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같이가용-169화 (169/184)

169화

미하일에게는 들어오지 말라는 아드리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저건…….”

기어코 신전에 들어온 미하일의 시선이 머리 위 천장에 향한 채 움직일 줄을 몰랐다. 아드리안은 짜증스레 고래를 휙, 들어 올렸다. 천장화를 확인한 드래곤의 눈썹이 그제야 천천히 펴졌다. 끼익- 그들의 뒤편에서 신전의 커다란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하아- 아드리안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지리 말도 안 듣는 어린애랑 돌아다니는 게 여간 귀찮기 그지없었다.

“멍청아. 지금 저기 그려져 있는 게 천사가 아닌 걸 다행으로 알아.”

아드리안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천장화에는 끔찍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드래곤은 별 감흥 없이 심드렁하게 그림을 훑을 뿐이었다.

“……생각보다 캐서린의 표현력이 좋은걸?”

그녀의 목소리가 귀 옆에서 생생하게 들릴 만큼 설명과 똑같은 그림이었다. 대륙 위의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검은 마나가 집어삼키는 장면이었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은…… 당연하게도 비늘이 검게 물든 골드 드래곤이었다. 저게 나라고? 객관적으로 드래곤의 이미지를 바라보니 묘하게 어색했다. 골드 드래곤은 주둥이를 벌린 채 검은 마물들과 함께 대륙 위를 날뛰고 있었다.

멸망의 순간을 화가가 직접 두 눈으로 보고 따라 그린 듯한 그림이었다.

흠. 이쯤 되니 지금 천장화에 그려져 있는 것이 천사 그림이 아닌 게 정말로 다행인지 아닌지 긴가민가했다.

아드리안은 옆에서 아무 말 하지 않고 그림만 쳐다보고 있는 미하일을 힐끔 눈짓했다.

“왜 그런 표정이야.”

“…….”

미하일의 표정이 꽤나 볼만했다. 자신만만하게 대답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아드리안은 입술을 한껏 비틀어 올려 그런 미하일을 비아냥거렸다.

“혹시라도 다른 그림을 기대했나?

여태 원하는 것을 가지지 못한 적이 없었을 것이다. 왕자로 태어나 이루지 못하고 패배한 경험 따위 단 한 번도 없었겠지. 그런 미하일에게 저 멸망이라는 불쾌한 진실은 받아들이기 벅찰지도 몰랐다.

괜히 여기에 데려온 것일지도. 아드리안의 눈이 가늘어졌다. 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해 보았자 늦었다.

“캐서린의 말을 의심했던 건가? 그림이 그사이 달라졌을 줄 알았어?”

“……아니. 그런 건 아니야.”

침묵에 잠겨 있던 미하일이 고개를 저으며 빠르게 대답했다.

“그러면?”

그러면 왜 그런 표정이지? 드래곤은 짜증스레 되물었다.

멍한 얼굴로 천장화를 바라보던 미하일이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의 눈동자는 아까부터 천장의 그림에서 무언가를 찾으려는 듯이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미하일의 입술 사이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는 아드리안이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종류였다.

“저 그림에 내가 없다는 것이 이해가 안 돼.”

절대 그럴 리가 없을 텐데- 미하일은 마지막에 작게 덧붙였다.

캐서린이 천장화 이야기를 했을 때부터 궁금했던 부분이었다. 아드리안이 저런 상황이 될 때까지 미래의 나는 도대체 뭘 하고 있었지? 저 상황을 막을 수 없었던 건가. 아니면, 내 힘으로는 막을 수 없는 상황인 건가. 둘 중 어느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미하일은 입안을 거칠게 짓씹을 수밖에 없었다.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겠다는 열망에 들끓었던 분노는 저 그림을 마주한 순간 차갑게 가라앉았다.

미하일은 작게 중얼거렸다.

“왜지?”

“……겨우 그게 궁금한 거야?”

아드리안은 미하일의 의문을 듣고선 허탈한 웃음소리를 냈다. 웬일로 심각해 보인다 했는데 저런 고민을 하고 있었다니. 몸은 컸대도 알맹이는 그대로인가 보지. 드래곤의 시야에 미하일이 주먹을 세게 꾹 말아 쥐는 것이 들어왔다.

“겨우? 내게는 중요한 일이야.”

미하일은 드래곤의 가벼운 반응에 차갑게 대답하고 입을 다물었다.

아직도 천장화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미하일의 얼굴 위를 아드리안의 눈이 천천히 훑어 내렸다. 저 그림에 본인이 없는 것이 싫다는 건가?

여하간 이상한 놈이었다. 드래곤은 슬쩍 풀어진 얼굴로 천장 어느 한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중얼거렸다.

“뭐…… 드래곤에 비해서 인간은 크기가 작으니까, 저기 구석에 있을 수도 있지.”

위로하려는 의도는 없었지만, 미하일의 반응에 아드리안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부드러운 말이 흘러나왔다. 어린애를 대강 어르려는 말투가 나왔다는 것을 본인은 눈치채지 못했다.

그런 아드리안의 검지를 따라 미하일의 눈동자가 데루룩 움직였다.

“…….”

하지만 그 손가락의 끝에는 흉측한 검은 마물 그림밖에 없었다. 미하일은 그제야 아드리안이 장난스럽게 대충 한 소리라는 걸 알아챘다.

“없잖아.”

그러고선 짜증스레 중얼거리며 눈을 치켜떴다.

아드리안은 미하일의 얼굴을 확인하고서는 어이없다는 듯 입술을 비틀어 올렸다. 그는 가끔씩 아드리안이 드래곤이라는 사실을 잊은 듯 저런 건방진 행동을 하고는 했다. 몇 번 눈감아 주었더니 버릇이 영 잘못 든 것 같았다.

“말은 제대로 들어야지. 있을 ‘수도’ 있다고 했는걸.”

드래곤은 심드렁한 얼굴로 중얼거리고는 입가를 손가락으로 매만졌다. 뭐, 별것도 아닌 말에 저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니 은근히 재밌기는 했다.

‘……은근히 성격 더럽단 말이야.’

미하일은 옅게 웃고 있는 아드리안의 표정을 눈치채고는 속으로만 투덜거렸다. 바사미엘을 졸업한 지가 언제인데, 아드리안과 이렇게 대화하다 보면 가끔은 다시 아카데미를 함께 다니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흐음, 아드리안은 천장을 향해 턱을 한껏 들어 올리며 눈을 가늘게 떴다.

“확인해 보려면 더 가까이서 보긴 해야겠군.”

워낙 높은 곳에 그려진 세밀한 그림이다 보니 드래곤의 뛰어난 시야에도 어렴풋이 보일 정도였다.

“뭐?”

그의 말에 멍하니 서 있던 미하일이 고개를 돌리려다가 갑작스런 움직임에 놀라 윽, 하고 신음했다. 몸 전체가 눈에 보이지 않는 힘에 둘러싸인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동시에 허공으로 휙 치솟는 거센 힘에, 미하일은 공중에서 중심을 잡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쯧, 바로 옆에서 아드리안이 짧게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버둥거리지 마.”

“나도 그러고 싶지 않아. 마법 쓰기 전에 언질 한 번 주는 게 그렇게 어려워?”

미하일은 퉁명스런 말투로 대답했다.

휘청거리는 미하일의 몸을 아드리안이 가볍게 턱, 잡아챘다. 평소에는 단단한 땅에 디디고 있느라 이런 공중 부양 마법이 익숙하지 않을 수 있었다. 물론 마법은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미하일을 땅에 떨어트리는 초보 같은 실수를 하지는 않겠지만 미하일로서는 아무래도 똑바로 서 있는 것이 편할 것이었다.

“그림을 더 자세히 봐야 하잖아. 네 마법 실력이 얼마나 늘었는지는 몰라도, 아마 이 정도는 불가능할 텐데?”

“…….”

그건 맞았다.

월등한 검술 실력과는 별개로 마법 실력은 영 발전이 늦은 탓이었다. 어차피 미하일에게 마법이라면 검기를 일으키는 수준만 되어도 충분했다. 대륙에는 우수한 마법사들이 충분히 많고, 본인은 소드 마스터가 되는 것에만 집중하면 되겠다는 판단에서 나온 결론이었다. 하지만 이 순간만은 마법 수련도 좀 더 했으면 좋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 이쪽 팔을 잡아.”

아드리안은 한쪽 팔을 미하일의 허리를 둘러매어 부축하듯이 공중에 똑바로 일으켜 세웠다. 미하일의 날카로운 눈빛이 그 팔을 확인하고는 드래곤의 얼굴까지 훑었다. 탁, 아드리안의 팔에 손을 대고 힘을 주자 허공에 둥둥 떠 있는 몸이 안정되는 것이 느껴졌다.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인간을 보살피는 드래곤의 몸짓이 묘하게 자연스러웠다.

“그때에는 분명히 이런 그림이 아니었는데.”

“그때?”

“카를로와 이 던전에 들어왔을 때.”

“…….”

카를로. 아드리안의 입에서 들린 이름에 미하일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공중에서 아드리안의 팔을 지지대 삼아 일어나자 그제야 시야가 제대로 들어왔다. 아드리안의 환한 금발 머리칼이 바로 옆에서 흔들리며 목에 닿아 오는 것이 느껴졌다. 간지럼을 타지는 않았으나, 마음속 어딘가가 간질간질거리는 것 같았다. 미하일은 그것을 참으려는 듯 입을 꾹 다물고는 고개를 제자리에 돌렸다.

미하일은 몇 번이나 물어볼까 말까 고민하다 입술을 열었다.

“카를로와…….”

“음?”

“아니야.”

왕자의 얇은 입술이 꾸욱 다물렸다.

카를로에 비해서 드래곤에게 자신이 얼마나 아무것도 아닐지 저울질하다 곧바로 그만두었다. 자신은 왕국의 왕자로 태어난 것밖에는 그에게 내세울 만한 것이 없었다. 그에 비하면 카를로는 드래곤과 모험을 몇 년간이나 함께했고, 끝내는 굳건한 왕국을 건설하기까지 했다.

어느샌가부터 아드리안의 금안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입안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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