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7/93)

   @@[제6장 라이언기사단과의 혈투@@]

  다음 날, 가르딘은 파스트론 공작성에서 나와 신성제국으로 가는 길을 서둘렀다. 루벤 영지에서 고작 3일을 쉰 것이지만 그동안 너무 많은 일을 한 가르딘이었다. 그리고 생각한 것이 공주랑 엮이면 상당히 피곤하다는 것을 깨닫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단 한 번 외출으로 일어난 일은 일파만파였다.

 일은 공주가 일으키는데, 그 일에 대한 뒤처리는 모두 가르딘의 몫이었다. 카스티온 백작은 공주를 떠나자마자 도둑길드에 대한 수사를 진행시켰다.

 도둑길드 내 배신으로 인한 살인사건이기는 해도 너무 많은 인원이 죽었다. 그냥 덮어 둘 수 없는 일이었다. 자칫 공주가 아는 날에는 파스트론 공작가의 망신이었다. 영지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면서 어떻게 제국의 공작으로 있을 수 있냐라는 질타를 받을 수 도 있었다.

 그렇기에 어떻게 해서든 도둑길드에 대해 엄중히 단속해야 했다.

 그로 인해 고든은 머리가 아파왔다.

 그동안 정리해 온 장부가 없어진 것과 내분을 다시 다스려야 하는데 카스티온 백작가의 간섭이 시작되자 어느 것 하나 쉽게 마무리 질 수 없었다. 방법은 당분간 손해를 보더라도 조용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산중턱에 50명에 달하는 인물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잘 벼리어진 검처럼 날카로움을 뿜어내었다. 한 명 한 명이 제대로 된 수행과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을 중심으로 한 명이 보고를 하기 위해 달려왔다. 중년인이 일어났다.

 “어떻게 됐냐?”

 “놈들이 루벤 영지를 출발했습니다.”

 “어느 쪽으로 이동하지?”

 “아무래도 카타론 영지를 지날 것 같습니다.”

 “응?”

 부단장이라 불린 중년인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카타론 영지로 지나게 되면 신성제국으로 가는 길이 더 길어진다. 보통 산성제국을 갈 때는 베이컨 영지를 지나는 것이 훨씬 빠르고 손쉬운 길이었다.

 “왜 그쪽으로 가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중년인은 고민이 되었다.

 놈들을 맞이할 장소를 베이컨 영지를 지나는 셀비타 산으로 정하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카타론 영지로 가게 되자 다시 한 번 수정해야 했다.

 “지도를 줘봐.”

 중년인은 카이로만 제국의 지도를 살펴보았다. 카타론 영지를 가는 길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시간을 들여 확인을 한순간에 중년인은 인상을 썼다. 아무리 둘러봐도 습격하기 좋은 장소가 없었다.

 대부분 평지에다가 습격하기 위한 지형물이 너무 낮거나 쉽게 들키는 지형이었다. 이런 곳에서는 기습작전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

 “설마 우리가 노리는 것을 알고 그랬다는 것인가!”

 도리! 도리!

 중년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알고 있다면 카이로만 제국에서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원래 여정이 카타론 영지라는 말이 되었다. 될 수 있으면 빠른 시간 안에 해결하려고 했지만 시간이 더 걸릴지 몰랐다.

  “어쩔 수 없지. 카타론 영지를 지나면 다시 계획을 세운다. 모두 다음 이동장소로 이동한다.”

 “알겠습니다. 부단장님!”

 부단장은 자꾸 원래의 계획대로 이루지지 않자 조금씩 초조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한 것은 자신들이기 때문이었다.

 가르딘이 신성제국으로 가는 길에서 카타론 영지로 가자 필리언이 옆에서 물었다. 빠른 시간 안에 가려면 베이컨 영지로 가는 것이 나았다. 더군다나 필리언이 보기에 가르딘은 이번 여정을 빨리 끝내고 싶어 했다. 그런데 시간이 더 걸리는 길을 택한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왜 카타론 영지로 가는 거냐?”

 “몰라서 묻는 거냐?”

 “설마 누군가 습격할지 모른다는 소리를 하고 싶은 거야?”

 베이컨 영지로 가는 길로 조금 험하기는 하지만 무리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카이로만 제국 내에서 공주의 여정을 가로 막을 자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필리언이 생각하기에 가르딘의 염려는 괜한 짓이었다. 하지 않아도 되는 걱정이었다. 

 “난 위험한 것은 딱 질색이거든, 어차피 해야 할 일이지만 위험에 가까운 곳을 가지 않는 것이 좋아.”

 “그 쓸데없는 걱정은 여전하구나.”

 “날 알면서 그러냐? 너도 내 옆에 있으니까 아직까지 살아 있는 거다.”

 “하긴, 그 말도 맞지.”

 가르딘은 유난히 운이 좋은 기사였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운만 좋은 기사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애초부터 위험은 만둘지 않고, 위험한 일을 껴들지도 않았다. 그 근처에 있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인물이었다.

 그러니 가장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 있었다. 가르딘 덕에 필리언도 운이 좋아 살아 있었다.

 단적인 예로, 코카 제국 라이언기사단의 기습에 피닉스기사단 30명이 몰살당한 적이 있었다. 원래라면 필리언도 가게 될 일이었는데, 가르딘이 해야 할 일에 필리언을 추천하는 바람에 가지 않게 되었다. 죽은 기사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필리언이 가르딘 때문에 살게 된 것은 사실이었다. 

 “위험한 것보다 천천히 가는 게 좋은 거다.”

 “알았다! 이놈아, 너 때문에 가늘고 길게 오래가겠다.”

 루벤 영지를 지나고 10일이 지나는 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 여행을 하는 동안 그 흔한 오크조차 보지를 못한 일행들이었다. 오크들도 머리가 있는데 이 정도 규모의 일행에게 덤비지는 않을 것이다.

 덤빈다면 먹이를 사냥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사냥당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오크가 머리가 나쁘다고 하는데, 실제적으로 그렇지 않은 편이다. 본능과 야성에 충실한 반면에 위험에 대한 판단능력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예민하다.

 아이시런 공주도 마차 안에서 군말 없이 여정에 나서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어떻게 하면 가르딘의 영악한 행동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이 아저씨가 빈틈이 없단 말이야!’

 가사들과 병력을 다루는데, 가르딘만큼 뛰어난 기사도 드물었다. 처음으로 맡은 책임자라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탄탄한 리더십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이 아는 가르딘이 맞는지가 의심이 될 정도로 기사들과 병사들로부터 신뢰를 얻고 있었다. 그런 가르딘이기에 신분을 이용해서 협박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공주체면에 앞뒤도 맞지 않고 논리적이지 않은 이유로 기사를 부리는 것은 옳지 못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이 쌓아 놓은 이미지만 나빠진다. 그리고 가장 큰 이유는 자존심이었다. 반드시 약점을 잡고 싶었다.

 ‘뭔가 약점을 잡아야 하는데.’

 쉴라와 엘리언이 마차 안에서 공주와 말상대를 하면서 여러 가지 말들을 하고 있었다. 그녀들은 갈딘에 대한 토론과 더불어서 가르딘의 약점을 확실하게 잡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다.

 생각.

 계속적인 생각은 머리를 영리하게 만든다.

 고심.

 고심할수록 방법에 대한 탐구를 하게 된다. 결국에는 최선의 방법을 마련하게 해준다. 그녀들이 마차 안에서 아무런 사고 없이 조용히 10일을 보낸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가르딘을 엿 먹이려고 가지가지 하는 아이시런이었다.

 “공주님, 가르딘 경을 변태로 만드는 것은 어때요? 저보고 오빠라고 불러 달라고 하는데 말이에요!”

 쉴라가 의견을 내밀었다.

 얼마 전까지 부모님을 구해줬다고 오빠라고 부른다고 하고선, 막상 가르딘을 대하면 하지 못했다. 이상하게 가르딘을 보면 아저씨라는 말이 목구멍에서 솟아 입으로 나왔다.

 고작 10일이었다.

 쉴라는 가르딘의 은혜를 잊어버렸다.

 요즘 젊은것들은 쉽고 빠르게 잊어버리는 것이 취미인 것 같았다.

 “그런 정도로 넘어갈까, 능구렁이 같은 위인이.”

 아이시런은 쉴라의 의견에 부정적이었다. 가르딘은 애처가로 소문이 난 기사였다. 애처가한테 변태라고 한다면 그게 더 이상한 방법이었다. 더군다나 가르딘은 얼굴이 철한이었다. 이중인격을 방불켜 할 정도로 공적인 일과 사적인 일이 확실했다.

 개인적인 면에서 는 상당히 인간적이지만 중요하고 제국을 대표하는 일에서는 한시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았다.

 변태라는 말을 해봤자, 자신만 손해 본다. 오히려 변태공주라고 할지도 몰랐다. 상대가 전혀 인격적으로 충격받지 않는데 그런 말을 해봤자 소용없었다.

 “뭔가, 획기적이고 참신한 것들 좀 생각해 봐!”

 그녀들이 생각하는 방법은 한정적이었다.

 가르딘한테만 통용이 돼야 하며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는 안 되었다. 알게 되면 방법이랄 수 없게 된다. 폭이 좁고, 그 안에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에 쉽게 답이 나오지는 않았다.

 “내가 밖에 나갔다 온 일을 확 폭로해버릴까!”

 공ㅈ가 아무도 모르게 밖에 나갔고, 그 일을 가르딘이 도왔다고 하면 일이 너무 크게 번진다. 가르딘의 목숨이 위험할 수 있는 일이었다. 공주야 그 일로 인해 무사하기만 하면 가벼운 처벌이 있겠지만 알면서도 도움을 방조한 가르딘은 참형을 면치 못할 것이다.

 휘청!

 가르딘과 마차와의 거리는 5미터 정도다. 마차는 외부와 내부가 완벽하게 방음이 될 정도로 단단하고 빈틈없게 만들어졌다.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마차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작정하고 마차에 귀를 들이대지 않는 이상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는다.

 하지만 가르딘의 경우는 달랐다.

  ‘다 들린다.’

 마차 안에서 말하는 것이 모두 가르딘의 귀에 들렸다. 공주의 돌발적인 행동을 지금까지 잘 막아왔지만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마지막에 아이시런 공주가 한 말에 가르딘은 말에서 떨어질 뻔했다.

 홧김에 한 말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야 진정이 됐지, 아니었다면 큰일 날 뻔했다.

 ‘진짜 위험하네, 공주가 막나 가면 내가 손핸데.’

 너무 타이트하게 조이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는 가르딘이었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하지 않는가! 아이시런 공주가 답답한 마음에 일을 크게 벌리면 자신만 손해였다.

 ‘이긴다고 해서 이기는 게 아닌데.’

 공주와의 관계가 점점 이상하게 꼬이고 있었다.

 가르딘은 이번에 카타론 영지를 지나고 나서 다음 영지에서 공주에게 자유를 조금 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카타론 영지에서는 힘들더라고 가린지 영지는 안전이 확실했다. 가린지 영지는 북방의 타이커라고 불리는 카론 마이어 공작이 지키고 있었다.

 카론 마이어 공작은 카이로만 제국의 5대 기사 중에 한 명으로 50만 대군을 진두지휘하는 명장 중에 명장이었다. 가린지 영지를 중심으로 버티고 있는 카이로만 제국의 정예군이 있는 지역에서 위험 요소는 없을 것이다.

 가르딘이 가린지 영지로 가는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카론 마이어 공작군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전제일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가르딘다운 일이었다.

 공주의 여정을 따라서 이동하는 라이언기사든은 짜증이 치밀고 있었다. 카이로만 제국군 중에서 가장 사납고 용맹하다는 카론 마이어 공작이 버티고 있는 가린지 영지로 가르딘이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윈래라면 토스탄 영지로 가야 신성제국으로 가는 길 중에서 가장 빨랐다. 그런데도 동아가는 길을 택하는 가르딘의 행동 때문에 일이 자꾸 꼬여갔기 때문이었다.

 라이언기사단의 부단장인 가딩스카 후작은 점점 심각해졌다. 더 이상 공주의 여정을 그냥 가게 놔둘 수 없었다. 처음에는 그저 우연에 의한 일인 줄 알았다. 그런데 한 번이 아니고 두 번이나 계획에도 없는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우연이 여러 번 일어나는 것은 극히 드물었다. 우연이 아니라 계획적인 일이라는 말이 되었다. 

 가딩스타 후작의 심각해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카이로만 제국은 제국 중에서도 가장 강하며, 치안이 강력한 제국이었다. 또한, 대륙 최강 기사단 중에 하나인 피닉스기사단 30명과 100명의 병사들이 보호하고 있었다. 그런 공주 일행을 건드릴 곳이 없다고 봐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총책임자라는 놈이 너무 조심스러웠다. 생각지도 못한 복병이었다. 기습으로 한 번에 끝을 내버리려는 애초의 계획을 완벽하게 바꾸어야 했다.

 “결국 정면대결이란 말인가!”

 가딩스타 후작은 온몸이 달아올랐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 아직도 피닉스기사단과는 갚아야 할 빚이 있었다. 당시에 가딩스타 후작은 피닉스기사단의 부단장인 조르크 바자바인 백작과 공방을 나누었다. 서로의 실력은 비슷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자신이 시간을 지체하는 바람에 발렌타인 성이 카이로만 제국의 수증에 떨어져 버렸다. 조금만 더 빨리 도착했다면 발렌타인 성을 내주지 않아도 됐을지 몰랐다. 승부는 내지 못하더라도 전쟁에서 졌으니 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번에 공주를 납치하는 치졸한 짓까지 하게 된 것은 ㅈ신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였다. 아니었다면 직접 나서지도 않았을 것이다.

 다시 한 번 피닉스기사단과 대결하는 일이 되었다. 가르딘인지 조르딘인지 알지도 못하는 놈이 총책임자인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전멸시켜버리고 공주를 데리고 가면 되었다.

 “부단장, 내가 도와주면 어렵지 않을 거요.”

 “솔직히 나는 마법사들을 좋아하지 않소, 하지만 당신의 실력은 믿고 있소.

 “후후!”

 마법사라고 불린 중년인은 마법사의 전형적인 커다란 망토를 입고 있지는 않았다. 옷이 거치적거리기에 최대한 편한 복장을 했다. 대신에 마법을 사용하기 위한 지팡이는 옆구리에차고 있었다.

 중년인은 코카 제국 내에서도 숨겨진 실력자였다. 외부로 나타나지 않게 암중으로 일을 해결하는 인물이었다. 전투에 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대단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그가 다루는 마법은 보통의 마법사보다 더욱더 전투적이고 파괴적이었다.

 중년인은 마법사가 싫다고 하는 가딩스타의 말에도 웃음을 지었다. 보통의 마법사는 자존심이 강해 비하하는 말을 하면 참지 못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데도 마법사는 별로 개의치 않고 있었다. 자존심보다는 실력, 그리고 해결 이후에 들어오는 것에 관심이 더 많았다. 

 “이미 벌어진 일이니 확실하게 하도록 합시다. 당신의 마법과 술사적인 기술을 모두 상ㅇ하시오. 그리고 난 후 기사들을 동원해서 확실하게 끝을 낼 것이오.”

 “물론이오. 나는 내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오.”

 가딩스타 후작은 기사대전을 하지 않았다. 마법과 기사의 합격술로 끝장을 내려고 방법을 제시했다. 가장 효과적이며 무시무시한 합격술이었다. 상대하는 입장에서 마법사가 없다면 제일 까다로운 방법이 되었다.

 움찔!

 고든은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최대한 감추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의자에 앉아 있는 젊은 청년을 보면 그럴 수가 없었다. 그는 도둑길드 내의 넘버 7에 속하는 인물이었다. 세븐핸드라고 불리는 도둑길드 내 최고위 간부 중에 한 명이다. 도둑길드의 지부를 감시 감찰하면서 지부장에게 명령을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고든이 세븐핸드의 젊은 청년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는 단순히 감찰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부장의 목을 단숨에 ㅊ버릴 수 있는 권한과 힘을 가지고 있었다.

 “성혈을 가진 아이가 한 명 부족하군요.”

 “조금만 기다리시면 금방 채워질 겁니다.”

 세븐핸드 중에 한 명인 젊은 청년의 이름은 자칼이다. 어둠 속에서 아무도 모르게 숨통을 끊는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었다. 원래 이름은 도둑길드 내에서도 알려지지 않은 비밀이었다.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오는 시기입니다. 그러니 실수를 한다는 것 자체가 믿음을 주기에 부족합니다.”

 자칼의 눈이 예리하게 빛이 나고 있었다. 고작 한 번 방문 했음에도 고든의 상황을 단번에 파악하는 자칼이었다.

 “수하들조차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자가 대업을 이룰 수 잇을지 모르겠군요.”

 덜! 덜! 덜!

 고든은 자칼의 말 한마디, 한마디 두려웠다. 그의 말 한마디에 자신이 목이 사라지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자칼의 눈은 무섭도록 차갑게 빛이 났다. 푸른 안광이 고든의 전신의 꿰뚫어 버릴 것 같았다.

 고든은 다른 것은 둘째치고 장부에 대한 것은 철저하게 숨겨야 했다. 장부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된다면 자칼이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한 번의 실수는 눈감아 드리지요, 단! 다음에도 이런 식으로 처리하면 숨을 쉬고 다닐 수 없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자칼 님!”

 “나가서 수하들 단속 똑바로 하세요.”

 “알겠습니다.”

 고든이 문을 닫고 나가자 그림자 하나가 유령처럼 자칼 앞에 나타났다. 그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았다. 틈 하나 존재하지 않는 곳을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자칼은 갑자기 나타난 유령 같은 존재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는지 별로 놀라는 눈치가 아니었다.

 “알아냈니?”

 “악마의 유혹에 당한 것처럼 보입니다.”

 “악마의 ㅣ유혹이라!”

 자칼의 명령에 따라 조사를 한 인물을 어둠의 길드에 속해 있는 어둠의 그림자 쉐도우였다. 쉐도우의 수는 총 50명으로 구성이 되어 잇으며, 정탐, 조사, 감시 등을 은밀하게 진행시키는 어둠의 길드의 저예요원이다.

 쉐도우는 배신한 산토스와 그 수하들을 아무도 모르게 조사를 했다. 조사한 결과 흑마법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였다.

 악마의 유혹이라고 불리는 것은 흑마법의 일종으로 사람의 욕망과 뒤틀어진 마음을 극도로 자극하는 힘이었다. 더군다나 상대방의 능력을 증폭시키는 능력까지 발휘한다. 암가의 유혹은 흑마법에서 디자이너(욕망)마법에 속하는데, 상위의 흑마법사만이 펼칠 수 있다고 전해지고 있었다.

 “고든이 배신할 가능성은?”

 “놈은 완벽한 것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겁이 많은 놈입니다. 아직 쓸모가 있으니 두고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자칼은 고든을 용서해 준다고 했지만 정확한 정보를 얻기 전까지는 아무도 믿지 않는 인물이었다.

 자칼은 쉐도우가 말한 악마의 유혹이라는 말에 고민을 하고 있었다. 악마의 유혹은 사라진 마법이었다. 흑마법사는 400년 전에 대륙공적으로 불리면서 사라지고 없었다. 그 명맥을 유지하는 곳은 단 한곳뿐이었다. 그렇다면 외부적으로 악마의 유혹을 펼칠 수 있는 곳이 없나는 말이 되었다.

 ‘누구지?’

 사건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함부로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악마의 유혹이라고 하지만 정확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누군지 모르지만 방해하면 그냥 두지 않겠다.’

 자칼의 눈에 예리하게 빛을 내었다. 시퍼런 안광 속에 숨겨진 공폭함을 여지없이 드러내었다. 쉐도우조차 그 모습에 몸을 떨었다. 세븐핸드에 속한 인물들은 보통사람이 아니었다. 그들 모두 인간의 경지를 한참이나 벗어난 존재들이었다.

 카타론 영지를 출발한 가르딘이었다.

 다음 영지로 가는 길은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른 여타의 문젯거리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그동안 아직도 공주가 가르딘의 약점을 잡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 빼고 마이다. 공주의 집요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실패와 포기를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사람이 정도껏 했으면 타협할 줄 알아야 하건만 아직 젊은지 혈기가 왕성했다. 가린지 영지를 가면서 타운평원을 지나야 했다. 도시 크기를 넘어서는 거대한 평원이었다. 넓게 펼쳐진 평원을 보면 가슴까지 시원하게 뚫리는 기분을 만끽하게 해준다. 공주의 주변 기사들과 병사들도 평원을 걸으면서 주변을 감상하고 있었다.

 척!

 가르딘이 손을 들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가르딘만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가르딘은 자신들을 앞으로 1킬로미터 전방에 누군가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수는 50명 정도이지만 그들이 가진 무력은 보통이 아니었다.

 피닉스기사단과 맞먹는 무력을 가지고 있었다. 보통의 인물들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대륙최강의 기사단인 피닉스기사단과 비슷한 실력을 가진 곳은 한곳뿐이었다. 바로 코카제국의 라이언기사단이었다.

 ‘익숙하지만 기분 나쁜 기분이다.’

 가르딘은 상대가 누군지 감을 잡았다.

 ‘응?’

 하지만 기사단만이 아닌 것 같았다. 한 명의 기운이 달랐다. 기사의 기운과는 다르게 대기 중의 마나를 공명시키는 인물이었다. 바로 마법사만이 가진 기운이었다. 가르딘도 마법사의 능력을 잘 알고 있었다.

 가르딘의 감각을 긴장시킬 정도의 마법사라면 보통 실력이 아닐 것이다. 최소 마도사의 반열에 든 위험인물일 가능성이 컸다.

 ‘위험하다!’

 가르딘이 일행을 멈추자 필리언이 금세 다가왔다.

 “왜 그러는데?”

 “모두 전투대형을 갖추라고 해, 그리고 공주님의 마차를 제일 뒤로 보내.”

 “왜?”

 “적이다.”

 “적?”

 갑자기 적이 나타났다는 말에 필리언이 놀라고 있었다. 가르딘의 경우 다른 때는 거짓을 말하더라도 전투 중에는 거짓을 말한 적이 없었다. 그런 가르딘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필리언도 흘려듣지 않았다. 즉시 움직여 기사와 병사들을 움직였다.

 -모두 전토대형을 갖춰라!

 필리언이 기사들에게 말을 하고 병사들이 방패를 들고 진형을 만들었다. 기사들과 신입기사들, 병사들은 모두 어리둥절한 기분이었다. 갑작스럽게 전달된 명령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움직이지 않는 기사와 병사는 없었다. 대륙 제일의 기사단과 최강의 정예병들이었다.

 척! 척! 척!

 일사불란하게 진형을 갖추고 공주의 마차를 보호하는 기사들과 병사들이었다. 가장 최우선으로 지켜야 하는 것이 공주의 목숨이었다. 몸을 던져서라도 막아야 하는 일이었다.

 아이시런 공주가 엘리언, 쉴라와 수다를 떨고 있을 때 갑작스러운 소란에 창문을 열어 밖을 보았다.

 기사들이 앞을 막고, 병사들이 마차를 밀착시켜 호위하는 형상이었다. 마치 누군가 습격을 하기에 방비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이시런 공주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표정이 심각해 지면서 의문을 던졌다. 

 “무슨 일이지?”아이시런은 총책임자인 가르딘을 찾아보았다. 가르딘은 기사들의 선두에 서서 심각한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다른 때의 가르딘이 아니었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백전노장의 포스를 확실하게 뿜어내고 있는 가르딘이었다.

 아이서런 공주조차 함부로 말을 걸기 힘들어 보였다

 ‘저 아저씨가 왜 저러지?’

 공주가 문을 열고 나가려 하자 스필언이 다가와서 말렸다.

 “공주님, 지금은 위험하니 마차 안에 계십시오!”

 “무슨 일인데 그러세요?”

 “아무래도 적의 습격이 올 것 같습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자랑스러운 카이로만 제국의 피닉스기사단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공주님을 안전하게 지키겠습니다.”

 전형적인 기사다운 스필언의 말이었다.

 목숨을 버려서 공주를 지킨다. 얼마나 멋진 말인가! 그러나 현실은 생각처럼 멋있는 것이 아니었다. 죽고 나면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살아서 멋지게 사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아이시런은 습격이라는 말에 걱정이 앞섰다.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도 있지만 외출하려고 유치한 계획을 짜려 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아이시런 공주는 모두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 말을 해야 했다.

 “여려분을 믿겠어요!”

 조금 크게 말을 했기에 마차 주위의 모든 기사와 병사들이 다 들을 수 있었다. 아름다운 공주가 기사와 병사들을 믿는 다는 말을 하자 용기가 팽배해졌다. 공주가 한마다 말을 한 것이지만 그것으로 인해 기사와 병사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것처럼 상승했다.

 가르딘도 공주의 말 한마다를 되새겼다.

 ‘마냥 철없지는 않군.’

 이런 상황에서까지 떼를 쓰거나 신경질을 부렸다면 공주가 아니라 말괄량이 소녀일 뿐이다. 제국의 공주라면 대외적으로 모둔 사람의 존경과 사랑을 받아야 한다. 그것이 제국의 공주로서 갖추어야 할 위상이었다. 그런 것조차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공주는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가치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움직이지 않는데, 놈들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렇다는 소리는 한가지뿐이군.”

 “뭔데?”

 “마법공격이 올지 모르니 방패로 몸을 보호해.”

 가르딘은 수많은 전투에서 배운 경험을 무시하지 않았다. 경험은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다. 상황을 대처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며, 임기응변에 대한 활용 폭이 넓어진다. 경험이야 말로 가르딘에게 남은 재산 중에 하나였다.

 슈슈슈슉! 슈슈슈슉!

 가르딘의 예상대로 수백발의 마법이 쏟아졌다. 바로 아이스애로우(얼음화살)였다. 빙계 바법으로 3서클 이상의 마법사만이 사용할 수 있다. 더군다나 백여 발 이상을 연속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자는 6서클 이상의 고위급마법사뿐이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욱 많은 화살이 날아왔다.

 가르딘이 소리쳤다.

 “모두 몸을 보호하고 기사들은 검으로 아이스애로우를 쳐내라!”

 아이스애로우는 날카로우며 강력했다.

 파파팡! 파파팡! 채채채챙! 채채채챙!

 일반병사들은 방패진형을 갖추고 막아내는 데도 힘이 들어 하는 듯했다. 아이스애로우는 맞은 순간 몸이 얼어붙을 정도로 차가운 한기를 뿜어낸다. 한기는 몸을 움츠러들게 만들고, 행동반경을 좁게 만든다. 결국에는 몸이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고 당할 수 있는 마법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병사들은 이미 방패로 막아내고 있었다. 방패가 없었다면 많은 사상자를 내었을 뻔한 상황이었다. 기사들에게 아이스애로우 정도는 얼마든지 막아낼 수 있는 것이었다. 마나를 사용하는 자가 아이스애로우에 당했다면 웃음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멀찍이서 마법을 날린 중년인은 흥미롭다는 반응을 나타내었다. 병사들을 겨냥해서 날린 다연발의 아이스애로우가 하나도 먹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설마 했는데 저토록 많은 방패를 가지고 있을 줄 예상하지 못했다. 마법공격에 대해 대비를 하고 있었을 것으로 보았다.

 “제법이군.”

 “나의 계획을 계속적으로 방해한 놈이오, 그러니 이 정도 대책은 당연하겠지!”

 가딩스타 후작이 노골적으로 마법사에게 면박을 주었지만 마법사는 개의치 않았다. 마법이라는 것은 어차피 본보기였다. 그의 전문적인 기술은 마법이 아니라 다른 것에 있었다. 일단 마법을 사용한 것은 상대의 역량을 살펴볼 겸해서 날린 예행연습이었다. 아이스애로우를 날려서 통하면 좋은 것이고, 안 통하면 다음 방법으로 넘어가면 그만이었다.

 가딩스타 후작은 여유롭게 대응하는 마법사 벤투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 일을 해왔다는 말은 자신들이 하지 못한 일을 한다는 소리였다. 그 말이 별로 미덥지 않았다. 직접 눈으로 보지 않았으니 믿음이 부족했다.

 벤투스는 가딩스타의 마음을 읽었다.

 ‘가장 최우선이 누군지 알면 더욱 화내겠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벤투스였다.

 벤투스는 일단 그 일을 제쳐두고 자신이 먼저 해야 할 일을 꺼내 들었다. 그는 마법사 중에서도 연금술을 연구하는 쪽에 힘을 기울인 인물이었다. 연금술은 물건을 만드는 마도 공학자에 속한다.

 공학연구는 일반마법연구의 몇 십 배에 해당하는 돈이 들어간다. 벤투스가 코카 제국의 일은 은밀하게 돕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가 일을 성공하면 연구를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코카 제국에서 자신이 필요한 연구 비용과 재료를 구해주기로 약속을 했다.

 ‘그럼 내 연구 성과를 발휘해 볼까나!’

 마도공학에 대해 연구하는 인물은 대륙에서도 얼마 없었다. 그 일은 고대의 마도병기를 만드는 것을 주축으로 한다. 고대마도병기를 만드는 것은 사라지고, 그 시대에 남은 병기만이 지금까지 자리하고 있을 뿐이었다. 

 고대 병기 중에 최강의 병기는 기간트라는 병기인데, 사람이 탔다고 전해진다. 한 번 휘젓는 병기의 위력에 수천의 병사들이 갈가리 찢겨나간다고 하는데, 그것은 말 그대로 사라진 전설일 뿐이었다. 지금에 와서 그런 병기를 만들 수는 없었다.

 가르딘은 상대편에 고위급마법사가 있다는 것에 위험을 느꼈다. 마법사라는 것이 육체적인 힘은 떨어질지 몰라도 기사와의 연수합격을 하게 되면 여간 공치 아픈 존재가 아니었다. 되도록 마법사를 먼저 처리하고 싶은 가르딘이었다.

 하지만 상대편이 바보가 아니라면 마법사를 보호하고 있을 것이다. 마법사는 전투에 있어서 핵심이었다. 마법사를 보호하는 것은 당연한 처사였다.‘ 그랜드 마스터의 실력을 완벽하게 보인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그렇게 되면 자신의 존재가 너무 알려진다. 오러 마스터라는 것이 알려져도 골치 아픈 상황에서 그랜드 마스터의 존재가 나타나면 과연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렇게 되면 가르딘의 인생은 평범할 수 없게 된다.

 사람이 살면서 정도라는 것이 있다. 힘은 가진 만큼 그에 반비례하게 책임을 져야 한다. 가르딘은 그 막중한 책임이라는 것을 완벽하게 다룰 정도로 강한 인물은 아니었다. 힘이 강한 것이 꼭 완벽한 인간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인간은 불완전하다. 하나의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되었을 경우 그 파급력은 힘이 클수록 엄청나다. 그랜드 마스터인 가르딘이 실수를 하게 되면 세상이 망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 뒷일을 모두 감내하기 위해서는 강함보다는 성숙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 어떠한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완벽한 인간 말이다.

 ‘나는 완벽하지 않다. 불완전한 판단을 하기에 인간일 수 있는 것이다.’

 가르딘은 상황을 냉철하게 판단했다. 여기서 자신이 발휘해야 하는 역량을 정했다. 그 역량만큼 발휘해서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낼 것이다.

 라이언기사단의 부단장인 가딩스타 후작이 명령했다.

 “놈들에게 패배의 쓴맛을 보여주도록 해라!”

 가딩스타 후작이 명을 내리자 라이언기사단이 적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가딩스타 후작이 맨 앞 선두에서 기사단을 이끌었다. 

 폭풍처럼 광폭하게 야수처럼 사납게.

 이것이 라이언기사단의 구호였다. 사자의 강인한 힘과 광폭함을 기사단의 마음에 새긴다는 뜻이었다.

 “이야야얍!”

 타타타타탓!

 라이언기사단이 빠르게 진격했다.

 고작 50명이지만 그들이 뿜어내는 투기는 대군의 군세와 맞ㅤㅁㅓㅆ다. 투기는 다른 말로 기세라고 한다. 기세를 타야 전쟁은 승기를 잡을 수 있다.

 가르딘은 라이언기사단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라이언기사단이군, 맨 앞에 서 있는 인물은 가딩스타 후작이다!”

 “뭐야! 코카 제국 놈들이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야?”

 필리언이 놀라서 되물었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놈들이 여기에 있는다는 것 자체가 상식을 깨는 파격적인 일이었다.

 “처음부터 노리고 있었는지도 모르지.”

 가르딘은 처음 루벤 영지에 갈 때 불길함을 느꼈다. 하리탄 협곡에서 느껴진 불길함이 거짓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그 때부터 공주를 노리고 왔을 것이라는 것을 파악한 가르딘이었다.

 ‘나 때문인가!’

 가르딘의 상황 판단력은 정확했다. 자신이 예상 밖의 행로로 이동하는 바람에 놈들이 어쩔 수 없이 여기에서 나타난 것이다. 가르딘의 판단으로 가딩스타 후작이 지금 나타난 것이지만 가르딘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가르딘이 조심하지 않았다면 협곡에서 상당한 피해를 봤을 것이다.

 “카론 마이어 공작군과 가까워지기 전에 우리를 치려고 한 것이군.”

 “젠장할 놈들.”

 필리언은 긴장했다.

 라이언기사단의 실력뿐만 아니라 가딩스타 후작 때문이었다. 가딩스타 후작은 오러 마스터였다. 그의 전재 한 명만으로도 부담이 되었다. 지금 여기서 오러 마스터를 상대할 인물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우리가 가딩스타 후작을 막아야 하나!”

 필리언은 정말 자신 없었다.

 가딩스타 후작은 바자바인 백작과 공방을 펼친 기사였다. 바자바인 백작이 능글맞긴 하지만 실력만큼은 대단하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일반기사 10명은 순식간에 찜 쪄 먹을 수 잇었다.

 “수적으로 불리하니 불안 하냐.”

 “그럼 안 불안 하냐, 적은 50명이나 된다고!”

 “우리한테는 히든카드가 있잖아.”

 가르딘이 스필언과 미토스를 바라보자 필리언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분명 둘이 천재기사인 것은 맞지만 지금 상황에서 할 말은 아니었다. 상대는 노련한 백젼노장의 오러 마스터였다. 이제 갓 첫 실전을 치르는 놈들에게 기대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우선은 전투대형을 갖춰, 1분 대형으로 막아내다가 2분 대형으로 바꾼다.”

 “알겠다, 이놈아!”

 1분 대형은 마름모꼴의 진형이다.

 적으로부터 내부의 소중한 인물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또한 2분 대형은 적으로부터 보호하면서 뒤에서부터 포위공격으로 급반전시키는 뒤통수치기 전법이다. 상대의 실력이 백중세나 열세일 때 사용하는 수세적인 방법이었다.

 “병사들은 공주를 보호하면서 활을 사용해 도우라고 해.”

 기사이 수는 라이언기사단보다 20명이 적지만 병사들은 100명이나 되었다. 병사들도 전투에 효과적으로 운용한다면 승산이 없다고 볼 수는 없었다.

 라이언기사단이 모습을 드러내어 근접거리에 나타났다. 맨 선두에 당당하게 서 있는 가딩스타 후작이었다. 가딩스타 후작이 가르딘을 바라보았다. 가르딘도 가딩스타 후작을 보았다. 가르딘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가딩스타 후작! 비겁하기가 하늘을 찌르는 구나!”

 꿈틀!

 가딩스타 후작은 자존심이 강한 인물이었다. 가르딘은 상대의 역량을 가능하고 흥분시키기 위해서 소리를 지른 것뿐이었다. 가르딘은 작위가 없는 귀족이었다. 후작에게 반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가딩스타 후작이 화가 나는 것도 당연했다.

 “건방진 놈이 감히 뭐라고 하는 것이냐!”

 “쥐새끼처럼 생긴 놈이 하는 짓도 더럽기 짝이 없어! 너 같은 놈은 내가 상대할 필요가 없다. 새로 들어온 신입이 상대해도 이길 거다!”

 부르르르!

 “죽여주마!”

 가딩스타 후작은 기사들과 함께 돌진했다.

 가르딘은 그 순간에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활을 쏴!”

 슈슈슈슈슉!

 가딩스타 후작은 비웃었다.

 활 따위가 막아선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수적으로 20명이나 차이가 났다. 기사의 수가 20명이면 일반병사 500명과 맞먹는다고 하지 않는가! 가르딘도 활로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 활을 날린 것은 놈들의 시야를 분산시키기 위한 도구였다.

 그 즉시 가르딘이 전음을 날렸다.

 상대는 스필언과 미토스였다.

 [미토스, 스필언!]

 움찔!

 자신의 귀에 대고 말을 하는 것처럼 가르딘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스필언과 미토스가 놀라고 있었다. 분명 입으로 말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의문이었다.

 ‘어떻게?’

 그런 의문에 가르딘은 대답할 시간이 별로 없었다. 대신에 명령을 내리는 것으로 대신했다.

 [지금 당장 달려오는 기딩스타 후작을 향해 일격필살의 공격을 해라!]

 스필언과 미토스는 가르딘을 보았다. 가르딘이 눈짓을 보냈다.

 지금 보여준 기술이 무엇인지를 나중에 물어보면 된다. 우선은 가르딘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먼저였다. 가르딘은 방어 진형의 가장 중심에 서 있었다.

 검을 들고 방어를 하며 기다렸다. 그 앞으로 가딩스타 후작이 맹렬하게 달려오면서 검을 휘둘렀다. 날카로우면서 폭발적인 힘이 전해졌다. 가딩스타 후작은 대륙에서 소문이 자자한 기사였다. 절대 평범한 베기가 아니었다.

 가딩스타 후작은 가르딘을 자신의 상대로 보지도 않았다. 오러 마스터도 아닌 놈에게 일격 이상을 허용하는 것 자체가 망신이었다. 일격으로 끝을 내려고 검에 오러 블레이드를 담았다.

 “건방진 말을 한 대가다!”

 가딩스타 후작이 빗살처럼 빠르게 가르딘의 목을 노리고 검을 휘둘렀다. 휘두르는 검을 막선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오러 마스터가 아니고서는 절대 막아설 수 없다. 목이 잘려나갈 것으로 보았다.

 씨익!

 가르딘이 미소를 지었다.

 가딩스타 후작은 문득 의문이 들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순간에 생각을 하고 말았다.

 ‘웃어?’

 실성한 놈이 아니고서는 절대로 그럴 수 없었다.

 가르딘은 검에 오러를 뿜어내었다. 가딩스타 후작은 그 오러를 보고 비웃어 버렸다.

 “고작 익스퍼트 수준으로 날 비웃은 것이냐!”

 “글쎄!”

 가르딘에게 검을 날리던 가딩스타 후작이 좌우 양옆에서 느껴지는 위험한 검세를 느낄 수 있었다. 척 보아도 오러 마스터의 기운이었다.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오러 블레이드를 느낄 수 있었다.

 가딩스타 후작은 황급히 몸을 틀어야 했다. 이미 뻗어버린 검을 포기하고 양옆에서 느껴진 위기를 먼저 벗어나야 했다. 가딩스타 후작으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카이로만 제국의 오러 마스터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또 다른 오러 마스터 둘이 등장한 것이다.

 ‘이런!’

 너무 늦어버렸다.

 가르딘의 도발에 앞뒤 생각을 하지 않고 공격을 한 것이 실수였다. 하지만 가딩스타 후작은 오러 마스터 중급의 기사였다. 즉시 몸을 틀어 왼쪽에서 찔려 들어오는 오러 블레이드를 막아내었다. 하지만 반대쪽에서 베어오는 오러 블레이드를막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휘이이익!

 “크윽!”

 오러 블레이드가 가딩스타 후작의 오른쪽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스필언의 오러 블레이드였다. 그러나 정작 스필언과 미토스는 가딩스타 후작의 놀라운 대처능력에 상당히 놀라고 있었다. 순식간이었고, 거리가 가까워서 아무리 빨라도 피랗수 없을 것 같았던 상황이었다.

 옆구리에 오러 블레이드가 스치고 지나간 상황에서 가딩스타 후작은 뒤로 물러나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보았다.

 스필언과 미토스가 20살을 갓 넘은 햇병아리라는 것을 말이다. 놀라운 일이었다.

 ‘저토록 어린 나이에 오러 마스터란 말인가!’

 사악!

 “커억!”

 빛이 번쩍였다.

 가딩스타 후작의 정중앙 가슴이 일직선으로 베어져 나갔다.

 “날 너무 무시한 대가야.”

 가딩스타 후작은 젊은 오러 마스터에게 시선을 빼앗기는 바람에 가르딘은 신경 쓰지 못했다. 일순간이였지만 가르딘의 오러가 정확하게 가딩스타 후작의 가슴을 갈랐다. 뒤로 몸을 빼는 순간이라 깊게 베지 못해 즉사 시키지는 못했더라도 중상은 입게 되었다.

 “이...놈을!”

 “상급의 오러라도 맞으면 베어지는 게 사람의 몸이지.”

 오러 마스터의 몸이라고 해도 검에 베어지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더군다나 오러가 맺혀져 있는 검이었다. 가르딘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가딩스타 후작과 부딪치는 동안에 피닉스기사단과 라이언기사단이 본격적으로 대결을 펼치고 있었다.

 카카카캉! 카카카캉! 챙! 챙! 챙!

 피닉스기사든은 수적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방어에만 주력하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양쪽에서 죽은 사람이 나타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라이언기사든은 오러 마스터가 부상을 당했다. 새로운 오러 마스터가 2명이나 건재한 피닉스기사단에게 승산이 있었다. 마스터가 움직이지 못하는 순간 승패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가르딘은 즉시 스필언과 미토스에게 적을 주살하라고 명령했다.

 “너희들은 기사다, 피를 두려워한다면 기사라고 할 수 없다. 제국을 위해 더러운 피도 감내해야 하는 것이 기사다. 그것이 기사이고, 기사로서 존재할 수 있는 이유다! 가라! 너희들의 힘을 마음껏 뿜어내라!”

 신입기사들이 아무리 강해도 첫 전투나 마찬가지였다. 삶과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사람의 본능이었다. 그렇기에 가르딘은 본능을 억제하기 위해 사명감을 북돋았다.

 스필언과 미토스는 스승 같은 가르딘의 말을 마음에 새기고 적들을 향해 나아갔다. 

 “응?”

 마지막으로 가딩스타 후작을 보내버리려고 할 때였다. 가르딘의 감각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거대한 물페가 땅에 내려서며 쿵하는 소리가 들렸다.

 쿠쿵!

 움직이는 거대한 실체가 공간에서 나왔다.

 가르딘은 갑자기 나타난 존재를 보았다. 그것은 바로 골렘이었다.

 골렘은 보통 마법사는 사용할 수 없는 병기였다. 골렘은 연금술과 관련이 있는 공학마법이었다. 공학마법사는 대륙에서도 극소수에 속하는 인물들이었다. 더군다나 골렘 1개가 가지는 위력이 상상을 초월한다. 최소 오러 마스터에 이르러야 겨우 상대할 수 있을 정도의 위력이었다.

 가르딘이 고개를 위로 해야 겨우 볼 수 있을 정도로 컸다. 높이가 15미터에 엄청난 몸집을 자랑했다. 그런 콜렘이 무려 3개나 되었다.

 가르딘이 놓친 것이 바로 마법사의 존재였다. 마법사는 일단 원거리에서 공격하는 것을 주로한다. 그렇기에 직접 부딪치는 일에는 나서지 않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렇기에 마법사가 공주가 탄 마차까지 갈 것이라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제기랄!’

 마법사는 기사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골렘을 사용했다. 골렘이 막아서자 기사들은 다가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벤투스는 나머지 병사들을 직접 처리하고 공주를 납치하려고 했다. 일반병사들이 7서클 마법사의 상대가 될 리 없었다.

 가르딘은 앞을 막아서는 골렘을 처리하지 않고서는 공주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피닉스기사든을 물릴 수도 없었다. 치열하게 공방을 주고 받는 가운데 뒤를 본다는 것은 적에게 목을 ssoal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단숨에 가딩스타 후작의 목을 쳐버리고 싶지만 공주를 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가르딘은 지체하지 않고 뒤로 돌아서 공주가 잇는 곳으로 갔다. 이미 마법사가 병사들을 향해 마법을 난사하고 있었다.

 ‘스필언과 미토스가 있으니 문제되지는 않을 거다.’

 오러 마스터가 2명이나 있는데도 지면 그것은 전적으로 피닉스기사단 탓이었다.

 벤투스는 기사대전이 벌어질 때까지 뒤에서 숨죽이고 있었다. 그러면서 사용해야 할 마법드을 인챈트(구동)했다. 언제 어디서건 필요할 때 사용하기 위해 수식을 미리 적어놓는 것이다.

 벤투스는 기사들이 달려 나가는 그 타이밍에 블링크(공간이동)마법을 사용했다. 블링크 마법으로 병사들이 지키고 잇는 공주의 마차 주위로 이동한 것이다.

 우선은 방해물이 나타날지 모르니 확실한 방패막이를 소환했다. 벤투스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골렘을 소환한 것이다. 그는 평범한 마법사가 아니고 고서클의 골렘술사였다.

 병사들이 방패를 들어 방어하려고 하는 모습에 벤투 수의 입가가 가볍게 올라갔다.

 “개미는 아무리 강해도 기미지!”

 7서클 마법사에게 일반병사들을 식후 간식거리 정도였다. 벤투스의 손바닥 위 허공에서 스파크가 일어났다. 뇌전계열이 마법인 일렉트릭애로우(번개의 화살)가 시전되었다. 다연발의 일렉트릭애로우가 방패를 들고 있는 병사들을 향해 나아갔다.

 슈슈슉! 찌지지지직!

 방패로 막아내려고 하지만 일렉트릭애로우를 맞은 병사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그 자리에 쓰러졌다. 한두 명이 아니었다. 한 발에 3명 이상이 쓰러져 나갔다. 20여 발의 일렉트릭애로우에 불과했지만 그 위력은 대단했다. 순식간에 절반에 달하는 병사들이 바닥에 쓰러져 몸을 떨었다. 마치 번개에 맞아 감전당한 것처럼 시커멓게 타 들어가는 병사까지 있었다.

 “으아아아아악!”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렸다.

 마법사의 위력을 깨닫는 병사들이었다. 병사들이 광황상태에 빠질 때 벤투스가 다시 한 번 마법을 발하였다.

 -윈드스톰(바람의 폭풍)

  휘이이이잉!

 “으아아아악!”

 갑작스러운 폭풍과 같은 바람에 병사들이 속절없이 당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무력으로 어찌해볼 수 없는 상대였다. 마법사는 단체로 덤빈다고 해서 상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일반병사들에게 마법사는 재앙이었다. 속수무책이 따로 없었다.

 마차 안에 있던 아이시런은 병사들의 비명을 듣고 그대로 있을 수 없었다. 제국의 공주가 두려움 때문에 병사들의 고통을 나 몰라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공주가 밖으로 나가려 하자 엘리언이 만류했다.

 “공주님, 안 돼요! 위험합니다!”

 “놔, 어차피 기사와 병사들이 죽으면 나도 위험해! 이럴수록 공주로서 체통을 잊어서는 안 되잖아!”아이서런 공주는그 즉시 문을 역고 밖을 내다보았다.

 마차안과 밖은 천지 차이였다.

 사방에 널브러진 병사들이 신음과 더불어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마차 문을 열고 나오기는 했지만 아이시런 공주는 선뜻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참혹한 광경 속에 말로 할 수 없는 두려움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지옥과 같았다. 이런 광경은 그녀의 생애 처음이었다.

 “공주님! 역시 아름다우시군요!”

 벤투스가 공주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아이시런 공주는 벤투스의 미소에 소름이 돋았다.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죽여 나가면서 짓는 웃음이라 더욱 소름끼치는지 몰랐다.

 벤투스의 제1목적은 아이시런 공주였다.

 다른 것을 제쳐두고 공주를 납치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던 것이다.

 벤투스는 남은 병사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힘도 없는 것들이 방해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어차피 공주는 자신의 손에 잡히게 되어 있었다.

 찌익!

 “윽!”

 벤투스가 갑자기 심장을 부여잡았다. 일렉트릭애로우를 맞은 것 같은 고통에 벤투스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력을 사용하는 원동력은 마나다. 마나를 회전시키는 인체의 중요부위가 심장이었다. 심장에 충격이 온다는 것은 마법이 역류했다는 소리였다.

 지금 상황에서 마법이 역류하는 경우는 골렘이 충격을 받았을 때뿐이다. 그것도 심각한 충격이 아니고서는 나타날 수 없는 현상이었다.

 “무슨 일이지?”

 벤투스가 고개를 돌려 골렘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골렘1기가 힘을 잃고 바닥에 쓸진 것이 아닌가! 거대한 물체라고 하지만 골렘 역시도 동력이 없이는 움직이지 못하는 고철덩어리에 불과했다.

 “말...도 안 돼?”

 벤투스의 놀람은 당연했다. 벤투스가 소환한 골렘은 보통 골렘이 아니었다. 골렘도 ㄷㅇ급이 존재했다. 골렘 중에서도 강력하기로 정평이 난 골드급 골렙이었다. 최소 오러 마스터 중급이 아니고서는 상대할 수 없는 병기였다.

 지금 여기에 있는 피닉스기사단 중에 홀로 골렘을 사용할 수 있는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생각지도 못한 의외의 변수가 나타났다.

 뒤로 돌아선 벤투스는 가딩스타 후작이 상처를 입고 쓰러져 있는 것까지 보고 말았다.

 “가딩스타 후작이 당했단 말인가!”

 가딩스타 후작은 코카 라이언기사단의 부단장으로 단장을 제외한 가장 강한 기사였다. 그런 기사는 피닉스기사단의 일개 기사들에게 당해 쓰러졌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벤투스는 일이 틀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시가 급한 가르딘이었다.

 앞을 막고 있는 골렘들은 보통이 아니었다. 일반적인 골렘과 드리게 빠르기와 단단함이 차원이 달랐다. 검기조차 놈들의 금속을 완벽하게 뚫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단 말인가!’

 되도록 오러 블레이드는 사용하지 않으려는 애초의 계획을 수정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순식간에 병사들 중 절반 이상이 바닥을 뒹굴었고, 그 중에 10명 정도는 견디지 못하고 죽었다. 이대로 시간을 더 끌면 자신의 오만으로 인해 병사들이 다 죽어나갈 것이다.

 더군다나 공주의 안전까지 위험한 상황이었다.

 ‘내 평온한 삶을 끼뜨린 네놈들을 그냥 두지 않는다!’

 뿌드득!

 이를 갈며 증오를 불태웠다.

 웬만해서는 힘을 발휘하지 않으려는 가르딘이었다. 그 뒤에 이어지는 책임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평온한 삶을 살고 싶었던 가르딘을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가고 있었다.

 그것이 벤투스의 실수였다.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가르딘의 실력을 보여주게 만드는 계기였다. 가르딘의 일생을 변화시키는 2번째 계기 말이다. 온전한 삶에서 어떤 삶이 기다릴지는 주신 라이니언밖에 알지 못할 것이다.

 우웅!

 가르딘의 검이 공명을 하며 검명을 토해내었다. 오러 블레이드를 형성하기 위한 시작이었다. 가르딘의 일생에 전투에서 검강을 사용하기는 처음이었다.

 완벽한 오러 블레이드가 가르딘의 검에 청백색의 기운을 뿜어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소름이 끼치게 만드는 위력이었다. 가르딘이 접근하자 골렘들이 막아섰다. 거대한 배틀 엑스와 방패를 들고 있는 골렘들이었다. 골렘이 무기까지 사용하자 여간 까다로운 존재가 아니었다.

 위이잉! 쿠광!

 웅장한 크기를 자랑하는 배틀 엑스가 가르딘의 신형을 반으로 갈랐다. 대지가 반으로 갈라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굉장한 진동과 폭발이 일어났다.

 하지만 가르딘의 움직임은 너무 빨랐다.

 일반 골렘보다 빠르다고 하지만 섬전보를 사용하는 가르딘의 신형을 잡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어느새 가르딘이 골렘의 다리에 다가갔다. 다가간 순간에 골렘의 다리를 향해 오러 블레이드를 수평으로 휘둘렸다. 광속에 가까운 가르딘의 베기였다.

 쌔앵! 뎅강!

 골렘의 오른쪽 다리를 단번에 잘라내자 거대한 신체를 자랑하는 골렘의 몸이 기울어졌다. 아무리 골렘이 크다고 해도 지탱하는 다리가 없다면 쓰러지는 것이 당연했다.

 끼이잉! 쿠구궁!

 가르딘은 기감을 열었다.

 기감을 열어 골렘의 핵을 찾았다. 골렘의 핵이야말로 골렘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골렘이 살아 움직일 수 있게 만들어주는 핵심 동력원이라는 소리였다. 골렘이 연금술의 일종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골렘은 핵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어느 정도의 재생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아무리 흠집을 내도 치명상이 아니면 바로 재생해서 움직일 수 있었다.

  가르딘은 골렘의 핵을 찾기 위해 기감을 열었고, 기감을 열자 골렘의 머리 부분에서 강력한 파동이 발생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저기군!’

 넘어진 골렘의 몸체를 타고 머리까지 이동한 가르딘이었다. 골렘의 머리에 도착한 가르딘이 한 점의 망설임도 없이 검을 내리그었다.

 차앙! 쿠쿵!

 골렘이 머리 속 깊이 숨겨진 핵이 잘라지면서 폭발이 일어났다. 골렘의 핵이 갈라지면서 터진 것이다. 그러자 골렘 1기가 완전히 정지해 버렸다. 가르딘의 눈이 나머지 2기의 골렘을 향했다. 지체하지 않고 몸을 날려 골렘을 향해 오러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처리하는 방법은 비슷했다.

 다리를 먼저 공격하고 쓰러지는 골렘의 핵을 공격하여 움직이지 못하는 고철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2기의 골렘을 처리하고 마지막 골렘을 처리하려고 할 때 일렉트릭애로우가 가르딘을 향해 날아왔다.

 그러나 가르딘은 골렘을 처리하는 것을 우선으로 치부했다. 그 즉시 호신강기를 시전해서 일렉트릭애로우를 차단하고 골렘의 핵을 반으로 갈라버렸다.

 찌지지직! 파앗!

 “안 돼!”

 벤투스가 소리를 질렀다.

 골드급 골렘이야말로 그가 만들어 놓은 역작들이었다. 그런 골렘이 속절없이 무너지자 벤투스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는 다른 일에는 침착하지만 골렘에 관한 일은 침착할 수 없었다.

 부득! 부득!

 벤투스는 일생에 이처럼 분노하기는 처음이었다. 공주를 납치하는 것을 그냥 놔두고 가르딘을 공격한 것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골렘을 소중히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

 “감히 버러지 같은 놈이 내 사랑스러운 골렘을 망치다니! 그냥 두지 않겠다!”

 벤투스의 분노에 주변의 대기마저 차갑게 가라앉았다. 7서클의 마력이 뿜어져 나가자 기운까지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압도적인 힘이 벤투스에게서 느껴졌다. 보통 7서클의 마법사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오러 마스터 중급은 되어야 했다. 다만 둘 중 같은 경지에서 어느 쪽이 강한지는 정확하게 판단을 내릴 수 없다.

 승부에서 경지를 높다고 해서 반드시 실력까지 높다고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검이든 마법이든 일정 경지에 들은 상태에서, 누가 강한지 판단하려면 서로 얼마나 자신이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가에 따라 갈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작은 기술이라도 효용성 있게 사용한다면 그 기술이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벤투스의 분노를 정면으로 부딪치는 가르딘이었지만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벤투스의 분노보다 가르딘의 분노가 더욱 강렬했다. 그의 평온한 삶을 훼방 놓는 놈들에 관한 신경질이었다. 신경질이 난 가르딘은 무서웠다.

 차갑고 예리하게 빛을 내는 가르딘의 눈이었다.

 ‘그냥 두지 않는다고, 그건 내가 할 소리다!’

 아이시런 공주는 볼 수 있었다.

 시퍼런 빛을 발하며 무섭도록 강렬한 기운을 뿜어내는 가르딘을 말이다. 이제까지 보여주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강인함이었다. 순식간에 거대 골렘을 쓰러뜨린 모습만 본다면 대륙최강의 기사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그녀의 놀람은 당연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두려움에 떨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런 절박한 상황에서 구세주가 나타났으니 고마움과 놀람이 교차하고 있었다.

 “대단하다!”

 그녀는 가르딘이 저처럼 강한지 처음 알았다. 그저 실없는 아저씨인 줄만 알고 있었던 것이 부끄럽기까지 했다.

 벤투스는 놀람을 진정시키고 상황을 파악했다. 마법사답게 현실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골렘을 쓰러뜨린 가르딘을 보았다. 골드급 골렘을 순식간에 쓰러뜨리며 발하는 기운은 오러 블레이드였다. 오러 불레이드를 저 정도로 사용한다는 것은 오러 마스터 중급에 이르렀다는 말이 되었다. 분석되어진 정보와는 확연히 다른 일이었다.

 공주의 여정에 3명의 마스터가 포함되어 있었다.

 ‘역시 카이로만 제국인가!’

 습격할 것을 알고 미리 대비했다는 말밖에는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코카 제국으로 돌아가면 자신의 위치가 위험해진다. 

 ‘네놈만을 줄여주마!’

 가르딘만은 죽여 버리고 사라질 마음을 먹었다.

 오러 마스터가 강하기는 해도 자신의 상대는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벤투스였다.

 슈슝!

 벤투스가 생각을 하는 동안 가르딘이 빠르게 다가왔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는 속도가 가동하기까지 했다. 벤투스는 즉시 생각을 멈추고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플라이마법을 전개하고 체인라이트닝을 쏟아내었다. 다연발의 번개가 가르딘을 향해 내리쳐졌다.

 찌지직! 꽈과과과광!

 가르딘은 날아오는 체인라이트니이을 지그재그롤 변화하면서 가볍게 피해버렸다. 그 정도의 공격을 맞아줄 정도는 아니었다. 모든 공격을 피하며 공중으로 도약을 했다.

 파팟!

 지면을 강하게 차오른 가르딘이 10미터를 뛰어올라 벤투스의 앞까지 도달했다. 빠르고 신속한 일련의 동작이었다. 가르딘의 검이 휘둘러졌다. 가공할 힘돠 검속을 자랑하는 가르딘의 참격이었다.

 쌔애앵!

 벤투스는 순식간에 뿜어져 나오는 가르딘의 검격에 당황했다. 잘못하다가는 목숨이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즉시 블링크(공간이동)마법을 시전했다. 반경 10미터 안에서는 주문영창을 하지 않아도 가능했다. 너무 다급했기 때문에 원거리로 움직이는 것이 어려웠다.

 가르딘은 검이 허공을 베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실력을 모두 보여주면 그 정도는 문제없지만 지금 보고 있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이 정도만 해도 많이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가르딘의 나이에 오러 마스터 중급으로 보인다면 그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제법 실전적인 마법사구나!

 마법사는 원거리에 익숙해져 있어서 거리를 무시하고 다가왔을 경우, 당황해서 피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하지만 지금 앞에 있는 마법사는 당황하면서도 쉽게 피해버렸다. 수많은 실전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주르르륵!

 벤투스는 등 뒤로 차가운 땀이 흘러나왔다. 좀 전은 상당히 위험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는 귀신 같은 움직임은 눈으로 쫓을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위험했다! 이런 놈이 있다니!’

 정보가 잘못되어도 한참이나 잘못되었다.

 ‘내가 죽을 뻔하다니 용서하지 않겠다!’

 이제부터 7서클의 마법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마력소모가 심한 마법을 사용하기는 싫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벤투스의 입에서 주문이 흘러나왔다. 마법사인 언어인 룬어가 영창이 되어지자 가르딘이 서 있던 지표면이 급격하게 변화를 일으켰다.

 바로 불케이노(화산폭발)였다.

 땅이 갈라지고 그 안에서 용암이 솟구쳐 오르는 상황이었다.

 ‘이런!’

 가르딘은 어쩔 수 없이 공중으로 몸을 뛰어야 했다. 용암공격은 상당히 위험했다. 가르딘이 공중ㅇ로 뛰어오르자 그 타이밍을 잰 벤투스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죽어랏!”

 -핼버스터(지옥의 광선).

 거대한 포격을 연상케 하는 광선이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가르딘을 향해 굉장한 손도를 자랑하며 포악스럽게 다가왔다. 가르딘은 헬버스터의 가공할 위력을 정면으로 느껴야 했다.

 그러나 가르딘은 죽음보다는 짜증이 치밀었다.

 ‘꽤 번거롭게 하네!’

 -무극칠검식  제2절초  일격참뢰. 하늘아래 일결으로 베지 못할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섬전을 방불케 하는 무섭도록 빠른 검의 기운이 헬버스터를 반으로 쪼개버렸다. 갈라진 헬버스터가 가르딘의 양옆으로 날아가서 지면에 굉장한 폭발을 일으켰다.

 꽈과과광!‘ 

 하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검의 기운이 헬버스터를 갈라낸 것도 모자라서 벤투스가 서 있는 곳을 향해 날아갔다. 위력이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헬버스터 따위는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스걱!

 뎅강!

 커억!

 너무 빠른 검의 기운이었다. 무섭도록 예리한 기운으로 인해 벤투스의 오른쪽 팔이 잘려 나가버렸다. 본능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면 몸이 반으로 쪼개졌을 것이다.

 고통이 정신을 어지럽게 만드는 상황이었다. 

 “이러...럴 수가! 도대체 네놈은 누구냐?”

 “곧 죽을 놈이 그건 알아서 뭐 하게!”

 가르딘의 말에서 살기가 번져나왔다. 마법사를 죽이는 것은 최우선이었다. 이놈을 죽이고 난 후 나머지를 처리해야 했다.

 벤투스는 온몸이 땀과 피로 번져가고 있었다. 이대로는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도망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벤투스의 눈에서 기광이 번쩍였다.

 “날 죽인다고 어디 할 수 있으면 해보아라!”

 가르딘은 벤투스의 객기에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죽기 전에 실성하는 놈을 한두 번 본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전쟁에서 그 정도는 애교에 지나지 않았다.

 벤투스의 손에 붉은 기운이 감돌았다.

 “받아보아라!”

 -익스플로전(폭염구).

 “흥!”

 가르딘은 별로 당황하지 않았다. 이미 그 정도는 갈라버릴 수 있는 실력이 되었다. 그런데 가르딘이 생각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익스플로전이 날아간 곳이 자신이 아니었다.

 ‘왜?’

 라는 의문이 발생하기 전에 가르딘은 상황을 파악했다.

 ‘이런!’

 벤투스가 노린 곳이 바로 아이시런 공주의 마차였다. 아이시런 공주를 향해 익스플로전을 시전한 것이었다. 가르딘의 신형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슈슉!

 공주를 지켜야 했다.

 전투에 이기더라도 공주가 죽으면 전쟁에서 진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가르딘은 어쩔 수 없이 벤투스를 포기하고 공주가 있는 마차로 빠르게 이동했다. 마법사란 족속은 예나 지금이나 비열한 것 같았다. 머리가 뛰어날수록 그 머리를 좋은 일에 쓰지 않고 악랄한 짓이나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가르딘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었다.

 꽈과과광!

 폭발이 일어났다. 그 순간에 가르딘이 검을 들어 검막을 시전했다. 검의 기운이 사방으로 뿜어져 나가 거대한 망을 형성했다. 검의 절대경지 중에 하나였지만 그것을 다른 사람이 볼 수는 없었다. 익스플로전이 일으키는 폭발과 먼지로 가려졌기 때문이었다.

 아이시런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화염구를 보고 기겁하고 말았다. 막을 수 있는 방법이 도저히 없어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바람이 불더니 자신의 앞에 누군가의 등이 보였다.

 바로 애처가 가르딘이었다.

 나타난 가르딘의 검에서 믿을 수 없는 힘이 발생했다. 그 힘이 다가오는 폭발을 모두 막아내었다. 가공할 힘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정확하게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아이시런이었다. 그녀는 두 번이나 가르딘에게 구함을 받았다.

 가르딘은 뒤돌아 아이서런 공주를 보며 말을 했다.

 “괜찮으십니까?”

 “괜찮아요, 그대는 어때요?”

 “저야 물론 괜찮습니다.”

 “다행이네요, 그런데!”

 “대화는 다음으로 미루지요, 지금은 적을 쓰러뜨리는 것이 먼저입니다.”

 “알겠어요.”

 슈슉!

 가르딘이 그 말을 남기고 공주의 곁에서 기사들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남겨진 아이시런 공주는 가르딘의 모습이 달라 보였다. 어쩔 수 없는 마음이었다. 두 번이나 구함을 받은 상황이었고, 가르딘의 뛰어난 능력까지 보았다. 달라 보이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본능이었다.

 가르딘이 기사들에게 다가갔을 때 상황은 종료가 되어 있었다.

 스필언과 미토스는 역시나 천재이자 기사였다. 뛰어난 상황판단과 적절한 대응실력까지 모둔 면에서 완벽한 녀석들이었다.

 순식간에 기사들을 이끌고 라이언기사단을 거의 전멸시켜 버렸다.

 가르딘이 필리언에게 다가갔다.

 “가딩스타 후작은?”

 “마법사 녀석이 나타나더니 데리고 갔어.”

 “신경질 나는 놈이었어, 영악하기는 보통이 아니었거든.”

 “마법사들이 원체 그렇잖아. 그것보다 너 언제 마스터가 된 거냐?”

 필리언이 결정적인 것을 물어왔다.

 이제까지 왜 숨겨 왔냐 라는 말까지 섞여 있었다.

 반면에 가르딘은 당당하게 말을 해버렸다. 상황이 이렇게 됐는데 구차하게 아니라고 말을 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었다. 그것이 오히려 상황을 이상한 방향으로 꼬이게 만든다.이럴 때는 오히려 뻔뻔하고 당연하다 라는 반응이 나았다.

 가르딘이 갑자기 고개를 세우고 어깨를 넓혔다.

 “이제부터 위대하고 찬란한 가르딘 마스터님이라고 불러라.”

 “뭐? 그런 개소리를!

 “어허, 나는 이제 마스터다, 당연히 내가 너보다 위지 이제부터는 날 형님으로 깍듯하게 모시는 게 신상에 이로울 거다!”

 빠직!

 가르딘의 당당한 대응법에 필리언은 뒤통수가 저려왔다. 역시나 가르딘은 가르딘이었다. 이제까지 생활해 온 가르딘의 전면목을 부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필리언도 산전수전 다 겪은 능구렁이었다.

 “그럼 네가 작위를 얻으면 나 기사단장 시켜줘라!”

 “너 하는 것 봐서.”

 가르딘과 필리언은 서로 속에 있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뻔뻔한 놈, 한수에 배를 채우려고 드네.’

 ‘나도 이제 제대하는데, 비빌 구석이 있어야지.’

 아직 받지도 않은 작위를 가지고 벌써부터 수를 쓰는 두 인간구렁이들이었다.

 가르딘은 필리언과 농담은 적당히 했다. 우선은 사상자와 부상자를 파악하고 라이던기사단의 처리를 해야 했다.

 기사는 사상자가 3명에다가 부상자가 10명이었다. 반면에 병사들은 30명이나 죽었고, 부상자가 50명이나 되었다.

 “필리언, 시신을 우선 묻어주고 표시를 해놔라. 나중에 다시 올 수 있도록 해.”

 “알았다.”

 병사와 기사들의 차이가 여기에서 나타난다. 병사들은 데리고 갈 수 없지만 기사들은 데리고 가야 했다. 기사들의 시신은 그대로 둘 수 없었다. 그들이 가진 지위와 명성 때문이었다. 병사들 입장에서는 서러운 일이지만 현실은 어쩔 수 없었다.

 가르딘은 비참해하는 병사들에게 한마디를 했다. 

 “너희들은 공주님을 보호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시신을 여기 두고 가더라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에 따른 보상이 있을 것이니 너무 섭섭해하지 말도록, 모두 제국을 위해 희생한 기사와 병사들이다. 그들의충성을 잊지 말자.”

 반감이 생기지 않도록 최대한 다독이며, 가르딘은 자신의 일을 순차적으로 처리해 나갔다. 전쟁에서 매번 겪은 일이었다.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것보다 더욱 잔인한 광경이나 참을 수 없는 일도 수도 없이 겼어왔던 가르딘이었다.

  분노.

 살기.

 원하는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실패하자 황제의 눈에 살기가 감돌았다. 당연히 이루어져야 할 일이었다. 한치의 빈틈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실패했다는 것은 저넉으로 신하들이 무능력했기 때문이었다.

 코카 제국의 황제인 무르카인은 보고를 올린 휼턴 공작을 응시했다. 다시 한 번 말해 보라는 뜻이었다.

 “뜻하지 않은 변고입니다.”

 “변고?”

 “계획에 없었던 방해물이 나타났습니다.”

 “방해물?”

 무르카인 황제는 계속 말해 보라고 했다. 방해물이 나타났다고 해도 코카 제국에서 파견된 것은 제국 최강의 기사단인 라이언기사단이었다. 더군다나 라이언기사단을 지원하기 위해서 7서클의 마법사까지 보냈다. 실패할 가능성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작전이었다.

 휼턴 공작은 별로 당황해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계획에도 없던 장애물의 존재가 너무 강했기 때문에 벌어진 것뿐이었다. 그는 엄연히 코카 제국의 재상이었다. 쉽게 흥분하고 당황해서는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마스터급 기사가 3명이나 있었습니다.”

 “뭐? 마스터급 기사가 3명이나 있었다고!”

 무르카인 황제는 뜻하지 않는 보고에 놀라고 있었다. 마스터급 기사는 그 희귀성 때문에 확실한 일이 아니고서는 움직이지 않는 것이 정석이었다. 그런데 마스터급 기사가 3명이나 나타났다.

 “설마 카이로만 제국놈들의 5대 마스터가 나선 거냐?”

 “아닙니다.”

 “아니라고! 그럼 갑자기 새로운 마스터가 나타났다는 거냐?”

 “그렇습니다. 새로운 마스터가 나타났습니다.”

 빠직!

 무르카인 황제의 이마에 힘줄이 붉어져 나왔다. 더 화를 냈다가는 힘줄이 터져 버릴지도 몰랐다. 예전 황제들이 극도로 화내다가 왜 골로 갔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아무래도 카이로만에서 우리의 계획을 알고 미리부터 준비를 한 것 같습니다.”

 부들! 부들!

 휼턴 공작은 상황을 파악하고 분석한 결과를 말했다. 무르카인 황제는 자신의 계획이 역으로 무너진 것이 분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카이로만 제국에 당한 것이다. 무르카인 황제는 잠시 화를 내다가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미 지난 일을 가지고 화를 내봤자 결과를 바꿀 수는 없는 일이었다.

 “증거는 남겼나?”

 “직접적으로 카이로만이 우리에게 타격을 입힐 증거는 없습니다. 기사들의 제복과 검에 제국의 표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저 모근다고 하면 됩니다.”

 “패해상황은?”

 “가딩스타 후작이 생사의 위기에 있습니다. 또한 비밀리에 파견된 벤투스는 오른팔이 잘리고, 골렘 역시도 모두 망가졌습니다. 더군다나 기사들 전부 즉은 것 같습니다!”

 제국에 없어서는 안 되는 마스터급 기사와 마도사급 마법사가 모두 당했다. 그들은 한 개인이라고 할 수 없는 제국의 군사력이었다.

 무르카인 황제는 피해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수 없는 일이었다.

 “아직 전초전일 뿐이다.”

 “그렇습니다.”

 “협상은 잘됐나?”

 “조금 더 물밑작업을 하면 넘어올 겁니다.”

 “시간이 없다. 빨리 마무리 짓고 카이로만 놈들에게 쓴맛을 보여줘야 해!”

 “물론입니다. 폐하!”

 한번 실패로 물러설 무르카인 황제가 아니었다. 역대 황제 중에서도 질기기로 소문이 난 성격이었다.

 가린지 영지에 도착을 했다.

 영지에 도착하자 카론 마이어 공작이 마중을 나왔다. 마이어 공작은 공주가 온다는 것을 알고 바로 마중을 나온 것이다. 하지만 마이어 공작은 아이시런 공주를 환대하는 것보다 발생한 사건을 먼저 물었다. 공주의 여정을 방해한 것은 카이로만 제국에서도 가장 심각한 일 중에 하나였다. 뜻하지 않는 일이었다.

 가르딘은 마이어 공작이 불러서 공작의 방으로 갔다.

 마이어 공작은 전체적으로 훤칠한 인상이지만 눈매가 날카롭고 코와 입, 그리고 전체적인 윤곽이 매섭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가르딘이 공작의 방에 서서 인사를 올렸다.

 “가르딘 오브라이언입니다.”

 “인사는 됐네, 우선 어떻게 된 일인지 소상하게 말을 하게! 그리고 그 일은 황궁에 알려야 하니 절대 사견으로 대답해서는 안 되네. 사실대로 말을 하도록 하게!”

 가린지 영지와 가까운 곳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마이어 공작으로서는 섣부른 행동을 할 수 없었다. 이번 일이 자칫 반란이라는 오명으로 가게 된다면 인생의 오점이 아니라 자신의 명성이 모두 무너질 수 있었다. 그렇기에 사실을 판단하고 정확하게 증명해야 했다.

 가르딘도 아직 황궁에 보고하지는 않았다. 먼저 사건을 정리하고 마이어 공작의 말을 들어봐야 했다. 가르딘이 그의 허락도 떨어지지 않는 상태에서 먼저 황궁에 알려버리면 그 일은 마이어공작을 무시하는 일이 되었다.

 가르딘은 사실대로 말을 해주었다.

 물론 자신의 실력을 거침없이 다 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미 기사들과 병사들이 봤으니 실력을 완벽하게 숨기지는 않았다.

 설명을 듣고 있던 마이어 공작은 분노를 느꼈다. 자신의 코앞에서 코카 제국 놈들이 설쳤다는 것이 아닌가!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었다. 북방의 타이거라고 불리면서 대륙을 진동시켰던 자신의 명성에 오점으로 남게 되었다.

 “코카 제국의 소행이 확실한가?”

 “확실합니다. 다만 증명할 증거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는가?”

 “저는 피닉스기사단입니다. 라이언기사단과는 수도 없이 부딪쳤습니다. 그들을 모를지 없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가딩스타 후작이 있었습니다.”

 “그렇긴 하군, 후우!”

 마이어 공작이 한숨을 쉬었다.

 결정적 증거는 없고, 그저 정황적인 사실만이 남았다. 아무런 증거도 없이 제국 간의 마찰을 유도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확실한 증거뿐이었다. 더군다나 국력이 비슷한 곳에서는 쉽게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이 국제관계였다. 그것은 제국과 제국으로서 자존심 싸움이었다.

  여기서 아무리 라이언기사단의 비열함을 논한다고 해도 코카 제국이 절대 아니라고 말을 하면 결국 해결방법은 전쟁뿐이었다. 카이로만 제국이 강하기는 하지만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다시 전쟁을 치르고 쉽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흐지부지 넘어갈 가능성이 가장 컸다.

 어차피 일은 실패했고, 공주가 안전하니 그것으로 다행이라고 여겨야 했다. 

 “그리고 자네 축하하네, 마스터급 기사가 되었으니 말이야. 더군다나 그 어린것들까지 마스터급 기사라니 제국의 큰 경사가 아닐 수 없네!”

 마이어 공작은 검을 숭상하는 제국의 5대 마스터 중에 하나다. 마스터급 기사를 존중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과찬이십니다. 그저 검을 수련하고 노력했을 뿐입니다. 저는 지금 이대로 제국을 위해 검을 사용할 뿐입니다.”

 가르딘은 상당히 겸손하고 지극히 기사적인 마인드를 가졌다고 마이어 공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마이어 공작도 가르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의 마음과 기사의 검은 제국에 큰 도움이 될 것이네, 앞으로도 정진해서 제국의 앞날을 밝혀주기 바라네.”

 “감사합니다. 마이어 공작님.”

 “황궁에도 사실을 말해야 하는데 자네가 하게.”

 “알겠습니다.”

 마이어 공작가에는 마법통신 구슬이 존재했다. 장거리에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었다. 물론 그 가격이 비싸고, 마법사가 영구적으로 마법을 걸어줘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었다. 그렇기에 공작가가 아니고서는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 현실이었다.

 가르딘은 황궁에 이 사실을 전했다.

 공주가 습격당한 일이었지만 모두가 아는 것은 별로 좋은 일이 아니었다. 비밀리에 활실에 연락을 넣는 것이 올바른 판단이었다.

 마이어 공작은 가르딘을 환대해 주었다. 제국에 새로 생겨난 마스터급 기사였다. 그를 잘 포섭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가르딘은 기분이 벼로 좋지 않았다. 누군가의 관심을 받는다면 그만큼 행동반경과 자기단속을 철저히 해야 한다는 말이 되었다. 항상 감시의 눈길을 받는다면 그것 역시 편하지 않는 일이었다. 가르딘같이 자유롭게 행동하는 성격이라면 말이다.

 카이로만 제국 황성이 공주습격 사건으로 시끄러웠다. 비밀리에 코스트너 황제가 파스트론 공작과 재상인 슈토로 바이멘 후작을 불렀다. 황제는 나이가 많았다. 점점 나이가 들어갈수록 젊은 시절의 패기는 사라지고 권력이 분산되기 시작했다. 그 점을 알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코스트너 황제가 가장 믿는 사람은 파스트론 공작과 바이멘 후작이었다.

 황제에게 보고를 올린 사람은 파스트론 공작이었다. 가르딘이 기사단장에게 가장 먼저 소식을 알린 것이다.

 파스트론 공작은 정형적인 기사였다. 당연히 그에 따른 반격을 준비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코스트너 황제가 그들에게 물었다.

 “어찌했으면 좋겠나?”

 “당연히 코카 제국에 따져야 합니다. 이 일은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되는 중차대한 문제입니다.”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네.”

 코스트너 황제는 전쟁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 젊은 시절의 불 같은 패기가 사라지고 남은 것은 검버섯과 삶에 찌든 나이뿐이었다. 파스트론 공작은 그것이 안타까웠다.

 “어차피 증거도 없지 않나, 이대로 밀어붙여 봤자 남은 것은 전쟁뿐이네. 나는 이제 많이 늙었네! 아직도 젊은 패기를 간직한 자네가 부럽기까지 하군.”

 “무슨 말씀이십니까! 폐하께서는 아직도 정정하십니다.”“아니네, 지금 나는 후계잘ㄹ 정해야 할 나이야, 이런 중요한 시기에 전쟁을 치르면 제국의 초석이 흔들릴 수 있어.”

 후계자를 정해야 하는 때였다.

 황제의 후계자 중에 1황자가 되는 것이 당연하기는 하지만 모두의 반발을 무마시키려면 그에 따른 정당성이 확보돼야 했다. 다음 대 황제가 일어서는 시기는 내전이 불완전하기 마련이었다. 각각의 세력이 원하는 자가 황제가 되어 자신들의 권익을 대변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귀족들 간에 권련 다툼이 번번이 이루어진다. 그로 인해 제국은 혼란이 조성되고 흔들리게 된다. 불안전한 상황에서 전쟁이 벌어지면 혼란이 더욱더 가중될 것이다.

 “아이시런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

 “다시 불러들이셔야 합니다. 또다시 위험한 여정을 시키실 순 없습니다.”

 “그런가, 하지만 대륙에 공주의 성인식을 알린다는 소문이 났네, 이대로 그냥 돌아온다면 제국의 위상에 침해를 받게 되네.”

 가만히 듣고 있던 바이멘 후작이 입을 열었다.

 “폐하의 말씀이 맞습니다. 코카 제국도 더 이상의 방해는 하지 않을 겁니다. 머리가 있다면 그런 식으로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겁니다. 그러니 이번 여정을 끝까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것이 코카 제국의 명성을 떨어뜨리는 일이 될 겁니다.”

 “그렇겠지. 그리고 파스트론 공작!”

 “예, 폐하!”

 “역시 피닉스기사단이었어, 초대 선황 폐하께서 아끼셨던 기사단답게 뛰어난 기사들이 많이 나왔구먼, 이번에도 새로운 마스터급 기사가 나왔다지.”

 “그렇습니다. 폐하!”

 “자네가 수고했네.”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은 폐하의 하해와 같은 성은 때문입니다.”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네. 앞으로도 제국의 검이 되어 제국을 지켜주게.”

 “물론입니다. 폐하!”

 가르딘은 마법통신 구슬 앞에 서 잇었다.

 송신을 했으니 수신을 받을 차례였다. 가르딘은 이번 여정이 여기서 끝이 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공주가 습격받았는데 다시 여행을 할 리 없다고 굳게 믿었다.

 ‘라이나! 내가 간다오! 우리 뜨거운 밤을 보내봅시다!’ 잔뜩 기대에 부풀어서 통신구에서 나오는 대답을 기다렸다.

 파팟!

 통신구에 빛이 들어오고, 평소 보고 싶지 않은 인물이 모습을 드러내였다. 가르딘은 저 모습만 보면 밥이 밑구멍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을 느껴야 했다. 그렇지만 기분 나쁘다고 표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가르딘이 아니었다.

 “바자바인 백작님! 안녕하십니까!”

 “자네 드디어 경지를 개척했나, 축하하네! 자네의 성취를 진심으로 격려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이네! 그렇지 않나!”

 “감사합니다. 조르크 바자바인 백작님!”

  말을 해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하는데 저 인간이 말을 하면 괜히 조롱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번 여정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공주님을 습격하다니 코카 제국 놈들이 아주 실성한 것 같아, 하지만 자네들이 있어 내 안심이네, 이번 여정도 자네가 있어 순탄하게 진행이 될 수 있었네!”

 “응?”

 이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하는 심정의 가르딘이었다. 말을 들어보니 여정이 계속 이루어진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었다.

 “저기 설마 여정을 계속하는 겁니까?”

 “당연하지 않나, 마스터급 기사가 3명이나 지키고 있는데,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 난 처음부터 자네를 믿고 있었네, 이런 내 마음을 안다면 성심성의껏 일을 해결하기 바라네. 그럼 이만!”

 파팟!

 통신구의 불빛이 꺼졌다. 

 그와 동시에 가르딘의 활활 타오르던 불빛도 꺼져버렸다.

 상당히 심각한 타격을 입히고, 나 몰라라 사라지는 바자바인 백작을 향해 이를 가는 가르딘이었다. 다음에 절대로 그냥 두지 않는다고 다짐했다. 

 [가르딘 전기] 2권에서 계속

 도서명 : 가르딘전기 1

 지은이 : 건드리고고

 출판사 : 도서출판 영상노트

 출판년월일 : 2009-04-06

 봉사자 : 김미영

 <차례>

 작가서문

 프롤로그

 제1장 기사 가르딘

 제2장 신성제국으로 가는 길

 제3장 꼬여가는 상황

 제4장 무서운 신입들

 제5장 도둑길드

 제6장 라이언기사단과의 혈투

 <작가서문>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또 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생존이 어려운 장르문학에서 다시 한 번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에 감사드립니다. 아직 제 인기 죽지 않았나 봅니다! 퍼퍽! 쿨럭! 농담입니다. 필력이 상당한 작가 분들이 많이 계심에도 불구하고 미숙한 제가 벌써 3번째나 글을 쓰게 되다니 감동 그 자체입니다.

 필력 상승을 위하여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건드리고고의 일생이 이번 작품에 스며들기를 바랍니다.

  <가그딘 전기>의 주인공은 전작의 주인공과 같으면서도 약간을 다릅니다. 전작 <이계독존기>의 군천악이 냉정하며 독선적이라면 가르딘은 따뜻하지만, 때론 가족을 위해 이기적인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지극히 인간적이면서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그려봤습니다. 물론 보통의 아버지는 아닙니다. 최강의 힘을 가진 아버지이며, 가족을 위해 노력하는 데 전혀 스스럼없는 사람입니다.

 이제부터 가르딘의 일대기가 펼쳐질 테니 부담 없이 즐겁게 봐주십시오! 꼭 끝까지 봐주십시오! 안 보면 미워할 겁니다. 이건 농담 아님!

 <프롤로그>

 “형님들, 그만 하세요! 현제끼리 이럴 필요가 있습니까, 무얼 위해 이러는 겁니까!”

 작은 영지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 형제간의 골육상쟁하는 형들을 이해할 수 없는 가르딘이었다.

 권력 앞에 부모, 형제, 혈육의 정 따위는 부질없는 소모품에 지나지 않았다.

 이렇게 되도록 방치한 아버지를 더욱 용서할 수 없었다. 아버지로서 자식들을 잘 다독이고, 정을 주었다면 형제간의 다툼은 일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컸다.

 형제간의 상쟁.

 아버지의 무관심과 박대.

 지겹다.

 가르딘의 나이 15세에 영지와의 이별을 구하는 순간이었다. 

 <본문>

 제1장 기사 가르딘

 오브라이언 남작가의 3남 1녀 중에 막내로 태어난 가르딘은 어린 시절부터 영지 내의 권력다툼보다는 자유롭게 생활하는 것이 좋았다.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욕심이 없었다. 영지를 놓고 서로 다투는 형들의 모습이 슬프기까지 했다. 영지를 얻으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형들이 벌써 견제를 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심해졌다.

 나이가 들고 철이 들자 홀로 길을 나서 카이로만 제국의 기사수련 학교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곳이다. 제국의 초대 황제인 카이로만 대제가 설립을 했고, 제국의 유능한 기사들 대부분이 킹덤나이트 출신이었다.

 또한 설립목적이 우수한 기사의 양성이기에 들어오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반면에 들어와서 버티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기본적으로 배워야 할 검법을 모두 익혀야 하며 실력의 상승이 있지 않고서는 바로 퇴출이었다. 킹덤나이트는 주어진 시간과 기회를 다시 주지 않는다.

 철저히 정해진 시간 안에 모든 것을 완수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뒤처지는 자들에게는 조금의 자비도 주지 않는다.

 가르딘이 비록 어린 시절부터 검술을 익혀왔다지만 시골 영지의 검술이 뛰어날 리 만무했다.

 가르딘은 밤잠을 자지 않고 검술에 매진해야 겨우 동기들을 따라갈 수 있었다. 그의 재질도 그다지 뛰어난 편이 아니기에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킹덤나이트에서 쫓겨날 수도 있었다.

 킹덤나이트의 수련기간을 총 9년이었다.

  15살 정도에 들어가서 24살에 나오게 된다는 소리였다. 그 기간 동안 킹덤나이트의 독문검술인 스톰 검법과 일렉트릭 검법을 배우게 된다. 또한 마지막 기사시험을 받지 전에 기사수행이라고 몬스터 토벌 현장실습을 한다. 가르딘의 실력이 갑자기 일취월장한 계기가 된 일이었다. 

 타이앙!

 가르딘은 기사학교에서 배운 대로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배운 것과 실적은 확연한 차이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오크들의 신체능력을 일반 장정 4명의 힘과 맞먹을 정도로 뛰어났고, 생각보다 더 빨랐다.

 덩치가 큰 것에 비해 움직임은 날렵하고 민첩했다. 동물의 야수성과 포악함, 돌진하는 저돌성을 가진 오크는 기사들의 간식거리가 아니었다.

 오크들이 휘두르는 몽둥이와 검이 부딪치자 가르딘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만약 오러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크게 낭패를 당할 뻔했다. 현재 가드인의 실력은 오러 유저 중급ㅇ 이르러 있었다.

 일반 다른 기사수련생들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그저 평범한 기사수련생들 중에 한 명이라는 소리다. 물론 지금까지 남아서 몬스터 토벌 현장실습을 한다는 소리는 다음 대 기사자격을 갖추었다는 말이 되었다.

 따라서 이미 실력이 없어 떨어진 자들보다는 뛰어났다. 

 기사의 실력을 보면 오러를 사용하는 오러 유저, 오러를 자유롭게 뿜어내는 오러 익스퍼트, 오러의 경지를 개척한 오러 마스터로 구분되어진다. 각 단계마다 초급, 중급, 상급, 최상급으로 나누어지며, 단계마다 실력의 차이가 존재했다.

 일반적으로 기사의 실력을 평가할 때 오러 익스퍼트의 경지에 들고 나서부터가 진정한 실력자라는 말이 있었다. 따라서 오러 유저에서 익스퍼트에 들어가는 것이 생각보다 더 힘들고 난해했다. 물론 일스퍼트와 마스터의 단계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오러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일반 장정 10명 이상의 능력을 가지게 된다. 형식적이지만 오러의 단계에 따라 구분하면 가르딘은 적어도 20명 이상의 힘이 있다는 말이 되었다. 

 오크들 1마리 정도는 충분히 막아낼 수 있는 가르딘이었지만 3마리가 달라붙자 상황은 달랐다. 한 마리에서 다시 한 마리가 늘어나게 되면 그저 한 마리가 추가된 것이 아니었다. 

 손과 발이 세 배는 더 빨라져야 간신히 막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갑자기 공격하는 오크들은 킹덤나이트에서 배운 정석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킹덤나이트에는 아직 수련생이기에 어느 정도의 선을 긋고 대련을 한다.

 반면에 오크들은 수련생들을 전혀 봐주지 않는다. 먹이를 향해 최선을 다해 덤벼들고 있었다.

 오러 유저 중급이면 혼자서 오크 5마리를 상대할 수 있다고 했지만 실제가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3마리가 달라붙었는데도 가르딘은 벅차서 뒤로 밀렸다.

 ‘뭔, 오크들이 이렇게 강해!’

 오늘따라 오크들이 자양강장제를 먹었는지, 더 강하고 살벌했다. 

 흉악해 보이는 얼굴과 날카로운 이빨, 수도 없이 많이 난 상처들, 산전수전 다 겪은 오크들이라는 결론을 내었다. 몬스터 토벌 현장실습에 참여한 기사수련생의 수는 100명이었다.

 100명의 기사수련생들 모두 생전 처음 겪어 보는 현실에 벽을 느끼고 있었다. 한 번의 실수가 목숨을 잃는다는 두려움이 들었다. 극복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아는 것만큼 몸이 움직여주지 않았다. 물론 사상자가 나오지 않기 위해 준비를 한다.

 몬스터토벌이 현장이기는 하지만 엄연히 실습이었다. 실습을 하는 이유는 정신적 성장과 육체적 경험을 얻기 위한 방법일 뿐이기에 너무 위험한 일을 시키지는 않는다.

 특히 기사수련생의 뒤를 봐주기 위해서 정식기사 10명이 참관을 했다. 정식기사가 되려면 최소한 오러 익스퍼트에 올라야 한다. 정식기사들의 실력은 오크들 20마리를 혼자서 벤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가르딘의 속한 조의 조장인 바티안이 성급하게 오크들을 행해 돌진을 했기 때문이다. 바티안은 상급귀족의 자제였다.

 평소 행동이 오만하고, 타인을 무시하기는 하지만 실력 만큼에 탑클래스에 속하는 우등생이었다. 조장이 된 것도 순전히 실력이 뛰어나기에 된 것이다. 그렇지만 단 한 번도 실적을 경험해 보지 않은 우물 안 개구리였다.

 실전이 결여되었고, 경험이 부족한 바티안은 주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당황해서 성급한 결정을 하고 말았다.

 오크들도 제법 머리가 있었다. 바티안이 오크들을 죽이면서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았는지 광기를 보이며 앞으로 나가자 기사수련생들이 줄줄이 그를 따랐다. 가르딘도 여기서 떨어질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들어갔는데, 오크들이 가르딘을 포함한 기사수련생을 포위하는 격이 되어버렸다.

 앞으로 돌진하자 안을 열어주고, 그 양옆으로 동그랗게 원을 그리는 상황이었다. 빼도 박도 못하게 된 상황이었다. 어디를 돌아봐도 흉악한 오크들이 더러운 침을 흘리고 있었다.

 기사가 되기 위해 수년 동안 열심히 수련했건만 이런데서 죽는다고 생각하자 억울했다.

 “젠장! 이렇게 죽기는 싫은데.”

 가르딘은 짜증이 치밀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엄한 놈 옆에 있으면 잘못하다 죽는다는 것을 마지막이 되어야 깨달았다. 만약 살아난다면 앞에서 설치는 놈 옆에는 절대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저 자신의 안위를 가장 먼저 돌보고, 평안하게 사는 것을 지향하겠다고 말이다.

 삽시간에 공포가 휩쓸고 가자 기사수련생들 대부분이 겁에 질렸다. 100마리나 되는 오크들이 징그러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침을 흘렸다. 놈들은 눈에는 공포가 없는 것 같았다. 기사 수련생들이 맛있는 먹잇감으로 보였는지 지체하지 않고 달려들었다.

 먹이를 노리는 몬스터들은 더욱더 살벌했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덤벼드니 막기도 힘들었다.

 가르딘의 일검이 오크의 머리를 찔렀다.

 일격필살의 의지를 담았다. 이것 아니면 죽는다는 악발이 근성이었다. 오크의 눈을 파고들어 뒤통수를 검이 나온 상황이었다. 한 마리를 끝냈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가르딘은 위기를 맞았다.

 반격할 수 없는 사각에서 다른 오크가 달려들었다. 가르딘은 검을 다시 빼서 막으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오크의 근육이 너무 질겨 검이 빠지지가 않았다.

 쿠우웅!

 오크가 휘두른 몽둥이에 왼팔을 맞은 가르딘은 정신이 아찔했다. 오크가 휘두르는 힘은 보통이 아니었다. 가르딘의 몸이 허공으로 2미터나 떠오르다가 바닥으로 추락했다. 볼품없이 지면을 구른 가르딘은 신음성을 내질렀다.

 ‘크윽!’

 우드드득!

 왼팔이 부러지고, 갈비뼈까지 충격을 받았는지 가르딘의 몸이 기우뚱했다. 가르딘은 이렇게 죽는다고 생각했다. 오크들의 간식으로 잡혀먹을지 모른다는 공포가 들자 다리에 힘이 빠졌다. 마치 바닥이 흐물거려 허공에 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 느낌이 실제였다.

 바닥이 모래성처럼 기울어졌다.

 ‘어어!’

 서 있는 땅이 힘없이 무너지더니 구멍이 생겨버렸다. 밟고 있던 곳이 텅 빈 공간이 되자 가르딘의 몸이 아래로 떨어져 내려갔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부러지지 않은 오른팔과 발로 발버둥을 쳤지만 잡을 만한 것이 없었다.

 “이런...제기랄!”

 다른 기사수련생들은 가르딘이 구덩이에 빠진 것을 알지 못했다. 오크들의 공격을 방어하는 데에 정신이 팔려 있었기 때문에 가르딘에게 신경을 쓸 형편이 되지 못했다.

 구덩이로 미끄러지면서 떨어진 가르딘이었다.

 다행히 흙이 완충역할을 해서 떨어져 죽지는 않았지만 왼팔이 부러지고, 체력까지 모두 소진된 상태라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일단 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떨어진 곳을 벗어나기 위해 이리저리 흙을 밀어내며 기어갔다. 10분정도 기어가자 다행히 공터가 나왔다.

 공터의 내부는 생각보다 어둡지 않았다. 공터의 주변 동굴 벽 사이로 3개의 보석이 빛을 발하고 있어 사물을 구별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빛을 발하는 것이 신기하기는 하지만 그것보다는 빠져나갈 곳을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며 둘러보았다.

 공터를 살피다가 가르딘은 시신과 더불어 금속으로 된 판을 발견했다. 왜 이곳에 시신이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처럼 굴러 떨어져서 죽었을 것이라 생각하자 오싹했다.

 조금만 건드려도 부서지는 시신과는 다르게 금속판은 신기한 느낌을 주었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금속판을 만진다고 위험해진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기에 주저하지 않고 손을 대었다.

 상황이 촉박하고 위기에 몰리다 보니 다른 것을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신중하게 생각했다면 한순간 자신을 끄는 무언가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금속판을 잡자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섬광이 번쩍하는 충격과 함께 발끝에서 머리까지 충격을 받았다. 가르딘이 몸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정신을 잃은 가르딘은 잠을 청하는 것처럼 조용히 숨을 쉬었다.

 하루 동안 꼬박 저인을 잃고 쓰러진 가르딘은 자신의 머릿속으로 들어온 신기한 사념이 느껴졌다. 가르딘이 아는 것과는 전혀 다른 지식과 생각이었다.

 금속판에 들어 있던 사념이 가르딘의 사념과 뒤섞이며 융합이 되었다. 그러자 알 수 없는 단어들이 조합을 이루어가면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자리만 잡는 것이 아니었다. 금속판에 남겨진 사념과 지식이 가르딘의 지식에 커다란 힘을 보태주고 있었다.

 가르딘은 생각을 멈추지 않고 조합을 이루어내었다. 사실 멈추고 싶어도 이미 멈출 수 없는 단계였다. 사념 스스로 가르딘의 사념을 조종했다고 보는 것이 맞았다.

 -천공무상신공.

 용의 신공이라고 불리는 무상신공은 하늘과 소통하고, 땅의 기운을 한곳에 모아 세상의 조화를 이루어 나가는 신공이다. 무상의 신공을 극성으로 이룩한다면 능히 신인이라고 불 릴 수 있을 것이다.

 -무극칠검식.

 무극칠검식에서 중요하게 알아두어야 할 점은 바로 극한의 인내력이다. 무극이라는 말은 하늘의 끝을 벗어나 세상의 모든 것들을 이겨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삼라만상 의 오의를 검으로 표현해 냈을 때, 무극칠검식은 능히 천하제일검이라 불릴 것이다.

 -섬전보, 섬전행.

 삼전보와 섬전행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신법이며, 보법이다. 서로의 구

 분이 없이 몸 자체가 쓰로 이어져 나갈 때 신형은 이미 빛을 가를 것이다.

 -연자는 놀랐을 것이다. 나는 무림에서 활동할 당시 신마라는 사람이다. 어렸을 적부터 무공을 좋아했고, 무공의 틀은 깨기를 원했다. 그래서 끊임없이 무공을 연구했다. 세상과

 는 다른 나만의 무공을 완성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무공이 일정 수준에 올라 무림행을 했

 고, 무림행으로 인해 천무라는 별호를 얻었었다. 하지만 무림은 또 다른 강자를 원하지 않

 았다. 나의 강함을 시기했는지, 하지도 않은 일로 인해 무림공적이 되어버렸다. 무림공적

 은 무서운 일이었다. 홀로 강해봤자. 강호 전체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한줌의 먼지라는 것 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공적이 된 순간부터 나는 살기 위해 무인들을 도륙했다. 한순간 인 정을 베풀었지만 소용없었다. 무인들을 도륙했다. 한순간 인정을 베풀었지만 소용없었다.

 무인들은 나의 인정을 전혀 고려해 주지 않았다. 억울하지만 상황은 악화가 될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잠적했다. 무림의 천라지망을 가까스로 피해 숨은 것이다. 20년이 지나 세상

 에 다시 나왔다. 나는 이때부터 신마가 되었다. 세상을 향해 나는 복수의 칼을 들이밀었

 다. 정, 사, 마를 가리지 않고, 나를 죽음으로 내몬 자들을 인정사정없이 도륙했다. 시체

 가 시산혈해를 이루었고, 핏물이 흘러 산을 뒤덮었다. 강호의 어느 누구도 나의 무력을

 막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하늘도 나의 혈행을 두고 볼 수 없었는지, 내 앞을 가로막았다.

 천기자라고 불리는 인물이 하늘을 역행하는 나의 소행을 막기 위해 하나의 진을 만들었

 다.

 -역천무한진

 나의 무력은 강호의 십대고수가 모두 덤빈다고 해도 이겨낼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런 나 에게 진법은 우스운 상대일 뿐이었다. 만만히 본 나는 역천무한진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후회했다. 역천무한진을 뚫고 나갈 수 없는 진이었다. 기력이 빠지 는 마지막 순간 나는 남아 있는 모든 힘을 다해 무극칠검식을 휘둘렀다. 그런데 그때 공

 간이 갈라지고 열려진 공간으로 내가 빨려 들어가 버렸다. 동굴의 공토 안으로 들어온 나 는 진에서 빠져나왔다는 희망보다 선천진기까지 모두 소모한 내 몸이 죽어간다는 것을 먼 저 느껴야 했다. 마지막이 되자 나는 지나온 삶을 후회했다.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는 다는 것을 말이다. 만약 나의사년을 이은자가 있다면 후회 없이 자신의 길을 행복하게 살

 기 바란다.

 이계의 무공과 신마라는 사람의 사념이었다.

 금속판에 남겨진 사념덩어리가 모두 가르딘의 기억 속으로 들어갔다. 세상을 혼란스럽게 할 정도로 대단한 무공이었다. 또한 신마의 마지막 말은 충분히 공감이 갔다. 세상을 위해 해악을 끼치지도 않겠지만 영웅이 되겠다는 생각도 버렸다.

 오로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했다.

 팔이 부러진 상태에서 동굴 밖으로 나오는 것은 어려웠다. 어렵다고 생명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발악을 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여기서 얻은 지식을 써보기도 전에 죽는 것은 너무 억울한 일이었다.

 부러지지 않은 오른팔과 다리로 이곳저곳을 팠다. 다행히 흙이 단단하지 않아서 파고 나올 수는 있었다. 간신히 밖으로 나온 가르딘은 즉시 기사수련생들이 있는 곳을 찾았다. 하루가 지나서 가르딘은 킹덤나이트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날 하루가 백년처럼 느껴졌다.

 킹덤나이트로 돌아온 가르딘은 남몰래 천룡무상신공과 무극칠검식, 섬전보, 섬전행을 수련했다. 천룡무상신공은 이 세상의 어떤 마나심법보다 뛰어났다. 수련시간이 짧은데도 불구하고 남들보다 몇 배에 달하는 성취를 얻어냈다. 

 시간이 지날수록 급속하게 성장한 가르딘은 어느새 벽을 넘어버렸다. 고작 4년 만에 오러 마스터의 경지에 올라섰다. 오러 마스터의 올랐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성취였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지 않고 부단히 노력했다. 강해질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에 무섭도록 매진한 가르딘이었다.

 킹덤나이트에서 졸업하는 순간까지 실력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황실기사단에 들어가는 데는 부족하지 않았다. 남들에게 보인 가르딘의 실력은 오러 익스퍼트 중급이었다.

 확실히 그 나이 또래에서 실력이 대단한 편이었다. 그렇지만 그 정도의 실력자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같은 동기 중에 5명이 있었고, 함께 황실기사단에 들어갈 수 있었다.

 24살의 나이에 명예로운 황실기사단에 들어간 가르딘이었다. 이제는 누구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그렇다고 황실기사단들 중에 아주 뛰어나거나 아주 형편없는 편은 아니었다.

 그저 중간적인 위치를 고수하고 있었다.

 가르딘이 수도에서 생활하면서 느낀 것을 뛰어날수록 적이 많다는 것이다. 괜히 실력을 선보여 여러 곳에서 눈독을 들이게 될 경우 나중에는 빼도 박도 못하게 된다. 그저 물에 술 탄 듯 술에 물 탄 듯 흘러가는 대로 눈치를 잘 보고, 시류를 잘 타야 했다.

 권력이 집중될 것 같은 자들에게는 아부를 하고, 굽실거리며, 위험분자들에게는 평범하게 보여 관심의 대상에서 제외되도록 하는 게 오래 사는 비결이었다.

 24살 때부터 38살이 될 때까지 가르딘은 수많은 전투를 벌였다. 황실기사단이 전투에 참여한 것은 주변 강대국인 코카 제국 때문이었다. 기사단과 기사단 대결과, 일반병사들과의 대결, 공선전을 비롯한 대규모의 대전 등 다양한 전투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다.

 물론 가진 실력을 다 드러내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을 했다. 가급적 강한 상대에게는 다가가지 않고, 만만한 녀석들만 힘겹게 처리를 했다. 될 수 있으면 기사단 체면 깎이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넘어가도록 보여주었다.

 그리고 4년 전에 전쟁이 끝났다. 전쟁을 벌인 코카 제국과는 협상을 벌여 휴전을 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관계는 좋지 않았다. 코카 제국과의 전쟁으로 실전경험을 많이 하게 된 가르딘은 비약적으로 실력이 상승해서 이제 와서는 대륙제일의 검사였던 카이로만 대제의 경지에 버금가 있었다.

 일명 그랜드 마스터라는 지고의 경지를 개척했다. 사실 당시의 카이로만 대제의 실력을 훨씬 추월했을지도 몰랐다. 비교대상이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하지만 이것보다 중요한 일생의 전환이 있었다.

 가르딘이 결혼을 한 것이다. 가르딘의 결혼 상대는 평민이었다. 가르딘의 신분이 하위귀족 중에서도 가장 힘이 없는 영지의 세 번째 자손이기는 하지만 엄연히 귀족이었다. 귀족이 평민과 혼례를 치른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이 혼인은 축복받지 못했다. 가문의 호적에서 파 버린다는 가르딘의 아버지 오브라이언 남작이었다. 가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혼인한 가르딘은 영지에 절대 찾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어차피 가문에서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 자식이었기에 불만은 없었다.

 불운하게 보이는 결혼이었지만 정작 당사자인 가르딘은 너무 행복하고 기뻤다. 아내인 라이나는 가르딘이 보기에 가장 아름다웠다. 물론 객관적인 사실은 많이 다르다. 라이나가 대륙제일 미인이나 엘프와 비견된다는 것은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려는 평범한 여인이었다.

 처음에는 가르딘이 귀족이기에 거리를 두었지만 진심을 알자 가르딘 앞에서 건드러지는 말투와 애교가 장난 아니었다. 가르딘이 먼저 그녀에게 청혼하면서 평생 함께 있고 싶다고 했을 정도니 눈에 콩깍지가 제대로 씌웠다고 볼 수 있었다. 

 황실기사단의 기사와 평민과의 결혼은 절대 평범하지 않았지만 서로의 사랑으로 극복했다.

 가르딘과 라이나의 금술이 어찌나 좋은지 혼인하자마자 아이를 낳고 잘 길렀다. 태어난 아이를 브리안이라 이름 짓고, 아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주는 팔불출 아버지가 되었다.

 수도 오스란의 황궁.

 황궁의 거대한 정문으로 중년인이 들어가고 있었다. 중년인이라고 하지만 피부가 너무 좋아서 삼십을 약간 넘은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빛이 밝아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찬연한 은빛색의 갑옷.

 당당하게 벌어진 갑옷의 정면으로 새겨진 피닉스의 우렁찬 날개짓이 보통 기사단의 정복이 아니었다. 중년의 기사가 정문으로 들어가려 하자 황궁을 지키는 병사들이 알아보고 즉시 인사를 했다.

 중년인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면 병사들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만면에 미소를 짓는 중년기사는 옆집 아저씨와 같은 느낌을 주었다.

 “가드린 기사님! 안녕하십니까!”

 “그래, 그래, 수고가 많군. 랄프! 자네 아들도 잘 자라고 있나?”

 “물론입니다. 어찌나 젖을 잘 무는지 보는 제가 다 배가 고릅니다.”

 “허허, 그런가! 내 딸도 아주 쑥쑥 잘 자라고 있지, 어찌나 예쁜지 지금도 카이로만 제국에서 2번째로 예쁘다네, 물론 내 아내가 가장 아름답고 말이지.”

 아내 자랑과 딸 자랑을 거침없이 하고 난 후 사람 좋은 웃음을 선보이며 지나가는 가르딘이었다. 가르딘이 지나가고 나자 황실수비대의 랄프를 비롯한 수문병들은 저마다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가르딘 기사님은 뭐가 저렇게 좋을까?”

 “그러게 말이야, 아내 자랑, 딸 자랑에 웃음을 달고 사시니, 아직도 이해가 안 돼, 대륙제일의 기사단이라고 평가받는 피닉스기사단의 기사이시면서 어떻게 평민이랑 결혼했지?”

 “쉭! 자네들 말조심 해! 만약 가르딘 기사님 앞에서 그런 소리했다가는 어떤 꼴 당하는 줄 몰라!”

 필스가 다들 입조심 하라고 했다.

 가그린은 다른 것은 다 참아도 아내와 딸에 대한 험담 비슷한 것이라도 했다가는 절대 가만두지 않는 성격이었다.

 그에게 있어 지금의 가정, 즉 아내와 딸은 인생을 살아가는 원동력이자 모든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예전에 한 병사가 주제도 모르고, 입을 나불대다가 갑작스럽게 나타난 가르딘의 주먹 앞에 빵가루가 되도록 맞았다.

 당시에 보여준 가르딘의 모습은 맘씨 좋은 옆집 아저씨가 아니었다. 마신을 방불케 했다. 그때를 생각한 수문병들은 오싹한 한기를 맛보아야 했다.

  가르딘이 피닉스기사단으로 가는 도중에 단장인 스베인파스트론 공작을 보게 되었다. 파르트론 공작은 오러 마스터이며, 대륙제일의 기사였다. 나이가 61살이나 되었지만 아직도 40대로 보일 정도로 굳건한 체격과 완고한 인상을 풍기는 전형적인 기사였다.

 카이로만에 존재하는 5명의 오러 마스터 중에 한 명이기도 하다.

 가르딘은 파스트론 공작이 기사단에 모습을 보이자 그전까지 느긋하게 걸어오던 폼을 고쳤다. 빳빳하게 각을 세우고, 의젓한 모습을 보였다.

 전형적인 기사의 모습을 갖추 가르딘이 곧장 파스트론 공작에게 다가가서 기사의 예를 갖췄다. 정중하면서도 각이 서린 인사. 기사의 정식인사를 가장 정확하게 구현했다.

 기사수련생들이 있다면 여기 와서 인사하는 모습을 지켜보라고 한 번 말 해 주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파스트론 단장님께 가르딘이 인사드립니다!”

 목소리에는 박력이 서려지고, 눈에서는 하늘을 불태울 것 같은 열기를 내포하고 있었다.

 가르딘의 진면목을 모르는 파스트론 공작은 지금 이 모습이 가르딘의 진짜인 줄 착각하고 있었다.

 “그래, 잘 하고 있군. 기사단에 가는 중이니 같이 가세나!”

 “영광입니다.”

 가르딘은 상당히 경직되어 있었다. 만전을 기하고 잇는 것처럼 보이는 가르딘이었지만 사실 파스트론 공작이 부담스러웠다. 너무 딱딱하고, 기사의 율법을 목숨처럼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고지식하며 주관으로 똘똘 뭉쳐 있는 사람이기에 평소의 유들유들한 말투를 쓸 수 없는 대상이기도 했다.

 가르딘이 어려워하는 이유가 또 있었다.

 그는 대륙제일의 기사인 파스트론 공작이었다. 공작의 말 한 마다면, 자신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 있었다. 물론 파스트론 공작은 일을 행함에 있어 신중하며, 사견으로 수하를 내치는 인물은 아니었다.

 물론 가르딘도 죽으라고 해서 당연하게 목을 내놓는 충성스러운 기사도 아니었다. 아마 죽이려고 하면 먼저 검을 들이댈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떤 짓도 서슴없이 할 인간이었다.

 “당시에 자네의 결혼은 인상적이었네.”

 “감사합니다. 단장님! 저도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파스트론 공작은 피닉스기사단 내의 기사단원들의 개개인 신상명세를 다 기억하고 있었다. 300명이나 되는 기사단원들을 일일이 기억하는 일이 쉽지 않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생각했다.

 “딸도 있다면서.”

 “그렇습니다. 단장님!”

 “좋군, 가정이 화목해야 큰일을 할 수 있는 거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파스트론 공작과 말을 하는 동안 피닉스기사단이 머물고 있는 곳에 도착했다. 기사단에 도착한 파스트론 공작은 즉시 기사단장 집무실에 들어갔다.

 반면에 가르딘은 숨을 한 번 몰아쉬고, 동료들에게 다가갔다. 아침의 가벼운 수다는 하루의 일과를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활력소였다. 가르딘이 가는 방향에 수다 4인방 멤버가 버티고 있었다. 금세 신색을 회복한 가르딘이 동료들과 반갑게 인사를 했다.

 “자네 휴가는 잘 갔다 왔나?”

 반갑게 맞아주는 이들은 킹덤나이트 동기인 필리언, 유타, 갈라였다. 그들은 기사단에 들어올 때부터 같이 생활해 온 친구들이었다. 처음에 5명이 들어왔었는데, 2명이 전투에서 숨을 거두는 바람에 3명만 남게 되었다.

 죽으면 그걸로 끝이었다. 더 이상 위로해 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다. 살아서 재밌게 살아야 그것이 인생이었다. 다만 살아가면서 가끔씩 같이 했던 것들이 떠올린 뿐이다.

 “물론이지, 라이나와 브리안의 애교에 내 마음이 다 녹는 줄 알았네.”

 “너무 그러지 마라. 늦게 배운 도둑질이 큰일 낸다고, 너 너무 오버하는 거야!”

 “무슨 소리야, 내 아내와 딸은 대륙제일의 미인들이라고!”

 “허허!”

 어이없다는 듯이 웃는 필리언과 유타, 갈라였다. 사실 가르딘은 늦은 나이에 혼인을 했다. 31살에 했으니 다른 사람들과는 무려 10년이나 차이가 나는 경우였다.

 “그건 그거고, 오늘 무슨 일 있냐? 오다가 파스트론 단장님을 봤는데 말이야1”

 “이번에 공주님께서 라이니언 대교단에 성지순례를 겸해 예배를 드리러 간다더군.”

 “주신 라이니언이시라면, 수도에도 교단이 있잖아, 그런 일에 우리가 뭐가 필요하다고!‘

 미드라이언 대륙의 탄생과 기원의 신인 라이니언은 모든 제국과 왕국, 공국에서 믿는 주신이었다. 대륙을 구성하는 3개의 제국 중에 라이니언 신성제국의 군사력이 가장 약하지만 어느 누구도 침범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주신 라이니언 때문이었다.

 그만큼 모둔 대륙인들에게 라이니언은 가장 숭배 시 되는 신이었다. 신을 모욕하면, 재앙이 내린다는 사람들의 두려움이 한몫 하기도 했다.

 “그게 문제가 아니야, 이번에 성년이 되시는 공주님께서 신성제국의 대교단에서 성인식을 하게 되기 때문이야!”

 카이로만 제국 공주의 성인식은 이미 한 달 전에 치러졌다. 그런데 다시 신성제국에서 성스러운 인증을 받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사실 말이 좋아 인증이지, 공주의 가치를 상승시키기 위한 방책일 뿐이었다. 모든 대륙인들에게 공주의 가치를 인식시키려고 하는 것이었다.

 굳이 다시 공주의 성인식을 하는 이유는 경쟁국인 코카 제국의 공주가 신성제국에서 성스러운 인증을 받았기 때문이다. 카이로만 제국으로서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신성제국까지 파견할 기사를 구성한다던데.”

 “정말! 난 장기출장은 안 되는데, 아직 아내하고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하지 못한 것 투성이인데!”

 가르딘은 정말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결혼을 하고 나서 가급적 멀리 가는 일은 자제하고 있었던 가르딘이었기에 이번에 파견될지 몰랐다. 계속 핑계를 대며 미룰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던 것이다. 신혼이라는 약발은 이미 떨어진 지 오래였다. 물론 고위층에서 이런 사실을 안다면 헛구역질을 심하게 할지 몰랐다.

 “갈 사람들 많이 있겠지.”

 “물론이지, 대륙제일미라 불리는 공주님의 호위이니 젊은 녀석들이 너도나도 가려고 난리도 아니야!”

 대륙에 퍼진 영웅들의 이야기에서 항상 들어가는 내용이 바로 공주였다. 공주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전쟁에 임하는 영웅들의 이야기들, 모든 기사들의 로망이 아닐 수 없었다. 다만 이미 산전수전 다 겪은 가르딘에게 그런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헛소리에 불과했다. 

 가르딘이 생각하는 공주는 절대 기사들의 로망이 될 수 없는 존재다.

 황실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공주는 정략적인 결혼을 한다. 그 대상에서 기사라는 직위는 하등 쓸모없는 쓰레기 취급한다. 최소한 공작, 아니면 타 제국이나 왕국의 왕자 정도는 돼야 공주의 배우자로 선택이 된다. 더군다나 카이로만 제국은 대륙제일의 강국이었다.

 제국의 공주가 일개 기사와 결혼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다들 환상에서 벗어나라고 하고 싶었다.

 제국의 공주가 일개 기사와 결혼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다들 환상에서 벗어나라고 하고 싶었다.

 뭐, 아주 없는 일은 아니지만 오러 마스터 최상급에 이르면 약간이나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대륙에서도 최상급마스터는 아직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다.

 가르딘은 다른 기사들에게 꿈 깨라고 하고 싶었다.

 ‘미쳤냐. 공주하고 얽히면 다른 세력들이 가만히 둘 것 같아!;

 정작 중요한 이유는 공주와의 혼인이 이루어진다는 소문만으로도 언제어디서 죽을지 모르는 살얼음판을 걸어야 한다. 말이 좋아 부마지, 죽으면 소용없는 자리였다. 특히 배경없는 자신 같은 기사들은 그야말로 칼날위에 선 상황이 된다.

 “나는 빠지고 싶은데.”

 가르딘의말에 필리언이 히죽거렸다.

 “그럴 수 없을 걸, 단장님은 공정한 분이라는 것 알지, 지금까지 파견에 나가지 않은 자들 중에 한 명을 선임자로 해서 신참들을 끼워 넣을 생각이시네, 그 대상 1순위가 자네라는 데에 내가 10골드 걸지.”

 ‘윽!’

 필리언의 결정타에 급소를 맞은 것처럼 가르딘이 휘청거렸다.

 “아! 내 사랑 라이나! 근 한 달 동안 당신을 못 보게 될지도 모른다니. 이 무슨 통곡할 일인가!”

 “저!, 저...저! 미친놈! 네가 아직도 신혼이냐?”

 “너 결혼한 지 벌써 7년이야! 권태기가 왔어도 이미 왔어야 정상이라고!”

 유타와 갈라가 한심하다는 듯이 가르딘에게 빈정거렸다. 자신들도 혼인한 지 벌써 10년이 넘어 20년이 다 되가 가고 있었다. 아내가 ㅤㅅㅏㅀ은 것은 아니지만 저 정도는 아니었다. 아주 중증의 병이었다. 솔직히 저 병에 옮을까 봐 무서울 지경이다.

 “너 의처증 있는 것 아니냐?”

 “어허! 유타! 그런 소리 하는 거 아니야, 내 아내를 보고서도 그런 말을 해! 요즘 들어 젊은것들이 보는 눈이 있다고 내 아내에게 찝쩍거리는데, 하! 미인은 역시 피곤한 건가 봐! 반드시 내가 충족을 시켜줘야 해!”

 마치 신성한 의무라는 듯한 가르딘의 말에 할 말이 없는 세 친구들이었다.

 고대 신기 중에 하나인 카오스아머라는 전설적인 갑옷이 있었다. 어떤 무기도 뚫을 수 없는 무결점의 방어갑옷이라고 평가를 받았다. 그런 카오스아머에 완전히 씌웠는지 가르딘에게 어떤 말도 통하지 않았다.

 새삼 가르딘이 두렵기까지 했다. 저 미친놈하고 같이 어울리고 있는자신들이 대단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이! 가르딘!”

 “부...단장님!”

 조르크 바자바인 백작이었다.

 피닉스기사단의 부단장이자 오러 마스터에 오른 절대검사였다. 반면에 파스트론 공작과 다르게 유등유들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사교형 인물이었다. 또한 가르딘과 마음이 가장 잘 맞는 인물이기도 했다.

 유사인종은 서로 통하는 면이 있지만 너무 잘 알아서 탈이 나기도 한다.

 “오랜만에 보니 얼굴이 활짝 폈는걸!”

  “그런 말씀 마십시오, 지금 심각한 상황입니다!”

 “그것보다 자네 축하하네.”

 “예? 무슨 말씀이신지?”

 가르딘은 갑자기 와서 축하한다는 바자바인 부단장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가르딘이 굴리지 않아 녹슬고 있는 머리를 굴려보았다. 축하한다는 말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서 말이다. 평소 생각을 귀찮게 여기는 가르딘의 짱돌이 맹렬하게 회전했다.

 ‘축하, 그럼 난 공주의 경호에 빠지는 건가?’

 축하받을 수 있는 경우는 방금 생각한 것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바자바인 부단장은 그런 가르딘의 예상을 뒤집었다.

 “아름다운 공주님의 경호총책임자로 자네가 뽑혔네!”

 “예? 왜 제가 책임자입니까? 그런 중대한 일은 단장님이나 부단장님이 하시는 게 맞지 않습니까!” 

 사실 기사에게 책임자로 선택되는 일은 영광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실상 문제가 일어나면 모든 책임은 책임자에게 간다. 그것이 어떤 문제이건 말이다. 만약 일이 잘못되어 뒤틀어지게 되면 살아남는 건 고사하고, 가족들까지 위험할 수 있는 일이었다.

 “허허! 자네 너무 겸손하군.”

 ‘겸손은 무슨!’

 “아닙니다. 저는 아직 일천합니다. 여기 필리언이나, 유타, 갈라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놈들 시키란 말이야!’

 철저히 속마음을 숨긴 채 간절히 주신 라이니언에게 기도하는 가르딘이었다.

 ‘제발, 라이니언 님. 제 소원을 들어주십시오!’

 “자네 정말 겸손하군, 친구들에게 공을 떠넘기려고 하다니 기사들의 표본이야! ㄱ런 자네이기에 선택을 한 것이네, 내가 강력 추천해서 자네가 된 거니 부디 내 성의를 무시하지 말게!”

 “아! 감...사합니다. 영광으로 알겠습니다! 정말 충심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어떤 역경이 일어나도 모든 시련을 이겨낼 자신이 있습니다!”

 ‘제기랄!’

 가르딘은 생각과 다르게 온갖 미사여구를 다 갖다 붙여서 사명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차피 바자바인 부단장도 가르딘의 성격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이런 말을 해봤자 입에 발린 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고개를 끄덕여 수긍해 주었다.

 씨익!

 바자바인 백작은 능글맞게 미소를 지었다. 이미 가르딘의 속마음을 짐작하고 남았다. 자신과 같은 과인 가르딘의 생각을 모를 리 없었다.

 ‘자네 고생 좀 하게, 공주 성깔이 알려진 것과 다르게 보통이 아니야!’

 다른 녀석들과 다르게 가르딘은 놀려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렇다고 바자바인 부단장이 개인적인 사견으로 가르딘을 뽑은 것은 아니었다. 가르딘도 이제 기사단에게 적정한 나이가 되었고, 실력과 경험이 가장 많은 고참 중에 하나였다.

 바자바인 부단장이 보기에 가르딘은 뛰어난 기사였다. 실력적인 측면뿐 아니라 상황을 대처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전형적인 기사들은 틀에 박힌 자신의 주관을 그대로 유지하려고 한다. 사실 한 자리의 대표 격이 되기 위해서는 완고함보다는 정확한 상황파악과, 유연한 대처능력이 뛰어날 필요성이 있었다.

 가르딘이 약삭빠른 면이 있어서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황실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바자바인 부단장이 잠시 다른 생각을 할 때 비명이 들렸다.

 “아앗!”

 가르딘이 갑자기 옆구리가 아프다며 소리를 질렀다.

 “부단장님, 갈비뼈에 금이 갔는지 너무 아픕니다. 여기 저보다 건장하고 힘이 철철 넘치는 기사들이 많으니 그들 중에 한 명을 뽑는 것이 어떻습니까!”

 꾀병이라는 것이 너무 티가 났다. 건장하고 힘이 철철 넘치는 기사라니 대륙최강기사단이라고 불리는 피닉스기사단의 기사 중에서 힘이 없는 기사가 얼마나 되겠는가!

 그런 기사가 황실기사단에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가르딘의 어설픈 연기에 곳아줄 바자바인 부단장이 아니었다.

 “그런가, 어디 보자! 내가 잘 아는 교인이 있으니 신성력으로 금세 치료가 될 걸세!”

 “이익!”

 역시 쉽게 넘어가지 않는 바자바인 부단장이었다. 그러자 가르딘은 최후의 수단을 썼다. 사실 쓰기 싫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보니, 내일이 어머니 기일입니다. 아들 된 입장에서 어머니 기일은 찾아봬야 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이 됩니다만은!”

 “오호, 그런가! 내가 알기로 자네 어머니 기일은 4개월 전인 것으로 아는데!”

 ‘헙!’

 이 얼마나 놀라운 정보력인가!

 ‘아! 그치 한 번 써먹었구나!’

 잠시 착각을 한 가르딘은 자신의 머리를 저주했다. 전에 한 번 써먹은 것을 이제야 기억한 것이다. 요새 라이나와의 불타는 밤으로 인해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불타는 밤이 기억력 상실이라는 새로운 병을 낳고 있었다.

 입을 다문 가르딘이 다시 한 번 힘없이 말을 했다.

 “제가 잠시 착각했습니다. 아무래도 할아버님 기일인 것 같습니다!”

 “그건 7개월 전으로 알고 있네만!”

 “그럼, 아버님 기일.......”

 “자네 아무리 아버지가 싫다고 해도 살아 있는 사람을 죽은 것으로 하면 벌 받네!”

 이미 빼도 박도 못하게 된 가르딘의 얼굴은 울상이었다. 바자바인 부단장이 성의 없이 생활하는 것처럼 보여도 대단히 뛰어난 머리와 눈치를 가지고 있었다. 연륜과 경험 면에서 가르딘이 상대하기에 다른 누구보다 가장 까다로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르딘의 성향을 바자바인 부단장이 너무 잘 안다는 것이 문제였다. 역시 유사인종이었다. 어렇게 된 이상 최선을 다해 임무를 수행하는 방법뿐이었다. 일단 시작한 이상 대충하는 것은 위험했다.

 “제가... 최선을 다해 공주님을 모시겠습니다.”

 “그래, 내 자네를 믿겠네!”

 “물론입니다. 부... 단장님! 오늘 일을 깊이 새기겠습니다!”

 뿌득!

 이를 가는 가르딘이었지만 바자바인은 못 들은 척 필요한 말만 했다.

 “5일 뒤니, 그동안 아내하고 불타는 밤 잘 보내게나!”

 할 말 다하고 나니 쌔앵 하고 사라졌다. 남겨진 가르딘은 공허함을 느껴야 했다. 험난한 여정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가르딘이 오늘 한숨을 여러 번 쉬게 되었다.

 이번 공주의 순례를 원활하게 마치기 위해서 기사 30명과 더불어서 일반병사들 100명이 파견되기로 결정이 되었다. 사실 피닉스기사단 30명이면 다른 여타의 기사단 전체가 덤벼도 초전박살 낼 정도로 대단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

 제국의 기사들 중에서 고르고 고른 인재들이니 당연한 소리였다.

 터벅! 터벅!

 가르딘은 오늘 할 일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오늘따라 걸음걸이에 힘이 없고, 무거웠다.

 “제기랄, 하필이면 그 먼 신성제국까지 가야 된단 말이지!”

 신성제국에서도 대교단은 그 중심에 있었다. 멀고 먼 여정이 아닐 수 없었다. 밤길을 홀로 걷는 중년의 고독함 묻어나오는 가르딘이었다.

 라이나 없이 한 달 이상이나 홀로 밤을 지새우는 것이 너무 무서웠다. 그만큼 가르딘은 라이나에게 중독이 되어 있었다. 라이나는 같이 살면 살수록 우러나오는 진국이었다. 신마의 사념에서 읽었던, 내미지상의 여인이 바로 라이나였다.

 같이 있을수록 빠져나갈 수 없는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고뇌와 번민, 고민을 하면서도 발은 저절로 아내가 머물고 있는 집으로 향했다. 아내는 오스란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처음 아내가 일을 계속한다고 했을 때 반대를 했었다.

 피닉스기사단의 기사월급은 10골드나 되었다. 일반 평민이 1년 동안 일을 해도 10골드를 벌 수 없다.

 그 정도면 호화로운 귀족처럼 살지는 못해도 넉넉하고 풍족하게 생활할 수 있었다. 하지만 라이나가 끝까지 일을 하겠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허락을 했다. 라이나가 하고 싶어하는 일을 굳이 못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편안함이 머무는 푸른 집(편머푸).

 “이거 안 놔!”

 “왜이래, 술 좀 따르라는데 왜 이렇게 빼는 거야!”

 “이런 미친놈을 봤나, 내가 네놈보다 5살은 더 먹었겠다. 어디서 누나한테 술을 따르라는 거야!”

 라이나의 걸쭉한 입담으로 인해 찰턴이 순간 멍했다. 생긴 것은 반반한데 말은 용병생활 수십 년을 경험한 백전용병이었다.

 가르딘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용병으로 보이는 놈이 라이나의 손목을 잡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가르딘의 눈에 브레스와 같은 불똥이 튀었다. 이미 가르딘의 몸은 용병의 바로 앞에 다가가 있었다.

 슈슈슉! 러어억!

 가르딘의 주먹이 불을 뿜었다. 단 한 방에 용병 놈의 면상을 날려버렸다. 그와 동시에 번개같이 달려들어 용병 놈을 무참하게 발로 밟았다. 누가 보건 말건 눈이 뒤집힌 가르딘이었다.

 그에게 있어 라이나는 생명 이상의 존재였다. 감히 뭣 같은 용병 놈이 호흡 한턱이라도 내뱉을 수 없는 고귀한 존재이기에 이 후한 무례한 놈을 절대로 살려 둘 수 없었다.

 퍼퍼퍼퍼퍼퍽!

 같이 술 마시러 온 용병들이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에 당황하다가 일어섰다. 하지만 그들은 감히 도발할 수 없었다. 가르딘이 입은 갑옷을 봤기 때문이다. 기사를 건드리는 것은 커다란 문제였다.

 더군다나 피닉스가 그려진 갑옷을 입은 기사는 황실기사단인 피닉스기사단이었다. 황실기사단을 건드렸다가 그냥 죽지도 못할 가능성이 컸다.

  신분을 생각하면 건드리지 못하는 것이 맞지만 용기 있는 용병들 중에서 따지는 놈이 있었다. 동료가 당하는데, 그냥 있을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대단한 용기를 낸 것도 대단한 일이었다. 불같이 화내는 가르딘의 표정을 흉신악살 수준이었다. 

 찔끔한 용병은 떨리는 몸을 추스르며 말을 이었다. 

 “왜 갑자기 찰턴을 때리는 것입니까?”

 휘익!

 “감히 뭣 같은 용병 놈들이 내 아내에게 손을 대, 나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 라이나를 건드리고 무사할 줄 알아!”

 “찰턴이 언제 그랬다는 거요!”

 그들이 보기에 찰턴은 그저 식당의 주인에게 술을 따르라고 했을 뿐이었다. 피닉스기사단의 기사가 설마 식당주인의 남편이라고 누가 감히 생각할 수 있는가! 상식적인 관계는 절대 아니었다.

 글썽!

 라이나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눈물을 글썽이며 처량한 표정을 지었다. 보고 있는 가드린의 마음에 기름을 붙는 격이었다. 

 “여보! 저...분이 갑자기 손을 잡는 바람에... 흑!흑!”

 부르르르르르!

 가르딘의 몸이 경련을 일으키는 것처럼 부들부들 떨렸다.

 “이 건방진 똥 덩어리가 감히 내 사랑하는 라이나의 손목을 잡고, 행패를 부렸다 이거지 도저히 참을 수 없네!”

 신파극을 보는 듯한 상황이었다.

 용병들은 순간 벙쪄 버렸다. 라이나의 돌변한 태도와 함께 광분하는 가르딘의 행동을 보고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가르딘의 무시무시한 투기를 정명으로 받은 용병들은 서 있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과연 피닉스기사단이구나!’

 단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몸이 떨리고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압박하는 기운이 점점 거세지자 동료들이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려고 할 때였다.

 “여보, 그만 해요, 저 이제 괜찮아요! 그 정도로 용서해 주세요!”

 “아이고!라이나는 어떻게 이렇게 마음씨도 고울까! 역시 우리 마누님은 천사라니까! 얼굴도 예쁘고 마음도 곱지! 난 정말 행운아야!”

 순식간에 살기가 사라져서 숨이 트인 용병들이었지만 가르딘의 닭살 돋는 말에 다시 얼어버렸다. 대패가 있다면 닭살을 다 밀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용병들은 저럴 수도 있는 것가라는 표정들이었다. 가르딘이 용병들을 돌아보았다.

 “빨리 꺼지는 게 좋을 거다, 두 다리로 걸어 다니고 싶으면 말이지.”

 “알...겠소이다!”

 용병들은 꽁지가 빠지게 식당에서 벗어났다. 가르딘이 팔불출이라는 것을 딱 봐서 알지만 그 실력까지 팔불출은 아닌 것 같았다. 용병이 기사를 이긴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방심하거나 경험이 적은 기사라면 모르겠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가르딘에게 통할 리가 없었다.

 후우우! 후우우!

 타다다다닥! 뚝닥! 뚝닥!

 “무슨 일 있어요?”

  “음, 있어, 한동안 나 출장가야 할 것 같아!”

 “출장이요! 어떻게 그런 일이!”

 “나도 어쩔 수 없다고, 빠져나가려고 해도 할 수가 없다니까! 초소 한 달, 아니 두 달은 족히 걸릴 것 같아!”

 “그치, 그치! 난 정말 미치겠다니까! 사랑스러운 당신을 두고 어떻게 하루하루 보낼지 걱정이란 말이야!”

 가르딘은 잘 벼루어진 부엌칼을 들고 열심히 요리를 하면서 불만거리를 라이나에게 고했다. 그날 있었던 일들을 이런 식으로 해소하는 가르딘이었다. 가르딘은 보통 집에서 요리랑 빨래, 청소 등을 도맡아서 한다. 식당일을 하는 라이나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것이다.

 다른 기사들을 봤으면 기절초풍할 일이다. 할 짓이 없어서 부엌일을 한다고 하거나 부인 놔두고 뭐 하는 짓이냐고 했을 것이다.

 기사 체면 다 깎아 먹고 있는 가르딘이었다. 그렇지만 정작 당사자인 가르딘은 마냥 행복했다. 화목하게 지내며 뭐든지 해주고 싶어 하는 것이야말로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불행한 과거지사가 모두 아버지의 무관심이라고 보았던 어린 시절의 기억때문인지도 몰랐다.

 거실의 가장자리에 놓인 푹신한 의자에 앉아서 라이나는 그저 가르딘의 말을 들어주고, 동의를 해주었다. 원래 라이나도 이렇게 있지 않으려고 했는데, 가르딘의 강력한 주장으로 앉아 있었다.

 “그런데 여보.”

 “왜, 자기?”

 “브리안도 이제 학교 갈 나이가 됐어요.”

 “벌써 그렇게 됐단 말이야, 이거 참 우리 딸이 갈 학교라면 당연히 오스라인이겠지.”

 “그렇지만 문제가 있어요?”

 “무슨 문젠데, 자기! 내가 얼마든지 다 해결해 줄께!”

 오스라인은 수도 오스란에서 아이들 교육에 지대한 공을 들이는 학교였다. 최신식 교육시설과, 가르치는 선생들 모두 초일류였다. 카이로만 제국 최고의 교육시설임에는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문제는 값이 너무 엄청났다. 1년 학비가 무려 100골드였다.

 아찔!

 이제까지 모자란 것 없이 생활했던 가르딘의 허리가 휘청거렸다. 아이들 교육비가 이 정도로 비싼지 처음 안 가르딘이었다. 그저 오스란에서 오스라인 학교가 가장 좋다는 말이 있어서 한 말인데, 정말 장난 아닌 교육비였다.

 황실기사단에서 꼬박 1년 동안 일한 돈을 고스란히 학비에 써야 한다. 또한 교육이 어떻게 1년으로 끝이 나는가! 최소 6년을 보내고, 그 뒤로 다시 4년을 더 해야 한다. 교육비는 학년이 높아질수록 교재 값과 실습비 명목으로 더 값이 오를 것이다.

 ‘이거 등골 휘겠는데, 그렇다고 안 보낼 수도 없고!’

 “지금 당장 돈은 모자라지 않아요, 그동안 당신과 살면서 번 돈은 다 저축했어요! 그래서 모아 논 돈이 600골드는 돼요!”

 “와!”

 가르딘이 탄성을 지를 만했다. 결혼하기 전까지는 그저 흥청망청 쓰며, 놀았기 때문에 돈이 남아나지 않았다. 또한 빚을 조금 지는 바람에 이자 갚는데 허리가 휜 적도 있었다. 그런데 결혼하면서 빚도 갚고, 돈도 저축한 것이다. 이것이 모두 라이나의 노력 때문이었다. 라이나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되었다.

 “우리 자기는 너무 절약정신이 투철하다니까! 역시 내 마누라라니까!”

 “그래도 더 벌어놔야 노후가 걱정 없어요, 이 정도 갖고는 택도 없다는 거 알죠. 하지만 걱정 마세요, 제가 더 열심히 장사할께요!”

 덥썩!

 사랑스러운 라이나의 몸을 꼭 끌어안은 가르딘이었다. 너무 사랑스러워서 그냥 둘 수 없었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라이나를 어찌 그냥 둘 수 있는가! 식사고 뭐고 방으로 빨리 들어가고 싶은 가르딘이었다.

 “빨리 밥 먹고, 불타ㅤㅌㅡㅌ 밤을 보내자고.”

 “아이, 부끄러워요!”

 얼굴을 붉히며 말을 하는 라이나의 내숭에 원 없이 빠져 버리는 가르딘이었다. 오랜 시간 볼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가르딘의 몸은 더 타올랐다. 가르딘은 드넓은 가슴을 활짝 열어 라이나를 받아들였다. 라이나도 가르딘의 품안으로 새털처럼 날아들었다.

 아침이 밝아왔다.

 아침이 너무 빨리 와서 서운한 가르딘이지만 부지런히 일어나기는 했다.

 “아빠!”

 “이 녀석! 이리 와서 넓은 아빠의 품에 안기렴.”

 어제는 밤이어서 브리안의 자는 모습만 볼 수 있었다. 아침이 되자 아이가 일어나서 달려왔다. 품에 안긴 브리안의 뺨에 뽀뽀해 주자 브리안도 뽀뽀를 했다.

 쪼옥! 쪼옥! 쪼옥!

 라이나가 보이자 가르딘이 이리 오라고 했다.

 “자기도 아침키스 하자고!”

 라이나와 브리안, 가르딘의 닭살 가정사가 끝이 나고 나서야 겨우 황궁으로 향하는 가르딘이었다. 오늘부터 출장을 위한 여러 가지 분비를 해야 한다. 그런 이유로 지금부터 출장이나 마찬가지였다. 황실에서 야근을 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가르딘은 정말 짜증이 났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 된다. 이유 없는 명령불복종은 기사단에서 제적과 동시에 불명예를 동시에 얻는다. 앞으로의 삶에 크나큰 고난이 남게 된다. 기사단에서 쪼ㅉ겨날 수 없는 가르딘은 가정을 위해 마음을 다잡았다.

 브리안의 커 가는 모습은 가르딘에게도 행복이었다. 딸아 이에게는 무조건 최고의 아빠가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돈이 너무 절실했다. ‘라이나가 가게에서 고생하는 것은 보고 싶지 않은데, 실력을 조금 보여주고 승진할까?’

 보통 기사단이라고 하지만 호봉이 존재했다. 오랫동안 기사생활을 하게 되면 자연히 월급이 올라간다. 처음 기사단에 들어왔을 때 5골드였던 것이 지금에 이르러 10골드가 된 것이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문제였다.

 더 이상 돈이 올라가지 않는다. 돈을 더 벌기 위해서는 승진해야 한다.

 ‘부단장 월급이 30골드니까 어떻게든 부단장까지 올라가야 하는데 말이야!’

 그렇다는 말은 위로 파스트론 공작과 바자바인 백작이 물러나야 한다는 소리였다.

 ‘그들이 물러날 리가 없는데, 그럼 내가 은퇴향 하나!’

 파스트론 공작은 특이한 경우였다. 이미 나이가 들고, 연퓬이 쌓이면 대부분 정치에 뛰어들거나 영지를 다스리는 데 매진하게 된다. 보통의 기사관례와 다르게 파스트론 공작은 여전히 검과 더불어 기사단을 조련하는데 힘을 쓰고 있었다.

 그래서 물러나는 것도 한 방법이었다. 피닉스기사단에서 작위를 가진 사람은 단장과 부단장뿐이다. 하지만 피닉스기사단에서 15년 이상 장기근무를 할 경우 보통 남작보다 높은 작위인 자작을 수여받을 수 있다.

 다들 피닉스기사단에서 장기간 복무하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실력이 있다면 부단장이나 단장이 될 수 있겠지만 최소한 오러 마스터가 되어야 했다. 반면에 실력을 보이면 주변세력이 가만히 두지 않는다. 그건 별로 마음에 안 들었다.

 정치권력의 암투는 보통 상상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잔인하다. 가족들을 인질로 잡는 것은 다반사였다. 솔직히 가족들과 같이 있으면 지킬 자신이 있지만 몸이 둘이 아니고서는 완벽하게 지켜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리고 보니 어느새 나도 15년이 되어 가는구나!’

 이번 출장만 무사히 마치면 물러나서 자작을 받을 수 있을지 몰랐다. 일단 황실기사단으로 제대를 하게 되면 작위와 더불어 영지까지 받을 수 있을지 몰랐다. 그런데 문제는 영지였다. 솔직히 가르딘은 영지를 잘 다스릴 자신이 없었다.

 머리가 복잡해지는 가르딘의 생각은 기사단에 도착을 하면서 멈추었다.

 가르딘은 기사단에서 생각을 할 시간이 없었다. 단장이 불러서 갔는데, 공주가 총책임자인 자신을 보고 싶다는 말을 전했기 때문이다. 곧바로 가르딘은 지금 공주가 머물고 있는 내궁으로 가야 했다. 누구 말인데 꼼지락거릴 수 있단 말인가!

 가르딘은 내궁에 마련된 화려한 장원을 보면서 공주를 기다렸다.

 “공주님, 총책임자인 가르딘 기사님을 모셔왔습니다.”

 “흥, 난 이번에 자유롭게 여행하고 싶었다고, 이게 뭐야! 기사들이 우글거리고, 재수 없게시리!”

 쌍스러운 말을 서슴없이 하는 아이시런 공주였다. 백옥 같은 피부와 앵두 같은 입술, 황금빛 머리카락, 완벽한 미인의 조건을 갖춘 여인의 입에서 나올 만한 말은 절대 아니었다.

 그녀의 성격이 아주 악독하거나 사악한 것은 아니지만 약간은 이중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남들이 안 볼 때는 시원스레 막말하는 여인이기도 했다. 그러나막상 다른 사람들이 많이 있을 때는 절대로 자신의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 결과 사람들은 공주의 환상에 사로잡혀 있게 되었다.

 ‘뭐야! 이거!’

 별궁 내부의 정원에 마련된 곳에서 공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던 가르딘은 조금 황당했다. 공주의 성격이 설마 했는데, 정말 좋게 말해 자유분방하고, 나쁘게 말해 막 나가는 년이었다. 

 상당히 멀리 있었고, 문까지 닫혀 있는 곳까지 소리를 듣는 것은 오러 마스터라고 해도 힘든 일이다. 그랜드 마스터에 이르면서 가르딘의 오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발달이 되어 있었다. 가르딘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자미 생각하다가 오감을 귀에 집중했다. 그리고 공주가 머물고 있는 방을 향해 귀를 기울였다. 집중하자 공주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정말 이번 여행 쉽게 않겠구나! 정직하게 여행했다가는 공주의 미움을 받겠는데.’

 공주는 일상의 답답한 생활패턴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런 공주를 호위의 목적으로 타이트하게 조이면 나중에 미움 받는 것은 자신이었다. 제국의 공주에게 미움 받고 멀쩡한 사람 별로 없을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공주의 마음에 드는 게 중요했다. 마음에 들게 하기 위해서는 공주가 원하는 여행을 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별 탈 없을 것 같았다.

 공주가 나오자 가르딘이 급히 무릎을 꿇고 예의를 갖추었다.

 “기사 가르딘! 제국의 꽃인 공주님은 뵙게 되어서 무한한 영광이옵니다!”

 아이시런 공주도 기품 있게 가르딘의 예를 받았다. 좀 전에 쌍스러운 말을 한 공주가 지금의 공주라고 말을 해도 믿을 사람 없을 정도로 완벽한 연기를 하고 있는 공주였다. 정말 여자의 내숭은 상상을 초월했다. 라이나도 내숭떠는 건데, 그건 모르는 가르딘이었다.

  “저도 반가워요.”

 아이시런이 총책임자를 부른 이유는 그의 성격을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얼굴은 마음의 거울이라고 하지 않는가. 생김새에 따라서 그 사람의 성격이 관철되기 마련이다. 물론 다 그렇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가르딘은 고개를 숙이고, 공주를 바라보지 않았다. 공주를 바라보는 것 자체가 무례가 될 수도 있었다. 무례한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리는 가르딘이었다.

 “고개를 드세요.”

 “영광입니다. 공주님!”

 말을 하자 고개를 들고 공주를 바라보는 가르딘이었다. 가르딘은 자신의 눈에 존경의 염을 담았다. 경외한다는 눈빛은 하도 많이 연습해서 일단 마음을 먹으면 그대로 반영이 되는 가르딘이었다.

 공주의 연기가 제법이기는 하지만 가르딘의 연기력은 무려 20년이나 되었다. 베테랑을 넘은 수준이었다. 비록 바자바인 백작의 연기력이 더 대단해서 그에게 당하는 면이 없지않아 있지만 일반인은 따라갈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

 공주는 조금 색다른 충격을 받았다.

 자신을 본 대부분의 귀족가의 사내들은 놀라면서도 존경보다는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드러났다. 공주의 눈치도 만만치 않아서 사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반면에 눈앞에 있는 중년의 기사, 솔직히 중년에 들 정도는 아니었다.

 그보다 젊어 보이기는 했다. 아무튼 가르딘의 눈빛에서 경외심은 느껴져도 욕망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가르딘은 제법 당당하면서도 부자연스럽지 않도록 행동했다.

 공주는 이런 사람이 과연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 줄지 의문이 들었다.

 이 말을 하기 위해서는 아무도 들어서는 안 되었다. 그래서 시녀장인 엘리안을 먼저 내보냈다. 단둘이 남게 된 가르딘이었지만 전혀 헛된 마음이 들지 않았다. 가르딘의 눈에 가장 아름다운 여인은 역시나 그의 부인 라이나뿐이었다.

 “기사로 일한 지 얼마나 됐나요?”

 “14년이 조금 더 됐습니다.”

 “어머, 조금 있으면 시간을 채우네요.”

 “그렇습니다. 공주님! 말을 편하게 하십시오! 제가 불편합니다.”

 “아니에요, 저는 이게 편해요.”

 공주의 마음이 짐작이 된 가르딘이었다. 시녀까지 내 보낼 정도면 공주가 일단은 마음먹었다고 볼 수 있었다. 둘만 남게 된 상황이지만 아이시런 공주는 말을 망설이는 듯했다.

 만약 가르딘이 다름 사람에게 지금 하게 될 말을 하면, 지금까지 쌓아놓은 환상적인 이미지는 멀어진다고 봐야 했다. 제국의 공주로서 지켜야 할 위엄이 손상될지도 모르기에 망설이고 있는 것이다. 아이시런 공주는 한동안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서런이 망설이고 있을 때 가르딘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저는 잘 모르지만 공주님의 심저을 이해합니다. 공주님처럼 안에 갗힌 생활을 하다 보면 답답하 수 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저는 공주님에게 최대한 자유롭게 다닐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화들짝!

 아이시런은 너무 놀라고 말았다.

 너무나 정확하게 자신의 마음을 꿰뚫고 있는 가르딘의 말에 놀란 것이다.

 “어떻게 알았어요?”

 “공주님의 말투에서 느껴졌습니다. 무언가 하실 말씀이 있지만 제게 하기 까다로운 말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대단하네요, 가르딘 경의 능력이 놀랍네요.”

 “과찬이십니다.”

 아이시런은 또다시 색다른 충격을 받고 있었다. 확실히 자신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하는 것 같지만 사내로서의 욕망은 없어 보였다. 갑자기 가르딘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아이시런 공주는 자신도 모르게 뜻하지 않는 말을 하고 말았다.

 “혼인은 했나요?”

 “물론입니다. 사랑스러운 아내와 딸까지 있습니다. 지금 잘 자란 딸이 학교에 입학할 시기입니다.”

 ‘아!’

 아이시런 공주는 오늘따라 충격을 많이 받았다. 가르딘은 다른 일엣는 감정의 굴곡을 잘 드러내지 않지만 아내와 딸에 대해서만은 달랐다. 지금 가르딘의 표정은 그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다.

 ‘이 사람, 내 앞에서 결혼했다는 것에 행복해하다니!’

 결혼을 하건 말건 사내들이란 족속들 대부분이 이런 질문을 하게 되면 눈앞의 아름다운 여인 때문에 말을 꺼리거나 거짓말을 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가르딘은 아이시런 공주의 예상과는 다르게 솔직하고 진실하게 말을 했다.

 그려보다 자신의 아내를 더 사랑하는 것 같았다.

 약간은 심술이 난 아이시런은 짓궂은 질문을 했다.

 “아내 분이 저보다 더 아름다운가요?”

 정말 위험한 질문이었다. 가르딘은 망설여졌다. 여기서 솔직히 말을 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거짓을 말할 것인가! 정말 고민되는 가르딘이었다.

 한참 고민하던 가르딘이 정색을 했다.

 “솔직히 말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에요. 저는 솔직한 사람이 좋아요.”

 보통 기사라면 공주가 가장 아름답다고 했을 법한 상황이었다. 아이시런은 당연히 자신이 더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있기에 솔직하게 말을 하라고 한 것이었다. 어느 누가 봐도 아름다운 자신의 모습을 가장 잘 아는 아이시런 공주였다.

 “제 아내는 대륙제일 미인입니다. 그 어떤 여인보다 아름다우며, 사랑스럽습니다!”

 띠잉!

 아이시런 공주는 가르딘과 대화하면서 정말 여러 번 충격 받고 있었다. 여인을 앞에 두고 아내 자랑하는 것도 모자라서, 대륙제일 미인이라니 그런 황당한 말을 서슴없이 하는 가르딘을 보자 어이없이 하는 아이시런이었다.

 보통 사내라면 절대 이런 말을 하지 못한다. 낯간지러워서도 할 수 없다. 황당한 아이시런 공주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이번 여행 정말 재밌겠네요.”

 “공주님의 즐거운 여행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나중에 한 번 아내 분을 봤으면 좋겠네요.”

 아이시런과의 대화는 이렇게 끝이 났다. 가르딘은 궁전에서 나오면서 몇 번이나 후회를 했다. 아내 이야기만 나오면 입이 제정신이 아니었다. 자신도 모르게 서슴없이 진실을 말하고 마는 버릇이 있었다. 기사단으로 돌아가면서 가르딘은 속으로 생각했다.

 ‘거짓으로라도 공주가 아름답다고 하는 건데, 하지만 이쩔 수 없지. 진실은 가린다고 해서 가려지는 것이 아니니 말이야!’

 정말로 가르딘은 라이나가 가장 아름답게 보였다. 라이나야말로 대륙제일의 미인이자 백년에 한 번 태어날 여인이라고 생각했다. 공주가 들었다면 정말 미치고 팔짝 뛸 일이었다. 아마 보통의 다른 사내들은 미친놈이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이미 미친놈으로 불리고 있었다.

 공주의 성인식 인증식을 위한 신성제국으로의 여행 날이 다가왔다. 순례 날이 다가오자 다시 한 번 가르딘은 파르트론 단장과 바자바인 부단장에게 불려갔다. 마지막으로 조심하라는 말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 공주는 제국의 얼굴이자 상징이었다.

 상징에 타격을 받는다면 자존심이 무너지는 일이었다. 제국의 명성에 금이 가는 일이 될 수 있기에 신중을 기하라는 말을 전했다. 

 “이번 여행은 완벽한 경호가 우선이네.”

 “물론입니다. 단장님! 제가 죽더라고 공주님만은 무사히 모시고 오겠습니다!”

 ‘내가 미쳤습니까! 생판 모르는 여인을 위해 목숨을 걸게!’

 속생각은 철저히 숨기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말을 하는 가르딘이었다.

 끄덕! 끄덕!

 기사라면 모름지기 주인을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파스트론 단장이었다. 그 옆에 바자바인 부단장이 의미심장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자네의 어깨에 공주님의 안위가 달렸네, 아무쪼록 최선을 다해 주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피닉스기사단의 명예에 누가 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겠습니다!”

 “그럼, 됐네, 어서 가보게!”

 “가보겠습니다.”

 성인식 순례를 가지 전날 가르딘은 신참들을 맞이했다. 킹덤나이트의 졸업생 중에서도 상위에 속하는 10명의 신입기사들이었다. 그 중에서 가장 강한 2명이 가르딘의 눈에 들어왔다. 사물을 판단할 눈을 가진 사람이라면 당연히 눈에 띄는 외모였다.

 ‘이것들 뭐야? 벌써부터 익스퍼트 상급이야!’

 고작 24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것들이 상급의 기사였다. 이 정도 실력이면 기사단 내에서도 10위 안에 들 정도로 대단한 실력을 가진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놈들 정도면 30살 이전에 오러 마스터에 들 수도 있을 정도였다.

 가르딘은 이 녀석들의 정체가 궁금했다. 도대체 누구기에 이토록 잘 가르쳐 놓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이놈들은 정말 잘 생겼다. 여인들 꽤 울리고 다녔을 만한 외모였다.

 솔직히 부럽고 질투가 났다.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남자의 질투는 여자의 질투보다 무서울 때가 있다. 

 -미스토 발리스타.

 -스필언 파스트론.

 갑자기 천재 2명이 왔기에 누구의 자식들인지 알고 싶은 가르딘이 신상명세서를 보다가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발리스타 공작의 아들에다가 단장님의 아들이란 말이지!’

 카이로만 제국의 가장 강대한 세력과 무력을 가진 두 공작의 자손들이었다. 둘 다 오러 마스터 상급기사의 아들들이었다.

 ‘아들 교육 잘도 시켰구먼.’

 피닉스기사단의 신입이기는 하지만 대하는 것이 쉽지 않은 놈들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실수로 갈궜다가 쪼르륵 달려가 꼰지르면 자신과 같은 힘없는 기사는 바로 뎅강이었다.

 실직당하는 것도 모자라서 죽을 수도 있었다.

  ‘일단 파스트론 단장은 사적인 감정으로 기사를 내치는 인물이 아니었다. 워낙 완고한 사람이라 이유 불문하고 공적으로 명을 어기는 일을 할 경우 가차 없이 내치는 성격이었다. 아들이라고 해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옆에서 같이 생활을 해온 파스트론 단장과는 다르게 발리스타 공작의 성격을 파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겉으로 보이는 성격이 전부라고 생각하다가는 등 뒤에 칼 맞고 비명횡사할 수 있었다.

 ‘강직하고 충직한 신하에다가 1황자를 지지하는 분이라는 것 정도인데, 어쩔 수 없이 우선은 이놈들을 지켜보자!’

 가르딘은 신입기사들을 모아 놓고 살펴보았다. 이미 단장님과 부단장에게 기사입사 인사를 한 상태였다.

 가르딘이 여기서 신입기사를 모아 논 이유는 이번 공주의 성인식 순례에서 신입기사를 데리고 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신입기사들 중에서 5명이 뽑힌 상태였고, 그 안에 미토스와 스필언 역시 뽑혀 있는 상태였다.

 “만나서 반갑다. 이번 출정의 총책임을 맡은 가르딘이라고 한다.”

 신입기사들이 모두 가르딘에게 인사를 했다. 그들에게 가르딘은 까마득한 선배였다. 기사단의 율법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선배는 하늘이었다. 물론 정식 율법이 아닌 가라 율법이기는 했다.

 “이번 출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주님의 안전한 회귀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내 말을 잘 따라주어야 할 것이다. 단독으로 행동하거나 규율을 어기는 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처벌을 할 거다. 알겠는가!”

 가르딘의 몸에서 압도적인 카리스마가 방출됐다.

 -알겠습니다!

 신입기사들 훈육을 할 때 헤픈 모습을 보이는 것은 가장 경계해야 할 모습니다. 가르딘과 그 옆의 필리언과 유타, 갈라까지 위엄 있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를 썼다. 신입기사의 군기를 잡으려면 초장부터 잡아줘야 한다.

 “우선은 한 가지 예를 들겠다. 여인이 위험에 처해 있다. 그러나 그 일은 공주님의 안전과는 상관없는 상황이다. 어떻게 하겠는가?”

 신입기사들 모두 아리송해하는 상황이었다. 가르딘은 이 순간 가장 먼저 말하는 과감성과, 정확한 상황을 판단하고 대답을 했는지를 테스트하고 있었다.

 스필언이 가장 먼저 말을 했다.

 “여인을 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사는 약자를 보호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가르딘은 당장 해답을 말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미토스가 말을 했다.

 “공주님의 안전이 먼저입니다. 여인이 비록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둘 모두 타당한 의견이기는 하지만 너무 딱딱한 의견이었다. 이런 사고를 가지고는 절대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한다. 역시 아무리 뛰어나도 경험이 부족한 기사들이었다.

 “둘 다 너무 한쪽으로만 치우쳐져 있다. 우선 나는 우리의 상황과 여인의 상황을 말하지 않았다. 만약 공주님의 안전이 확실하고, 여인을 구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면 구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여인을 구하는 데 공주님의 안전에 위해가 발생한다면 그때에는 애초의 목적인 공주님의 호위에 만전을 다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벌어지는 사건은 한 가지로 정의가 될 수 없다. 시간과 상황, 장소에 따라 우리는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하고 결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지금 당장 너희들이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여러 가지의 상황을 고려하고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미토스와 스필언도 가르딘의 말에 수긍을 했다. 확실히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은 상당히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르딘은 선배의 위대함을 보여주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 노력의 결실이 점점 보이는 찰나였다.

 “어이, 능구렁이! 여기서 애들 군기 잡고 있었어!”

 ‘측!’

 어디선가 무슨 일이 생기면 나타나는 정체 모를 영웅과 같이 갑작스럽게 나타난 바자바인 부단장이었다. 부단장은 가르딘이 세워 놓은 위엄을 한순간에 부서뜨리고 있었다.

 “부... 단장님, 애들 보는데 그런 말씀은 조금!”

 “뭐, 이게 뭔 소리야, 분명 조금 전에 선배는 하늘이라고 하던데, 내 말이 말 같지 않아!”

 “아니 그게.....!”

 ‘이 자식 정말!’

 매번 이런 식이다.

 잔뜩 위엄을 세워 놓으면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바자바인 백작이다. 그래서 일부러 장소를 변경하고, 부단장 모르게 했는데도 불구하고 귀신같이 찾아오는 것을 보면 정말 황실 제일의 개코가 분명했다. 신입기사 환영식은 개코의 등장으로 결국 개판이 되었다.

 가르딘은 출정 3일 전에 공주님에게 몇 가지 의논할 게 있다고 해서 보게 되었다. 공주는 의외로 편안하게 가르딘을 대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어느 정도 자신의 성격을 악고 있기에 대하는 데 불편한 상황이 아니었다.

 “공주님을 뵙습니다.”

 “예의는 그만 차리고 무슨 일이에요?”

 “공주님의 원활한 여행을 위해서 몇 가지 필요한 물품이 있습니다.”

 “물품이요?”

 “예, 그렇습니다.”

 가르딘은 우선 공주가 은밀하게 밖으로 외출하기 위해 필요한 입을 옷과 망토에 대해서 설명을 했고, 그 다음에 외모를 바꿔주는 마법아이템을 구해야 했다. 외모에 영향을 주는 마법 아이템은 최소한 6서클 마법사만이 할 수 있는 환영마법이 필요했다.

 완벽하게 변하지 않더라고 공주의 아름다움을 가리기 위해서 어느 정도 가려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듣고 보니 그렇네요, 저는 마냥 외출할 생각만 했지, 그런 생각은 못해봤어요.”공주가 스긍하자 가르딘은 기회다 싶었다. 한번 찾아온 기회를 적절하게 이용해야 했다.

 일부러 수도에 있는 마법 상점에까지 찾아가서 가격을 물어보았다.

 -얼굴 변환 환영 아이템이 얼마요?

 -좀 비쌉니다.

 _얼마년 되는데?

 -2,000골드입니다.

 -뭐... 그게 뭐야! 내 20년 월급하고 맞먹네!

 상상을 불허하는 가격이었다. 20골드 정도면 공주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그냥 샀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가격이 너무 엄청났다. 그렇다고 공주의 외모를 아무 조치도 없이 내보낼 수도 없는 일이었다.

 가격이 가르딘이 감당할 범위를 한참이나 초월했다. 2,000골드가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정말 황당한 가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가르딘은 공주에게 직접 의견을 물으려고 한 것이다. 가르딘이 정색을 하며 공주에게 직접적인 말을 했다.

 “공주님! 마법 아이템이란 게 원체 가격이 비싸서 말입니다.”

  “돈이라면 걱정 마세요.”

 공주는 아무럽지 않다는 듯이 말을 하고 엘리안을 시켜 보석 상자를 가져오도옥 했다.

 “이게 뭡니까?”

 “열어 보세요, 안에서 필요한 만큼 꺼내 가세요.”

 상자는 공주의 개인 비고였다. 무게도 상당하고 비싼 물품으로 되어 있는 것 같았다. 들고 올 때 엘리언 말고도 3명이나 더 들었을 정도로 상당한 무게였다.

 “필요 만큼이란 말입니까!”

 상자를 열자 그 안에 100골드짜리 금화와 더불어서 온갖 값비싼 세공품이 들어 있었다. 세공품도 그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보는 눈이 없는 가르딘도 단번에 비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가르딘은 순잔 뻥 찐 얼굴이었다. 세상에 이처럼 많은 황금과 귀물은 처음 보았다.

 ‘2,000골드니까. 수고비 정도로 조금 더 가진다고 해서 공주가 탓하지는 않겠지.’

 가르딘은 정색을 하고 정중하게 3,000골드를 꺼냈다. 1,000골드나 삥땅치려는 간 큰 가르딘이었지만 아이시런 공주의 말에 급 후회를 하고 말았다.

 “그것밖에 필요 없어요, 최소한 1만 골드는 필요한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싸네요!”

 휘청!

 순간 눈동자가 휘청거렸다.

 ‘아씨! 조금 더 삥띵칠걸!’

 최소 8,000골드는 입안으로 꿀꺽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 버린 꼴이었다. 다시 더 필요하다고 하기에는 너무 구차했다. 후회는 되지만 가르딘은 이 정도에서 만족했다. 1,000골드라고 하지만 그가 지금껏 번 돈보다 더 많았다. 오늘 정말 횡재했다고 볼 수 있었다.

 “공주님의 안전과 즐거운 여행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가르딘 경만 믿겠어요.”

 아이시런은 이렇게까지 애를 써주는 가르딘이 마음에 들었다. 그를 지키는 기사들은 항상 안전을 위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런데 가르딘은 달랐다. 오히려 만약의 사태까지 대비를 하는 철두철미한 계획과 융통성을 가지고 있었다.

 후르륵!

 차부히 차를 마시고 있는 사내가 있었다. 중년의 사내였지만 그가 입고 있는 옷은 보통의 재질이 아니었다. 또한 사내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만인을 주눅 들게 할 정도로 대단했다. 그 앞으로 두 사람이 조심스레 앉아 있었다.

 “황제 폐하! 계획대로 되었습니다.”

 “그런가! 역시나 카이로만 놈들이 그런 줄 알았지.”

 중년인은 바로 미드라이언 대륙의 삼강 중에 하나인 코카 제국의 황제 무르카인이었다. 그는 조용히 차를 마시면서도 카이로만의 얘기만 나오면 날카로운 기세를 뿜어내었다.

 전에 카이로만과의 전쟁에서 먼저 선공했지만 오히려 발렌타인 성을 빼앗기고 휴전이 되어버렸다.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울화가 치밀었다.

 발렌타인 성은 코카 제국과 카이로만 제국의 경계선에 군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가진 곳이다. 그런 곳을 빼앗겼으니 무르카인 황제로서는 역정이 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다시 빚을 갚아 주어야 했다. 카이로만 놈들에게 한 방 먹일 계획을 고심 끝에 세웠다.

 “빚은 돌려줘야겠지.”

 “폐하의 식견에 거듭 놀랐습니다.”

 아부가 섞인 말을 한 자는 코카 제국의 4대 오러 마스터중에 한 명인 밸트런 이지마하 공작이었다. 또한 그 옆으로 마주보며 앉아 있는 중년인은 재상인 로베리오 ㅤㅎㅠㅌ턴 공작이었다. 사실 이번 계획은 모두 휼턴 공작의 입에서 나왔다고 하는 게 맞았다. 하지만 모든 공은 황제가 갖는 것이 원칙이었다.

 이번 계획을 위해 고카 제국에서는 일부러 무르카인 황제의 딸인 수리아 공주의 성인식을 신성제국에서 치렀다. 코카 제국에서 성인식 인증을 위해 움직였으니 당연히 카이로만 제국도 움직일 것이다. 경쟁상대국에서 한 일은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치였다.

 “공주를 반드시 잡아와라, 내 반드시 공주와 발렌타인 성을 바꾸겠다!”

 빼앗긴 성을 찾는 일이었다.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겉으로는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으로 보이게 하기 위한 술책이었다. 대륙에 소문은 카이로만 제국이 어쩔 수 없이 물러난 것으로 알 것이다. 이 일에 대한 내면은 절대로 알 수 없다.

 이번 일을 위해 코카 제국의 황실기사단인 라이언기사단 50명이 비밀리에 출정을 했다.

 “공주님이 알아보라는 것 가져왔어요.”

 엘리언이 가져온 서신에 한 사람의 신상명세가 적혀져 있었다. 아이시런 공주는 서류를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처음부터 흥미를 끌더니 적혀진 내용도 상당한 호기심을 들게 만들었다.

 -이름: 가르딘 오브라이언.

 -나이: 38세

 -출신: 오브라이언 남작가의 세 번째 아들.

 -실력: 오러 익스퍼트 상급.

 -가족: 부인과 딸이 있음.

 -특이사항: 아내로 맞은 라이나는 귀족이 아닌 평민임.

 여러 가지 사항 중에서 라이나에 대한 글이 유독 눈에 들어온 아이시런이었다. 그녀 앞에서 행복해하던 사람의 부인이라고 하기에 대단한 여인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녀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난 여인이었다.

 도대체 왜 이런 여인과 결혼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아이시런이었다. 아무리 가르딘이 배경 없는 귀족가의 자제라고 하지만 피닉스기사단에 들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가진 기사였다. 평민이 아니라 더 좋은 여인과 혼인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공주님, 그런데 왜 이런 사람의 신상명세를 살피세요?”

 엘리언은 그것이 너무 궁금했다.

 대륙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평가받는 아이시런 공주가 이미 결혼한 중년기사의 신상명세를 알아보라고 했을 때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왜 그랬다고 생각 하냐?”

 “저야 모르죠.”

 “그 사람 날 보면서도 아내 생각을 하며 행복해하던 사람이야.”

 “예! 어찌 그럴 수가!”

 엘리안은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었다는 듯이 놀라고 있었다.

 결혼을 하건 말건 사내들 대부분이 아이시런 공주 앞에서는 다른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중년의 보잘것없는 기사가 아이시런 공주보다 자기 부인을 더 생각했다고 한다. 상식적인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아니면 미친놈이거나!

 “연기한 것 아니에요. 무관심이 요즘에 통하는 줄 아는 바보 아닌가요!”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사내의 무관심이 매력인 줄 아는 멍청이들 말이다. 괜히 무뚝뚝하게 대하며 여인의 심기를 어지럽히고, 흔들리는 여인의 마음을 가진다는 말도 안 되는 말을 믿는 인간군상들.

 “아니. 그 사람은 자신의 아내를 너무 사랑하는 것 같아, 너무 특이해서 조사하라고 한 거야.”

 “특이한 게 아니라 미친놈이 아닐까요.”

 기사를 모욕하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엘리언이었다. 그만큼 놀랐다는 반증이었다. 반면에 아이시런 공주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튼 이번 여행은 즐거울 것 같아.”

 제2장 신성제국으로 가는 길

 황궁에서 나오고 난 후 맨 처음으로 간 영지는 루벤 영지였다. 루벤 영지는 황궁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대륙제일기사 파스트론 공작령에 속해 있었다.

 루벤 영지는 파스트론 공작의 확실한 명령체제하에 있는 관계로 가장 번영한 영지 중에 하나였다. 또한 매년 풍년이 들 수 있는 조건과, 몬스터나 마물의 침입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에 대륙에서도 손꼽히는 발달한 영지라고 볼 수 있었다.

 루벤 영지로 가는 길은 지루할 정도로 평온했다.

 30명의 피닉스기사단과 100명의 정규병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온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덤벼들 수 없는 규모였다. 대규모의 용병들이 덤빈다고 해도 초토화 시킬 수 있는 전력이었다.

 루벤 영지로 가는 공주 일행의 편성은 앞으로 정규병 50명과 기사 10명, 뒤로 정규병 50명과 기사 10명, 중앙에 공주의 마차가 위치하며 그 양옆으로 10명의 기사가 지키고 있었다.

 가는 길은 어떤 경우에서도 공주를 지킬 수 있도록 포위형태를 유지했다. 공주의 마차를 위해서라면 몸으로라도 방패 역할을 하기 위한 편성이었다.

 가르딘이 공주의 바로 옆에서 긴장은 하되, 감각을 날카롭게 곤두세우지는 않았다. 감각은 항상 팽팽하게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 팽팽한 실은 순식간에 잘려나갈 수 있다. 언제 어디서든지 대처할 수 있도록 풀어지지 않을 정도로 유지하는게 중요하다.

 “스필언!”

 “부르셨습니까!”

 “지금 앞으로 조금 더 가면 협곡이 나온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병사 19명을 데리고 가서 양 협곡을 철저하게 조사하게, 만일의 사태는 언제라도 발생할 수 있는 거니까!”

 “명대로 이행하겠습니다.”

 가르딘의 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웬일인지 모르지만 협곡과 협곡 사이에서 불길한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이번 여정에 총책임은 모두 가르딘에게 있었다.

 공주에게 불길한 일이 한 점이라도 벌어지게 되면 자신의 목숨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만약에 만약에라도 철저하게 조사하는 게 중요했다.

 “가르딘, 너무 조심하는 거 아니냐?”

 “아니, 확인하지 않은 협곡이다. 그 위에서 화살이라도 쏘면 우리는 큰일 날 수 있어, 난 되도록, 산행은 자제하고, 협곡은 지나가지 않으려고 했어, 하지만 루벤 영지로 가기 위해서 저 하리탄 협곡을 지나야 하니까 어쩔 수 없었을 뿐이야!”

 가르딘의 정색하는 표정과 진지한 말투에 필리언도 더 이상 말하지 못하고 있었다. 가르딘이 정색하며 진지할 때는 필리언은 여러 번 경험할 수 있었다. 가르딘의 예감은 거의가 다 적중했다.

 이상하지만 미리 대비한다고 해서 나쁠 것 없었다.

 일반적인 기사들이라면 다른 판단을 했을 것이다. 황궁에서 가장 가깝고, 대륙제일의 기사 파스트론 공작의 영지라면 안심하고 지나가려고 했을지 모른다.

 양 협곡의 위에서 숨어 있는 정체불명의 인물들은 다가오는 공주 일행을 보다가 정찰을 하러 오는 기사들을 보고 적지 않게 당황을 했다.

 ‘제법이군, 여기라면 안심하고 있을 것이라는 방심을 유도한 건데.’

 공주 일행을 습격하는 데 이곳이 좋을 것 같아서 미리 대기하고 있었는데, 상황이 틀어졌다.

 어찌되었던 기사들이 올라오게 되었을 때 발견되면 낭패였다. 정면으로 붙으면 양진영 모두 막대한 피해를 입을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카이로만 제국의 기사들과 병사들의 전면적인 공격을 받아야 한다.

 “부단장님, 어떻게 할까요?”

 “놈들 중에 제법 감이 좋은 놈이 있는 것 같다. 역시 우리의 대적인 피닉스기사단답군, 일단은 모두 후퇴하고, 다음 지점을 노린다.”

 “알겠습니다.”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협곡 사이를 빠져나갔다. 하나같이 잘 단련되고,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이었다.

 루벤 영지로 통하는 하이탄 협곡은 무사히 지나각 되었다.

 가르딘은 자신의 감각을 불길하게 만들었던 것을 좌시하지 않았다. 그랜드 마스터에 이르면서 감각이 보통 인간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발전했다. 이성적인 판단과 감성적인 판단은 약간의 착오를 불러일으킨다.

 어느 것이 옳고 그를 수 없다. 단지 자신의 주관과 객관적 사실의 양방향에서 정 중앙을 통과할 수 있도록 해야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분명 좋지 않은 예감이 스쳤는데 아니겠지.’

 공주는 마차의 창문으로 보이는 가르딘을 보았다. 냉철하게 상황을 파악하며, 위험이 있을 시에는 귀찮더라도 미리 세심하게 주의를 주고 있었다. 그의 철저하고 꼼꼼한 모습이 새롭게 다가왔다. 아내 자랑에 팔불출 같았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저런 모습도 있구나!’

 아이시런은 요즘 들어 가르딘을 가장 많이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사내로서의 감정은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지만 사내를 이토록 오랜 시간 동안 생각하기는 처음이었다.

 루벤 영지로 들어가자 영지 내에서 공주의 행차에 대한 환영식이 벌어졌다.

 가는 길마다 공주의 마차를 중심으로 2열 종대로 줄을 지어 구경을 했다. 루벤 영지의 장남인 카스티온 백작이 공주를 마중했다. 카스티온 백작은 파스트론 공작의 첫째 아들이었고, 그의 위를 이어 영지를 대리로 관리하고 있었다.

 아직 정식 승계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카스티온의 나이가 40살이 다 되어 가는 것을 감안하면 짜증나는 일일 수도 있었다.

 루벤 영지의 파스트론 공작성 앞까지 사람들이 늘어서 있는 가운데 공주가 마차에서 내리자 카스티온 백작이 환영인사를 했다.

  “공주님의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고마워요.”

 공주가 미소를 지어 보이자 주변 환경이 환해지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공주의 옆으로 가르딘이 카스티온 백작에게 기사의 예를 갖추었다.

 “이번 여정의 책임자인 가르딘 오브라이언이라고 합니다. 카스티온 백작님을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나도 반갑네, 공주님의 안전한 여정을 위해 애써주기 바라네.”

 가르딘의 눈이 카스티온 백작의 몸을 살폈다.

 대륙제일의 기사라고 평가받는 파스트론 공작의 아들치고는 너무 약했다. 이제 막 오러 유저 중급을 갓 넘을 정도였다. 스필언이 익스퍼트 상급이라고 하면 나이 차가 많이 남에도 불구하고 실력 차이가 확연하게 나고 있었다.

 ‘별종이군.’

 스필언도 자신의 형인 카스티온 백작에게 인사를 하고 대기했다. 지금 스필언은 피닉스기사단 기사의 신분으로 온 것이다. 사적으로 형이지만 임무를 맡은 이상 공적인 임무에 충실해야 했다.

 카스티온 백작도 임무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에 아는 척만 하고 공주를 수행하였다.

 “공주님을 위해 연회를 마련했습니다. 어서 드시지요!”

 “카스티온 백작님의 성의를 받겠어요.”

 아이시런 공주가 파스트론 공작성으로 들어가고 나자 가르딘은 지시를 내렸다. 병사들은 밖에서 대기하며 휴식을 취하도록 하고, 기사들은 공주를 따라서 경호임무에 충실할 것을 지시했다.

 “필리언, 10명씩 조를 정해서 공주님의 방을 호위하고, 나머지는 언제든지 출동할 수 있도록 대기하면서 휴식을 취하도록 해.”

 “명대로 하겠다!”

 “어쨌든, 사소한 것 하나라도 다 체크해서 문제가 없도록 해. 이번 임무를 생각하면 이성보다는 감이 더 필요할지도 몰라. 알겠지!”

 “물론이야.”

 루벤 영지에서는 3일 정도 머물 계획이었다. 성인식 여정에서 공주는 영지를 순례하면서 제국에 대한 충성심을 고양시키는 목적까지도 갖고 있었다.

 공주가 방문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영지민들에게는 크나큰 영광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하루 안에 떠나는 것은 귀족의 예에서 상당히 무례한 일이기에 기본적으로 3일을 머무는 것이 적당한 예로 통하고 있었다.

 물론 아주 바쁜 일이 있을 경우는 어쩔 수 없이 양해를 구하고 떠나는 것이 서로에게 예의를 지키는 방법이었다.

 아이서런 공주가 연회장에 나타나자 사람들의 시선이 한 순간에 집중되었다.

 카스티온 백작이 안내를 하고, 그 뒤를 아이시런 공주를 호위하기 위해 가르딘이 주변을 경계했다. 여기서 위험이 있을 리 없지만 강인한 인상을 심어 주기 위해서 임무에 충실한 엘리트기사를 표방할 필요가 있었다.

 “아이시런 공주님이 나오십니다!”

 카스티온 백작의 말에 연회장에 모인 귀족들이 모두 일어섰다. 연회장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이서런 공주를 바라보았다.

 ‘오! 과연!’

 ‘대륙제일 미인이라는 말이 사실이구나!’

 귀족들이라고 해서 모두 공주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보지 못한 사람들 중에서 연신 감탄성을 터뜨렸다. 이미 봤던 귀족들도 역시나 감탄을 해야 했다. 공주의 외모는 한 번 봤다고 해서 감동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여러분의 환호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아이시런 공주의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대기를 타고 주변으로 퍼지자 모두의 마음까지 시원하게 내려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짜증나!’

 반면에 실제로 아이시런 공주의 속은 빠듯하게 정해진 일과에 짜증을 내고 있었다. 하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명색이 공주였다. 공주로 태어나면서 받은 권리가 있듯이 공주는 귀족들과 백성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한다.

 체면 깎일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공주로서의 대접을 포기한다는 말과 같았다. 공주가 마음대로 행동한다고 해서 귀족들이 대놓고 불만스러운 말을 하지는 못하겠지만 스스로의 자격조차 지키지 못하는 공주가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는 못할 것이다.

 정해진 일과대로 환영회가 끝이 나고 공주가 방으로 들어갔다. 환영회에서 고품격의 위엄과 우아한 아름다움을 연기하느라 피곤한 공주였다.

 그럼에도 아이서런 공주는 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아이시런 공주는 가르딘을 방으로 불렀고 비밀 작당을 모의했다.

 “가르딘 경!”

 “예, 공주님”

 “가시의 약속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하는데,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가르딘의 속이 말이 아니었다. 공주는 벌써부터 외출을 꿈꾸고 있었다. 영지 첫날부터 수상하고 불길한 감으로 인해 예민한 가르딘이었다.

 원래대로 편안한 여행이었다면 외출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보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아니 이번 여정은 공주가 외출하는 것을 절대로 허락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시런 공주는 기사의 약속을 들먹이고 있었다. 기사는 자신의 충심을 맹세한 자에게 목숨을 건다. 그 다음으로 중요시되는 것이 바로 기사의 약속이다.

 둘의 비중에서 첫 번째가 가장 크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지만 둘 모두 목숨을 겅어야 한다는 것에는 차이가 없었다.

 공주 앞에서 호언장담을 했으니 그 약속의 무게감이 천근만근이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공주의 칼같이 파고 드는 말에 심장이 갈가리 찢겨버릴지도 몰랐다.

 가르딘은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역시나 보통내기가 아닌 공주였다. 당돌하고 당찬 공주였다.

 “오늘은 정말 짜증나는 하루였어요.”

 “그렇...습니까!”

 “나는 오늘 보통 사람들이 사는 생활을 구경하고 싶어요. 평민들의 삶을 알아야 공주로서의 삶에 충실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닌가요?”

 “평민들의 일상은 그저 그렇습니다. 볼 만한 게 절대 아닙니다.:”

 가르딘은 어떻게 해서든지 이 위기상황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정작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공주의 물음에 답하는 가르딘의 말도 궁색하기 이를 데 없었다.

 “전 보지 않고서는 믿지 않는 성격이에요. 난 약속을 지키지 않는 자를 가장 경멸하고 싫어하죠, 그리고 저는 당하고 사는 성격이 아니에요! 받은 만큼 돌려줄 거예요, 아이시런 카이로만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죠!” 

 움찔!

 공주의 풀네임을 걸고 한 약속이었다. 기사의 약속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막강한 압력이 가르딘을 짓눌렀다. 말의 무게로만 따지면 드래곤의 본체 몸무게가 내리누르는 것과 같은 충격이었다. 그랜드 마스터가 되고 이토록 땀이 나보기는 처음이었다.

 ‘제기랄! 바자바인 부단장이 떠넘길 때부터 하기 싫더라니!’

 이제는 어쩔 수 없었다.

 방법은 찾아서 아이시런 공주의 스트레스를 해소시켜 주어야 했다. 불만은 천천히 쌓이다가 한 번에 폭발한다. 그때에는 막는다는 것 자체가 어려울 정도가 될 수 있었다.

 어렵더라도 약속을 했으니 지키기로 마음먹었다.

 “공주님, 외출준비를 하십시오, 복장은 이미 구비했으니 그대로만 하시면 됩니다. 다만 공주님은 반드시 저의 뜻에 따라주어야 합니다. 물론 안전을 제외한 모든 행동은 자유입니다. 시간은 3시간 정도입니다. 그 안에 돌아보고 오셔야 합니다.”

 “물론이에요.”

 가르딘은 즉시 필리언을 비롯한 고참기사들의 편성을 재구성했다. 공주의 방 주위의 경계 폭을 조금 넓혔다. 가르딘은 최대한 눈치 채지 못하도록 교묘하게 수정을 가했다.

 시간 때를 조절하고, 경계 폭은 느슨하게 만들었다. 갑자기 경계를 느슨하게 하자 이상하게 여겼지만 경계가 철저하고 안전한 루벤 영지이기에 다들 동의를 했다. 루벤 영지에서까지 철저하게 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신참들과 달리 고참 중에서 가르딘을 잘 아는 필리언은 달랐다.

 “무슨 일이야? 여기 오기 전까지만 해도 긴장하던 놈이 갑자기 이런 식으로 경계를 풀다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단 말이야?”

 “하긴, 너는 알고 있어야겠지.”

 아무도 모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최소한 필리언은 알고 있는 게 만약의 사태에 대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가르딘은 순전히 자기중심적으로 공주에 대해서 설명을 했다. 막나가는 공주가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니 순진한 자신은 어쩔수 없이 따르는 수ㅤㅂㅏㅆ에 없다고 했다.

 이야기의 방향은 가르딘에게만 유리하도록 설명하니 듣는 사람의 오해를 유발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한 점의 거짓도 없이 진실만을 말하는 것처럼 태연했다.

 술술 말하는 가르딘의 거짓말에 필리언도 넘어가고 있었다. 가르딘을 잘 아는 필리언마저 속일 정도면 다른 사람은 말해 봐야 소용없다.

 지극히 주관적으로 편집을 한 가르딘의 말에 필리언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공주가 정말 그런 성격이야!”

 “쉿! 자칫 이 소문이 밖으로 나가면 너와 내 목은 이거야!”

 휙! 휙!

 가르딘은 목을 그어 보이며, 입 다물라고 했다. 필리언도 입을 다물고, 가르딘의 말에 집중했다.

 “그래도 그렇지 기사의 약속을 강요하다니, 그건 정말 너무 심했다!”

 가르딘은 자신이 먼저 잘 보이기 위해서 한 말을 역으로 강요에 의한 것이라고 뻔뻔스럽게 말을 했다. 물론 필리언은 그 말을 사실대로 믿고 있었다. 오랜 시간 같이 한 가르딘이었다. 우격다짐이 많기는 했지만 서로의 신뢰는 분명히 있었다.

 사사삭!

 병사들과 기사들이 허술하게 지키는 곳을 찾았다. 허술한 곳을 찾은 가르딘은 아이시런을 판 팔로 안은 상태로 담을 넘었다. 도약을 위해서는 다리와 무릎의 힘이 가장 중요하다.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 있는 힘을 다해야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가르딘은 한 번의 도약으로 담벼락을 넘었다. 담벼락을 넘어 착지를 함에도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이시런은 뒤돌아서 넘어온 담장의 높이를 보았다. 최소 6미터는 되어 보이는 곳을 혼자도 아닌 자신을 안고 넘을 것을 이상하게 여겼다. 

 ‘이 사람 생각보다 뛰어나다.’

 알려진 것으로 보면 익스퍼트 상급이라고 하지만 그보다 더 뛰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기사의 강함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아이시런 공주는 의심이 되기는 하지만 확신을 갖지는 못했다.

 아이시런 공주의 외모는 전과는 달리 많이 달라져 있었다. 눈부시게 빛나던 금발머리카락은 붉게 물들어 있었고, 눈동자와 코, 입술모양이 많이 달라져서 전의 아이시런과는 차이가 있었다.

 다만 전체적인 아름다움 사라지지는 않았다.

 아이시런 공주 특유의 향과 더불어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잡힌 몸매로 인해 독특한 아름다움을 발산했다. 누가 보더라도 매력적이었다. 다만 그 옆에서 호위하는 가르딘은 아이시런 공주의 아름다움에 관심 없이 했다.

 그녀가 아름답든 말든 그것은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는 이미 부인인 라이나에게 빠져 있는 상태였다. 다른 여인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상황대처능력과 경험 면에서 다른 누구보다 뛰어난 가르딘이었지만 여인을 평가하는 문제만큼은 다른 사람들과 완전히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 어디로 가죠?”

 여전히 아름답고 청아한 아이시런 공주의 목소리였다. 외모가 변해도 목소리만으로 충분히 아름다웠다. 사내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하고도 남을 정도로 아름다운 목소리였지만 가르딘의 심금만큼은 아무런 자극도 되지 못했다.

 “그걸 왜 제게 묻습니까? 구경 가고 싶은 곳으로 가십시오. 저는 그저 공주님이 가는 길을 지킬 뿐입니다.”

 가르딘의 퉁명스러운 말에 아이시런 공주가 입술을 삐죽거렸다.

 ‘나와 단둘이 나가는 것을 데이트라는 소린데! 피이!’

 사내와 단둘이 밖을 돌아다닌 적이 없었던 아이시런 공주였다. 당연히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옆에 있는 중년의 기사 가르딘은 설레는 마음은커녕 오히려 짜증내고 있었다. 가르딘의 생각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제대로 정신이 박혀 있다고 보아야 했다.

 자신은 제국의 공주이고, 가르딘은 일개기사였다. 아무리 생각 없는 놈이라고 해도 공주에게 사적인 감정을 가질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그게 일반적이고, 평범한 생각을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의 생각이라고 볼 수 있었다.

 반면에 아이시런은 그런 객관적인 의견보다는 감성이 시키는 대로 했으면 하는 이상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가르딘이 괘씸하다는 생각이 든 아이시런은 앞으로 나서면서 골탕을 먹여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사방이 막힌 세상에서 탁 트인 세상을 보자 마음이 풀리면서 시원해졌다.

 항상 새장 속에 갇힌 새처럼 주변사람들에게 감시 받는다는 느낌이 사라졌다. 지금이야말로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아이시런 공주는 자유를 만끽하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루벤 영지는 다른 여타 영지에 비해 발달이 잘된 곳이다. 또한 루벤 영지의 파스트론 공작성 내부에 분수대와 조형물도 제국황실에 비해 떨어지지 않았다. 분수대에는 연인들이 서로의 사랑을 속삭이며, 달을 구경하고 있었다.

 아이시런 공주는 그런 그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부러운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가르딘도 연인들의 애정행각을 보며 라이나를 생각했다.

  ‘아! 라이나! 당신과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또, 이런 체위도 하고 저런 체위도 해야 하는데, 아! 불타는 밤을 어떻게 보내야 한단 말이오!’

 아이시런 공주가 가르딘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았다면 어이없어 할 것이다.

 연인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당신을 위해서라면 저 달도 따올 수 있다고!

 (가르딘생각)- 미친놈, 달이 네놈 주머니 속에 있는 줄 알아!

 -세상 누구보다 아름다운 주론! 당신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바칠 수 있어!

 (가르딘생각)- 세상 제일은 라이나라고!

 아이시런이 연인들의 속삭임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저도 저들처럼 사랑하고 싶네요. 그럴 수 있을까요? 가르딘 경!”

 낭만적인 상황, 그 달빛 아래 속삭이는 연인들의 고백, 이 순간만큼은 그들이 너무 부러운 아이시런 공주였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가르딘에게 낯 뜨거운 마을 한 것 같았다. 기대하면 기다린 대답은 그녀의 상상을 산산이 박살냈다.

 “없습니다.”

 가르딘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공주가 어떻게 평민들처럼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한단 말인가! 공주는 언제나 그랬듯이 정략적인 결혼을 하는 것이 당연했다. 제국의 기틀과 기반을 굳건히 하기 위한 도구였다.

 슬프지만 현실이고,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었다.

 꿈틀!

 “내가 왜 할 수 없다는 거예요?”

 아이시런의 눈썹이 화난 고양이처럼 올라가 있었다. 신경질이 난 것이다. 가르딘이 성의 없이 보이는 대답에 화가 났다는 표현이 적당할 것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가르딘의 말이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 가르딘의 대답은 날카로운 비수와 같았다.

 “제국의 공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여자의 마음을 너무 모르는군요!”

 “전, 라이나의 마음만 알면 됩니다. 다른 여인의 마음은 제가 알 필요가 없습니다.”

 가르딘은 지금 아이시런 공주의 경호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있는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시런 공주와의 실랑이는 달갑지 않았다. 그래서 가르딘의 말투가 사무적이고, 딱딱한 것인지도 몰랐다. 아이시런 공주는 정말 라이나를 한번 보고 싶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사내의 마음을 이렇게 홀랑 뺏어 버릴 수 있는지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대단한 부인과 남편이네! 정말!’

 화가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시런 공주는 화가 나자 방향을 정해놓지 않고 발이 가는 대로 걸었다. 그냥 무턱대고 걷자 파스트론 공작성의 외곽까지 나오게 되었다. 루벤 영지가 제국에서 가장 발달했다고 해도 모든 곳이 다 발달한 것은 아니었다.

 영지의 외곽은 늘 힘없고, 불쌍한 자들이 있기 마련이었다. 그나마 굶어죽지 않는 것이 다행일 수 있었다. 세상은 결코 좋음 년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늘 아이시런은 세상의 어두운 부분을 확실하게 목격할 수 있었다.

  “이놈들, 내 딸은 안 된다!”

 “이거 왜이래, 돈을 갚지 못했으면서 딴 소리를 하는 거야!”

 “원금에 5배나 되는 돈이라니, 그게 말이 되느냐! 네놈들은 사기꾼들이야!”

 쥐새끼처럼 생긴 사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사내의 반항이 가소로운지 수하들에게 눈치를 주었다. 수하들이 집으로 들어가더니 아직 16살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소녀를 끌어내고 있었다. 그걸 만류하던 여인을 밀쳐버리고,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쥐새끼처럼 생긴 사내의 이름은 산토스라고 불리고 있었다. 루벤 영지 내에서 고리대금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 사내가 실질적인 고리대업의 주인은 아니었다.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행동을 할 뿐이다.

 “안 된다, 원금에 10퍼센트가 이자였다고 하지 않았느냐! 이제 와서 이렇게 하다니 네놈들은 사람도 아니다!”

 “무슨 소리야, 원금의 반이 이자고, 이자를 합쳐서 다시 원금이 된다고 여기 계약서상에 나와 있잖아!”

 마커스는 서류를 보자 몸을 부들거리며 떨었다. 서류에 적인 내용은 그가 알던 계약서와는 달랐다. 위조가 되었음이 분명했지만 놈들의 수법이 하도 교묘해서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딸이 아프기에 어쩔 수 없이 돈을 빌렸는데, 오히려 그 일로 인해 딸을 빼앗겨야 하는 상황이 왔다.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공작령이 신고할 테다!”

 “어디 해보쇼, 그래봤자 당신만 손해야! 우릴 귀찮게 하면 당신 딸뿐만 아니라 당신 아내까지 위험할 텐데 말이야!”

 뿌드드득!

 “악마 같은 놈들! 내 딸을 놔라!”

 “이 새끼가 안 되겠구먼! 좋은 말로 하는데, 끝까지 짜증나게 하네, 애들아 적당히 조져줘라!”

 “예, 형님!”

 산토스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5명의 사내들이 마커스를 집단으로 구타했다. 말리려고 했던 그의 부인마저도 같이 무자비하게 때렸다. 사람들이 할 짓이 아니었다. 원래 고리대금업을 주로 하는 자는 인정이 없다. 인정이 있다면 악덕 고리대업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모두 본 아이시런은 분노로 인해 눈이 충혈되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사람이라면 저런 것을 해서는 안 되었다.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녀가 즉시 가르딘을 돌아보았다.

 “가르딘 경!”

 “예, 공주님.”

 “지금 모습 다 봤죠, 어서 저 가족을 구해주세요!”

 공주는 인간쓰레기들을 두고 볼 수 없다는 사명감을 불태운 반면에 가르딘의 대답은 시큰둥했다.

 “안 됩니다.”

 그 말에 공주의 눈이 쌍심지가 되어버렸다. 좀 전에 화가 난 것은 그저 기분 풀이 정도였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녀는 진짜로 화가 났다. 어떻게 기사가 약한 백성을 놔두고 구하지 않는단 말인가! 이건 기사로서 문제가 있는 행동이었다.

 “지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저 사람들이 불쌍하지도 않단 말인가! 당신은 기사예요, 기사는 약자를 보호하고, 제국을 수호하는 게 임무 아닌가요!”

  “공주님의 말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상황 나름입니다. 지금 제가 저들을 도와준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죠?”

 도와줘도 소용없다는 말에 아이서런 공주가 되물었다.

 “지금 저놈들 오른팔에 달그림자와 더불어 손 그림자가 그려져 있습니다. 그게 무얼 의미하는 줄아십니끼!:

 “뭘 의미하는데요?”

 “바로 어둠의길드에 소속되어 있는 도둑길드라는 뜻입니다.”

 “도둑길드가 뭔데, 그런 소리를 하죠!”

 카이로만 제국의 황성 내에서 벗어나지 않았던 아이시런 공주가 대륙의 어두운 면인 어둠의 길드를 안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알지 못하는 일에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가르딘은 처음부터 차근히 설명을 해야했다.

 파스트론 공작령의 루벤 영지는 치안이 가장 좋은 영지였다. 함부로 도둑질을 하거나 범죄행위를 할 경우 공작령의 기사들이나 병사들에게 잡혀 들어가서 처형을 당하게 된다.

 따라서 도둑길드는 도둑길드라는 형식을 벗어 던지고 새로운 형식으로 영지 내에 자리 잡았다.

 영지 내에 자리 잡아야하는 이유가 또 있었다. 어둠의 길드는 어쌔신 길드와 도둑길드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곳이다. 어둠의 길드가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것이 정보력이다.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영지가 자리를 잡아야 한다. 영지 내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 고리대업이라는 사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 어둠의 길드도 다양한 형태로 사회에 스며들어 있었다.

 “어움의 길드는 무서운 곳입니다.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그 수만 해도 대륙전체로 놓고 보면 30만이 넘는다고 가정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가진 암살자들만 해도 10만에 달합니다. 그런 위험한 조직을 건드리라는 소리입니다. 제가 나서서 저 가족을 구한다고 해도 우리가 언제까지 저들을 막아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놈들은 집요하고 잔인합니다. 한 번 건드리면 기필코 그 원인을 제거하려고 무수한 함정과 암계, 암수를 씁니다. 제가 구해도 저 가족은 어둠의 길드에 의해 더 큰 고통을 당할 겁니다.”

 어둠의 길드에서 행하는 보복은 상상을 초월한다. 일단 건드리면 앞뒤사정 보지 않고 복수하는 것이 그들의 특성이었다. 일단 약세가 보이면 어둠의 길드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는 특성 때문이기도 했다. 

 가르딘의 설명을 들은 아이시런 공주는 무거운 침음성을 흘렸다. 가르딘의 설명대로라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현실과 이성 사이에서 고민한 공주는 결정을 내렸다.

 아이시런 공주는 가르딘의말이 옳다는 것을 인정했지만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일이 어떻게 되든 저 불쌍한 가족을 구하고 싶었다.

 “힘이 세다고 포기하는 게 기사인가요, 당신은 비겁해요!”

 “비겁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만약 공주님의 제 입장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저는 공주님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 가장 최우선으로 이루어져야합니다. 하물며 위험을 자초하는 행위를 해서 공주님의 안전에 위기가 생기면, 그건 저 혼자만의 일이 아닙니다. 제국 자체에 위험을 초래하는 일입니다.”

 가르딘은 제국이 위험하든 말든 상관없었다. 자신의 가족과 행복이 우선이지만 말은 다르게 나왔다. 제국과 제국민의 안위를 위험하게 한다고 장황하게 말을 했다.

 현실을 안다면 당연히 아니라고 해야 하건만 공주의 결심은 확고했다.

 “조들을 구하세요, 이건 공주로서의 명령이에요!”

 ‘끄응!’

  가르딘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인정했다. 공주가 저런 식으로 막무가내면 솔직히 방법은 없다. 지금도 공주에게 안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있었다. 하물며 명령까지 어기면 절대 그냥 넘어갈 공주가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일단 명령에는 따르는 것이 좋다고 판단한 가르딘이었다.

 그런데 한숨이 나왔다. 공주가 세상에 나와서 저런 모습만 보면 모두 구하려고 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주야 무슨 고생이 되겠는가! 일을 실질적으로 하는 사람은 바로 자신이었다.

 ‘제기랄! 이래서 하기 싫더라니! 어쩔 수 없고, 어떻게 구해야 좋을까!’

 가르딘은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기사의 신분을 드러내는 것은 정말 위험을 자초하는 일이었다. 적당한 핑곗거리를 생각해 내서 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민을 한 끝에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내었다.

 방법을 구하자 아이시런 공주에게 말을 했다.

 “공주님, 저기 끌려가는 아이를 시녀로 쓸 수 있습니까?”

 “시녀라니요! 무슨 소리죠?”

 “공주님이 허락하면 소녀를 구하고, 저 가정을 지킬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가르딘은 확정적인 말을 하지 않았다. 확률을 따졌을 뿐이다.아이시런 공주는 잠시 고민하다가 허락을 했다.

 “허락할게요.”

 “그럼 한번 구해보겠습니다.”

 가르딘은 그 말을 하고 소매 속에 준비한 두건으로 얼굴을 가렸다. 두건이라고 해봤자 손수건 대신으로 사용하려고 한 것이다. 라이나가 손수 만들어준 손수건을 이런 식으로 사용하는 것이 가슴 아플 뿐이다.

 산토스는 인정사정없었다.

 솔직히 마커스에게 돈을 빌려주고 나서 갚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마커스의 딸이 예쁘다는 것을 알기에 빌려주었을 뿐이다. 어리고, 예쁜 여자는 상품가치가 다른 어떤 것보다 비쌌다. 그래서 돈을 빌려주고 수를 쓴 것이다.

 마터스의 딸 쉴라를 노리고 일부러 접근한 것인데, 마커스가 사정한다고 봐줄 리가 없었다.

 ‘호오, 고것 샅 애로 삼켜도 비린내 하나안 나겠구나!’

 쉴라는 정말 귀엽고, 아름다웠다.아직 16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한두살만 더 먹으면 그 아름다움이 활짝 필 것이다. 산토스가 군침을 흘렸다. 본부에서도 쉴라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는 상황이라 한번 맛을 보고 넘길 생각을 했다.

 “이제 가자.”

 그때였다. 일을 마치고 무사 귀환할 순간에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인물이 나타났다.

 산토스가 소리쳤다.

 “네놈은 뭐냐?”

 두건을 쓴 가르딘이 음흉한 미소와 사악한 말투로 대답했다.

 “나 말이야, 사람들이 흔히 나를 인신 매매범이라고 하지, 내 할 일을 위해서 하는 말이니, 곱게 계집을 넘겨라, 그럼 네놈들의 목숨을 보장해 주마!”

 어벙!

 산토스의 수하들은 일순간 할 말을 잊었다. 자신들 앞에서 인신매매범이라고 당당하게 소리를 친 미친놈을 보고 어이없었던 것이다.

 “이런 미친놈이 어디서 지랄이야!”

  “호오! 지금 그 말은 내 말을 따르지 않겠다는 소리처럼 들리네.”

 “야, 저 미친놈 제정신 차리게 좀 만져줘라!”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자신들을 건드리지 않는 게 정상이었다. 더군다나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놈이라면 더더욱 그래서는 안 되었다. 어둠의 길드 중에 도둑길드에서 하는 일은 도둑질을 비롯해, 인신매매, 납치, 공갈, 협박 등 온갖 나쁜 일은 다하는 곳이었다.

 같은 업종에서 도둑길드에서 이목을 피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중에 도둑질을 하더라도 도둑길드에게 걸리면 손목이 잘리는 것이 보통이었다. 함부로 남의 영업장에서 영업했다는 미영 아래 말이다. 도둑도 용병처럼 도둑길드에 등록을 해야 정식도둑이 되는 것이다.

 뚜둑!

 가볍게 주먹을 말아 쥔 가르딘이었다.

 솔직히 자신도 저런 개자식들을 죽도록 패고 싶었다. 지극히 개인적으로는 보는 족족 죽여 보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공적인 관계가 얽힌 상황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기에 몰인정한 모습을 보인 것뿐이었다.

 산토스는 수하들을 믿었다. 그런데 그의 믿음은 10초를 넘기지 못했다. 순식간에 가르딘의 주먹에 빵가루가 되어버린 수하들이었다. 어떻게 때렸는지도 모를 정도로 빨랐다. 깐 시선을 돌린 사이에 모두 기절시켜버린 것이다.

 주춤!

 산토스가 추춤하더니 뒷걸을질 쳤다.

 “이놈, 날 건드리면 조직이 가만있지 않는다! 네놈도 같은 업종이면 그게 무슨 의미인 줄 알겠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네, 나는 저 계집이 예뻐서 납치하려는 것뿐이거든, 그러게 처음부터 양보했으면 이런 일 없었잖아!”

 산토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개 같은 놈, 다된 밥에 재를 뿌려!’

 산토스는 실력은 수하들보다 뛰어났지만 저렇게 쉽게 수하들 모두 때려눕힐 정도는 아니었다. 미친놈의 실력이 생각보다 더 강한 것이 그의 오판이었다. 하지만 절대 포기할 수는 없었다. 도둑길드 내에서 실패는 죽음과 직결된다. 자리 보존을 위해서는 항상 성공해야 한다.

 뒷걸음질을 치다가 손안에 비수를 잡고 그대로 던졌다. 놈이 방심하는 그 순간을 노린 것이다.

 씨익!

 가르딘은 이미 알고 있는 듯이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놈의 단검을 쳐냈다. 단검을 쳐낸 즉시 산토스의 가슴 안으로 접근해서 턱에 주먹을 날렸다.

 퍼억!

 “크앗!”

 한 방에 턱이 부서질 것 같은 충격을 받은 산토스가 공중으로 떠오르다가 다시 내려올 때 섬광과 같은 주먹세례가 이어졌다.

 퍼퍼퍼퍼퍼퍼퍼퍼퍼퍽!

 가죽공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산토스의 신형이 공중에 멈춘 것과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어찌나 많이 때리는지 산토스의 얼굴 모양이 완전히 바뀌었다.

 털썩!

 한참을 맞던 산토스가 바닥에 떨어져서 기절했다.

 가르딘은 일을 해결하고 난 후 마커스에게 다가갔다. 마커스는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다. 산토스의 수하들에게 너무 많이 맞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식을 잃지는 않았다. 마커스는 믿어지지 못할 정도로 강한 가르딘의 신위에 벌벌 떨어야 했다.

 그렇지만 딸의 납치한다는 가르딘의 말에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내 딸은 안 되오!”

 가르딘은 무서우면서도 딸을 지키려는 가장의 모습에 동정이 갔다. 자신도 이런 상황이라면 그리 행동했을 것이다.

 “딸은 내가 데려가겠소, 그게 피차 좋을 것이오.”

 “그게 무슨 소리냐? 내 딸은 내가 죽기 전에 안 된다!”

 “당신은 딸을 지킬 수 있소, 내가 딸을 안전하게 지켜주겠소, 그게 서로에게 득이 될 것이오.”

 가르딘은 일일이 그들에게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도둑길드의 집요함과 잔인함으로부터 어떻게 지킬 것이냐는 말을 했다.

 “선택은 당신들의 몫이오, 이대로 내가 가길 바란다면 그리하겠소.”

 가르딘은 마커스 가족이 불쌍하긴 하지만 이대로 가는 것이 더 편했다. 쉴라를 데리고 가면 이것저것 불편한 것이 많이 발생할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마커스는 가르딘의 정체를 알지 못하지만 그의 목소리와 말투를 들어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신분이 불확실하기에 미심쩍은 것이 가장 문제였다. 마커스의 의심은 이해가지만 가르딘의 입장에서 신분을 밝힐 수는 없었다.

 만일의 사태에 공주라는 신분이 밝혀지면 상당히 공치 아픈 일이 발생한다.

 가르딘은 마커스가 거절할 것으로 생각했다. 생판 모르는 놈에게 딸을 맞기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대답은 마커스가 아니라 쉴라의 입에서 나왔다.

 “제가 따라가겠어요!”

 “쉴라야, 안 된다!”

 “아버지, 어쩔 수 없어요, 제가 놈들에게 끌려가면 어떻게 될지 알잖아요, 차라리 이분을 따라가면 그런 일은 없을 것 같아요.”

 “그걸 어떻게 믿느냐?”

 끄덕! 끄덕!

 가르딘이 마커스의 말에 끄덕거렸다. 사실 믿는 게 더 이상할 것이다.

 ‘민들 사람을 믿어야지.’

 쉴라가 비록 어리다고 하지만 놈들이 다시 나타나게 될 경우 집이 풍비박살 난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그걸 알기에 떠나려고 하는 것이었다.

 “제 감이 그렇게 하라고 하네요, 전 걱정 마세요!”

 쉴라가 강력하게 주장하자 마커스도 스등할 수 밖에 없었다. 그도 현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이대로 도망간다고 해도 버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차라리 가능성이 있는 가르딘의 말을 듣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가르딘의 생각과는 다르게 진행되어 가고 있었다.

 “그...렇게 해라!”

 “아버지, 저 꼭 돌아올게요!”

 “그래, 그래! 돌아오너라. 내 목숨이 끊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집을 다시 일으켜 세울 테니 돌아오너라!”

 한동안 부녀를 놔두었다. 그러나 시간이 얼마 없었다.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시간이 없다, 가자!”

 가르딘은 냉정한 말로 부녀를 갈라놓았다. 부모와 자식을 갈라놓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해야 했다.

  제3장 꼬여가는 상황

 흑! 흑! 흑!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쉴라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부모님과 헤어질 때까지도 소녀는 당당했다.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고작 16살밖에 되지 않은 소녀가 부모와 떨어져서 볼 수 없게 됐는데 멀쩡할 수는 없었다.

 쉴라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가르딘과 아이시런을 따르고 있었다.

 너무 서럽게 울자 보다 못한 아이시런이 가르딘에게 눈짓을 보냈다.

 ‘응?’

 눈짓을 받은 가르딘은 ‘왜?’라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평소라면 눈치 백단인 가르딘이 모를 리 없지만 상황이 난처했다. 우는 여자아이를 달래라는 말이 되는데, 그게 쉬운 일인가! 전쟁에 나가 싸우는 일보다 더 하기 싫은 일이기에 일부러 모르쇠로 일관했다. 하지만 상대는 집요하기 그지없는 아이시런이었다.

 눈짓이 안 되자 이번에는 더 강력한 일격을 가했다.

 “지금 여자가 우는데, 뭐 하는 거예요? 그러고도 기사인가요! 여태까지 그렇게 안 봤는데, 가르딘 경은 제게 찍히고 싶은가 보내요.”

 찍힌다.

 그것도 공주에게 찍힌다.

 ‘윽!’

 드워프 중에서도 최고의 장인이 만들어 놓은 신검에 찔리는 충격을 받은 가르딘이 심장을 움켜쥐며 휘청거렸다. 공주에게 잘 보이려고 그동안 노력한 것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가르딘의 표정이 똥 씹은 것처럼 변했다.

 ‘빌어먹을, 구하라고 했으면, 책임은 자기가 지는 게 상식 아니야! 내가 획기적인 방법까지 생각해 냈는데, 나의 공을 이런 식으로 무시하다니!’

 인신매매범이라는 누구도 생각해 내지 못한 방법을 생각한 공을 인정해 달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더 강력한 공격이 올 것 같아 입을 닫았다. 가르딘이 아이시런 공주의 등쌀에 못 이겨 마지못해 쉴라에게 다가갔다.

 갈 길을 멈추고 돌아서는 가르딘의 모습에 쉴라가 흠칫했다.

 아직 가르딘과 아이시런 공주의 정체를 모르는 쉴라로서는 두려움과 무서움이 교차하고 있었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쉴라는 눈물을 흘리면서 사과를 했다. 어리지만 야무진 면도 있었다. 그런 쉴라의 모습을 바라보는 가르딘은 별다른 표정이 없었다. 그저 짜증이 났을 뿐이었다.

 ‘어떻게 위로해 줘야 잘했다고 칭찬 받을까?’

 “힘드냐?”

 “예? 그게 무슨?”

 쉴라는 갑작스러운 말을 당황했다. 그렇지만 가르딘의 다음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부모님과 헤어지고 울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하지, 마음껏 우는 것도 도움이 된다.”

 “고마워요.”

 “하지만ㄴ 운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적당히 해라! 네게 용기가 될지 모르지만 내 얘기를 해주마!”

 가르딘은 아주 진한 표정으로 정색하며 말을 했다. 진지한 모습에 쉴라도 동조가 되었다. 가르딘의 눈동자는 어떠한 사심도 없었다. 그것을 봤기에 가르딘을 따른 것이다.

 쉴라는 다른 것도 몰라도 사람 보는 눈은 확실했다. 어린 시절부터 악의와 선의에 대해서는 알아내는 능력이 있었다.

 “나도 15살에 가출했다.”

 “예? 가출이요.”

 잘 나가다가 뜬금없이 말이 이어지자 쉴라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렇지만 지금은 이렇게 어엿하게 잘 자란 중년인이 되었다. 그리고 대륙제일의 미인과, 대륙에서 두 번째로 아름다운 딸을 낳고 살고 있다. 세상 누구보다 해이복하게 살고 있다는 말이다. 어떠냐? 용기가 팍팍 솟지 않느냐!”

 “용기...가 솟...내요!”

 가르딘은 어렸을 때 가출했지만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다는 말을 한 것이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사람 이상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어느새 울음을 그쳤다. 쉴라는 가르딘이 제정신인가를 냉정하게 평가해야 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아이시런은 뒤통수를 망치로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어떻게 저따위 말을 정색을 하며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자화자찬으로 이어지는 가르딘의 쉼 없는 말을 아이시런 공주가 빠르게 잘랐다. 계속 말했다가는 자신까지 이상한 취급 받을 것 같았다. 벌써부터 쉴라의 표정이 당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아이시런 공주가 가르딘의 팔을 잡고 끌었다.

 아름다운 공주가 손을 잡아주었다는 것은 느끼지 못했다. 가르딘은 갑작스러운 공주의 행동에 의아할 뿐이다.

 “지금 그게 위로라고 한 거예요?”

 “이것보다 더 좋은 위로가 어딨습니까? 어린 나이에 가출하고서 이만큼 성공한 사람 있으면 한번 데리고 와 보십시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울음을 그치지 않았습니까!”

 가르딘이 어깨를 으슥하며 말하자 아이시런 공주는 고개를 돌렸다.

 “내가 말을 말아야지.”

 아이시런은 살면서 이런 꼴 때리는 상황을 겪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가르딘이 다시 정색하며 물었다. 

 “우선은 공주님의 환영아이템을 쉴라에게 주십시오, 놈들이 이목을 벗어나기 위해서 변장이 필요할 테니까 말입니다.”

 “알았어요.”

 “그리고 당분간 외출은 못합니다.”

 “왜요?”

 자유로운 외출이 보장되는 여행을 즐기려는 아이시런이었다.

 가르딘은 쉴라를 구하면서 공주의 단속을 위한 핑계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우선 도둑길드의 정보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환영아이템을 쉴라가 착용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공주는 자유롭게 밖을 구경할 수 없게 된다.

 그럼 경계, 보호를 해야 하는 가르딘에게 위험한 상황이 줄어들게 된다.

 어차피 할 일이라면 일석이조를 노리는 가르딘이었다.

 “만약 도둑길드가 쉴라를 발견할 경우, 기사단 전체가 도둑길드의 공격을 받아야 합니다. 놈들이 제국의 기사라고 해도 못할 것이라고 하면 오산입니다. 그렇게 될 경우, 기사들이 죽어나갈 수 있습니다. 공주님의 행동 하나에 기사들의 목숨이 걸려 있습니다. 이래도 외출하시겠습니까!”

 아이시런은 가르딘의 말을 듣고 나자 수긍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리 자신이 자유롭고 싶다지만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놀 수는 없는 일이었다.

 사실 가르딘의 말은 조금 무리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아무리 어둠의 길드에 속하는 도둑길드가 무섭다고 하지만 대륙 최강국의 피닉스기사단을 상대로 도발할 수는 없다. 감히 공주의 행차를 방해한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어차피 도둑길드 놈들도 이익집단이었다. 제국과 싸움을 해서 좋은 꼴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포기할 것이다.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시런에게 거짓말과 진실을 섞어서 아무렇지 않게 사실처럼 말을 하고 있는 가르딘이었다. 거짓을 말해도 사실처럼 사실을 말해도 사실처럼 가르딘의 철저한 말장남에 놀아나고 있는 아이시런 공주였다.

 사람이 한 명 늘은 상태에서 파스트론 공작성의 앞에까지 오게 되었다. 공작성의 높은 담벼락을 앞에 두고 가르딘과 아이시런, 쉴라가 서 있었다.

 쉴라는 왜 이곳까지 왔는지 알 수 없었다.

 아직까지도 가르딘과 아이시런의 정체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먼저 물어볼 수도 없었다. 정체를 숨기려는 자에게 함부로 캐묻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쉴라였다. 가르딘이 아이시런 공주에게 속삭였다.

 “공주님, 이제는 정체를 밝혀야 할 것 같습니다. 어차피 공작성에 들어가면 쉴라도 알아야 하는 것이니 미리 말을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아이시런은 기운이 없었다.

 불쌍한 백성을 위해 나선 것이지만 그로 인해 자신은 불이익을 당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매몰차게 고개를 돌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공주도 알고 있었다.

 선택을 했으면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말이다.

 “공주님이시라고요!”

 가르딘의 말을 듣고 난 쉴라는 가슴이 쉴 새 없이 두근거렸다. 설마 했는데, 아이시런과 가르딘의 정체가 그녀의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그녀는 즉시 바닥에 이마를 대고, 공주님에게 절을 했다.

 “평민, 쉴라가 공주님께 무례를 범했습니다!”

 평민들에게 공주는 하늘보다 높은 존재였다. 공주의 말 한마다면 살아 있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만 일어나라.”

 “하지만 어찌 제가 감히!”

 “이제부터 내가 너를 고용하는 것이니 앞으로 일은 걱정하지 마라.”

 쉴라는 너무 황송했다.

 공주가 자신을 돌봐준다고 말을 하자 그 어떤 말보다 안심이 되었다.

 가르딘은 그 옆에서 속으로 투덜거렸다.

 ‘구한 것은 난데, 엄한 데서 감사하고 있어!’

 쉴라는 공주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나서 옆에 있는 가르딘에게도 인사를 했다.

 “가르딘 기사님, 정말 고마워요!”

 “흠, 그래, 항상 그 마음을 간직하고 있어라.”

 다음에 보답하라는 속뜻이 담겨 있었다. 제일 좋은 보답은 돈이었다. 나중에 브리안의 학비에 보태고 싶었다.

 “그럼, 이제 공작성으로 들어가죠.”

 가르딘이 양옆으로 아이시런과 쉴라를 들었다. 두 명을 들고 나서 6미터나 되는 담벼락을 가볍게 넘었다. 아이시런은 역시나 이상하게 생각했다. 홀로 안고 넘을 때나 둘을 안고 넘을 때가 차이가 없었다.

 오러 익스퍼트 상급이라고 하지만 이 정도로 대단할 것 같지는 않았다.

 쉴라 역시 놀라고 있었다. 이상한 아저씨라고 생각했건만 그 실력만큼은 이상하지 않았다.

 덜! 덜! 덜!

 무심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사내 앞에서 심각하게 망가진 산토스가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또한 한쪽 팔은 덜렁거리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그는 고통보다 두려움으로 몸을 떨었다.

 의자에 앉아서 고민을 하던 사내는 바로 루벤 영지 내 도둑길드 지부장인 고든이었다. 이곳 영지 내 도둑길드를 관리 감독하는 인물이었다.

 지부장이라고 하지만 단체를 다스리는 역할을 하기에 그 위치가 높은 것은 당연했다. 산토스는 고든 직속수하 10명 가운데 한 명이었다. 악랄한 손숙과, 간계, 돈을 늘리는 능력 어느 것 하나 못하지 않는 녀석이기에 믿고 있었던 고든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실패를 했다.

 확실히 특이한 사항이었다. 루벤 영지 내에서 활동하면서 도둑길드를 건드리는 놈들은 없었다. 아무리 귀족들이 대단해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다들 도둑길드를 두려워한다. 두려움은 강함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강함에 실해는 존재해서는 안 되었다. 고든은 산토스의 보고를 들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다시 한 번 말해 봐라.”

 “갑작스럽게 나타난 놈이었습니다. 스스로 인신매매범이라고 하면서 저를 비롯한 우리아이들을 모두 쓰러뜨렸습니다.”

 “그 말을 나보고 믿으라는 소리냐?”

 도둑길드가 존재하는 곳에서 독단적으로 행동하는 놈들은 모두 잡아들이는 것이 관례였다. 함부로 활동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방안이었다. 하물며 지금까지 없었던 일이 갑작스럽게 발생했다. 고든은 책상 아래 적혀진 보고서를 보았다. 

 산토스의 말을 믿을 수가 없어서 다시 조사를 해보았다.

 -산토스를 비롯한 도둑길드원 10명이 모두 쓰러짐.

 -모두 반병신이 되어버렸고, 거동조차 할 수 없는 상태.

 -10명을 쓰러뜨릴 수 있을 정도면, 최소 A급 용병 정도의 실력자로 생각이 됨.

 -신원 불명.

 -주변을 모두 수색했지만 찾아내지 못했음.

 고든은 또다시 아리송했다. 루벤 영지 내에서 활동하는 도둑길드의 조직원들을 모두 동원해서 알아낸 정보라고 하기 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어떤 일이 발생하더라도 반나절이면 모든 정보를 속속들이 파악할 수 있다고 자부했건만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하늘 아래 태어난 존재에게는 흔적이라는 것이 있기 마련이었다. 아무런 흔적도 없이 증발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계집을 한 명 데리고 있었다.

 눈에 띄게 아름답고 어린 계집이었다.

 “혼자라면 모르겠는데 계집을 데리고 사라졌다라!”

 상황은 여러 가지가 나올 수 있었다. 인신매매범이라는 것도 이상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실력자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만들다니 그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가!

 “라엘, 너의 생각을 어떠냐?”

  “루벤 영지에서 우리의 이목을 이렇게 쉽게 피할 수는 없습니다. 상당한 신분을 가진 자라고 생각이 됩니다.”

 라엘은 길드 내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상당한 신분을 가진 자가 인신매매범을 사칭한다라, 그거 정말 우습군! 아니 날 우습게 만들었다. 그게 무슨 의미인 줄 알겠지!”

 “물론입니다.”

 고든은 쉽게 흥분하지 않으며 냉정한 위인이었다. 그리고 잔인했다. 

 당한만큼 아니, 그보다 잔인하게 보복하는 인물이었다.

 “정보력을 모두 동원해서 놈을 찾아내, 그리고 잡아와라!”

 “알겠습니다. 지부장님!”

 고든은 이미 놈을 잡아 갈기갈지 찢어발기는 상황을 생각했다.

 라엘이 나가고 나자 고든이 안절부절못하는 산토스를 바라보았다.

 움찔!

 산토스는 심장이 멎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냉정한 칼을 담고 있는 고든의 눈동자는 시리도록 무서웠다.

 “살...려, 주십시오!”

 “살고 싶으냐?”산토스는 이기적인 인간이었다. 자신을 위해서 무슨 짓도 서슴없이 하는 성격이다. 그런 성격을 가진 산토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건 바로 바신의 목숨이었다.

 “살려만... 주신다면 무슨 일이든지 하겠습니다!”

 “그래야 할 거야.”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산토스는 필사적이었다.

 고든은 살려고 바동거리는 인생들을 모두 보아왔다. 그리고 그들의 발버둥치는 모습을 보며, 차근차근 죽음의 그림자를 선사해 주는 것이 그의 버릇이었다. 마지막까지 구차하고, 비굴한 모습을 지켜볼수록 자신도 모르게 희열감이 뇌리를 지배했다.

 “돌아가서 상처를 치료해라.”

 “감...사합니다.”

 마지막 빛을 발하는 별은 타기 직전까지 화나게 빛을 발한다. 하지만 그 시간이 지나면 남겨진 것은 먼지뿐이다. 고든의 방을 나선 산토스는 머리가 복잡했다. 지금 당장은 살았지만 살아 있는 것 자체가 바늘방석이었다.

 지부장의 바로 아래에서 수십 년을 생활해 온 산토스였다.

 고든이 산토스를 아는 것처럼 산토스 역시도 고든의 성격을 알고 있었다.

 ‘언제고 나는 소모품이 된다. 그전에 대책을 세워야 돼!’

 도망칠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도둑길드의 정보망에서 어떻게 도망을 가겠는가! 어떻게 해서든 뒤통수를 칠 생각을 가지게 된 산토스였다.

 어차피 도둑이었다.

 의리 따위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물고 물리는 약육강식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아침이 밝아 오는 시간이었다.

 동이 트는 시간에 주인은 한가하지만 시녀들은 바쁘다.

 조인이 필요한 것을 마련하고, 아침식사와 옷, 세안 모든 것을 구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인이 필요한 시기에 가장 신속하고, 정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주인이 조금의 불편함도 없이 편안하게 하루 활동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일이었다.

  시녀초보는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완벽하게 이루어질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가르침이 필요하다. 시녀들의 일에 무슨 가르침이냐고 하겠지만 실상 그 일은 해보지 않고서는 어려움을 알 수 없다. 아이시런 공주의 전속시녀장인 엘리언은 새로 들어온 쉴라를 가르치고 있었다.

 사내들의 서열과 마찬가지로 여자들의 서열도 확고하다. 아니 더 치열하고, 군기가 가득 차 있다고 보는 것이 정답이었다. 쉴라도 처음에는 하루 정도 휴식을 취했다.

 아이시런 공주는 다른 사람은 다 제쳐두고, 유일하게 엘리언만은 사실을 알고 있기에 그녀에게 쉴라의 교육을 맡겼다.

 아이시런의 쉴라를 특별하게 대우하지는 않았다. 그녀에게만 특권을 준다는 것 자체가 위계질서를 무너뜨린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저 엘리언에게 당부 정도만 해주면, 알아서 잘 처리해 줄 것이다.

 어제 저녁부터 쉴라는 한눈 한 번 팔지 못하고 교육받았다. 엘리언은 다정한 것 같으면서도 무게감이 잇는 여인이었다. 공주와 있을 때는 공주의 성격에 맞추어 가벼운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게 다가 아닌 여인이었다. 상황에 맞추어 대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였다.

 고작 하루 만에 쉴라는 시녀로서의 정신교육이 확고해졌다.

 대단한 엘리언이었다.

 “우리는 공주님의 일거수일투족을 확인하고, 필요한 것을 보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임무다. 하지만 일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주님이 편안하게 생활하는 것이다. 공주님의 육체적인 편안함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불편함이 없도록 만반의 준비를 다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시녀장님!”

 가르딘은 아침에 아이시런 공주를 보필하기 위해 가는 길이었다. 가는 길 복도에 엘리언과 쉴라가 보였다. 엘리언은 평소에도 빈틈을 보이는 성격이 아니었기에 아무 말 없었지만 쉴라 역시도 군기가 들어 보였다. 가르딘은 이채를 띠었다.

 ‘얘가 외 이래?’

 어제 정체를 밝히고 나서부터 어렵게 대하지 말라고 하자 바로 활기 넘디천 쉴라였다. 그런데 고작 반나절 만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엘리언과 쉴라이 관계를 보던 가르딘은 짐작이 갔다.

 ‘엘리언 그렇게 안 봤는데, 애 갈구는 데 탁월하구나!’

 나중에 허심탄회하게 고참의 비전 갈굼 신공을 토론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엘리언과는 통하는 부분이 많을 것 같았다. 가르딘이 엘리언에게 물었다.

 “공주님은 준비가 다 되셨나?”“잠시만 기다리세요.”

 엘리언은 공주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 먼저 들어가 보았다. 가르딘은 그 잠시간의 시간 동안 쉴라와 얘기를 했다. 어제와는 너무 달라진 쉴라를 보고서 조금 당황되기는 하지만 적응을 잘하는 것 같아서 안심이었다.

 일의 책임은 아이시런에게 있지만 잘못된다면 그 뒷감당은 가르딘이 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군기가 확 들었는데.”

 “놀리지 말아요! 아저씨!”

 “윽!”

 어제 초조해하면서 불안해하기에, 그냥 편하게 부르라고 했더니 바로 ‘아저씨’라는 말이 나왔다. 쉴라의 입장에서 가르딘과의 신분 차이는 엄연히 존재했다. 그럼에도 쉴라가 그처럼 말을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쉴라야, 아무리 아저씨가 맞다고 해도, 듣는 아저씨는 오빠라는 소리가 듣고 싶구나! 어서 해보렴, 가르딘 오빠라고!”

 사실 가르딘은 귀족의 권위를 내세우고 싶은 마음 따위는 어렸을 때 버렸다. 작금의 신분적 차이를 부순다는 위험한 사상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다른 존재라고 보지는 않았다.

 태어나면서 가지는 신분은 하늘이 주어진 것이라고 한다. 그건 순전히 운이다. 그저 부모님이 황족, 왕족, 귀족이라서 태어난 자식들도 귀족인 것일 뿐이다.

 그래서 가르딘이 평민인 라이나하고 결혼하고도 행복하게 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고, 귀족이라는 허울 좋은 감투를 쓰고, 거만하게 행동했다면 라이나와 혼인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대놓고, 자신의 사상을 함부로 발설하지는 않는다. 그건 너무 위험했다. 모든 귀족들의 합공을 받고, 사지가 잘려나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아무튼 가르든은 젊은 오빠 소리를 득고 싶었다.

 그래서 쉴라에게 편하게 대하라고 했건만 기대는 다시 한번 박살이 났다.

 “어떻게 아버지보다 나이 많은 사람을 오빠라고 해요!”

 “헛!”

 쉴라의 아버지인 마커스의 나이가 36살이었다. 그럼 가르딘보다는 2살이나 어리다는 소리다.

 ‘제기랄! 그때 본 마터스는 적어도 나보다 10살은 많겠다!’

 쉴라를 구할 당시 마커스의 얼굴을 40살은 넘어 보였다. 그런데 실제 나이가 36살밖에 안 된 것이다.

 ‘그놈은 왜 그렇게 겉늙은 거야!’

 그건 그렇다 치고 좀 전까지 군기 가득한 쉴라의 말투가 변해 있었다. 어제와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소리였다. 그렇다는 말은 자신한테는 잘 보일 필요가 없다는 말이 되는 것이 아닌가!

 엘리언은 눈치를 보면서 정작 자신은 지나가는 개만도 못하다는 괘씸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허! 이런 맹랑한 놈을 봤나! 이제 볼짱 다 봤다 이거지! 화장실 들어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라고 하더니, 그게 맞는 말이었구나!’

 따끔한 일침을 가하려고 할 때였다.

 “이놈아! 아무리 내가 편해도 그렇지, 너 그러는 거 아니다!”

 언성이 조금 높아지고 있었다.

 그 소리가 복도를 타고 흘러가는데, 아이시런 공주가 방에서 문을 열고 나오는 상황이 되었다. 인상을 쓰는 가르딘과 그 앞으로 겁먹은 듯 서 있는 쉴라!

 쉴라의 눈망울이 울먹거렸다.

 “가그딘 경! 또 얘를 울리는 거예요!”

 아이시런의 도발적인 말이 가르딘의 귓속으로 들어왔다. 가르딘은 조금 황당했다.

 ‘내가 언제 울렸었나! 왜 또 라는 말을 하는 거야!’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말을 하는 아이시런과 자신의 앞에서 군기 잡힌 채로 떨고 있는 쉴라로 인해 상황은 가르딘에게 극도로 불리했다. 이러다간 애를 괴롭히는 몹쓸 놈이 되기 십상이었다. 그 순간 가르딘은 쉴라에게 당했다는 것을 감지했다.

 아이시런은 보지 못하게 가린 상태에서 가르딘을 향해 혀를 내미는 쉴라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여우! 그래도 귀엽긴 하네!’

 쉴라는 정말 귀엽고 예뻤다. 비록 얼굴 변환 환영아이템으로 가려지긴 했지만 가르딘의 눈에는 그녀의 진실된 모습이 보였다. 그랜드 마스터의 실력쯤 되면 이 정도는 별것 아닌 능력이었다. 아이시런은 약간 시무룩해 있는 상황이었다.

 쉴라를 구한 것은 좋았지만 이후 자신은 밖에 외출을 하지 못할지 몰랐다. 그게 너무 아쉬웠다. 가르딘은 오늘 일정을 아이시런 공주에게 설명했다. 어차피 오늘이 루벤 영지에서 있는 마지막 날이었다. 내일이면 다음 여정을 위해 움직여야 했다.

 “오늘의 일정은 간단합니다. 카스티온 백작과의 아침식사후에는 자유시간입니다. 그리고 저녁때 공주님을 위한 파티가 있을 예정입니다. 변경하실 내용이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아이시런은 공주였다. 

 일정이 있다고 하지만 변경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없어요, 대신 자유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게 뭐예요?”

 “공작가를 돌아볼 수 있습니다.”

 “밖은 못 나가나요?”

 “그건 당연한 것 아닙니까!”

 “알았어요. 가요!”

 실망한 아이시런이었지만 카스티온 백작과 아침식사를 하는 동안 한시도 품위와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자 가르딘은 아이시런 공주의 대단함을 느꼈다.

 싫은데도 내색하지 않은 삶을 평생 동안 살고 있는 것에 말이다. 그리고 한편으로 그녀이 외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이해하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별개의 말이었다. 공주의 즐거움을 위해 목숨을 걸 정도는 아니었다.

 가르딘은 공주를 오휘하면서 돌아가는 동안 뜬금없는 말을 들었다.

 “기사들의 검술을 보고 싶다고요?”

 “그래요, 자유 시간 동안 한 번 보고 싶네요.”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가르딘의 공주의 부탁이 무리한 것이 아니기에 즉시 기사들을 불렀다. 고참들과 더불어서 신참들을 카스티온 백작가 연무장으로 모이게 했다. 공주가 지켜본다는 말에 기사들은 잔뜩 기대를 하고 있었다. 기사들에게 아이시런 공주는 여신이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인 앞에서 자신의 실력을 뽐내고 싶지 않은 기사는 없을 것이다. 단, 가르딘은 예외였다. 이미 임자가 있는 자신에게 아이시런 공주는 지켜야 할 애물단지 정도일 뿐이기 때문이다. 가르딘은 기사들을 보면서 혀를 찼다.

 ‘이놈들아, 공주는 그저 재미를 위해 부른거야, 한마다리ㅗ 우리들은 광대라는 소리지!’

 광대놀이에 끼고 싶지 않은 가르딘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책임자였다. 몇몇 녀석들을 대련시키면 그만이었다. 공주가 가르딘에게 말을 했다.

 “이번에 신참들이 들어왔다면서요, 킹덤나이트를 졸업한 기사의 실력을 보고 싶네요.”

 가르딘은 신참 중에서도 누굴 시킬까 고민하고 있는데, 공주가 직접 신참들 중에 미토스와 스필언을 지목했다. 확실히 눈에 띄게 잘생긴 녀석들이었다. 군중들 한가운데 있다고 해도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군계일학이었다.

 “스필언, 미토스 나와서 공주님에게 실력을 보여드려라!”

 척!

 스필언과 미토스가 제식을 갖추며 연무장 중앙으로 나왔다. 그와 동시에 공주에게 기사의 예를 갖추었다.

  “미천한 실력이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이시런도 스필언과 미토스의 말에 호응해 주었다.

 “기대하겠어요.”

 가르딘이 보기에 스필언과 미토스는 절대로 미천한 실력이 아니었다.

 ‘익스퍼트 상급이 미천하면 나머지 기사들 다 칼 물고 자살하라는 소리냐!’

 솔직한 심정으로 가르딘은 미토스와 스필언이 적당히 하기를 바랐다. 이놈들은 신참이지만 실력은 신참이 아니었다. 실력만 놓고 본다면 상위기사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실력이었다. 지금까지 미토스와 스필언의 실력을 잘 알지 못한 고참기사들을 생각하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제4장 무서운 신입들

 대련.

 피가 튀고, 살이 베어지는 전쟁과는 다르게 수련의 성과를 확인하고, 보완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순수한 목적이 실력의 상승이라고 하더라도 검과 검이 부딪치는 진검 대련에서 위험은 언제나 존재한다.

 기사에게 위험은 필수다.

 위험을 겪지 않은 기사는 자기 안에 안주하게 된다. 스스로의 실력이 대단하다고만 생각할 뿐, 그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실전에서 통할 수 있는지 모르기 마련이다.

 또한 대련이라고 하지만 각자의 명예가 걸린 일이다. 기사는 명에에 죽고, 명예에 산다고 하지 않는가! 서로의 명예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은 당연했다.

 검은 나아가고, 나아간 검을 정확하게 만아낸다는 것은 그 실력이 비슷한 경우에만 가능하다. 서로의 실력이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면 일방적인 대결이 될 뿐이다. 그러나 지금 나와 있는 두 신참은 킹덤나이트 역사상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젊은이들이었다.

 둘 중 누가 더 뛰어나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대등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기사의 예를 갖추고 난 후 대련이 시작되었다.

 킹덤나이트부터 시작되는 카이로만 제국의 검술은 바로 스톰 검법과 일렉트릭 검법이다. 스톰 검법은 말 그대로 폭풍의 검법이다. 파괴를 목적으로 하는 검법으로써 힘과 중량을 중점으로 두는 검법이다.

 반면에 일렉트릭 검법은 빠름을 중시한다. 빠르고 가볍게 상대의 약점을 순식간에 베어내는 검법이다. 이 두 가지 검법을 모두 배우는 이유는 힘과 빠름을 동시에 추구하기 위한 방편이다.

 한 가지 예를 들면, 힘만 가지고 상대를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전쟁에서 적과 대치할 경우 상대가 자신보다 힘이 세다면 어찌할 것인가 스톰 검법이 가지는 파괴력이 상쇄되고도 남음이 있다.

 그때에 일렉트릭 검법을 사용하여 상대의 정신을 흔들어 놓고, 필살의 검을 날리는 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에 두 가지를 동시에 배우는 것이다. 하지만 킹덤나이트 설립되고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도 두 가지를 완벽하게 사용하는 기사는 극히 드물었다.

 강함과 빠름은 나누어져 있는 것이 아니지만 그 두 가지의 속성을 모두 조화롭게 배우는 것은 뛰어난 재능과 노력이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킹덤나이트를 졸업하는 대부분의 기사들은 스톰 검법과 일렉트릭 검법을 동시에 배우지만 어느 한쪽에 치우쳐져 있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반면에 이 두 신참은 어떠한가!

  어느 한쪽에 치우쳐져 있지 않았다.

 검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상대의 약정ㅤㅁㅡㅇ 파고는 냉정한 통찰력. 순수 실력과 능력, 재능을 비교해 불 때 따라갈 수 없는 천재들이었다.

 슈슈슉!

 검과 검이 서로의 중간 지점에서 부딪쳤다. 아직 미토스와 스필언은 오러를 사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러를 사용할 경우 조절하기 쉽지 않다. 몸과 오러는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지만 오러가 가진 파괴성으로 인해 대결이 대단히 위험해진다.

 스필언의 검에서 스톰 검법이 펼쳐지자 정면으로 치고 들어오던 미토스가 검을 위로 들어 올렸다. 들어 올린 순간 검이 부딪쳐 큰 소리가 날 것이라 모두 예상했다. 그런데 쇳소리가 울려 퍼지는 대신에 스필언의 검이 바닥을 내리찍었다.

 미토스가 쥐고 있던 검에 힘을 빼고, 다가오는 파괴적인 양단을 부딪치는 대신에 그대로 흘러 보내버린 것이다. 가르딘은 미토스가 순간적으로 보인 강약의 조절에 감탄했다. 저만한 나이 때에 가질 수 없는 능력이었다.

 ‘힘과 부드러움을 적절히 사용하고 있군.’

 미토스는 스필언이 검을 회수하는 그 짧은 간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회수하는 이동결로에 검을 찔러 넣었다.

 슈아악!

 공기를 찢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차칫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미토스의 빠른 검속을 스필언이 스텝을 활용하여 피한 것이다. 스필언은 검을 다시 회수 하는 시간에 틈을 내준다는 것을 곧바로 인지하고 바로 윈드 스텝을 이용해서 거리를 벌렸다.

 원드 스텝은 스필언의 아버지인 파스트론 단장의 독문 스텝이었다. 가문 대대로 내려온 윈드 스텝은 정말 바람처럼 빨랐다.

 허공을 가른 미토스는 일직선으로 찔러 들어가면서 다시 오른쪽으로 틀어 스필언의 빈곳을 노렸다. 순간적으로 방향을 트는 실력과 그것을 알고 막아내는 스필언의 공격과 방어는 일류의 수준을 넘어 초일류에 달해 있었다.

 신참의 대결이지만 그 대결을 보며, 긴장하지 않는 기사는 없었다. 유일하게 느긋하게 보고 있는 것은 가르딘뿐이었다.

 자신의 친구인 필리언조차 이마 사이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보면, 그 긴장감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5분 정도가 지나자 대결은 종결이 되었다.

 서로 일격필살로 목숨을 노리는 경우가 아니기에 무승부로 끝이 났다.

 가르딘의 예리한 눈이 두 신참을 보았다.

 ‘확실히 뛰어난 놈들이군, 잘생긴데다가, 집안 배경 빵빵하지, 거기다가 뛰어난 실력, 배우려고 하는 자세까지 이놈들! 사람들 질투 나게 만드는 족속이군!’

 천재들은 잘난 체를 하기에 사람들로부터 배척을 당한다. 그런데 이놈들은 어떠한가! 잘난 체는 눈에 불을 켜고 바라봐도 없었다. 오히려 끝까지 예를 차리고 모습은 차라리 얄밉기까지 했다. 완벽한 남성상을 가진 스필언과 미토스였다.

 ‘누가 데려갈지 고생깨나 하겠다.’

 짝! 짝! 짝!

 아이시런은 스필언과 미토스의 뛰어난 실력에 박수를 쳐주었다. 기사들의 실력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눈을 쫓을 수 없을 정도의 빠름과, 화려함만은 알 수 있었다.

 “굉장하네요, 그대들 같이 뛰어난 기사가 들어왔으니 앞을 피닉스기사단과 제국의 앞날에 걱정이 없겠어요!”

 공주의 칭찬에 스필언 미토스가 즉시 답했다.

  “감사합니다. 공주님!”

 “제국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환하게 웃는 아이시런 공주의 모습에 지금까지의 긴장감이 풀어지는 상황이었다. 기사들 대부분이 그런 느낌을 받았다. 반면에 가르딘은 오싹한 한기가 전신에 들었다.

 오싹!

 ‘왜 소름이 돋지?’

 분명 아무런 징조가 보이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다음 대결이 이루어지는 상황이었다. 대충 대결을 마무리하기 위해 말을 하려는 찰나에 아이시런 공주가 먼저 말했다.

 “새로 들어온 기사와 기존기사들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보고 싶네요, 가르딘 경!”

 ‘윽!’

 그 말은 바로 스필언과 미토스의 실력을 고참기사들이 직접 대결해서 알아보라는 말이 되었다. 공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고참기사들의 표정이 흙빛으로 변했다.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스필언과 미토스가 신입이라고는 하지만 실력으로 따지면 고참이 가진 짬밥만으로 이길 수 있는 녀석들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기지 못하면 완전히 개망신이었다.

 그것도 아름다운 공주 앞에 나가서 당하는 망신이었다.

 “누가 좋을까요?”

 공주는 누가 나가겠냐고 선동하고 있었다.

 그제야 가르딘은 알 수 있었다.

 ‘이런 제길! 외출 못하게 했더니 이런 식으로 복수를 하는구나!’ 

 공주의 외출을 방지하기 위해 한 행동으로 인해 가르딘이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가르딘의 입장에서 스필언과 미토스를 이겨도 문제였다.

 우선 가르딘은 자신의 주변으로 서 있는 고참기사들을 바라보았다. 가르딘의 시선이 자신들을 향하자 고참기사들은 고개를 다시 반대방향으로 돌리고 말았다.

 눈동자도 마주치지 않으려는 고참기사들의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지금까지 본 스필언과 미토스의 실력만 놓고 봐도 자신들보다 강하면 강했지 약하지 않았다. 이대로 나가봤자 공주 앞에서 개망신 당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가르딘의 이마에 힘줄이 하나 뻗쳐 나왔다.

 ‘이런 벨도 없는 것들!’

 마지막 구원 줄이라고 여긴 필리언에게 시선을 보내자!

 당연하다는 듯이 필리언도 고개가 하늘로 향하고, 시선을 오른쪽으로 돌려 버렸다.

 ‘이런 의리 없는 놈, 그래도 같이 지낸 지가 20년이 넘는데 이럴 수 있는 거야!’

 필리언의 표정과 가르딘의 표정이 공중에서 교차했다. 필리언도 말은 없었지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너 같으면 하겠냐!’

 이대로 시간만 간다면 피닉스기사단의 명예에 먹칠을 한다. 공주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서는 절대로 안 되었다. 만약 공주가 황제 앞에서 기사들의 실력이 형편없네요 라고 해봐라, 황제가 가만히 있겠는가!

 제국의 얼굴이자 초대 황제이신 카이로만 대제가 만들어 놓은 피닉스기사단이었다. 제국의 얼굴이 형편없다는 말을 들었으니 지금 있는 피닉스기사단의 기사들은 대부분 얼굴들고 다니지 못할 것이다. 또한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밝혀내려고 할 것이다.

 그 앞에 가르딘이라는 이름이 나와 있어 보아라, 그 즉시 가르딘은 매장당한다.

 ‘끙!’

  할 수 없었다.

 아무도 나가지 않는 가운데, 가르딘이라도 나가야 했다.

 나가기로 마음을 먹은 이상 가르딘은 연무장 중앙으로 발을 내디뎠다.

 “가르딘 경이 직접 나서겠다는 건가요!”

 “총책임자로서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그럼, 최선을 다해 피닉스기사단의 실력을 보여주세요! 호호호!”

 아이시런 공주의 웃음은 수줍음을 담고 있었다.

 웃음 한 방으로 모든 상황을 바꾸어 버릴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하지만 가르딘만은 저 웃음이 가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저 가증스러운!’

 아이시런은 가르딘의 실력을 확인하고 싶었다. 엊그제 보여준 그의 놀아눈 신위와 실력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물론 일반인을 상대로 기사의 실력은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6미터의 담벼락은 한 번의 도약으로 쉽게 넘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진짜 실력을 보고 싶ㅇㄴ 마음에 아이시런은 기사들의 대련을 진행시켰다.

 스필언과 미토스는 제국에 소문이 자자한 천재기사들이었다. 킹덤나이트 시절부터 들려오는 소문이 있었기에 아이시런도 알고 있었다. 또한 공작의 아들들이었다.

 그들의 신분과 실력을 볼 때 공주의 배필로도 손색이 없다고 전해졌다. 당연히 공주는 스필언과 미토스를 알고 잇을 수밖에 없었다. 황제가 직접 그들의 신상정보를 확인했을 정도였으니 말은 해서 무엇 하겠는가!

 그들의 실력이 이미 보통기사들의 실력을 뛰어넘었다는 것을 알고서 시작한 대련있다.

 가르딘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어떻게 이겨야 별 탈 없이 끝이 날 것인지를 생각한 것이다. 그렇다고 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현재 자신은 이번 여정의 총책임자였다. 막중한 책임을 가진 자가 신입기사에게 ws진다는 것은 이번 여정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걸림돌이 된다.

 또한 신입이라는 놈들이 잘 대해주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기어오르는 습성들이 있었다. 될 수 있으면 자근자근 밟아주어야 고참생활이 편하다.

 신입들을 주기적으로 밟아주어야 들판의 잡초들처럼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다는 말도 안 되는 부연설명은 필요 없다. 그따위 구차한 말보다 앞으로 편안히 생활하려는 마음이 더 강하다. 가르딘은 연무장 중앙으로 걸어가면서 스필언을 가리켰다.

 왜?

 스필언을 가리켰을까!

 이유는 바로 그의 아버지가 파스트론 공작이기 때문이다. 파스트론 공작은 정형적인 기사였다. 승패의 여부보다 그 실력을 갈고 닦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사사로운 감정으로 대의를 무너뜨리는 인물이 아니었다.

 이제까지 보아온 파스트론 공작은 자식이 졌다고 해서 악 감정을 가지는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 가르딘의 평가였다.

 나중에 뒤탈이 없으려면 미토스보다는 스필언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아직 미토스의 아버지인 발리스타 공작의 정확하게 성격을 알지 못하는 한 위험을 감수할 수 없었다.

 가드딘의 가리킴에 스필언이 연무장 안으로 다시 들어왔다. 좀 전의 검술대련에서 오러를 사용하지 않았기에 그다지 힘은 들지 않았을 것이다. 오러를 사용하게 될 경우 전심전력을 다 기울어야 한다.

  ‘그나마 오러 사용이 아니라서 다행이군.’

 가르딘의 생각이 끝나자마자 공주가 천진난만한 한마다를 해버렸다.

 “익스퍼트급 기사는 오러를 사용한다는데, 저는 여태껏 오러를 사용하는 것을 본 적이 없어요. 구경 좀 시켜주세요!”‘큭!’

 기사들은 그럴 수 있다는 듯이 수긍을 하는 편이지만 가르딘은 그렇지 않았다. 공주가 정말 오러를 본 적이 없을까!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공주에게 잘 보이려는 놈들이 어떻게 해서든 실력을 보여주려고, 갖은 방법을 다 썼을 것이다.

 그 가운데 오러 정보는 보고도 남음이 있었다.

 물론 사실로 증명된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기였다. 그런데도 오러를 처음 본다는 식으로 말을 한 것은 전부 가르딘을 옥죄려는 수작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가르딘은 보이지 않는 그물망에 잡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고, 태연한 표정으로 공주에게 말을 했다.

 “공주님, 오러 사용을 할 경우 자칫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굳이 사용하지 않더라도 검술로 대련을 하는 것이 더 나을 겁니다.”

 “가르딘 경, 설마 자신이 없는 것은 아닌가요!”

 “그... 무슨 말씀을!”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설마 기사단 생활이 15년이나 된 가르딘 경이 신입에게 다치지는 않겠지요.”

 “물론...입니다.”

 가르딘이 빠져나갈 구멍을 사전에 차단해 버리는 아이시런이었다. 이처럼 노골적으로 하는 말이었건만 그 말에서 느껴지는 뼈가 있는 뜻을 가르딘 이외에는 아는 이가 없었다.

 공주의 강요에 의해 가르딘은 스필언과 마주 보며 대련을 시작하려고 했다.

 가르딘의 눈이 스필언을 보았다. 침착하기만 했던 스필언의 눈동자가 가르딘의 눈을 보자 흔들렸다. 이제까지 무게감 없었던 가르딘이 아니었다. 일단 가르딘은 검을 들었을 때 달라진다. 수많은 전쟁과 전투를 경험한 가르딘이었다.

 검이 가진 무게감과, 검으로 인해 벌어지는 위험성을 모를리 없다. 검은 그 자체로는 아무 위험이 없지만, 검을 가진 자의 마음에 따라 위험할 수도 있고, 목숨을 구할 수도 있다.

 스필언은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거의 없었다.

 ‘이 느낌은 마치 아버지를 보는 듯한!’

 스필언은 다른 기사들을 무시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실력을 낮게 평가하지도 않았다. 그동안 만나온 자들 중에 아버지와 같은 느낌을 받은 자는 아무도 없었다. 아버지야말로 가장 강한 기사이자 자신이 뛰어넘고 싶은 기사의 전형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는 가르딘에게 그와 같은 강자의 느낌을 받고 있었다.

 마치 고양이 앞에 놓인 쥐와 같았다.

 “호오!”

 가르딘은 스필언의 반응을 보면서 작게 감탄했다. 적의 실력을 모름에도 상대가 강자인지, 약자인지를 판단하는 본능적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본능의 경고는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본능적인 감각, 즉 초감각이라고 불리는 것을 가지고 있는 스필언이었다. 타고난 재능이 밑바탕으로 깔려 있었다.

 ‘조금만 더 경험을 쌓으면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는 것은 일도 아니겠군.’

 부러운 녀석들이었다.

 자신도 신마의 무공을 얻지 못했다면, 이 녀석들의 상대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밟아주고 싶네!’

 오러.

 검의 또 다른 이름이 바로 오러다.

 몸 안에 존재하는 오러라는 무형의 기운이 유형의 기운으로 뿜어내어 상대에게 타격을 준다. 오러는 불의 속성과 파괴의 속성을 가진다. 불같이 뜨겁고, 어떤 것도 부숴버리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힘의 속성상, 오러를 사용하는 자는 오러의 강력함 힘뿐만 아니라 신체적으로도 강하다. 불가능에 가까운 움직임을 가능하게 만드는 초인의 능력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오러의 크기가 클수록 꼭 강한가?

 오러의 양이 능력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검이 더 길어졌다고 해서 더 강하다면 창이 가장 강한 무기가 될 것이다.

 주르륵!

 스필언은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좀 전까지 미토스와 대결할 때도 진심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의 긴장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바로 앞에서 보니 가르딘의 모습이 더 커 보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꾸욱!

 압박감을 떨쳐내려고, 검을 힘입게 잡고 뽑았다.

 스필언은 검을 잡자, 마음이 침착해지고 냉정해졌다. 상대의 압박감으로 인해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었다.

 ‘최선을 다한다!’

 상대가 강하다는 느낌을 받자 스필언은 오히려 투지를 불태웠다. 투지를 불태워 상대의 강함을 부수려고 한 것이다.

 강자와의 대련으로 배울 수 있다면 그것보다 좋은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가르딘은 천천히 검을 뽑아 들었다. 검을 들어 스필언에게 먼저 들어오라고 하였다. 신입에게 먼저 검을 들이대지는 않는다. 다른 자가 이런다면 만용이었지만 가르딘의 실력은 그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물론 아는 사람은 없었다.

 “어디 우리 신참의 실력 좀 볼까.”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스필언은 가르딘의 말을 듣고 곧바로 응수했다. 실력을 비하한다는 생각 따위는 이미 지운 지 오래다. 처음부터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스필언의 상체가 뒤로 비틀어졌다. 비틀어진 상태에서 오른쪽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검의 속도는 어디에서 나올까!

 육체적인 능력만으로 따진다면 당연 발에서 나온다고 볼 수 있다. 하체의 힘이 뒷받침되어야 강력한 검속이 나온다. 그와 더불어서 상체와 팔의 힘도 중요하지만 하체의 힘이 중요하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다만 오러를 사용하는 기사는 또 다른 발판이 존재한다. 몸 안에 존재하는 무형의 기운 즉, 오러를 발판으로 강력한 힘을 폭발적으로 뿜어낼 수 있다. 그렇기 떼문에 일반인과 기사의 차이가 확연하게 나는 것이다. 비틀어진 상체가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갔다.

 파팟!

 지면을 밟는 강력한 소리가 들리자 스필언의 몸이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나아가는 힘을 바탕으로 검이 공간을 위에서 아래로 가르듯이 뿜어져 나갔다. 눈으로 보기도 힘들 정도로 빠르고 예리했다.

 사아아악!

  공간이 갈렸다.

 목표는 가르딘의 상단이었다. 그럼에도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가르딘은 가볍게 발을 뒤로 빼는 간단한 동작으로 검을 피했다. 굉장한 속도를 가진 스필언의 검이었지만 공간을 벗어났으니 허공을 베는 것은 당연했ㄷ.

 발검의 위력은 강력하지만 반대로 쉽게 허점을 노출시키는 단점이 존재한다. 한 점을 향해 극강의 힘을 폭발시켰기 때문에 다시 회수하는 힘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 가르딘이 몸이 뒤에서 다시 앞으로 파고들었다.

 아주 간단한 동작이었다.

 뒤로 한 걸음 벗어나고 튕기듯이 다시 앞으로 움직인 것이다. 너무 간단했지만 그 움직임이 너무 빨랐다. 보는 이로 하여금 순간적으로 검이 허공을 벤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가르딘이 스필언의 가슴을 노리며 검을 아래서 위로 그어 올렸다.

 ‘윽!’

 스필언은 위기감을 느끼고, 그 즉시 벗어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주어진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자 겨우 검을 회수해서 가르딘의 검을 막아낼 수 있었다.

 카앙!

 검을 막아내기는 했지만 정말 위험한 공격이었다. 그리고 스필언은 깨달았다. 가르딘은 결코 만만한 기사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와 전혀 다른 인간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스필언은 몸 안의 오러를 활성화했다.

 오러는 피가 흐르는 혈관과 같이 이동경로가 비슷하다. 혈관에 피가 많이 흐르기 위해서는 심장에서 수축과 팽창의 힘이 강해져야 하듯이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제법이군!”

 가르딘은 스필언의 위기극복 능력을 칭찬했다.

 좀 전의 공격은 스필언의 한계를 보기 위한 공격이었다. 공격에서 살기는 없었지만 몸 안에 잠재한 능력을 끌어내지 않는다면 피하지 못할 정도는 되었다.

 ‘이제 오러를 사용할 거냐.’

 스필언의 검에 푸른색의 기운이 뿜어져 나와서 또 하나의 검이 형성되었다.

 오러의 양과 크기가 모두 뛰어났다.

 상급의 기사라는 것을 확연하게 보여주는 기운이었다.

 “오오!”

 아이시런 공주는 물론이거니와 다른 기사들 모두 놀라고 있었다. 저 정도로 능숙하게 오러를 뿜어낼 정도면 오러 익스퍼트 상급이 확실했다.

 필리언은 안색이 변했다.

 ‘대단하군!’

 자신도 상급의 기사인 것이 맞지만 과연 스필언의 검을 맞 상대해서 이길 수 있ㅇㄹ지가 의문이었다. 조금 전에 보인 발검 역시도 대단히 빠랐다. 자신조차 무방비로 ekdhoT을 수도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은 가르딘이 긴장하는 것을 본적이 없었다. 실력의 높고 낮음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때마다 두루뭉술하게 우연이라고 치부했었다.

 다시 생각하자 이상하게 여겼다. 설마 압도적인 실력을 가지고 잇는데 이제까지 실력을 숨겼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곧 고개를 흔들었다.

 ‘설마!’

 가르딘이 어떤 놈인데 실력을 숨길까. 필리언이 보기에 마스터가 됐으면 동네방네 소문을 내며 자랑할 녀석이었다.

 ‘씨익!’

 이제부터가 진짜였다.

 가르딘은 한 번의 기회를 스필언에게 주었다. 그에 응답하듯이 스필언도 최선을 다한 일격을 사용했다. 일격필살은 말 그대로 상대의 숨통을 끊어 보리는 일격을 의미한다.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러를 사용한다고 해서 다가 아니지.’

 전쟁과 전투를 경험하면서 느낀 것은 바로 오러를 꼭 외부로 보여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오러를 끌어내어 보인다는 것 자체가 힘의 소비를 의미한다. 굳이 무리하게 힘을 들이지 않더라도 검이 잘리지 않을 정도로만 사용하면 되었다.

 신마의 무공인 무극칠검식에서 느림과 부드러움, 무거움의 묘리를 둔 검법이 존재한다. 바로 둔중유극이다.

 둔중유극의 무서운 점은 바로 자신이 ㄴ림과 무거움을 상대방에게 전달시키는 데에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느리고, 힘이 없어 보이지만 막상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속이 타는 검법이다.

 상대방의 힘을 감소시키고, 결국에는 힘을 모두 소진하게 만드는 진드기 같은 검법이었다.

 ‘꼭 실력을 드러낼 필요가 없지, 나중에 스필언만 입을 닫게 만들면 그만이니까!’

 제일 좋은 말은 모르쇠다. 우연으로 치부하는 데 끝까지 파고드는 놈은 드물다.

 스필언의 검에서 폭풍 같은 찌르기가 들어왔다.

 오러가 검에 담겨져 있어 그 위험성이 최고조에 이르러 있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식은땀이 흐르게 만드는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주변 모두의 숨을 졸이게 만들었다.

 정면으로 들어오는 가운데, 모두의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었다. 다들 긴장하고 있지만 가르딘은 곁눈질로 주변의 모습을 모두 보고 있었다. 특히 아이시런의 긴장한 표정과 더불어서 진중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마치 흥미진진한 장면을 보는 듯한 모습니었다.

 ‘맥 빠지게 만들어주지.’

 모두의 기대를 한순간에 무너뜨리려는 가르딘이었다.

 가르딘의 움직임은 지극히 느렸다. 처음에 보였던 빠르기와는 차이가 있었다. 스필언의 빠르고 강력한 검을 막아내지 못할 것 같았다. 저 정도의 움직임은 아이시런 공주도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스필언의 검과 가르딘의 검이 서로 부딪쳤다.

 차앙!

 가벼운 소리였다.

 쿵!

 그러나 스필언의 손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마치 집채만 한 바윗덩어리가 부딪친 것 같은 충격이었다. 하마터면 잡고 있는 검을 놓칠 뻔했다. 왜 이런 충격을 받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지만 위험하다는 것을 느꼈다.

 ‘윽!’

 검과 검이 부딪쳤는데 이런 느낌을 받기는 처음인 스필언의 얼굴에서 당혹해하는 표정이 드러났다.

 ‘벗어나야 한다!’

 검을 다시 빼서 다음 공격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가르딘의 검과 검이 불로 녹여 붙은 것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이리저리 휘저어도 검은 떨어지기는커녕 점점 달라붙는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검이 점점 무거워지고 있었다. 무게가 하나에 둘, 둘에서 셋으로 증가했다.

  검이 점점 무거워지니 휘두르는 속도 역시도 둔감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이고 있었다. 스필언 자신도 왜 이렇게 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가르딘이 속으로 웃었다.

 ‘큭! 큭!’

 방금 가르딘은 둔중유극과 함께 이화접목을 이용했다. 아무리 스필언이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 수 없는 덫이었다.

 살랑! 달랑!

 가르딘은 춤을 추듯이 검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에 따라서 스필언도 흐느적거리며 이리저리 끌려 다닐 수밖에 없었다. 좀 전까지 심각하고 진지한 상황이었다면 지금의 상황은 광대가 춤을 추는 것과 같았다.

 긴장감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김이 샌 것 같은 상황이 연출이 되었다.

 망연자실!

 공주와 기사들 모두 맥이 빠졌다.

 단 한 사람 스필언만이 기진맥진한 채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몸 안에서 활성화된 오러 역시도 힘이 드는지 점점 줄어들어 마침내는 검에서 오러가 사라졌다. 춤을 추는 검무가 되어버린 후라 다들 그것에는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허억! 허억!

 1분의 시간이 이토록 길고 힘들기는 스필언 생애 처음이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아무것도 못해 보고 질 것 같았다. 그럼에도 딱히 방법이 없었다. 기사가 검을 놓고 움직일 수도 없지 않은가!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상황에서 스필언은 검을 아래로 내렸다. 도저히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가르딘도 검을 내리고 대련을 끝냈다. 보는 사람들 모두는 허탈해했다.

 가르딘의 눈길이 아이시런 공주에게 향했다. 아이시런 공주 역시도 실망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런 대련을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뭔가 ㅤㅎㅘㄺ실하게 가르딘의 실력을 확인하고 싶었는데 얻은 소득이 하나도 없었다.

 대결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했다.

 마치 아침에 대변을 보다가 마지막 한줄기가 나오지 않아 마지못해 닦는 느낌과 비슷했다.

 그렇다고 대격을 가지고 뭐라고 할 수도 없엇다. 그전에 보여준 스필언과 미토스의 뛰어난 실력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아무도 가르딘의 실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생각 안 한 게 아니라 못했다고 보는 것이 정답이었다. 기사들은 대부분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가르딘의 총책임자니까 스필언이 봐준 게 틀림없어!

 윗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아랫사람의 미덕이라고 본 것이다. 기사들이 이렇게 생각하는데, 아이시런이라고 달리 생각할 수 없었다.

 ‘흥! 흥!’

 방으로 다시 돌아온 아이시런 공주는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가르딘의 진정한 실력을 보기 위해서 내숭과 연기를 했건만 돌아온 것은 허탈함뿐이기 때문이었다. 이토록 기막히게 자신의 예측을 벗어나는 존재는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그렇다고 딱히 문제소지가 될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기가 막힌 회피였다.

  불만스러운 아이시런의 모습에 엘리언이 물었다. 시종으로서 공주의 불편한 심기를 해결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무슨 문제가 있으세요?”

 “없어! 아니!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단 말이야!”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아이서런 공주는 자신이 직접 말해 놓고도 아리송하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현재 자신의 심정이 바로 그와 같이 혼돈이었다.

 아이시런은 다음 기회를 노리기로 마음먹었다. 이대로 물러시기에는 공주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 가르딘의 약점을 잡아서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할 생각이었다.

 이상하게 가르딘과 있으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진행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이유가 너무 타당해서 반박할 수 없다는 데에 답답함이 존재했다.

 아이시런도 자존심상 아무런 이유도 없이 가르딘을 마음먹은 대로 할 생각은 없엇다. 충분한 약점을 잡을 기회를 노려야 했다.

 ‘다음에 두고 보자!’

 부르르!

 방에서 잠시 쉬고 있는 가르딘은 갑자기 오한이 돋았다. 그리고 귓구멍까지 가려웠다. 누군가 자신을 욕하며 ,함정을 꾸미고 있는 것 같았다.

 후비적! 후비적!

 “누가 내 욕하나?”

 시원하게 귀를 긁어준 후 내일 시작될 여정을 곰곰이 생각했다. 정해진 상황과 더불어서 갑자기 일어날 사태까지 미리 대비하는 것이 중요했다.

 황성에서 나오고 나서부터 느낀 것이지만 왠지 모르게 위기감이 들었다. 감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감만 가지고 여정을 그만두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보니 이번 여정에 마법사가 없었다.

 카이로만 제국은 기사의 나라라고 불린다. 그에 따라 마법이 코가 제국에 비해 떨어지는 편이었다. 물론 왕국이나 공국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실력이 뛰어난 마법사는 있지만 수적인 면에서 차이가 있었다.

 “마법사가 있으면 편했을 텐데.”

 저 서클의 마법사는 전투력이 떨어지고, 필요성이 없겠지만 중급 이상의 마법사는 상당한 효용성을 가진다. 원거리에서 아군의 보호가 가능하고, 대인살상의 공격이 가능하다. 그에 따라 마법사와 기사가 결합을 하게 될 경우 상당히 곤혹을 치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가르딘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지만 황성에서 나오기 전에 미리 말을 했어야 했다. 이제 와서 마법사가 필요하다고 하면, 자신의 무능함을 공개하는 꼴이 되었다. 만에 하나를 생각하면 그에 대한 대비를 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그래서 가르딘은 필리언을 불렀다.

 “불렀냐?”

 “그래 불렀다.”

 “왜 불렀냐?”

 “필요해서 불렀다.”

 “뭐가 필요하냐?”“방패.”

 “방패는 왜?”

  “필요해서.”

 “알았다.”

 필리언과 가르딘의 대화는 무척이나 간단했다. 공적인 대화는 간단명료하면 그만이었다. 사실 일일이 따지는 것도 귀찮았다. 가르딘과 필리언이 친구가 된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부터 사적이 대화가 시작이다.

 “아! 진짜 공주 때문에 죽겠다.”

 “그러냐? 어쩐지 널 시험하는 것 같았는데, 아니냐?”

 “그리고 너 그러는 거 아니다. 그 위험한 녀석들을 아무도 상대 안 하니까, 내가 할 수밖에 없었잖아!”

 “그렇다고, 내가 나가서 개망신 당할 수는 없잖아!”

 필리언도 할 말은 있었다.

 “결과는 괜찮았잖아, 그 녀석도 눈치가 있어서 정도 것 했잖아.”

 필리언이 보기에는 뭔가 꺼림칙하긴 했지만 가르딘을 위심하지는 않았다. 20년이나 된 친구였고, 그 속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인마! 내 실력이 좋아서 이긴 거지, 말 이상하게 한다.”

 가르딘은 의심의 한 톨이라도 지우기 위해 쐐기포를 날렸다. 이렇게 잘난 척하면 다들 괜스레 미친놈 취급한다. 흔히 잘난 척하는 놈들은 재수가 없어서라도 믿어주지 않ㄴㄴ 것과 일맥상통한다.

 “웃기고 있어, 너 똥줄 탄 것 다 알고 있다. 그러니 오버하지 마라!”

 씨익!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사실 스필언의 검법을 받아주면서도 주변에서 지켜보는 기사들의 표정을 다 살펴본 가르딘이었다. 특히 아이시런과 필리언의 표정을 주시하고 있었다. 아이시런은 공주이기에 정확한 실력을 파악하지 못한다고 하지만 필리언은 산전수전 다 겪은 동료였다.

 그러기에 의심이 생기기 전에 미리 선수치고 있는 가르딘이었다. 20년 동안이나 속였는데, 이걸 못하면 바보였다. 미안하지만 당하는 놈이 바보다.

 필리언에게 실력을 속이기는 했지만 그 외에 다른 것은 다 사실을 말하는 가르딘이었다. 사적인 면에서 같이 엄청나게 놀았다. 한때 방탕한 사총사하면 기사단에서도 알아줄 정도였다.

 -1총사-술 마시면 개다-가르딘.

 -2총사-오빠 못 믿어-필리언.

 -3총사-이거 왜이래! 나 킹덤나이트 나온 기사야-유타.

 -4총사-찌익(외상) 튀엇!-갈라.

 물론 이건 전적으로 가르딘이 결혼하기 전까지의 내용이다. 가르딘에게 이 사실은 죽을 때까지 숨겨야 할 숙제였다. 만약 라이나가 알기라도 한다면 큰일이었다. 대륙제일의 미인을 아내로 맞이했다고 생각하는 가르딘이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놀기도 잘 놀고, 서로 싸우기도 많이 했다. 사내들이 싸우면서 정든다고 하는 말도 어쩌면 사실인지 몰랐다.

 “그때는 철이 없었지.”

 가르딘이 회상하면서 말하지 필리언이 헛기침을 했다.

 “미친놈! 넌 지금도 철이 없어 보여!”

 “뭐야! 내가 왜 철이 없어, 이 정도면 잘 성장한 중년인이지!”

  “아내 자랑하는 놈치고, 제대로 된 사내 없어!”

 “호오!”

 “이거 지금 나한테 시비 거는 거지, 내가 너의 젊은 시절 바람기를 제수씨한테 모두 까발린다!”

 움찔!

 필리언의 유일한 약점이었다.

 한때 잘 나가는 바람둥이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지금도 가끔 술집에서 그런 일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20년 살다 보면 다 겪는 일이었다.

 “아니 내가 언제 시비 걸었다고 그래! 난 방패 구하러 가야 하니까 이만 간다!”

 필리언이 잽싸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항상 느낀 것이지만 말로써 가르딘을 이긴 적이 없었다. 시비는 먼저 걸지만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격이었다.

 필리언이 나가고 나서 잠시 잠잠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 가르딘의 방에 누군가 찾아왔다.

 딱 2명이었다.

 “들어와!”

 이미 누가 온 것인지는 알고 있었다. 바로 스필언과 미토스였다. 심각한 표정의 스필언과 미토스였다.

 스필언은 가르딘과의 대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검이 갑작스럽게 무거워지고, 느려지는가! 그것이 육체적인 힘이 가해졌다면 이해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 힘은 물리적인 힘이 아니었다. 확신할 수 없지만 그것은 오러의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필언이 경험한 오러는 파괴력과 강렬한 폭발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오러가 이런 묘리를 담고 있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킹덤나이트를 졸업하기 1년 전부터 스필언은 한 단계로의 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지금까지 거침없이 성장했다면, 그 당시부터 지금까지 가로막은 벽은 거대한 철벽처럼 단단했다. 실마리조차 잡을 수 없을 정도로 까마득했다.

 어딘가 미진하다는 생각에 오러에 대한 새로운 고찰을 했고, 킹덤나이트에 존재하는 검법서와 마나의 이해라는 책들을 모두 살폈다. 그와 더불어서 미토스와 생사를 가르는 대결을 수도 없이 했다. 그럼에도 막혀 있는 벽은 깰 수 없었다.

 그런데 오늘 오러의 새로운 가능성이 보였다.

 그 가능성을 이대로 놓아줄 수 없는 일이었다. 스필언이 생각하고, 실행하려는 가운데 미토스가 찾아왔다. 미토스 역시도 스필언과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그 둘은 가르딘을 찾아가서 물어보기로 했다. 이건 상당한 결심이 필요했다.

 스스로 천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누군가에게 검에 대한 것을 물어보게 될 줄을 몰랐다. 또한 검의를 물어 본다는 것은 상당한 무례였다.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해도 뭐라 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하지만 놓칠 수 없기에 그들은 가르딘의 방문을 열었다.

 가르딘은 스필언이 올 줄은 알았지만 미토스까지 올 줄은 몰랐다. 둘이 친하다는 것은 신상정보에 쓰여 있기에 알고 있었다. 검에 대한 것과 더불어서 상당히 궁합이 잘 맞는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검에 대한 고찰까지 서로 의논하지는 않을 것이다.

 검은 비인부전이라고 하지 않는가!

 친인이 아니고서는 어떤 것도 나누지 않는다.

 가르딘은 짐짓 모른 척했다.

 “무슨 일인가?”

  스필언과 미토스는 선뜻 말을 건네지 못했다. 잘못 말하면 비기를 가르쳐 달라는 소리가 되었다.

 “가르침을 주십시오!”

 “가르침? 뜬금없이 가르침이라니, 뭘 가르쳐 달라는 것인가?”

 “저와 대결할 때 검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움과 무게감, 그 속성을 알고 싶습니다!”

 가르딘은 이놈들의 열의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스필언과 미토스가 가진 배경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더군다나 각 가문은 공작에다가 제국 최고의 오러 마스터를 배출한 가문의 자식들이었다. 오만함과 자신감이 절로 고양되기에는 충분했다. 그러함에도 배움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한편으로 대견스러웠지만 그걸 내색하지는 않는 가르딘이었다. 내색하면 주도권을 가지고 올 수 없다. 신참들과의 심리전은 이래서 재미가 있었다. 고참들은 다들 능구렁이가 되어서 순수함은 찾아보려고 해도 없었다. 특히 바자바인 백작은 상대하기 가장 골치 아픈 사람이었다.

 그런 면에서 이놈들은 데리고 놀기 좋았다. 데리고 놀면서 선배의 위대함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고참의 의무였다. 마음과 다르게 가르딘의 말은 차가웠다.

 “그걸 가르쳐 달라는 것은 내 밑천을 모두 내놓으라는 소린데, 지금 그게 무얼 의미하는 줄 알고서 하는 말인가?”

 ‘윽!’

 스필언과 미토스는 상당한 압박감을 받고 있었다.

 가르딘이 힘을 발산한 것은 아니지만 스필언과 미토스는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확실히 무리가 있는 말이기는 했다. 그렇다고 깨달음의 실마리를 포기할 수 없기에 다시 한번 부탁을 했다.

 “저희는 지금 벽에 가로막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그 실마리를 발견했습니다. 기사로 태어나서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한 욕망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디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시고, 깨달음을 주십시오!”

 “흠!”

 가르딘은 고민하는 척했다.

 곰곰이 생각하며,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적당히 뜸을 들이고 나서 말을 하는 것이 중요했다. 너무 빠르면 김이 빠지고, 너무 느리며 무게감이 떨어진다.

 “가르침이가, 나의 기술을 가르쳐주면 내가 얻는 것은 뭐지?”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호오!’

 충성을 받는다라 그건 듣기엔 좋지만 실효성이 별로 없었다. 지금도 스필언과 미토스는 제국의 위해 충성을 바치고 있는데 굳이 그걸 원하지는 않았다.

 “충성은 제국을 위해 바치는 것이다. 그건 당연한 일, 나를 위해 바친다는 생각은 거두어라. 앞으로 제국의 앞날을 이끄는 너희들에게 내가 무언가를 해줄 수 있어서 기쁘게 생각한다. 그리고 너희들의 열정적인 마음에 감동했다.”

 기사의 표본이라고 할 만한 말들이 가르딘의 입에서 나왔다.

 거짓을 말하면서도 눈빛 하나 흔들리지 않는 가르딘의 모습을 필리언이 봤다면 헛구역질을 했을 정도였다. 정작 스필언과 미토스는 기사의 귀감처럼 들리는 가르딘의 말에 감동을 받았다.

 ‘대단하신 분이다!’

 ‘어찌 이런 분이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았단 말인가!’

 너무나 열정적인 스필언의 말에 감동을 받았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그런 열정을 받아주기에 가르딘의 생각이 너무 늙었다. 그저 한 가지 도움을 주면 나중에 왕창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네놈들이 나의 말을 거역하지는 않겠지!’

 똘마니를 만들려면, 매가 무조건 적인 상책이 아니다. 약도 주어가면서 달래는 것도 중요했다. 그리고 이처럼 올곧은 녀석들을 상대할 때 이해타산적인 행동을 하면 오히려 탈이난다. 그 자체로 감동의 바다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 가장 놓은 방법이었다.

 “그래 알고 싶은 것이 정확히 뭔지 말해 보게.”

 “저와의 대결에서 보여준 것이 무엇입니까? 그게 오러의 힘이었습니까?”

 정확하고 예리한 지적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을 골라내는 능력이야말로 뛰어난 녀것들의 특징이었다.

 “긴가민가하겠지.”

 “그렇습니다.”

 “오러가 맞다.”

 ‘휴우!’

 자신들의 생각이 맞다고 확신이 되자 스필언과 미토스가 한숨을 쉬었다.

 “오러를 어떻게 사용한 것입니까! 오러는 폭발성과 파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 오러가 폴발성과 파괴성만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그럼 아니란 말씀입니까?”

 씨익!

 “당연히 아니지.”

 신마의 무공을 얻기 전까지만 해도 가르딘도 스필언과 미토스처럼 생각해 왔다. 하지만 일정경지에 이르면서 오러는 형태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형태가 없는 오러를 인간이 검을 사용함에 폭발성과 파괴성에 주목하면서 대륙의 기사들이 다들 오러의 속성이 파괴적이고, 폭발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오러가 어떻게 생겼다고 생각하나?”

 “어떻게 생기다니요!”

 “설마 검에서 뻗어 나오는 형태처럼 생겼다고 해서 그와 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뜨끔!

 스필언과 미토스는 속으로 뜨끔했다. 그들은 오러의 형태를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저 검으로 오러를 발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에 집중했을 뿐이었다.

 “그게 오류야! 몸에서 형성된 오러를 뿜어내는데, 기사의 경우 검에 실어서 내보내기 때문에, 기사의 경우 검에 실어서 내보내기 때문에 그와 같이 보일 뿐이야! 실상 오러의 형태는 존재하지 않아. 설마 몸 안에 존재하는 오러가 형태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겠지. 그런데 왜 오러가 폭발성과 파괴성만 있다고 생각하지, 형태가 없는데 그와 같이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렇군요!”

 스필언과 미토스는 순간 가르딘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와 같이 생각해 본 기사가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워했다.

 ‘이런!’

 가르딘은 그만 실책을 했다.

 너무 대단한 모습을 보여주면 이놈들이 오해할 수 있었다. 

 “아! 이건 그저 내 생각이 아냐! 나도 우연히 읽은 책에서 본 것뿐이니까! 나 너무 대단하게 보면 민망하네!”

 책에서 봤다는데, 이놈들이 어쩔 것인가!

  “그럼 얘기를 계속 해볼까! 자네들 오러 불레이드를 알겠지.”

 기사가 오러 블레이드를 모르겠는가!

 기사의 꿈이라고 일컬어지는 오러 마스터만이 형성시킬 수 있다고 전해지는 지고의 경지가 바로 오러 블레이드였다.

 “물론입니다.”

 “오러 블레이드의 형태를 보면, 검 모양이지만 그 형태를 어떻게 유지하는지 아는가, 그건 바로 오러 마스터의 의지야! 의지야말로 오러 블레이드를 형성하는데 가장 중요한 핵심이지. 즉, 오러를 뿜어내는 데 그 오러에 의지를 실어 보내는 것이지, 시전자가 오러에 무거움을 생각한다면 오러는 무거울 것이고, 파괴적이라고 생각하면 파괴적이게 되지!”

 쿠궁!

 전혀 생각해 보지 않은 내용이었다.

 그 순간 스필언과 미토스는 그동안 막고 있던 벽이 허물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허물어진 벽을 무너뜨리고 앞에 놓인 신 세상을 향해 발을 들여놓았다. 들여놓은 발을 망설이지 않고 내딛었다.

 ‘그래, 나는 지금까지 너무 얽매여 있을 뿐이었어!’

 ‘오러는 형태가 없고, 자유로웠던 거야!’

 스필언과 미토스의 몸에서 고색창연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순간에 그 둘은 앉은 자세로 눈을 감았다. 앉은 자세 그대로 스스로가 익힌 심법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우웅!

 스필언과 미토스의 몸 안에 존재하고 있던 오러의 양이 급격하게 상승하면서, 기운이 외부로 발현이 되었다. 발현된 기운이 대기를 진동시켰다. 상상할 수 없는 힘이 스필언과 미토스의 몸에서 분출이 되었다.

 누군가의 입에서 탄성이 나왔다.

 “이...럴 수가!”

 가르딘은 순식간에 깨달음을 가로막는 벽을 허물려고 하는 스필언과 미토스를 보고 허탈한 심정에 감탄성을 내질렀다. 자신이 가르쳐준 것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도 그 이치를 깨닫고 스스로 경지를 개척하려는 두 천재의 모습에 기가 질릴 정도였다.

 ‘내가 한 게 뭐 있다고, 그걸 듣고 깨달음을 얻다니! 이런 거짓말 같은 상황이 왜 발생하는 거야!’

 가르딘은 두 천재의 엄청난 능력에 배가 아파왔다. 누구는 한평생 걸려도 이루기 힘든 것은 고작 말 한마다에 깨달았다. 본질적으로 가진 자질의 차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 아닌가! 깨달음의 순간은 매우 위험하다.

 결정적인 순간에 오러의 힘이 분출이 되고, 그 힘을 컨트롤해야 한다. 컨트롤을 하지 못하면 오러 폭주로 인해 다시는 오러를 사용하지 못하는 신세가 된다.

 이 순간이 기사에게는 축복의 시간이자 고통의 순간이다. 고통을 이기고 환골탈태했을 때 새로운 세상이 기사에게 주어진다.

 가르딘은 심통이 났다.

 과거의 자신이라면 그 말 한마디에 깨닫기는커녕 땅바닥을 헤맸을 것이다.

 ‘확, 방해해!’

 가르딘은 건드리고 싶은 욕망을 간신히 참고 있었다.

 한 단계로의 발전이라면 스필언과 미토스와 같은 강력한 기운이 분출하지 않는다. 스스로 제어하기도 힘들 정도로 어려운 과정을 겪고 있었다. 단계와 단계를 순서대로 넘는다면 탈이 없다. 하지만 순식간에 깨달음을 허무는 과정이 나타난 이상 여기서 멈추어서는 안 된다. 멈춘다면 다시는 이런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가르딘이 지금 당황해하는 이유는 바로 신마의 지식 때문이었다. 신마의 사념 속에 포함된 무공의 무리는 결코 수준이 낮을 수 없다. 한가지의 말이라고 해도 그 힘이 가진 범상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가르딘이 평범하고,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념 자체가 뇌리로 스며들어 합일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에 와서는 신마의 사념이라고 하기보다는 가르딘 자체가 신마와 같다고 봐야 했다.

 가르딘이 신마이자 신마가 가르딘이였다.

 가르딘은 그밖에도 곤란한 점이 있었다.

 스필언과 미토스는 마스터의 경지로 향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몸속에서 급격하게 흘러가던 힘이 외부로 발현이 되었다. 발현된 오러의 거운은 범상치 않았다. 그 힘 자체로 사람을 죽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기운이었다.

 ‘가지가지 하네!’

 즉시 가르딘은 방안 전체에 오러의 장막을 시전했다. 스필언과 미토스가 뿜어내는 오러의 발산이 외부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한 조치였다. 지금 이 순간 스필언과 미토스는 중요한 고비였다. 누군가 이 사실을 아는 것은 가르딘에게 곤혹이었다. 사실을 숨기면서 조용히 마무리 짓기 위해 오러막을 설치한 것이다.

 1시간 정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스필언과 미토스는 오러의 힘을 정신력으로 컨트롤하고 있었다. 대단한 정신력이었다. 오러의 발현이 점차 줄어들 때쯤에 스필언과 미토스가 서서히 눈을 떴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세계에 발을 들인 사람처럼 정광이 번쩍였다. 가만히 있는 자체만으로도 오러의 기운이 스며들고 있는 것 같았다. 스필언과 미토스는 온몸에 힘이 넘치고, 가벼운 것을 느끼며 놀라워해야 했다. 어떤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어겨낼 수 잇을 것 같은 자신감이 충만했다.

 “설마!”

 오러 컨트롤을 한번 해보았다.

 오러를 확인하는 데 꼭 검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손안에 맺혀진 오러의 기운이 느껴졌다. 느껴진 기운을 휘들러보자 기운이 자연스레 형성되어 뻗어나가 방의 한쪽 부분을 반으로 쪼개 버렸다.

 쫘악!

 “이런!”

 실수였다.

 오러의 능력이 너무 뛰어나져서 그 힘의 반경을 제대로 측정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가르딘의 방에 강렬한 흔적을 남기게 되었다.

 짝! 짝! 짝!

 “대단하구나! 나의 눈으로 오러 마스터 되는 것을 보게 될 줄은 몰랐구나!”

 가르딘이 짐짓 대단하다는 표정으로 그 둘을 칭찬했다. 속으로는 배가 무지하게 아프지만 그런 속사정을 겉으로 내뱉을 정도로 수양이 작지 않았다.

 순전히 겉으로 보이는 가르딘은 대인이었다.

 누가 보더라도 후배의 일취월장을 축하해 주는 맘 좋은 선배의 모습이었다.

 척!

 스필언과 미토스는 그 순간 정중하게 가르딘에게 기사의 예를 취했다. 그들에게 누구보다 소중한 것을 이루게 만들어 준 사람이 가르딘이었다.

 “모든 것은 선배님의 가르침 때문이었습니다. 이 은혜는 죽어서라도 잊이 않겠습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스승의 예로서 대하고 싶습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너무나 진지한 스필언과 미톳였다.

 정색하고 말을 하고 있을 상황이세 가르딘은 사악한 미소를 속으로 지었다.

 “낚았다!”

 걸려들었다고 생각한 가르딘이었다. 그럼에도 덥석 물지 않는 노련한 낚시꾼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준다고 먹으면 바로 체할 수 있었다.

 “그건 내게 너무 과분하다, 지금 보인 실력만으로 이미 나의 성취를 뛰어넘었다. 어찌 상급의 기사가 마스터에게 스승이 될 수 있겠는가! 그저 나의 조그만 지식이 너희들에게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어 오히펴 기쁘게 생각한다.”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심금을 울리게 만들었다.

 기사에게 이런 말은 감동 그 자체였다.

 기사의 표준이라고 불리는 두 천재.

 스필언과 미토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아닙니다. 제 성취가 뛰어나다 해서 가르침을 주신 분에게 무례를 범할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저희는 배움에 있어서 높고 낮음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스필언과 미토스는 물러설 수 없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가르딘은 이놈들이 너무 정직해서 고민이 되었다.

 ‘이놈들 왜 이리 순진해!’

 착한 것도 정도가 있지, 이것은 도를 넘을 정도로 순수했다.

 ‘하긴 그래서 이토록 빠른 성장이 가능했겠지.’

 공작가의 자체라면 권력의 중심에 서 있는 자리였다. 권력을 잡기 위해 암수와 협작, 협박 모든 것이 스필언과 미토스를 감싸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순수한 마음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스스로 하나의 및음을 가지고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그 길을 향해 나아가는 올바른 녀석들이었다.

 어린 시절 형제끼리 권력싸움이 싫어 도망친 가르딘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건 그거고!’

 솔직히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 당시의 일은 어쩔 수 없는 일, 이미 지난 일을 가지고 앞으로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성격은 아니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가르딘이기에 당연했다. 

 “그렇게까지 말하니, 나도 손을 들 수밖에 없구나. 하지만 대외적으로 내가 너희들의 스승이 된다는 것 자체가 문제의 소지가 될 수 있다. 만약 소문이 퍼지면 나는 어쩔 수 없이 권력의 중심에 서게 된다. 나는 권력을 좋아하지 않는다. 스스로 맞지 않는 갑옷은 몸을 더욱더 무겁게 한다. 나는 지금이 자리가 좋다. 기사의 표본을 실천할 수 있는 피닉스기사단이 좋다는 말이다. 알겠느냐!”

 끄덕!

 스필언과 미토스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다.

 공작가의 아들들.

 차기 제국의 검.

 오러 마스터의 경지를 이십대에 개척한 천재들.

 이 둘의 스승이 된다는 것 자체가 가지는 무게감은 생각하는 것 자체로 머리를 아프게 만든다. 또한 스필언과 미토스는 기사로서의 삶을 충실히 살고 싶어 하는 가르딘의 열의에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완벽한 기사의 표상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이분이야말로 카이로만 제국의 진정한 기사다!’

 ‘내 마음의 스승님이 되실 만하다!’

 가르딘이 마음을 까뒤집지 않는 이상 죽을 때까지 스필언과 미토스는 알지 못할 것이다.

 “나는 뒤에서 너희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나의 이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가르딘은 스필언과 미토스에게 한 가지 말을 당부했다.

 “한 가지 당부할 게 있다.”

 “하명하십시오!”

 “목숨이라도 내놓을 수 있습니다.”

 “허, 목숨은 함부로 거론하는 게 아니야, 내가 할 말은 당분간 마스터가 되었다는 것을 알리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야, 이번 여정이 끝나는 날에 알리는 것이 가장 좋을 거다.”

 대외적으로 마스터의 위상은 대단히 높다.

 검을 숭상하는 기사의 나라 카이로만 제국에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면 그 대접부터가 달라진다. 또한 국가적으로 마스터가 두 명이나 늘어난 것이다. 코카 제국과의 신경전이 있는 상황에서 마스터의 탄생은 감히 범접하지 못할 위압감을 줄 수 있다.

 한시라도 빨리 자신들의 성취를 알리고 싶은 미토스와 스필언이었다. 비록 그들이 천재라고는 해도 아직 젊었다. 공명심이 전혀 없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이유라도 있습니까?”

 후후!

 “당연히 있지.”

 “무엇입니까?”

 스필언과 미토스는 궁금했다.

 가르딘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이 둘은 비밀병기로 사용할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유는 바로 이번 여정을 무사히 마치기 위해서다.”

 “여정에 무슨 위험이 있는 것입니까?”

 “그건 아니다. 하지만 만약에 습격이 있다고 할 때, 상대편은 어떤 전력으로 편성을 할까 생각해 봤지, 공주를 호위하는 우리 기사단의 실력을 알고서 공격할 것이 분명하다. 그때에 너희들의 실력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니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무기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렇군요.”

 “선배님의 말이 맞습니다.”

 스필언과 미토스는 가르딘의 놀라운 심기에 다시 한 번 놀라고 말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다.”

 “무슨 말입니까?”

 다음에 이어지는 가르딘의 말에 스필언과 미토스가 다시 한 번 긴장했다. 한 마디 한 마디 흘려들을 수 없을 정도로 가르딘의 말은 진중했다. 그러하기에 다시 한 번 집중한 것이다.

 “옷은 입고 대답하라!”

 띠잉!

 “헛! 이런!”

 그 둘은 미처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마스터가 됐다는 생각에 입고 있던 옷이 없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오러의 발현이 외부로 퍼져 나갈 때 옷이 견디지 못하고 모두 사라져 버린 것이다. 지금까지 알몸의 상태로 대답을 하고 있었다.

 “내 여벌옷이 몇 개 있으니 우선은 그걸 입어라.”

 “감사합니다.”

 가르딘이 방에서 옷을 꺼내 스필언과 미토스에게 전해주었다.

 옷을 입고 난 그 둘에게 돌아가 보라고 했다.

 “스필언!”

 가려고 하는데 가르딘이 부르자 의아해했다.

 “옷은 나중에 빨아서 가져와라! 그건 특별히 내 아내가 준 것이라서 나도 아껴 입는 거다.”

 “알...겠습니다.”

 제5장 도둑길드

 웅성! 웅성!

 루벤 영지 내에 도둑길드가 설치는 바람에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지고 있었다. 두둑길드가 대외적으로 무력도발을 한 것은 아니지만 가르딘을 찾으려는 일이 잘 풀리지 않자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는 판국이었다. 당연히 분위기가 흉흉해질 수밖에 없었다.

 고작 이틀 만에 평화로운 루벤 영지가 폭풍전야 같았다. 하루 정도의 시간이면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반응이 전혀 없자 고든의 화가 폭발했다.

 “이 멍청한 놈들! 여자를 데리고 성 밖으로는 나간 적이 없었다. 그럼 성안에 있다는 소린데, 아직도 찾지 못했다는 거냐?”“죄송합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흔적도 없습니다.”

 “바보 같은 놈들, 비싼 빵 처먹고 제 일도 하지 못하는 거냐? 당장 찾아내, 내 얼굴에 먹칠 한 놈을 찾지 못하면 네놈들도 가만히 두지 않아!”

 고든은 한 가지에 약했다.

 바로 자신에게 흠이 생기는 것을 도저히 허용할 수 없었다. 완전무결을 지향하는 고든이기에 지금의 자리까지 온 것인지 몰랐다. 하지만 r와 같은 성격은 최악의 성격이 될 수도 있었다. 둑이 하나의 구멍에 의해 무너지기도 하지만 너무 집착을 하다 보면 둑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지부장님!”

 “뭐야?”

 “지금은 자중해야 할 때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라앨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그는 고든의 작전참모와 같았다. 참모는 항상 냉정함을 유지해야 한다.

 “공작성 내에 공주가 있습니다. 지금 너무 들쑤시다 보면 공작성에서 길드를 수색할 겁니다. 그렇게 되면 길드 자체가 위험해집니다. 지금은 길드원들을 영지 내 길목에 배치하고 기다리는 게 더 좋을 것 같습니다.”

 후우!

 고든은 숨을 한 번 내쉬었다.

 감정대로라면 잡는 즉시 죽여 버리고 싶었지만 라엘의 말이 맞았다. 작은 구멍 하나로 인해 길드 전체를 해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그...렇군, 내가 성급했다.”

 “아닙니다.”

  루벤 영지가 시끄러워지자 카스티온 백작의 심기가 좋지 못했다. 영지 내에서 도둑길드가 있다는 것을 알기는 하지만 전면적으로 수사를 한 적은 없었다. 이유는 도둑길드 자체가 죄를 짓는 경우가 없었기 때문이고, 다음으로는 잘못 건드리면 벌집을 쑤시는 격이 되기 때문이었다.

 도둑길드이 지부장은 고든은 모르겠지만 카스티온 백작은 만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고든이 행태를 살펴보고 있었다. 영지 내에 공주가 있는 상황에서 이토록 도발하는 도둑길드를 그냥 내버려두어서는 안 되었다. 이 기회에 도둑길드를 소탕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눈에 가시 같은 놈들이, 제 발로 도발해 주는군.”

 검술로는 파스트론 공작의 자식들 중 가장 떨어지지만 그 심기만은 가장 깊고, 무서웠다.

 “제론!”

 “예, 백작님!”

 “백작가 내에 기사들을 준비시키게, 공주님이 출발하시고 나서 바로 도둑길드를 소탕해 버려야겠어, 이대로 놔두어서는 안 되겠다!”

 “하지만 백작님, 도둑길드는 위험한 곳입니다. 물론 무력으로 소탕할 수는 있겠지만 나중에 보복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럼 이대로 두고 보자는 말인가?”

 “아직 놈들이 무력을 동원한 것은 아닙니다. 정확한 상황을 파악한 후에 움직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기다리자는 말이야?”

 “놈들도 제정신을 가지고 있다면 함부로 행동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가, 하지만 조금이라도 놈들이 이상한 행동을 하거든 즉시 행동해서 잡아들여.”

 “물론입니다.”

 카스티온 백작과 고든 둘 모두 어느 한쪽의 상황을 지켜보는 상황이었다. 하나의 꼬튜리라도 잡히면 바로 움직일 것이다.

 둘이 심각한 대화를 하고 있을 상황에 가르딘이 카스티온 백작의 방문 뒤에서 놀라고 있었다. 가르딘은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는 것을 듣고 나니 마음이 뜨끔했다. 일의 원인이 어찌되었건 백작가가 도둑길드를 소탕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로 인해서 얻어질 피해가 만만치 않을 것을 생각하면 심각한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거, 어떡하지. 우선은 공주에게는 비밀이다!’

 안타깝지만 도와주기에도 위험했다.

 괜히 끼어들어 봤자 좋은 꼴 못 본다. 그렇기에 공주에게는 전적으로 비밀이었다. 알면 나서려고 할 것이 분명했다. 공주가 나서면 나중에 여정에서 벌어지는 위험한 일을 감수해야 한다. 도둑길드와 정면으로 부딪쳐서 여정을 무사히 마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무시하고 가! 말아!’

 가르딘은 독한 마음을 먹었다. 그럼에도 무시할 수 없었다. 이대로 도둑길드와 무력충돌을 하면 제국에 좋은 영향을 주지 않는다. 카스티온 백작이 제법 대단한 심기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도둑길드의 힘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대로 충돌이 일어나게 놔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가르딘이 비록 무사안일주의의 최고정점에 오른 방만한 기사이기는 하지만 책임지지도 못하는 일을 벌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특히 그로 인해 영주민들이 피해를 본다면 가슴에 앙금으로 남는 일이 된다.

 “어떻게 한다?”

 생각은 좋은 일이다.

  자주 생각하면 답이 나오기도 하니 말이다.

 그러다가 한 가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놈이 누구더라.’

 도둑길드의 특성상, 한번 실패한 녀석에게 신임을 주지 않는다. 그로 인해 도둑길드 내에서 배신이 발생하기도 한다.

 ‘지금쯤 벌벌 떨고 있겠지, 조금만 건드려 주고 떠나야겠다!“

 직접 나서서 해결하기에는 무리지만 도둑길드 내 자중지란을 획책하는 가르딘이었다. 

 똑! 똑!

 가르딘의 카스티온 백작의 문 앞에서 노크를 했다.

 “들어와.”

 문을 열고, 가르딘이 카스디온 백작에게 인사를 했다. 만면에 근심걱정 전혀 없어 보이는 얼굴로 인사를 하는 가르딘이었다. 짐짓 모른 척 수심이 가득한 카스티온 백작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입니까?”

 “아닐세, 일은 무슨 일. 서류를 정리하다 보니 잠을 못 자서 그런 걸세!”

 “허! 대단하십니다, 열성적인 백작님을 보니 저도 힘내야 한다는 마음이 드는군요!”

 “과찬일세!”

 도둑길드 때문에 정신없는 카스티온 백작이었지만 속내를 그대로 내비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가르딘은 여정의 총책임자이니 함부로 말해 봤자 백작의 위엄만 손상시키게 된다. 왠만하면 가르딘이 모르는 것이 나았다.

 알면 나중에 아버지까지 알 수 있었다. 아버지에게 무능력하다는 평가를 받고 싶지는 않았다. 가르딘도 알면서 내색하지 않았다.

 오래된 능구렁이 2마리가 서로의 속내를 보이지 않고 그저 주변 이야기만 할 뿐이었다.

 “내일 출발할 예정입니다. 그래서 인사 겸, 말씀을 드리려고 왔습니다.”

 “그런가, 공주님의 즐거운 여정을 위해서 오늘 만찬을 특별하게 준비하겠네!”

 “감사합니다. 공주님도 백장님의 환대에 감사하게 생각하시고 계십니다.”

 “허허! 그렇게 생각해 주시다니 감사할 따름일세!”

 “그럼, 만찬에서 보겠습니다.”

 “‘그러세.”

 가르딘이 나가고 난 후에도 카스티온 백작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공주가 알지 못하게 하는 게 우선순위이기에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가르딘은 잠시 외출을 하기 위해서 필리언을 찾았다. 필리언은 신참들을 단속하고, 공주의 주변에 기사를 붙여 놓고 있는 상태였다. 가르딘이 총책임자이기는 하지만 손이 여러 개일 수는 없다.

 일을 함에 있어서 혼자 잘하는 것은 미련한 짓이다. 서로에게 신뢰를 주고, 일을 분산하여 

 효율을 높이는 것이 진정으로 훌륭한 처리방식이었다. 그런 면에서 가르딘은 훌륭한 책임자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물론 속내는 귀찮은 일 떠맡기기일 뿐이지만 말이다.

 “잠깐 나가 봐야 할 것 같아서 말이지.”

 “무슨 일인데.

 “별일은 아니야, 아내와 딸에게 줄 선물을 좀 사려고, 루벤 영지의 특산물인 리베시안 찻잎이 좋다고 해서 구하려고!”

 “야, 진짜 지극정성이다.”

 리베시안은 루벤 영지에서 황제에게 바친다는 찻잎이었다. 은은하고 맑은 향기를 가진 찻잎이지만 그 효능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정력보강제라는 평판이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비싸고, 소량이다. 영지 내에서도 굉장히 비싼 가격일 것이다.

 손바닥만 한 정도 크기면 최소 10골드는 할 것이다.

 필리언이 지쳤다는 표현을 했다.

 하긴 별다른 일이 없으니 그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았다.

 “정도껏 해라, 그리고 빨리 돌아와. 아무리 내가 일을 열심히 해도 총책임자는 너니까 말이야!”

 “물론이다. 그리고 너 일 잘 못하잖아!”

 가르딘의 수법에 놀아날 필리언이 아니었다. 필리언도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능구렁이였다. 능구렁이끼리의 대화는 군더더기가 없어서 좋았다. 신참은 하나하나 가르쳐주어야 하지만 고참들은 알아서 척척이었다. 개중에 못하는 놈들이 있어서 문제지만 말이다.

 루벤 영지는 넓다.

 사람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특히 한 번 본 놈을 찾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가르딘은 행동반경을 좁혔다. 가르딘이 생각하기에 그놈은 뒷골목의 술집, 아니면 마커스의 집 주위에 있을 것이다. 마커스의 딸 쉴라를 찾으려고 하는 놈의 성격으로 봐서 내가 그 집에 다시 나타날 것으로 생각할지 모른다.

 반경을 좁히고 나서 가르딘은 탐색을 시작했다.

 찾을 수 없단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유는 바로 기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놈을 구타할 때 알게 모르게 몸 안에 가르딘의 기를 주입시켰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 한일이었다.

 놈이 생각지 못하게 마커스 가족에게 복수한다고 설치면, 막아내야 했기 때문이다. 가르딘이 기를 집어넣었기 때문에 일정 반경에 나타나면 반응을 체크할 수 있을 것이다.

 “어디 찾아 볼까나.”

 시간이 얼마 없기에 아주 바빴다.

 가르딘은 한곳을 찍었다. 놈이 머리가 있으면 마커스 가족의 근처에서 기다릴 것이라고 생각하고 찾았다. 그런데 운이 좋았다. 반경을 줄이고 그 안을 찾자 제대로 찍은 것이다.

 우웅!

 기가 반응을 하는 곳으로 향해 천천히 이동했다.

 산토스는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고든에게 한 번 찍혔으니 다시 올라가는 것은 꿈도 꿔보지 못할 것이다. 지금까지 탄탄대로였던 인생에 검정물을 드리우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그 개잡놈 때문이었다.

 그놈이 무슨 이유로 방해했는지 모르지만 다시 나타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커스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행동이 보이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이놈이 알든 모르든 그때는 죽음이었다.

 ‘잡히면 죽여 버리겠다!’

 자신이 지금 데리고 올 수 있는 녀석들 중에서 제법 출중한 놈들을 선별했다. 숨겨 논 힘을 가능하면 쓰지 싫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상해, 딸이 잡혀갔는데도 멀쩡한 게 이상하단 말이야!”

 그게 신경 쓰여서 계속 지키고 있었다.

 딸이 잡혀갔는데, 아무렇지 않게 일상생활을 하다니, 그게 말이 되는가! 친자식이 아니고서는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울고불고 자신의 앞길을 막아서던 녀석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틀 동안 유심히 지켜봤다.

 그 이상한 미친놈이 나타날 것이라고 지켜봤지만 나타나지 않았다. 날이 저물고, 정신적으로도 힘이 들 때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모든 것이 짜증나고 화가 났다. 화를 풀기 위해 마커스 가족을 끝장내려고 마음먹었다.

 “다 필요 없어, 죽여 버리겠다!”

 그런데 이때였다.

 “어이!”

 누군가 마커스를 불렀다.

 얼굴을 가리고 능글맞게 웃는 놈이 있었다. 바로 자신을 물 먹였던 놈이었다. 감히 할 짓이 없어서 인신매매법이라고 한 놈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이 개잡놈! 저놈을 잡아!”

 20명의 수하들이 가르딘을 향해 돌진했다. 모두 살기등등한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가르딘은 웃었다. 숫자가 두 배로 많아졌다고 해서 자신을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는 아둔한 놈이었다. 가르딘은 가볍게 손가락을 풀었다.

 뚜둑!

 다가오는 녀석들의 모습은 너무 느렸다. 주먹이 날아오기도 전에 가르딘의 손가락이 산뜻하게 놈들의 움직이는 동작을 정지시켰다.

 점혈 수법이었다.

 오러로 상대의 오러를 끊어 버리는 고단위 수법이었다. 이 시대의 기사들이 할 수 없는 수법이라 자칫 마법사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기술이었다.

 파팟! 파팟!

 “어...어! 몸이 안 움직여!”

 홀드(정지)마법이 걸린 것처럼 몸이 마비가 되자 산토스의 수하들이 멈칫했다. 마법사는 그들이 상대하기에 버겁다고 생각한 것이다. 순식간에 스무 명이나 되는 놈들이 그 자리에서 석고상이 되어버렸다. 산토스는 또다시 뒷걸을쳤다.

 이번에도 역시 나였다.

 상당히 뛰어난 놈이라고 생각했는데.

 “마법사.....”

 “후후!”

 가르딘이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놈이 좀 전에 한 말을 들었다. 이유 불문하고 마커스 가족을 죽이려고 한순간 이놈들을 철저하게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적어도 양심이 있다면 무관한 사람은 건드리지 말아야 했다. 스스로 명을 재촉했으니 거리낄 것이 없었다.

 또한 가르딘은 어이없어 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넌 운이 참 없어, 여기서 못 찾으면 그냥 갈려고 했거든. 역시 하늘은 너 같은 악당을 용서하지 않는 것 같아.”

 하필이면 여기에 나타난 산토스였다.

 가르딘은 마커스의 집과 술집을 찾아서 산토스가 있으면 단죄를 내리고 아니면, 그냥 빠질 생각까지도 했다.

 그런데 역시 나였다.

 주신 라이니언께서는 못된 놈들을 용서하지 않는 것 같았다.

 산토스는 가르딘이 하는 말에 화를 내었다.

 “지랄하지 마라! 네놈 때문에 내 인생이 끝났어!”

 “그런 말하기 전에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는 것이 좋지 않겠어, 언제나 약한 자들의 피와 땀을 뺏어 오던 놈이 잘 살기를 바라다니 너무 이기적인 것 아닌가!”

 “닥쳐, 역시 네놈이 의도적으로 날 방해한 것이구나!”

 가르딘은 이런 놈들을 잘 안다. 말로 해서는 알아듣지 못하는 구제불능이었다. 자신의 잘 못은 생각지 못하고, 타인으로 인해 자신의 인생이 잘못되는 것만을 생각하는 놈들이다.

 사람의 일생은 뿌린 대로 거둔다고 하지 않는가! 남에게 해악을 끼쳤다면 그로 인해 자신도 화를 당하게 되는 것이 하늘이 이치였다.

 “내가 할 말은 하나다. 라이나와 브리안, 주신 라이니언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다!”

 손가락을 가리키며 특이한 동작을 하는 가르딘이었다. 가르딘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증명인으로 하여 상대에게 단죄를 내리려고 했다.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그냥 지나갈 수 없는 일이었다. 눈에서 열렬한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샅토스는 뒤로 주춤했다.

 해괴망측한 놈이기는 해도 그 실력은 도무지 따라갈 수 없었다. 스무 명이나 되는 수하들이 반항 한 번 제대로 못하고 당했으니 자신으로서는 이길 수 없는 놈이었다. 도망이라도 쳐서 도둑길드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중요했다.

 “두...고 보자!”

 도망치려는 산토스였지만 그게 맘대로 되겠는가! 가르딘은 산토스의 신형을 가볍게 제치고, 점혈을 해버렸다. 몸이 그대로 굳어버리자 산토스는 공포감이 들었다. 어떤 수법을 사용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이거 어이없는 놈이네, 지금 네 실력에 도망칠 수 있다고 보는 거냐. 나 참! 나를 너무 무시하네.”

 “으윽!”

 몸을 움직이려고 할수록 고통만이 자리 할 뿐이었다.

 산토스가 비록 하류잡배와 같았지만 독종이었다. 눈에서는 여전히 가르딘을 향한 적의가 번뜩이고 있었다.

 “날 건드리고, 두둑길드가 그냥 둘 줄 아느냐, 네놈은 이제 대륙을 돌아다닐 수조차 없게 되었다!”

 도둑길드의 정보망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는 말이었다. 그럼에도 가르딘은 여유만만했다. 얼굴도 모르는 놈이 큰소리 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내 얼굴도 모르면서 큰소리는, 그러면서 몸은 왜 그렇게 떠냐. 그런 일은 절대로 발생하지 않아. 그리고 말이 너무 많았지. 이제부터 내 눈을 잘 봤으면 좋겠다.”

 번쩍!

 가르딘의 눈에서 적광이 번쩍였다.

 그 빛은 산토스의 눈을 통과해 정신까지 파고들었다. 강렬한 빛은 욕망의 덩어리였다. 욕망은 사람의 마음까지 좌지우지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마음속에 가둬둔 작은 욕망이 점점 켜져 제어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한다.

 “이름?”

 “산...토스!”

 “자! 한 번에 확 간다. 레드썬!”

 -신마의 신변잡기.

 신변잡기라 불리는 신마의 기술 중에 하나가 바로 사념안이었다. 별다른 것은 아니었다. 상대의 사념을 자신의 사념으로 증폭하는 기술이다. 기술의 일종이기는 하지만 어려움 점은 정신력의 집중이다.

 그렇다고 정신의 일절을 모두 지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념안의 특징은 한 가지 이에 대한 집중적인 사념의 증폭으로 내면에 감추어진 본성을 극도로 끄집어내게 한다..

 본성을 자극하는 가르딘이었다. 산토스 내면에 숨 쉬고 있는 욕망이 폭포수처럼 타오르기 시작했다. 타오른 욕망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이미 제어한ㄴ 것이 불가능한 상태에 다다랐다.

 “넌 할 수 있어.”

 “난 할 수 있다!”

 “너라면 할 수 있어!”

 “나라면 할 수 있어!”

 “그게 바로 나야!”

 “그게 바로 나야!”

 반복적이고 지루한 말의 연속이지만 그 효과는 탁월했다.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말속에 스며 있는 오묘한 능력에 지배되고 만다.

 넓고, 화려하며, 끼끗한 방이었다. 내 집이 없어 고생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한 번이라도 살아보기를 원하는 훌륭하고, 세련된 방이다. 그런 방에서 한숨이 들렸다.

 후우우! 

 여인의 한숨을 점점 더 커지고,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화려하고 넓은 방이지만 그 안은 너무 답답하고,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아! 짜증나!”

 “공주님이 너무 불쌍하세요!”

 “응! 역시 엘리언밖에 없다니까!”

 그 옆에서 두 명의 여인이 서서 대기했다. 그 중에 적응기간이 거의 없었던 어린 시녀는 상당히 놀라는 눈치였다. 그녀는 설마 공주님이 저런 말을 할 줄 몰랐던 듯한 표정이었다. 공주라면 당연히 우아하고, 세련된 고상한 말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내숭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쉽지 않은 변화를 쉽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직 어린 쉴라에게 무리였나 보다.

 쉴라가 당황하건 말건, 시종장 엘리언은 평상시와 같았다. 오히려 공주의 그런 반ㅇㅇ에 호응을 해주며, 화답을 하는 것이 아닌가! 쉴라에게 엘리언은 가장 무서운 여인이지 선배였다

 이틀밖에 되지 않았지만 어느 것 하나 흐트러짐이 없었다. 완벽함 그 자체였다. 그런데 이런 모습을 보이다니 그 변화가 가히 번천헌지했다.

 아이시런은 이 모든 일이 가르딘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일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는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한 사람에게 원망을 보내고 있었다.

 “이, 아저씨는 어디 간 거야?”

 “가르딘 경 말씀입니까?”

 “그래, 그 아저씨는 왜 지금까지 나타나지도 않아.”

 “잠시, 주변을 순찰한다고 나가셨습니다.”

 “흥! 오지랖도 넓으셔.”

 “그럼, 불러올까요?”“아냐, 됐어, 그보다 필리언 경을 불러와.”

 “알겠습니다. 공주님!”

 시종장, 엘리언이 아이시런의 명을 받들기 위해 나갔다. 아이시런은 쉴라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밖에 돌아다니지 않게 한 것이다. 아직 외부로 자주 나가서는 안 되는 상황을 알기 때문이었다.

 아이시런과 홀로 남게 된 쉴라는 긴장하고 있었다. 공주의 색다른 모습을 봤다고는 하지만 공주는 공주였다. 자신은 까마득히 올려다봐야 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자였다. 한순간 행동을 잘못하다, 목숨을 잃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러니 함께 있는 것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씨익!‘ 

 아이시런은 긴장하고 쉴라에게 편하게 대하라고 했다.

 “쉴라야.”

 “예, 공주님!”

 “언니라고 해봐.”

 ‘엥?’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쉴라는 순간 더욱 당황했다. 공주에게 언니라고 하다니 그게 가당키나 할 말인가! 그 말을 하는 순간 대역죄인이 될지도 모른다. 순간적으로 잘못 들었다고 치부해 버리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을 것 같았다. 쉴라는 답을 내리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것이 전부였다.

 “내가 1살 위니까, 언니라고 하라니까!”

 “하지만 감히 제가 어떻게 공주님께 그런 말을!”

 “어허, 한번 해보라니까, 어서! 이건 명령이야!”

 아이시런은 한번 이런 말을 들어보고 싶었다. 위로 오라버니밖에 없어서 언니라는 마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보통의 자매들처럼 언니, 동생 하는 편안한 상대가 되어주기를 바랐다.

 공주가 그런 말을 해도 쉴라로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할 수... 없어요!”

 “음, 한번 해봐! 진짜 내가 듣고 싶어서 그러는 거니까, 빨리 해보라니까!”

 아이시런의 집요함은 역시나 대단했다. 가르딘도 공주의 막무가내와, 집요함에는 제대로 대응하기 쉽지 않았다. 산전수전 다 겪은 가르딘이 이럴진대, 아직 어린 쉴라에게 적절한 대응을 원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쉴라는 결국 두 손 들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공주가 시키는 대로 했다.

 “언... 니!”

 “호호, 그래, 쉴라야, 이제부터 아이시런 언니라고 하렴.”

 “예, 아이시런 언니.”

 “아무도 없을 때는 항상 그렇게 불러, 알았지! 이건 명령이야.”

 “예, 아이시런 언니.”

 “옳지, 그래! 내 귀여운 동생아.”

 고작 1살 차이면서 나이 많은 언니가 동생을 대하는 듯하지 않는가! 금세 기분이 좋아진 아이시런이었다. 다혈질이라서 쉽게 흥분하고, 쉽게 화를 후는 것이 공주의 특징이기도 했다.

 똑! 똑!

 문소리가 들렸다.

 문 밖에서 엘리언이 말을 했다.

 “공주님, 필리언 경이 왔습니다.”

 아이시런은 금세 옷매무시를 단정히 하고, 위엄 있는 모습을 회복했다.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고 하지만 그 모습은 가히 경천동지할 만했다. 너무나 빠르게 신색을 회복하자 누구도 공주의 내숭을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공주의 성격을 아는 사람이 극히 드물었던 것이다. 쉴라도 누가 들어온다는 것을 알자 급히 주위로 물러나 대기했다.

 엘리언이 밖에서 소리를 내는 것은 공주의 성격을 알기에 미리 알려주기 위한 방법이었다. 역시나 엘리언은 공주를 속속들이 다 아는 시종장다웠다.

 척!

 필리언이 공주의 앞에 다가가 무픔을 꿇었다.

 “신, 필리언! 공주님의 부름을 받고 왔습니다.”

 “반가워요. 필리언 경.”

 필리언은 가르딘에게 공주의성격을 들어서 알고 잇는 상태였다. 공주가 외적으로 보이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필리언 경, 편하게 앉으세요.”

 “아닙니다. 어찌 공주님과 대면을 하겠습니까!”

 “아니에요, 제가 불편해서 그런 거니까, 편안하게 앉으세요.”“그럼, 알겠습니다.”

 아이시런의 정중하고, 숙녀다운 말투에 필리언은 헛갈렸다. 가르딘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말이다. 어찌 이런 모습의 공주에서 그와 같은 성격이 나올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했다. 결론은 절대 아니다 라고 내리고 있었다.

 능글맞은 가르딘의 말보다 공주의 말이 호소력 짙었다.

 “쉴라야, 필리언 경에게 차를 따라 드리렴.”

 “예, 공주님.”

 쉴라야, 필리언 경에게 차를 따라 드리렴.“

 “예, 공주님.”

 쉴라가 조심스럽게 주전자를 들고, 차를 컵에 따랐다. 필리언 경은 아름다운 공주님과 차를 마시는 것에 황송해하는 눈치였다.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불렀어요.”

 “무엇이든지 물어보십시오, 제가 아는 것을 모두 말씀드리겠습니다.”

 “도둑길드에 대해 아세요?”

 ‘음!’

 설마 아이시런 공주가 도둑길드에 대해서 볼 줄 몰랐던 필리언이었다. 제국의 궁전 깊숙한 곳에서만 살아온 공주가 들어보지 못한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뜻밖의 질문이었지만 필리언은 고민하지 않았다.

 “물론입니다.”

 아이시런은 잘됐다는 표정이었다.

 “도둑길드가 그렇게 위험한 놈들이에요?”

 가르딘에게 등기로는 상당히 위험해서 제국에서조차 건드리지 못하는 집단으로 설명을 했다. 그때에는 하도 가르딘의 말이 사실적이라서 의문이 들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어딘지 모르게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위험한 놈들인 것은 맞습니다. 그 숫자도 많을뿐더러, 놈들 자체가 모두 어둠의 길드에 속하는 놈들이라 쉽지 않은 놈들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여기까지는 가르딘의 설명과 다르지 않았다.

 “그래요, 그럼 우리 제국과는 어때요? 특히 피닉스기사단과 비교하면 어느 정도지요?”

 ‘허!’

 대륙최강국을 대표하는 카이로만 제국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무력단체라고 불리는 피닉스기사단이었다. 대륙의 어느 기사단도 1시간이면 쓸어버릴 수 있는 가공한 무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피닉스기사단과 도둑길드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모욕이었다.

  “감히 도둑길드 따위는 제국을 위협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피닉스기사단은 대륙 최강의 기사단입니다. 놈들이 아무리 강해도 피닉스기사단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호오!’

 “그래요, 아주 좋은 정보 감사해요.”

 가르딘이 말하길, 아무리 기사단이라고 해도 위험하다고 설명을 했다. 그런데 필리언의 말을 들어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위험하긴 해도 제국의 힘이면 충분히 대비할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이, 아저씨가 날 속였어! 어디 두고 보자!’

 에이취!

 코가 간지러운 가르딘이 그 시각에 기침을 했다.

 “누가 내 욕하나?”

 가르딘은 한창 바쁘게 루벤 영지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일을 마무리 짓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음에도 오한이 들었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루벤 영지를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8개의 진입로를 통과해야 한다. 도둑길드 내 소속원들이 모두 루벤 영지의 길목 부분에 배치가 되어 있었다. 이 지역을 통과해야만 다른 지역으로 갈 수 있었기에 택한 방법이었다.

 영지를 다 수색했지만 찾지 못했기에 선택한 방법이었다. 특히 놈의 실력이 상당한 것으로 보아, 실력자들을 대거 파견했다. 그로 인해 많은 수의 소속원들이 지부에서 빠져나가있는 상태였다.

 까닥! 까닥!

 고든이 의자에서 앉아서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무언가를 기다릴 때 하는 행동이었다. 그 앞으로 여전히 라엘이 딱딱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삭막한 표정을 짓는 고든에게 라엘은 한 가지 우려 섞인 말을 했다.

 “지부장님, 지부 내에 소속원들을 너무 많이 파견한 것 같습니다.”

 “괜찮다, 루벤 영지는 내 손바닥이야, 우리를 건드릴 놈들이 어디 있다고 그런 소리냐.”

 고든은 약간 무리를 하더라도 빈틈없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소속원들을 대거 파견했다. 그 숫자가 무려 200명이나 되었다. 라엘은 지부 내에서 수하들이 30명밖에 되지 않는 것을 걱정했다. 하지만 일단 결정한 고든의 명령을 거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라엘이 생각하기에도 도둑길드를 건드릴 놈들이 없어 보였다.

 도둑길드의 입구는 여러 개의 골목길 사이에 있어서 찾기도 쉽지 않았다. 또한 술집으로 위장을 해놓았기에 찾는다고 해도 도둑길드인지 알 수가 없었다. 완벽하게 위장해 놓은 도둑길드의 술집 피트온으로 산토스가 걸어 들어갔다.

 피트온의 입구로 들어가자 그 안에 길드를 지키는 수문장 2명이 막아섰다. 막아선 소속원은 들어오는 자가 산토스인 것을 확인하자 길을 터 주었다. 산토스는 그저 들어가는 듯하다 갑작스럽게 한광을 번쩍였다. 그와 동시에 소매 속에 숨겨 논 단검을 신속에게 뽑아내어 두 소속원의 등을 찔렀다.

 수욱! 수욱!

 “커어억!”

 아무 의심 없이 등 뒤를 보인 소속원 2명은 속수무책이었다. 등 뒤 척추를 단검에 찔리자 그 즉시 몸을 부르르 떨다가 쓰러졌다. 원래라면 문을 지키는 문지기가 더 있겠지만 오늘은 2명뿐이었다. 그것을 알고 있는 산토스이기에 서슴없이 행동을 한 것이다.

 그가 밖으로 나가서 숨어 있는 20명의 수하들에게 손짓을 했다. 그러자 골목길 뒤에서 숨어 있던 20명의 수하들이 신속하게 피트온으로 들어오다.

  이상한 것은 도둑길드를 배신하는 것인데, 전혀 두려워하는 눈빛이 없었다. 그들 모두 상당한 독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보통 때보다 더한 기운이었다. 의욕이 넘쳐흘러 독기가 되어 있었다.

 “오늘 역사가 바뀐다, 보이는 족족 죽이고, 고든은 확실하게 죽여야 한다. 알겠나!”

 “물론입니다. 고든이 우리를 이렇게 대하다니 너무 억울합니다.”“놈을 죽이지 않으면 죽더라고 눈을 감을 수 없습니다.”

 마치 철천지원수를 대하는 듯하지 않는가! 이토록 처절한 기운을 뿜어내다니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가자.”

 일사불란하고, 빠르게 입구를 지나 도둑길드의 심처로 들어갔다. 산토스는 지부 내의 간부 중에 하나이기에 입구에서 시작하는 미로를 이미 알고 있었다. 들어가는 데, 어려운 것은 없었다. 오히려 안에 지키고 있던 소속원들이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산토스로 인해 당황하다 순식간에 목숨을 잃고 있었다.

 아무런 방비도 없이 방심하고 있다가 당하니 속수무책이었다.

 “크앗!”

 산토스의 수하들 역시도 보통 때보다 빠르고 강했다. 실력이 제법이기는 하지만 지부 내를 지키는 소속원 역시도 만만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입구에서부터 시작해서 지키는 소속원들 10명을 모두 죽여 버린 산토스가 고든의 방으로 들이닥치기 일보직전이었다.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앉아 있던 고든이 일어났다. 소속원 중에 한 명이 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고든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이유를 묻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산토스가 배신했습니다!”

 “뭐... 라고!”

 고든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찡그려졌다. 버러지 간은 놈을 살려줬더니 뒤통수를 친 것이다. 화가 나는 것은 둘째치고, 어이가 없었다.

 “개 주제에 주인을 물려고 덤벼! 라엘 그놈을 당장 잡아와!”

 “지부장님은 우선 자리를 피해 계십시오! 지금 길드 내 인원이 얼마 없습니다.”

 “버러지 때문에 피하라고, 내가 말이야! 괜찮으니까 산토스를 잡는데 집중해.”

 라엘은 하는 수 없었다. 고든을 지키는 10명의 수하들은 모두 단련된 길드원이었다. 모두 일반 길드원보다 훨씬 강했다. 산토스가 기습을 하긴 했지만 무리 없이 제압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다.

 라엘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쳐들어오는 산토스를 맞이하였다.

 산토스는 앞으로 나아가다 가로막는 라엘을 바라보았다.

 라엘은 어처구니없었다. 배신은 그 어떤 것보다 가혹하게 처벌을 받는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잔인한 처벌을 받게 되는데, 지금 보인 산토스는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산토스, 미친 거냐! 감히 배신행위라니, 그게 무얼 뜻하는지 알 텐데!”

 “스끄러! 고든의 똥구멍이 핥는 개 주제에 어디서 설교야!”

 꿈틀!

 라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평상시 서열상으로도 산토스는 자신의 밑이었다. 자신의 말 한마다에 벌벌 떨던 놈이 지독한 독설을 퍼붓자 화가 치밀었다. 항상 냉정한 라엘도 본분은 도둑길드원이었다. 그 성정이 악독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도둑길드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사내였다.

 “버러지 같은 놈이 감히, 내게! 놈을 죽여라!”

 “닥쳐, 죽는 것은 너다! 모두 쳐라!”

 산토스의 수하들 20명과 라엘이 데리고 온 10명이 길드원이 서로 검을 맞대기 시작했다. 

 키키캉! 카캉!

 검과 검이 부딪치고, 난 후 사상자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라엘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지고 있었다. 설마 했는데, 산토스가 데리고 온 놈들의 기세가 장난이 아니었다. 평소보다 더 강한 것 같았다. 수적으로 2배 차이가 나기는 하지만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는 좀 전의 생각과는 다르게 오히려 밀리고 있었다.

 죽는 숫자는 똑같았지만 상대편은 숫자가 더 많았다. 이렇게 되면 당하는 것은 자신이었다. 라엘은 상황이 불리하자 뒤로 몸을 빼려 했다.

 “어딜 가시나!”

 “산토스, 네가 이러고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흥, 네놈 목숨이나 걱정하시지.”

 산토스는 라엘의 말을 듣지도 않고, 단검을 던졌다. 빠르게 날아오는 단검을 가까스로 피한 라엘이 식은땀을 흘렸다. 그와 동시에 산토스가 검을 뽑아 휘둘렀다.

 카앙!

 라엘도 검을 뽑아 막기는 했지만 쉽지 않은 승부였다. 평소의 산토스가 아니었다. 독기와 함께 힘도 더 세진 것 같았다. 라엘은 연신 뒤로 밀리면서 신음성을 내질렀다.

 ‘이럴 수가!’

 라엘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가운데, 산토스의 수하들 중 2명이 덤벼들었다. 한 명도 벅찬데, 두 명이 한꺼번에 덤비자 라엘은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상황이었다. 가까스로 위험한 순간을 넘겼다고 하지만 팔과 다리, 가슴이 검에 베어 핏물이 흘러내렸다. 

 주르륵!

 ‘승산이 없어!’

 도망치려는 라엘이었지만 앞 뒤 모두 포위가 되어버렸다. 라엘은 죽고 싶지 않았다. 이제까지 어떻게 살아 왔는데, 이건 개빵 같은 상황으로 죽을 수 있단 말인가!

 “산...토스, 살려주게!”

 서걱!

 살려 달라고 사정하는 라엘의 말을 무시하고, 산토스의 검이 인정사정없이 라엘의 목을 잘라내었다.

 데굴! 데굴!

 잘린 목이 힘없이 바닥에 떨어져 굴렀다. 그와 동시에 잘려진 목 부위에서 플러나온 피로 바닥을 흥건하게 적셨다. 피를 본 산토스는 광기에 휩싸인 듯했다.

 “그러게, 전부터 신경질 나게 하지 말았어야지. 이제 남은건 고든뿐이겠지. 언제나 나를 무시한 놈이니 사지를 잘게 잘라주겠다.”

 뻐엉!

 고든의 집무실을 거칠게 차고 들어오는 산토스였다. 산토스는 살기 팽천한 모습으로 고든을 잡기 위해 노려보았다. 그런데 막상 문을 열고 들어가자 고든이 없었다. 언제나 거만하게 사람을 부려먹던 고든의 모습니 보이지 않자 산토스의 고아분은 더욱 커졌다.

 분노가 하늘과 맞ㅤㅊㅏㅎ는 기분이었다.

 “이런 쥐새끼 같은 놈, 도망을 쳐! 그동안 항상 거만한 척 날 부려먹던 놈이 고작 이런 놈이었어!”

  우당탕!

 분을 참지 못한 산토스가 집무실의 가구들을 마구 집어던졌다. 그와 동시에 수하들에게 놈을 찾으라고 했다.

 “어서 찾아 봐, 나 갈 길은 없었으니까?”

 집무실을 마구 던지던 산토스는 탁상 아래에 있는 작은 입구를 볼 수 있었다. 사람 하나 지나갈 수 있는 작은 통로였다.

 빠드득! 

 산토스는 일이 틀어진 것을 알았다. 고든이 통로를 통해 도망친 것이다. 놈은 분명히 길드원들을 다시 불러들일 것이다.

 이대로 있으면 자신은 도망도 못 치고 당할 수 있었다. 아무리 자신들이 평소보다 강해도 200명이나 되는 길드원을 모두 막아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산토스는 일이 실패한 것에 대해 분노가 치밀었다.

 “제기랄!”

 어떻게 해서든 고든을 죽여야 이 모든 책임을 고든에게 물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고든이 살아나면 자신만 당하게 된다. 

 “우선은 빠져나간다.”

 산토스와 남은 수하 12명이 신속히 도둑길드를 빠져나갔다.

 빈 둥지가 되어버린 도둑길드를 유유히 걸어 들어가는 인영이 있었다. 모습이 그림자와 같아서 누구도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은밀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지만 유령과 같았다.

 유령처럼 도둑길드 내로 스며들어간 그림자는 신속하고, 정확하게 움직였다.

 유령은 바로 가르딘어었다.

 유령과 같은 이유는 바로 가르딘의 은형술인 무영신때문이었다. 기로써 자신의 기를 숨기는 고단위의 수법이었다. 일단 펼치면 바로 옆에 있다고 해도 알아낼 수 없을 정도로 은밀하고 조용했다.

 가르딘은 다른 것은 둘째치고, 바로 고든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집무실은 산토스가 광분하는 바람에 상당히 망가져 있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가르딘은 개의치 않았다. 명색이 도둑길드 지부장이었다. 자신의 방안에 비밀통로 하나 말들어 놓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할 것이다.

 사실 처음부터 산토스가 고든을 제거할 것이라고는 기대하지도 않았다. 제거 못하는 것이 가르딘으로서는 더 좋은 방향이었다. 이제부터 도둑길드 놈들은 산토스의 배신행위로 인해 시끌벅적할 것이다. 그것보다 가르딘은 다음 일에 관심을 쏟고 있었다.

 “음, 이놈들은 어디다 숨겨 놓았을까나.”

 가르딘이 가볍게 벽명을 두드려보고, 귀를 대었다. 천리지청술의 경지에 이른 가르딘이었다. 소리만으로 공간과 공간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경지였다. 가르딘의 집 담벼락 밖에서 침을 뱉는 행위조차 들을 수 잇는 수법이었다.

 원래 익히려고 한 것이 아니라, 밤에 담벼락에 오줌 싸는 놈들 때문에 익힌 것이다. 아침 나가려고 할 때 풍기는 지린내가 보통이 아니었다.

 타탕!

 가볍게 두드리자 소리가 벽에 타고 전달되었다. 전달된 소리가 이리저리 사방에서 퍼져 고든의 방을 울리자 빈 공간이 소리로 전달이 되어 돌아왔다.

 “오호! 역시나인데.”

 촛대를 세워 놓은 기둥부분을 누르자 벽면의 한쪽 부분이 움직였다. 고든이 비밀리에 숨겨 놓은 돈이 들어 있는 곳이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노란색의 빛이 흘러나왔다. 가르딘은 흘러나오는 황금빛을 만끽하며, 기쁨의 한숨을 토해내었다.

 “이놈들 정말 돈 많이 챙겼네, 조금 가져간다고 해도 별탈 없겠지.”

 누런빛.

 황금빛.

 돈은 많으면 좋고, 없으면 구질구질하다.

 가르딘도 돈을 좋아한다.

 고든이 모아 놓은 재산은 상당했다. 모든 것을 다 챙기면, 평생 배 굶는 일은 절대로 벌어지지 않을 정도로 많은 재산이었다. 욕심이 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할 것이다. 그러나 가르딘은 금화를 간단하게 조금 챙기는 것으로 만족하고 할 일을 했다.

 “어디에 있더라.”

 가르딘이 찾는 것은 장부였다. 

 도둑길드 놈들이 이제까지 사용한 장부를 숨겨 놓았을 가능성이 있었다. 오히려 놈들에게 장부가 더 중요한 것일 수도 있었다. 오히려 놈들에게 자우가 더 중요한 것일 수도 있었다. 비밀장부의 내용을 잠시 살펴보려는 가르딘이 하나의 상자를 발견했다. 상자는 잠겨 있었지만 그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자물쇠의 맞춤부분을 손가락에 형성된 오러로 집어넣어 돌렸다. 오러는 타는 듯한 강렬한 기운을 발산하여 닿는 부분을 녹여버리는데, 가르딘은 마나의 성질까지도 조절이 가능했다. 자물쇠를 풀고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는 검은색의 두꺼운 장부가 들어 있었다.

 가르딘이 천천히 장부를 넘겨보았다. 장부에는 그동안 돈을 모은 계획과, 세부적인 실행 방법 등이 낱낱이 적혀 있었다. 가르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주 지저분하게 놀았군.”

 상당히 악랄한 수법을 자랑스럽게 써 놓았다. 놈들이 한 짓은 편하게 죽여줄 수 없는 악독한 짓들이었다. 도둑길드다운 더럽고 비열한 수법이 아닐 수 없었다.

 -이름:유례아

 -나이:16세.

 -처녀.

 -본부로 보냄.

 -이름:카시안

 -나이:15세

 -처녀.

 -본부로 보냄.

 정해진 시간 때에 어린 여자아이들을 도둑길드의 본부로 보냈다는 내용이었다. 여자아이들을 왜 보내는지는 알 수는 없었다. 시간 때를 따져 보니. 쉴라를 잡아오려는 시기하고 얼추 비슷했다.

 “이놈들, 도대체 뭐 하려는 거야?”

 도둑길드가 여자를 납치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이유는 없었다. 원래 인신매매가 놈들의 주력상품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위험한 냄새가 물씬 풍겼다. 되도록 이놈들하고는 부딪치지 않고 해결하는 것이 만사불여튼튼일 것이다.

 “아무튼 이게 없어지면 더 날리겠지!”

 장부가 없어지면, 그날로 지부는 송두리째 날아갈 수 있다. 고든이라고 해서 무사하다는 보장이 없다. 놈은 이걸 찾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할 것이다. 다행인 것은 놈들이 절대 가르딘이 했다는 것을 알 수 없다는 데에 있었다.

 시간이 별로 없지만 그런 대로 소득이 있었다. 지금부터는 금고문을 열어놓고, 나가는 것이 관건이었다. 문을 열어놔야, 산토스가 했다는 물증이 된다. 다른 것은 둘째치고, 장부 하나만 없어진 것을 생각하면 놈은 미치고 환장할 것이다.

 “헉! 헉!”

 고든의 일생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라엘에게는 도망치지 않는다고 말을 하기는 했지만 수적으로도 부족한 가운데, 만일의 사태가 발생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을 다 제쳐두고, 목숨을 보전해야 했다.

 자존심을 내팽개치고, 바로 도주해서 소속원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미처 비밀금고에 장부를 챙겨오지 않은 것이 꺼림칙하기는 했지만 별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았다.

 “빌어먹을 놈, 감히 나를 쳐! 네놈을 그냥 죽이지 않겠다!”

 빠드득!

 이를 가는 고든이었다.

 그는 즉시 아이언이 있는 곳으로 갔다. 아이언이야말로 자신의 수하 중에서 가장 강한 무력을 가지고 있는 녀석이었다. 핵심간부 열 명 중에서도 가장 강하고, 충직했다.

 아이언은 루벤 영지의 4번째 관문 중에서도 가장 큰 카이룬을 지키고 있었다. 카이룬의 주변으로 성문을 지키는 수문장들이 있다. 아이언은 도둑길드를 수비병들이 보이지 않는 길목에 배치를 하고 기다렸다. 언제든지 나타나면 바로 잡아 들일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아이언은 한참동안을 기다려도 아무런 수확이 없자 지루하게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이언은 어렸을 적부터 덩치가 크고, 근력이 발달되어, 그 힘이 오우거에 비견된다고 불렸다. 힘으로 해서 누구보다 강해서, 어누 누구도 자신을 이기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아주 어린 시절, 굶주림으로 허기져, 고든에게 구해지지 않았다면 누구의 밑에서도 수하로서 있을 뿐이었다. 아이언은 그래서 고든 이외에는 다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또한 고든의 말은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따랐다.

 아이언의 시선이 하늘에서 대로변을 바라보고 있을 때, 그의 시야에 고든이 보였다. 힘ㅤㄷㅡㄺ[ 달려오는 고든의 표정을 보고 심상치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언이 급히 고든에게 다가갔다.

 “지부장님, 갑자기 무슨 일입니까?”

 “쓰읍! 하!”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고, 다시 내뱉은 수 신색을 회복한 고든이 말했다. 고든은 상당히 화가 나 있었다.

 “당장 길드원들을 모두 불러라, 그리고 산토스를 잡아와!”

 “예? 그럼 원래 잡아야 하는 놈은 어떻게 합니까?”

 “스끄러, 배신자를 잡는 게 먼저니까! 다들 불러라!”

 아이언은 급히 수하 중에 날랜 놈을 불러, 다른 관문을 지키는 소속원들에게 연락하도록 했다.

 산토스의 수하들은 모두 흩어져서 도망을 쳤다. 남은 12명이 모두 흩어져서 12개의 방향으로 흩어졌다. 한곳에 모여 있어 봤자, 숨는 것이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산토스는 도망치면서도 빠져나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았았다.

 그럼에도 마음속으로는 고든에게 대한 원망과 원한이 쌓여갔다. 이상한 느낌이었다. 불안하고 두려우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자신의 마음을 통제할 수 없었다.

 산토스조차고 통제할 수 없게 불어난 욕망이었다. 이것이 가르딘이 사용한 사념안의 무서운 점이었다. 사념안은 내면에 숨겨진 본능을 극도로 끌어낸다. 그와 동시에 몸안에 잠재되어 있는 잠력까지 끌어올려 준다.

 마치 선천진기를 소모하는 것과 같았다. 사람의 능력은 아주 급박할수록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다. 그 능력은 쉽사리 발휘되지 않지만 일단 발휘되면 보통의 몇 배에 달하는 능력을 사용할 수 있었다.

 다만, 그 후유증이 만만치 않았다. 내면에 숨겨진 힘은 본능적으로 다 소모하지 않도록 억제를 하기 마련이다. 그것은 사람이라면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두려움이 작용하여 몸이 최악으로 가지 않게 막는다.

 하지만 가르딘의 사념안이 그 통제력을 무너뜨리기에 힘을 쓰는데 제어가 불가능했다. 죽을 때까지 소모하다 죽게 된다. 도둑길드원들이 능력이 훨씬 뛰어남에도 상대가 가능했던 것이 바로 사념안의 능력 때문이었다.

 산토스는 루벤 영지의 숨겨진 길을 따라갔다. 여기라면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산토스의 생각은 바로 앞을 가로막고 있는 아이언으로 인해 무산이 되었다.

 산토스는 아이언의 능력을 잘 안다. 일대일 대결에서 한 번도 진적이 없는 놈이었다. 평소하면 승산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산토스는 망설임 없이 돌진했다.

 그 시각 고든은 집무실로 다시 돌아왔다.

 돌아온 고든은 널브러진 집무실보다 열려진 비고를 보고 놀라고 말았다. 산토스가 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과는 다르게 비고가 보란 듯이 열려 있었다.

 “이런, 젠장!”

 고든은 즉시 비고로 들어갔다. 비고 안에는 여전히 막대한 금액의 금화가 있었다. 고든은 금화의 온전함보다 다른 것에 관심을 가졌다. 비고 안에 숨겨진 상자가 열려 있었다.

 “설마?”

 설마 하는 심정이었다. 산토스가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지만 상자 안에 들은 장부를 가지고 사라진 것을 알게 되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장부는 도둑길드에서 그동안 벌어진 일을 모두 적어 놓은 것이다.

 외부로 반출이 될 경우 그 위험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이것이 밝혀지면 자신의 목숨을 끝이었다.

 부들! 부들!

 고든은 생애 처음으로 두려움을 맛보았다. 어둠의 길드에서 자신의 이런 실수를 그냥 둘 리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장부만은 찾아내야 했다.

 “산토스! 네 이놈을!”

 잡는 즉시, 사지를 자르고, 피부를 뒤집어서 소금에 절여 버릴 생각이었다. 그냥 죽이는 것은 지금까지 받은 무로를 풀기에 부족했다. 자신의 자존심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고, 이젠ㄴ 존재의 유무조차 힘들게 만들었다. 그걸 그냥 두면 고든이 아니었다.

 이유야 어떻든, 가르딘과 쉴라에 대해서는 저 멀리 대륙 끝으로 날려버렸으니 성공적인 결과였다.

 소속원들이 산토스의 수하들을 잡아내기 시작했지만 피해가 만만치 않았다. 하나같이 독종들이었다. 죽는 순간까지 길드원 서너 명과 함께 독기를 뿜어내었다. 고든의 핵심 간부 중 한 명인 키스트가 질릴 정도였다.

 이런 놈들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소름이 돋았다.

 “지독한 놈들.”

 감탄과 더불어서 고심이 들었다.

 12명 중에서 죽은 숫자가 10명이고, 나머지도 2명도 중상이어서, 다시 살려내기가 쉽지 않았다. 고든은 반드시 생채로 잡아오라고 했지만 그 명령을 듣다가는 너무 많은 희생을 낳을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었다.

 “산 놈은 우선 치료하고, 나머지 죽은 놈들은 깨끗하게 정리해.”

 우선은 살인현장을 치워야 했다.

 소란이 너무 켜졌다. 놈들의 반격이 지독했기에 그에 따른 여파가 상당했다. 주변에서 쉬쉬하기는 하지만 곧 경비병들이 몰려올 것이다. 그전에 미리 처리하고 사라지는 것이 중요했다.

 주르륵!

 아이언은 자신의 뺨에서 흐르는 핏물을 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에 보는 핏물이었다.

 스윽!

 흐르는 핏물을 혀로 핥았다. 피를 볼수록 아이언의 눈에서는 차가운 한기를 뿜어내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움츠러들게 만드는 한기였다. 아이언이 이처럼 차가운 기운을 뿜어낼 때 어떤 상대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저절로 위축이 되어 평소의 실력을 발휘할 수 없게 만들었다.

 “크크, 제법이야! 내 피가 흐르는 것을 보게 될 줄은 몰랐거든.”

 “흥, 네놈의 피로 이 바닥을 적셔주마!”

 산토스는 아이언의 소름끼치는 마을 들으면서도 여전히 기세등등했다.

 “아무리 네놈이 강해도, 칼이 들어가고서도 기고만장할지 두고 보겠다!”

 “겁이 없어서 좋단, 말이야! 이렇게 재밌는 먹이는 처음이거든! 어디 끝까지 발악을 해봐라!”

 아이언이 육중한 몸을 이끌고, 돌진했다.

 발바닥이 지면을 박차고 나가자 흙먼지가 뒤로 퍼져나갔다. 그만큼 추진력이 굉장했다. 상당한 덩치에도 불구하고 아이언의 움직임은 굉장히 빨랐다. 정면으로 다가오는 위압감이 장난 아니었다. 바로 앞에서 엄청난 풍압이 느껴졌다.

 산토스는 그 즉시 앞으로 들어오는 놈의 명치를 향해 검을 찔렀다.

 슈슈슉!

 검이 정면으로 들어오는 아이언의 정중앙 가슴을 찔러 들어가려 할 때, 아이언의 허리가 앞으로 구부러지면서 미끄러져 들어갔다. 검이 허공을 가르자, 아이언이 산토스의 팔을 잡았다. 잡는 즉시 완력으로 끌어당겼다.

 굉장한 힘을 자랑하는 아이언의 완력 앞에 산토스의 몸이 앞으로 쏠려나갔다. 균형을 잡을 수 없었던 산토스가 이를 악물며 지탱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으으윽!”

 아이언이 잡은 팔을 놓고, 상대의 목을 팔목으로 쳐버렸다.

 퍼퍽!

 “커억!”

 목이 충격을 받자 순간적으로 호흡곤란 증상을 일으키는 산토스였다. 충격이 상당했다.

 조금만 더 강했으면 목이 부러졌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아이언의 공격이 끝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산토스의 허리를 제압하더니 들어 올리는 것이 아닌가! 들어 올린 상태에서 머리를 바닥으로 향한 채 박아 버리는 수작이었다.

 이대로 아이언의 공격대로 이루어진다면 머리통이 박살날 것이다. 산토스는 살기 위해 아이언의 몸에 더욱 밀착시켰다.

 “으윽!”

  “이런 개새끼가!”

 아이언이 갑자기 비명성을 내질렀다. 어찌나 아픈지 이제까지 느껴보지 못한 고통이었다. 이유는 바로 산토스가 들어 올려지는 순간 입을 벌려 아이언의 어깨를 물었기 때문이었다. 

 옷소매가 없는 형태의 옷을 입은 아이언의 피부가 그대로 노출이 되었다. 아무리 단련해도 이빨보다 피부가 강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산토스가 죽을힘을 다하자 아이언의 비명성이 더 커졌다.

 아이언은 어쩔 수 없이 산토스를 던져 버렸다.

 꽈다다당!

 바닥에 던져진 산토스가 충격을 받고 일어서지 못했다. 순간적으로 전신이 마비가 되는 듯한 충격이었다. 아이언은 산토스의 추잡스러운 행동에 화가 치밀었다. 설마 했는데, 이빨로 물줄은 몰랐던 것이다.

 아이언은 그 즉시 바닥에 쓰러져 있는 산토스에게 빠르게 달려가 들어 올렸다.

 목과 다리를 제압하고 완벽하게 들어 올린 상태였다.

 “끝이다, 지저분한 놈아!”

 산토스는 발버둥을 쳤지만 소용없었다. 무심하게 아이언이 바닥으로 내리꽂는 동시에 무릎을 구부렸다.

 으드득!

 “커... 억!”

 마지막으로 숨넘어가던 소리를 내던 산토스가 눈이 돌아가 버렸다. 상, 하체의 정중앙 허리에 아이언의 무릎에 닿아 있었다. 충격에 의해 산토스의 척추가 완전하게 꺾여버렸다. 허기와 목이 꺾이고도 살아남을 사람은 없었다.

 한발 늦어 버렸다.

 고든은 아직 물어볼 것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산토스는 허리가 부러진 채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었다. 이대로는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었다. 이미 키스트가 잡아온 놈들도 얼마 안 돼서 죽었다.

 ‘장부를 찾아야 하는데.’

 그렇다고 수하들에게 장부이야기를 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장부는 지부장이 꼭 지켜야 하는 것 중에 하나다. 그것을 잃어버린 것을 다른 이가 알게 될 경우 즉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었다.

 산토스의 몸을 뒤져본 결과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그놈의 입에서 무언가 나와야 했는데, 이제는 물어보는 것 자체를 할 수 없게 되었다.

 ‘혹시?’

 만약의 사태이지만 산토스 이외에 자신의 수하들 중에서 배신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산토스 혼자서 이처럼 엄청난 짓을 할 수는 없다고 보았다. 하지만 그게 누군지 알 방법이 없었다.

 고든의 의심은 점점 깊어져 갔지만 대책이 서지 않았다. 우선은 지부를 안정화시키고, 차근차근 수족들을 감시해 봐야 할 것 같았다.

 룰루! 룰루!

 콧노래를 부르며, 가게 안으로 들어가는 중년인이 있었다.

 중년인은 미심쩍은 것을 털어 버린 듯한 상쾌한 모습이었다.

 전에 못 누다 만 것을 완벽하게 소멸시킨 듯했다. 중년의 능글맞은 사나이는 가르딘이었다.

 그는 필리언에게 말을 한 것처럼 리베이신 찻잎을 사기 위해 가게로 들렀다. 가게에는 여러 가지 찻잎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특등의 자리에 리베시안 찻잎이 잘 포장이 되어 있었다. 가게에 들어가자 여성 점원이 나왔다. 20대의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무얼 찾으세요?”

 “리베시안 찻잎을 원하는데, 등급이 어떻게 되나?”

 “저희 가게에서 취급하는 리베시안 찻잎은 일등급과 특등급으로 분류가 되요, 일등급은 1상자에 5골드고, 특등급은 1상자에 15골드입니다.

 과연 대단한 가격이었다.

 그냥 물에 우려낸 수프의 재료 주제에 금값보다 비쌌다. 웬만하면 사고 싶지 않지만 라이나를 생각해서 한 상자 사야했다. 라이나는 차를 즐겨 마시는 편이었다.

 물론 비싼 차는 살 엄두를 내지 못했다. 산에서 따온 잎을 집에서 말려서 혼자 달여 먹었다. 그것이 안타까운 가르딘은 한번쯤 거하게 사주고 싶었다.

 “특등급으로 1상자 주시오.”

 “정말 탁월한 선택을 하셨습니다. 저희 가게에서 취급하는 특등급 리베시안 찻잎은 파스트론 공작께서도 즐겨 드시는 것입니다. 한번 드셔 보시면 그 맛을 잊을 수 없을 겁니다.”

 파스트론 단장이 차를 마시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가르딘이었다. 항상 고지식한 모습만을 보인 파스트론 단장이었다. 검에 미쳐서 그 나이 먹도록 검술을 수련하는 기사의 모범, 그런 사람이 이런 고급차를 마시는 모습은 상상하기 쉽지 않았다.

 ‘하긴, 공작 정도 되면 다들 마시겠지.’

 가르딘은 차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차는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주는 효능이 있기는 하지만 강렬한 맛을 좋아하는 가르딘에게는 그냥 물맛이었다.

 가르딘은 볼일을 보고, 공작의 저택으로 들어갔다. 시간을 많이 잡아먹은 작업을 하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정말 공주가 벌인 일만 아니었으면 그냥 가는 건데 괜한 고생이었다. 이런 고생을 공주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저녁때가 다 되어 가는지 날이 저물기 시작되었다.

 저택으로 들어오는데 스필언이 다가왔다.

 “선배님, 공주님이 찾으십니다.”

 “공주님이 왜?”

 “이유는 잘 모릅니다. 긴히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하십니다.”

 “알겠다.”

 스필언은 가르딘을 대하는데, 존경의 염을 담아서 대하고 있었다.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것이었다. 스필언에게 갈딘은 모자란 부분을 채워준 고마운 분이자 스승이었다. 스승을 존경하는데 조건이 있을 리 없었다.

 가르딘은 감이 상당히 뛰어나다.

 보통 감은 타고난 것이라고 하는데,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경험이 많이 쌓이다 보면 저절로 감이 날카로워지고 적중률이 높아진다. 더군다나 가르딘은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들었다. 척하면 척하는 경지에 들어 있다고 볼 수 있었다.

 ‘낌새가 이상한데, 왠지 모르게 오싹해!’

 가르딘은 즉시 공주에게로 가지 않았다. 아무 대책없이 가는 것이 꺼림칙했다. 그래서 먼저 필리언에게 갔다. 우선 지금까지 벌어진 일을 필리언에게 들어보려고 했다.

 가르딘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필리언이 검을 닦고 있었다. 기사에게 검은 생명이나 마찬가지인 수족이었다. 언제 어디서든 검을 뽑을 수 있도옥 평상시에 관리하는 것은 기사의 철칙이나 마찬가지다.

  필리언은 검에 녹이 슬지 않도록 기름칠을 열심히 했다. 겨울철에는 검에 물기가 새겨 어는 경우가 있다. 그럴 경우 검이 뽑히지 않는다. 위급한 순간에 검이 뽑히지 않아서 애를 먹는다면 그건 애송이 기사에 불과하다.

 필리언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기르딘을 보자 왔나 보다 라는 표정을 짓고 다시 검을 닦았다. 별로 관심 있어 보이지 않았다.

 “야, 인마! 친구가 왔으면 알은체라고 해라!”

 “네 면상은 매일 보는데 뭐 좋은 게 있다고 알은체하냐!”

 “음, 그건 그거고! 너 나한테 할 말 없냐?”

 “할말? 네게 할 말이 뭐 있어! 갑자기 와서 뭔 소리를 하는 거야?”

 가르딘은 그냥 흘려듣지 않았다. 하나하나 점검할 필요성이 있어ㅛ다.

 필리언에게는 별거 아닌 일이 가르딘에게는 중요한 일이 될 수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누군가에게 중요하지만 타인에게는 별일 아닌 일이 있으니 말이다.

 “내가 나간 후 평소 하는 일 말고 다른 일 있지 않았어?”

 “다른 일? 우리야 매일 공주님 신변을 지키는 건데 다른 일이 있겠어! 있다면 공주님과 대면한 것뿐인데!”

 움찔!

 가르딘이 갑자기 안색이 바꾸었다.

 필리언이 공주와 대면을 했다는 말에는 심각함이 묻어나왔다.

 “공주님이 뭐라고 하시던? 책임자인 내가 모르면 안 되잖아?”

 “그렇긴 하군, 별다른 일은 없었어, 그냥 궁금하신 것을 물어보시더라고, 나 참! 듣고 나서도 어이없었다니까!”

 “뭐가 어이없는데?”

 “아무리 외부 상황을 모른다고 해도 어떻게 도둑길드 따위가 우리 피닉스기사단을 위협할 수 있어, 말도 안 되는 소리지!”

 ‘허억!’

 가르딘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가 금세 신색을 회복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고, 검을 닦고 있는 필리언이라 보지는 못했다.

 ‘이런 제기랄!’

 필리언은 가르딘의 속마음과 다르게 별것 아니라는 투로 말을 하면서 가르딘의 동조를 얻어내려는 말까지 했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냐? 도둑놈들 따위가 우리 상대가 되는 게 말이 되냐!”

 “그...렇지.”

 “그래서 내가 당당하게 상대가 안 된다고 공주님께 다 말히 주었다.”

 “잘했... 구나!”

 “근데, 너 말투가 왜 그러냐?”

 “아니...다. 아주... 자알 했구나! 친구야! 뿌드득!”

 부들! 부들!

 단검을 들고 가르딘은 손을 떨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아이시런 공주에게 사념안을 쓸 수도 없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다.

 사념안이 흔적을 별견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의심하는 사람이 발생할 수 있었다. 제국의 공주에게 사념안을 쓰면 마법사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방으로 몰래 들어온 후 시녀들에게 상처에 필요한 구급약을 가져오라고 시켰다. 충분히 소리를 키워서 말을 했기에 다 알아들었을 것이다.

 “제기랄, 남을 베기는 해도 내 몸에 상처내기는 처음이네!”

  가르딘의 신체는 금강불괴와 쌍벽을 이룬다는 천룡신에 이르러 있었다. 천룡무상신공의 효능 중에 하나로 목이 잘리지 않는 이상 죽지 않으며, 오러 블레이드에 당해도 쉽게 회복이 가능했다. 한마디로 무지막지한 신체였다. 가르딘이 직접 검으로 찌르지 않는 이상 죽지 않는다. 천룡신에 상처를 내기 위해서는 오러 불레이드를 사용해야 한ㄷ.

 ‘한 번에 가자!’

 카캉!

 주르르륵!

 칼로 상퍼를 내자 핏물이 흘러내렸다. 금세 아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기운을 조절했다. 하지만 저절로 치료되는 속도가 상당히 빨라서 위운 일이 아니었다. 우선은 옷을 다시 입고 나서 핏물이 옷을 적시도록 놔두었다.

 똑! 똑!

 시녀 한 명이 들어왔다.

 “구급약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피가!”

 “괜찮다. 실수로 조금 다친 것뿐이다.”

 시녀에게 다친 것을 확인시키기 위해서 일부러 한 행동이었다. 그와 더불어서 빨리 상퍼를 천을 이용해서 감쌌다.

 “이제 됐다.”

 가르딘이 흉계를 꾸미고 있을 때 아이시런은 차를 마시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이상하게 가르딘에게 당한 것 같았는데, 그 모든 것을 다시 되돌릴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이제부터 주도권을 쥐고 가르딘을 휘어잡으면 신성제국으로의 여행을 즐겁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한 잔 더 따라봐라.”

 “예, 아이시런 언니!”

 “쉴라도 한잔 마셔.”

 “감사합니다.”

 엘리언은 조금 전에 시녀들을 관리 감독하기 위해 나간 상태였다. 조금 있으면 온다고 했으니 그 시간 동안 쉴라와 언니 동생 놀이를 했다. 쉴라는 하루 정도 지나자 적응을 했다. 그녀가 정색하며 공주를 대하면 앞으로 생활이 어렵다는 것을 빠르게 인지한 것이다.

 생존본능이 장난 아니게 발달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아저씨 내가 부르는데 빨리 올 것이지, 뭐 하는 거야?’

 가르딘이 도착하고서 바로 오지 않아서 조금 짜증이 나는 상황이었다. 다만 앞으로 가르딘을 몰아붙일 생각을 하니 참고 있을 뿐이었다.

 이제 어떤 변명을 해도 들어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가르딘의 능수능란한 언변과 상황판단, 그리고 말이 안 될 것 같은 상황을 말이 되게 만드는 능력에 당하지 않을 카드를 손에 넣었다.

 가르딘은 아이시런의 방에 들어오기 전에 청각을 열었다. 기를 운용해서 청각을 강화시키자 안에 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쉴라가 마침 있었구나! 다행이다.’

 쉴라가 없으면 불러서라도 데려오려고 했던 가르딘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남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면 이용할 생각을 하고 있던 가르딘이었다.

 똑! 똑!

 가르딘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가르딘의 눈에 자신만만한 공주의 표정이 들어왔다.

  가르딘은 일부러 눈에 힘을 주고, 진중한 표정으로 아이시런 공주를 맞았다. 아이시런에게 상당히 심각한 표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당당하기까지 했다. 아이시런 공주는 당당하게 들어오는 가르딘의 표정을 보았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아직 불리한 상황을 모르니 저런 표정을 짓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말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가르딘이 갑자기 낮은 목소리로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공주님의 부름을 받고 왔습니다!”

 척!

 오른팔로 기사의 예를 취하며 무릎을 꿇었다. 그와 동시에 오른팔에 입은 상처가 보이도록 했다.

 “윽!”

 가르딘이 상처가 욱신거리는지 신음성을 가볍게 내었다. 너무 경박스럽지도 않고, 티를 내지 않도록 한 가르딘이었다. 가르딘의 의도적인 행동이었지만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그것을 가지고 거짓이라고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이시런은 오른팔을 붉게 적신 것이 무엇인지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핏물이었다. 반나절 동안밖에 나갔다가 들어온 사람이 다쳐서 들어왔으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른팔에 상처를 입으셨네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요?”

 가르딘은 대답을 망설이고 있었다.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쉴라를 바라보았다. 그저 한 번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걱정이 잔뜩 담긴 가르딘의 표정을 쉴라는 볼 수 있었다. 찰나였지만 쉴라와 아이시런에게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게 만들었다. 

 쉴라가 설마하는 심정으로 물었다.

 “설마 부모님께서?”

 가르딘이 참담한 듯이 고개를 가로저였다. 말을 하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주었을 뿐인데도 쉴라는 가슴이 덜컥 가라앉았다. 아이시런 역시도 당황스러웠다. 자신이 데리고 온 쉴라의 부모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답답한 아이시런 공주가 상황을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요? 하나도 빼지 않고 말을 하세요!”

 공ㅈ로서 명령을 내리자 그제야 가르딘이 입을 떼었다. 되도록 무겁게 말을 하면서 자신의 공을 강조하는 언변을 더했다.

 “저는 공주님이 너무 무책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갑자기 공주에게 무책임하다고 말을 하다니 상당히 무례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아이시런은 따지지 않고 이유를 물었다.

 “공주님이 구하라고 명을 했던 쉴라의 부모에게 사고가 날 뻔했습니다. 요즘 루벤 영지 내가 너무 어수선한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미라 쉴라의 부모에게 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도둑길드 놈들이 쉴라의 부모를 죽이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 설마 놈들이 쉴라의 부모를 죽인 건가요?”

 털썩!

 쉴라가 더 들을 수 없었는지 무릎에 힘이 빠져 주저앉았다.

 “기사로서 제가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그 즉시 목숨을 걸고 놈들에게서 쉴라의 부모를 구했습니다.”

 쉴라를 구하기 전까지 자기 안위만을 살핀 가르딘이 한 말 치고는 앞뒤가 맞이 않았다. 그럼에도 상황이 사실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하아!”

  아이시런과 쉴라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면서 가르딘이 다친 것이 도둑길드 때문인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서런은 자신의 생각이 너무 짧았음을 한탄했다. 그저 쉴라를 구하면 될 줄 알았느네 그 뒤를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상황을 미리 간파하고 막아낸 가르딘에게 오히려 칭찬을 아끼지 않아야 했다.

 “다행이군요.”

 “그게 끝이 아닙니다.”

 “아니라고요?”

 “저는 뒤탈이 생기지 않도록 도둑길드 내를 흔들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쉴라의 가족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도둑길드를 습격했습니다. 다행히 놈들 간에 권력다툼이 있는 상황이라 더 이상의 피해는 가지 않을 겁니다.”

 “그럼 더 이상 쉴라의 가족의 신상에 위험은 없겠군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일로 인해 제가 늦게 왔습니다. 공주님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여겨야 하는 제가 너무오랜 시간 자리를 비웠습니다. 저는 기사로서 공주님의 안위를 신경 쓰지 않은 것이 되니, 그 죄를 달게 받겠습니다. 벌을 내려 주십시오!”

 가르딘은 짐짓 죄를 달게 받겠다고 말을 했다.

 하지만 그 말이 아리시런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었다. 옆에서 쉴라가 가르딘에게 감사의 마음으로 인사를 하는데, 여기서 가르딘을 벌주었다가는 자신은 못된 공주가 되어버린다. 사람의 도리도 모르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더군다나 가르딘이 도둑길드에 침입해서 상처까지 입었다. 자신의 몸을 던져서 타인을 구하는 가르딘이야말로 기사의 본보기라고 할 수 있었다. 상을 주어도 부족하지 않았다. 그런가그딘에게 어떻게 벌을 준단 말인가!

 “아니에요, 가르딘 경은 생명을 구하는데 노력을 했어요, 그러니 그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할께요!”

 “아닙니다. 저는 공주님을 책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합니다. 그러니 벌을 주십시오! 아니라면 저의 죄를 모든 기사에게 알려서 처벌을 달게 받도록 하겠습니다!”

 ‘어!’

 아이서런 공주는 당황했다. 이 일은 모두 말하게 되면 자신의 성격과 그동안 한 일이 드러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자신이 공들여 만들어 놓은 이상적인 공주상이 무너지게 된다.

 고개를 숙인 가르딘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할 수 있으면 해봐라!’

 ‘이익!’

 아이시런 공주는 가르딘의 말에 더욱 당황하며 말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급하게 가르딘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노력해야 했다. 가르딘이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약점을 잡았다고 생각했건만 도리어 약점이 잡히고 말았다.

 “가르딘 경, 그만 일어나세요, 그리고 제가 너무 생각 없이 행동했다는 것을 인정할게요, 그러니 그만 일어나세요!”

 “하지만...”

 “어서 일어나세요, 이번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할 테니, 가르딘 경도 입조심하세요! 알겠나요!”

 “공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알겠습니다. 그럼 나가보겠습니다. 내일 여정을 시작하니 평안한 밤이 되길 바라겠습니다.”

 가르딘이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쉴라는 가르딘의 노력에 감동한 상태였다. 그녀는 가르딘이 원하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중에 오빠라고 불러 드릴께요!’

 아주 큰 결심을 한 듯한 쉴라였다. 반대로 아이시런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상하게 가르딘하고 대화를 하면 주도권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이놈의 아저씨가 잘도 빠져나가네.’

 후우우!

 ‘히히!’

 가르딘이 방에서 나와 한숨을 한번 내쉬고 나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들어올 때 다르고 나갈 때 다른 가르딘이었다.

 ‘한동안 공주도 딴 생각 못하겠지.’

 오늘 아주 위험했다. 공주에게 거짓말 한 것이 들통 나서 공주의 생각대로 끌려 다녔으면 여간 골치 아픈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제6장 라이언기사단과의 혈투

 다음 날, 가르딘은 파스트론 공작성에서 나와 신성제국으로 가는 길을 서둘렀다. 루벤 영지에서 고작 3일을 쉰 것이지만 그동안 너무 많은 일을 한 가르딘이었다. 그리고 생각한 것이 공주랑 엮이면 상당히 피곤하다는 것을 깨닫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단 한 번 외출으로 일어난 일은 일파만파였다.

 일은 공주가 일으키는데, 그 일에 대한 뒤처리는 모두 가르딘의 몫이었다. 카스티온 백작은 공주를 떠나자마자 도둑길드에 대한 수사를 진행시켰다.

 도둑길드 내 배신으로 인한 살인사건이기는 해도 너무 많은 인원이 죽었다. 그냥 덮어 둘 수 없는 일이었다. 자칫 공주가 아는 날에는 파스트론 공작가의 망신이었다. 영지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면서 어떻게 제국의 공작으로 있을 수 있냐라는 질타를 받을 수 도 있었다.

 그렇기에 어떻게 해서든 도둑길드에 대해 엄중히 단속해야 했다.

 그로 인해 고든은 머리가 아파왔다.

 그동안 정리해 온 장부가 없어진 것과 내분을 다시 다스려야 하는데 카스티온 백작가의 간섭이 시작되자 어느 것 하나 쉽게 마무리 질 수 없었다. 방법은 당분간 손해를 보더라도 조용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산중턱에 50명에 달하는 인물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잘 벼리어진 검처럼 날카로움을 뿜어내었다. 한 명 한 명이 제대로 된 수행과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을 중심으로 한 명이 보고를 하기 위해 달려왔다. 중년인이 일어났다.

 “어떻게 됐냐?”

 “놈들이 루벤 영지를 출발했습니다.”

 “어느 쪽으로 이동하지?”

 “아무래도 카타론 영지를 지날 것 같습니다.”

 “응?”

 부단장이라 불린 중년인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카타론 영지로 지나게 되면 신성제국으로 가는 길이 더 길어진다. 보통 산성제국을 갈 때는 베이컨 영지를 지나는 것이 훨씬 빠르고 손쉬운 길이었다.

 “왜 그쪽으로 가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중년인은 고민이 되었다.

 놈들을 맞이할 장소를 베이컨 영지를 지나는 셀비타 산으로 정하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카타론 영지로 가게 되자 다시 한 번 수정해야 했다.

 “지도를 줘봐.”

 중년인은 카이로만 제국의 지도를 살펴보았다. 카타론 영지를 가는 길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시간을 들여 확인을 한순간에 중년인은 인상을 썼다. 아무리 둘러봐도 습격하기 좋은 장소가 없었다.

 대부분 평지에다가 습격하기 위한 지형물이 너무 낮거나 쉽게 들키는 지형이었다. 이런 곳에서는 기습작전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

 “설마 우리가 노리는 것을 알고 그랬다는 것인가!”

 도리! 도리!

 중년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알고 있다면 카이로만 제국에서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원래 여정이 카타론 영지라는 말이 되었다. 될 수 있으면 빠른 시간 안에 해결하려고 했지만 시간이 더 걸릴지 몰랐다.

 “어쩔 수 없지. 카타론 영지를 지나면 다시 계획을 세운다. 모두 다음 이동장소로 이동한다.”

 “알겠습니다. 부단장님!”

 부단장은 자꾸 원래의 계획대로 이루지지 않자 조금씩 초조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한 것은 자신들이기 때문이었다.

 가르딘이 신성제국으로 가는 길에서 카타론 영지로 가자 필리언이 옆에서 물었다. 빠른 시간 안에 가려면 베이컨 영지로 가는 것이 나았다. 더군다나 필리언이 보기에 가르딘은 이번 여정을 빨리 끝내고 싶어 했다. 그런데 시간이 더 걸리는 길을 택한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왜 카타론 영지로 가는 거냐?”

 “몰라서 묻는 거냐?”

 “설마 누군가 습격할지 모른다는 소리를 하고 싶은 거야?”

 베이컨 영지로 가는 길로 조금 험하기는 하지만 무리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카이로만 제국 내에서 공주의 여정을 가로 막을 자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필리언이 생각하기에 가르딘의 염려는 괜한 짓이었다. 하지 않아도 되는 걱정이었다. 

 “난 위험한 것은 딱 질색이거든, 어차피 해야 할 일이지만 위험에 가까운 곳을 가지 않는 것이 좋아.”

 “그 쓸데없는 걱정은 여전하구나.”

 “날 알면서 그러냐? 너도 내 옆에 있으니까 아직까지 살아 있는 거다.”

 “하긴, 그 말도 맞지.”

 가르딘은 유난히 운이 좋은 기사였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운만 좋은 기사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애초부터 위험은 만둘지 않고, 위험한 일을 껴들지도 않았다. 그 근처에 있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인물이었다.

 그러니 가장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 있었다. 가르딘 덕에 필리언도 운이 좋아 살아 있었다.

 단적인 예로, 코카 제국 라이언기사단의 기습에 피닉스기사단 30명이 몰살당한 적이 있었다. 원래라면 필리언도 가게 될 일이었는데, 가르딘이 해야 할 일에 필리언을 추천하는 바람에 가지 않게 되었다. 죽은 기사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필리언이 가르딘 때문에 살게 된 것은 사실이었다. 

  “위험한 것보다 천천히 가는 게 좋은 거다.”

 “알았다! 이놈아, 너 때문에 가늘고 길게 오래가겠다.”

 루벤 영지를 지나고 10일이 지나는 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 여행을 하는 동안 그 흔한 오크조차 보지를 못한 일행들이었다. 오크들도 머리가 있는데 이 정도 규모의 일행에게 덤비지는 않을 것이다.

 덤빈다면 먹이를 사냥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사냥당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오크가 머리가 나쁘다고 하는데, 실제적으로 그렇지 않은 편이다. 본능과 야성에 충실한 반면에 위험에 대한 판단능력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예민하다.

 아이시런 공주도 마차 안에서 군말 없이 여정에 나서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어떻게 하면 가르딘의 영악한 행동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이 아저씨가 빈틈이 없단 말이야!’

 가사들과 병력을 다루는데, 가르딘만큼 뛰어난 기사도 드물었다. 처음으로 맡은 책임자라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탄탄한 리더십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이 아는 가르딘이 맞는지가 의심이 될 정도로 기사들과 병사들로부터 신뢰를 얻고 있었다. 그런 가르딘이기에 신분을 이용해서 협박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공주체면에 앞뒤도 맞지 않고 논리적이지 않은 이유로 기사를 부리는 것은 옳지 못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이 쌓아 놓은 이미지만 나빠진다. 그리고 가장 큰 이유는 자존심이었다. 반드시 약점을 잡고 싶었다.

 ‘뭔가 약점을 잡아야 하는데.’

 쉴라와 엘리언이 마차 안에서 공주와 말상대를 하면서 여러 가지 말들을 하고 있었다. 그녀들은 갈딘에 대한 토론과 더불어서 가르딘의 약점을 확실하게 잡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다.

 생각.

 계속적인 생각은 머리를 영리하게 만든다.

 고심.

 고심할수록 방법에 대한 탐구를 하게 된다. 결국에는 최선의 방법을 마련하게 해준다. 그녀들이 마차 안에서 아무런 사고 없이 조용히 10일을 보낸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가르딘을 엿 먹이려고 가지가지 하는 아이시런이었다.

 “공주님, 가르딘 경을 변태로 만드는 것은 어때요? 저보고 오빠라고 불러 달라고 하는데 말이에요!”

 쉴라가 의견을 내밀었다.

 얼마 전까지 부모님을 구해줬다고 오빠라고 부른다고 하고선, 막상 가르딘을 대하면 하지 못했다. 이상하게 가르딘을 보면 아저씨라는 말이 목구멍에서 솟아 입으로 나왔다.

 고작 10일이었다.

 쉴라는 가르딘의 은혜를 잊어버렸다.

 요즘 젊은것들은 쉽고 빠르게 잊어버리는 것이 취미인 것 같았다.

 “그런 정도로 넘어갈까, 능구렁이 같은 위인이.”

 아이시런은 쉴라의 의견에 부정적이었다. 가르딘은 애처가로 소문이 난 기사였다. 애처가한테 변태라고 한다면 그게 더 이상한 방법이었다. 더군다나 가르딘은 얼굴이 철한이었다. 이중인격을 방불켜 할 정도로 공적인 일과 사적인 일이 확실했다.

 개인적인 면에서 는 상당히 인간적이지만 중요하고 제국을 대표하는 일에서는 한시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았다.

 변태라는 말을 해봤자, 자신만 손해 본다. 오히려 변태공주라고 할지도 몰랐다. 상대가 전혀 인격적으로 충격받지 않는데 그런 말을 해봤자 소용없었다.

 “뭔가, 획기적이고 참신한 것들 좀 생각해 봐!”

 그녀들이 생각하는 방법은 한정적이었다.

 가르딘한테만 통용이 돼야 하며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는 안 되었다. 알게 되면 방법이랄 수 없게 된다. 폭이 좁고, 그 안에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에 쉽게 답이 나오지는 않았다.

 “내가 밖에 나갔다 온 일을 확 폭로해버릴까!”

 공ㅈ가 아무도 모르게 밖에 나갔고, 그 일을 가르딘이 도왔다고 하면 일이 너무 크게 번진다. 가르딘의 목숨이 위험할 수 있는 일이었다. 공주야 그 일로 인해 무사하기만 하면 가벼운 처벌이 있겠지만 알면서도 도움을 방조한 가르딘은 참형을 면치 못할 것이다.

 휘청!

 가르딘과 마차와의 거리는 5미터 정도다. 마차는 외부와 내부가 완벽하게 방음이 될 정도로 단단하고 빈틈없게 만들어졌다.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마차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작정하고 마차에 귀를 들이대지 않는 이상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는다.

 하지만 가르딘의 경우는 달랐다.

 ‘다 들린다.’

 마차 안에서 말하는 것이 모두 가르딘의 귀에 들렸다. 공주의 돌발적인 행동을 지금까지 잘 막아왔지만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마지막에 아이시런 공주가 한 말에 가르딘은 말에서 떨어질 뻔했다.

 홧김에 한 말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야 진정이 됐지, 아니었다면 큰일 날 뻔했다.

 ‘진짜 위험하네, 공주가 막나 가면 내가 손핸데.’

 너무 타이트하게 조이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는 가르딘이었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하지 않는가! 아이시런 공주가 답답한 마음에 일을 크게 벌리면 자신만 손해였다.

 ‘이긴다고 해서 이기는 게 아닌데.’

 공주와의 관계가 점점 이상하게 꼬이고 있었다.

 가르딘은 이번에 카타론 영지를 지나고 나서 다음 영지에서 공주에게 자유를 조금 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카타론 영지에서는 힘들더라고 가린지 영지는 안전이 확실했다. 가린지 영지는 북방의 타이커라고 불리는 카론 마이어 공작이 지키고 있었다.

 카론 마이어 공작은 카이로만 제국의 5대 기사 중에 한 명으로 50만 대군을 진두지휘하는 명장 중에 명장이었다. 가린지 영지를 중심으로 버티고 있는 카이로만 제국의 정예군이 있는 지역에서 위험 요소는 없을 것이다.

 가르딘이 가린지 영지로 가는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카론 마이어 공작군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전제일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가르딘다운 일이었다.

 공주의 여정을 따라서 이동하는 라이언기사든은 짜증이 치밀고 있었다. 카이로만 제국군 중에서 가장 사납고 용맹하다는 카론 마이어 공작이 버티고 있는 가린지 영지로 가르딘이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윈래라면 토스탄 영지로 가야 신성제국으로 가는 길 중에서 가장 빨랐다. 그런데도 동아가는 길을 택하는 가르딘의 행동 때문에 일이 자꾸 꼬여갔기 때문이었다.

 라이언기사단의 부단장인 가딩스카 후작은 점점 심각해졌다. 더 이상 공주의 여정을 그냥 가게 놔둘 수 없었다. 처음에는 그저 우연에 의한 일인 줄 알았다. 그런데 한 번이 아니고 두 번이나 계획에도 없는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우연이 여러 번 일어나는 것은 극히 드물었다. 우연이 아니라 계획적인 일이라는 말이 되었다. 

 가딩스타 후작의 심각해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카이로만 제국은 제국 중에서도 가장 강하며, 치안이 강력한 제국이었다. 또한, 대륙 최강 기사단 중에 하나인 피닉스기사단 30명과 100명의 병사들이 보호하고 있었다. 그런 공주 일행을 건드릴 곳이 없다고 봐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총책임자라는 놈이 너무 조심스러웠다. 생각지도 못한 복병이었다. 기습으로 한 번에 끝을 내버리려는 애초의 계획을 완벽하게 바꾸어야 했다.

 “결국 정면대결이란 말인가!”

 가딩스타 후작은 온몸이 달아올랐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 아직도 피닉스기사단과는 갚아야 할 빚이 있었다. 당시에 가딩스타 후작은 피닉스기사단의 부단장인 조르크 바자바인 백작과 공방을 나누었다. 서로의 실력은 비슷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자신이 시간을 지체하는 바람에 발렌타인 성이 카이로만 제국의 수증에 떨어져 버렸다. 조금만 더 빨리 도착했다면 발렌타인 성을 내주지 않아도 됐을지 몰랐다. 승부는 내지 못하더라도 전쟁에서 졌으니 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번에 공주를 납치하는 치졸한 짓까지 하게 된 것은 ㅈ신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였다. 아니었다면 직접 나서지도 않았을 것이다.

 다시 한 번 피닉스기사단과 대결하는 일이 되었다. 가르딘인지 조르딘인지 알지도 못하는 놈이 총책임자인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전멸시켜버리고 공주를 데리고 가면 되었다.

 “부단장, 내가 도와주면 어렵지 않을 거요.”

 “솔직히 나는 마법사들을 좋아하지 않소, 하지만 당신의 실력은 믿고 있소.

 “후후!”

 마법사라고 불린 중년인은 마법사의 전형적인 커다란 망토를 입고 있지는 않았다. 옷이 거치적거리기에 최대한 편한 복장을 했다. 대신에 마법을 사용하기 위한 지팡이는 옆구리에차고 있었다.

 중년인은 코카 제국 내에서도 숨겨진 실력자였다. 외부로 나타나지 않게 암중으로 일을 해결하는 인물이었다. 전투에 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대단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그가 다루는 마법은 보통의 마법사보다 더욱더 전투적이고 파괴적이었다.

 중년인은 마법사가 싫다고 하는 가딩스타의 말에도 웃음을 지었다. 보통의 마법사는 자존심이 강해 비하하는 말을 하면 참지 못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데도 마법사는 별로 개의치 않고 있었다. 자존심보다는 실력, 그리고 해결 이후에 들어오는 것에 관심이 더 많았다. 

 “이미 벌어진 일이니 확실하게 하도록 합시다. 당신의 마법과 술사적인 기술을 모두 상ㅇ하시오. 그리고 난 후 기사들을 동원해서 확실하게 끝을 낼 것이오.”

 “물론이오. 나는 내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오.”

 가딩스타 후작은 기사대전을 하지 않았다. 마법과 기사의 합격술로 끝장을 내려고 방법을 제시했다. 가장 효과적이며 무시무시한 합격술이었다. 상대하는 입장에서 마법사가 없다면 제일 까다로운 방법이 되었다.

 움찔!

 고든은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최대한 감추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의자에 앉아 있는 젊은 청년을 보면 그럴 수가 없었다. 그는 도둑길드 내의 넘버 7에 속하는 인물이었다. 세븐핸드라고 불리는 도둑길드 내 최고위 간부 중에 한 명이다. 도둑길드의 지부를 감시 감찰하면서 지부장에게 명령을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고든이 세븐핸드의 젊은 청년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는 단순히 감찰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부장의 목을 단숨에 ㅊ버릴 수 있는 권한과 힘을 가지고 있었다.

  “성혈을 가진 아이가 한 명 부족하군요.”

 “조금만 기다리시면 금방 채워질 겁니다.”

 세븐핸드 중에 한 명인 젊은 청년의 이름은 자칼이다. 어둠 속에서 아무도 모르게 숨통을 끊는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었다. 원래 이름은 도둑길드 내에서도 알려지지 않은 비밀이었다.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오는 시기입니다. 그러니 실수를 한다는 것 자체가 믿음을 주기에 부족합니다.”

 자칼의 눈이 예리하게 빛이 나고 있었다. 고작 한 번 방문 했음에도 고든의 상황을 단번에 파악하는 자칼이었다.

 “수하들조차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자가 대업을 이룰 수 잇을지 모르겠군요.”

 덜! 덜! 덜!

 고든은 자칼의 말 한마디, 한마디 두려웠다. 그의 말 한마디에 자신이 목이 사라지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자칼의 눈은 무섭도록 차갑게 빛이 났다. 푸른 안광이 고든의 전신의 꿰뚫어 버릴 것 같았다.

 고든은 다른 것은 둘째치고 장부에 대한 것은 철저하게 숨겨야 했다. 장부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된다면 자칼이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한 번의 실수는 눈감아 드리지요, 단! 다음에도 이런 식으로 처리하면 숨을 쉬고 다닐 수 없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자칼 님!”

 “나가서 수하들 단속 똑바로 하세요.”

 “알겠습니다.”

 고든이 문을 닫고 나가자 그림자 하나가 유령처럼 자칼 앞에 나타났다. 그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았다. 틈 하나 존재하지 않는 곳을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자칼은 갑자기 나타난 유령 같은 존재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는지 별로 놀라는 눈치가 아니었다.

 “알아냈니?”

 “악마의 유혹에 당한 것처럼 보입니다.”

 “악마의 ㅣ유혹이라!”

 자칼의 명령에 따라 조사를 한 인물을 어둠의 길드에 속해 있는 어둠의 그림자 쉐도우였다. 쉐도우의 수는 총 50명으로 구성이 되어 잇으며, 정탐, 조사, 감시 등을 은밀하게 진행시키는 어둠의 길드의 저예요원이다.

 쉐도우는 배신한 산토스와 그 수하들을 아무도 모르게 조사를 했다. 조사한 결과 흑마법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였다.

 악마의 유혹이라고 불리는 것은 흑마법의 일종으로 사람의 욕망과 뒤틀어진 마음을 극도로 자극하는 힘이었다. 더군다나 상대방의 능력을 증폭시키는 능력까지 발휘한다. 암가의 유혹은 흑마법에서 디자이너(욕망)마법에 속하는데, 상위의 흑마법사만이 펼칠 수 있다고 전해지고 있었다.

 “고든이 배신할 가능성은?”

 “놈은 완벽한 것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겁이 많은 놈입니다. 아직 쓸모가 있으니 두고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자칼은 고든을 용서해 준다고 했지만 정확한 정보를 얻기 전까지는 아무도 믿지 않는 인물이었다.

 자칼은 쉐도우가 말한 악마의 유혹이라는 말에 고민을 하고 있었다. 악마의 유혹은 사라진 마법이었다. 흑마법사는 400년 전에 대륙공적으로 불리면서 사라지고 없었다. 그 명맥을 유지하는 곳은 단 한곳뿐이었다. 그렇다면 외부적으로 악마의 유혹을 펼칠 수 있는 곳이 없나는 말이 되었다.

 ‘누구지?’

 사건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함부로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악마의 유혹이라고 하지만 정확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누군지 모르지만 방해하면 그냥 두지 않겠다.’

 자칼의 눈에 예리하게 빛을 내었다. 시퍼런 안광 속에 숨겨진 공폭함을 여지없이 드러내었다. 쉐도우조차 그 모습에 몸을 떨었다. 세븐핸드에 속한 인물들은 보통사람이 아니었다. 그들 모두 인간의 경지를 한참이나 벗어난 존재들이었다.

 카타론 영지를 출발한 가르딘이었다.

 다음 영지로 가는 길은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른 여타의 문젯거리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그동안 아직도 공주가 가르딘의 약점을 잡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 빼고 마이다. 공주의 집요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실패와 포기를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사람이 정도껏 했으면 타협할 줄 알아야 하건만 아직 젊은지 혈기가 왕성했다. 가린지 영지를 가면서 타운평원을 지나야 했다. 도시 크기를 넘어서는 거대한 평원이었다. 넓게 펼쳐진 평원을 보면 가슴까지 시원하게 뚫리는 기분을 만끽하게 해준다. 공주의 주변 기사들과 병사들도 평원을 걸으면서 주변을 감상하고 있었다.

 척!

 가르딘이 손을 들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가르딘만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가르딘은 자신들을 앞으로 1킬로미터 전방에 누군가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수는 50명 정도이지만 그들이 가진 무력은 보통이 아니었다.

 피닉스기사단과 맞먹는 무력을 가지고 있었다. 보통의 인물들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대륙최강의 기사단인 피닉스기사단과 비슷한 실력을 가진 곳은 한곳뿐이었다. 바로 코카제국의 라이언기사단이었다.

 ‘익숙하지만 기분 나쁜 기분이다.’

 가르딘은 상대가 누군지 감을 잡았다.

 ‘응?’

 하지만 기사단만이 아닌 것 같았다. 한 명의 기운이 달랐다. 기사의 기운과는 다르게 대기 중의 마나를 공명시키는 인물이었다. 바로 마법사만이 가진 기운이었다. 가르딘도 마법사의 능력을 잘 알고 있었다.

 가르딘의 감각을 긴장시킬 정도의 마법사라면 보통 실력이 아닐 것이다. 최소 마도사의 반열에 든 위험인물일 가능성이 컸다.

 ‘위험하다!’

 가르딘이 일행을 멈추자 필리언이 금세 다가왔다.

 “왜 그러는데?”

 “모두 전투대형을 갖추라고 해, 그리고 공주님의 마차를 제일 뒤로 보내.”

 “왜?”

 “적이다.”

 “적?”

 갑자기 적이 나타났다는 말에 필리언이 놀라고 있었다. 가르딘의 경우 다른 때는 거짓을 말하더라도 전투 중에는 거짓을 말한 적이 없었다. 그런 가르딘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필리언도 흘려듣지 않았다. 즉시 움직여 기사와 병사들을 움직였다.

 -모두 전토대형을 갖춰라!

 필리언이 기사들에게 말을 하고 병사들이 방패를 들고 진형을 만들었다. 기사들과 신입기사들, 병사들은 모두 어리둥절한 기분이었다. 갑작스럽게 전달된 명령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움직이지 않는 기사와 병사는 없었다. 대륙 제일의 기사단과 최강의 정예병들이었다.

 척! 척! 척!

 일사불란하게 진형을 갖추고 공주의 마차를 보호하는 기사들과 병사들이었다. 가장 최우선으로 지켜야 하는 것이 공주의 목숨이었다. 몸을 던져서라도 막아야 하는 일이었다.

 아이시런 공주가 엘리언, 쉴라와 수다를 떨고 있을 때 갑작스러운 소란에 창문을 열어 밖을 보았다.

 기사들이 앞을 막고, 병사들이 마차를 밀착시켜 호위하는 형상이었다. 마치 누군가 습격을 하기에 방비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이시런 공주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표정이 심각해 지면서 의문을 던졌다. 

 “무슨 일이지?”아이시런은 총책임자인 가르딘을 찾아보았다. 가르딘은 기사들의 선두에 서서 심각한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다른 때의 가르딘이 아니었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백전노장의 포스를 확실하게 뿜어내고 있는 가르딘이었다.

 아이서런 공주조차 함부로 말을 걸기 힘들어 보였다

 ‘저 아저씨가 왜 저러지?’

 공주가 문을 열고 나가려 하자 스필언이 다가와서 말렸다.

 “공주님, 지금은 위험하니 마차 안에 계십시오!”

 “무슨 일인데 그러세요?”

 “아무래도 적의 습격이 올 것 같습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자랑스러운 카이로만 제국의 피닉스기사단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공주님을 안전하게 지키겠습니다.”

 전형적인 기사다운 스필언의 말이었다.

 목숨을 버려서 공주를 지킨다. 얼마나 멋진 말인가! 그러나 현실은 생각처럼 멋있는 것이 아니었다. 죽고 나면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살아서 멋지게 사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아이시런은 습격이라는 말에 걱정이 앞섰다.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도 있지만 외출하려고 유치한 계획을 짜려 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아이시런 공주는 모두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 말을 해야 했다.

 “여려분을 믿겠어요!”

 조금 크게 말을 했기에 마차 주위의 모든 기사와 병사들이 다 들을 수 있었다. 아름다운 공주가 기사와 병사들을 믿는 다는 말을 하자 용기가 팽배해졌다. 공주가 한마다 말을 한 것이지만 그것으로 인해 기사와 병사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것처럼 상승했다.

 가르딘도 공주의 말 한마다를 되새겼다.

 ‘마냥 철없지는 않군.’

 이런 상황에서까지 떼를 쓰거나 신경질을 부렸다면 공주가 아니라 말괄량이 소녀일 뿐이다. 제국의 공주라면 대외적으로 모둔 사람의 존경과 사랑을 받아야 한다. 그것이 제국의 공주로서 갖추어야 할 위상이었다. 그런 것조차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공주는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가치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움직이지 않는데, 놈들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렇다는 소리는 한가지뿐이군.”

  “뭔데?”

 “마법공격이 올지 모르니 방패로 몸을 보호해.”

 가르딘은 수많은 전투에서 배운 경험을 무시하지 않았다. 경험은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다. 상황을 대처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며, 임기응변에 대한 활용 폭이 넓어진다. 경험이야 말로 가르딘에게 남은 재산 중에 하나였다.

 슈슈슈슉! 슈슈슈슉!

 가르딘의 예상대로 수백발의 마법이 쏟아졌다. 바로 아이스애로우(얼음화살)였다. 빙계 바법으로 3서클 이상의 마법사만이 사용할 수 있다. 더군다나 백여 발 이상을 연속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자는 6서클 이상의 고위급마법사뿐이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욱 많은 화살이 날아왔다.

 가르딘이 소리쳤다.

 “모두 몸을 보호하고 기사들은 검으로 아이스애로우를 쳐내라!”

 아이스애로우는 날카로우며 강력했다.

 파파팡! 파파팡! 채채채챙! 채채채챙!

 일반병사들은 방패진형을 갖추고 막아내는 데도 힘이 들어 하는 듯했다. 아이스애로우는 맞은 순간 몸이 얼어붙을 정도로 차가운 한기를 뿜어낸다. 한기는 몸을 움츠러들게 만들고, 행동반경을 좁게 만든다. 결국에는 몸이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고 당할 수 있는 마법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병사들은 이미 방패로 막아내고 있었다. 방패가 없었다면 많은 사상자를 내었을 뻔한 상황이었다. 기사들에게 아이스애로우 정도는 얼마든지 막아낼 수 있는 것이었다. 마나를 사용하는 자가 아이스애로우에 당했다면 웃음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멀찍이서 마법을 날린 중년인은 흥미롭다는 반응을 나타내었다. 병사들을 겨냥해서 날린 다연발의 아이스애로우가 하나도 먹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설마 했는데 저토록 많은 방패를 가지고 있을 줄 예상하지 못했다. 마법공격에 대해 대비를 하고 있었을 것으로 보았다.

 “제법이군.”

 “나의 계획을 계속적으로 방해한 놈이오, 그러니 이 정도 대책은 당연하겠지!”

 가딩스타 후작이 노골적으로 마법사에게 면박을 주었지만 마법사는 개의치 않았다. 마법이라는 것은 어차피 본보기였다. 그의 전문적인 기술은 마법이 아니라 다른 것에 있었다. 일단 마법을 사용한 것은 상대의 역량을 살펴볼 겸해서 날린 예행연습이었다. 아이스애로우를 날려서 통하면 좋은 것이고, 안 통하면 다음 방법으로 넘어가면 그만이었다.

 가딩스타 후작은 여유롭게 대응하는 마법사 벤투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 일을 해왔다는 말은 자신들이 하지 못한 일을 한다는 소리였다. 그 말이 별로 미덥지 않았다. 직접 눈으로 보지 않았으니 믿음이 부족했다.

 벤투스는 가딩스타의 마음을 읽었다.

 ‘가장 최우선이 누군지 알면 더욱 화내겠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벤투스였다.

 벤투스는 일단 그 일을 제쳐두고 자신이 먼저 해야 할 일을 꺼내 들었다. 그는 마법사 중에서도 연금술을 연구하는 쪽에 힘을 기울인 인물이었다. 연금술은 물건을 만드는 마도 공학자에 속한다.

 공학연구는 일반마법연구의 몇 십 배에 해당하는 돈이 들어간다. 벤투스가 코카 제국의 일은 은밀하게 돕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가 일을 성공하면 연구를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코카 제국에서 자신이 필요한 연구 비용과 재료를 구해주기로 약속을 했다.

  ‘그럼 내 연구 성과를 발휘해 볼까나!’

 마도공학에 대해 연구하는 인물은 대륙에서도 얼마 없었다. 그 일은 고대의 마도병기를 만드는 것을 주축으로 한다. 고대마도병기를 만드는 것은 사라지고, 그 시대에 남은 병기만이 지금까지 자리하고 있을 뿐이었다. 

 고대 병기 중에 최강의 병기는 기간트라는 병기인데, 사람이 탔다고 전해진다. 한 번 휘젓는 병기의 위력에 수천의 병사들이 갈가리 찢겨나간다고 하는데, 그것은 말 그대로 사라진 전설일 뿐이었다. 지금에 와서 그런 병기를 만들 수는 없었다.

 가르딘은 상대편에 고위급마법사가 있다는 것에 위험을 느꼈다. 마법사라는 것이 육체적인 힘은 떨어질지 몰라도 기사와의 연수합격을 하게 되면 여간 공치 아픈 존재가 아니었다. 되도록 마법사를 먼저 처리하고 싶은 가르딘이었다.

 하지만 상대편이 바보가 아니라면 마법사를 보호하고 있을 것이다. 마법사는 전투에 있어서 핵심이었다. 마법사를 보호하는 것은 당연한 처사였다.‘ 그랜드 마스터의 실력을 완벽하게 보인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그렇게 되면 자신의 존재가 너무 알려진다. 오러 마스터라는 것이 알려져도 골치 아픈 상황에서 그랜드 마스터의 존재가 나타나면 과연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렇게 되면 가르딘의 인생은 평범할 수 없게 된다.

 사람이 살면서 정도라는 것이 있다. 힘은 가진 만큼 그에 반비례하게 책임을 져야 한다. 가르딘은 그 막중한 책임이라는 것을 완벽하게 다룰 정도로 강한 인물은 아니었다. 힘이 강한 것이 꼭 완벽한 인간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인간은 불완전하다. 하나의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되었을 경우 그 파급력은 힘이 클수록 엄청나다. 그랜드 마스터인 가르딘이 실수를 하게 되면 세상이 망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 뒷일을 모두 감내하기 위해서는 강함보다는 성숙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 어떠한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완벽한 인간 말이다.

 ‘나는 완벽하지 않다. 불완전한 판단을 하기에 인간일 수 있는 것이다.’

 가르딘은 상황을 냉철하게 판단했다. 여기서 자신이 발휘해야 하는 역량을 정했다. 그 역량만큼 발휘해서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낼 것이다.

 라이언기사단의 부단장인 가딩스타 후작이 명령했다.

 “놈들에게 패배의 쓴맛을 보여주도록 해라!”

 가딩스타 후작이 명을 내리자 라이언기사단이 적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가딩스타 후작이 맨 앞 선두에서 기사단을 이끌었다. 

 폭풍처럼 광폭하게 야수처럼 사납게.

 이것이 라이언기사단의 구호였다. 사자의 강인한 힘과 광폭함을 기사단의 마음에 새긴다는 뜻이었다.

 “이야야얍!”

 타타타타탓!

 라이언기사단이 빠르게 진격했다.

 고작 50명이지만 그들이 뿜어내는 투기는 대군의 군세와 맞ㅤㅁㅓㅆ다. 투기는 다른 말로 기세라고 한다. 기세를 타야 전쟁은 승기를 잡을 수 있다.

 가르딘은 라이언기사단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라이언기사단이군, 맨 앞에 서 있는 인물은 가딩스타 후작이다!”

 “뭐야! 코카 제국 놈들이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야?”

  필리언이 놀라서 되물었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놈들이 여기에 있는다는 것 자체가 상식을 깨는 파격적인 일이었다.

 “처음부터 노리고 있었는지도 모르지.”

 가르딘은 처음 루벤 영지에 갈 때 불길함을 느꼈다. 하리탄 협곡에서 느껴진 불길함이 거짓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그 때부터 공주를 노리고 왔을 것이라는 것을 파악한 가르딘이었다.

 ‘나 때문인가!’

 가르딘의 상황 판단력은 정확했다. 자신이 예상 밖의 행로로 이동하는 바람에 놈들이 어쩔 수 없이 여기에서 나타난 것이다. 가르딘의 판단으로 가딩스타 후작이 지금 나타난 것이지만 가르딘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가르딘이 조심하지 않았다면 협곡에서 상당한 피해를 봤을 것이다.

 “카론 마이어 공작군과 가까워지기 전에 우리를 치려고 한 것이군.”

 “젠장할 놈들.”

 필리언은 긴장했다.

 라이언기사단의 실력뿐만 아니라 가딩스타 후작 때문이었다. 가딩스타 후작은 오러 마스터였다. 그의 전재 한 명만으로도 부담이 되었다. 지금 여기서 오러 마스터를 상대할 인물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우리가 가딩스타 후작을 막아야 하나!”

 필리언은 정말 자신 없었다.

 가딩스타 후작은 바자바인 백작과 공방을 펼친 기사였다. 바자바인 백작이 능글맞긴 하지만 실력만큼은 대단하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일반기사 10명은 순식간에 찜 쪄 먹을 수 잇었다.

 “수적으로 불리하니 불안 하냐.”

 “그럼 안 불안 하냐, 적은 50명이나 된다고!”

 “우리한테는 히든카드가 있잖아.”

 가르딘이 스필언과 미토스를 바라보자 필리언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분명 둘이 천재기사인 것은 맞지만 지금 상황에서 할 말은 아니었다. 상대는 노련한 백젼노장의 오러 마스터였다. 이제 갓 첫 실전을 치르는 놈들에게 기대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우선은 전투대형을 갖춰, 1분 대형으로 막아내다가 2분 대형으로 바꾼다.”

 “알겠다, 이놈아!”

 1분 대형은 마름모꼴의 진형이다.

 적으로부터 내부의 소중한 인물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또한 2분 대형은 적으로부터 보호하면서 뒤에서부터 포위공격으로 급반전시키는 뒤통수치기 전법이다. 상대의 실력이 백중세나 열세일 때 사용하는 수세적인 방법이었다.

 “병사들은 공주를 보호하면서 활을 사용해 도우라고 해.”

 기사이 수는 라이언기사단보다 20명이 적지만 병사들은 100명이나 되었다. 병사들도 전투에 효과적으로 운용한다면 승산이 없다고 볼 수는 없었다.

 라이언기사단이 모습을 드러내어 근접거리에 나타났다. 맨 선두에 당당하게 서 있는 가딩스타 후작이었다. 가딩스타 후작이 가르딘을 바라보았다. 가르딘도 가딩스타 후작을 보았다. 가르딘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가딩스타 후작! 비겁하기가 하늘을 찌르는 구나!”

 꿈틀!

 가딩스타 후작은 자존심이 강한 인물이었다. 가르딘은 상대의 역량을 가능하고 흥분시키기 위해서 소리를 지른 것뿐이었다. 가르딘은 작위가 없는 귀족이었다. 후작에게 반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가딩스타 후작이 화가 나는 것도 당연했다.

 “건방진 놈이 감히 뭐라고 하는 것이냐!”

 “쥐새끼처럼 생긴 놈이 하는 짓도 더럽기 짝이 없어! 너 같은 놈은 내가 상대할 필요가 없다. 새로 들어온 신입이 상대해도 이길 거다!”

 부르르르!

 “죽여주마!”

 가딩스타 후작은 기사들과 함께 돌진했다.

 가르딘은 그 순간에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활을 쏴!”

 슈슈슈슈슉!

 가딩스타 후작은 비웃었다.

 활 따위가 막아선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수적으로 20명이나 차이가 났다. 기사의 수가 20명이면 일반병사 500명과 맞먹는다고 하지 않는가! 가르딘도 활로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 활을 날린 것은 놈들의 시야를 분산시키기 위한 도구였다.

 그 즉시 가르딘이 전음을 날렸다.

 상대는 스필언과 미토스였다.

 [미토스, 스필언!]

 움찔!

 자신의 귀에 대고 말을 하는 것처럼 가르딘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스필언과 미토스가 놀라고 있었다. 분명 입으로 말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의문이었다.

 ‘어떻게?’

 그런 의문에 가르딘은 대답할 시간이 별로 없었다. 대신에 명령을 내리는 것으로 대신했다.

 [지금 당장 달려오는 기딩스타 후작을 향해 일격필살의 공격을 해라!]

 스필언과 미토스는 가르딘을 보았다. 가르딘이 눈짓을 보냈다.

 지금 보여준 기술이 무엇인지를 나중에 물어보면 된다. 우선은 가르딘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먼저였다. 가르딘은 방어 진형의 가장 중심에 서 있었다.

 검을 들고 방어를 하며 기다렸다. 그 앞으로 가딩스타 후작이 맹렬하게 달려오면서 검을 휘둘렀다. 날카로우면서 폭발적인 힘이 전해졌다. 가딩스타 후작은 대륙에서 소문이 자자한 기사였다. 절대 평범한 베기가 아니었다.

 가딩스타 후작은 가르딘을 자신의 상대로 보지도 않았다. 오러 마스터도 아닌 놈에게 일격 이상을 허용하는 것 자체가 망신이었다. 일격으로 끝을 내려고 검에 오러 블레이드를 담았다.

 “건방진 말을 한 대가다!”

 가딩스타 후작이 빗살처럼 빠르게 가르딘의 목을 노리고 검을 휘둘렀다. 휘두르는 검을 막선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오러 마스터가 아니고서는 절대 막아설 수 없다. 목이 잘려나갈 것으로 보았다.

 씨익!

 가르딘이 미소를 지었다.

 가딩스타 후작은 문득 의문이 들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순간에 생각을 하고 말았다.

 ‘웃어?’

  실성한 놈이 아니고서는 절대로 그럴 수 없었다.

 가르딘은 검에 오러를 뿜어내었다. 가딩스타 후작은 그 오러를 보고 비웃어 버렸다.

 “고작 익스퍼트 수준으로 날 비웃은 것이냐!”

 “글쎄!”

 가르딘에게 검을 날리던 가딩스타 후작이 좌우 양옆에서 느껴지는 위험한 검세를 느낄 수 있었다. 척 보아도 오러 마스터의 기운이었다.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오러 블레이드를 느낄 수 있었다.

 가딩스타 후작은 황급히 몸을 틀어야 했다. 이미 뻗어버린 검을 포기하고 양옆에서 느껴진 위기를 먼저 벗어나야 했다. 가딩스타 후작으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카이로만 제국의 오러 마스터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또 다른 오러 마스터 둘이 등장한 것이다.

 ‘이런!’

 너무 늦어버렸다.

 가르딘의 도발에 앞뒤 생각을 하지 않고 공격을 한 것이 실수였다. 하지만 가딩스타 후작은 오러 마스터 중급의 기사였다. 즉시 몸을 틀어 왼쪽에서 찔려 들어오는 오러 블레이드를 막아내었다. 하지만 반대쪽에서 베어오는 오러 블레이드를막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휘이이익!

 “크윽!”

 오러 블레이드가 가딩스타 후작의 오른쪽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스필언의 오러 블레이드였다. 그러나 정작 스필언과 미토스는 가딩스타 후작의 놀라운 대처능력에 상당히 놀라고 있었다. 순식간이었고, 거리가 가까워서 아무리 빨라도 피랗수 없을 것 같았던 상황이었다.

 옆구리에 오러 블레이드가 스치고 지나간 상황에서 가딩스타 후작은 뒤로 물러나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보았다.

 스필언과 미토스가 20살을 갓 넘은 햇병아리라는 것을 말이다. 놀라운 일이었다.

 ‘저토록 어린 나이에 오러 마스터란 말인가!’

 사악!

 “커억!”

 빛이 번쩍였다.

 가딩스타 후작의 정중앙 가슴이 일직선으로 베어져 나갔다.

 “날 너무 무시한 대가야.”

 가딩스타 후작은 젊은 오러 마스터에게 시선을 빼앗기는 바람에 가르딘은 신경 쓰지 못했다. 일순간이였지만 가르딘의 오러가 정확하게 가딩스타 후작의 가슴을 갈랐다. 뒤로 몸을 빼는 순간이라 깊게 베지 못해 즉사 시키지는 못했더라도 중상은 입게 되었다.

 “이...놈을!”

 “상급의 오러라도 맞으면 베어지는 게 사람의 몸이지.”

 오러 마스터의 몸이라고 해도 검에 베어지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더군다나 오러가 맺혀져 있는 검이었다. 가르딘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가딩스타 후작과 부딪치는 동안에 피닉스기사단과 라이언기사단이 본격적으로 대결을 펼치고 있었다.

 카카카캉! 카카카캉! 챙! 챙! 챙!

 피닉스기사든은 수적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방어에만 주력하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양쪽에서 죽은 사람이 나타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라이언기사든은 오러 마스터가 부상을 당했다. 새로운 오러 마스터가 2명이나 건재한 피닉스기사단에게 승산이 있었다. 마스터가 움직이지 못하는 순간 승패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가르딘은 즉시 스필언과 미토스에게 적을 주살하라고 명령했다.

  “너희들은 기사다, 피를 두려워한다면 기사라고 할 수 없다. 제국을 위해 더러운 피도 감내해야 하는 것이 기사다. 그것이 기사이고, 기사로서 존재할 수 있는 이유다! 가라! 너희들의 힘을 마음껏 뿜어내라!”

 신입기사들이 아무리 강해도 첫 전투나 마찬가지였다. 삶과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사람의 본능이었다. 그렇기에 가르딘은 본능을 억제하기 위해 사명감을 북돋았다.

 스필언과 미토스는 스승 같은 가르딘의 말을 마음에 새기고 적들을 향해 나아갔다. 

 “응?”

 마지막으로 가딩스타 후작을 보내버리려고 할 때였다. 가르딘의 감각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거대한 물페가 땅에 내려서며 쿵하는 소리가 들렸다.

 쿠쿵!

 움직이는 거대한 실체가 공간에서 나왔다.

 가르딘은 갑자기 나타난 존재를 보았다. 그것은 바로 골렘이었다.

 골렘은 보통 마법사는 사용할 수 없는 병기였다. 골렘은 연금술과 관련이 있는 공학마법이었다. 공학마법사는 대륙에서도 극소수에 속하는 인물들이었다. 더군다나 골렘 1개가 가지는 위력이 상상을 초월한다. 최소 오러 마스터에 이르러야 겨우 상대할 수 있을 정도의 위력이었다.

 가르딘이 고개를 위로 해야 겨우 볼 수 있을 정도로 컸다. 높이가 15미터에 엄청난 몸집을 자랑했다. 그런 콜렘이 무려 3개나 되었다.

 가르딘이 놓친 것이 바로 마법사의 존재였다. 마법사는 일단 원거리에서 공격하는 것을 주로한다. 그렇기에 직접 부딪치는 일에는 나서지 않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렇기에 마법사가 공주가 탄 마차까지 갈 것이라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제기랄!’

 마법사는 기사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골렘을 사용했다. 골렘이 막아서자 기사들은 다가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벤투스는 나머지 병사들을 직접 처리하고 공주를 납치하려고 했다. 일반병사들이 7서클 마법사의 상대가 될 리 없었다.

 가르딘은 앞을 막아서는 골렘을 처리하지 않고서는 공주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피닉스기사든을 물릴 수도 없었다. 치열하게 공방을 주고 받는 가운데 뒤를 본다는 것은 적에게 목을 ssoal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단숨에 가딩스타 후작의 목을 쳐버리고 싶지만 공주를 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가르딘은 지체하지 않고 뒤로 돌아서 공주가 잇는 곳으로 갔다. 이미 마법사가 병사들을 향해 마법을 난사하고 있었다.

 ‘스필언과 미토스가 있으니 문제되지는 않을 거다.’

 오러 마스터가 2명이나 있는데도 지면 그것은 전적으로 피닉스기사단 탓이었다.

 벤투스는 기사대전이 벌어질 때까지 뒤에서 숨죽이고 있었다. 그러면서 사용해야 할 마법드을 인챈트(구동)했다. 언제 어디서건 필요할 때 사용하기 위해 수식을 미리 적어놓는 것이다.

 벤투스는 기사들이 달려 나가는 그 타이밍에 블링크(공간이동)마법을 사용했다. 블링크 마법으로 병사들이 지키고 잇는 공주의 마차 주위로 이동한 것이다.

 우선은 방해물이 나타날지 모르니 확실한 방패막이를 소환했다. 벤투스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골렘을 소환한 것이다. 그는 평범한 마법사가 아니고 고서클의 골렘술사였다.

 병사들이 방패를 들어 방어하려고 하는 모습에 벤투 수의 입가가 가볍게 올라갔다.

 “개미는 아무리 강해도 기미지!”

 7서클 마법사에게 일반병사들을 식후 간식거리 정도였다. 벤투스의 손바닥 위 허공에서 스파크가 일어났다. 뇌전계열이 마법인 일렉트릭애로우(번개의 화살)가 시전되었다. 다연발의 일렉트릭애로우가 방패를 들고 있는 병사들을 향해 나아갔다.

 슈슈슉! 찌지지지직!

 방패로 막아내려고 하지만 일렉트릭애로우를 맞은 병사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그 자리에 쓰러졌다. 한두 명이 아니었다. 한 발에 3명 이상이 쓰러져 나갔다. 20여 발의 일렉트릭애로우에 불과했지만 그 위력은 대단했다. 순식간에 절반에 달하는 병사들이 바닥에 쓰러져 몸을 떨었다. 마치 번개에 맞아 감전당한 것처럼 시커멓게 타 들어가는 병사까지 있었다.

 “으아아아아악!”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렸다.

 마법사의 위력을 깨닫는 병사들이었다. 병사들이 광황상태에 빠질 때 벤투스가 다시 한 번 마법을 발하였다.

 -윈드스톰(바람의 폭풍)

 휘이이이잉!

 “으아아아악!”

 갑작스러운 폭풍과 같은 바람에 병사들이 속절없이 당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무력으로 어찌해볼 수 없는 상대였다. 마법사는 단체로 덤빈다고 해서 상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일반병사들에게 마법사는 재앙이었다. 속수무책이 따로 없었다.

 마차 안에 있던 아이시런은 병사들의 비명을 듣고 그대로 있을 수 없었다. 제국의 공주가 두려움 때문에 병사들의 고통을 나 몰라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공주가 밖으로 나가려 하자 엘리언이 만류했다.

 “공주님, 안 돼요! 위험합니다!”

 “놔, 어차피 기사와 병사들이 죽으면 나도 위험해! 이럴수록 공주로서 체통을 잊어서는 안 되잖아!”아이서런 공주는그 즉시 문을 역고 밖을 내다보았다.

 마차안과 밖은 천지 차이였다.

 사방에 널브러진 병사들이 신음과 더불어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마차 문을 열고 나오기는 했지만 아이시런 공주는 선뜻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참혹한 광경 속에 말로 할 수 없는 두려움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지옥과 같았다. 이런 광경은 그녀의 생애 처음이었다.

 “공주님! 역시 아름다우시군요!”

 벤투스가 공주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아이시런 공주는 벤투스의 미소에 소름이 돋았다.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죽여 나가면서 짓는 웃음이라 더욱 소름끼치는지 몰랐다.

 벤투스의 제1목적은 아이시런 공주였다.

 다른 것을 제쳐두고 공주를 납치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던 것이다.

 벤투스는 남은 병사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힘도 없는 것들이 방해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어차피 공주는 자신의 손에 잡히게 되어 있었다.

 찌익!

 “윽!”

 벤투스가 갑자기 심장을 부여잡았다. 일렉트릭애로우를 맞은 것 같은 고통에 벤투스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력을 사용하는 원동력은 마나다. 마나를 회전시키는 인체의 중요부위가 심장이었다. 심장에 충격이 온다는 것은 마법이 역류했다는 소리였다.

  지금 상황에서 마법이 역류하는 경우는 골렘이 충격을 받았을 때뿐이다. 그것도 심각한 충격이 아니고서는 나타날 수 없는 현상이었다.

 “무슨 일이지?”

 벤투스가 고개를 돌려 골렘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골렘1기가 힘을 잃고 바닥에 쓸진 것이 아닌가! 거대한 물체라고 하지만 골렘 역시도 동력이 없이는 움직이지 못하는 고철덩어리에 불과했다.

 “말...도 안 돼?”

 벤투스의 놀람은 당연했다. 벤투스가 소환한 골렘은 보통 골렘이 아니었다. 골렘도 ㄷㅇ급이 존재했다. 골렘 중에서도 강력하기로 정평이 난 골드급 골렙이었다. 최소 오러 마스터 중급이 아니고서는 상대할 수 없는 병기였다.

 지금 여기에 있는 피닉스기사단 중에 홀로 골렘을 사용할 수 있는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생각지도 못한 의외의 변수가 나타났다.

 뒤로 돌아선 벤투스는 가딩스타 후작이 상처를 입고 쓰러져 있는 것까지 보고 말았다.

 “가딩스타 후작이 당했단 말인가!”

 가딩스타 후작은 코카 라이언기사단의 부단장으로 단장을 제외한 가장 강한 기사였다. 그런 기사는 피닉스기사단의 일개 기사들에게 당해 쓰러졌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벤투스는 일이 틀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시가 급한 가르딘이었다.

 앞을 막고 있는 골렘들은 보통이 아니었다. 일반적인 골렘과 드리게 빠르기와 단단함이 차원이 달랐다. 검기조차 놈들의 금속을 완벽하게 뚫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단 말인가!’

 되도록 오러 블레이드는 사용하지 않으려는 애초의 계획을 수정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순식간에 병사들 중 절반 이상이 바닥을 뒹굴었고, 그 중에 10명 정도는 견디지 못하고 죽었다. 이대로 시간을 더 끌면 자신의 오만으로 인해 병사들이 다 죽어나갈 것이다.

 더군다나 공주의 안전까지 위험한 상황이었다.

 ‘내 평온한 삶을 끼뜨린 네놈들을 그냥 두지 않는다!’

 뿌드득!

 이를 갈며 증오를 불태웠다.

 웬만해서는 힘을 발휘하지 않으려는 가르딘이었다. 그 뒤에 이어지는 책임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평온한 삶을 살고 싶었던 가르딘을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가고 있었다.

 그것이 벤투스의 실수였다.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가르딘의 실력을 보여주게 만드는 계기였다. 가르딘의 일생을 변화시키는 2번째 계기 말이다. 온전한 삶에서 어떤 삶이 기다릴지는 주신 라이니언밖에 알지 못할 것이다.

 우웅!

 가르딘의 검이 공명을 하며 검명을 토해내었다. 오러 블레이드를 형성하기 위한 시작이었다. 가르딘의 일생에 전투에서 검강을 사용하기는 처음이었다.

 완벽한 오러 블레이드가 가르딘의 검에 청백색의 기운을 뿜어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소름이 끼치게 만드는 위력이었다. 가르딘이 접근하자 골렘들이 막아섰다. 거대한 배틀 엑스와 방패를 들고 있는 골렘들이었다. 골렘이 무기까지 사용하자 여간 까다로운 존재가 아니었다.

 위이잉! 쿠광!

 웅장한 크기를 자랑하는 배틀 엑스가 가르딘의 신형을 반으로 갈랐다. 대지가 반으로 갈라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굉장한 진동과 폭발이 일어났다.

 하지만 가르딘의 움직임은 너무 빨랐다.

 일반 골렘보다 빠르다고 하지만 섬전보를 사용하는 가르딘의 신형을 잡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어느새 가르딘이 골렘의 다리에 다가갔다. 다가간 순간에 골렘의 다리를 향해 오러 블레이드를 수평으로 휘둘렸다. 광속에 가까운 가르딘의 베기였다.

 쌔앵! 뎅강!

 골렘의 오른쪽 다리를 단번에 잘라내자 거대한 신체를 자랑하는 골렘의 몸이 기울어졌다. 아무리 골렘이 크다고 해도 지탱하는 다리가 없다면 쓰러지는 것이 당연했다.

 끼이잉! 쿠구궁!

 가르딘은 기감을 열었다.

 기감을 열어 골렘의 핵을 찾았다. 골렘의 핵이야말로 골렘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골렘이 살아 움직일 수 있게 만들어주는 핵심 동력원이라는 소리였다. 골렘이 연금술의 일종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골렘은 핵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어느 정도의 재생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아무리 흠집을 내도 치명상이 아니면 바로 재생해서 움직일 수 있었다.

 가르딘은 골렘의 핵을 찾기 위해 기감을 열었고, 기감을 열자 골렘의 머리 부분에서 강력한 파동이 발생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저기군!’

 넘어진 골렘의 몸체를 타고 머리까지 이동한 가르딘이었다. 골렘의 머리에 도착한 가르딘이 한 점의 망설임도 없이 검을 내리그었다.

 차앙! 쿠쿵!

 골렘이 머리 속 깊이 숨겨진 핵이 잘라지면서 폭발이 일어났다. 골렘의 핵이 갈라지면서 터진 것이다. 그러자 골렘 1기가 완전히 정지해 버렸다. 가르딘의 눈이 나머지 2기의 골렘을 향했다. 지체하지 않고 몸을 날려 골렘을 향해 오러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처리하는 방법은 비슷했다.

 다리를 먼저 공격하고 쓰러지는 골렘의 핵을 공격하여 움직이지 못하는 고철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2기의 골렘을 처리하고 마지막 골렘을 처리하려고 할 때 일렉트릭애로우가 가르딘을 향해 날아왔다.

 그러나 가르딘은 골렘을 처리하는 것을 우선으로 치부했다. 그 즉시 호신강기를 시전해서 일렉트릭애로우를 차단하고 골렘의 핵을 반으로 갈라버렸다.

 찌지지직! 파앗!

 “안 돼!”

 벤투스가 소리를 질렀다.

 골드급 골렘이야말로 그가 만들어 놓은 역작들이었다. 그런 골렘이 속절없이 무너지자 벤투스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는 다른 일에는 침착하지만 골렘에 관한 일은 침착할 수 없었다.

 부득! 부득!

 벤투스는 일생에 이처럼 분노하기는 처음이었다. 공주를 납치하는 것을 그냥 놔두고 가르딘을 공격한 것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골렘을 소중히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

 “감히 버러지 같은 놈이 내 사랑스러운 골렘을 망치다니! 그냥 두지 않겠다!”

 벤투스의 분노에 주변의 대기마저 차갑게 가라앉았다. 7서클의 마력이 뿜어져 나가자 기운까지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압도적인 힘이 벤투스에게서 느껴졌다. 보통 7서클의 마법사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오러 마스터 중급은 되어야 했다. 다만 둘 중 같은 경지에서 어느 쪽이 강한지는 정확하게 판단을 내릴 수 없다.

 승부에서 경지를 높다고 해서 반드시 실력까지 높다고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검이든 마법이든 일정 경지에 들은 상태에서, 누가 강한지 판단하려면 서로 얼마나 자신이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가에 따라 갈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작은 기술이라도 효용성 있게 사용한다면 그 기술이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벤투스의 분노를 정면으로 부딪치는 가르딘이었지만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벤투스의 분노보다 가르딘의 분노가 더욱 강렬했다. 그의 평온한 삶을 훼방 놓는 놈들에 관한 신경질이었다. 신경질이 난 가르딘은 무서웠다.

 차갑고 예리하게 빛을 내는 가르딘의 눈이었다.

 ‘그냥 두지 않는다고, 그건 내가 할 소리다!’

 아이시런 공주는 볼 수 있었다.

 시퍼런 빛을 발하며 무섭도록 강렬한 기운을 뿜어내는 가르딘을 말이다. 이제까지 보여주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강인함이었다. 순식간에 거대 골렘을 쓰러뜨린 모습만 본다면 대륙최강의 기사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그녀의 놀람은 당연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두려움에 떨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런 절박한 상황에서 구세주가 나타났으니 고마움과 놀람이 교차하고 있었다.

 “대단하다!”

 그녀는 가르딘이 저처럼 강한지 처음 알았다. 그저 실없는 아저씨인 줄만 알고 있었던 것이 부끄럽기까지 했다.

 벤투스는 놀람을 진정시키고 상황을 파악했다. 마법사답게 현실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골렘을 쓰러뜨린 가르딘을 보았다. 골드급 골렘을 순식간에 쓰러뜨리며 발하는 기운은 오러 블레이드였다. 오러 불레이드를 저 정도로 사용한다는 것은 오러 마스터 중급에 이르렀다는 말이 되었다. 분석되어진 정보와는 확연히 다른 일이었다.

 공주의 여정에 3명의 마스터가 포함되어 있었다.

 ‘역시 카이로만 제국인가!’

 습격할 것을 알고 미리 대비했다는 말밖에는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코카 제국으로 돌아가면 자신의 위치가 위험해진다. 

 ‘네놈만을 줄여주마!’

 가르딘만은 죽여 버리고 사라질 마음을 먹었다.

 오러 마스터가 강하기는 해도 자신의 상대는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벤투스였다.

 슈슝!

 벤투스가 생각을 하는 동안 가르딘이 빠르게 다가왔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는 속도가 가동하기까지 했다. 벤투스는 즉시 생각을 멈추고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플라이마법을 전개하고 체인라이트닝을 쏟아내었다. 다연발의 번개가 가르딘을 향해 내리쳐졌다.

 찌지직! 꽈과과과광!

 가르딘은 날아오는 체인라이트니이을 지그재그롤 변화하면서 가볍게 피해버렸다. 그 정도의 공격을 맞아줄 정도는 아니었다. 모든 공격을 피하며 공중으로 도약을 했다.

 파팟!

 지면을 강하게 차오른 가르딘이 10미터를 뛰어올라 벤투스의 앞까지 도달했다. 빠르고 신속한 일련의 동작이었다. 가르딘의 검이 휘둘러졌다. 가공할 힘돠 검속을 자랑하는 가르딘의 참격이었다.

 쌔애앵!

 벤투스는 순식간에 뿜어져 나오는 가르딘의 검격에 당황했다. 잘못하다가는 목숨이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즉시 블링크(공간이동)마법을 시전했다. 반경 10미터 안에서는 주문영창을 하지 않아도 가능했다. 너무 다급했기 때문에 원거리로 움직이는 것이 어려웠다.

 가르딘은 검이 허공을 베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실력을 모두 보여주면 그 정도는 문제없지만 지금 보고 있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이 정도만 해도 많이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가르딘의 나이에 오러 마스터 중급으로 보인다면 그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제법 실전적인 마법사구나!

 마법사는 원거리에 익숙해져 있어서 거리를 무시하고 다가왔을 경우, 당황해서 피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하지만 지금 앞에 있는 마법사는 당황하면서도 쉽게 피해버렸다. 수많은 실전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주르르륵!

 벤투스는 등 뒤로 차가운 땀이 흘러나왔다. 좀 전은 상당히 위험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는 귀신 같은 움직임은 눈으로 쫓을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위험했다! 이런 놈이 있다니!’

 정보가 잘못되어도 한참이나 잘못되었다.

 ‘내가 죽을 뻔하다니 용서하지 않겠다!’

 이제부터 7서클의 마법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마력소모가 심한 마법을 사용하기는 싫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벤투스의 입에서 주문이 흘러나왔다. 마법사인 언어인 룬어가 영창이 되어지자 가르딘이 서 있던 지표면이 급격하게 변화를 일으켰다.

 바로 불케이노(화산폭발)였다.

 땅이 갈라지고 그 안에서 용암이 솟구쳐 오르는 상황이었다.

 ‘이런!’

 가르딘은 어쩔 수 없이 공중으로 몸을 뛰어야 했다. 용암공격은 상당히 위험했다. 가르딘이 공중ㅇ로 뛰어오르자 그 타이밍을 잰 벤투스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죽어랏!”

 -핼버스터(지옥의 광선).

 거대한 포격을 연상케 하는 광선이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가르딘을 향해 굉장한 손도를 자랑하며 포악스럽게 다가왔다. 가르딘은 헬버스터의 가공할 위력을 정면으로 느껴야 했다.

 그러나 가르딘은 죽음보다는 짜증이 치밀었다.

 ‘꽤 번거롭게 하네!’

 -무극칠검식  제2절초  일격참뢰. 하늘아래 일결으로 베지 못할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섬전을 방불케 하는 무섭도록 빠른 검의 기운이 헬버스터를 반으로 쪼개버렸다. 갈라진 헬버스터가 가르딘의 양옆으로 날아가서 지면에 굉장한 폭발을 일으켰다.

 꽈과과광!‘ 

 하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검의 기운이 헬버스터를 갈라낸 것도 모자라서 벤투스가 서 있는 곳을 향해 날아갔다. 위력이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헬버스터 따위는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스걱!

 뎅강!

 커억!

 너무 빠른 검의 기운이었다. 무섭도록 예리한 기운으로 인해 벤투스의 오른쪽 팔이 잘려 나가버렸다. 본능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면 몸이 반으로 쪼개졌을 것이다.

 고통이 정신을 어지럽게 만드는 상황이었다. 

 “이러...럴 수가! 도대체 네놈은 누구냐?”

 “곧 죽을 놈이 그건 알아서 뭐 하게!”

 가르딘의 말에서 살기가 번져나왔다. 마법사를 죽이는 것은 최우선이었다. 이놈을 죽이고 난 후 나머지를 처리해야 했다.

 벤투스는 온몸이 땀과 피로 번져가고 있었다. 이대로는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도망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벤투스의 눈에서 기광이 번쩍였다.

 “날 죽인다고 어디 할 수 있으면 해보아라!”

 가르딘은 벤투스의 객기에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죽기 전에 실성하는 놈을 한두 번 본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전쟁에서 그 정도는 애교에 지나지 않았다.

 벤투스의 손에 붉은 기운이 감돌았다.

 “받아보아라!”

 -익스플로전(폭염구).

 “흥!”

 가르딘은 별로 당황하지 않았다. 이미 그 정도는 갈라버릴 수 있는 실력이 되었다. 그런데 가르딘이 생각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익스플로전이 날아간 곳이 자신이 아니었다.

 ‘왜?’

 라는 의문이 발생하기 전에 가르딘은 상황을 파악했다.

 ‘이런!’

 벤투스가 노린 곳이 바로 아이시런 공주의 마차였다. 아이시런 공주를 향해 익스플로전을 시전한 것이었다. 가르딘의 신형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슈슉!

 공주를 지켜야 했다.

 전투에 이기더라도 공주가 죽으면 전쟁에서 진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가르딘은 어쩔 수 없이 벤투스를 포기하고 공주가 있는 마차로 빠르게 이동했다. 마법사란 족속은 예나 지금이나 비열한 것 같았다. 머리가 뛰어날수록 그 머리를 좋은 일에 쓰지 않고 악랄한 짓이나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가르딘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었다.

 꽈과과광!

 폭발이 일어났다. 그 순간에 가르딘이 검을 들어 검막을 시전했다. 검의 기운이 사방으로 뿜어져 나가 거대한 망을 형성했다. 검의 절대경지 중에 하나였지만 그것을 다른 사람이 볼 수는 없었다. 익스플로전이 일으키는 폭발과 먼지로 가려졌기 때문이었다.

 아이시런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화염구를 보고 기겁하고 말았다. 막을 수 있는 방법이 도저히 없어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바람이 불더니 자신의 앞에 누군가의 등이 보였다.

 바로 애처가 가르딘이었다.

 나타난 가르딘의 검에서 믿을 수 없는 힘이 발생했다. 그 힘이 다가오는 폭발을 모두 막아내었다. 가공할 힘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정확하게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아이시런이었다. 그녀는 두 번이나 가르딘에게 구함을 받았다.

 가르딘은 뒤돌아 아이서런 공주를 보며 말을 했다.

 “괜찮으십니까?”

 “괜찮아요, 그대는 어때요?”

 “저야 물론 괜찮습니다.”

 “다행이네요, 그런데!”

 “대화는 다음으로 미루지요, 지금은 적을 쓰러뜨리는 것이 먼저입니다.”

 “알겠어요.”

 슈슉!

 가르딘이 그 말을 남기고 공주의 곁에서 기사들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남겨진 아이시런 공주는 가르딘의 모습이 달라 보였다. 어쩔 수 없는 마음이었다. 두 번이나 구함을 받은 상황이었고, 가르딘의 뛰어난 능력까지 보았다. 달라 보이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본능이었다.

 가르딘이 기사들에게 다가갔을 때 상황은 종료가 되어 있었다.

 스필언과 미토스는 역시나 천재이자 기사였다. 뛰어난 상황판단과 적절한 대응실력까지 모둔 면에서 완벽한 녀석들이었다.

 순식간에 기사들을 이끌고 라이언기사단을 거의 전멸시켜 버렸다.

 가르딘이 필리언에게 다가갔다.

 “가딩스타 후작은?”

 “마법사 녀석이 나타나더니 데리고 갔어.”

 “신경질 나는 놈이었어, 영악하기는 보통이 아니었거든.”

 “마법사들이 원체 그렇잖아. 그것보다 너 언제 마스터가 된 거냐?”

 필리언이 결정적인 것을 물어왔다.

 이제까지 왜 숨겨 왔냐 라는 말까지 섞여 있었다.

 반면에 가르딘은 당당하게 말을 해버렸다. 상황이 이렇게 됐는데 구차하게 아니라고 말을 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었다. 그것이 오히려 상황을 이상한 방향으로 꼬이게 만든다.이럴 때는 오히려 뻔뻔하고 당연하다 라는 반응이 나았다.

 가르딘이 갑자기 고개를 세우고 어깨를 넓혔다.

 “이제부터 위대하고 찬란한 가르딘 마스터님이라고 불러라.”

 “뭐? 그런 개소리를!

 “어허, 나는 이제 마스터다, 당연히 내가 너보다 위지 이제부터는 날 형님으로 깍듯하게 모시는 게 신상에 이로울 거다!”

 빠직!

 가르딘의 당당한 대응법에 필리언은 뒤통수가 저려왔다. 역시나 가르딘은 가르딘이었다. 이제까지 생활해 온 가르딘의 전면목을 부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필리언도 산전수전 다 겪은 능구렁이었다.

 “그럼 네가 작위를 얻으면 나 기사단장 시켜줘라!”

 “너 하는 것 봐서.”

 가르딘과 필리언은 서로 속에 있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뻔뻔한 놈, 한수에 배를 채우려고 드네.’

 ‘나도 이제 제대하는데, 비빌 구석이 있어야지.’

 아직 받지도 않은 작위를 가지고 벌써부터 수를 쓰는 두 인간구렁이들이었다.

 가르딘은 필리언과 농담은 적당히 했다. 우선은 사상자와 부상자를 파악하고 라이던기사단의 처리를 해야 했다.

  기사는 사상자가 3명에다가 부상자가 10명이었다. 반면에 병사들은 30명이나 죽었고, 부상자가 50명이나 되었다.

 “필리언, 시신을 우선 묻어주고 표시를 해놔라. 나중에 다시 올 수 있도록 해.”

 “알았다.”

 병사와 기사들의 차이가 여기에서 나타난다. 병사들은 데리고 갈 수 없지만 기사들은 데리고 가야 했다. 기사들의 시신은 그대로 둘 수 없었다. 그들이 가진 지위와 명성 때문이었다. 병사들 입장에서는 서러운 일이지만 현실은 어쩔 수 없었다.

 가르딘은 비참해하는 병사들에게 한마디를 했다. 

 “너희들은 공주님을 보호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시신을 여기 두고 가더라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에 따른 보상이 있을 것이니 너무 섭섭해하지 말도록, 모두 제국을 위해 희생한 기사와 병사들이다. 그들의충성을 잊지 말자.”

 반감이 생기지 않도록 최대한 다독이며, 가르딘은 자신의 일을 순차적으로 처리해 나갔다. 전쟁에서 매번 겪은 일이었다.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것보다 더욱 잔인한 광경이나 참을 수 없는 일도 수도 없이 겼어왔던 가르딘이었다.

 분노.

 살기.

 원하는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실패하자 황제의 눈에 살기가 감돌았다. 당연히 이루어져야 할 일이었다. 한치의 빈틈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실패했다는 것은 저넉으로 신하들이 무능력했기 때문이었다.

 코카 제국의 황제인 무르카인은 보고를 올린 휼턴 공작을 응시했다. 다시 한 번 말해 보라는 뜻이었다.

 “뜻하지 않은 변고입니다.”

 “변고?”

 “계획에 없었던 방해물이 나타났습니다.”

 “방해물?”

 무르카인 황제는 계속 말해 보라고 했다. 방해물이 나타났다고 해도 코카 제국에서 파견된 것은 제국 최강의 기사단인 라이언기사단이었다. 더군다나 라이언기사단을 지원하기 위해서 7서클의 마법사까지 보냈다. 실패할 가능성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작전이었다.

 휼턴 공작은 별로 당황해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계획에도 없던 장애물의 존재가 너무 강했기 때문에 벌어진 것뿐이었다. 그는 엄연히 코카 제국의 재상이었다. 쉽게 흥분하고 당황해서는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마스터급 기사가 3명이나 있었습니다.”

 “뭐? 마스터급 기사가 3명이나 있었다고!”

 무르카인 황제는 뜻하지 않는 보고에 놀라고 있었다. 마스터급 기사는 그 희귀성 때문에 확실한 일이 아니고서는 움직이지 않는 것이 정석이었다. 그런데 마스터급 기사가 3명이나 나타났다.

 “설마 카이로만 제국놈들의 5대 마스터가 나선 거냐?”

 “아닙니다.”

 “아니라고! 그럼 갑자기 새로운 마스터가 나타났다는 거냐?”

 “그렇습니다. 새로운 마스터가 나타났습니다.”

 빠직!

 무르카인 황제의 이마에 힘줄이 붉어져 나왔다. 더 화를 냈다가는 힘줄이 터져 버릴지도 몰랐다. 예전 황제들이 극도로 화내다가 왜 골로 갔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아무래도 카이로만에서 우리의 계획을 알고 미리부터 준비를 한 것 같습니다.”

 부들! 부들!

 휼턴 공작은 상황을 파악하고 분석한 결과를 말했다. 무르카인 황제는 자신의 계획이 역으로 무너진 것이 분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카이로만 제국에 당한 것이다. 무르카인 황제는 잠시 화를 내다가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미 지난 일을 가지고 화를 내봤자 결과를 바꿀 수는 없는 일이었다.

 “증거는 남겼나?”

 “직접적으로 카이로만이 우리에게 타격을 입힐 증거는 없습니다. 기사들의 제복과 검에 제국의 표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저 모근다고 하면 됩니다.”

 “패해상황은?”

 “가딩스타 후작이 생사의 위기에 있습니다. 또한 비밀리에 파견된 벤투스는 오른팔이 잘리고, 골렘 역시도 모두 망가졌습니다. 더군다나 기사들 전부 즉은 것 같습니다!”

 제국에 없어서는 안 되는 마스터급 기사와 마도사급 마법사가 모두 당했다. 그들은 한 개인이라고 할 수 없는 제국의 군사력이었다.

 무르카인 황제는 피해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수 없는 일이었다.

 “아직 전초전일 뿐이다.”

 “그렇습니다.”

 “협상은 잘됐나?”

 “조금 더 물밑작업을 하면 넘어올 겁니다.”

 “시간이 없다. 빨리 마무리 짓고 카이로만 놈들에게 쓴맛을 보여줘야 해!”

 “물론입니다. 폐하!”

 한번 실패로 물러설 무르카인 황제가 아니었다. 역대 황제 중에서도 질기기로 소문이 난 성격이었다.

 가린지 영지에 도착을 했다.

 영지에 도착하자 카론 마이어 공작이 마중을 나왔다. 마이어 공작은 공주가 온다는 것을 알고 바로 마중을 나온 것이다. 하지만 마이어 공작은 아이시런 공주를 환대하는 것보다 발생한 사건을 먼저 물었다. 공주의 여정을 방해한 것은 카이로만 제국에서도 가장 심각한 일 중에 하나였다. 뜻하지 않는 일이었다.

 가르딘은 마이어 공작이 불러서 공작의 방으로 갔다.

 마이어 공작은 전체적으로 훤칠한 인상이지만 눈매가 날카롭고 코와 입, 그리고 전체적인 윤곽이 매섭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가르딘이 공작의 방에 서서 인사를 올렸다.

 “가르딘 오브라이언입니다.”

 “인사는 됐네, 우선 어떻게 된 일인지 소상하게 말을 하게! 그리고 그 일은 황궁에 알려야 하니 절대 사견으로 대답해서는 안 되네. 사실대로 말을 하도록 하게!”

 가린지 영지와 가까운 곳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마이어 공작으로서는 섣부른 행동을 할 수 없었다. 이번 일이 자칫 반란이라는 오명으로 가게 된다면 인생의 오점이 아니라 자신의 명성이 모두 무너질 수 있었다. 그렇기에 사실을 판단하고 정확하게 증명해야 했다.

 가르딘도 아직 황궁에 보고하지는 않았다. 먼저 사건을 정리하고 마이어 공작의 말을 들어봐야 했다. 가르딘이 그의 허락도 떨어지지 않는 상태에서 먼저 황궁에 알려버리면 그 일은 마이어공작을 무시하는 일이 되었다.

 가르딘은 사실대로 말을 해주었다.

 물론 자신의 실력을 거침없이 다 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미 기사들과 병사들이 봤으니 실력을 완벽하게 숨기지는 않았다.

 설명을 듣고 있던 마이어 공작은 분노를 느꼈다. 자신의 코앞에서 코카 제국 놈들이 설쳤다는 것이 아닌가!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었다. 북방의 타이거라고 불리면서 대륙을 진동시켰던 자신의 명성에 오점으로 남게 되었다.

 “코카 제국의 소행이 확실한가?”

 “확실합니다. 다만 증명할 증거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는가?”

 “저는 피닉스기사단입니다. 라이언기사단과는 수도 없이 부딪쳤습니다. 그들을 모를지 없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가딩스타 후작이 있었습니다.”

 “그렇긴 하군, 후우!”

 마이어 공작이 한숨을 쉬었다.

 결정적 증거는 없고, 그저 정황적인 사실만이 남았다. 아무런 증거도 없이 제국 간의 마찰을 유도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확실한 증거뿐이었다. 더군다나 국력이 비슷한 곳에서는 쉽게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이 국제관계였다. 그것은 제국과 제국으로서 자존심 싸움이었다.

 여기서 아무리 라이언기사단의 비열함을 논한다고 해도 코카 제국이 절대 아니라고 말을 하면 결국 해결방법은 전쟁뿐이었다. 카이로만 제국이 강하기는 하지만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다시 전쟁을 치르고 쉽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흐지부지 넘어갈 가능성이 가장 컸다.

 어차피 일은 실패했고, 공주가 안전하니 그것으로 다행이라고 여겨야 했다. 

 “그리고 자네 축하하네, 마스터급 기사가 되었으니 말이야. 더군다나 그 어린것들까지 마스터급 기사라니 제국의 큰 경사가 아닐 수 없네!”

 마이어 공작은 검을 숭상하는 제국의 5대 마스터 중에 하나다. 마스터급 기사를 존중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과찬이십니다. 그저 검을 수련하고 노력했을 뿐입니다. 저는 지금 이대로 제국을 위해 검을 사용할 뿐입니다.”

 가르딘은 상당히 겸손하고 지극히 기사적인 마인드를 가졌다고 마이어 공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마이어 공작도 가르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의 마음과 기사의 검은 제국에 큰 도움이 될 것이네, 앞으로도 정진해서 제국의 앞날을 밝혀주기 바라네.”

 “감사합니다. 마이어 공작님.”

 “황궁에도 사실을 말해야 하는데 자네가 하게.”

 “알겠습니다.”

 마이어 공작가에는 마법통신 구슬이 존재했다. 장거리에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었다. 물론 그 가격이 비싸고, 마법사가 영구적으로 마법을 걸어줘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었다. 그렇기에 공작가가 아니고서는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 현실이었다.

 가르딘은 황궁에 이 사실을 전했다.

 공주가 습격당한 일이었지만 모두가 아는 것은 별로 좋은 일이 아니었다. 비밀리에 활실에 연락을 넣는 것이 올바른 판단이었다.

 마이어 공작은 가르딘을 환대해 주었다. 제국에 새로 생겨난 마스터급 기사였다. 그를 잘 포섭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가르딘은 기분이 벼로 좋지 않았다. 누군가의 관심을 받는다면 그만큼 행동반경과 자기단속을 철저히 해야 한다는 말이 되었다. 항상 감시의 눈길을 받는다면 그것 역시 편하지 않는 일이었다. 가르딘같이 자유롭게 행동하는 성격이라면 말이다.

  카이로만 제국 황성이 공주습격 사건으로 시끄러웠다. 비밀리에 코스트너 황제가 파스트론 공작과 재상인 슈토로 바이멘 후작을 불렀다. 황제는 나이가 많았다. 점점 나이가 들어갈수록 젊은 시절의 패기는 사라지고 권력이 분산되기 시작했다. 그 점을 알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코스트너 황제가 가장 믿는 사람은 파스트론 공작과 바이멘 후작이었다.

 황제에게 보고를 올린 사람은 파스트론 공작이었다. 가르딘이 기사단장에게 가장 먼저 소식을 알린 것이다.

 파스트론 공작은 정형적인 기사였다. 당연히 그에 따른 반격을 준비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코스트너 황제가 그들에게 물었다.

 “어찌했으면 좋겠나?”

 “당연히 코카 제국에 따져야 합니다. 이 일은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되는 중차대한 문제입니다.”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네.”

 코스트너 황제는 전쟁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 젊은 시절의 불 같은 패기가 사라지고 남은 것은 검버섯과 삶에 찌든 나이뿐이었다. 파스트론 공작은 그것이 안타까웠다.

 “어차피 증거도 없지 않나, 이대로 밀어붙여 봤자 남은 것은 전쟁뿐이네. 나는 이제 많이 늙었네! 아직도 젊은 패기를 간직한 자네가 부럽기까지 하군.”

 “무슨 말씀이십니까! 폐하께서는 아직도 정정하십니다.”“아니네, 지금 나는 후계잘ㄹ 정해야 할 나이야, 이런 중요한 시기에 전쟁을 치르면 제국의 초석이 흔들릴 수 있어.”

 후계자를 정해야 하는 때였다.

 황제의 후계자 중에 1황자가 되는 것이 당연하기는 하지만 모두의 반발을 무마시키려면 그에 따른 정당성이 확보돼야 했다. 다음 대 황제가 일어서는 시기는 내전이 불완전하기 마련이었다. 각각의 세력이 원하는 자가 황제가 되어 자신들의 권익을 대변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귀족들 간에 권련 다툼이 번번이 이루어진다. 그로 인해 제국은 혼란이 조성되고 흔들리게 된다. 불안전한 상황에서 전쟁이 벌어지면 혼란이 더욱더 가중될 것이다.

 “아이시런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

 “다시 불러들이셔야 합니다. 또다시 위험한 여정을 시키실 순 없습니다.”

 “그런가, 하지만 대륙에 공주의 성인식을 알린다는 소문이 났네, 이대로 그냥 돌아온다면 제국의 위상에 침해를 받게 되네.”

 가만히 듣고 있던 바이멘 후작이 입을 열었다.

 “폐하의 말씀이 맞습니다. 코카 제국도 더 이상의 방해는 하지 않을 겁니다. 머리가 있다면 그런 식으로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겁니다. 그러니 이번 여정을 끝까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것이 코카 제국의 명성을 떨어뜨리는 일이 될 겁니다.”

 “그렇겠지. 그리고 파스트론 공작!”

 “예, 폐하!”

 “역시 피닉스기사단이었어, 초대 선황 폐하께서 아끼셨던 기사단답게 뛰어난 기사들이 많이 나왔구먼, 이번에도 새로운 마스터급 기사가 나왔다지.”

 “그렇습니다. 폐하!”

 “자네가 수고했네.”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은 폐하의 하해와 같은 성은 때문입니다.”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네. 앞으로도 제국의 검이 되어 제국을 지켜주게.”

 “물론입니다. 폐하!”

  가르딘은 마법통신 구슬 앞에 서 잇었다.

 송신을 했으니 수신을 받을 차례였다. 가르딘은 이번 여정이 여기서 끝이 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공주가 습격받았는데 다시 여행을 할 리 없다고 굳게 믿었다.

 ‘라이나! 내가 간다오! 우리 뜨거운 밤을 보내봅시다!’ 잔뜩 기대에 부풀어서 통신구에서 나오는 대답을 기다렸다.

 파팟!

 통신구에 빛이 들어오고, 평소 보고 싶지 않은 인물이 모습을 드러내였다. 가르딘은 저 모습만 보면 밥이 밑구멍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을 느껴야 했다. 그렇지만 기분 나쁘다고 표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가르딘이 아니었다.

 “바자바인 백작님! 안녕하십니까!”

 “자네 드디어 경지를 개척했나, 축하하네! 자네의 성취를 진심으로 격려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이네! 그렇지 않나!”

 “감사합니다. 조르크 바자바인 백작님!”

 말을 해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하는데 저 인간이 말을 하면 괜히 조롱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번 여정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공주님을 습격하다니 코카 제국 놈들이 아주 실성한 것 같아, 하지만 자네들이 있어 내 안심이네, 이번 여정도 자네가 있어 순탄하게 진행이 될 수 있었네!”

 “응?”

 이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하는 심정의 가르딘이었다. 말을 들어보니 여정이 계속 이루어진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었다.

 “저기 설마 여정을 계속하는 겁니까?”

 “당연하지 않나, 마스터급 기사가 3명이나 지키고 있는데,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 난 처음부터 자네를 믿고 있었네, 이런 내 마음을 안다면 성심성의껏 일을 해결하기 바라네. 그럼 이만!”

 파팟!

 통신구의 불빛이 꺼졌다. 

 그와 동시에 가르딘의 활활 타오르던 불빛도 꺼져버렸다.

 상당히 심각한 타격을 입히고, 나 몰라라 사라지는 바자바인 백작을 향해 이를 가는 가르딘이었다. 다음에 절대로 그냥 두지 않는다고 다짐했다. 

 [가르딘 전기] 2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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