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화 (10/93)

   @@[제3장 블러드 다크@@]

 발토르 영지는 제법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 어젯밤에 내린 빗물이 빛에 반사되어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만들었다 . 곳곳에 펼쳐진 농작물이 빗물을 받아 서서히 살아나고 , 앞으로 다가올 풍년을 예감하게 하였다 .  

 페르소인 자작의 저택에서 몰래 나온 가르딘과 아이시런은 대로변을 지나 그 앞으로 놓인 마을로 들어갔다 . 마을 안은 농작물을 재정비하려고 움직이는 농부들이 부산하게 움직였다 .  

 아이시런은 그 모습을 보며 신기해하고 있었다 . 식탁에 들어오는 모든 음식들은 다양하지만 그것이 생산되고 , 만들어지는데 들어가는 노력을 생각해 보지 못한 것이 사실이었다 .  

 “상당히 분주하네요 .” 

 “그렇습니다 .  농부는 세상에서 가장 부지런한 사람일지 모릅니다 .” 

  “그런가요 ?” 

 “물론입니다 .  우리가 먹는 것 대부분이 저들에게서 나옵니다 .  다만 안타까운 것은 농부들이 생산한 농작물이 농부 손에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다는 겁니다 .” 

 가르딘은 세상의 부조리에 대해서 알만큼 겪어왔다 . 가진 자는 더 많이 가지려고 하고 , 약한 자의 손에 남은 마지막까지 빼앗아 가는 속성을 가지고 있었다 .  

 “그럼 ,  귀족들이 농부들을 수탈한다는 건가요 ?” 

 “이 마을을 보니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  그렇지만 대부분의 귀족들을 농부들이 땀 흘린 것을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  그들은 그거 당연하게 해아 할 일을 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  누구는 힘 하나 들이지 않고 모든 것을 가지고 ,  힘들여 일한 자는 고된 노동으로 지쳐갈 뿐입니다 .” 

 가르딘의 말은 약간 충격적이었다 . 가르딘의 말이 귀족들을 모독하는 말이 될 수 있지만 공주라면 백성들의 어려움을 알고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 평소에 안 하던 말을 한 것을 보면 , 가르딘도 배포가 세졌다고 불 수 있었다 . 물론 다른 귀족들에게는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  

 “서글프네요 !”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  귀족은 귀족이 지켜야 하는 영지민이 있습니다 .  그들을 보살피는 것만으로도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니까 !  아무리 잘 지은 농장이라고 해도 지키지 못하면 모두 빼앗길 재물이 되어 버리니까요 .” 

 귀족은 귀족으로서 품위와 격이 있어야 한다 . 그리고 가장 중요한 책임을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 대우를 받은 만큼 올바른 책임이 선행이 돼야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  

 “공주님이 생활할 수 있는 것도 모두 이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만 있으시면 됩니다 .  굳이 심각하게 고민하지 마십시오 !” 

 “갑자기 정색하며 말하는 사람이 과연 내가 알던 능글맞은 아저씨가 맞는지 의심이 되네요 !” 

 ‘컥 !’ 

 가르딘의 평소 행실을 아이시런 공주가 어떻게 봤는지를 알 수 있는 말이었다 . 가르딘은 공주가 자신을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에 충격을 받은 듯 아찔했다 .  

 “저는 자랑스러운 제국기사단의 기사입니다 .” 

 “또한 애 딸린 팔불출 아저씨고요 !” 

 ‘헙 !’ 

 틀린 말은 아니지만 듣고 있는 가르딘의 안색을 변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 일상의 일을 너무 심각하게 이야기했으니 아이시런 공주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  

 한동안 마을을 돌아다니며 사람 사는 것을 구경했다 . 그들은 바쁘고 , 고되지만 그 가운데서도 행복을 찾고 있었다 .  

 사람이 매일 죽는 것처럼 고통스럽다면 과연 살아갈 낙이 있겠는가 ! 부모는 자식이 자라는 모습만으로도 배가 부르다고 하지 않는가 ! 그들은 그 안에서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 아이시런 공주는 한 가족을 보고 있었다 .  

 아버지와 딸 , 그리고 형제들이 서로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 뛰어 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아버지의 모습은 아이시런 공주에게 낯설레 느껴지는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  

 “한편으로 부럽네요 .” 

 “그렇습니까 ?” 

 “황궁에서의 삶은 저럴 수가 없어요 ,  그저 황제와 공주 ,  그리고 황자의 위치만을 주변에서 강요하거든요 .” 

 “앞서 말한 책임감이 중요한 겁니다 .  공주님은 제국의 공주입니다 .  그에 대한 책임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  그래서 공주님을 위해 기사들과 병사들이 목숨을 거는 겁니다 .” 

 공주이기에 갖는 책임 . 그로 인해 기사와 병사는 목숨을 걸고 지키려고 한다 . 공주라는 지위 하나만으로도 막중한 책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 공주는 개인의 목숨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책임질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  

 “알고 있어요 ,  저는 저들이 부럽지만 내가 공주라는 것을 잊지는 않으니까요 .” 

 가르딘은 과연이라는 생각을 했다 . 말괄량이처럼 행동하고 , 막무가내일지 몰라도 자신이 가진 지위와 책임은 알고 있는 공주였다 . 보통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가식의 모습도 계속적으로 행동하기는 힘든 일이었다 .  

 공주는 매일 벌어지는 그 모습에 지쳐가고 있었던 것이다 .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는 것도 그와 같은 일상의 탈출을 위해서일지 모른다 . 답답함을 마음대로 표출하게 되면 도리어 이기적인 인간이 될 수 있다 . 자신에게는 가벼운 일이라고 해도 공주가 약하게 마음먹을수록 뒤에서 감당할 사람들은 상당한 악의로 전개될 수 있다 . 공주의 마음이 아직은 순수하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  

 “시간이 꽤 됐는데 ,  식사를 하시겠습니까 ?” 

 “출출한데 잘됐네요 .  평민들이 먹는 음식도 경험해 보는게 좋겠어요 !” 

 항상 최고급에 최고의 주방장이 만들어준 음식에 길들어져 있는 공주였다 . 그들이 만들어준 음식이 맛있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 최상급의 신선한 재료를 가지고 맛없는 요리를 대령할 요리사는 극히 드물다 . 더군다나 황궁에서 일하는 황궁요리사는 대륙에서 실력이 검증된 자들이었다 .  

 아이시런은 일반 평민이 먹는 음식은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것 같았다 . 가르딘은 전쟁터에서 오크 죽이라는 것도 먹어 보았다 . 생각처럼 맛이 있지는 않을 것이다 .  

 “맛은 보증할 수 없습니다 .” 

 “알고 있어요 ,  그들이 먹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려는 것뿐이에요 .” 

 “그렇다면 인근의 여관에 가보는 게 좋겠습니다 .” 

 여관이야말로 평민들이 간단히 쉬고 지나가는 자리다 . 일반 평민이 고급의 음식을 접하는 것은 극히 드물다 . 그들에게 주어진 삶에서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여유 한 모금 정도를 쉽게 얻을 수 있으면 족했다 .  

 어두컴컴한 지하 .  

 습한 기운이 올라오는 곳에 모여 있는 8 명의 인영이 있었다 .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기 위해 먼저 자리에 들어가 대기했다 .  

 그 중심에 뒤집어쓴 망토의 한 자락 사이로 붉은 머리카락이 보이는 인물이 있었다 . 얼굴 전체적으로 보이지 않도록 되어 있지만 입가에 머문 미소가 섬뜩하게 다가왔다 . 그들은 전체적으로 검고 칙칙한 망토를 입고 있었다 . 더군다나 어두운 장소 내에서 아무 말도 없이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숨 막히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  

 어둠 속에서 빛이 들어왔다 .  

 붉은 머리카락을 소유한 인물이 하나의 수정구를 꺼냈다 . 손바닥 안에 들어가는 작은 수정이지만 빛을 발하니 주변을 환하게 밝혔다 .  

 수정구가 빛을 발하며 소리가 들려왔다 .  

 - 새가 새장 속에서 나왔음 .  

 아주 간단한 메시지였다 . 별다른 말이 없지만 붉은 머리카락의 인물은 뜻을 알아차리고 있었다 .  

 입가에 머문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 기회가 없을 것 같았는데 , 의외로 쉽게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알아서 위험상황에 노출되어 주는 먹잇감에 찬사를 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  

 “가녀린 새는 새장 속에 있을 때가 가장 안전하다는 것을 알아야지 .” 

 갇힌 새는 자유가 없다 .  

 대신에 새를 잡아먹는 짐승들로부터는 안전하다 . 무엇이 더 좋은지는 알 수 없으나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것이다 . 그러나 지금 말을 한 핏빛의 사나이는 자유롭게 날아가는 새를 연상하지는 않았다 .  

 “준비한 것을 챙겼겠지 .” 

 “그렇습니다 .” 

 “새를 지키는 자에게 기회를 줄 필요는 없다 .  방심 없이 속선속결로 끝을 낸다 .” 

 “알겠습니다 .  마스터 !” 

 프리지안 여관 .  

 가르딘은 마을 안에 존재하는 여관 중에서도 겉으로 보이는 외관이 괜찮은 곳을 찾았다 . 사람들이 흔히 착각하는 것이 있다 .  

 오래된 여관에다가 낡은 여관일수록 생각보다 좋은 음식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 말이다 . 물론 맛이 있을 수도 있으나 그건 착각에 불과하다 . 겉으로 보이는 것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여관이 어떻게 맛을 보증하는가 !  

 차라리 겉모양이 깨끗하고 정돈이 잘된 곳을 찾는 것이 덜 후회하게 될 것이다 .  

 가르딘이 고른 여관이 프리지안 여관이었다 .  

 여관 안은 밖에서 보는 것보다 꽤 넓었다 . 손님이 몇 있기는 하지만 시간대가 어중간해서 많은 손님은 없었다 . 가르딘은 아이시런을 객잔의 사각에 자리하도록 했다 .  

 더불어서 앞으로 들어오는 문과 뒤로 들어가는 문이 있는 중간 자리에 위치하게 앉았다 . 앞뒤에서 발생하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 그와 동시에 정면으로 아이시런 공 주가 보이지 않도록 가르딘이 마주 않았다 .  

 아이시런 공주는 가르딘의 행동에 이상한 점은 찾지 못했다 . 그저 식사할 곳을 찾아서 대충 앉는 것으로만 보였다 .  

 ‘위험은 없어 보이는군 .’ 

 만일의 사태를 위해서는 아이시런이 기사들과 같이 있는 것이 최선이다 . 하지만 근래에 약속했던 외출을 하지 못하게 된 아이시런이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위험상황이기도 했다 .  

 가르딘이 공주를 외출시켜 단단히 점수를 따놓으려는 속셈이 있었다 . 그렇지 않았다면 굳이 외출하지 않았을 것이다 . 그녀가 비록 연기를 했다 하지만 가르딘이 먼저 마음을 먹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  

 가르딘이 종업원에게 식사를 시켰다 . 종업원은 아직 어린 아이였다 . 14 살을 갓 넘었을까 한 어린 여자아이였다 . 부모님이 음식을 마련하고 , 아이는 부모를 도와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  

 한 사람이 부족한 시대에 아이도 일을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 차라리 일이 있는 것은 편한 축에 속한다 .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거리에 부랑자처럼 사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많이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  

 가르딘은 인상 좋은 모습 . 즉 여유만만한 중년인의 표정으로 가볍게 물었다 .  

 “이곳에서 가장 맛있는 것이 뭐니 ?” 

 “파인 수프하고요 ,  다이지 양념 고기가 가장 괜찮아요 !” 

 “그럼 ,  그것  2 인분하고 물 좀 같다 주겠니 .” 

 “알겠어요 .  조금만 기다리세요 ,  금방 가져다 드리겠어요 !” 

 가르딘이 일방적으로 시키자 아이시런은 조금 샐쭉해졌다 .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물어보지 않은 가르딘을 살짝 노려보았다 .  

 “왜 ,  멋대로 시키는 거죠 ?” 

 가르딘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대답을 바로 했다 .  

 “보통 여관은 요리의 개수가 몇 개 없습니다 .  더군다나 오랫동안 같은 요리를 한 것이 가장 맛있는 요리가 됩니다 .  사람들이 많이 시킨 요리니 맛에도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겁니다 .  하지만 특정한 요리는 그들에게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  일단 몇 번 해보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고 ,  맛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이런 여관에 오면 보통 대부분의 사람이 가장 잘하는 요리를 먹기 마련입니다 .” 

 “그 ... 렇군요 .” 

 아이시런은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었다 .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 가르딘은 기사이며 귀족이다 . 평민의 삶을 이토록 잘 아는 것이 신기하게 여겨졌다 .  

 “생각보다 저들의 삶을 잘 아네요 ." 

 " 당연하죠 , 제 아내가 평민입니다 . 그리고 저는 고급스러운 삶과는 잘 맞지 않습니다 . 그저 라이나의 정 속에서 만족하며 사는 게 제 소망입니다 .“  

 “오러 마 ......” 

  “쉿 !  그런 말은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 

 가르딘이 아이시런의 입을 막았다 . 누군가 듣지 않을 수도 있으나 문제가 될 말은 가급적 하지 않는 게 나았다 . 특히 공주나 오러 마스터라는 말은 문제가 될 소지가 있었다 .  

 “하긴 ,  그렇네요 .” 

 아이시런은 수궁하면서도 가르딘의 소망이 무척이나 소박하다는 것을 느꼈다 . 제국에서 오러 마스터의 지위는 공주와 비견해도 떨어지지 않는다 . 군사적인 측면에서는 공주보다 더 막강한 지위를 보장받을 수 있다 .  

 그런 자격을 갖춘 가르딘이 원하는 게 그거 가족과의 화목한 삶이라니 , 왠지 모르게 이상하면서도 부럽다고 느껴졌다 . 리나라고 불리는 여자아이가 물을 두 잔 가져왔다 .  

 “여기요 .” 

 “고맙다 .” 

 물을 한 모금씩 하고 나서 식사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 식사는 빠르게 나왔다 . 여관에 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성격이 급하거나 , 식사를 오래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보니 빨리 나왔다 .  

 아이시런은 겉으로 보이는 파인 수프와 다이지 고기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 평민들의 삶이 어떤지 알고 싶다고 해도 , 고급음식에 맞추어진 아이시런의 눈에 들어올 음식은 아니었다 . 그렇지만 가르딘이 보는 상황에서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기는 싫었다 .  

 즉시 나이프와 포크를 들어서 다이지 고기를 잘라먹어 보았다 .  

 오물 ! 오물 !  

 의외로 괜찮은 맛이었다 . 아이시런은 담백하면서도 쉽게 넘어가는 다이지 고기에 약간은 놀라고 있었다 .  

 “맛이 괜찮넨요 .” 

 “그렇습니다 .  양념은 이 집 고유의 맛이 배어 있는 것 같습니다 .” 

 다이지 고기의 특징은 담백함과 더불어 영양가가 많다는 점이다 . 또한 집에서 기르기에 가장 쉽고 , 안전한 가축이라는 특징이 있기에 대중적으로 많이 먹는 음식 중에 하나다 .  

 고기와 수프를 먹고 있을 때 가르딘의 기감에 약간은 이상한 점이 잡혔다 . 불현듯이 스쳐 가는 위화감이었다 .  

 찌릿 !  

 ‘이상한데 .’ 

 별다른 이상한 점이 없었다 . 여관은 보통의 여관과 크게 다르지 않고 , 집을 운영하는 사람들도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 여관에 들어오기 전에 기감을 열어 주변을 탐색했다 .  

 그와 더불어서 주변의 지리적인 여건까지 파악해서 들어온 곳이었다 . 불길한 마음이 들 이유가 없는데도 드는 위화감에 잠시 식사를 중단한 가르딘이었다 . 괜한 생각으로 치부하지 않았다 . 한 가지를 잘못 넘언가면 나중에는 뼈아픈 실책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식사를 적당히 하면서 주변을 끊임없이 감시했다 .  

 언제 어디서든 알 수 없는 일이 터질 수 있는 것이 세상이었다 . 그랜드 마스터라고 하지만 모든 일에 완벽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  

 한동안 점검했지만 이상한 점은 하나도 없었다 .  

 ‘과민반응인가 ?  그래도 조심은 해야겠지 .’ 

 공주를 데리고 다니는 일에 한 점의 실수는 허용하지 않는다 . 결과가 최악의 상황일 경우 , 최선을 다했다는 변명은 길 잃은 대답일 수밖에 없다 . 결과적으로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 세상은 용서를 구했다고 봐주는 시대가 아니었다 .  

 표정이 변한 가르딘을 본 아이시런이 물었다 .  

 “왜 그래요 ?” 

 “아닙니다 .  잠시 생각할 게 있어서 그랬습니다 .” 

 “또 아내 생각인가요 ?” 

 “그런 것 아닙니다 .” 

 “흥 !” 

 여자가 앞에 있는데 , 다른 여인을 생각하니 약간은 기분이 나빠진 아이시런이었다 . 그렇다고 따지지는 않았다 . 아이시런이 이런 오해를 하는 것도 평소 가르딘의 성정 때문이었다 . 그간 보여준 행실이 사람의 성격을 판단하는 잣대로 작용하는 것처럼 말이다 .  

 ‘이거 오해가 장난 아니구먼 .’ 

 식사는 금세 끝이 났다 . 식사를 끝냈으니 바로 여관으로 나갔다 . 아직 둘러보고 싶은 곳이 남아 있었다 .  

 “다른 곳도 한번 둘러봐요 .” 

 “그러시다면 마을 외곽에 호수가 있는데 그쪽으로 가겠습니까 ?” 

 “그럼 되겠네요 .” 

 호수에 가보기로 한 아이시런가 가르딘이었다 . 호수는 마을에서는 약간 떨어진 곳에 자리한다 . 마을의 식수로 사용하는 곳이지만 외곽에 있어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는 않았다 . 모르는 사람이 보면 늑대 같은 유부남의 중년인이 어린 소녀를 꼬여 으슥한 곳으로 들어가는 불륜의 장면을 연상케 하였다 .  

 가르딘은 꼭 아이시런의 옆으로 갔다 . 뒤와 앞으로 나가지 않고 옆을 지키는 이유는 가장 먼저 보호해야 하는 대상이 아이시런이기 때문이다 . 갑작스러운 공격에 대응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에 하나가 몸이다 . 최후의 수단이 몸으로 막는 방법이다 .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거리와 간격이다 . 가장 좋은 곳이 바로 옆이기 때문이다 .  

 가르딘의 경호를 연속적으로 오해하는 아이시런이었다 .  

 “왜 자꾸 옆에 바싹 달라붙어요 ?” 

 아이시런은 가르딘이 자신에게 마음이 있어서 그러는 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 아이시런 공주의 말에 단호하게 대처하는 가르딘이었다 . 괜히 애매모호한 감정의 상태를 만들어 오해를 사게 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 . 그럴수록 자신에게 득보다는 실이 많다 .  

 “옆이 보호하기 가장 쉬운 장소입니다 .” 

 아이시런은 가르딘의 확고한 대답에 말문을 닫았다 . 가르딘에게 라이나 이외의 여자는 별다른 관심사항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바로 옆에서 듣자니 괜히 심술이 나는 아이시런이 었다 .  

 대륙에서 알아주는 미모를 가진 자신과 단둘이 있는데 목석이 따로 없었다 . 물론 자신도 가르딘에게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니다 .  

 다만 여자이기에 누군가의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것은 어쩜 당연한 마음이었다 . 아이시런은 항상 관심의 대상이 되지만 정작 무관심한 사람에게 아무 관심도 받지 못하는 것이 서운하게 다가왔다 .  

 좁은 오솔길을 따라 걸어가자 호수가 보였다 .  

 주변은 숲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탁 트인 공간에 자리하고 있는 호수는 햇빛에 반사되어 아름다운 자태를 마음껏 드러내고 있었다 . 오후의 마지막 빛을 호수의 물이 흡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아릅답네요 !  그리고 상쾌해요 !” 

 “그렇습니다 .” 

 펼쳐진 호수가 꽤 넓은 편에 속했다 . 한참을 바라보며 구경하는 아이시런 공주였다 . 그녀가 밖에 나올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기에 마음껏 관찰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 순수하게 바라보는 눈망울과 유리알처럼 투명한 피부 . 보는 이로 하여금 심금을 울리게 만들 정도로 순수해 보이는 아이시런이었다 . 아쉬운 것은 가르딘은 그녀보다 주변을 경계하는데 정신이 팔려 있다는 것에 있었다 .  

 ‘라이나가 이 장면 보면 오해하지는 않겠지 .’ 

 심지어 한술 더 뜨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 하지만 충분히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는 행동이기는 했다 .  

 아이시런은 호수를 바라보다 서서히 눈이 감겼다 . 그리고 힘이 쭈욱 빠졌다 . 갑자기 잠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려는 상황이었다 .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것 같았다 . 마지막으로 안간힘을 써보려고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 잠으로 인해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  

 ‘왜 ... 러 ......’ 

 순식간에 쏟아지는 잠의 위력에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려고 했다 .  

 쓰러지려는 아이시런의 모습에 가르딘이 그녀를 오른팔로 안았다 . 아름다운 여인을 부축한 사내는 행복해야 마땅하나 가르딘은 전혀 아니었다 . 오히려 주변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살기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  

 “이것이었나 ?” 

 갑자기 전해지는 불길한 기운의 정체가 드러났다 . 대놓고 살기를 분출하는 것으로 보아 결코 선의를 가진 무리는 아니었다 . 또한 놀라운 것은 이처럼 가까이 접근하는 동안 가르딘이 몰랐다는 것에 있었다 .  

 “감각이 무뎌졌다 .” 

 보통이라면 숲에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알아차릴 가르딘이었다 . 그런데 감각이 생각보다 날카롭지 못한 상황이었다 .  

 천룡무상신공을 끌어 올려보는 가르딘이었다 .  

 단전에서 시작된 내공의 끝이 서서히 혈류를 타고 흘러나갔다 . 나아가는 길목에 무언가 방해하는 이물질이 존재했다 . 이물질은 쉽게 부서지지 않을 것 같은 철옹성처럼 보였다 . 하지만 천룡무상신공은 극의의 신공이었다 . 무너지지 않는 성을 조금씩 부숴나가 내공을 순환시켰다 . 하지만 기운이 전보다는 상당히 줄었다 .  

 저벅 ! 저벅 !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무리였다 .  

 모두 8 명으로 되어 있으며 도망칠 수 없도록 사방으로 포위망을 구축했다 . 내공을 순환시키느라 시간을 소비할 수밖에 없었던 가르딘이기에 움직이지 않고 기다렸다 . 드러난 8 명 중에서 붉은 머리를 한 인물이 앞으로 나섰다 . 입가에는 미소를 짓고 있지만 그 미소가 징그럽게 느껴졌다 .  

 “너희들은 누구냐 ?” 

 “후후 ,  대단하긴 하군 .  오러 마스터라 그런지 오래 버티는 것 같아 .”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 가르딘이 정체를 물어보면서 상태의 말을 분석해 보았다 . 놈들이 무언가 독을 탄 것이 분명했다 . 가르딘은 쓰러지는 아이시런의 상태를 체크해 보았다 . 그리고 안심했다 . 단순히 잠에 든 것뿐이었다 .  

 그렇다면 놈들이 쓴 약은 오러를 억제시키는 독이 분명했다 . 오러를 익힌 자들만이 힘을 발휘할 수 없게 만드는 독일것이다 . 하지만 그러한 독이 있다는 말은 처음 들어보았다 . 있다면 과거에 사라져서 이제는 잊혀진 것이다 .  

 ‘설마 !’ 

 “악마의 눈물 !” 

 “호오 !” 

 악마의 눈물을 아는 가르딘의 말에 붉은 머리의 인물 , 길로틴은 탄성을 냈다 . 악마의 눈물은 잊혀진 독이다 . 그 이름을 아는 자는 이제 사라지고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 가르딘이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할 지경이었다 .  

 “제법 알고 있는 게 많군 .  하지만 이름을 안다는 것만으로 넌 살아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지 .” 

 악마의 눈물 .  

 그것은 흑마법사가 만들어낸 마나억제제였다 . 마도의 숲에서 자라는 포크타인이라는 독나무에서 체액을 채취해 흑마법력을 가해 만들어낸 것이다 . 오러를 가진 자들에게는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다 .  

 몸 안에 흐르는 기운을 철저하게 막아놓기 때문이다 . 그러나 만드는 방법이 어려울 뿐 아니라 흑마법사의 수준이 상당히 높아야 한다 . 최소 7 서클 이상의 흑마법사만이 만들 수 있다고 전해졌다 . 그런데 이상한 것은 흑마법사의 존재 자체가 이미 사라지고 없다는 것이다 .  

 가르딘이악마의 눈물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단편적인 내용이었다 . 킹덤나이트 시절 도서관에 있던 < 마나의 이해 > 라는 책에서 본 것이 전부였다 .  

 < 마나의 이해 > 는 오래된 책으로 도서관 구석에 처박혀서 아무도 읽지 않은 것이다 . 그냥 심심해서 한번 읽어본 내용에 악마의 눈물이 한 줄 적혀 있었다 .  

 - 마나와 오러를 억제하는 독 .  

 그게 끝이었다 .  

 이미 잊혀진 것이기에 다시 생각해 낼 필요성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  

 “바보가 따로 없군 .” 

 가르딘이 핀잔 섞인 말을 이었다 .  

 “네가 아는 척하지 않았다면 나는 악마의 눈물인지 몰랐을 것이다 .” 

 사실 말이야 바른말이지 길로틴이 인정하지만 않았어도 가르딘은 그냥 넘어갔을 내용이었다 . 사실을 밝힌 게 길로틴이 되어버렸다 . 순간적으로 놀림감이 된 길로틴의 이마에 힘줄이 생겼다 .  

 “곧 죽을 테니 마음껏 지껄여라 .” 

 마음껏 하라는 길로틴의 말에 가르딘은 대놓고 물었다 .  

 “흑마법사들이 아직 존재하는 것이냐 ,  그리고 너희들 정체가 뭐야 ?  설마 인신매매범은 아니겠고 ... 등등 !” 

 말을 하라고 하니 끊임없이 하는 가르딘이었다 . 가르딘이 정말 핵심적인 것을 물어보니 대답할 수 없었던 길로틴이었다 . 가르딘이 말을 하다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  

 “어떻게 알았지 ?” 

 “우리가 모르는 것은 없다 .” 

 아이시런이 공주라는 것을 알고 접근했을 것이다 . 그 이유에 대해서 알고 싶은 가르딘이었다 . 페르소인 자작의 저택에서 빠져나올 당시 알고 있는 인물은 쉴라와 엘리언뿐이었다 . 급히 나왔는데도 안다는 것은 페르소인 저택 안에 살고 있는 인물 중에 한 명이 동조자일 가능성이 컸다 .  

 “그것보다 우리가 어떻게 중독이 된 거지 ?” 

 “식사는 맛있게 했나 !  크크크 !” 

 역시 프리지안 여관에서 한 식사에 무언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 식사를 하면서 느끼지도 못할 정도로 무색 , 무취 , 무미했다는 말이 되었다 . 악마의 눈물이라는 것이 새삼 무섭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 모르고 당하면 드래곤이라고 할지라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정보력이 굉장한 놈들이다 .’ 

 이동경로를 알아내기 위해서 필요한 인원과 정보력 , 그리고 움직임들이 보통을 넘었다 . 그리고 제국의 정보력에서 이들에 대한 정보가 없다 . 제국의 정보력에도 잡히지 않은 제 3 의 세력일 가능성이 있었다 .  

 가르딘은 두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  

 어둠의 길드 , 아니면 코카 제국일 가능성이 있었다 . 코카 제국은 이번 여정에서 실패를 한 상태다 . 다시 또 도발해 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어둠의 길드인가 ?” 

 “제법 똑똑하군 .” 

 가르딘의 찍기 실력은 엄청났다 . 대번에 상대의 정체를 파악해 내었다 . 특히 암살을 주특기로 하는 집단은 어둠의 길드에 속하는 어쌔신 길드일 가능성이 컸다 .  

 “이제 그만 떠들고 죽을 차비나 해라 .  반항한다면 공주는 곱게 죽지 못할 거이다 .” 

 길로틴의 입가에 머문 미소가 더둑더 진하게 변했다 .  

 “너의 이름은 ?” 

 “알고 나 죽게 해주지 ,  어쌔신 길드의 세븐다크 중에 하나인 블러드 다크 길로틴이다 .” 

 “너희 말고 다른 놈들도 왔나 ?” 

 건성으로 지나가는 듯한 말투의 가르딘이었다 . 단 대답하는 길로틴은 가르딘을 비웃으며 자신감 있게 말해 주었다 .  

 “너 따위를 죽이는데 나 혼자면 충분하다 !” 

 “그런가 ,  그럼 이만 다 죽어줘야겠다 .” 

 오히려 죽인다는 말을 가르딘이 하고 있었다 .  

 “두려움에 미친 것이냐 ?” 

 “아니 ,  내 정신을 멀쩡해 .  다만 내 실력이 까발려지면 조금 곤란하거든 .” 

 실력은 감출수록 빛을 발한다 . 누가 알고 있는 것보다 모르는 상태에서 뒤통수치면 상당히 효율적으로 발휘할 수 있다 . 가르딘은 끝까지 실력을 숨기고 싶어 하지만 필요하다면 드러내는 데 주저함은 없었다 .  

 “하하하하하 !” 

 가르딘의 말이 너무 웃겨서 참을 수 없는 길로틴이었다 . 길로틴이 한참을 웃다가 싸늘하게 가르딘을 노려보았다 .  

 “오러 마스터라고 해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  어리석구나 !” 

 “난 오러 마스터가 아니니까 .” 

 “뭐라고 !” 

 가르딘은 작게 속삭였다 . 아주 작아서 아무도 듣지 못했다 . 개미가 입이 찢어지도록 소리 질러봤자 오우거나 듣지 못하는 것과 같았다 .  

 ‘난 그래도 마스터야 !’ 

 가르딘에 대한 정보는 이미 들어와 있는 상태였다 . 최근에 오러 마스터가 되어 눈부신 활약을 선보였다 . 어둠의 길드에서 정보는 가장 중요한 것이다 .  

 정보가 틀릴 확률은 제로에 가까웠다 . 또한 기사라면 자신의 실력에 자신감을 갖고 자랑하기 마련이었다 . 그런데 정작 눈앞에 있는 가르딘은 오러 마스터가 아니라고 말을 하고 있었다 .  

 “겁에 질려 미쳤구나 !” 

 길로틴은 그렇게 단정했다 .  

 “반항하지 않는다면 곱게 죽여주마 !” 

 가르딘을 곱게 죽일 생각이 없던 길로틴이다 . 말을 한 것은 상대방을 농락하려고 한 빈정 거림에 불과했다 . 다만 그 말에 대답하는 가르딘의 대답은 길로틴의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  

 “난 관대하니까 ,  너희들은 충분히 반항해도 돼 .” 

 “네놈이 진정 실성했구나 !” 

 “반항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을 거야 .” 

 블러드 다크읜 자신을 향해 오히려 겁을 주고 있었다 . 상황만 보면 누가 주도권을 잡고 있는지 뻔히 보이는데 , 대화는 전혀 다른 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 실소가 나오게 만드는 상황이었다 .  

 들어주는 것도 한도가 있었다 . 길로틴이 화를 참지 못하고 명령을 내렸다 .  

 “놈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계집은 데려와라 ,  극락의 맛을 보여주마 !” 

 아이시런 공주가 대륙제일 미인이라는 소리는 길로틴도 들어보았다 . 그러한 여인을 맛볼 기회가 찾아왔는데 , 그냥 지나칠 이유가 없었다 . 길로틴의 말에 따라 수하 두 명이 빠르게 가르딘을 향해 달려 나갔다 . 가르딘의 눈이 차갑게 식었다 .  

 ‘역시 세상사 만만치 않아 .’ 

 되도록 실력을 선보일 기회가 없기를 바랐다 . 솔직히 오러 마스터라는 것도 알려지기 꺼려 했던 가르딘이었다 .  

 많은 생각을 하기도 전에 블러드 다크의 수하들의 검을 들이대었다 . 일급 어쌔신들답게 상당히 빠른 쾌검을 보유하고 있었다 . 오러 마스터라고 해도 쉽사리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무서운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  

 정확하게 목과 가슴을 노리고 들어왔다 . 가르딘을 아이시런 공주를 한손을 잡고 있는 상태였다 . 왼팔과 어깨 부분은 거의 무방비에 가까웠다 . 피하기도 어려운 공격하기 딱 좋은 장소였다 .  

 ‘빠르지만 뻔하군 .’ 

 오러를 사용할 수 없으니 병신으로 봤을 가능성이 컸다 . 막아낸다고 생각하지 않고 공격하는 놈들의 용기에 칭찬을 보내고 싶을 지경이었다 .  

 사삭 !  

 가르딘의 신형이 바로 앞에서 옆으로 이동했다 . 어쌔신의 양쪽 검이 허공을 갈랐다 . 허공을 가른 상태에서 주변을 돌아보자 가르딘이 등 뒤에 서 있었다 . 그 즉시 가르딘의 검이 섬광을 발했다 .  

 슈슝 ! 슈슝 !  

 대기를 가르며 갈라진 검이 두 번 그어졌다 . 그것으로 끝이었다 . 가르딘이 돌아서 블러드 다크 길로틴을 보았다 .  

 가르딘이 돌아서는 동안 어쌔신 2 명의 목이 힘을 잃고 몸과 분리되어 바닥에 뒹굴었다 .  

 데구르르르 !  

 가장 놀란 사람은 길로틴이었다 . 악마의 눈물을 마신 사람은 오러를 사용할 수 없는 것이 정석이었다 . 그런데 가르딘의 움직임은 오러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것이었다 .  

  “이 ... 럴수가 !” 

 가르딘은 길로틴처럼 시간을 주지 않았다 . 일단 마음을 먹으면 가장 몸이 먼저 움직이는 것이 본능이었다 . 가르딘의 날카로운 검이 어쌔신들을 향해 날아갔다 .  

 그랜드 마스터가 작정하고 휘두르는 검속을 따라올 수 있는 자는 같은 그랜드 마스터뿐이다 . 하지만 불행히도 가르딘을 제외하고 이중에서 그랜드 마스터는 존재하지 않았다 .  

 가르딘의 검이 휘둘러지는 공간 안에 어김없이 어쌔신의 목이 자리했다 . 피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목이 잘려나갔다 .  

 싹둑 ! 뎅강 !  

 거침없이 이어지는 5 번의 검질만으로 블러드 다크의 수하들을 모두 도륙해 버린 가르딘이었다 . 미처 대비할 틈을 주지 않았다 . 방비할 틈을 준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짓이었다 . 가르딘은 말로써 방비하라고 했지만 놈들의 방심을 유도하고 신경을 긁으려는 수작에 불과했다 . 그리고 상황은 적중했다 . 남아 있는 자는 길로틴뿐이었다 .  

 그를 남겨둔 것은 아직 들어보아야 할 이야기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 놈이 알고 있는 것을 모두 알아낸 후에 죽이면 되었다 .  

 “블러드 다크라고 했지 ,  사람을 참 많이도 죽였나 보지 ,  블러드란 말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 말이야 .” 

 어쌔신 길드 7 명의 어둠 중에 하나라고 했다 . 놈이 죽인 사람의 숫자는 듣지 않아도 많을 것이라는 예측을 할 수 있었다 . 가르딘도 사람을 많이 죽이긴 했지만 이유 없이 돈을 받고 죽이지는 않는다 . 돈을 받고 사람을 죽이는 자는 미친 오우거에 불과하다 .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 그만큼의 심적 고통과 마음의 상처를 가지는 것이 보통이다 . 하지만 살수는 다르다 . 놈들은 인간의 감정을 버린 육식동물일 뿐이었다 . 동물에게 사람 같은 대우는 필요 없었다 .  

 “어떻게 악마의 눈물이 통하지 않을 수 있지 ?” 

 길로틴은 수하들이 죽은 것보다 악마의 눈물이 통하지 않는 게 더 놀라웠다 . 가르딘의 몸놀림을 보면 전혀 통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  

 “말은 필요 없고 ,  순순히 대답은 안 해 주겠지 .” 

 수하들을 모두 죽인 이유는 몸의 자유로움을 위해서였다 . 아이시런이 있으면 불편한 상황이다 . 또한 만약에 길로틴의 수하 중에 아이시런을 인질로 잡으면 곤란했기 때문이다 . 이제 상황이 정리되어 가니 아이시런은 바닥에 눕혀 놓았다 .  

 주춤 !  

 뒤로 주춤했던 길로틴이었다 . 하지만 자존심상 도망치지 않았다 . 놈이 아무리 강해도 자신은 세븐다크 중에 하나인 블러드 다크였다 . 한 번도 실패를 모르는 블러드 다크였다 .  

 “수하들을 죽였다고 날 이길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냐 ?” 

 블러드 다크가 즉시 손목에 차고 있던 아이템을 작동시켰다 . 아이템이 작동되자 순식간에 길로틴의 몸이 10 개로 늘어났다 .  

 “나의 실체는 아무도 찾지 못한다 .  네놈이 아무리 빨라도 날 죽일 수 없단 말이다 !” 

 길로틴의 주특기라고 할 수 있는 미러 일루전이었다 . 환영 아이템을 사용하여 각 실체에 기감을 열어주는 수법이었다 . 미세한 기감을 여러 갈래로 나누는 것이 상당히 효과적인 수행능력을 발휘하게 해주었다 .  

 10 명의 길로틴이 가르딘의 향해 뻗어갔다 .  

 슈슈슉 !  

 “죽어랏 !” 

 10 명이 동시에 검을 뻗었다 . 전후좌우 사방에서 삽시간에 뚫고 들어오는 길로틴이었다 . 어쌔신 길드의 간부답게 빠르며 날카로웠다 .  

 슈웅 !  

 검이 가르딘의 신형을 꿰뚫었다 . 십여 개 모두 쏟아졌기에 막아낸다는 것이 불가능하게 보였다 . 길로틴이 회심의 미소를 짓다가 갸우뚱한 표정을 지었다 . 검에 느껴지는 감각이 없었다 . 뒤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돌아선 길로틴은 놀라고 말았다 .  

 “아니 ?” 

 10 명의 길로틴이 모두 놀랐다 . 바로 앞에 10 명의 가르딘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  

 “10 명 모두 베어주지 .” 

 섬전행이 극한에 이르면 이형환위 정도는 우스울 따름이었다 . 극한의 빠름이 실현되자 가르딘의 검이 섬광을 뿜어내었다 . 번개의 뇌격과 같은 빠름이었다 . 너무 빨라 한전의 실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  

 슈슈슈슈슉 !  

 순식간에 10 명이나 되는 길로틴의 몸에 검을 찔러대었다 . 미처 대응하기도 전에 검을 맞은 길로틴이 비명성을 질렀다 .  

 “크아아아앗 !” 

 10 명의 길로틴의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구르자 환영이 하나로 이어졌다 . 구르던 길로틴의 팔이 잘려나갔기 때문이다 . 환영아이템 구실을 하던 오른팔이 떨어져 나가 다시 10 명으로 변할 수 없게 되었다 .  

 “환영에 오러를 주입했다하지만 실체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지 .” 

 일반적인 마스터라면 미세한 차이를 구분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겠지만 가르딘은 일반적인 마스터가 아닌 그랜드 마스터였다 . 그따위 유치한 방법이 통할 리가 없었다 . 애초에 길로틴은 운이 없었던 것이다 .  

 오러의 통제를 통해 오러 마스터의 힘을 억제하는 악마의 눈물을 사용했다 하지만 상대하는 인물은 그랜드 마스터였다 . 악마의 눈물이 일정 시간 통한다고 하지만 그것이 다였다 .  

 바동 ! 바동 !  

 “히익 !” 

 바동거리며 바닥을 어기적거리는 블러드 다크 길로틴이었다 . 그는 오늘처럼 놀라고 두려운 적이 처음이었다 . 언제나 모든 존재에게 두려움을 선사하던 자신이 이제는 도리어 겁을 먹고 있었다 .  

 가르딘은 바동거리는 길로틴의 다리를 잡고 태연하게 부러뜨렸다 .  

 뿌드드득 ! 한순간에 부러뜨린 것이 아니라 서서히 힘을 주어 서서히 고통스럽게 충격을 가했다 . 그리고 다음으로 나머지 한 발을 부러뜨리고 , 한 팔까지 부러뜨렸다 . 이제 움직일 수 있는 부분은 모두 제거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  

 “누가 시켰지 ?” 

 부들 ! 부들 !  

 “으으으윽 !” 

 공포와 두려움 , 그리고 고통으로 몸을 떨던 길로틴이었지만 쉽사리 답을 내어놓지 않았다 . 길로틴은 가르딘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길드에 대한 두려움은 더 컸다 . 어쌔신 길드에서 배신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 살아 있는 것 자체가 두려움이게 말을 하지 못했다 .  

 으득 !  

 이를 악무는 길로틴이었다 . 이빨 속에 숨겨 논 독단을 깨물었다 . 가르딘이 아차 하는 순간이었다 . 독이 퍼지자 순식간에 어둡게 변해가는 길로틴의 안색이었다 .  

 “... 너 ... 도 곧 죽 ... 을 것이 ... 다 !” 

 털썩 !  

 독의 위력이 너무 강했다 . 몸이 검게 변하다 못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 지독한 독이었다 . 가르딘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 놈들이 설마 독단까지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  

 “어쌔신 길드의 상위간부조차 독단을 가지고 있다니 !” 

 보통의 어쌔신도 아닌 세븐다크라고 했다 . 그들을 움직이는 최고위층의 실력자들조차 독단을 사용할 정도라면 보통 위험한 놈들이 아니었다 . 더군다나 흑마법사들과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 하지만 왜 공주를 암살하려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  

 “코카 제국이 의뢰한 것인가 ?” 

 아닐 것 같았다 . 제국의 기사단을 보내도 실패했는데 , 암살길드를 보냈을 리 만무했다 . 그것은 자신들의 실력이 암살길드보다 떨어진다고 광고하는 꼴이 되어버린다 .  

 가르딘은 흔적을 지우기 위해서 놈들의 입에서 독단을 빼내었다 . 그리고 놈들에 몸에 뿌렸다 . 역시나 대단한 독이었다 . 몸이 녹아버릴 정도의 독을 입안에 머금고 있다니 독하기로 소문난 놈들 중에서도 최악의 집단이었다 .  

 “간만에 독종을 봤네 .  나중에는 턱관절을 뽑아야 하나 !  그럼 말을 못하겠구나 !” 

 전쟁 중에 만난 놈들 중에 독종이 간혹 있었다 . 가르딘도 전쟁을 끝내면서 많이 느슨해진 것 같았다 . 가르딘은 남겨진 흔적을 모두 호수로 던져버렸다 .  

 한쪽에 누워서 잠을 자고 있는 아이시런 공주에게 다가갔다 . 잠을 자는 이유가 악마의 눈물로 인해서였다 . 오러 마스터는 오러를 사용할 수 없게 만들며 , 일반인은 잠에 취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  

 “이걸 어떻게 한다 .” 

 공주가 계속 잠을 자는 것도 문제가 된다 . 그 최초의 원인이 외출 때문이었고 , 그로 인해 사실이 밝혀지면 가르딘만 곤란하게 된다 . 가르딘은 눕혀 놓은 아이시런의 상태를 보고 , 어떻게 할지를 놓고 여러 가지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  

  “방법은 하난데 .”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하지 않는가 ! 신마의 기억 속에 들어 있는 한 가지가 끄집어져 나와 가르딘과 융화되었다 . 하지만 이 방법을 사용하기가 약간은 망설여졌다 .  

 “나는 라이나뿐인데 !” 

 라이나가 이 사실을 알면 가르딘의 얼굴은 다섯 갈래로 갈라지고 , 피가 튀길 것이다 . 라이나가 다른 것은 다 참아도 여자와 만나는 것은 극도로 꺼리는 여인이었다 .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보면 극성이라고 하지만 가르딘이 보기에는 그저 가벼운 애교에 불과했다 .  

 눈에 콩깍지가 쓰인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가르딘의 한계였다 .  

 “이걸 써야 돼 !  말아야 돼 !” 

 사실 고민할 것도 없다 . 안 쓰면 나중에 감당할 자신 없는 가르딘이었다 . 하지만 불경스럽게 라이나 이외의 여인에게 손을 대기가 꺼려졌다 . 다른 사내들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좋아할 일이 가르딘에게는 고민의 대상이 되었다 . 일반 사내의 상상을 초월하는 이상한 가르딘이었다 .  

 정신적으로 이상한 놈 취급받기 쉬운 일이었다 . 정작 중요한 것은 아이시런의 마음이었다 . 여자가 받는 충격이 가르딘이 받는 충격보다 더 큰 일이 될 수 있었다 .  

 “빨리하면 나중에 모르겠지 .  하자 !” 

 아직 기절해 있는 아이시런이었다 .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상태로 다시 일어나려면 작업이 끝나야 될 것이다 .  

 추궁과혈 .  

 말 그대로 풀이하면 몸을 주무르거나 때려서 몸속에 막힌 기운을 뚫는다는 것이다 . 미드라이언 대륙에서는 알려지지 않는 비술에 속한다 . 또한 그냥 몸만 만지는 것은 단순히 안마에 들어가지만 추궁과혈은 진기를 이용하여 기를 몸에 주입한다 . 주입한 기로 막힌 혈을 자극하여 혈류가 잘 흐르도록 만들어준다 . 고수가 베풀어주는 진기타법에 의한 추궁과혈은 몸에도 좋을뿐더러 장수할 수 있는 비결이 된다 .  

 그랜드 마스터에 이른 가르딘이었다 . 가르딘의 진기타법 수준은 가히 최상급에 이른다 . 이 이유는 매일 라니아를 주무르며 그녀의 피부가 상하지 않도록 노력했기 때문이다 . 일단 기본적인 안마에도 도가 텄다 . 가르딘의 손은 기적의 손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다 .  

 천룡무상신공을 운용했다 .  

 단전에서 시작된 용트림이 서서히 전신 혈맥으로 퍼져나간다 . 퍼져나간 천룡의 힘이 손안에 집중이 되어 웅축이 되었다 .  

 뚜둑 ! 뚜둑 !  

 손가락을 가볍게 풀어 기운을 사용하기 편하도록 했다 .  

 가르딘은 신중한 자세로 아이시런 공주의 몸을 주물렀다 . 천룡의 힘을 가미한 전신타법의 추궁과혈이었다 . 혈을 자극해서 몸 안에 퍼진 악마의 눈물을 뚫어내고 , 한곳으로 몰아낸다 .  

 몸을 빵 주무르듯이 매만졌다 . 손끝으로 전해지는 아찔한 기분에 보통의 사내라면 움찔움찔했을지도 모른다 . 잘못하면 오줌 싸는 추태를 발휘할 수도 있을 상황이었다 . 그에 반해 가르딘은 상대가 라이나라고 생각하면 최면을 걸었다 .  

 - 누워 있는 여인은 라이나다 !  

 - 라이나여야 한다 !  

 - 라이나야말로 여신이다 !  

 사념안을 자신한테 거는 가르딘이었기에 단 한 점의 망설임도 없다 . 진기의 사용은 때론 위험성을 가질 수 있다 . 특히 주변의 방해나 잡념은 원활한 추궁과혈의 제일 주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  

 “으응 !” 

 신음성이 터져 나왔다 . 그동안 누가 데려가도 모를 정도로 잠에 취한 아이시런이었다 . 하지만 진기도인에 의해 막혔던 혈이 다시 살아나면서 점차 소리를 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  

 송골 ! 송골 !  

 역시 악마의 눈물은 위험한 것이었다 . 가르딘의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다 . 맺혀진 땀방울이 흘러 내려와 턱을 적셨다 .  

 악마의 눈물은 그랜드 마스터인 가르딘에게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 . 보통의 오러 마스터는 악마의 눈물을 마신 순간부터 일반기사가 되어버린다 . 오러를 사용하지 못하는 오러 마스터는 본신능력이 십분의 일도 되지 못하게 된다 .  

 ‘쉽지 않네 !’ 

 악마의 눈물이 전신혈맥을 막아버리며 수면혈을 자극하고 있었던 것이다 . 수면혈은 인체를 잠들게 하여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 10 개의 수면혈 중에서 가장 중요한 대수면혈을 막고 있는 악마의 눈물이 끈질기게 버티고 있었다 .  

 ‘끈덕지고 ,  재수 없기가 바다바인 부단장 저리 가라네 !’ 

 평소에 피닉스기사단의 바자바인 부단장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말이었다 .  

 천룡무상신공의 공력을 한층 더 상승시켰다 . 진기의 주입이 조금 더 강해지자 아이시런의 몸이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 몸의 떨림이 조금 더 강해졌다고 볼 수 있었다 .  

 ‘어디 누가 이기나 보자 !’ 

 끈덕지기로는 가르딘도 못지않았다 .  

 천룡무상신공의 진기가 더욱 강해져서 결국 악마의 눈물을 한곳으로 모으는 데 성공했다 . 모아진 악마의 눈물을 아이시런의 입으로 보냈다 . 보내진 악마의 눈물을 허공섭물로 끌어당겼다 .  

 “후우우 !” 

 결국 모은 악마의 눈물은 고작 손바닥의 가운데에 모아질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 그런데도 불구하고 영원한 잠을 재우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  

 “이거 대단한데 !  누구 재우고 싶은 놈 있으면 그냥 먹여버리면 되겠어 !” 

 짜증나는 인간한테 먹이면 앞으로는 영원히 볼일 없을 것이다 . 악마의 눈물은 악마처럼 검 은색이 아니었다 . 투명하며 맑고 , 냄새조차 나지 않았다 . 독이라고 하기에는 전혀 다른 이미지였다 . 마치 그냥 물처럼 보였다 .  

 가르딘은 정성스레 악마의 눈물을 작은 병 안에 집어넣었다 . 나중에 필요할 일이 있으면 유용하게 사용할 생각이었다 . 아직 잠을 청하고 있는 아이시런이었다 . 가르딘의 놀라운 안마실력에 좋은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자네 ,  정말 !  대단한 공주야 !” 

 누가 잡아가도 모를 것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  

 규칙적으로 솟아오르는 봉긋한 가슴과 굴곡 , 탄력 있고 가느다란 허리 , 눈부시게 하얀 피부 , 잠자는 호수의 공주를 연상케 하였다 . 사내들이 봤다면 나 잡아 드셔라고 말을 했을 정도로 보인다 .  

 가르딘은 호수를 바라보면서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해 보았다 .  

 “어쌔신 길드가 왜 공주님을 노렸을까 ?” 

 의뢰를 받고 누군가를 죽였다면 의뢰자가 있기 마련이었다 . 딱히 떠오르는 곳은 코카 제국뿐이지만 이 사실을 외부로 알리기는 곤란한 가르딘이었다 . 공주가 사적으로 나온 것 자체가 가르딘이 징계받을 대상이었다 .  

 어딘지 모르게 또 다른 세력이 있는 것 같았다 . 어쌔신이 악마의 눈물을 사용하는 것도 그렇고 , 가르딘이 모르는 무언가가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고민해 봤자 딱히 방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한가지뿐이었다 . 공주의 곁에서 최대한 경호에 만전을 기하는 것뿐이다 . 복잡한 것은 질색이다 . 이번 공주 여정만 무사히 끝내면 당분간 조용히 보낼 생각이다 .  

 “공주님을 깨워 볼까나 !  소설에서는 입을 맞춘다고 했는데 !” 

 잠자는 호수의 공주는 대륙의 모든 공주들의 로망이라고 표현이 된다 . 어떤 작가가 썼는지 모르지만 상당한 인기를 몰았다 . 눈부시게 빛나는 백마를 타고 나타난 잘생기고 , 멋진 왕자가 입맞춤을 해주면 공주가 마법에서 깨어난다는 말도 안 되는 소설이지만 인기는 상당했다 .  

 가르딘은 입맞춤 대신에 흔들었다 .  

 흔들 ! 흔들 !  

 좌우로 흔들고 , 옆으로 흔들고 , 이리저리 흔들었다 . 공주의 몸이 이리저리 바람 앞의 나뭇잎처럼 이리저리 흔들렸다 . 약간은 가르딘의 심통이 작용한 것처럼 보인다 .  

 “으응 !” 

 달콤한 잠에서 눈을 떴다 .  

 순백의 빛이 들어오고 , 시야가 선생해지는 가운데 아이시런 공주가 비명성을 질렀다 .  

 “까악 !” 

 아이시런은 갑자기 능글맞은 중년인이 얼굴을 맞대자 징그러워서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 놀라는 모습을 보던 가르딘의 얼굴이 똥 씹은 표정이 되었다 . 구해주었더니 소리 지르니 상당히 무안할 지경이었다 .  

  “왜 갑자기 놀라는 겁니까 ?  잘생긴 사람 처음 봅니까 ?” 

 여전히 능글맞은 가르딘이었다 .  

 그에 답례하듯 아이시런 공주가 말을 이었다 .  

 “갑자기 흉한 것이 앞에 있으니까 놀랐잖아요 !”  아이시런의 톡 쏘는 말에 가르딘은 이제 정신을 다 차렸다고 보았다 .  이 정도면 아주 정신 말짱하고 ,  악마의 눈물로 인해 정신적 충격은 받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  악마의 눈물이 수면뿐 아니라 정신까지도 영향을 줄지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 불안했었다 . 

 아이시런 공주는 갑자기 잠을 잤다 .  

 ‘왜 갑자기 졸음이 왔지 ?’ 

 정확하게 이유를 알 수 없었다 . 언제까지 잔 것인지도 느끼지 못했다 .  

 “제가 왜 잔 거죠 ?” 

 “그야 당연한 겁니다 .” 

 “당연하다니요 ?” 

 “밥 푸짐ㅤㅎㅏㅎ게 먹고 ,  따뜻한 햇살에 경치 좋은 호수 ,  산들거리는 바람 ,  이 정도면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겠습니다 .” 

 가르딘의 설명을 들은 아이시런이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 이유인즉 밥 먹고 , 나른해서 잠을 잤다는 것이 아닌가 ! 물론 생리적인 현상이라 충분히 그럴 수 있다 . 다만 사내와 같이 있는데 , 졸린다고 그냥 잤다는 것에 있었다 .  

 공주의 체면상 상당히 민망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 때문에 반박하지 못했다 .  

 “이 사실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으면 해요 .” 

 “물론입니다 .” 

 “단 ,  누가 이 사실을 알면 내가 겪은 일을 소상하게 아버지께 말할거예요 .” 

 찔끔 !  

 공주가 외출한 사실을 말하면 가르딘은 정말 큰일 난다 . 공주의 강요에 의해서였다는 말은 구차한 변명에 불과하다 .  

 가르딘은 찔끔하는 연기를 하면서 속으로는 잘됐다고 생각했다 . 이번에 벌어진 일을 공주가 알고 있어봐야 불안감만 조성한다 . 차라리 모르는 게 속 편하게 생각할 수 있는 일이 될 것이다 .  

 ‘나중에 다시 조사를 해봐야겠어 .’ 

 그냥 물렁하게 지나갈 수 있는 사항은 아니지만 비밀리에 조사는 해보아야 할 것이다 . 이유를 모르면 끊임없이 공격을 받을 수도 있었다 .  

 “이제 시간이 됐으니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 

 “그런데 이상하게 몸이 개운하네요 !” ‘ 헐 !’ 

 순간적으로 당황했던 가르딘이 금세 평정심을 찾고 말을 했다 . 추궁과혈에 대한 일은 절대 적인 비밀이었다 . 이 말을 하게 되면 공주에게 약점을 잡히거나 나중에 봉변당할 수 있었다 .  

 “원래 깊은 잠은 몸을 편하게 하고 ,  마음을 깨끗하게 합니다 .  숙면을 취하셨으니 당연히 개운할 겁니다 .” 

 “그럴 수 있겠네요 .” 

 “그렇습니다 .  자신도 모르게 잠들 정도로 강력한 잠이었습니다 .  개운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것입니다 .” 

 이상하게 부연설명이 긴 가르딘이었지만 아이시런은 의심하지 않았다 . 그녀 자신도 있을 수 있는 일로 치부해버렸기 때문이다 .  

 아이시런은 조금 아쉬웠다 . 쏟아지는 잠을 참지 못해 구분하지 못한 것이 너무 아까웠다 . 간만에 나온 외도가 너무 빨리 지나갔다 . 그래도 한동안 우울했던 마음을 털어 버리고 , 일상의 생활을 돌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기는 했다 . 잠시간 일탈의 여유를 느낀 아이시런의 마음이 이전보다 많이 풀어져 있었다 .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가르딘과 아이시런은 페르소인 자작의 저택으로 돌아왔다 . 그 시간 동안 엘리언과 쉴라가 안절부절못하며 기다렸다 . 정작 그녀들이 원해서 한 일이지만 시간이 늦어도 돌아오지 않는 공주의 안위가 걱정이 되었다 .  

 가르딘은 애초에 걱정대상에서 제외되어 있었다 .  

 가르딘은 아이시런 공주에게 내일 출발할 것이라고 했다 . 그리고 돌아가면서 공주의 주변을 지키는 기사들에게 당부를 했다 .  

 “누가 찾아오건 이유를 불문하고 ,  나에게 보고를 올려라 .  그리고 공주님에게 들어가는 식사도 모두 점검하고 철저하게 감시하도록 .” 

 갑작스러운 가르딘의 말에 한센과 라둔은 이상하게 여겨졌다 . 지금까지도 공주의 호위는 상당이 엄중했다 . 그런데 여기서 더 확실하게 하라니 , 무언가 위험한 일이 발생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 

 “특별한 것은 아니다 .  다만 공주님의 호위에 만전을 기하라는 거다 .  그리고 한마디 더하면 지금 말한 것은 확실하게 지켜야 된다 .  이미 지나간 말이라고 가볍게 여기면 나중에 큰일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라 .” 

 “알겠습니다 .” 

 한센과 라둔에게는 약간의 경고를 해주었다 . 미리부터 겁을 먹을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소홀히 여긴다면가만두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 한센과 라둔의 실수는 가르딘의 실수가 된다 .  

 그것이 책임자이기 때문에 가져야 하는 책임이었다 . 이래서 가르딘이 싫어하는 직책이기도 했다 . 엄중한 일은 그에 대한 권한도 있지만 막중한 책임으로 인해 짜증나기 때문이다 .  

 가르딘은 돌아가서면서도 미심쩍은 마음에 호위기사를 두 배로 늘였다 . 2 명에서 4 명으로 늘렸다 . 가르딘은 이것으로 끝내지 않았다 . 병사들이 지치지 않으면서도 효율적으로 배치시킬 수 있도록 페르소인 자작의 저택 내를 돌아보면 구조를 파악했다 .  

 기감을 열어놓고 , 수상한 움직임을 찾고 침입하기 좋은 장소 내에 병사들을 배치시키며 당 부를 했다 . 저택 내에 병사들의 움직임을 이상하게 여긴 페르소인 자작이 가르딘을 찾아왔다 .  

 “가르딘 경 ,  이게 무슨 일입니까 ?” 

 “무얼 말씀하시는지요 ?” 

 “병사들을 갑자기 재배치시키는 이유가 뭡니까 ?” 

 “공주님의 안전을 위한 일입니다 .” 

 페르소인 자작이 약간 불쾌한 내색을 했다 . 가르딘의 말뜻은 자신의 저택 내부가 안전하지 않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 그렇다고 뭐라고 할 수 이는 처지는 아니었다 . 공주의 안전을 책임지는 것은 가르딘의 임무이니 그것을 가지고 따지면 자신의 체면만 손상된다 .  

 “알겠소 ,  그럼 만전을 기해주시오 .” 

 “감사합니다 .  페르소인 자작님 !” 

 아직 가르딘의 작위는 없다 . 그저 기사의 신분이다 . 하지만 그의 실력이 오러 마스터인 것을 알기에 페르소인 자작도 함부로 하지 못한다 . 카이로만 제국의 피닉스기사다의 기사이자 오러 마스터였다 . 누가 감히 함부로 대할 수 있단 말인가 ! 가르딘의 작위가 없다뿐이지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신분은 아니었다 .  

 가르딘은 물러나는 페르소인 자작을 보다가 다시 원래의 임무를 수행했다 . 자작의 저택 내부에 감시자나 동조자가 없다면 공주의 외출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 그것이 누군지를 밝혀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 그렇다면 만일의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했다 .  

 ‘놈들도 이렇게까지 됐는데 도발하지는 않겠지 .’ 

 정면충돌로 피닉스기사단을 상대할 수 있는 집단은 극히 드물다 . 있다면 라이언기사단 정도다 . 수적인 우외로 밀어붙이려고 한다면 제국 내의 정보력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 이제부터 철저히 보호를 한다면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  

 “내가 너무 감성적인 태도를 보였다 .” 

 가르딘은 자신의 실수를 자책했다 . 공주가 실망하는 모습과 , 잘 보여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 며칠 안 남은 기간 동안 안전제일을 최우선으로 여길 생각이었다 .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 주변에 일렁이고 있는 횃불이 아니라면 사람의 구별이 힘든 장소에 탁자가 마련이 되었다 . 탁자는 원탁으로 되어 있으며 각자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  

 원탁은 중심으로 6 명이 앉아 있었다 . 한 명 한 명이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뿜어내었다 . 조용한 적막이 흐르며 누구하나 말을 하지 않았다 .  

 다만 그들 모두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비어 있는 한자리를 응시하고 있었다 . 원래는 7 명이 앉을 수 있도록 의자가 마련이 되었지만 한 명이 부족하게 되었다 .  

 어쌔신 길드 역사상 세븐다크 중에 회의에 참석하지 못한 적이 없었다 . 이렇게 된 근본적인 이유가 오늘 모이게 된 이유였다 .  

 “어이가 없군 .” 

 세븐다크 중에서 가장 다혈질적인 인물인 더블이었다 . 그의 불 같은 성격에 맞게 파이어 다크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 그가 일어서더니 큰 소리를 내었다 .  

 “길로틴을 죽인 놈을 그냥 둘 수 없다 !  내가 당장 찾아가서 놈을 가장 잔인하게 죽여주겠다 !” 

 “그만 하고 앉아 .” 

 더블을 앉으라고 한 인물은 선이 가늘고 여리게 생긴 인물이었다 . 특히 푸른색의 머리카락이 유난히 시선에 들어왔다 . 세븐다크는 서열이 존재하지 않는다 . 서로 대등한 위치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었다 .  

 그런데 커다란 덩치와 위협적인 의상을 가진 더블이 푸른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인물의 말에 고분고분했다 .  

 이유는 바로 그가 아이스 다크 , 슬로쳐이기 때문이었다 . 은연중에 세븐다크를 이끄는 인물이다 .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가장 냉정한 결정을 내리는 인물이지만 ,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가장 냉정한 결정을 내리는 인물이지만 , 그의 본성은 잔인한 학살자였다 . 슬로쳐의 본성을 아는 다른 세븐다크는 그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했다 .  

 “하지만 길로틴이 죽었다고 !” 

 “그래서 어쩔 거지 ,  상대는 피닉스기사단의 기사다 .  이미 대비를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  어차피 이번 일은 기회가 있을 때 의뢰를 한다는 전제조건을 달았었다 .” 

 어쌔신 길드는 암살에 있어서는 최강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다 . 하지만 상대는 대륙에서 가장 강한 기사단인 피닉스기사단이었다 . 더군다나 방비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시 암살을 가할 경우 어쌔신 길드의 존재 자체가 흔들릴 수 있었다 .  

 또한 이번 일을 의뢰받을 당시에 이미 전제조건을 달은 상태였다 . 성급하게 기회가 왔다고 해서 덤벼든 길로틴의 실수라고 할 수 있었다 . 기회가 없다면 다음 기회를 노리든가 피했어야 올바른 선택이었다 .  

 “이번 일은 실패했으니 다시 거론할 필요는 없다 .  이렇게 다시 모이라고 한 것은 섣부른 짓을 하지 말라는 말을 전하기 위해서다 .  더 이상 할 말이 없으면 각자 몰아가서 원래의 목적을 위해 움직였으면 한다 .” 

 슬로쳐의 말이 끝나자 더블이 이를 악물기는 했지만 반발하지는 못했다 . 그만큼 슬로쳐가 주는 압박감이 대단해기 때문이다 . 그것은 다른 세븐다크들도 마찬가지였다 .  

 슬로쳐의 말은 들은 세븐다크가 일어서서 어두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 남겨진 슬로쳐는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 그때에 어둠 속에서 공간이 열리더니 누군가 나타났다 . 검은 망토를 뒤집어쓴 인물이었다 .  

 벌떡 !  

 슬로쳐가 갑자기 일어서서 무릎을 꿇었다 . 나타난 인물은 슬로쳐조차 감히 쳐다볼 수 없는 인물이었다 . 지금의 슬로쳐를 만들어준 주인이었다 .  

 “일어나라 .” 

 “예 ,  로드 !” 

 천천히 걸어서 로드라 불린 인물의 의자에 앉았다 . 슬로쳐는 일어서서 그가 앉은 모습을 지켜보았다 .  

  “실패했다지 ?” 

 “그 ... 렇습니다 .  로드 !” 

 약간은 떨리는 음성을 내었다 . 차갑게 얼어붙은 얼음처럼 흔들림이 없을 것 같은 슬로쳐가 떨고 있었다 . 로드라고 불린 정체불명의 망토를 입은 인물이 두렵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  

 “이유는 ?” 

 “두 가지입니다 .” 

 “말해라 .” 

 “하나는 저희 예상보다 피닉스기사단의 책임자가 심계가 깊을 수 있다고 것이고 ,  다른 하나는 그가 생각 이상으로 강자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 

 가르딘에 대한 분석을 내린 슬로쳐였다 . 정보에 의하면 공주와 가르딘이 외출할 때 암습을 한 것으로 나왔다 . 악마의 눈물까지 사용한 흔적이 있었다 . 그런데도 암살에 실패했다는 것은 가르딘이 이미 알고서 방비했다는 것이고 , 다른 하나는 그가 생각 이상으로 강해서 악마의 눈물이 통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  

 “너는 어떻게 생각하지 ?” 

 “전자일 것으로 예상합니다 .” 

 “그렇겠지 .” 

 악마의 눈물이 통하지 않는 상대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 최소 오러 마스터 상급 이상의 실력을 가지고 있어야 악마의 눈물을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 지금까지 알려진 가르딘의 실력은 오러 마스터 초급에서 중급 사이에 머무른다 .  

 이제 갓 오러 마스터로 판명이 되었다 . 그런 자가 악마의 눈물을 이겨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 그가 예상보다 상황판단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나타내었다 . 만약에 오러 마스터 상급 이상일 경우 지금까지 실력을 숨겨왔다는 말이 되었다 .  

 피닉스기사단이면서 실력을 숨겨야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 제국이라고 해도 마스터의 존재가치는 무엇보다 소중하다 . 기사의 명예와 자존심으로 사는 족속들이었다 . 그들이 이유 없이 실력을 숨겨야 할 필요성이 없었다 . 오히려 자신의 실력을 뽐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  

 “그것보다 말해야 할 것이 있겠지 ?” 

 “그렇습니다 .” 

 “공주가 성녀가 맞는 것이냐 ?” 

 “아닙니다 .” 

 “확인은 한 것인가 ?” 

 “악마의 눈물에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 

 “그럼 확실하겠군 .” 

 성녀가 되기 위해서는 성혈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 공주는 성혈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 성혈을 가지지 않은 여인이 성녀가 될 확률을 제로였다 . 흑마법사의 존재를 알릴 수 있는 증거인 악마의 눈물까지 사용한 것은 성녀일 가능성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테스트였다 .  

 성혈을 가질 경우 즉각적으로 악마의 눈물과 반응하여 통증을 유발한다 . 하지만 보고된 바로는 공주는 반응하지 않았다 . 아무런 통증도 유발하지 않는다면 성혈을 가지지 않은 일반인데 불과했다 .  

 “이번 일은 조용히 마무리 지어 버려라 .  성녀가 아니라면 시간을 들일 필요 없다 .” 

 “알겠습니다 .  로드 !” 

 로드라 불린 인물이 나선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다 . 공주의 암살 따위는 신경 쓰고 있지 않았다 . 누가 죽든 말든 그것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 하지만 성녀의 탄생은 중요한 사항이었다 .  

 로드라 불린 인물의 입장에서 성녀는 제거 대상 1 순위였다 .  

 되도록 성녀가 되기 전에 제거해야 했다 . 만약 성녀로 탄생해서 성기사단의 보호가 이루어진다면 여간 골치 아픈 일이 아니었다 . 제거하는데 상당한 손실을 보게 된다 .  

 한 글자로 쓰인 단어를 보며 , 심각한 표정으로 굳어 있는 중년인이 있었다 .  

 그는 의뢰를 하면서 실패를 생각하기는 했지만 이처럼 빨리 실패라는 소식을 들을 줄 몰랐다 . 의뢰한 곳은 대륙에서도 알아주는 암살길드였다 . 그중에서도 상위 서열 7 인에 들어가는 인물이었다 .  

 “내가 너무 과대평가 했단 말인가 !” 

 피에르 공작은 실패라는 글자 앞에서 허무함을 느꼈다 . 어쌔신 길드의 세븐다크가 실패한 일이었다 . 피에르 공작가가 가진 힘으로도 상대할 수 없다는 말이 되었다 . 물론 대규모의 병력을 이용하여 죽일 수 있다손 쳐도 , 그렇게 되면 카이로만 제국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  

 “이렇게 되면 성녀가 아닐 확률에 기대해야 하는 것인가 !” 

 공주가 반드시 성녀라는 보장은 없었다 . 그녀가 성녀일 가능성이 있기에 만일을 위해서 손을 쓴 것이다 . 하지만 아닐 수도 있는 일에 너무 많은 힘을 소모할 수도 없는 실정이었다 . 아직 그 정도의 여력은 없었다 .  

 “라칸 ,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나 ?” 

 피에르 공작의 앞에 조용히 서 있는 인물이 라칸이었다 . 피에르 공작의 옆에서 자문 역할을 하는 인물이었다 . 원래는 백작가의 당당한 후계자였으나 가문이 몰락하는 바람에 갈 곳 없는 처지가 되었다 . 피에르 공작이 라칸의 뛰어난 능력을 보고 수하로 받아들였다 .  

 “어차피 실패를 염두에 둔 일이었습니다 .  그리고 공주가 성녀라고 해도 지금 당장 죽이는 것은 어렵습니다 .  이미 수도에 거의 다 온 상태입니다 .  더군다나 피닉스기사단은 무시 못 할 존재들입니다 .  어쌔신 길드가 실패할 정도라면 상당한 심기와 더불어서 실력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  차라리 나중을 노리는 것이 나을 것으로 보입니다 .” 

 “귀족들에게 면목이 없군 .” 

 “공작님을 제외한 귀족들은 모두 허수아비들입니다 .  공작님의 말 한마디면 어떤 반발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 

 “그렇겠지 .” 

 피에르 공작은 다른 귀족의 눈치를 보지 않았다 . 그의 입김 한 번이면 사라질 소모품에 불 과했기 때문이다 . 하지만 단결력은 하나의 실수로부터 깨지기 마련이다 .  

 “어쩔 수 없다는 것은 알려야겠지 .” 

 “그렇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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