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6화 (37/93)

                 가르딘전기6 건드리고고   @@[Title [email protected]@]

     @@[제1장 연출자 가르딘@@]

  대승

  전략과 전술을 통해서 얻어진 완벽한 승리. 아군의 피해는 극소수, 적군의 피해는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다. 죽어간 적군의 시체를 치우는 일조차 만만치 않을 지경이다.

  발키리 영지군은 대전의 승리로 인해 한껏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이제는 헥토르 왕국과 전면전을 한다고 해도 전혀 물러서지 않을 정도로 자신감이 충만했다.

  가르딘은 병사들의 모습에서 자신감을 읽었다. 지금부터는 그다지 쓸모가 없을지도 모르는 자신감이 말이다.

  “너무 고조되었군.”

  병사들을 살펴보다 막사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막사 안에는 파멜라, 스필언, 미토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필리언, 갈라 유타는 병사들과 전방의 운무진 안에 들어간 상태였다. 스필언과 미토스가 동기들과 돌아가면서 전투를 치렀다.

  현재 전투는 공백기에 들어갔다.

  헥토르 왕국은 병력을 다시 정비하는 것만으로도 바쁜 상태였다. 운문진을 뚫는 것도 문제지만 남은 병력을 효과적으로 다스려야 하는 상황이다. 30만 대군이 10만 병력으로 줄었으니 산술적으로 20만 대군이 발키리 영지 앞 평야에서 전사했다는 뜻이 되었다. 병사들의 사기가 급격히 떨어진 상태였고, 두려움이 병사들의 마음을 잠식하고 있을때였다.

  운문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병사들의 동요는 점점 더 커질 것이다. 또한 가장 큰 문제는 병사들의 체력손실이었다. 전투에서 소모된 체력은 육체적인 체력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정신적으로도 상당히 지쳐 있을 것이 분명했다. 앞으로 며칠 동안 헥토르 왕국은 병사들을 정비하는 데 모든 정신을 다 쏟을 것이다. 운무진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최소 2일 정도는 더 필요하게 된다는 말이다.

  가르딘이 파멜라에게 언뜻 눈빛을 주었다. 파멜라는 알았다는 듯이 급박한 표정을 지으며 상황을 설명해 나갔다.

  가르딘도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대승을 거둔 직후의 지휘자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차분하며 날카로웠다. 가르딘과 파멜라가 무게를 잡자 금세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스필언과 미토스도 분위기가 이상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일부러 느끼라고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가르딘이었다. 기사 짬밥 20년이 넘어가면 웬만한 연기자들이 울고 갈 정도로 뛰어난 표정 연기를 선보일 수 있다. 가르딘의 표정에서 사실을 읽어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거듭 말하고 싶을 지경이다.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미토스와 스필언도 전투에서 엄청난 활약을 선보였다.

  적진을 향해 오러 블레이드를 뿜어내어 단숨에 적군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아군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였다. 전략과 전술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실행한 것이다. 약관의 나이에 가질 수 없는 침착함과, 대범함을 선보였다. 놀라운 재능을 타고난 녀석들이 아닐 수 없었다.

  미토스와 스필언이 보기에도 전투는 완벽한 승리로 귀결되었다. 아군의 피해가 있기는 하지만 그 정도면 미미한 피해라고 할 수 있었다.

  가르딘은 왜 갑자기 심각해졌는지를 세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똑독한 놈들이라 괜한 꼬투리 잡힐 수 있는 허점을 남겨서는 안 되었다. 솔직히 다른 녀석들은 안다고 해도 가르딘의 말에 따르겠지만 스필언과 미토스는 달랐다. 물론 스필언과 미토스가 가르딘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녀석들은 가르딘이 아닌 제국을 위해 충성을 맹세한 녀석들이다. 그에 반해 가르딘은 제국보다 자신과 가족의 안위를 위해 노력한다. 서로 충성을 보이는 대상이 완벽하게 다르다고 할 수 있었다. 가르딘과 스필언, 미토스 간에 메워지지 않는 간격이라고 할 수 있다.

  “적군의 수가 얼마나 남았지?”

  “많이 잡아도 12만을 넘지 않을 겁니다.”

  가르딘의 물음에 미토스가 즉시 대답했다. 가르딘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알면서도 다시 물어보는 의도를 파악하기 힘들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10만 정도겠지.”

  “그렇습니다. 적군의 20만 병력을 무찌른 대단한 전과입니다.”

  “적들은 10만으로 줄었고, 상당히 지쳐 있을 거야. 그렇지 않은가?”

  “지금까지 전투를 치르면서 헥토르 왕국은 제대로 쉬지를 못했습니다. 전투에서 헥토르 왕국군이 지쳐 있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왜 물어보시는 겁니까?”

  역시 핵심을 치고 들어온다.

  알고 있는 사실을 몇 번씩이나 다시 물어본다는 것 자체에 대한 의문이었다.

  “이번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진법입니다. 진법이 아니었다면 전투는 일방적으로 끝이 났을 겁니다.”

  미토스와 스필언이 파멜라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파멜라의 놀라운 진법 실력이 아니었다면 이길 수 없었던 전쟁이었다. 그녀에 대해 새삼 다시 바라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전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진법에 문제가 발생했다.”

  “예? 그게 정말입니까?”

  “그래, 파멜라가 말하길 헥토르 왕국군이 가진 공성무기의 공격으로 인해 진법의 축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야.”

  “그럴 수가!”

  진법이 무너진다면 상상하기 힘든 결과가 나타난다. 적들이 비록 병력수가 줄고, 지쳤다고는 하나 10만 대 3만의 병력 차이로 쉽게 극복할 수 없는 차이였다. 이제야 가르딘이 왜 헥토르 왕국의 피해와 병력수를 다시 물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진법이 사라졌을 때를 생각해 보라는 뜻으로 보았다.

  “큰일이군요!”

  “별로 그렇지는 않을 거야.”

  “그건 또 무슨 소리입니까?”

  “파멜라가 대신 말해 줄 거다.”

  가르딘이 파멜라에게 직접 말해 보라고 했다. 파멜라는 가르딘에게 부여받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사실대로가 아닌 거짓을 말해야 하는 입장에 처한 파멜라였다. 가르딘처럼 능숙하지는 않지만 진지한 연기에 몰입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진법의 축이 무너지기는 했지만 한 번에 와해되지는 않을 거예요! 최소한의 시간은 보장이 된 셈이에요.”

  “다행이군요.”

  “진법이 완전하게 무너졌다고 해도 적들은 함부로 쳐들어오지 못할 거예요.”

  맞는 말이었다.

  전투를 치르는 동안 계속 진법에 당한 헥토르 왕국이었다. 진법이 사라졌다고 해도 그것이 또다시 펼쳐지는 기만술인지 알 수 없을 것이다. 헥토르 왕국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뒤로 돌아갈 수도 없으며 함부로 진격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기로에 서있게 되었다.

  “시간은 우리 편이에요. 이미 원군이 가까운 지점까지 와있는 상태니, 그때까지는 충분히 버틸 수 있는 시간이니까요.”

  “원군이 온다면 적들을 한꺼번에 섬멸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겁니다.”

  미토스와 스필언은 이 기회에 헥토르 왕국과의 전쟁을 종식시켜 버리기를 워ㅤㄴㅐㅎㅆ다. 제국 전쟁 중에 헥토르 왕국이 한 행위는 카이로만 제국의 배반이었다. 배신행위는 마땅히 단죄 받아야 하는 일이었다.

  “이번 전쟁에서 헥토르 왕국의 배신이 중요한 일이나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지 않느냐?”

  대화가 무르익어 가자 가르딘이 끼어들었다.

  가르딘은 헥토르 왕국과의 전쟁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고 말을 했다. 대의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것이 제국을 위한 일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코카 제국과의 전쟁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너희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대국적인 면에서 볼 때 발키리 영지의 전투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제국전쟁에서 승리를 하지 못할 경우 아무것도 아닌 승리가 되는 것이지.”

  “설마 저희 보고 발렌타인 성으로 가라는 말입니까?”

  지금까지 가르딘과 함게 전투를 치르며 발전해 왔다. 발키리 영지에 와서 더욱더 가르딘에 대한 신뢰가 깊게 쌓여 갔다. 가르딘은 자신들이 모시는 주군 이상의 스승이었다. 가르침을 아무런 대가 없이 베푼 스승말이다. 스승을 놔두고 어떻게 여기서 물러날 수 있단 말인가! 스필언과 미토스로서는 절대 따를 수 없는 명령이었다.

  “내가 언제 지금 즉시 가라고 했나! 제국전투가 중요하다고 했지.”

  “지금 영주님의 뜻이 그렇지 않습니까?”

  “흠, 내 말을 오해하고 있군. 어차피 이번 전투는 원군이 오게 되면 끝나게 되어 있어. 후방 지원군으로 오는 20만 대군이 이곳을 지키게 된다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너희들같이 중요한 인재가 이곳을 계속 지키고 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아. 카이로만 제국의 승리를 위해서 너희들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현명한 결정인지 생각해 보는 게 좋다는 말이다.”

  가르딘은 직접적으로 가라고는 하지 않았지만 빨리 꺼지라는 무언의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

  스필언과 미토스는 고민이 되었다.

  그 둘은 이제 막 기사가 된 신출내기 기사다. 하지만 그들이 가진 힘은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오러 마스터에 오른 엄청난 실력자였다. 가르딘의 말대로 발키리 영지가 안정이 된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제국전쟁이었다. 제국전쟁이 벌어지는 곳으로 가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었다.

  가르딘의 뜻에 스필언과 미토스는 감동하고 말았다.

  제국을 위해 가드딘은 홀로 모든 것을 짊어지고 간다는 뜻으로 이해가 되었다. 구원군이 온다는 것은 그들도 알고 있었다. 반면에 후방을 지원하는 병사들은 오합지졸이었다. 그들을 이끌고 전쟁을 치르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영지를 위해서는 스필언과 미토스가 이곳에 남는 것이 훨씬 이득이었다. 보통의 귀족들이 할 수 없는 판단을 대범하게 결정하는 가르딘이 위대해 보이기까지 했다.

  “제국을 위해 목숨을 거는 것은 모든 기사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이라고 나는 배웠다. 너희들은 아닌가!” 

  “저희들은 영주님을 위해 목숨도 바칠 수 있습니다.!”

  “영주님은 정말 제국의 충신입니다!”

  너무도 격렬하게 감동하고 있는 스필언과 미토스였다. 보고 있는 가르딘과 파멜라조차 숭고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여기서 그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으로 예상이 되었다.

  “너무 오바하지 마라! 괜히 미안해지잖아.”

  순진한 놈들은 속이기가 조금 미안하다. 그러나 가르딘은 자신과 가족을 위해 속일 수 있는 독한 마음도 가졌다.

  올바른 녀석들의 문제점은 너무 많은 신뢰를 준다는 것에 있었다. 한번 믿음을 주면 배신한다는 것 자체를 고려하지 않는다. 무서운 녀석들이었다. 신뢰만으로도 이만큼 무서운 능력을 보여주다니 대단하다 아니 말할 수 없을 지경이다.

  “원군이 발키리 영지 내에 도착하기 전에 이곳의 사정을 황궁에 전할 것이다. 그때쯤이면 제국과의 전쟁이 치열하게 진행이 될 것이 분명하다. 그전에 너희들은 마음의 준비를 해놓고 기다렸으면 한다.”

  “영주님을 이곳에 홀로 놔두고, 어찌 저희들만 갈 수 있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저희는 신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배워ㅤㅆㅡㅅㅂ니다. 영주님이 베풀어주신 신의를 배신할 수 없습니다.”

  스필언과 미토스는 제국을 위해서는 반드시 가야하지만 가르딘을 생각하니 도저히 갈 수가 없었다.

  가르딘은 흔들리는 미토스와 스필언의 마음에 쐐기를 박았다. 이대로 지지부진한 결과는 얘기하지 않은 만 못한 결과를 초래한다. 할 때는 확실하게, 쉴 때는 확 쉬는 게 가르딘의 철학이었다. 

  “나도 제국을 위해 출전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이곳을 튼튼히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함께 갈 수 없는 내 마음을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가르딘의 쐐기포에 결국 결정을 내려야 하는 스필언과 미토스였다.

  “영주님의 뜻을 받들겠습니다.” 

   “반드시 대륙의 적인 코카 제국을 응징하겠습니다!”

  가르딘은 대견하다는 듯이 녀석들을 바라봐 주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스필언과 미토스의 의견을 존중해 주었다. 물론 가르딘은 발렌타인 성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다. 행여나 누가 그런 말을 하면 검을 입에 쑤셔 넣어 줄수 있었다. 검맛이 고픈 사람은 한번 말해 보길 바란다.

  ‘제국은 무슨 개뿔!’

  나와 가족이 살아야 그 다음이 제국이 있는 것이다. 현실의 내가 행복하지 않는데, 제국이 번성하면 그게 과연 행복인가! 사람은 살아 있을 때 가치를 가진다. 죽은 다음의 명예따위는 오크에게 줘 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따위 명예는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이곳에서 벌어진 전투를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발키리 영지를 지킨 것은 모두 영주님의 노력 덕분입니다. 제국에서도 이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주님이야말로 제국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영웅이십니다!”

  ‘영웅은 니들이 하면 돼. 나는 빼줘라!“

  쉴라가 말하길 두 명의 영웅은 이미 내정이 된 상태였다. 바로 스필언과 미토스였다. 임의로 영웅의 자리를 빼앗고 싶은 마음도 없을뿐더러, 영웅이 되고 싶지도 않은 가르딘이었다.

  가르딘은 짐짓 냉엄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중요한 말이 끝나지 않았다. 이놈들이 발렌타인 성에 가서 지금까지의 전과를 떠벌리면 가르딘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게 된다.

  입단속을 철저히 할 필요성이 재기되었다.

  “너희들은 내가 사사로이 공을 탐하는 사람으로 보였더냐? 만약 그렇게 보았다면 내가 너희들을 잘못 가르친 것밖에는 되지 않는구나!”

  “아... 닙니다.”

  “저희들이 어찌 감히 그런 생각을 하겠습니까!”

  파멜라는 들으면 들을수록 가르딘의 말발이 장난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은 공부를 잘한다고 할 수 없는 경지였다. 바로 앞에 사람을 놓고,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저렇게 태연하게 거짓말을 하다니 놀라울 지경이었다. 또한 거짓과 자랑을 절묘하게 결합하여, 자랑인지 겸손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사람을 저토록 감동에 젖게 만들아니! 영주님은 도대체 사람입니까?’

  파멜라로서는 가르딘이 인간의 혀를 가졌는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가르딘의 일장연설은 계속되었다. 말이 입에 기름칠을 한 것처럼 술술 나왔다. 거짓으로 시작하다 보면 결국에는 들키는 것이 정석이지만 가르딘이 말에는 거짓과 사실이 절묘하게 혼합되어 완전무결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오늘날까지 나는 제국의 영광을 위해 노력했다. 물론 겉으로 드러난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지금까지 내가 노력한 것이 모두 나의 명예를 위해서라고 생각을 한 것이더냐!”

  “절대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것이 제국을 위해서입니다.”

  가르딘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다. 나는 제국을 위해 한 점 부끄러운 짓도 하지 않는다. 또한 나의 공을 위해 만천하에 알릴 생각도 없다. 이 점을 너희들이 알아주었으면 한다.”

  “알겠습니다.”

  “반드시 명심하겠습니다.”

  위엄이 서려 있는 가르딘의 모습은 사이비 교주라고 해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이비 교주의 교묘한 발언에 속아 넘어가는 교도들(스필언, 미토스)로 보이는 상황이었다. 천재라는 소리를 듣는 스필언과 미토스였지만 가르딘에게는 아직 멀어 보였다.

  “내 말을 싶이 새겨듣고, 이만 나가 보아라.”

  그 말을 끝으로 몸을 돌려, 등을 내비치는 가르딘이었다. 스필언과 미토스에게 가르딘의 등은 너무나 크고, 거대해 보였다.

  ‘영주님이야말로 저희들의 스승입니다.’

  스필언과 미토스의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가르딘의 훌륭한(?) 연설을 듣고 나자 마음이 한결 차분히 가라앉았다.

  “반드시 제국을 응징하고 돌아오겠습니다!”

  미토스와 스필언은 그 말을 남기고 막사 밖으로 빠져나갔다..

  막사 안에 남겨진 가르딘의 표정은 약간 오묘해져 있었다. 스필언과 미토스가 나가면서 한 말이 거슬렸다.

  ‘웬만하면 돌아오지 말지.’

  미토스와 스필언이 뛰어나고, 올곧은 놈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 녀석들이 가진 배경을 생각하면 골치 아픈 녀석들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가르칠 것도 별로 없었다. 발키리 영지에 오기 전 항마멸사신공의 운용을 완벽하게 가르치고 난 후 몇가지를 더 전수했다. 그 이후부터는 전수할 것이 없어졌다. 배운 절기를 알아서 날카롭게 벼리고 있었다. 스스로 알아서 발전하는 놈들에게 스승은 불필요한 존재였다.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성장하는 놈들이었다. 일반적인 재능을 가진 녀석들(필리언, 갈라, 유타)과는 차원이 다른 재능을 타고났다.

  “파멜라, 그럼 다음 작전으로 넘어가 볼까.”

  파멜라가 가르딘을 빤히 쳐다보았다. 파멜라는 스필언에게 마음이 있었다. 사실 가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이 조금은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자신에게 베풀어준 가르딘을 생각하니 거짓말에 동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으로 가르딘의 뻔뻔함에 놀라운 따름이었다.

  “왜 그래?”

  “영주님이 대단해서요.”

  “하긴 내가 좀 대단하긴 하지.”

  “낯 간지로운 말을 잘도 하시는 것 같아요.”

  “요새는 자기 자랑시대 아닌가!”

  “휴우!”

  하늘을 향해 한 점 부끄러움도 없다는 듯이 자기 자랑을 하는 가르딘이었다. 편한 사람들이나 자신을 잘 아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능글맞은 가르딘이었다.

  “꼭 그분들을 보내야 하나요?”

  “당연하지. 녀석들이 내가 하는 작전을 알게 되면 가만히 있을 것 같아.”

  “그렇긴 하네요.”

  너무 정직한 녀석들이었다.

  방법이 정장하지 않다면 따지고 들어올 수 있었다. 나중에 사실이 공작들에게까지 전해진다면 정말 곤란했다. 제국을 위험에 처하게 만들었다는 오명 속에 살아야 할지 모른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스필언과 미토스가 자신을 의심하지 않고 끝까지 가는 것이었다. 아직도 쉴라가 한 말은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때를 위해서는 신뢰가 무너져서는 안 되었다. 대륙전쟁보다 무서운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겠지만 세상 일이 자기 마음먹은 대로만 흘러간다고 보장할 수 없었다.

  “왜 스필언이 떠난다니 섭섭하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가르딘이 물어보자 파멜라는 당황했다. 다른 일에는 똑 부러지는 녀석이 연애에 대해서는 맹탕이었다. 가르딘의 입가에 맺힌 미소가 짙어질수록 파멜라의 얼굴도 점점 붉어졌다. 

  "영주님 그런 것 아니예요!“

  “아니긴, 그렇게 급하면 가기 전에 덮쳐! 나중에 또 알아! 먼저 먹는 놈이 주인이 될지.”

  말도 안 되는 가르딘의 말이었다. 사람이 먹는 음식도 아니고 먼저 먹는다고 자기 거라니 그게 어떻게 말이 되는가! 아직 어린 파멜라가 듣기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언어 선택이었다.

  당황한 파멜라가 막사 밖으로 나가버렸다.

  혼자 남게 된 가르딘은 아쉬운 마음을 드러내었다. 그녀는 확실히 뛰어난 여인이다. 그녀가 지닌 재능과 노력만으로 평가받는다면 제국의 큰 기둥이 되어도 부족하지 않다. 그러나 세상은 지니고 있는 재능이 전부가 아니다. 가진 배경과 연줄이 따라주지 못하면 아무리 뛰어나도 세상은 기회를 주지 않는다. 특히 여자라면 남자보다 더 심한 차별이 존재한다. 그 모든 것을 뚫고 이겨나갈 정도로 세상은 만만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였다. 한마디로 개같이 더럽고, 지저분한 세상이다.

  ‘너도 곧 좋은 짝이 나타날 것이다’

  스필언 말고도 남자는 많다. 물론 스필언보다 뛰어나다는 보장은 할 수 없다. 그 녀석들보다 뛰어난 놈들이 많다면 보통의 사내들은 접시 물에 코 박고 죽고 싶을지 모른다.

  “그럼 나는 오랜만에 애들 좀 굴려볼까.”

  어느 단체를 가건, 중간 자리에 있는 사람이 군기반장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가르딘도 원만히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서 애들 좀 굴려 본 경험이 있었다. 솔직히 작은 권력이지만 그 힘을 맛보는 것은 꽤 짭짤한 재미를 만들어 준다. 안해 본 사람은 느껴보지 못하는 변태성 쾌락이라고 말을 해도 부족하지 않다.

  병사들 사이로 가르딘이 지나갔다. 발키리 영지의 정예병들이 된 그들은 영주가 지나가자 바로 일어나서 예의를 차렸다. 모두 빠르게 일치단결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잦은 전투로 인해 피로가 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르딘이 지나가자 바로 일어났다. 눈동자에 총기와 자신감이 가득 차 있는 병사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병사들은 영주인 가르딘을 존경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30만에 달하는 대군을 상대로 보여준 가르딘의 전략. 전술은 그들이 감히 생각도 못해본 것들이었다. 세상을 깜 놀라게 만드는 엄청난 지휘 능력이었다. 또한 적군의 오러 마스터를 베어버릴 때 보여준 압도적인 검술은 가히 대륙 최강의 기사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였다. 아군의 선두에서 보여준 가르딘의 모습은 카리스마가 철철 넘쳤다. 가르딘이 전투에 있는 한 이번 전쟁을 반드시 승리로 이끌어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적들은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이번 전쟁에 헥토르 왕국은 사활을 걸고 있다. 놈들은 이제까지 우리가 세운 전술에 휘말려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앞에 있는 진법이 언제까지 발휘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가르딘은 병사들에게 약간 겁을 주었다. 이제까지 진법이 있었기에 승리한 것을 병사들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병사들에게 믿음과 신뢰를 준 기반을 흔들고 있는 가르딘이었다.

  “적들은 아직 10만에 달하는 대군이 남았다. 목숨을 건 적군은 적은 수라고 해도 결코 좌시할 수 없는 것이 전쟁이다.”

  전투의 대승으로 얻은 자신감을 조금이나마 줄여 주고 있었다. 좀 전까지 자신감에 차 있던 병사들의 표정에서 조금은 긴장감을 엿볼 수 있었다.

  병사들이 지금까지 한 전투는 모두 전술에 따른 소규모 전투였다. 적들을 분산시켜 수적인 열세를 만회한 전술이었다. 그에 따른 병사들의 움직임도 모두 정해진 대로 움직였다. 그러나 전면전은 확연히 다를 수 있었다. 10만 대 3만의 전면전이 벌어지면 승패를 장담할 수 없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한다는 것은 전술을 모르는 병사들도 알고 있었다.

  ‘긴장되지?’

  입가에 맺혀지는 약간의 미소를 금새 감춰버린 가르딘이었다. 가르딘은 병사들의 사기를 줄이는 것보다는 긴장감을 조성했다는 것에 만족했다. 너무 큰 사기저하는 나중에 문제로 제기될 수 있었다.

  “말 한마디에 금세 겁을 먹다니, 나의 믿음이 아직 부족한 것 같군! 아닌가?”

  가르딘은 병사들의 긴장된 눈빛을 노골적으로 못마땅하다는 듯이 말을 건넸다. 일부러 그런 상황을 만들어 놓고, 저런 말을 태연히 하다니 가르딘의 뻔뻔함은 한도 끝도 없었다.

  “아닙니다!”

  “저희들은 죽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병사들이 어떤 말을 해도 가르딘은 전혀 들어줄 자세가 되지 않았다. 이미 각오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사전에 미리 작정하고 온 가르딘이 병사들의 말에 귀 기울여 줄 리 만무했다.

  ‘그 마음만은 대견하구나! 그러나 어쩌겠니! 미안하지만 내가 조금 굴려야겠다.’

  병사들을 혹사시키겠다고 작정한 가르딘이었다. 병사들 대부분이 아직 전투를 치른 복상을 그대로 하고 있었다. 일부러 병사들에게 갑옷을 정리하지 못하게 했다.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고, 적군의 시체를 치우라고 한 것도 피곤을 부추기기 위한 방법이었다.

  “검은 전쟁에서 필요 없는 사치다. 내가 지금 즉시 너희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불안감을 지워주도록 하마.”

  가르딘은 병사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불렀다. 명분은 마음속에 있어 있는 불안감과, 앞으로의 전투를 효율적으로 치르기 위한 훈련이라는 거창한 이유였다. 사실을 있는 대로 말을 할 정도로 가르딘은 착한 사람이 아니었다.

  “지금부터 기본에 충실한 훈련을 지속적으로 할 것이다. 반복적인 훈련이야말로 실전에서 생명을 구해주는 귀중한 무기가 될 것이다! 모두 알겠느냐!”

  “예!”

  “이제부터 모든 대답은 악으로 한다! 알겠나!”

  “아아악!”

  반복훈련,

  지루하고, 힘들다.

  검과, 창을 무기로 찌르고 베기를 수도 없이 실행한다. 기본적인 훈련이지만 시간이 지속될수록 피로감이 급격하게 쌓여 간다. 하면 할수록 기본 수련이 힘들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물론 지금 당장은 힘들지만 기본훈련을 착실하게 하게 되면 실전에서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전장에서 마지막에 자신의 생명을 구해주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실력이었다. 카이로만 대제가 한 유명한 말이 있다. 한마디 말을 하기 전에 한 번의 검을 더 휘둘러라! 역시 유명한 사람은 말도 잘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가르딘은 모든 병력이 들을 수 있도록 내공을 조율하여 목소리에 실었다. 가드딘의 번쩍이는 안광이 모두를 또렷하게 보고 있다는 깊은 인상을 주었다. 가르딘은 3만의 병력을 모두 보고 있지는 않았다. 3만이 병력 하나하나를 모두 본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그러나 가르딘은 대충 보면서도 게으름을 피우는 놈들을 골라낼 정도는 되었다.

  “거기 우측으로 세 번째, 지금 뭐하는 거지? 똑바로 목하나!”

  “죄송합니다!”

  “내가 언제 말하라고 했어! 이제부터 모든 대답은 악으로 한다고 하지 않았나!”

  “죄..송합니다!”

  갈굼 대상자의 행동이 이상할 정도로 멍청하게 보인다. 갈굼 대상자가 아닌 옆에서 지켜보는 제3자의 입장으로 보면 왜 그와 같은 바보 같은 행동을 할까라고 생각하겠지만 직접 당해보면 알 수 있다. 갈굼 대상자는 갈굼을 당하다 보면 긴장해서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 스스로 생각해도 멍청한 짓을 연발하게 된다는 말이다. 갈굼을 당할수록 머리는 퇴화하고, 손과 발은 제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이거 안 되겠군! 대가리 박는다. 실시!”

  “실..시..헉! 악!”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군!”

  말을 하려다가 즉시 악이라고 대답한 병사였다. 자꾸 머릿속에서는 실수하지 말아야지 하지만 입이 따라주지 않았다. 가르딘은 일부러 한 병사를 표적으로 내세워서 다른 병사들에게 정신 바짝 차리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필리언, 갈라, 유타가 전방을 주시하다가 돌아왔다. 전방으로 나갔던 병사들까지 모두 돌아온 상황이었다. 적을 관찰하는 척후병을 제외하고 대부분 돌아왔다.

  “이게 뭐야?”

  “애들을 왜 이렇게 굴리는 거야?”

  “아직 전쟁 중인데 이렇게 무식한 짓을 하다니!”

  전쟁을 수행하는 데 훈련이 중요하기는 하다. 하지만 정작 전투를 치를 때 중요한 것은 체력이었다. 체력을 이토록 갉아먹고 전투를 치르는 것은 무식하고 미련한 짓이었다.

  필리언, 갈라, 유타를 가르딘이 따로 불렀다.

  기르딘이 잠시 동기들과 막사 안으로 들어가 있는 동안 병사들에게 훈련ㅇ르 꼐속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가르딘이 말이 이곳에서는 법이었다. 어떤 병사도 무시하지 못했다. 좀 전에 보여준 가르딘의 모습은 악마 같았다. 괜히 꼬투리 잡히면 큰일 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왜 이러는 거야?”‘

  “그러게. 갑자기 병사들을 훈련시키는 이유가 뭐야?”

  가르딘은 동기들에게는 사실을 말해 주었다. 가르딘이 인포메드지부에서 얻어온 자료를 보여주었다. 인표메드를 통해 얻은 자료에는 지금 원군으로 오는 귀족들의 신상명세가 적혀 있었다.

  “이게 뭔데?”

  “우선 읽어 봐.”

  필리언, 갈라, 유타는 자료를 읽으면서 인상이 굳었다. 원군으로 오는 귀족들은 그다지 평판이 좋지 않는 놈들이었다. 필리언에게는 가르딘이 미리 말을 하기는 했었다. 대강의 의중을 피력한 것이다.

  “하긴 후방에 있는 이유가 있었겠지.”

  “그런데 이것하고 병사들 훈련하고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거지?”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어느 누구에게도 해서는 안 돼. 자칫 제국의 역적이 될 수도 있으니까!”

  가르딘의 입에서 나온 말은 무서웠다.

  제국의 역적, 이번 전쟁이 끝나고 나면 가장 먼저 처단해 버려야 하는 존재들일 것이다. 대륙에서 발을 붙일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전쟁은 장기전으로 갈 거다.”

  가르딘은 자신이 구상해 놓은 작전을 동기들에게 설명해나갔다. 동기들은 설명을 들으면서도 표정이 좋지 못했다. 일부러 적들과의 전쟁을 장기전으로 이끌어 간다니, 그건 정말 위험한 발상이었다. 이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면 극형을 면치 못할 수도 있었다.

  “너 제정신이야!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줄 알아!”

   유타가 가르딘의 위험한 발상을 제지했다.

  “그럼 이대로 전쟁을 끝내고, 다시 전방으로 가고 싶으냐! 전쟁이 끝나고 난 후 발키리 영지의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 우리의 위치가 어떻게 될 것 같으냐! 황궁은 전쟁이 끝나는 대로 황태자의 선정으로 바쁘게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해 그 중심에 우리가 선다는 말이야. 지금까지의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어느 세력에게도 위험한 존재로 인식이 될 거다. 그런데 완벽하게 전쟁을 이겨 봐. 그것도 우리의 힘만으로!”

  가르딘이 열변을 토했다. 지극히 자기중심적으로 해석을 했다. 물론 거짓을 말하지는 않는다. 사실과 더불어 약간의 과장을 통해 설득을 위한 장치로 사용했다.

  필리언, 유타, 갈라는 가르딘의 말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가르딘을 따라 이곳까지 온 것도 따지고 보면 황궁의 파벌전쟁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자유롭게 생활하고 싶은 자신들로서는 이곳에서의 생활이 그리 싫지는 않았다.

  “네 말대로 된다고 해도, 사실이 가려질 수 있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다. 내가 왜 원군으로 오는 귀족들의 자료를 보여줬겠냐! 필리언에게는 미리 말을 해서 내 뜻을 이해했을 거다.”

  “하긴.”

  “그렇게 될 것 같다.”

  원군으로 오는 귀족들의 성향으로 봐서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선 상식적으로 이해 못 할 짓도 서슴없이 할 것으로 예상이 된다. 여기까지 오는 데도 시간을 질질 끈 것으로 봐서는 정쟁이 불ㅤㄹㅣㅎ면 뒤도 보지 않고, 적군에게 붙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실은 전쟁이 유리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들이 조금만 도와주더라도 전쟁은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공적을 쌓을 수 있는 이런 상황을 그대로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가르딘이 약간만 양보해도 얼씨구나 하고 좋아할 것이 분명하다.

  “내 뜻은 전했다. 어떻게 할 거냐?”

  “우리는 이곳에 온 순간부터 하나였다.”

  “네 뜻을 따르지.”

  가르딘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생사고락을 함께한 동기들이었다. 또한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다. 똑같은 것들이 결국에는 모이게 되어있었다. 가르딘과 동기들은 성향이 아주 비슷했다. 같은 형제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은 세월을 함께 보냈다.

  “그럼. 굴려 볼까나!”

  가르딘을 비롯한 필리언, 갈라, 유타 모두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군기반장 역할 을 수행했던 그들이었다. 지옥이 왜 이곳 중간계에 있는지 알려줄 수 있는 악랄한 기술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었다. 피닉스기사단의 군기반장이 제대로 의기투합했다. 그 상승효과는 무시무시할 정도였다.

  막사에서 나온 가르딘과 동기들의 모습에 병사들 모두 소름이 돋았다. 순간적으로 돋은 오싹한 기운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다.

  오싹!

  병사들 전원이 이처럼 공통적인 생각을 하기도 십지 않을 것이다. 그들 모두 생존본능이 탁월해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살기 위해서 무엇이 중요한지 깨달아가고 있었다.

  “똑바로 안 햇!”

  “악”

  “이것들이 빠져 가지고!”

  “악!”

  필리언, 갈라, 유타가 병사들 사이로 들어갔다. 병사들 속으로 지나가면서 걸쭉한 입담을 과시하고 있었다. 그에 따라 병사들의 소리도 커지고 있었다. 동기들 모두 한 놈만 걸려 봐라는 식이었다.

  지면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마저 삭막하다.

  고개가 처져 있는 병사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침울한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곳곳에 지친 병사들은 피로를 풀기 위해서 쉬고 있었다.

  헥토르 왕국군의 병사들 대부분이 과도한 피로누적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또한 부상당한 병사들의 고통 섞인 신음이 병사들의 사기를 더욱더 저하시켰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사이너스 국왕은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압도적인 병력을 가지고서 당한 대패였다. 사이너스 국왕이 잃어 버린 것은 병력뿐이 아니었다. 자존심까지 모두 무너졌다. 자존심이 무너지자 사이너스 국와에게 남은 것은 독기 뿐이었다. 적들과 같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초췌한 모습이지만 눈및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을 정도로 살벌한 기운을 발산하는 사이너스 국왕이었다.

  “어떻게 됐나?”

  “마법진이 무너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정말인가?”

  멜머른 후작의 말을 곧이곧대로 신용하지 않게 된 사이너스 국왕이었다. 멜머른 후작은 국왕의 신임을 잃었다.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마법진을 연구했다. 부족한 시간으로 인해 잠도 자지 않고 모든 지식과 마법력을 동원하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마법진이 저절로 약해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2일 정도가 지나면 마법진이 와해될 것으로 보입니다!”

  “어떻게 장담하지. 이번에도 놈들의 기만술이라면 어떻게 할 생각인가!”

  “그... 것은.”

  멜버른 후작은 대답하지 못했다. 적들의 전략인지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은 직접 마법으로 뛰어드는 것 뿐이었다. 사실 멜버른 후작은 후퇴하고 싶었다. 이번 전쟁은 이긴다고 해서 이긴 전쟁이 아니었다. 코카 제국이 이겨도 헥토르 왕국은 무사하기 힘들었다. 가진 병력의 산분지 이를 손실했고, 비밀병기인 타이탄마저 적들의 손에 들어갔다. 손실이 너무 큰 상황이었다. 전쟁의 손실을 따지면 헥토르 왕국으로서는 손해를 보더라도 돌아가서 재정비를 하는 것이 나았다.

  카이로만 제국와 코카 제국의 전쟁이 장기전으로 돌아선다면 그 뒤를 도모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멜버른 후작은 자신의 생각을 속으로 삭혀야 했다. 사이너스 국왕의 독기와 각오가 너무 완강했다. 말을 하는 순간 자신은 국왕의 칼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죽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여기에서 허무하게 국왕에게 자신이 죽는다면 헥토르 왕국군의 사기를 바닥을 칠 것이 분명하다. 차라리 전장에서 죽는 것이 나았다.

  “자네와 마법사들이 그 책임을 질 것인가!”

  “국왕 폐하! 소신이 목숨을 걸고 확인을 하겠나이다!”

  멜버른 후작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마법사들을 이끌고, 어떻게 해서든지 마법진이 무너졌다는 것을 확인해야 했다. 사이너스 국왕의 신임을 잃은 멜버른 후작은 결국 최후의 선택을 하고 말았다.

  멜버른 후작이 목숨을 건다는 의중을 내비치자 그제야 의구심을 약간이나마 푼 사이너스 국왕이었다.

  “2일 후에 기대해 보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동안 병사들의 피로가 풀릴 수 있도록 대처하도록.”

   “예. 국왕 폐하!”

  마법진이 아니라면 문제 될 것이 없다. 아직 병력수에서 3배 이상 많았다. 정병대결로 이끌어 갈 수만 있다면 전쟁은 승리할 수 있다. 또한 잃어 버린 타이탄을 다시 회수하여 재가동한다면 카이로만 제국의 후방을 마음먹은 대로 유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가르딘 카이로스! 네놈만은 반드시 죽여주겠다!”

  사이너스 국왕의 심중에 자리한 살의가 폭사되었다. 가르딘에 대한 살의만은 계속 증가하고 있었다. 쌓이기만 하고, 풀지 못하니 폭발하기 일보직전이었다.

  발키리 영지의 외곽 남쪽지역에 대규모의 병력이 들어서고 있었다 길게 늘어선 병력은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길었다. 다만 병사들 대부분이 정예병이 아니라 힘과 패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아직 어린 병사들과, 나이 든 병사들까지 섞여 있어서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병사들의 선두에 선 코워드 후작과 그를 따른 귀족들이 발키리 영지를 살펴보았다. 코워드 후작은 여전히 행군이 느렸다. 최대한 시간을 끌며 이동하겠다는 뜻이 보였다. 그를 따르는 귀족들 모두 약간의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발키리 영지는 다크랜드에 인접한 지역이었다. 헥토르 왕국의 침범도 문제지만 몬스터와 마수들이 습격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발키리 영지 남쪽의 외곽지역에서 안으로 점점 들어가면서 코워드 후작의 표정이 조금씩 변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넓게 펼쳐진 농지가 보였다. 농지에는 밀들이 빼곡하게 자라고 있었다.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는 밀은 푸름을 뽐내었다. 농사에 대한 기본지식이 없다고 해도 풍년이 들 것이라고 예상하는 데 어려움이 ㅇ벗을 정도다.

  “역시 제국의 곡창지대답구나!”

  “그렇습니다. 여기만 해도 이 정도로 많은데 발키리 영지 전체를 본다면 더욱더 엄청날 것입니다.”

  그들이 본 것은 빙산의 일각이었다.

  발키리 영지의 모든 곳이 밀 농지로 개간이 되어가고 있는 실정이었다. 수확량이 점점늘어나고 있었다. 예전의 수확량을 1.5배 이상 넘어갈 것으로 예상이 되었다.

  “다크랜드만 아니었다면 괜찮은 영지였을 텐데.”

  코워드 후작의 목소리에는 안타까움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발키리 영지는 제국의 곡창지대다. 다크랜드라는 위협적인 요소만 배제한다면 가지고 싶은 매력적인 영지라는 말이었다.

  타다다다닥!

  코워드 후작의 정면으로 5마리의 말을 탄 인물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바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였다.

  코워드 후작을 비롯한 귀족들은 모두 잠시 긴장을 해야 했다. 적군의 척후병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말을 탄 기사들의 모습이 나타났을 때 카이로만 제국의 깃발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제국의 깃발과 발키리 영지의 깃발도 같이 가지고 나타났다.

  기사들은 코워드 후작에게 가까이 가기 전에 말에서 내려 신분을 확인 받았다.

  “너희들은 누구냐?”

  “원군을 이끌고 출병을 해주신 코워드 후작님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저희들은 발키리 영지의 기사들입니다.”

  가르딘은 고트를 비롯한 고참기사들을 코워드 후작에게 보냈다. 상대가 비록 후방의 귀족이기는 하지만 후작이었다. 후작에 대한 예의가 필요했다. 또한 귀족들의 노련한 말투에 당황하지 않고 대응할 수 있어야 했다. 신임이 할 수 있는 책임이 아니었다. 이번 마중에는 몇 가지 당부가 필요했었다. 그렇기에 고트처럼 노련한 기사가 나서주어야 하는 일이었다.

  “가르딘 백작의 기사들이군.”

  “그렇습니다. 코워드 후작님을 마중하기 위해서 영주님이 보내신 것입니다!”

  코워드 후작이 잠시 이맛살을 찌푸렸다. 고작 기사들을 보냈다는 것에 대한 불만이었다. 옆에 있던 제롬드 백작이 코워드 후작의 의중을 파악하고, 앞으로 나섰다.

  “코워드 후작님은 제국의 후방을 책임지는 막중한 임무를 맡으신 분이시다. 후작님을 맞이하러 가르딘 백작이 직접 오지 않다니 이게 무슨 무례인가!”

  빠직!

  ‘책임은 개뿔!’

  고개를 숙인 고트와 고참기사들은 이마에 힘줄이 솟았다. 고작 후방에서 병참이나 맡아서 하는 썩어빠진 귀족주제에 헥토르 왕국의 파상공세를 막아낸 영주님을 폄하하자 화가났다. 그러나 노련한 고트는 금세 안색을 회복했다. 순식간에 변해서 아무도 변화를 눈치 채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헥토르 왕국과의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지는 관계로 직접 마중을 나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괜찮다. 마중보다는 전투가 우선이지. 제롬르 백작은 그만 하게.”

  “예, 후작님!”

  제롬르 백작의 시기적절한 개입으로 코워드 후작은 넓은 아량과 권위를 내세울 수 있었다. 뻔히 속이 보이는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귀족들은 허례의식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버릇이 있었다. 

  고트도 코워드 후작의 의도가 들여다보였다. 가르딘 백작의 권위를 손상시키고, 자신의 명예를 높이려는 수작이라는 것을 말이다.

  상대가 후작만 아니라면 아구창을 한 대 갈겨 버리고 싶은 고트였다. 염소수염에 쥐새끼처럼 생긴 코워드 후작이었다. 한마디로 주먹을 부르는 얼굴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속으로 화를 삭힌 고트가 만연에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코워드 후작님의 넓은 아량에 감사드립니다. 지금부터 제가 길을 안내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코워드 후작은 발키리기사단의 기사들을 살펴보았다. 갑옷은 격전을 치른 흔적이 역력했다. 핏물이 묻은 것과 부서진 갑옷의 흔적만 봐도 상황이 어떠했는지 능히 예측할 수 있었다. 그에 반해 기사들은 격전을 치른 것과는 대조적으로 약간의 여유가 느껴졌다.

  ‘심각한 상황을 넘기기는 했나 보군.’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난 후 승리했다는 것을 짐작했다. 전장을 직접 보지 않아도 그 정도는 예측이 가능했다. 코워드 후작은 마음속에 있는 불안감을 지웠다. 3만도 되지 않는 병력으로 막을 수 있을 정도라면 20만 대군을 가진 자신이라면 가뿐하게 막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헥토르 왕국이 예상보다 약하군. 잘됐어!

  코워드 후작은 상황을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 전장의 상황을 물었다.

  “전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치열하기는 했지만 영주님이 최대한 막아내고 있습니다.”

  “빨리 서둘러야 할 것 같군.”

  “빠른 길로 안내를 하겠습니다.”

  “그러게.”

  고트는 코워드 후작의 표정과 말투를 보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가르딘이 예상한 것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상황이었다.

  가르딘은 일부러 기사들에게 망가진 갑옷을 입혔다. 또한 말라붙은 피를 다시 피로 적시기 위해서 동물의 피를 묻였다. 격전을 벌인 지 얼마 되지 ㅇ낳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말이다. 기사들에게는 격전에서 승리했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했으며, 표정으로 여유가 있다는 것으 보여주라고 명령했다.

  고트는 가르딘의 말에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그 정도만 해서 과연 속아 넘어가 줄지 알 수 없 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귀족들은 아무런 의심도 없이 속아 넘어가고 있었다. 생각 없는 귀족들은 단순하면서도 무섭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런 놈들 밑에 있지 않은 것을 주신 라이니언께 감사드렸다.

  “예상대로 움직이는군.”

  가르딘에게 서신이 도착한 상태였다. 황궁에서 온 연락이었다. 황궁에서는 구원병이 당도하게 됐으니 조금 더 버티라고 연락을 보냈다. 그와 동시에 북방의 호랑이가 움직일 것이라는 통보를 보냈다. 코카 제국에 한 방 먹이기 위한 전략이었다. 중요한 전략이기는 하지만 가르딘도 짐작하고 있었다. 

  북방의 통수권을 가진 카론마이어 공작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것부터가 이상했었다. 이때를 위해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으로 예상이 되었다. 코카 제국에서도 예상하고는 있겠지만 쉽게 대처하지는 못할 것으로 보였다.

  ‘눈에 띄게 움직이지는 않겠지.’

  가르딘은 또한 발키리 영지 내로 코워드 후작이 들어 왔다는 것을 보고 받았다. 발키리 영지까지 오는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그런데 영지에 들어서면서부터 속도를 올리고 있었다. 계획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막사 안으로 스필언과 미토스가 들어왔다.

  “이제 때가 된 것 같구나.”

  가르딘은 황궁에서 온 연락을 교묘하게 물어서 설명했다. 이번 전쟁에서 빠져 있던 카론마이어 공작이 움직인다는 것과, 임무의 중요성으로 볼 때 스필언과 미토스의 합류가 중요한 분기점이 된다는 것을 강조했다.

  “영주님! 저희들이 떠나도 괜찮겠습니까?‘

  “걱정하지 마라! 영지는 내가 최선을 다해 막아낼 것이다. 너희들은 제국을 위해 큰일을 하게 될 테니 그것에만 집중하여라.”

  “반드시 영주님의 기대에 보답하겠습니다. 그리고 돌아오겠습니다!”

  “성장하는 너희들을 보니 내 마음도 흡족하구나!”

  ‘돌아오지는 말래도!’

  가르딘은 스필언과 밑토스가 자랑스럽다는 듯이 미소를 지어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계ㅅ획을 수립하기 위한 발판이라는 것은 설명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을뿐더러 알아서도 안 되었다.

  “주베인 영지까지는 안젤리카가 공간이동으로 안내해 줄 것이다. 그곳에서 황궁으로 움직여 카론마이어 공작과 합류하여라.”

  “알겠습니다. 영주님!”

  “가 보라아라! 너희들은 제국의 기둥이 될 인재들이다. 훨훨 날아 뜻을 이루고 돌아오너라!”

  스필언과 미토스가 비장한 표정으로 막사를 벗어났다.

  두 천재가 사라지자 그제까지 근엄한 표정을 짓던 가르딘의 입가가 살며시 올라갔다. 마치 100일 전에 싸지 못해서 참고 있던 똥을 다시 싸는 듯한 희열을 맛보고 있었다.

   “후우!”

  “이제야 혹 두 마리를 뗐네.”

  저놈들이 있으면 그만큼 큰 전력이 되기는 하지만 너무 올바른 녀석들이기에 다루기가 쉽지 않았다. 숨 막히는 혹 덩어리는 떼어 버렸다는 데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럼 다시 만반의 준비를 해볼까나!”

  가르딘은 진법과 병사들의 준비사항을 체크하기 위해 나섰다. 막사 밖에는 병사들이 고된 훈련을 하고 있느라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훈련양이 이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의욕이 가득했던 병사들의 눈빛이 흔들리고, 초점이 맞지 않았다. 기운이 없다는 반증이었다.

  ‘음! 제대로 되어가고 있군.’

  -거기! 똑바로 안 햇!

  -죽고 싶어!

  -이런 씨뱅이들을 봤나!

  -오늘부로 세상 살고 싶지 않은 놈은 나왓!

  훈련교관 역할을 하는 필리언, 갈라, 유타의 걸쭉한 입담이 과시되었다. 동기들 앞에 병사들은 생사의 기로에 선 고양이와 쥐의 관계였다.

  필리언이 날 잡았다 싶은지 심할 정도로 한 병사를 갈구고 있었다. 정신적 스트레스를 주고 있는 상황이다. 차라리 맞는 게 낫다 싶을 정도다.

  “그런 정신 상태로 절대 적군을 쓰러뜨릴 수 없다. 너는 이대로 죽고 싶은가!”

  “아닙니다!”

  “여기가 밖이지 안이야!”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끝나나!”

  “아닙니다.”

  “여긴 안이 아니라니까! 정신 똑바로 못 차리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겠습니다!”

  “ 어제부터 모든 대답은 악으로 하라고 했는데!”

  “악!”

  “정신 똘바로 차리라는 말이다!”

  “악!”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라는 것을 병사들은 깨달았다. 잘못했다가는 악마 같은 갈굼을 당해야 했다. 상대를 해보니 결론이 나지 않는 갈굼이었다. 무슨 말을 해도 통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군대라는 것을 여실히 깨닫게 해준다. 군대는 계급이 깡패였다. 병사들이 아무리 강해도 기사 앞에서 어떤 힘도 발휘할 수 없다. 억울하면 너도 승진하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었다.

  가르딘은 동기들의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보며, 진법을 확인하기 위해 전방으로 움직였다. 코워드 후작이 올 때까지 모든 상황이 맞물리듯이 맞아 나가야 했다.

  전방을 둘러보니 진법이 서서히 약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르딘의 기감은 눈으로 보는 것만이 아니라 대기가 흔들리는 미세한 기운의 변화도 확인이 가능했다.

  조화진, 변환진, 미로진, 운문진이라는 4자기 진법을 모두 사용한 파멜라였다. 진법의 순서도 중요하지만 서로 진법적 특성을 가진 능력을 적절하게 결합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었다. 그 모든 것을 완벽하게 처리한 파멜라의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번 전쟁의 일등공신은 파멜라가 아닐 수 없었다. 그녀가 없었다면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일이 발생했을 것이다.

   가르딘이 파멜라를 찾았다.

  기사들이 그녀를 보고하고 있었다. 기사들 5명이 그녀의 주변을 철저하게 방비하고 있는 형태였다. 가르딘이 파멜라를 위해 붙여준 호위기사였다.

  “진법의 유효시간은 얼마나 남았지?”

  “반나절 정도면 모두 사라질 거예요.”

  “시간이 딱 맞는군. 코워드 후작이 반나절 후에 이곳으로 올 테니 말이야.”

  “저는 사실 영주님의 선택을 좋게만 볼 수 없어요.”

  “파멜라는 착하군.”

  진법을 계속 설치해 놓는 다면 병사들의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가르딘은 발키리 영지내의 병사들을 뒤로 빼고, 후방 부대의 병사들에게 전쟁을 시키려고 하고 있었다. 발키리 영지로서는 손해 보는 일이 아니라고 해도 병사들이 죽어나가는 것은 현실이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다른 이의 목숨을 빼앗는다는 것 자체가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넌 그저 내가 시킨 일을 한 것뿐이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너무 자책하지는 마라.”

  ‘알고 있어요. 영주님의 선택이 발키리 영지를 위해서라는 것을 말이죠.“

  파멜라도 가르딘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가르딘의 방법은 잔혹했다. 일부 귀족들의 잘못 때문에 희생되는 것은 병사들이었다. 병사들의 죽음을 과연 누가 책임질 수 있는가! 이미 죽고 사라진 생명들을 말이다.

  “파멜라는 지금 즉시 저택으로 돌아가거라.”

  “하지만 여기는 아직.”

  “너는 이미 네 할 일을 다 했다. 직접 겪어 봐서 알겠지만 전쟁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힘들고, 잔인한 일이다. 또한 서로의 목적을 위해서는 모든 희생을 감소하기도 하지. 아직은 그런 것까지 감당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 이만 돌아가거라. 돌아가서 네 어머니를 안심시켜드리렴.”

  “알겠어요.”

  “너희들은 파멜라를 안전하게 저택까지 데려가라.”

  “명을 이행하겠습니다.”

  가르딘이 호위기사에게 파멜라를 잘 지키도록 명을 내렸다. 파멜라는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작용했다. 뛰어난 재능을 살려 노력하는 파멜라였지만 전쟁은 그녀가 생각 하는 것 이상으로 체력을 소모시켰다.

  돌아가는 파멜라를 착찹하게 바라보는 가르딘이었다. 이제 막 성인이 된 여자아이에게 가혹한 현실을 감당하게 만든 것이 과연 잘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잠시 쉬고 나면 괜찮아 질 것이다.’

  차분하게 머리를 식히면 사리분별을 잘 하는 녀석이라 금세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미안하다.’

  가르딘은 영지보다는 가족을 위해서 그런 결정을 내렸을 뿐이었다. 지극히 이기적인 결정이 아닐 수 없다.

  ‘역시 영웅이 되기에는 내그릇이 너무 좁군.’

  모든 사람을 걱정하고, 대륙의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자를 영웅이라고 한다. 영웅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희생해야만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가르딘은 자기 자신을 희생할 그릇이 되지 못했다. 아니 그러고 싶은 마음이 눈곱만큼도 존재하지 않았다. 가르딘은 자신과 가족이 살고 봐야 세상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보조인가!’

  -두 명의 영웅을 이끄는 용의 기운을 가진 자!

   신탁에 나온 문구에서 보다시피 용의 기운을 가진 것 뿐이지 영웅이라는 말은 없다. 영웅을 뒷받침해 주는 보조 정도가 딱 좋은 어감이었다.

  가르딘은 신탁이 어떤 결정을 하던 지금의 마음은 바꿀 생각은 전혀 없었다. 세상이 무너진다고 해도 말이다.

  가르딘은 정면을 바라보았다.

  진법을 투시하여 바라보는 곳은 헥토르 왕국의 진영이었다. 진법이라는 장벽을 대상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헥토르 왕국은 속이 타 들어가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20만이나 되는 병사들이 죽어나갔다. 그들 모두 헥토르 왕국을 위해서 희생한 병사들이다. 병사들의 죽음 자체는 숭고하다고 할 수 있었다. 가르딘도 병사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그다지 악감정이 없다. 다만 발키리 영지를 침입하고, 가족을 위험에 처하게 했다는 것을 용서할 수 없을 뿐이다. 적을 향해 동정심은 존재하지 않았다. 적은 쓰러뜨려야 할 존재 그 이상이 아니다. 철저하고 냉철하게 인간적인 마음은 모두 버려야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딘은 알고 있었다.

  “사이너스 국왕! 그대는 병사들의 죽음을 책임지고 있는가! 나는 당신의 군대와 제국의 군대 모두 다 죽이는 희대의 학살자가 될지 모르겠군.”

  역사에 남지 않을 병사들이다. 그들의 죽음은 귀족들의 공적이 되어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귀족들은 자신의 공적이 올라가게 된다면 병사들의 죽음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여길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와 가족을 위해서 나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 나를 건드린 게 당신의 가장 큰 패작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겠다.”

  비장한 표정을 보여주는 가르딘이었다. 가르딘의 평소 표정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흐느적거리며 능글맞은 중년인의 표정과는 상반되었다. 그러나 곧 비장한 표증은 사라져ㅤㅆㅏㄷ. 가르딘은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표정만 보면 여유로움이 넘쳐 흐른다.

  “그럼 이제 맞아 볼까나!”

  고트의 안내를 받으며 발키리 영지로 들어오는 코워드 후작은 주변을 돌아보며 영지의 풍요로움을 살필 수 있었다. 영지는 제법 잘 정비가 되어 발전이 되고 있었다. 가르딘이 영주가 되면서부터 바뀌게 된 풍경인 것 같았다.

  ‘제법 살기가 좋아졌군!’

  발키리 영지의 남쪽을 가로질러 북쪽으로 가는 동안 고트는 방향을 약간 틀었다. 이번 전쟁의 상흔을 보여주어야 했다. 풍족함만을 봐서는 절대 안 되는 이유가 있었다. 그들에게 전쟁의 긴장감과 더불어 발키리 영지의 손해가 크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다크랜드와 인접한 성벽부터 이어지는 가르딘의 저택까지 물질적 피해와 사상자가 엄청나게 발생한 사건이었다. 물론 헥토르 왕국의 피해에 비해서는 조족지혈이기는 했다.

  피해지역을 일부러 거쳐가는 고트였다. 약간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고트는 능숙하게 지형을 이용해서 이동했다. 코워드 후작이 희심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신중을 기했다.

  “크음!”

  코워드 후작을 비롯한 후방귀족들이 다크랜드와 인접한 성벽을 중심으로 가르딘의 저택까지 이어지는 곳을 볼 수 있었다. 곳곳에 부서진 잔해가 아직도 그대로 였다. 영지민들이 수리하고 있지만 피해의 혹독한 참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코워드 후작은 발키리 영지에 들어오면서부터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영지 내에서는 전쟁의 여파를 확인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영지의 중심이 되는 영주의 저택주변이 초토화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적들의 침입이 이곳까지 있었다는 말이 되었다. 상당히 급박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생각보다 상황이 더 급한가 보군.’

  가르딘이 마중 나오지 못한 것도 이해가 되었다.

  “피해가 심각하군 그래.”

  “적들이 이곳까지 침범하는 바람에 영주님도 상당히 큰 피해를 감수하셨습니다.”

  “그랬겠지.”

  “이곳으로 계속 가다 보면 영주님의 저택이 나옵니다. 그 곳을 들러서 북쪽으로 가게 되면 전장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고트는 코워드 후작의 말에 공손히 대답하며, 상황을 설명해 나갔다. 코워드 후작이 본 상황에 적절하게 고트가 양념을 가하고 있었다. 백 번 말하는 것보다 직접 한번 보는 것이 낫다는 말이 있다. 인간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병법이었다.

  고트가 앞장서서 가자 그 뒤에 있던 귀족들이 코워드 후작과 대화를 나누었다.

  “후작님, 혹시 위험한 것 아닙니까?”

  “그렇지는 않을 걸세. 상황을 보니 피해를 막아내기는 한 것 같으니 말이야.” 

 제롬르 백작을 위시한 귀족들은 조금 불안했다. 전쟁의 참화를 직접 겪어보지 않은 귀족들이 대부분이었다. 병사들의 목숨이야 죽어도 어절 수 없지만 자신들의 목숨은 아니었다. 

  고트는 뒤에서 귀족들이 수군거리는 말들으 들었다.

  오러 익스퍼트 중급을 넘어서려고 하는 고트였다. 가르딘을 만나면서 급상승 하게 되었다. 이제는 웬만한 기사들은 고트의 상대가 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고작 이 정도로 겁을 먹다니!’

  한심해서 말을 섞을 가치도 느끼지 못하는 고트였다. 귀족들은 저마다 자신의 목숨만을 귀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귀족들의 한심한 자태에 구역질이 났다. 그에 반해 가르딘은 어떠한가! 모든 귀족들의 표상이라고 생각할 만큼 대단했다. 고트에게 우상이나 다름이 없었다.

  ‘가끔 이해 못할 행동을 하시기는 하지만 그 정도의 흠은 아무것도 아니지. 암!“

  고트는 저택으로 향하는 대로를 따라 이동했다. 대군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영지민들이 집들을 다시 보수하려다가 대군을 보고, 약간은 겁을 먹은 듯이 회피하고 있었다. 그들 모두 참혹한 참상을 겪었기에 불안감이 크게 작용했다.

  병력은 멈추지 않고 대로를 뚫고, 가르딘의 저택에까지 도착했다. 가르딘의 저택은 반 이상이 부서져서 형태가 제대로 유지되어 있지도 않았다. 얼마나 큰 전투가 있었기에 저렇게 됐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가르딘 백작의 저택이 맞는 건가?”

  “그럿습니다. 이번 전투에서 놈들이 영주님의 저택을 집중적으로 노렸습니다. 사실 헥토르 왕국은 영주님의 가족을 인질로 잡으려고까지 했습니다.”

  “무사는 한 건가?”

  “다행히 무사하십니다. 하지만 헥토르 왕국의 저열함은 마땅히 비판받아야 합니다. 영지를 함락시키지 못한다고 인질을 잡으려고까지 하다니 그 일로 인해 영주님이 당하신 것을 생각하면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습니다. 아!”

  고트는 짐짓 실수했다는 듯이 말꼬리를 흐렸다.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한 것 같았다. 코워드 후작은 고트의 표정과 말을 놓치지 않고 주시했다. 

  ‘영주가 부상을 당했나 보군.’

  이제야 확신이 섰다. 영주가 왜 마중을 나오지 못하고 있었는지 말이다. 오러 마스터라고 해도 인간의 몸은 한계가 있다. 아무리 강한 몸도 부상을 당하면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 인지상정이었다. 

  ‘어설프군.’

  감추려고 노력한 것 같지만 이미 알아챘다. 코워드 후작은 고트의 어수룩함을 비웃었다. 제법 노련한 기사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변방의 기사들이라 그런지 경험이 부족하고, 역량이 딸리는 것 같았다.

  “어서 가세.”

  “알...겠습니다.”

  고트의 목소리가 조금 떨려 왔다. 고트의 옆으로 같이 온 기사들이 눈치를 주었다. 왜 그런 말을 했냐는 듯한 질책성 짙은 표정이었다. 고트도 미안한지 동기들을 바라보지 못했다.

  고트는 말없이 코워드 후작을 북쪽 전선으로 안내했다.

  가르딘은 막사 밖으로 나와서 병사들을 시켜 발리스타를 치우도록 명령했다. 발리스타의 역할은 지금까지만으로도 충분했다. 타 귀족들에게 발리스타를 보여주면 귀찮은 일이 발생할 것이다. 겉으로 보나 위력으로 보나 가르딘이 보유한 발리스타는 굉장했다. 이처럼 대단한 발리스타를 어디서 가져왔냐고 하면 상당히 귀찮아 질 것이 분명하다. 사실을 말하려면 드워프까지 까발려야 한다. 귀족들에게 드워프는 귀중한 자산이 될 수 있다. 드워프의 존재 자체가 가르딘에게도 중요한 문제였다.

  “일단은 능선밖으로 치운 다음 위장해서 안 보이게 만들어.”

  가르딘이 고개를 들어 해를 잠시 보았다.

  해는 시간을 알려주는 좋은 지표다. 해가 움직인는 시간에 따라 시간의 흐름을 알려준다.

  “이제 올 때가 됐군.”

  능선에서 내려온 가르딘은 병사들을 가로질러 막사로 향했다. 코워드 후작이 왔을 때 기르딘은 막사 안에 존재해야 했다.

  가르딘은 지나가면서 병사들의 상태를 체크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초롱초롱한 눈들이 섞은 오크눈이 되어 있었다. 피로에 지쳐 있는 병사들은 한곳에 기대어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좋군.’

  일부러 하는 연기보다는 실제로 하는 연기가 보다 리얼한 것이 사실이었다. 병사들의 피로가 극에 달해 보였다. 가르딘은 동기들에게 상황을 병사들에게 설명하도록했다. 이미 기력을 상당히 소진한 병사들이라 전투에 돌입하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이 상황에서 헥토르 왕국이 침입하면 큰일이지만 가르딘은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헥토르 왕국은 반나절을 더 기다릴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주지는 시켜놨지.”

  “전투로 인한 피로라고 모두 말을 하게 될 거다.”

  “너희들은 돌발상황에 대비해.”

  “너나 확실하게 해라.”

  가르딘은 동기들과 마지막 확인을 하고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막사 안으로 들어온 가르딘은 바닥에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천룡무상신공을 약간 역으로 회전시켰다. 심법은 역으로 운기를 했을 때 폭발적으로 상승하다가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주화입마를 당하게 된다. 마공이라면 그 힘을 이용하여 더욱 큰 힘을 얻을 수 있지만 천룡무상신공은 신공이었다.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크음! 약간만 돌리고.”

  순환했던 기운이 역으로 회전하자 가르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핏기가 사라지자 병자의 얼굴로 돌아서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서 가르딘은 얼굴로 올라오는 혈류의 흐름을 점혈하여 약화시켰다.

   “이 정도면 됐나!”

  가르딘은 가부좌를 풀고, 막사 안에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피곤해서 쉬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겉으로 보인 모습을 보니 곧 쓰러져서 죽을 것 같았다. 창백한 모습이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아 보였다.

  “아! 아아! 아앙! 아아!”

  “허억! 허! 허헝! 허잉?”

  “신음은 조금 이상하군.”

  아픈 사람이니 신음을 내는 것도 연습해 보는 가르딘이었다. 하다 보니 조금 머쓱해지는 가르딘이었다. 꼭 밤일 하는 소리 같아서 라이나가 갑자기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요즘에 라이나와 잠자리를 갖지 못했다.

  ‘이런 불행이!’

  라이나와 행복한 밤일을 하지 못하는 것이 모두 헥토르 왕국 때문이었다. 원인을 따지면 코카 제국이기는 했다 코카 제국이 전쟁을 일으키지만 않았어도 자신은 따뜻한 방에서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전쟁만 끝나 봐 내 기필코 둘째를!”

  예전 카론마이어 공작의 말처럼 자신의 건재함을 만천하에 알릴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서 노력을 마다하지 않을 가르딘이었다.

  따그닥! 따그닥!

  막사의 밖으로 꽤 먼 거리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가르딘은 그 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짐작했다.

  “왔군.”

  고대하며 기다린 인물이 연극의 중심으로 들어왔다. 이제까지 연출한 것대로 차근차근 진행을 해나가야 할 상황이 다가온 것이다. 여러 사람이 한 사람 바보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니다. 자신이 멀쩡하면 무엇하랴! 다른 사람들 모두가 속이는데, 결국 속을 수밖에 없다.

  코워드 후작이 발키리 영지군이 자리를 잡은 진영으로 진입했다. 코워드 후작은 영지군이 생각보다 많은 것을 보고 이상함을 느꼈다. 발키리 영지의 병력은 2만이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보다 많았다.

  ‘그렇군.’

  병력을 모으기 휘해서 무리했다고 예측했다.

  병사들의 모습을 보니 상당히 지쳐 있는 모습이었다.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 상당한 격전을 치른 것으로 보였다. 지금부터 다시 전쟁을 치르면 모두 전멸할 분위기였다.

  “대단한 격전이 있었던 모양이군.”

  하루 이틀 쉬어 가지고서는 절대 전투를 다시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님을 파악한 코워드 후작이었다.

  “저기 중앙에 이쓴 막사가 영주님의 막사입니다.”

  “알겠네. 내가 직적 가서 보지.”

  코워드 후작이 말에서 내려서 가르딘이 있는 막사로 향했다. 그 뒤로 제롬드 백작, 버루거 자작, 비린스 자작, 스타인 남작이 차례로 줄지어서 움직였다. 대장의 뒤를 따르는 꼬봉들의 모습들어 보였다.

  가르딘의 막사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확인한 고트가 동기들을 보았다.

  “어때 내 연기가!”

  “굿!”

   대단했다는 찬사를 보냈다.

  “너희들의 표정 연기도 대단했다!”

  서로를 칭찬한 발키리기사단의 고참기사들이었다. 이어지는 클라이맥스는 영주님이 해줄 것으로 기대가 되었다.

  코워드 후작과 귀족들이 막사 안으로 들어가자 가르딘이 앉아 있었다. 가르딘은 바로 일어나려고 하다가!

  비틀!

  털썩!

  고통스러운 표정의 가르딘이 균형을 잃고 다시 의자에 앉아 버렸다. 피부가 창백하고 입가에는 비릿한 혈향이 감돌았다.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연발하게 만들었다. 어디서 이만한 연기자가 지금 나타났는지 주연배우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무리해서 일어나지 말게.”

  “아닙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이렇게 먼 길을 와주신 코워드 후작님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고생이 많았나 보군. 그런데 부상을 당했나?”

  “괜찮습니다. 약간의 부상입니다. 조금만 쉬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절대 일어설 수 있을 것 같지 않아따. 코워드 후작은 가르딘이 만용을 부린다고 보았다. 일어서지도 못하면서 싸우려고 하다니 역시 기사출신의 영주다웠다. 

  “전방의 상황은 어떤가?”

  “적군은 대부분 전력이 손실되었습니다. 30만 대군이었던 것이 이제는 10만도 안 됩니다.”

  “헉!”“

  코워드 후작과 귀족들 모두 놀라고 말았다. 적들을 막아낸 것이 아니라 거의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힌 것이 아닌가! 고작 3만의 병력으로 그 정도의 전과를 올리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믿을 수가 없구나!”

  만약 사실이라면 이 전쟁은 이긴 거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귀족들의 얼굴이 놀람에서 탐욕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이길 수 있는 전쟁을 하게 됐다는 것에 만족했다. 이번 전쟁에서 이긴다면 반드시 큰 공을 세울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코워드 후작은 자초지동을 들어보기로 했다.

  “어떻게 된 건가?”

  가르딘은 잠시 망설였다. 대답을 하는 것이 힘든 것이 아니라 말하는 것으로 인해 자신의 공이 적어질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사실대로 말하게. 전장의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어떻게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가!”

  “사실은 이미 헥토르 왕국의 전력은 상당히 손실된 상태였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저희도 오늘에서야 알게 됐습니다 .헥토르 왕국에서 이곳으로 오는 길목에는 식수로 사용할 수 있는 곳이 한곳밖에 없습니다. 그 물길은 다크랜드에서 흘러나오는 물줄기였습니다. 헥토르 왕국은 다크랜드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마시고, 대부분 병력이 독에 중독 된 것 같았습니다. 물론 죽을 정도의 독은 아니었습니다. 전투를 수행하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음!”

  “그런데 왜 구이 헥토르 왕국이 전투를 수행한 거지?”

  “그건 아시다시피, 코워드 후작님 때문입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인가?”

   “헥토르 왕국의 입 장에서는 시간이 없었습니다. 카이로만 제국의 지원군이 오기 전에 제국의 후방을 뒤흔들어야 했습니다. 제가 지키고 있는 이곳 발키리 영지의 경우 고작 2만이 넘지 않는 병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무리하게 진격을 하다가 결국 우리의 작전에 걸려들어 피해를 본것입니다.”

  “호오!”

  코워드 후작의 입가에 미소가 돌았다. 다른 귀족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헥토르 왕국의 병사들에게 일어난 재앙으로 인해 천재일우의 기회가 가르딘 백작에게 찾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 말해 가르딘 백작이 뛰어나서라기보다는 운이 좋았던 것뿐이었다.

  “그보다 제국의 두 신성은 어디 갔는가? 보고 싶구먼.”

  “그...게.”

  가르딘은 또다시 말을 망설였다.

  “이곳은 이제 안전한 것 같아서 발렌타인 성으로 보냈습니다.”

  가르딘이 말투를 보니 혼자서 공을 독차지하려고 스필언과 미토스를 보낸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게 만들었다.

  ‘혼자서 공을 독차지하려고 했구먼. 하지만 그렇게는 안되지.;

  전쟁이 지독하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자신이 이끌고 온 20만 대군이라면 적들을 모두 섬멸하고도 남았다. 이번 전쟁이야말로 자신의 입지를 다질 수 있는 기회였다. 절대로 놓칠 수 없었다. 기회가 찾아왔는데, 그냥 모른 척 지나간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가르딘은 귀족들의 눈에 번들거리는 탐욕을 읽었다.

  ‘병사들 생각은 안 하나 보지.’

  가르딘도 귀족이짐나 저런 구린 귀족들이 있다는 것에 불만이 많았다.

  “이제까지의 전투를 보니 스필언과 미토스의 역할인 컸겠구먼.”

  “그...건!”

  변명하지 못하는 가르딘이었다.

  “역시 예상대로 대단한 공자들이군!”

  코워드 후작은 점점 자신의 짐작이 맞아 들어간다고 보았다. 이번 전쟁의 모든 것은 가르딘이 아니라 스필언과 미토스가 총지휘를 했다고 미덩ㅆ다. 염치없는 가르딘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말을 거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네는 부상이 심하니 전쟁을 수행하기 힘들겠군.”

  “그렇...지 않습니다.”

  “어혀! 일어서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전투를 치르겠다는 것인가! 또한 자네의 병사들도 상당히 지쳐 있는 것 같으니 모두 후방으로 빼서 내 부대를 지원하도록 하게.”

  “그...건 안됩니다!”

  가르딘의 목소리가 격앙되었다. 다 이긴 전투를 빼앗긴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기에 가르딘은 완강하게 저항하였다.

  그러다가 상처가 도졌는지.

  “윽!”

  주르르륵!

  핏물이 입술을 타고 흘러내려왔다. 화를 참지 못하고 분해하는 가르딘의 모습이었다. 이 얼마나 처절한 표정과 행동인가! 리얼리티가 극에 달해 있었다.

  “자네의 결정으로 인해 병사들이 모두 전멸한다면 그 책임을 자네가 모두 져야하네. 그래도 하겠는가!”

  코워드 후작의 언변이 강해졌다. 병사들의 생명을 담보로 결정하는 것은 귀족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 강조했다. 어찌 보면 참다운 귀족의 표상이라고 할만 했다.

  가르딘은 마지못해 고개를 수그렸다. 기사로서의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 같았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뒷일을 부탁드립니다.”

  “자네의 노력을 수포로 돌리지 않겠네!”

  “쌍처를 회복하는 대로 전투에 참여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우선은 상처를 먼저 돌보게.”

  위로의 말을 하는 코워드 후작이었다.

  가르딘이 물러서자 귀족들의 표정이 환하게 변했다. 가르딘이 회복하기 전에 전투를 모두 끝내버리면 이번 전쟁의 모든 공은 자신들이 얻을 수 있게 된다. 설사 다 얻지 못해도 제국을 위해 큰 일을 한 것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코워드 후작의 오랜 숙원이 있었다. 그의 가문대대로 한번도 올라서지 못한 지위.

  즉 공작의 반열에 들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코워드 후작의 집안은 검을 수련하는 집안이 아니었다. 그저 지방의 대규모 영지를 소유한 귀족일 뿐이었다. 검을 숭상하는 카이로만 제국에서 후작의 작위를 얻은 것만 해도 대단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한 번도 올라서지 못한 공작의 지위를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공작이란 말인가!’

  탐욕으로 일그러진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무섭고, 잔인한가를 보여주었다. 

  가르딘은 막사 밖으로 나가는 코워드 후작과 귀족들의 모습을 보며, 비릿한 조소를 보냈다. 후방에서 자기 살길이나 도모한 귀족들 주제에 전쟁을 너무 우습게 보고 있었다. 병력의 우위가 확실하다고 해서 전쟁에서 반드시 이기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까지 가르딘이 해온 전투를 봐도 확실하게 알수 있는 일이었다.

  ‘많이 죽겠군.’

  가르딘은 도와줄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죽음에 대한 책임은 당사자가 지는 것이다. 애꿎은 병사들의 죽음이 마음이 아프지만 그들을 위해서 자신의 안위를 위험에 노출시키고는 싶지 않았다.

  막사 안으로 필리언이 들어왔다.

  가르딘 대신에 유타와 갈라가 책임을 지고, 귀족들에게 전장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귀족들에게 원하는 대답만을 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어떻게 됐어.”

  “계획 대로지 뭐.”

  “역시 예상범위를 벗어나지 않는구나.”

  “그래도 전쟁은 이길 테니 걱정하지 마라.”

  “그렇겠지.”

  헥토르 왕국의 정예병의 체력과 사지가 원래 대로였다면 2배의 차이가 난다고 해도 코워드 후작이 이기기 힘들다. 하지만 헥토르 오아국은 사기가 급격히 저하된 상태다. 코워드 후작의 원군이 오합지졸이기는 해도 수적인 열세를 헥토르 왕국은 극복하기 힘들 것이다

  “코워드 후작은 자료에 적힌 그대로 인 것 같으냐?”

  “겉으로는 대의를 위한 것 같지만 눈빛만은 속일 수 없지. 탐욕으로 번들거리는 것이 뻔히 보인다.”

  “제국에 그런 귀족들이 있다니, 내가 황제면 모조리 다 싹을 잘라 버릴 텐데.”

  “그래 봤자지.”

  “뭐가 그래봤자야!”

  가르딘은 필리언의 말을 무시해 버렸다. 절대 실현될 수 없는 허망한 사상을 가지고 있따고 비웃어 주었다. 

  “결국 할 수 없는 거잖아.”

  “왜 못해, 내가 황제였다면 할 수 있어.”

  “그래서 안 되는 거야. 넌 황제가 될 가능성이 제로니까.”

  “뭐야!”

  “사실이잖아!”

  “너는 너무 현실적이야. 사람이 로망이라는 것이 있어야지.”

  “그래, 로망이라! 내가 한번 밖에 나가서 말해 주랴! 필리언이 황제였으면 코워드 후작은 바로 모가지라고 말이야!”

  “뭐......!”

  그 즉시 입을 닫는 필리언이었다. 만약 그런 말을 했다가는 황제 모욕죄라는 대역죄에다가, 역모죄까지 받을 수 있게 된다. 사실 농담이기는 하지만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보다 너 얼굴이 왜 그렇게 창백해졌냐? 마치 진짜 병자같잖아. 너 진짜 부상당한 거냐?”

  가르딘의 모습은 진짜 병자 같았다. 필리언은 자신의 눈이 잘못 되었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일부러 오러 심법을 영그올 조금 돌렸지.”

  “헛!”

  “이런 미친놈!”

  필리언이 미친놈이라는 소리를 할만 했다. 오러 심법은 세밀한 조절과, 정해진 통로로 운용을 해야 하는 것이 기본적인 사항이다. 그런 오러 심법을 역으로 돌리다니! 그건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였다. 오러 역류로 인한 오러 플로전에 걸릴수 있었다.

  “잘못하다 진짜로 오러 플로전에 걸리면 어떻게 할 생각이었냐!”

  오러 플로전은 오러 심법이 폭주하여 모든 오러가 굳어 버리는 현상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주화입마와 같은 말이라고 하면 뜻이 얼추 맞는다.

  “걱정 마라, 적당히 했으니까.”

  “하여간 네 미친 짓은 인정해 주마!”

  “연기를 하려면 나처럼 실감나게 해야지.”

  “그래 네 똥 무지하게 굵다. 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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