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 (2/93)

 <본문>

      @@[제1장 기사 가르딘@@]

 오브라이언 남작가의 3남 1녀 중에 막내로 태어난 가르딘은 어린 시절부터 영지 내의 권력다툼보다는 자유롭게 생활하는 것이 좋았다.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욕심이 없었다. 영지를 놓고 서로 다투는 형들의 모습이 슬프기까지 했다. 영지를 얻으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형들이 벌써 견제를 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심해졌다.

 나이가 들고 철이 들자 홀로 길을 나서 카이로만 제국의 기사수련 학교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곳이다. 제국의 초대 황제인 카이로만 대제가 설립을 했고, 제국의 유능한 기사들 대부분이 킹덤나이트 출신이었다.

 또한 설립목적이 우수한 기사의 양성이기에 들어오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반면에 들어와서 버티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기본적으로 배워야 할 검법을 모두 익혀야 하며 실력의 상승이 있지 않고서는 바로 퇴출이었다. 킹덤나이트는 주어진 시간과 기회를 다시 주지 않는다.

 철저히 정해진 시간 안에 모든 것을 완수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뒤처지는 자들에게는 조금의 자비도 주지 않는다.

 가르딘이 비록 어린 시절부터 검술을 익혀왔다지만 시골 영지의 검술이 뛰어날 리 만무했다.

 가르딘은 밤잠을 자지 않고 검술에 매진해야 겨우 동기들을 따라갈 수 있었다. 그의 재질도 그다지 뛰어난 편이 아니기에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킹덤나이트에서 쫓겨날 수도 있었다.

 킹덤나이트의 수련기간을 총 9년이었다.

 15살 정도에 들어가서 24살에 나오게 된다는 소리였다. 그 기간 동안 킹덤나이트의 독문검술인 스톰 검법과 일렉트릭 검법을 배우게 된다. 또한 마지막 기사시험을 받지 전에 기사수행이라고 몬스터 토벌 현장실습을 한다. 가르딘의 실력이 갑자기 일취월장한 계기가 된 일이었다. 

 타이앙!

 가르딘은 기사학교에서 배운 대로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배운 것과 실적은 확연한 차이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오크들의 신체능력을 일반 장정 4명의 힘과 맞먹을 정도로 뛰어났고, 생각보다 더 빨랐다.

 덩치가 큰 것에 비해 움직임은 날렵하고 민첩했다. 동물의 야수성과 포악함, 돌진하는 저돌성을 가진 오크는 기사들의 간식거리가 아니었다.

 오크들이 휘두르는 몽둥이와 검이 부딪치자 가르딘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만약 오러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크게 낭패를 당할 뻔했다. 현재 가드인의 실력은 오러 유저 중급ㅇ 이르러 있었다.

 일반 다른 기사수련생들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그저 평범한 기사수련생들 중에 한 명이라는 소리다. 물론 지금까지 남아서 몬스터 토벌 현장실습을 한다는 소리는 다음 대 기사자격을 갖추었다는 말이 되었다.

 따라서 이미 실력이 없어 떨어진 자들보다는 뛰어났다. 

 기사의 실력을 보면 오러를 사용하는 오러 유저, 오러를 자유롭게 뿜어내는 오러 익스퍼트, 오러의 경지를 개척한 오러 마스터로 구분되어진다. 각 단계마다 초급, 중급, 상급, 최상급으로 나누어지며, 단계마다 실력의 차이가 존재했다.

 일반적으로 기사의 실력을 평가할 때 오러 익스퍼트의 경지에 들고 나서부터가 진정한 실력자라는 말이 있었다. 따라서 오러 유저에서 익스퍼트에 들어가는 것이 생각보다 더 힘들고 난해했다. 물론 일스퍼트와 마스터의 단계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오러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일반 장정 10명 이상의 능력을 가지게 된다. 형식적이지만 오러의 단계에 따라 구분하면 가르딘은 적어도 20명 이상의 힘이 있다는 말이 되었다. 

 오크들 1마리 정도는 충분히 막아낼 수 있는 가르딘이었지만 3마리가 달라붙자 상황은 달랐다. 한 마리에서 다시 한 마리가 늘어나게 되면 그저 한 마리가 추가된 것이 아니었다. 

 손과 발이 세 배는 더 빨라져야 간신히 막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갑자기 공격하는 오크들은 킹덤나이트에서 배운 정석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킹덤나이트에는 아직 수련생이기에 어느 정도의 선을 긋고 대련을 한다.

 반면에 오크들은 수련생들을 전혀 봐주지 않는다. 먹이를 향해 최선을 다해 덤벼들고 있었다.

 오러 유저 중급이면 혼자서 오크 5마리를 상대할 수 있다고 했지만 실제가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3마리가 달라붙었는데도 가르딘은 벅차서 뒤로 밀렸다.

 ‘뭔, 오크들이 이렇게 강해!’

 오늘따라 오크들이 자양강장제를 먹었는지, 더 강하고 살벌했다. 

 흉악해 보이는 얼굴과 날카로운 이빨, 수도 없이 많이 난 상처들, 산전수전 다 겪은 오크들이라는 결론을 내었다. 몬스터 토벌 현장실습에 참여한 기사수련생의 수는 100명이었다.

 100명의 기사수련생들 모두 생전 처음 겪어 보는 현실에 벽을 느끼고 있었다. 한 번의 실수가 목숨을 잃는다는 두려움이 들었다. 극복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아는 것만큼 몸이 움직여주지 않았다. 물론 사상자가 나오지 않기 위해 준비를 한다.

 몬스터토벌이 현장이기는 하지만 엄연히 실습이었다. 실습을 하는 이유는 정신적 성장과 육체적 경험을 얻기 위한 방법일 뿐이기에 너무 위험한 일을 시키지는 않는다.

 특히 기사수련생의 뒤를 봐주기 위해서 정식기사 10명이 참관을 했다. 정식기사가 되려면 최소한 오러 익스퍼트에 올라야 한다. 정식기사들의 실력은 오크들 20마리를 혼자서 벤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가르딘의 속한 조의 조장인 바티안이 성급하게 오크들을 행해 돌진을 했기 때문이다. 바티안은 상급귀족의 자제였다.

 평소 행동이 오만하고, 타인을 무시하기는 하지만 실력 만큼에 탑클래스에 속하는 우등생이었다. 조장이 된 것도 순전히 실력이 뛰어나기에 된 것이다. 그렇지만 단 한 번도 실적을 경험해 보지 않은 우물 안 개구리였다.

 실전이 결여되었고, 경험이 부족한 바티안은 주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당황해서 성급한 결정을 하고 말았다.

 오크들도 제법 머리가 있었다. 바티안이 오크들을 죽이면서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았는지 광기를 보이며 앞으로 나가자 기사수련생들이 줄줄이 그를 따랐다. 가르딘도 여기서 떨어질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들어갔는데, 오크들이 가르딘을 포함한 기사수련생을 포위하는 격이 되어버렸다.

 앞으로 돌진하자 안을 열어주고, 그 양옆으로 동그랗게 원을 그리는 상황이었다. 빼도 박도 못하게 된 상황이었다. 어디를 돌아봐도 흉악한 오크들이 더러운 침을 흘리고 있었다.

 기사가 되기 위해 수년 동안 열심히 수련했건만 이런데서 죽는다고 생각하자 억울했다.

 “젠장! 이렇게 죽기는 싫은데.”

 가르딘은 짜증이 치밀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엄한 놈 옆에 있으면 잘못하다 죽는다는 것을 마지막이 되어야 깨달았다. 만약 살아난다면 앞에서 설치는 놈 옆에는 절대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저 자신의 안위를 가장 먼저 돌보고, 평안하게 사는 것을 지향하겠다고 말이다.

 삽시간에 공포가 휩쓸고 가자 기사수련생들 대부분이 겁에 질렸다. 100마리나 되는 오크들이 징그러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침을 흘렸다. 놈들은 눈에는 공포가 없는 것 같았다. 기사 수련생들이 맛있는 먹잇감으로 보였는지 지체하지 않고 달려들었다.

 먹이를 노리는 몬스터들은 더욱더 살벌했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덤벼드니 막기도 힘들었다.

 가르딘의 일검이 오크의 머리를 찔렀다.

 일격필살의 의지를 담았다. 이것 아니면 죽는다는 악발이 근성이었다. 오크의 눈을 파고들어 뒤통수를 검이 나온 상황이었다. 한 마리를 끝냈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가르딘은 위기를 맞았다.

 반격할 수 없는 사각에서 다른 오크가 달려들었다. 가르딘은 검을 다시 빼서 막으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오크의 근육이 너무 질겨 검이 빠지지가 않았다.

 쿠우웅!

 오크가 휘두른 몽둥이에 왼팔을 맞은 가르딘은 정신이 아찔했다. 오크가 휘두르는 힘은 보통이 아니었다. 가르딘의 몸이 허공으로 2미터나 떠오르다가 바닥으로 추락했다. 볼품없이 지면을 구른 가르딘은 신음성을 내질렀다.

 ‘크윽!’

 우드드득!

 왼팔이 부러지고, 갈비뼈까지 충격을 받았는지 가르딘의 몸이 기우뚱했다. 가르딘은 이렇게 죽는다고 생각했다. 오크들의 간식으로 잡혀먹을지 모른다는 공포가 들자 다리에 힘이 빠졌다. 마치 바닥이 흐물거려 허공에 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 느낌이 실제였다.

 바닥이 모래성처럼 기울어졌다.

 ‘어어!’

 서 있는 땅이 힘없이 무너지더니 구멍이 생겨버렸다. 밟고 있던 곳이 텅 빈 공간이 되자 가르딘의 몸이 아래로 떨어져 내려갔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부러지지 않은 오른팔과 발로 발버둥을 쳤지만 잡을 만한 것이 없었다.

 “이런...제기랄!”

 다른 기사수련생들은 가르딘이 구덩이에 빠진 것을 알지 못했다. 오크들의 공격을 방어하는 데에 정신이 팔려 있었기 때문에 가르딘에게 신경을 쓸 형편이 되지 못했다.

 구덩이로 미끄러지면서 떨어진 가르딘이었다.

 다행히 흙이 완충역할을 해서 떨어져 죽지는 않았지만 왼팔이 부러지고, 체력까지 모두 소진된 상태라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일단 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떨어진 곳을 벗어나기 위해 이리저리 흙을 밀어내며 기어갔다. 10분정도 기어가자 다행히 공터가 나왔다.

 공터의 내부는 생각보다 어둡지 않았다. 공터의 주변 동굴 벽 사이로 3개의 보석이 빛을 발하고 있어 사물을 구별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빛을 발하는 것이 신기하기는 하지만 그것보다는 빠져나갈 곳을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며 둘러보았다.

 공터를 살피다가 가르딘은 시신과 더불어 금속으로 된 판을 발견했다. 왜 이곳에 시신이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처럼 굴러 떨어져서 죽었을 것이라 생각하자 오싹했다.

 조금만 건드려도 부서지는 시신과는 다르게 금속판은 신기한 느낌을 주었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금속판을 만진다고 위험해진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기에 주저하지 않고 손을 대었다.

 상황이 촉박하고 위기에 몰리다 보니 다른 것을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신중하게 생각했다면 한순간 자신을 끄는 무언가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금속판을 잡자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섬광이 번쩍하는 충격과 함께 발끝에서 머리까지 충격을 받았다. 가르딘이 몸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정신을 잃은 가르딘은 잠을 청하는 것처럼 조용히 숨을 쉬었다.

 하루 동안 꼬박 저인을 잃고 쓰러진 가르딘은 자신의 머릿속으로 들어온 신기한 사념이 느껴졌다. 가르딘이 아는 것과는 전혀 다른 지식과 생각이었다.

 금속판에 들어 있던 사념이 가르딘의 사념과 뒤섞이며 융합이 되었다. 그러자 알 수 없는 단어들이 조합을 이루어가면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자리만 잡는 것이 아니었다. 금속판에 남겨진 사념과 지식이 가르딘의 지식에 커다란 힘을 보태주고 있었다.

 가르딘은 생각을 멈추지 않고 조합을 이루어내었다. 사실 멈추고 싶어도 이미 멈출 수 없는 단계였다. 사념 스스로 가르딘의 사념을 조종했다고 보는 것이 맞았다.

 -천공무상신공.

 용의 신공이라고 불리는 무상신공은 하늘과 소통하고, 땅의 기운을 한곳에 모아 세상의 조화를 이루어 나가는 신공이다. 무상의 신공을 극성으로 이룩한다면 능히 신인이라고 불 릴 수 있을 것이다.

 -무극칠검식.

 무극칠검식에서 중요하게 알아두어야 할 점은 바로 극한의 인내력이다. 무극이라는 말은 하늘의 끝을 벗어나 세상의 모든 것들을 이겨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삼라만상 의 오의를 검으로 표현해 냈을 때, 무극칠검식은 능히 천하제일검이라 불릴 것이다.

 -섬전보, 섬전행.

 삼전보와 섬전행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신법이며, 보법이다. 서로의 구

 분이 없이 몸 자체가 쓰로 이어져 나갈 때 신형은 이미 빛을 가를 것이다.

 -연자는 놀랐을 것이다. 나는 무림에서 활동할 당시 신마라는 사람이다. 어렸을 적부터 무공을 좋아했고, 무공의 틀은 깨기를 원했다. 그래서 끊임없이 무공을 연구했다. 세상과

 는 다른 나만의 무공을 완성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무공이 일정 수준에 올라 무림행을 했

 고, 무림행으로 인해 천무라는 별호를 얻었었다. 하지만 무림은 또 다른 강자를 원하지 않

 았다. 나의 강함을 시기했는지, 하지도 않은 일로 인해 무림공적이 되어버렸다. 무림공적

 은 무서운 일이었다. 홀로 강해봤자. 강호 전체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한줌의 먼지라는 것 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공적이 된 순간부터 나는 살기 위해 무인들을 도륙했다. 한순간 인 정을 베풀었지만 소용없었다. 무인들을 도륙했다. 한순간 인정을 베풀었지만 소용없었다.

 무인들은 나의 인정을 전혀 고려해 주지 않았다. 억울하지만 상황은 악화가 될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잠적했다. 무림의 천라지망을 가까스로 피해 숨은 것이다. 20년이 지나 세상

 에 다시 나왔다. 나는 이때부터 신마가 되었다. 세상을 향해 나는 복수의 칼을 들이밀었

 다. 정, 사, 마를 가리지 않고, 나를 죽음으로 내몬 자들을 인정사정없이 도륙했다. 시체

  가 시산혈해를 이루었고, 핏물이 흘러 산을 뒤덮었다. 강호의 어느 누구도 나의 무력을

 막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하늘도 나의 혈행을 두고 볼 수 없었는지, 내 앞을 가로막았다.

 천기자라고 불리는 인물이 하늘을 역행하는 나의 소행을 막기 위해 하나의 진을 만들었

 다.

 -역천무한진

 나의 무력은 강호의 십대고수가 모두 덤빈다고 해도 이겨낼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런 나 에게 진법은 우스운 상대일 뿐이었다. 만만히 본 나는 역천무한진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후회했다. 역천무한진을 뚫고 나갈 수 없는 진이었다. 기력이 빠지 는 마지막 순간 나는 남아 있는 모든 힘을 다해 무극칠검식을 휘둘렀다. 그런데 그때 공

 간이 갈라지고 열려진 공간으로 내가 빨려 들어가 버렸다. 동굴의 공토 안으로 들어온 나 는 진에서 빠져나왔다는 희망보다 선천진기까지 모두 소모한 내 몸이 죽어간다는 것을 먼 저 느껴야 했다. 마지막이 되자 나는 지나온 삶을 후회했다.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는 다는 것을 말이다. 만약 나의사년을 이은자가 있다면 후회 없이 자신의 길을 행복하게 살

 기 바란다.

 이계의 무공과 신마라는 사람의 사념이었다.

 금속판에 남겨진 사념덩어리가 모두 가르딘의 기억 속으로 들어갔다. 세상을 혼란스럽게 할 정도로 대단한 무공이었다. 또한 신마의 마지막 말은 충분히 공감이 갔다. 세상을 위해 해악을 끼치지도 않겠지만 영웅이 되겠다는 생각도 버렸다.

 오로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했다.

 팔이 부러진 상태에서 동굴 밖으로 나오는 것은 어려웠다. 어렵다고 생명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발악을 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여기서 얻은 지식을 써보기도 전에 죽는 것은 너무 억울한 일이었다.

 부러지지 않은 오른팔과 다리로 이곳저곳을 팠다. 다행히 흙이 단단하지 않아서 파고 나올 수는 있었다. 간신히 밖으로 나온 가르딘은 즉시 기사수련생들이 있는 곳을 찾았다. 하루가 지나서 가르딘은 킹덤나이트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날 하루가 백년처럼 느껴졌다.

 킹덤나이트로 돌아온 가르딘은 남몰래 천룡무상신공과 무극칠검식, 섬전보, 섬전행을 수련했다. 천룡무상신공은 이 세상의 어떤 마나심법보다 뛰어났다. 수련시간이 짧은데도 불구하고 남들보다 몇 배에 달하는 성취를 얻어냈다. 

 시간이 지날수록 급속하게 성장한 가르딘은 어느새 벽을 넘어버렸다. 고작 4년 만에 오러 마스터의 경지에 올라섰다. 오러 마스터의 올랐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성취였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지 않고 부단히 노력했다. 강해질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에 무섭도록 매진한 가르딘이었다.

 킹덤나이트에서 졸업하는 순간까지 실력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황실기사단에 들어가는 데는 부족하지 않았다. 남들에게 보인 가르딘의 실력은 오러 익스퍼트 중급이었다.

 확실히 그 나이 또래에서 실력이 대단한 편이었다. 그렇지만 그 정도의 실력자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같은 동기 중에 5명이 있었고, 함께 황실기사단에 들어갈 수 있었다.

 24살의 나이에 명예로운 황실기사단에 들어간 가르딘이었다. 이제는 누구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그렇다고 황실기사단들 중에 아주 뛰어나거나 아주 형편없는 편은 아니었다.

  그저 중간적인 위치를 고수하고 있었다.

 가르딘이 수도에서 생활하면서 느낀 것을 뛰어날수록 적이 많다는 것이다. 괜히 실력을 선보여 여러 곳에서 눈독을 들이게 될 경우 나중에는 빼도 박도 못하게 된다. 그저 물에 술 탄 듯 술에 물 탄 듯 흘러가는 대로 눈치를 잘 보고, 시류를 잘 타야 했다.

 권력이 집중될 것 같은 자들에게는 아부를 하고, 굽실거리며, 위험분자들에게는 평범하게 보여 관심의 대상에서 제외되도록 하는 게 오래 사는 비결이었다.

 24살 때부터 38살이 될 때까지 가르딘은 수많은 전투를 벌였다. 황실기사단이 전투에 참여한 것은 주변 강대국인 코카 제국 때문이었다. 기사단과 기사단 대결과, 일반병사들과의 대결, 공선전을 비롯한 대규모의 대전 등 다양한 전투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다.

 물론 가진 실력을 다 드러내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을 했다. 가급적 강한 상대에게는 다가가지 않고, 만만한 녀석들만 힘겹게 처리를 했다. 될 수 있으면 기사단 체면 깎이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넘어가도록 보여주었다.

 그리고 4년 전에 전쟁이 끝났다. 전쟁을 벌인 코카 제국과는 협상을 벌여 휴전을 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관계는 좋지 않았다. 코카 제국과의 전쟁으로 실전경험을 많이 하게 된 가르딘은 비약적으로 실력이 상승해서 이제 와서는 대륙제일의 검사였던 카이로만 대제의 경지에 버금가 있었다.

 일명 그랜드 마스터라는 지고의 경지를 개척했다. 사실 당시의 카이로만 대제의 실력을 훨씬 추월했을지도 몰랐다. 비교대상이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하지만 이것보다 중요한 일생의 전환이 있었다.

 가르딘이 결혼을 한 것이다. 가르딘의 결혼 상대는 평민이었다. 가르딘의 신분이 하위귀족 중에서도 가장 힘이 없는 영지의 세 번째 자손이기는 하지만 엄연히 귀족이었다. 귀족이 평민과 혼례를 치른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이 혼인은 축복받지 못했다. 가문의 호적에서 파 버린다는 가르딘의 아버지 오브라이언 남작이었다. 가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혼인한 가르딘은 영지에 절대 찾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어차피 가문에서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 자식이었기에 불만은 없었다.

 불운하게 보이는 결혼이었지만 정작 당사자인 가르딘은 너무 행복하고 기뻤다. 아내인 라이나는 가르딘이 보기에 가장 아름다웠다. 물론 객관적인 사실은 많이 다르다. 라이나가 대륙제일 미인이나 엘프와 비견된다는 것은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려는 평범한 여인이었다.

 처음에는 가르딘이 귀족이기에 거리를 두었지만 진심을 알자 가르딘 앞에서 건드러지는 말투와 애교가 장난 아니었다. 가르딘이 먼저 그녀에게 청혼하면서 평생 함께 있고 싶다고 했을 정도니 눈에 콩깍지가 제대로 씌웠다고 볼 수 있었다. 

 황실기사단의 기사와 평민과의 결혼은 절대 평범하지 않았지만 서로의 사랑으로 극복했다.

 가르딘과 라이나의 금술이 어찌나 좋은지 혼인하자마자 아이를 낳고 잘 길렀다. 태어난 아이를 브리안이라 이름 짓고, 아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주는 팔불출 아버지가 되었다.

 수도 오스란의 황궁.

 황궁의 거대한 정문으로 중년인이 들어가고 있었다. 중년인이라고 하지만 피부가 너무 좋아서 삼십을 약간 넘은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빛이 밝아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찬연한 은빛색의 갑옷.

 당당하게 벌어진 갑옷의 정면으로 새겨진 피닉스의 우렁찬 날개짓이 보통 기사단의 정복이 아니었다. 중년의 기사가 정문으로 들어가려 하자 황궁을 지키는 병사들이 알아보고 즉시 인사를 했다.

 중년인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면 병사들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만면에 미소를 짓는 중년기사는 옆집 아저씨와 같은 느낌을 주었다.

 “가드린 기사님! 안녕하십니까!”

 “그래, 그래, 수고가 많군. 랄프! 자네 아들도 잘 자라고 있나?”

 “물론입니다. 어찌나 젖을 잘 무는지 보는 제가 다 배가 고릅니다.”

 “허허, 그런가! 내 딸도 아주 쑥쑥 잘 자라고 있지, 어찌나 예쁜지 지금도 카이로만 제국에서 2번째로 예쁘다네, 물론 내 아내가 가장 아름답고 말이지.”

 아내 자랑과 딸 자랑을 거침없이 하고 난 후 사람 좋은 웃음을 선보이며 지나가는 가르딘이었다. 가르딘이 지나가고 나자 황실수비대의 랄프를 비롯한 수문병들은 저마다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가르딘 기사님은 뭐가 저렇게 좋을까?”

 “그러게 말이야, 아내 자랑, 딸 자랑에 웃음을 달고 사시니, 아직도 이해가 안 돼, 대륙제일의 기사단이라고 평가받는 피닉스기사단의 기사이시면서 어떻게 평민이랑 결혼했지?”

 “쉭! 자네들 말조심 해! 만약 가르딘 기사님 앞에서 그런 소리했다가는 어떤 꼴 당하는 줄 몰라!”

 필스가 다들 입조심 하라고 했다.

 가그린은 다른 것은 다 참아도 아내와 딸에 대한 험담 비슷한 것이라도 했다가는 절대 가만두지 않는 성격이었다.

 그에게 있어 지금의 가정, 즉 아내와 딸은 인생을 살아가는 원동력이자 모든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예전에 한 병사가 주제도 모르고, 입을 나불대다가 갑작스럽게 나타난 가르딘의 주먹 앞에 빵가루가 되도록 맞았다.

 당시에 보여준 가르딘의 모습은 맘씨 좋은 옆집 아저씨가 아니었다. 마신을 방불케 했다. 그때를 생각한 수문병들은 오싹한 한기를 맛보아야 했다.

 가르딘이 피닉스기사단으로 가는 도중에 단장인 스베인파스트론 공작을 보게 되었다. 파르트론 공작은 오러 마스터이며, 대륙제일의 기사였다. 나이가 61살이나 되었지만 아직도 40대로 보일 정도로 굳건한 체격과 완고한 인상을 풍기는 전형적인 기사였다.

 카이로만에 존재하는 5명의 오러 마스터 중에 한 명이기도 하다.

 가르딘은 파스트론 공작이 기사단에 모습을 보이자 그전까지 느긋하게 걸어오던 폼을 고쳤다. 빳빳하게 각을 세우고, 의젓한 모습을 보였다.

 전형적인 기사의 모습을 갖추 가르딘이 곧장 파스트론 공작에게 다가가서 기사의 예를 갖췄다. 정중하면서도 각이 서린 인사. 기사의 정식인사를 가장 정확하게 구현했다.

 기사수련생들이 있다면 여기 와서 인사하는 모습을 지켜보라고 한 번 말 해 주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파스트론 단장님께 가르딘이 인사드립니다!”

 목소리에는 박력이 서려지고, 눈에서는 하늘을 불태울 것 같은 열기를 내포하고 있었다.

 가르딘의 진면목을 모르는 파스트론 공작은 지금 이 모습이 가르딘의 진짜인 줄 착각하고 있었다.

 “그래, 잘 하고 있군. 기사단에 가는 중이니 같이 가세나!”

 “영광입니다.”

 가르딘은 상당히 경직되어 있었다. 만전을 기하고 잇는 것처럼 보이는 가르딘이었지만 사실 파스트론 공작이 부담스러웠다. 너무 딱딱하고, 기사의 율법을 목숨처럼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고지식하며 주관으로 똘똘 뭉쳐 있는 사람이기에 평소의 유들유들한 말투를 쓸 수 없는 대상이기도 했다.

 가르딘이 어려워하는 이유가 또 있었다.

 그는 대륙제일의 기사인 파스트론 공작이었다. 공작의 말 한 마다면, 자신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 있었다. 물론 파스트론 공작은 일을 행함에 있어 신중하며, 사견으로 수하를 내치는 인물은 아니었다.

 물론 가르딘도 죽으라고 해서 당연하게 목을 내놓는 충성스러운 기사도 아니었다. 아마 죽이려고 하면 먼저 검을 들이댈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떤 짓도 서슴없이 할 인간이었다.

 “당시에 자네의 결혼은 인상적이었네.”

 “감사합니다. 단장님! 저도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파스트론 공작은 피닉스기사단 내의 기사단원들의 개개인 신상명세를 다 기억하고 있었다. 300명이나 되는 기사단원들을 일일이 기억하는 일이 쉽지 않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생각했다.

 “딸도 있다면서.”

 “그렇습니다. 단장님!”

 “좋군, 가정이 화목해야 큰일을 할 수 있는 거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파스트론 공작과 말을 하는 동안 피닉스기사단이 머물고 있는 곳에 도착했다. 기사단에 도착한 파스트론 공작은 즉시 기사단장 집무실에 들어갔다.

 반면에 가르딘은 숨을 한 번 몰아쉬고, 동료들에게 다가갔다. 아침의 가벼운 수다는 하루의 일과를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활력소였다. 가르딘이 가는 방향에 수다 4인방 멤버가 버티고 있었다. 금세 신색을 회복한 가르딘이 동료들과 반갑게 인사를 했다.

 “자네 휴가는 잘 갔다 왔나?”

 반갑게 맞아주는 이들은 킹덤나이트 동기인 필리언, 유타, 갈라였다. 그들은 기사단에 들어올 때부터 같이 생활해 온 친구들이었다. 처음에 5명이 들어왔었는데, 2명이 전투에서 숨을 거두는 바람에 3명만 남게 되었다.

 죽으면 그걸로 끝이었다. 더 이상 위로해 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다. 살아서 재밌게 살아야 그것이 인생이었다. 다만 살아가면서 가끔씩 같이 했던 것들이 떠올린 뿐이다.

 “물론이지, 라이나와 브리안의 애교에 내 마음이 다 녹는 줄 알았네.”

 “너무 그러지 마라. 늦게 배운 도둑질이 큰일 낸다고, 너 너무 오버하는 거야!”

 “무슨 소리야, 내 아내와 딸은 대륙제일의 미인들이라고!”

 “허허!”

 어이없다는 듯이 웃는 필리언과 유타, 갈라였다. 사실 가르딘은 늦은 나이에 혼인을 했다. 31살에 했으니 다른 사람들과는 무려 10년이나 차이가 나는 경우였다.

 “그건 그거고, 오늘 무슨 일 있냐? 오다가 파스트론 단장님을 봤는데 말이야1”

 “이번에 공주님께서 라이니언 대교단에 성지순례를 겸해 예배를 드리러 간다더군.”

 “주신 라이니언이시라면, 수도에도 교단이 있잖아, 그런 일에 우리가 뭐가 필요하다고!‘

 미드라이언 대륙의 탄생과 기원의 신인 라이니언은 모든 제국과 왕국, 공국에서 믿는 주신이었다. 대륙을 구성하는 3개의 제국 중에 라이니언 신성제국의 군사력이 가장 약하지만 어느 누구도 침범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주신 라이니언 때문이었다.

 그만큼 모둔 대륙인들에게 라이니언은 가장 숭배 시 되는 신이었다. 신을 모욕하면, 재앙이 내린다는 사람들의 두려움이 한몫 하기도 했다.

 “그게 문제가 아니야, 이번에 성년이 되시는 공주님께서 신성제국의 대교단에서 성인식을 하게 되기 때문이야!”

  카이로만 제국 공주의 성인식은 이미 한 달 전에 치러졌다. 그런데 다시 신성제국에서 성스러운 인증을 받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사실 말이 좋아 인증이지, 공주의 가치를 상승시키기 위한 방책일 뿐이었다. 모든 대륙인들에게 공주의 가치를 인식시키려고 하는 것이었다.

 굳이 다시 공주의 성인식을 하는 이유는 경쟁국인 코카 제국의 공주가 신성제국에서 성스러운 인증을 받았기 때문이다. 카이로만 제국으로서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신성제국까지 파견할 기사를 구성한다던데.”

 “정말! 난 장기출장은 안 되는데, 아직 아내하고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하지 못한 것 투성이인데!”

 가르딘은 정말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결혼을 하고 나서 가급적 멀리 가는 일은 자제하고 있었던 가르딘이었기에 이번에 파견될지 몰랐다. 계속 핑계를 대며 미룰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던 것이다. 신혼이라는 약발은 이미 떨어진 지 오래였다. 물론 고위층에서 이런 사실을 안다면 헛구역질을 심하게 할지 몰랐다.

 “갈 사람들 많이 있겠지.”

 “물론이지, 대륙제일미라 불리는 공주님의 호위이니 젊은 녀석들이 너도나도 가려고 난리도 아니야!”

 대륙에 퍼진 영웅들의 이야기에서 항상 들어가는 내용이 바로 공주였다. 공주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전쟁에 임하는 영웅들의 이야기들, 모든 기사들의 로망이 아닐 수 없었다. 다만 이미 산전수전 다 겪은 가르딘에게 그런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헛소리에 불과했다. 

 가르딘이 생각하는 공주는 절대 기사들의 로망이 될 수 없는 존재다.

 황실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공주는 정략적인 결혼을 한다. 그 대상에서 기사라는 직위는 하등 쓸모없는 쓰레기 취급한다. 최소한 공작, 아니면 타 제국이나 왕국의 왕자 정도는 돼야 공주의 배우자로 선택이 된다. 더군다나 카이로만 제국은 대륙제일의 강국이었다.

 제국의 공주가 일개 기사와 결혼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다들 환상에서 벗어나라고 하고 싶었다.

 제국의 공주가 일개 기사와 결혼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다들 환상에서 벗어나라고 하고 싶었다.

 뭐, 아주 없는 일은 아니지만 오러 마스터 최상급에 이르면 약간이나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대륙에서도 최상급마스터는 아직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다.

 가르딘은 다른 기사들에게 꿈 깨라고 하고 싶었다.

 ‘미쳤냐. 공주하고 얽히면 다른 세력들이 가만히 둘 것 같아!;

 정작 중요한 이유는 공주와의 혼인이 이루어진다는 소문만으로도 언제어디서 죽을지 모르는 살얼음판을 걸어야 한다. 말이 좋아 부마지, 죽으면 소용없는 자리였다. 특히 배경없는 자신 같은 기사들은 그야말로 칼날위에 선 상황이 된다.

 “나는 빠지고 싶은데.”

 가르딘의말에 필리언이 히죽거렸다.

 “그럴 수 없을 걸, 단장님은 공정한 분이라는 것 알지, 지금까지 파견에 나가지 않은 자들 중에 한 명을 선임자로 해서 신참들을 끼워 넣을 생각이시네, 그 대상 1순위가 자네라는 데에 내가 10골드 걸지.”

 ‘윽!’

 필리언의 결정타에 급소를 맞은 것처럼 가르딘이 휘청거렸다.

 “아! 내 사랑 라이나! 근 한 달 동안 당신을 못 보게 될지도 모른다니. 이 무슨 통곡할 일인가!” 

 “저!, 저...저! 미친놈! 네가 아직도 신혼이냐?”

 “너 결혼한 지 벌써 7년이야! 권태기가 왔어도 이미 왔어야 정상이라고!”

 유타와 갈라가 한심하다는 듯이 가르딘에게 빈정거렸다. 자신들도 혼인한 지 벌써 10년이 넘어 20년이 다 되가 가고 있었다. 아내가 ㅤㅅㅏㅀ은 것은 아니지만 저 정도는 아니었다. 아주 중증의 병이었다. 솔직히 저 병에 옮을까 봐 무서울 지경이다.

 “너 의처증 있는 것 아니냐?”

 “어허! 유타! 그런 소리 하는 거 아니야, 내 아내를 보고서도 그런 말을 해! 요즘 들어 젊은것들이 보는 눈이 있다고 내 아내에게 찝쩍거리는데, 하! 미인은 역시 피곤한 건가 봐! 반드시 내가 충족을 시켜줘야 해!”

 마치 신성한 의무라는 듯한 가르딘의 말에 할 말이 없는 세 친구들이었다.

 고대 신기 중에 하나인 카오스아머라는 전설적인 갑옷이 있었다. 어떤 무기도 뚫을 수 없는 무결점의 방어갑옷이라고 평가를 받았다. 그런 카오스아머에 완전히 씌웠는지 가르딘에게 어떤 말도 통하지 않았다.

 새삼 가르딘이 두렵기까지 했다. 저 미친놈하고 같이 어울리고 있는자신들이 대단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이! 가르딘!”

 “부...단장님!”

 조르크 바자바인 백작이었다.

 피닉스기사단의 부단장이자 오러 마스터에 오른 절대검사였다. 반면에 파스트론 공작과 다르게 유등유들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사교형 인물이었다. 또한 가르딘과 마음이 가장 잘 맞는 인물이기도 했다.

 유사인종은 서로 통하는 면이 있지만 너무 잘 알아서 탈이 나기도 한다.

 “오랜만에 보니 얼굴이 활짝 폈는걸!”

 “그런 말씀 마십시오, 지금 심각한 상황입니다!”

 “그것보다 자네 축하하네.”

 “예? 무슨 말씀이신지?”

 가르딘은 갑자기 와서 축하한다는 바자바인 부단장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가르딘이 굴리지 않아 녹슬고 있는 머리를 굴려보았다. 축하한다는 말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서 말이다. 평소 생각을 귀찮게 여기는 가르딘의 짱돌이 맹렬하게 회전했다.

 ‘축하, 그럼 난 공주의 경호에 빠지는 건가?’

 축하받을 수 있는 경우는 방금 생각한 것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바자바인 부단장은 그런 가르딘의 예상을 뒤집었다.

 “아름다운 공주님의 경호총책임자로 자네가 뽑혔네!”

 “예? 왜 제가 책임자입니까? 그런 중대한 일은 단장님이나 부단장님이 하시는 게 맞지 않습니까!” 

 사실 기사에게 책임자로 선택되는 일은 영광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실상 문제가 일어나면 모든 책임은 책임자에게 간다. 그것이 어떤 문제이건 말이다. 만약 일이 잘못되어 뒤틀어지게 되면 살아남는 건 고사하고, 가족들까지 위험할 수 있는 일이었다.

 “허허! 자네 너무 겸손하군.”

 ‘겸손은 무슨!’

 “아닙니다. 저는 아직 일천합니다. 여기 필리언이나, 유타, 갈라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놈들 시키란 말이야!’

 철저히 속마음을 숨긴 채 간절히 주신 라이니언에게 기도하는 가르딘이었다.

 ‘제발, 라이니언 님. 제 소원을 들어주십시오!’

 “자네 정말 겸손하군, 친구들에게 공을 떠넘기려고 하다니 기사들의 표본이야! ㄱ런 자네이기에 선택을 한 것이네, 내가 강력 추천해서 자네가 된 거니 부디 내 성의를 무시하지 말게!”

 “아! 감...사합니다. 영광으로 알겠습니다! 정말 충심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어떤 역경이 일어나도 모든 시련을 이겨낼 자신이 있습니다!”

 ‘제기랄!’

 가르딘은 생각과 다르게 온갖 미사여구를 다 갖다 붙여서 사명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차피 바자바인 부단장도 가르딘의 성격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이런 말을 해봤자 입에 발린 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고개를 끄덕여 수긍해 주었다.

 씨익!

 바자바인 백작은 능글맞게 미소를 지었다. 이미 가르딘의 속마음을 짐작하고 남았다. 자신과 같은 과인 가르딘의 생각을 모를 리 없었다.

 ‘자네 고생 좀 하게, 공주 성깔이 알려진 것과 다르게 보통이 아니야!’

 다른 녀석들과 다르게 가르딘은 놀려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렇다고 바자바인 부단장이 개인적인 사견으로 가르딘을 뽑은 것은 아니었다. 가르딘도 이제 기사단에게 적정한 나이가 되었고, 실력과 경험이 가장 많은 고참 중에 하나였다.

 바자바인 부단장이 보기에 가르딘은 뛰어난 기사였다. 실력적인 측면뿐 아니라 상황을 대처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전형적인 기사들은 틀에 박힌 자신의 주관을 그대로 유지하려고 한다. 사실 한 자리의 대표 격이 되기 위해서는 완고함보다는 정확한 상황파악과, 유연한 대처능력이 뛰어날 필요성이 있었다.

 가르딘이 약삭빠른 면이 있어서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황실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바자바인 부단장이 잠시 다른 생각을 할 때 비명이 들렸다.

 “아앗!”

 가르딘이 갑자기 옆구리가 아프다며 소리를 질렀다.

 “부단장님, 갈비뼈에 금이 갔는지 너무 아픕니다. 여기 저보다 건장하고 힘이 철철 넘치는 기사들이 많으니 그들 중에 한 명을 뽑는 것이 어떻습니까!”

 꾀병이라는 것이 너무 티가 났다. 건장하고 힘이 철철 넘치는 기사라니 대륙최강기사단이라고 불리는 피닉스기사단의 기사 중에서 힘이 없는 기사가 얼마나 되겠는가!

 그런 기사가 황실기사단에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가르딘의 어설픈 연기에 곳아줄 바자바인 부단장이 아니었다.

 “그런가, 어디 보자! 내가 잘 아는 교인이 있으니 신성력으로 금세 치료가 될 걸세!”

 “이익!”

 역시 쉽게 넘어가지 않는 바자바인 부단장이었다. 그러자 가르딘은 최후의 수단을 썼다. 사실 쓰기 싫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보니, 내일이 어머니 기일입니다. 아들 된 입장에서 어머니 기일은 찾아봬야 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이 됩니다만은!”

 “오호, 그런가! 내가 알기로 자네 어머니 기일은 4개월 전인 것으로 아는데!”

 ‘헙!’

 이 얼마나 놀라운 정보력인가!

 ‘아! 그치 한 번 써먹었구나!’

  잠시 착각을 한 가르딘은 자신의 머리를 저주했다. 전에 한 번 써먹은 것을 이제야 기억한 것이다. 요새 라이나와의 불타는 밤으로 인해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불타는 밤이 기억력 상실이라는 새로운 병을 낳고 있었다.

 입을 다문 가르딘이 다시 한 번 힘없이 말을 했다.

 “제가 잠시 착각했습니다. 아무래도 할아버님 기일인 것 같습니다!”

 “그건 7개월 전으로 알고 있네만!”

 “그럼, 아버님 기일.......”

 “자네 아무리 아버지가 싫다고 해도 살아 있는 사람을 죽은 것으로 하면 벌 받네!”

 이미 빼도 박도 못하게 된 가르딘의 얼굴은 울상이었다. 바자바인 부단장이 성의 없이 생활하는 것처럼 보여도 대단히 뛰어난 머리와 눈치를 가지고 있었다. 연륜과 경험 면에서 가르딘이 상대하기에 다른 누구보다 가장 까다로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르딘의 성향을 바자바인 부단장이 너무 잘 안다는 것이 문제였다. 역시 유사인종이었다. 어렇게 된 이상 최선을 다해 임무를 수행하는 방법뿐이었다. 일단 시작한 이상 대충하는 것은 위험했다.

 “제가... 최선을 다해 공주님을 모시겠습니다.”

 “그래, 내 자네를 믿겠네!”

 “물론입니다. 부... 단장님! 오늘 일을 깊이 새기겠습니다!”

 뿌득!

 이를 가는 가르딘이었지만 바자바인은 못 들은 척 필요한 말만 했다.

 “5일 뒤니, 그동안 아내하고 불타는 밤 잘 보내게나!”

 할 말 다하고 나니 쌔앵 하고 사라졌다. 남겨진 가르딘은 공허함을 느껴야 했다. 험난한 여정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가르딘이 오늘 한숨을 여러 번 쉬게 되었다.

 이번 공주의 순례를 원활하게 마치기 위해서 기사 30명과 더불어서 일반병사들 100명이 파견되기로 결정이 되었다. 사실 피닉스기사단 30명이면 다른 여타의 기사단 전체가 덤벼도 초전박살 낼 정도로 대단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

 제국의 기사들 중에서 고르고 고른 인재들이니 당연한 소리였다.

 터벅! 터벅!

 가르딘은 오늘 할 일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오늘따라 걸음걸이에 힘이 없고, 무거웠다.

 “제기랄, 하필이면 그 먼 신성제국까지 가야 된단 말이지!”

 신성제국에서도 대교단은 그 중심에 있었다. 멀고 먼 여정이 아닐 수 없었다. 밤길을 홀로 걷는 중년의 고독함 묻어나오는 가르딘이었다.

 라이나 없이 한 달 이상이나 홀로 밤을 지새우는 것이 너무 무서웠다. 그만큼 가르딘은 라이나에게 중독이 되어 있었다. 라이나는 같이 살면 살수록 우러나오는 진국이었다. 신마의 사념에서 읽었던, 내미지상의 여인이 바로 라이나였다.

 같이 있을수록 빠져나갈 수 없는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고뇌와 번민, 고민을 하면서도 발은 저절로 아내가 머물고 있는 집으로 향했다. 아내는 오스란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처음 아내가 일을 계속한다고 했을 때 반대를 했었다.

 피닉스기사단의 기사월급은 10골드나 되었다. 일반 평민이 1년 동안 일을 해도 10골드를 벌 수 없다.

 그 정도면 호화로운 귀족처럼 살지는 못해도 넉넉하고 풍족하게 생활할 수 있었다. 하지만 라이나가 끝까지 일을 하겠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허락을 했다. 라이나가 하고 싶어하는 일을 굳이 못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편안함이 머무는 푸른 집(편머푸).

 “이거 안 놔!”

 “왜이래, 술 좀 따르라는데 왜 이렇게 빼는 거야!”

 “이런 미친놈을 봤나, 내가 네놈보다 5살은 더 먹었겠다. 어디서 누나한테 술을 따르라는 거야!”

 라이나의 걸쭉한 입담으로 인해 찰턴이 순간 멍했다. 생긴 것은 반반한데 말은 용병생활 수십 년을 경험한 백전용병이었다.

 가르딘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용병으로 보이는 놈이 라이나의 손목을 잡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가르딘의 눈에 브레스와 같은 불똥이 튀었다. 이미 가르딘의 몸은 용병의 바로 앞에 다가가 있었다.

 슈슈슉! 러어억!

 가르딘의 주먹이 불을 뿜었다. 단 한 방에 용병 놈의 면상을 날려버렸다. 그와 동시에 번개같이 달려들어 용병 놈을 무참하게 발로 밟았다. 누가 보건 말건 눈이 뒤집힌 가르딘이었다.

 그에게 있어 라이나는 생명 이상의 존재였다. 감히 뭣 같은 용병 놈이 호흡 한턱이라도 내뱉을 수 없는 고귀한 존재이기에 이 후한 무례한 놈을 절대로 살려 둘 수 없었다.

 퍼퍼퍼퍼퍼퍽!

 같이 술 마시러 온 용병들이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에 당황하다가 일어섰다. 하지만 그들은 감히 도발할 수 없었다. 가르딘이 입은 갑옷을 봤기 때문이다. 기사를 건드리는 것은 커다란 문제였다.

 더군다나 피닉스가 그려진 갑옷을 입은 기사는 황실기사단인 피닉스기사단이었다. 황실기사단을 건드렸다가 그냥 죽지도 못할 가능성이 컸다.

 신분을 생각하면 건드리지 못하는 것이 맞지만 용기 있는 용병들 중에서 따지는 놈이 있었다. 동료가 당하는데, 그냥 있을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대단한 용기를 낸 것도 대단한 일이었다. 불같이 화내는 가르딘의 표정을 흉신악살 수준이었다. 

 찔끔한 용병은 떨리는 몸을 추스르며 말을 이었다. 

 “왜 갑자기 찰턴을 때리는 것입니까?”

 휘익!

 “감히 뭣 같은 용병 놈들이 내 아내에게 손을 대, 나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 라이나를 건드리고 무사할 줄 알아!”

 “찰턴이 언제 그랬다는 거요!”

 그들이 보기에 찰턴은 그저 식당의 주인에게 술을 따르라고 했을 뿐이었다. 피닉스기사단의 기사가 설마 식당주인의 남편이라고 누가 감히 생각할 수 있는가! 상식적인 관계는 절대 아니었다.

 글썽!

 라이나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눈물을 글썽이며 처량한 표정을 지었다. 보고 있는 가드린의 마음에 기름을 붙는 격이었다. 

 “여보! 저...분이 갑자기 손을 잡는 바람에... 흑!흑!”

 부르르르르르!

 가르딘의 몸이 경련을 일으키는 것처럼 부들부들 떨렸다.

 “이 건방진 똥 덩어리가 감히 내 사랑하는 라이나의 손목을 잡고, 행패를 부렸다 이거지 도저히 참을 수 없네!”

  신파극을 보는 듯한 상황이었다.

 용병들은 순간 벙쪄 버렸다. 라이나의 돌변한 태도와 함께 광분하는 가르딘의 행동을 보고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가르딘의 무시무시한 투기를 정명으로 받은 용병들은 서 있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과연 피닉스기사단이구나!’

 단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몸이 떨리고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압박하는 기운이 점점 거세지자 동료들이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려고 할 때였다.

 “여보, 그만 해요, 저 이제 괜찮아요! 그 정도로 용서해 주세요!”

 “아이고!라이나는 어떻게 이렇게 마음씨도 고울까! 역시 우리 마누님은 천사라니까! 얼굴도 예쁘고 마음도 곱지! 난 정말 행운아야!”

 순식간에 살기가 사라져서 숨이 트인 용병들이었지만 가르딘의 닭살 돋는 말에 다시 얼어버렸다. 대패가 있다면 닭살을 다 밀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용병들은 저럴 수도 있는 것가라는 표정들이었다. 가르딘이 용병들을 돌아보았다.

 “빨리 꺼지는 게 좋을 거다, 두 다리로 걸어 다니고 싶으면 말이지.”

 “알...겠소이다!”

 용병들은 꽁지가 빠지게 식당에서 벗어났다. 가르딘이 팔불출이라는 것을 딱 봐서 알지만 그 실력까지 팔불출은 아닌 것 같았다. 용병이 기사를 이긴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방심하거나 경험이 적은 기사라면 모르겠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가르딘에게 통할 리가 없었다.

 후우우! 후우우!

 타다다다닥! 뚝닥! 뚝닥!

 “무슨 일 있어요?”

 “음, 있어, 한동안 나 출장가야 할 것 같아!”

 “출장이요! 어떻게 그런 일이!”

 “나도 어쩔 수 없다고, 빠져나가려고 해도 할 수가 없다니까! 초소 한 달, 아니 두 달은 족히 걸릴 것 같아!”

 “그치, 그치! 난 정말 미치겠다니까! 사랑스러운 당신을 두고 어떻게 하루하루 보낼지 걱정이란 말이야!”

 가르딘은 잘 벼루어진 부엌칼을 들고 열심히 요리를 하면서 불만거리를 라이나에게 고했다. 그날 있었던 일들을 이런 식으로 해소하는 가르딘이었다. 가르딘은 보통 집에서 요리랑 빨래, 청소 등을 도맡아서 한다. 식당일을 하는 라이나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것이다.

 다른 기사들을 봤으면 기절초풍할 일이다. 할 짓이 없어서 부엌일을 한다고 하거나 부인 놔두고 뭐 하는 짓이냐고 했을 것이다.

 기사 체면 다 깎아 먹고 있는 가르딘이었다. 그렇지만 정작 당사자인 가르딘은 마냥 행복했다. 화목하게 지내며 뭐든지 해주고 싶어 하는 것이야말로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불행한 과거지사가 모두 아버지의 무관심이라고 보았던 어린 시절의 기억때문인지도 몰랐다.

 거실의 가장자리에 놓인 푹신한 의자에 앉아서 라이나는 그저 가르딘의 말을 들어주고, 동의를 해주었다. 원래 라이나도 이렇게 있지 않으려고 했는데, 가르딘의 강력한 주장으로 앉아 있었다.

 “그런데 여보.”

 “왜, 자기?”

  “브리안도 이제 학교 갈 나이가 됐어요.”

 “벌써 그렇게 됐단 말이야, 이거 참 우리 딸이 갈 학교라면 당연히 오스라인이겠지.”

 “그렇지만 문제가 있어요?”

 “무슨 문젠데, 자기! 내가 얼마든지 다 해결해 줄께!”

 오스라인은 수도 오스란에서 아이들 교육에 지대한 공을 들이는 학교였다. 최신식 교육시설과, 가르치는 선생들 모두 초일류였다. 카이로만 제국 최고의 교육시설임에는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문제는 값이 너무 엄청났다. 1년 학비가 무려 100골드였다.

 아찔!

 이제까지 모자란 것 없이 생활했던 가르딘의 허리가 휘청거렸다. 아이들 교육비가 이 정도로 비싼지 처음 안 가르딘이었다. 그저 오스란에서 오스라인 학교가 가장 좋다는 말이 있어서 한 말인데, 정말 장난 아닌 교육비였다.

 황실기사단에서 꼬박 1년 동안 일한 돈을 고스란히 학비에 써야 한다. 또한 교육이 어떻게 1년으로 끝이 나는가! 최소 6년을 보내고, 그 뒤로 다시 4년을 더 해야 한다. 교육비는 학년이 높아질수록 교재 값과 실습비 명목으로 더 값이 오를 것이다.

 ‘이거 등골 휘겠는데, 그렇다고 안 보낼 수도 없고!’

 “지금 당장 돈은 모자라지 않아요, 그동안 당신과 살면서 번 돈은 다 저축했어요! 그래서 모아 논 돈이 600골드는 돼요!”

 “와!”

 가르딘이 탄성을 지를 만했다. 결혼하기 전까지는 그저 흥청망청 쓰며, 놀았기 때문에 돈이 남아나지 않았다. 또한 빚을 조금 지는 바람에 이자 갚는데 허리가 휜 적도 있었다. 그런데 결혼하면서 빚도 갚고, 돈도 저축한 것이다. 이것이 모두 라이나의 노력 때문이었다. 라이나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되었다.

 “우리 자기는 너무 절약정신이 투철하다니까! 역시 내 마누라라니까!”

 “그래도 더 벌어놔야 노후가 걱정 없어요, 이 정도 갖고는 택도 없다는 거 알죠. 하지만 걱정 마세요, 제가 더 열심히 장사할께요!”

 덥썩!

 사랑스러운 라이나의 몸을 꼭 끌어안은 가르딘이었다. 너무 사랑스러워서 그냥 둘 수 없었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라이나를 어찌 그냥 둘 수 있는가! 식사고 뭐고 방으로 빨리 들어가고 싶은 가르딘이었다.

 “빨리 밥 먹고, 불타ㅤㅌㅡㅌ 밤을 보내자고.”

 “아이, 부끄러워요!”

 얼굴을 붉히며 말을 하는 라이나의 내숭에 원 없이 빠져 버리는 가르딘이었다. 오랜 시간 볼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가르딘의 몸은 더 타올랐다. 가르딘은 드넓은 가슴을 활짝 열어 라이나를 받아들였다. 라이나도 가르딘의 품안으로 새털처럼 날아들었다.

 아침이 밝아왔다.

 아침이 너무 빨리 와서 서운한 가르딘이지만 부지런히 일어나기는 했다.

 “아빠!”

 “이 녀석! 이리 와서 넓은 아빠의 품에 안기렴.”

 어제는 밤이어서 브리안의 자는 모습만 볼 수 있었다. 아침이 되자 아이가 일어나서 달려왔다. 품에 안긴 브리안의 뺨에 뽀뽀해 주자 브리안도 뽀뽀를 했다.

 쪼옥! 쪼옥! 쪼옥!

 라이나가 보이자 가르딘이 이리 오라고 했다.

 “자기도 아침키스 하자고!”

  라이나와 브리안, 가르딘의 닭살 가정사가 끝이 나고 나서야 겨우 황궁으로 향하는 가르딘이었다. 오늘부터 출장을 위한 여러 가지 분비를 해야 한다. 그런 이유로 지금부터 출장이나 마찬가지였다. 황실에서 야근을 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가르딘은 정말 짜증이 났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 된다. 이유 없는 명령불복종은 기사단에서 제적과 동시에 불명예를 동시에 얻는다. 앞으로의 삶에 크나큰 고난이 남게 된다. 기사단에서 쪼ㅉ겨날 수 없는 가르딘은 가정을 위해 마음을 다잡았다.

 브리안의 커 가는 모습은 가르딘에게도 행복이었다. 딸아 이에게는 무조건 최고의 아빠가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돈이 너무 절실했다. ‘라이나가 가게에서 고생하는 것은 보고 싶지 않은데, 실력을 조금 보여주고 승진할까?’

 보통 기사단이라고 하지만 호봉이 존재했다. 오랫동안 기사생활을 하게 되면 자연히 월급이 올라간다. 처음 기사단에 들어왔을 때 5골드였던 것이 지금에 이르러 10골드가 된 것이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문제였다.

 더 이상 돈이 올라가지 않는다. 돈을 더 벌기 위해서는 승진해야 한다.

 ‘부단장 월급이 30골드니까 어떻게든 부단장까지 올라가야 하는데 말이야!’

 그렇다는 말은 위로 파스트론 공작과 바자바인 백작이 물러나야 한다는 소리였다.

 ‘그들이 물러날 리가 없는데, 그럼 내가 은퇴향 하나!’

 파스트론 공작은 특이한 경우였다. 이미 나이가 들고, 연퓬이 쌓이면 대부분 정치에 뛰어들거나 영지를 다스리는 데 매진하게 된다. 보통의 기사관례와 다르게 파스트론 공작은 여전히 검과 더불어 기사단을 조련하는데 힘을 쓰고 있었다.

 그래서 물러나는 것도 한 방법이었다. 피닉스기사단에서 작위를 가진 사람은 단장과 부단장뿐이다. 하지만 피닉스기사단에서 15년 이상 장기근무를 할 경우 보통 남작보다 높은 작위인 자작을 수여받을 수 있다.

 다들 피닉스기사단에서 장기간 복무하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실력이 있다면 부단장이나 단장이 될 수 있겠지만 최소한 오러 마스터가 되어야 했다. 반면에 실력을 보이면 주변세력이 가만히 두지 않는다. 그건 별로 마음에 안 들었다.

 정치권력의 암투는 보통 상상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잔인하다. 가족들을 인질로 잡는 것은 다반사였다. 솔직히 가족들과 같이 있으면 지킬 자신이 있지만 몸이 둘이 아니고서는 완벽하게 지켜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리고 보니 어느새 나도 15년이 되어 가는구나!’

 이번 출장만 무사히 마치면 물러나서 자작을 받을 수 있을지 몰랐다. 일단 황실기사단으로 제대를 하게 되면 작위와 더불어 영지까지 받을 수 있을지 몰랐다. 그런데 문제는 영지였다. 솔직히 가르딘은 영지를 잘 다스릴 자신이 없었다.

 머리가 복잡해지는 가르딘의 생각은 기사단에 도착을 하면서 멈추었다.

 가르딘은 기사단에서 생각을 할 시간이 없었다. 단장이 불러서 갔는데, 공주가 총책임자인 자신을 보고 싶다는 말을 전했기 때문이다. 곧바로 가르딘은 지금 공주가 머물고 있는 내궁으로 가야 했다. 누구 말인데 꼼지락거릴 수 있단 말인가!

 가르딘은 내궁에 마련된 화려한 장원을 보면서 공주를 기다렸다.

 “공주님, 총책임자인 가르딘 기사님을 모셔왔습니다.”

 “흥, 난 이번에 자유롭게 여행하고 싶었다고, 이게 뭐야! 기사들이 우글거리고, 재수 없게시리!”

 쌍스러운 말을 서슴없이 하는 아이시런 공주였다. 백옥 같은 피부와 앵두 같은 입술, 황금빛 머리카락, 완벽한 미인의 조건을 갖춘 여인의 입에서 나올 만한 말은 절대 아니었다.

 그녀의 성격이 아주 악독하거나 사악한 것은 아니지만 약간은 이중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남들이 안 볼 때는 시원스레 막말하는 여인이기도 했다. 그러나막상 다른 사람들이 많이 있을 때는 절대로 자신의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 결과 사람들은 공주의 환상에 사로잡혀 있게 되었다.

 ‘뭐야! 이거!’

 별궁 내부의 정원에 마련된 곳에서 공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던 가르딘은 조금 황당했다. 공주의 성격이 설마 했는데, 정말 좋게 말해 자유분방하고, 나쁘게 말해 막 나가는 년이었다. 

 상당히 멀리 있었고, 문까지 닫혀 있는 곳까지 소리를 듣는 것은 오러 마스터라고 해도 힘든 일이다. 그랜드 마스터에 이르면서 가르딘의 오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발달이 되어 있었다. 가르딘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자미 생각하다가 오감을 귀에 집중했다. 그리고 공주가 머물고 있는 방을 향해 귀를 기울였다. 집중하자 공주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정말 이번 여행 쉽게 않겠구나! 정직하게 여행했다가는 공주의 미움을 받겠는데.’

 공주는 일상의 답답한 생활패턴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런 공주를 호위의 목적으로 타이트하게 조이면 나중에 미움 받는 것은 자신이었다. 제국의 공주에게 미움 받고 멀쩡한 사람 별로 없을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공주의 마음에 드는 게 중요했다. 마음에 들게 하기 위해서는 공주가 원하는 여행을 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별 탈 없을 것 같았다.

 공주가 나오자 가르딘이 급히 무릎을 꿇고 예의를 갖추었다.

 “기사 가르딘! 제국의 꽃인 공주님은 뵙게 되어서 무한한 영광이옵니다!”

 아이시런 공주도 기품 있게 가르딘의 예를 받았다. 좀 전에 쌍스러운 말을 한 공주가 지금의 공주라고 말을 해도 믿을 사람 없을 정도로 완벽한 연기를 하고 있는 공주였다. 정말 여자의 내숭은 상상을 초월했다. 라이나도 내숭떠는 건데, 그건 모르는 가르딘이었다.

 “저도 반가워요.”

 아이시런이 총책임자를 부른 이유는 그의 성격을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얼굴은 마음의 거울이라고 하지 않는가. 생김새에 따라서 그 사람의 성격이 관철되기 마련이다. 물론 다 그렇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가르딘은 고개를 숙이고, 공주를 바라보지 않았다. 공주를 바라보는 것 자체가 무례가 될 수도 있었다. 무례한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리는 가르딘이었다.

 “고개를 드세요.”

 “영광입니다. 공주님!”

 말을 하자 고개를 들고 공주를 바라보는 가르딘이었다. 가르딘은 자신의 눈에 존경의 염을 담았다. 경외한다는 눈빛은 하도 많이 연습해서 일단 마음을 먹으면 그대로 반영이 되는 가르딘이었다.

 공주의 연기가 제법이기는 하지만 가르딘의 연기력은 무려 20년이나 되었다. 베테랑을 넘은 수준이었다. 비록 바자바인 백작의 연기력이 더 대단해서 그에게 당하는 면이 없지않아 있지만 일반인은 따라갈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

 공주는 조금 색다른 충격을 받았다.

 자신을 본 대부분의 귀족가의 사내들은 놀라면서도 존경보다는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드러났다. 공주의 눈치도 만만치 않아서 사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반면에 눈앞에 있는 중년의 기사, 솔직히 중년에 들 정도는 아니었다.

 그보다 젊어 보이기는 했다. 아무튼 가르딘의 눈빛에서 경외심은 느껴져도 욕망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가르딘은 제법 당당하면서도 부자연스럽지 않도록 행동했다.

 공주는 이런 사람이 과연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 줄지 의문이 들었다.

 이 말을 하기 위해서는 아무도 들어서는 안 되었다. 그래서 시녀장인 엘리안을 먼저 내보냈다. 단둘이 남게 된 가르딘이었지만 전혀 헛된 마음이 들지 않았다. 가르딘의 눈에 가장 아름다운 여인은 역시나 그의 부인 라이나뿐이었다.

 “기사로 일한 지 얼마나 됐나요?”

 “14년이 조금 더 됐습니다.”

 “어머, 조금 있으면 시간을 채우네요.”

 “그렇습니다. 공주님! 말을 편하게 하십시오! 제가 불편합니다.”

 “아니에요, 저는 이게 편해요.”

 공주의 마음이 짐작이 된 가르딘이었다. 시녀까지 내 보낼 정도면 공주가 일단은 마음먹었다고 볼 수 있었다. 둘만 남게 된 상황이지만 아이시런 공주는 말을 망설이는 듯했다.

 만약 가르딘이 다름 사람에게 지금 하게 될 말을 하면, 지금까지 쌓아놓은 환상적인 이미지는 멀어진다고 봐야 했다. 제국의 공주로서 지켜야 할 위엄이 손상될지도 모르기에 망설이고 있는 것이다. 아이시런 공주는 한동안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서런이 망설이고 있을 때 가르딘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저는 잘 모르지만 공주님의 심저을 이해합니다. 공주님처럼 안에 갗힌 생활을 하다 보면 답답하 수 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저는 공주님에게 최대한 자유롭게 다닐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화들짝!

 아이시런은 너무 놀라고 말았다.

 너무나 정확하게 자신의 마음을 꿰뚫고 있는 가르딘의 말에 놀란 것이다.

 “어떻게 알았어요?”

 “공주님의 말투에서 느껴졌습니다. 무언가 하실 말씀이 있지만 제게 하기 까다로운 말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대단하네요, 가르딘 경의 능력이 놀랍네요.”

 “과찬이십니다.”

 아이시런은 또다시 색다른 충격을 받고 있었다. 확실히 자신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하는 것 같지만 사내로서의 욕망은 없어 보였다. 갑자기 가르딘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아이시런 공주는 자신도 모르게 뜻하지 않는 말을 하고 말았다.

 “혼인은 했나요?”

 “물론입니다. 사랑스러운 아내와 딸까지 있습니다. 지금 잘 자란 딸이 학교에 입학할 시기입니다.”

 ‘아!’

 아이시런 공주는 오늘따라 충격을 많이 받았다. 가르딘은 다른 일엣는 감정의 굴곡을 잘 드러내지 않지만 아내와 딸에 대해서만은 달랐다. 지금 가르딘의 표정은 그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다.

 ‘이 사람, 내 앞에서 결혼했다는 것에 행복해하다니!’

 결혼을 하건 말건 사내들이란 족속들 대부분이 이런 질문을 하게 되면 눈앞의 아름다운 여인 때문에 말을 꺼리거나 거짓말을 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가르딘은 아이시런 공주의 예상과는 다르게 솔직하고 진실하게 말을 했다.

 그려보다 자신의 아내를 더 사랑하는 것 같았다.

 약간은 심술이 난 아이시런은 짓궂은 질문을 했다.

 “아내 분이 저보다 더 아름다운가요?”

  정말 위험한 질문이었다. 가르딘은 망설여졌다. 여기서 솔직히 말을 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거짓을 말할 것인가! 정말 고민되는 가르딘이었다.

 한참 고민하던 가르딘이 정색을 했다.

 “솔직히 말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에요. 저는 솔직한 사람이 좋아요.”

 보통 기사라면 공주가 가장 아름답다고 했을 법한 상황이었다. 아이시런은 당연히 자신이 더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있기에 솔직하게 말을 하라고 한 것이었다. 어느 누가 봐도 아름다운 자신의 모습을 가장 잘 아는 아이시런 공주였다.

 “제 아내는 대륙제일 미인입니다. 그 어떤 여인보다 아름다우며, 사랑스럽습니다!”

 띠잉!

 아이시런 공주는 가르딘과 대화하면서 정말 여러 번 충격 받고 있었다. 여인을 앞에 두고 아내 자랑하는 것도 모자라서, 대륙제일 미인이라니 그런 황당한 말을 서슴없이 하는 가르딘을 보자 어이없이 하는 아이시런이었다.

 보통 사내라면 절대 이런 말을 하지 못한다. 낯간지러워서도 할 수 없다. 황당한 아이시런 공주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이번 여행 정말 재밌겠네요.”

 “공주님의 즐거운 여행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나중에 한 번 아내 분을 봤으면 좋겠네요.”

 아이시런과의 대화는 이렇게 끝이 났다. 가르딘은 궁전에서 나오면서 몇 번이나 후회를 했다. 아내 이야기만 나오면 입이 제정신이 아니었다. 자신도 모르게 서슴없이 진실을 말하고 마는 버릇이 있었다. 기사단으로 돌아가면서 가르딘은 속으로 생각했다.

 ‘거짓으로라도 공주가 아름답다고 하는 건데, 하지만 이쩔 수 없지. 진실은 가린다고 해서 가려지는 것이 아니니 말이야!’

 정말로 가르딘은 라이나가 가장 아름답게 보였다. 라이나야말로 대륙제일의 미인이자 백년에 한 번 태어날 여인이라고 생각했다. 공주가 들었다면 정말 미치고 팔짝 뛸 일이었다. 아마 보통의 다른 사내들은 미친놈이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이미 미친놈으로 불리고 있었다.

 공주의 성인식 인증식을 위한 신성제국으로의 여행 날이 다가왔다. 순례 날이 다가오자 다시 한 번 가르딘은 파르트론 단장과 바자바인 부단장에게 불려갔다. 마지막으로 조심하라는 말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 공주는 제국의 얼굴이자 상징이었다.

 상징에 타격을 받는다면 자존심이 무너지는 일이었다. 제국의 명성에 금이 가는 일이 될 수 있기에 신중을 기하라는 말을 전했다. 

 “이번 여행은 완벽한 경호가 우선이네.”

 “물론입니다. 단장님! 제가 죽더라고 공주님만은 무사히 모시고 오겠습니다!”

 ‘내가 미쳤습니까! 생판 모르는 여인을 위해 목숨을 걸게!’

 속생각은 철저히 숨기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말을 하는 가르딘이었다.

 끄덕! 끄덕!

 기사라면 모름지기 주인을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파스트론 단장이었다. 그 옆에 바자바인 부단장이 의미심장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자네의 어깨에 공주님의 안위가 달렸네, 아무쪼록 최선을 다해 주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피닉스기사단의 명예에 누가 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겠습니다!”

 “그럼, 됐네, 어서 가보게!”

  “가보겠습니다.”

 성인식 순례를 가지 전날 가르딘은 신참들을 맞이했다. 킹덤나이트의 졸업생 중에서도 상위에 속하는 10명의 신입기사들이었다. 그 중에서 가장 강한 2명이 가르딘의 눈에 들어왔다. 사물을 판단할 눈을 가진 사람이라면 당연히 눈에 띄는 외모였다.

 ‘이것들 뭐야? 벌써부터 익스퍼트 상급이야!’

 고작 24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것들이 상급의 기사였다. 이 정도 실력이면 기사단 내에서도 10위 안에 들 정도로 대단한 실력을 가진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놈들 정도면 30살 이전에 오러 마스터에 들 수도 있을 정도였다.

 가르딘은 이 녀석들의 정체가 궁금했다. 도대체 누구기에 이토록 잘 가르쳐 놓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이놈들은 정말 잘 생겼다. 여인들 꽤 울리고 다녔을 만한 외모였다.

 솔직히 부럽고 질투가 났다.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남자의 질투는 여자의 질투보다 무서울 때가 있다. 

 -미스토 발리스타.

 -스필언 파스트론.

 갑자기 천재 2명이 왔기에 누구의 자식들인지 알고 싶은 가르딘이 신상명세서를 보다가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발리스타 공작의 아들에다가 단장님의 아들이란 말이지!’

 카이로만 제국의 가장 강대한 세력과 무력을 가진 두 공작의 자손들이었다. 둘 다 오러 마스터 상급기사의 아들들이었다.

 ‘아들 교육 잘도 시켰구먼.’

 피닉스기사단의 신입이기는 하지만 대하는 것이 쉽지 않은 놈들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실수로 갈궜다가 쪼르륵 달려가 꼰지르면 자신과 같은 힘없는 기사는 바로 뎅강이었다.

 실직당하는 것도 모자라서 죽을 수도 있었다.

 ‘일단 파스트론 단장은 사적인 감정으로 기사를 내치는 인물이 아니었다. 워낙 완고한 사람이라 이유 불문하고 공적으로 명을 어기는 일을 할 경우 가차 없이 내치는 성격이었다. 아들이라고 해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옆에서 같이 생활을 해온 파스트론 단장과는 다르게 발리스타 공작의 성격을 파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겉으로 보이는 성격이 전부라고 생각하다가는 등 뒤에 칼 맞고 비명횡사할 수 있었다.

 ‘강직하고 충직한 신하에다가 1황자를 지지하는 분이라는 것 정도인데, 어쩔 수 없이 우선은 이놈들을 지켜보자!’

 가르딘은 신입기사들을 모아 놓고 살펴보았다. 이미 단장님과 부단장에게 기사입사 인사를 한 상태였다.

 가르딘이 여기서 신입기사를 모아 논 이유는 이번 공주의 성인식 순례에서 신입기사를 데리고 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신입기사들 중에서 5명이 뽑힌 상태였고, 그 안에 미토스와 스필언 역시 뽑혀 있는 상태였다.

 “만나서 반갑다. 이번 출정의 총책임을 맡은 가르딘이라고 한다.”

 신입기사들이 모두 가르딘에게 인사를 했다. 그들에게 가르딘은 까마득한 선배였다. 기사단의 율법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선배는 하늘이었다. 물론 정식 율법이 아닌 가라 율법이기는 했다.

 “이번 출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주님의 안전한 회귀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내 말을 잘 따라주어야 할 것이다. 단독으로 행동하거나 규율을 어기는 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처벌을 할 거다. 알겠는가!”

  가르딘의 몸에서 압도적인 카리스마가 방출됐다.

 -알겠습니다!

 신입기사들 훈육을 할 때 헤픈 모습을 보이는 것은 가장 경계해야 할 모습니다. 가르딘과 그 옆의 필리언과 유타, 갈라까지 위엄 있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를 썼다. 신입기사의 군기를 잡으려면 초장부터 잡아줘야 한다.

 “우선은 한 가지 예를 들겠다. 여인이 위험에 처해 있다. 그러나 그 일은 공주님의 안전과는 상관없는 상황이다. 어떻게 하겠는가?”

 신입기사들 모두 아리송해하는 상황이었다. 가르딘은 이 순간 가장 먼저 말하는 과감성과, 정확한 상황을 판단하고 대답을 했는지를 테스트하고 있었다.

 스필언이 가장 먼저 말을 했다.

 “여인을 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사는 약자를 보호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가르딘은 당장 해답을 말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미토스가 말을 했다.

 “공주님의 안전이 먼저입니다. 여인이 비록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둘 모두 타당한 의견이기는 하지만 너무 딱딱한 의견이었다. 이런 사고를 가지고는 절대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한다. 역시 아무리 뛰어나도 경험이 부족한 기사들이었다.

 “둘 다 너무 한쪽으로만 치우쳐져 있다. 우선 나는 우리의 상황과 여인의 상황을 말하지 않았다. 만약 공주님의 안전이 확실하고, 여인을 구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면 구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여인을 구하는 데 공주님의 안전에 위해가 발생한다면 그때에는 애초의 목적인 공주님의 호위에 만전을 다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벌어지는 사건은 한 가지로 정의가 될 수 없다. 시간과 상황, 장소에 따라 우리는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하고 결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지금 당장 너희들이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여러 가지의 상황을 고려하고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미토스와 스필언도 가르딘의 말에 수긍을 했다. 확실히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은 상당히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르딘은 선배의 위대함을 보여주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 노력의 결실이 점점 보이는 찰나였다.

 “어이, 능구렁이! 여기서 애들 군기 잡고 있었어!”

 ‘측!’

 어디선가 무슨 일이 생기면 나타나는 정체 모를 영웅과 같이 갑작스럽게 나타난 바자바인 부단장이었다. 부단장은 가르딘이 세워 놓은 위엄을 한순간에 부서뜨리고 있었다.

 “부... 단장님, 애들 보는데 그런 말씀은 조금!”

 “뭐, 이게 뭔 소리야, 분명 조금 전에 선배는 하늘이라고 하던데, 내 말이 말 같지 않아!”

 “아니 그게.....!”

 ‘이 자식 정말!’

 매번 이런 식이다.

 잔뜩 위엄을 세워 놓으면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바자바인 백작이다. 그래서 일부러 장소를 변경하고, 부단장 모르게 했는데도 불구하고 귀신같이 찾아오는 것을 보면 정말 황실 제일의 개코가 분명했다. 신입기사 환영식은 개코의 등장으로 결국 개판이 되었다.

 가르딘은 출정 3일 전에 공주님에게 몇 가지 의논할 게 있다고 해서 보게 되었다. 공주는 의외로 편안하게 가르딘을 대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어느 정도 자신의 성격을 악고 있기에 대하는 데 불편한 상황이 아니었다.

 “공주님을 뵙습니다.”

 “예의는 그만 차리고 무슨 일이에요?”

  “공주님의 원활한 여행을 위해서 몇 가지 필요한 물품이 있습니다.”

 “물품이요?”

 “예, 그렇습니다.”

 가르딘은 우선 공주가 은밀하게 밖으로 외출하기 위해 필요한 입을 옷과 망토에 대해서 설명을 했고, 그 다음에 외모를 바꿔주는 마법아이템을 구해야 했다. 외모에 영향을 주는 마법 아이템은 최소한 6서클 마법사만이 할 수 있는 환영마법이 필요했다.

 완벽하게 변하지 않더라고 공주의 아름다움을 가리기 위해서 어느 정도 가려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듣고 보니 그렇네요, 저는 마냥 외출할 생각만 했지, 그런 생각은 못해봤어요.”공주가 스긍하자 가르딘은 기회다 싶었다. 한번 찾아온 기회를 적절하게 이용해야 했다.

 일부러 수도에 있는 마법 상점에까지 찾아가서 가격을 물어보았다.

 -얼굴 변환 환영 아이템이 얼마요?

 -좀 비쌉니다.

 _얼마년 되는데?

 -2,000골드입니다.

 -뭐... 그게 뭐야! 내 20년 월급하고 맞먹네!

 상상을 불허하는 가격이었다. 20골드 정도면 공주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그냥 샀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가격이 너무 엄청났다. 그렇다고 공주의 외모를 아무 조치도 없이 내보낼 수도 없는 일이었다.

 가격이 가르딘이 감당할 범위를 한참이나 초월했다. 2,000골드가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정말 황당한 가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가르딘은 공주에게 직접 의견을 물으려고 한 것이다. 가르딘이 정색을 하며 공주에게 직접적인 말을 했다.

 “공주님! 마법 아이템이란 게 원체 가격이 비싸서 말입니다.”

 “돈이라면 걱정 마세요.”

 공주는 아무럽지 않다는 듯이 말을 하고 엘리안을 시켜 보석 상자를 가져오도옥 했다.

 “이게 뭡니까?”

 “열어 보세요, 안에서 필요한 만큼 꺼내 가세요.”

 상자는 공주의 개인 비고였다. 무게도 상당하고 비싼 물품으로 되어 있는 것 같았다. 들고 올 때 엘리언 말고도 3명이나 더 들었을 정도로 상당한 무게였다.

 “필요 만큼이란 말입니까!”

 상자를 열자 그 안에 100골드짜리 금화와 더불어서 온갖 값비싼 세공품이 들어 있었다. 세공품도 그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보는 눈이 없는 가르딘도 단번에 비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가르딘은 순잔 뻥 찐 얼굴이었다. 세상에 이처럼 많은 황금과 귀물은 처음 보았다.

 ‘2,000골드니까. 수고비 정도로 조금 더 가진다고 해서 공주가 탓하지는 않겠지.’

 가르딘은 정색을 하고 정중하게 3,000골드를 꺼냈다. 1,000골드나 삥땅치려는 간 큰 가르딘이었지만 아이시런 공주의 말에 급 후회를 하고 말았다.

 “그것밖에 필요 없어요, 최소한 1만 골드는 필요한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싸네요!”

 휘청!

 순간 눈동자가 휘청거렸다.

 ‘아씨! 조금 더 삥띵칠걸!’

 최소 8,000골드는 입안으로 꿀꺽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 버린 꼴이었다. 다시 더 필요하다고 하기에는 너무 구차했다. 후회는 되지만 가르딘은 이 정도에서 만족했다. 1,000골드라고 하지만 그가 지금껏 번 돈보다 더 많았다. 오늘 정말 횡재했다고 볼 수 있었다.

  “공주님의 안전과 즐거운 여행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가르딘 경만 믿겠어요.”

 아이시런은 이렇게까지 애를 써주는 가르딘이 마음에 들었다. 그를 지키는 기사들은 항상 안전을 위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런데 가르딘은 달랐다. 오히려 만약의 사태까지 대비를 하는 철두철미한 계획과 융통성을 가지고 있었다.

 후르륵!

 차부히 차를 마시고 있는 사내가 있었다. 중년의 사내였지만 그가 입고 있는 옷은 보통의 재질이 아니었다. 또한 사내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만인을 주눅 들게 할 정도로 대단했다. 그 앞으로 두 사람이 조심스레 앉아 있었다.

 “황제 폐하! 계획대로 되었습니다.”

 “그런가! 역시나 카이로만 놈들이 그런 줄 알았지.”

 중년인은 바로 미드라이언 대륙의 삼강 중에 하나인 코카 제국의 황제 무르카인이었다. 그는 조용히 차를 마시면서도 카이로만의 얘기만 나오면 날카로운 기세를 뿜어내었다.

 전에 카이로만과의 전쟁에서 먼저 선공했지만 오히려 발렌타인 성을 빼앗기고 휴전이 되어버렸다.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울화가 치밀었다.

 발렌타인 성은 코카 제국과 카이로만 제국의 경계선에 군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가진 곳이다. 그런 곳을 빼앗겼으니 무르카인 황제로서는 역정이 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다시 빚을 갚아 주어야 했다. 카이로만 놈들에게 한 방 먹일 계획을 고심 끝에 세웠다.

 “빚은 돌려줘야겠지.”

 “폐하의 식견에 거듭 놀랐습니다.”

 아부가 섞인 말을 한 자는 코카 제국의 4대 오러 마스터중에 한 명인 밸트런 이지마하 공작이었다. 또한 그 옆으로 마주보며 앉아 있는 중년인은 재상인 로베리오 ㅤㅎㅠㅌ턴 공작이었다. 사실 이번 계획은 모두 휼턴 공작의 입에서 나왔다고 하는 게 맞았다. 하지만 모든 공은 황제가 갖는 것이 원칙이었다.

 이번 계획을 위해 고카 제국에서는 일부러 무르카인 황제의 딸인 수리아 공주의 성인식을 신성제국에서 치렀다. 코카 제국에서 성인식 인증을 위해 움직였으니 당연히 카이로만 제국도 움직일 것이다. 경쟁상대국에서 한 일은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치였다.

 “공주를 반드시 잡아와라, 내 반드시 공주와 발렌타인 성을 바꾸겠다!”

 빼앗긴 성을 찾는 일이었다.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겉으로는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으로 보이게 하기 위한 술책이었다. 대륙에 소문은 카이로만 제국이 어쩔 수 없이 물러난 것으로 알 것이다. 이 일에 대한 내면은 절대로 알 수 없다.

 이번 일을 위해 코카 제국의 황실기사단인 라이언기사단 50명이 비밀리에 출정을 했다.

 “공주님이 알아보라는 것 가져왔어요.”

 엘리언이 가져온 서신에 한 사람의 신상명세가 적혀져 있었다. 아이시런 공주는 서류를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처음부터 흥미를 끌더니 적혀진 내용도 상당한 호기심을 들게 만들었다.

 -이름: 가르딘 오브라이언.

 -나이: 38세

 -출신: 오브라이언 남작가의 세 번째 아들.

 -실력: 오러 익스퍼트 상급.

  -가족: 부인과 딸이 있음.

 -특이사항: 아내로 맞은 라이나는 귀족이 아닌 평민임.

 여러 가지 사항 중에서 라이나에 대한 글이 유독 눈에 들어온 아이시런이었다. 그녀 앞에서 행복해하던 사람의 부인이라고 하기에 대단한 여인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녀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난 여인이었다.

 도대체 왜 이런 여인과 결혼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아이시런이었다. 아무리 가르딘이 배경 없는 귀족가의 자제라고 하지만 피닉스기사단에 들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가진 기사였다. 평민이 아니라 더 좋은 여인과 혼인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공주님, 그런데 왜 이런 사람의 신상명세를 살피세요?”

 엘리언은 그것이 너무 궁금했다.

 대륙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평가받는 아이시런 공주가 이미 결혼한 중년기사의 신상명세를 알아보라고 했을 때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왜 그랬다고 생각 하냐?”

 “저야 모르죠.”

 “그 사람 날 보면서도 아내 생각을 하며 행복해하던 사람이야.”

 “예! 어찌 그럴 수가!”

 엘리안은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었다는 듯이 놀라고 있었다.

 결혼을 하건 말건 사내들 대부분이 아이시런 공주 앞에서는 다른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중년의 보잘것없는 기사가 아이시런 공주보다 자기 부인을 더 생각했다고 한다. 상식적인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아니면 미친놈이거나!

 “연기한 것 아니에요. 무관심이 요즘에 통하는 줄 아는 바보 아닌가요!”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사내의 무관심이 매력인 줄 아는 멍청이들 말이다. 괜히 무뚝뚝하게 대하며 여인의 심기를 어지럽히고, 흔들리는 여인의 마음을 가진다는 말도 안 되는 말을 믿는 인간군상들.

 “아니. 그 사람은 자신의 아내를 너무 사랑하는 것 같아, 너무 특이해서 조사하라고 한 거야.”

 “특이한 게 아니라 미친놈이 아닐까요.”

 기사를 모욕하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엘리언이었다. 그만큼 놀랐다는 반증이었다. 반면에 아이시런 공주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튼 이번 여행은 즐거울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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