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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가용-180화 (180/184)

180화

검은 수면 위로 고개를 빼꼼 내민 것은 마물들이었다.

호수의 검은 기운이 점점 진해지고 있었다. 윽, 선발대 중 하나가 진한 마기에 면역이 없는지 헛구역질을 해 댔다.

“마물이라니……? 여태까지 한 번도 나타난 적 없었는데! 도대체 왜 지금?”

카일이 당황스런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아드리안이 곧바로 대답했다. 그의 시선은 호수의 자잘한 마물들이 아닌, 무언가 튀어나오려 발버둥 치고 있는 검은 원에 고정되어 있었다.

“호수 아래에서 숨죽여 기다리던 것들이 알아챈 거야.”

“……무엇을?”

“저놈이 이곳으로 넘어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걸.”

크아아악!

마치 드리안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걸 알기라도 한 것처럼 검은 원 저 너머에서 마물이 울부짖었다.

“약한 놈들 입장에선 저놈이 넘어오지 못하면 자기들끼리 이곳의 검은 마나를 독차지할 수 있으니 기뻐 날뛰는 거지.”

쾅!

다시 한 번 이어진 굉음에 수면이 크게 출렁거렸다. 검은 원의 틈이 더 벌어졌어도 놈의 커다란 몸통이 그 구멍을 통과하지 못하는 듯했다.

'마계에서 이 세계로 넘어오기 전, 이 근방을 익숙한 환경으로 만들어 놓으려고 했군.'

검은 마나는 마물들의 힘의 원천이니 놈이 만약 저 구멍을 통과해서 호수의 마나를 죄다 들이켜게 된다면 아무도 대항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질 것이었다.

아드리안의 시선이 굳은 얼굴로 검을 들고 있는 미하일로 향했다.

‘하지만 우리가 적절한 타이밍에 도착했어. 놈도 미하일의 힘을 알아채곤 마음이 급해진 거야.’

키이이이—아아야아악!

귀를 찢을 듯한 소음에 선발대는 인상을 찡그리며 귀를 막았다.

천천히 나룻배로 접근하고 있는 마물들은 구멍 너머의 마물이 두렵지도 않은지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들은 언제 눈치를 봤냐는 듯, 벌컥벌컥 마나를 집어삼켜 댔다.

꿀꺽, 꿀꺽. 배 위에 있는 그들에게까지 마물들의 목 넘기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처음에는 작았던 마물의 몸집이 한 번, 두 번 그리고 여러 번 검은 마나를 마실 때마다 즈윽- 즉, 하고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몇 배씩 커졌다. 작았던 손톱과 이빨이 길고 날카롭게 자라났고, 등에 돋친 자그만 비늘은 날렵하고 뾰족하게 빳빳이 세워졌다. 성장하고 있는 것이었다.

저런 약한 마물들에게 지금 이 호수를 가득 채운 진하고 순수한 검은 마나는 그들의 힘을 몇 배나 올려 주는 최고급 영약이나 다름없을 것이었다.

그것을 알아채고는 미하일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마물들이 더 자라나기 전에 최대한 처리해!”

그래도 큰 위협이 될 만한 등급이 높은 개체는 없는 것 같았다. 마물들이 마치 제집인 양 검은 마나 수면 위를 마치 땅 위를 걷듯 움직이고 있다는 것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흠, 아드리안은 잠시간 고민하다 팔을 뻗었다. 안 그래도 아까부터 궁금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잠깐 다들 기다려. 이런 상황에 아주 적합한 마법이 있거든.”

동시에 그는 팔을 공중으로 뻗어 올렸다. 드래곤의 금빛 눈동자가 환하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라이트닝 필드(Lightning Field)”

시야 내의 모든 범위가 공격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드래곤조차도 몇 번 써 본 적 없는 마법이었다.

또렷한 드래곤의 목소리가 끝나자 맑던 하늘이 삽시간에 어두워졌다. 주변의 구름들을 끌어오기라도 한 듯 하늘을 가득 채운 먹구름에서 우레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쿠르르릉—

마물들은 상황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상태로 마나를 마셔 대기 바빴다. 아드리안의 밝은 금안이 그것들을 주욱 훑어보는 듯하다 뻗은 손을 아래로 내려 앞으로 휙 내리치는 순간이었다.

번쩍!

소리보다 빠르게 검은 하늘에서 번개 한 줄기가 쏘아졌다.

끼아아아약!

마물이 주둥이를 치켜들고 비명을 질렀다.

번개가 고개를 호수에 처박고 마나를 마셔 대던 마물의 몸통을 통째로 꿰뚫은 것이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번쩍! 섬광이 다시 한 번 더 이어졌다. 어두운 하늘에서 번개가 내리치자 반대편에서 마나를 마시다 말고 저들끼리 싸우던 마물 두 마리의 몸통이 한 번에 꿰였다. 윽, 미하일은 또 다시 눈이 멀게 할 듯 시야를 환하게 비추는 번개에 옷소매로 눈을 가렸다. 이토록 가까이서 번개를 바라본 적 없었다.

그 뒤로 섬광과 그에 따라 나오는 마물들의 끔찍한 비명 소리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흠, 아드리안만이 그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바라보다 말고 침음을 냈다.

"……역시."

눈을 가리고 있던 미하일이 아드리안의 투덜거리는 목소리에 천천히 팔을 내렸다.

모두 해치웠나?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도 그것이 궁금했던지 슬그머니 눈을 떴다. 그러자 그들의 눈앞에 보인 것은 새까맣게 탄 마물들의 사체였다.

“마법은 무용지물이군.”

아까부터 거슬리는 것이 바로 저 검은 마나였다.

아드리안의 인상이 살풋 찡그려졌다. 전방위로 적을 무력화 시키는 강력한 마법이었으나, 마물들은 쓰러지자마자 검은 마나를 흡수하여 곧바로 제 몸을 되찾았다. 일반적인 공격으론 저것들을 모두 처치할 수 없을 것이다.

드래곤의 시선이 조용히 하늘로 향했다.

좁은 통로를 자꾸 두드리던 저 건너편의 마물이 어느샌가 잠잠해져 있었다.

“…….”

저놈이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기 전에 이쪽이 한 발 먼저 활로를 찾아야 할 것이었다. 아드리안은 입가를 비튼 채 손가락을 움직여 금빛 사슬을 소환해 냈다. 그것으로 검은 통로를 몇 번 칭칭 감싸 고정시켰다.

우선은 임시방편이었다.

***

“그런 공격으론 어림도 없을걸.”

“이게 내 최선이야!”

“그게?”

촤아악-!

드래곤의 손끝에서 나온 빛이 떼를 지어 꾸물거리는 마물들의 허리를 단번에 끊어 냈다. 머리와 몸통이 분리된 마물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뒤로 넘어갔다.

하지만 그건 잠시뿐이었다.

검이나 마법으로 하는 물리적인 공격은 마물에게 먹혔다. 하지만 마물의 사체 바로 밑에 풍부하게 펼쳐진 검은 마나가 문제였다. 마물은 마나를 위로 쭈욱 끌어당긴 후 곧바로 몸을 붙여 다시 이쪽을 공격해 왔다.

“이렇게 하다간 끝도 없을걸. 검은 마나 자체를 없애야 해.”

“…….”

아드리안이 미하일의 표정을 힐끔 확인하고 다시 말을 이었다.

“조금 전에 네가 썼던 그 힘을 사용해.”

“……내가 지금 힘을 쓰기 싫어서 이러고 있는 줄 알아?!”

미하일이 짜증스레 대답하며 검을 횡으로 크게 휙 휘둘렀다. 물론 인간치고는 꽤나 좋은 움직임이었으나 지금 필요한 것은 저런 힘이 아니었다.

아드리안이 검은 원에 감아 놓은 금빛 사슬이 철컥거리며 소름 끼치는 소음을 빚어냈다.

콰아아앙——!

허공의 통로에서 나온 소음이었다. 잠시간 조용했던 호수 위로 커다란 굉음이 다시 울렸다.

아마 저기서 저놈이 나오기만 해도, 선발대가 탄 나룻배뿐만 아니라 이 대륙 전체가 초토화될 것이 분명했다. 아드리안은 지금 유일하게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을 바라보았다.

미하일 루스 이네하트.

오르디나스가 끝까지 목숨을 살리려 힘썼던 선택받은 용사였다.

“네 안의 그 힘, 그걸 스스로 못 다루겠다면 방법이 하나 있지.”

아드리안의 황금색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어떤 방법?”

미하일은 그 눈빛에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드래곤의 제안에 묘하게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드리안의 검지가 슥- 미하일의 이마로 뻗어 왔다.

사실 미하일을 보자마자 처음부터 아드리안이 하고 싶었던 일이었다.

“너를 소드 마스터로 만들어 줄 거야.”

툭, 그 검지 끝에서 밝은 빛이 환하게 빛났다.

뭐? 방금 아드리안이 뭐라고 말한 거지?

미하일이 거절하기도 전에 환한 빛이 눈앞을 가렸다. 마법이었다.

이윽고 눈이 멀 것 같았던 빛이 사라지자, 미하일이 눈을 슬쩍 떴다. 몇 번 눈을 깜빡이고 나서야 아드리안이 보였다. 미하일은 이상하단 표정으로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손바닥을 쥐었다 펴 보는 미하일을 향해 아드리안이 질문했다.

“무슨 힘이 느껴져?”

“…….”

그 질문에 미하일이 고개를 번쩍 들어 올렸다.

“……아니?”

전혀 달라진 게 없는데? 미하일은 이상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럴 리가. 너무 큰 변화라 네가 못 알아차리는 거야. 눈을 감고 제대로 느껴 봐.”

“…….”

아드리안의 확신에 찬 목소리에 미하일은 ‘……그런가?’라고 생각하며 다시 눈을 천천히 감았다. 매일 하는 것처럼 마나 운용을 해 보려는 것이었다.

검은 어둠 속에서 자신이 가진 마나를 움직여 보던 미하일이 이내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당황한 표정은 여전했다.

“진짜 아무런 변화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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