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2/93)

   @@[제5장 나는 네가 지난날 벌인 일을 알고 있다@@]

 웅성 ! 웅성 !  

 많은 사람들이 신성제국의 대교단 앞에 모였다 . 만인이 보는 앞에서 공주님의 성인식 인증을 증명하기 위한 행사가 거행되고 있었다 . 그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  

 카이로만 제국의 공주이자 대륙제일 미인이라는 평가를 받는 아이시런 공주의 성인식이라서 그런지 사내들의 비중이 높은 것을 제외하면 별다른 특징은 없었다 . 또한 위험한 일이 발생할 근원을 차단하기 위해서 만반의 준비를 다하고 있었다 .  

 공주의 성인식 인증을 위해서 프리먼 대신관이 직접 식을 진행하였다 . 그 옆으로 귀족들의 수장인 피에르 공작이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여유만만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 프리먼 대신관 앞으로 다가온 피에르 공작이었다 .  

 “대신관의 노고가 많습니다 .  부디 신성제국의 명성을 높여 주십시오 .” 

 “피에르 공작도 신성제국을 위해 수고를 해주시오 .” 

 서로의 생각은 철저히 숨긴 채 말을 하는 두 사람이었다 . 둘 모두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 듯했다 .  

 ‘성녀가 없는 이상 내 세상이다 .’ 

 ‘앞으로도 그 미소가 지어질지 궁금하오 .’ 

 프리먼 대신관의 진행 아래 성인식을 위한 준비가 분주하게 이루어졌다 . 이미 어제부터 대부분 준비가 끝났기에 이제부터는 식을 진행할 순서를 만인에게 공개하면 되었다 . 아이시런 공주가 오는 대로 바로 식이 거행될 시간이 다가왔다 .  

 아이시런 공주가 탄 마차가 대교단으로 들어가는데 , 가르딘이 전에 부탁을 했다 . 아이시런의 옆에서 시중을 드는 아이로 쉴라를 써달라고 말이다 . 갑자기 그런 부탁을 하자 엘리언의 표정이 굳었다 .  

 아이시런의 전속시녀는 자신이었다 . 공주님의 성인식이니 당연히 자신이 옆에 있는 것이 당연했다 . 가르딘의 말이 상당히 불쾌했다 .  

 “안 돼요 ,  엘리언은 항상 제 옆에 있었어요 .” 

 절대 안 된다는 아이시런의 말에 엘리언은 고마움과 기쁨이 교차되었다 . 공주가 자신을 믿어주는 마음이 너무 감사했다 . 옆에서 듣고 있던 가르딘은 아이시런만이 들을 수 있도록 작게 말을 이었다 .  

 그 말을 듣던 아이시런은 쉴라를 다시 보았다 . 좀 전까지 본 쉴라가 새삼스럽게 다시 보였다 . 가르딘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것을 절대적으로 들어주어야 했다 . 엘리언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  

 “그렇게 하겠어요 .  엘리언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마 곧 이유를 알게 될 거야 .” 

  “알겠습니다 .  공주님 !” 

 알겠다고는 했지만 엘리언은 서운했다 . 물론 내색할 정도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  

 “엘리언 ,  잠시 나가 있을래 .” 

 엘리언을 내보내고 난 후 아이시런 공주가 되물었다 .  

 “정말이에요 ?” 

 “프리먼 대신관이 인정했습니다 .  제가 거짓말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 

 “정말 놀라운 일이네요 !” 

 “그렇지요 .” 

 “제가 더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 

 ‘이건 또 뭐야 ?’ 

 자신이 더 대단하다는 아이시런 공주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던 가르딘이었다 .  

 쉴라가 성녀가 된 것이지 공주가 성녀가 된 것이 아니었다 . 갑자기 자기자랑을 하는 아이시런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했다 .  

 “제가 아니었으면 쉴라가 여기 올 수 있었겠어요 ,  그 렇지 않니 ,  쉴라야 !” 

 “맞아요 ,  언니 !  모두가 아이시런 언니의 도움이에요 !” 

 물론 아이시런이 쉴라를 구하라고 가르딘을 협박했기에 이루어진 일임에는 틀림없다 . 하지만 그 모든 일을 처리하고 실질적으로 움직인 사람은 가르딘이었다 . 솔직히 공주는 방해만 됐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 가르딘의 입장에서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  

 ‘성인식 끝나고 공주를 또 보면 내가 오크다 !’ 

 성녀가 된 것으로 끝이면 말도 하지 않는다 . 앞으로도 고생하는 사람은 가르딘이었다 .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시런 공주는 제국으로 돌아가서 이전처럼 살아가면 그만이다 . 쉴라는 옆에서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아끼고 있었다 . 그저 아이시런 공주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을 뿐이다 .  

 둘 다 영악하기 이를 데 없었다 .  

 저 두 명과 같이 있으면 고생한다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절대 같이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다 . 세상이 가르딘을 자꾸 귀찮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  

 “오 !” 

 “과연 !” 

 공주가 마차를 타고 거대한 신단에 깔려진 카펫을 밟았다 . 백색의 순결한 드레스와 어울리는 아이시런의 황금색 머리카락이 휘날리자 탄성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 여신의 강림이라고 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 어린 시털부터 황족의 품위를 배워온 아이시런의 기품과 발걸음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  

 그 옆으로 쉴라의 모습이 공개적으로 드러났다 . 쉴라는 하인이지만 마법아이템이 사라진 이상 얼굴이 만인에게 공개되었다 . 드러난 얼굴은 아이시런에 비해서는 떨어질지 몰라도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  

 쉴라가 옆에서 아이시런 공주의 발걸음에 맞추어 옷을 잡고 걸었다 . 드레스가 너무 길어서 옷을 잡아줄 필요성이 있었다 .  

 사뿐 ! 사뿐 !  

 황금빛 나비가 살랑거리며 걸어가는 모습이었다 . 사내들과 신관들 모두 아이시런의 모습에 도취되어 있었다 . 아이시런이 제단에 마련된 계단을 걸어 단상으로 올라갔다 . 단상에 오르자 아이시런의 모습이 모두에게 공개되었다 .  

 “와 !  여신이다 !” 

 사내에게는 동경과 환상을 여인들에게는 좌절과 절망을 선사하는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 제단의 위 단상에 있는 사내들 모두 얼이 빠지기에 충분했다 .  

 피에르 공작도 마찬가지였다 .  

 ‘과연 대단하다 !  응 ?’ 

 아이시런 공주의 미모에 감탄하는데 그 옆에 있는 시녀의 모습도 범상치 않았다 . 아이시런과 비교해서 부족한 것이지 결코 부족하지 않은 순수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 갑자기 마음이 동하는 피에르 공작이었다 .  

 모든 사람이 있기에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이 움직인 것은 사실이었다 .  

 ‘시녀라 .’ 

 제국의 시녀라고 해도 어차피 종이었다 . 크게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탐이 나는 계집이기에 미련이 생겼다 . 신분이 종이라면 어떻게든 빼내올 수 있을 수도 있었다 . 시녀가 사라진다고 해서 크게 문제되지 않을 것 같았다 .  

 성인식이 거행되었다 .  

 단상 위에 대신관이 서 있고 , 그 앞으로 아이시런 공주가 성인식 인증을 위해 기다렸다 . 모든 것이 그렇듯이 이와 같은 차례는 지루하기 마련이다 . 왜냐 ? 성인식이라고 하지만 라이니언의 인증이다 .  

 주신 라이니언에 대한 감사 예배가 시작되고 , 그에 따른 설교가 처음에 들어간다 .  

 이 일이 끝나고 나서 깨끗한 물로 세례를 하고 라이니언의 축복을 준다 .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 식이 진행되는 순서 중간 중간에 신을 위한 성가를 부르고 열창한다 .  

 신성제국의 신단에 소속되어 있는 정식 성가대가 모여서 웅장한 노래를 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끝날 때까지 주구장창 불러댄다 . 신을 믿는 자는 따라부르기에 상관없지만 지켜보는 가르딘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  

 ‘벼락 치지 않겠지 .’ 

 자꾸 이런 생각만 든다 . 괜히 불경스러운 마음을 가져가지고 불안했다 . 믿음이 하루아침에 생기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  

 프리먼 대신관의 말이 이어졌다 . 장황한 말의 연속이었다 . 신의 종으로서 주신의 위대함과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설명이었다 . 그래도 마음에 와 닿는 사람들이 많았다 . 다들 손을 합장한 채 기도를 올리고 있으니 말이다 .  

 아이시런 공주도 조금 짜증이 났지만 앞으로 벌어질 일을 생각하니 참을 만했다 . 자신이 데려온 아이의 정체가 밝혀짐으로써 피에르 공작의 음침한 얼굴에 주름을 수십 개 만들어 줄 수 있다고 생각하자 기분이 좋아졌다 .  

 - 주신 라이니언의 이름으로 아이시런 카이로만 공주가 성인이 되었음을 만천하에 알리는 바이다 !  

 “와아아아아 !” 

 성스러운 인증이 모두 끝이 났다 .  

 “성인이 되었음을 축하드립니다 .” 

 “고마워요 ,  대신관님 !” 

 “축하드립니다 .  공주님 !” 

 “피에르 공작님도 고마워요 .” 

 피에르 공작이 다가와서 반갑게 인사를 했다 . 그러면서 곁눈질로 아이시런과 쉴라를 보았다 . 아이시런 공주는 그 시선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 의식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의식하고 있는 상황이니 당연한 일이다 .  

 ‘흥 !’ 

 사내들의 시선 속에 녹아 있는 욕망을 가장 많이 겪어본 아이시런이었다 . 피에르 공작은 모든 일이 순조롭게 끝났다며 대신관에게 말을 이었다 .  

 “성인식이 끝났으니 이제 연회만 남았겠습니다 .” 

 “아직 끝이 아닙니다 .”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  공주님의 성인식이 끝났으니 이제 연회를 하는 것만이 남은 것 아닙니까 ?” 

 성인식이 끝나고 바로 연회장에서 아이시런 공주를 위한 만찬이 계획되어 있었다 . 만찬장에서 직접 아이시런 공주와 만남을 가지게 된다 . 각 왕궁의 사람들과 사교적인 관계를 가지는 것이야말로 중요한 일이었다 .  

 피에르 공작은 아이시런 공주와 쉴라를 만찬장에서 만나 교분을 더 쌓고 싶은 마음이 있어 재촉하는 상황이었다 . 피에르 공작은 끝나지 않았다는 프리먼 대신관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  

 “물론 아닙니다 .  공주님의 성인식이 중요하다 하나 이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 

 “무엇이 중요하다는 말입니까 ?” 

 “성녀님의 인증 말입니다 .” 

 프리먼 대신관의 말에 피에르 공작은 어이가 없었다 . 이미 아이시런 공주는 성녀가 아니라고 밝혀진 상태였다 . 피에르 공작은 오히려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반격했다 . 사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억지를 부린다면 그 상황을 이용하여 대신관의 자질을 무너뜨리면 되었다 .  

 “성녀님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다니 ,  대신관의 능력이 많이 반감된 것 아닙니까 ?” 

 “후후 ,  그럼 성녀님의 탄생을 만천하에 공개해 보겠습니다 .” 

 “정녕 ,  비웃음을 당하고 싶은 겁니까 ?  마음대로 하십시오 !  만약 아니라면 대신관의 자리에서 물러나십시오 !” 

 " 저는 신의 종으로서 거짓을 말하지 않습니다 .“  

 피에르 공작은 문득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 프리먼 대신관이 이럴 사람이 아니었다 . 신에 대한 믿음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심기 또한 만만치 않은 인물이었다 . 노련한 프리먼 대신관이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너무도 당당하게 말을 하자 불안감이 엄습했다 .  

 ‘설마 ,  공주가 성녀라는 말인가 ?  절대 그럴 리 없을 텐데 !’ 

 성녀의 존재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신전 안에 마련된 예배당에서 신성력을 보여주어야 했다 . 공주는 신성력이 없었다 .  

 ‘성녀의 부대로 인해 부담감을 느끼고 노망이 났구나 !’ 

 서연의 부재가 20 년 이상 되어 가면서 프리먼 대신관이 압박감을 받아서 무리한 일을 벌이고 있다고 여겼다 . 차라리 좋은 기회였다 . 대신관이 거짓을 말했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있으니까 말이다 .  

 뚜벅 ! 뚜벅 !  

 프리먼 대신관이 아이시런 공주에게 다가가는 것처럼 보였다 . 피에르 공작의 입가에 비웃음이 서렸다 . 프리먼 대신관은 아이시런 공주가 아니라 그 옆에 소녀에게 향했다 . 소녀는 순진하게 생겼고 , 성스럽게 보였다 .  

 그 모습을 보던 피에르 공작은 비웃었다 .  

 ' 미쳤구나 !‘  

 아이시런 공주도 아니고 시녀에게 가서 성녀라고 주장하려는 듯했다 . 프리먼 대신관이 미치지 않고서는 저런 행동을 할 리 없었다 .  

 프리먼 대신관이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말을 했다 .  

 - 주신 라이니언께서 우리를 굽어 살피셔서 이제야 성녀님이 강림했도다 !  

 성녀의 강림을 공식적으로 밝힌 프리먼 대신관이었다 . 그에 따라 사람들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 갑작스럽게 성녀가 나타났다는 말을 어떻게 믿는단 말인가 ! 하지만 그 말을 한 자가 프리먼 대신관이이게 믿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  

 피에르 공작은 결국 프리먼 대신관이 정신 나갔다고 보았다 . 앞으로의 파격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저런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  

 그런데 그때였다 .  

 우우우웅 !  

 모든 신도들이 보는 가운데 황금색의 찬란하고 성스러운 기운이 쉴라의 몸에 형성되었다 . 쉴라는 성녀의 각성으로 인해 마음대로 신성력을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 마음만 먹으면 신성력을 이용하여 각성할 때의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  

 신성력이 쉴라의 몸을 통해 퍼지자 대교단 중심을 가득 채웠다 . 형식적이지만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 시기였다 . 사람들의 믿음을 더욱 강하게 하기 위한 연출이었다 .  

 순결하면서도 만일을 무릎 꿇게 만드는 위엄이 서린 신성력으로 인해 교단에 모든 사람들 모두 무릎을 꿇으며 주신 라이니언을 열창했다 . 또한 성녀의 강림이 이루어졌다는 것에 모든 사람들이 안도를 하며 눈물을 흘렸다 .  

 - 주신 라이니언이시여 !  

 - 성녀시여 !  

 두 손을 마주하여 절실하게 외쳤다 . 공주의 성인식과 더불어 펼쳐진 성녀의 재림은 모든 사람들에게 평온을 주었다 . 성녀는 만인을 위해 존재하는 여신이었다 .  

 성녀의 강림으로 교단에 모인 사람들 대부분이 기뻐했다 . 특히 대신관을 따르는 신관들과 성기사단을 이끄는 카르마 단장의 표정이 환하게 바뀌었다 . 카르마 단장은 설마 하는 심정이었다 . 그런데 성녀가 등장했다 .  

 카르마 단장은 성기사단이 원래의 목적을 수행할 수 있게 되어서 기쁘게 생각했다 . 귀족들의 회유에 넘어간 기사들이 있기는 하지만 제자리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  

 그에 반해 피에르 공작은 웃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 전혀 생각도 해보지 않은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 그렇다고 겉으로 내면에 숨겨진 마음을 드러낼 수도 없는 일이었다 . 성녀의 재림을 원하지 않는다고 어떻게 말을 하겠는가 ! 속이 새카맣게 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  

 ‘빌어먹을 ,  저 시종이 성녀였다니 !’ 

 정말 크게 한 방 먹었다 . 공주의 시녀로 나왔다 쉴라가 성녀일 줄 누가 알 수 있었을까 !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 피에르 공작은 그제야 프리먼 대신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 성녀가 등장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여유만만한 태도에서 짐작했어야 했다 .  

 ‘여우 같은 대신관 !’ 

 주변의 모든 사람이 놀라는 가운데 프리먼 대신관만이 태연했다 . 마치 원래 이렇게 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태도였다 . 이 모든 것은 프리먼 대신관이 만들어 놓은 계략이라 생각하자 피에르 공작은 화가 치밀었다 . 철저하게 프리먼 대신관의 계략에 놀아난 것이 아니지 않는가 !  

 ‘두고 보자 !  절대 그냥 두지 않는다 !’ 

 귀족은 특이한 면이 존재한다 . 타인을 이용하고 버리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자신이 당했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집착이 강하다 .  

 프리먼 대신관은 피에르 공작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훤히 보였다 . 하지만 이처럼 만천하에 성녀를 공개한 이상 위험한 일을 벌이지는 못할 것이다 . 만약 그런 일을 하다가 들키게 되면 단순히 신성제국의 적이 아니라 대륙의 적이 된다 .  

 무모한 짓이나 마찬가지다 .  

 성녀를 지키는 성기사단만이 전부가 아니다 . 성녀를 지키는 특수한 신기가 존재한다 . 성녀만이 사용할 수 있는 신기를 가지고 있는 이상 성녀의 암살은 불가능하다 .  

 프리먼 대신관은 그동안 쌓인 변비가 확 뚫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 피에르 공작의 안하무인적 태도와 더불어 신성제국의 기본 이념을 무시하는 일들을 한 번에 해결한 것 같았다 . 사실 이 모든 것은 가르딘의 말을 따른 것뿐이다 . 가르딘은 결정적일 때 성녀를 귀족들에게 보여주자고 했다 .  

 가르딘의 말대로 피에르 공작은 대처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당하고 말았다 . 지금 이 자리에서 표정관리 하는 것도 힘들어 하는 것처럼 보인다 .  

 ‘통쾌하도다 !  오 !  이 모든 것이 주신께서 굽어 살피기에 가능한 일이옵니다 !’ 

 프리먼 대신관이 신관 중에 최고위에 속하는 신관이기는 하지만 어차피 사람이었다 . 신이 아닌 이상 완벽할 수는 없었다 . 기분이 나쁜 일에 나쁘고 , 기분 좋은 일에 기뻐하는 사람이었다 . 물론 신을 모시고 , 사람을 위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  

 공주와 성녀의 지척거리에 가르딘이 서서 상황을 살펴보았다 . 특히 피에르 공작의 분위기를 살폈다 . 표정을 보니 이를 악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웃는 게 웃는 것이 아닌 상황이었다 .  

 ‘이대로 끝나면 서운하지 .’ 

 어차피 귀족들의 힘을 약화시키고 성녀의 힘을 강화시키고 떠날 필요성이 있었다 . 그래야 쉴라가 성녀의 의무를 수행할 수 있으며 , 안전에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 물론 벼락 맞지 않기 위해 발악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라고 주장하는 가르딘이었다 .  

 ‘난 관대하며 ,  대범하다 .’ 

 마음속으로 관대하기에 넓은 아량을 가지고 있으며 , 대범하기에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일을 저지를 수 있다고 다짐했다 . 며칠 동안 상당히 대범해진 가르딘이었다 . 원체 생각하는 것은 그다지 신용하지 않지만 고민을 많이 해야 했다 . 성녀로 밝혀진 쉴라의 존재로 인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  

 가르딘은 피에르 공작을 보다가 자신의 옆에서 성녀의 강림에 감동하고 있는 카르마 단장을 보았다 . 카르마 단장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둘 필요성이 있었다 . 이미 대련 약속을 하기는 했지만 이제는 전체적인 성기사단의 실력을 보아야 했다 .  

 성녀를 지키는 수호기사들의 실력이 형편없다면 필사적이도록 만들어줄 생각이었다 . 그리고 떠나기 전에 한 가지 일을 더 처리하면 되었다 .  

 카이로만 제국의 성인식과 더불어서 성녀의 인증가지 겹친 연회였다 . 연회장 안은 사람들이 들어올 수 없을 정도로 성화를 이루었다 . 특히 주신을 믿는 신도들을 성녀를 조금이라도 더 보기 위해서 떠나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 그들은 성녀를 보며 자신들의 기원을 드리고 싶어 했다 .  

 아이시런 공주와 쉴라가 같이 등장하자 주위가 술렁거렸다 . 카이로만 제국으로서는 전혀 손해 보는 일이 아니었다 . 공주의 성인식으로 만천하에 카이로만 제국의 위상을 알렸으며 , 신성제국까지 성녀를 모시고 왔다 .  

 대륙최강국인 카이로만으로서는 날개를 단 격이었다 . 주신을 믿는 사람들의 뇌리에 카이로만 제국의 이름이 명확하게 새겨지게 될 것이다 . 가르딘은 아이시런 공주의 안전과 더불어서 쉴라의 안전을 위해 미토스와 필리언을 같이 대동했다 .  

 ‘성녀 옆에는 영웅이 어울리지 .’ 

 문제는 저놈들에게 자신의 힘을 보여주어야 하는지 마는지였다 . 대륙에 존재하는 마나심법과 검술 중에서 신마의 검술과 내공을 넘어서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 물론 배우는 자의 자질과 능력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분명 중대한 사항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  

 가르딘이 가르쳐주는 것은 대륙의 지각변동을 일으킬 수 있는 중대한 사항이었다 . 함부로 가르쳐주기 어려운 일이었다 .  

 ‘공증이 필요해 !’ 

 절대 어길 수 없는 공증이 필요했다 . 누가 가장 좋을까 생각하다가 바로 생각이 났다 . 쉴라였다 . 성녀가 보증하는 것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  

  ‘똑똑한 녀석들이니 알아서 잘 하겠지 .’ 

 뭐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하면 금제를 걸 생각까지 하고 있는 가르딘이었다 . 아무리 착하고 선한 녀석들이라고 하지만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른다 . 뜻하지 않은 변수로 인해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  

 그로 인해 벌어지는 일은 라이나와 브리안의 안위에 절대적인 영향이 있다 .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앞뒤 보지 않을 생각이다 . 상대가 누구든지 절대 가만두지 않을 생각이었다 .  

 ‘그랜드 마스터가 화나면 무지 무섭다는 것을 알아야 해 !’ 

 대륙에 알려진 그랜드 마스터의 능력과 가르딘이 가진 능력은 상당한 차이를 가지고 있었다 . 아직 진정한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본인조차 알 수 없는 경지에 이르러 있는 상태였다 .  

 팡 ! 팡 ! 팡 !  

 탁자를 거세게 때렸다 . 분이 풀리지 않을 정도로 화가 난 피에르 공작이었다 . 피에르 공작은 자신의 의도대로 되어가지 않는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 이제는 포섭한 성기사들까지 등을 돌리게 될 것이다 . 또한 대신관의 힘이 강력해지고 귀족들의 힘이 작아지게 될 지경이었다 .  

 “빌어먹을 !” 

 모든 것이 제대로 되어 간다고 생각했을 때 , 완전히 허물어져 버린 심정은 참담함 그 자체였다 . 피에르 공작이 화를 내고 있는 가운데 무표정하게 서 있는 라칸이었다 . 라칸은 이미 벌어진 일보다는 미래를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주군의 화가 풀릴 때까지 기다리며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  

 피에르 공작은 한동안 열을 내다가 화를 식혔다 . 흥부한다고 달라지는 상황이 아니었다 . 화를 내는 것도 필요한 일이었다 . 무턱대고 쌓아 놓는 것보다 일단 풀어버리고 다시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이 필요했다 .  

 “라칸 ,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나 ?” 

 “우선은 성녀를 환대하는 겁니다 .  귀족들도 성녀를 환대한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보여주어 우호적인 모습을 보여야합니다 .” 

 성녀가 부재중일 때는 수를 쓸 수 있으나 이미 성녀가 탄생했으니 막을 방도는 딱히 없었다 . 이럴 바에는 성녀의 탄생을 인정하고 대외적으로 성녀를 기쁘게 맞이하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한다 .  

 “그리고 ?” 

 “귀족들을 다시 한 번 단결시켜야 합니다 .  성녀로 인해 대부분의 귀족들이 흔들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  정신적으로 흔들리는 자들은 무슨 짓을 할지 모릅니다 .” 

 “무슨 말이지 ?” 

 귀족들은 모두 피에르 공작의 손에 달려 있었다 . 피에르 공작의 말이 법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 그렇기에 라칸의 말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  

 “성녀를 암살하려던 시도를 알고 있는 귀족들입니다 .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는 상당히 위험한 상황입니다 .” 

  “어차피 놈들과 같이 가는 상황이다 .  함부로 입방정을 찧지는 못할 것이다 .” 

 피에르 공작의 말도 틀리지 않았다 . 귀족들이 같이 모임을 가져서 의견일치를 본 일이었다 . 이 일을 가지고 왈가왈부할 이유가 없었다 . 대외적으로 이 사실이 새어 나가면 정말 큰 일 날 일이었다 . 이익이 없는 상황에서 귀족들이 토설할 이유는 되지 못했다 .  

 “사람 일은 모르는 겁니다 .  한번쯤 다시 말을 해서 확실하게 해놓는 것이 좋습니다 .” 

 “그 일을 내가 알아서 해결하겠다 .” 

 라칸의 말대로 일리는 없었다 .  

 라칸과의 대화를 끝내고 난 후 피에르 공작은 피곤이 몰려왔다 . 오늘 하루 정말 피곤한 날의 연속이었다 .  

 어두운 밤 .  

 세 개의 달이 구름에 가려 그림자를 만들었다 . 구름에 의한 그림자가 지상을 더욱 어둡게 만들었다 .  

 짜르르르 ! 짜르르르 !  

 쿼터리라는 작은 벌레가 날개를 비비며 소리를 내는 밤이었다 . 달그림자와 다른 그림자가 빠르게 지나갔다 .  

 사사사사삭 !  

 발걸음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는 신형은 이제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 너무 빠르고 은밀하게 움직였다 . 건물을 지키고 있는 경비병들이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 바로 옆으로 스쳐 지나감에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  

 “응 ?” 

 바람이 스쳐 지나가자 경비병 중 한 명이 이상한 느낌을 받았지만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했다 .  

 “바람인가 !” 

 내부에 세워진 건물의 크기는 최소 5 층 이상이었다 . 최상층에 한 번의 도약으로 솟구쳐 오르는 신형이었다 . 굉장한 도약력이 아닐 수 없었다 . 마법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전혀 거리낌이 없을 정도로 군더더기가 존재하지 않았다 .  

 더욱이 놀라운 것은 도약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압축된 힘이 분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 있는 힘껏 도약을 하게 되면 소리가 나기 마련이지만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 마법이 아닌 오러의 사용이 능숙하다는 말이었다 .  

 건물의 5 층 옥상으로 올라선 그림자가 문을 찾았다 .  

 문은 열쇠로 잠겨 있는 상태였다 . 두꺼운 열쇠였지만 손가락을 가볍게 들어 올린 그림자가 사선으로 그었다 .  

 뎅강 !  

 반항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철로 된 열쇠가 잘려져 나갔다 . 문을 연 그림자가 안으로 유령처럼 들어갔다 .  

 건물의 내부에는 경호를 서는 녀석들이 있었다 . 밖에 서 있는 경비병들이 아닌 기사들이었 다 . 기사들의 옆으로 향하던 그림지가 시녀 한 명을 발견했다 . 그림자가 시녀의 옆으로 다가가 입을 막고 잡아채서 바로 옆의 방으로 들어왔다 .  

 “읍 !” 

 ‘공작의 방이 어디냐 ?’ 

 말이 아닌 머리로 전달되는 언어게 시녀가 기겁하며 소리를 질렀다 . 하지만 소리는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았다 . 주변에 오러의 막이 형성되었기에 소리가 밖으로 전달되지 않았다 .  

 겁이 난 시녀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공작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 알려주고 나자 시녀는 잠이 들었다 . 그림자가 시녀의 수면혈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 시녀를 방에 고이 모셔 놓은 그림자는 곧장 목표를 향해 움직였다 .  

 목표에는 기사 2 명이 지키고 있었다 . 그림자는 기사들이 지키고 있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접근했다 .  

 쌔애앵 !  

 무섭도록 빠른 움직임이었다 . 기사가 무언가를 느꼈을 때 이미 온몸이 마비가 되어 통제기 되지 않았다 . 그대로 몸이 굳어버렸다고 하는 것이 정답이었다 . 움직일 수 없지만 눈동자를 떠져 있는 상태였다 . 왜 이렇게 되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 그들이 서 있을 때 그림자가 방안으로 들어갔다 .  

 방안으로 들어간 그림자가 누워서 자고 있는 피에르 공작에게 다가갔다 .  

 ‘잘도 자는군 .’ 

 자는 모습을 보자 한 방 갈겨주고 싶은 가르딘이었다 .  

 퍼퍽 !  

 눈두덩이에 정확하게 주먹이 먼저 나가 있었다 . 생각도 하기 전에 주먹이 나가는 상황이었다 . 피에르 공작의 얼굴이 주먹을 부르는 얼굴이라는 것을 알게 된 가르딘이었다 .  

 ‘미안 !’ 

 가르딘은 하기 싫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아 하는 상황을 맞이했다 . 도둑고양이처럼 움직인 것은 정말 처음이었다 . 섬전보와 섬전행이 없었다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신기였다 .  

 ‘자업자득이니 원망 말라고 .’ 

 자는 모습의 피에르 공작의 수면혈을 더욱 깊게 눌러주고 난 후 얼굴에 상처를 내었다 . 경고를 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 피가 흐르는 상황임에도 수면혈에 자극을 받아서 느끼지 못한 피에르 공작이었다 . 상처를 낸 후 가르딘은 미리 마련한 서류를 침대 옆에 놓았다 .  

 “더 놀고 싶지만 극성맞은 공주 때문에 이만 가봐야겠다 .” 

 밤 그림자를 타고 가르딘이 사라졌다 . 사라지고 난 후에도 피에르 공작은 아주 푹 자야 했다 .  

 하아아 !  

 하품을 하는 가르딘의 옆으로 필리언이 뭔가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 멀뚱히 바라보는 필리언의 모습에 가르딘이 의아해하는 표정이었다 .  

 “뭔데 그렇게 쳐다봐 !” 

  “오러 마스터가 입이 찢어져라 하품 하는 게 신기해서 !” 

 “참 ,  별걸 다 신경 쓰네 .  오러 마스터는 사람 아니냐 !” 

 “그러니까 네가 안 되는 거야 ,  마스터지만 정말 품위가 없다니까 !” 

 “품위가 빵 먹여주나 .” 

 “그건 맞는 말인데 ,  어제 무슨 일 있었냐 ?  피곤해 보이네 .” 

 “그럴 일이 있었다 .  알면 다치니까 모른 척해라 .” 

 어제 한 일은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비밀로 부쳐야 할 일이었다 . 원체 나대는 것을 싫어하는 가르딘이었지만 어제 한 일로 인해 조금은 스트레스가 풀렸다 .  

 ‘지금쯤 놀라고 있겠지 .’ 

 가르딘은 단순히 피에르 공작의 놀라는 모습만 바라지 않았다 .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 피에르 공작의 영지까지 경공술을 이용해야 했기에 조금 피곤한 가르딘이었다 . 그것만 빼면 만족이었다 .  

 쨍그랑 !  

 거울을 집어던진 피에르 공작이었다 . 피에르 공작은 아침에 일어나서 거울을 보았다 . 거울 속에 비친 모 습이 어젯밤과 무척이나 달랐다 . 밤에 과식해서 생긴 무품현상이 아니라 칼자국이 양 볼에 생긴 것이다 . 그리 커다란 상처는 아니지만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  

 “도대체 언제 ?” 

 자신도 모르게 다가와서 얼굴에 상처까지 냈다 . 그럼에도 자신은 아무 느낌이 들지 않았다 . 말도 안 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 신성제국에서 가장 삼엄한 경비를 자랑하는 자신의 저택이었다 . 침상까지 다가와서 상처를 냈다는 말은 죽일 수 있다는 것과 같았다 .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소름이 돋은 피에르 공작은 한동안 공황상태였다 . 누가 어떻게 여기까지 침투할 수 있는지 생각을 해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  

 침착을 찾은 피에르 공작이 주변을 돌아보았다 . 침상의 바로 옆에 서신이 놓여 있었다 . 어제까지 없었던 서신이니 누군가 놓고 간 것이라 보았다 . 서신을 뜯어서 살펴본 피에르 공작의 표정이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  

 - 나는 네가 지난날 벌인 일을 알고 있다 .  

 상당히 애매모호한 말이었다 . 뜻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도록 써 놓았다 . 지난날이라고 하지만 언제인지도 모르며 , 벌인 일이라고 해도 무엇인지 알 수 없게 적혀 있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에르 공작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  

 “어떤 놈이 감히 나를 협박한단 말이냐 ?” 

 내용을 보니 협박성 문구였다 . 지난날에 벌인 일을 알고 있으니 알아서 잘 하라는 뜻이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았다 .  

 피에르 공작은 즉시 라칸을 불렀다 .  

 라칸이 피에르 공작의 방으로 달려왔다 . 공작이 갑자기 부른 것도 이유지만 간밤에 누군가 들어왔다는 것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 기사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 시녀까지 당한 상태였다 . 모두 무사하기는 하지만 일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  

 피에르 공작의 방으로 들어간 라칸은 굉장히 놀랐다 . 피에르 공작의 양 볼에 칼로 난 상처를 보았기 때문이다 .  

 “공작님 얼굴에 상처가 !” 

 “알고 있다 .  그것보다 이것을 봐라 !” 

 피에르 공작이 서신을 라칸에게 주었다 . 내용은 한 줄뿐이라 한 번 보면 그만이었다 . 하지만 내용을 파악한 라칸의 표정도 심각해졌다 .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했다고 생각하지 ?” 

 라칸은 즉시 답을 내지 못했다 . 내용만 가지고서는 단번에 결론 내릴 수 없는 일이었다 . 우선은 신중하게 생각을 하고 답을 내야 했다 . 하지만 답을 요구하는 피에르 공작의 압박에 지금까지의 상황을 종합해서 입을 열었다 .  

 “상황만을 말씀드리겠습니다 .  우선은 어제 경비를 서던 기사 두 명이 속수무책으로 당했습니다 .  또한 공작님의 방으로 오는 동안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았습니다 .  이 정도로 은밀하며 ,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곳은 얼마 없습니다 .  더군다나 상대는 성녀를 죽이려고 했던 우리의 일까지 알고 있는 듯합니다 .” 

 라칸은 사실을 잘 추려서 말을 했다 . 하지만 섣불리 결론을 내지 않았다 . 함부로 말할 사안이 아니며 , 괜히 분란을 조장할 수 있었다 . 피에르 공작은 초조했다 . 성녀를 죽이려고 했던 일이 외부적으로 알려지면 정말 큰일이었다 .  

 어제 라칸이 얘기한 것이 현실로 드러났다 . 이번 일을 알고 있는 곳은 어쌔신 길드와 귀족들뿐이었다 . 하지만 어쌔신 길드는 신분에 대한 보장이 확실한 곳이었고 , 귀족들이 이런 짓을 벌일 이유가 없었다 . 하지만 어느 것 하나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해 버렸다 .  

 “어새신 길그자 가장 유력합니다만 !” 

 “귀족들일 수도 있다는 말이냐 ?” 

 “그 ... 렇습니다 .” 

 제 3 의 세력일 수도 있겠으나 둘 다 의심이 되었다 . 라칸이 말을 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 피에르 공작이 귀족들을 의심하게 되면 정말 큰일이었다 . 가뜩이나 성녀의 출현으로 불안한 내부적인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일이었다 .  

 또한 어쌔신 길드는 절대 만만하지 않은 곳이다 . 어쌔신 길드를 상대로 도발했다가는 정말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 있었다 . 괜히 저련 다른 세력이 움직인 것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도발하게 되면 둘 다 잃어버린다 .  

 “아직 정확하지 않습니다 .  누군가의 모략일 수도 있으니 시간을 두고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신중하게 생각은 하겠다 .  그러나 조사는 해야 한다 .  은밀하게 귀족들과 어쌔신 길드를 조사해 .” 

 “알겠습니다 .” 

 피에르 공작도 멍청하지는 않았다 . 산전수전 다 겪은 인물이었다 . 공작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절대 만만하지 않았다 . 괜스레 혼란을 조장하면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 하지만 한번 붉어진 불신과 의혹 , 의심은 사라지지 않는다 .  

 사람인 이상 어쩔 수 없는 본능이었다 .  

 가르딘이 노리는 것이 여기에 있었다 . 귀족들 간의 불화가 생기게 되면 성녀의 힘이 강해진다 .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어 갈것이다 . 피에르 공작은 아무도 믿을 수 없으며 결국 세력이 점차 분해되어갈 가능성이 있었다 .  

 물론 반드시 그렇게 되라는 것은 아니었다 . 하지만 분란의 씨앗을 심어 놓았으니 나중에 점점 자라나서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  

 가르딘이 전쟁을 경험하면서 알게 된 계략이었다 . 전쟁에서 기세도 중요하지만 심리전도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 사람의 정신은 강한 것 같지만 한번 균열이 일어나면 결국에는 유리처럼 쉽게 깨진다 .  

 생사가 걸린 일에 약점을 잡고 집요하게 늘어지는 것을 비겁하다고 생각하는 놈은 이미 목이 떨어져 있을 것이다 .  

 “하아암 !” 

 여전히 가르딘은 하품을 하고 있었다 . 어제 무리하게 움직이고 나서 운기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 때문에 발생한 자연적인 현상이었다 . 하품을 하게 되면 숨을 많이 들이쉬게 되면 숨은 곧 오러와 같은 역할을 한다 . 살아가는 원동력이라는 말이 된다 .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이른 가르딘이 아무리 대단해도 숨을 못 쉬면 죽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 아침에 피곤해서 쉴 생각이었지만 아이시런 공주가 부르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무거운 걸음을 걸었다 .  

 ‘또 무슨 일이지 ?’ 

 공주가 부르면 괜히 불아한 가르딘이었다 .  

 성녀의 등장은 전 대륙으로 급속하게 퍼져나갔다 .  

 오랜 시간 공석이었던 성녀의 등장으로 대륙은 다시 한 번 환호를 보냈다 . 그동안 주신 라이니언의 관심이 멀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들기도 했다 . 성녀가 다시 등장했으니 그런 불안감은 사라졌다 .  

 그와 더불어서 같이 온 아이시런 공주 역시도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 성녀를 데리고 온 카이로만 제국의 공주였다 . 대륙최강국이라는 평판과 더불어서 신의 가호를 받는 나라라는 말까지 듣게 되었다 .  

 대륙이 모든 나라가 축복을 보낼 때 한곳만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 바로 코카 제국이었다 . 카이로만 제국과의 원한을 해결해야 하는 입장에서 성녀의 등장은 껄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  

 대전의 용상에 앉아 있는 무르카인 황제의 심기가 차갑게 식었다 . 생각지도 못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 

 휼턴 재상 역시 황제의 심기가 좋지 않은 것을 알자 화가 풀릴 때까지 기다리다가 대답을 했다 .  

 “성녀의 탄생은 저희로서도 예측하지 못한 일입니다 .” 

 “놈들이 성녀의 존재를 알고 데리고 간 것은 아닌가 ?” 

  “그럴 가능성은 없을 겁니다 .  성녀는 신성제국에서도 중요시 여기는 존재입니다 .  또한 성녀로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대신전에 들어가야 한다고 합니다 .  카이로만에서 미리 알고 계획을 짰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 

 “마스터를  3 명이나 데리고 간 놈들이야 !” 

 무르카인 황제는 이 모든 것은 카이로만 제국이 의도적으로 만든 상황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 성녀의 존재를 어떻게 파악한지 알 수 없지만 이유가 어찌되었던 , 카이로만 제국으로서는 손해나는 일이 아니었다 . 오히려 엄청난 파급력을 가지게 생겼다 .  

 카이로만 제국의 명성이 커질수록 코카 제국으로서는 좋은 일이 아니었다 .  

 결과적으로 전쟁을 일으키려는 상황에서 아주 안 좋은 소식이 되었다 . 동맹을 맺었던 왕국들이 동요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 성녀의 탄생은 대륙적인 축제였다 . 그러한 상황에서 카이로만 제국과 전쟁을 벌이게 되면 대륙의 질타를 받을 수 있었다 .  

 “전쟁을 미뤄야 하는 건가 ?” 

 “전쟁을 서두를 필요는 없습니다 .  시간을 더 들여 준비를 철저히 하고 동맹국과의 관계를 확고히 하면 됩니다 .” 

 무르카인 황제는 아까워서 미칠 것 같았다 . 자신의 딸이 성인식 할 때 성녀가 탄생했다면 모든 영광은 코카 제국이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 전쟁의 운이 코카 제국으로 올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이 무척이나 아까운 상황이었다 .  

 “내 딸이 갈 때 성녀가 탄생했어야 했는데 !” 

 뿌드득 !  

 “카이로만 !  운이 좋구나 !  하지만 이대로 끝나지 않는다 .” 

 이를 가는 무르카인 황제는 시간을 조금 더 두기로 했다 . 우선은 전쟁준비를 완벽하게 하면서 흔들리는 동맹국들과의 관계를 확실해 해둘 필요가 있었다 .  

 무르카인 황제에게 카이로만 제국은 반드시 무너뜨려야하는 대적이 되어 있었다 .  

 암울하고 어두운 분위기 속에 짙은 검은색 망토를 뒤집어 쓴 인물이 서슬 퍼런 눈빛을 흘리고 있었다 . 흘러나오는 눈빛만으로 전신을 떨게 만드는 한기를 발산했다 . 스산한 분위기와 차가운 냉기를 발산하는 상황이었다 .  

 망토 안의 얼굴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 망토 안에서 낮고 음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성녀가 탄생할 줄은 몰랐어 .” 

 “그렇습니다 .” 

 “성녀의 신분은 ?” 

 “루벤 영지의 성혈을 가진 아이였습니다 .” 

 “그럼 이미 조사된 계집아이가 성녀란 말이지 .” 

 “그 ... 렇습니다 .” 

 로드의 눈빛이 더욱더 강렬해졌다 . 그 앞에서 기운을 받는 세븐다크의 슬로쳐는 전신이 얼어붙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아야 했다 .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 슬로쳐였지만 로드가 뿜어내는 기우은 버텨내기 힘들었다 .  

  “루벤 영지 내 임무를 맡고 있는 녀석이 누구지 ?” 

 “고든입니다 ." 

 “쓸모없는 녀석으로 인해 대업이 흔들릴 뻔했어 .” 

 “처리하겠습니다 .” 

 간신히 목숨을 건진 고든의 생사가 결정이 되어버렸다 . 사실 고든의 입장에서는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성혈을 가진 아이를 보내기는 했지만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  

 슬로쳐는 이번 공주 암살에서 실패를 경험했다 . 아이시런 공주가 성녀가 아니기에 무리 없이 넘어가기는 했지만 로드의 마음에 차지 않았을 것이다 . 그런데 이번에 성녀의 시종으로 있던 소녀가 성녀가 되었다 .  

 아주 단순한 차이였지만 그로 인해 신뢰가 무너질 수 있었다 . 슬로쳐는 무언가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먼저 말을 꺼냈다 .  

 “세븐다크의 힘을 총동원하면 성녀를 암살할 수 있습니다 .” 

 성기사단으로 둘러싸인 성녀의 주변이 단단하다 해도 뚫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 어쌔신 길드의 힘을 모두 이용하면 충분히 처리가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  

 찌릿 !  

 움찔 !  

 다크로드의 눈이 슬로쳐를 향했다 . 그러자 슬로쳐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을 쳤다 . 슬로쳐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기운이었다 .  

 “누가 앞서 가라고 했나 !” 

 “죄 ... 송합니다 !” 

 “어차피 부활한 성녀 따위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 .  그것보다 이번 일에 필요한 성혈을 가진 아이들을 모아 오는 것을 중점으로 해라 .  또한 이 일은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되는 것을 명심하고 ,  알겠나 !” 

 “물론입니다 .” 

 “당분간 성녀는 잊어라 .  우리가 암살에 가담했다는 것 자체를 모르게 처리하도록 .” 

 “예 !  로드 !” 

 다크로드의 의중에 성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 성녀가 비록 방해가 되긴 하지만 전체적인 일을 모 두 막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 신의 말을 전하는 것밖에는 하지 못하는 게 집에 의해 망가질 정도의 대계가 아니었다 .  

 만약 성녀를 암살하려다가 실패하면 오히려 어쌔신 길드가 의심받을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한다 . 대외적으로 알려지는 것이 더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기에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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