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7장 골육상쟁 암수@@]
카이로만 제국의 역공은 무서울 정도로 빠르고, 강력했다. 볼테인 왕국이 점령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부룩스 왕국까지 점령당해 버렸다. 카이로만 제국의 역습은 멈출 줄 몰랐다. 이로 인해 코카 제국 진영의 흔들림은 가속화되었다. 왕국이 불안한 시점에서 전쟁이 계속되는 것도 문제였다. 자리조차 보존되지 않는 쓸모없는 전쟁이었다. 더군다나 카이로만 제국의 방어력이 상상을 초월했다. 일단 붙어본 결과 코카 제국은 카이로만 제국을 이길 수 없다는 결론이 나고 있었다. 곳곳에서 피해는 계속 누적되어 그 수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카 제국의 황제 무르카인은 공격할 것을 강요하고 있었다. 반항하는 왕국의 공작에게 지독한 모욕과 강압을 행사했다. 왕국을 지켜주지 못하는 제국이 무모한 공격만을 강요하자 왕국 내부에서 반발이 커지고 있었다.
내부가 불안한 상황에서 전쟁을 제대로 수행되기도 힘든 처지인 코카 제국군이었다.
-발렌타인 성.
코카 제국군을 맞아 싸우는 최전선의 방패역할을 하고 있었다. 코카 제국군의 파상공세를 결국 막아내었다. 발렌타인 성의 곳곳이 공격받은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그것은 모두 훈장과 같았다.
카이로만 제국군의 수뇌부 회의가 진행되었다. 이유는 누군가가 비밀리에 사신을 보내왔기 때문이었다. 사신은 카이로만 제국으로서는 의외의 존재들이었다.
러쉬 1황자를 비롯한 파스트론 공작, 발리스타 공작은 사신들을 조심스럽게 발렌타인 성에 들였다. 코카 제국군에서 알아채지 못하도록 비밀유지를 위해서였다. 사신으로 온 인물들은 모두 4명이었다. 바로 볼테인 왕국, 터럼프 왕국, 부룩스 왕국, 키비토 왕국의 사신이었다. 코카 제국군 연맹 소속의 4왕국이 모두 온 것이다. 상당히 뜻밖이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갑자기 비밀스럽게 찾아온 이유를 물었다.
사신들은 자신들이 찾아온 것에 대한 비밀을 보장해 주기를 바랐다. 파스트론 공작은 대륙협정에 의거해서 사신들의 요구조건을 들어주었다.
“그럼 말해 보시오.”
“우리는 코카 제국 연맹을 탈퇴하고 싶습니다. 카이로만 제국에서 저희의 요구조건을 들어준다면 무조건 카이로만 제국에 협조하겠습니다.”
파스트론 공작과 발리스타 공작은 각 왕국의 사정이 눈에 들어왔다. 왕국이 위협받는 이 시점에 전쟁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전쟁은 불리하게 진행이 되어 가고, 코카 제국은 압박을 가하고 있다. 각 왕국들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고 말았다.
파스트론 공작과 발리스타 공작은 러쉬 황자에게 의견을 물으면서 대답에 신중을 기했다. 이유가 어찌되었건 칼자루는 카이로만 제국이 들고 있는 것이다. 또한 각 왕국들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만약 이 사실이 코카 제국에 들어가게 된다면 왕국은 정말 끝장이었다.
“요구조건을 말해 보시오.”
요구조건을 들어보고, 답을 주겠다는 뜻이었다.
“요구조건은 왕국의 보전입니다. 만약 뜻만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즉시 코카 제국의 뒤통수를 치겠습니다. 또한 전쟁 이후 카이로만 제국을 상국으로 모시며, 신하의 나라임을 자처하겠습니다!”
볼테인 왕국과 부룩스 왕국으로서는 더욱 급했다. 다른 왕국들과는 다르게 절박하다고 볼 수 있었다. 점령당하고, 치욕스러운 결과를 당했지만 영토만 무사하다면 다시 복구하면 되었다.
카이로만 제국으로서는 구미가 당기는 일이었다. 코카 제국 연맹의 왕국이 뜻을 모아 코카 제국의 뒤통수를 치게 된다면 이 전쟁은 이긴 거나 다름없는 전쟁이 된다. 사실 모든 왕국과 공국을 통일하는 것은 카이로만 제국으로서는 번거로운 일이 된다. 카이로만 제국이 코카 제국을 이기고, 코카 제국을 점령하여 대륙의 패자라는 것을 보여주면 되는 일이었다. 카이로만 제국과 코카 제국의 영토만 합해도 대륙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카이로만 제국도 이제까지 잘 막아내기는 했지만 병력의 피해가 결코 적다할 수 없었다. 이대로 계속적으로 전투를 수행하다 보면, 엄청난 손실을 보게 된다.
“하루를 더 기다리시오! 황궁에 연락을 넣어 보겠소.”
“좋은 답변이 나오기를 고대하겠습니다.”
시간은 많지 않았다. 하루 동안에도 전투는 계속되고 있었다. 전장에 피 냄새가 마르기도 전에 또 다른 핏물이 흘러내렸다.
발렌타인 성에 전해진 소식은 통신구를 통해 황궁으로 전해졌다. 바이멘 후작으로서는 결정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전쟁의 끝은 황제가 직접 끝났다고 해야 끝이 나는 것이다. 신하가 함부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코스트너 황제는 늙어 가고 있었다. 과거의 패황은 이제 갔고, 늙고 초라한 늙은이만 남았다. 코스트너 황제는 전쟁을 빨리 끝내고 싶었다. 더 이상 후계를 미룰 수도 없는 시점이 다가왔다. 전쟁이 계속되는 것만으로도 지친 코스트너 황제는 각 왕국의 요구조건을 들어주라고 명령을 내렸다.
카이로만 제국 황제의 명령이 떨어지자 각 왕국과의 계약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파스트론 공작과 발리스타 공작은 협조가 이루어졌을 때를 고려하여 작전을 구상하였다. 하루의 시간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작전은 최후의 전투로 위장하여, 결정적인 한 방을 먹이는 것이었다.
코카 제국연맹의 황제 무르카인의 신경질은 시간이 지날수록 날카로워졌다. 이제까지 얻은 전과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피해만을 누적시켰다. 대륙의 패자는 커녕 대륙의 비웃거리로 전락한 것 같았다.
“이게 뭐냐? 이게 뭐냔 말이다!”
“황제 폐하! 몸이 상하십니다! 고정하시옵서서!”
“전쟁이 이따위로 진행되는데 날보고 고정하라고! 버러지 같은 것들 도대체 어떻게 전투를 치르기에 아직도 성 하나 함락시키지 못하는 것이냐!”
제국의 신하들은 무르카인 황제의 화가 미칠까 두려워하였다. 황제는 피의 숙청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인물이었다. 절대 황제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서 형을 죽이고 황제가 된 인물이었다. 또한 나머지 동생들까지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해서 모두 유배 보내 버렸다. 패륜의 황제라는 오명을 안고 있었다.
이지마하 공작이 화를 내는 무르카인 황제에게 각 왕국의 뜻을 전달하였다.
“황제 폐하! 각 왕국이 내일을 기점으로 최후공격을 하겠다고 합니다. 모든 전력을 각 지점에 쏟아붓겠다고 결의를 다졌습니다!”
“흥!”
지금까지도 필사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각 왕국은 자신들의 주전력이 상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모든 전력을 투입한 실정은 아니었다. 무르카인 황제의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드리워졌다.
“이제야 내 뜻을 이행하는 것이냐! 좋다! 제국의 모든 전력도 내일 발렌타인 성에 쏟아붓는다. 각 공국에 명을 전달하라!”
“황제 폐하의 명을 받듭니다!”
무르카인 황제의 눈에 광기가 번들거렸다. 전쟁이라는 악마의 속삭임에 빠져들고 있었다.
“내일 나는 대륙최강의 패자가 된다!”
내일의 해가 밝아 오는 시점이었다. 아침부터 부산하게 움직이는 각 제국진영이었다. 코카 제국의 최강 정예병력이 출전을 바로 앞에 두고 있었다. 무르카인 황제가 심혈을 기울인 헬워리어부대였다. 지옥의 전사들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부대다. 전투에 대한 두려움과 무서움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검은색으로 칠을 한 갑옷을 입은 헬워리어부대는 모든 병사들에게 두려움을 주기에 충분했다.
무르카인 황제가 직접 전장의 한복판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패황의 기운이 전신을 감싸고 있는 듯했다. 대륙을 2등분하는 황제의 위엄을 갖추었다. 무르카인 황제가 지휘봉을 들었다. 황제의 지휘봉이 발렌타인 성을 가리켰다.
“오늘 나는 저 성을 함락하고, 카이로만 제국을 무너뜨릴 것이다! 나의 뜻을 이어받은 병사들이여! 모두 앞으로 나아가라!”
“와아아아아아!”
패기를 담은 함성이 전장을 메아리쳤다. 병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공성병기가 그 뒤를 따랐다. 성을 함락시키기 위한 전술을 사용하기 위해서 공성병기의 접근은 필수였다.
무르카인 황제의 입가에 맺힌 잔인하고 차가운 미소가 섬뜩하게 느껴졌다. 그는 이제 앞을 내달리는 것만 생각하게 되었다. 한번 수틀리면 냉정을 쉽사리 회복하지 못하는 무르카인 황제였다. 그는 실패를 용납하는 인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휼턴 공작은 걱정이 앞섰다. 어제 갑작스럽게 각 왕국이 결의를 보내왔다. 상당히 의문스러운 일이었다. 결의를 다진다고 해서 쉽사리 전투를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제까지 쏟아부은 전력이 전보다 약했느냐 그것도 아니었다. 백만 이상의 병 사를 희생시킨 전투였다. 결코 작은 손실이라고 볼 수 없었다.
전쟁의 승리가 확실하지 않은 이 시점에서 무작정 정면대결을 하겠다고 최후전력을 사용한다.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보면 문제가 있어 보였다. 휼턴 공작은 각 왕국의 움직임이 수상하다고 무르카인 황제에게 말을 꺼냈다. 하지만 무르카인 황제는 휼턴 공작의 말을 듣지 않았다. 이제까지 수행했던 모든 의견을 낸 인물이 휼턴 공작이었다. 그가 연이어 실패하자 무르카인 황제는 휼턴의 능력을 의심했다. 서로 벌어진 격차는 이제 다시 돌이킬 수 있는 차이가 아니었던 것이다.
‘무르카인 황제여! 당신의 능력은 여기까지구려!’
무르카인 황제의 어린 시절부터 봐온 휼턴 공작이었다. 그의 기질이 다분히 패도적이고, 이기적이지만 상황을 유리하게 만드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을 파악했다. 그렇기에 휼턴 공작이 무르카인 황제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지금의 황제가 되었던 것이다. 과거로 돌이킬 수만 있다면 다른 인물을 황제로 만들어 보고 싶은 휼턴 공작이었다.
채채채애앵! 꽈과과광!
공성병기가 쏟아지고, 병사들의 치열하고 거친 숨소리가 전장을 가득 메웠다. 누가 이기고 지느냐의 최후결전을 보는 듯했다. 점령하려는 자와 끝까지 막으려는 자의 치열한 사투였다. 죽은 병사들과, 죽은 병사들을 밟고 올라서는 병사들. 인세에 지옥이 있다면 바로 여기가 바로 그 지옥인 것 같았다.
“공격하라! 저 성을 반드시 함락하라!”
무르카인 황제는 병사들의 죽음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발렌타인 성을 넘어야 한다는 것만 생각했다.
“각 왕국의 병력은 공격을 하라!”
“응?”
무르카인 황제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코카 제국 연맹의 왕국들이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는 공격지점이 카이로만 제국이 아니었다. 왕국이 코카 제국의 옆구리를 쳤기 때문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공격이 가해지자 코카 제국군의 병사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어제까지 동지였던 자들이 이제는 적이 되었다. 국제관계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이 발생해 버렸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언제든지 배신과 동맹을 할 수 있었다.
부르르르르!
“이놈들이 감히! 나를 배신해!”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분노를 참을 수가 없어서인지 전신이 떨리고 있었다. 뒤통수를 제대로 얻어맞은 꼴이었다. 왕국이 이런 식으로 배반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알았다고 해도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제 휼턴 공작의 의견을 무시한 것이 뼈에 사무치도록 아파왔다.
슈슈슈슈슉! 슈슈슈슈슉!
하늘을 시꺼멓게 만드는 무언가가 무르카인 황제를 향해 날아왔다. 각 왕국은 최대한 코카 제국군 진영에 다가와 있는 상태였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무르카인 황제였다. 황제를 죽여야만 전쟁이 끝이 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푸우욱! 크윽!
대부분의 화살을 막아내었지만 단 한 발의 화살이 무르카인 황제의 가슴에 꽂혔다. 심장부위에서 조금 벗어난 지점이지만 무르카인 황제는 버티지 못하고 쓰러져야 했다. 황제가 쓰러지자 코카 제국군 진영은 엉망진창이 되어 가고 있었다.
“이…놈들! 절…대! 용서…하지…않…”
“황제 폐하를 어서 옮겨라!”
휼턴 공작이 다급하게 무르카인 황제를 마차 안으로 옮겼다. 우선은 자리를 벗어나는 게 시급했다. 전쟁은 승산이 없어졌다. 동맹 왕국까지 배신한 마당에 코카 제국군만으로는 절대 이길 수 없었다. 병사들을 뒤로 물리도록 이지마하 공작에게 부탁했다.
“이지마하 공작! 병력을 뒤로 빼시오!”
“알았소이다!”
끼이익!
발렌타인 성의 굳건했던 문이 열렸다. 공격에 부서져서 열린 문이 아니었다. 스스로 열었다는 뜻이다. 카이로만 제국에서 본격적으로 공격에 나섰다는 것을 알리는 개문이었다. 카이로만 제국군이 물밀 듯이 밀려나왔다. 이제까지 참고 있던 분노를 터트렸다.
코카 제국으로서는 앞과 옆으로 둘러싸인 상황이 되었다. 역습으로 받은 피해가 너무 컸다. 이대로는 절대 상대가 되지 않았다. 코카 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역습하는 카이로만 제국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부대를 남겨 놓고, 코카 제국군은 본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애를 썼다. 남겨 놓은 부대는 카이로만 제국과 모든 왕국의 공격으로 인해 얼마 버티지를 못했다.
무르카인 황제가 화살을 맞아 거동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마법사들이 힐링마법을 사용하여 몸을 회복시키고는 있지만 심장 부위를 맞아서 쉽게 회복하지 못했다.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휼턴 공작에게 이지마하 공작이 다급하게 물었다.
“황제 폐하의 상태가 어떻소?”
“이제는 안정을 찾았소. 하지만 의식은 회복하지 못했소이다.”
“큰일이오! 이대로 코카 제국이 무너진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소이다! 빌어먹을 왕국놈들! 감히 코카 제국을 배신하다니!”
“화만 내어서 될 것이 아니오! 우선은 본국으로 돌아가는 길목인 싸이렌 성으로 가야 하오.”
“하지만 지금 이대로 간다고 해도 카이로만 제국이 따라올 수 있소! 가서 방비를 하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소이까!”
휼턴 공작이 지도를 펴서 한곳을 지목했다.
“카논 능선이오! 이곳을 통과하기 전에 매복을 하는 것이오! 양쪽으로 병사를 숨길 수 있는 지점이 있소! 최대한 이곳에서 시간을 끈 다음에 병사들을 대피시키는 것이오! 카논 능선에서 시간을 끌고, 벨로인 강에서 다리를 끊어 버리면 당분간은 시간을 벌 수 있소이다.”
“그렇게 하겠소이다.”
이지마하 공작은 휼턴 공작의 침착한 대응에 감탄했다. 자신은 왕국의 배신에 화가 나서 상황판단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휼턴 공작은 최선책을 내놓은 것이다. 아무나 할 수 있는 대응이 아니었다. 감탄하는 이지마하 공작에 비해 휼턴 공작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이것은 최선책이라고 할 수 없다. 능선에 대한 간단한 조사만 이루어지면 상대가 파악할 수도 있었다.
‘적국의 파스트론 공작과 발리스타 공작이 과연 뜻대로 움직여줄까!’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기사들이었다. 어쭙잖은 전술은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시간을 버는 것도 문제지만 싸이렌 성만으로 버틸 수 있느냐다. 싸이렌 성을 코카 제국의 황성으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이곳이 무너지면 코카 제국은 끝장이라고 할 수 있었다.
견고함으로서는 발렌타인 성 다음으로 강한 곳이 싸이렌 성이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수적인 열세였다. 거의 5배에 달하는 병력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한두 명에서 4명이 된 것이 아니었다. 백만에 달하는 병력 차이가 5배라는 소리였다. 현재 코카 제국군의 병력은 백만이 조금 안 되는 수준이었다. 발렌타인 성에서 잃어 버린 헬워리어부대의 손실도 컸기에 문제가 심각했다.
카이로만 제국의 진군은 멈추지 않았다. 코카 제국군이 방해를 하기는 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병력의 수와 기세가 달랐다. 이미 패전이 짙은 병사들과는 군사의 사기면에서 상대가 되지 않았다.
카이로만 제국의 황자들이 전면에 나서고 있었다. 1황자가 발렌타인 성에서 발리스타 공작, 파스트론 공작과 같이 나와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또한 남쪽지점에서 빠르게 진격한 2황자가 합류한 상태였다. 3황자가 끝까지 북쪽지역을 지키다가 진격명령이 떨어져서 나중에 합류가 되었다.
러쉬 1황자는 전투에 필요한 전술을 효과적으로 운용하였다. 옆에서 보조해 주는 발리스타 공작과 파스트론 공작도 감탄할 정도로 대단한 전술이었다.
지니언 2황자는 용맹스러웠다. 병사들을 직접 이끌어서 전투에 참여하고 있었다. 같은 나이 또래에서 적수가 없을 정도의 실력을 발휘하였다. 놀라운 사실은 벌써 익스퍼트 중급의 실력이라는 것이었다. 초대 황제 카이로만 대제가 검을 들고 앞으로 진격하는 모습을 연상케 하였다.
그에 반해 다마트 3황자는 조용했다. 그는 직접 나서지 않으며 뒤에서 병사들의 조율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다. 특출나게 먼저 나서서 적군을 맞이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병사들의 체력보존과 병력손실 면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사실상 병력 손실은 가장 적은 편이었다. 그에 따라 병사들의 신뢰는 3명의 황자 중에서도 가장 높은 편이었다.
대군이 한꺼번에 이동하기에 진격속도가 빠르다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기동성을 살려 적군의 뒤를 칠 필요성이 있었다. 카이로만 제국은 코카 제국의 황성을 점령하려고 했다. 그것이 목표였다.
“러쉬 형님! 이번에는 제가 참여하겠습니다!”
“지니언! 무리할 필요 없어.”
“형님이 공을 세웠으니 이번에는 제 차례입니다.”
러쉬 황자에게 지니언 황자가 말을 한 것이다. 첫 역습공격에서 러쉬 황자가 공을 세웠다. 그에 반해 나중에 합류한 지니언 황자는 공을 세운 것이 별로 없게 되었다. 러쉬 황자는 한숨이 나왔다. 코카 제국을 쫓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부터는 코카 제국 진영이었다. 코카 제국이 무슨 함정을 만들어 놓았을 지 알 수 없었다.
“먼저 기병대를 보내 확인 후에 가면 안 되겠느냐?”
“이미 전세를 기울었습니다! 그다지 위험한 일은 없을 겁니다. 형님이 생각하는 걱정이 무언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겐 이게 있습니다!”
지니언 황자가 조금 전에 압수한 물건이었다. 이것은 코카 제국의 지도였다. 적 진영에서 발견한 것을 입수하여 지도를 살펴보았다.
“아니 이건 지도 아니냐?”
“그렇습니다. 제가 아무 생각도 없는 줄 아십니까! 이곳 카논 능선을 보면 엄폐물이 많습니다. 이곳에서 분명히 놈들은 함정을 만들어 놓을 겁니다. 또한 카논 능선에서 벗어나서 벨로인 강을 반드시 넘을 것입니다. 놈들이 벨로인 강을 넘기 전에 카논 능선을 정리하는 게 시급하니다!”
이렇게까지 말하니 거절할 수 없는 러쉬 황자였다. 지니언 황자의 뜻을 받아들여 기병대를 움직일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지이너 황자의 옆으로 네벨리언 공작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기병대의 수도 족히 8만에 달한다. 또한 카논 능선을 정리할 즘에는 병력이 도착하게 된다. 시간이 지체되기 전에 병력과 합류하여 코카 제국군이 벨로인 강을 넘기 전에 해치우게 되면 모든 공은 지니언 황자가 가지게 된다.
‘강한 제국을 위해서는 용맹스런 지니언 황자님이 황제가 되어야 한다!’
초대황제의 피를 가장 많이 물려받은 지니언 황자였다. 역사 속의 모습을 보아도 이만큼 닮기는 힘들 것이다.
지니언 황자가 네벨리언 공작과 함께 먼저 출발하였다.
“예상대로입니다.”
“그렇겠지.”
카이로만 제국군의 후미에서 따라 오는 인물이 아주 흥미롭다는 듯이 전방을 바라보았다.
“지도에 대한 의심은 없겠지.”
“길드에서 완벽하게 준비를 했습니다.”
“어디 지켜보지, 후후후.”
때마침 지도를 발견하게 된 지니언 황자였다. 코카 제국군에서도 자국의 지도는 특급에 속하도록 비밀에 부친다. 중요지점과 전략에 대한 수립을 위한 지도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타 왕국에 전해진다는 것 자체가 이해 불가능한 일이었다.
카논 능선.
카논 능선에 따라 매복을 한 코카 제국의 궁수대와 병사들이 공격을 받고 있었다. 카이로만 제국군이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지만 능선의 뒤로 돌아와서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나무와 수풀로 가려진 지대이기는 하지만 궁수대는 전투 부대라고 할 수 없었다. 실력 면에서 차이가 나고 있었다.
카이로만 제국군을 이끄는 지니언 황자와 네벨리언 공작의 활약이 눈부셨다. 청백색의 오러와 오러 블레이드가 적군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있었다.
“황자님 제 옆에 있어야 합니다!”
“나는 걱정 말고 적들을 치세요!”
지니언 황자는 거침없이 코카 제국군을 상대하고 있었다. 병사들은 지니언 황자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초대 황제가 남겨진 스톰 검법과 일렉트릭 검법의 절묘한 조화가 돋보였다. 특히 황궁의 비전으로 내려오는 오의가 있었다. 이것은 황궁의 황자들에게만 전해지는 것이다. 스톰 검법과 일렉트릭 검법을 조화롭게 사용하기 위해서 필요한 검술 오의라고 할 수 있었다. 가르딘이 동기들에게 전수한 뇌전폭풍도법과 비슷하지만 차이는 존재했다. 가르딘의 오의가 훨씬 뛰어났다. 하나로 완벽하게 합일한 뇌전폭풍도법과 비교하면 손색이 있지만 지니언 황자는 나름대로 검술을 자신의 몸에 맞게 사용하고 있는 상태였다. 나이를 감안하면 대단한 성취가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저기를 맡겠어요!”
네벨리언 공작에게 말을 하고, 한쪽 구석에 자리한 병사들을 향해 돌진하는 지니언 황자였다. 네벨리언 공작은 지니언 황자가 가는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 움직이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부터 이상한 감각을 맛보았다. 앞에서 싸우는 병사들의 움직임이 놀랍도록 민첩했다. 오러 마스터는 아니더라도 그에 비견되는 놈들이었다. 이상한 것은 이놈들이 병사들 속에 숨어 있다는 것이다.
“수상한 놈들이구나!”
소름 돋는 기운을 가진 놈들이다. 이런 기운은 전문적인 어쌔신만이 가진 것이었다. 그 기운을 간파한 네벨리언 공작이 지니언 황자를 찾았다.
“아…안 돼!”
지니언 황자는 궁수대를 처리할 목적으로 움직였다. 별다른 위험은 없어 보였다. 카이로만 제국군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곳곳에 난전이 벌어지는 것을 제외하고 별다른 문제는 존재하지 않았다.
지니언 황자가 검을 사용하여 궁수대를 처리해 나갔다. 그런데 그때 옆에서 튀어나오는 무언가가 있었다. 무섭도록 빨랐다. 보통의 궁수병이 아닌 것 같았다. 본능적으로 움직여 검을 옆으로 밀쳐내었다.
타앙!
지니언 황자는 검에서 느껴지는 기운에 소름이 돋았다. 또한 그 힘도 만만치 않았다.
“이런!”
음습하고 사이한 기운을 가진 놈이었다. 좌에서 우로 빠르게 움직여 나갔다. 군더더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빠른 스텝이었다. 보통의 병사들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지니언 황자는 등 뒤로 흐르는 땀을 느낄 수 있었다.
‘다가온다!’
검은 그림자가 다가와서 단검을 던졌다. 일직선으로 날아오는 단검은 세 자루였다. 지니언 황자는 말에서 내려 단검 하나를 피했다.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단검을 일렉트릭 검법을 이용해서 막아내었다.
“커억!”
“언…제?”
어느새 검이 지니언 황자의 왼쪽 가슴을 가격했다. 너무나 빠르고 무서울 정도로 조용했다. 소리조차 나지 않은 단검이 지니언 황자의 가슴을 깊게 뚫었다. 검을 부여잡은 지니언 황자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순식간에 가슴을 뚫은 단검은 독을 분출했다. 독이 심장을 직격해 버린 것이다. 단검과 독에 당한 지니언 황자는 눈앞이 어두워져갔다.
“나…난…황…제…가…”
털썩!
지니언 황자의 죽음.
믿을 수 없는 일이 현실로 벌어졌다. 별다른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과는 다르게 병사들 사이고 암습자들이 있었다.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코카 제국군이 황자를 암습하기 위해서 전문적인 어쌔신을 궁수대 사이로 숨겨놨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도망치기도 바쁜 시간에 그럴 염두를 두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네벨리언 공작이 다가갔을 때 이미 지니언 황자는 숨을 거두었다. 네벨리언 공작은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분노를 터뜨렸다.
“네 이놈들! 모두 죽이리라!”
오러 마스터의 분노는 무서웠다. 궁수대를 인정사정없이 도륙해 버리고 있었다. 전투는 바로 종식이 되어 버렸다.
한참 동안 검을 휘두른 네벨리언 공작이 지니언 황자를 살폈다. 심장에 박힌 단검을 확인해 보았다.
“이건 투명검!”
어쌔신들이 암습을 효율적으로 다루기 위해서 투명마법을 단검에 걸어 놓기도 한다. 이로써 확신이 들었다. 누군가 지니언 황자를 노리고 어쌔신을 보낸 것이다. 전장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만들어서 확인할 수 없는 난전으로 만들고, 명분을 만들었을 것이 분명했다.
“누가 감히 이런 짓을 했단 말인가?”
지니언 황자는 뛰어난 검술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차기 황제의 권위를 노릴 수 있는 충분한 능력과 실력을 가졌다. 만약 누군가가 지니언 황자를 암습한다면 차기대권을 위해서였을 가능성이 컸다.
네벨리언 공작은 차분하게 생각해 보았다. 누가 과연 이득이 있을까! 있다면 한 사람뿐이었다.
“설마!”
지도가 발견되었던 것도 모두 누군가의 간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벨리언 공작은 설마 하는 심증에서 확신에 가깝게 변했다. 그만큼 지니언 황자의 죽음은 네벨리언 공작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손자와 같이 생각한 지니언 황자의 죽음에 대한 분노를 풀어야 했었다.
“사실이라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네벨리언 공작이 이끄는 귀족들과, 카론마이어 공작이 이끄는 귀족들 역시 만만치 않게 많다. 지니언 황자의 죽음이 주는 충격은 카이로만 제국을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 넣기에 충분한 것이 될 것이다.
카이로만 제국군의 진격이 멈춰졌다. 2황자의 죽음이 불러온 결과였다. 카이로만 제국으로서도 결코 물러설 수 없게 되었다. 제국의 황자가 코카 제국의 암습에 당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진격을 계속해야 합니다. 이대로 코카 제국이 도주하게 놔둘 수 없습니다!”
파스트론 공작과 발리스타 공작이 러쉬 황자에게 진격할 것을 요구했다. 지니언 황자가 죽은 것은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차라리 진군을 하여 지니언 황자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하는 것이 나았다.
“하지만 동생이 죽었는데, 어떻게 사실을 밝히지도 못하고 바로 진격할 수 있단 말입니까?”
“형님은 진격을 해야 합니다. 둘째 형님은 제가 책임지고 밝히겠습니다.”
“다마트야! 나는 애통하다! 지니언을 그때 가게 하는 게 아니었다!”
“형님은 황제가 되실 분입니다! 이 정도로 약해져서는 안 됩니다!”
다마트 황자가 나서서 러쉬 황자에게 말을 이었다. 다마트 황자는 진격해서 공적을 세우는 것보다는 지니언 황자에 대한 안타까움이 물씬 풍겨 나왔다.
러쉬 황자는 그렇게까지 말하는 다마트 황자의 말에 진격하기로 결정을 내려야 했다. 카이로만 제국을 위협하는 코카 제국을 저대로 놔두어서는 안 되었다. 확실하게 눌러 놓아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러쉬 황자는 눈동자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잠시 하늘을 보던 러쉬 황자가 진격명령을 내렸다.
“진격하지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발리스타 공작과 파스트론 공작이 러쉬 황자의 결정에 따라 진격에 나섰다. 하나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불신에 가까운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눈동자를 말이다. 네벨리언 공작은 분노를 차갑게 가라앉혔다.
‘후회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