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무리한 진격@@]
전투는 반나절 가깝게 진행이 되었다.
막상막하의 전투는 어느새 수적인 우세를 앞세워 카이로만 제국군이 승세를 잡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대군과의 전투와, 피로누적으로 인해 헥토르 왕국이 밀리게 되었다. 전투가 길어질수록 피해만 속출했다.
병사들의 피해가 커질수록, 수가 부족하게 된 헥토르 왕국은 겉잡을 수 없는 사태에 빠지고 있었다.
부들! 부들!
사이너스 국왕은 전투의 결과에 대해 믿을 수가 없었다. 안면근육이 연신 실룩거렸다. 불같이 화난 사이너스 국왕의 얼굴이 붉게 상기가 되었다.
“이...럴 수가! 대헥토르 왕국이 이처럼 무너지다니!”
“국왕 폐하! 지금은 물러서야 합니다! 더 이상 병력을 잃으면 전멸을 감수해야 합니다!”
멜버른 후작은 퇴각을 주장했다. 살아남은 다른 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대로는 절대 승산이 없는 전투였다. 이미 전쟁은 진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이제 남은 길은 살아남아서 후퇴하는 길 뿐이라고 생각했다.
“허허허!”
사이너스 국왕의 입가에서 허탈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살려고 후퇴하자는 귀족들의 말은 사이너스 국왕에게는 죽자는 말과 다름이 없었다. 이미 모든 병력을 이곳에 쏟아 부었다. 왕국의 모든 전력이 이곳에 있는데 살아서 무얼 할 수 있단 말인가! 지금 돌아가서 카이로만 제국의 결정에 따르자는 말인가! 한심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다.
“물러설 수 없다! 나는 이곳에서 죽겠다!”
사이너스 국왕은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여기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후퇴하지 않을 것이다.
멜버른 후작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그러니 후퇴하자는 겁니다!”
“방법! 무슨 방법이 있단 말인가! 싸워서 이기는 것밖에는 없다!”
“있습니다. 놈들이 만약 우리의 작전에 따라와 준다면 역전의 기회는 있습니다!”
멜버른 후작이 확신하듯 말을 하자 사이너스 국왕의 마음이 흔들렸다. 멜버른 후작은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작전을 사이너스 국왕에게 설명했다. 물론 생각만큼 확신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카이로만 제국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전력이었다.
설명을 들은 사이너스 국왕이 잠시 망설이다 승낙했다.
“후퇴한다.”
국왕의 명령이 떨어지자 멜버른 후작과 귀족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여기에 더 있다가 죽을 수 있다는 공포감이 작용한 것 같았다. 어느 때보다 빠른 모습을 보이는 귀족들이었다.
빠아아앙! 빠아아앙!
퇴각나팔이 울려 퍼졌다.
헥토르 왕국의 병사들이 일제히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헥토르 왕국군이 물러서자 제국군의 진영도 바빴다. 적들의 공격을 막아냈으니 결정을 내려야 할 때였다.
코워드 후작과 귀족들은 승리했다는 것에 안심했다. 막상 전쟁이 벌어졌을 때 긴장으로 인해 정신이 혼미하기까지 했다. 승리하였기에 망정이지 졌다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을 것이다. 귀족들은 승리한 것에 만족하였다. 그러나 승리에 도취되는 것도 잠시 더욱 큰 욕심이 그들의 뇌리에 자리 잡았다. 도주하는 놈들을 따라잡아서 공격해서 사이너스 국왕을 잡고, 헥토르 왕국을 점령하는 것이었다.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이제까지의 공적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공적이었다.
“놈들을 쫓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대로 헥토르 국왕을 놓칠 수 없습니다!”
귀족들은 병사들의 피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병사들은 귀족들의 목적과 수단이 되는 도구에 불과했다.
“잠깐 전열을 재정비하지.”
코워드 후작도 귀족들과 같은 생각이었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병사들의 재정비였다. 병사들은 첫 전투로 인해 상당히 지쳤다. 전쟁을 경험해 보지 못한 것에 대한 두려움과, 긴장으로 인해 더욱더 많은 체력이 고갈되었다.
“아군의 피해는?”
“6만의 사상자와 2만의 부상자가 속출했습니다. 부상자 중에 1만은 거동이 가능하나 나머지 1만은 부상이 심해 움직일 수 없습니다.
“헥토르 왕국의 피해는?”
“4만 정도 될 것입니다. 그들도 부상자를 빼면 실제 활용 할 수 있는 병사는 더 적을 겁니다.”
산술적으로 제국군의 피해가 더 크다. 체력이 고갈된 병사들을 상대로 이 정도의 피해를 보았다면 지휘자 전술운용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병사들의 피해만 본다면 제국군이 압도적이지만 지금부터 벌어지는 전투에서는 병력의 차이가 확연해진다. 20만 대 10만의 경우 2배의 차이가 되지만 ·13만 대 5만은 그 이상의 차이를 보이게 된다. 전투가 다시 벌어지면 헥토르 왕국의 피해가 더 크게 발생하게 된다. 이것은 명약관화였다.
코워드 후작은 6만에 달하는 병사들을 죽음에 몰아넣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얻을 수 있는 결과물을 중요시했다. 병사들의 피해상황을 파악하고 나자 자신감이 생겨났다. 헥토르 왕국을 완벽하게 함랑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았다.
“이곳의 정리는 가르딘 백작에게 맡기지.”
“그렇게 하는 게 좋겠습니다.”
병사들의 주검과, 부상자들에 관한 일을 가르딘에게 맡기고 코워드 후작은 후퇴하는 헥토르 왕국군을 쫓을 생각이었다. 가르딘이 공적을 쌓기 전에 자신이 미리 선수를 친 것이다. 공에 연연하지 않는 가르딘의 성격을 알고 있다면 오판이라는 것을 알겠지만 모르는 것이 코워드 후작의 불운이었다. 귀족이라면 모두 공적에 연연한다고 생각하고 있기에 때문에 생겨난 인식의 차이였다.
살금! 살금!
누군가 도둑 고양이새끼처럼 코워드 후작과 귀족들 사이로 접근한다. 자연스럽게 귀족들 속에 섞여서 대화를 듣는다. 대화의 진행양상을 듣자 표정이 굳어 버렸다.
‘뭐? 지금 추격한다는 거야? 이런 미친!’
대화를 몰래 엿든던 필리언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막는 것과 추격하여 적들을 섬멸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단순히 병사들의 수적인 우세만으로 이길 수 있다는 보장을 할 수 없다. 가르딘이 발키리 영지에서 헥토르 왕국을 막아낸 것은 이곳의 지형을 파악하고, 대비했기 때문이다. 공격하는 것이 수비하는 것보다 몇 배는 더 어려운 것이 전쟁이다. 전쟁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만족을 모르는군.;
적당히 방어하는 것만으로도 카이로만 제국의 입장에서는 대단한 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만족을 해도 부족하지 않을 텐데, 귀족들은 더 큰 욕심을 부리고 있었다. 너무 위험한 일이었다. 헥토르 왕국군은 자신들이 유리한 진영에서 전투를 벌이려고 할 것으로 보인다. 드래곤의 아가리로 쳐들어가는 형상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가르딘에게 알려야겠군.”
가르딘이 예견한 것보다 더 욕심이 많은 귀족들이었다. 가르딘은 전투의 참혹함을 알게 될테니 여기서 멈출 것이라고 예상을 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귀족들은 무모한 결정을 쉽게 내리고 말았다.
전장의 구석에 머물고 있는 발키리기사단으로 돌아간 필리언이었다. 필리언은 슈인에게 이 사실을 가르딘에게 전하도록 했다.
“빨리 움직여.”
“알겠습니다.”
발키리기사단은 이곳에서 대기를 하면서 전장 상황을 살피는 데 주력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때 귀족들 중에 한 명이 찾아왔다. 제롤드 백작이 직접 온 것이다. 필리언, 갈라, 유타도 자작의 작위를 가지고 있기에 그보다 낮은 귀족을 보낼수는 없었다.
“무슨 일입니까?”
“자네들은 이곳에 남아 부상자와 죽은 병사들을 정리해주게.”
필리언은 반박을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제롤드 백작의 얼굴으 보니 반론은 수용하지 않을 태세였다. 코워드 후작이 내린 명령이니 우선은 따를 수밖에 없는 발키리기사단이었다.
“그럼, 정리가 되는대로 따라가겠습니다.”
“그건 마음대로 하게.”
제롤드 백작의 입가에 비웃음이 드리웠다. 한두 명 죽은 것도 아니고 무려 6만이나 되는 시체를 치우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모될 것이다.
‘그때쯤이면 전쟁은 이미 끝나 있을 거다. 후후훗!
마치 이번 전쟁을 승리한 것이나 다름이 없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필리언, 갈라, 유타는 어이가 없었다. 전쟁에 대한 감이 없어도 너무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저런 자신감을 보이다니 그게 오히려 대단해 보였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었다.
돌아가는 제롬르 백작을 보며 한마디씩 했다.
“평생 코워드 후작 밑이나 닦아라.”
“척 보니 변방귀족이 체질이구먼.”
“열 받아서 더 이상 도와주고 싶지도 않다.”
저들을 따르는 병사들이 불쌍해 보였다. 사실 이번 전투도 전략만 제대로 잘 짜고, 싸웠다면 피해를 절반 이상으로 줄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적군의 배나 많은 사상자를 내고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귀족들을 죽여 버리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제기랄! 저런 놈들이 어떻게 귀족이 됐니?”
“원래 세상이 얄미운 놈들이 잘되는 거 이제 알았냐!”
“알면서도 열 받잖아!”
내가 황제라면 저런 놈들 그냥 두지 않는다. 내가 권력가라면 진짜 세상을 올바르게 하겠다. 가지지 못한 자들이 항상 하는 말들이다. 결론은 그 자리에 있게 되면 자신도 똑같이 된다는 말이다. 괜히 청정한 척해 봤자 칼 맞아 비명횡사하기 딱 좋다. 세상은 더럽다. 결코 깨끗해질 수 없다. 있다면 인간들의 세상이 모두 멸망하는 길뿐일지 모른다. 권력과 욕망의 화신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인간인 이상 어쩔수 없는 악순환이었다.
“퉤”
더러운 놈들에게 할 수 있는 반항은 그냥 화나 풀면서 침이나 뱉는 것뿐이다. 필리언, 갈라, 유타도 다르지 않았다.
“어쩌겠어. 우선은 가르딘을 기다리자.”
“그런데!”
“왜?”
“우리가 언제부터 가르딘을 이렇게 의지했지.”
“헛!”
필리언, 갈라, 유타는 순간적으로 어벙해졌다. 원래 동기들 모두 개인플레이가 상당히 강했다. 자신들이 잘났다고 사는 놈들이 어느 순간부터 가르딘의 의견에 따르기 시작했다. 발키리 영지에 오고 나서부터 모은 것이 가르딘의 뜻대로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신들도 모르게 가르딘의 의도대로 움직여 나가게 되었다. 유타의 말이 충격적이기는 했다.
그러나!
“그럼 네가 결정할래?”
“싫어.”
“왜?”
“귀찮잖아.”
“하긴.”
결정을 해도 책임을 지고 있은 마음이 없다. 결정을 내리면 반드시 책임이 따라온다 가르딘이 비록 가볍고, 가끔은 무책임한 결정을 하지만 영지의 영주이기에 지금까지의 일을 모두 책임져야 한다. 그 점에서 필리언, 갈라, 유타는 책임을 질 필요성이 적다. 물론 하고 싶지도 않다는 것이 결정적이었다.
“그럼 기다리자.”
만장일치였다.
줏대없고, 책임감 없는 가르딘 못지 않은 동기들이었다.
다크호스를 타고 발키리 영지의 영지군이 있는 곳으로 달려간 슈안이었다. 다크호스가 워낙 빠르다 보니 시간은 별로 걸리지 않았다. 바람처럼 달려서 가르딘의 막사가 있는 곳으로 당도했다.
도착한 슈안은 곧바로 말에서 내려 헐레벌떡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간 슈안은 순식간에 얼굴이 붉어졌다. 숨이 차거나, 긴장이 되어서 붉어진 것은 절대 아니었다.
“고개 안돌려!”
위협적인 목소리가 슈안의 귓속으로 들려온다. 서둘러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렸다. 나이는 찼지만 여자 경험이 전무한 슈안에게 지금 봤던 장면은 감당할 수준이 되지 못했다. 순간적으로 이성이 폭발해 버리는 줄 알았다.
누군가 막사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대답도 없이 휘장을 걷고 들어올 줄은 예상하지 못한 가르딘이었다. 한순간 방심으로 인해 라이나의 정열적인 대화가 끝이나버렸다.
‘좋다 말았네! 다음부터는 확실히 조심해야겠어.’
라이나도 부끄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가르딘과 입과 입으로 주고받는 근접 대화 속에서 벌어진 좀 전의 부끄러운 상황이 상기되었기 때문이었다. 대화란 입과 입으로 주고받는 것이 기보니다. 절대 부끄러워 할 상황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너무 가까워서 닿아 있다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그래도! 아쉽다!’
부끄럽지만 끝내지 못한 것이 아쉽게 느껴지는 라이나였다. 가르딘과는 언제나 같이 있지만 항상 아쉬운 것 같았다. 둘 다 비슷한 수준이라 할 수 있었다. 왜 부부가 같은 성향을 띠게 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그건 그렇고,
“무슨 일이야?”
가르딘의 목소리에 어감이 조금 강하다. 좀 전의 불쾌한 감정이 고스란히 섞여 있는 것이 분명하다.
슈안이 감정을 정리하고 필리언에게 들은 내용을 가르딘에게 전달했다. 자초지종을 모두 들은 가르딘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일부러 창백하게 만든 얼굴에 드러난 심각한 표정이 상황을 더욱 암울하게 만들었다.
“라이나는 우선 집으로 돌아가.”
“무슨 일이 있는 건가요?”
“나중에 얘기해 줄게.”
“무리하지는 마세요.”
“알았어.”
라이나도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고,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막사 밖으로 나갔다. 브리안이 혼자 있는 상황이니 오래 있을 것도 아니었다. 라이나는 가르딘이 무사하기만을 바라며, 주신 라이니언르 향해 기도했다.
라이나가 나가는 것을 지켜본 가르딘이 의자에서 일어섰다. 창백한 표정은 그대로지만 기도가 변해 있었다.
옆에서 지켜본 슈안은 가르딘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에 절로 위축이 되었다. 막사 안에 막 들어왔을 때의 모습하고는 천양지차였다.
“6만 정도의 피해라. 예상보다 심하군.”
발키리 영지 총군사력의 2배나 많은 피해였다. 죽들의 규모로 볼때 입지 않아도 될 피해를 봤다. 가르딘은 죽은 병사들이 안타깝지만 현실을 냉정히 판단해야 했다.
“헥토르 왕국이 돌아갈 줄은 몰랐는데.”
사이너스 국왕의 성격상 끝까지 싸우다 전멸할 줄 알았다. 예상이 빗나간 결과 귀족들이 수비보다는 공격에 열을 올리게 되었다. 헥토르 왕국의 30만 정예병력이 이곳으로 오기는 했지만 헥토르 왕국에 병력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대책 없이 도주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최악의 경우 유인책을 사용한 것일 수도 있었다.
“슈안, 지금 즉시 병사들을 소집해.”
“알겠습니다. 영주님!”
가르딘은 일단 코워드 후작이 시킨 대로 할 생각이었다. 결정을 내렸다면 스스로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죽겟다는 데 말릴 이유는 없지.”
차갑게 식은 가르딘의 목소리였다. 적당히 공을 차지하라고 알맞은 먹이를 주었으면 준 것에 만족해야 했다. 욕심이 화를 부르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자신의 능력을 잘 알고 멈추는 것이 오래살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내 가족을 위험에 빠뜨린 놈이 도망가는 것을 두눈 뜨고 지켜볼 수는 없지.”
잊을 수 없다.
가르딘은 가족이 눈앞에서 죽음을 당할 뻔한 사실을 잊지 않았다. 그 사실을 잊는다면 자신은 더 이상의 존재가치가 없다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게 해줄 필요가 있었다.
지독히도 차가운 기운에 슈안의 몸이 얼어붙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영주의 또 다른 모습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항상 미소를 입에 품고 있는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챙! 챙! 챙!
병장기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헥토르 왕국의 병사들이 도주하면서도 적당히 병사들을 남겨서 제국군의 진격을 늦추고 있었다. 산발적으로 숨어 있던 헥토르 왕국의 병사들이 기습을 하기에 전진이 빠르지 않았다. 더군다나 마법사들이 거치적거리고 있었다.
멜버른 후작을 비롯한 고서클 마법사들이 남아서 병사들을 지휘하면서 치고, 빠지고를 반복했다.
-파이어 윌!(불의 장벽)!
-파이어 스톰(불의 폭풍)!
-윈드 토네이도(바람회오리)!
-윈드 붐(바람폭탄)!
꽈과과광! 휘이이잉!
“크아아악! 푸아아앙!”
불에 의해서 타죽는 병사들과 바람에 휩 쓸려 날아가는 병사들이 비명성을 내질렀다. 불과 바람은 상승효과를 보이고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이 불길을 더욱 거세게 만들었다.
제국군이 쫓아오기 전에 급하게 마른나무와 수풀을 대지에 깔아 놓은 것도 도움이 되었다. 소수의 병력이지만 제국군을 효율적으로 저지하고 있었다.
코워드 후작은 적들의 치고 빠지는 전술에 조바심이 났다.
조금만 더 가면 놈들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잡지 못하는것에 대한 짜증이었다.
“적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화살을 쏴서 모두 죽여 버려라!”
슈슈슈슈슈슝! 슈슈슈슝!
수만 발의 화살이 날아온다.
멜버른 후작은 죽의 화살 공격에 대비해서 소수의 병력만 운용했다. 소수 병력이라면 마력으로 충분히 보호가 되었다.
-윈드 윌! (바람장벽)
바람으로 이루어진 장벽이 휘몰아치자 날아오던 화살이 튕겨 나갔다. 소규모라고 해도 자신의 주변으로 반경 20미터에 해당하는 크기에 바람마법을 사용했다. 마력소모가 상당히 컸다.
“코두 퇴각한다!”
정면대결이 불리하게 된 상황이었다. 따라서 제국군과의 전투는 유격전을 기본으로 했다.
멜버른 후작이 냉정하게 전장을 바 라보았다.
‘조금만 기다려라! 반드시 후회하게 해주겠다!’
멜버른 후작의 임무는 제국군의 진격속도를 늦추는 것이다. 마지막 전략이라고 할 수 있는 방법이 성공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시간이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시간이 그들의 생사를 좌우하고 있었다.
코워드 후작은 병사들을 재촉했다. 추격이 가능한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추격하지 못하자 속이 점점 타들어갔다. 적군은 지속적으로 싸울 생각이 없다. 추격부대의 시간을 지연시키고, 헥토르 왕을 피신시키려고 애를 쓰는 것 같았다.
“빌어먹을 놈들 도망치는 것 하나는 쥐새끼처럼 빠르구나!”
“사이너스 국왕의 도망치는 꼴이 가관입니다!”
“어서 빨리 잡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번이야말로 하늘이 주신 기회입니다!”
그들 모두 헥토르 국왕을 잡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헥토르 왕국의 왕을 잡아 제국의 황제에게 바친다. 앞날이 탄탄대로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은 일이었다. 눈앞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것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산발적인 전투로 인해 제국군의 피해 역시 만만치 않았다. 적군이 소규모로 제국군의 전략과 체력을 소진시키려고 하는 것이 보였다. 상황을 냉정히 판단 하면 절대 무리한 추격을 해서는 안 되었다. 전투경험이 적은 병사들의 경우 피로는 가장 큰 적으로 다가올 수 있었다.
“어서 추격하라!”
코워드 후작을 비롯한 귀족들 모두 냉철함을 잃었다. 적들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자신감과 자만심으로 인해 주변 상황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뜬구름, 그 속에 서린 허망함을 귀족들은 알지 못했다. 허황된 욕심이 눈을 가리고 있었다.
피 비린내가 진동한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면서 죽은 시체들의 부패가 상당히 빠른 ㅤㅅㅗㄷ도로 진행이 되었다. 죽은 자의 핏물이 검게 변해하고, 시체가 썩는 비릿하면서도 속을 뒤집는 냄새가 평야를 갇그 메웠다.
역겨워서 속이 울렁거릴 지경이다.
가르딘이 병사들을 이끌고 평야로 와서 본 광경이었다. 참혹함이 무엇인지 절실히 보여주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가르딘을 비롯한 병사들은 그다지 표정변화가 없었다. 이미 겪어본 일이기에 적응이 되었는지 몰랐다.
가르딘의 시야에 적군의피해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군의 피해만이 눈에 들어올 뿐이다. 적이야 죽이면 그만인 물건과 다름없다. 어차피 죽이지 ㅇ낳으면 죽는 전쟁에서 죽군의 생명까지 존중해 줄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그들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 이곳으로 왔을지 몰라도 그러한 이유에 의해서 가치를 인정해 줄 필요는 없다. 적의 가치를 인정해 주기 전에 아군의 생명을 보전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많이도 죽었군.”
가르딘의 의도한 일이기는 해도 한쪽으로는 마음이 쓰렸다. 가르딘이 직접 나섰다면 이처럼 엄청난 피해는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 전쟁은 서로의 야욕을 드러내는 수단이나 도구에 불과하다. 다른 사람의 야욕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싶지는 않다. 더군다나 영지에 해가 될지도 모르는 일을 선뜻 나설 수 없다. 가르딘에게는 가족뿐만 아니라 영지민을 지켜야 할 의무도 있었다. 일의 경중을 따지면 자신은 안으로 굽을 수밖에 없다. 그것이 당연하게 생각이 되었다.
“기사들은 병사들을 지휘해서 이곳을 치워라.”
발키리기사단에게 시체를 치우도록 명령을 하고 난 후 가르딘은 동기들에게 다가갔다. 동기들은 한쪽에서 식사를 하면서 대기하고 있었다. 시체가 즐비한 곳에서 아무렇지 않게 식사를 하는 동기든도 미친놈 취급받는 데 부족하지 않았다.
오랜 시간 전쟁에 있다 보면 영양보충이 무엇보다 소중하다. 비위가 약해 음식을 먹지 못할 경우 전쟁시 체력이 떨어져 죽을 수 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동기들은 전쟁을 하는 동안 몸 상태를 최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전투시간이 예상보다 짧았어.”
“어쩔 수 없지. 만약 헥토르 왕국이 죽음을 불사하고 이곳에서 전투를 계속했다면 시간이 더 걸렸을지도 모르지.”
가르딘은 헥토르 왕국으로 가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마치 비릿한 혈향이 바람을 타고 흘러오는 것 같았따. 아직도 전투는 치러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정면을 응시하다 돌아서려고 했다. 그러다가 잠시 멈칫했다. 예전에 헥토르 왕국을 조사하면서 알아낸 사실이 있었다. 물론 사실이라고 할 것도 없다. 발키리 영지와 헥토르 왕국 간의 중간저리쯤에 양쪽 절벽으로 이루어진 협곡이 존해한다. 협곡은 장정 10명이 지나갈 수 있는 거리로 되어 있다. 전쟁이 벌어지면 협곡이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꼽힌다.
적의 기습을 받을 수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쟁이 벌어지면 협곡은 반드시 조사하는 것이 전술행동강령규칙에 적혀져 있었다. 가장 기본적인 진법이기에 누구나가 알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설마, 그런 멍청한 함정에 당하지는 않겠지.’
서너 살 먹은 애도 알고 있는 일이지만 전쟁은 그런 간단한 것조차 잊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그 사실을 가르딘이 간과해 버렸다. 가르딘은 모든 전투를 완벽하게 만들어내는 전술가 타입은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아는 전투방법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 뿐이었다.
“치우는 데도 오래 걸리겠군.”
병사들은 하루 정도 쉬고 나니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하루를 더 쉬면 원상태로 회벅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전투가 아닌 훈련으로 인한 피로이니 만큼 전보다 더 강해질 것은 자명하다.
헥토르 왕국군과 제국군의 추격전은 5일이나 지속되었다. 헥토르 왕국의 소규모전투가 눈부셨다. 이제까지 당하기만 했던 헥토르 왕국군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전쟁은 상대적이다 상대가 비등하거나 비슷하면 소모전이 되어 버리고, 약하다면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전쟁이다. 제국군의 경우 정예병이 아니기에 갑작스러운 기습에 대한 대응능력이 상당히 떨어진다.
지휘관인 코워드 후작 역시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적의 기습작전은 10여 개나 되었다. 언제 어디서 튀어나와 공격을 할지 알 수 없었다. 헥토르 왕국의 지형지물을 이용한 공격에 의해서 진격속도는 계속적으로 지연되어 시간이 2일이나 더 걸렸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전투를 했다. 하지만 결국 헥토르 왕국군을 따라왔다.
헥토르 왕국군의 본대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서둘러서 헥토르 왕국으로 돌아가려는 것으로 보였다.
코워드 후작이 병사들의 중간쯤에 위치한 자리에서 사이너스 국왕의 마차를 볼 수 있었다. 사이너스 국왕을 잡는 것이 이번 전쟁에서 가장 필요한 성과였다. 이대로 도망치게 놔둘 수는 없는 일이었아.
코워드 후작의 눈에 헥토르 왕국을 향하는 협곡이 들어왔다. 사이너스 국왕이 협곡 안으로 들어가면 다시는 잡을수 없을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협곡을 빠져나가기 전에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을 쫓아라!”
코워드 후작이 서둘러 진격명령을 내렸다. 조금만 더 빨리 움직이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헥토르 왕국군의 진영에서 5천의 병사들이 뒤로 움직여 나갔다. 국왕의 안전한 도피를 위해서 막아서려는 것으로 보였다. 5천의 병사들은 모두 죽음을 각오한 듯했다. 적들을 맞아 이곳에서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5천의 결사대.
지휘를 하는 인물은 샤이닝윙기사단의 단장 퍼거슨 백작이 뒤를 맞았다. 퍼거슨 백작은 국왕의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었다. 그의 단호한 결의가 병사들에게 퍼져나가 5천 결사대의 의지가 되었다,
“충의! 나라와 폐하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야말로 나와 너희들이 할 일이다! 이곳에서 죽는다고 끝이 아니다! 우리의 영광스러운 죽음은 반드시 보상을 받을 것이다! 헥토르 왕국의 영광을 위해서 가자!”
“아아아악!”
이를 악무는 5천의 결사대였다. 그들의 내달리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 달려오는 제국군의 병사들이 순간적으로 움찔할 정도로 오싹한 기운이었다. 죽음을 각오한 전의가 군세가 되어 서슬 퍼런 검 날이 되었다.
쿠과과과과쾅!
병력과 병력이 교차하여 부딪친다. 5천의 결사대가 넓게 진형을 구축하여 수만의 제국군을 맞이한다. 두께가 얕은 방패로 배틀엑스를 막아내는 형상이었다. 고요했던 평야가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와 병사들의 비명, 함성에 흔들렸다.
“적은 얼마 없다! 죽여랏!”
제롬르 백작과 버루거 자작, 비린스 자작, 스타인 남작이 오랜만에 선두의 바로 뒷 진영에서 소리를 질렀다. 그전까지 가장 안전한 지역에서 머물던 귀족들이 승리가 확실해 보이자 앞으로 나섰다. 먼저 앞으로 나서 사이너스 국왕을 잡고 싶은 욕심이 크게 작용한 것이다.
“푸어억! 크아아앗!”
검에 찔린 병사가 고통스러운 신음과 동시에 바닥에 뒹굴었다. 그와 동시에 상대편 병사도 찔린 배를 움켜잡고 쓰러졌다.
헥토르 왕국의 5천 결사대는 상당히 끈질겼다. 병사 1명이 죽는 동안 상대 병사 1명을 죽였다. 산술적으로 비슷한 숫자이니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전에서 수적 열세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안다면 그런 말을 하지 못할 것이다. 5천 명이 6만에 가까운 병력을 상대한다. 한 사람당 12명을 상대해야 한다. 장소의 협소함을 제외하고서라도 4명 이상을 상대해야 한다는 말이다. 한 명도 죽이지 못하고 죽어 나갈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제국군 한 명과 동귀어진한다는 것 자체도 대단한 것이 아닐 수 없었다. 보통의 각오가 아니라는 것을 제국군은 느꼈다.
‘이런 지독한!’
제롬르 백작을 위시한 귀족들 모두 헥토르 왕국군의 지독한 전의를 깨닫고, 소름이 돋았다. 죽음을 불사한다는 것은 생각도 해보지 않았으니 이해가 되지 않을 장면이었다.
어차피 적군의 수는 얼마 되지 않았다. 전투가 치열하게 진행이 되는 것 같지만 이제는 한계가 보이고 있었다.
“허억! 허억!”
사이닝윙기사단장 퍼거슨 백작은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검에 당한 병사들의 수가 족히 20명은 되었다. 기사들까지 포함된 수였다 기사 5명의 목을 베고 난 다음에 그는 등 뷔에서 찔러 들어오는 병사의 창을 맞았다. 간신히 피해서 치명상을 당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거칠어진 숨과, 흘러내리는 피로 인해 정신이 가물거리고 있었다.
“헥토르 왕국이여! 영...원하라!”
그의 마지막까지 왕국을 위해 소리를 질렀다. 철의 방패 아이언기사단의 윌리엄 자작은 상대의 충의에 몸서리가 쳐져ㅤㅆㅏㄷ. 그러나 이미 기력이 다했다. 이제는 움직이는 것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윌리엄 자작의 검이 퍼거슨 백작의 머리를 베어내었다. 바닥에 떨어진 퍼거슨 백작을 응시한 윌리엄 자작이었다.
“그대의 충성심은 인정해 주지. 허나 이 전쟁은 이미 끝이났다!”
5천 결사대가 12만에 달하는 병력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잠시 시간을 지연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좁은 협곡 안으로 헥토르 왕국군의 병력이 들어가고 있었다. 마지막 병력까지 모두 협곡을 지나 헥토르 왕국으로 향했다.
“지체하지 말고 추격하라!”
제국군의 코워드 후작을 비롯한 귀족들이 다시 명령을 내렸다. 진격은 다시 시작되었다. 뒤를 돌아보거나 협곡 위를 조사한다는 것은 모두 잊은 상태였다. 헥토르 왕국의 필사적인 저항이 상당히 거세서, 다른 상황을 염두해 두지 못했다.
헥토르 왕국과 카이로만 제국의 통로 역할을 하는 계곡.
이름은 삭막한 황야에 두 개의 협곡이 우뚝 서 있다고 하여 트윈유니크 협곡이라고 불린다.
협곡의 위에 마법사들을 지휘하는 멜버른 후작이 자리했다. 제국군이 미쳐 대처하기 전에 먼저 협곡 위를 점령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이미 궁수병을 정해진 위치에 배치했다. 그와 동시에 아래로 던질 수 있는 바위와 돌을 준비했다. 많은 바위와 돌을 준비할 시간은 없었다. 이 정도만 해도 상당히 빠른 대처라고 할 수 있었다.
“적들이 협곡의 중앙으로 오게 되면 앞과 뒤에 바위와 돌을 던져라!”
“알겠습니다. 멜버른 후작님!”
멜버른 후작은 사이너스 국왕이 완전히 빠져나갔는지를 확인했다. 협곡은 대군이 모두 지나가기에는 좁을 지 몰라도 갈이가 상당히 긴 편에 속한다. 일단 갇히게 되면 다 죽는다고 봐야 했다.
협곡의 위에서 5천의 결사대가 죽어 나가는 것을 지켜본 멜버른 후작이었다. 헥토르 왕국을 위해 목숨을 건 병사들을 위해서라도 제국군을 반드시 물리쳐야 했다. 피에 대한 보상은 반드시 피로 보상하는 것이 원칙이다.
“협곡 안으로 진격하라!”
제국군의 협곡 안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대규모의 병사들이 10명씩 줄을 지어서 헥토르 왕국군을 추격하기 위해 들어갔다.
제국군 앞으로 헥토르 왕국의 병사들이 보였다. 조금만 더 추격하면 따라잡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대군이 협곡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은 호리병 속으로 물이 흘러 들어가는 것과 비슷했다. 물밀듯이 밀려들어 가고 있었다. 앞에서 빠르게 달려가자 뒤에 있는 병사들이 더 빠르게 달려야 했다. 앞과 뒤의 차이였다. 앞에서 빠르게 달리면 뒤에서는 더 빠르게 달려야 보조를 맞출 수 있다.
많은 병력이 들어가고 있지만 협곡은 대군이 들어가기에 상당히 협소했다..
한참을 들어가자 병력들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포화가 된 것 같았다. 진격의 멈춤과 동시에 트윈유니크 협곡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우르르르! 꽈과과과광!
“크아아아악!”
지축이 흔들리는 굉음이 울리고, 병사들의 비명이 협곡에 메아리 쳤다. 협곡의 위에서 돌무더기와 바위덩어리가 떨어져 내렸다. 주먹만 한 돌멩이도 협곡 위에서 떨어지면 사람의 머리통을 한순간에 깨버릴 수 있을 정도가 된다. 사람 몸통만 한 바위가 떨어지는데 무사하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양 협곡의 끝과 끝 사이로 바윗덩어리가 떨어지자 갈이 막혀 버렸다. 제국군의 진형이 급속하게 흐트러졌다.
갑작스러운 헥토르 왕국의 기습에 당황하게 된 제국군은 혼란함을 수습할 여력이 없어 보였다.
“이...럴 수가!”
제롬르 백작의 다급한 음성이 메아리쳤다. 예상 밖의 기습에 적절한 대응을 하기에는 전투경험이 많이 부족했다. 오히려 불안감에 떠는 모습으로 인해 병사들의 두려움을 가중시켰다.
“어떻하지?”
“어떻게 합니까?”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슈우욱! 푸욱!
“크아아악!”
양 협곡에서 떨어지는 바윗덩어리에 이어, 화살이 소아지고 있었다. 화살이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히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시작했다. 협곡 안에 갇힌 병사들의 수만 해도 족히 2마은 되었다.
제롬르 백작이 떨리는 목소리로 후퇴하라고 소리쳤다. 그 조차도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이런 허망한 죽음은 원하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 살아야 했다.
“후...퇴하라!”
“뒤가 막혔습니다1”
“병사들을 시켜 뚫으란 말이야!”
제롬르 백작의 언성이 거칠어졌다. 살기 위해서 인간이 얼마나 추해지는지를 보여주었다. 헥토르 왕국의 5천 결사대가 보여준 모습과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앞위로 가로막혀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상황이었다. 병사들은 위에서 쏟아져 내리는 화살 공격과 바위공격에 속수무책으로 죽어 나갔다.
제롬르 백작의 머리 위로 바위덩어리가 떨어져 내렸다.
“어...안...돼!”
쿠우웅! 푸드드득!
부들! 부들!
개구리가 돌덩어리가 깔려 완전히 뭉그러지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온몸이 으스러졌음에도 불구하고 사지는 떨리고 있었다. 옆에서 지켜본 스타인 남작은 두려움에 떨며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자신만이라도 살려면 뒤로 도망치는 수박에는 방법이 없어 보였다.
협곡의 위에서 제국군의 죽음을 싸늘하게 바라보는 멜버른 후작이었따. 후작은 제국군의 허망한 죽음에 일말의 동정심도 보이지 않았다.
“진동마법을 사용하여 협곡을 무너뜨려라!”
협곡의 끝 중에서 불안정한 곳을 노려 진동마법을 사용했다. 지축을 조금씩 흔들어 바윗덩어리가 무너져 내리도록 한것이다.
2만의 제국군이 협곡 안에서 압사당하고 있었다. 이제까지 당하기 만한 헥토르 왕국으로서는 가슴속의 분노가 뚫어지는 통쾌한 전투가 아닐 수 없었다.
협곡을 빠져나갔던 헥토르 왕국의 병사들이 반대쪽의 협곡에 난 좁은 길을 타고 협곡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애초부터 전투는 유리한 지형인 협곡 위에서 하려고 했다. 시간을 지연시킨 것은 그 모든 준비를 완비하기 위한 전술이었다.
협곡의 외곽에서 지켜보던 코워드 후작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앞서 나갔던 병사들이 모두 죽어나가고 있었다. 뒤에 있던 병사들까지 손해를 입어서 상당히 많은 피해를 봤다는 것을 볼수 있었다.
“저...게 도대체!”
전혀 생각도 해보지 못했다. 도주하기 바쁜 헥토르 왕국군이 설마 저런 함정을 만들어 놓고 기다릴 줄은 몰랐다. 앞으로 진격하다가는 계속적인 피해를 볼 것 같았다.
“우선 뒤로 군대를 물려!”
협곡전투를 하려면 군대를 재정비해야 했다. 이대로 우왕좌왕하다가는 병사들의 수만 주 ㄹ어들게 된다. 코워드 후작이 믿고 있는 것이라고는 병사들의 수적 우세였다. 뛰어난 전술, 전략과는 거리가 있었다. 믿고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이 줄어들게 생겼으니 안절부절 못한 것은 당연했다.
빠아아앙!빠아아앙!
퇴각신호를 울렸다.
제국군의 병력이 뒤로 물러섰다.
코워드 후작은 피해상황을 살폈다. 좁은 협곡에 들어간 병력은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남아 있는 병력수가 중요햇다.
“9만 5천이라! 제기랄 3만에 달하는 병력이 죽다니!”
지금까지 코워드 후작의 무리한 공격과 서투른 전술로 인해 죽은 군사가 10만이 넘어간다.
“제롬르 백작과 스타인 남작이 죽은 것 같습니다.”
협곡 안으로 진격해 들어간 제롬르 백작과 스타인 남작은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되어 버렸다. 시체조차 다시 찾을 수 없이 협곡 안에 매몰되었다.
버루거 자작과 비린스 자작은 비통한 심정보다는 다소 안도한 느낌이었다. 자신들도 곧바로 협곡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었다. 만일 제롬르 백작보다 머저 들어갔다면 죽는 것은 자신들이 될 수도 있었다. 그들에게 의리라고는 쥐꼬리만큼도 없었다.
코워드 후작은 협곡 위에서 헥토르 왕국이 전투를 벌이려고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헥토르 왕국의 병력은 협곡을 지나서 뒤에 배치가 되어 있을 것이다. 협곡을 중심으로 공성전을 하는 꼴이 되어 버렸다. 두터운 성벽을 무너뜨려야 적진을 함락시키고, 영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헥토르 왕국의 병력은 4만 정도다.”
헥토르 왕국은 협곡을 수성하려고 할 것이다. 코워드 후작은 협곡 위로 올라가는 지점을 확인해야 했다.
“우선은 ㅎ벼곡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을 찾아.”
코워드 후작의 명령에 따라 버루거 자작과 비린스 자작이 양 협곡을 조사하기 위해서 버거운 체구를 움직였다.
협곡 위로 올라가는 지점은 생각보다 많았다. 협곡의 지형은 약간 협소하며, 위에서 아래로 경사가 심한 편이지만 올라가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또한 주변에 나무와 숲이 제법 우거졌다. 적의 공격을 피할 장소와 잡고 올라갈 수 있는 바침대가 되어주었다. 거의 10년 동안 비조차 내리지 않는 지형에서도 잘 자라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다.
1시간 정도의 조사가 이루어졌다. 빠른 시간 내에 필요한 것들만 확인을 하고 다시 보고를 올렸다.
“어떻게 됐나?”
“길은 여러 갈래가 있습니다. 다만 길이 좁고, 경서가 조금 헙한 편입니다.”
“올라가기 힘들 것 같나?”
“협곡 위로 올라가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됐군. 어차피 적들도 공격하기 쉽지 않은 지형이다. 어서 병사들을 데리고 협곡 위로 오르게.”
“예. 후작님!”
공격은 다시 시작되었다. 코워드 후작은 사이너스 국왕이 도망칠지 모른다는 생각에 시간을 줄 생각이 없었다.
제국군이 협곡의 능선을 따라 협곡 위로 올라갔다. 버루거자작과 비린스 자작이 병사들의 진격을 지휘했다.
병사들은 4명씩 한 줄이 되어서 능선을 타고 걸어 올라간다. 한 손에는 병장기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균형을 잡았다.
제국군이 협곡 능선의 절반 이상 올라가는 데까지 아무런 공격이 없어다. 헥토르 왕국군은 협곡의 상층부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협곡의 능선은 상층부가 되는 지점에서 갑자기 굴곡이 심해진다. 아래서 보는 것과 달리 가파른 지형이 되어 올라가는 것이 쉽지 않다. 짧은 시간 파악한 것으로는 확인이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래서 위로 올라가는 데 온 힘을 쏟는 제국군이었다.
그때에 헥토르 왕군구의 공격이 진행되었다. 헥토르 왕국은 위에 위치한다는 지형적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 창을 사용했다.
창병대가 창을 들어 아래서 올라오는 제국군을 향해 거침없이 찔렀다.
위로 오르는 것 만해도 힘이 들어가는 상황이었다. 제국군은 헥토르 왕국군이 찌르는 창에 속절없이 당하고 있었다. 앞에서 올라가다 찔린 병사가 쓰러지면서 뒤로 미끄러지자 뒤에서 올라오는 병사에게 장애물이 되었다. 아군이 오히려 방해가 되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푸우욱! 푸우욱! 크아아악!”
헥토르 왕국군은 최소한의 병력으로 제국군을 막아내었다. 협곡 위에 배치된 병력은 총 2만이었다. 후방에 다시 2만을 배치하여 서로 교대를 하여 체력적인 손실을 최소화하였다.
가파른 능선으로 인한 제국군의 피해가 늘어갈 때 헥토르 왕국군도 조금씩 피해를 입기 시작했다. 이유는 여러 갈래에서 밀고 올라오는 제국군의 공격 동선에 의해서였다. 모든 방향을 다 막아내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정면 공격에 대한 방어에 주력하는 사이에 옆으로 돌아서 들어오는 제국군의 공격에 허점을 노출시켰다.
“죽어랏!”
“즉어!”
채채챙! 채챙! 카카캉!
병장기 소리가 울리며 죽고 죽이는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졌다. 노출된 허점은 헥토르 왕국도 이미 예상한 것이다. 그때를 대비하기 위해서 마법사들이 움직였다. 마법사들은 제국군이 쳐들어오는 지점을 중심으로 마법을 전개하여 섣불리 밀고 올라오지 못하도록 방비했다. 한번 뚫리면 상당한 피해를 감수해야 했기에 마법사들도 필사적이었다.
헥토르 왕국군의 피해에 비해 제국군의 피해가 많다고 하지만 서로 병력 차이가 뚜렷하기에 백중세를 유지하게 되었다.
협곡 위에서 전투를 바라보는 사이너스 국왕은 기분이 좋지 못했다. 전투는 분명 헥토르 왕국이 조금 더 유리했다. 적들의 2만 병력을 몰살시켰으니 대단한 전과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발키리 영지에서 몰살당한 25만 대군을 생각하면 별것아닌 전과가 되어 버렸다. 이런 전투는 사이너스 국왕이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대륙을 양분하는 제국이 되고 싶은 야망이 한순간에 모두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 모든 것에 대한 원망과 원한이 한 인물을 향해 쏘아졌다. 바로 발키리 영주다.
“그놈만 아니었다면 ! 그놈이 내 앞길에 없었다면!”
다 그놈 때문이었다.
이렇게 된 모든 것이 가르딘 때문이라고 생각한 사이너스 국왕이었다.
고작 4만의 병력으로 이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전부를 이긴다고 해도 남겨진 병력으로 발키리 영지를 다시 쳐들어갈 수는 없지 않은가! 발키리 영지의 병력이 3만이나 되었다. 전에는 고작 3만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너무 벅찬 3만이 되어 버렸다. 헥토르 왕국의 앞날이 눈에 선하게 다가왔다. 이번 전쟁으로 인해 잃은 게 너무 많은 헥토르 왕국이었다.
한순간의 욕심으로 인해 모든 것이 허물어졌다.
“나의 과욕인가! 주신 라이니언께서 나의 과욕을 탓하시는 건가!”
한탄에 젖은 군왕의 모습은 병사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낳는다. 군왕이 바로 서지 않으면 결국 병사들도 바로 서지 못하게 된다.
“국왕 폐하! 심려를 거두십시오! 그러다 화가 몸에 미칠까 두렵습니다!”
“내 꼴을 보고도 하는 소리인가! 내가 이룩한 모든 것들이 무너졌어! 그런데도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이런 내가 한심해 보이겠지!”
보기 흉한 꼴을 보였다.
사이너스 국왕이 생각하기에도 한심한 모습이었다. 멜버른 후작은 우선 사이너스 국왕을 진정히켜야 했다. 불리한 상황에서 냉정을 잃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 아직 헥토르 왕국이 멸망한 것이 아니었다. 군대를 잃었지만 왕국이 망하지 않는 이상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국왕 폐하! 헥토르 왕국은 아직 건재합니다. 비록 병력을 잃기는 했지만 언제든지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나를 미웃는 것인가! 그런 말이 나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고 보는가?”
“코카 제국과 카이로만 제국의 전쟁은 언제 끝날지 모릅니다. 카이로만 제국이 헥토르 왕국을 견제하려면 전쟁이 끝난 후일겁니다. 그때까지 시간을 버는 겁니다. 또한 전쟁이 끝난 후에 카이로만 제국도 저 ㄴ쟁의 후유증을 겪을 겁니다. 너무 속단할 필요는 없습니다. 국왕 패하에게 헥토르 왕국이 그 정도로 나약한 나라였습니까! 국왕 폐하께서 건재하면 헥토르 왕국은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사이너스 국왕은 고개를 숙였다.
멜버른 후작의 말이 구구절절 옳았다. 이대로 주저앉는다면 사이너스 국왕은 헥토르 왕국의 역대 국왕 중에 가장 큰 과오를 저지른 왕이 되어 버린다.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던 자신이 가장 어리석은 국왕이 된다. 참을 수 없는 일이 아닐수 없었다.
짝!
사이너스 국왕 스스로 뺨을 두손으로 때렸다. 이제까지 못난 짓을 너무 많이 한 것 같았다. 분노를 삭이고, 상황을 냉철하게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다시 정신을 차린 사이너스 국왕을 보자 멜버른 후작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하면 좋겠나?”
“여기는 제가 책임을 지겟습니다. 국왕 폐하께서는 왕국으로 돌아가서 내정을 다스리고, 병력을 다시 모집하는 겁니다.”
대군을 잃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헥토르 왕국의 내정이 극도로 불안하게 되어 버린다. 불안해진 내정을 다스리려면 국왕의 건재함을 보여주어야 한다. 또한 내정의 불안을 힘으로 제압하고, 대외적으로 헥토르 왕국이 굳건하다는 것으 ㄹ보여주기 위해서 병력을 다시 모아야 한다. 급격한 병력모집이 국력의 손실로 다가올 수 있지만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다시 한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놈을 그냥 두지 않겠다!”
빠드득!
가르딘에 대한 원한만은 절대 사라지지 않았다. 다시 병력을 모으고, 헥토르 왕국을 일으키는 즉시 원한을 갚아주겠다고 다짐했다. 수단이 무엇이 됐든 발키리 영주만은 처단해 버리고 싶었다.
‘이 원ㅇ한은 대륙이 갈라지더라도 반드시 갚아주겠다!’
뼈에 사무치는 원한이었다.
후비적! 후비적!
“누가 내 욕하냐?”
귓구멍이 간지러운 가르딘이 귀를 긁었다. 긁어도 시원하지 않은게 영 꺼림칙했다.
옆에서 든던, 필리언, 갈라, 유타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넌 평소에도 미친 짓을 많이 했으니 욕하는 놈이 많았을거다!”
“맞아. 저놈은 욕 처먹을 짓을 매일 하지.”
“주책없는 것은 여전하니 말이야.”
가르딘이 한마디 하면 동기들은 세 마디씩 한다. 요즘 들어 가르딘은 동기들에게 소외감을 느끼고 있었다. 어떻게 된게 자신만 빼고 서로 담합을 하고 있었다.
“너희들 왜 나만 가지고 그러냐?”
“그게 권력자의 비애다.”
“가진 자에게 투쟁하는 것이야말로 약자의 권리다!”
“투쟁, 투쟁은 혼자 할 수 없지.”
“얼씨구!”
동기들은 저런 말하면 안 된다. 저놈들보다 가지지 못한 자가 대륙에 얼마나 많은데 저런 말들을 서슴없이 한단 말인가! 귀족으로 태어나 불행할 수도 있으나, 노예로 태어나 불행한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또한 세상사람이 다 욕해도 저놈들은 욕할 수 없다. 다른 놈들도 아닌 저놈들은 자신과 가장 닮은 놈들이었다. 결국 자기 얼굴에 침 뱉는 격이라고 할 수 있다.
가르딘은 귁속을 박박 긁다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왕건!’
건졌다. 속을 심심치 않게 긁던 것이 빠져나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왕건을 잡은 가르딘이 세 가닥으로 왕건을 분리시켰다.
손가락에 공력을 집중하였다. 집중한 공력이 손가락을 타고 분리된 세 가닥의 왕건에 옮겨갔다.
‘소림의 탄지신공이 왜 유명한가를 보여주마!’
가르딘이 어딘가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마치 무언가에 놀랐다는 듯한 모습이다. 표정연기가 기가 막혔다. 현실적으로 믿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대단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향해 소리 질렀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다 똑같다. 그곳을 쳐다보게 되어 있다. 이것은 본능이다. 본능을 거부할 수 있다면 그것은 사람이 아닐 것이다.
“저게 뭐야?”
“응?”
“뭔데?”
“뭐가?”
탕! 탕! 탕!
손가락으로 쇳덩어리를 튕기는 소리가 울렸다. 가르딘의 말도 안 되는 순발력이 발휘된 장면이다. ‘뭐야?’라고 발음을 할 경우 입이 딱 알맞게 벌어진다. 그 사이로 가르딘의 왕건이 세 방향으로 들어갔다.
“커억! 커억! 커억!”
입속으로 무언가가 급속하게 드 ㄹ어가서 목젖을 가격하자 헛구역질이 나오게 된 필리언, 갈라, 유타였다.
꾸우울꺽!
목젖을 가격한 것이 입속에 자리한 침을 타고 흘러 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무언가 상당히 찝찝한 것이 입안으로 들어가자 가르딘을 돌아보게 된 동기들이었다. 동기들은 좀전에 가르딘이 손가락을 튕긴 것을 보았다.
가르딘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다시 귓밥을 팠다. 정확한 지점 파악, 상대의 목젖을 겨냥하여 다시 나올 수 없도록하는 절묘한 힘 조절과 타이밍, 놀랍다는 말이 나올 수 있을 정도로 깨끗했다.
“후우우!”
귓밥을 파서 입으로 바람을 불며, 입가에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동기들의 얼굴이 금세 헬쑥해졌다.
“너...설마!”
설마가 사람 잡지.“
“으웨웨웨엑!”
필리언, 갈라, 유타가 동시에 헛구역질을 했다. 이미 넘어가서 배속의 포만감으로 자리 잡은 왕건은 나올 기미를 보이지 ㅇ낳는다. 때는 이미 늦었다. 소화되어 나오지 않는 이상 왕건은 입으로 나오지 않을 것이다. 또한 인간의 위장은 너무 대단해서 쇠나, 기타 녹지 않는 것을 제외하면 모든 것을 다 소화시키는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 더러운 놈!”
“똥보다 더 지독하게 구린 놈!”
“거지보다 더 더러운 놈!”
“흥!”
가르딘은 맘껏 비웃었다. 어짜피 더러운 것을 먹은 놈들이었다. 벌써부터 입안에서 썩은 내가 감도는 것 같다.
“거지보다 더러운 놈의 가장 더럽고 구린 것을 먹은 네놈들은 아주 깨끗해서 좋겠다. 크크크!”
부글!부글!
할말 없어지는 필리언, 갈라, 유타였다. 인정하기 싫지만 사실이었다. 자신들이 한 말이 있으니 되돌릴 수 없게 되었다.
‘두고 보자!’
‘이 원한은 백만 배의 원한으로 되돌려주마!’
귓밥을 백만 배로 만들면 사람만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상당히 무서운 생각을 하고 있는 동기들이었다. 그건 절대 입에 넣을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하지만 이미 원한으로 냉정을 잃었다.
“자자. 냉정하고 다음 할 일을 의논해야지! 막사 안으로 들어가자.”
“닥쳐!”
“지 좋을 때만 저러지.”
승자인 가르인은 여유로웠다. 이미 승리했다. 자잘한 대화 정도는 넘어가 줄 수 있는 아량을 베풀어야 한다. 한마디로 불난 데 염장 지르는 데는 타고났다고 하는 편이 딱 알맞은 표현이었다.
막사안으로 들어가자 다시 엄숙한 분위기가 되었다. 작전 회의는 장난 식으로 절대 하지 않는다. 그게 가르딘과 동기들의 철칙이다. 서로의 말장난은 그저 취미생활이지만 작전회의는 자신들의 미래와 사람들의 목숨이 달린 일이다. 장난식으로 일을 처리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언제까지 지켜볼 거냐?”
“지금까지의 피해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
구원병으로 온 20만 대군 중에서 10만이나 되는 병력이 죽었다. 상당한 피해를 보고 있다. 또한 앞으로도 계속 피해가 속출할 것으로 예상이 되었다. 코워드 후작은 작전이라는 개념이 전혀 안 잡혀 있었다. 무작정 수적인 우세로 상대할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개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이대로 있다가는 남아 있는 전력도 무사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가르딘은 대답 대신 침묵으로 일관했다. 병사들의 죽음이 안타깝지만 현실적으로 그들의 목숨까지 가르딘이 책임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 모든 책임은 코워드 후작이 가져야한다. 그래야만 그는 필사적일 수밖에 없어진다. 코워드 후작은 자신이 일으킨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이번 전쟁에서 공적을 세워야 한다. 자신의 공이 가장 크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무슨 수든 다 쓸 것이다.
“정말 이대로 놔둘 거냐? 그래도 같은 제국의 병사들인데.”
“어쩔 수 없지. 그건 그들이 태어나면서 가진 운명이다. 내가 그들을 도와줄 필요성은 느끼지 않아.”
가르딘은 오히려 냉정하며, 차분했다. 동기들도 안타깝지만 현실을 인정해 버렸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코워드 후작이 도움을 원하지 않을 거다.”
“그...렇겠지.”
“젠장할 세상이다. 자신 목숨은 귀하고, 남의 목숨을 안귀한가.”
“에잇! 가르딘 같은 놈!”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욕을 한 필리언, 갈라, 유타였다. 가르딘도 순간적으로 움찔거렸다. 설마 이런 욕이 존재할 줄은 몰랐다. 듣고 나니 자신도 화가 날 정도로 극악하다. 내심 치미는 패배감이 장난 아니다.
코워드 후작은 가르딘이 병자인 줄 안다. 그렇기에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전쟁을 끝내려고 할 것이다. 가르인이 지금 나서서 적을 제압하면 이제까지 피해만 보고,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게 된다. 코워드 후작도 필사적일 수밖에 없다.
막사 안으로 정찰병이 돌아왔다. 헥토르 왕국와 제국군의 대결 양상을 확인하기 위해서 보낸 정찰병이다. 그들의 임무는 단순한 정찰이었기에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명령했다.
“어떻게 되어가고 있지?”
“헥토르 왕국이 준비한 함정에 빠져 2만 명의 병사들이 몰살당했습니다.”
“설마 했는데 결국 그렇게 됐군.”
애들도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함정에 걸린 것이다. 주변 지형을 확인도 하지 않고, 협곡 안으로 들어가는 것만 봐도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심리건만, 정말 하는 짓이 너무 한심한 코워드 후작이었다.
“그놈 바보 아냐?”
“어떻게 전쟁을 그렇게 무식하게 하냐?”
“무능하고 생각 없는 귀족이 왜 무서운지 여실히 깨닫는다.”
무능하고, 재능 없으면서 고위귀족일 경우, 그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엄한 놈을 믿고 따르다 죽기 딱 좋다. 평범한 사람이야 자신의 안위만 챙기면 되지만 귀족은 다수의 사람들을 다스린다. 또한 후작은 평범한 지위라고 할 수 없다. 제국의 후작이라면 상당한 실권자였다. 그런 자가 무능하니 애꿎은 병사들만 죽어나가고 있었다.
가르딘은 전쟁이 길어지고 있다는 것에 다소 만족했다. 이유가 어찌되었던 공성전과 비슷한 형상이 된다. 특별한 전략을 세우지 않는 이상은 어느 한쪽이 한순간에 전투를 끝낼 수는 없다는 말이다.
가르딘은 헥토르 왕국은 언제까지 트윈유니크 협곡에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수성을 해도 장시간 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의미 없는 소모전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협곡수성을 작정하고 있다는 것은 다른 뜻이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돌아가야겠군.”
“돌아가?누가?”
가르딘의 뜻하지 않는 말에 필리언이 물었다. 가르딘은 자신이 생각한 대로 동기들에게 설명해 나갔다.
“이번 전쟁으로 헥토르 왕국은 얻은 것 없이 피해만 입었다. 당연히 국력의 소모가 상당히 크겠지. 또한 앞으로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많은 타격을 감소해야 할 거다. 이런 커다란 문제를 누가 해결할 수 있겠나?”
가르딘의 물음에 나올 수 있는 답은 하나뿐이었다. 헥토르 왕국의 주인이자 지배자인 사이너스 국왕이었다. 사이너스 국왕밖에는 해결할 수 있는 적임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가뜩이나 지금은 식량도 부족할 거다. 식량까지 협곡으로 운반하려면 반드시 돌아가서 다시 정비를 해야겠지.”
“후일을 도모한다 이 말이군.”
가르딘은 또 다른 말을 했다.
“잠재적으로 우리를 계속 위협한다는 말도 되겠지.”
“왜?”
“사이너스 국왕이 누굴 가장 원망할까? 지금까지 끈질기게 추격해서 공격하는 코워드 후작일까 아니면.......”
가르딘은 엄지로 자신을 가르켰다. 가르딘이 생각하기에도 자신이 한 작전은 사악하기 그지 없었따. 적을 농락하고, 끊임없이 기만했다. 적의 입장에서는 최악의 전술이었고, 아군에게는 최선의 전술이었다.
끄덕! 끄덕!
가르딘의 지적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사이너스 국왕은 헥토르 왕국으로 돌아가는 즉시 내정을 다스리고, 외부적으로 강건하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 일이 끝나는 대로 가르딘을 무너뜨리려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그에게 지옥과 같은 치욕을 남겼으니 그냥 저냥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사이너스 국왕을 이대로 놔주게 되면 잠재적으로 무서운 적을 남기는 일이 될 수 있었다.
“우리가 가장 싫어하는 게 뭐지?”
가르딘의 물음에 함결 같은 대답이 나왔다.
“후환.”
“그렇지. 그럼 지금까지 우리가 어떻게 했지.”
마치 선생님이 어린아이에게 답을 구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가르딘의 말이 나오기 무섭게 대답하는 필리언, 갈라, 유타였다. 후환. 흔히 말해 뒤끝을 의미한다. 뒤에 구리고, 독한 놈을 놔두고 맘 편안히 발 뻗고 잠자기 쉽지 않다. 어떻게 해서든 해결을 해야 앞으로의 미래를 위해서 좋은 방법이었다.
스윽!
주먹을 쥐고, 엄지를 내밀어 목을 가로로 그었다. 섬뜩하고, 무서운 일이지만 당연하게 생각하는 동기들이었다. 전쟁 중에 일어나는 비사였다. 혼전 중에 누군가를 죽이는 것은 쉬운 일이다. 전쟁이라는 큰 맥락 속에 뒤덮여 찾을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특히 암수를 부리는 자에게 전쟁은 호기로 다가오기도 한다. 누군가의 존재 자체가 자신의 행방에 방해가 되거나, 상황을 유리하게 만드는 도구가 필요할 때 사용하는 방법이다. 이번 제국전쟁이 과연 누구에게 유리하게 될지가 가르딘도 신경 쓰이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가르딘은 막사 한쪽을 가르켰다. 막사의 구석에 존재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상자 하나가 떡 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자겨온 지 어 ㄹ마 되지 않은 것이었다. 몇 시간 전까지는 없었던 것이다.
“저건 또 뭔데?”
“내가 너희들의 수련을 도와주기 위해서 라이나에게 특별히 만들라고 한 거다.”
“수련? 갑자기 무슨 수련이야!”
“전쟁 중에 수련을 해서 뭐 하게.”
동기들은 전쟁 중에 수련한다는 말에 반기지 않았다. 갑자기 수련한다고 실력이 상승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오러 마스터가 되고 싶다며.”
“되고는 싶지.”
“안 되니까 문제지.”
가르딘이 당연한 말을 하자 건성으로 대답하는 동기들이었다. 세상의 모든 기사들에게 물어봐라. ‘오러 마스터가 되고 싶지?’ 대답은 한결 같은 것이다. “알면서 왜 물어 병신아!” 라고 말이다. 되고 싶은 것과, 되는 것에는 하늘과 땅 차이라는 크고 넓은 간격이 존대한다. 되는 자는 재능 있고 뛰어난 능력을 가진 자일 것이고, 안 되는 자는 자신의 재능과, 한계를 인정하고 포기한 자 일 것이다.
가르딘은 그 마음 다 안다는 듯이 비웃어 주었다. 되는 자(가르딘), 안되는자(필리언, 갈라, 유타), 노력해서 반드시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는 웃음은 저 ㄹ대 아니었다.
“꼬라지 하 고는!”
“뭐야?”
“성질 내지 말고, 내가 너희들을 오 러마스터가 되게 해주려고 하는 거란 말이다.”
“정...정....말!”
믿어지지 않는 말이었다. 오러 마스터가 되게 한다고 뚝딱 만들어지는 것이였으면, 모든 기사들에게 오러 마스터가 우상이 될 리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가르딘은 오러 마스터를 만들어 주겠다고 하고 있었다.
“전에도 말했지. 너희들이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말이야.”
“경험 말이야.”
“그래, 그것도 필사의 경험이지.”
죽음에 이를 정도로 엄청나게 위험한 경험이 필리언, 갈라, 유타에게는 필요했다. 그전까지의 경험을 모두 뒤엎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극악한 현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너...설...마!”
동기들의 얼굴이 시퍼렇게 변했다. 가르딘이 말하는 경험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처음부터 이 말을 하기 위해서 오랜 시간 뜸을 들이고, 말을 이은 것이다. 가르딘의 치밀한 심계에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다.
“그래도 우리만 가는 것은 아니지.”
진짜로 물었다.
그건 죽으려도 지옥의 아가리로 쳐들어가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이었다.
“물론 아니지.”
“후우우!”
안도의 한숨을 쉬는 필리언, 갈라, 유타였다. 평소 안전제일주의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가르딘이기에 다소 안도했다. 설마 그런 미친 짓을 시키지는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투르, 들어와.”
“응?”
‘이런 제길!’
필리언, 갈라, 유타가 동시에 욕을 했다.
투르가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투르는 막사 밖에서 조심스레 기다리고 있었다. 광천패황신공이라는 희대의 신공을 익히고 나서부터 무척이나 달라져 있는 상태였다. 기운 이 저절로 발산이 되어 힘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런 투르가 쥐 죽은 듯이 기를 숨기고 대기하고 있었다.
전장의 막바지에 이르러 전투를 치르지 못한 투르는 싸우고 싶어서 근질거리고 있는 사 ㅇ태였다. 가르딘의 말에 반기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에 반해 동기들은 죽을 맛이었다.
‘전투에 미친놈이!’
‘군침 흘리지 마라!’
‘젠장할! 저 미친놈하고 같이 하란 말인가!’
투르가 점점 강해지는 것을 느꼈다. 전에 오러를 사용한 검기도 튕기는 것을 본 동기들이었다. 권각술과 다르게 검은 그 자체로 날카롭다. 더군다나 오러가 사용된 검은 쇠도 단숨에 자를 수 있다. 그런 오러를 튕겨버리는 무식한 육체를 지닌 투르였다. 동기들이 보기에 괴물이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강해지고 있었다.
필리언, 갈라, 유타가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번 일은 절대 하고 싶지 않았다. 오러 마스터가 되고 싶기는 하지만 이것은 정말 아니었다. 그러다가 번뜩이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우리의 정체가 밝혀지면 별로 좋지 않잖아!”
“맞아, 우리가 그런 엄청난 일을 벌인 것을 사람들이 알면 이상하게 볼걸.”
“너도 편안한 영지생활을 영위하기 힘들 거야!”
가르딘과 동기들 모두 번거롭고, 귀찮은 일을 싫어한다. 이번에 벌이는 짓이 만천하에 공개되면 편안한 생활을 영위하기 힘들어지는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씨익!
오싹!
가르딘이 또다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런 말을 할 줄 알았다는 듯한 태도였다. 절대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악마의 미소였다.
“그래서 내가 저걸 라이나에게 부탁했지. 투르 상자를 좀 열어봐라!”
투르가 상자에 다가가 뚜껑을 열었다. 상자의 입구가 열리자 안에 있는 내용물이 동기들의 사야에 들어왔다.
보기에는 별것 아니었다. 색깔 특유의 원색이 잘 살아서 숨 쉬고 있는 것이 보이기는 했다. 그것 이외에는 특별히 대단한 것은 없었다.
가르딘이 음흉한 미소를 다시 또 지었다. 그 모습에 동기들은 뒷걸음질 쳤다. 가르딘과 있으면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것을 여러 번 깨닫게 만들어준다.
“야! 이건 좀!”
“우리 체면이 있는데!”
“그래. 이건 아니야!”
가 맘 다 이해한다는 가르딘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꼭 해야 하는 일이었다. 모든 전투가 가르딘이 의도한 대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이번에 해야 하는 일은 반드시 수행해야한다. 전투의 마지막 대미를 장식하는 피날레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