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발키리 영지의 준비@@]
발키리 영지는 여전히 활기가 넘쳤다. 일전에 병사들의 이동으로 인해 소란이 있었지만 그저 단순한 영지순찰이라는 말로 무마가 되었다. 영지에 불순인자가 있을 수 있기에 시험 삼아 했다는 말이 설득력이 있었던 것이다.
밀과 고구마의 소출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영지에 필요한 시설이 점차로 보강이 되었다. 농민들의 입장에서 세금도 그다지 무리하게 걷지 않았다. 세금은 제국의 법률이 정하는 규칙에 따라 정확하게 내도록 하고 있었다. 물론 세금을 내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혹독하게 처벌했다.
돈이 있으면서 내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확실하게 보여 주었다.
돈이 없다면 그에 따른 노역에 동원이 되어 값을 충당하도록 마련을 해두었다.
가르딘은 남겨진 돈을 군사훈련을 위한 목적으로 전환시켰다. 진법설치와 병사훈련소가 지어지면 되도록 영지의 발전을 위해 사용할 생각이었지만 계획을 대폭 수정했다.
군사력증강을 위한 방안으로 가장 우선시 되는 것이 병력이었다. 2만의 수비병에서 최소 1만을 더 보강하려고 계획을 세웠다. 인구가 20만밖에 되지 않는 곳에서 병력이 3만을 넘으면 재정적으로나 인적, 자원적으로 무리가 따를 수 있다.
그렇기에 가르딘은 노예들을 사와서 노예병으로서의 역할을 하도록 했다. 다크 랜드 앞 평야에 개척하던 농지의 노예들도 모두 노예병으로 모집해 놓은 상태다.
가르딘은 드워프들을 만나러 이동을 했다. 안젤리카를 대동하여 공간이동으로 바로 드워프마을로 갔다. 드래곤의 레어를 손보는 드워프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드워프들을 마을을 만들고 있는 듯했다. 이미 거의 다 만들어져 있어 대장간에서는 쇠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탕! 탕! 탕!
시끄러운 소리임에도 불구하고 규칙이 있으며, 청아한 쇳소리가 운율을 탔다. 쇳소리가 아름답게 들리기는 처음인 가르딘이었다. 그러면서 역시 드워프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워프가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신기한 일이였다.
촌장인 루인돌프가 가르딘과 안젤리카를 보았다.
“어서 오시오.”
“안녕하십니까! 마을이 참 보기 좋습니다. 아담하면서도 단단함이, 적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해서 건물 배치에 신경을 쓴 것 같습니다.”
“오오!”
루인돌프가 가르딘의 눈썰미가 놀랍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드워프 마을은 이중이 아니라 삼중으로 집이 둘러쳐져 있다. 적들이 침입할 수 있는 장소를 기점으로 함정을 만들어서 효과적으로 방비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전에 철에 대한 식견도 대단했었는데, 집의 구조를 파악하는 능력까지 가지고 있는 듯했다. 천천히 파악한 것도 아니고 그저 둘러보는 것만으로 파악하는 것은 보통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가르딘은 다른 곳은 보지 않고 한곳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고구마가 쌓여 있었고, 그 옆으로 고구마줄기도 보였다.
“고구마가 참 맛이 좋지요.”
“그렇네. 아이들이 무척이나 좋아한다네! 철 기술 말고 이렇게 좋아하는 것도 드물지.”
“아이들에게 영양가 있는 식량을 주게 되어서 다행이네요.”
“전에 준 밀을 생각하면 더욱 고맙게 생각하네.”
“아이들이야말로 미래의 재산이지요. 한데 전에 말하시길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물론이네, 어떤 것이든 다 들어줄 생각이네.”
“역시 시원하신 분입니다. 그럼 속시원하게 말해 보겠습니다.”
가르딘이 필요한 것은 무기였다.
창기병에 사용될 무기와 갑옷이 필요했다. 창기병의 경우 전신에 강력한 방어아머를 착용해야 한다. 적들이 화살 공격을 할 때를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말들까지도 방어아머를 착용해서 방비를 해야 했다.
다음으로 가르딘의 요구는 궁병대를 위한 활과 화살이었다. 어차피 수비병 역할을 할 당시에 화살을 많이 쏘아 본 병력이 있었다. 그들 중에 뛰어난 자들을 특화시켜 전문적인 궁병대로서 사용하려고 한다.
대전의 공격에서 가장 유효한 것이 활이다. 활은 피하기도 어려울뿐더러 막는 것도 쉽지 않다. 가르딘은 궁병대를 특화시키면서 필요한 것이 활이라고 생각했다. 보통의 활이 아닌 강화된 활이 필요하다. 일반적이 활보다 몇 배 빠르고, 강력해야 했다.
“가능하겠습니까?”
“만드는 것은 문제가 없네. 이 정도도 만들지 못하면 드워프가 아니지. 한데 이 많은 무기를 뭐에 쓰려고 하는 것인가?”
“만일을 대비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공격하기 위한 것은 아니겠지.”
영지를 방어하는 것도 귀찮은 가르딘이다. 가르딘이 먼저 공격하는 경우는 하늘이 두 쪽 났을 때뿐이다.
“절대 아니라고 장담합니다.”
“알겠네. 빠른 시일 내에 만들어 주겠네.”
“감사합니다. 대신 필요한 것이 있다면 언제든지 말을 하십시오. 들어드리겠습니다.”
드워프는 인간과 접촉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 일을 가르딘이 대신해 주려는 것이다.
가르딘은 루인돌프에게 확답을 받고 돌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안젤리카가 레어에 같이 가자고 했다. 발키리 영지에 마법학교를 세우느라 시간이 없었던 안젤리카는 그동안 레어가 어느 정도 완성이 되었는지 보지 못했다. 자신의 레어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기에 가서 확인을 해보고 싶었다.
“그러지.”
“고마워요.”
“나는 네가 고맙다.”
“예?”
“솔직히 난 너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다. 있으나 마나 한 존재라고 생각을 했거든. 드래곤이 인간사에 관여하는 것도 안 되겠지만 원천적으로 나는 사람이기에 너희 종족을 믿을 수 없었는지 모르지. 그런데 이번 일에서 너는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공간이동이 드래곤 입장에서 뭐 대단한 것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나는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마법사가 있고 없고의 차이가 이토록 심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거든. 전쟁에서의 유용성은 많이 생각해 봤지만 말이야.
가르딘의 솔직한 말에 안젤리카는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그녀는 가르딘이 그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랐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기분이 좋았다.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고 신뢰를 받았다는 것이 기분이 좋았던 것이다.
“솔직하시네요.”
“그런가!”
한데 안젤리카가 모르는 것이 있었다. 이것 모두 가르딘의 술책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와 같은 말을 하면 안젤리카는 감동할 수밖에 없다. 세상에 대해서 배워가는 중이니 인정받는다는 것 자체를 만족해한다고 봐야 했다.
나중에 도움을 확실하게 받기 위한 미끼였다는 말이다. 안젤리카에게 미안한 얘기지만 도움 받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모두 빨아들이는 흡혈귀 같은 가르딘이었다.
‘순진하다고 해야 할지. 참! 미안하군!’
지금 찬 빵 더운 빵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물론 드래곤이라는 것을 알도록 마법을 사용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최후의 순간이 있을지 모르니 그때를 대비하는 가르딘이었다.
안 된 말이지만 아주 위험할 때 가르딘은 가족의 생사만을 돌보게 될 것이다. 물론 그전까지는 최선을 다하겠지만 말이다.
가르딘과 안젤리카는 만들어지고 있는 레어로 이동했다. 이동수단은 여전히 공간이동이다. 편한 것이 있는데 왜 다리품을 팔겠는가! 사람은 편하게 생활하다 보면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가르딘도 사람이니 편한 것을 좋아한다.
슈슝!
안젤리카의 레어에 도착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공간이동을 실수해서 다른 곳으로 왔다고 하기에는 안젤리카는 드래곤이었다. 드래곤이 마법적인 실수를 할 리 없지 않은가!
“괜찮은 가디언 하나 데려가려고요!”
“가디언!”
“예. 정신조작 마법으로 가디언 하나 만들어서 레어를 지키게 해야죠.”
“라이젠 님의 말로는 몇 개 만들어서 준다고 하던데, 아닌가!”
“그건 그거고, 제가 직접 잡아서 만들려고요.”
오싹!
‘설마 나는 아니겠지.’
좀 전에 양심에 찔리는 짓을 한 가르딘은 몸을 떨었다. 괜히 정신조작 마법에 걸려 가디언으로 평생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여기는 어디지?”
“다크랜드 북부예요. 이곳은 제법 튼실한 몬스터가 살고 있거든요. 영지와는 반대편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곳은 다크랜드 북부.
라이젠과 안젤리카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곳이다. 드래곤피어의 영향을 받지 않아서인지 대량의 몬스터와 마수가 아직도 우글거렸다.
쿵! 쿵! 쿵!
어디선가 몬스터가 사람 냄새를 맡고 다가왔다.가르딘은 역시나라는 표정을 지었다.
‘저놈은 소면서 어떻게 개보다 냄새를 더 잘 맡아!’
나타난 몬스터는 특급몬스터에 속하는 미노타우르스였다. 전에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던 가르딘이었다. 그 당시에도 제일 먼저 나타나기는 했다.
“정신조작마법을 걸게. 잡아주세요.”
“뭐, 그 정도야.”
미노타우르스를 가볍게 상대할 수 있는 자가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가르딘은 안젤리카의 도움을 받고 있기에 그 정도 부탁은 들어주었다. 안젤리카가 직접 한다고 해도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은 분명했다. 가르딘은 전설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다가갔다.
“카이로만 제국을 건국하신 초대 황제 폐하이자, 검의 상징인 카이로만 대제께서 미노타우르스를 상대한 얘기를 들려주지, 물론 너는 소대가리니 알아들을 리 없겠지만 그냥 들어라. 카이로만 대제는 어렸을 때부터 강하며, 똑똑하셨다. 그분은 우선 미노타우르스의 시선을 가리기 위해서 모래를 눈에 뿌리고, 앞을 보지 못하게 된 놈의 중심을 가격했지. 단 한 번의 킥으로 중심을 잃게 된 미노타우르스의 몸을 발판 삼아 뛰어올랐지. 뛰어오른 순간 미노타우르스의 뿔을 잡고 단번에 뽑아버리셨다. 고작 10살의 나이에 미노타우르스를 상대한 것이지. 물론 그 시절의 대제와 지금의 나를 비교한다면 어불성설이겠지. 지금의 내가 더 고차원적으로 강해졌다고 하는 것이 맞겠지. 지금부터 그 사실을 가르쳐주마!”
카이로만 대제의 설화 중에 하나였다. 제목은 [미노타우르스 뿔 때려잡기]라는 설화였다. 대대로 카이로만 대제에 대한 여러 가지 설화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가르딘이 읊었다. 물론 카이로만 대제가 10살이었을 때라는 단서가 들어가 있었다. 고작 10살에 미노타우르스를 잡았다는 대단한 기록이었다. 사실 뻥이라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카이로만 제국에서 그 말을 했다가는 목이 제대로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가르딘도 뚜벅뚜벅 다가갔다. 그러자 미노타우르스가 광분하며 달려 들어왔다. 가르딘은 검을 뽑지 않았다. 다가오는 미노타우르스는 흉폭하며 무섭기까지 했다. 보통의 기사들도 두려워서 뒷걸음칠 정도의 기세였다.
‘씨익! 시작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다!’
퍼퍽!
가르딘의 다리가 들어 올려졌다. 순식간에 뻗어나가는 발차기가 기이한 각도로 꺾이더니 미노타우르스의 낭심을 가격해 버렸다. 생식기에 충격을 받은 미노타우르스가 발광을 하려고 했지만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가르딘이 순간적으로 옆으로 돌아 미노타우르스의 혈을 가격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바로 불알질리언 킥이라는 것이다. 일명 고환 어택이라는 말로 순화되기도 하지.”
이 기술은 고대 자이언트 종족을 쓰러뜨리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전설이 있는 킥이다. 아무리 덩치가 커도 불알질리언 킥에 맞게 되면 사망 아니면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다. 인간과 비슷한 구조를 가진 존재들은 모두 사용할 수 있는 만능차기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미노타우르스의 붉은 소대가리에서 땀이 비실비실 솟아올랐다. 움직이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고통은 그대로였다. 정말 미칠 것 같은 기분일 것이다.
가르딘이 안젤리카에게 우쭐하며 말했다.
“여기 있다.”
“음!”
안젤리카는 잠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듯했다.
“좀 전에 가격한 것이 뭔가요! 마나가 움직인 것 같은데.”
“점혈을 말하는 것이냐.”
“점혈이오? 그게 뭔가요!”
“사람의 신체를 비롯한 모든 생명체는 몸 안에 오러가 흐르기 마련이지. 오러의 흐름을 일순간 끊게 되면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지. 오러라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어. 생명을 구성하는 원초적인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지. 드래곤인 너도 알 것 아니냐! 마나생명체라고 불리는 너희들도 마나의 흐름이 막히게 되면 마법의 사용이 불가능한 것을 말이야.”“아! 그럼 영주님은 오러의 흐름이 보이는 건가요?”
“보이지. 단! 인간의 경우 보편적으로 흐르는 오러의 기운은 거의 같아. 미노타우르스도 그런 것 같고 말이야.”
안젤리카는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기분이 들었다. 마나의 흐름을 파악하고 그 흐름을 끊는다. 마법적인 이론에 결합을 하여 새로운 마법을 탄생시킬 수 있는 단서를 마련한 것 같았다.
움직이지 못하고 큼지막한 땀을 흘리는 미노타우르스 앞에서 한가한 대화를 하는 가르딘과 안젤리카의 모습이 부조화의 극치를 보여 주었다.
“맨 처음의 가격 때문에 미노타우르스의 상태가 심각한 것 같네요.”
“그렇겠지. 거길 맞고 서 있다면 그건 말도 안 되지.”
고대로부터 살아 있는 남성생명체는 맞고 버틴 적이 한 번도 없다고 전해지고 있었다. 여인들이 최고의 공격수단으로 사용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음, 약점이 너무 확실하네요. 떼어버려도 되나요?”
아무렇지 않게 말을 하는 안젤리카였다.
오싹!
가르딘은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역시 드래곤이었다. 어떻게 그곳을 떼어버릴 수 있단 말인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사실 떼어버린다고 해서 죽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런 것은 상상하기도 싫은 가르딘이었다.
“그래도 그건 너무 심하지 않느냐?”
“떼어도 되는 거네요.”
“아무리 그래도 몬권이라는 것이 있을 텐데.”
“몬권이요? 처음 듣는 말이네요. 영주님은 새로운 것을 많이 아시네요.”
“인간의 권리와 마찬가지로 몬스터의 권리도 있을 것 아니냐.”
“그런 말도 처음 들어보네요.”
몬권이라는 단어는 안젤리카의 언어록에서 배제되었다. 쓸데없는 말을 기억할 정도로 낭비가 많은 안젤리카는 아니었다. 안젤리카는 미노타우르스에게 다가가서 이곳저곳을 만져 보았다. 여성이라는 자각이 있다면 저처럼 서슴없이 하지 못하겠지만 역시 드래곤이기는 했다.
“다리와 팔을 자르고, 연금술을 이용하고, 파이럴을 사용해서 붙이면 괜찮을지 모르겠네요.”
“그건, 좀!”
하는 말이 모두 듣기 거북한 가르딘이었다. 왠지 모르게 미노타우르스가 불쌍하기까지 했다.
안젤리카가 말한 파이럴은 상당히 희귀한 금속 중에 하나다. 역대로 만들어진 모든 신병이기에는 파이럴이 소량이나마 들어갔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일단 만들어지면 오러 블레이드가 아니고서는 절대 상대할 수 없을 정도의 강도를 가진다.
말이 좋아 오러 블레이드지, 오러 마스터의 경지에 이른 인물이 사용하게 되면 거의 무적의 강도를 가진다는 말이 된다. 파이럴 말고 신의 금속이라는 하이브릴이 있기는 하지만 하이브릴이 들어 있는 병기가 과연 존재하는지도 의문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굳이 살아 있지 않아도 되요. 죽은 몸을 다루는 것도 배운 적이 있으니까요.”
“그래도 살아 있는 게 낫지 않겠니.”
“우선은 정신조작 마법을 사용해서 내 명령에 절대적으로 따르게 해야겠어요. 잠시 기다려 주세요.”
정신조작 마법은 9서클 마법이다. 물론 몬스터의 지능이 떨어지기에 인간이나 엘프, 드워프 같은 존재들보다는 쉽겠지만 절대 쉬운 마법은 아니다. 인간의 경우 정신조작 마법을 상대방에게 걸려다가 오히려 마나역류를 당할 수도 있다.
‘하긴 드래곤을 정신력으로 이긴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겠지.’
고등 정신체를 가진 존재만이 할 수 있는 마법. 그런 점에서 드래곤은 최강의 정신을 소유했다고 볼 수 있었다.
안젤리카의 손에서 빛이 생겨나더니 소 대갈통으로 전이가 되었다. 그러자 멍하게 있던 소대가리의 눈빛이 탁해지다가 다시 원래대로 변해갔다. 원체 멍청한 놈이니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가르딘은 금세 안젤리카의 마법에 걸려든 몬스터를 보면서 전투에 이용하면 좋지 않을까 고민을 해봤다. 그러나 금세 생각에서 지웠다. 인간의 전투였다. 몬스터를 사용하게 될 경우 나중에 엉뚱한 오해를 불러일으킬지 모른다.
가르딘이 창공을 바라보았다. 날씨가 무척이나 좋았다. 몬스터, 마수의 천국인 다크 랜드이지만 하늘은 언제나 모두에게 같은 모습을 보여 주었다.
까마득한 높이에서 와이번이 날아가고 있었다.
“와이번이라.”
몬스터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몬스터라고 불린다. 개체수가 많지 않아서 다행이지 그 숫자가 많았다가는 상대하기 여간 위험한 것이 아니다.
“응?”
와이번이 지나간 자리에서 무언가 떨어진다. 가르딘의 안력에 그것이 보였다.
“이런! 피하자!”
가르딘이 안젤리카를 데리고 옆으로 피했다. 그러자 멀뚱히 서 있던 미노타우르스의 머리 위로 거대한 덩어리가 떨어져 내렸다.
데에엥!
떨어진 덩어리는 심각한 냄새와 더불어 오물을 포함하고 있었다. 바로 와이번의 배설물이었다. 덩치만큼이나 거대한 똥을 쌌다. 잘못하다 맞은 새똥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는 크기였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푸욱!이 아니라 돌덩이를 맞은 것 같은 소리가 났다는 것에 있었다. 와이번의 똥이 상당히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싸자마자 굳는 똥은 보지 못했다. 미노타우르스가 아니라 일반적인 몬스터였다면 머리가 박살나거나 꺾여버렸을지도 몰랐다. 상당한 중량에 떨어지는 속도까지 붙었기 때문에서 투석기 저리가라 할 정도다.
데구루루 굴러다니는 와이번의 배설물을 보고 가르딘은 생각했다.
‘변비인가!’
“후! 큰일 날 뻔했다.”
그러네요. 하지만 더럽네요.
안젤리카가 더러워진 미노타우르스를 클린(청소) 마법으로 깨끗하게 만들어 주었다. 보기에 따라서는 그다지 더러워 보이지는 않았다. 미노타우르스의 입장에서는 마른하늘에 똥벼락이었다.
“그럼 갈까요.”
“그러지.”
이동은 공간이동이였다. 한순간에 시야가 변하더니 안젤리카의 레어에 도착했다. 레어 부근에 드워프는 없었다. 아마 안에서 마무리 공사를 진행하고 있을 것으로 보였다.
가르딘과 안젤리카가 안으로 들어갔다.안으로 한참 들어가자 드워프들이 모습을 보였다.아인돌프 장로가 안젤리카를 발견하고 바로 달려와서 인사를 올렸다.
“오셨습니까!”
“공사는 다 된 건가요?”
“거의 마무리 공사가 진행되어 가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사용한다고 해도 부족하지 않을 겁니다.”“그럼 잠시 둘러볼게요.”
“그러시죠. 제가 사용에 필요한 것들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난 여기에 있을 테니 둘러보고 오너라.”
가르딘은 들어올 때 만들어진 궁을 살펴볼 생각이었다. 레어를 들어오는 입구를 지나 그 앞으로 마련이 된 궁이었다. 일반적인 활 중에서도 가장 크다고 평가받는 발리스타보다 족히 3배는 더 컸다. 저런 활에서 뻗어나가는 화살은 가히 살인무기나 마찬가지였다. 상대의 공성병기를 비롯한 특별한 무기들을 박살내는 데 유용한 것처럼 보였다.
“대단하기는 한데, 비거리가 나올지 모르겠군.”
“최소 2천 미터는 날아갈 수 있을 겁니다.”
대답을 한 것은 청년 드워프인 자인돌프였다. 자인돌프는 인간이 드래곤과 친하게 지내는 것에 신기해했다. 하지만 그 인간이 자신들에게 은혜를 베푼 인간이라는 것을 알기에 친근하게 다가와서 대답을 해주었다.
청년 드워프는 가르딘을 제외하고는 인간을 보지 못했다. 이제 막 자라서 성년이 된 것이다. 인간에 대한 원천적인 두려움은 다른 어른 드워프들보다 덜한 편이었다.
“유효사거리가 2천 미터라는 거야?”
“그렇습니다. 유효사거리가 2천 미터입니다. 최고사거리는 4천 미터까지 날아갈 겁니다.”
“와!”
정말 대단한 비거리였다. 발리스타의 경우 쇠활을 사용한다. 유효사거리가 5백 미터를 넘지 않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 반면에 지금 눈앞에 있는 거대한 활은 발리스타보다 족히 4배는 더 멀리 날아간다는 말이었다.
가르딘이 탄성을 지르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이름이 뭐지?”
“발리스타예요.”
“내가 아는 이름하고 같네.”
“크기가 크다고 해서 이름이 달라질 순 없죠. 원리는 같으니까요. 다만 과거에 우리 조상님이 말하길 타이탄도 박살냈다는 말이 있었어요.”
“타이탄을 말이냐, 대단하군.”
“뭐, 그 당시에는 타이탄의 종류도 다양했다고 했어요. 급수에 따라 총 10단계로 나뉘게 되는데 그중 가장 최하위에 속한 타이탄을 쓰러뜨렸다고 하거든요.”
현실적인 말이었다. 인간의 역사라면 가장 강한 타이탄도 쓰러뜨렸다고 했을 것이다. 원래 과장이라는 것이 입과 입을 타고, 오랜 시간을 흐르다 보면 와전되기 마련이었다.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신화가 그 대표적인 예였다. 드워프들은 과장이라는 것을 모르는 종족 같았다.
“드워프들은 이런 무기를 쉽게 만드나 보구나! 상당히 놀랍고 신비하기까지 하다.”
“그 정도야 쉬운 편이죠.”
가르딘의 띄워주기 말솜씨가 발휘되기 시작했다. 아직 어린 드워프라고 할 수 있었다. 드워프 촌장도 말로 구워 삼은 가르딘이었다. 청년 드워프가 상대하기는 무리가 따른다고 볼 수 있었다.
“대단해. 역시 대륙최고의 장인들이라고 불릴 만하구나! 선조들의 유산에 머무르지 않고 더욱 발전시키고 있다는 말이 아니냐! 그런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지. 상당한 인내력과 끈기, 그리고 노력이 필요하니 말이야.”
“마을에 가면 이것보다 더욱 개량한 것들이 10대 정도 더 있어요! 아마 파괴력과 사거리는 더욱 많이 나올걸요!”
가르딘이 듣고 싶은 말이 술술 나오기 시작했다. 기분이 좋아진 드워프는 있는 말 없는 말을 모두 해주어서 가르딘의 귓속을 즐겁게 해주고 있었다. 가르딘은 열심히 듣는 척하면서도 별것 아닌 내용에는 그다지 관심 없었다.
‘루인돌프 촌장님에게 부탁을 해야겠어. 이런 좋은 무기가 있었으면서 일언반구도 하지 않다니, 너무 하단 말이야.’
루인돌프 촌장의 입장에서도 굳이 마을에 무기가 있다고 말할 필요성이 없었다. 만들어 달라고 하는 무기만 만들어 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가르딘이 자인돌프와 얘기하는 동안에 안젤리카가 돌아왔다.
“다 둘러본 거니?”
“예.”
“그럼 돌아가자. 갈 때 잠깐 드워프 마을에 둘렀다가 가자꾸나.”
“알겠어요.”
루인돌프 촌장은 드워프 마을에 다시 돌아온 가르딘의 말을 듣고 허탈한 듯 웃었다. 설마 마을에 존재하는 무기를 알고 있을 줄 몰랐다. 아마 처음에는 몰랐다가 다른 드워프가 말했을 것이라는 예측을 했다.
“자네 참 염치가 없구먼.”
“그런 소리는 처음 듣는군요. 아무튼 좋은 무기 잘 쓰겠습니다. 다른 무기가 더 있으면 주셔도 무방합니다.”
“또! 됐네. 그것만 가져가게.”
루인돌프는 또 실수를 하고 말았다. 그것만이라는 말은 더 있다는 말과 진배없는 말이었다. 가르딘이 그걸 놓칠 리 없었다.
‘또 있구나! 그건 나중에 말해 보지.’
한 번에 다 말하면 정떨어지기 마련이다. 정을 지속시키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미련을 남기는 것이다. 미련이 있다는 말은 정이 있다는 말과 진배없다.
발렌타인 성.
코카 제국과 인접한 성 중에서도 최접경 지역이다. 지난번 전쟁에서 발렌타인 성을 얻음으로써 이곳 국경지역의 영지에 대한 통솔권이 강화되었다. 발렌타인 성이 있음으로써 코카 제국과의 접경 지역을 완벽하게 방비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언제든지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전쟁발발 지역이기도 했다.
발렌타인 성을 맞고 있는 성주는 버레이크 백작이었다. 버레이크 백작은 발리스타 공작의 직속귀족 중에 한 명인 론바이너 후작의 아들이다. 어려서 킹덤나이트에 입학하여 피닉스기사단에 들어간 최상급의 기사다. 오러 마스터에 이르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그는 익스퍼트 최상급에 이른 노련한 기사 중에 하나다.
지난번 전쟁에서 발렌타인 성을 코카 제국으로부터 빼앗기 위해서 파스트론 공작과 더불어 함께 전투에 참여한 공을 인정받았다. 그로 인해서 단숨에 백작의 작위를 받고 발렌타인 성의 성주로 임명되었다.
황성에서 뛰어난 기사라는 것만으로 발렌타인 성의 성주로 버레이크 백작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뛰어난 기사이기 이전에 전략적인 두뇌가 탁월한 인물이었다. 상황을 판단하고 돌발상황에 침착하게 대처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파스트론 공작이 작전을 지휘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 것이 바로 버레이크 백작이었다. 위험한 지역이기는 하지만 이곳을 무사히만 지켜낸다면 버레이크 백작의 경우 직위 상승도 무난했다.
버레이크 백작이 발렌타인 성의 외곽에 위치한 2차 성벽 위에서 그 앞으로 펼쳐진 대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서슬 퍼런 바람이 불어와서 버레이크 백작의 잘 정비된 머리카락을 흩날리게 만들었다.
“전방의 상황은 어떤가?”
“아무래도 코카 제국과의 전쟁이 임박한 것 같습니다. 대규모의 군수물자가 이곳으로 모여들고 있습니다. 또한 접경지역을 중심으로 코카 제국에 인접한 왕국들의 군사이동도 감지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버레이크 백작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지난번 전쟁의 패전으로 인해 코카 제국은 자존심이 상당히 상해 있는 상태였다. 이번 전쟁에서 반드시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사력을 다할 가능성이 컸다. 최접경지역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이곳 발렌타인 성이 놈들의 최초 목적지가 될 것이다. 발렌타인 성을 다시 회복해서 사기를 진작시키려는 목적이 분명했다. 전쟁은 전략과 전술, 병력이 중요하지만 사기도 중요한 것이 사실이다. 상징적인 면에서 발렌타인 성이 가장 적합한 제물이었다.
“사태가 심각하군. 최대한 빠르게 황성에 연락을 하고, 놈들의 동태를 지속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정찰병과 스파이를 운용해라.”
" 알겠습니다.”
카이로만 제국에서도 준비는 하고 있는 상태였다.코카 제국이 노골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런 방비가 없다면 말이 되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전시체제에 들어갈 필요성이 있었다. 제국전쟁은 아무런 낌새도 없이 일어나지 않는다. 대규모의 병력이 움직이는 전쟁에서 상대편에서 알지 못하는 사이에 전쟁을 수행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버레이크 백작은 발렌타인 성을 주변으로 군대의 전략을 수립해 놓은 상태였다. 적들의 공격을 수세적인 입장에서 맞고 있는 상태였다. 성을 사수하기 위한 전투를 최적의 방안으로 모색했다. 그러나 전쟁은 변수가 많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모든 전쟁의 전투에서 준비한 대로 이루어졌다는 말은 들어보지도 못했다.
중요한 것은 긴장을 유지하면서도 적의 도발에 적재적소에 대처할 수 있는 판단력이다.
“병사들에게 긴장의 끈을 놓지 않도록 지시하고, 전방에 설치한 트랩이 제대로 만들어졌는지 다시 한 번 확인을 해.”
“제가 직접 확인을 하겠습니다.”
“어차피 전쟁이 시작되면 파스트론 공작님과 발리스타 공작님이 이곳으로 와서 군사령관을 맞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 우리는 이곳을 최선을 다해 지키면 되는 것이다.”
발렌타인 성의 긴장감은 카이로만 제국의 황성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전운의 상황을 통신구로 연락을 받았다. 물론 한 번에 전달은 거의 불가능하다. 모든 통신구를 연결하여 각 지점에서 거리를 계산, 거리에 따라 통신이 연결되도록 만들어져 있는 구조다.
발렌타인 성의 연락을 받은 바이멘 후작은 정보를 모아서 상황이 어떻게 진행이 되는지를 파악하고 있었다.
지도를 보며 전쟁의 구도를 살펴보고 있었다.
코카 제국을 중심으로 각 왕국과 공국의 군사력이 집중되고 있다는 보고가 있었다. 바이멘 후작도 동맹국에게 사절을 보내어 군사를 보내도록 요구를 한 상태였다. 이번 전쟁은 코카 제국과 카이로만 제국의 전쟁이 아니라 대륙의 전쟁이 될 가능성이 컸다. 거의 모든 왕국과 공국이 전쟁을 치른다는 말이 되었다.
“쉽지 않지만 승산은 있다.”
정면대결에서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카이로만 제국이었다. 대륙을 반으로 가르고 있는 카이로만 제국과 코카 제국이었다. 누구의 힘이 센지는 결국 군사력과 전략, 전술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이제까지 지지 않았던 것도 모두 만반의 준비를 해왔기 때문이다.
바이멘 후작이 수하를 불렀다.
“각 영지에 비상령을 내리고, 병사를 모을 수 있도록 명령을 내려. 또한 병사가 부족한 영지는 군자금을 내라고 전해.”
“알겠습니다.”
병사를 모아서 발렌타인 성으로 보내야 했다. 이것이 가장 중요했다. 서로 비슷한 전력을 가진 힘에서 첫 전투는 앞으로의 전투를 예견하게 만들어준다.
바이멘은 즉시 황제에게 전쟁에 대한 상황을 전하고, 황성에 거주하는 상급귀족들에게 연락을 보내야 했다.
바이멘 후작이 수집한 정보를 받은 코스트너 황제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기어이 전쟁을 하는구나.”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카이로만 제국은 여전히 굳건합니다. 언제라도 코카 제국의 침입을 막아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알고 있다!”
코스트너 황제의 기력은 거의 다되어 가고 있었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황제의 몸에서 패왕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늙고 지친 황제였지만 그는 제황이었다. 이번 전쟁을 마지막으로 불꽃을 태우려는 듯한 기상이 느껴졌다.
“황궁회의를 열라.”
“예, 황제 폐하!”
황궁회의에 대한 연락을 받은 귀족들이 모두 황궁으로 모여들었다. 연이어 도착한 귀족들이 모두 황궁 안으로 들어갔다.
모든 귀족들이 모였을 때 황제가 들어와서 용상에 앉았다. 천천히 걸어오는 황제는 이전까지 보여 주었던 나태한 모습이 아니었다. 정복욕을 불태웠을 때의 황제로 돌아온 듯한 인상을 주었다.
황제의 바로 아래로 파스트론 공작, 발리스타 공작, 네벨리언 공작, 타이가라 공작이 서 있었으며, 그 주변으로 후작이 차례로 줄을 맞추어 서 있었다. 귀족들의 서열에 따라 자리가 정해졌다. 모두 황제가 앉으라는 말이 있기 전까지 서 있었다.
“앉지.”
황궁회의 전에 바이멘 후작이 전쟁에 대한 일을 황궁에 모인 귀족들에게 통보를 해놓은 상태였다. 코카 제국과의 전면전에 대한 일은 모든 귀족들이 다 알고 있었다. 대전 안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보통의 황궁회의와는 질적으로 다른 분위기였다.
바이멘 후작이 상황에 대한 요점을 간추린 설명이 이루어졌다. 다시 한 번 상기시키기 위한 것과 더불어 간혹 가다 상황파악 못하는 귀족들이 나올 수 있기에 설명을 해준 것이다.
“계속하라.”
황궁회의의 진행을 계속하라는 코스트너 황제의 말이었다.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바이멘 후작이 전쟁에 대한 지휘권의 선임에 대한 회의를 하도록 유도했다.
“이번 전쟁의 총사령관 부사령관, 각 전선의 군단장을 비롯한 참모들의 선임을 이 자리에서 선임하게 될 것입니다.”
코스트너 황제는 귀족들의 대답을 듣기를 원했다.
“그대들의 생각을 말하라.”
어차피 정해진 수순이었다. 역대로 전쟁의 총사령관은 피닉스 기사단의 기사 단장이 역임을 했다. 또한 3명의 부사령관 역시도 지금 황성에 있는 발리스타 공작과 타이가라 공작, 네벨리언 공작이 맞게 될 것이다. 각 군의 군단장과 참모들은 후작들을 비롯한 백작들이 그 자리를 채우게 된다.
형식적이지만 확고하게 할 필요가 있는 중요한 일이다. 지휘체계를 확고히 해야 나중에 뒤탈이 발생하지 않는다. 또한 누가 총사령관이 되느냐에 따라 전쟁의 향방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했다.
귀족들의 대답은 같았다. 분위기 자체가 이미 결정이 된 것과 같았다.
코스트너 황제는 그러한 분위기에서 확실하게 결정을 내려주었다.
“이번 전쟁이 총사령관은 지난 전쟁과 마찬가지로 파스트론 공작이 수고해 주기 바라네!”
척!
예를 표하면 무릎을 꿇은 파스트론 공작이었다.
“성심을 다해 폐하의 근심을 덜어드리겠습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파스트론 공작은 한결같았다. 모든 귀족들도 인정하는 성품이었다. 그는 황제에 대한 충성으로 똘똘 뭉친 충신이었다. 세부적인 사항은 바이멘 후작이 서류에 적은 내용을 황제가 인정하는 선에서 황궁회의가 마무리가 되어갔다.
“제국과 제국의 전쟁이다. 구차한 말 따위는 필요 없다. 카이로만 제국이 왜 대륙최강국인지를 보여 주면 된다. 알겠는가!”
음성의 고저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다만 코스트너 황제의 말투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기운이 귀족들의 가슴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카이로만 제국의 영광을 위해!”
“카이로만 제국의 영광을 위해!”
가르딘은 황성에서 결정된 황궁회의에 대한 안건을 전해 들었다. 소식은 다른 영지보다 늦게 전달이 된 상태였다. 각 영지의 경우 모든 곳에 통신구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변방일 경우 주변 영지 중에서도 백작급 이상의 영지에 전달된 사항을 각 영지에 전달하는 형식을 취한다. 가르딘의 경우 백작급이기는 하지만 워낙 황궁과 먼 거리에 위치했고, 마법사가 없는 상황에서 통신구의 사용은 불가능했다.
지금의 경우 안젤리카가 있기는 하지만 마법사의 존재를 외부로 알리고 싶지 않기에 통신구를 사용하지 않았다.전달된 사항을 읽고 난 후.
“아직 여유가 있나 보군.”
발키리 영지의 경우 다크 랜드의 몬스터 침공으로 인해 병력을 따로 뺄 수 없다는 것을 황궁에서도 알고 있었다. 대신에 군자금을 지원하라는 명령이 전달이 되었다. 그 정도는 감수해야 했다. 가르딘이 가장 근심했던 부분이 여기에 적혀 있지 않았다.
“스필언과 미토스를 부를 줄 알았더니 대기라…….”
오러 마스터인 스필언과 미토스의 역량을 안다면 당연히 부를 줄 알았다. 급하게 되면 자신까지 부를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만약 그렇게 됐다면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럴 경우 가르딘은 어떤 핑계를 대서든 전쟁에 참여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영지에 가족이 있는 상황이다.영지가 위험한데 다른 곳을 지킬 상황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비밀병기로 사용할 생각인가?”
스필언가 미토스의 경우 드러난 패다. 반면에 외부적으로 드러난 것은 오러 마스터 초급밖에 되지 못한다. 실제적으로는 중급을 넘어 상급에 이르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스필언과 미토스의 실력상승은 어느 누구도 예상할 수 없을 정도로 급속한 진전이다.
만약 이대로만 진행된다면 오러 마스터 최상급을 넘어설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가르딘만이 아는 사실이다. 다른 사람이 알고 있는 사항이 아니었다.
“나중에는 부르겠지. 하루 이틀에 끝날 전투는 아니니까!”
스필언과 미토스를 끝까지 대기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파스트론 공작과 발리스타 공작도 생각이 있을 것이다. 하루아침에 끝나는 전투는 아닐 것이다. 서로 준비가 길었던 만큼 전쟁도 길어질 것으로 예상이 된다.
코카 제국에서도 스필언과 미토스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진 상황일 것이다. 놈들이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스필언과 미토스를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내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겠다. 남을 신경 써줄 처지가 아니거든.”
가르딘은 헥토르 왕국에 대한 일만 신경을 쓰고 있었다. 헥토르 왕국과의 접경지역을 중심으로 준비를 하고 있는 상태지만 정작 헥토르 왕국의 사정에는 어두웠다. 정보를 얻어야 하는 상황에서 정보원이 없었다. 사람을 구해서라도 헥토르 왕국에 대한 상황을 알아봐야 했다.
“들어와.”
파멜라가 집무실에 들어왔다.
“무슨 일이지?”
“인포메드에서 사람이 왔어요.”
“인포메드라, 영지의 상황을 알고 온 것 같으냐?"
“우리가 파는 도자기와 고구마의 유입경로를 알고 왔을 가능성이 커요. 그렇지 않다면 다크 랜드에 인접한 이곳에 그들이 올 리 없잖아요.”
“그렇겠지.”
대륙의 대부분 영지에 인포메드가 상주하고 있다. 반면에 발키리 영지는 워낙 변방에다가 위험지역이라 인포메드가 여태까지 들어온 적이 없었다.
“들어오라고 해.”
“알겠어요.”
파멜라가 데려온 인포메드의 사람은 의외로 여자였다. 여자가 이곳까지 찾아왔다는 것에 놀랍기까지 했다.
“인포메드의 지부장 테이란이라고 합니다.”
“반갑군. 자리에 앉지.”
“예, 영주님!”
“차라도 한잔할 텐가.”
“주신다면 영광입니다.”
가르딘을 말을 하면서도 테이란을 살펴보았다. 안보는 척하면서 그녀의 분위기와 더불어 그녀의 눈동자를 세심하게 살폈다. 사람에게서 원천적으로 느껴지는 기운은 개개인이 차이가 존재했다. 또한 눈동자는 성격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상대를 파악하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말이다. 말로써 상대의 의중이 무엇인지 간파해야 했다.
‘내 말에 차분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대답한다.’
가르딘은 기감으로 상대의 표정뿐 아니라 기운의 변화까지 볼 수 있었다. 오러 마스터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약간의 위압감을 조성해 보았었다. 그런데 테이란은 말을 하면서도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으며 자연스러웠다. 보통의 여자가 가질 수 있는 능력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제법 뛰어난 무력을 가졌군.’
인포메드는 정보단체로 통한다. 그곳의 지부장이라고 해봐야 무력이 대단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 반면에 이 여인은 최소 익스퍼트 중급 이상의 실력이 느껴진다.
“변방의 영지까지 무슨 일로 온 건가?”
“카이로만 제국의 검이자 검의 위대한 개척자인 가르딘 영주님을 보기 위해서 온 겁니다.”
“나를.”
“오러 마스터에 대한 정보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정보니까요.”
“상당히 당차군.”
“오면서 보니 영지가 상당히 발전하고 있더군요. 몬스터의 위협도 사라진 것 같고 말이에요.”
영지의 발전된 원동력을 안다는 듯한 말투였다. 가르딘으로서는 우려했던 일 중에 하나였다. 그러나 세상에 완벽한 비밀은 존재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알게 될 일이지만 빨리 알지 못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원하는 걸 말하게.”
“원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저 영주님과 우의를 다지고 싶을 뿐입니다.”
“난 말이 많은 편이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을 빼놓고 말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저 우의나 다지려고 왔다면 처음부터 그런 말을 할 필요도 없으니까.”
움찔!
이제까지 자연스러웠던 테이란의 눈빛이 흔들렸다. 가르딘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상상을 초월했던 것이다. 그저 기질이 변했을 뿐인데도 불구하고 테이란은 몸을 지탱하기가 힘들었다. 오러 마스터만이 낼 수 있다는 오러피어(무형지기)였다.
‘과연 오러 마스터인가!’
테이란도 제법 오러를 수행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전혀 대항할 수 없었다.
인포메드에서 테이란을 발키리 영지에 보낸 것은 오러 마스터가 3명이나 있다는 것 때문이기도 했다. 또한 발키리 영지에서 나온 것으로 추측이 되는 작물과 더불어 도자기에 대한 정보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오면서 둘러보니 예측대로인 것 같았다.
더불어 눈앞에 있는 영주 역시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다. 오러 마스터에 이른 인물이면서도 영지를 제대로 다스리고, 사람의 심리를 제대로 꿰뚫어볼 줄 알았다. 이런 변방의 영주로 오래 있을 인물 같지 않아 보였다.
가르딘의 연기는 수준급에 달한다.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실속을 위해서 거짓말을 빵 먹듯이 할 수 있는 가르딘이다. 그런 가르딘에 대한 테이란의 평가는 과분할 지경이다.
“죄송합니다. 영주님에게 무례를 범한 것 같습니다. 제가 이곳에 온 것은 발키리 영지에 인포메드 지점을 내기 위해서입니다.”
인포메드가 각 영지에 들어서면서 내거는 조건은 정보의 교환이다. 그 주변에 대한 정보를 영주에게는 무상으로 제공한다는 조건이다. 물론 급에 따라서 약간의 보수가 있기는 하지만 정보력에서 대륙제일이라는 평가를 받는 인포메드의 정보는 상당히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간주하기에 효용성이 뛰어나다.
반면에 영주의 입장에서 자신의 영지에 대한 정보를 인포메드에 노출시키기 때문에 꺼려할 수도 있다. 자신의 정보를 주지 않으면서도 타인의 정보를 얻고 싶어 하는 사람의 심리가 작용한다. 대부분의 영주들은 인포메드의 효용성 때문에 지점을 허락하도록 한다. 민감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여긴다.
만약 잘못해서 인포메드에 악감정을 드러내게 된다면 그 영지는 인포메드의 정보공격에 노출되게 된다. 만천하에 영지의 영주에 대한 정보가 까발려진다는 말이다. 권력과 명예를 중시하는 귀족으로서는 대단히 꺼려지는 일이다.
세상에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이 과연 있겠는가! 없는 먼지도 부풀려서 바위덩어리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인포메드였다. 정보의 무서움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지점을 만드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실 나는 인포메드가 필요한 상황에 처해 있거든.”“그럼 다행이군요. 지점이 세워지면 보다 편하게 정보의 열람이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정보의 급이 어떻게 되지?”
“일단 제국과 왕국은 모두 특급입니다. 특히 군사력과 경제력에 관한 정보 역시 특급입니다. 또한 귀족의 권위에 해당하는 문제도 특급입니다. 이외의 보편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영주님이 원하시면 얻을 수 있습니다.”
“특급 이외에는 쓸 만한 것이 없군.”
다른 제국과 왕국의 움직임이나 귀족들의 정보가 가장 중요한 것이 사실이다. 가르딘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정보이기도 하다.
테이란은 가르딘의 말에 아니라고 반박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전해주는 정보가 일반적인 것이라고 해도 그 정보를 들어보시면 결코 작지 않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참고로 각 제국이나 왕국의 분위기나 사람들의 이동에 대한 간단한 정보를 얻어낸다고 쳐도, 그걸 듣고 난 후 영주님은 판단을 내리실 수 있는 기초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다. 경제력이나 군사력의 정확한 파악은 불가능하지만 그들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는 있을 것이다.
“제법이군. 물론 그런 정보는 값이 나가겠지.”
“그렇습니다.”
“특급에 대한 정보는 돈을 내도 주지 않는 건가?”
“영주님의 평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영주님이 감당을 할 수 있는 분이시라면 정보를 줄 수 있겠지만 감당하지 못한다면 줄 수 없습니다.”
“하긴 그렇겠군.”
상대가 감당이 되지 않는데, 정보를 주어서 탈이 나게 되면 인포메드의 명성에 금이 가게 된다. 그런 일을 방지하기 위한 인포메드의 방침 중에 하나였다. 그렇기 때문에 인포메드는 정보에 목이 마를 수밖에 없다. 정보를 세세하게 얻을 수 있다면 그만큼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정보가 무기인 인포메드였다.
가르딘은 헥토르 왕국의 정보가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 물어보지 않았다. 한번 본 테이란을 믿는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가장 믿을 수 없는 존재가 사람이었다. 그것도 자신이 인정하지 않은 자를 믿는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다.
“간단하게 내 주변에 대한 것을 말해 주었으면 좋겠군.”
“영주님의 주변은 다크 랜드를 제외하고 위험이 없는 편입니다. 영지와 영지 사이에 거리도 멀뿐더러, 오러 마스터가 버티고 있는 영지를 함부로 탐을 낼 영지는 없을 겁니다. 만약 가능성이 있다면 헥토르 왕국 정도입니다.”
왕국 정도가 쳐들어와야 위험하다는 듯한 말투였다. 인포메드의 테이란은 헥토르 왕국을 거론하면서 가르딘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가 관연 사실을 알고 있는지를 알고 싶었다.
헥토르 왕국의 움직임은 인포메드에서도 최근에야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것도 정확한 것은 아니었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일을 인포메드에서 정확하다고 판단하지 않고서는 절대 정보로서 팔지 않는다. 자칫 모든 것이 무너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가.”
가르딘은 짐짓 모르는 척 넘어갔다. 인포메드를 믿을 수 없기에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또한 정보를 알고 싶다는 듯한 인상도 주지 않았다.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모르는 건가?’
테이란은 가르딘의 성격을 파악하기 힘들었다. 좀 전까지 마음을 꿰뚫어볼 것 같은 말투와는 전혀 다른 대응이었다. 무엇이 옳은지는 그녀도 정보를 모으고, 경험을 해봐야 할 것 같았다.
“차도 다 마신 것 같으니 일어나 보겠습니다. 앞으로도 서로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나도 기대하겠네. 다만 한 가지는 기억해 두게. 나는 내 정보가 남에게 팔리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야!”
“조심하겠습니다. 영주님!”
테이란이 나가고 난 후 가르딘은 역시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포메드의 정보력이 새삼 무섭게 느껴졌다.
“동맹국이라서 군대를 움직이는 것에 의심을 받지 않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인포메드에게 의문스러운 점을 파악당했단 말인가. 대단하군.”
카이로만 제국에서 동맹국에 대한 군대파병을 요구한 상태다. 헥토르 왕국도 우방국이기에 군대를 파견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의심할 말한 구석이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
“미네! 기사단에 가서 필리언, 갈라, 유타를 불러와.”
“예, 영주님!”
테이란은 가르딘에게 좋은 정보를 주었다. 헥토르 왕국에 대한 세세한 정보가 어렵다면 주변의 움직임을 살펴서 정보를 모아 수집하고, 수집된 정보를 가지고 상황을 파악하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당히 쉬운 방법임에도 가르딘이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시종인 미네를 시켜 필리언, 갈라, 유타를 따로 불렀다. 군사적인 문제에 관해서는 이들과 의논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파멜라의 경우 행정과 더불어 진법설치에 관한 일을 하기에 바쁘게 보내고 있었다.
미네가 나가고 10분 후 필리언, 갈라, 유타가 집무실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지금 당장 헥토르 왕국에 대해서 잘 아는 인물을 파악해서, 헥토르 왕국에 파견시켜.”
“정보원을 보내자는 말이야.”
“그래. 너무 위험한 것을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헥토르 왕국의 기본적인 동태를 파악하라는 거다.”“알겠다.”
“그리고 헥토르 왕국에서 이곳으로 오는 길목을 지점으로 사람을 배치해서 놈들이 오는 시간을 알 수 있도록 해놔.”
필리언은 곤란한 표정이 되었다. 길목마다 배치를 해놓는 것은 문제가 아니지만 이곳까지 소식을 전해올 수 있는 방법이 그다지 없었다. 통신구라도 있으면 되겠지만 통신구가 길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도 아니고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짜잔!
가르딘이 가슴속에 숨겨둔 구슬을 보여 주었다. 일전에 라이젠으로부터 받은 통신구였다. 한 개만 주면 서운하다고 3개를 받은 가르딘이었다. 일단 말로써 살살 구슬리고, 적당한 타협점으로 얻어낸 것이다.
“통신구다.”
“거리는?”
“여기서 헥토르 왕국까지 가능할 거다.”
“대단하군.”
통신마법은 거리에 따라 마법력이 달라진다. 거리가 왕국 정도의 거리면 엄청난 마법력이 필요하다.
사실 가르딘이 준 통신구는 대륙 어디에서나 가능한 통신구다. 라이젠이 만든 통신구가 일반 통신구와 같을 리 없지 않은가!
테이란은 혼자서 이곳에 오지 않았다.
인포메드의 정보원들인 인포머를 30명 데리고 온 상태다. 이들은 영지를 파악하기 위해서 발키리 영지의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사소한 것들이라도 놓치지 않고 모두 조사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다.
인포머 중에 한 명인 프랭클린이 테이란에게 다가갔다.
“영주는 어떠했습니까?”
“쉽지 않은 자야. 오러 마스터이면서도 시세를 잘 아는 인물이야.”
“그렇겠지요. 지금까지 수집한 자료만 보면 도저히 검만 휘두른 인물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을 다루는 능력과 더불어 영지민들에게 받는 인망까지 대단한 수완을 가진 수완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교만하지도 않아. 실리는 따지는 인물인 것 같아.”
“까다로운 사람이군요.”
귀족의 권위만으로 가득 찬 인물들과는 확실히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었다. 테이란은 짧은 시간 안에 사람을 파악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타고난 능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여자였고, 어린 나이임에도 지부장의 위치에 오른 이유가 있었다.
무르카인 황제는 기분이 좋은지 호탕하게 웃었다. 이제까지 소화되지 않았던 것들이 모두 내려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하하하하! 드디어 때가 온 것인가!”
“그렇습니다. 황제 폐하!”
휼턴 재상이 헥토르 왕국으로부터 온 협약내용을 알려주자 기분이 좋아진 무르카인 황제였다. 이제까지 들인 공이 허탕은 아니었던 것이다. 헥토르 왕국이 넘어올 수밖에 없는 매력적인 제안을 했으며, 그에 대한 보상까지 마련해 주었다. 만약 이 정도로 했는데도 넘어오지 않는다면 쓴맛을 보여 주려고 했었다.
“예상대로야!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지.”
“황제 폐하의 식견에 놀라울 따름입니다.”
무르카인 황제가 호탕하게 웃다가 미소를 거두었다. 눈빛에는 차가운 기운이 서리고 있었다.
“어차피 쓰다가 버려질 놈들이다. 쓸 수 있을 때까지 사용해 주어야 섭섭하지 않겠지. 준비는 얼마나 진행이 됐지?”
“준비는 거의 다 되어 가고 있습니다. 명령을 내려주신다면 지금이라도 출정이 가능합니다.”
“알지. 그러나 서두를 필요는 없다. 지난번 복수를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보다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니 말이야.”
무르카인 황제는 지난번 실패를 교훈 삼아 한 가지를 배울 수 있었다. 바로 인내와 준비였다. 스스로도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인내를 보여 주고 있었다. 그의 원래 성품이 무척이나 급한 것을 생각하면 놀라울 따름이었다.
“카이로만! 잘난 체하는 것도 여기까지다! 네놈들이 믿고 있던 세상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똑똑히 보여 주마!”
진득한 살기가 배어 나오는 무르카인 황제였다.
세상을 먹어치우려는 탐욕스럽고, 간교하기 짝이 없는 뱀과 같았다.
가르딘이 지시한대로 병사훈련소의 병사들이 기초적인 훈련에서 시작해서 응용훈련까지 교관에 의해서 정확하게 진행되어 갔다. 교관으로 부단장인 유타와 갈라가 임명되었다. 그들은 병사훈련교관으로서 지금까지 사용이 된 카이로만 제국의 병력운용을 집중적으로 가르쳤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지만 점차 적응이 되어갔다.
척! 척! 척!
열과 줄이 정확하게 맞아 들어갔다. 군대의 병법운용에서 필요한 보병들의 움직임을 중점적으로 연습하고 있었다. 앞으로 가는 1열 병력이 돌진을 하면 그 뒤로 2열이 등 뒤를 잡아주어 균형을 잃지 않도록 했다. 돌진하는 자가 병력을 맞아 싸우다 지치면 뒤로 물러서고 그 뒤의 열이 다시 전투를 벌인다.
.“전군 돌진!”
“와아아아!”
우렁찬 함성이 대지를 들었다 놨다 반복했다. 훈련은 반복의 미학이라고 불린다. 머리로는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몸이 기억해야 전투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유타와 갈라였다.
낙오되는 병사를 보자 소리를 질렀다.
“똑바로 달려라! 이를 악물어라! 어영부영 있다가 죽는다면 그 뒤의 병사들이 죽는다! 빨리 움직여! 빌어먹을 놈들아!”
갈라의 걸레 같은 말발이 발휘가 되었다. 일단 하루 종일 욕으로 시작해서 욕으로 끝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갈라였다. 어찌나 더러운 말을 아는지 귀족인지 심히 의심이 가기도 했다.
훈련 도중에 모든 병사들이 다 잘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왜 소리를 지르는가! 한 명의 편의를 봐주게 되면 또 한 명을 봐줘야 한다. 그렇게 되면 전체의 군기가 엉망이 된다. 하나를 다그쳐서 전체의 군기를 확고하게 잡을 수 있기에 소리를 치고 벌을 주는 것이다.
퍼퍽!
“빨리 못 움직여! 죽고 싶어!”
낙오되는 놈의 엉덩이를 걷어차는 유타였다. 인정사정없었다. 병사들에게 유타와 갈라는 가히 악마와 같았다. 사람을 어찌나 지독하게 굴리는지, 하루 종일 훈련을 하다 보면 입에서 단내가 풀풀 풍긴다.
더군다나 유타와 갈라는 지독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병사들 중 가장 늦게 들어온 녀석을 갈구는 대신에 윗고참을 갈군다. 그것도 모두가 보는 가운데서 말이다.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갈굼이 위에서 아래로 움직여 나간다. 그럴 때마다 군기는 더욱 강해진다.
상당히 치사하고 안타깝지만 시간이 없는 상황이라 유타와 갈라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실행했다. 유타와 갈라는 동시에 생각했다.
‘사람이 할 짓이 아니지만 어쩌겠니?’
‘지금 흘리는 땀이 나중에는 네놈들의 생명을 구하게 될 것이다.’
멀리서 가르딘이 병사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보면서 지나갔다. 유타와 갈라가 알아서 제대로 해주고 있는 상황이라 딱히 자신이 뭐라 나서지는 않았다.
‘잘하고 있군. 그럼 진법이 잘 설치가 됐나 가볼까.’
파멜라에게 가다가 병사훈련소에 들른 가르딘이었다. 원래의 목적지를 찾아서 걸음을 옮겼다.
파멜라는 드워프들과 같이 진법을 설치하고 있었다. 넓은 범위에 설치를 하려고 하니 시간이 제법 들어가는 편이었다.
다크 랜드 성벽 앞에 펼치려는 진보다는 몇 단계 위의 진법을 설치 중이었다. 몬스터와 사람은 생각하는 것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치밀하게 만들어 놓을 필요가 있었다.
“제가 서 있는 지점을 중심으로 5미터 간격으로 진법의 축과 연결이 되는 곳을 연결하세요.”
진법의 공간이 넓어지게 될 경우, 위력이 제대로 발휘되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파멜라는 진법의 중심축을 기점으로 흐름이 끈기지 않도록 작은 축은 여러 개로 나누어서 설치를 할 생각이었다. 흐름은 연결이 중요하다. 연결되지 않은 흐름은 도중에 흩어질 수 있다.
“만든 축이 주변 지형과 차이가 나지 않아야 해요!”
“물론이오.”
드워프들을 이끌고 있는 멘돌프 장로가 파멜라에게 들은 내용을 드워프들에게 일일이 설명해 주었다. 설명에 따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움직이고 있는 드워프들이었다.
진법의 축들이 겉으로 눈에 띄게 되면 나중에 적들이 문제를 파악하고 축들을 부술 수도 있다. 주변지형과 어울려야 적들이 의심을 하지 않을 것이다. 진법을 구축하면서도 문제점을 파악하고 꼼꼼하게 신경을 쓰는 파멜라였다.
정확한 지시를 내리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이 마치 공연을 보는 것처럼 착착 맞아갔다. 파멜라가 지시하는데 정신을 팔고 있는 사이에 가르딘이 다가왔다.
“잘 되고 있나?”“거의 다 되어가고 있어요.”
“진의 구성은 어떤 것으로 한 것이냐? 내가 말한 대로 되어 가는 거겠지.”
“물론이에요. 조화진과 환영진에 변환진을 섞었어요. 마지막으로 구성하는 진만 완성이 된다면 깜짝 놀랄 일이 벌어질 거예요.”
파멜라는 진법이 완성되었을 때를 생각하며 들떠 있었다. 그녀 스스로 만들어 놓은 진법이기에 애착이 가고 있었던 것이다. 마법을 포기해야 했던 아픔이 큰 만큼 진법에 대한 자부심이 높아져갔다.
“그보다 영지의 경영은 잘 되어가나요?”
“네가 선택한 녀석들이 제법 빨빨거리며 잘하고 있더구나.”
한동안 진법을 구축하는데 만전을 기하기 위해 이곳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었던 파멜라였다.
파멜라는 며칠 동안 목욕도 하지 못했다. 여인으로서 몸을 깨끗이 하고 화장하는 것은 본능이었다. 그런 본능보다 진법 일에 만전을 다하는 모습이 애처롭게 보이기까지 했다. 그에 반해 가르딘의 모습은 말끔했다.
다른 누구보다 한가하게 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미안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한가한 것도 맞는 말이니 말이다. 일을 다 시켜놓기만 했으니 정작 입으로 몇 마디 하는 게 고작이었다. 세상에서 이처럼 한가한 영주 있으면 나와 보라고 소리쳐 보고 싶을 지경이다.
그래서 한마디 거들었다.
“고생이 많구나.”
“아니에요.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에요. 저는 제가 만든 진법이 완벽하게 운용이 됐으면 해요.”
“그래도 너무 무리는 하지 마라. 형수님이 걱정하는 것을 보고 싶지는 않으니 말이야.”
록산느 부인이 걱정한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자신의 딸을 며칠 동안 보지 못했으니 걱정이 되는 것은 당연했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일은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서는 알지 못하는 끈끈한 정과 사랑이 이어져 있었다.
한 정과 사랑이 이어져 있었다.
“제 몸은 제가 알아서 챙길 수 있어요.”
“알겠다. 진법설계가 끝나고 너를 위해 선물을 주마.”
가르딘은 진법의 운용과 생문에 대해 파악을 하고, 이동경로까지 확인했다. 진법을 만드는 것은 파멜라이지만 실제적으로 사용하는 인물은 가르딘이었다. 병력을 운용하여 어떤 전술을 펼칠지는 가르딘의 의중에 달려 있었다
.‘그럼 제조를 해볼까나.’
가르딘이 만들려고 하는 것이 시일이 걸리는 작업이었다. 쉽게 마무리를 짓는 작업이 아니기에 미리 발키리 영지의 준비를 확인해야 했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작업이 끝나면 영지의 기사단은 몇 배로 강해질 것이 분명했다.
가르딘이 자신의 저택 지하로 내려왔다. 이제까지 다크 랜드를 오가면서 틈틈이 약초를 캐서 가지고 왔었다. 안젤리카를 동반해서 약초를 구하고 그 약초의 성분을 파악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지하실은 외부와는 철저하게 격리가 되어 있었다. 삼중의 철문으로 보완을 위한 장치였다. 가르딘이 보완 장치를 설치한 것은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영지의 주인이 되면 외부와의 격리시설이 있기 마련이다.
그에 대한 보완장치로 삼중 방어 장치는 별달리 특별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더욱 많은 보완장치를 하는 귀족들도 있었다. 흔히 뒷구멍으로 많이 처먹은 놈들이 숨기는 것이 많아서 보완장치를 십여 개씩 해놓기도 한다.
가르딘이 지하실의 마지막 보완이 된 철문을 열자 시큼하면서도 청아한 약재의 냄새가 풍겨왔다.“준비는 모두 끝났으니 이제 섞어 볼까나.”
가르딘이 만들려는 것은 오러 볼이었다. 신마의 지식에 남아 있는 말로는 기단 혹은 영단이라고 불릴 수 있다. 그렇지만 가르딘은 오러 볼이라는 말이 가장 괜찮다고 판단했다. 오러 볼은 자체적으로 오러를 가지고 있어, 몸 안의 오러와 만나 증폭을 시켜준다.
물론 별 볼일 없는 약재를 섞어서 제조해낸 오러 볼이 특별한 능력을 발휘하지는 않는다.
오러 볼은 여러 개의 약재를 섞어서 만드는 것이 보통이다. 한 개의 약재가 가지는 효능이 뛰어나다고 해도 그 약재를 정제하고, 증폭을 시켜줄 수 있는 약재가 필요하다. 또한 일반적으로 무리 없이 먹기 위해서는 중요 약재를 통제할 수 있는 약재도 넣어야 한다.
가르딘은 가장 중요한 약재를 한쪽에 고이 모셔 놓았다.
바로 만년석균이었다. 오랜 기간 지력과 더불어 특수한 기운을 받아 형성된 이끼였다. 만년석균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엄청난 오러 상승을 가져올 수 있다. 여기에 가르딘이 가져온 약재를 섞게 되어 정제만 된다면 더욱 더 뛰어난 오러 볼이 나올 것으로 예상이 된다.
가르딘은 라이젠의 레어 있는 만년석균을 모두 채취해서 가져왔다. 주변에 떨어진 쪼가리들까지 박박 긁어서 가져왔다.
가르딘이 알지 못하는 사실이 있었다. 만년석균이 라이젠의 레어에서 형성이 된 이유가 바로 드래곤나이트의 신기 때문이다. 기운이 점차적으로 땅에 스며들어 이끼로 전이되어 만년석균이 탄생했던 것이다.
“우선은 약재를 집어넣고 끊여야겠지.”
항아리에 약재를 넣고 물을 조금씩 넣었다. 너무 많은 물을 넣지는 않았다. 약재 자체적으로 약물이 있기에 많은 물은 효과를 중화시킬 수 있다. 뭐든지 적당히, 그리고 적당량을 집어넣어야 제대로 된 효과를 낼 수 있다.
가르딘은 약재를 다듬고, 끊이면서도 천룡무상신공을 운용했다. 원래 단약제조는 연단술에 기초를 둔 작업이다. 따라서 도가 계열의 비술을 배워야만 익힐 수 있는 제조술이었다.
하지만 가르딘의 경우, 그러한 도가 계열의 연단술을 알지 못한다. 지금 그가 하는 행위는 신마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단약제조술이었다. 도기 또는 선기를 바탕으로 하는 제조술과 다르게 신마는 천룡무상신공을 운용하여 내가기공으로 단약을 제조하였다. 천룡의 기운이 약재의 기운을 하나로 융합하고, 무상의 신공이 효과를 증폭시킨다. 마지막으로 쓰고 남은 탁한 기운을 모아서 배출시킨다.
내공으로서 약재의 기운을 다스리는 무식한 방법이었다.
다만, 가르딘은 절대 무식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도기나 선기를 닦으려면 수십 년 동안 고된 수련을 해야 한다. 산속에 처박혀서 그런 수련을 한다는 것은 가르딘에게 고역 중에 고역이다. 사랑하는 라이나와 브리안을 두고 홀로 독야청청, 면벽수련을 왜 한단 말인가! 오히려 그게 더 무식해 보이는 가르딘이었다.
‘10일이다!’
가르딘은 홀로 이곳에서 10일 동안 단약제조를 위해 고생해야 했다. 솔직히 몸이 힘든 것보다 라이나를 보지 못하는 것이 더욱 힘들었다.
가르딘이 만드는 단약제조술도 도가의 연단술과 마찬가지로 집중이 필요하다. 한순간 흔들림으로 인해 약효가 극도로 떨어질 수 있었다.
“후우우! 흐읍!”
호흡을 일정하게 했다. 내쉬고, 들이쉬고를 반복하며 오러 볼의 기운을 살피는 가르딘이었다.
‘쉽지 않네.’
당연히 쉽지 않은 일이다. 도가의 연단술을 통한 영단생산에서 위험한 이유는 선천진기의 소모로 인해 생명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목숨과 바꿔 연단을 한다는 말이다. 그런 일을 쉽게 생각한다면 날로 먹는 도둑놈 심보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심력을 소모하며 만들은 오러 볼을 누군가에게 줘야 하는 가르딘의 마음은 쓰리고 있었다. 솔직한 심정으로 라이나와 브리안에게만 주고 싶었다.
‘안 돼! 심마에 들어서는!’
흔들리는 정신을 다시 가다듬었다.
그랜드 마스터에 이른 가르딘의 집중력은 무서울 정도다. 천룡무상신공을 지속적으로 운기함에 따라 기운이 사방으로 휘몰아쳤다. 가르딘이 지하에서 연단을 하는 이유가 집중을 위한 것도 있지만 기운이 외부로 뻗어나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기도 했다."
10일이 지났다.
가르딘의 오러 볼 연단이 마지막을 치닫고 있었다. 10일 동안 끊임없이 천룡무상신공을 운용했다. 연단의 9일째 되는 날 오러 볼을 형성시켰다. 작은 구슬 정도 크기의 영단이 무려 105알이나 되었다.
만년석균의 영력이 스며들어 있기는 하지만 분산을 너무 많이 시켜서 원래의 위력보다는 떨어지는 편이다. 그래도 보통의 단약보다는 뛰어난 효능을 보일 것으로 예상이 된다.
마지막에 천룡무상신공으로 영력이 오러 볼 안으로 완벽하게 자리 잡도록 만들었다.
“후우우!”
한 번의 호흡이 끝나고 나자 가르딘이 눈을 떴다. 무척이나 고된 작업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눈을 뜬 가르딘은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오러 볼을 만드는 가운데 형성된 기운이 가르딘의 천룡무상신공과 같이 혼합이 되어 몸이 더욱더 개운해졌다.
“이건! 설마!”
전부터 막혀 있었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는데, 그 막힌 부분을 뚫어 버린 것 같았다. 천룡무상신공이 극의에 이르게 되면 천룡신이 이루어진다. 완벽한 천룡신은 어떤 상태에서도 완벽한 힘을 내며, 무너지지 않는다고 한다.
“어떻게?”
왜 갑자기 무공이 상승했는지 파악하지 못했다. 가르딘은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천룡무상신공을 쉬지도 않고 10일 동안 운기한 경우가 이번이 처음이었다. 시간적으로 봤을 때 10일이 지났다고 생각하지도 못할 정도다.
또한 만년석균과 여러 약재들이 뿜어내는 기운이 천룡무상신공과 같이 흡수가 되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천룡무상신공을 세밀하게 다루는 작업을 계속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한 단계 앞으로 진보한 것으로 판단을 내렸다
.“강해지면 좋은 거지.”
더 생각하기도 머리 아팠다. 좋은 일은 좋을 일로 치부하는 게 장수하는 비결이다. 그걸 가지고 깊게 고민하면 대머리 되기 십상이다.
가르딘은 105알의 오러 볼을 살폈다. 모두 제대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였다. 그 중에 유독 3알이 시커먼 데다가 크기가 컸다. 한입에 넣으려면 무지하게 힘들 것으로 보인다. 그걸 보면서 입꼬리를 올리는 가르딘이었다.
‘시험해 봐야겠어.’
가르딘의 시선이 오른쪽 모퉁이에 기대어진 포대자루에 갔다. 포대 안은 처음에는 비어 있던 것이지만 가르딘이 오러 볼을 제조하는 동안 따로 모아 놓은 것을 하나로 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