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장 감도는 전운@@]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가뭄이 든 헥토르 왕국이었다. 헥토르 왕국은 카이로만 제국의 서부지역에 자리한 왕국이다. 4백만에 달하는 인구를 가지고 있어 왕국 중에서도 큰 왕국에 속한다. 또한 30만에 달하는 군대를 보유하고 있다.
카이로만 제국과는 영원한 우방으로 자리하고 있는 헥토르 왕국이지만 근래에 힘든 상황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매르틴 떼의 공격으로 인해 밀 농지가 폐허가 되어 버렸다. 매트틴은 작은 곤충이지만 수가 너무 많고, 식물을 뜯어먹는 습성상 한번 휩쓸고 지나가면 모든 것이 폐허가 되어 버린다.
심각한 식량난을 겪고 있었다. 100년 동안 가뭄이 없었던 헥토르 왕국으로서는 곤혹스럽기 짝이 없었다. 당장 각 제국과 왕국에서 식량을 수입하고는 있지만 쉽지 않은 일이 되고 있었다. 식량은 국력에 비례한다.
이런 상황에서 헥토르 왕국이 약해지기를 바라는 곳이 있기 마련이며 더군다나 폭리를 취하는 상단이 있는 상황에서 왕국의 악재는 계속 겹치고 있는 실정이다.
헥토르 왕국의 왕성.
왕궁에서는 매일 가뭄과 기근에 대한 회의가 진행되어지고 있었다.
헥토르 왕국의 사이너스 국왕은 대책 마련을 위해 귀족들에게 고함을 질렀지만 딱히 방법이 없어 보였다.
“라이니언께서 우리를 너무 괴롭히시는구나!”
사이너스 국왕의 이마에 주름이 깊게 폐였다. 왕궁회의를 마치고 대전을 빠져나가는 사이너스 국왕이었다. 사이너스 국왕은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잠을 이루지 않았다. 그는 즉시 국왕직속 집무실로 들어갔다.
집무실에서는 대전회의에 있었던 칼슈타인 공작이 대기하고 있었다. 칼슈타인 공작은 헥토르 왕국에 존재하는 두 명의 오러 마스터 중에 한 명이었다. 또한 사이너스 국왕과는 오랜 시간 동안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친구이기도 했다.
사이너스 국왕이 들어오자 일어서서 맞이하는 칼슈타인 공작이었다.
“앉지.”
“예, 국왕 폐하!”
사이너스 국왕이 물었다.
“코카 제국에서 은밀히 사신을 또 보내왔다고?”
“그렇습니다. 이번에는 상당히 구체적인 제안을 해왔습니다.”
코카 제국의 사신이 비밀리에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전에도 사신을 보내 협의를 한 적이 있었다. 지금까지 단도직입적으로 거절하지는 않았지만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었다.
“제안의 내용은?”
“카이로만 제국의 서부지역 일대를 모두 준다는 내용입니다. 또한 무상으로 밀 50만 포대를 보내주겠다고 했습니다.”
“음!”
코카 제국에서 헥토르 왕국의 가뭄을 파악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당장 필요한 식량이 엄청났다. 1포대가 아쉬운 상황에서 50만 포대는 쉽게 거절할 수 없는 이유를 만들어 주었다.
“공작의 생각은 어떤가? 이 제안을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사이너스 국왕이 칼슈타인 공작의 생각을 물었다. 전쟁이나 국제관계에 있어서 칼슈타인 공작은 대단히 뛰어난 감각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사이너스 국왕이 중요한 과제에 있어서는 항상 칼슈타인 공작과 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가 작용했다.
“카이로만 제국은 대륙 최강국입니다. 코카 제국이 그에 비견된다고 하지만 실제적인 힘에서 결코 카이로만 제국에 우위에 서 있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번 일은 나라의 국운이 달린 일입니다. 만약 전쟁에서 패한다면 생각하기도 싫은 재앙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네는 거절했으면 하는가?”
칼슈타인 공작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답을 내었다.
“바로 결정을 해서는 안 됩니다. 현 시점에서 카이로만 제국은 내정이 불안합니다. 코스트너 황제의 경우 이미 노안으로 인해 기력이 떨어져 있다고 전해집니다. 결국 다음 대 황태자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더군다나 코카 제국의 경우 만반의 준비를 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이유는 카이로만 제국의 뒤를 견제해서 제대로 된 전략을 수립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방책입니다. 여기서 바로 거절하게 될 경우 뒤탈이 너무 큽니다.”
“이것도 저것도 모두 힘들군.”
국제관계의 어려움이다. 어느 것 하나 쉬운 결정이 없다. 또한 결정된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 사실이었다. 결정한 것이 반드시 옳다는 보장도 없기에 어려운 것이다.
“시간이 조금 더 있습니다. 코카 제국도 바로 전쟁을 시작하지는 않을 겁니다. 남은 시간 동안 카이로만 제국에 셰도우 나이트를 보내 정보를 더 얻어내야 합니다. 또한 전쟁의 성패에 따라 얻게 될 발키리 영지에 대한 조사를 해야 합니다. 다크 랜드의 위협을 받은 곳인 그곳을 우리가 얻는다고 했을 때 이익이 되는지를 따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셰도우 나이트는 헥토르 왕국이 전문적으로 키운 어둠의 기사들이다. 그들은 각 제국과 왕국에 파견되어지고, 염탐과 정보 수집을 목적으로 일을 수행한다. 일단 중요한 정보를 파악해서 왕국으로 보내고, 그 성과가 있을 시 셰도우 나이트는 왕국의 기사단으로 편입이 되어 공을 인정받게 된다.
그렇기에 셰도우 나이트는 어떻게 해서든 공을 세우기 위해 노력한다. 기울어진 가문을 가진 귀족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코카 제국과 협상을 한다면 과연 그들이 약속대로 해줄까?”
코카 제국의 협상에 대한 일도 문제였다. 그들이 반드시 들어준다는 보장이 없다. 주변국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들어주지 않을 수 없겠지만 힘의 관계가 성립되는 국제관계에서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상대국을 견제할 수 있는 수단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코카 제국의 황제 무르카인은 탐욕스러운 존재입니다. 그는 목적을 위해서 수단방법을 가지리 않는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사실 지난번 카이로만 제국의 공주습격사건은 코카 제국에서 벌인 일입니다. 그들 스스로 아니라고 하지만 사실일 겁니다. 전쟁에 승리를 한다고 해도 쉽게 승리하면 절대 안 됩니다. 코카 제국의 국력이 소모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 헥토르 왕국이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님을 알려야 합니다.”
“그렇겠지. 결국 그걸 사용해야 할지 모르겠군.”
“그렇습니다. 헥토르 왕국을 지탱하는 최후의 병기를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완벽하지 않다고 보고되었을 텐데.”
“궁정 마법사 멜버른 후작이 모든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제대로만 이루어진다면 근 시일 내에 움직일 수 있을 것입니다.”
사이너스 국왕의 눈에 기광이 번쩍였다. 숨죽이고 있던 본성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사이너스 국왕 역시 패왕의 자질을 가진 인물이다. 카이로만 제국과 코카 제국이라는 거대한 제국이 버티고 있기에 숨죽이고 있을 뿐이었다.
“시작이 어찌되었던 발키리 영지가 먼저겠지.”
“발키리 영지에는 특이하게 3명의 오러 마스터가 존재합니다.”
“3명이나! 설마 카이로만 제국이 우리를 의심한다는 말인가?”
헥토르 왕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오러 마스터를 파견했다면 지금까지의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었다.
“정확한 연유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그건 아닐 겁니다. 견제하려면 병력도 파견했을 겁니다. 오러 마스터가 아무리 강해도 발키리 영지의 기본병력이 2만이 되지 않습니다. 30만에 달하는 우리의 병력을 막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왜 오러 마스터가 3명이나 있는 것인가! 자네는 알겠는가?”
“제가 예상하기에 지난번에 벌어진 몬스터 대침공을 대비하기 위한 것 같습니다. 그 이유 이외에는 딱히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정확한 이유를 알기 위해서 셰도우 나이트를 파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가뭄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는 실정일세. 귀족들과 백성들의 불만이 안으로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이야. 한시라도 빨리 답을 내도록 해야 하네.”
천재지변으로 인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러한 모든 일이 왕의 잘못으로 생겨난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질 수 있었다. 불만은 쌓여갈수록 곪아간다. 그런 불만을 터뜨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전쟁이었다.
철퍼덕!
“크앗!”
단 한 방에 나가떨어졌다. 게으름 피우다 걸린 놈의 최후였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거대한 덩치를 가진 그들의 대장은 무식하기 짝이 없었다.
고작 17살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지경이다. 17살이 저렇게 덩치 크고 독한 경우는 처음 보았다. 화를 낼 때 투르의 모습은 마신에 비견되었다.
쓰러진 녀석은 토니라는 놈이었다. 잠깐 창을 휘두르다가 힘들어서 쉬고 있는데 어느새 나타난 투르의 일격에 맞아서 나뒹굴렷다.
맞은 상태로 옆구리를 붙잡고 고통을 호소했다. 그러나 누구 하나 도와주는 이 없었다. 이미 투르의 무서운 힘을 경험하고도 남았다. 500명이나 되는 한 가닥하는 자신들을 쉴 새 없이 패대기쳐 버린 대장이었다. 상대가 전혀 되지 않았다. 깡도 상대를 봐가며 부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뒹굴던 토니의 앞에 가서 투르가 말했다.
“게으름 피우지 말라고 그랬지.”
“제…가 잠시 미쳤나 봅니다!”
“반성하는 것 맞지.”
“물론입니다. 진정으로 반성합니다!”
“그럼 됐어.”
“감사합니다. 그럼 제자리로 가겠습니다!”
토니가 일어서서 가려고 했다. 그런데 갈 수 없었다. 뒤에서 투르가 그의 뒷목을 잡았기 때문이다.“누가 가라고 했어.”
“대장님이 용서를 해주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용서는 용서고, 벌은 받아야지!”
움찔!
토니가 기겁했다. 벌이라는 것이 맞는 것이 아니었다. 때리는 것보다 더 무서운 형벌이 기다리고 있었다. 저걸 당하면 며칠 동안 고생하게 된다.
“입 벌려!”
“제발!”
“한번 말할 때 들어라! 죽도록 맞기 싫으면!”
“대장님! 한 번만 봐주십시오!”
투르는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한 손으로 토니의 턱을 잡더니 입을 강제로 벌렸다. 투르는 왼손으로 지면에 널린 흙은 한 움큼 집었다. 그리고 토니의 입에 강제로 흙을 퍼 먹였다.
“쿠…웩!”
들어가지 않는 흙을 강제로 세 움큼이나 먹게 된 토니는 온몸으로 지랄발광을 했다. 그러다가 기절했는지 몸이 축 늘어져서 바닥에 쓰러졌다. 힘이 빠진 토니가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죽은 게 아닌가 걱정이 될 지경이다.
“흙 먹고 죽었다는 소리 들어보지 못했다. 빨리 안 일어나면 개똥을 먹여 줄 테다.”
벌떡!
언제 기절했냐는 듯이 벌떡 일어난 토니였다. 사실 더 먹일까 봐 기절한 척한 것뿐이었다. 살려면 무슨 수든 쓰는 인간 군상들이었다. 흙을 먹기 싫어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항문이 찢어지는 고통 때문이다. 흙이 소화가 되지 않아 똥구멍이 무척이나 아프다.
크레이지 드래곤 창기병의 모든 대원들은 투르의 말에 절대적으로 따른다. 그가 생각하는 방법이 무척이나 두렵고, 무서웠기 때문이다. 따라서 투르의 말이면 무엇이든 따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멀찍이서 지켜보고 있던 가르딘과 라이젠은 기가 막혔다.
훈련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어서 기쁘기는 하지만 투르의 무식한 행동은 이해불가였다.
“어디서 저런 놈을 주워 온 거냐?”
“그래도 수련을 잘 이루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참 너다운 놈을 데려왔다.”
“그것보다 말은 제대로 타고 있는 겁니까?”
“한동안 말썽이었지만 이젠 다들 제법 잘 탄다.”
창기병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창법과 더불어 말이다. 말을 제대로 타야 한다. 바람처럼 빠르게 달려 적을 섬멸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다.
가르딘은 크레이지 드래곤 창기병에게 창격술을 하나 가르쳤다. 그것은 바로 광룡 창법이라고 불리는 창격술이었다. 일명 크레이지 드래곤 랜스라고 불린다. 가르딘이 가르치는 것들 역시 모두 광폭한 기술의 연속이었다.
크레이지 드래곤 창기병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들이다. 이놈들이 무서울수록 전투에서는 더욱더 무서운 위력을 발산할 것으로 기대가 되었다.
“이름을 붙여도 크레이지 드래곤 창기병이 뭐냐!”
듣는 드래곤이 무척이나 기분 나쁜 이름이었다. 미친 드래곤이라는 뜻이 아닌가! 라이젠의 심기가 좋지 않았다.
“왜 그러십니까! 멋있기만 하구먼.”
“멋있기는 개뿔!”
쿵! 쿵! 쿵!
가르딘을 본 투르가 달려왔다. 덩치가 커서 소리가 대단히 컸지만 몸집에 비해 속도가 상당히 빨랐다. 바로 앞에서 달려오는 투르의 모습을 보면 저절로 위축이 될 정도로 위압감을 발산했다.
가르딘과 라이젠이 아니라면 모두 움찔하거나 뒷걸음질 칠 수준이었다. 특히 광천패황신공이 점차 발전할수록 뿜어내는 기운도 강렬했다.
“영주님 오셨습니까!”
“오냐! 아주 잘하고 있구나!”
“감사합니다.”
투르가 해맑게 웃었다. 가르딘의 칭찬에 몹시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이럴 때 보면 영락없는 17살이었다.
“라이잰 님도 오셨습니까?”
“그래.”
투르는 라이젠을 어려워했다. 처음에는 뭣 모르고 함부로 대한 적이 있었다. 라이젠의 정체를 모르기에 함부로 대한 것이다. 어린놈에게 함부로 대한다는 느낌을 받자 라이젠은 심기가 불편했다.
유희라는 생각에 참으려고 했는데, 도저히 참지 못하는 일이 발생했다. 딸이 보고 있는 상황에서 무시당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아버지 입장에서 절대 보여 주고 싶지 않은 일이 발생했다.
-너 나 좀 보자!
-왜 그러는데!
투르를 끌고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서 일을 벌였다. 함부로 대하지 못하도록 철저한 교육을 시켜주었다. 그 뒤로 투르는 절대 건방지게 행동하지 못했다. 오히려 가르딘 다음으로 가장 어려워하는 대상이 되었다.
가르딘이 없을 때 모든 교육은 라이젠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전술훈련에 있어서도 라이젠이 제법 도움이 되었다. 기초적인 것에서 시작해서 어려운 것까지 제대로 된 훈련이 되고 있는 상태였다.
“앞으로도 열심히 해주기 바란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라이잰도 수고해 주기 바라네.”
“알겠습니다. 영주님!”
가르딘은 창기병의 수련을 확인하고 난 후 산을 내려갔다. 이들을 위해서 이곳에 집을 지어 준 상태였다. 식량은 모두 아랫마을에서 공수를 해서 갖다 주었다. 훈련을 위한 최적의 상태를 만들어 주었다. 다른 것은 신경 쓰지 않고 훈련에만 매진할 수 있도록 했다.
발키리 영지의 켈코인 마을은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축제이름은 고구마축제였다. 마을의 작물 중에서 밀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소출을 내고 있었다. 가르딘이 시범적으로 구축한 첫 번째 마을이기에 기념을 하고 있었다. 고구마를 이용해서 여러 가지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서 축제에 사용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것은 고구마 케이크였다. 고구마가 자체적으로 당분이 많아서 적절하게 케이크와 혼합을 하니 그 맛이 일품이었다.
사람들이 웃고 떠들며 즐겁게 축제를 벌였다. 다크 랜드와 인접하기에 항상 불안했었지만 새로운 영주가 오면서 두려움이 많이 사라졌다. 오러 마스터가 지켜주는 곳이기에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또한 새로운 작물을 키울 수 있게 해주었다. 그로 인해 소출이 늘어나니 자연스럽게 마을은 활기가 넘쳤다.
사람들 사이로 한 사내가 들어가서 자연스럽게 마을사람들과 얘기를 나누었다.
“활기가 넘치는 게 보기가 좋습니다. 이유가 있습니까?”
“처음 보는 사람인데! 자네는 여기 사람이 아닌가 보군.”
“그렇습니다. 살기 좋다는 말을 들어서 이곳에 정착을 해보려고요!”
“그렇지, 예전보다 지금이 훨씬 좋아졌지.”
노인은 청년의 말에 전혀 의심을 하지 않았다. 마을을 자랑하면서 발키리 영지에 일어난 일들을 모두 말해 주었다.
“영주님이 대단히 좋은 분인가 보군요!”
“그렇지, 다크 랜드의 침입을 용감히 막아주셨고, 노예를 사서 그 앞으로 개척하시고 있으니 말이야!”
“이제는 몬스터의 습격도 없나 보군요?”
“거의 없지. 있어도 오면 바로 죽을걸. 발키리 영지야말로 가장 살기 좋은 곳이 될 걸세!”
“그럼 저도 여기에 정착을 해야겠습니다.”
“잘 선택한 거네! 그런데 이름이 뭔가?”“올슨이라고 합니다.”
“나는 바이트라고 하네, 도움이 필요하면 나를 찾아오게. 내 이래 봬도 이 마을에서 방귀 좀 뀌네!”
“감사합니다. 바이트 어르신!”
올슨은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인파들 사이를 빠져나갔다. 지정된 장소를 찾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올슨의 얼굴은 상당히 평범했다. 그렇지만 눈빛만은 날카롭게 주변을 관찰하고 있었다. 사람이 없는 한적한 장소로 들어간 올슨은 이미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과 접촉했다.
“5호! 동정은 다 살펴봤나?”
올슨을 향해 5호라고 말을 하고 있었다. 이들의 이름은 불려지지 않는다. 나중을 위해서 모두 번호로 부르고 있었다.
“물론. 너희들은?”“우리도 대부분 살펴보았다.”
“듣던 것과는 달랐어!”
“그렇더군.”
“몬스터와 마수들의 침입으로 위험한 영지라고 알고 있었는데 말이야!”
다크 랜드와 인접한 발키리 영지에 대한 소문은 거의 대부분이 좋지 못했다. 그런 줄 알았고,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직접 정보를 수집해 보니 상황은 전혀 달랐다. 발키리 영지는 대단히 훌륭한 영지였다. 앞으로의 발전가능성도 무궁무진했다.
“지금까지 수집한 정보를 4호가 본국으로 전하고, 우리는 지속적으로 정보를 수집한다. 가장 시급한 발키리 영지의 군사력을 살펴봐야 한다. 영지 내에 수비병은 2만이라고 하지만 더 있을지 모르니 샅샅이 살펴야 해! 알겠지.”
“물론.”
“각자 맡은 바 임무를 잊지 마라. 또한 실패하면 어떻게 하는지 알고 있겠지.”
“안다.”
-조국을 위해!
-조국을 위해!
실패는 목숨이었다.
붙잡히게 될 경우 반드시 죽어야 했다. 그것이 그들의 사명이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이제까지 해온 노력이 모두 수포로 돌아간다. 마지막으로 구호를 조용히 외치며 뿔뿔이 흩어졌다.
가르딘과 파멜라는 진법설치를 위해서 영지 외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병사들을 따로 데리고 가지는 않았다. 진법설치를 하는 곳은 영지와 꽤 떨어져 있어서 그곳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가면서 처리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 의논했다.
“병사훈련소를 만드는데 들어가는 돈이 생각보다 많아요.”
“어쩔 수 없어. 황궁에서 연락이 왔거든. 코카 제국에서 전쟁준비를 서두르고 있다는 보고야. 지금 당장 벌어지는 일은 아니라고 해도 각 영지에 비상령을 내려놓은 상태야. 언제든지 움직일 수 있도록 준비하라는 뜻이겠지.”
“코카 제국이 전쟁을 하긴 할까요?”
“내 생각에는 할 것 같다. 코카 제국이 지난번에 공주님을 습격한 것도 전쟁을 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려는 의도가 강했을 거야. 이유도 없이 공주님을 납치하려고 하지는 않았겠지.”
발렌타인 성이야말로 전쟁을 수행하기 최적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저희 영지에서도 병력을 보내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렇지는 않을걸. 어차피 영지의 병력은 모두 다크 랜드의 수비병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알고 있을 테니 말이야. 단 나를 비롯한 기사단은 가야 할지 모르겠군.”
파멜라는 기사단이 가야 한다는 말에 낯빛을 흐렸다. 가르딘이 걱정되기도 하지만 스필언이 떠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했다. 스필언과 자신은 신분의 차이가 너무 컸다. 그걸 알기에 마음속으로 짝사랑만을 키워오고 있었다.
감정을 조절하고는 있지만 안타까운 마음까지 모두 죽일 수는 없었다. 아직 그 정도로 강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가르딘은 파멜라의 마음을 알기에 분위기를 전환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우리 제국은 대륙최강국이다. 코카 제국 따위가 상대가 될 리 없지 않느냐. 지금 너와 나는 발키리 영지의 발전을 위해서만 노력하면 된다.”
“그럴게요. 그보다 진법설치에 필요한 계산이 끝나고 기초 작업에 들어갔어요.”
“얼마나 걸릴 것 같으냐?”
파멜라는 드워프들의 공사 진행 능력에 놀랐었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계산한 대로 정확하게 진행을 하는 것이 아닌가! 손발이 척척 맞는다는 말이 드워프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많은 시간은 필요하지 않을 것 같아요.”
“하긴 드워프들의 솜씨가 대단하기는 하지.”
파멜라는 진법에 들어가는 재료와 더불어 사용된 진법에 대해서 설명했다. 가르딘은 파멜라의 설명을 듣다가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왜 그러세요?”
“너는 여기에 있어라.”
슈슉!
바람이 불었다.
파멜라는 순식간에 바로 앞에서 사라진 가르딘의 모습에 당황했다. 너무 빨라서 보이지도 않았던 것이다. 벌써 자신의 시야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파멜라는 이것이 오러 마스터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뒤에서 몰래 따라오던 인물이 당황했다. 상당히 먼 거리에서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가르딘이 사라졌다. 사라진 가르딘이 어디로 갔는지가 중요했다. 발키리 영주가 사람들의 시선 몰래 영지 밖으로 나오는 것을 보고 따라온 것이다.
“컥!”
목이 잡혔다. 가르딘이 미행한 인물의 등 뒤로 나타나 목을 잡고 있었다. 목을 잡힌 인물은 놀라고 있었다.
“어… 떻게?”
인비저빌리티(투명) 마법 아이템을 착용한 상태였다. 모습이 보이지도 않았다. 자신을 찾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더군다나 기척을 지우는 능력에 있어서는 어느 누구도 자신을 따라오지 못한다고 생각했었다. 이처럼 쉽게 잡힐 수준이 아니었다.
“넌 누구냐?”
가르딘이 상대의 마법을 해제해 버렸다. 모습을 숨기고, 기척을 숨겼다고 하지만 가르딘의 기감에 벗어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영지에서부터 미행하는 것을 가만히 놔두었다. 목적지가 같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기다린 것이다.
하지만 놈의 목표가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그냥 보낼 수 없었다.
가르딘은 놈이 상당히 혹독한 훈련을 받은 놈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이런 놈들은 쉽게 말을 열지 않는다. 우선은 제압하고 고문을 해야 할 것으로 판단 내렸다.
“쉽게 입을 열지는 않겠지. 하지만 인간의 정신력을 항상 강하지 않다. 결국 너도 입을 열게 될 것이다.”
가르딘의 말투에서는 그다지 감정의 굴곡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말투가 두렵기까지 했다. 잡힌 인물은 가르딘이 무서운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이자는 보통 인물이 아니다!’
가르딘에게 잡힌 녀석은 1호라고 불리는 놈이었다. 1호는 셰도우 나이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특급을 부여받은 인물이었다. 오러 마스터의 기감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고 자부할 정도로 대단한 은신술을 가졌다.
‘어…쩔 수 없단 말인가!’
1호는 죽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으로 인해 비밀이 누설되면 가족이 위험해진다. 차라리 혼자 죽는 것은 나았다.
“독단을 깨물지 모르니 턱관절을 뽑아 놔야겠지.”
가르딘은 전에 독단을 물은 어쌔신들을 생각해서 미리 놈의 턱관절을 빼놓았다. 일단 빼놓고 나중에 심문하기 위한 방책이었다. 상당히 까다로운 놈들이기는 하지만 고문 앞에 버티는 존재는 얼마 없었다. 그것은 가르딘이 경험했기에 가장 잘 알았다.
“응?”
추욱!
턱관절을 뽑고 이제는 안심했는데 1호가 죽었다. 이상해서 살펴보았다. 놈의 이빨에는 독단이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죽었는지 알 수 없었다. 살펴보니 심장 부근에 이상한 장치가 있었다.
“이게 뭐지?”
장치는 심장 부근에 위치했고, 마법적인 기술이 들어가 있는 것으로 보였다. 심장을 중심으로 시퍼렇게 물들어 가는 셰도우 나이트 1호였다. 심장과 직접적으로 연결이 된 독이라는 말이었다.
“참! 징그럽도록 독한 놈들일세.”
잡히게 될 경우를 대비해서 마련한 장치인 것 같았다. 가르딘이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자살을 해버렸다.
좀 전에 잡히면서 발버둥 칠 때 심장 부위를 누른 것으로 보였다. 반항하기 위한 몸부림인 줄 알았건만 죽기 위한 수단이었다.
가르딘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독을 심장에 직접 연결하는 장치도 대단한 것이지만 죽을 각오를 하고 있는 놈들이 더 큰 문제였다.
“도대체 누구지?”
자살하는 이유는 정보를 얻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가장 크다. 발키리 영지에 대해서 조사하는 것인지, 아니면 가르딘 본인을 조사하는 것인지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낌새가 무척이나 좋지 않았다. 아무래도 무언가 일이 터질 것 같았다.
‘상대가 누구든 내 가정의 행복을 깬다면 절대 그냥 두지 않겠다!’
가르딘의 눈에 살벌한 안광이 번쩍였다. 다른 것은 모두 참아 줄 수 있다. 하지만 라이나와 브리안의 행복을 깨는 것은 절대로 그냥 둘 수 없었다.
미행사건이 있은 후, 가르딘은 필리언, 갈라, 유타, 그리고 안젤리카를 따로 불렀다. 모든 사람이 아는 것은 위험했다. 준비를 하기 위한 것은 괜찮을지 몰라도 불안을 조장하면 혼란만을 초래하게 된다.
영주의 저택에는 비밀장소가 있기 마련이다. 전대부터 내려온 지하실이 있고, 그 안에 감옥과 비슷한 곳이 만들어져 있다.
가르딘은 그곳으로 그들을 불렀다.
필리언은 가르딘이 갑자기 부른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것도 남들의 눈을 피해 지하실에서 만나는 것 자체가 수상하기 짝이 없었다.
“무슨 일이야? 윽!”
코끝을 자극하는 역겨운 냄새가 지하실에서 퍼져 나왔다. 무언가가 심하게 상해서 썩어 가는 것 같은 냄새였다. 비위가 약한 이는 토악질을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뭐야! 이 역겨운 냄새는?”
“보는 바와 같다.”
가르딘이 덮어둔 천을 거두었다. 그러자 부패되기 시작하는 시체가 자리했다. 어찌나 심하게 부패가 되는지 얼굴과 전체적인 몸의 형태가 사라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어찌되었던 사람의 시체였다. 죽은 시체가 지하실에 있다는 것도 의문이지만 이 시체를 왜 보여 주는지를 알 수 없었다.
“부패된 시체는 왜 보여 주는 건데?”
“이놈이 얼마나 된 것 같으냐?”
“죽은 지 최소 한 달은 넘은 것 같은데!”
부패가 너무 심해서 형태가 보이지 않았다. 판단을 내리기 쉽지 않지만 오래된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2시간.”
“뭐라고?”
“죽은 지 정확하게 2시간이다.”
“뭐! 진짜!”
그제야 자세하게 살피는 필리언, 갈라, 유타였다. 시체가 죽은 지 2시간 만에 부패되는 경우는 거의 한가지뿐이었다. 독에 의한 중독으로 죽었을 때만이 가능하다.
“가슴에 독을 주입하는 장치라!”
“대단한데, 연금술을 독과 같이 사용했을 가능성이 큰데.”
“이 정도의 기술은 일반적으로 보급이 되어 있지 않아.”
필리언, 갈라, 유타의 의견이었다. 상당한 경험을 해본 녀석들이다. 스필언과 미토스를 부르지 않은 이유는 그들은 아직 어리고, 경험이 적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겪어 보지 않았을 것이다. 반면에 안젤리카를 부른 이유는 그녀가 드래곤이기 때문이다.
뭔가 가르딘이 모르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안젤리카, 알아낼 수 있느냐?”
“잠시 살펴볼게요!”
안젤리카가 시체에 다가서서 시체의 피부를 관찰했다. 관찰하면서 손가락으로 흘러내리는 진물을 찍어서 맛을 보았다.
필리언, 갈라, 유타가 기겁했다. 설마 독에 중독된 시체의 진물을 혀로 맛을 볼 줄 몰랐던 것이다. 누가 감히 그런 방법으로 탐색을 할 수 있는가!
“음! 산화포이즌하고 신경포이즌이 같이 쓰인 것 같네요. 더군다나 제가 모르는 독도 3가지나 더 사용했어요. 배합 수준이 제법 뛰어난데요.”
독과 독이 섞이면 더욱 강한 효과를 내는가! 그것도 아니다. 독은 한 가지 속성으로 강한 것이 더 강할 수 있다. 그런 독을 더 강화시키기 위해 다른 독을 섞게 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작은 독을 여러 가지로 배합하여 강력한 독을 만든다는 것은 독 계열 배합에 대단히 뛰어난 능력을 가져야 한다. 그런 능력이 뛰어난 존재들은 대부분 흑마법사나, 네크로맨서일 가능성이 크다. 그 중에서 네크로맨서가 산화포이즌 계열에서는 가장 독보적이다. 시체를 만지는 일을 천직으로 아니 부시독을 잘 아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대륙에서 흑마법사가 사라지면서 네크로맨서 역시도 배척을 받았다. 그로 인해 거의 극소수만이 살아 있다고 전해지고 있었다.
“결론은?”
“아무래도 네크로맨서일 가능성이 큰 것 같네요.”
역시 드래곤이었다.
마법계열뿐만 아니라 다른 계열마법과 학문에도 밝았다. 안젤리카를 데려오기 잘한 가르딘이었다.“네크로맨서라고! 놈들이 왜 이곳에 있는 거야?”
“날 미행하는 것을 잡았는데, 놈이 자살을 한 거야.”
“널 미행했다고, 이런 놈들이 널 왜 미행하느냐? 평소에 원수진 놈이 너무 많은 것 아냐!”
“뭐야! 나만큼 깨끗한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행여나!”
안젤리카는 심장 부근에 장착된 장치도 살폈다. 연금술 수준이 드래곤이 보기에도 제법 그럴 듯했다. 버튼을 실수로 누르지 못하도록 안쪽에 손이 잘 닿지 않는 부분에 위치해 있으며, 누르는 즉시 독이 심장과 바로 연결이 되도록 만들어져 있다.
즉, 가슴을 뚫어 직접 심장에 연결했다는 말이 되었다. 말은 쉬워도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다. 세밀한 능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마법사의 능력은 최소 6서클 이상일 것 같네요. 아니면 7서클 마법사일지도 몰라요. 더군다나 연금술 능력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네크로맨서와 고위급마법사. 그리고 연금술사까지. 상식적으로 이런 파티를 구성할 수 있는 곳이 얼마나 될 것 같나?”
“많이 않을 거예요.”
“그렇겠지. 최소 왕국 이상의 저력을 가지거나, 어둠의 길드 정도는 돼야겠지.”
가르딘의 말에 필리언, 갈라, 유타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었다. 상대의 능력을 파악했지만 정작 누군지는 좁혀지지 않았다. 쉽지 않은 존재들이 가르딘을 노리는 것인지, 아니면 영지를 노리는 것인지도 알아내지 못했다.
“나를 노리는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어. 하지만 놈들이 노리는 것이 무언지 알아내야 할 필요가 있겠지. 영지 내 수상한 인물들이 있는지 찾아내야 할 거야! 물론 놈들이 쉽게 잡히지 않을 거다. 투명 마법 아이템까지 소유한 놈들이라 일반 병사들이 잡아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그래서 말인데…….”
가르딘은 놈들을 잡는 것이 아니라! 찾는다는 시늉을 할 생각이다. 어차피 놈들이 움직여서 나갈 방향은 한정되어 있다. 가르딘은 어쌔신 길드를 가장 먼저 의심하고 있었다. 전에 자신이 어쌔씬 길드의 7인 중 1명을 죽였기 때문에 원수를 갚기 위해서 나타날 수도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병사들을 시켜 마을을 수색하며 놈들을 찾는 척하고, 나아갈 방향에 기사단을 파견하자는 말이야.”
“그래. 만약 이놈 1명이라면 상관없겠지만 더 있다면 놈들도 들켰다는 생각을 할 거야! 그렇다면 나와 영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놈들일 가능성이 크지. 정보를 가지고 놈들은 목적지를 찾아가게 될 테지.”
“그렇긴 하네.”
“잡기는 쉽지 않아. 그리고 한정되었다고 해도 발키리 영지는 넓어. 모두 잡는 것이 아니라 한 놈이라도 잡아야 해. 그래야 알아낼 수 있겠지. 지금 이 자리에서 놈들이 가진 것들을 파악한 것도 그러한 이유야. 어떤 짓으로든 자살할 수 있는 지독한 놈들이야. 그러니 최대한 미리 방지를 해서 잡아야 해.”
“알았다. 하여간 네 잔머리는 여전하구나!”
“잔머리라니! 하여간 시간이 없으니까 바로 실행해.”
연락이 되지 않을 때를 대비하고 있을지 모른다.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움직여서 속전속결로 끝을 내야 한다. 대비를 한다고 해도 시간이 촉박하면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인간은 실수를 하는 동물이다. 완벽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완벽하다면 이미 인간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발키리 영지에 수비병들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병사들이 조직적으로 누군가를 찾기 위해서 움직였다. 마을마다 수비병이 돌아다니자 마을사람들이 왜 그러는지 의아해하는 눈치였다.
그런 반면에 수비병들의 사각에서 지켜보는 눈들이 있었다. 수비병들은 영지에 처음 온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노리고 있는 듯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이들은 모두 낭패를 당한 듯한 표정들이었다.
“1호의 연락이 끊겼다. 아무래도 실패를 한 것 같아.”
“설마 1호가 당한 건가?”
발키리 영주를 미행하기 위해서 간 1호였다. 1호의 실력이 셰도우 나이트 중에서 가장 뛰어났다. 그런 1호가 당한 것이다.
“붙잡히지는 않았을 거야, 죽었을 가능성이 커.”
“그럼 이제 어쩌지. 놈들이 우리의 정체를 파악하게 되면 위험하잖아!”
“역시 만만치 않아. 상대가 오러 마스터라는 것을 간과한 것이 실수야! 우리는 이제부터 흩어진다. 각자 알고 있는 정보를 본국에 전해야 한다. 그리고 만일 잡히면 그전에 목숨을 끊어야 하는 것을 알고 있겠지.”
“물론.”
그들 모두 가르딘의 예상대로 조급해 하고 있었다. 1호가 당했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판단력이 약간 흐려져 있었던 것이다.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게 가르딘의 계획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해 버리고 말았다.
9명의 셰도우 나이트가 각자 도주해야 할 장소로 움직여 나갔다. 그들은 빠르고 날렵했다. 확실히 일반 병사들로서는 절대 잡을 수 없을 정도의 수준이었다.
사사사삭!
빠르게 산을 넘어 앞으로 달려 나가는 셰도우 나이트 4호였다. 병사들을 따돌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저 산을 넘어 앞으로 넘어가면 헥토르 왕국과 이어지는 길을 만날 수 있었다.
‘응?’
앞에서 누군가 버티고 있었다.
“가르딘의 예상대로 인데!”
“그러게!”
필리언과 갈라였다. 나머지는 스필언과 미토스가 지키고 있고, 가르딘도 밖으로 나가서 방향을 잡고 길목에서 버티고 있는 실정이었다.
4호가 방향을 틀어 빠르게 도주했다.
“제길! 더럽게 빠르네!”
“짜식이! 사람 뺑이치게 하고 있어!”
달리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필리언과 갈라였다. 오늘 정말 힘들게 하는 존재를 만났다. 방향을 튼 곳을 향해 일직선으로 필리언이 움직이고, 갈라는 4호가 다시 도주할 장소를 미리 막아서고 있었다.
다른 방향은 기사단이 버티고 있기에 결국 4호는 사방이 막힌 꼴이 되어 버렸다.
빠르다고 해도 상대 역시 일반 병사들이 아니었다. 전문적으로 수련한 기사들이었다. 또한 필리언과 갈라는 이제 최상급에 이른 기사들이다. 조금만 더 수련하면 마스터에 오르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4호는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결국 어쩔 수 없구나!’
정면승부로는 절대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판단했다.
‘조국과 가족을 위해서!’
푸욱!
4호가 독을 사용해서 자살을 했다. 순식간에 퍼지는 독을 해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것은 안젤리카도 하지 못하는 일이었다. 물론 9서클 마력을 사용하면 되겠지만 유희 계약에서 6서클 마법사로 생활하기로 했기 때문에 제약이 걸렸다.
“이런!”
“어쩔 수 없지. 작정하고 죽는데 어떻게 막아?”
“하긴.”
가르딘의 계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놈들이 죽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실력이 제법 뛰어난 데다가 죽는 것을 겁내지 않는 놈들이다. 완벽하게 잡지 않는 이상 자살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실패했네.”
필리언과 갈라만 실패한 것은 아니었다. 다른 방향을 책임지는 이들도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그래도 수확이 있다면 5명이 더 있었다는 것 정도였다.
셰도우 나이트 중에 살아남은 4명이 헥토르 왕국으로 넘어갔다. 헥토르 왕국의 비밀장소로 다시 모인 그들은 모두 낭패한 기색이 역력했다. 설마 했는데 그런 함정을 계획하고 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셰도우 나이트의 실수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상황을 제대로만 파악했다면 이와 같은 피해는 입지 않았을지 몰랐다.
“6명이나 죽은 건가?”
“셰도우 나이트 역사상 최악의 작전이 되었어.”
“하지만 갚아주면 되지.”“갚아준다고?”
살아남은 셰도우 나이트는 이를 갈았다. 결국 가르딘의 계책에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실제로 발키리 영지에는 군사력은 형편없는 편이다. 수비병 2만이 전부였다. 다른 것이 있을지 몰라도 그 정도 변수 가지고 절대 이길 수 없는 전투였다.
“동료들의 원수다. 또한 냉정하게 판단했으면 이런 결과는 나오지 않아! 발키리 영주가 우리의 존재가 헥토르 왕국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수는 없어. 결국에 우리 왕국의 승리야. 그때가 되면 발키리 영지의 영주는 살아남지 못할 거다.”
“그렇겠지.”
“지금까지 모아온 정보를 보면 왕국에서 반드시 우리와 같은 결정을 하게 될 거야.”
셰도우 나이트는 모아 놓은 정보를 사실대로 헥토르 왕국에 전했다. 그들이 비록 임무 중에 실패하기는 했지만 그 일은 정보의 누설이 없었으므로 덮어졌다.
발키리 영주의 저택.
집무실에 앉아 있는 가르딘은 지도를 보며 고민했다. 발키리 영지를 중심으로 그 옆에 존재하는 영지와 왕국들의 존재들을 살펴보았다.
다크 랜드와 인접하는 지역 중에서 그 반대편에 있는 왕국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그들이 발키리 영지에 침범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어쌔신 길드를 의심했는데 그들도 아닌 것 같았다. 어쌔신이 6명 이상 있었다면 자신을 암살하려는 시도를 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도주하는데 사력을 쏟았다. 정보수집만을 목적으로 목숨을 걸다니, 어쌔신 길드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다른 영지가 아니면 왕국이라는 소린데, 이 주변의 영지에서 그러한 역량을 가진 곳이 있나.”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가르딘이 다스리는 이곳 발키리 영지야말로 용담호혈이나 마찬가지다. 그랜드 마스터에 이른 가르딘과, 오러 마스터 2명, 익스퍼트 최상급 3명. 그리고 기사단 역시 익스퍼트 급에 이르러 있는 상태다.
병력이 비록 부족한 편이기는 하지만 다른 영지가 감히 노릴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또한 외부적으로 아직 발키리 영지는 위험한 영지로 분류가 된 상태다. 먹잇감이 먹음직스럽지 않는 이상 탐욕을 부릴 이유가 딱히 존재하지 않는다. 과시욕으로 전쟁을 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실익을 따져보아야 하는 것이 전쟁이다.
가르딘이 5개의 점을 지도에 찍어 놓았다. 그 중심에 3개의 점을 하나로 이어보았다. 그 길을 따라 이동하게 되면 헥토르 왕국과 만나게 된다. 반면에 나머지 2명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었다.
이렇게 따지면 헥토르 왕국이 가장 의심이 되지만 그들은 오랜 시간 우방국이었다. 카이로만 제국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절대 아니라고 생각되어야 했다. 하지만 의심을 하는 가르딘이었다. 언제까지나 우방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현실이었다.
“이놈들이 또 있다면 양상이 다른데.”
6명이 아니라 다른 놈들이 더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문제가 복잡했다.
가르딘은 복잡한 문제는 단순화시켜 버렸다. 지금 상태로 가장 위험한 상황은 헥토르 왕국의 기습이었다. 다른 영지에서 기습하는 것은 나중이 되어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헥토르 왕국이 대대적인 공격을 해올 경우, 방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발키리 영지는 초토화였다. 또한 이곳을 기점으로 발판 삼아 공격을 하다 보면 카이로만 제국은 등 뒤에 커다란 골칫거리를 않고 있는 형상이 되어 버린다
.“코카 제국이 좋아하겠어! 가만?”
뒤를 치고, 다시 앞으로 공격한다. 좌우 혼란을 연상시킬 수 있었다. 정말 최악의 수였다.
가르딘의 고민은 이것이 추정이라는 것에 있었다. 확실하지도 않은데 확실한 우방국인 헥토르 왕국을 의심한다는 말을 황성에 보낼 수 없었던 것이다. 헥토르 왕국에서 매년 사절을 보내 우의를 다지는 시기이기도 했었다.
이런 시기에 그런 말을 했다가는 코카 제국의 세작으로 의심받기 딱 좋았다.
‘사람 피곤하게 하네!’
집사람과 쉬고 싶은 가장은 언제나 피곤하다. 피곤하기에 밤일을 제대로 못하는지 모른다. 피곤은 생식능력을 활발히 하는데 가장 피해야 하는 천적이었다.
‘둘째도 만들어야 하는데!’
하나로는 부족하다는 가르딘의 생각이다.
가르딘의 생각대로 헥토르 왕국에서 사절단을 파견했다. 기근과 가뭄으로 인해 피해가 만만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양의 귀공품을 마련해서 카이로만 제국으로 보내고 있었다.
사절단들은 황성뿐 아니라 평소 우의를 다졌던 귀족들에게도 아낌없이 베풀었다. 돈 싫어하는 귀족은 거의 없었다. 뇌물을 받아쳐 먹으며 헥토르 왕국의 우의가 변함없다고 너도나도 없이 황성에 주창했다.
헥토르 왕국의 왕 사이너스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사절단이 무사하게 일을 모두 추진했다는 것을 듣고 말이다.
“잘들 먹었겠지.”
“그럴 겁니다.”
“다시 찾아올 때 미안하니 많이 받으라고 해. 그보다 그건 제대로 가동이 되는 건가!”
“거의 다 되어 갑니다. 실전가동을 해보고 있는 실정입니다.”
“잘됐군!”
“하하하하!”
웃음이 나왔다.
사이너스 왕이 야심을 드러내었다. 그 옆으로 칼슈타인 공작과 뱅가너 공작이 국왕의 의중을 떠받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