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5화 (36/93)

   @@[ 제6장 공을 탐하는 귀족들@@]

  가르딘은 헥토르 왕국의 사생결단식 공격을 정면대응하지 않고, 또다시 발리스타의 궁수부대를 이용해서 상대를 하였다. 우문진을 적절히 활용하여 적들을 끊임없이 지치게 만들었다. 소모전으로 가면 갈수록 불리하게 작용하는 헥토르 왕국이었다. 가르딘의 짜증나고 지지부진한 전투술에 의해서 서서히 말라가고 있었다.

   “발키리 영주! 네 이놈!”

  헥토르 왕국의 사이너스 국왕이 소리를 질렀다. 분노가 극에 달해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딱히 방법이 없기에 화만 늘어날 뿐이었다. 소리를 지른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국왕의 분노는 병사들에게 오히려 사기 저하를 가져 올수 있었다. 군주가 냉정을 잃었는데 병사들이 냉철하게 행동 할 리 없지 않은가!

  병사들이 지쳐 있는 것이 사이너스 국왕의 눈에 들어왔다. 한 번 소리를 질렀더니 화는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문제는 다음 대처였다. 안개 마법진을 벗어나지 않는 한은 도저히 어떤 방법도 생각하기 어려웠다.

  “국왕 전하!”

  “왜 그러냐?”

  “안개로 가려진 곳 중에서 길이 보이는 곳이 생겼습니다.”

  “그렇다면 그곳으로 가면 되지 않는가?”

  “문제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발키리 영지의 반대편인 것 같습니다.”

  발키리 영지의 반대편.

  역으로 말하면 공격하는 곳이 아니라 지금까지 걸어왔던 곳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후퇴는 없다!”

  “우리 군의 대부분이 흩어졌습니다. 그들도 그 길을 발견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멜버른 후작의 말에 사이너스 국왕의 눈빛이 흔들렸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5만의 병력만 남게 될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다른 병력들이 뒤로 후퇴했을 후도 있다는 뜻이 되었다.

  “우선 뒤로 후퇴하고, 다시 군대를 재정비하고 방법을 마련하는 것이 아늘 것 같습니다.”

  현재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모색한 멜버른 후작이었다.

  사이너스 국왕은 멜버른 후작의 말이 맞다는 것을 알지만 선뜻 명령을 내리지 못했다. 이성적으로 안 된다는 것을 알아도 감정이 발키리 영주를 잡아 죽이라고 하고 있었다.

  “후퇴한다.”

  분노로 가득 찼던 사이너스 국왕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지 않았다. 그로서는 하고 싶지 않은 결정이었다.

  사이너스 국왕의 명이 떨어지자 멜버른 후작이 재빠르게 병력을 정비해서 마법진에 생긴 길을 따라 벗어났다.

  안개 마법진을 빠르게 벗어나자 먼저 후퇴를 한 병력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국왕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사이너스 국왕이 이끄는 부대가 나오고 난 후 한참이 지나자 대부분의 병력이 안개 마법진을 나온 것으로 파악이 되었다. 시간이 이 정도로 흘렀는데 나오지 않았다면 이미 전멸 당했을 것이다.

  “빠져나온 병력수가 얼마나 되는가?”

  사이너스 국왕의 물음에 차마 대답할 수 없었던 멜버른 후작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결과는 참혹 그 자체였다.

  “10만 명 정도입니다!”

  “뭐시라!”

  사이너스 국왕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러면서 뒷골을 잡았다. 피가 역류하는 느낌에 의해 정신이 아찔해지는 순간이었다.

  30만 대군을 이끌고 당당하게 출병한 후 지금까지 얻은 소득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잃은 병력은 20만이나 되었다.

  지금 당장 쓰러지지 않은 것이 용한 사이너스 국왕이었다.

  그는 물러설 수 없었다. 이대로 물러서기에는 당한 것이 너무 많았다.

  “병력을... 정비하라. 그리고 방법을 마련해라.”

  또다시 방법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발키리 영주와의 대결로 인해 매번 같은 상황. 같은 말을 반복하게 된 사이너스 국왕이었다.

  멜버른 후작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을 하며 국왕의 면전에서 물러났다.

  헥토르 왕국군이 운무진을 빠져나갔다.

  우연히 길이 만들어져서 빠져나갈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이 모든 것이 가르딘의 계략이었다. 끝까지 정면대결을 하지 않는 가르딘이었다. 사람이 얼마나 치사하고 야비해질수 있는 가를 보여주었다. 결국 전쟁에서 치사고, 나발이고 간에 이기면 장땡이라는 논리를 철저히 지켰다.

  가르딘과 파멜라가 운문진을 확인했다.

  파멜라는 가르딘의 지시에 따라 운문진의 한 축을 무너뜨렸다. 그러자 헥토르 왕국군의 후방에 운무진이 옅어져서 갑자기 생기게 되었다.

  앞뒤로 꽉 막힐 경우 전진하게 될 수밖에 없겠지만 후방에 길이 있는 상황에서 굳이 앞으로 전진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인간의 심리를 이용한 전술이었다. 지칠 대로 지친 헥토르 왕국군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밖에 없었다.

  “병력 수는 제법 줄었으니 조금 더 시간을 끌다가 운무진을 해체해.”

  “헥토르 왕국이 물러나는 건가요?”

  “아니, 물러서지 않을걸.”

  “그럼 위험한 것 아니예요!”

  파멜라는 진법 없이 정면대결은 아직도 힘들다고 생각이 되었다.

  “걱정마라. 원군이 오고 있잖아.”

  “아! 그렇군요!”

  지금 당장 물러서게 되어도 결국은 같은 결말을 보게 된다. 그걸 알면서 물러설 사이너스 국왕이 아니어ㅤㅆㅏㄷ. 어떻게 해서든 방법을 구상하며 시간을 보낼 것이다. 가르딘으로서는 놈들이 물러서지 않는 게 오히려 나았다. 이대로 물러서면 전쟁을 쉽게 이긴 것이 된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쉽게 끝낼 수 없었다. 지금까지의 공적을 모두 상쇄시키려면 관중이 있어야 했다. 관중이 지금 오고 있는데 벌써 연극이 막을 내리면 서운해할지 몰랐다. 관중에게 비싼 표를 팔아야 할 의무가 있었다.

  “나는 잠시 영지에 가볼 테니 급한 일이 있으면 통신구로 연락해라.”

  “알겠어요.”

  따그닥!따그닥!

  말을 타며 유유자적하게 움직이는 부대의 이동이었다.

  선두를 유지하고 있는 귀족들의 움직임이 느리기에 부대의 이동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었다.

  부대는 카이로만 제국의 변방 일대의 병력을 모은 것이었다. 변방 영지에 있는 병력을 모두 긁어모았기에 병력 수는 제법 되었다.

  병력의 규모로 보면 왕국의 부대와 맞먹었다. 최소 20만명은 되었다.

  카이로만 제국 후방지원 업무를 맡고 있는 귀족들에게 헥토르 왕국의 침입은 날벼락과 같았다. 그들은 전쟁과는 거리가 먼 인물들이었다. 후방에서 제국 전쟁의 병참을 맡는 것이 그들의 역할일 뿐이었다. 사실 전쟁에 나가서 승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위험한 일이기에 나서려고 하지 않았던 귀족들이었다. 그들은 이긴다는 확신이 설 때까지 기다렸다가 공을 탐하려고 기회를 보고 있는 살쾡이 같은 성품을 가지고 있었다. 귀족으로서 온갖 권리와 명예를 누리면서 정작 책임을 지지 않는 무책임한 인물들이다. 카이로만 제국의 대부분은 귀족은 명예와 책임을 고루 갖는 편이지만 그렇지 않은 무리가 이번 원군에 포함이 되어ㅤㅆㅏㄷ.

  원군의 수장인 코워드 후작은 전쟁에서 이기는 것보다 자신의 목숨이 중요하다다고 여기는 인물이었다. 주변 상황을 잘 판단하고, 시세에 편승해서 후작까지 올랐지만 정작 후작의 막중한 임무를 제대로 감당하지 않고 있었다. 그는 이번 전쟁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 예상하고 일부러 병참을 지원했다. 그런데 막상 전쟁이 시작됐을 때 헥토르 왕국의 침입이 시작된 것이다. 어쩔 수 없었다. 병력을 모아서 원군을 해줘야 했다. 황국에서 명령이 내려온 이상 이행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코워드 후작님! 조금만 더 가면 발키리 영지입니다.”

  “결국 왔군.”

  예정된 시간보다 5일이 더 걸렸다. 별로 싸우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자신들이 지원을 해봤자 소용이 없다고 판단했다.

  병력수가 20만이 되기는 하지만 모두 오합지졸이었다. 이런 병력을 가지고 30만 대군을 상대로 싸울 자신이 별로 없었던 것이다. 정 안되면 헥토르 왕국에 편입할 생각까지도 가지고 있었다. 20만 대군을 가진 자신이 항복하게 되면 헥토르 왕국으로서는 손해가 아니었다. 귀족의 지위만 보장된다면 충분히 생각을 해볼 만했다.

  그런데 발키리 영지가 꽤 잘 막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렇게 된 이상 원조를 반드시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발키리 영지의 영주가 오러마스터입니다. 너무 늦게 왔다고 말을 할까 두렵습니다.” 

  “흥! 그래 봐야 백작이다. 아무리 오러마스터라고 해도 내 앞에서 그런 말을 하지는 못할 걸세. 걱정하지 말게.”‘

  코워드 후작은 호언장담했다. 제국의 법상 지위가 낮은 귀족이 상위 귀족을 상대로 도발 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코워드 후작의 말에 모든 귀족들이 안심했다.

  코워드 후작을 따르는 귀족들은 제롬르 백작, 버루거 자작, 비린스 자작, 스타인 남작이었다. 제국의 전선에서 용병을 과시하는 귀족들과는 질적으로 차이가 나는 귀족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살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하는 자들이었다. 제국의 재상인 바이멘 후작이 그들을 굳이 전투에 참여시키지 않았던 것도 이들의 행동을 파악하고 있다는 말이 되었다.

  ‘가르딘 카이로스라!’

  어떤 인물인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코워드 후작이 장담하기는 했지만 실제적으로 오러마스터의 지위는 계급이 높다고 해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시각 발키리 영지의 인포메드 지부는 한 사람의 방문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테이란이 이곳에 와서 가장 집중적으로 알아내야 할 인물이 방문했다. 발키리 영지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 중에서 알아내지 못한 것이 바로 이 사람이었다.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헥토르 왕국을 막아내고 있는지 하나도 알아내지 못했다. 정체불명의 인물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았다.

  “무슨 일이신가요?”

  “내 영지에서 내가 가지 못할 곳이 있던가.”

  발키리 영지의 영주 가르딘이 테이란 지부에 방문한 것이다. 테이란으로서는 갑작스러운 방문에 긴장하고 있었다. 왜 나타났는지 파악하기 힘들었다. 헥토르 왕국과의 전쟁으로 한창 바쁜 사람이 전쟁 중에 이곳에 온다는 것 자체가 이해하기 어려웠다.

  가르딘의 표정만 보면 전쟁을 치르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다급함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여유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이게 어떻게 불리한 전쟁을 치르는 사라의 얼굴인가!

  “손님이 왔는데 차도 없나?”

  “아! 죄송합니다!”

  테이란이 급히 가르딘에게 차를 대접하기 위해서 인포머를 불렀다. 인포머에게 차를 가져오라고 했다.

  “차가 괜찮군.”

  “재스민 차가 마음에 드시나 보군요. 리베시안 차와 쌍벽을 이룰 정도로 맛이 뛰어나지요.”

  “그렇군.”

  테이란은 한가한 가르딘의 태도에 괜히 좌불안석이었다.

  전쟁 중에 차나 마시며 인포메드 지부에 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무언가 이유가 있을 것이 확실했다. 그럼에도 급하게 서두르지 않는 가르딘이었다.

  차를 반잔 정도 마신 가르딘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

  “지금 오고 있는 원군의 수장인 코워드 후작과 그 주변 인물들에 대해서 알려줬으면 좋겠어.”

  원군으로 코워드 후작이 온다는 것은 가르딘도 알고 있었다. 다만 코워드 후작의 성격과 그 주변 귀족들의 인물됨을 알 수 없었다. 들리는 것만으로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따라서 정확한 정보가 필요했다.

  맨 처음 왔을때 각 영지의 귀족 정보에 대해서는 특급으로 다룬다고 테이란이 말을 해놨다. 하지만 주변 귀족의 성격이라면 특급 정보 중에서도 알리기 곤란한 정도는 아니었다.

  “곤란한가?”

  “아니예요. 그런데 어느 정도나 원하시는 거예요?”

  “코워드 후작의 인물됨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고 싶군.”

  “알겠어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테이란의 인포메이드에서도 원군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었다. 각 영지를 거치면서 오고 있기에 정보는 매일 이곳으로 보내졌다. 그에 따라서 코워드 후작을 비롯한 원군의 귀족들에 대한 정보도 모아놓은 상태였다. 

  테이란은 가르딘이 그들의 정보를 원하는 것을 그다지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원군으로 온다고 해도 그들에 대해서는 알아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아무런 정보도 업 ㅅ이 움직이는 것보다 이처럼 신중하게 행동하는 것이 나은 판단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역시 보통이 아냐.’

  테이란은 가르딘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전쟁과 동시에 이후의 일까지 살피려고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테이란은 지부의 안쪽에 들어가서 서류를 가져왔다. 서류에는 코워드 후작과 주변 귀족에 대해서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여기 있어요.”

  “고맙군.”

  말없이 가르딘은 서류를 읽어나갔다.

  테이란은 이미 읽어본 것이었다. 원군으로 오는 코워드 후작은 그다지 좋은 인물이라고 할 수 없었다. 전형적인 귀족이기는 하지만 인간 자체가 야비한데다가 자신을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자였다. 가르딘에게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코워드 후작을 조심하세요. 목적을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어요!”

  가르딘도 일고 있어서 알고 있었다. 적힌 내용만 보면 보는 즉시 죽여버리고 싶은 심정이 들 정도로 못된 짓만 골라서 한 놈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가르딘은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아주 훌륭한 귀족이군.”

  “예? 그게 무슨? 말도 안 돼요!”

  “아니! 아주 훌륭해. 내 이렇게 훌륭한 귀족은 처음 봤어.”

  좀 전까지 가르딘이 대단해 보였던 테이란도 순간적으로 어리둥절했다. 가르딘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따.

  그에 반해 가르딘은 아주 적당한 살쾡이를 발견한 듯한 미소를 지었다.

  ‘먹이를 주면 바로 떨어진 것도 주워 먹으려고 달려들겠어. 크크크!’

  아주 제대로 된 귀족이 왔다는 데에 만족한 가르딘이었다.

  가르딘 전기 6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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