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7화 (38/93)

   @@[제2장 헥토르 왕국과의 치열한 전투@@]

  진법은 이미 사라졌다.

  발키리 영지를 앞에 두고 가로막혀 있던 진법의 축이 모두 무너졌기 때문이다. 진법의 축은 보이지 않게 은폐가 되어 있어 발견하기 어렵다. 헥토르 왕국의 마법사들도 찾지 못했을 정도로 은밀하게 만들어져 있다. 진법을 설치한 파멜라가 직접 무너뜨리지 않았다면 어느 누구도 쉽사리 무너뜨리지 못했을 것이다.

  헥토르 왕국의 마법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진법의 흐름을 파악하고, 와해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었다.

  마법사들을 이끌고 있는 멜버른 후작은 표정이 기묘하게 변했다. 바로 앞을 가로막고 있던 마법진의 마나 파동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나의 흐름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은 마법진이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멜버른 후작은 곧바로 사이너스 국왕에게 사실을 전달하지 않았다. 놈들의 마법진에 처음 당했을 때도 마나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았었다. 만약 이것도 함정이라면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맞이하게 될 수 있었다.

  “마법사들은 정둥앙을 중심으로 넓게 퍼져서, 마법진의 흐름을 파악하라!”

  세밀하게 파악하기 위해서 마법사들은 노력했다. 그로인해 헥토르 왕국군이 하루를 더 소모하게 되었다.

  멜버른 후작은 발키리 영주가 만들어 놓은 마법진의 축을 찾기 위해 움직였다. 놈들의 마법진도 축이 존재하였고, 그 축을 중심으로 마나의 흐름이 연속적으로 이어졌다. 그곳을 집 중적으로 공격한 것도 축을 무너뜨리기 위한 방법이었다.

  반나절을 소모한 후 멜버른 후작은 마법진의 축이 무너진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멜버른 후작은 놀라워할 수밖에 없었다.

  “교묘하게 축을 위장했구나! 더군다나 마정석도 없이 어떻게 마법진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거지?”

  멜버른 후작과 마법사들이 발견한 축은 모두 5개 정도였다. 5개 모두 헥토르 왕국이 전면적인 공격을 가한 지점이었다. 

 “마정석 이외의 도구를 사용한 마법진이라!”

  생각도 못해 본 것을 발키리 영지의 마법사가 만들어냈다고 보았다. 역시 보통 수준을 넘어섰다. 마법진에 대한 새로운 연구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다. 누군가가 이미 다져 놓은 길을 가는 것보다 수백 배는 더 힘든 것이 바로 새로운 마법의 길이었다. 상대는 천재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의 수준이었다. 결코 만만히 볼 수 없었다.

  “그래도 다행이군. 마법진의 축이 무너졌기에 점차적으로 마법진이 와해되었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말이야.”

  마법진이 더 이상 말썽을 부리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섰다. 사이너스 국왕은 다음 공격에서 또다시 마법진으로 인해 제대로 된 공격을 못해볼 시에 자신을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다. 확인을 꼼꼼히 하기 위해서 노력한 것도 자신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것이 헥토르 왕국에게 시간을 지체하는 이유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멜버른 후작은 마법사들을 점검했다. 마법사들의 힘이 원상태로 회복이 된 순간부터는 모든 힘을 쏟을 수 있는 전투를 치를 수 있게 된다.

  “음, 절반 정도는 회복했군.”

  시간을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전반 전도라고 해도 이번 전쟁에서 가장 많은 힘을 보유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동안 제대로 된 힘을 한 번도 써보지 못하고 말았다. 발키리 영주의 영악한 전략. 전술에 의해서 마법사들이 무용지물이었던 결과였다.

  “전투가 있기 전까지 최대한 마력을 모으도로.”

  멜버른 후작은 마법사들이 전투시점 전까지 휴식을 취하면서 전투 시 만전을 다하도록 각오를 되새겼다. 이번 전투야말로 마법사들에게 가장 중요한 전투가 될 것이다. 뜻하지 않지만 최전선에서 공격을 주도해야 할 것으로 보였다. 헥토르 왕국의 두 기둥이자 오러 마스터인 칼슈타인 공작과 벵가너 공작이 없는 이 시점에서 멜버른 후작이 헥토르 왕국을 지탱하는 기둥역활을 해야 했다.

  20만 대군이 발키리 영지의 북쪽에 진지를 마련했다. 발키리 영지군인 3만의 병력은 후방의 병참지원을 하기 위해 뒤로 빠졌다. 3만 병력은 한순간에 전장에서 배제되어 버린 상황이었다. 뜻하지 않는 결과였지만 불만은 없어 보였다. 전투와 훈련으로 많이 지친 것이 큰 몫을 했다. 사실 훈련이 더 지옥 같았다는 것을 병사들 모두 뼛속 깊이 새겼다.

  코워드 후작은 섣불리 먼저 공격하지 않았다. 적들의 규모와 전체적인 상황을 직접 확인하지 않은 이상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가르딘 백작이 전해준 정보와 지금까지 확인한 정도만으로 움직이기에는 위험하다는 것을 파악한 것이다. 그도 명색이 후작의 반열에 든 상급귀족이었다. 공격에 대한 탐욕이 강하지만 판단력까지 흐려지지는 않았다. 더불어 조심성이 많았다. 코카 제국과의 전면전에서도 일부러 상황을 지켜 보려고 기다렸던 코워드 후작이었다. 지금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코워드 후작이 제롤르 백작과 전술을 짜고 있었다. 전술이라고 해봤자 전면전에 대한 계획이었다. 적을 수적인 우세로 끝장내는 것만이 가장 확실하다고 결정을 지었다.

  스타인 남작이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코워드 후작이 그에게 물었다.

  “확인은 했나?”

  “가르딘 백작이 말한 것과 크게 차이가 없습니다.”

  “적들의 전력이 정말 그렇다는 말이지.”

  씨익!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맺혀진다. 다른 귀족들 모두 같은 심정이었다.

  “이제 막 놈들도 전투를 시작하려고 준비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럼 우리도 본격적인 전투를 해야겠지. 본대는 모두 전투태세에 돌입하게. 특히 놈들의 마법사들을 유인할 궁수부대는 확실하게 살피게.”

  “알겠습니다.”

  마법사들이 공격하지 못하도록 시간을 끌기 위한 수단이었다. 접근전이 된다면 마법사들도 함부로 마법을 난사하지 못할 것이다.

  “이번 전투에서 확실한 공을 세운다면 자네들의 앞을 내가 다 봐주겠네.”

  코워드 후작은 다른 것은 부족할지 몰라도 사람 다루는 것에는 제법 능숙했다. 사람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방법을 제대로 알고 있었다. 혼자서 공을 독차지할 수도 있겠지만 같이 함께한 귀족들과 힘을 모아야 자신의 배경에 더욱더 단단해진다는 것을 체득하고 있었다.

  “가르딘 백작은 오러 마스터이네. 지금까지 막아낸 공적만으로도 제국은 그의 능력을 인정했다고 봐도 무방하네. 그러기에 이번 전투에서는 우리들이 헥토르 왕국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야 하네. 모든 전공은 결과로 나타내어진다는 것을 명심하고 마음 단단히 먹도록 하게. 알겠나!”

  “최선을 다해 후작님의 기대에 보답하겠습니다!”

  오러 마스터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탄탄대로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변방에 있지만 언젠가는 백작을 넘어 공작의 반열에 들 수 있는 존재가 오러 마스터였다. 그에 반해 가문의 후광으로 귀족이 된 자신들은 공적을 쌓는 데 필사적일 수박에 없다. 또한 함부로 나설 수도 없다. 이제까지 이룩한 결과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확실하게 공을 세울 수 있을 때 살쾡이처럼 달려들어 공격을 탐하는 것이 이들의 습성이었다.

  그들의 눈 앞에 먹기 좋게 차려진 밥상이 존재했다. 마다할리 없었다. 떨어져서 흙이 묻더라도 다시 닦아서 주워 먹을수도 이었다.

  코워드 후작이 군사의 정비를 확인하기 위해 막사 밖으로 나오자, 필리언, 갈라, 유타가 발키리 기사단을 이끌고 부동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이제까지 전투를 치른 것은 저희들입니다. 영주님께서 저희들이 전투에 참여하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코워드 후작은 가르딘 백작이 공적을 쌓기 위해서 기사들이라도 전투에 참여하기를 바란다고 보았다.

  기사들은 제법 단단한 느낌을 주었다.

  ‘과연 오러 마스터가 단련한 기사들인가! 제법 강인하군.’

  변방의 오합지졸 기사단과는 차별된 모습이었다. 코워드 후작은 그들을 보며 알겠다는 뜻을 보였다.

  “자네들의 뜻이 정 그렇다면 전투에 참여하게. 그러나 이번 전투는 대전일세. 대전에서 상급지휘관의 명령을 따르는 것은 기본 중에 기본이라고 할 수 있네.”

  “후작님의 결정에 따르겠습니다.”

  “그럼 지켜보겠네.”

  코워드 후작은 필리언과 발키리기사단에게 확실한 기회를 줄 리 만무했다. 전투 시 필요한 요소에 투입하는 정도로 끝을 낼 것이다. 가르딘이 필리언에게 전투에 찬여하라고 한 것은 전투 시 벌어지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었다. 만일의 사태에 코워드 후작이 대패를 할 경우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는 수가 있었다. 정도껏 수적 열세로 서로 피해를 누적시키면서 전쟁을 끝내기 바라는 가르딘의 의도가 어긋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든 만일의 사태를 미리 점검하며 나아갈 필요성이 있었다. 가르딘은 정해진 계획대로 움직이기를 바라고 있었다.

  ‘짜식이! 족집게네.’

  코워드 후작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이미 알고 있었던 가르딘이었다. 필리언도 내심 조금은 가르딘을 다르게 보았다. 백작이 되면서 여러 가지고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들고 있었다.

  필리언은 가르딘이 마지막에 주어준 것을 보았다.

  ‘마법사라!’

  아주 가느다랗고 투명한 물건이었다. 이것이 마법사들에게 큰 타격을 줄 것 이라고 말을 하기는 했다.

  전투 시에 필리언, 갈라, 유타는 검만을 사용하지 않았다. 검뿐만 아니라 사용할 수 있는 무기를 모두 사용한다. 손에 잡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으로도 적군을 향해 달려들어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

  코워드 후작이 대군을 정비하며 준비를 마치고 있을 때 헥토르 왕국 역시 전투준비를 모두 마쳤다. 사이너스 국왕은 멜버른 후작이 확인한 것을 듣는 즉시 바로 전투태세에 돌입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그전까지는 병사들에게 최대한 휴식을 주었다. 전투로 인한 피로를 조금이나마 풀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하루 이틀 쉰다고 해서 풀릴 피로가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병사들의 두려움이었다.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한 번의 승리가 절실했다.

  마의 장벽을 방불케 했던 지옥 같은 마법진이 사라졌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주지시켰다.

  “적들의 마법진은 공성무기로 인해 부서졌다. 이제 다시 마법진이 우리의 발길을 잡지는 못할 것이다. 적들은 고작 3만을 넘지 않는다. 10만의 자랑스러운 헥토르 왕국의 대군이 진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이제 다시 헥토르 왕국의 영광을 재현하는 것이다! 짐이 전투를 직접 지휘하겠노라! 나를 따르라!”

  “와아아아!”

  기운을 억지로 북돋는다.

  함성은 크짐나 힘이 서려 있지는 않았다.

  병사들은 두려움을 이겨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두려움이 자신의 죽음과 직결된다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었다. 싸워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그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척! 척! 척!

  10만 명의 대군이 100개의 단위로 나누어 1천 명씩 묶여서 움직여 나간다. 1개조의 간격은 사람과 사람의 3배 거리에 위치한다. 서로의 간격을 유지하며 적들의 공격에 효율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거리였다.

  휘이이이잉!

  평야를 뒤덮는 황량한 바람만큼이나 삭막한 분위기를 나타낸다. 앞으로 천천히 나아갈수록 그 앞에 지옥 같은 마법진이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을 자아낸다.

  선두에 선 사이너스 국왕도 긴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마법진이 이토록 무서운 것이라는 것을 이번 전쟁으로 알게 되었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언제 어떻게 변화할지 모르는 마계의 땅과 같았다.

  일반 평야와 마법진의 경계선에 들어왔다. 경계를 넘으면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곳이 될 수 있다. 병사들의 발길이 멈칫했다. 들어간다. 심장이 떨리자 전신이 떨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병사들은 이를 악물며 떨림을 멈추려고 했다.

  멜버른 후작이 이끄는 선봉대 역시 앞으로 들어간다. 멜버른 후작은 주변의 흐름이 평범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마법진은 더 이상 효과를 발휘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서도 있었다.

  “드디어! 풀렸구나!”

  확신이 서자 마법진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진다. 확신은 인간의 믿음을 강화시킨다. 병사들도 느낄 수 있었다. 마법진은 더 이상 그들을 막아서지 않았다.

  사이너스 국왕의 표정도 달라졌다. 마법진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시기가 다가왔따. 더 이상 망설일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전군 돌격하라!”

  사이너스 국왕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거친 함성이 병사들 사이에서 울려 퍼졌다.

  쿠쿠쿠쿠쿵!

  10만의 대군이 달리자 평야의 지축이 흔들린다. 시끄러운 소리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적군을 향해 진격하여 적들을 섬멸하는 것만이 헥토르 왕국의 살길이다. 이것은 왕도 알고 병사들도 아는 사실이었다. 왕국의 존패가 달려 있다. 돌격 명령에 필살의 의지가 담겨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응?”

  사이너스 국왕은 시야에 보인 적군의 병력수를 보고 놀라고 말았다. 카이로만 제국의 병력이 이전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적군의 병력이 아군의 병력보다 더 많아 보인 것이다. 

  ‘이런! 원군이 왔었구나!“’

  뿌드드득!

  이를 가는 사이너스 국왕이어ㅤㅆㅏㄷ.

  전투에 일방적으로 패해서 적진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시간이 상당히 걸렸다. 그동안 카이로만 제국에서도 전투의 상황을 분석하여 원군을 보냈을 것이다. 냉정히 판단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임에 틀림없었다.

  발키리 영주는 아직도 날카롱누 발톱을 들이밀고 있었다. 마법진이 사라진 것도 이미 계획에 있었던 것이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투에서 가르딘의 손바닥 안에서 놀고 있다는 생각을 지 울 수 없는 사이너스 국왕이었다. 이제는 뒤로 후퇴할 수도 없었다. 이대로 적들을 분쇄하는 것만이 남았다. 지금에 와서 후퇴한다면 병사들의 사기를 둘째치고, 앞날이 존재하지 않는다. 

  ‘어차피 후방의 병력을 모았을 것이다. 우리의 정예병과는 질적으로 차이가 난다!’

   코카 제국과의 전쟁에 모든 전력을 쏟는 카이로만 제국이 정예병을 이곳으로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라 판단한 사이너스 국왕이었다. 병력의 질적인 측면에서 헥토르 왕국이 앞선다고 생각했다.

  “적들은 오합지졸이다! 가라! 헥토르 왕국의 무서움을 놈들에게 보여주어라!”

  마법사들의 지휘를 맞고 있는 멜버른 후작이 소리쳤다.

  “마법을 사용하라!”

  적군의 병사들에게 공포를 주기 위한 방법이었다. 마법사들이 선두에 서서 마법을 사용하게 되면 병사들은 속수모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적군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아군의 사기를 상승시키는 작용을 하게 될 것이다.

 흔들!흔들!

  창끝이 흔들린다.

  발키리 영지를 지키는 원군의 병사들 중에 선두에 선 병사들은 두려움이 전심을 지배했다. 전쟁이라고는 해보지 않은 이들이 원군의 대다수였다. 10만이나 20만이나 수적인 차이가 감지되지 않는다. 그냥 보이는 것 자체만으로 숨을 막히게 할 정도로 많아 보였다.

  ‘할 수 있을까?’

  병사들의 의문이 들었다. 10만 대군이 달려오는 위용에 절로 위축이 되고 있었다. 자신의 창이 적을 찌르기도 전에 적의 창이 자신을 찌르면 어떻게 될까! 무서웠다. 오금이 저리고, 오줌이 찔끔찔끔 나오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도망은 치지 못한다. 이들 모두 전쟁이 처음이지만 도망치면 비참하게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떻게 해서든 살아서 적을 죽여야 한다. 적을 죽여야 내가 산다. 그것이 바로 전쟁이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소리를 지른다. 공포심을 극복하기 위해서 한 병사가 소리를 지르자 주변 병사들도 모두 전염이 된 것처럼 소리를 지른다. 한껏 내지른 소리가 공포심을 차츰 누그러뜨린다.

  아군의 병사들로 포위된 주앙ㅇ.

  가장 안전한 지점에서 적군의 돌진을 바라보는 코워드 후작과 귀족들도 조금은 놀란 듯했다. 이처럼 많은 병사들이 전면전을 치르는 것을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전쟁의 참혹함과는 거리가 멀었던 곳에 있었던 귀족들이었다. 쉽게 적응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코워드 후작도 놀랐지만 제일 먼저 신색을 회복했다. 병사들의 수장이 놀라고만 있어서는 아무것도 해낼 수 없었다.

  “적들은 우리보다 적다!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놈들은 지친 것으 보여주지 않기 위해 허세를 부리는 것뿐이다! 모두 두려워하지 말고 맞서라!”

  선두가 아닌 안전지대에서 소리치는 코워드 후작의 모습은 병사들에게 그다지 신용을 주지는 못한다. 다만 적들의 수가 적고 지쳐 있다는 것 때문에 두려움이 조금씩 잦아들기는 했다.

  코워드 후작의 목소리가 울리고 난 후 곧바로 불화살이 적진에서 날아왔따.

  파이어 에로우였다.

  마법사들이 마법을 사용한 것이다. 병사들에게 마법사들은 경계의 대상이자 두려운의 대사이었다. 일반 병사들이 마법을 막아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크아앗!”

  “불이다!”

  “궁수대는 마법사들을 향해 쏴라!”

  마법사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마련한 궁수대였다. 궁수대가 적진의 마법사들을 향해 활을 쏘았다. 수만 발의 화살이 적을 향해 날아간다. 그러나 화살은 그리 위력적이지 않았다. 혹독한 훈련으로 만들어진 궁수대가 아니었다. 일반 병사들 중에서 화살을 제법 잘 쏘는 사람들을 몇 번의 훈련으로 조작한 것에 불과했다. 위력이 있을 리 만무했다.

  날아가서 마법사들을 겨냥하기도 전에 떨어지는 화실이 대부분이었다.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적군의 사기가 더욱 승천하고 있었다.

  코워드 후작과 귀족들의 다급한 음성이 울려 퍼진다.

  “돌격하라!”

  앞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법사들이 마법을 난사하기 전에 먼저 무딪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병사들도 돌진한다. 명령이 내려졌으니 오합지졸이라고 해도 움직여야 했다.

 쿠쿠쿵!

 충독음이 들린다.

  병사들과 병사들이 서로 위치를 벗어나서 경계에 부딪친다. 창과 창이 부딪치고 검과검이 교 차한다. 

 그 뒤로 빗발치는 화실이 적군을 향해 쏘아지고, 마법사들의 마법이 아군의 병사들에게 작렬한다.

  살점이 찢겨지고 흘러내린 피가 마른 평야를 적신다. 창에 꿰뚫린 병사들은 거친 비명과 함께 살려고 발버둥 친다. 고통과 신음이 전장을 뒤덮는다. 죽은 병사들이 차라리 편해 보이기까지 했다. 살아 있는 것이 더 고통스러웠다. 병사들은 죽음을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 나갈 뿐이다. 전염이라도 된 듯이 더욱더 치열해지고 있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마비가 되었다. 적을 죽이는 것만이 병사들의 사명처럼 느껴진다.

  “이이이이이얍! 죽어랐”

  “커어어억!”

  죽고 죽이는 전쟁은 치열할수록 공포스럽다. 보는 것만으로 헛구역질이 날 정도로 무섭기까지 하다.

  마법사들의 실력이 눈부실 정도다. 파이어 볼과, 파이어 에러우, 단순한 마법의 조화였다. 저서클의 마법을 쉼 없이 사용한다. 고서클의 마법보다 저서클의 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전쟁이 빠른 시간 안에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염두에 둔 것이다. 또한 마법사들의 마법력이 온전하지 않다는 것에 기인했다.

  일반병사들에게 고서클이든, 저서클이든 막기 어려운 것은 매한가지였다.

  병사들 사이로 기사들이 움직인다. 헥토르 왕국의 기사들이 병사들을 도륙한다. 헥토르 왕국의 정예 기사든 중에서 최고봉이라는 타이탄기사단이 전멸당하긴 했지만 남겨진 기사단이라도 병사들은 어차피 상대가 되지 않는다. 타이탄 기사단보다는 명성이 떨어지긴 하지만 헥토르 왕국의 빛의 날개라 불리는 샤이닝윙기사단이 선전이 눈부셨다.

  채채챙!사아악!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평야를 진동한다.

  샤이닝윙기사단이 아군의 진형을 흐트러뜨리려고 하고 있었다. 진영을 구축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저놈들을 막아라!”

  코워드 후작과 귀족들이 데려온 기사단에게 명령했다. 각 개인이 보유하고 있는 기사단의 기사를 모아서 만들어졌다. 통칭하여 철의 방패 아이언기사단이라고 불렸다. 아이언 기사단이 샤이닝윙 기사단과 정면으로 부딪쳤다.

  카아앙!

  샤이닝윙기사단의 단장 퍼거슨 백작과 이이언기사단의 단장 윌리엄 자작의 검이 동시에 부딪쳤다. 일 검과 일 검이 교차하는 순간에 기사간과 기사단이 엉키고 설켰다. 전투는 완전히 난전이었다. 

   아군의 좌측 끝에 서 있던 필리언, 갈라, 유타가 전장의 상황을 살폈다. 전장은 생각보다 더 위험해지고 있었다. 헥토르 왕국 병사들의 사기가 너무 올라갔다. 전쟁의 피로와 수적 열세를 모두 만회하고도 남았다.

  “이거 생각보다 고생하겠네!”

  “가르딘이 여기 보낼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고!”

  “에이! 비싼 빵 처먹고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병사들이 죽고 있는 데에도 불구하고 저희들끼리 속닥거리는 필리언, 갈라, 유타가 정상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수많은 정쟁을 치르면서 겪게 되는 만성적인 무감각증이었다. 

 “어떡하겠어. 영주가 시키면 해야지.”

  “계급이 깡패인 것 하루 이틀 겪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

  “까라는데 까자.”

  필리언과 갈라, 유타가 100명의 발키리기사단을 이끌고, 은밀하게 움직였다. 병사들 사이로 적군을 골라서 살며시 죽여 나갔다. 마치 여인이 친근하게 사내에게 다가가 애무하다가 갑자기 목을 잘라내는 것 같았다. 비수가 되어 적군을 하나둘씩 제거해 나간다. 은밀하게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발키리기사단의 실력은 압도적이었다. 일반병사들은 일 검의 상대도 되지 않는다.

  “적당히 죽이며 접근한다!”

  “한 명이라도 죽거나 다치는 놈은 내 손에 먼저 죽는다!”

  “간다. 발키리기사단은 무적이다!”

  발키리기사단이 전투를 치르기 전에 가르딘이 명령을 내렸다.

  -절대 죽지 마라!

  위험한 전투를 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살이 뜯기고, 피가 튀기는 전쟁을 하면서 할 말은 아니었다. 말속에 어패가 느껴지기는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키리기사단의 모든 기사는 감동하고 말았다. 가르딘의 말투에서 느껴지는 진심을 보았기 때문이다. 발키리기사단의 기사들을 위하는 가르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진심은 서로 통하기 마련이다.

  가르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이다. 그다음으로는 자신의 울타리 안에 존재하는 사람들이다.

  필리언, 갈라, 유타에게는 적당히 적진을 교란하고 뒤로 빠지는 임무루 부여했다. 직접적으로 발키리기사단이 눈에 띄게 활약을 벌이지 말라고 전했다.

  동기들은 가르딘이 부여한 임무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적진을 누비면서 적당한 활약을 펼치고 있었다.

  목표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전투는 백종세를 뛰어 넘어 밀리고 있었다. 확실히 헥토르 왕국 병사들의 경험을 무시하지 못했다. 구원군이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또한 가장 큰 이유는 마법사들의 위력 때문이었다. 마법사들이 마법을 사용하여 병사들의 능력을 반감시키고 있었다. 마법에 약한 일반병사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시작하자 두려움이 커지고 있었다.

  슬금!슬금!

 스윽!스윽!

  발키리기사딘이 병사들 사이로 작고, 날카로운 이를 들이밀며 움직여 나갔다. 살며시, 그리고 조용히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목표에 가까워지자 필리언이 유타와 갈라에게 눈짓을 보냈다. 이번 임무를 아는 사람은 필리언, 갈라, 유타뿐이었다. 마법사들을 견제하기 위해서 가르딘이 부여한 임무였다.

  필리언의 신호가 떨어지기 무섭게 갈라와 유타가 단검을 뽑아 들었다. 검술만 수련한 기사에게 단검의 활용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필리언, 갈라, 유타는 달랐다. 살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다했다.

  슈슈슉!슈슈슉!

  헥토르 왕국의 왕국마법사 길링턴은 병사들에게 마법을 난사하다가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했다. 마법사들은 예민한 존재들이었다. 작은 위험에도 예민한 반응을 한다. 아니나 다를까 자신을 향해 단검이 날아오고 있었다. 상당히 빨랐다. 너무 빨라서 몸을 움직여 피하는 것이 어려웠다.

  “실드!”

  타아앙! 타아앙!

  단검에 실린 거력이 만만치 않아 충격을 받은 실링턴이었다. 아무래도 단검에 오러가 실려 있는 것 같았다. 단검에 오러를 실어 날릴 수 있을 정도면 수준이 범상치 않을 것이다. 그래도 막아냈다는 것에 다소 안심했다. 실드를 잠시 풀었다. 장시간 실드를 유지하는 것은 급격한 마법력의 소모를 가져온다. 전투는 한 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우선은 단검을 날린 존재를 찾아야 했다.

  핏!

  ‘헛! 윽!’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실드를 풀고, 안도의 한숨을 쉬는 그 짧은 타이밍에 무언가가 자신의 가슴을 찔렀다. 눈으로 봐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물체가 보였다. 투명한 유리관처럼 생긴 것이었다. 아주 작았다. 미세하게 세공한 것이 보통 솜씨가 아니었다. 심장에 찔렸다고는 하나 작은 것이라 크게 두려워하지 않았다. 힐링(치료)마법을 사용하면 금세 회복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회복이 잘 되지 않는다. 이유는 암수에 섞인 기이한 독 때문이었다.

  “크윽!”

  “이런! 엄청난 독이다!”

  심장에 찔린 독이 빠르게 혈관을 타고 진행이 되어갔다. 급속도로 빠르게 독이 퍼지자 손을 쓰기가 쉽지 않았따. 전투를 벌이는 과정에서 몸이 마비가 되는 충격을 받고 있었다. 마법을 사용하기는커녕 말을 하기도 힘들었다.

  실링턴의 눈가가 흐릿해진다. 죽지 않기 위해서 마나를 회전하고 있지만 정신이 가물거리고 있었다. 혼란한 상태에서 그의 눈에 들어온 다른 마법사가 보였다. 자신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지점에 있는 케츠베인 이었다. 왕실마법사에 같이 들어온 동기 중에 한 명이다. 항상 같이 마법을 연구하며 왕실마법사에 속한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친구다. 그런 친구에게 좀 전에 자신이 겪은 일이 똑같이 벌어지고 있었다.

  ‘안...돼!’

  말이 튀어나오지 않는다. 독이 너무 지독해서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

  핏

  케츠베인도 두 방향에서 날아오는 단검은 실드로 막아내었다. 그런데 역시나 이번에도 날아오는 투명한 암수에 당하고 말았다. 살점을 뚫는 아주 작은 소리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케츠케인은 정신이 가물거리고 있었다.

  “윽!”

  필리언이 던진 투명한 유리관에 들어간 독은 보통 독이라고 할 수 없다. 가르딘이 오러볼을 생성하고 나온 독을 응축시킨 데다가 직접 한 가지 독을 더 섞었다. 신마는 독보다는 무공의 극의를 추구한 인물이다. 하지만 강호 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암수에 대항하려면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각종 독이나 독물에 대한 이해도 상당히 높아졌다. 신마의 지식 속에서 가장 강한 독은 당문의 무형지독 과 남만 오독궁의 혈흔산이었다. 강호 2대 절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강렬한 독성을 내포한다. 암중에 말로는 당하는 순간 절대 살아날 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신마도 2대 절독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당문과 오독궁의 무형지독과 혈흔산은 각 문파의 가장 중요한 무기다. 만드는 방법이 유출될리 없었다. 또한 안다고 해도 만들어질 수 있는 독이 아니었다. 신마는 2대 절독의 무서움을 강호공적이 된 후에 느꼈다. 그때에 신마는 정말 죽을 뻔했다. 독을 무시한 결과였다. 그 이후 신마는 2대 절독의 특성을 파악하고 미리 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마는 2대 절독의 무서움을 기억하며, 독에 대한 연구를 해보았다. 그 연구의 성과가 바로 지금 선보이고 있었다.

  독의 이름은 칠보단혼산이다. 7걸음 만에 혼을 끊어 버린다는 무시무시한 독이다. 신마는 직접 연구하여 만들어낸 칠보단혼산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다만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다. 기억은 가르딘에게 전해졌고, 가르딘은 사용을 했다. 무공만을 최고로 여기는 신뫄와는 달리 가르딘은 수단보다는 결과를 중요시 여기는 인물이었다. 쉽게 이길 수 있는 길을 놔두고 멀리 돌아갈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

  필리언은 되도록 심장을 겨냥했다.

  마법사와 기사들 모두 오러와 마나를 수련했다. 그렇기에 독에 대한 면역력이 남다르다. 평범한 독을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일부러 심장을 노렸다. 특히 마법사는 서클을 형성하는 중요 기관으로 심장을 사용한다. 심장을 통해 독이 흘러가게 됐을 때 마법사의 마력은 무용지물이 될 수 있었다.

  그 시각 가르딘은 누워 있었다. 코워드 후작과 귀족들에게는 부상을 당해 거동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여야 했기 때문이다. 대외적으로는 부상당한 것을 알리지 않았다. 진실과 다른 거짓이 퍼져 병사들과 영지민이 알게 되면 곤란했다.

  “몸이 근질근질하군.”

  기사로서 오랜 생활을 해온 가르딘에게 누워서 움직이지 말라는 것도 곤욕이었다. 가만히 있는 것도 제법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르딘은 일어서려다가 인기척이 느껴지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누웠다. 누가 들어오는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참 뜻밖의 인물이기는 했다. 그리고 가르딘이 가장 좋아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막사의 휘장이 열리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대륙에서 가장 아릅답게 빛나는 여인(?), 굴곡진 몸매만으로 세상의 사내들을 모두 한손에 주무를 수 있는 여인(?)이 들어오고 있었다.

  라이나가 비록 후방이지만 전장에 찾아온 것이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이고 있었다. 가르딘이 다쳤다는 말을 파멜라를 통해 들었다. 집으로 돌아갔던 파멜라가 다시 돌아와서 가르딘을 봤을 때, 가르딘은 부상이 심해 보였다. 가르딘은 일부러 아픈 척 연기를 했다. 진법 때문에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는 파멜라에게 꾀병이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여보!”

  “라이나! 여기는 무슨 일로?”

  “많이 다치쳤다면서요?”

  “아니, 뭐 나는 라이나와 브리안을 위해 노력한 것뿐인데.”

  꾀병을 부리는 것치고는 절대 사실을 말하지 않는 가르딘이었다. 아내와 딸에게 가장 멋진 가장으로 보이고 싶은 것은 모든 아버지의 로망이 아닐 수 없다. 가르딘은 그럴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는데, 마다하는 인간이 아니었다.

  “여보! 아프죠?”

  “아니, 괜찮아. 당신을 위해서는 뭐든지 할 수 있어.”

  “당신도 참! 몸 생각을 해야죠. 당신이 잘못되면 저와 브리안은 어떡하라고 무리했어요.”

   라이나의 걱정과 안도가 가르딘의 마음을 울린다. 울렁거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을 지경이다.

  “걱정은 하덜 마라. 내가 누구야!”

  “대륙제일의 기사예요! 그리고 나의 남편이자 브리안의 아빠예요!”

  “그렇지. 나는 당신과 브리안이 있는 한 절대 죽지 않ㅤㅇㅏㄷ.”

  “그래도 얼굴이 많이 창백해 보여요.”

  “조금만 쉬면 괜찮아질 거야.”

  가르딘은 약간 어리광을 부렸다. 아내에게는 항상 강한 남편이고 싶지만 어떤 때에는 어머니 같은 라이나에게 안기고 싶기도 했다. 어린시절 어머니의 사랑이 짧았던 가르딘이 라이나에게 더욱더 애정을 쏟는 것은 그때의 부족한 사랑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런데 뒤에 그건 뭐야?”

  “이거요. 약하고, 음식이예요!”

  부상을 당했다는 말에 라이나는 부산하게 많은 것을 차려서 가져왔다. 가르딘에게 어떤 약이 맞을지도 잘 모르면서 무작정 챙겨왔다. 또한 입에 맞는 음식을 먹지 못하고 있을 가르딘을 위해서 정성스레 차인 음식을 손수 가져왔다. 가르디은 라이나의 정성을 온몸으로 맞이했다.

  너무나 감격스러워 하마터면 눈물을 흘릴 뻔(?) 아니 이미 흘러내렸다. 눈물이 앞을 가리고 있었다.

  “당신은 정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의 하나뿐인 천사야!”

  “당신도 나에게는 하나뿐인 소중한 사람이예요!”

  가르딘의 눈빛과 라이나의 눈빛이 허공에서 교차했다. 부끄러운 듯한 라이나였다. 붉게 상기된 얼굴이 마냥 아름답게 느껴지는 가르딘이었다. 노총각과 노처녀들이 이 둘의 장면을 봤다면 배가 아프거나, 닭살이 돋고, 헛구역질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럼 오랜만에 진한......”

  말끝을 흐리는 가르딘이었다. 부상당한 것을 연기하면서도 할 것은 다하고 있었다. 보통사람이라면 꾀병이라고 충분히 의심을 해볼 만한 상황이었다.

  나이가 차지 않은 미성숙한 아이들과, 심장이 약한 노약자는 볼 수 없는 장면을 전장에서 보여주고 있는 가르딘과 라이나였다.

  “흠! 흠!”

  “내가 잠시 전쟁을 잊었군.”

  “저도 미안해요. 당신 부상 중인데. 혹시 덧나지 않을까요?”

  무리하게 움직여서 부상이 악화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라이나였다. 이제까지 한 행위는 그럼 무엇인가! 참 이상한 부부관계다. 어떻게 보면 하는 짓이 점점 닮아 가는 것 같았다.

  “어디 다친 거예요! 피는 나지 않는데.”

  “별거 아니야.”

  “제가 약을 발라 드릴게요. 어서 보여주세요!”

  “아니 그보다는 식사를 하고 싶군.”

  “그래요, 그럼 앉아 있어요. 제가 먹여 드릴게요.”

  “당신이 굳이 그렇게 하겠다면.”

  마다하지 않는 가르딘이었다. 약보다는 정성이 담긴 라이나의 음식이 더욱 탐이났다. 또한 직접 먹여준다고 하지 않는가! 일생에 몇 번 없는 황금 같은 기회였다. 브리안도 없기에 다정한 부부관계가 돈독해질 수 있는 기회였다.

  헥토르 왕국의 암습으로 인해 가르딘이 얼마나 조마조마 했는가! 그때를 생각하면 똥줄이 모두 타는 줄 알았다.

   가르딘을 구성하는 모든 것이 날아가는 충격이었다.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다시는 그런 일을 겪고 싶지 않았다.

  ‘하마터면 대륙제일미인과, 대륙에서 두 번째로 아름다운 미인을 잃을 뻔했지.’

  전 대륙적으로 생각해도 안타까운 일이 될 뻔했다고 당당하게 말을 할 수 있는 가르딘이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뿌득!

  “여보, 왜 그래요! 입에 안 맞아요!”

  가르딘은 순간적으로 아니라고 오버액션을 했다.

  “당신이 먹여준다면 돌도 씹어 먹을 수 있어.”

  “아이! 당신도 참! 아! 하세요!”

  “아”

  오물! 오물!

  발키리 기사단은 개고생시키고, 자신은 편한 가르딘이었다. 그것이 조금 미안하기는 했지만 이 순간만큼은 잊어버리고 있었다. 이미 기억의 저 끝으로 던져 버리고 있었다. 참으로 무책임한 영주가 아닐 수 없었다. 제국의 입장에서도 자신의 안위와 안전을 위해 이런 엄청난 계책을 부렸다는 것을 알게 되면 절대 가만 두지 않을 일이기도 했다.

  주베인 영지까지 8번의 공간이동을 통해 도착을 하게 된 안젤리카, 미토스, 스필언이었다. 공간이동의 경우 마법서클에 따라서 이동거리의 차등이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공간이동을 할 수 있는 마법사는 5서클이 되어야 하며, 최소 6서클이 되어야 기본적으로 10킬로미터를 이동할 수 있다. 일단은 5서클 마법사도 공간이동을 할 수는 있지만 마력이 불안정하여 잘못하면 공중분해 될 수도 있기에 왠만하면 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80킬로미터를 이동하여 주베인 영지에 도착한 안젤리카였다. 8번이나 공간이동을 했다. 6서클의 한도 끝까지 실행하고서 지쳐 보이지 않는 것이 수상하기는 했다. 더군다나 스필언과, 미토스만 이동시킨 것이 아니었다. 다크호스 2마리까지 같이 공간이동 시켰다. 공간이동은 거리도 문제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과 물건을 옮기느냐에 따라서 마법력의 소모가 달라진다.

  스필언과 미토스는 그녀가 생각보다 더 대단한 마법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법사가 아니기에 정확한 경지를 알 수는 없지만 이상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오러 마스터에 이른 스필언과 미토스였지만 그녀를 정면으로 보게 되면 이상하게 주눅이 들었다. 천재라 불리는 두 신성에게 이만한 존재감을 보이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다 왔네요. 여기부터는 다크호스를 타고 가세요.”

  “고맙소.”

  스필언과 미토스는 짧게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건장한 말, 다크호스에 안장을 태우고 필요한 장비를 착용했다. 말에 올라탄 스필언과 미토스의 모습은 영웅 그 자체였다. 전신에서 광채를 뿜어내는 것 같은 아무라를 느낄 수 있었다. 태양빛까지 도움을 주어 그들의 빛나는 외모를 가일층 시켜 주었다. 

  “주베인 영지에 있는 인포메드의 도움을 받으면 카론마이어 공작을 만나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한순간이지만 안젤리카는 미토스를 보고, 눈이 부시다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두근! 두근!

  ‘이게 무슨 감정이지?’

   연애의 감정을 느껴보지 않은 안젤리카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드래곤이 인간에게 감정을 느낀다는 것 자체를생각해보지 않은 것이다. 느껴지는 감정이 채 정리가 되기 전에 미토스와 스필언의 말이 들렸다.

  “이만 가보겠소.”

  떠난다는 미토스의 말만 안젤리카의 귀에 들려왔다. 특별히 크게 서운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왠지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절실하지는 않지만 미토스가 떠나는 것에 좋은 기분이 들지 ㅇ낳았다.

  ‘둘 중 하나를 남편으로 만들겠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미토스인가!’

  생깍을 정리한 안젤리카는 결정을 내렸다. 물론 상대가 싫다고 하면 굳이 강요할 마음은 없다. 되도록 상대의 의중을 들어보기는 할테니 말이다. 그래도 싫다면 무척이나 서운할지 모른다. 드래곤이 서운하게 되면 그게 과연 제국으로 얼마나 큰 파장을 불러올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말에 올라타서 주베인 영지로 들어가는 스필언과 미토스였다.

  다다다닥!다다다닥!

  역시 무척이나 빨랐다. 순식간에 공간이동을 한 것처럼 빨리 달리는 다크호스였다. 달라가던 미토스는 한순간이지만 한기를 느꼈다.

  오싹! 부르르!

  전신이 갑자기 떨려오는 것이 왜인지 알 수 없었다. 미토스의 떨림을 간파한 스필언이 달리면서 물었다. 오러마스터가 감기에 걸릴 리는 없기에 이상해서 물어본 것이다.

  “왜그래?”

  “몰라. 갑자기 오싹한 느낌을 받았다.”

  “별일이군.”

  “그래.”

  미토스는 순간적인 떨림을 무시했다. 전에도 한번 겪은 느낌이라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지금 중요한 것은 카론마이어 공작을 만나 전략대로 움직이는 것이었다.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이번 일을 마치고, 다시 돌아가기로 가르딘과 약속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한 스필언과 미토스였다. 돌아오지 말기를 바라는 가르딘의 안타까운 심정은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핏!

  “커억!”

  마법사 한 명이 또다시 주저앉는다. 심장에 맞은 암수로 인해 정신이 가물거리는 마법사였다. 움직이지 못하는 마법사는 몸안에서 퍼져가는 독을 막아내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독 때문에 죽었다는 것은 마법사에게는 수치였다. 치료 마법을 연신 외었다. 몸 안으로 순백의 기운이 스며들어간다. 전투에 신경을 써야 할 머법사들이 몸 안에 들어온 독을 억제하기 위해서 마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25명의 마법사들 중에서 16명이나 독수를 맞았다. 5서클 이상의 마법사만이 간신히 버티고 있고, 나머지 마법사들은 전신에 독이 퍼져 죽음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었다. 마법력이 약화된 상태에서 극독은 마법사들에게 최악의 결과를 가져왔다. 마법사들이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자 다시 승기를 잡게 된 코워드 후작이었다. 수적인 열세를 마법사들이 커버하고 있는 상태였기에 급반전이 아닐 수 없었다.

  발키리시가산은 유유히 전장에서 조금씩 멀어져 나갔다. 언제 그 장소에 있었냐는 듯이 뒤로 빠져 구석에 위치했다. 구석진 자리를 고수하며 적군을 쓰러뜨렸다.

  ‘우리는 이대로 진형을 유지한다!’

  기사단장 필리언이 발키리기사단을 통제했다. 이제까지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기사단의 피해도 없었다. 적들이 발키리기사단을 신경 쓰지 못한 것이 다행이었다.

 멜버른 후작이 마법사들을 둘러봤을 때 절반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선두에서 적병들을 향해 마법을 사용하고 있었기에 확인을 하지 못한 것이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마법사들의 마법력이 급격하게 소모되고 있었다.

  “힐링마법”

  공격마법을 사용해도 부족한 상황에서 마법사들은 자신의 몸에 힐링마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멜버른 후작이 케츠베인의 상태를 파악해 보았다. 온몸에 흐르는 땀을 통해서 분출되는 독기를 발견할 수 있었다. 힐링마밥이 저 서클의 마법이라고 해도 독에 대한 저항성이 상당히 강하기에 자주 사용을 하는 마법이다. 한 번의 힐링마법으로는 해독이 되기는커녕 악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멜버른 후작은 기겁했다.

  지독하기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독이라는 것이 이토록 무섭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무서운 독이다! 5서클 이하의 마법사들은 상대가 되지 않아!”

  멜버른 후작이 케츠베인의 상태가 더 이상 악화되지 않게 치료마법을 걸었다. 그러나 더 이상 마법을 사용하기에는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다.

  “어떻게 공격을 한 것인가?”

  눈에 띄는 공격은 없어 보였다. 마법사들을 위험할 정도로 강력한 공격을 할 수 있는 병사들은 없었다. 현실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다.

  “끄응!”

  “정신이 드나?”

  “멜버른 후작님.”

  “어떻게 당한 건가?”

  “갑자기 단검이 두 방향에서 날아와서 방어마법을 전개하고, 다시 공격마법을 사용하기 위해서 방어마법을 풀자! 가슴이 뜨끔했습니다. 몸 안으로 독이 퍼지는 것을 막아보려고했지만 저로서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어떤 놈들인지 봤나?”

  케츠베인이 힘들게 몸을 움직여 주변을 돌아보았다. 헥토르 왕국군과 제국군이 치열한 난전을 벌이고 있기에 쉽사리 누군가를 찾아내는 것이 어려웠다. 더군다나 케츠베인이 찾고 있는 존재들은 이미 외곽으로 빠져서 병사들 몸에 섞여 버렸다.

  “기사들인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보이지 않...습니다!”

  멜버른 후작은 이가 갈렸다. 누군가가 병사들 사이에 숨어서 마법사들만 골라서 기습을 가한 것이다. 눈에 뻔히 보이는 수작에 당한 꼴이 아닌가!

  ‘빌어먹을!’

  마법사답지 않게 속에서 염불이 터져나왔다. 냉정함을 무기로 하는 마법사들에게 흥분은 금물이었다. 

  마법사들이 전장에서 힘을 잃어가자 전투는 점점 불리해지고 있었다. 장기전으로 갈수록 체력적으로 많이 고갈된 헥토르 왕국으로서는 사투가 될 수밖에 없었다. 

 팽팽하게 당긴 살이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불안정한 전투였다. 멜버른 후작이 마법사들의 독을 풀기 위해 움직일 때 사이너스 국왕은 전장의 한복판에서 누군가를 찾았다.

  “이놈! 어디 있는 것이나?”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다.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존재이자 헥토르 왕국에게 크나큰 피해와 망신을 준 놈이었다. 반드시 찾아서 사지를 찢고, 껍질을 벗겨버려야 직성이 풀릴 것이다.

  “가르딘 카이로스! 어디에 숨은 것이냐?”

  고아적인 집착을 보이고 있었다. 전장에서 분출되는 살기가 극한으로 불사르는 듯했다. 사이너스 국왕은 가르딘이 보이지 않는 것에 화가 더욱더 치밀었다. 놈은 전면에 보이지도 않는다. 자신을 농락하기 위해 일부러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화가 많이 났나 보다.”

  “그렇겠지.”

  “계속 당했는데, 정작 당사자는 보이지도 않으니 말이야.”

  염불이 터져도 별로 이상해 보이지는 않았다. 필리언, 갈라, 유타가 저희들끼리 속닥거린다. 그 앞에 있는 헥토르 왕국의 병사는 짜증이 치밀고 있었다. 그렇다고 공격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받아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들은 신경도 쓰지 않고, 저희들끼리 속닥거리는 모습이 전쟁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장면을 연출했다.

  “죽어랏!”

  “이놈들! 전투가 장난이냐!”

  참다못한 헥토르 왕국의 병사가 있는 힘을 다해 찔러들어 왔다. 10여 명의 병사들을 상대하던 필리언, 갈라, 유타는 병사의 반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발말하지 마라! 그래도 너희들보다 나이가 많다.”

  “그렇게 죽고 싶다면 오냐, 죽여주마.”

  “별것도 아닌 게 살려주고 있는 우리 체면을 무시하네.”

  그제까지 장난 같은 얼굴을 하던 필리언, 갈라, 유타의 모습이 달라졌다. 입가에 짙어지는 미소와 다르게 기세가 바뀌었다. 창을 찌르던 병사는 무언가 잘못 건드린 것을 깨달았다.

  ‘똥 밟았다!’ 

 마음속으로 기겁했지만 결과는 이미 늦어 버렸다.

  사아아악! 사아아악!

  검이 병사의 가슴팍을 사선으로 그어 버렸다. 그어진 상처는 벌어졌고, 벌어진 상처에서 핏물이 흘러내렸다. 10명의 병사들이 고작 몇 번의 검질에 죽어 나갔다. 발키리기사단의 기사들에게 일반병사들이 상대가 될 리 만무했다.

  “적당히 하자.”

  필리언의 말을 정면에서 듣는 헥토르 왕국 병사들은 울화통이 터졌다. 면상을 쳐다볼수록 화만 쌓인가! 그렇지만 죽인다고 달려들어 봤자 죽는 것은 자신들이었다. 이런 엄청난 실력을 가진 기사들이 같은 기사들과 싸우지 않고, 왜 이쪽에 있는 것인지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빌어먹을! 적당히 하긴 뭘 해! 죽어랏! 이놈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이판사판인 헥토르 왕국 병사들이 필리언의 말을 귀담아 들을 리 없었다. 전투는 사람의 마음을 잡아먹는 마물이다. 광적인 기운에 휩싸여 앞뒤 재지않고 적을 향해 돌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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