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6/93)

   @@[제5장 도둑길드@@]

 웅성! 웅성!

 루벤 영지 내에 도둑길드가 설치는 바람에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지고 있었다. 두둑길드가 대외적으로 무력도발을 한 것은 아니지만 가르딘을 찾으려는 일이 잘 풀리지 않자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는 판국이었다. 당연히 분위기가 흉흉해질 수밖에 없었다.

 고작 이틀 만에 평화로운 루벤 영지가 폭풍전야 같았다. 하루 정도의 시간이면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반응이 전혀 없자 고든의 화가 폭발했다.

 “이 멍청한 놈들! 여자를 데리고 성 밖으로는 나간 적이 없었다. 그럼 성안에 있다는 소린데, 아직도 찾지 못했다는 거냐?”“죄송합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흔적도 없습니다.”

 “바보 같은 놈들, 비싼 빵 처먹고 제 일도 하지 못하는 거냐? 당장 찾아내, 내 얼굴에 먹칠 한 놈을 찾지 못하면 네놈들도 가만히 두지 않아!”

 고든은 한 가지에 약했다.

 바로 자신에게 흠이 생기는 것을 도저히 허용할 수 없었다. 완전무결을 지향하는 고든이기에 지금의 자리까지 온 것인지 몰랐다. 하지만 r와 같은 성격은 최악의 성격이 될 수도 있었다. 둑이 하나의 구멍에 의해 무너지기도 하지만 너무 집착을 하다 보면 둑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지부장님!”

 “뭐야?”

 “지금은 자중해야 할 때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라앨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그는 고든의 작전참모와 같았다. 참모는 항상 냉정함을 유지해야 한다.

 “공작성 내에 공주가 있습니다. 지금 너무 들쑤시다 보면 공작성에서 길드를 수색할 겁니다. 그렇게 되면 길드 자체가 위험해집니다. 지금은 길드원들을 영지 내 길목에 배치하고 기다리는 게 더 좋을 것 같습니다.”

 후우!

 고든은 숨을 한 번 내쉬었다.

 감정대로라면 잡는 즉시 죽여 버리고 싶었지만 라엘의 말이 맞았다. 작은 구멍 하나로 인해 길드 전체를 해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그...렇군, 내가 성급했다.”

 “아닙니다.”

 루벤 영지가 시끄러워지자 카스티온 백작의 심기가 좋지 못했다. 영지 내에서 도둑길드가 있다는 것을 알기는 하지만 전면적으로 수사를 한 적은 없었다. 이유는 도둑길드 자체가 죄를 짓는 경우가 없었기 때문이고, 다음으로는 잘못 건드리면 벌집을 쑤시는 격이 되기 때문이었다.

 도둑길드이 지부장은 고든은 모르겠지만 카스티온 백작은 만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고든이 행태를 살펴보고 있었다. 영지 내에 공주가 있는 상황에서 이토록 도발하는 도둑길드를 그냥 내버려두어서는 안 되었다. 이 기회에 도둑길드를 소탕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눈에 가시 같은 놈들이, 제 발로 도발해 주는군.”

 검술로는 파스트론 공작의 자식들 중 가장 떨어지지만 그 심기만은 가장 깊고, 무서웠다.

 “제론!”

 “예, 백작님!”

 “백작가 내에 기사들을 준비시키게, 공주님이 출발하시고 나서 바로 도둑길드를 소탕해 버려야겠어, 이대로 놔두어서는 안 되겠다!”

 “하지만 백작님, 도둑길드는 위험한 곳입니다. 물론 무력으로 소탕할 수는 있겠지만 나중에 보복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럼 이대로 두고 보자는 말인가?”

 “아직 놈들이 무력을 동원한 것은 아닙니다. 정확한 상황을 파악한 후에 움직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기다리자는 말이야?”

 “놈들도 제정신을 가지고 있다면 함부로 행동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가, 하지만 조금이라도 놈들이 이상한 행동을 하거든 즉시 행동해서 잡아들여.”

 “물론입니다.”

 카스티온 백작과 고든 둘 모두 어느 한쪽의 상황을 지켜보는 상황이었다. 하나의 꼬튜리라도 잡히면 바로 움직일 것이다.

 둘이 심각한 대화를 하고 있을 상황에 가르딘이 카스티온 백작의 방문 뒤에서 놀라고 있었다. 가르딘은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는 것을 듣고 나니 마음이 뜨끔했다. 일의 원인이 어찌되었건 백작가가 도둑길드를 소탕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로 인해서 얻어질 피해가 만만치 않을 것을 생각하면 심각한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거, 어떡하지. 우선은 공주에게는 비밀이다!’

 안타깝지만 도와주기에도 위험했다.

 괜히 끼어들어 봤자 좋은 꼴 못 본다. 그렇기에 공주에게는 전적으로 비밀이었다. 알면 나서려고 할 것이 분명했다. 공주가 나서면 나중에 여정에서 벌어지는 위험한 일을 감수해야 한다. 도둑길드와 정면으로 부딪쳐서 여정을 무사히 마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무시하고 가! 말아!’

 가르딘은 독한 마음을 먹었다. 그럼에도 무시할 수 없었다. 이대로 도둑길드와 무력충돌을 하면 제국에 좋은 영향을 주지 않는다. 카스티온 백작이 제법 대단한 심기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도둑길드의 힘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대로 충돌이 일어나게 놔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가르딘이 비록 무사안일주의의 최고정점에 오른 방만한 기사이기는 하지만 책임지지도 못하는 일을 벌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특히 그로 인해 영주민들이 피해를 본다면 가슴에 앙금으로 남는 일이 된다.

 “어떻게 한다?”

 생각은 좋은 일이다.

 자주 생각하면 답이 나오기도 하니 말이다.

 그러다가 한 가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놈이 누구더라.’

 도둑길드의 특성상, 한번 실패한 녀석에게 신임을 주지 않는다. 그로 인해 도둑길드 내에서 배신이 발생하기도 한다.

 ‘지금쯤 벌벌 떨고 있겠지, 조금만 건드려 주고 떠나야겠다!“

 직접 나서서 해결하기에는 무리지만 도둑길드 내 자중지란을 획책하는 가르딘이었다. 

 똑! 똑!

 가르딘의 카스티온 백작의 문 앞에서 노크를 했다.

 “들어와.”

 문을 열고, 가르딘이 카스디온 백작에게 인사를 했다. 만면에 근심걱정 전혀 없어 보이는 얼굴로 인사를 하는 가르딘이었다. 짐짓 모른 척 수심이 가득한 카스티온 백작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입니까?”

 “아닐세, 일은 무슨 일. 서류를 정리하다 보니 잠을 못 자서 그런 걸세!”

 “허! 대단하십니다, 열성적인 백작님을 보니 저도 힘내야 한다는 마음이 드는군요!”

 “과찬일세!”

  도둑길드 때문에 정신없는 카스티온 백작이었지만 속내를 그대로 내비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가르딘은 여정의 총책임자이니 함부로 말해 봤자 백작의 위엄만 손상시키게 된다. 왠만하면 가르딘이 모르는 것이 나았다.

 알면 나중에 아버지까지 알 수 있었다. 아버지에게 무능력하다는 평가를 받고 싶지는 않았다. 가르딘도 알면서 내색하지 않았다.

 오래된 능구렁이 2마리가 서로의 속내를 보이지 않고 그저 주변 이야기만 할 뿐이었다.

 “내일 출발할 예정입니다. 그래서 인사 겸, 말씀을 드리려고 왔습니다.”

 “그런가, 공주님의 즐거운 여정을 위해서 오늘 만찬을 특별하게 준비하겠네!”

 “감사합니다. 공주님도 백장님의 환대에 감사하게 생각하시고 계십니다.”

 “허허! 그렇게 생각해 주시다니 감사할 따름일세!”

 “그럼, 만찬에서 보겠습니다.”

 “‘그러세.”

 가르딘이 나가고 난 후에도 카스티온 백작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공주가 알지 못하게 하는 게 우선순위이기에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가르딘은 잠시 외출을 하기 위해서 필리언을 찾았다. 필리언은 신참들을 단속하고, 공주의 주변에 기사를 붙여 놓고 있는 상태였다. 가르딘이 총책임자이기는 하지만 손이 여러 개일 수는 없다.

 일을 함에 있어서 혼자 잘하는 것은 미련한 짓이다. 서로에게 신뢰를 주고, 일을 분산하여 

 효율을 높이는 것이 진정으로 훌륭한 처리방식이었다. 그런 면에서 가르딘은 훌륭한 책임자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물론 속내는 귀찮은 일 떠맡기기일 뿐이지만 말이다.

 “잠깐 나가 봐야 할 것 같아서 말이지.”

 “무슨 일인데.

 “별일은 아니야, 아내와 딸에게 줄 선물을 좀 사려고, 루벤 영지의 특산물인 리베시안 찻잎이 좋다고 해서 구하려고!”

 “야, 진짜 지극정성이다.”

 리베시안은 루벤 영지에서 황제에게 바친다는 찻잎이었다. 은은하고 맑은 향기를 가진 찻잎이지만 그 효능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정력보강제라는 평판이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비싸고, 소량이다. 영지 내에서도 굉장히 비싼 가격일 것이다.

 손바닥만 한 정도 크기면 최소 10골드는 할 것이다.

 필리언이 지쳤다는 표현을 했다.

 하긴 별다른 일이 없으니 그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았다.

 “정도껏 해라, 그리고 빨리 돌아와. 아무리 내가 일을 열심히 해도 총책임자는 너니까 말이야!”

 “물론이다. 그리고 너 일 잘 못하잖아!”

 가르딘의 수법에 놀아날 필리언이 아니었다. 필리언도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능구렁이였다. 능구렁이끼리의 대화는 군더더기가 없어서 좋았다. 신참은 하나하나 가르쳐주어야 하지만 고참들은 알아서 척척이었다. 개중에 못하는 놈들이 있어서 문제지만 말이다.

 루벤 영지는 넓다.

 사람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특히 한 번 본 놈을 찾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가르딘은 행동반경을 좁혔다. 가르딘이 생각하기에 그놈은 뒷골목의 술집, 아니면 마커스의 집 주위에 있을 것이다. 마커스의 딸 쉴라를 찾으려고 하는 놈의 성격으로 봐서 내가 그 집에 다시 나타날 것으로 생각할지 모른다.

 반경을 좁히고 나서 가르딘은 탐색을 시작했다.

 찾을 수 없단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유는 바로 기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놈을 구타할 때 알게 모르게 몸 안에 가르딘의 기를 주입시켰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 한일이었다.

 놈이 생각지 못하게 마커스 가족에게 복수한다고 설치면, 막아내야 했기 때문이다. 가르딘이 기를 집어넣었기 때문에 일정 반경에 나타나면 반응을 체크할 수 있을 것이다.

 “어디 찾아 볼까나.”

 시간이 얼마 없기에 아주 바빴다.

 가르딘은 한곳을 찍었다. 놈이 머리가 있으면 마커스 가족의 근처에서 기다릴 것이라고 생각하고 찾았다. 그런데 운이 좋았다. 반경을 줄이고 그 안을 찾자 제대로 찍은 것이다.

 우웅!

 기가 반응을 하는 곳으로 향해 천천히 이동했다.

 산토스는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고든에게 한 번 찍혔으니 다시 올라가는 것은 꿈도 꿔보지 못할 것이다. 지금까지 탄탄대로였던 인생에 검정물을 드리우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그 개잡놈 때문이었다.

 그놈이 무슨 이유로 방해했는지 모르지만 다시 나타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커스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행동이 보이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이놈이 알든 모르든 그때는 죽음이었다.

 ‘잡히면 죽여 버리겠다!’

 자신이 지금 데리고 올 수 있는 녀석들 중에서 제법 출중한 놈들을 선별했다. 숨겨 논 힘을 가능하면 쓰지 싫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상해, 딸이 잡혀갔는데도 멀쩡한 게 이상하단 말이야!”

 그게 신경 쓰여서 계속 지키고 있었다.

 딸이 잡혀갔는데, 아무렇지 않게 일상생활을 하다니, 그게 말이 되는가! 친자식이 아니고서는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울고불고 자신의 앞길을 막아서던 녀석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틀 동안 유심히 지켜봤다.

 그 이상한 미친놈이 나타날 것이라고 지켜봤지만 나타나지 않았다. 날이 저물고, 정신적으로도 힘이 들 때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모든 것이 짜증나고 화가 났다. 화를 풀기 위해 마커스 가족을 끝장내려고 마음먹었다.

 “다 필요 없어, 죽여 버리겠다!”

 그런데 이때였다.

 “어이!”

 누군가 마커스를 불렀다.

 얼굴을 가리고 능글맞게 웃는 놈이 있었다. 바로 자신을 물 먹였던 놈이었다. 감히 할 짓이 없어서 인신매매법이라고 한 놈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이 개잡놈! 저놈을 잡아!”

 20명의 수하들이 가르딘을 향해 돌진했다. 모두 살기등등한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가르딘은 웃었다. 숫자가 두 배로 많아졌다고 해서 자신을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는 아둔한 놈이었다. 가르딘은 가볍게 손가락을 풀었다.

 뚜둑!

 다가오는 녀석들의 모습은 너무 느렸다. 주먹이 날아오기도 전에 가르딘의 손가락이 산뜻하게 놈들의 움직이는 동작을 정지시켰다.

 점혈 수법이었다.

  오러로 상대의 오러를 끊어 버리는 고단위 수법이었다. 이 시대의 기사들이 할 수 없는 수법이라 자칫 마법사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기술이었다.

 파팟! 파팟!

 “어...어! 몸이 안 움직여!”

 홀드(정지)마법이 걸린 것처럼 몸이 마비가 되자 산토스의 수하들이 멈칫했다. 마법사는 그들이 상대하기에 버겁다고 생각한 것이다. 순식간에 스무 명이나 되는 놈들이 그 자리에서 석고상이 되어버렸다. 산토스는 또다시 뒷걸을쳤다.

 이번에도 역시 나였다.

 상당히 뛰어난 놈이라고 생각했는데.

 “마법사.....”

 “후후!”

 가르딘이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놈이 좀 전에 한 말을 들었다. 이유 불문하고 마커스 가족을 죽이려고 한순간 이놈들을 철저하게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적어도 양심이 있다면 무관한 사람은 건드리지 말아야 했다. 스스로 명을 재촉했으니 거리낄 것이 없었다.

 또한 가르딘은 어이없어 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넌 운이 참 없어, 여기서 못 찾으면 그냥 갈려고 했거든. 역시 하늘은 너 같은 악당을 용서하지 않는 것 같아.”

 하필이면 여기에 나타난 산토스였다.

 가르딘은 마커스의 집과 술집을 찾아서 산토스가 있으면 단죄를 내리고 아니면, 그냥 빠질 생각까지도 했다.

 그런데 역시 나였다.

 주신 라이니언께서는 못된 놈들을 용서하지 않는 것 같았다.

 산토스는 가르딘이 하는 말에 화를 내었다.

 “지랄하지 마라! 네놈 때문에 내 인생이 끝났어!”

 “그런 말하기 전에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는 것이 좋지 않겠어, 언제나 약한 자들의 피와 땀을 뺏어 오던 놈이 잘 살기를 바라다니 너무 이기적인 것 아닌가!”

 “닥쳐, 역시 네놈이 의도적으로 날 방해한 것이구나!”

 가르딘은 이런 놈들을 잘 안다. 말로 해서는 알아듣지 못하는 구제불능이었다. 자신의 잘 못은 생각지 못하고, 타인으로 인해 자신의 인생이 잘못되는 것만을 생각하는 놈들이다.

 사람의 일생은 뿌린 대로 거둔다고 하지 않는가! 남에게 해악을 끼쳤다면 그로 인해 자신도 화를 당하게 되는 것이 하늘이 이치였다.

 “내가 할 말은 하나다. 라이나와 브리안, 주신 라이니언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다!”

 손가락을 가리키며 특이한 동작을 하는 가르딘이었다. 가르딘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증명인으로 하여 상대에게 단죄를 내리려고 했다.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그냥 지나갈 수 없는 일이었다. 눈에서 열렬한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샅토스는 뒤로 주춤했다.

 해괴망측한 놈이기는 해도 그 실력은 도무지 따라갈 수 없었다. 스무 명이나 되는 수하들이 반항 한 번 제대로 못하고 당했으니 자신으로서는 이길 수 없는 놈이었다. 도망이라도 쳐서 도둑길드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중요했다.

 “두...고 보자!”

 도망치려는 산토스였지만 그게 맘대로 되겠는가! 가르딘은 산토스의 신형을 가볍게 제치고, 점혈을 해버렸다. 몸이 그대로 굳어버리자 산토스는 공포감이 들었다. 어떤 수법을 사용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이거 어이없는 놈이네, 지금 네 실력에 도망칠 수 있다고 보는 거냐. 나 참! 나를 너무 무시하네.” 

 “으윽!”

 몸을 움직이려고 할수록 고통만이 자리 할 뿐이었다.

 산토스가 비록 하류잡배와 같았지만 독종이었다. 눈에서는 여전히 가르딘을 향한 적의가 번뜩이고 있었다.

 “날 건드리고, 두둑길드가 그냥 둘 줄 아느냐, 네놈은 이제 대륙을 돌아다닐 수조차 없게 되었다!”

 도둑길드의 정보망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는 말이었다. 그럼에도 가르딘은 여유만만했다. 얼굴도 모르는 놈이 큰소리 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내 얼굴도 모르면서 큰소리는, 그러면서 몸은 왜 그렇게 떠냐. 그런 일은 절대로 발생하지 않아. 그리고 말이 너무 많았지. 이제부터 내 눈을 잘 봤으면 좋겠다.”

 번쩍!

 가르딘의 눈에서 적광이 번쩍였다.

 그 빛은 산토스의 눈을 통과해 정신까지 파고들었다. 강렬한 빛은 욕망의 덩어리였다. 욕망은 사람의 마음까지 좌지우지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마음속에 가둬둔 작은 욕망이 점점 켜져 제어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한다.

 “이름?”

 “산...토스!”

 “자! 한 번에 확 간다. 레드썬!”

 -신마의 신변잡기.

 신변잡기라 불리는 신마의 기술 중에 하나가 바로 사념안이었다. 별다른 것은 아니었다. 상대의 사념을 자신의 사념으로 증폭하는 기술이다. 기술의 일종이기는 하지만 어려움 점은 정신력의 집중이다.

 그렇다고 정신의 일절을 모두 지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념안의 특징은 한 가지 이에 대한 집중적인 사념의 증폭으로 내면에 감추어진 본성을 극도로 끄집어내게 한다..

 본성을 자극하는 가르딘이었다. 산토스 내면에 숨 쉬고 있는 욕망이 폭포수처럼 타오르기 시작했다. 타오른 욕망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이미 제어한ㄴ 것이 불가능한 상태에 다다랐다.

 “넌 할 수 있어.”

 “난 할 수 있다!”

 “너라면 할 수 있어!”

 “나라면 할 수 있어!”

 “그게 바로 나야!”

 “그게 바로 나야!”

 반복적이고 지루한 말의 연속이지만 그 효과는 탁월했다.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말속에 스며 있는 오묘한 능력에 지배되고 만다.

 넓고, 화려하며, 끼끗한 방이었다. 내 집이 없어 고생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한 번이라도 살아보기를 원하는 훌륭하고, 세련된 방이다. 그런 방에서 한숨이 들렸다.

 후우우! 

 여인의 한숨을 점점 더 커지고,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화려하고 넓은 방이지만 그 안은 너무 답답하고,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아! 짜증나!”

 “공주님이 너무 불쌍하세요!”

 “응! 역시 엘리언밖에 없다니까!”

 그 옆에서 두 명의 여인이 서서 대기했다. 그 중에 적응기간이 거의 없었던 어린 시녀는 상당히 놀라는 눈치였다. 그녀는 설마 공주님이 저런 말을 할 줄 몰랐던 듯한 표정이었다. 공주라면 당연히 우아하고, 세련된 고상한 말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내숭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쉽지 않은 변화를 쉽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직 어린 쉴라에게 무리였나 보다.

 쉴라가 당황하건 말건, 시종장 엘리언은 평상시와 같았다. 오히려 공주의 그런 반ㅇㅇ에 호응을 해주며, 화답을 하는 것이 아닌가! 쉴라에게 엘리언은 가장 무서운 여인이지 선배였다

 이틀밖에 되지 않았지만 어느 것 하나 흐트러짐이 없었다. 완벽함 그 자체였다. 그런데 이런 모습을 보이다니 그 변화가 가히 번천헌지했다.

 아이시런은 이 모든 일이 가르딘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일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는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한 사람에게 원망을 보내고 있었다.

 “이, 아저씨는 어디 간 거야?”

 “가르딘 경 말씀입니까?”

 “그래, 그 아저씨는 왜 지금까지 나타나지도 않아.”

 “잠시, 주변을 순찰한다고 나가셨습니다.”

 “흥! 오지랖도 넓으셔.”

 “그럼, 불러올까요?”“아냐, 됐어, 그보다 필리언 경을 불러와.”

 “알겠습니다. 공주님!”

 시종장, 엘리언이 아이시런의 명을 받들기 위해 나갔다. 아이시런은 쉴라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밖에 돌아다니지 않게 한 것이다. 아직 외부로 자주 나가서는 안 되는 상황을 알기 때문이었다.

 아이시런과 홀로 남게 된 쉴라는 긴장하고 있었다. 공주의 색다른 모습을 봤다고는 하지만 공주는 공주였다. 자신은 까마득히 올려다봐야 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자였다. 한순간 행동을 잘못하다, 목숨을 잃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러니 함께 있는 것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씨익!‘ 

 아이시런은 긴장하고 쉴라에게 편하게 대하라고 했다.

 “쉴라야.”

 “예, 공주님!”

 “언니라고 해봐.”

 ‘엥?’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쉴라는 순간 더욱 당황했다. 공주에게 언니라고 하다니 그게 가당키나 할 말인가! 그 말을 하는 순간 대역죄인이 될지도 모른다. 순간적으로 잘못 들었다고 치부해 버리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을 것 같았다. 쉴라는 답을 내리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것이 전부였다.

 “내가 1살 위니까, 언니라고 하라니까!”

 “하지만 감히 제가 어떻게 공주님께 그런 말을!”

 “어허, 한번 해보라니까, 어서! 이건 명령이야!”

 아이시런은 한번 이런 말을 들어보고 싶었다. 위로 오라버니밖에 없어서 언니라는 마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보통의 자매들처럼 언니, 동생 하는 편안한 상대가 되어주기를 바랐다.

 공주가 그런 말을 해도 쉴라로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할 수... 없어요!”

 “음, 한번 해봐! 진짜 내가 듣고 싶어서 그러는 거니까, 빨리 해보라니까!”

 아이시런의 집요함은 역시나 대단했다. 가르딘도 공주의 막무가내와, 집요함에는 제대로 대응하기 쉽지 않았다. 산전수전 다 겪은 가르딘이 이럴진대, 아직 어린 쉴라에게 적절한 대응을 원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쉴라는 결국 두 손 들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공주가 시키는 대로 했다.

 “언... 니!”

 “호호, 그래, 쉴라야, 이제부터 아이시런 언니라고 하렴.”

 “예, 아이시런 언니.”

 “아무도 없을 때는 항상 그렇게 불러, 알았지! 이건 명령이야.”

 “예, 아이시런 언니.”

 “옳지, 그래! 내 귀여운 동생아.”

 고작 1살 차이면서 나이 많은 언니가 동생을 대하는 듯하지 않는가! 금세 기분이 좋아진 아이시런이었다. 다혈질이라서 쉽게 흥분하고, 쉽게 화를 후는 것이 공주의 특징이기도 했다.

 똑! 똑!

 문소리가 들렸다.

 문 밖에서 엘리언이 말을 했다.

 “공주님, 필리언 경이 왔습니다.”

 아이시런은 금세 옷매무시를 단정히 하고, 위엄 있는 모습을 회복했다.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고 하지만 그 모습은 가히 경천동지할 만했다. 너무나 빠르게 신색을 회복하자 누구도 공주의 내숭을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공주의 성격을 아는 사람이 극히 드물었던 것이다. 쉴라도 누가 들어온다는 것을 알자 급히 주위로 물러나 대기했다.

 엘리언이 밖에서 소리를 내는 것은 공주의 성격을 알기에 미리 알려주기 위한 방법이었다. 역시나 엘리언은 공주를 속속들이 다 아는 시종장다웠다.

 척!

 필리언이 공주의 앞에 다가가 무픔을 꿇었다.

 “신, 필리언! 공주님의 부름을 받고 왔습니다.”

 “반가워요. 필리언 경.”

 필리언은 가르딘에게 공주의성격을 들어서 알고 잇는 상태였다. 공주가 외적으로 보이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필리언 경, 편하게 앉으세요.”

 “아닙니다. 어찌 공주님과 대면을 하겠습니까!”

 “아니에요, 제가 불편해서 그런 거니까, 편안하게 앉으세요.”“그럼, 알겠습니다.”

 아이시런의 정중하고, 숙녀다운 말투에 필리언은 헛갈렸다. 가르딘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말이다. 어찌 이런 모습의 공주에서 그와 같은 성격이 나올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했다. 결론은 절대 아니다 라고 내리고 있었다.

  능글맞은 가르딘의 말보다 공주의 말이 호소력 짙었다.

 “쉴라야, 필리언 경에게 차를 따라 드리렴.”

 “예, 공주님.”

 쉴라야, 필리언 경에게 차를 따라 드리렴.“

 “예, 공주님.”

 쉴라가 조심스럽게 주전자를 들고, 차를 컵에 따랐다. 필리언 경은 아름다운 공주님과 차를 마시는 것에 황송해하는 눈치였다.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불렀어요.”

 “무엇이든지 물어보십시오, 제가 아는 것을 모두 말씀드리겠습니다.”

 “도둑길드에 대해 아세요?”

 ‘음!’

 설마 아이시런 공주가 도둑길드에 대해서 볼 줄 몰랐던 필리언이었다. 제국의 궁전 깊숙한 곳에서만 살아온 공주가 들어보지 못한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뜻밖의 질문이었지만 필리언은 고민하지 않았다.

 “물론입니다.”

 아이시런은 잘됐다는 표정이었다.

 “도둑길드가 그렇게 위험한 놈들이에요?”

 가르딘에게 등기로는 상당히 위험해서 제국에서조차 건드리지 못하는 집단으로 설명을 했다. 그때에는 하도 가르딘의 말이 사실적이라서 의문이 들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어딘지 모르게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위험한 놈들인 것은 맞습니다. 그 숫자도 많을뿐더러, 놈들 자체가 모두 어둠의 길드에 속하는 놈들이라 쉽지 않은 놈들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여기까지는 가르딘의 설명과 다르지 않았다.

 “그래요, 그럼 우리 제국과는 어때요? 특히 피닉스기사단과 비교하면 어느 정도지요?”

 ‘허!’

 대륙최강국을 대표하는 카이로만 제국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무력단체라고 불리는 피닉스기사단이었다. 대륙의 어느 기사단도 1시간이면 쓸어버릴 수 있는 가공한 무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피닉스기사단과 도둑길드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모욕이었다.

 “감히 도둑길드 따위는 제국을 위협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피닉스기사단은 대륙 최강의 기사단입니다. 놈들이 아무리 강해도 피닉스기사단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호오!’

 “그래요, 아주 좋은 정보 감사해요.”

 가르딘이 말하길, 아무리 기사단이라고 해도 위험하다고 설명을 했다. 그런데 필리언의 말을 들어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위험하긴 해도 제국의 힘이면 충분히 대비할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이, 아저씨가 날 속였어! 어디 두고 보자!’

 에이취!

 코가 간지러운 가르딘이 그 시각에 기침을 했다.

 “누가 내 욕하나?”

 가르딘은 한창 바쁘게 루벤 영지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일을 마무리 짓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음에도 오한이 들었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루벤 영지를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8개의 진입로를 통과해야 한다. 도둑길드 내 소속원들이 모두 루벤 영지의 길목 부분에 배치가 되어 있었다. 이 지역을 통과해야만 다른 지역으로 갈 수 있었기에 택한 방법이었다.

 영지를 다 수색했지만 찾지 못했기에 선택한 방법이었다. 특히 놈의 실력이 상당한 것으로 보아, 실력자들을 대거 파견했다. 그로 인해 많은 수의 소속원들이 지부에서 빠져나가있는 상태였다.

 까닥! 까닥!

 고든이 의자에서 앉아서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무언가를 기다릴 때 하는 행동이었다. 그 앞으로 여전히 라엘이 딱딱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삭막한 표정을 짓는 고든에게 라엘은 한 가지 우려 섞인 말을 했다.

 “지부장님, 지부 내에 소속원들을 너무 많이 파견한 것 같습니다.”

 “괜찮다, 루벤 영지는 내 손바닥이야, 우리를 건드릴 놈들이 어디 있다고 그런 소리냐.”

 고든은 약간 무리를 하더라도 빈틈없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소속원들을 대거 파견했다. 그 숫자가 무려 200명이나 되었다. 라엘은 지부 내에서 수하들이 30명밖에 되지 않는 것을 걱정했다. 하지만 일단 결정한 고든의 명령을 거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라엘이 생각하기에도 도둑길드를 건드릴 놈들이 없어 보였다.

 도둑길드의 입구는 여러 개의 골목길 사이에 있어서 찾기도 쉽지 않았다. 또한 술집으로 위장을 해놓았기에 찾는다고 해도 도둑길드인지 알 수가 없었다. 완벽하게 위장해 놓은 도둑길드의 술집 피트온으로 산토스가 걸어 들어갔다.

 피트온의 입구로 들어가자 그 안에 길드를 지키는 수문장 2명이 막아섰다. 막아선 소속원은 들어오는 자가 산토스인 것을 확인하자 길을 터 주었다. 산토스는 그저 들어가는 듯하다 갑작스럽게 한광을 번쩍였다. 그와 동시에 소매 속에 숨겨 논 단검을 신속에게 뽑아내어 두 소속원의 등을 찔렀다.

 수욱! 수욱!

 “커어억!”

 아무 의심 없이 등 뒤를 보인 소속원 2명은 속수무책이었다. 등 뒤 척추를 단검에 찔리자 그 즉시 몸을 부르르 떨다가 쓰러졌다. 원래라면 문을 지키는 문지기가 더 있겠지만 오늘은 2명뿐이었다. 그것을 알고 있는 산토스이기에 서슴없이 행동을 한 것이다.

 그가 밖으로 나가서 숨어 있는 20명의 수하들에게 손짓을 했다. 그러자 골목길 뒤에서 숨어 있던 20명의 수하들이 신속하게 피트온으로 들어오다.

 이상한 것은 도둑길드를 배신하는 것인데, 전혀 두려워하는 눈빛이 없었다. 그들 모두 상당한 독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보통 때보다 더한 기운이었다. 의욕이 넘쳐흘러 독기가 되어 있었다.

 “오늘 역사가 바뀐다, 보이는 족족 죽이고, 고든은 확실하게 죽여야 한다. 알겠나!”

 “물론입니다. 고든이 우리를 이렇게 대하다니 너무 억울합니다.”“놈을 죽이지 않으면 죽더라고 눈을 감을 수 없습니다.”

 마치 철천지원수를 대하는 듯하지 않는가! 이토록 처절한 기운을 뿜어내다니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가자.”

 일사불란하고, 빠르게 입구를 지나 도둑길드의 심처로 들어갔다. 산토스는 지부 내의 간부 중에 하나이기에 입구에서 시작하는 미로를 이미 알고 있었다. 들어가는 데, 어려운 것은 없었다. 오히려 안에 지키고 있던 소속원들이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산토스로 인해 당황하다 순식간에 목숨을 잃고 있었다.

 아무런 방비도 없이 방심하고 있다가 당하니 속수무책이었다.

 “크앗!”

 산토스의 수하들 역시도 보통 때보다 빠르고 강했다. 실력이 제법이기는 하지만 지부 내를 지키는 소속원 역시도 만만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입구에서부터 시작해서 지키는 소속원들 10명을 모두 죽여 버린 산토스가 고든의 방으로 들이닥치기 일보직전이었다.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앉아 있던 고든이 일어났다. 소속원 중에 한 명이 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고든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이유를 묻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산토스가 배신했습니다!”

 “뭐... 라고!”

 고든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찡그려졌다. 버러지 간은 놈을 살려줬더니 뒤통수를 친 것이다. 화가 나는 것은 둘째치고, 어이가 없었다.

 “개 주제에 주인을 물려고 덤벼! 라엘 그놈을 당장 잡아와!”

 “지부장님은 우선 자리를 피해 계십시오! 지금 길드 내 인원이 얼마 없습니다.”

 “버러지 때문에 피하라고, 내가 말이야! 괜찮으니까 산토스를 잡는데 집중해.”

 라엘은 하는 수 없었다. 고든을 지키는 10명의 수하들은 모두 단련된 길드원이었다. 모두 일반 길드원보다 훨씬 강했다. 산토스가 기습을 하긴 했지만 무리 없이 제압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다.

 라엘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쳐들어오는 산토스를 맞이하였다.

 산토스는 앞으로 나아가다 가로막는 라엘을 바라보았다.

 라엘은 어처구니없었다. 배신은 그 어떤 것보다 가혹하게 처벌을 받는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잔인한 처벌을 받게 되는데, 지금 보인 산토스는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산토스, 미친 거냐! 감히 배신행위라니, 그게 무얼 뜻하는지 알 텐데!”

 “스끄러! 고든의 똥구멍이 핥는 개 주제에 어디서 설교야!”

 꿈틀!

 라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평상시 서열상으로도 산토스는 자신의 밑이었다. 자신의 말 한마다에 벌벌 떨던 놈이 지독한 독설을 퍼붓자 화가 치밀었다. 항상 냉정한 라엘도 본분은 도둑길드원이었다. 그 성정이 악독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도둑길드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사내였다.

 “버러지 같은 놈이 감히, 내게! 놈을 죽여라!”

 “닥쳐, 죽는 것은 너다! 모두 쳐라!”

 산토스의 수하들 20명과 라엘이 데리고 온 10명이 길드원이 서로 검을 맞대기 시작했다. 

 키키캉! 카캉!

 검과 검이 부딪치고, 난 후 사상자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라엘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지고 있었다. 설마 했는데, 산토스가 데리고 온 놈들의 기세가 장난이 아니었다. 평소보다 더 강한 것 같았다. 수적으로 2배 차이가 나기는 하지만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는 좀 전의 생각과는 다르게 오히려 밀리고 있었다.

 죽는 숫자는 똑같았지만 상대편은 숫자가 더 많았다. 이렇게 되면 당하는 것은 자신이었다. 라엘은 상황이 불리하자 뒤로 몸을 빼려 했다.

 “어딜 가시나!”

 “산토스, 네가 이러고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흥, 네놈 목숨이나 걱정하시지.”

 산토스는 라엘의 말을 듣지도 않고, 단검을 던졌다. 빠르게 날아오는 단검을 가까스로 피한 라엘이 식은땀을 흘렸다. 그와 동시에 산토스가 검을 뽑아 휘둘렀다.

 카앙!

 라엘도 검을 뽑아 막기는 했지만 쉽지 않은 승부였다. 평소의 산토스가 아니었다. 독기와 함께 힘도 더 세진 것 같았다. 라엘은 연신 뒤로 밀리면서 신음성을 내질렀다.

 ‘이럴 수가!’

 라엘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가운데, 산토스의 수하들 중 2명이 덤벼들었다. 한 명도 벅찬데, 두 명이 한꺼번에 덤비자 라엘은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상황이었다. 가까스로 위험한 순간을 넘겼다고 하지만 팔과 다리, 가슴이 검에 베어 핏물이 흘러내렸다. 

 주르륵!

 ‘승산이 없어!’

 도망치려는 라엘이었지만 앞 뒤 모두 포위가 되어버렸다. 라엘은 죽고 싶지 않았다. 이제까지 어떻게 살아 왔는데, 이건 개빵 같은 상황으로 죽을 수 있단 말인가!

 “산...토스, 살려주게!”

 서걱!

 살려 달라고 사정하는 라엘의 말을 무시하고, 산토스의 검이 인정사정없이 라엘의 목을 잘라내었다.

 데굴! 데굴!

 잘린 목이 힘없이 바닥에 떨어져 굴렀다. 그와 동시에 잘려진 목 부위에서 플러나온 피로 바닥을 흥건하게 적셨다. 피를 본 산토스는 광기에 휩싸인 듯했다.

 “그러게, 전부터 신경질 나게 하지 말았어야지. 이제 남은건 고든뿐이겠지. 언제나 나를 무시한 놈이니 사지를 잘게 잘라주겠다.”

 뻐엉!

 고든의 집무실을 거칠게 차고 들어오는 산토스였다. 산토스는 살기 팽천한 모습으로 고든을 잡기 위해 노려보았다. 그런데 막상 문을 열고 들어가자 고든이 없었다. 언제나 거만하게 사람을 부려먹던 고든의 모습니 보이지 않자 산토스의 고아분은 더욱 커졌다.

 분노가 하늘과 맞ㅤㅊㅏㅎ는 기분이었다.

 “이런 쥐새끼 같은 놈, 도망을 쳐! 그동안 항상 거만한 척 날 부려먹던 놈이 고작 이런 놈이었어!”

 우당탕!

 분을 참지 못한 산토스가 집무실의 가구들을 마구 집어던졌다. 그와 동시에 수하들에게 놈을 찾으라고 했다.

 “어서 찾아 봐, 나 갈 길은 없었으니까?”

 집무실을 마구 던지던 산토스는 탁상 아래에 있는 작은 입구를 볼 수 있었다. 사람 하나 지나갈 수 있는 작은 통로였다.

 빠드득! 

 산토스는 일이 틀어진 것을 알았다. 고든이 통로를 통해 도망친 것이다. 놈은 분명히 길드원들을 다시 불러들일 것이다.

 이대로 있으면 자신은 도망도 못 치고 당할 수 있었다. 아무리 자신들이 평소보다 강해도 200명이나 되는 길드원을 모두 막아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산토스는 일이 실패한 것에 대해 분노가 치밀었다.

 “제기랄!”

 어떻게 해서든 고든을 죽여야 이 모든 책임을 고든에게 물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고든이 살아나면 자신만 당하게 된다. 

 “우선은 빠져나간다.”

  산토스와 남은 수하 12명이 신속히 도둑길드를 빠져나갔다.

 빈 둥지가 되어버린 도둑길드를 유유히 걸어 들어가는 인영이 있었다. 모습이 그림자와 같아서 누구도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은밀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지만 유령과 같았다.

 유령처럼 도둑길드 내로 스며들어간 그림자는 신속하고, 정확하게 움직였다.

 유령은 바로 가르딘어었다.

 유령과 같은 이유는 바로 가르딘의 은형술인 무영신때문이었다. 기로써 자신의 기를 숨기는 고단위의 수법이었다. 일단 펼치면 바로 옆에 있다고 해도 알아낼 수 없을 정도로 은밀하고 조용했다.

 가르딘은 다른 것은 둘째치고, 바로 고든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집무실은 산토스가 광분하는 바람에 상당히 망가져 있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가르딘은 개의치 않았다. 명색이 도둑길드 지부장이었다. 자신의 방안에 비밀통로 하나 말들어 놓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할 것이다.

 사실 처음부터 산토스가 고든을 제거할 것이라고는 기대하지도 않았다. 제거 못하는 것이 가르딘으로서는 더 좋은 방향이었다. 이제부터 도둑길드 놈들은 산토스의 배신행위로 인해 시끌벅적할 것이다. 그것보다 가르딘은 다음 일에 관심을 쏟고 있었다.

 “음, 이놈들은 어디다 숨겨 놓았을까나.”

 가르딘이 가볍게 벽명을 두드려보고, 귀를 대었다. 천리지청술의 경지에 이른 가르딘이었다. 소리만으로 공간과 공간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경지였다. 가르딘의 집 담벼락 밖에서 침을 뱉는 행위조차 들을 수 잇는 수법이었다.

 원래 익히려고 한 것이 아니라, 밤에 담벼락에 오줌 싸는 놈들 때문에 익힌 것이다. 아침 나가려고 할 때 풍기는 지린내가 보통이 아니었다.

 타탕!

 가볍게 두드리자 소리가 벽에 타고 전달되었다. 전달된 소리가 이리저리 사방에서 퍼져 고든의 방을 울리자 빈 공간이 소리로 전달이 되어 돌아왔다.

 “오호! 역시나인데.”

 촛대를 세워 놓은 기둥부분을 누르자 벽면의 한쪽 부분이 움직였다. 고든이 비밀리에 숨겨 놓은 돈이 들어 있는 곳이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노란색의 빛이 흘러나왔다. 가르딘은 흘러나오는 황금빛을 만끽하며, 기쁨의 한숨을 토해내었다.

 “이놈들 정말 돈 많이 챙겼네, 조금 가져간다고 해도 별탈 없겠지.”

 누런빛.

 황금빛.

 돈은 많으면 좋고, 없으면 구질구질하다.

 가르딘도 돈을 좋아한다.

 고든이 모아 놓은 재산은 상당했다. 모든 것을 다 챙기면, 평생 배 굶는 일은 절대로 벌어지지 않을 정도로 많은 재산이었다. 욕심이 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할 것이다. 그러나 가르딘은 금화를 간단하게 조금 챙기는 것으로 만족하고 할 일을 했다.

 “어디에 있더라.”

 가르딘이 찾는 것은 장부였다. 

 도둑길드 놈들이 이제까지 사용한 장부를 숨겨 놓았을 가능성이 있었다. 오히려 놈들에게 장부가 더 중요한 것일 수도 있었다. 오히려 놈들에게 자우가 더 중요한 것일 수도 있었다. 비밀장부의 내용을 잠시 살펴보려는 가르딘이 하나의 상자를 발견했다. 상자는 잠겨 있었지만 그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자물쇠의 맞춤부분을 손가락에 형성된 오러로 집어넣어 돌렸다. 오러는 타는 듯한 강렬한 기운을 발산하여 닿는 부분을 녹여버리는데, 가르딘은 마나의 성질까지도 조절이 가능했다. 자물쇠를 풀고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는 검은색의 두꺼운 장부가 들어 있었다.

 가르딘이 천천히 장부를 넘겨보았다. 장부에는 그동안 돈을 모은 계획과, 세부적인 실행 방법 등이 낱낱이 적혀 있었다. 가르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주 지저분하게 놀았군.”

 상당히 악랄한 수법을 자랑스럽게 써 놓았다. 놈들이 한 짓은 편하게 죽여줄 수 없는 악독한 짓들이었다. 도둑길드다운 더럽고 비열한 수법이 아닐 수 없었다.

 -이름:유례아

 -나이:16세.

 -처녀.

 -본부로 보냄.

 -이름:카시안

 -나이:15세

 -처녀.

 -본부로 보냄.

 정해진 시간 때에 어린 여자아이들을 도둑길드의 본부로 보냈다는 내용이었다. 여자아이들을 왜 보내는지는 알 수는 없었다. 시간 때를 따져 보니. 쉴라를 잡아오려는 시기하고 얼추 비슷했다.

 “이놈들, 도대체 뭐 하려는 거야?”

 도둑길드가 여자를 납치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이유는 없었다. 원래 인신매매가 놈들의 주력상품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위험한 냄새가 물씬 풍겼다. 되도록 이놈들하고는 부딪치지 않고 해결하는 것이 만사불여튼튼일 것이다.

 “아무튼 이게 없어지면 더 날리겠지!”

 장부가 없어지면, 그날로 지부는 송두리째 날아갈 수 있다. 고든이라고 해서 무사하다는 보장이 없다. 놈은 이걸 찾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할 것이다. 다행인 것은 놈들이 절대 가르딘이 했다는 것을 알 수 없다는 데에 있었다.

 시간이 별로 없지만 그런 대로 소득이 있었다. 지금부터는 금고문을 열어놓고, 나가는 것이 관건이었다. 문을 열어놔야, 산토스가 했다는 물증이 된다. 다른 것은 둘째치고, 장부 하나만 없어진 것을 생각하면 놈은 미치고 환장할 것이다.

 “헉! 헉!”

 고든의 일생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라엘에게는 도망치지 않는다고 말을 하기는 했지만 수적으로도 부족한 가운데, 만일의 사태가 발생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을 다 제쳐두고, 목숨을 보전해야 했다.

 자존심을 내팽개치고, 바로 도주해서 소속원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미처 비밀금고에 장부를 챙겨오지 않은 것이 꺼림칙하기는 했지만 별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았다.

 “빌어먹을 놈, 감히 나를 쳐! 네놈을 그냥 죽이지 않겠다!”

 빠드득!

 이를 가는 고든이었다.

 그는 즉시 아이언이 있는 곳으로 갔다. 아이언이야말로 자신의 수하 중에서 가장 강한 무력을 가지고 있는 녀석이었다. 핵심간부 열 명 중에서도 가장 강하고, 충직했다.

  아이언은 루벤 영지의 4번째 관문 중에서도 가장 큰 카이룬을 지키고 있었다. 카이룬의 주변으로 성문을 지키는 수문장들이 있다. 아이언은 도둑길드를 수비병들이 보이지 않는 길목에 배치를 하고 기다렸다. 언제든지 나타나면 바로 잡아 들일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아이언은 한참동안을 기다려도 아무런 수확이 없자 지루하게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이언은 어렸을 적부터 덩치가 크고, 근력이 발달되어, 그 힘이 오우거에 비견된다고 불렸다. 힘으로 해서 누구보다 강해서, 어누 누구도 자신을 이기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아주 어린 시절, 굶주림으로 허기져, 고든에게 구해지지 않았다면 누구의 밑에서도 수하로서 있을 뿐이었다. 아이언은 그래서 고든 이외에는 다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또한 고든의 말은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따랐다.

 아이언의 시선이 하늘에서 대로변을 바라보고 있을 때, 그의 시야에 고든이 보였다. 힘ㅤㄷㅡㄺ[ 달려오는 고든의 표정을 보고 심상치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언이 급히 고든에게 다가갔다.

 “지부장님, 갑자기 무슨 일입니까?”

 “쓰읍! 하!”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고, 다시 내뱉은 수 신색을 회복한 고든이 말했다. 고든은 상당히 화가 나 있었다.

 “당장 길드원들을 모두 불러라, 그리고 산토스를 잡아와!”

 “예? 그럼 원래 잡아야 하는 놈은 어떻게 합니까?”

 “스끄러, 배신자를 잡는 게 먼저니까! 다들 불러라!”

 아이언은 급히 수하 중에 날랜 놈을 불러, 다른 관문을 지키는 소속원들에게 연락하도록 했다.

 산토스의 수하들은 모두 흩어져서 도망을 쳤다. 남은 12명이 모두 흩어져서 12개의 방향으로 흩어졌다. 한곳에 모여 있어 봤자, 숨는 것이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산토스는 도망치면서도 빠져나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았았다.

 그럼에도 마음속으로는 고든에게 대한 원망과 원한이 쌓여갔다. 이상한 느낌이었다. 불안하고 두려우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자신의 마음을 통제할 수 없었다.

 산토스조차고 통제할 수 없게 불어난 욕망이었다. 이것이 가르딘이 사용한 사념안의 무서운 점이었다. 사념안은 내면에 숨겨진 본능을 극도로 끌어낸다. 그와 동시에 몸안에 잠재되어 있는 잠력까지 끌어올려 준다.

 마치 선천진기를 소모하는 것과 같았다. 사람의 능력은 아주 급박할수록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다. 그 능력은 쉽사리 발휘되지 않지만 일단 발휘되면 보통의 몇 배에 달하는 능력을 사용할 수 있었다.

 다만, 그 후유증이 만만치 않았다. 내면에 숨겨진 힘은 본능적으로 다 소모하지 않도록 억제를 하기 마련이다. 그것은 사람이라면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두려움이 작용하여 몸이 최악으로 가지 않게 막는다.

 하지만 가르딘의 사념안이 그 통제력을 무너뜨리기에 힘을 쓰는데 제어가 불가능했다. 죽을 때까지 소모하다 죽게 된다. 도둑길드원들이 능력이 훨씬 뛰어남에도 상대가 가능했던 것이 바로 사념안의 능력 때문이었다.

 산토스는 루벤 영지의 숨겨진 길을 따라갔다. 여기라면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산토스의 생각은 바로 앞을 가로막고 있는 아이언으로 인해 무산이 되었다.

 산토스는 아이언의 능력을 잘 안다. 일대일 대결에서 한 번도 진적이 없는 놈이었다. 평소하면 승산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산토스는 망설임 없이 돌진했다.

 그 시각 고든은 집무실로 다시 돌아왔다.

  돌아온 고든은 널브러진 집무실보다 열려진 비고를 보고 놀라고 말았다. 산토스가 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과는 다르게 비고가 보란 듯이 열려 있었다.

 “이런, 젠장!”

 고든은 즉시 비고로 들어갔다. 비고 안에는 여전히 막대한 금액의 금화가 있었다. 고든은 금화의 온전함보다 다른 것에 관심을 가졌다. 비고 안에 숨겨진 상자가 열려 있었다.

 “설마?”

 설마 하는 심정이었다. 산토스가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지만 상자 안에 들은 장부를 가지고 사라진 것을 알게 되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장부는 도둑길드에서 그동안 벌어진 일을 모두 적어 놓은 것이다.

 외부로 반출이 될 경우 그 위험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이것이 밝혀지면 자신의 목숨을 끝이었다.

 부들! 부들!

 고든은 생애 처음으로 두려움을 맛보았다. 어둠의 길드에서 자신의 이런 실수를 그냥 둘 리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장부만은 찾아내야 했다.

 “산토스! 네 이놈을!”

 잡는 즉시, 사지를 자르고, 피부를 뒤집어서 소금에 절여 버릴 생각이었다. 그냥 죽이는 것은 지금까지 받은 무로를 풀기에 부족했다. 자신의 자존심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고, 이젠ㄴ 존재의 유무조차 힘들게 만들었다. 그걸 그냥 두면 고든이 아니었다.

 이유야 어떻든, 가르딘과 쉴라에 대해서는 저 멀리 대륙 끝으로 날려버렸으니 성공적인 결과였다.

 소속원들이 산토스의 수하들을 잡아내기 시작했지만 피해가 만만치 않았다. 하나같이 독종들이었다. 죽는 순간까지 길드원 서너 명과 함께 독기를 뿜어내었다. 고든의 핵심 간부 중 한 명인 키스트가 질릴 정도였다.

 이런 놈들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소름이 돋았다.

 “지독한 놈들.”

 감탄과 더불어서 고심이 들었다.

 12명 중에서 죽은 숫자가 10명이고, 나머지도 2명도 중상이어서, 다시 살려내기가 쉽지 않았다. 고든은 반드시 생채로 잡아오라고 했지만 그 명령을 듣다가는 너무 많은 희생을 낳을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었다.

 “산 놈은 우선 치료하고, 나머지 죽은 놈들은 깨끗하게 정리해.”

 우선은 살인현장을 치워야 했다.

 소란이 너무 켜졌다. 놈들의 반격이 지독했기에 그에 따른 여파가 상당했다. 주변에서 쉬쉬하기는 하지만 곧 경비병들이 몰려올 것이다. 그전에 미리 처리하고 사라지는 것이 중요했다.

 주르륵!

 아이언은 자신의 뺨에서 흐르는 핏물을 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에 보는 핏물이었다.

 스윽!

 흐르는 핏물을 혀로 핥았다. 피를 볼수록 아이언의 눈에서는 차가운 한기를 뿜어내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움츠러들게 만드는 한기였다. 아이언이 이처럼 차가운 기운을 뿜어낼 때 어떤 상대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저절로 위축이 되어 평소의 실력을 발휘할 수 없게 만들었다.

  “크크, 제법이야! 내 피가 흐르는 것을 보게 될 줄은 몰랐거든.”

 “흥, 네놈의 피로 이 바닥을 적셔주마!”

 산토스는 아이언의 소름끼치는 마을 들으면서도 여전히 기세등등했다.

 “아무리 네놈이 강해도, 칼이 들어가고서도 기고만장할지 두고 보겠다!”

 “겁이 없어서 좋단, 말이야! 이렇게 재밌는 먹이는 처음이거든! 어디 끝까지 발악을 해봐라!”

 아이언이 육중한 몸을 이끌고, 돌진했다.

 발바닥이 지면을 박차고 나가자 흙먼지가 뒤로 퍼져나갔다. 그만큼 추진력이 굉장했다. 상당한 덩치에도 불구하고 아이언의 움직임은 굉장히 빨랐다. 정면으로 다가오는 위압감이 장난 아니었다. 바로 앞에서 엄청난 풍압이 느껴졌다.

 산토스는 그 즉시 앞으로 들어오는 놈의 명치를 향해 검을 찔렀다.

 슈슈슉!

 검이 정면으로 들어오는 아이언의 정중앙 가슴을 찔러 들어가려 할 때, 아이언의 허리가 앞으로 구부러지면서 미끄러져 들어갔다. 검이 허공을 가르자, 아이언이 산토스의 팔을 잡았다. 잡는 즉시 완력으로 끌어당겼다.

 굉장한 힘을 자랑하는 아이언의 완력 앞에 산토스의 몸이 앞으로 쏠려나갔다. 균형을 잡을 수 없었던 산토스가 이를 악물며 지탱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으으윽!”

 아이언이 잡은 팔을 놓고, 상대의 목을 팔목으로 쳐버렸다.

 퍼퍽!

 “커억!”

 목이 충격을 받자 순간적으로 호흡곤란 증상을 일으키는 산토스였다. 충격이 상당했다.

 조금만 더 강했으면 목이 부러졌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아이언의 공격이 끝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산토스의 허리를 제압하더니 들어 올리는 것이 아닌가! 들어 올린 상태에서 머리를 바닥으로 향한 채 박아 버리는 수작이었다.

 이대로 아이언의 공격대로 이루어진다면 머리통이 박살날 것이다. 산토스는 살기 위해 아이언의 몸에 더욱 밀착시켰다.

 “으윽!”

 “이런 개새끼가!”

 아이언이 갑자기 비명성을 내질렀다. 어찌나 아픈지 이제까지 느껴보지 못한 고통이었다. 이유는 바로 산토스가 들어 올려지는 순간 입을 벌려 아이언의 어깨를 물었기 때문이었다. 

 옷소매가 없는 형태의 옷을 입은 아이언의 피부가 그대로 노출이 되었다. 아무리 단련해도 이빨보다 피부가 강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산토스가 죽을힘을 다하자 아이언의 비명성이 더 커졌다.

 아이언은 어쩔 수 없이 산토스를 던져 버렸다.

 꽈다다당!

 바닥에 던져진 산토스가 충격을 받고 일어서지 못했다. 순간적으로 전신이 마비가 되는 듯한 충격이었다. 아이언은 산토스의 추잡스러운 행동에 화가 치밀었다. 설마 했는데, 이빨로 물줄은 몰랐던 것이다.

 아이언은 그 즉시 바닥에 쓰러져 있는 산토스에게 빠르게 달려가 들어 올렸다.

 목과 다리를 제압하고 완벽하게 들어 올린 상태였다.

 “끝이다, 지저분한 놈아!”

 산토스는 발버둥을 쳤지만 소용없었다. 무심하게 아이언이 바닥으로 내리꽂는 동시에 무릎을 구부렸다.

  으드득!

 “커... 억!”

 마지막으로 숨넘어가던 소리를 내던 산토스가 눈이 돌아가 버렸다. 상, 하체의 정중앙 허리에 아이언의 무릎에 닿아 있었다. 충격에 의해 산토스의 척추가 완전하게 꺾여버렸다. 허기와 목이 꺾이고도 살아남을 사람은 없었다.

 한발 늦어 버렸다.

 고든은 아직 물어볼 것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산토스는 허리가 부러진 채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었다. 이대로는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었다. 이미 키스트가 잡아온 놈들도 얼마 안 돼서 죽었다.

 ‘장부를 찾아야 하는데.’

 그렇다고 수하들에게 장부이야기를 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장부는 지부장이 꼭 지켜야 하는 것 중에 하나다. 그것을 잃어버린 것을 다른 이가 알게 될 경우 즉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었다.

 산토스의 몸을 뒤져본 결과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그놈의 입에서 무언가 나와야 했는데, 이제는 물어보는 것 자체를 할 수 없게 되었다.

 ‘혹시?’

 만약의 사태이지만 산토스 이외에 자신의 수하들 중에서 배신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산토스 혼자서 이처럼 엄청난 짓을 할 수는 없다고 보았다. 하지만 그게 누군지 알 방법이 없었다.

 고든의 의심은 점점 깊어져 갔지만 대책이 서지 않았다. 우선은 지부를 안정화시키고, 차근차근 수족들을 감시해 봐야 할 것 같았다.

 룰루! 룰루!

 콧노래를 부르며, 가게 안으로 들어가는 중년인이 있었다.

 중년인은 미심쩍은 것을 털어 버린 듯한 상쾌한 모습이었다.

 전에 못 누다 만 것을 완벽하게 소멸시킨 듯했다. 중년의 능글맞은 사나이는 가르딘이었다.

 그는 필리언에게 말을 한 것처럼 리베이신 찻잎을 사기 위해 가게로 들렀다. 가게에는 여러 가지 찻잎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특등의 자리에 리베시안 찻잎이 잘 포장이 되어 있었다. 가게에 들어가자 여성 점원이 나왔다. 20대의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무얼 찾으세요?”

 “리베시안 찻잎을 원하는데, 등급이 어떻게 되나?”

 “저희 가게에서 취급하는 리베시안 찻잎은 일등급과 특등급으로 분류가 되요, 일등급은 1상자에 5골드고, 특등급은 1상자에 15골드입니다.

 과연 대단한 가격이었다.

 그냥 물에 우려낸 수프의 재료 주제에 금값보다 비쌌다. 웬만하면 사고 싶지 않지만 라이나를 생각해서 한 상자 사야했다. 라이나는 차를 즐겨 마시는 편이었다.

 물론 비싼 차는 살 엄두를 내지 못했다. 산에서 따온 잎을 집에서 말려서 혼자 달여 먹었다. 그것이 안타까운 가르딘은 한번쯤 거하게 사주고 싶었다.

 “특등급으로 1상자 주시오.”

 “정말 탁월한 선택을 하셨습니다. 저희 가게에서 취급하는 특등급 리베시안 찻잎은 파스트론 공작께서도 즐겨 드시는 것입니다. 한번 드셔 보시면 그 맛을 잊을 수 없을 겁니다.”

 파스트론 단장이 차를 마시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가르딘이었다. 항상 고지식한 모습만을 보인 파스트론 단장이었다. 검에 미쳐서 그 나이 먹도록 검술을 수련하는 기사의 모범, 그런 사람이 이런 고급차를 마시는 모습은 상상하기 쉽지 않았다.

 ‘하긴, 공작 정도 되면 다들 마시겠지.’

 가르딘은 차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차는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주는 효능이 있기는 하지만 강렬한 맛을 좋아하는 가르딘에게는 그냥 물맛이었다.

 가르딘은 볼일을 보고, 공작의 저택으로 들어갔다. 시간을 많이 잡아먹은 작업을 하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정말 공주가 벌인 일만 아니었으면 그냥 가는 건데 괜한 고생이었다. 이런 고생을 공주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저녁때가 다 되어 가는지 날이 저물기 시작되었다.

 저택으로 들어오는데 스필언이 다가왔다.

 “선배님, 공주님이 찾으십니다.”

 “공주님이 왜?”

 “이유는 잘 모릅니다. 긴히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하십니다.”

 “알겠다.”

 스필언은 가르딘을 대하는데, 존경의 염을 담아서 대하고 있었다.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것이었다. 스필언에게 갈딘은 모자란 부분을 채워준 고마운 분이자 스승이었다. 스승을 존경하는데 조건이 있을 리 없었다.

 가르딘은 감이 상당히 뛰어나다.

 보통 감은 타고난 것이라고 하는데,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경험이 많이 쌓이다 보면 저절로 감이 날카로워지고 적중률이 높아진다. 더군다나 가르딘은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들었다. 척하면 척하는 경지에 들어 있다고 볼 수 있었다.

 ‘낌새가 이상한데, 왠지 모르게 오싹해!’

 가르딘은 즉시 공주에게로 가지 않았다. 아무 대책없이 가는 것이 꺼림칙했다. 그래서 먼저 필리언에게 갔다. 우선 지금까지 벌어진 일을 필리언에게 들어보려고 했다.

 가르딘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필리언이 검을 닦고 있었다. 기사에게 검은 생명이나 마찬가지인 수족이었다. 언제 어디서든 검을 뽑을 수 있도옥 평상시에 관리하는 것은 기사의 철칙이나 마찬가지다.

 필리언은 검에 녹이 슬지 않도록 기름칠을 열심히 했다. 겨울철에는 검에 물기가 새겨 어는 경우가 있다. 그럴 경우 검이 뽑히지 않는다. 위급한 순간에 검이 뽑히지 않아서 애를 먹는다면 그건 애송이 기사에 불과하다.

 필리언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기르딘을 보자 왔나 보다 라는 표정을 짓고 다시 검을 닦았다. 별로 관심 있어 보이지 않았다.

 “야, 인마! 친구가 왔으면 알은체라고 해라!”

 “네 면상은 매일 보는데 뭐 좋은 게 있다고 알은체하냐!”

 “음, 그건 그거고! 너 나한테 할 말 없냐?”

 “할말? 네게 할 말이 뭐 있어! 갑자기 와서 뭔 소리를 하는 거야?”

 가르딘은 그냥 흘려듣지 않았다. 하나하나 점검할 필요성이 있어ㅛ다.

 필리언에게는 별거 아닌 일이 가르딘에게는 중요한 일이 될 수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누군가에게 중요하지만 타인에게는 별일 아닌 일이 있으니 말이다.

 “내가 나간 후 평소 하는 일 말고 다른 일 있지 않았어?”

 “다른 일? 우리야 매일 공주님 신변을 지키는 건데 다른 일이 있겠어! 있다면 공주님과 대면한 것뿐인데!”

 움찔!

  가르딘이 갑자기 안색이 바꾸었다.

 필리언이 공주와 대면을 했다는 말에는 심각함이 묻어나왔다.

 “공주님이 뭐라고 하시던? 책임자인 내가 모르면 안 되잖아?”

 “그렇긴 하군, 별다른 일은 없었어, 그냥 궁금하신 것을 물어보시더라고, 나 참! 듣고 나서도 어이없었다니까!”

 “뭐가 어이없는데?”

 “아무리 외부 상황을 모른다고 해도 어떻게 도둑길드 따위가 우리 피닉스기사단을 위협할 수 있어, 말도 안 되는 소리지!”

 ‘허억!’

 가르딘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가 금세 신색을 회복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고, 검을 닦고 있는 필리언이라 보지는 못했다.

 ‘이런 제기랄!’

 필리언은 가르딘의 속마음과 다르게 별것 아니라는 투로 말을 하면서 가르딘의 동조를 얻어내려는 말까지 했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냐? 도둑놈들 따위가 우리 상대가 되는 게 말이 되냐!”

 “그...렇지.”

 “그래서 내가 당당하게 상대가 안 된다고 공주님께 다 말히 주었다.”

 “잘했... 구나!”

 “근데, 너 말투가 왜 그러냐?”

 “아니...다. 아주... 자알 했구나! 친구야! 뿌드득!”

 부들! 부들!

 단검을 들고 가르딘은 손을 떨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아이시런 공주에게 사념안을 쓸 수도 없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다.

 사념안이 흔적을 별견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의심하는 사람이 발생할 수 있었다. 제국의 공주에게 사념안을 쓰면 마법사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방으로 몰래 들어온 후 시녀들에게 상처에 필요한 구급약을 가져오라고 시켰다. 충분히 소리를 키워서 말을 했기에 다 알아들었을 것이다.

 “제기랄, 남을 베기는 해도 내 몸에 상처내기는 처음이네!”

 가르딘의 신체는 금강불괴와 쌍벽을 이룬다는 천룡신에 이르러 있었다. 천룡무상신공의 효능 중에 하나로 목이 잘리지 않는 이상 죽지 않으며, 오러 블레이드에 당해도 쉽게 회복이 가능했다. 한마디로 무지막지한 신체였다. 가르딘이 직접 검으로 찌르지 않는 이상 죽지 않는다. 천룡신에 상처를 내기 위해서는 오러 불레이드를 사용해야 한ㄷ.

 ‘한 번에 가자!’

 카캉!

 주르르륵!

 칼로 상퍼를 내자 핏물이 흘러내렸다. 금세 아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기운을 조절했다. 하지만 저절로 치료되는 속도가 상당히 빨라서 위운 일이 아니었다. 우선은 옷을 다시 입고 나서 핏물이 옷을 적시도록 놔두었다.

 똑! 똑!

 시녀 한 명이 들어왔다.

 “구급약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피가!”

 “괜찮다. 실수로 조금 다친 것뿐이다.”

 시녀에게 다친 것을 확인시키기 위해서 일부러 한 행동이었다. 그와 더불어서 빨리 상퍼를 천을 이용해서 감쌌다.

  “이제 됐다.”

 가르딘이 흉계를 꾸미고 있을 때 아이시런은 차를 마시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이상하게 가르딘에게 당한 것 같았는데, 그 모든 것을 다시 되돌릴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이제부터 주도권을 쥐고 가르딘을 휘어잡으면 신성제국으로의 여행을 즐겁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한 잔 더 따라봐라.”

 “예, 아이시런 언니!”

 “쉴라도 한잔 마셔.”

 “감사합니다.”

 엘리언은 조금 전에 시녀들을 관리 감독하기 위해 나간 상태였다. 조금 있으면 온다고 했으니 그 시간 동안 쉴라와 언니 동생 놀이를 했다. 쉴라는 하루 정도 지나자 적응을 했다. 그녀가 정색하며 공주를 대하면 앞으로 생활이 어렵다는 것을 빠르게 인지한 것이다.

 생존본능이 장난 아니게 발달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아저씨 내가 부르는데 빨리 올 것이지, 뭐 하는 거야?’

 가르딘이 도착하고서 바로 오지 않아서 조금 짜증이 나는 상황이었다. 다만 앞으로 가르딘을 몰아붙일 생각을 하니 참고 있을 뿐이었다.

 이제 어떤 변명을 해도 들어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가르딘의 능수능란한 언변과 상황판단, 그리고 말이 안 될 것 같은 상황을 말이 되게 만드는 능력에 당하지 않을 카드를 손에 넣었다.

 가르딘은 아이시런의 방에 들어오기 전에 청각을 열었다. 기를 운용해서 청각을 강화시키자 안에 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쉴라가 마침 있었구나! 다행이다.’

 쉴라가 없으면 불러서라도 데려오려고 했던 가르딘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남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면 이용할 생각을 하고 있던 가르딘이었다.

 똑! 똑!

 가르딘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가르딘의 눈에 자신만만한 공주의 표정이 들어왔다.

 가르딘은 일부러 눈에 힘을 주고, 진중한 표정으로 아이시런 공주를 맞았다. 아이시런에게 상당히 심각한 표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당당하기까지 했다. 아이시런 공주는 당당하게 들어오는 가르딘의 표정을 보았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아직 불리한 상황을 모르니 저런 표정을 짓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말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가르딘이 갑자기 낮은 목소리로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공주님의 부름을 받고 왔습니다!”

 척!

 오른팔로 기사의 예를 취하며 무릎을 꿇었다. 그와 동시에 오른팔에 입은 상처가 보이도록 했다.

 “윽!”

 가르딘이 상처가 욱신거리는지 신음성을 가볍게 내었다. 너무 경박스럽지도 않고, 티를 내지 않도록 한 가르딘이었다. 가르딘의 의도적인 행동이었지만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그것을 가지고 거짓이라고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이시런은 오른팔을 붉게 적신 것이 무엇인지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핏물이었다. 반나절 동안밖에 나갔다가 들어온 사람이 다쳐서 들어왔으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른팔에 상처를 입으셨네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요?”

  가르딘은 대답을 망설이고 있었다.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쉴라를 바라보았다. 그저 한 번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걱정이 잔뜩 담긴 가르딘의 표정을 쉴라는 볼 수 있었다. 찰나였지만 쉴라와 아이시런에게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게 만들었다. 

 쉴라가 설마하는 심정으로 물었다.

 “설마 부모님께서?”

 가르딘이 참담한 듯이 고개를 가로저였다. 말을 하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주었을 뿐인데도 쉴라는 가슴이 덜컥 가라앉았다. 아이시런 역시도 당황스러웠다. 자신이 데리고 온 쉴라의 부모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답답한 아이시런 공주가 상황을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요? 하나도 빼지 않고 말을 하세요!”

 공ㅈ로서 명령을 내리자 그제야 가르딘이 입을 떼었다. 되도록 무겁게 말을 하면서 자신의 공을 강조하는 언변을 더했다.

 “저는 공주님이 너무 무책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갑자기 공주에게 무책임하다고 말을 하다니 상당히 무례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아이시런은 따지지 않고 이유를 물었다.

 “공주님이 구하라고 명을 했던 쉴라의 부모에게 사고가 날 뻔했습니다. 요즘 루벤 영지 내가 너무 어수선한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미라 쉴라의 부모에게 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도둑길드 놈들이 쉴라의 부모를 죽이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 설마 놈들이 쉴라의 부모를 죽인 건가요?”

 털썩!

 쉴라가 더 들을 수 없었는지 무릎에 힘이 빠져 주저앉았다.

 “기사로서 제가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그 즉시 목숨을 걸고 놈들에게서 쉴라의 부모를 구했습니다.”

 쉴라를 구하기 전까지 자기 안위만을 살핀 가르딘이 한 말 치고는 앞뒤가 맞이 않았다. 그럼에도 상황이 사실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하아!”

 아이시런과 쉴라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면서 가르딘이 다친 것이 도둑길드 때문인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서런은 자신의 생각이 너무 짧았음을 한탄했다. 그저 쉴라를 구하면 될 줄 알았느네 그 뒤를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상황을 미리 간파하고 막아낸 가르딘에게 오히려 칭찬을 아끼지 않아야 했다.

 “다행이군요.”

 “그게 끝이 아닙니다.”

 “아니라고요?”

 “저는 뒤탈이 생기지 않도록 도둑길드 내를 흔들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쉴라의 가족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도둑길드를 습격했습니다. 다행히 놈들 간에 권력다툼이 있는 상황이라 더 이상의 피해는 가지 않을 겁니다.”

 “그럼 더 이상 쉴라의 가족의 신상에 위험은 없겠군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일로 인해 제가 늦게 왔습니다. 공주님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여겨야 하는 제가 너무오랜 시간 자리를 비웠습니다. 저는 기사로서 공주님의 안위를 신경 쓰지 않은 것이 되니, 그 죄를 달게 받겠습니다. 벌을 내려 주십시오!”

 가르딘은 짐짓 죄를 달게 받겠다고 말을 했다.

 하지만 그 말이 아리시런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었다. 옆에서 쉴라가 가르딘에게 감사의 마음으로 인사를 하는데, 여기서 가르딘을 벌주었다가는 자신은 못된 공주가 되어버린다. 사람의 도리도 모르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더군다나 가르딘이 도둑길드에 침입해서 상처까지 입었다. 자신의 몸을 던져서 타인을 구하는 가르딘이야말로 기사의 본보기라고 할 수 있었다. 상을 주어도 부족하지 않았다. 그런가그딘에게 어떻게 벌을 준단 말인가!

 “아니에요, 가르딘 경은 생명을 구하는데 노력을 했어요, 그러니 그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할께요!”

 “아닙니다. 저는 공주님을 책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합니다. 그러니 벌을 주십시오! 아니라면 저의 죄를 모든 기사에게 알려서 처벌을 달게 받도록 하겠습니다!”

 ‘어!’

 아이서런 공주는 당황했다. 이 일은 모두 말하게 되면 자신의 성격과 그동안 한 일이 드러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자신이 공들여 만들어 놓은 이상적인 공주상이 무너지게 된다.

 고개를 숙인 가르딘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할 수 있으면 해봐라!’

 ‘이익!’

 아이시런 공주는 가르딘의 말에 더욱 당황하며 말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급하게 가르딘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노력해야 했다. 가르딘이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약점을 잡았다고 생각했건만 도리어 약점이 잡히고 말았다.

 “가르딘 경, 그만 일어나세요, 그리고 제가 너무 생각 없이 행동했다는 것을 인정할게요, 그러니 그만 일어나세요!”

 “하지만...”

 “어서 일어나세요, 이번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할 테니, 가르딘 경도 입조심하세요! 알겠나요!”

 “공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알겠습니다. 그럼 나가보겠습니다. 내일 여정을 시작하니 평안한 밤이 되길 바라겠습니다.”

 가르딘이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쉴라는 가르딘의 노력에 감동한 상태였다. 그녀는 가르딘이 원하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중에 오빠라고 불러 드릴께요!’

 아주 큰 결심을 한 듯한 쉴라였다. 반대로 아이시런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상하게 가르딘하고 대화를 하면 주도권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이놈의 아저씨가 잘도 빠져나가네.’

 후우우!

 ‘히히!’

 가르딘이 방에서 나와 한숨을 한번 내쉬고 나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들어올 때 다르고 나갈 때 다른 가르딘이었다.

 ‘한동안 공주도 딴 생각 못하겠지.’

 오늘 아주 위험했다. 공주에게 거짓말 한 것이 들통 나서 공주의 생각대로 끌려 다녔으면 여간 골치 아픈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