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화 (20/93)

   @@[제5장 내부정리@@]

  가르딘은 발키리 영지까지 직선거리로 빠르게 움직였다. 여정은 순조로웠다. 문제가 있을 거리가 없었다. 귀족문양이 있으니 검문소는 무조건 통과였고, 산적들이 설친다고 해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스필언과 미토스가 나서서 해결해 버리면 그만이었다. 그 동안 가르딘은 스필언과 미토스에게 몇 가지씩 조언을 하며 수련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따지고 보면 스필언과 미토스가 따라온 것도 모두 가르딘 때문이다. 그들에게 실력을 일정 수준 이상 내비추었으니 그 빛을 따라온 것뿐이었다.

  가르딘은 굳이 직접 말을 하지 않았다.

  전음을 통해 스필언, 미토스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와 동시에 라이나와 브리안에게 말을 거는 가르딘이었다. 동시에 두 가지를 모두 할 수 있는 가르딘의 능력이 놀랍기까지 했다.

  [기존의 오러 심법이 틀리다는 말이 아니다. 같은 오러 심법이라고 해도 익히는 자의 성질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지.]

  [저희들이 익힌 오러 심법과는 다르군요.]

  항마멸사신공에 대한 이야기였다.

  대륙에 알려진 오러 심법은 전신을 모두 단련하기 위한 방법으로 적용이 된다. 신마의 기억에 남긴 내공수련법과는 정교함에서 차이가 있었다. 기, 혈, 맥에 대한 설명이 대륙의 오러 심법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특별히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설명이 없다고 해도 오러 마스터가 존재하는 것을 보면 가문 대대로 운용방법이 있기 마련이다.

  다만, 오러의 집중과 세밀함에 차이가 있다. 같은 오러라고 해도 세밀하게 집중이 된 오러가 더 강하기 마련이다.

  가르딘은 항마멸사신공의 이름보다는 그들에게 어떻게 익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것을 집중적으로 행했다. 운용방법의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항마멸사신공의 성향에 맞게 마를 멸하는 성질을 가질 수 있도록 수련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정신의 일통과 청정함을 유지하도록 명령했다. 사기와 마기에 영향을 받아서는 절대로 대성할 수 없는 항마멸사신공이었다.

   하루아침에 익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가르딘은 적극적으로 배움을 원하는 스필언과 미토스의 열정에 질릴 지경이었다. 신마의 기억에 문일지십이라는 말이 있다. 가히 천재들을 수식하는 말이라고 표현하기에 적당한 말인지 모른다. 하지만 괴물들을 표현하려면 문일지만이라는 말이 적당할 것이다. 하나를 배우면 만을 배우는 괴물들이었다. 가르치기는 편하지만 지식이 거덜날까 봐 겁이 나는 경우였다.

  ‘나니까, 이 정도로 커버하는 거다.’

  공주의 성인식 여정과는 다르게 순차적으로 정해진 계획대로 움직였다. 그렇기에 일정시간보다 빠르게 발키리 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발키리 영지의 외곽 성문에 경비병들이 지키고 있었다. 영지의 외곽이고 다크랜드와는 반대편이기에 그다지 많은 병력을 배치시키지는 않았다. 그저 단순히 관문의 역할만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가르딘이 내려서 수비병에게 신분을 확인하게 했다. 그러자 수비병인 로버트가 즉시 인사를 올렸다. 로버트는 설마 했다. 백작의 행차가 마차 1대에 수행원 2명일 줄은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영주님께 인사드립니다.”

  “반갑군. 바로 저택으로 갈 테니 안내를 부탁하네.”

  “즉시 안내하겠습니다.”

  영주라는 말에 수비병들 모두가 고개를 숙이며 정중히 대했다.

  ‘이 맛에 영주하는구나.’

  우쭐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단지 라이나와 브리안에게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것에 만족했다.

  가르딘은 로버트의 안내에 따라 발키리 영지의 농지를 가로질렀다. 밀을 생산하는 지역이 상당히 컸다. 땅이 비옥하고, 물이 부족하지 않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 가르딘은 내심 안도를 했다.

  지금 당장은 밀농사를 하는 계절이 아니지만 조금 있으면 곧 농사를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밀은 물이 많이 필요한 작물은 아닐지라도 아예 없으면 생산을 할 수 없다. 모든 작물이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처럼 대규모의 농지에 물을 뿌리려면 상당히 많은 물이 필요했다.

  가르딘은 물이 흐르는 2개의 수로를 보았다. 수로는 정리가 제법 잘 되어 있었다. 그동안 사람들의 노력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수로 하나 제대로 만들려면 오랜 시간과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저 물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드라이스 산맥의 계곡에서 흘러나온다고 하더군요, 정확하게는 알 수 없습니다. 드라이스 산맥 자체가 다크랜드 중앙에 위치합니다. 그 안으로 들어가 본 사람이 없기에 알지 못합니다.”

  “그렇군.”

  다크랜드의 악명은 대륙에 자자하다. 모든 몬스터와 마수들의 천국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여기가 모두아빠 땅이야?”

  브리안이 아이답게 물었다.

  “물론이지. 이곳은 모두 내 관할이라고 할 수 있지.”

  “역시 아빠가 최고야!”

   브리안은 주변을 돌아보며 아이들을 찾았다. 이곳에 살게 되었으니 다시 언덕왕이 라는 칭호를 물려받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브리안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왕이었다.

  농지를 지나 마을로 들어섰다. 마을은 그다지 발전한 편은 아니었다. 황도인 오스란과 비교하면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사람들의 모습이 피폐하군.”

  “전번 몬스터들의 습격으로 인해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가르딘은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노반 자작이 죽은 후 1달 정도가 지났다. 그 이후로 몬스터들의 습격은 없었다고 전해졌다. 습격을 막은 후에 이처럼 피폐한 상황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부적으로 무슨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였다.

  ‘뭔지 모르겠군?’

  아직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다.

  상황을 알려면 영지의 저택에 도착해서 정확하게 파악을 해보아야 했다.

  발키리 영지의 영주 저택.

  도노반 자작이 머물렀던 저택은 다음에 올 영주를 위해 내주어야 했다.

  영지의 총 재정을 담당했던 인물인 바우만 남작이 영주의 자리를 대신해서 영지를 경영하고 있었다. 1달 정도 영지를 경영하면서 세금을 전보다 3배 이상 올린 상태였다. 영지 외부의 성벽 강화를 위한 일이라고 하지만 너무 과한 세금이었다.

  바우만 남작이 이번에 올 인물이 백작이라는 것을 알고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많은 세금을 거둬들인 것이다. 그로 인해 발키리 영지의 사정이 급속도로 좋지 않게 되었다.

  발키리 영지의 경우, 도노반 자작이 영지방어에 주력한 반면에 모든 경영은 바우만 남작이 좌지우지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바우만 남작의 힘이 상당히 강한 편에 속했다. 전에는 도노반 자작의 성향 때문에 대놓고 행동하지 못했다면 지금에 와서는 힘을 마음껏 사용하고 있었다. 평생 기사생활만을 해온 도노반 자작의 비애였다. 그가 영지경영에 대해 제대로 알았다면 일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

  영주 저택에는 도노반 자작의 가족, 아내인 록산느와 딸인 파멜라가 머물고 있었다. 곧 집을 내주고, 영지 내에 마련된 다른 집으로 이동해야 하는 형편이었다. 도노반 자작의 아내인 록산느는 남편이 죽자 거의 인사불성이었다. 살아가는 원동력을 잃은 것처럼 행동했다.

  파멜라는 아버지가 죽은 것이 가슴 아프지만 아버지가 생명을 바치면서 구한 발키리 영지가 망가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불과 한 달 만에 피폐해지고 있는 발키리 영지였다. 바우만 남작의 행위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것이다.

  파멜라의 경우 오스라인 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인재다. 그녀는 2년 전에 졸업하고 현재 20살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원래 마법을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마법은 마나에 대한 특이성이 존재했다. 마법을 익히기 위해서는 마나와의 융합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마나의 친근성이 많이 부족한 파멜라로서는 익힐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그로 인해 그녀는 학문을 익혀서 아버지를 도와주고 싶었다. 하지만 정작 그녀가 돌아왔을 때 여인이라는 한계에 부딪쳤다. 아버지는 어서 빨리 혼인하라는 말만을 했을 뿐이다. 여인이 영지 경영에 참여할 수 없다고 못을 박은 것이다.

  파멜라가 직접 바우만 남작을 찾아가서 따졌다. 영지 경영에 대한 일을 말하는 파멜라의 행동에 바우만 남작은 무시하며 오히려 화를 내었다.

  “여기가 어디라고 와서 행패를 부리는 것이냐?”

   “발키리 영지는 아버지가 힘들게 구한 곳이에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영지의 재정을 담당하는 것은 내 몫이다. 네가 참견할 일이 아니야!”

  바우만 남작은 어제의 바우만 남작이 아니었다. 도노반 자작이 있을 때는 아가씨라고 부르면서 몸을 낮추더니, 이제는 도노반 자작이 없다고 막대하고 있었다. 파멜라는 분하기 짝 이 없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방패막이가 없기에 대처 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다.

 바우만 남작이 파멜라의 몸을 아래서 위로 훑어보았다.

  ‘제법 좋은 몸이란 말이야!’

  군침이 도는 바우만 남작이었다. 이미 집에 부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여인에게 음심을 품고 있었다. 그것도 영주의 딸에게 말이다. 영주가 없으니 마치 자신이 영주가 된 것처럼 행동했다.

  “앞으로 살아가는 데 힘들지 모르는데, 내가 도와줄 수도 있다.”

  바우만 남작의 눈에 들어 있는 징그러운 마음을 간파한 파멜라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몹시 화가 났지만 지금 당장 방법이 없기에 물러서야 했다. 분하지만 힘이 없는 정의는 쓸모없는 몸부림에 불과하다.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지만 당장 필요한 것이 힘이었다.

  “됐어요!”

  “후회할 텐데.”

  따그닥! 따그닥!

  마차소리가 들려왔다. 가르딘이 마차를 타고 저택으로 온 것이다. 저택에 들어가기 전이지만 가르딘은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곳까지 오면서 로버트에게 대략적인 내용을 들은 상황이었다. 영지의 대소사를 바우만 남작이 대부분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어딜 가나 저런 놈이 있군.’

  바우만 남작의 비리가 대충 어느 정도 선이라고 하면 봐줄 수는 있는 경우였다. 하지만 불과 한 달 만에 영지의 분위기를 흉흉하게 만들 정도면 도를 넘어 지나친 상황이었다. 이럴 때는 따끔한 처벌을 해야 한다. 그것이 비록 잔인할지 몰라도 말이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하급 귀족이라고 하더라도 정확한 증거와 사실이 있지 않고서는 마음대로 처벌해서는 안 되었다. 이것이 제국의 법이었다.

  가르딘이 저택 안으로 들어가자 그 즉시 안에서 사람이 나왔다.

  저택 안을 관리하는 집사장 부스타만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아직 연락을 받지 않은 상황이기에 누구인지 물은 것이다. 설마 이런 초라한 행렬이 새로 오는 영주님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새로 오신 영주님이시오!”

  로버트가 먼저 가르딘의 정체를 밝혀주었다. 신분을 확인하자 그 즉시 예를 올리는 부스타만이었다.

  “영주님을 몰라 뵙습니다. 용서하십시오!”

  “괜찮다.”

  가르딘은 너그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보다는 먼저 피곤할 수 있는 라이나와 브리안이 집안에 들어가서 쉬는 것이 먼저였다. 지금부터 할 일은 그녀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없다. 어차피 더러운 일은 자신이 모두 하면 그만이었다.

  “내 가족일세. 잘 부탁하네!”

  “물론입니다. 영주님 ! 즉시 방으로 안내를 하겠습니다. 짐은 모두 저희에게 맡기십시오.”

  “자네만 믿네, 라이나와 브리안은 먼저 들어가서 쉬어, 나는 저택 주변과 영지를 시찰할 테니! 스필언과 미토스도 우선은 짐을 풀고 나오도록.”

  “알았어요, 여보! 브리안, 가자.”

  가르딘은 라이나와 브리안이 들어가서 쉬도록 하고 스필언과 미토스는 따로 불렀다. 그 녀석들이 필요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보다 저기에서 설전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은 누군가?”

  “아! 저분은 영지의 재정을 담당하시는 바우만 남작과, 그 옆의 분은 전 영주님의 따님이신 파멜라 아가씨입니다.”

  “그런가, 그보다 싸우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럴 리가요.”

  로버트는 순간 당황했다. 서로 사이가 안 좋아 보이는 것은 눈으로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서로 싸운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재정담당이라고 하니 우선은 인사나 하지.”

  가르딘이 천천히 걸어가서 바우만 남작과 파멜라에게 다가갔다. 그들은 누가 왔는지 아직 듣지 못한 것 같았다. 가르딘이 걸어가자 그제야 누가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구시오?”

  “새로 오신 가르딘 백작님입니다.”

  거만하게 서 있던 바우만 남작이 그제야 비굴하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올렸다. 마치 황제가 왕림한 것 같은 표정이었다. 강자에게는 고개를 숙이고, 약자를 핍박하는 전형적 인 소인배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속으로는 어떤 생각을 하는지 뻔히 보였다.

  “바우만 링거스턴이라고 합니다.”

  “반갑네, 자네가 재정을 담당한다고 하던데, 맞는가?”

  “그렇습니다.”

  “파멜라 토스칸이에요.”

  “오랜만이구나, 어린 시절에 보고 다시 보기는 처음이지.”

  ‘응?’

  바우만 남작의 얼굴이 순간 찡그려 졌다. 설마 파멜라를 가르딘이 알고 있을 줄 몰랐다. 황궁에서 오는 기사가 피닉스기사단의 인물이라고 했지, 도노반 자작과 알고 지낸 사이인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특히 파멜라와 알고 있다면 문제가 커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기억하고 계시네요!”

  “물론이지. 그 시절의 꼬마아가씨가 이제는 다 컸구나!”

  도노반 자작이 피닉스기사단의 말년 고참 중에 한 명일 때 신입으로 들어온 가르딘이었다. 그 당시에 딱 한 번 파멜라를 본 적이 있었다. 어리지만 상당히 똑똑하고, 곧은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있다가 식사나 같이 하지, 오랜만에 선배의 가족을 보는 것도 괜찮겠어. 너의 의향은 어떠하냐?”

  백작급의 귀족이 대접한다는 말을 하게 되면 거절이라는 말을 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낮은 계급의 귀족은 당연히 따라야 한다. 가르딘의 말에 파멜라는 알겠다고 말을 했다.

  “이따가 저녁때 보자구나.”

  “예, 백작님!”

  “그럼 됐고, 그보다는 영지의 상태를 알아야 하니 집무실로 가지, 바우만 남작.”

  “이미 자료는 준비가 되었습니다. 어서 가시지요.”

  바우만 남작이 집무를 보겠다는 가르딘의 말에 따라 집무실로 같이 이동했다. 남겨진 파멜라는 걱정이 앞섰다. 어린 시절 한번 본 사람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는 그녀의 머리가 대단하기는 하지만 가르딘의 성격까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가 만약 바우만 남작과 같은 성향을 가지고 있다면 말을 해봤자 소용없는 일이 된다.

  ‘내가 준비한 것을 보여줘도 되나?’

  바우만 남작이 수를 쓸지 모른다는 생각에 감춰놓고만 있었다. 그리고 그가 설마 이처럼 비열하게 행동할 줄 몰랐다. 똑똑하지만 사람의 내면에 감추어진 것을 알아내지 못한 미숙함을 탓했다.

  집무실에 도착한 가르딘은 안을 들여다보다가 정중앙에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그 앞에는 큰 탁자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바우만 남작이 미소를 지으며 준비한 서류를 건네주었다.

  건네준 것은 발키리 영지의 예산안과 집행한 결과,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 등이 빼곡하게 정리가 되어 있는 서류였다.

  서류의 내용을 대충 본 가르딘이었다. 솔직히 봐봤자 그 내용을 제대로 알고 있을 수가 없다. 검만 수련한 가르딘이 만능일 수는 없지 않은가!

  “내가 봐야 뭘 알겠나, 지금처럼 자네가 잘 알아서 해주게.”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겠습니다.”

  만족한 웃음을 지은 바우만 남작이었다. 원래부터 이럴 생각으로 준비한 것이다. 빼곡하게 서류를 준비하고 그 내용을 자세히 파악한다면 아는 것이 많은 영주로 판단하고 신중하게 대했을 것이다. 반면에 아는 것이 없다면 편하게 다음 일을 진행시킬 수 있었다.

  ‘역시 기사들은 멍청하군.’

  검을 수련한 기사들은 재정이나 영지 경영에는 아는 것이 별로 없다. 그 맹점을 이용하면 충분히 자신의 이득을 차지 할 수 있었다. 전대 영주인 도노반 자작도 마찬가지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영지방어에 있어서는 병력관리에 철저했지만 나머지는 부족한 것 투성이었다. 한마디 말로써 모든 것을 알겠다는 듯한 바우만 남작이었다.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전대 영주의 가족들은 어떻게 하실 계획이신지?”

  신경이 쓰이는 것이 딱 하나 있었다. 도노반 자작의 가족들이었다. 그들이 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겠지만 거슬리는 것은 사실이었다. 또한 파멜라를 생각하면 아직도 다리 가 후끈 달아오른다.

  “이 넓은 저택을 우리 가족만 사용하면 심심하겠지. 어차피 다른데 가야 한다면 같이 살고 싶네. 그게 문제가 되는 건가?”

  “아닙니다. 그럼 영주 취임식은 언제 하실 겁니까?”

  “바로 하는 것은 그렇고, 내가 영지를 돌아 봐야 하니 일주일 후에 하는 것으로 하지.”

  “알겠습니다. 일주일 후에 성대하게 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자네가 잘 알아서 할 것이라 믿네. 나는 너무 깨끗한 사람이 아니니 말이야. 무슨 뜻인지 알겠지.”

  “아아! 물론입니다.”

  가르딘이 마지막으로 한마디 말을 던졌다. 그 말뜻을 파악한 바우만 남작은 가르딘의 성격을 파악했다고 생각했다. 기사들의 경우 너무 고지식해서 뒷돈 받는 것을 혐오하는 경우 가 있었다. 그에 반해 가르딘이 직접 의미심장한 말을 한 것이다. 알아서 화려하게 하라는 뜻이 전해졌다.

  바우만 남작이 나가고 나자 혼자 남은 가르딘이었다.

  “미끼는 던졌으니 알아서 온 영지를 흐려주겠지.”

  고작 한사람이지만 그 한사람으로 인해 흙탕물이 될 수도 있다. 그전에 그 싹을 잘라 놓는 것은 현명한 방법이다. 군주는 어진 성품만으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잔인한 면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을 다 들어주는 군주는 바보나 마찬가지다. 결국에는 바보영주로 인해 영지가 망가지고, 영지민이 힘들어진다.

  라이나와 브리안은 짐을 모두 풀고, 쉬고 있었다. 그녀들이 한 것은 별로 없었다. 그저 시녀들과 시종들이 알아서 모든 것을 처리해 주고 있었다. 라이나가 꼼꼼하게 체크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그녀가 한 모든 일이었다.

  ‘편하네.’

  귀족이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그저 가만히 있는 것으로 모든 일이 끝났다. 직접 모든 일을 할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저녁이 되자 성대한 만찬이 준비되고 있었다. 사람이 서로 가까이 보기도 힘들 정도로 길고 큰 탁자였다. 끝과 끝에 있으면 포크 달라고 말해도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시녀들이 그 옆으로 서서 있는 이유가 다 있었다.

  새삼 귀족이 됐다는 것을 느끼게 된 라이나와 브리안이었다.

  라이나와 브리안이 식사하기 위해 기다리는데 가르딘이 때마침 집무를 마치고 돌아왔다.

  “여보, 하던 일을 모두 끝냈나요?”

  “대충 마무리 지었어. 내일부터 다시 보면 되니, 오늘은 오붓하게 식사하자고.”

  가르딘의 가족이 식사를 하기 전에 도노반 자작의 부인 록산느와 파멜라가 왔다. 록산느는 겨우 충격을 벗어던졌는지, 상당히 초췌한 모습이었다. 눈 주변이 아직도 부어있는 것 이 안쓰럽기까지 했다.

  “도노반 선배의 가족들이야, 앞으로 잘 지냈으면 좋겠어.”

  “아! 그렇군요. 반가워요! 라이나라고 해요!”

  “록산느예요.”

  “파멜라예요.”

  라이나는 남편과 아버지를 잃은 그녀들이 불쌍하게 느껴졌다. 그 기분을 조금이나 알 수 있을 것 같기에 위로의 말을 해주었다. 그러면서 식사가 시작되었다. 가족 간의 오붓한 대화가 이어졌다. 가르딘은 서로 마주볼 수 있도록 거리를 벌려 않지 않았다.

  저녁식사는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어갔다. 브리안이 애교를 부리며 파멜라에게 언니라고 말하며 따랐다.

  식사가 끝나고 차를 마시게 될 때쯤에 가르딘이 파멜라를 따로 방으로 불렀다.

  뒤를 따르는 파멜라는 불안했다. 가족에게 보여준 가르딘은 따뜻한 아버지였다. 하지만 그가 가진 속을 알 수 없기에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우선 앉지.”

  “예, 백작님.”

  “우리끼리 있을 때는 그냥 삼촌이라고 불러라.”

  “하지만 감히 어떻게!”

  “괜찮다. 도노반 선배가 남도 아니고 피닉스기사단의 선배다.”

  피닉스기사단은 다른 데보다 유대감이 크다. 그것이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같은 기사단 출신이라는 것 자체만으로도 서로를 위하는 유대가 강력하게 작용한다.

  “힘들었나 보구나. 하지만 이제 걱정하지 마라.”

  “가...르딘 삼촌!”

  흑! 흑! 흑!

  그동안 서러웠던 마음에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가르딘이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두드려주었다. 쌓인 것은 울어야 쉽게 풀린다. 계속 품에 안고 있으면 나중에 곤란한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한동안 서럽게 울었다. 그 후에 파멜라는 눈물을 닦았다. 좀 전까지 울었던 여인이 아니라 다시 현명하고 똑똑한 파멜라가 되었다.

  “영지의 경영을 바우만 남작이 하면서 점점 영지가 피폐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가 너무 무리하게 세금을 거둬드리는 바람에 벌어진 일이에요! 이 모든 것을 바로 잡을 수 있는 분은 가르딘 삼촌뿐이에요.”

  파멜라는 믿고 의지할 수 있다는 생각에 속에 숨겨둔 생각을 모두 말해 버렸다. 가르딘은 미소를 지으며 들어주었지만 속으로는 아직 어리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똑똑하지만 암투에는 아직 약했다. 그녀의 마음을 흔들고, 속에 있는 내용을 들으려는 악질이었다면 분명 큰일을 당할 수 있었다.

  “아직 어리구나.”

  “예? 그게 무슨?”

  “귀족의 죄는 함부로 물을 수 없다. 그 죄를 증명하기 위한 증거가 필요해. 그 모든 것을 철저하게 준비해서 빼도 박도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너도 알고 있을 것이다. 지 금 네가 준비한 자료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해.”

  가르딘이 이미 파멜라의 생각을 꿰뚫고 있었다. 솔직히 정색을 하며 말하는 가르딘의 말이 무겁게 다가오기까지 했다.

  “네게 기회를 주마, 바우만 남작의 비리를 조사해 보아라! 그래서 네가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온다면 내가 바우만 남작을 단죄해주마.”

  “제가 할 수 있을까요?”

  “발키리 영지를 위해 바우만 남작을 찾아간 용기는 어디간 것이냐!”

  파멜라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능력이 되지만 여인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기에 스스로 한 발 내딛는 것을 망설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처음이 어려운 법이다. 그 이상을 넘어가면 자신도 모르는 능력을 깨닫게 될지 모른다.

  “할 수 있느냐?”

  “할 수 있어요!”

  가르딘은 망설이는 파멜라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사념안을 약간 사용했다. 안에 숨죽인 욕망을 끌어내는 능력을 적절히 사용하면 잠재된 능력을 개발시켜 주는 좋은 방법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너의 능력을 한번 펼쳐보아라.”

  가르딘은 발키리 영지로 오기 전에 도노반 자작의 가족들에 대한 사항을 조사했다. 파멜라의 능력은 이미 검증이 된 상태였다. 오스라인 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으니 능력에 있어서는 말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아직 경험이 부족한 것이 아쉽지만 그것은 시간이 지나면 충분히 채워질 수 있는 것이었다.

  “다만, 바우만 남작이 모르게 조사하여라. 그가 알고 있다면 어렵게 될지 모르니 말이다.”

  “알겠어요, 그리고 고마워요! 가르딘 삼촌.”

  “삼촌이 돼서 조카를 도와주지 않는다면 그게 어디 삼촌이겠느냐.”

  가르딘은 파멜라가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한 가지를 더 도와주었다. 그녀가 일을 처리하는 데 무리가 없도록 스필언을 붙여주었다. 스필언과 미토스는 검술뿐 아니라 학문에도 일가견이 있는 놈들이었다. 한마디로 만능지체를 타고난 놈들이다. 그녀를 도와줄 후견인일 뿐 아니라 보호해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에 선택한 것이다.

  가르딘은 다음 날에 기사들을 불렀다. 영지에 남겨진 기사들은 전번 몬스터들의 습격으로 인해 절반 정도가 죽거나 다친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영지에 남겨진 기시들이라고 해봐 야 고작 50명밖에 되지 않았다. 이처럼 큰 영지를 고작 100명이서 지킨 것이 용할 지경이었다. 

  운인지 아니면 불행인지 기사단장과 부단장 역시 전번 몬스터 습격에서 죽은 상황이었다.

 그들의 죽음이 안타깝지만 가르딘에게는 제법 괜찮은 일이 되었다. 나중에 올 필리언, 갈라, 유타에게 기사단장과 부단장을 시켜주어야 하는데 전에 있던 놈들을 밀어낼 수는 없지 않은가!

  가르딘의 명령에 기사들이 모두 모였다. 기사들이 모인 순서를 보니 서열이 얼핏 눈에 들어온다. 실력들이 그다지 떨어지는 녀석들은 없지만 그렇다고 확 튀어나올 수 있을 정도로 강한 녀석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 모인 건가?”

  “그렇습니다.”

  기사 중에서 가장 고참인 고트 델가도가 대답했다. 그가 발키리 영지기사단에서 가장 오래된 기사들 중에 한 명이었다.

  “척 봐도 알겠지만 내가 새로운 발키리 영지의 영주다. 이름은 말 안 해도 알겠지.”

  기사들 모두 가르딘을 존경스럽게 보고 있었다. 일생에 한번 보기 힘든 오러 마스터였다. 오러 마스터의 검술 한 번이라도 더 경험하고 싶은 것이 기사들의 소망이었다.

  “나는 철저히 실력 위주로 기사들을 다룰 것이다. 실력이 없으면 도태되는 것이 세상사 진리다. 그 말을 명심하고 앞으로도 열심히 수련해 주기를 바란다. 물론 부수적으로 내가 지도를 해줄 것이다. 내가 이끄는 영지의 기사단이 약하다는 말은 듣기 싫다.”

  오러 마스터의 지도.

  그것은 변방 기사단에게는 죽었다 깨도 이룰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직접 지도해 주겠다는 그의 말에 모두는 열의를 가지게 되었다. 가르딘은 또 한 가지 말을 했다. 기사단장 임명은 전적으로 영주의 몫이었다. 그가 마음에 드는 자로 선택한다고 해서 토를 달 수 있는 기사는 없다. 영주의 말 한마디에 목숨을 거는 것이 충성을 맹세한 기사들의 숙명이기 때 문이다.

  “기사단의 단장과 부단장이 없는 것으로 안다.”

  “그렇습니다. 전번 전투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들의 죽음이 안타깝지만 단장과 부단장을 다시 뽑아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기사단장과 부단장은 기사단에서 누구라도 올라서고 싶은 자리다. 일반기사와 기사단장의 차이가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었다. 물론 그에 따른 위험과 책임은 더욱 막중하다.

  “좀 전에도 말했듯이 강하고 책임감 있는 자가 기사단장이 될 것이다. 너희들은 모두 기사단장과 부단장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말이다. 할 수 있겠느냐!”

  “충!”

  기회를 주었다.

  실력과 능력으로 기사단장을 뽑는다는 말에 모든 기사들의 전투력이 급상승하고 있었다.

  “한 달의 시간을 주마, 그 기간 동안 수련해서 실력을 높여라. 단 너희들에게는 높은 벽이 존재할 것이다. 나와 같은 기사단에 속한 기사 3명이 이곳으로 온다. 그놈들을 이겨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달린다.”

  피닉스기사단의 기사들을 이기라는 말이 되자 올라섰던 전투력이 급히 하락하기 시작했다. 계란으로 바위에 부딪치는 격이라 느끼게 된 것이다. 아무리 강해져도 이길 수 없는 벽이 있기 마련이었다.

  “실력이 상승되는 기사에게 따로 보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노력하지 않는 자에게는 아무런 것도 없다. 그리고 이번에 올 3명을 당황시킬 수 있다면 더욱더 커다란 보상을 해 주마. 이것은 영주로서 확실하게 책임져주마!”

  가르딘의 확신에 찬 말에 기사들이 다시 열의를 가졌다. 나중에 올 필리언, 유타, 갈라는 정말 피똥 쌀 일이 기다리고 있게 되었다. 가르딘은 다른 사람을 아주 잘 이용하는 습성이 있었다. 정작 자신이 직접 일을 처리할 생각은 별로 없어 보였다.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피닉스기사단 시절에도 대부분의 일을 신참에게 맡기거나 동기들에게 떠넘기는 것을 밥 먹듯이 한 가르딘이었다. 당연히 사람 다스리는 법을 터득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가정에 충실하려면, 여가 시간이 많아야지.’

  이 모든 것이 가르딘의 가족, 즉 라이나와 브리안을 위해서였다. 파멜라와 기사단들에게 기회를 준 것도 모두 앞일을 대비한 일이었다.

  가르딘의 옆에 미토스가 서 있었다. 아무도 미토스의 정체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너무 잘생겨서 여자 꽤나 울릴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기사들의 경우 화려하고 아름다울 것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기사들은 우락부락한 근육을 가진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내 옆에 있는 녀석은 얼마 전까지 피닉스기사단에 속한 기사였다.”

  뜻밖의 말에 발키리기사단의 기사들 모두 놀라는 눈치였다. 몸이 잘 빠지고, 잘생기긴 했어도 피닉스기사단일 줄은 몰랐다. 다시 한 번 얼굴과 몸을 보게 만들었다. 가르딘은 미토스를 소개하면서 한 가지 말을 했다.

  “오늘 이 녀석의 검을 3번 이상 막아내는 녀석에게는 당장 기사단장직을 줌과 동시에 100골드를 주지.”

  실력을 보는데 많이도 필요 없다.

  솔직히 가르딘은 그냥 한번 보는 것만으로도 기사들의 습성과 능력을 파악하고도 남았다.

  가르딘은 억지를 부리고 있었다. 오러 마스터에 이른 미토스였다. 한 번도 아니고 3번 이상 막아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단장직은 줄 수 있어도 돈은 안 되지, 암! 암!’

  아직 수중에 돈이 없는 관계로 줄 상황이 아니었다. 또한 허튼 데 돈을 쉽게 쓰는 가르딘이 아니었다. 돈 관리는 모두 라이나가 하고 있는 상태에서 100골드나 허비했다는 소리를 듣게 되면 집안싸움 난다.

  기사단장직이 100골드만도 못하게 된 상황이었다. 기사들이 알면 미친놈이라고 불릴 만했다.

  미토스에게는 아직 이름을 알리지 못하게 하였다. 행여나 이름을 알고 덤비지 않으면 곤란했다. 실력의 미진함과 더불어 나중에 오러 마스터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하면 얼마나 감동하겠는가! 일석삼타의 효과를 노리고 있었다.

  “너희들의 실력을 보고 싶구나.”

  발키리기사단의 실력을 알고 싶어 한다고 했다. 기사들은 실력을 보여주기 위해서 검을 고쳐 잡았다.

  미토스의 실력을 아직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명색이 피닉스기사단의 기사다, 아무리 젊어도 강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설마 3번도 막아내지 못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대련이 시작되었다.

  검과 검이 부딪쳤다.

  채챙! 탕!

  쿠쿵!

  단 한 방에 나가떨어지는 발키리기사단의 레토였다. 레토는 서른이 넘은 베테랑 기사 중에 한 명이었다. 그런 기사가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나가떨어지자 모두는 긴장했다.

   ‘역시 피닉스기사단이다!’

  제국 최강의 기사단에 소속되었던 기사라 역시 달랐다. 일검밖에 섞지 않았지만 피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힘에서 지고 들어가서 넘어진 것이라면 힘이 강한 기사가 나서면 될 것으로 보였다.

  철퍼덕!

  발키리기사단 중에서도 완력과 힘에서는 한 손가락에 뽑히는 알렉산더가 두 번을 막지 못하고 쓰러졌다. 보통 사람 보다 머리 하나 더 큰 그가 뒤로 힘없어 넘어졌다. 그 뒤로 계속 대련이 시작되었다.

  30명에 달하는 기사들이 3번을 넘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들 눈에 미토스는 괴물 그 자체였다. 어떻게 해야 이처럼 강해지는지 의문이었다. 20살밖에 되지 않은 기사가 이렇게 강하다니 말이 되지 않았다.

  가르딘은 미토스에게 전음을 사용했다.

  오러의 수준은 발키리기사단과 비슷하게 하고, 순수한 검술 실력으로 누르라고 전했다. 그래야 자신들의 실력을 뼈저리게 깨닫게 된다. 보통 기사들이 오해하는 것이 있는데 오러가 강하면 반드시 이긴다는 속설을 믿고 있는 기사들이 많았다. 사실이 아니지만 대부분 믿고 있다면 따라주는 수밖에 없었다.

  커억!

  “이...럴 수가!”

  발키리기사단에서 현재 가장 강한 고트가 2검을 받지 못하고 패배를 당했다. 오러 익스퍼트급의 기사가 손 한 번 쓰지 못하고 당하자 승산이 없음을 모두는 알게 되었다.

  발키리기사단의 기사들은 모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20살짜리 애송이 기사를 이기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자괴감이 들었던 것이다.

  가르딘은 여유롭게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위로했다. 사람을 다룰 때는 당근과 채찍을 고루 주어야 한다. 맛있는 것만 골라 주면 나중에는 편식해서 탈이 날 수 있었다. 매를 주었으면 이제는 사탕을 줄 때였다.

  “너희들이 상대한 기사는 피닉스기사단에서도 최연소 오러 마스터에 이른 기사니까. 졌다고 해서 낙심할 필요 없다.”

  “정...말이십니까?”

  “저토록 젊은 나이에 오러 마스터에 이르렀다면 설마!”

  제국을 시끄럽게 한 마스터의 탄생을 그들이 모를 리 없었다. 젊은 기사가 놀랍도록 강하다는 것을 알았다면 대충 유추가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 변방에 그런 유능한 기사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 때문에 사고가 넓어지지 못하고 제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이 녀석이 바로 미토스 발리스타다. 발리스타 공작가의 아들이지.”

  “오오! 역시 마스터는 다르군요!”

  오러 마스터를 직접 보고 대련해 보았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게 된 발키리기사단이었다. 확실히 대단했다. 오러 마스터가 저처럼 대단하다는 것을 피부로 깨닫게 되었다.

  가르딘은 미토스를 자랑하면서도 내 빽이 이 정도로 크다는 것을 모두에게 인식시켰다. 발리스타 공작의 아들이 예를 다하고 있었다. 이제 어느 누가 감히 자신에게 함부로 대들 수 있겠는가! 드래곤의 등 뒤에서 기세등등한 고블린과 같았다.

  가르딘은 미토스에게 이곳에서 남아 기사들의 장점과 단점을 지적하고 손을 봐주라고 명령했다. 이것은 미토스를 위한 일이기도 했다. 배우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남을 가르치며 자신의 검을 되돌아보는 것도 공부였다.

  가르딘은 순찰을 해봐야 하니 기사들 중에 한 명을 골라야 했다. 지리도 모르는데, 돌아다니면 시간낭비였다.

   가르딘은 기사들을 한 번씩 둘러보았다. 기사들 중에서 젊은 기사 한 명을 선임했다. 발키리기사단은 모두 경력이 꽤 되는 인물들이 주축으로 이루고 있었다. 젊은 기사지만 2, 3 년 이상 기사단 생활을 해온 것으로 보였다.

  “자네는 잠시 나와 같이 영지를 순찰하지.”

  “예? 저요!”

  “그래, 자네!”

  가르딘이 지적한 인물은 젊은 기사인 슈안이었다. 아직 기사가 된 지 2년을 넘지 않았다. 그런데 영주가 직접 자신을 거론하자 놀라고 있었다. 다른 기사들 다 놔두고 자신을 지적한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단둘이 오붓하게 가보지.”

  “예... 예!”

  오싹한 기분이 든 슈안이었다.

  가르딘이 슈안을 지목한 것은 이유가 있었다. 바우만 남작이 비리를 저지르면서 기사들에게도 손을 뻗쳤을 가능성이 있었다. 물론 적당히 뒷돈 받는 것을 지적하고 싶지는 않았다. 융통성 없이 주는데도 마다하는 놈은 오히려 사양이었다. 너무 꼼꼼한 녀석은 피곤한 녀석일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돈을 받는다면 공정성에서 거리가 생기게 된다. 또한 뇌물을 주었다면 기사단에서도 중견 이상의 기사들일 가능성이 컸다. 신참에게 공을 들일 이유는 없으니 말이다.

  신참 중에서도 어벙한 녀석처럼 보이는 놈이 슈안이었다. 이놈들 데리고 다니면서 물어볼 생각이었다. 고참 눈에는 신참의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다 보인다. 손이 움직이고, 눈동자 돌아가는 모습만 봐도 이놈이 애송이인지 아닌지 한눈에 들어온다. 가르딘도 그와 같은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그런데 둘이서만 가는 것은 영주님 위엄에 좋지 않은 모습입니다.”

  “괜찮아, 위엄은 주변에 누가 있다고 해서 높아지는 것이 아니니까.”

  좀 전까지 미토스 가문을 등에 업으려는 사람의 말치고는 앞뒤가 맞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가르딘의 생각일 뿐 발키리기사단 대부분이 가르딘을 더욱 존경하게 되었다.

  가르딘은 느긋하게 걸으면서 슈안과 말을 나누었다. 처음에는 편하게 대하라고 하면서 긴장한 기분을 풀어주었다. 그러면서 변두리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갑자기 본론부터 들어가면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대화의 시작은 친근감이다. 친해져야 감추어져 있는 내용을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자네 애인 있는가?”

  “그렇습니다.”

  “좋을 때군, 물론 나는 아직도 한참 진행 중이네.”

  가르딘은 아내와의 얘기를 꺼내면서 한창때 잘나가던 시절까지 했다. 그러면서 분위기를 풀며 원래의 목적으로 돌아갔다.

  “발키리 영지가 제국에서 알아주는 곡창지대라고 하던데.”

  “맞습니다. 밀농사에 있어서는 세 손가락 안에 들 겁니다.”

  “그 정도로 많은 밀을 생산하면 돈이 제법 풍족하겠는데.”

  “그렇지도 않습니다. 사실 대량의 몬스터가 온 것은 전번이 처음이지만 산발적으로 수백 마리씩 공격하는 것은 다반사였습니다. 그때마다 방어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고 합니다.”

  “성벽방어와 병사들로 인해 비용이 많이 든다는 말이지. 그럼 한번 성벽으로 가보지.”

  돈 들어가는 것을 슈안이 제대로 알 리는 없다.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 것 정도만 알아도 되었다.

   가르딘은 세심히 보았다.

  성벽은 이중으로 되어 있었다. 하나의 성벽이 무너지면 다음 성벽으로 이동하여 지킬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방어를 주목적으로 만든 이중성벽이었다.

  제1성벽의 경우 전번 몬스터와 마수들의 대량침입으로 인해 많이 무너져 있는 상태였다. 그나마 제1성벽에서 막아낸 것이 용한 지경이었다. 도노반 자작이 죽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1만 마리나 되는 몬스터는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기사들은 100명밖에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몬스터가 그처럼 많다면 이보다 더욱 많은 기사들이 필요할 것으로 보였다. 일반 병사들로는 몬스터를 막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곳의 위험상황을 봤을 때 최소 300명 정도는 필요할 것으로 보였다.

  “기사들이 이곳 변방으로 오겠습니까.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병사들로 그 자리를 메우고 있습니다.”

  기사의 부족을 수비병의 수로 막아내었다는 말이었다. 슈안의 말을 들으니 수비병으로 동원되는 인원만 해도 족히 2만 명에 달한다고 했다. 발키리 영지의 인구가 20만이라고 하는데, 동원되는 병력이 이 정도라면 상당히 많은 수에 해당한다. 보통 인구대비 30대 1 정도가 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병사들에게 들어가는 비용이 많다고 하더니, 사실이었군!’

  성 위에서의 공격밖에 모르는 병사들로는 부족한 것이 많았다. 이대로는 수비병으로서의 역할만 하게 된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오합지졸을 가지고 있을 수는 없었다.

  ‘동기들아! 할 일이 많이 있구나!’

  병사들의 훈련을 위한 일을 모두 동기들에게 떠넘기려고 수작질하는 가르딘이었다.

  “바우만 남작은 어떤 사람인가?”

  “그게......”

  슈안은 말을 하려다가 주저했다. 바우만 남작에 대해서 말을 하게 되면 선배기사들에 대한 말까지 해야 할지 몰랐다.

  ‘뭔가 있긴 하군.’

  가르딘은 망설이는 슈안이 안심하도록 유도했다.

  바우만 남작이 재정에 관한 일을 하는데, 도움을 주려고 한 말이네. 수하의 성격도 모르게 어떻게 도와줄 수 있겠는가!”

  “아! 그러시다면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신참은 이래서 무서운 놈들이다.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경우가 많았다. 윗사람이 말하면 괜히 경직돼서 자신도 모르게 사실대로 말하는 경향이 강했다. 신참에게 장난은 장난이 아닌 경우와 마찬가지였다.

  “자네처럼 똑바른 사람은 처음이야.”

  “감사합니다. 바우만 남작은 기사단에 지원을 해주고 있습니다.”

  가르딘은 말을 하면서 슈안의 분위기를 띄워주었다. 속에 있는 말을 할수록 분위기를 띄우며 신임을 준다고 생각하자 막힘없이 말이 나왔다.

  슈안은 지원이라는 말로 표현을 했지만 결론적으로 뇌물이나 마찬가지였다. 서로에게 잘 보이려고 한 행동이었다.

  “지원은 많은 편인가?”

  “아닙니다. 선배들도 적당히 받고 그 이상은 받지 않습니다.”

  가르딘의 화술에 완전히 속아 넘어가고 있었다. 가르딘은 언어 자체에 의기를 집어넣을 수 있다. 계속 말을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터놓게 되었다. 물론 절대적인 것은 아니었다. 마스터의 경지에 이르면 사물에 의념을 집어넣을 수 있는데 그랜드 마스터에 이르면 말이나 행동 자체에서 의념이 퍼져 나오는 경지가 된다.

  ‘아주 썩은 편은 아니군.’

  적당히 받아먹는 것은 용인해 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한도를 넘어서는 과도한 욕심은 화를 부르기 마련이다. 적절한 제재가 필요했다.

  가르딘은 슈안과 성벽을 둘러보며, 영지에 관한 것과 주변 이야기를 나누었다. 신변잡기와 같은 얘기들 속에서 중요한 것을 체크하며 이곳저곳 모르는 곳을 물어본 가르딘이었다.

  하루 안에 영지를 모두 돌아볼 수는 없었다. 백작급 영지를 모두 돌아보려면 최소 15일 이상 걸릴 것이다.

  가르딘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았다. 영주 취임식 전까지 천천히 군데군데 살펴볼 생각이었다.

  가르딘이 슈안과 7일 동안 영지를 어느 정도 돌아보는 동안 내부적으로 조금씩 정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미토스는 철저한 기사였다. 자신이 수련한 만큼 남들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발키리기사단을 확실하게 굴리고 있었다. 젊은 미토스에게 배우는 것이 자존심 상해하는 기사들은 없었다. 오러 마스터에 조금이라도 더 배우고 싶어 했기에 더욱 열심히 했다.

  다음으로 라이나와 브리안이 적응해 나갔다. 라이나와 브리안이 귀족으로서의 품위를 갖추기 위해서 가르딘은 록산느에게 부탁을 했다. 록산느는 전형적인 귀족가의 부인으로 서 예와 품위를 가지고 있었다. 비록 도노반 자작이 죽어서 슬픔에 잠겨 있지만 품위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미 죽은 사람으로 인해 계속 자신의 삶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슬픔을 잊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언가에 열중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같은 여자끼리는 생각을 공유할 수 있었다.

  라이나와 브리안, 가르딘만 살아간다면 상관없을 귀족의 예법이지만 백작이 된 이상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에 따라 귀족의 지식과, 품위, 예절을 겸비해야만 했다.

  가르딘이 록산느에게 부탁을 하자 파멜라가 적극적으로 도왔다. 파멜라의 입장에서는 어머니가 계속 실의에 빠진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7일이 많은 시간이라고 하면 많은 시간일 수 있지만 금세 지나갔다. 가르딘이 영지에 와서 몇 가지 일을 보자 사라져 가는 소모적인 시간이 되었다.

  영주 취임식이 거행되는 날이 되었다. 그로 인해 바우만 남작이 성대한 준비를 했다. 가르딘이 바우만 남작의 행동을 제지하지 않고 오히려 부추겼기에 일의 진행이 더욱 커졌다. 대신 가르딘은 다른 성의 귀족들은 따로 부르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발키리 영지와는 상당히 먼 거리였다. 7일 만에 올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기에 따로 나중에 귀족회의가 있으면 참석해서 신고하면 되었다.

  취임식 아침이 밝아 오는 이른 시각에 가르딘이 방에서 나오려고 준비를 했다.

  “여보, 오늘따라 더 멋있어 보여요!”

  “당신도 무척이나 아름답소.”

  가르딘과 라이나는 서로에게 칭찬을 하고 있었다. 가르딘에게는 다른 누구보다 용기를 주는 말이었다.

  가르딘이 옷을 차려입고 나가려 할 때, 파멜라가 찾아왔다. 파멜라의 옆에는 스필언이 정 자세를 취하며 서 있었다.

  파멜라는 조사한 내용을 서류로 정리해 놓았다. 그것을 가르딘에게 보여주었다. 그동안 스필언이 파멜라를 도와주었기에 일이 생각보다 빨리 끝날 수 있었다.

  “그동안 조사한 내용이에요.”

   “그럼 볼까.”

  가르딘은 아직 시간이 있었다. 취임식을 아침에 거행하는 법은 없다. 모든 사람들이 모일 수 있도록 해가 중천에 올랐을 때 거행을 하게 된다.

  가르딘이 영지 경영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는 편이지만 적혀진 서류는 보기 쉬우면서도 대단히 뛰어난 계산법을 사용한 것을 알 수 있었다.

  “플리티너스법을 아주 잘 적용했군.”

  “감사합니다.”

  사실 가르딘이 가장 싫어했던 학문 중에 하나가 연산법이었다. 연산법 중에서도 플리티너스법이 가장 어려웠다. 상급의 고등연산법이라고 불리고 있는 것이었다. 일반인이 이걸 보면 눈이 빙글 돌고, 머리가 폭발할지 모를 정도다. 그런 연산법을 쉬우면서도 간단하게 실제에 적용하는 파멜라의 능력이 놀랍기까지 했다.

  ‘보통이 넘는군.’

  뛰어난 머리를 가졌다는 것을 알기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기대 이상의 수확이었다. 이런 뛰어난 인재는 그 수도 적을뿐더러 데려오기도 힘들다. 월척을 건진 가르딘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영지의 한해 수확량과 더불어서 필요한 세수, 그리고 앞으로 필요한 사업까지 적어 놓았다. 그저 연산법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예측과, 대안까지 완벽하게 해놓았다.

  파멜라의 얼굴은 일주일 전보다 많이 초췌한 상태였다. 완벽한 서류를 작성하기 위해서 그녀가 쏟았을 노력과 열정이 묻어나왔다.

  ‘집념도 있고, 능력도 있다라. 좋군!’

  파멜라를 가치 있게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기쁜 마음이 들었다. 그녀가 비록 도노반 자작의 딸이기는 하지만 능력도 없는데 사용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녀의 마음만큼 능력이 받쳐주는지 시험하기 위한 테스트이기도 했다.

  연산법과 대안 다음으로 바우만 남작의 비리에 대한 것이 있었다. 확실하게 조사가 이뤄진 상태라 바우만 남작이 벗어 날 수 있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이 정도만 있다면 당장에 잡아들일 수 있었다.

  “바로 잡아 들이실 건가요?”

  “아니, 나는 공정하게 모두에게 나를 선보일 거야.”

  “그렇군요.”

  파멜라는 가르딘의 뜻을 바로 알아차렸다. 영주민들에게 가르딘의 성품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였다. 때마침 파멜라가 서류를 작성해서 가져왔으니 일거양득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가르딘은 파멜라의 전신을 살폈다.

  기운으로 상대의 기운을 살펴보는 감응의 작업이었다. 언뜻 보면 중년남성이 아리따운 여성을 희롱하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했다.

  “연산법이 이정도로 뛰어나면 마법을 해도 상관없었을 텐데.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이냐?”

  가르딘의 물음은 파멜라에게 가장 큰 상처였다.

  마나에 대한 적응력이 현저하게 떨어진 신체로 인해 마법을 익힐 수가 없었던 파멜라의 비애였다.

  “마나 적응력이 부족했어요.”

  “그렇군. 하지만 낙심할 필요 없다. 내가 너를 위해서 자리를 마련해 주마.”

  “자리요?”

  “앞으로 바우만 남작이 맡은 자리를 내게 주마.”

  파멜라는 너무 놀랐다. 아무리 뛰어나도 여자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더군다나 나이가 어릴수록 높은 직책을 전혀 주지 않는다. 반면에 가르딘은 영지에서 두 번째로 높은 직급을 파멜라에게 망설이지 않고 주었다.

  파멜라가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제가 과연 이런 자리를 할 수 있을까요?”

  “재정에 대해서는 네가 나보다 낫다. 나야 검만 휘두른 무식한 기사에 불과하지만 너는 전문적으로 공부한 재녀가 아니냐, 능력이 있으면 써먹는 것이 자신과 모두를 위해서 현명한 거야!”

  파멜라가 즉시 무릎을 꿇었다.

  “영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조카와 삼촌의 관계가 아닌 주종관계를 확실하게 선언한 파멜라였다. 공적인 관계를 최우선으로 하면서 가르딘을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일어나라, 조카를 바닥에 꿇렸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구나. 발키리 영지를 위해 노력하면 그걸로 됐다.”

  파멜라는 감격에 헤어 나오지 못했다.

  가르딘의 언변은 가히 신에 근접할 지경이었다. 스필언과 미토스를 낚았을 때처럼 파멜라마저 낚아 버렸다.

  “그보다 너희 둘 아무런 일도 없었느냐?”

  파멜라, 스필언에게 하는 말이었다. 그 말에 파멜라는 얼굴을 붉혔지만 스필언은 묵묵히 처음 표정 그대로였다. 딱히 표현하자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런 맹탕! 그것보다 얘도 다 컸군.’

  파멜라의 얼굴이 붉어진 것으로 보아 스필언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스필언과 같은 완벽한 남성상과 7일 동안 붙어 있었는데, 아무런 감정이 없다면 파멜라는 석녀라는 말이 된다. 사실 석녀라도 스필언, 미토스에게는 녹아날지 모른다. 그 정도로 매력이 있는 녀석들이었다. 연애에 둔하다는 것만 빼고 말이다.

  가르딘은 파멜라가 안돼보였다.

  스필언은 파스트론 공작의 아들에다가 오러 마스터였다. 삼촌된 입장에서는 적극적으로 밀어주고 싶지만 파멜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대임에는 틀림없었다.

  ‘사랑에 신분이 없다지만 아쉽구나!’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우선은 놔두기로 마음먹었다. 벌써부터 안 된다고 하면 반발해서 더욱 기를 쓸 경우가 발생할지 모른다. 젊은 시절 경험은 두고두고 회상을 하며 추억이 될 수 있었다.

  “그럼 취임식을 가 볼까나.”

  태양이 발키리 영지 저택의 중앙에 이를 때, 영주 취임식이 거행되었다. 영지 내에 속한 영주민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그들 모두 새로운 영주에 대해서 알고 싶었던 것이다. 사실 영지민들에게 영주는 누구보다 중요한 대상이었다. 영주의 성격에 따라 영지민들이 살아가는 환경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저택의 앞에 넓은 단상을 마련하고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설치했다. 바우만 남작이 많은 공을 들인 흔적이 보였다. 모두 영지민의 등골을 빼서 마련한 것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단상 위에 마련된 의자에는 라이나와 브리안이 미리 와서 앉아 있었다. 가르딘은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주인공은 취임식이 극에 이를 때 등장해야 된다는 라이나의 말을 따른 것이다.

  사회는 바우만 남작이 했다.

  “발키리 영지의 새로운 영주이신 가르딘 카이로스 백작님이시다. 모두 일어서서 영주님을 맞이하라!”

   가르딘이 가는 자리에는 2열종대로 발키리기사단이 도열했다. 모두 검을 뽑아 들고 위로 향했다. 영주가 가는 길을 환영하는 모습이었다.

  “영주님께 충성을 맹세합니다!”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발키리기사단이 목소리를 내었다. 가르딘은 짐짓 위엄이 넘치는 모습으로 등장해서 천천히 걸었다.

  걷는 동작에서 손 놀리는 움직임, 표정까지 모두 백작다운 품위와 예절을 잃지 않았다. 가르딘은 이때만큼은 그랜드 마스터급의 위엄을 보였다. 저절로 고개가 숙여질 정도로 숙연 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영지민들 대부분이 가르딘의 모습을 보며 침을 꿀쩍 삼켰다. 제국의 오러 마스터 중에 한 명이라고 이미 소문이 난 상태였다. 오러 마스터가 얼마나 강한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해도 그 위상만큼은 익히 알고 있었다.

  단상에 천천히 올라서서 가르딘이 영지민들을 돌아보았다.

  “내가 바로 가르딘 카이로스라고 한다. 앞으로 영지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다.”

  장황한 말 따위는 필요 없다.

  영지민들이 어려운 말과 장황한 말을 모두 알아들을 리 없다. 간단하면서 중요한 말을 짧게 하면 되었다.

  가르딘이 올라가서 말을 한 후에 취임식이 거의 끝나가게 되었다. 가르딘은 즉시 라이나와 브리안에게 먼저 들어가라고 말을 전했다.

  “브리안을 데리고 먼저 들어가 있어.”

  “알았어요.”

  가르딘이 심각하게 말을 하자 라이나가 그 뜻을 알고 즉시 브리안을 데리고 먼저 저택으로 들어갔다.

  갑자기 영주의 부인이 들어가자 영지민들이 이상하게 생각했다. 취임식이 있으면 그 후에 연회를 베푸는 게 기본이었다. 연회에서 백작 부인이 자식을 데리고 사라지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 리 없었다.

  라이나와 브리안이 들어가자 스필언이 단상에 올라와서 말했다. 취임식 전에 가르딘이 한 말을 전하기 위한 것이다.

  “발키리 영지의 쇄신을 위해서 새로운 행정관을 뽑도록 하겠소이다!”

  행정관이라고 하면 어감이 이상하지만 사실상 영지의 재정과 경영을 모두 책임지는 중요한 임무를 맡은 인물을 뜻한다. 그 인물은 지금까지 바우만 남작이었다. 단상에 있던 바우만 남작이 당황했다. 갑자기 이런 말이 나올 것이라 예상 하지 못한 것이다.

  “영주님! 이게 무슨 일입니까?”

  “자네는 오랫동안 고생하지 않았나, 이제 쉴 때도 됐지.”

  “영주님 ! 제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러십니까?”

  바우만 남작이 억울하다는 듯이 물었다. 오러 마스터에게 함부로 대들 수도 없고 몹시 억울한지 얼굴까지 시뻘겋게 변해 있었다. 마른하늘에 번개 친 꼴이었다.

  “새로운 행정관이 자네의 잘못을 낱낱이 밝힐 것이네.”

  가르딘이 말하기가 무섭게 이제까지 숨어 있던 파멜라가 단상으로 사뿐히 올라섰다. 가볍게 올라선 파멜라는 서류를 들고서 영지민들이 모두 들을 수 있도록 바우만 남작의 비리를 밝혀 내려갔다.

  “영주님의 동의 없이 무단으로 세금을 징수하고, 자신의 사리사욕을 챙긴 바우만 남작의 행위는 제국 법에 의해서 처단이 되어야 할 막중한 죄라고 보는 바이다!”

  국가에서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것이 3가지가 있다.

   땅, 인구, 세금이다.

  세금은 국가의 운용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지만 무리한 세금징수는 나라가 망하는 데 일조를 하는 극악한 짓이다. 그로 인한 피해가 속출하기에 제국 법에서는 세금 가지고 장난하는 놈을 극형으로 처리했다.

  바우만 남작은 온몸이 사시나무 떨듯이 떨려왔다. 설마 했는데 저토록 정확하게 자신의 뒤를 조사했을 줄 몰랐다. 파멜라의 능력을 간과한 것이 실수였다.

  “이...럴... 수가!”

  “이제 불만 없지.”

  가르딘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바우만 남작을 보았다. 바우만 남작은 바로 앞에서 목이 베어지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아직 자신은 죽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 죽는다면 모아논 재산이 아까웠다. 어떻게 모은 재산인데 써보지도 못하고 죽을 수 있단 말인가!

  “살...려 주십시오! 살려만 주신다면 제 모든 재산의 반을 드리겠습니다!”

  “고작 반이라, 목숨 값치고는 너무 싼데.”

  “그...럼 재산의 삼분지 이를 드리겠습니다!”

  끝까지 모두 내놓겠다는 말을 하지 않는 바우만 남작이 어이없는 가르딘이었다. 목숨이 오가는데 재산이 무슨 소용이랴! 어차피 바우만 남작을 살려둘 생각이 없었던 가르딘이다.

  착취를 당했던 영지민들은 속이 시원해졌다. 바우만 남작이 벌인 일로 인해 그동안 먹고살기도 힘들었던 것이다. 죽이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하지는 못하지만 눈빛만은 죽일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가르딘은 모두에게 본보기를 보이기 위해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잔인한 결정이기에 미리 라이나보고 브리안을 데리고 들어가 있으라고 말한 것이다.

  “나를 너무 물로 보고 있군. 영주의 뜻도 파악하지 못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수하를 내가 가만히 둘 것이라 생각했나! 그것도 제국 법을 어겨가면서 자신의 사욕을 챙긴 놈을 말이야.”

  그다지 크게 말하지 않았다.

  냉정하면서도 표정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가르딘이었다. 그 모습이 더욱 무서운 바우만 남작이었다.

  “기사단은 무엇하고 있느냐, 죄인을 끌고 올라가서 참수 시켜라.”

  “충!”

  발키리기사단의 기사가 바우만 남작의 두 팔을 잡고 단상 위로 올렸다. 끌려가지 않으려고 온몸을 흔드는 바우만 남작이었지만 힘에서 상대가 되지 않았다. 억지로 끌려가는 바우만 남작은 오줌까지 지리고 있었다. 죽는다는 것에 대한 공포가 상상을 초월했던 것이다.

  “살...려주...십시오! 모...든 재산...을 드리겠습니다! 살려주십시오!”

  바동! 바동!

  가르딘은 바우만 남작의 비굴함과 사정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치 죽는 것에 대해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영지민들이 보기에 가르딘은 철혈의 영주처럼 보였다.

  으아아악! 뎅강!

  데구르르르르!

  바우만 남작의 머리가 잘려져 단상 위를 굴렀다.

  영광스러운 취임식 날 벌어진 참상이었다. 그럼에도 영지민들은 가르딘을 비난하지 못했다.

  가르딘이 모든 영지민들이 듣도록 말을 했다.

  “모두가 보았을 것이다. 나는 제국을 수호하는 검이었다. 제국의 기사이며 신하이기에 앞으로도 제국의 검으로 우리 영지를 이끌어갈 것이다. 나에게 타협을 바라지 마라, 잘못이 있다면 모두 제국 법에 의거하여 처리할 것이다. 이 말을 명심하라! 알겠느냐!”

  영지민들은 아직 두려워했다. 폭군영주가 와서 더욱더 심한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작용한 것이다.

  가르딘은 그런 주민들의 반응을 예상하며 한 가지 더 말했다.

  “바우만 남작이 걷었던 세금을 정상적으로 복귀시키겠다.”

  “영...주님...만세!”

  “영주님 ! 만세!”

  영지민들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아무튼 지금까지 비리를 저질렀던 바우만 남작이 죽었다. 단호하게 처리하는 것이 무섭기는 하지만 가르딘을 믿고 신뢰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세금까지 원래대로 해주겠다니 환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오늘은 나의 취임식이다.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지만 연회를 베풀 테니 즐겁게 마시도록.”

  취임식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가르딘이었다.

  강한 모습과 풀어주는 모습을 모두 보여주었다. 너무 조이는 모습은 좋지 않았다.

  가르딘은 끝까지 위엄 있는 모습을 내비추면서 취임식을 끝냈다. 강한 영주여야 영지민들이 안심할 수 있다. 특히 이곳과 같이 몬스터와 마수들의 습격이 빈번히 일어나는 지역의 영지민들은 강한 영주를 원할 것이다. 영주가 강해야 영지민들이 안심하며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다.

  취임식이 끝나고 가르딘은 따로 기사들을 불러들였다. 기사들로 부른 자들은 모두 고참급 기사들이었다. 발키리기사단의 주축들이라고 할 수 있는 자들이다.

  고트, 펠칸, 레토, 무릴로, 카인이 가르딘의 방으로 들어 왔다. 기사들도 전과 다르게 경직되어 있었다. 설마 바우만 남작을 모두가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처형할 줄 전혀 예상 하지 못했다.

  바우만 남작에게 조금이라도 돈을 받은 그들이기에 찔리고 있었다. 그렇다고 오러 마스터급 기사에게 덤비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방에 들어온 기사들이었다.

  가르딘은 집무실에 앉아서 들어오는 기사들을 기다렸다.

  “왔나, 그 앞에 앉지.”

  “아닙니다, 서 있는 게 편합니다!”

  “그런가, 그럼 서 있게. 내가 자네들을 부른 이유를 아나?”

  모른다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다. 이미 조사가 다 이루어졌을 테니 눈앞이 깜깜했다. 거짓을 말할 수 없기에 사실대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기사가 뇌물을 받으면 어떻게 된다는 것은 알고 있겠지.”

  뇌물을 받은 기사의 경우 율법대로 한다면 사형이었다. 별 것 아닌 일로 사형이라는 중형을 내리는 이유는 검을 숭상하는 카이로만 제국의 독특한 특성 때문이다. 검은 숭고하면서 도 깨끗해야 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

  “죽...여 주십시오!”

  기사들이 무릎을 꿇었다.

  “저희들만 뇌물을 받았습니다. 젊은 기사들은 죄가 없습니다!”

  자신들만 죽는다면 다행이지만 바우만 남작이 준 돈은 발키리기사단 전체로 흘러 들어갔다. 문제를 파고들면 끝도 없었다.

  ‘괜찮군.’

   저 정도는 되어야 기사들이었다. 목숨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것이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사내라면 저 정도의 강단들이 있어야 했다. 동료들과의 우애가 결코 나쁘지 않았다. 이놈들이라면 제법 믿을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내가 왜 취임식에서 너희들의 죄를 밝히지 않았는 줄 아는가, 그것은 영지민들이 알아서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사소한 돈이라도 받았다는 것이 알려져서 좋을 게 없었다. 기사들이 깨끗하다는 것을 영지민들이 알아야 한다. 바우만 남작이 미처 말하기도 전에 처리한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괜히 불신을 심어줄 필요성이 없다. 보여줄 것과 보여주지 말아야 할 것은 확실하게 구분했다.

  “적당한 돈은 삶을 윤택하게 하고, 살아가는 원동력이 된다. 그걸 탓할 생각은 없어. 하지만 그 이상은 탐욕이 된다. 알겠나.”

  “그럼 용서해 주시는 겁니까?”

  “그만한 일로 사람을 죽일 수는 없지. 사실 따지고 보면 바우만 남작이 재수 없었다고 해야지.”

  착!

  “영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됐어, 적당히 해라. 목숨은 아무렇게 쓰라고 신께서 주신 것이 아니니까.”

  “아닙니다. 저희들은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갚게 해주십시오!”

  “정 그렇다면 지금보다 강해져라. 이것이 내 은혜를 갚는 길이다.”

  “최선을 다해 영주님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알았어, 그러니 이만 나가봐.”

  “충!”

  기사들은 모두 충성서약을 하고 나갔다. 목숨을 걸고 가르딘에게 충성하겠다는 서약이었다. 영지민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고, 기사들의 마음을 얻었다. 이 정도면 영지를 꾸려 가는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았다.

  “피곤하네.”

  가르딘은 심적으로 조금 피곤했다. 평소 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느라 피곤하고 짜증이 났다.

  “목에 힘을 줬더니 컬컬하군.”

  끼익!

  문을 열고 라이나가 들어왔다. 가르딘이 피곤할 줄 알고 계란을 컵에 풀어서 가져온 것이다.

  “역시 당신밖에 없다니까!”

  “힘들었죠.”

  “아니야, 앞으로 잘해야 당신과 브리안에게 부족하지 않은 남편과 아버지가 되지.”

  “무리하지는 마세요.”

  “물론이야! 오늘밤을 위해 힘을 비축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니까!”

  “어머! 당신도 참!”

  라이나가 얼굴을 붉히면서 작게 가르딘의 가슴을 두드렸다. 어찌나 애교 넘치고 센스가 만점인지 가르딘은 절로 입이 벌어졌다. 금세 짜증났던 벽들이 모두 뚫리면서 풀어지기 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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