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다크랜드(암흑의 대지)@@]
카이로만 제국의 서쪽에 위치한 대지.
카이로만 제국의 사분지 일에 해당하는 거대한 대지지만 그 부근에 사람이 살 수 있는 지역은 고작 십분의 일도 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마수와 몬스터의 대지이기 때문이다. 마수와 몬스터의 대지라고 불리는 이곳은 어둠, 그 자체였다. 그렇기에 대륙의 모든 사람들이 다크랜드라고 하여 꺼리며 두려워하게 되었다.
수많은 몬스터와 마수들의 존재들로 인해 사람의 접근이 용이치 않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다크랜드의 살 수 있는 지역을 포기할 수 없었다.
이유는 바로 땅이라는 매력조건 때문이다.
비옥한 땅과 풍부한 물.
사람들이 살지 않은 곳이었고, 다크랜드의 중심에 있는 드라이 산맥의 물줄기가 아래로 흘러 강이 형성되어 있었다.
낮은 평지에 무엇을 심어도 자랄 수 있는 비옥한 토지는 사람들로 하여금 포기할 수 없게 만들었다.
대륙최강국이라고 불리는 카이로만 제국에서 어떻게 해서든 다크랜드의 외곽지역을 차지하려고 기사와 군대를 파견했다. 다크랜드의 중심은 너무 위험해서 불가능할지 몰라도 외곽지역은 충분히 방어할 수 있는 지역으로 판단을 내린 것이다.
카이로만 제국의 6대, 포스트만 황제가 명령을 내려 다크랜드 개척 사업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무수히 많은 몬스터와 마수들이 덤벼들었다. 중심이 아니라고 해도 오크와 고블린의 공격은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대륙 최강의 기사단이 버티는 카이로만 제국이었다.
압도적인 물량과 군사력으로 몬스터들을 대지에서 조금씩 다크랜드 중심으로 밀어내었다.
다크랜드의 중심이 아니라 외곽에 불과하지만 그 대지가 다른 후작급 영지에 맞먹는 크기를 자랑한다. 그 정도로 넓은 지역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이주는 쉽지 않았다. 다크랜드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비옥한 땅과 풍부한 물이 존재하는 곳이라고 해도 몬스터와 마수들의 공격에 당한다면 쓸모없는 것보다 못한 결과였다.
결과적으로 카이로만 제국은 제국에서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다크랜드의 외곽, 발키리 영지로 이주를 계획했다. 이들을 시험 삼아 버리는 패로 활용한 것이다.
발키리 영지의 개발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져갔다. 한계에 달한 사람들은 땅을 가진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목숨을 버릴 정도로 강렬한 욕망을 불태웠다. 인간의 잠재력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좋은 예였다.
수대에 걸친 계획으로 발키리 영지는 꽤 좋은 영지로 평가를 받게 되었다. 다만 번번이 침입을 하는 몬스터와 마수들의 공격에 피해를 입기에 두려움은 여전했다. 반면에 버리기 에는 아까운 곳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특히 밀 생산에 있어서 제국에서 3번째로 가장 많은 소출을 내고 있었다.
귀족들의 입장에서 발키리 영지는 충분히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너무 변방이었다. 결국 좌천하는 기분으로 발키리 영지를 맞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버리기에는 아깝고, 가기에는 섭섭한 영지로 말이다.
드라이 산맥의 중심.
그 중심에서 가장 커다란 산인 드라이스 산.
아무도 알지 못하지만 이곳에는 누군가 존재한다. 다크랜드의 실질적인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그의 존재는 대륙에서 점차 잊혀 가고 있었다. 사람들의 관념은 그리 길지 않다. 한 세대를 지나 다시 두 세대가 지나면 점차 잊혀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마음속으로 모든 대륙인들에게 두려움을 가지 게 만드는 존재였지만 그는 활동을 하지 않았다.
후우우우! ~
우우우우웅!
숨이 쉬어졌다. 무언가가 활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응축되었던 숨이 터지자 드라이스 산 전체가 흔들리고 있었다. 굉장한 마나의 폭풍이었다.
다크랜드의 모든 몬스터와 마수들이 두려움에 떨며 벗어나려고 하고 있었다. 2천 년 만에 깨어난 다크랜드의 주인이었다.
드라이스 산의 중턱에 나무와 숲으로 가려진 거대한 동굴이 존재했다. 그 안으로 누군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눈 속에 서린 힘의 폭풍이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무서웠다. 거대한 덩치와 온몸은 강철을 능가하는 비늘로 덮여있었다. 또한 그 크기는 산과 비견될 정도로 엄청난 크기를 자랑했다.
거대한 비늘과 날개를 가진 흉폭한 인상의 괴물.
즉 드래곤이었다.
대륙의 역사 속에서 사라져간 드래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거대한 드래곤의 이름은 라이젠 크라이스였다. 골드일족의 고룡으로 15마리밖에 남지 않은 드래곤 중에 하나다. 드래곤은 2천 년 전에 벌어진 전투로 인해 많은 피해를 받았고, 그로 인해 수면기에 들어서게 되었다. 대륙에서 드래곤의 존재가 사라진 계기였다. 그 당시에 마족들이 공간을 무시하고 쳐들어왔기에 대륙의 조율자인 드래곤들이 나서서 마족들의 공세를 막아내었다.
막아낸 후 무수히 많은 드래곤들이 죽어나갔다. 마족들의 힘은 상상 이상으로 강하고 음험했다. 결국 소수만이 살아남아 있는 상태였다.
오랜 시간 잠들어 있던 라이젠이 깨어난 이유가 있었다. 그건 바로 자신의 옆에 서 있는 또 하나의 드래곤 안젤리카 크라이스 때문이었다. 신마대전이라고 불리는 일이 있은 후 태어난 라이젠의 딸이었다. 라이젠의 아내였던 칼리아나는 마족들과의 싸움에서 생명이 다하였다.
거대했던 모습이 작아지며 사람의 형상을 띠었다. 금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청색의 맑은 눈빛을 내는 인물이 라이젠이었다.
그 옆으로 아름다운 금빛 머리카락과 투명할 정도로 고운 피부를 가진 여인이 서 있다.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정확하고 세련된 이목구비를 가진 여인이었다.
안젤리카 크라이스였다.
드래곤은 마법의 조종이라는 평가는 받는 만능의 존재다. 사람으로서는 따라갈 수 없는 수명과, 지식을 가진 현명한 존재이자 무섭도록 파괴적인 존재이기도 했다. 모든 대륙인들에게 두려움과 경외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이제 너도 내 곁을 떠나야 하는구나.”
라이젠은 걱정이 담긴 눈으로 안젤리카를 바라보았다. 라이젠의 나이는 이미 8천 살에 육박해 있었다. 현존하는 드래곤 중에서 드래곤 로드를 빼고 가장 많은 나이를 가지고 있었다.
드래곤들은 보통 일정한 나이가 되면 부모의 품에서 자식을 내놓는다. 드래곤들의 성격상 부모와 자식이라고 해도 개인적인 성향이 강해 서로 정이 그다지 없는 편이지만 라이젠은 달랐다. 유달리 사랑했던 칼리아나였다. 그녀와의 사랑에서 태어난 안젤리카에 대한 부정은 상당히 강했다. 특히 칼리아나가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면서 부탁한다는 말까지 전했으니 걱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었다.
“아빠도 참, 이제 나도 어른이야!”
안젤리카의 나이는 2천 살이었다. 드래곤들 중에서 성인식을 지나 웜급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다 자란 성인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안젤리카는 너무 라이젠의 품에 오래 있었던 영향을 받아서인지 약간은 어려 보이는 말투를 보이고 있었다.
“그렇지, 내 딸이 벌써 커서 이제는 내 품을 벗어나려는구나!”
우울한 라이젠이었다.
그는 자면서도 딸 걱정이었다. 수면기에서 깨어나면 딸이 얼마나 컸는지 재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점차적으로 성장하는 안젤리카를 보면서 얼마나 흡족했는지 생각만 해도 짜릿한 감정이었다.
‘그때는 좋았는데!’
안젤리카도 아버지를 극진히 사랑했다. 하지만 일정 수준의 나이가 되면 스스로 집(레어)을 지어 나가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왔다. 솔직히 조금은 자유로운 생활을 해보고 싶기는 했다. 안젤리카는 자유롭고 싶지만 그와는 반대로 라이젠과 오래도록 같이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안젤리카는 결정을 내렸다.
“아빠, 걱정하지 마! 나도 이 근처 산맥에 집을 지을게, 그러면 자주 만나고 좋잖아!”
“오오!”
부비! 부비!
라이젠은 딸의 결정이 너무나 사랑스러운 나머지 안젤리카를 들어서 뺨 비비기를 격정에 찬 상태로 하고 말았다. 그녀의 결정에 찬성을 보내고 있었다.
“아빠 딸은 역시 착하구나, 어서 집을 지어 보자구나!”
“그래요, 아빠!”
“우선은 터만 잡을 생각이야.”
“내 딸 똑똑하구나, 좋은 자리를 잡고 드워프들에게 일을 시키자구나!”
“하지만 여기는 드워프가 없잖아.”
“내가 아는 드워프가 있단다.”
다크랜드에 드워프가 없는 것은 당연했다. 몬스터와 마수들이 판을 치는 곳에 아무리 드워프가 강해도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다크랜드에서 생생이 살아간다면 마스터급 드워프라는 칭호를 붙여주어도 무방했다.
안젤리카는 억지로 드워프를 데려오기 바라지 않았다. 드래곤은 대륙의 조율자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무리하게 인간사에 개입하지 않으며, 그저 있는 듯 없는 듯하며 살아간다. 인간들이 오해하는 편견이 있는데, 드래곤이 함부로 사람을 죽인다는 말도 안 되는 헛소문이 그것이다. 물론 개인적으로 몇 명을 죽인 것은 있을지 모른다. 소문이 와전되어서 부풀려졌을 가능성이 컸다. 그렇게 따지면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것이 더 많은 것이 사실 아닌가!
“아빠, 억지로 데려오는 것은 안 돼.”
“걱정 마라. 내가 예전에 도와준 녀석들이라 말만 하면 올 거다.”
“정말이요, 아빠밖에 없다니까!”
“어찌나 이리 곱게 자랐는지 !”
안젤리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는 라이젠이었다.
아버지와 딸의 오붓한 대화와 정이 넘치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보는 사람의 마음을 한껏 따뜻하게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드래곤들의 화목한 모습이 보기 좋은 광경을 연출했으나 다른 한쪽으로는 날벼락이 친 상황이기도 했다.
다크랜드의 외곽에 위치한 발키리 영지.
다크랜드와 근접하는 곳을 중심으로 성벽이 둘러쳐 있었다. 성벽은 몬스터와 마수들의 침입에 방어를 위한 곳이기도 했다. 성벽을 중심으로 곳곳에 망루가 설치되어 있어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해 놓았다. 또한 이곳은 성벽이 이중으로 되어 있었다. 이곳을 중심으로 하나의 성벽이 있고, 그 뒤로 또 하나의 성벽을 설치해서 뚫렸을 때를 대비하였다.
몬스터들의 침입이 전보다 확연하게 줄어들었지만 언제 어떻게 쳐들어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방어에 중점을 두다 보니 발키리 영지의 수비대는 다른 영지에 비해 상당히 강했다. 실전경험이 많은 만큼 경험 면에서 모두 베테랑이었던 것이다.
성벽의 망루에 올라선 수비병 피터슨이 놀라고 있었다.
수비대 경력 20년 차인 피터슨이 놀라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소규모의 몬스터, 마수들의 공격이야 성벽 위에서 활을 쏘아서 쫓아버리면 그만이지만 이 경우는 달랐다.
“저...럴 수가!”
20년 동안 저렇게 많은 수는 처음 보는 피터슨이었다. 몬스터와 마수들이 달리는 것 때문에 흙 폭풍이 일고 있었다. 그 뒤로 까마득하게 많은 수의 몬스터와 마수들이 줄을 이었다.
그는 잠시 멍했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렸다.
휘이이이잉! 뎅! 뎅! 뎅!
즉시 신호를 울렸다.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최대한 크게 신호를 울렸다. 즉시 수비대에서 신호를 타고 반대쪽으로 신호가 갔고, 다시 신호를 타고 다른 곳으로 전달이 되었다.
성 앞으로 엄청난 먼지가 형성이 되고 있었다. 바로 대규모의 몬스터들이 발키리 영지를 향해 덤벼들고 있었던 것이다.
굉장한 수였다.
셀 수도 없는 수에 질릴 지경이었다.
발키리 영지 영주인 도노반 자작의 저택에 비상종이 울렸다. 서재에서 책을 보고 있던 도노반 자작은 그 즉시 무슨 일 인지를 확인했다.
도노반 자작의 앞으로 울리버라는 기사가 달려왔다.
“무슨 일인가?”
“큰일 났습니다. 대규모의 몬스터가 영지를 향해 오고 있습니다!”
“뭐라고! 수가 얼마나 된다고 하는가?”
“최소 1만 마리는 된다고 합니다!”
“1만이나! 큰...일이군! 어서 빨리 지원군을 불러라! 나는 제1성벽으로 가 볼 테니!”
“알겠습니다. 영주님!”
도노반 자작은 즉시 자신의 검과 갑옷을 챙겼다. 그는 귀족이기 전에 검사였다. 그 역시도 카이로만 제국의 피닉스기사단 출신이었다. 15년의 피닉스기사단의 정해진 횟수를 채우고 제대하여 자작의 지위를 하사받았다. 다들 피하는 발키리 영지에 오기는 했지만 이곳은 꽤 괜찮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중앙귀족들의 정치싸움과는 떨어져 있었고, 몬스터들의 공격으로 인해 심심하지도 않았다.
딱 이상적인 곳으로 왔다고 생각했던 도노반 자작이었다. 비록 오러 마스터에 오르지 못해 상급귀족이 되지는 못했지만 나름 만족한 삶을 살고 있었다.
보통의 몬스터들이라면 상관하지 않겠지만 그 수가 1만에 달했다. 심심풀이로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을 한참이나 벗어나 있었던 것이다. 한시라도 빨리 제1성벽으로 가야 했다. 그곳에서 막아내야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성벽에 영주가 있고, 없고에 따라 병사들의 기세가 달라진다. 전투는 지휘자가 선두에 서서 진두지휘를 해야 병사들이 따라오는 것이다. 피닉스기사단의 평범한 기사였지만 무사히 제대한 도노반 자작은 그것을 가장 잘 알았다. 전투에서 무엇이 필요한지 모른다면 기사단 짬밥을 제대로 먹지 못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도노반 자작이 기사들을 이끌고, 서둘러서 움직였다.
발키리 영지의 기사들과 병사들을 모두 모았고, 영지에 있는 주민들 중에 건장한 청년들로 징병할 수 있도록 명령을 내려놓았다.
발키리 영지만의 특수한 규칙이었다. 몬스터들의 칩임은 모든 영지민들이 참여하게 되어 있었다. 거부하면 즉결 참형에 처한다. 가혹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영지민들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몬스터들이 사람을 가려가면서 죽이는 것도 아니고, 단지 식욕과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몬스터들에게 밥이 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도노반 자작이 제1성벽에 갔을 때 이미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치열한 전투의 현장이었다.
성벽을 중심으로 수비병들은 화살과 돌을 집어던지고 있었다. 성벽을 최우선으로 지키며 방어하는 수세적인 공성전이었다. 몬스터들에게는 취약한 전법이라고 할 수 있었다. 몬스터들이 전법을 이용해서 공격할 리 만무했다.
성벽의 높은 위치에서의 공격이라서 금방 끝낼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달랐다. 오늘따라 몬스터들의 공격이 너무 거셌다. 마치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인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필사적으로 달려드는데다 수가 너무 많았다. 애초에 1만 이라고 말한 것보다 더욱 많은 수였다.
오늘따라 벌어진 일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도노반 자작은 상황이 불리하다고 해서 포기할 수 없었다. 이대로 무너진다면 발키리 영지는 끝이었다. 지나간 세월 동안 만들어 놓은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 순간이었다.
뿌드득!
이를 악물며 병사들을 독려하는 도노반 자작이었다.
“힘을 내라! 곧 지원병이 올 것이다! 고작해야 몬스터들이다! 이놈들에게 인간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보여주는 것이다!”
성벽의 중심에서 병사들을 독려하며 필사적으로 몬스터들을 막아내는 도노반 자작이었다. 그의 외침에 병사들도 최선을 다했다. 귀족이 손수 나와서 병사들을 지휘하는 상황이었다. 물러서지 않는 귀족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안심을 하고 있었다. 귀족이 있다는 것은 승리할 수 있다는 뒷받침이 있다고 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목숨을 거는 귀족은 병사들에게 용기를 주었다.
하루아침에 끝날 전투가 아니었다.
몬스터들의 파상공세도 문제지만 성벽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두려움을 모르는 몬스터들의 공격에 방어선이 점차 헐거워지고 있었다.
오랜 시간 준비해 온 성벽이라고 해도, 보수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곳이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그곳이 점차 무너지려고 하자 위험상황이 극에 달하기 시작했다.
슈슈슈슈슉!
크아아아아앙!
화살이 날아가고, 돌이 밑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럼에도 몬스터들이 성벽을 두드렸다. 죽은 몬스터들이 층이 되어 점차 쌓여가고 있었다.
도노반자작의 얼굴빛이 변해갔다.
‘지독한!’
이처럼 지독한 놈들은 그의 생애에도 처음이었다.
도노반 자작의 눈에 무너지려고 하는 성벽이 보였다. 균열이 가는 지점을 중심으로 몬스터들이 침입하면 큰일이었다.
“앤더슨! 우리는 저곳으로 내려간다!”
“예! 영주님!”
저곳은 병사들로 막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직접 기사들을 이끌고 내려가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무너지는 곳을 기사들로 막아내고 시간을 번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우르르! 꽈과과광!
성벽의 한쪽 측이 무너졌다.
무너진 곳을 보자 몬스터들이 앞뒤 보지 않고 달려들기 시작했다. 오크를 비롯한 고블린, 심지어 오우거까지 모습을 보였다.
도노반 자작이 소리쳤다.
“침착해라, 아무리 많아도 이곳으로 들어올 수 있는 것은 한정되어 있다! 우리의 뒤에 버티는 가족들을 생각해라! 최선을 다해 막아내는 것이다!”
기사들을 독려하며 두려움을 떨쳐내라고 하였다. 도노반 자작의 손에 땀이 배어 나왔다. 그도 두려웠다. 하지만 자신이 물러서면 영지는 끝이었다. 또한 자신의 아내와 딸, 그리고 모든 것들이 무너져 내릴 수 있었다. 절대 물러설 수 없는 영주이자 가장이었다.
귀환을 위한 여정은 순탄했다.
위험이 있는 요소는 이미 배제를 해버린 상황이라 별다른 문제는 없어 보였다. 돌아가는 곳곳을 감시하며 무사태평한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그에 따라 아이시런 공주의 짜증이 증폭이 되다 못해 더욱더 거세졌다.
가르딘의 입장에서 절대 내보내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 몇 번 발생해서, 결국 허락을 하고 말았다.
돌아가면서 걸치는 영지에서 얼굴변화 아이템을 다시 구입했다. 상당한 액수를 불러대는 상인에게 압도적 기세와 살벌한 얼굴로 값을 깎아 여유분을 획득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불안한 가르딘이었다.
한번 외출을 하고 돌아오면 10일 정도는 잠잠한 편이었다. 이 시간 동안 가르딘이 쉴 수 있었느냐 그것 또한 아니었다.
쉴라의 부탁 때문이었다.
떠나는 시간에 맞추어서 쉴라가 스필언과 미토스를 잘 가르쳐 달라는 부탁을 한 상태였다. 거절하기에는 뒤를 닦지 않은 것처럼 떨떠름하고, 가르쳐주기에는 위험부담이 있기에 망설이는 상태였었다.
‘고생길이 훤하네.’
가르쳐주는 데 가장 큰 걱정은 어떻게 알고 있었느냐에 대한 문제였다. 이 문제에 대해 고심한 가르딘은 어쩔 수 없이 거짓으로 둘러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럴듯한 변명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가르딘이 마차로 이동을 해갔다.
“필리언, 공주님 주변을 경계하고 있어, 스필언과 미토스는 나하고 앞에 정찰을 하고 올께.”
“알았다 ”
필리언은 마스터급 기사 3명이 정찰한다는 것에 이상함을 느꼈지만 가르딘이 하릴없이 진지하게 말을 하는 성격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알겠다고 대답을 해주었다.
“스필언, 미토스는 날 따라와.”
“예!”
짧게 대답한 스필언과 미토스였다.
가르딘은 그 둘을 데리고 앞으로 나아갔다. 공주의 마차에서 벗어나서, 소리가 들리지 않는 지점까지 도착한 가르딘이었다.
스필언과 미토스는 주변 정찰이라는 임무에 충실하기 위해 철저히 수색을 하고 있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는 훌륭한 기사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보고 있는 가르딘은 입가에 어색한 미소가 그려졌다.
‘고지식하기는!’
이미 이 주변에 위험한 요소가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3명 이외에는 느껴지지 않는 것을 확인한 가르딘이 멈추어 섰다.
정면으로 가던 가르딘이 돌아서서 스필언과 미토스를 바라보았다. 스필언과 미토스는 순간적으로 무슨 일인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실 말씀이 있는 겁니까?”
“그래, 할 말이 있다.”
스필언과 미토스는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다. 굳이 무리해서 자신들만 데리고 나온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내가 어떻게 마스터가 됐는지 알고 싶지 않느냐.”
궁금증과 호기심을 유발하는 단어를 선택하여 말을 하는 가르딘이었다. 기사에게 마스터는 꿈이자 희망이다. 당연히 궁금해 할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스필언과 미토스는 저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흥미를 땡기고 있기에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특별한 검술도 없는 작은 영지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상급의 검술을 배운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너희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당연한 말이었다.
상급검술은 대부분 이미 소지하고 있는 자들의 몫이다. 가진 자들이 풀어놓지 않기에 없는 자들은 올라서기 힘들 수밖에 없다. 미토스와 스필언도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우연히 내게 행운이 찾아왔다. 킹덤나이트의 도서관에서 오래전 기록한 검술서를 발견했다......”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되었다.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것을 우연의 우연이 겹쳐서 자신만 알 수 있게 되었고, 그 안에 적힌 검술이 결코 단순하지 않은 대단히 뛰어난 검술서였다는 식의 진행방식이었다. 기연을 얻는 여러 가지 방식 중에 하나로써 대표성을 띠는 이야기였다. 보통 기연은 세 가지 중에 하나로 선택이 된다. 하나는 절벽에서 떨어졌는데도 불구하고 살아서 절대무공을 얻는 것과, 둘째로 대단히 뛰어난 사부를 만나 기연이란 기연은 모조리 다 얻는 것, 마지막으로 가르딘과 같이 우연히 얻어진 것이 있다.
가르딘은 며칠 동안 고민한 내용에 살이란 살은 모두 붙여 스토리의 구성에 이상이 없는지 몇 번이나 확인을 마친 상태였다.
도서관의 경우 킹덤나이트에서 조사가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 내부의 깊숙한 지점에 몰래 숨겨둔 것을 우연히 건드려서 얻어졌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충분히 그럴듯한 말로 이어지게 된다.
가르딘이 태연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이유는 또 있었다. 이미 스필언과 미토스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얻어놓은 상태였다. 계란에서 오리가 태어난다고 해도 이제는 믿을 수 있을 만큼의 단단한 유대관계가 형성되어졌다.
스필언과 미토스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 탄성을 질렀다. 역시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도 알게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르딘은 감동의 물결이 파도가 쳐서 폭풍해일이 되도록 만들었다.
“나는 아직 그 검술의 내용을 모두 익히지 못한 것이지, 결국 남긴 자의 뜻에 어울리는 그릇이 아니라는 말이 된다. 하지만 너희는 다르다! 너희들은 충분히 그만한 자질이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분의 유지를 받들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너희들에게 이 검술의 내용을 전하고 싶다.”
스필언과 미토스의 눈에 존경과 경외의 눈빛이 살아 움직여 나갔다. 우연히 얻었다고 해도 그 검술이 가진 위력이 대단하다면 욕심이 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었다. 그럼에도 상대의 자질을 알고 아무런 조건이 없이 가르침을 내리려고 하고 있었다. 감동하지 않는다면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가르딘 선배님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연히 얻어졌다고 해도 잊힌 검술이 가진 힘을 알아본 사람이 있다면 충분히 자격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올곧은 녀석들의 표본이었다.
가르딘은 내심 이놈들이 괜찮은 놈들이라고 평가를 내렸다. 준다고 했을 때 넙죽 받아들인다면 의심이 갈만했는데, 이 녀석들은 아니었다. 너무 곧아서 속이는 자신이 양심에 찔릴 지경이었다.
“아니다. 보물은 재능이 있는 자에게 전해서 꽃을 피울 가치가 있는 것이다. 너희들은 충분히 그만한 자질이 있다!”
“과찬입니다.”
“저희들은 아직 부족합니다.”
“부족함을 알았을 때 이미 차고 넘치는 것이다. 너무 거절 하면 용기를 낸 내가 너무 민망하지 않느냐.”
일부러 스필언과 미토스를 데리고 온 상태였다. 결국 전하려는 가르딘의 의지를 보여주는 행위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속생각은 전혀 달랐다.
‘아깝다.’
자신의 것을 남에게 아낌없이 베풀 수 있는 담대한 마음을 아직 완벽하게 갖지 못한 가르딘의 비애였다. 속으로는 배알이 꼴리고, 창자가 뒤틀리는 것 같은 충격이 어김없이 후려 쳤다.
겉으로 내색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를 쓰고 있는 가르딘이었다. 귀밑머리에 약간의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은 아무도 보지 못해 다행이었다.
“우선은 가볍게 스텝부터 시작해 보자꾸나, 내 움직임을 잘 보아라.”
가르딘은 오른발을 내딛고, 다시 왼발을 내디뎠다. 가볍고 경쾌하면서 부드러웠다. 사뿐히 땅을 지르밟고 가는 모습이었다. 나뭇잎이 살랑거리며 떨어지는 듯한 모습이었다. 전혀 검술에 이용될 수 있는 움직임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사뿐! 사뿐!
부드러우면서도 자연스러웠다. 발걸음이 점차 규칙적이면서도 빨라졌다. 그러면서도 부드러움은 유지하고 있었다.
스필언과 미토스는 처음에는 약간은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그들이 가진 윈드 스텝보다 못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점차 빨라지는 가르딘의 모습을 보면서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지랑이 같은 느린 움직임인 줄 알았는데, 이미 그들의 눈에서 벗어난 사각지역에서 가르딘이 나타났다. 한순간도 시선을 떼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렇다고 무섭도록 빠르다는 느낌도 받지 않았다.
처음의 발걸음이 규칙적인 것으로 봤는데, 어느 순간 규칙이 완전히 바뀌었다. 오른발이 나간 것이 아니라 왼발이 나가 있는 상태였다. 역으로 움직였다는 것이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순간에 방향을 틀었다는 말이 되었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움직임이었다. 생각을 정리하자 스필언과 미토스는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만약 자신들이 실전이었다면 가르딘의 검격을 막아내지 못한다는 말이 되었다. 같은 오러 마스터였지만 순식간에 등줄기가 반으로 갈라졌을 것이다.
“어떻게?”
“왜 그런지 모르겠지.”
“그...렇습니다.”
“우리가 익히고 있는 스텝은 대부분이 직선적으로 빠른 움직임만을 강요하고 있었다. 일시에 파괴력을 실어 내기 위한 움직임이지. 상대보다 빠른 움직임으로 적을 제압하는 것이지. 물론 대전을 치르는 기사에게 필요한 수법이기는 해, 하지만 일대일 대결에서 반드시 빠르다고 이기는 것은 아니야. 지금의 움직임은 너희들보다 빠르지 않다. 하지만 상대의 시선을 분산시켜 역으로 움직이는 수법 하나만으로 일대일 대결에서는 거의 필승을 좌우할 수도 있지.”
가르딘의 설명이 이어졌다.
윈드 스텝의 경우 바람처럼 빠른 움직임을 강요한다. 하지만 바람은 빠르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작은 바람, 중간 바람, 거센 바람.
그리고 바람 한 점 없는 상태도 있다.
가르딘이 가르치려는 것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직선적인 움직임에서 전후좌우가 존재하고, 빠름과 느림이 공존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가르딘은 신마의 기억 속에 들어 있는 유운신법, 운룡대팔식의 장점만을 끄집어내어 설명을 하고 있었다. 부드럽지만 빠르고, 빠르지만 느린, 현묘한 신법 중에 하나였다. 대성한다면 신형을 잡을 수 있는 존재는 없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유운신법과 운룡대팔식은 신마가 쫓기던 시절에 겪었던 무당파의 말코도사와 곤륜의 도인과 대결하면서 느낀 점을 연구하고 내린 결론이었다.
가르딘은 섬전행과 섬전보를 가르치지는 않았다. 그것은 자신이 가진 최강의 보물이었다. 또한 신마는 일인전승을 강하게 인식시켰다. 아무에게나 가르쳐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가르딘은 설명을 하면서도 이 녀석들이 이해하고 있는지를 확인해 주었다. 한순간에 익힐 수 있는 절기가 아니었다. 오랜 시간 연구하면서 기억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직접 보니 어떠냐?”
“저희도 생각한 것이지만 실제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보니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 같습니다.”
“한 번에 익혀질 수 있는 것은 아니야, 오랜 수련이 필요 하지. 나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것이지만 너희들은 충분히 대성할 수 있을 것이다.”
가르딘은 황성까지 가기 전에 모든 것을 가르쳐주고 홀가분하게 생활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이놈들에게 언제까지 얽매여 있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마지막으로 이것을 가르쳐주면 되겠지.’
보법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직접 보여주지 않는 이상 알려줄 수 있는 길이 없었다.
가르딘이 다음으로 선택한 것은 항마멸사신공이었다. 항마멸사신공은 마를 멸하는 기운으로 신성력과의 궁합이 상당히 좋은 신공 중에 하나다. 또한 내공을 기르는 데 이것만큼 좋은 것도 없는 편이다. 이놈들이라면 지금보다 족히 세 배 이상의 효율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오늘은 이만 하고 돌아가자.”
“예, 선배님!”
오늘 배운 것을 자신의 것으로 습득해 나가려는 스필언과 미토스였다. 그와 동시에 스필언과 미토스는 가르딘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이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는 것이 더 대단해 보였다. 충분히 이상한 상황인데 의심하지 않는 것을 보니 이놈들도 대단한 놈들이었다.
가르딘과 스필언, 미토스가 정찰을 끝내고 돌아오자 필리언이 다가왔다.
필리언은 무슨 일인지 물어보았다.
“왜 데리고 간 거냐?”
“넌 몰라도 돼.”
“친구끼리 이러기냐! 너 이러면 정말 재미없다.”
“너 없어도 재미는 충분히 없어.”
“그러냐, 좀 전에 공주님이 너 어디 가는 거냐고 물어보던데.”
“정찰 간다고 했으면 됐잖아.”
가르딘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해 주었다. 정찰 가는 것을 공주가 이상하게 여길 이유가 없지 않은가! 가르딘의 대답에 필리언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던 것일까.
“뭐라고 말했는데?”
“뭐, 그냥 생리현상이라고 했어.”
휘청!
말에 오른 가르딘은 떨어질 뻔했다. 생리현상을 어떤 식으로 표현해야 할지 암담했다. 뒤에서 아이시런 공주가 부르는 것이 아닌가!
마차 안에서 창문을 연 아이시런 공주가 이런 말을 했다.
“참 오래도 하네요.”
스르륵! 탁!
그리고 창문을 닫아 버렸다.
남겨진 가르딘은 정말 똥 싼 표정이 되었다. 그렇다고 대놓고 화풀이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상황이었다. 아니라고 말하면 더욱더 의심을 가중시키는 행위가 되어버린다.
‘난 변비 아니라고!’
카이로만 제국의 수도 오스란.
황궁을 중심으로 축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황궁에서는 이번 공주의 성인식을 훌륭히 마친 아이시런 공주를 성대하게 마중하기로 한 것이다. 이번 여정으로 마스터급 기사가 3명이나 늘었고, 성녀를 무사히 신성제국에 인도한 공을 치하하기 위한 환영회의 일종이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소규모가 아닌 수도 전체가 축제 분위기가 될 정도로 대대적이라는 것에 있었다.
제국의 위상을 다시 한 번 보여주려는 이유가 가장 컸다. 제국 내 백성들에게 제국의 위대함을 보여주어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것도 중요한 이유였다.
황궁 내에서도 공주를 기다리고 있었다.
공주의 여정은 꼬박꼬박 황성 내 통신구로 연락이 온 상태였다. 그러기에 언제 어디에 있는지 위치를 파악하고 있었다.
황궁과 수도가 축제분위기에 휩싸일 때 통신구에 비상연락이 왔다. 황궁의 떠들썩한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통신내용이었다.
연락을 받은 황궁 내 정보요원이 재상인 바이멘 후작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워낙 긴급을 요구하는 내용이라 서둘러야 했다.
황궁의 모든 대소사를 관장하는 재상은 가장 바쁜 사람 중에 하나였다. 바이멘 후작은 상당히 뛰어난 인물이었다. 혼자서 뛰어난 것보다 사람을 다루는 능력에 탁월한 편에 속했다. 인재의 재능을 간파하고 일을 분석하는 능력에 따라 각각의 배치를 적절하게 조절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바이멘 후작의 방에 정보요원 데이브가 긴급히 들어왔다.
“무슨 일인가?”
“급보입니다. 발키리 영지에 대규모의 몬스터가 침입했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막아내기는 했지만 도노반 자작이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뭐라고! 발키리 영지에 침입한 몬스터의 수가 얼마나 되기에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냐?”
“최소 1만 마리 이상은 되었다고 합니다.”
갑작스러운 몬스터의 침입으로 인해 바이멘 후작은 골치가 아프기 시작했다. 도노반 자작이야 권력 없는 귀족 중에 하나다. 그의 죽음이 안타깝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발키리 영지의 사수였다. 발키리 영지는 위험이 있는 영지이기는 하지만 제국의 곡창지대 중에 하나였다. 영지 자체뿐 아니라 식량창고의 역할을 하는 곳이기도 했다.
“근래에 이 정도로 많은 수의 몬스터는 침입하지 않았는데.”
발키리 영지를 처음 개척할 때나 많은 몬스터가 침입했지, 이제와서는 거의 소수의 몬스터가 공격하는 것이 다였다. 그 이상의 공격은 거의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한동안 발키리 영지를 가지려는 귀족들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였다. 위험이 사라졌으니 발키리 영지만큼 매력적인 장소가 없기 때문이었다.
“다크랜드에 무슨 일이 있는 것인가?”
고민을 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다크랜드는 말 그대로 암흑의 대지였다. 카이로만 제국의 최정상의 시기에도 좀처럼 들어가지 못한 곳이기도 했다. 그 안은 몬스터와 마수들의 천국이었고, 대규모의 병력이 들어가기에는 산이 너무 험준했다. 다크랜드 안의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병력을 파견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더군다나 코카 제국이 인근 접경지역으로 군대를 이동시키는 상황에서는 어려운 일 중에 하나가 될 수밖에 없었다.
“우선은 인근 지역의 영주들에게 병사를 내어서 발키리 영지를 도와주라고 해. 이후에 제국의 군대를 보내도록 할 테니.”
“알겠습니다. 재상 각하!”
발키리 영지의 도노반 자작에 대한 자료를 구해오라고 한 바이멘 후작이었다. 도노반 자작의 자료를 살피며 안타까운 감정을 드러내었다.
“딸이군.”
도노반 자작에게는 아들이 없는 상태였다. 여인에게 발키리 영지를 맡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딸이 비록 오스란의 최고의 교육기관인 오스라인 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다였다. 여인으로서 위험한 일을 도맡아 할 힘이 없는 상태였다. 결국 새로운 영주를 보내야 한다는 말이 되었다.
이것이 골치 아픈 사안이었다. 평상시의 발키리 영지라면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지금의 발키리 영지는 버리기에는 아깝고, 가지기에는 위험한 곳이 되어버렸다. 영주들 중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싶은 영주는 별로 없었다. 대부분의 귀족들이 탐욕스럽기는 하지만 목숨을 걸고 욕심을 부리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발키리 영지에 대한 소문이 곧 퍼질 테니 가려고 하는 인물들이 별로 없을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그렇다고 이대로 방치할 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누군가 하나가 희생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음!’
한참을 생각하던 바이멘 후작이었다.
“최소한 도노반 자작 이상의 힘이 있어야 하고, 귀족이어야 한다는 말인데.”
도노반 자작의 경우 하급귀족의 범주에 속하지만 무력만큼은 결코 부족한 편이 아니었다. 피닉스기사단에서 말년제대 한 경력만 보아도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기사라는 말이었다. 그가 버티고 있었기에 간신히 발키리 영지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 아니었다면 어림도 없는 상황이었다. 산술적으로도 1만 마리의 몬스터는 쉽지 않은 상대임에 틀림없었다.
많은 병력을 발키리 영지로 차출할 수 없는 상황에서 노련 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전술을 구사하며, 뛰어난 검술을 가진 기사 중에 한 명이 적임자라는 생각이 든 바이멘 후작이었다.
근래에 마스터에 든 인물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무 배경이 없으면서도 뛰어난 기사로 이름이 났고, 제대하는 기간이었다. 사실 바이멘 후작은 황권의 강화를 주도하는 인물이라 서 황족과 귀족 간의 힘의 배분이 기울어지지 않도록 조율하는 입장이었다. 만약 마스터급 인물이 황족이 아닌 귀족들의 편에 서서 일을 하게 될 경우 지금까지 잠잠했던 황실에 태풍이 불수도 있는 일이었다. 가급적 귀족들과 떨어뜨려 놓으면서도 필요에 따라서 다시 쓸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놓아야 했다.
“음, 가려 할까!”
하지만 상대는 마스터급 기사였다.
누군가 동조해 주는 사람이 없는 이상 혼자서 밀어붙일 수도 없는 일이었다.
“우선은 황실에 보고는 해봐야겠지.”
혼자서 결정을 내릴 수는 없다. 황제의 윤허와 더불어 귀족들의 대표 격인 공작들의 용인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