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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가용-177화 (177/184)

177화

스으윽, 슥.

노 젓는 소리에 맞추어 점성 강한 액체가 진득하게 붙어 오듯 출렁거렸다. 선발대를 실은 나룻배는 천천히 한 방향을 향해 느리지만 힘 있게 나아갔다.

“마물이 튀어나오지는 않을까요?”

캐서린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냈다.

실드 마법을 사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마물의 공격을 받으면 곧장 무용지물이 될 것이었다. 뱃머리 쪽에서 지도를 들고 선 카일이 대답했다.

“내가 이곳을 조사했던 몇 달간 마물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어.”

“단 한 번도?”

“한 번도.”

카일의 대답에 캐서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배 밑의 검은 마나를 눈으로 대강 훑었다.

“확실히 이상하긴 해.”

그런 반응을 이해한다는 듯 카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이상하지?”

그들의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던 군단장의 눈썹 한쪽이 올라갔다. 아무래도 학자들 간의 대화다 보니 군대에 몸담고 있는 군단장은 도통 이해를 할 수가 없었던 터였다. 선발대의 대부분도 궁금했던지 카일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지금 이 배 아래에 있는 검은 마나가 무척 순수한 힘의 근원이란 말이죠. 원래 검은 마나는 마물들의 먹이이기 때문에 검은 마나 주변에는 언제나 마물이 들끓기 마련인데…… 지금 보세요.”

카일이 말을 하다 말고 배가 나아가고 있는 앞과 주변을 손짓했다.

수평선 저 너머까지 살아 있는 것은 한 마리도 없이 고요한 검은 호수밖에 보이지 않았다. 배가 공중에 떠 있는 거대한 검은 원에 점점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멀리서 봤을 때에도 거대했지만, 전진할수록 그 심연의 크기 크기를 몸소 느낄 수 있었다. 검은 원은 세상의 모든 것을 집어삼킬 수 있을 만큼 비현실적인 크기였다. 바로 아래까지 바로 아래에서 본다면, 거의 왕성 하나 만큼 크게 보일 것 같았다.

상상만 해도 온몸에 소름이 끼치는지 누군가가 어깨를 움칠 떨었다.

“고요합니다.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듯이.”

“…….”

잠시간 침묵이 배에 내려앉았다.

캐서린과 카일이 이상하다고 말한 이유를 그제야 알아들은 것이다.

“무엇을……?”

기다리는 걸까요?

꿀꺽, 누군가가 목울대를 울리며 침을 삼켰다. 그러나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이 배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우선 우리는 이 현상에 대한 조사만 한다. 위험한 임무일 수 있으니 다들 조심해. 명령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배의 실드 밖을 벗어나지 마라.”

군단장이 근엄한 목소리로 말하자 군인들 역시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뱃머리의 미하일이 굳은 얼굴로 검은 호수를 내려다보던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배의 후미에 앉은 아드리안의 말간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아드리안은 한쪽 팔을 배의 가장자리에 댄 채로 무심하게 검은 마나 저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하일의 시선을 느꼈는지 아드리안의 눈동자가 옆으로 스윽 움직였다.

분명 아드리안은 ‘만약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면 내가 필요할 거야.’라고 말했었다. 최대한 그런 일은 없어야겠지만 아무래도 상황이 조금 심각해 보였다.

둘은 서로를 바라본 상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서로가 지금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느낄 수 있었다.

아드리안은 시선을 돌려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거대한 원을 날카롭게 바라보았다. 다른 인간들이 다른 데 신경 쓰고 있는 틈을 타 드래곤의 힘으로 검은 원을 찌그러트려 보려 했으나…… 아드리안의 힘은 단번에 흩어져 버렸다. 검은 원은 여전히 아무렇지 않게 고요히 하늘 위에 떠 있었다.

‘……내 힘이 통하지 않는다.’

이전에 신전에서 느꼈던 그 무력감이 드래곤의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흠, 아드리안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눈앞의 거대한 검은 원을 노려보았다.

대륙 위의 모든 것이 드래곤의 권속 아래에 있었으나, 저것은 그 그늘에 속하지 않은 것이었다. 검은 마나를 계속해서 내보내고 있는 것을 보아 이 세계의 것이 아닌 마계에 속한 것일 테다. 그러니 드래곤의 영향권 밖에 있는 것도 그리 이상하지는 않았다.

자신 있게 미하일에게 ‘내가 필요할거다.’라고 말했건만, 이래서야 여기까지 따라온 이유가 없겠는데. 아드리안은 한쪽 입술을 끌어당겨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

그때였다.

쿠구궁——

지금껏 무거운 적막만이 내려앉았던 검은 호수가 별안간 거대한 진동에 요동쳤다. 그 탓에 선발대가 타고 있는 나룻배가 뒤집어질 듯이 이리저리 물살에 치였다.

“꽉 잡아!”

누군가 소리쳤다.

대부분 배의 모서리를 두 손으로 붙잡았으나, 넋 놓고 있다가 타이밍이 늦은 인원 하나가 배 밖으로 튕겨져 나가려 했다. 탁! 군인 하나가 그를 붙잡아 배 안으로 다시 거세게 잡아당겼다.

헉, 허억. 순식간에 검은 마나에 빠질 뻔했던 사람은 거칠게 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감, 감사합니다.”

“정신 똑바로 차려! 이번 임무의 목적은 검은 마나가 흘러나오는 부분을 확인하는 것뿐이다. 전원 무사 생환이 가장 중요하다고! 알았나?”

“네, 넵!”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탓에 얼빠진 얼굴이었던 남자가 결연한 표정으로 자세를 고쳐 잡았다. 동시에 실드 마법을 확인하던 캐서린이 외쳤다.

“실드는 멀쩡합니다!”

“카일! 지금이라도 뱃머리를 돌려야 하지 않겠어?”

군단장이 다급하게 지도를 든 카일에게 질문했다.

“그럴, 그럴 필요가…….”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지도를 꾹 쥐고 있던 카일은 지금 그들의 배가 있는 위치를 알아채고는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계속해서 지표 삼아 왔던 거대한 검은 원이 지금 그들의 머리 바로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없을 것 같습니다.”

이미 도착해 버렸으니까요- 카일이 바짝 긴장한 자세로 중얼거렸다.

구우우웅———

짧은 진동이 아닌 긴 떨림이 심연의 어둠 속에서 반복적으로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거대한 위압감에 짓눌리는 느낌이었다.

나룻배가 떠 있는 검은 마나 호수가 다시 잠잠해졌다.

조금 전의 거센 파도는 거짓말이었다는 듯이.

“……조금 전 진동은 뭐였지?”

미하일이 뱃머리에서 푸른 하늘의 거대한 검은 원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이래서야 마치 나룻배가 더 가까이 오게 하도록 만든 것 같잖아.

가까이서 봐도 감상은 다르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빛이 사라진 듯 어둡고 검은 원이었다. 원의 가장자리에서는 검은 마나가 줄줄 새어 나오듯 흘러내리고 있었다. 원래 근처에 저런 거센 물줄기가 쏟아진다면 배가 영향을 받았을 테지만, 워낙 진득한 마나라 그런지 몰라도 배는 안정적으로 자기 자리를 지켰다.

구우우웅——

검은 심연은 자꾸 자신을 바라보라는 듯 존재감을 내뿜었다. 미하일은 이상한 기시감에 슬쩍 눈썹을 찌푸렸다.

‘어? 뭔가…… 이상한데.’

그렇게 느낀 순간, 미하일의 붉은 눈동자의 초점이 사라졌다.

쿠우웅——

머리 위에 떠 있는 검은 원이 그에 대답하듯 낮게 진동을 이어 갔다. 원정대의 모두가 고개를 위로 한 채 그곳에 신경을 쓰고 있을 때였다.

“……!”

후미에 앉아 미하일을 유심히 바라보던 아드리안이 가장 먼저 그 변화를 알아차리곤 몸을 벌떡 일으켰다.

“미하일!”

그 외침에 휙, 모두가 이름의 주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곧바로 하늘의 심연을 올려다보던 미하일의 몸이 옆으로 기우뚱- 기울어졌다. 아드리안은 단 몇 걸음 만에 뱃머리에 도착해 미하일의 쓰러지려는 미하일의 몸을 턱, 받아 냈다. 그의 깃털 같은 발걸음에 나룻배는 흔들림 하나 없었다.

쓰러진 미하일에게서 아무런 반응이 없자, 아드리안은 두 팔로 조심히 그를 끌어안고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미하일?”

살짝 흔들어 보아도 미하일은 눈을 감은 채 조용했다.

“정신을 잃은 건가?”

미하일의 옆에 있던 군단장이 상태를 확인하고는 중얼거렸다. 아드리안은 품 안의 미하일을 관찰하듯 유심히 바라보았다. 인간들은 스트레스나 급격한 감정 변화에 기절하기도 했다.

“…….”

그러나 지금 미하일의 모습은 그런 일반적인 증상은 아닌 것 같았다.

밝은 속눈썹으로 생긴 그늘이 미하일의 눈가에 드리워져 있었다. 미하일을 소중하게 안고 있는 아드리안에게 캐서린이 질문했다.

“……치료 마법이 필요할까?”

만약 그런 마법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이미 드래곤이 시도했을 것이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태도였다. 아드리안이 고개를 양옆으로 저으며 거절하는 것과 동시에 캐서린이 중얼거렸다.

“어, 눈을 다시 뜨신 것 같습니다.”

이렇게 곧바로?

아드리안의 눈동자가 빠르게 자신의 품 안의 미하일로 향했다.

캐서린의 말처럼 꾹 감겼던 미하일의 눈이 열려 있었다.

“……!”

그때와 같았다.

도헤니어 화산에서의 미하일도 지금처럼 두 눈에서 빛이 흘러나왔었다. 그러고는 무슨 일을 했었지?

아드리안은 조용히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미하일은 이런 눈을 하고 검을 들어 올려 검은 마나를 푸딩 가르듯이 반으로 깔끔하게 냈었다.

미하일은 아드리안의 품 안에 축 늘어져 있던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그의 피처럼 붉은 눈동자에서 무심하게 안광이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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