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화 (11/93)

   @@[제4장 성녀 탄생@@]

 긴 여정의 종착지 중 절반에 도달했다 .  

 돌아가야 할 여정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돌아갈 때는 털어버릴 수 있기에 가뿐하다 . 가르딘은 신성제국의 수도 홀리카인에 도착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  

 바로 앞에 세워진 거대한 성문을 열고 들어가면 이번 여정의 목표를 완수할 수 있다 . 무엇보다 다시 돌아가서 아내의 따뜻한 정이 담긴 음식을 맛볼 수 있다는 것에 만족감을 느껴야 했다 .  

 ‘여기까지 오는 데 무척이나 길었다 !’ 

 보통의 여정이 아니었다 . 공주의 성인식 여정이었다 . 별다른 위험이 없다고 무책임한 부단장이 억지로 임무를 내리는 바람에 이처럼 꼬이게 되었다 . 여러 가지 꼬인 일들의 대부분이 공주로 인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  

 그래서 결론을 내었다 . 앞으로는 절대 공주 앞에서 얼쩡거리지도 않겠다고 말이다 .  

 가르딘이 신성제국의 수도를 보았다 .  

 왜 ! 신성제국이라고 불리고 있는지 보여주는 건축양식이었다 . 곳곳에 신에 대한 찬배를 나타내는 조각들과 더불어서 웅대한 기상을 보여주었다 . 조각 하나 하나에 신성력이 들어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  

 일반적으로 신을 믿지 않는 사람도 홀리카인의 모습을 보면 절절한 구도자가 될 것 같았다 .  

 ‘아직 감상에 젖을 때가 아니지 ,  언제 어디서 공주를 노리는 놈들이 있을지 모른다 .’ 

 가르딘이 속 타는 이유는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 혼자서 끙끙 앓다가 속병 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 성문을 지키는 경비대장이 마중을 나왔다 . 이미 연라을 받고 즉각적으로 성문을 열어주었다 .  

 카이로만 제국의 황녀 아이시런 카이로만이 당도한 일이었다 . 함부로 대한다는 것 자체가 상당한 무례였다 .  

 경비대장이 문을 열자 그 안으로 잘 닦여진 길이 대신전으로 연결이 되어 있었다 . 한눈에 대신전이 들어왔다 . 거대한 건축물 중에서도 유독 크고 웅장한 기상을 나타내었다 . 한번에 저게 대신전이야 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  

 그런데 이례적인 일이 벌어졌다 .  

 경비대장이 연 그 성문의 앞으로 한 명의 노인과 그 옆으로 무수히 많은 사제들이 버티고 있었다 . 노인은 모든 사람들의 경배를 받는 지고한 위치의 인물이었다 . 이 노인이 직접 누군가를 마중하는 것은 정말 드문 일이었다 .  

 제국의 황제라고 해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신성제국 최고의 인물이다 . 바로 프리먼 대신관이었다 . 모든 신관들의 우두머리이자 주신 라이니언을 모시는 신관 중에 가장 서열이 높 다 .  

 가르딘의 귓가에 프리먼 대신관이라는 소리가 들렸다 .  

 ‘대신관이 나오다니 !’ 

 가르딘이 놀라고 있었다 . 황제가 와도 대신관은 절대 영접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 그 정도로 막강한 힘과 권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  

 가르딘이 먼저 말에서 내렸다 . 대신관이 마중 나왔는데 말에 타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 잘못하다 찍히면 나중에 벼락이 칠지도 모른다 . 얼른 말에서 내려 공주가 탄 마차로 갔다 .  

 “공주님 !” 

 “무슨 일인가요 ?” 

 “신성제국의 프리먼 대신관이 마중을 나왔습니다 .” 

 “알았어요 .” 

 마차에 타고 있던 아이시런은 대신관이 왔다는 말에 어쩔 수 없이 마차에서 내려야 했다 . 제국의 공주가 막강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지만 대신관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 서로 존중해 줄 필요성이 있다 . 그래야 국제관계가 어색해지지 않는다 .  

 하나의 실수로 인해 파국으로 치닫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 그 이유로 매우 사소할 수도 있는 것이 국제관계였다 .  

 마차의 문이 열렸다 .  

 아이시런 공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 마치 여신이 강림한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었다 . 오후의 햇살이 아이시런 공주의 투명하고 매끄러운 피부에 반사되어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광경을 자아냈다 .  

 아이시런 공주가 마차에서 내리자 그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 얼이 빠져버렸다 . 놀랍도록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 성녀가 있다면 바로 저와 같을 것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들었다 .  

 “오 !” 

 프리먼 대신관도 탄성을 질렀다 . 미모로 여인을 평가한다는 것이 약간 저속한 행위일지 모르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도 마음의 중요한 반증인 것은 부정할 수는 없는 사실이었다 .  

 아쉬운 것이 하나 있기는 했다 . 모든 것이 성녀로서 가장 이상적이기는 했지만 신성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 신성력에 관한 한 대륙에서 프리먼 대신관만큼 강력한 인물은 없을 것이다 .  

 ‘신성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 

 프리먼 대신관은 아직 확신을 하지 못했다 . 신언으로 내려 온 것은 사실일지 몰라도 그것을 듣고 해석하는 사람들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었다 . 또한 성녀가 되기 전이니 신성력이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  

 과거의 성녀도 성녀가 되기 전에는 신성력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이 났다 .  

 최대한 우아하면서 고품스럽게 아이시런 공주가 대로를 걸었다 . 주변에 보는 눈이 많기에 표정 역시도 도도하면서도 자애롭게 주변을 바라보았다 . 공주의 발검음에 모든 시간이 정지 된 것만 같았다 .  

  “와 !  역시 공주님이야 !” 

 주변에 감탄성이 터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 가르딘은 뒤에서 질이 다른 탄성을 내질렀다 .  

 ‘연기가 점점 절정에 달하는구나 !’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고 누가 말했는가 ! 겉 다르고 속 다른 여자의 실체를 만천하에 까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  

 가르딘의 옆으로 스필언과 미토스도 아이시런의 아름다움에 약간은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 아무리 뛰어나도 젊은 혈기를 가진 청년 기사들이었다 . 아이시런의 아름다움을 보고 아무렇지 않다면 사내가 아닐지 의심을 해봐야 할지 모른다 .  

 ‘쯧쯧 !’ 

 가르딘은 아이시런에게 빠져드는 사람들이 안됐다고 생각했다 . 공주의 실제 성격을 알면 저런 생각은 절대 하지 못할 것이다 . 물론 공주의 성격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 하지만 사람 곤란하게 하는데 도가 텄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  

 “스필언 ,  미토스 !” 

 가르딘이 스필언과 미토스를 불렀다 .  

 “예 ,  가르딘 선배님 !” 

 스필언과 미토스는 가르딘의 말이라면 아무리 먼 거리라도 바로 달려오는 족속들이 되었다 . 가르딘의 수족이라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아주 제대로 걸려들었다 . 다시 빠져나오려면 쉽지 않은 정신적 충격이 있어야 할 것이다 .  

 “환상에 속지 마라 !”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 

 갑자기 뜬구름 잡는 듯한 말을 하자 의아하게 생각한 스필언과 미토스였다 .  

 “여자는 무서운 존재다 .” 

 “도통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 

 “그렇게만 알고 있으면 된다 .” 

 가르딘은 일일이 다 설명하지 않았다 . 다른 것은 다 천재인 것들이 여자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숙맥인 것 같았다 .  

 ‘의외로 맹탕들인데 .’ 

 완벽한 줄 알았는데 , 한 가지 결점이 보였다 . 모든 것은 경험이 필요하다 . 여자에 대해서 모른다면 여자를 경험해 보아야 한다 .  

 물론 저속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모르는 것을 배우는데 경험만큼 강력하고 확실한 것은 없었다 . 경험을 통해서 올바른 방향을 찾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  

 “나중에 데려가 주마 .” 

 “예 ?” 

 어딜 데려간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 다만 , 예전 가르딘은 방탕한 사나이로 유명한 인물이 었다 . 라이나를 만나기 전까지 엄청나게 방황했다 . 아버지와 형제간의 불화로 인해 정신적으로 해이해졌던 것이다 .  

 당연히 여자들과 노는 것도 좋아했다 . 특히 필리언을 따라 다니면서 많은 경험을 했다 . 그로 인해 일단 여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안다고 자부할 수 있다 . 물론 라이나는 예외대상이다 .  

 그녀만큼 다른 여인들과 구별이 확실하다 . 아직 가르딘의 108 방어선 콩깍지가 벗겨지려면 멀었다 . 그 방어선을 뚫고 들어오자 만신창이 된 사람 여럿 있었다 .  

 “그런 게 있으니 그렇게 알고 주변 경계 철저히 해라 .” 

 “알겠습니다 .  선배님 !” 

 스필언과 미토스에게 아주 시기적절하고 , 중요한 충고를 간단하게 하자 그 옆에 있던 필리언이 어이없게 쳐다보았다 .  

 “뭘 꼬나보냐 ?” 

 “미친놈 ,  저런 순진한 녀석들에게 그런 말을 하다니 역시 넌 미친놈이야 !” 

 “하 !” 

 “순진 좋아하네 ,  순진한 게 더 무서운 거야 ,  잘못하다 이상한 여인 만나면 어떻게 해 .  다 나중을 위해서 한 말이니 뼈가 되고 살이 될 거다 .” 

 “그러다가 공작님들이 알면 퍽이나 좋아하겠다 .” 

 “다 내 덕으로 생각할 거다 .  그리고 다른 사람은 다 나를 욕해도 너는 그럴 처지가 아닐 텐데 .” 

 청년시절 가장 잘 논 인물이 필리언이었다 .  

 그 중에서 여자 편력에 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 치마만 입혀놓으면 그게 누구든 상관하지 않는 비유 좋은 잡식성 체질을 가진 놈이었다 . 여자에 대해서 잘 모르던 가르딘에게 경험을 시켜준 것은 필리언이었다 .  

 악마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은 장본인인 주제에 이따위 말을 하다니 가르딘이 코방귀 뀌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  

 “크음 !  참 할 말 없으면 만날 옛날이야기 꺼내고 그래 .” 

 “호오 ,  그러셔 !  저번에 카날 찻집의 여 종업원하고 있던 사람은 누구더라 ?” 

 움찔 !  

 “어떻게 알았냐 ?” 

 “내가 모르는 게 있을 줄 알아 .  조만간 제수씨 찾아가서 차나 한잔하자고 해야겠다 .  물론 카날 찻집에서 말이지 .” 

 가르딘의 능청스러운 말에 필리언이 입을 닫았다 . 말로써 가르딘을 이기기는 너무 어려웠다 . 어떤 말을 해도 능글능글하게 넘어가는 가르딘의 수법에 매번 당했다 . 또한 여기서 해봐라 그러면 진짜로 하는 가르딘이었다 . 괜한 말에 목숨 걸 필요가 없었다 .  

 필리언의 입에서는 궁색한 변명이 흘러나왔다 .  

 “거기 차는 맛없다 .  그러니 다른데 가라 !” 

  “그럴까 ,  그럼 인차나 찻집으로 갈까나 .” 

 “헙 !  그만 ,  내가 졌다 .” 

 필리언의 인기는 여전히 식을 줄 모른다 . 그로 인해 아주 많은 약점을 대량으로 양산했다 . 가르딘은 필리언의 약점을 잡고 이리저리 흔들어 주면 아주 재미있어 했다 . 사람을 놀리는 것도 중독된다고 하지 않는가 ! 하다 보면 도를 넘어서 문제지 재미는 충분히 보장한다 .  

 두 기사의 대화가 시끄럽게 떠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 소리는 극히 미약하다 . 가르딘과 필리언은 오러를 사용하는 기사다 . 아주 미세한 소리를 내어도 충분히 의사소통이 된다 .  

 지금까지 대화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둘뿐이라는 소리였다 . 대 놓고 이런 소리를 큰 소리로 말하면 주변 사람 다 듣는다 . 그런 초보적인 실수를 할 나이는 이미 지난 노련한 기사들이었다 .  

 아이시런 공주가 다가오자 프리먼 대신관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면서 예의를 표했다 .  

 “신성제국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 

 “힘드실 텐데 마중을 나와 주셔서 감사해요 .” 

 “별말씀을 하십니다 .  제국의 공주님이 오셨는데 모른 척 할 수 없지 않습니까 !” 

 사실 코카 제국의 공주가 왔을 때는 프리먼 대신관이 마중을 나오지 않았다 . 그저 성인식을 올릴 준비를 하고 인증을 해주었을 뿐이었다 .  

 프리먼 대신관이 직접 대신 전까지 안내를 해주겠다고 하고 있었다 . 아이시런 공주가 성녀라는 확신을 없지만 일단 만약을 대비하기 위해서 직접 마중한 것이다 . 가르딘이 아이시런 공주의 뒤를 따르면서 이상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  

 프리먼 대신관의 뒤로 귀족들이 나타났다 . 그들 중에 수장으로 보이는 중년인이 나서서 아이시런 공주에게 인사를 했다 . 그러면서 은연중에 프리먼 대신관을 의식하고 있는 것 같았다 . 귀족들의 수장인 피에르 공작이 나온 것도 이상하지만 연중에 흐르는 기운이 서로 견제하는 것처럼 보인다 .  

 가르딘은 그것을 놓치지 않고 지켜보았다 .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아니지만 느낄 수 있었다 .  

 가르딘이 본 것은 피에르 공작이 아니었다 . 피에르 공작보다 그 뒤로 보이는 귀족들과 신관들의 눈치였다 . 오랜 연륜과 경험이 있는 자들은 자신들의 낌새를 노출시키지 않는다 . 하지만 일반 귀족들은 아직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것이다 .  

 ‘암투인가 ?’ 

 신성제국에 대한 것은 가르딘도 자세히 알지 못한다 . 그러나 이상하게 여겨지지는 않는다 . 어딜 가나 사람 사는 세상은 투쟁과 암투가 있기 마련이다 .  

 하물며 신성제국이었다 . 신을 모신다고 하지만 신은 아니었다 . 신을 대리하여 사람들에게 신의 우대함을 전파하는 자들 역시 사람이었다 .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이며 , 욕심을 가진 존재들이었다 . 그들이 항상 올바른 판단을 내리며 , 정의를 위해 희생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유치한 사사이었다 .  

 ‘조심은 해야겠지 .’ 

 권력투쟁이 이상한 것은 아니지만 그로 인해 벌어지는 사태까지 만만히 볼 수는 없다 . 이들이 한꺼번에 마중 나온 것 자체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  

 목적을 가지지 않고서 대신관과 공작이 한꺼번에 나온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 그러나 한 번에 무슨 목적인지는 알 수는 없었다 . 사라의 머릿속은 수많은 생각이 자리한다 . 그 안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생각이 모여 하나의 관념으로 이루어진다 .  

 그것을 말하지도 않는데 파악한다는 것은 신이나 다름이 없다는 소리였다 . 가르딘은 대륙제일의 숨겨진 기사임에는 틀림없지만 신에 필적하지는 않는다 .  

 피에르 공작은 공주를 보고 놀라고 말았다 . 나이가 45 살이나 된 그이지만 그녀를 보자 순간적으로 이성이 흔들릴 뻔 하지 않았는가 ! 공주가 아니라 여인으로서 탐이 날 정도로 굉장한 미모를 가지고 있었다 .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아름답군 !’ 

 감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 .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고 냉철한 판단을 내리기로 소문이 난 피에르 공작이었다 . 그런 피에르 공작이 아이시런 공주를 보고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 다른 귀족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  

 피에르 공작은 잠시 흔들린 마음을 다잡았다 . 공주가 아름다운 것은 사실이었고 , 그 아름다움이 대륙제일이라는 평가도 들어맞았다 .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을 알아내야 했다 . 프리먼 대신관이 움직인 것으로 보아 아이시런 공주가 성녀일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  

 그녀가 성녀일 경우를 대비해야 했다 .  

 예로부터 성녀는 대신관과 동등한 위치를 가지면 성시기단에는 절대적인 존재로 여겨진다 . 또한 대신관과 성녀는 둘 다 주신 라이니언을 모시는 관계로 같은 파벌일 수밖에 없었다 .  

 피에르 공작이 암살의뢰를 어쌔신 길드에 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 성녀가 대신관에 힘을 실어주면 실직적으로 귀족들의 힘이 약화되기 마련이었다 . 암살이 실패한 후에 다시 암살을 하기는 어려웠다 . 암살하기 가장 어려운 상대를 고르라고 하면 바로 성녀였다 .  

 성녀가 암살하기 어려운 이유는 성기사단의 존재뿐 아니라 라이니언의 가호를 받기 때문이다 . 신성력으로 보호되는 성녀의 주변을 살기나 마기 , 심지어는 사특한 생각조차 침투할 수 없다 .  

 따라서 암살보다는 차라리 정면대결이 쉬울 수 있었다 . 하지만 정면대결을 한다는 것은 신성제국을 부정하는 행위가 되어버린다 . 피에르 공작이라고 해도 그런 짓을 했다가는 먼지처럼 사라져 버릴 수 있었다 .  

 시간이 있다면 성녀가 되기 전인 이 시간이다 . 그러나 그마저도 어려웠다 . 공주를 지키는 기사단이 철통같은 경계를 하기 때문이다 . 총책임자로 선임된 가르딘이라는 인물이 보통은 넘어 보였다 . 공주의 주변으로 움직이는 것들을 일일이 감시하지 않는가 !  

 ‘보통 녀석은 아니군 .’ 

 신성제국의 수도 폴리카인이었다 . 가장 안전한 장소에 오면 경계가 느슨해지는 것이 당연했다 . 그럼에도 가르딘은 기사들과 병사들에게 긴장하지 못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 임무에 충실한 전형적인 기사라고 할 수 있었다 . 게다가 이번에 새로이 오러 마스터에 오른 기사라고 하였다 .  

 피에르 공작은 생각이 복잡했다 . 프리먼 대신관까지 여에서 눈에 불을 켜고 지킬 것이 분 명했다 . 이처럼 직접 마중 나온 것은 라이니언 대신전 예하 , 가장 중심에 위치한 예배당으로 향하려는 것이다 .  

 ‘여우같은 늙은이 !’ 

 피에르 공작의 뜻을 알고 있기에 프리먼 대신관이 먼저 선수를 쳤다 . 바로 예배당으로 향하는 이유는 성녀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 성녀라면 예배당에 들어서는 순간 감추어진 성녀의 힘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 그것이 전통적으로 있어온 관례였다 .  

 이렇게 되면 피에르 공작이 움직일 시간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 대신전으로 들어가서 예배당까지 가는 시간 안에 공주를 처리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 이쯤 상황이 진행되자 페이르 공작은 순순히 패배를 인정했다 .  

 그리고 아이시런 공주가 성녀가 되기 전에 우호적인 관계를 도모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해서 예의를 표했다 .  

 프리먼 대신관은 한발 앞서 도착했다느 것에 안심했다 .  

 피에르 공작이 먼저 선수를 쳤다면 시간이 걸리게 된다 . 성인식 인증은 5 일 후에 열릴 것이다 . 그동안 어떤 일이 발생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 세상사 모든 일이 생각한 대로 된다면 사람의 인생은 평탄하게 진행될 것 이다 .  

 하지만 세상은 이상과는 다르다 . 대부분 순리대로 흐르지만 그 안에서 생각지도 못한 것이 발생하기도 한다 .  

 ‘피에르 공작 ,  신성제국은 주신 라이니언 님의 것이오 !  그것을 잊어버리고 어찌 제국의 귀족이라고 할 수 있소이까 !’ 

 귀족들이 힘을 키우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 그들이 인간인 이상 자신의 영역을 넓히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 다른 것은 다 내줄수 있다고 하지만 성녀에 대한 것은 물러 설 수 없었다 .  

 성녀는 신성제국만을 위한 여인이 아니었다 . 대륙의 모든 사람들을 위한 여인이다 . 주신 라이니언의 신성한 언어가 그녀로 인해 대륙에 퍼지게 된다 . 모든 사람들을 위한 신의 대리인을 해하려 한다는 것 자체가 신성제국 태초의 탄생 이유를 거스르는 것이었다 .  

 프리먼 대신관의 안내로 대신전에 닿게 된 아이시런 공주였다 .  

 신성제국의 신전답게 거대하며 신성스러운 기운이 흘러나왔다 . 그 중심에 라이니언의 모습을 형상화한 거대한 조각상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 . 거대하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포용하는 신의 마음이 스며들어 있는 듯했다 .  

 “굉장하네요 !” 

 “허물입니다 .  주신께서는 그저 작은 마음이라도 받아드리실 겁니다 .  겉으로 보이는 외형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 

 프리먼 대신관은 허례보다는 진실한 믿음을 강조했다 . 신에 대한 믿음만이 모든 것의 진리라고 생각하고 있는 전형적인 인물이었다 .  

 “그럼 잠시 중앙 예배당에 둘러보시겠습니까 ?” 

 그저 잠시 둘러보자는 말로 들렸지만 프리먼 대신관의 입장에서는 가장 중요한 말이었다 . 편안하면서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프리먼 대신관이었다 .  

 아이시런 공주는 거절할 수 없었다 . 프리먼 대시관이 직접 마중까지 나왔는데 , 가벼운 부탁마저 거절하면 대신관의 체면을 무시하는 일이 되었다 . 사실 거절하기 상당히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  

 프리먼 대신관이 이 사실을 알기에 미리 마중한 것이다 . 일단 먼저 접어주고 , 그에 따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종용한 것이다 .  

 “둘러볼게요 .” 

 “그럼 ,  제가 직접 안내를 하겠습니다 .” 

 아이시런 공주가 결정을 하자 그 뒤로 서 있던 피에르 공작의 표정이 약간은 굳었다 . 결국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 어차피 벌어질 일이라면 확실하게 지켜보기로 마음을 먹은 피에르 공작이었다 . 그도 프리먼 대신관을 따라 예배당으로 향했다 .  

 “중앙 성전에 있는 예배당은 다른 곳과 다른가요 ?” 

 “다 똑같다고 할 수 있지만 주신의 영역에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그렇군요 ,  그럼 모든 사람들이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곳인가요 ?” 

 특정하게 높은 사람들만 쓰이는 곳인가를 물어본 것이다 . 신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해야 한다 .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들의 위치가 특별하기를 소망한다 . 그런 이율배반적인 행위로 인해 신의 뜻을 오해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 사람을 배척한다면 그건 신의 교리를 부정하는 형태가 되어버린다 .  

 프리먼 대신관은 아이시런 공주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 제국의 공주이면서도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깊었다 . 이런 순수한 마음을 가진 공주라면 성녀가 되기에 부족해 보이지 않았다 .  

 “물론입니다 .  대신전은 항상 개방이 되어 있습니다 .” 

 프리먼 대신관의 말은 사실이지만 그 아래 사람들이 그것을 철저하게 지킨다고는 장담할 수는 없다 . 다만 윗물이 아직은 맑은 상태라 아랫사람들도 따르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일 것이다 . 가르딘은 공주의 뒤에서 호위하면서 프리먼 대신관을 주위 깊게 살폈다 .  

 ‘노련하면서도 신에 대한 믿음이 보통이 넘는다 .’ 

 말 한마디를 해도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 더군다나 인자한 미소에 선한 눈빛 , 바로 저 인간상이 신관들의 표본이라고 말을 하게 해줄 정도였다 . 그러면서도 자신의 의도대로 모든 일을 진행시키고 있었다 . 놀라운 재주였다 .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따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라고 할 수 없다 .  

 ‘피에르 공작과 프리먼 대신관이라 !  둘 사이에 무언가가 있을 것 같은데 .’ 

 피에르 공작의 불편한 심기가 잠깐 스치고 지나갔다 . 그 짧은 안색의 변화를 가르딘은 놓치지 않았다 . 물론 집중하지 않았다면 알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  

 ‘예배당으로 가는 것을 반기는 기색이 아니군 .’ 

 대신관은 예배당으로 데려가기 위해 직접 마중을 나왔고 , 신성제국의 귀족인 피에르 공작은 그것을 반기지않는다 . 둘 사이에 깊은 골이 있지 않고 서는 행할 수 없는 일이었다 .  

 왜일까라는 의문이 들지만 알 수 없었다 . 지금 당장은 공주를 보호하면서 예배당까지 가서 확인하는 것뿐이었다 .  

 대신전 안으로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고 , 그 중간 중간에 기사들이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 기사들은 오러를 수행한 흔적이 눈에 보였다 . 대신전을 보호하는 임무르 맡고 있는 인무들이었다 . 가르딘의 눈에 이채가 발했다 .  

 ‘오러의 수준은 익스퍼트 초급 .’ 

 그들이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 바로 성기사들이었다 . 성기사들이 대신전을 보호하고 있었던 것이다 . 기사들의 평균 수준은 일반기사들보다 떨어져 보였다 .  

 가르딘이 보기에 피닉스기사단과는 차이가 엄연히 있어 보였다 . 피닉스기사단의 단원들 하나하나의 실력이 이들보다 뛰어났다 . 하지만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 예전부터 전해져 내려온다 .  

 - 성기사의 수준은 겉으로 보이는 것으로 판단할 수 없다 . 과거에 오러 익스퍼트 상급의 성기사가 오러 마스터와 대동하게 대결을 한 일이 있다 .  

 놀라운 일이었다 . 익스퍼트 상급이 뛰어난 실력이기는 하지만 마스터에 비해서는 한참이나 격이 있었다 . 그런데도 대등하게 아니 , 장기전으로 갔으면 성기사가 이길 수도 있다는 말이 전해졌다 .  

 프리먼 대신관과 피에르 공작이 나타나자 성기사들이 예를 표했다 . 예배당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었다 .  

 “이곳입니다 .” 

 예배당은 전체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 하지만 외곽에서 보였던 것처럼 화려하지는 않았다 . 그저 평범하고 , 자연스럽게 주변과 어우러져 있었다 .  

 아이시런 공주는 예배당의 정면으로 중앙에 위치한 주신 라이니언의 상을 보았다 . 외곽의 모습과는 다르지만 차분하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감싸주는 것 같았다 .  

 “기도를 올려도 되나요 ?” 

 “물론입니다 .” 

 기도는 간단했다 . 특별하게 의식을 통한 예배는 힘들뿐더러 겉치레에 불과했다 . 아이시런 공주는 천천히 예단으로 가서 무릎을 꿇었다 . 그리고 두 손을 모아 기도를 올렸다 .  

 5 분 정도 차분하게 기도를 올렸다 .  

 아름답게 빛나는 여인의 기도하는 순결한 모습이 환상 같은 풍경을 자아냈지만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  

 ‘음 !’ 

 작은 탄성과 침음성이 울렸다 .  

 프리먼 대신관의 표정이 흔들렸다 . 이번에는 확실하게 들어맞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 그런데 아니었다 . 공주의 몸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 그렇다는 말은 성녀가 아니라는 말이 되었다 .  

 ‘아니란 말인가 !  어찌 이런 일이 !’ 

 “하하 !” 

 그에 반해 표정이 급격하게 밝아진 피에르 공작이었다 . 피에르 공작은 성녀가 아니길 바라고 있었다 . 피에르 공작조차 아이시런 공주가 성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 그녀만큼 아름다운 여인이 없었기 때문이다 .  

 하지만 결과적으로 모든 일이 자신의 손을 들어주고 있었다 .  

 ‘이제 됐다 .’ 

 괜한 걱정으로 아이시런 공주를 암살하려 했던 것이 오히려 후회가 되었다 . 또한 실패한 것이 차라리 잘된 일이 되었다 .  

 “공주님의 성스러운 기도가 분명히 뜻을 이룰 겁니다 .  제가 공주님을 위해서 저녁만찬을 준비했으니 모두 함께 가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 

 피에르 공작은 한숨 놓아다는 듯이 아이시런 공주에게 만찬을 제공하겠다고 말을 했다 . 피에르 공작이 미리 준비한 일이기도 했다 . 모든 일이 순조롭지 않더라도 만일을 대비한 행사였다 . 부담감이 사라진 이상 아이시런 공주와 우대관계를 돈독히 쌓아야 했다 .  

 망연자실 .  

 20 년 이상 성녀가 나타나지 않았다 . 이제는 성녀가 탄생할 것이라고 기대를 하고 있었다 . 프리먼 대신관의 실망이 눈에 선명하게 보일 정도였다 .  

 한숨이 흘러나왔다 .  

 ‘이게 모두 주신의 뜻이란 말인가 !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겠지 .’ 

 스스로 마음을 다스린 프리먼 대신관이 훌훌 털었다 . 아이시런 공주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 자체가 실례였다 .  

 가르딘은 프리먼 대신관과 피에르 공작의 희비를 보았다 . 한쪽은 눈에 띄게 실망하고 다른 한쪽은 눈에 띄게 밝아졌다 . 더군다나 그들의 시선이 향한 곳은 아이시런 공주였다 . 아이시런 공주의 모습에서 무언가가 나오기 기대했다는 말이 되었다 .  

 ‘뭐지 ?’ 

 이것을 파악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정보를 알아낼 수 없었다 . 이대로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가르딘이었다 . 저녁이 되려면 아직 시간이 있었다 . 만찬이 진행되기 전에 이유를 먼저 파악하고 준비를 해야 했다 .  

 아이시런 공주가 프리먼 대시관과 피에르 공작에게 만찬에 참석한다고 얘기를 하고 잠시 쉴 수 있도록 요청을 했다 . 프리먼 대신관이 대신전 밖에 마련된 귀빈용 저택에 공주를 안내해주었다 .  

 “그럼 ,  저녁때 보겠습니다 .” 

 “수고해 주어서 감사해요 .” 

 “아닙니다 .  그럼 쉬십시오 .” 

 프리먼 대신관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것을 아이시런 공주도 눈치를 챘다 .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고 , 별다른 일이 아니기에 무시했다 .  

 방으로 들어온 아이시런 공주는 침대에 철퍼덕하고 뛰어들었다 .  

 “아 !  피곤하다 !” 

 프리먼 대신관이 잘해준 것은 알겠는데 , 그로 인해 자신도 그에 따른 노력을 해야 했다 . 신중하면서도 위엄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연기를 해야 했기에 두 배로 피곤한지 몰랐 다 . 그 옆으로 쉴라와 엘리언이 과자와 차를 마련해 왔다 .  

 “차를 한 잔 하세요 ,  그럼 피곤이 풀릴 거예요 !” 

 “고마워 .  후 !” 

 뜨거운 차를 불어서 식히고 한 잔 마셨다 . 마음속을 답답하게 했던 것이 내려가게 해주었다 .  

 “오늘 내가 기도했는데 ,  무슨 소원 빌었는 줄 알아 ?” 

 “예 ?  무슨 소원인데요 ?” 

 아이시런 공주가 소원을 빌었다고 하니까 , 쉴라와 엘리언이 몹시 궁금해하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 아이시런 공주가 원하는 것은 그녀들도 알고 있었다 . 하지만 불가능했기에 그건 넘어갔다 .  

 “너희들도 알잖아 ,  나는 자유롭게 살고 싶은 것 ,  하지만 그건 어려우니까 !  다른 소원을 하나 빌었지 .” 

 “소원을 빌면 들어주는 건가요 ?” 

 쉴라는 아직 어린 아이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 신에게 소원을 빈다고 다 들어주면 이 세상 사람들 다 잘 먹고 잘 살고 있을 것이다 . 다만 신에게 소원을 빌고 , 마음의 짐을 덜어 놓는다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한 답일 것이다 .  

 쉴라가 물어본 이유는 자신도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일을 소원으로 빌고 싶어서였다 . 쉴라도 라이니언을 믿는 신도였다 . 대부분의 평민들이 믿고 있는 신이기에 쉴라도 믿고 있었다 .  

 “뭐 ,  그런 대로 분위기는 사실이었어 .” 

 “무슨 소원을 비셨어요 !” 

 “뭐냐면 말이야 ,  능글맞은 중년인에게 벼락 치게 해달라고 말이지 !” 

 비틀 ! 휘청 !  

 문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가르딘의 신형이 휘청거렸다 . 가르딘도 공주가 빈 소원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문밖에서 듣고 있었던 것이었다 . 그랜드 마스터를 한순간에 흔들고 휘청거리게 만드는 가공할 말이었다 .  

 ‘저런 망할 !’ 

 그런데 빌었다는 소원이 저런 개떡 같은 것인지는 정말 몰랐다 . 그런 성스러운 장면을 연출하고서 빈 소원치고는 너무 유치하고 , 재미없었다 . 특히 가르딘에게는 정말 재미없는 소원이 되었다 . 가르딘이 신을 믿지는 않지만 왠지 모르게 찜찜해하고 있었다 .  

 “들어오세요 !” 

 가르딘이 문밖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아이시런이었다 . 그렇기에 일부러 큰 소리로 말을 한 것이다 .  

 ‘이런 알고 있었구나 !’ 

 가르딘이 정중히 문을 열고 공주의 방으로 들어갔다 .  

 아이시런 공주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 그 미소가 절로 섬뜩하게 느껴지는 가르딘이었다 . 공주가 빈 소원이 왠지 걸리고 있었다 .  

 “가르딘 경 ,  왜 문밖에서 남의 얘기를 엿듣고 그러는 거예요 ?  숙녀의 말을 엿듣다니 보는 것만큼 저질이네요 .” 

 ‘크읏 !’ 

 대놓고 말을 하니 할 말 별로 없게 만들었다 . 역시 아이시런 공주는 보통이 넘었다 . 사람을 대하는데 어떤 게 약점인지 정확하게 꼬집는 비상한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  

 “죄송합니다 .” 

 가르딘은 경계를 강화하고 , 주변에 들어오는 것들을 잘 체크하라고 기사들에게 말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 . 그렇기에 잠시 공주의 방문 앞에 서 있었던 것뿐이었다 . 그렇지만 말을 들은 것은 사실이기에 사과를 올렸다 .  

 “설마 내가 진짜로 그런 소원을 빌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 

 “물 ... 론 ... 입니다 .” 

 “당연하지 !” 

 “한번 맞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네요 .  호호 !” 

 차마 입속에 맴도는 말을 하지 못했다 . 공주에게 그따위 말을 하면 불경죄로 단장 참수당하기 딱 좋은 말이었다 .  

 ‘공주의 말은 진심 같아서 왠지 모르게 섬뜩한데 .’ 

 아이시런 공주는 가르딘이 듣고 있기에 한번 고려줄 생각으로 말을 한 것뿐이었다 . 사실은 아버지와 어머니 , 그리고 오빠들이 건강했으면 하고 소원을 빌었다 . 그것이 제국이 평온하게 되는 지름길이라고도 생각했기 때문이다 .  

 황궁이 편안해야 제국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였다 .  

 “무슨 일로 밖에서 얼쩡거린 거예요 ?” 

 ‘뭐 ?  얼쩡 ?’ 

 이거 공주만 아니면 한대 때리고 싶은 가르딘이었다 . 가르딘이 그동안 한일은 결코 부족하지 않았다 . 공주를 지키기 위해 블러드 다크를 처리하고 , 쉴라를 구한 일을 생각하면 절대 저런 말을 해서는 안 되었다 . 다만 그 사실을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 답답할 뿐이다 .  

 “공주님의 경호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 

 “신성제국의 수도예요 ,  너무 걱정하지 말고 기사들에게 쉬라고 하세요 !” 

 ‘지금 상황이 그게 아니라니까 !’ 

 공주는 아직 상황을 모르고 있었다 . 암살사건이 일어나는 동안 잠을 잤으니 당연히 모를 수밖에 없었다 . 이 일을 공주에게 말하기도 힘든 가르딘이기에 입에서 맴도는 말을 속으로 삭혔다 .  

 “그럼 할 일 없으면 나가 보세요 !” 

 “알겠습니다 .  그럼 저녁만찬 시간에 맞추어서 오겠습니다 .” 

 “그렇게 하세요 .” 

 가르딘이 나가고 나자 아이시런은 배꼽을 잡고 웃었다 . 그 옆으로 쉴라와 엘리언이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물었다 .  

 “가르딘 경에게 왜 그렇게 말을 하세요 ?” 

 “저 능글맞은 아저씨만 보면 괜히 괴롭히고 싶다니까 !” 

 “그래도 최선을 다하는 기사인데 .” 

 “그건 맞아 ,  항상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고 ,  가족만 생각하지 .” 

 엘리언은 공주가 가르딘을 괴롭히는데 , 혹시 다른 마음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닌가 해서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 하지만 설마 하는 생각에 그냥 넘어갔다 .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시런과 가르딘은 절대 어울리지 않았다 .  

 애 딸리 유부남이 대륙제일의 미인에다가 대륙최가욱의 공주가 마음에 두고 있다니 말도 안 되는 헛소리였다 .  

 가르딘은 저녁시간이 되기 전에 필리언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었다 . 그 일은 예배당에서 나올 때 미리 말을 한 것이었다 .  

 가르딘은 그동안 스필언과 미토스에게 공주님의 경호를 지시했다 . 다른 녀석들은 몰라도 두 녀석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았다 . 오러 마스터 두 명이 지키고 있는데 , 감히 누가 덤벼 들겠는가 ! 상식적인 인물이라면 절대 그럴 수 없을 것이다 .  

 가르딘이 방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  

 벌컥 !  

 노크도 없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는 인물이 있었다 . 예전이나 지금이나 예의 따위는 챙기지 않는 무식한 놈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 무식한 놈이 뚜벅뚜벅 걸어와서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 건방짐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자세를 취했다 .  

 “필리언 ,  알아 봤냐 ?” 

 “물론이지 .” 

 예의 없는 놈은 필리언이었다 . 둘 다 서로에게 예의 따질 시기는 지났기에 별로 신경도 쓰지 않는다 . 그러려니 하는 것이 서로에게 속편한 일이 되어버렸다 .  

 “갑자기 이런 건 왜 알아보라는 거야 ?” 

 “시키면 시킨 대로 할 일이지 지금 이대한 마스터인 내가 시키는 것에 따지는 거야 !  다음부터 내가 시키면 황송하게 생각하며 즉각 이행해라 !” 

 “미친놈 ,  아주 지랄 똥을 싸는구나 !” 

 대화의 시작이 욕으로 시작해서 욕으로 끝난 적도 있었다 . 욕이 몸에 배어 있던 시절 생긴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 다른 사람들이 필리언과 가르딘의 대화를 듣다보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한 적이 자주 있었다 .  

 귀족들이 하는 언어와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궤를 보이기 때문에 발생한 괴리감이었다 . 어떤 사람은 둘이 철천지원수로 생각하기도 했다 .  

 “어때 ,  신성제국 내 상황이 어떤 거야 ?” 

 “조금 이상하게 돌아가는 구석이 있더라 .” 

 필리언이 조사한 내용을 보고했다 . 솔직히 조사는 필리언이 직접 한 것은 아니었다 . 대륙내 정보길드인 인포메드에 부탁을 한 것이다 .  

 필리언은 정보를 구하러 가서 최대한 빠르게 돌아왔다 .  

 3 시간 내로 빨리 올 수 있었다는 것은 은밀하게 숨길 내용도 아니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  

 대신관과 피에르 공작과의 관계 . 즉 신관과 귀족들 간의 관계를 설명했다 .  

 “서로의 불신은 있는 거겠군 .” 

 “그것보다 더 심각한 편인 것 같다 .” 

 인포메드에서 내준 정보를 잠시 검토해 보았다 . 정보의 내용을 본 가르딘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충 파악할 수 있었다 .  

 “성녀가 출현하지 않은 관계로 귀족세력이 강해졌군 .” 

 “이제는 신관 세력을 귀족들이 견제할 정도가 되었다는데 .” 

 “그렇겠군 .” 

 왜 , 프리먼 대신관과 피에르 공작의 희비라 엇갈렸는지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 그리고 마지막 문구에 적혀 있는 내용을 보고 기겁할 뻔한 가르딘이었다 .  

 - 두 명의 영웅 , 용의 기운을 품은 자와 함께 성녀가 올지니라 !  

 문구를 보면 상당히 의미심장했다 .  

 다른 것은 제쳐두고 시선이 가는 문구가 하나 있었다 .  

 ‘용의 기운 !  설마 아니겠지 ?’ 

 가르딘이 익히고 있는 무상의 신공 , 청룡무상신공을 의미하고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 말 그대로였다면 세 명의 영웅이 된다 . 그리고 이 세 명 안에 가르딘 , 스필언 , 미토스가 포함된다 . 그렇다는 것은 공주가 성녀일 가능성이 있었다는 말이 되었다 .  

 ‘오늘 대신관은 실망했었다 .  그럼 공주가 성녀가 아니라는 말이 되는 거네 .’ 

 한편으로 안심이 되었다 .  

 공주가 성녀라면 자신은 신의 예언에 나온 인물이 될 수 있었다 . 더군다나 영웅이 탄생하려면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는 말이 된다 . 신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신이 내린 언어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  

 위기 , 그것이야말로 가르딘이 가장 싫어하고 증오하는 단어 중에 하나였다 . 그리고 영웅이라는 단어를 두 번째로 싫어한다 . 영웅은 분명 세상을 구원하며 용감한 인물이다 .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희생해야 하는 것은 어떻게 보상한단 말인가 ! 차라리 영웅보다 가늘고 길게 사는 것이 가장 좋은 가르딘이었다 .  

 “후우 !” 

 “왜 한숨 쉬냐 ?” 

 필리언의 물음에 가르딘이 대답했다 .  

  “너 보니까 한숨이 나와서 .” 

 “뭐라고 !  이제 정말 마스터가 됐다고 눈에 뵈는 게 없는 모양인데 ,  나 이래 봬도 빽이 굉장하다고 !” 

 “그래 ,  너 잘났다 .” 

 가르딘은 사건의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생각했다 .  

 성녀의 출현은 신관들에게 이득을 가져온다 . 성녀의 출현으로 성기사단을 움직일 수 있으며 신관들의 믿음이 더욱 상승한다 . 더불어서 신성제국의 백성들에게도 믿음을 얻을 수 있다 .  

 사실이 이러하다면 신관들이 공주를 해할 이유는 없어졌다 . 그와 반대로 귀족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입지가 상당히 줄어들게 된다 . 지금까지 키워온 세력을 다시 내놓을 귀족이 얼마나 되겠는가 !  

 ‘피에르 공작이 암살의뢰를 했을 가능성이 크다 .’ 

 상당히 괘씸한 일이었다 . 물론 이제는 암살을 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 공주가 성녀로 밝혀지지 않는 이상 무리한 일을 할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 하지만 가르딘은 상당히 불쾌하게 생각했다 .  

 만약 자신이 아닌 다른 기사였다면 블러드 다크의 손속에 죽어나갔을 것이다 .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사람 목숨을 쓰레기처럼 생각하다니 상당히 욕 나오는 일임에는 틀림없었다 . 암살이 성공했다면 가르딘의 일생은 내리막인생으로 처박히게 된다 .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 이대로 넘어가기에는 무언가 부족한 가르딘이었다 . 언젠가 한 방 먹여 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  

 잠시 억울한 생각이 들어서 직접 혼내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지만 , 그런 일을 하게 되면 일이 더욱 꼬일 수 있기에 참았다 . 만전을 기하는 일에도 실수와 빈틈이 있기 마련이고 , 놈들이 작정하면 더 꼬이게 될 수 있다 . 모든 일에는 해도 되는 것과 안해야 하는 것이 있었다 . 이득을 정확하게 따져 본 후 가르딘은 필리언에게 나머지 한 가지도 물었다 .  

 “다른 것은 ?” 

 필리언에 품속에 가져온 한 권의 책이었다 . 그렇게 두껍지도 얇지도 않은 평균 수준의 책이었다 . 책의 내용은 < 카이로만 제국의 영지 > 라고 적혀 있었다 . 제국의 영지에 대해서 적어 놓은 책인 것 같았다 .  

 “이건 뭐 하려고 ?” 

 “작위를 받으면 영지를 받을 것 아냐 ,  영지에 대해서 잘 알아두고 좋은 거을 골라야 하잖아 .” 

 “벌써부터 그러면 조금 그렇잖아 .” 

 “시끄러 ,  재수 없게 잘못 걸리면 그에 대한 대비도 해야 되는데 .” 

 “어차피 네가 고른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잖아 !” 

 “그렇지만 알고 당하는 것과 모르고 당하는 것은 천지 차이지 .” 

 “그렇긴 하군 .  하지만 주는 대로 받아야 하는 처지에 사치부리는 것으로밖에 안 보인다 !” 

 “저녁때까지 시간이 있으니까 ,  이거나 읽고 있어야겠다 .” 

  “그래라 ,  나도 나가서 좀 쉬어야겠다 .  위대한 오러 마스터가 시키는 일을 했더니 너무 황송해서 피곤이 절로 드네 .” 

 “황송하면 힘이 나야지 .  가서 경호에 만전을 다해라 .” 

 “말이나 못하면 밉지나 않지 .” 

 가르딘은 혼자 남아서 영지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 전에는 이런 것을 살펴볼 이유가 없었기에 관심이 없었다 . 아버지와 형제들이 싸우는 이유가 바로 영지에 있었다는 것 때문에 일부러 모른 척하고 있었던 것인지 몰랐다 .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 영지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졌고 , 그로 인해 어떤 영지가 좋은지를 살펴보아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  

 “살기는 파스트론 공작령에 속한 곳이 좋은데 .” 

 “수도에서 가깝고 ,  파스트론 공작령에 속한 영지의 소출이 상당히 좋은 편이다 .  대부분 평야고 ,  적과 마수들의 침입도 극히 적었다 .  상위귀족들의 경우 공작령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 위치한다 .  나머지는 하급귀족들은 그 주변을 분포해서 포진한다 .  그것이 일반적인 형태였다 . 

 “발리스타 공작령도 괜찮고 .” 

 걸렸으면 하는 곳이 아주 살기 좋은 곳이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 세력이 있고 , 배경 좋은 곳을 고를 생각을 하고 있는 가르딘이었다 . 괜히 공작들의 제안을 무시하고 , 잘난 척할 생각 전혀 없었다 . 자신의 주관으로 황제만으로 모시겠습니다 . 이런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는 놈은 정신이 이상한 놈일 것이다 .  

 ‘너무 튀면 안 되고 ,  적당히 강한 세력에 달라붙어야 한다 .’ 

 너무 강해서 앞잡이를 하게 되면 다수의 세력에 의해 집중포화를 받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 적당히 어중간하게 있는 듯 없는 듯 쓸데는 있는데 막상 쓰려면 쓰기 불편한 존재 정도로 남아 있는 게 가장 이상적인 결과였다 .  

 가르딘이 보는 영지에 대한 정보는 타국에서 알려져서는 안 되는 것인지 모른다 . 하지만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 그저 겉으로 떠도는 것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정보를 모아서 인포메드에서 만들어 놓은 것이다 .  

 정확하지는 않다고 해도 대강의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유용한 정보다 . 특히 여행을 할 때 , 좋은 정보가 된다 . 더불어서 인포메드에서 발간하는 < 대륙 맛 여행기 > 는 상당한 인기를 끈 책 중에 하나로 알려졌다 .  

 각 제국과 왕국 , 공국에서 유명한 맛집을 소개한 것으로 발간하자마자 미식가들에게 인기 있는 책이 되었다 .  

 가르딘이 영지 책에 몰입하고 있을 때 , 문 앞에서 소리가 들렸다 . 노크 소리였다 . 가르딘이 문을 열었다 . 문밖에 소녀가 서 있었다 . 가르딘도 익히 아는 인물이었다 . 특별히 찾아 올 가능성이 없기에 조금 놀라기는 했다 .  

 “무슨 일이냐 ?” 

 “가르딘 오빠 ,  잠시 할 말이 있어서요 .” 

 목소리가 조금 작은 듯했다 . 소녀는 가르딘이 구해서 공주의 시중을 들게 했던 쉴라였다 . 쉴라는 평상시에 아이시런 공주와 같이 있고 , 가르딘을 찾은 적이 거의 없었다 . 있다면 전에 블러드 다크 때뿐인데 , 그 일로 인해 굉장히 곤란한 지경에 처할 뻔했다 .  

  ‘잠깐 ?  오빠라고 !’ 

 평상시에는 아저씨라고 하면서 오늘은 또 오빠라고 하고 있었다 . 이럴 때는 무슨 부탁을 하거나 사정을 할 때뿐이다 .  

 ‘또 무슨 부탁을 하려고 그러냐 ?’ 

 전에는 부탁을 들어주었지만 계속적으로 모든 것을 들어 줄 수는 없는 일이다 . 그렇기에 단호하게 거절해 버리려고 했다 . 그런데 그게 쉽지 않았다 . 가르딘의 마음을 울리는 말을 했기 때문이다 .  

 “저도 예배를 드리면 안 될까요 ?” 

 “예배 ?” 

 “주신 라이니언 님을 모시는 예배당에서 소원을 빌면 들어주신다고 공주님이 말해 주었어요 .” 

 “그렇긴 하지 .” 

 척 봐도 쉴라는 주신 라이니언의 열렬한 신봉자다 . 그 앞에서 거짓말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 신에 대해 무관심한 것은 상관없다 . 하지만 신을 모욕하면 문제가 커진다 . 말 한마디에 신성제국에서 적이 될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  

 더욱이 종교의 무서운 점은 중독성이다 . 일단 빠져들면 다른 사람의 말이 잘 들어오지 않는다 . 물론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 종종 그런 일이 발생한다는 것 때문에 한 말이다 .  

 “하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는데 .” 

 “혼자 가도 되나요 ?” 

 “안 돼 ,  너는 아직 혼자 움직일 수 없어 .” 

 “흑 !  흑 !” 

 눈물을 흘린다 .  

 가녀린 소녀가 눈물을 흘리면 사내는 마음이 흔들린다 . 하지만 가르딘은 쉴라의 안전을 생각해서 한 말이었다 . 도둑길드가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혼자 움직이면 위험한 일이 된다 . 쉴라도 그걸 알기에 가르딘에게 부탁하고 , 같이 가주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  

 “부모님이 걱정돼서 그래요 ,  주신께 부모님이 건강하고 무사하게 지낼 수 있게 기도하고 싶어요 !” 

 ‘이런 !’ 

 가르딘이 가장 약한 구석을 찌르고 들어오는 쉴라였다 . 그냥 눈물을 흘리는 것이라면 상관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 그러나 부모 , 즉 가족에 대한 걱정으로 눈물을 흘리는 소녀의 부탁을 거절하기는 쉽지 않았다 .  

 가르딘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가족이었다 . 가족의 무사함이야말로 가장 우선시되야 하는 대륙제일의 과제라고 할 수 있었다 .  

 ‘거절하기 힘들게 하네 .’ 

 쉴라의 부모인 마커스의 안전은 보장이 된 상태였다 . 놈들이 더 이상 마커스 가족을 건드 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이것은 거의 사실이지만 가르딘이 확실하게 보장한다는 말을 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 언제 어디서 죽는다고 해서 그것이 모두 사실에 입각하고 , 논리정연하게 말을 할 수 있으면 그건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존재였다 .  

 “좋다 .” 

 “정말이요 !” 

 쉴라의 얼굴이 화색이 돌았다 . 아직 치기 어린 소녀인데 , 부모를 걱정하는 마음이 대견하게 생각되는 가르딘이었다 . 어린 딸이 있는 가르딘이기에 거절하지 못한 것 같았다 . 평소 가르딘의 딸인 브리안은 애교가 작살이었다 .  

 어찌나 귀여운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았다 .  

 영지에 대한 책을 읽고 나니 저녁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 곧 있을 만찬에 공주님이 참석하게 되어 있었다 . 그러니 지금 당장 시간을 내서 쉴라를 데리고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  

 “만찬이 끝나고 예배당에 가보자 .” 

 “정말 고마워요 ,  가르딘 오빠 !” 

 “그래 ,  이 오빠만 믿고 기다리고 있어라 .” 

 필요할 때만 오빠라고 부르는 영악한 쉴라였지만 그것이 밉지 않은 가르딘이었다 . 쉴라는 마음이 참 착했다 . 그녀가 조금 욕심을 부린 것이 이 정도뿐이다 .  

 저녁만찬이 끝나고 예배당에 가는 이유는 그 시간이 사람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 사람들에게 쉴라의 존재를 보이는 것도 좋지 않았다 . 사람이 없는 조용한 시간에 예배당에 둘러 예배를 드리고 올 생각이었다 .  

 쉴라가 나가고 나자 가르딘은 준비를 해야 했다 .  

 만찬을 하는 자리니 옷을 따로 입을 필요성이 있었다 . 기사제복을 입은 상태에서 공주를 호위할 수는 없는 상황이니 말이다 . 가르딘이 조심스럽게 준비된 옷을 살펴보았다 .  

 “어떤 것을 입을까 ?” 

 사내라면 옷에도 신경을 써주어야 한다 . 아무거나 입고 다니면 아내가 욕을 먹는다 . 가르딘은 라이나가 신경 써서 마련해 준 옷을 고르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 고른다고 해봤자 많지도 않았다 .  

 고작 3 벌 중에 하나를 고르는 일이었다 . 하지만 그것에도 가르딘은 망설이고 있었다 .  

 “이건 저번 결혼기념일 때 라이나가 준건데 ,  이걸 입을까 ?  아니면 내 생일 때 마련해 준 이걸 입을까 ?  아 !  고르기 너무 힘들다 .” 

 라이나의 정성이 잔뜩 묻어 있는 옷이었다 . 어느 것 하나 함부로 거절하기 힘든 마력이 있었다 .  

 “이건 저번에 입었으니 ,  이걸 입어야겠다 .” 

 옷을 결정하고 , 입는 가르딘이었다 . 옷을 입고 머리를 정갈하게 빗고 , 세안을 다시 했다 . 그리고 거울을 보며 몸을 확인하고 이상한 것이 없는지를 확인했다 . 자잘한 것 같아도 남에게 이상하게 보이는 것은 귀족으로서 실례에 속한다 .  

 “이 정도면 대륙제일 쾌남이라고 할 만하군 .” 

 사람은 다 자기만족에 사는 것이다 . 자신이 잘생겼다고 생각하면 , 누구보다 잘생긴 것이다 . 남의 마음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 특히 가르딘은 다른 사람보다 라이나만 마음에 들면 상관하지 않는 편이었다 .  

 피에르 공작이 주최하는 만찬이 시작되었다 .  

 만찬은 대신전의 옆에 마련된 만찬회장에서 열리게 되어 있었다 . 이곳은 신관과 귀족들이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접대용 만찬회장이다 . 신성제국은 대륙의 많은 귀족이 모여드는 곳이다 . 자주 만찬이 있기에 따로 장소를 마련을 해놓은 것이다 .  

 신성제국의 자산으로 마련된 만찬회장이라 화려함과 웅장함이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즐겁게 만들었다 . 화려한 불빛과 아름다운 장식 , 빛이 번쩍거리는 보석들의 향연이었다 . 어두워지는 밤의 야경을 더욱더 화려하게 만들어주었다 .  

 아이시런 공주가 연회장에 등장하였다 . 마차에서 아이시런 공주가 내리자 그 주변이 더욱 빛을 발하고 있었다 . 눈부시게 아름다운 얼굴과 ,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 , 정교하게 만들어진 장식품이 조화를 이루어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뿜어 내었다 .  

 그녀가 움직이는 동선 안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얼이 빠져 버릴 지경이었다 .  

 “와 !” 

 만찬장의 주인공이 왜 아이시런 공주인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 신관들과 귀족들 모두 아이시런의 아르다움에 정신이 빠져 있었다 .  

 모두 정신이 빠져 있을 때 가르딘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  

 ‘참 ,  돈도 많네 .’ 

 신성제국이라고 하나 신도들의 기부금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기본일 것이다 . 기타 세금이 있기는 하겠지만 그런 귀한 돈을 이처럼 소비하다니 조금 찜찜한 가르딘이었다 . 귀족들의 사치는 하루 이틀이 아니니 그러려니 넘기는 것이 마음 편하기는 했다 .  

 가르딘의 눈에 두 명의 멋진 녀석들이 보였다 .  

 ‘역시 잘생긴 것들은 뭐를 입어도 튄다니까 !’ 

 스필언과 미토스였다 .  

 검을 수련한 자들 중에 저토록 잘생기고 , 매끈한 피부를 자랑하는 놈들도 드물 것이다 . 검을 단련하기 위해 고된 수련과 힘든 수행을 해야 한다 . 피부미용을 신경 쓰면서 수련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기도 하다 .  

 그럼에도 저처럼 피부가 좋다니 타고난 신체조건은 인생사 불공평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  

 < 스필언 , 미토스 즉시 공주님의 양쪽으로 가서 호위해라 . 이건 명령이다 .>  

 가르딘의전음이 스필언과 미토스에게 전해졌다 .  

 < 알겠습니다 .>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기사였다 . 즉시 시펄언과 미토스가 아이시런의 양쪽으로 경호를 하기 위해 움직였다 .  

 “오 !” 

 스필언과 미토스가 아이시런의 옆에 서니 , 풍기는 분위기가 환상적이었다 . 절세의 미남이자 오러 마스터가 양쪽에서 경호를 한다 . 그 호위를 받는 여인이 대륙제일 미인이라고 평가받는 아이시런 공주였다 .  

 가르딘은 그 뒤를 말없이 걸어갔다 . 신경이 모두 아이시런 공주에게 쏠리고 있는 상황이라 가르딘의 등장은 어느 누구의 시선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 오히려 그것이 펴한 가르딘이 었다 . 귀족들의 생활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다 . 불편하지만 어쩔 수 없기에 응해주었을 뿐이다 .  

 ‘이렇게 하면 귀찮은 날파리는 안 달라붙겠지 .’ 

 스필언과 미토스가 버티고 있는데 , 공주의 옆으로 누군가 접근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  

 스필언과 미토스는 지금 알려진 기사 중에서 가장 젊은 오러 마스터다 . 더군다나 카이로만 제국을 떠받드는 공작가문의 자제들이다 . 이처럼 엄청난 배경을 지니고 있는데다 잘생기기까지 한데 , 어떤 놈이 아이시런 공주에게 찝쩍댈 수 있겠는가 !  

 그저 부럽다는 생각만 하게 될 것이다 .  

 공주의 성격상 귀족들이 춤을 신청하면 따라는 줄 것이다 . 하지만 이런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는 아이시런 공주는 신경을 많이 쓰게 되고 , 나중에는 짜증이 많이 쌓인다 . 그렇게 되면 결국에는 그 짜증을 가르딘이 받아야 할 상황이 발생할지 모른다 .  

 모든 것은 자신을 위해서 한 행동이었다 .  

 만찬은 순조롭게 진행이 되어갔다 .  

 아이시런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신성제국의 귀족들과 친분을 나누었다 . 그리고 덤으로 스필언과 미토스에 대한 관심도 상당히 높아졌다 . 스필언과 미토스가 가진 배경을 듣자 다들 기가 죽는 것도 다반사였다 .  

 모든 사람의 시선을 아이시런 공주 , 스필언 , 미토스가 받고 있을 때 가르딘은 유유자적하면 이리저리 내부를 살폈다 . 그러면서 주변에 있는 맛난 음식들의 맛을 보았다 . 별달리 관심의 대상이 아니라 사람들이 의식을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  

 가르딘의 외모가 평범한데다가 옷도 그다지 튀지 않았기 때문이다 . 라이나가 해준 옷이 가르딘에게는 특별할지 몰라도 , 귀족들에게는 평범한 것으로 보였다 .  

 ‘맛이 괜찮네 .’ 

 연회장의 음식들 대부분이 화려하며 , 맛이 괜찮았다 . 이곳저곳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음식도 편하게 먹는 사람은 가르딘이 유일할 것이다 .  

 가르딘은 그거 이곳저곳을 움직이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었다 . 주변을 경계하는 것도 동시에 하고 있었다 . 가르딘이 차를 마시려고 가는 자리에 중년인이 먼저 자리하고 있었다 . 그 중년인은 온화한 인상을 하고 있지만 제법 잘 벼리어진 검을 연상케 했다 .  

 “호오 !” 

 신성제국에 와서 처음으로 보는 오러 마스터였다 .  

 ‘신성제국의 오러 마스터라면 한 명뿐인데 ,  그럼 성기사단장인 카르마 블라이드 백작이군 .’ 

 성기사는 오러를 수행함에 있어서 다른 기사들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다 . 신성력을 갈고 닦 기 위해서는 신을 위한 기도가 필수다 . 그 기도하는 시간 동안 나머지 기사들은 오러를 수행한다 .  

 물론 선천적으로 자질의 차이가 있겠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기사들 간의 차이는 극히 미세하다 . 결국에는 시간과 노력의 싸움이라는 말이 된다 . 성기사도 노력을 하겠지만 시간에서 다른 기사들과 뒤지기 때문에 오러 마스터의 존재 자체가 희귀하게 되었던 것이다 . 하지만 오러가 아니라고 해도 신성력이 결합되면 충분히 상대가 가능하기에 별다른 문제는 아니었다 .  

 가르딘은 먼저 인사를 올렸다 . 상대가 자신을 모를지라도 신분의 차이가 엄연히 존재했다 . 상대방에게 무례보다는 좋은 인상을 남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좋은 인상을 남기는데 가장 좋은 것이 첫인상이다 . 첫인상을 좋게 가지면 나중에 더 좋은 관계를 지속해 나갈 수 있는 바탕이 된다 .  

 “안녕하십니까 !  아이시런 공주님의 경호책임자인 가르딘 오브라이언이라고 합니다 .” 

 카르마 단장은 앞에서 인사하는 인물을 보았다 . 그는 이번 공주의 호위 책임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 . 카르마가 이곳에 나타난 것은 제국의 오러 마스터가 왔기 때문이었다 .  

 젊은 두 녀석은 봤지만 책임자는 보지 못했다 . 눈에 띄지 못하는 가르딘의 비애였다 . 물론 가르딘의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 남의 눈에 띄지 않아서 많은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가르딘이 먼저 인사를 올리자 그제야 카르마 단장이 답례를 해주었다 .  

 “미처 못 봤군 ,  성기사단의 단장이 카르마 블라이드일세 .” 

 카르마 단장은 가르딘 하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누었다 . 이런저런 사람 사는 얘기에서 시작해서 이번 여정을 하는 동안의 이야기까지 했다 .  

 “자네 말솜씨가 아주 뛰어나군 .” 

 “과찬입니다 .  카르마 단장님이야말로 뛰어나십니다 .” 

 가르딘은 사람 뛰어주는데 열심이었다 . 입을 놀려서 하는 일이었다 . 돈이 들어가는 일도 아니니 잔득 뛰어주어도 부족하지 않았다 . 그랜드 마스터가 입 좀 과하게 사용했다가 피곤할 리 만무했다 . 실컷 이야기 하다가 카르마 단장이 한 가지를 부탁했다 .  

 “시간이 되면 우리 기사단과 대련 한 번 하지 않겠는가 ?” 

 성기사들의 문제점이 있었다 . 그것은 경험이었다 . 성기사들은 경험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었다 . 성녀가 사라지고 난 후 20 년 동안이나 외부적으로 힘을 행사한 적이 없었다 . 그로 인해 나타나는 경험 부족은 다른 것으로 채울 수가 없었다 . 있다면 기사단끼리 대련 정도였다 .  

 카르마 단장은 보통 연회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 이번에 온 것은 카이로만 제국의 기사들이 온다는 것 때문이었다 . 특히 제국의 마스터가 직접 왔다 . 이번과 같은 기회는 좀처럼 오기 힘들었다 .  

 가르딘은 약간 난색을 표했다 . 아직 임무가 끝이 난 것이 아니었다 . 경호를 하는 기사가 외부적으로 대련을 한다는 것 자체가 임무를 망각한 일이 될 수 있었다 . 하지만 거절하기도 쉽지 않았다 . 카르마 단장이 정색하며 말을 했는데 , 쉽게 거절하면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 된다 . 이제까지 잘 해온 일이 한 번에 물거품이 되게 할 수는 없었다 .  

  “제 임무는 공주님의 호위입니다 .  다른 일에 쉽게 허락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가 있습니다 .  결론적으로 저는 공주님의 의견에 따라야 하는 입장입니다 .” 

 “알고 있네 ,  자네의 입장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 

 카르마 단장은 가르딘이 거절하는 듯한 말을 하자 이해를 했다 . 공주의 경호가 먼저라는 것을 자신도 알고 있었다 .  

 “하지만 제가 공주님에게 부탁을 해보겠습니다 .” 

 “정말인가 !” 

 “물론입니다 .  다만 ,  공개적으로는 무리가 있습니다 .” 

 “음 !” 

 “그건 걱정하지 말게 ,  성기사단이 수련하는 장소는 외부와 격리가 잘 되어 있네 .” 

 “그리고 숫자도  3 명 정도로 했으면 합니다 .  너무 많으면 남의 눈에 띄게 될 것입니다 .” 

 “그렇게 하겠네 .” 

 이것만해도 카르마 단장은 상당한 수확이라고 생각했다 . 가르딘도 약간의 과장을 섞어서 자신이 중요한 결정을 힘들게 했다는 것을 알려야 했다 . 그래야 카르마 단장이 자신에게 더 고마워 할 것이기 때문이다 .  

 “대신에 마스터 한 명이 포함되어야 하네 .” 

 “물론입니다 .” 

 정작 붙고 싶은 것은 오러 마스터였다 . 가르딘도 카르마 단장의 눈 속에 서린 욕망을 알고 있기에 대답을 시원하게 해주었다 . 일단 결정이 되었으면 뭉기적대서는 안 된다 . 한번 했을 때 시원하게 들어주어야 관계가 더욱더 진전될 것이다 . 가르딘도 성기사들의 실력을 한번 확인해 보고 싶기도 했다 .  

 “술 한 잔 할텐가 ?” 

 “죄송합니다 .  임무 중에는 술을 못합니다 .” 

 “허허 ,  자네를 보니 내가 부끄럽게 생각이 되는구먼 .” 

 “과찬입니다 .” 

 카르마 단장이 보기에 가르딘은 전형적인 기사이면서 주변과 잘 감응을 하는 훌륭한 기사였다 . 임무에 충실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에 카르마 단장이 감탕과 더불어 칭찬을 했다 .  

 가르딘에게 이 정도는 쉬운 것이었다 . 바자바인 백작을 제외하고 가르딘의 진면목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 능구렁이 같은 바자바인 백작만 아니면 다 속여 넘길 수 있었다 .  

 가르딘에게 가장 안 어울리는 것이 전형적인 기사였다 . 능글맞고 , 염치없는 기사라면 모를까 !  

 가르딘이 카르마 단장과 여유롭게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을 때 , 아이시런과 스필언 , 미토스는 신성제국의 귀족과 신관에게 둘러싸여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  

 아이시런 공주가 누군가를 찾았다 .  

  ‘이놈의 아저씨는 어디 있는 거야 ?’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렸다 . 목을 돌리는 모습이 부자연스럽지 않도록 최대한 우아하게 움직였다 . 눈을 지그시 돌려 찾았다 . 그리고 눈에 띄었다 . 능글맞은 아저씨가 편안하게 차를 마시며 , 음식의 맛을 보고 있었다 .  

 남은 피곤할 정도로 괴롭힘을 받는데 , 정작 자신을 보호해야 하는 사람은 편안하게 놀고 있었다 .  

 ‘누군 피곤해 죽겠는데 ,  놀아 !  소원으로 벼락 치게 하는 건데 !’ 

 두고 보자라며 이를 가는 아이시런 공주였다 . 가르딘은 별로 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 하지만 보이는 모습만 보면 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는 했다 . 사람은 결국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기억하기 마련이었다 . 그것이 사실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  

 오싹 !  

 가르딘이 카르마 단장과 즐겁게 담소를 나눌 때 갑자기 오한이 들었다 . 누군가 저주를 퍼붓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  

 “왜 그러는가 ?” “ 잠시 한기가 느껴지는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 

 “자네도 농담이 제법이구먼 .” 

 오러 마스터가 온기 가득한 연회장에서 한기를 느끼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가 ! 카르마 단장은 웃으면서 농담으로 치부해 버렸다 . 가르딘과 얘기를 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흘러갔다 .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누군가가 끼어들었다 . 그 인물을 본 카르마 단장의 표정은 약간은 경색되었다 . 가르딘도 새롭게 나타난 인물이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 바로 피에르 공작이었다 . 카르마 단장이 온 것을 보고 다가온 것이다 . 하지만 카르마 단장은 피에르 공작을 별로 신뢰하지 않았다 .  

 만면에 미소를 짓고 있는 피에르 공작이었다 . 고민거리였던 것이 해결되고 나니 미소를 짓는 것도 부족하지 않았다 . 반면에 가르딘은 웃는 면상을 쥐어박고 싶었다 . 웃는 얼굴에 침은 못 뱉어도 주먹질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한 대 치고 싶은데 ,  참아야겠지 .’ 

 속 시원히 한 방 갈기고 너 인생 그렇게 사는 것 아니다 라고 했으면 마음이 뻥 뚫릴 것 같은 가르딘이었다 .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짓을 했다가는 가르딘은 사회적으로 매장당한다 . 비공식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싶기는 하지만 그것도 손이 많이 가고 ,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 . 귀찮은 일에 생각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  

 “하하하 !  카르마 백작 오랜만에 보는구려 .” 

 “그렇습니다 .  하지만 저는 성기사단의 단장입니다 .” 

 피에르 공작은 같은 귀족이니 이쪽으로 오라는 뜻으로 백작의 작위를 부른 것이다 . 그에 반해 카르마는 귀족이지만 귀족 파에 들 생각은 없었다 . 그는 오직 성녀를 보필하고 제국의 검으로 만족할 따름이었다 .  

 “이 사람 여전히 딱딱하구먼 .  시간 되면 언제 한번 찾아오게나 .  그리고 자네가 공주님의 경호를 책임지는 기사인가 ?” 

  “경호 책임자인 가르딘 오브라이언입니다 .” 

 “공주님의 안전에 만전을 기해주어서 고맙게 생각하네 .” 

 암살을 의뢰한 주제에 잘도 그런 말을 본인 앞에서 하고 있었다 . 가르딘은 속 다르고 겉 다른 귀족들의 이중적인 풍경에 짜증이 치밀었다 . 물론 가르딘도 피에르 공작을 탓할 처지가 못 되기는 했다 . 그도 겉 다르고 속 다른 것은 별반 차이가 없으니 말이다 . 오히려 환한 미소를 지으며 환대에 감사하다는 말까지 했다 .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 

 “언제고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게 .” 

 “알겠습니다 .” 

 “다음에 따로 한 번 보지 ,  그리고 카르마 백작도 다음에 보지 .” 

 피에르 공작의 입가에 머문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졌으니 미소를 짓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  

 괜찮았던 분위기에 찬물을 부어버리고 사라진 뒤 한동안 카르마 단장은 말이 없었다 . 그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던 가르딘이었다 .  

 카르마 단장은 말없이 술을 마셨다 . 그러다가 가르딘을 보며 어색하게 말을 이었다 .  

 “미안하게 되었군 .” 

 “아닙니다 .” 

 “자네도 느꼈겠지만 나는 피에르 공작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네 .” 

 “그렇습니까 ?” 

 가르딘도 피에르 공작을 신용하지 않지만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다 . 일부러 속을 보여줄 정도로 카르마 단장을 믿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 의외로 카르마 단장이 순진하거나 가슴에 담은 말을 누군가에게 하고 싶었는지 몰랐다 . 하지만 왜 싫어하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 아직은 말할 분위기가 아니었던 듯싶었다 .  

 “대련할 때 다시 한 번 보세 .” 

 “그렇게 하겠습니다 .” 

 “오늘은 즐겁게 얘기를 해서 자네에게 고맙게 생각하고 있네 .” 

 그 말을 남기고 카르마 단장은 연회장을 나가 버렸다 . 원래부터 귀족들의 연회에는 익숙하지 않았던 인물이었다 .  

 ‘복잡하군 .  귀족과 신관의 대립 ,  그리고 중립을 지키는 성기사단이라 !’ 

 중립을 지키는 성기사단의 단장이 피에르 공작을 싫어하는 이유는 짐작할 수 있었다 . 성기사단 내의 인물들을 접촉해서 회유하기 때문일 것이다 . 그로 인해 중립적인 입장에서 벗어나게 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  

 ‘뭐 ,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니 알아서 하시길 바랍니다 .’ 

 괜히 서로 대립하는 자리에 나타나서 도움을 준다고 하는 말 따위는 하지 않았다 . 그런 일을 하기에는 서로 친분이 별로 없었다 . 카르마 단장이 괜찮은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람 속은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다 알 수 없는 것은 사실이었다 .  

 가르딘은 공주의 주변을 살피면서 연회장 안에 놓인 음식을 마저 음미했다 .  

 피에르 공작이 마련한 연회는 성대하게 치러졌다 . 저녁을 지나 어두운 밤이 다 되어서 끝이 난 연회였다 . 가르딘은 피에르 공작과의 불쾌한 만남을 제외하고는 별달리 할 일이 없어서 연회음식을 즐길 수 있었다 .  

 그에 반해 아이시런 공주는 피곤해 죽을 것 같았다 . 달라붙는 귀족들과 신관들 때문에 제대로 된 음식도 먹지 못했다 . 공주가 음식에 정신이 팔려 있다는 말이 들리면 개망신이었다 .  

 체면과 위신 때문에 적당히 음료수만 마시며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 아이시런 공주와 더불어서 피곤한 사람 두 명이 또 있었다 . 바로 스필언과 미토스였다 . 특히 여인들의 노골적인 대시에 상당히 피곤해하는 듯했다 . 그렇다고 딱 잘라서 거절하기도 쉽지 않았다 .  

 그런 일에 능숙하지 않아서 자꾸만 끌려 다니고 말았던 것이다 . 평소에 안 하던 짓은 체력이 두 배로 소진이 되었다 .  

 후우 !  

 아이시런 공주는 방으로 돌아온 이후 피곤해서 그대로 침상에 드러누웠다 . 드러누운 상태에서 여유롭게 웃음을 짓는 가르딘을 생각했다 . 남은 피곤한데 , 정작 자신을 보호해야 하는 인물은 전혀 피곤해하지 않았다 . 더군다나 자신의 경호를 수하에게 양도해 놓은 상태니 자유롭기까지 했다 . 아무도 관심을 안 가져 주는 것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  

 ‘이 아저씨를 어떻게 괴롭히지 ?’ 

 요즘 들어 가르딘을 괴롭히고 싶어 미치겠는 아이시런이었다 . 왠지 모르게 가르딘만 보면 장난을 치고 싶었다 . 그로인해 당황해하는 가르딘의 모습을 보면 통쾌하기 이를 데 없었다 . 하지만 쉽지만은 않은 아저씨였다 .  

 능글맞은데다가 상당한 경험을 가지고 있어서 이리저리 잘 피해 다니기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 완전한 항복을 받고 싶은 아이시런이었지만 정도는 지키고 있었다 .  

 주물럭 ! 주물럭 !  

 피곤한 아이시런 공주의 옆에서 엘리언과 쉴라가 그녀의 다리를 주물렀다 . 오랫동안 서 있었으니 종아리에 알이 배길 정도였다 . 그것을 풀어주지 않으면 못생기고 건장한 다리가 되는 지름길이었다 .  

 바로 풀어주어 가느다랗고 선이 살아 있는 다리를 유지해야 했다 . 만인의 우상이라는 자리는 쉽지 않은 노력으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었다 . 아이시런이 비록 타고났다고 하지만 아무 노력도 하지 않는 여인은 아니었다 .  

 일정 수준의 운동과 더불어서 식사량의 조절도 하고 있었다 . 만약 아이시런이 평민으로 태어났다면 , 고된 노동으로 인해 피부가 많이 상했을 것이다 . 안 보는 곳에서 노력하는 것이 여자의 매력이 아닐 수 없다 .  

 아이시런이 가르딘을 골탕 먹일 생각에 여념이 없었고 , 엘리언과 쉴라는 아이시런의 피로를 풀기 위해 애를 쓰는 가운데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  

 똑 ! 똑 !  

 “가르딘입니다 .” 

 아이시런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  

  ‘오우거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 

 대륙의 속담 중에 하나였다 . 누군가 자기 얘기를 하면 겨드랑이가 가렵다는 말도 속담 중에 하나다 . 물론 겨드랑이가 미치도록 가려우면 피부병을 의심해 보아야 할 것이다 .  

 “들어오세요 .” 

 밤늦게 공주의 방에 찾아노는 것은 무례가 될 수 있었다 . 하지만 가르딘은 이미 약속을 한 것이기에 지키기 위해 온 것이다 .  

 “무슨 일이에요 ?” 

 “잠시 쉴라와 다녀올 때가 있습니다 .” 

 “쉴라와요 ,  어딜 가는데요 ?” 

 “쉴라가 부모님 걱정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  예배당에 가서 기도를 드리려고 하는데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 

 아이시런 공주가 쉴라를 불렀다 . 쉴라의 눈망울에서 간절함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 초롱초롱 빛을 내며 일렁이는 눈망울을 보자 , 아이시런은 거절할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 이유는 모르겠지만 쉴라의 말은 어딘지 모르게 호소력이 있었다 . 사람으로 하여금 거절하지 못하게 하는 마력이 있다 .  

 아이시런은 여기서 거절할 수 없었다 . 부모를 걱정하는 딸의 간절한 마음을 무시하면 못된 공주가 되어버린다 . 그런 모습은 죽어도 보여주기 싫다 . 하지만 밤늦은 시간에 능글맞은 아저씨와 둘이 있는 쉴라의 모습은 별로 좋지 않았다 . 경고를 해주는 것이 좋았다 .  

 “쉴라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그냥 두지 않겠어요 !” 

 “물론입니다 .  제가 책임지고 지키겠습니다 .” 

 가르딘은 쉴라의 안전을 생각하는 아이시런 공주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말을 했다 . 그렇지만 아이시런 공주의 이어지는 말에 똥 씹은 표정이 되어버렸다 .  

 “가르딘 경이 가장 걱정돼서 하는 말이에요 !  만약 잘못되면 부인을 다시 못 보게 될지 몰라요 !” 

 ‘헐 !’ 

 라이나가 있는 가르딘에게는 천부당만부당한 말이었다 . 아이시런 공주의 의심 섞인 말이 농담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 전부터 느껴졌지만 공주의 말은 왠지 모르게 진심 같아서 섬뜩했다 . 더군다나 가르딘에게 라이나는 태양이자 생명력이었다 . 라이나를 다시 못 보는 세상은 살고 싶지 않았다 .  

 “그런 일은 없습니다 .” 

 “농담이에요 ,  쉴라야 !  기도드리려 갔다 오렴 .” 

 ‘농담 같지 않다니까 !’ 

 가르딘은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지만 속은 불편했다 .  

 “고마워요 !  공주님 !” 

 “음 ,  언니라고 말하라니까 !” 

 “고마워요 !  아이시런 언니 !” 

  “그래 ,  그럼 어서 갔다 오렴 .  가르딘 경은 책임지고 쉴라를 잘 데리고 갔다 오세요 !” 

 “알겠습니다 .  공주님 !” 

 가르딘이 쉴라를 데리고 공주의 방을 나섰다 . 가르딘은 요즘 들어 공주가 막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 딱히 잘 못한 것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짜증을 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앞으로가 걱정이 되기도 했다 .  

 걱정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지만 고민을 해봐야 했다 . 이번 여정을 끝내고 나면 공주하고는 안녕이니 , 그때까지는 참고 견디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  

 쉴라를 데리고 대신전으로 갔다 .  

 밤이 되자 경비가 더 강화가 된 대신전이었다 . 대신전에 훔쳐갈 것은 없더라도 지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 대신전이 털렸다면 신성제국으로서는 개망신이 아닐 수 없었다 . 그렇지만 아무리 간 큰 도둑이라고 해도 대신전을 터는 사람은 없다 . 신의 분노를 살 수 있는 일이었다 . 그런 짓을 하느니 차라리 귀족의 집을 터는 데 나았다 .  

 대신전의 정중앙의 문 앞에 성기사 2 명이 지키고 있었다 .  

 “무슨 일입니까 ?” 

 “카이로만 제국 피닉스기사단의 가르딘이라고 한다 .  주신 라이니언께 기도를 드리고 싶은데 괜찮은 것인가 ?” 

 시간이 너무 늦어서 안 된다고 한다면 무리하게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 성기사들은 신분을 확인하고 나서 들어가도 된다고 했다 .  

 “들어가십시오 !” 

 “늦은 시간에 오게 돼서 미안하게 생각하네 .” 

 “아닙니다 .  주신께 드리는 기도에 시간은 구애받지 않습니다 .” 

 “고맙네 .” 

 성기사들이 허락을 하자 가르딘이 쉴라를 데리고 대신전 안으로 들어갔다 . 원래라면 시간이 늦으면 허락을 하지 않는다 . 하지만 세상은 신분의 구예를 받는다 . 가르딘의 배경이 카이로만 제국이었고 , 오러 마스터였기에 성기사들이 통과를 시킨 것이다 . 일반 평민이었다면 허락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컸다 .  

 오전에 놔본 곳을 따라 중앙으로 이어지는 예배당으로 향한 가르딘이었다 . 가르딘의 뒤를 따라 쉴라가 이곳저곳을 구경하였다 . 예배당으로 가는 길을 불빛이 켜져 있어 그리 어둡지는 않았다 .  

 시간이 늦어서 그런지 신관들이 간간이 보이지만 그저 주변을 돌아보는 것이 전부였다 .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자 안에 노인 한 명이 열심히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 늦은 시간까지 기도를 올리는 인물은 프리먼 대신관이었다 .  

 대신관답게 정갈하게 올리는 기도는 엄숙하며 , 장엄하기까지 했다 . 가르딘과 쉴라가 뒤에 왔는데도 의식하지 못하고 기도에 열중했다 .  

 “크흠 !” 

 가르딘이 인기척을 내자 그제야 프리먼 대시관이 알아채고 기도를 멈추었다 . 멈추고 일어서서 가르딘과 쉴라를 보았다 .  

  “가르딘 경이 아닙니까 !  무슨 일로 여기 온 겁니까 ?” 

 “기도를 드리고 싶어 하는 아이가 있어서 데리고 왔습니다 .” 

 주신께 기도드린다는 말에 대신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 쉴라를 보던 프리먼 대신관의 의외의 표정을 지었다 .  

 ‘이 아이에게서 느껴지는 이 감정의 울림은 무엇이란 말인가 ?“ 

 쉴라를 보자 가슴속에 스며든 신성력이 울리고 있었다 .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던 프리먼 대신관이기에 놀라고 있었다 .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  

 “누구를 위해서 기도를 드리려는 것이니 ?” 

 “부모님이요 !” 

 쉴라는 작게 말을 이었다 . 부모님을 위해 기도한다는 말에 대견하다는 말을 해주었다 .  

 “주신께서도 네 기도에 답례를 해주실 것이다 .” 

 “고마워요 !  대시관님 !” 

 “어서 하렴 .” 

 쉴라가 예배당의 중앙으로 가서 무릎을 꿇고 정갈하게 두 손을 모아서 마주했다 . 눈을 감고 주신 라이니언에게 기도를 올렸다 .  

 가르딘과 프리먼 대신관이 그 뒤에 서서 쉴라가 기도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  

 “마음이 고운 아이군요 .” 

 “말을 놓으십시오 .  제가 불편합니다 .” 

 “하하 !  저는 보잘것없는 주신의 종입니다 .  어찌 함부로 말을 놓을 수 있겠습니까 ?” 

 속 좋은 할아버지처럼 말을 하는 프리먼 대신관이지만 가르딘은 이게 더 불편했다 . 대신관의 위치는 일국의 왕보다 더 높은 존재였다 . 함부로 대하기도 힘들뿐더러 어려운 인물이었다 . 그런 인물이 존대를 하니 더 거북했다 . 차라리 반말하는 게 더 편했다 . 가르딘은 그로 인해 할 말이 별로 없게 되었다 .  

 “이 시간까지 기도를 올리시다니 대단하십니다 .” 

 “평소에 하던 일을 하는 것뿐입니다 .” 

 질문도 겉돌고 , 대답도 겉돌 뿐이다 . 서로 마음을 터놓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던 것 같았다 . 그 뒤로 한 10 분 정도 대화가 단절되었다 . 그런데 그때였다 .  

 서광이 비추었다 .  

 밤에 서광이 비추다니 , 마법사가 라이트닝마법을 시전한 것처럼 보였다 . 하지만 이곳에 마법사는 존재하지 않았다 .  

 빛에 느껴지는 성스러운 기운에 절로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들었다 . 빛이 뿜어져 나오는 곳은 쉴라의 몸이었다 .  

 사람의 몸이 태양도 아니고 빛이 새어 나올 리 없었다 . 그럼에도 빛이 나오고 성스러운 기운이 예배당 안으로 모두 감싸 앉듯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 놀라운 일의 연속이었다 . 뜻하지 않는 기운에 가르딘은 어리둥절했다 .  

  “응 ?” 

 가르딘은 옆에 있던 프리먼 대신관이 놀라며 무릎을 꿇은 것을 보았다 . 갑자기 무릎을 정갈하게 꿇은 채로 눈을 지그시 감으며 기도를 올리는 것이 아닌가 !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  

 “윽 !” 

 이것은 신성력이었다 . 가르딘은 신성력이 자신의 몸에까지 스며드는 것을 느껴야 했다 .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 몸 안에 존재하는 천룡무상신공이 꿈틀거리며 움직였다 . 천룡무상신공을 움직이려고 한 것이 아닌데 , 저절로 감응이 되었다 .  

 ‘이런 경우가 없었는데 !’ 

 폭주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 몸 안에서 회전하던 기운이 외부로 표출이 되어 나갔다 .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 천룡무상신공의 형상화된 기운이 외부로 형성되자 동양의 용이 모습을 나타내었다 . 그 모습 역시 신성한 기운에 감응을 하였다 .  

 쉴라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 떠오른 상태로 기도를 올리는데 , 등 뒤에 양 어깨 사이로 순백의 날개가 형성이 되었다 . 하늘에서 천사가 지상으로 강림한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  

 ‘성녀 !’ 

 가르딘은 직감적으로 느꼈다 . 몸 안에서 꿈틀대는 기운을 다시 회수하여 용의 형상을 지우기는 했지만 그로 인해 확실해졌다 .  

 ‘쉴라가 성녀였다니 !’ 

 사람이재수가 없으면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고 하는데 그 말이 정답이었다 . 공주님이 성녀가 아니라는 말에 안도의 한숨의 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 그런데 쉴라가 성녀였다 .  

 가르딘은 속으로 여기에 오는 게 아닌데 라는 후회가 들었다 . 쉴라를 데리고 오지 않았다면 성녀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한 것이다 . 또한 가르딘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신언이 생각났다 . 이렇게 되면 용의 기운을 가진 자는 자시이 되는 것이었다 .  

 ‘용의 기운을 가진 자가 나라는 말이야 !’ 

 이런 개 같은 일이 어찌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 평온하게 사는 사람에게 이따위 천벌을 내리다니 ! 새삼 아이시런 공주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  

 - 벼락을 내리라고 빌었어요 ! 빌었어요 ! 빌었어요 ! 빌었어요 !  

 농담이 아니었다 . 정말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따로 없었다 . 가르딘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 조금 전에 쉴라의 모습은 프리먼 대신관이 본 것이라 어쩔 수 없지만 가르딘이 뿜어낸 용의 기운을 본 자는 없었다 . 프리먼 대신관이 눈을 감고 있었던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 아니었다면 발뺌하기도 힘들었을지 몰랐다 .  

 “오오 !  라이니언이시여 !” 

 프리먼 대신관이 눈을 뜨며 라이니언을 부르짖었다 . 신의 성스러운 안배를 의심했다는 것을 자책하는 듯했다 .  

 쉴라의 각서이 정점에 달하자 신성력이 예배당 안을 가득 채웠다 . 성스러운 기운이 다시 쉴라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 쉴라가 다시 눈을 뜨기 전까지 프리먼 대신관도 기도를 올리며 기다렸다 . 그 시간 동안 복잡한 생각을 하고 있던 가르딘은 마음을 정했다 .  

 ‘난 절대 아니다 !’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일이니 자신만 입을 다물면 , 용의 기운은 가진 자는 나타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 가르딘이 이렇게 마음을 먹었지만 세상사 일이 자신의 뜻대로는 되지 않는다 .  

 그것이 현실이었다 . 신의 의지를 가르딘이 과연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 그것이 문제였다 .  

 예배당 안에서 플라이마법을 시전한 것처럼 날고 있는 쉴라를 보았다 . 가르딘이 한숨을 쉬며 속으로 말했다 .  

 ‘그만 내려와라 ,  언제까지 날고 있을 거냐 !’ 

 각성도 적당히 하고 빨리 끝났으면 하는 가르딘이었다 . 성스러운 의식을 보며 이런 저질적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가르딘이다 .  

 가르딘의 기대에 부응하며 쉴라가 서서히 내려왔다 . 하늘에서 내려오는 성녀의 모습이었다 . 그동안 그녀의 모습을 변하게 해주었던 얼굴변환 환영아이템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 성녀로 각성하면서 마법아이템이 버티지 못하고 망가진 것이다 .  

 가르딘이 그걸 보고 안타까운 탄성을 내질렀다 .  

 ‘허 ! 2 천 골드나 주고 산 건데 !’ 

 가르딘이 몇 십 년을 일해야 버는 돈을 공으로 날려 버렸다 . 이럴 줄 알았으면 각성하기 전에 환영아이템을 회수했을 것이다 . 하지만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았다 .  

 프리먼 대시관이 가르딘의 탄성을 보고 오해하고 있었다 . 성녀의 강림을 보게 되어 감지덕지 한 줄 알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  

 - 난 쉴라 데려왔을 뿐이고 , 그런 쉴라가 성녀 됐을 뿐이고 ! 난 용의 기운을 품은 자가 됐을 뿐이고 , 라이나 보고 싶은데 지금 라이나 볼수 없을 뿐이고 !  

 가르딘은 프리먼 대신관이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최대한 미소를 지었다 . 평소에 잘 지어지던 미소가 약간은 어색했지만 프리먼 대신관이 알아차리지는 못했다 . 성녀 강림의 위대한 순간을 보고 있는데 , 사소한 것이 눈에 들어올리 만무했다 .  

 각성한 쉴라른 전과는 확연하게 달라 보였다 . 가르딘도 쉴라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에 절로 편안함을 느껴야 했다 . 또한 좀 전까지 어려 보였던 쉴라의 모습에서 성숙한 여인의 느낌까지 받았다 .  

 ‘애는 한 번에 성장한다더니 !’ 

 나중에 브리안이 성장할 때를 생각하니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 품안에 자식이기에 계속 품고 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 쉴라도 그동안 정이 들어 있었다 . 장난을 치기는 했지만 쉴라의 마음이 착하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 정이든 아이가 성녀가 되었으니 축하는 해주고 싶었다 .  

 ‘착잡하네 .’ 

 쉴라가 성녀가 되었으니 충분히 축하해 주어도 되었다 . 하지만 그로 인해 쉴라는 세상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 권력 다툼이 존재한는 세상에 어쩔 수 없이 들어와서 살아야 했다 . 조금이라도 그 마음의 짐을 덜어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  

  “응 ?” 

 갑자기 쉴라의 앞길을 보듬어 주고 싶은 마음이 강렬하게 들었다 . 설마 하는 심정의 가르딘이었다 .  

 ‘난 변태가 아니다 !’ 

 애를 사랑한다는 그게 말이나 되는가 ! 사실 이것은 가르딘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다 . 성녀는 신의 여인이자 세상을 구원하는 데 일조하는 여인이다 . 맑고 깨끗한 신성력을 가진 성녀이니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주고 , 보호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든다 .  

 보편적인 생각을 오해하는 가르딘이었다 . 이런 이유는 라이나의 영향력이 크다 . 라이나 이외의 여인에게생소한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던 것이다 .  

 ‘라이나 !’ 

 라이나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는 가르딘이었다 .  

 가르딘은 쉴라가 성녀라는 것을 확인하고 난 후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 성녀의 등장 하나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 성녀의 등장으로 인해 신성제국의 세력싸움이 변화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  

 지금의 체계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세력은 당연히 성녀의 탄생을 당연히 못마땅하게 여길 것이다 . 특히 귀족세력의 피에르 공작은 위험 인물이었다 . 성녀라고는 하지만 피에르 공작의 상대가 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  

 그렇다고 가르딘이 쉴라를 데려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 프리먼 대시관이 본 상황에서 쉴라를 데려갔다가는 신성제국과 맞짱을 떠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  

 ‘애를 놓고 갈 수도 없고 .’ 

 성인식 순례를 오기 전이었다면 이런 생각도 하지 않았을지 몰랐다 . 안전제일을 제일로 치는 가르딘이 위험을 자초할리 없었다 . 하지만 여정을 하면서 힘을 드러냈고 , 힘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  

 가르딘이 고민하고 있을 때 쉴라가 서서히 눈을 뜨고 일어섰다 . 일어서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 프리먼 대신관이 쉴라의 옆으로 다가갔다 .  

 “성녀를 보게 돼서 영광입니다 .” 

 “저도 영광이에요 ,  대신관님 !” 

 은은한 미소를 짓는 쉴라였다 . 예전과 비슷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어른스러워진 대답이었다 .  

 “가르딘 경과 대화를 하고 싶은데 잠시 자리를 내주실 수 있나요 ?” 

 정중하게 물어보는 쉴라의 말에 프리먼 대신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밖으로 나갔다 . 대교단 안에서 사고가 터질 리 없기에 망설이지 않고 자리를 내주었다 . 가르딘은 이곳까지 성녀를 데리고 온 기사였다 . 감사의 말을 전하려는 것으로 치부했다 .  

 “잠시면 되니까 ,  괜찮아요 !” 

 “알겠습니다 .” 

 대교단 안에 쉴라가 가르딘 두 사람만이 자리하게 되었다 . 쉴라는 잠시 말없이 있었다 . 둘만 남게 된 가르딘은 어색함을 느꼈다 . 예전이라면 어색하지 않았겠지만 성녀가 된 쉴라였 다 . 전처럼 대하기가 쉽지 않았다 .  

 “호호 !”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 . 쉴라의 미모도 보통을 넘어 굉장히 아름다운 축에 속한다 . 아이시런이 너무 아름다워서 비교가 되겠지만 지금은 완연하게 피어오르는 꽃과 같았다 . 성녀로서의 신비감마저 더해지니 더 아름다워 보였다 .  

 가르딘은 다시 한 번 설마라는 심정이었다 .  

 ‘설마 !  고백 !’ 

 가르딘이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쉴라가 입을 열었다 .  

 “가르딘 오빠 !” 

 오빠라는 말을 붙였다 . 성녀가 됐다고 해서 성격이 변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 그렇지 않다면 오빠라는 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  

 “왜 ...  그러 ... 냐 ... 니 ... 까요 !” 

 성녀이기에 함부로 말을 놓기가 쉽지 않았다 . 말이 이상하게 꼬이고 , 더듬게 되는 가르딘이었다 .  

 “편하게 말하세요 ,  저는 성녀이기 전에 쉴라니까요 !  제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은 아니잖아요 .” 

 “그 ... 렇지 .  내가 좀 당황했구나 .” 

 “여기까지 온 것도 다 가르딘 오빠의 덕이에요 .” 

 “그 ... 렇지 .” 

 편하게 하라고 하는데도 칭찬일색으로 변하기 시작하자 뭔가 껄끄러웠다 . 쉴라가 이런 말을 할 리 없지 않은가 ! 요새 들어 아이시런 공주와 비슷해지는 쉴라였다 . 무언가 다른 속셈이 잇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 .  

 ‘에잇 !  설마 !  그래도 성녀가 그럴 리는 없겠지 .’ 

 “저는 이제 여기에 남아야 해요 .  혼자 남아서 성녀로서의 사명감을 완성해야 할 거예요 .  이것은 죽을 때까지 제가 지켜야 하는 사명감이니까요 .” 

 “힘 ... 들겠구나 !” 

 “아니에요 !  저는 힘들지 않아요 !” 

 힘들지 않다고는 하지만 평생 신의 종으로서 노력해야 하는 고난의 길이었다 . 힘들지 않다면 말이 되지 않는다 . 힘든 일인데 힘들지 않다고 하니 그게 더 부담으로 다가오는 가르딘이었다 .  

 “서서히 다가오는 일을 대비하기 위해서 노력할 거예요 ,  가르딘 오빠도 도와주실 거죠 ?” 

 ‘이건 뭐니 ?’ 

 쉴라는 성녀였다 . 뜬금없는 말이지만 실언을 했다고 볼 수 없었다 . 무언가 다가오는 일이 있고 , 그 일을 대비하기 위해서 준비를 하겠다고 한다 . 범상치 않은 일이 틀림없다 . 대단히 위험하고 쉽지 않은 일을 도와달라고 하고 있었다 .  

 이건 거절해야 마땅했다 . 잘못하면 라이나 얼굴을 오랫동안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못 볼 수 있었다 .  

 “쉴라야 ,  평범한 기사인 내가 뭘 할 수 있다고 그러냐 !  그런 일은 나보다 더 좋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냐 !  내가 좋은 사람 소개시켜 주랴 !  어디 보자 아 !  파스트론 공작님이라 발리스타 공작님 어떠냐 !  모두 오러 마스터 상급의 기사이시고 공작님이시니 반드시 도움이 될 것이다 !” 

 쉴라는 신성제국의 성녀이기에 도움을 달라고 하면 도와 줄 것이다 . 중요한 일을 떠넘기려는 가르딘이었지만 할 수 없게 되었다 . 쉴라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가르딘을 꼼짝달싹 못하는 말을 했기 때문이다 .  

 “용의 기운을 가진 자 누구더라 ,  난 잘 모르지만 가까이 있는 것 같은데요 ,  그것도 저와 아무 밀접하게 가까워요 !  과연 누굴까 ?  궁금해서 미치겠네요 ,  가르딘 오빠도 그렇죠 !” 

 비틀 !  

 가르딘의 신형이 심하게 흔들렸다 . 역시나 아까부터 감사의 인사를 한다며 칭찬할 때 알아봤어야 했다 . 쉴라의 요즘 성향이 바뀌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 다 알면서 능글맞게 대답하고 있었다 .  

 마치 아이시런 공주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 하지만 쉴라는 아이시런뿐만 아니라 가르딘의 성격도 영향을 받았다 . 능글맞은 성격이 어디에서 기인한지 확실히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  

 “그 ... 게 누구냐 ?” 

 “제가 알기로 이름이  < 가 > 로 시작해서  < 딘 > 으로 끝나는 세 글자 이름을 가진 분인 것 같아요 !  과연 누굴까요 ?  궁금하면 제가 직접 성녀인증에서 밝혀 볼까요 .” 

 가르딘의 표정이 똥 먹은 표정으로 바뀌었다 . 그것도 아주 구린 백년 묶은 똥을 말이다 . 성녀가 탄생했으니 공개적으로 밝힐 필요성이 있었다 . 그 기운에 신언으로 내려오는 자를 밝혀 버리면 , 대외적으로 완벽하게 가르딘의 존재가 드러나게 된다 . 세상을 구할 영웅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되었다 .  

 “세상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 대륙이 소용돌이 칠 거예요 ,  저는 은밀하게 시간을 들여 해결하고 싶은데 .” 

 “사실 나도 몹시 도와주고 싶었다 .” 

 은밀하게 처리한다는 구원줄을 던져 놓자 미끼를 바로 물수밖에 없는 가르딘이었다 . 이걸 잡지 않으면 바로 잘라버리겠다는 말이 떨어질 것이다 .  

 “쉴라야 ,  네가 과연 성녀가 맞는 것이냐 ?” 

 “물론이에요 ,  저처럼 예쁘고 깜찍한 성녀 봤어요 .” 

 “아 ... 니 !” 

 “못 봤으면 말을 하지 말아요 .” 

 쉴라는 성녀과 되면서 지식의 폭이 넓어진 상태였다 . 성녀로서의 방대한 지식이 몰려들어 쉴라의 뇌리에 쌓여갔다 . 가르딘이 신마의 지식을 얻을 때와 비슷한 경우였다 . 그렇기에 가르딘이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는 것이다 .  

 또한 가르딘의 몸에서 천룡의 기운이 꿈틀거리며 나타난 것을 프리먼 대신관은 보지 못했지만 쉴라는 보고 있었다 . 성녀가 되면 제 3 의 눈이라고 하는 신의 눈 , 즉 신안이 떠지게 된다 . 눈을 뜨지 않아도 볼 수 있는 것이다 .  

 “어떻게 안 거냐 ?” 

 “아까 실눈 뜨고 봤어요 .” 

 “그 ... 러냐 !” 

 쉴라는 감은 눈에서 잠깐 열어 봤다는 말에 가르딘은 포기했다 . 가르딘의 죽을상을 본 쉴라가 위로의 말을 했다 .  

 “가르딘 오빠 ,  지금 제가 부탁하는 것은 대륙을 위해서예요 ,  대륙이 위험하면 오빠의 편안한 일상이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  이것은 그만큼 중요한 일이니 너무 죽을상하지 마세요 ,  나처럼 어리고 ,  가녀린 소녀가 세상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오빠는 나서지 않을 생각이세요 !” 

 쉴라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 가볍게 말해서 무게가 떨어질지 몰라도 대륙이 위험한 일이라면 분명 큰일이었다 . 위험하더라도 라이나아 브리안의 미래를 위해서 반드시 나서야 할 것이다 .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 ?” 

 “아직은 잘 몰라요 ,  때가 되면 라이니언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 

 “그럼 안 일어날 수도 있는 거냐 ?” 

 “그것도 잘 몰라요 ,  단 대비를 한다면 더 좋지 않겠어요 .” 

 불확실한 대답이었다 . 역시 신은 확실한 말을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 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전혀 엉뚱한 답을 낼 수 있게 애매모호한 말을 내어놓는다 . 인간이 만능이 아닌 이상 그것을 완벽하게 해석하는 것이 어렵다 .  

 “때가 될 때를 기다리며 두 영웅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세요 .” 

 “영웅 ,  설마 스필언과 미토스가 영웅이였나 ?” 

 “가르딘 오빠의 옆에 그 사람들 말고 또 있나요 ?  아마 맞을 거예요 .” 

 “음 !” 

 영웅이 있다면 대외적으로 자신이 나설 필요는 없어 보였다 . 스필언과 미토스에게 가르침을 주고 그들이 나서서 일을 뚝딱 해결해 버리면 문제가 되지 않았다 .  

 스필언과 미토스에게 가르딘은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 깨달음을 주어서 경지를 개척하게 만들었으며 , 전음이라는 기술까지 가르쳐주었다 . 이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닌 필연이라는 말이 아닌가 ! 괜히 주신 라이니언이 무섭기까지 했다 .  

 ‘설마 진짜 벼락 치는 것은 아니겠지 .’ 

 신을 절실히 믿지는 않아도 가르딘의 마음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  

 “때가 오는 것을 알려면 네게 신탁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네 .” 

 “맞아요 .” 

 가르딘은 또다시 생각을 해야 했다 . 쉴라가 만약 죽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 신탁은 내려 지지 않고 , 때는 언제 올지 알 수 없게 된다 . 쉴라의 목숨이 대륙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말이 되지 않는가 ! 이래저래 가르딘은 쉴라의 존재가 부담으로 다가왔다 . 성녀를 부담스러운 존재로 보는 가르딘이 정상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사실이었다 .  

 “가르딘 오빠 !  부탁이 있어요 !” 

 “또 !” 

 그 말을 삼키며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  

 “뭐든지 말해 보렴 .” 

 “돌아가시면서 부모님이 무사한지 살펴주세요 .” 

 “알겠다 .” 

 별로 어려운 부탁이 아니기에 들어준다고 했다 .  

 또한 가르딘은 성녀가 된 쉴라의 안전을 위해서 두 가지를 모두 처리해 버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 쉴라의 안전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 이 일을 처리하고 카이로만 제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  

 가르딘은 밖에 머물러 있는 프리먼 대시관을 불렀다 . 프리먼 대신관하고 따로 할 말이 있었다 .  

 “할 말이 있는 겁니까 ?” 

 “그렇습니다 ,  대신관님 !” 

 “무슨 말씀입니까 ?” 

 “잠깐 동안 쉴라의 존재를 밝히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  성녀님이 나타나셨으면 당장 대륙에 알령지요 !” 

 프리먼 대신관은 당장 성녀의 존재를 알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 성녀가 있음으로 대륙에 신성제국의 건재함을 알리고 싶었다 . 또한 기울고 있는 세력구도를 원래대로 만들어 놓을 필요성도 있었다 . 한시라도 빨리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가르딘이 시간을 두자라는 말을 하자 그럴 수 없다고 말을 한 것이다 .  

 가르딘이 프리먼 대신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 갑자기 사내가 다가오자 당황한 프리먼 대신관이 주춤거렸다 .  

 “이게 무슨 짓입니까 ?” 

 “잠시 귀 좀 빌려주십시오 .” 

 “저는 주신의 종입니다 .” 

 가르딘의 당황스러운 행동에 오해의 여지가 있는 말을 남겼다 . 가르딘은 엉뚱한 생각을 하는 대신관의 행동에 짜증이 났지만 귀에 대고 왜 그래야 하는지 이유를 설명했다 . 설명을 들으면서 프리먼 대신관의 얼굴이 환하게 폈다 .  

 “어떻습니까 ?” 

 “그것 좋군요 !  정말 좋습니다 .  당장에 그렇게 하겠습니다 !” 

 “대신관께서 마음에 들어 하시니 저도 흡족합니다 .” 

 가르딘은 말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어이없어 했다 . 프리먼 대신관이 너무 과하게 좋아하니 말을 하는 자신이 민망할 지경이었다 .  

 ‘속으로 쌓인 게 많았다는 말이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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