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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가용-182화 (182/184)

182화

끼이이이-이이아!

저 너머의 괴조가 고개를 쳐들고 새된 비명을 질렀다. 그에 비해 드래곤에게서 나오는 소리라고는 마법으로 생긴 화려한 폭발음뿐이었다. 으득, 무능한 자신을 향한 분노에 미하일이 이를 갈았다.

호수 끝자락에서 괴수와 드래곤의 싸움을 애타게 바라보던 미하일이 소리쳤다.

“……안 되겠군. 이대로 여기서 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

당장이라도 검은 호수에 뛰어들 기세인 미하일의 팔을 병사 하나가 다급하게 잡아챘다. 왕자를 말리는 이는 그 병사뿐만 아니었다. 군단장과 카일, 캐서린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

“절대 안 됩니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더 다가갔다간 저 싸움에 휩쓸립니다!”

바로 그것을 원하는 것이었다.

미하일은 자신을 막아서는 이들의 팔을 냉정하게 뿌리치며 나아갔다.

“미하일!”

카일이 끝까지 미하일을 말리려는 캐서린의 팔을 잡아 세웠다. 캐서린이 고개를 휙 돌리자, 카일의 진지한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팔을 잡은 채 카일은 고개를 좌우로 천천히 저었다. 그의 시선이 미하일의 등을 향해 있었다.

그 시선 끝을 따라 갔을 때, 놀라운 장면이 캐서린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탓, 탁, 탁.

미하일이 검은 호수 위를 마치 땅처럼 밟으며 걸어가고 있었다.

대륙의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를 집어삼키는 검은 마나가 미하일만은 밀어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

좀처럼 기세가 약해질 틈이 없는 괴조를 상대하는 것은 꽤 까다로웠다.

검은 마나로 자신의 터전을 이미 마련해 두고 이 세계로 넘어온 괴조는 공격을 받을 때마다 끝도 없이 몇 번이고 형체를 회복했다. 아드리안은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것과는 별개로 반복되는 싸움에 지치고 말았다.

젠장, 이번에도 헛수고군.

괴조를 죽이는 것을 포기한 아드리안은 검은 마기를 누르는 것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침묵(Silence)”

드래곤이 주문 영창을 끝마치는 순간, 금빛 사슬이 허공에서 생겨나 괴조의 몸을 칭칭 묶었다. 괴조의 머리통 세 개가 저마다 고통에 몸부림치며 목을 비틀어 댔다. 저 상태라면 다시 검은 마나를 마실 수도, 다른 곳으로 움직일 수도 없을 것이었다.

시간을 벌어야 했다.

미하일이 힘을 사용할 수 있을 때까지만이라도 이 봉인이 버텨 준다면 괴조를 완전히 처치할 수 있을 터였다.

‘내 역할은…….’

아드리안은 다른 마법은커녕 팔 한 번 휘두를 수도 없는 상태였다.

검은 호수가 점점 힘없이 늘어진 드래곤을 늪처럼 끌어들이고 있었다.

‘결국 이렇게 괴조를 막다가 검은 마나에 잠식돼 천장화의 장면을 실현하는 것인가.’

그렇게 된다면, 솔직히 폭주하는 게 드래곤이든 괴조든 결과적으로는 다를 바가 없겠는걸. 골드 드래곤이 속으로 생각했다.

그 모습을 본 미하일의 두 눈동자가 양옆으로 잘게 떨렸다.

“아드리안!”

미하일의 목소리에 호수 한가운데 가까스로 떠 있던 드래곤의 귀가 움찔, 움직였다. 미하일이 나룻배를 타지 않고 검은 호수 수면을 지면처럼 뛰어오는 소리도 들렸다.

“아드리안! 정신 차려! 검은 마나에 현혹되지 말라고!”

말은 쉽지.

드래곤은 천천히 감겨 오는 눈꺼풀을 느끼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온몸에는 붉은 피가 흐르고, 상처를 비집고 들어오는 마기는 쓰라렸다. 거기다 본래 드래곤이 가진 순수한 마나가 검은 마나에 의해 변질되고 있는 탓에 전신이 불에 달군 듯 뜨거웠다.

미하일은 드래곤을 향해 뛰어가며 악을 쓰듯 외쳤다.

“그런 악한 기운에지지 마! 천장화 기억나지? 그때 넌 분명히 그러고 싶지 않다 했잖아! 넌, 네가 그 누구보다 이 대륙을 아끼고 있다는 사실을 난 알고 있어!”

그런가. 내가 그랬던가.

아드리안은 눈을 감은 채로 고민했다.

그러나 운명은 드래곤에게 그런 사소한 고민을 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크르르릉-

드래곤의 입속에서 이빨이 갈리고, 고통스런 신음 소리가 이어졌다. 그때였다. 검은 마나와의 반작용으로 뜨거워진 몸보다 훨씬 더 높은 온도의 무언가가 뺨에 닿아 왔다.

크으-아아아악!

아드리안은 그것에 주둥이를 크게 벌리며 온몸을 비틀었다. 그 몸부림에 검은 호수 위에 힘겹게 떠 있던 몸이 한층 더 가라앉았다.

“……쉬이이이- 널 아프게 하려는 게 아니야.“

드래곤의 뺨에 닿은 것은 바로 미하일의 손바닥이었다. 안타깝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미하일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몸을 파고드는 고통과 싸우고 있는 아드리안에게 완벽히 전달되지 않았다.

골드 드래곤이 공중으로 고개를 들어 울부짖었다.

조금 전까지 싸운 괴조와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드래곤의 눈가 비늘이 목 부분까지 타 버린 것처럼 검게 변해 있었다. 마기에 잠식된 것이었다. 이지를 잃은 드래곤은 힘없이 수면에 늘어져 있던 몸을 단번에 일으켰다.

그 옆에 서 있던 미하일은 뒷걸음질할 수밖에 없었다. 검게 변하기 시작한 비늘이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골드 드래곤의 몸을 뒤덮었다. 그와 동시에 사슬이 느슨해진 걸 눈치챈 괴조가 거세게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미하일의 손바닥 주위로 흰 빛이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이 힘은…….”

미하일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아드리안이 말한 이 몸 안에 있다는 힘. 그건 오르디나스가 그에게 줬던 것일 터였다. 그는 눈을 질끈 감은 채 손바닥 안의 힘에 집중하려 침묵했다. 눈꺼풀로 빛이 차단된 어둠 속, 홀로 밝게 빛나는 흰 빛 덩어리 하나가 보였다. 그것은 미하일더러 잡아 보라는 듯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잡으라는 건가?”

미하일이 그 빛을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 손이 닿자마자 눈을 감고 있던 미하일이 눈이 멀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빛 덩어리가 커졌다.

잠시 뒤 올라간 미하일의 눈꺼풀 밑에는 타오르는 붉은 눈동자만이 일렁이고 있었다. 미하일은 자신의 힘을 깨닫자마자 검은 마기에 잠식되어 가는 아드리안을 향해 몸을 틀었다. 그는 확신에 찬 발걸음으로 성큼성큼 뛰어 몸부림치는 드래곤의 앞다리를 끌어안았다.

“아드리안…….”

미하일은 눈을 질끈 감고 자신의 힘에 집중했다.

악한 마기와 검은 마나를 없애고, 마기에 둘러싸인 드래곤을 그곳에서 꺼내야 했다.

“내 힘이 느껴져?”

어느새 검은 호수 위를 날뛰던 드래곤의 몸부림이 잦아들었다. 미하일이 끌어안은 앞다리부터 변화가 시작되었다. 검게 물들었던 비늘이 천천히 원래의 빛을 되찾아 갔다.

크르르릉-

아직은 정신을 차리지 못한 듯이 드래곤의 거친 숨소리가 위에서 들려왔다. 하지만 미하일은 끝까지 자신의 팔에 힘을 주어 드래곤에게서 손을 떼지 않았다.

“지금은…… 내가 널 지킬 차례야.”

조용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드래곤의 몸통에서 푸흐으으- 하고 안정된 숨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그런 미하일에게 고맙다고 대답하듯이.

***

정신을 잃었던 건가?

밝은 비늘을 되찾은 아드리안은 호수에 선 채로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금빛 눈동자에 타오를 듯 빛을 뿜는 미하일의 상이 맺혔다. 검은 마나를 마시던 마물들이 미하일의 검이 스칠 때마다 재로 변하고 있었다.

그 짧은 순간에 미하일이 해낸 것이었다. 억겁의 시간을 살아온 드래곤조차 단 한 번도 가능하리라 생각한 적 없는 순간이었다.

‘아름답다.’

이렇게 아름다운 순간이라니.

단 한 번도 인간을 대상으로 떠올린 적 없었던 감탄사였다. 언제나 드래곤이 손대는 것은 인간들이 이룩한 모든 결과물보다 더 크고 아름다운 결실을 꽃피웠으나, 이번만은 달랐다.

그 한계를 스스로 뛰어넘은 건가.

그제야 아드리안은 드래곤들이 유희를 빌미로 인간들 틈에 비집고 들어와 살아가는 이유를 깨달았다. 드높은 자긍심을 가진 종족에게 조금쯤은 겸손함을 가지라는 뜻이 아닐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제 와서 드래곤에게 인간들의 이상이 대단하게 여겨지는 건 아니었다. 그것은 여전히 추상적이고 모호했다.

하지만…….

하지만 그 이상을 이루기 위해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 만들어 낸 결과물은, 드래곤의 심미안에 걸맞을 만큼 아름다웠다.

미하일이 밝은 빛으로 감싸인 검 한 자루를 횡으로 가볍게 휘두르는 것이 보였다. 그 손짓 한 번에 검은 마나가 먼지처럼 흩어져 갔다.

허공에 떠 있던 검은 원도 마찬가지였다.

미하일이 든 검을 중심으로 순수한 마나가 빠르게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 힘의 영향으로 마나의 흐름이 일순 사납게 바뀌었다. 거센 바람이 불며 미하일의 밝은 은발 머리칼이 이리저리 뒤엉켰다.

키이이아-아악!

금빛 사슬에 묶인 괴조가 숙적의 존재를 알아차린 듯 더 거세게 몸부림을 쳐 댔다. 미하일의 붉은 눈동자가 공중의 거대한 마물로 향했다.

그의 손안에 자리 잡은 펠렌 디프스의 검이 흰 검신을 빛냈다.

이른바 소드 마스터의 탄생이었다.

“…….”

진정한 소드 마스터의 탄생에 다른 어떤 것도 끼어들지 않았다. 오르디나스도, 드래곤도 그 광경을 조용히 지켜볼 뿐이었다.

미하일 스스로 이룩해 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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