 소리를 하고 있었다. 칼릭스는 화가 나다 못 해 폭발할 지경이었다. 사람의 화를 어디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지 경험하고 있었다.

 칼릭스가 독문병기인 소드 브레이커를 꺼내서 휘둘렸다. 소드 브레이커는 검날이 톱니처럼 되어 있어 베는 즉시 상대의 살점을 뜯어내는 잔인한 병기다. 칼릭스에게 블러드 울프라는 별호가 붙게 된 이유였다.

 소드 브레이커를 휘두르기 위해서는 강력한 완력과 근력이 받침되어야 한다. 일반 검에 비해 무척이나 무거운 소드 브레이커를 단숨에 휘두르는 칼릭스의 능력이 보통은 아니었다.

 캉!

 가르딘을 향해 내리찍었던 일격이 막혔다. 가르딘은 작은 단검을 들고 있었다. 단검에 소드 브레이커가 막히는 경우는 칼릭스 생애 처음이었다. 조막만한 검을 자르지 못했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이놈!”

 “왜! 설마 영웅이 그따위 칼에 죽을 것 같으냐?”

 “닥쳐!”

 칼릭스가 기운을 끌어올렸다. 기운은 소드 브레이커에 전달되어 가르딘의 단검을 내리눌렸다.

 푸아앙!

 소드 브레이커가 지면을 거칠게 내리찍었다. 시끄러운 소리가 울리고 난 후 바닥을 본 칼릭스는 인상을 찌푸렸다. 상대가 사라지고 없었던 것이다.

 푸욱!

 어느새 칼릭스의 사각으로 다가온 가르딘이 단검으로 옆구리를 찔러 버렸다. 손을 휘둘렸을 때 생기는 빈틈 중에서도 갈비뼈와 갈비뼈 사이는 심장과 연결이 되어 있다. 그 사이를 파고드는 것은 단검이라고 해도 즉사를 면치 못한다. 뼈를 파고들어 단숨에 심장을 꿰뚫어 버렸다. 칼릭스는 잠시 간 몸을 떨다가 쓰러졌다.

 철퍼덕!

 실력만 놓고 보면 칼릭스의 능력은 익스퍼트 최상급에 비견된다. 일반적인 용병치고는 녀석치고는 너무 높은 경지였다. 가르딘이 훨씬 강하기에 쉽게 이긴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심장에 검을 찔린 칼릭스는 그 자리에서 몇 번 숨을 헐떡이다 죽어 버렸다. 칼릭스의 옆에 있던 수하들 모두 놀라서 뒷걸음 쳤다. 상대는 미친놈이지만 실력만큼 절대 미치지 않았다. 칼릭스가 얼마나 무섭고 강한지 알기에 더 두려운 것이다.

 “단장... 설마!”

 “저...럴 수가! 괴... 물이다!”

 도망치려고 한 용병들이 주변을 보았다. 5백 명이나 되었던 용병들 모두가 바닥에 뒹굴러 있었다. 눈앞에 있는 붉은 괴물뿐만 아니라 블랙 괴물, 핑크 괴물도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한 용병들은 살려 달라고 했다.

 “살려... 커억!”

 가르딘은 살려줄 생각이 없다. 여인을 납치하고, 유린하려는 놈들이다. 블러드 용병단의 악행은 가르딘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놈들의 행위는 도를 넘어섰다.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세상에 해가 될 놈들이었다. 더군다나 이곳에서 벌어진 것이 알려져서 좋을 것 없었다.

 가르딘의 가차 없는 손속이 용병들에게 작렬했다. 용병들은 반항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쓰러져 갔다.

 어벙!

 눈앞에서 벌어진 일을 믿을 수가 없는 사이론이었다. 어떻게 5백 명의 용병을 고작 3명이서 처리할 수 있는가! 그중에서 가장 믿을 수 없는 것은 블러드 울프 칼릭스의 죽음이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움직임이었다. 상대방이 인식하기 전에 사각으로 돌아가 적의 숨통을 단숨에 끊어버린다.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움직임을 붉은 복장을 한 인물이 해냈다.

 저벅! 저벅!

  가르딘이 사이론에게 다가갔다. 사이론은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복장은 정말 우습다. 그가 한 말도 미친놈 소리 듣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실력만큼은 자신이 배우고 싶은 높은 경지에 든 인물이었다. 아직까지 자신의 실력은 미진했다.

 점점 다가온 가르딘의 왼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탁!

 털썩!

 가르딘의 손날이 사이론의 목을 가격하자 힘없이 쓰러졌다. 가르딘은 대화를 하기보다는 여기서 빠져나가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소문이 나면 무척이나 곤란했다.

 사실 생각 같아서는 그냥 지나가려고 했다. 황궁으로 가는 길에 싸우는 소리가 들려서 지켜보다가 블러드 용병단이 하는 행위가 도를 넘어 간섭한 것뿐이었다. 여인을 가지고 능욕한다는 소리만 들리지 않았다면 가르딘도 그냥 넘어갔을 지 모른다. 괜한 일에 참견하지 않는 것이 가르딘이었다.

 “이제 어쩐다!”

 “어쩌긴, 우리의 모습을 봤잖아.”

 필리언이 어느새 다가왔다. 가르딘이 발키리 영지에서 떠나올 때 필요할지 모른다며, 파이브 스타즈의 옷을 챙겼다. 위급한 상황에서 자신의 모습을 숨길 수 있는 옷이 될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단서를 붙였다. 필리언은 절대 입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결론적으로 벌써부터 한 번 입었다. 쪽 팔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여인이야 벌써 기절해 있어서 아는 것이 없겠지만, 사이론은 달랐다. 사이론은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나중에 어디 가서 말을 해 버리면 곤란했다.

 “여인은 인근 마을에 맡기고, 이놈은 데려가서 설득하자.”

 “그러는 게 좋겠다.”

 “투르, 여인을 업어라.”

 “잠깐, 내가 업을게.”

 기절해 있는 여인은 제법 아름답다. 필리언이 잽싸게 여인을 둘러업었다. 오랜만에 만져보는 다른 여인의 살결이 무척이나 부드럽다.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이런 상황에서도 엉덩이를 주물럭거리는 필리언이었다. 필리언의 손은 벌써부터 살결을 타고 있었다.

 “끄응.”

 한참 동안 자고 있다가 일어난 사이론은 뒷목이 욱신거렸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바로 앞에서 야영을 하며 불을 찍는 세 명의 인물을 볼 수 있었다. 그들 모두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는 듯했다.

 “일어났냐?”

 “그렇습니다.”

 “우선은 식사나 해라.”

 가르딘이 수프를 떠서 사이론에게 주었다. 사이론은 감사하다며, 조심스럽게 접시를 받았다. 

 “왜 쫓긴 거냐?”

 “그게 조금 재수가 없었습니다.”

 사이론은 그간에 벌어진 일들을 가르딘에게 말했다. 가르딘은 사이론이 한 일에 대해서 잘잘못을 따지지 않았다. 그냥 묵묵히 들어주기만 했다. 가르딘은 사이론의 말투와 행동을 보고 성격을 분석했다. 심성이 이 정도면 무척이나 착한 편이다. 용병치고는 모질지 못한 성격을 가졌다고 볼 수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냐?”

 “저를 받아 주십시오! 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

 “지금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고 하는 소린가!”

 “그렇습니다. 제 모든 것을 바치겠습니다!”

 가르딘의 입꼬리가 조금 올라갔다. 이만한 놈이라면 받아 주어도 된다. 아니 생각에 따라서 감지덕지다. 홀로 수련해서 익스퍼트 중급에 이른 놈이다. 조금만 더 가르치면 써먹기에 따라서 오러 마스터도 될 수 있었다.

 가르딘은 선뜻 허락하지 않았다. 쉽게 허락하면 자신이 싸 보인다. 이럴 때는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뜸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처한 상황과 시간을 정확히 계산할 필요성은 있다.

 “모든 것을 바친다라....... 그 말이 진정인가?”

 “물론입니다. 저는 한 입으로 두 말 하지 않습니다.”

 “하늘이 부서지고, 땅이 갈라져도 변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제 몸이 가루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제 말은 지킵니다.”

 “그럼 좋네.”

 “감사합니다.”

 “너무 좋아할 필요 없네, 자네는 아직 내 정체를 모르지 않나.”

 배우고 싶다는 열망 때문에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고 충성을 바치는 꼴이었다. 사이론은 순간 긴장했다. 상대가 악인이라면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시 물리기에는 지금까지 쏟아낸 말이 걸렸다. 섣부른 판단이 화를 당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했다.

 “그렇게 긴장할 필요는 없네, 나는 발키리 영지의 영주인 가르딘 백작이라고 하네.”

 “에? 설마요?”

 “사실이네.”

 “붉은색 복장에 마스크를 하고, 유치한 말을 한 사람이 카이로만 제국의 오러 마스터라는 말씀이십니까?”

 가르딘도 나름 유명하다. 카이로만 제국의 공주를 신성제국에 데려가면서 오러 마스터가 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안다. 당연히 스필언과 미토스에 비해서는 유명하지 않지만 말이다.

  “거짓... 말!”

 “어허! 이 사람 속고만 살았나.”

 상위귀족이라고 할 수 있는 백작이 뭐가 부족해서 얼굴까지 가리고 그런 짓을 한단 말인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사이론이었다. 충성을 받치는 것과는 별개로 믿을 수가 없었다.

 “증거가 있습니까?”

 “의심이 많군.”

 가르딘은 자신의 인장을 보여주었다. 인장을 본 사이론은 그자리에서 얼어버렸다. 변명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이제 믿나?”

 “믿습니다.”

 “내가 왜 저런 복장을 하는 줄 아나?”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남이 알기를 원치 않네, 좋은 일을 하는데도 남들의 시선은 그렇게 보지 않을 수도 있지, 그래서 얼굴을 숨기고 했을 뿐이네.”

 “아!”

 사이론은 감탄했다. 좋은 일을 하고도 알리지 않는다. 얼마나 대단한 일이 아닌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넓은 아량과 배포, 정의감을 갖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이제 자네도 내 제자가 됐으니.”

 가르딘은 자신의 복장을 사이론에게 주었다. 사이론은 설마 하는 심정이었다. 물론 가르딘의 뜻이 위대하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저런 유치한 복장은 입고 싶지 않다.

 “싫은가?”

 “그... 게 아니라!”

 “그럼 없던 일로 하지.”

 “아닙니다. 입겠습니다!”

 “쪽팔린가?”

 “그... 렇지 않습니다.”

 사이론을 데리고 노는 가르딘이었다. 옆에서 필리언과 투르는 키득거렸다. 역시 말 지어내는 수준이 탁월했다. 어떻게 저런 유치한 말을 서슴없이 하는지 이해가 가는 장면이었다.

 사이론은 옷이 안 맞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의외로 잘 맞았다. 신축성이 좋아서 덩치와는 상관없이 딱 들어맞는 것이었다.

 입고 난 후 자신을 보니 무척이나 허전했다. 허벅지 사이로 조여 오는 타이트한 옷이 상당히 부끄러웠다.

  “잘 어울리는군.”

 “그... 렇습니까? 이제는 벗어도 되는 겁니까?”

 “아직은, 내 제자가 되었으면 당연히 나의 모든 것을 배워야지.”

 배운다는 말에 사이론은 집중했다. 가르치는 것을 모두 배워 반드시 원하던 경지에 오르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배워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순간 사이론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가르딘이 가르쳐준 것은 [영웅로드]와 [영웅찬가]였다. 가르딘의 유치한 노래를 모두 외워야 한다는 것이다. 사이론은 누가 보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 가자! 가자! 영웅이 가는 걸! 누가 막을 쏘나!

 - 가자! 가자! 영웅이 가는 걸! 누가 막을 쏘나!

 “어허! 강약의 조절이 약해! 다시!”

 “알... 겠습니다.”

 광속의 용병이라고 하면 꽤나 유명함에도 불구하고 가르딘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드래곤도 말발로는 이길 수 없는 가르딘이었다. 사이론이 상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말이다.

 밤이 깊어갈수록 사이론의 수심은 늘어만 갔다.

 “푸하하하하!”

 다음 날 아침 필리언은 웃음보를 기어이 터뜨렸다. 사이론의 행동을 보고 웃지 않을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야! 이놈아! 너 하란다고 다 하냐!”

 “설마 그게 놀리는 것인 줄 누가 알았습니까!”

 사이론도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가르딘이 한 말이 모두 뻥이란다! 그냥 사이론이 하는 꼴이 하도 재밌어서 놀려본 것이라는 것이다. 가르딘이 시키는 일을 다했던 사이론으로 서는 정말 억울했다. 어떻게 사람을 그런 식으로 가지고 놀 수 있는 것인가! 명색이 제국의 백작이자 오러 마스터가 거짓말을 할 줄 상상도 못했다.

 “그럼 가든가?”

 “이제 와서 어떻게 갑니까?”

 “수정구에 찍힌 영상이 무척이나 재밌을 거다.”

 가르딘은 수정구에 사이론의 행동을 모두 녹화했다. 부끄러운 행동이 찍혔다는 것에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사이론이 떠날 수 없는 이유는 또 있었다. 가르딘이 사이론의 단점을 한순간에 극복시켜 주었기 때문이었다. 패스트 검법의 특성을 완벽하게 알지 못하는 한 가능하지 않는 일이었다. 마지막에 보여준 그 일련의 동작을 생각하면 절대로 벗어날 수 없었다.

 ‘젠장! 마지막에 보여준 장면만 아니면 갈 텐데!’

 주저 없이 가고 싶지만 가르딘이 보여준 것을 얻기 위해서는 여기에 머물러야 했다. 또한 이미 충성을 맹세했다.

 사이론은 몰락귀족의 후손이다. 예전에는 백작위까지 올라갔던 집안이지만 200년을 거치면서 서서히 몰락하여 이제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패스트 검법은 대륙에서도 알아주는 검법이라는 설도 있었지만 다 지나간 옛일이었다.

 몰락했으나 귀족으로서의 자부심을 있었다. 맹세를 어기고 싶지는 않았다.

 필리언이 무언가 궁금한 것이 있는지 물었다. 어제 사이론의 광대놀음은 잘 봤지만 다음 날을 위해 먼저 잠을 청했다.

 그 뒤의 일은 알지 못했다.

 “너 마지막에 서류작성했냐?”

 “그런데요.”

 “사인했지.”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건 왜 물으십니까?”

 사이론은 왜 그게 궁금한지 이상했다. 어제 가르딘이 서류를 주면서 별거 아니라고 사인만 하라고 했다. 잠깐 봤는데, 진짜로 별거 아니 내용이었다. 그나마 있는 공간은 텅 빈 백지나 다름없었다.

 필리언은 안됐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 이제 큰일 났다.”

 “왜 그러십니까?”

 “그게 무슨 서류인 줄 아냐, 참 생각 없는 놈 여기 또 있네.”

 필리언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사이론의 표정이 멍해졌다. 그러면서 설마 하는 심정이었다. 아닐 거라고 다짐해도 불안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한마디로 가르딘의 마수에 코가 끼인 상황이었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스스로 악마의 소굴에 들어 왔다는 말이 딱 맞았다.

 황궁까지 가는 여정이 3명에서 4명이 되었다. 사이론을 얻은 것으로 인해 시간이 조금 늦어지기는 했다.

 어두운 가운데, 5명이 자리하였다. 그들은 저녁시간에 올라온 소식을 듣고 소집이 되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져서 길드의 잡다한 일거리에 지장을 주고 있었다.

 도둑 길드의 간부 세븐핸드 중에 5명이 모인 일은 생각보다 큰일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칼릭스 이 멍청한 놈이.”

 블러드 용병대는 도둑 길드에서 용병계를 장악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용병대다. 도둑 길드 자체적으로는 용병계를 진입하기 어렵기 때문에 만들어 놓은 용병대가 하루아침에 무너져 버렸으니 타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블러드 용병대가 처리했던 일들 대부분이 도둑 길드에서 대외적으로 하지 못하는 일들이었다. 잡다한 일이지만 하나하나 따져 보면 결코 잡다하다 할 수 없는 일이다.

 “어찌된 일인 거요?”

 “칼릭스의 동생이 사이론이라는 용병에게 죽은 것을 복수하기 위해 움직였다고 하오, 그런데 모두 죽어버렸소.”

 “고작 용병 한 놈한테 당했단 말이오!”

 “그런 것 같지는 않소, 아무래도 누군가 도움을 줬던 것 같소.”

  산속으로 사이론을 유인한 다음에 처리하려고 했던 것 같았다. 그런데 유인했던 산속에서 도리어 용병들이 당해버린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블러드 용병대에서 가장 강한 놈들이 고작 몇 명에게 당했다니 그게 말이 되는가!

 “사이론이라는 놈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니오?”

 “그게 문제가 쉽지 않소, 누군가 그동안 블러드 용병이 한 일을 제국에 신고해버렸소. 우리가 움직였다가는 용병계는 물론 제국의 추적까지 받을 수 있소.”

 “제기랄!”

 “용병들이야 문제가 되지 않지만 만약, 우리와 블러드 용병단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제국에 알려지면 문제가 커질 수 있소이다.”

 현재 카이로만 제국 내에서 중차대한 일을 어둠의 길드에서 모의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도둑 길드의 일이 잘못 되어 버리면 계획이 어긋날지도 모른다. 그 책임을 자신들이 모두 질 수도 있다. 뒷감당이 되지 않는 일로 인해 피해를 감수하기에는 무리였다.

 “그렇다면 블러드 용병대에 있는 자료를 모두 수거해야 하는 것 아니오.”

 “이미 조치는 내렸소. 당분간 조용히 지내면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오.”

 황궁으로 가는 동안 사이론은 자신의 판단을 믿을 수가 없게 되었다. 가르딘과 필리언, 투르가 하는 행동만 보면, 용병들보다 더한 것 같았다. 아주 막 나가는 사람들처럼 행동한다. 여행하는 동한 먹은 식사는 무척이나 저렴했으며, 노숙은 기본으로 했다. 제국의 오러 마스터이자 상급귀족인 백작이 하는 행동치고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다. 스승으로 모신다는 말을 자신이 직접 했다. 더군다나 작성한 서류를 다시 보여 달라고 했을 때, 가르딘이 보여준 서류에 적힌 내용을 보니 암담함 그 자체였다.

 용병 사이론 크란드는 신의와 목숨을 바쳐 가르딘에게 충성할 것을 맹세한다. 만약 이 약속을 어길 시 귀족의 명예를 더럽히고, 용병계의 질서를 어지럽혔다는 것을 증명함.

 몰락귀족이긴 해도 귀족이었다. 또한 마지막 살길인 용병으로서의 삶까지 저당 잡힌 꼴이 되어 버렸다.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고 가르딘의 손아귀 안에서 살아야 한다.

 사이론은 침울했다. 가르딘이 하루에 한 번 정도 가르침을 주는 것마저 없었다면 나무 위에 줄을 매달고 자살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오늘은 여기서 노숙한다.”

 가르딘의 말에 자연스럽게 노숙할 장소를 마련하고, 불을 피운다. 짐승들이 노리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다. 노리면 깔끔하게 해치워 버리면 그만이었다. 가르딘은 사이론에게 검술을 사용해 보라고 했다.

 “공격해 봐라.”

 “알겠습니다.”

 무방비상태의 가르딘이었다. 공격할 곳이 너무 많이 보인다. 사이론은 최단의 거리를 찾아 공격을 감행했다. 패스트 검법의 특징은 빠름과 정확성이다. 현란한 움직임 사이로 가르딘의 왼쪽 옆구리를 가격했다.

 사사삭!

 한 걸음 움직였을 뿐인데, 어느새 가르딘이 사이론의 가슴을 점령했다. 가르딘의 주먹이 사이론의 좌측 옆구리를 강타했다.

 “퍼퍽! 크윽!”

 단 한 방에 숨이 턱 막히자 맥없이 쓰러져 버렸다. 가르딘은 검도 쓰지 않았다. 주먹 한 방에 나가떨어져서 다시 일어서지 못하다니 무척이나 창피한 사이론이었다.

 “흔히 착각하는 게 있는데 빠르게 움직이는 데만 중점을 두다 보면 무게의 중심축이 흔들리는 경우가 발생한다. 빠름에 대비되는 무거움이 아직 부족해, 몸 안의 중심점을 단련하지 않으면 더 이상의 빠름은 나오지 않아, 너의 중심축이 흔들리는 바람에 검 끝의 예리함과 정확성도 부족해지는 거다.”

 쾌검의 수련은 혹독하다. 빠름은 오러의 사용보다 육체의 단련이 우선이다. 내공은 그저 강함을 뒷받침해 주는 요소가 될 수 있다. 물론 육체와 내공의 완벽한 조화가 이루어지게 되면 자연스럽게 빠르고 강해지겠지만 한 방향으로 익히는 자에게는 조화보다 필요한 방향을 발전시키는 것이 나았다. 그 뒤에 오러의 사용을 자연스럽게 활성화한다면 더욱 빠른 진전을 얻을 수 있다.

 가르딘은 말을 하면서 가볍게 검을 휘둘러보았다. 그 안에 쾌검의 무리가 모두 들어 있었다. 한 번을 보고, 두 번을 보아도 넋을 잃을 수밖에 없는 사이론이었다. 사이론이 가르딘을 떠날 수 없는 이유가 저것이었다. 보면 볼수록 가르딘처럼 되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린다.

 가르딘은 사이론의 욕망을 느낄 수 있다. 보통 사람은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검을 익힌 자만이 느끼는 욕망이다. 더 높은 경지로의 상승. 이것 때문에 그만두지 못한다.

 ‘딱 걸렸다.’

 낚시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야 한다. 각자의 욕망을 건드려 주면서 살살 굴리면, 어떤 짓을 해도 따라오게 되어 있었다. 가르딘의 마수는 무서울 정도로 치밀하며, 얍삽했다.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놀고 있으니 말이다.

 “그럼, 이제 술이나 한잔하며 얘기나 하자.”

 노숙의 묘미가 무엇인가! 불을 중앙에 피워 놓고, 술 한잔 하면서 놀고 마시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수다를 떨며, 이런저런 살아가는 얘기를 한다. 이때에 여자가 있으면 술을 취하도록 마시게 하고, 서로의 감정을 토로해낼 수 있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술의 마력은 자신이 평소에 하지 못 했던 것들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자신감을 불어넣는다. 물론 과음은 책임지지 못한다. 스스로 알아서 책임져야 한다. 가르딘과 동기들은 술 취한 녀석들을 대자로 눕히고, 밟는 것을 벌칙으로 했다. 한번 밟히면 다시는 술 꼬장 부리지 못한다. 매에는 장사 없다는데 그것이 사실임을 증명한 사례였다.

 가르딘과 필리언은 술을 마시며, 노는데 아주 신이 났다. 투르는 아직 어린 편이지만 술을 마셔도 될 나이였다. 하지만 술에 취하지는 않는다. 모두 일정 수준의 경지에 올랐기에 술에 취할 염려는 없다.

 “사이론! 노래 한 번 해봐라!”

 “예? 노래 잘 못 하는데!”

 “뭐야? 새로 들어왔으면 당연히 노래를 불러야지!”

 가르딘과 필리언이 노래를 부르라고 강요하고 있었다. 가르딘은 사이론이 망설이자 수정구를 꺼내더니 영상을 보자는 것이었다. 사이론이 했던 만행을 고스란히 찍어 놓은 수정구였다. 

 “하... 겠습니다!”

 쪽팔려서 볼 수가 없다. 사이론은 어쩔 수 없이 노래를 부르겠다고 했다. 부를 수 있는 노래라고는 한 개 정도밖에 없었다. 차마 가르딘에게 배운 [영웅로드]와 [영웅찬가]는 부르지 못할 것 같았다.

 “한 박자 쉬고, 두 박자 마저 쉬고 하나, 둘, 셋!”

 - 황야를 가로지르는, 무적의 용병들이여!

 무서워하지 마라! 우리는 절대 죽지 않는다! 우리의 대지는 용기 있는 자에게 절대 죽음을 선사하지 않는다!

 노래가 참 맛이 없다. 음정의 고저도 엉망이고, 시킨 사람이 민망할 지경이다. 사이론이 부르는 노래는 용병들이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부르는 노래였다. 그저 소리를 크게 질러 마음의 불안감을 씻어 버리는 것이 목적이니, 노래 자체에 매력이 있을 리 없지 않은가!

 “그만 해라!”

 “예.”

 “앞으로 영웅찬가와 영웅로드만 불러.”

 “알... 겠습니다.”

 사이론은 투르가 옆에서 호쾌하게 웃는 모습을 보자 열불이 터졌다. 덩치만 봐서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을 줄 알았다.

 그런데 실제 나이가 18살이란다. 사이론의 나이가 23살인 것을 감안하면 5살 차이가 났다. 나이가 적은 녀석이 웃자 기분이 더 나빴다. 더군다나 반말로 일관하고 있었다. 서로 존중하는 것도 아니고, 반말로 지껄이다니 예의가 없는 놈으로 보였다. 하지만 쉽게 말을 하지 못했다. 처음 보았을 때 투르가 보여준 모습은 악마 그 자체였다. 사람을 죽이면서 광기에 사로잡히는 모습은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진짜 제 정신들인가!’

 정신 나간 사람들을 모아 놓은 것 같았다.

 가르딘은 사이론의 표정을 보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보였다.

 “사이론, 투르랑 대결해 볼 테냐?”

 “예? 그게 무슨?”

 ‘한번 대결해 봐라! 투르는 어떠냐?”

 “저는 좋습니다.”

 투르는 당연히 승낙한다. 싸우는 것을 무엇보다 좋아하는 투르였다.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 이상 투르는 싸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사이론도 거절하지 않았다. 자존심이 걸린 상황이었다. 투르의 경력을 보니 이제 1년도 되지 않았다고 한다. 고작 1년밖에 되지 않은 녀석에게 질 수 없다는 오기가 생겼다. 블러드 용병대와 상대할 때는 많이 지치고, 부상을 당해서 움직이지 못했다. 그러나 현재는 아무 이상이 없다.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고 보았다.

  “좋구나, 어서 싸워라!”

 원래부터 남의 싸움구경이 제일 재미있다고 한다. 필리언과 가르딘이 부추기자 사이론과 투르가 서로를 마주보고 서 있었다.

 투르는 적이 아니라고 해도 봐주는 성격이 아니다. 언제나 최선을 다한다. 그러기에 투르가 무섭도록 강해지는 것이다. 바로 앞에서 마주보는 투르의 거대한 덩치를 보자 사이론은 위축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위압감이 장난 아니다!’

 옆에서 보는 것과 다르게 직접 마주 대한 투르를 보니 거대한 암벽을 보는 것 같았다. 절대 부서지지 않을 것 같은 단 단함이었다.

 사이론은 바스타드 소드를 강하게 움켜잡았다.

 투르는 방어자세가 딱히 없다. 허점을 많이 노출시키는 공격을 서슴없이 한다. 파괴력에 중점을 둔 투르의 자세는 무척이나 크다. 하지만 덩치에 비해서는 상당히 빠르다.

 휘이이잉! 째애애앵!

 투르가 선공을 날렸다. 4미터나 되는 창을 힘차게 찔러 들어왔다. 사이론은 공격 속도가 더 빨라지는 것을 발견했다. 힘만 가진 것이 아니었다. 빠르고 강력했다. 사이론은 가르딘의 가르침대로 최소한의 움직임을 목표로 움직였다. 투르는 공격을 하면 멈추지 않는다. 원래 공격은 힘을 얼마나 싣느냐에 따라 호흡의 간격이 존재한다. 강력한 일격을 휘두르기 위해서는 긴 호흡을 하고 난 후 다시 공격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투르는 공격과 공격의 틈이 거의 없었다. 무차별적인 것 같지만 상당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투르의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이 산산조각 나 버렸다.

 파파파팡! 콰과과광!

 사이론은 피하는데 정신을 모두 집중해야 했다. 투르의 공격은 보는 것과는 달랐다. 직접 겪자 왜 블러드 용병대의 용병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광룡창에 실린 투르의 패도무비한 기운은 공포와 광기로 무장을 했다. 광폭한 기운을 정면으로 받은 용병들은 두려움으로 인해 몸을 움직일 수 없었던 것이다.

 사이론은 정신을 집중했다. 한 번의 공격이라도 성공하는 날에는 자신의 몸체가 송두리째 박살날 것이다. 무수히 많은 용병들과의 대결보다 현재 공격하는 투르의 공격이 더 위력적이었다. 긴장감으로 인해 등과 손바닥에 땀이 흘러내렸다.

 사이론이 신중하게 움직이자 투르의 공격은 잘 먹히지 않게 되었다. 투르의 일격이 또다시 이어졌다. 그 순간에 빈틈이 사이론의 눈에 보였다. 빈틈을 향해 검을 출수했다.

 아무리 덩치가 커도 일 검을 허용하면 쓰러지게 되어 있었다.

 슈슈슈슉!

 패스트 검법이 며칠 사이에 더 빨라졌다. 가르딘의 가르침이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이 정도라면 막아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회심의 일격이었다.

 탕!

 “크크크크!”

 가르딘과 필리언이 저럴 줄 알았다는 듯이 사악한 웃음을 내었다. 투르와 대적하는 모든 상대는 다 저런 반응을 보인다. 어쩔 수 없다. 피륙으로 이루어진 인간의 몸에 검이 들어갔는데, 쇳소리가 났으니 놀라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다.

 어벙!

 정신이 확 깬다. 사이론은 검의 그립을 잡은 손아귀가 찢어질 것 같은 반탄력을 받았다. 그냥 쇳소리만 난 것이 아니라 검에 충격을 준 것이다. 현실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자 순간적으로 주춤거렸다.

 “이... 럴 수가!”

 “야! 어디다 정신 팔아!”

 퍼퍽! 쿠다다당!

 가르딘의 말에 반응하기도 전에 한 대 맞았다. 투르의 주먹이 사이론의 배때기를 사정없이 후려갈겼다. 3미터나 날아갔다가 다시 바닥에 떨어진 사이론은 정신을 잃었다. 사실 투르의 실력은 오러 마스터에 비견된다. 더군다나 투르의 몸이 금강지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방심하게 되면 오러 마스터가 아니라 그 할아비라고 해도 무사하지 못한다. 애초에 사이론은 상대가 되지 못했다.

 우욱!

 다시 정신을 차리자 전신이 바들바들 떨리는 사이론이었다. 사이론은 허망했다. 어떻게 한 방에 정신을 잃을 수 있는 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떤 말도 할 수 없게 된 사이론은 상당히 지쳐 보였다. 그리고 느낄 수 있었다. 가르딘과 만나면서 자신도 제정신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느꼈다.

 ‘괴... 물들!’

 이런 사람들 밑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현실이 암담해 진다. 그것도 평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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