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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가용-160화 (160/184)

160화

내가 옆에서 보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미하일에게 몇 번이나 직접 들었기 때문에, 그 이유를 되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드리안은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왜냐하면 넌 나를 좋아하니까.”

의문으로 끝났으나, 정말로 궁금해서 말한 것은 아니었다. 거의 혼잣말에 가까웠다. 무어라 대꾸가 있을 거라 예상한 것과 달리 미하일이 조용하자, 아드리안은 그제야 미하일의 얼굴로 시선을 옮겼다. 그는 아드리안의 이야기에 놀란 듯 눈동자가 크게 뜬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

묘한 표정이었다. 미하일의 눈은 지금 이 상황이 진짜인지 관찰하는 것처럼 아드리안의 얼굴을 살피고 있었다.

관찰하듯? 아드리안은 그 시선이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였다.

“아닌가?”

이번에는 잘못 생각한 것일지도 몰랐다. 아드리안의 질문에야 정신을 차린 미하일이 곧바로 대답했다.

“……맞아.”

네가 정확하게 알고 있을 줄은 몰랐지만 말이야. 미하일은 뒤이은 말은 속으로 삼켰다.

아드리안은 잠시간 혼자 생각하다가 자신의 콧잔등을 검지로 긁적였다.

“옆에 있어 달라고.”

미하일의 맑은 두 눈동자가 아드리안의 답을 듣기 위해 이쪽으로 향해 있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대답을 하려면 조금 더 고민이 필요했다.

“내가 필요하다는 건가? 드래곤이 아닌…… 그냥 내가?”

미하일의 답을 알고는 있으나,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전혀 다른 영역이었다. 드래곤이 아닌 그냥 아드리안 헤더가 옆에 있어 봐야 미하일에게는 아무런 이득을 가져다 줄 수 없지 않은가.

“그런 거지.”

미하일은 피식, 짧게 웃었다. 옆에서 저 표정만 봐도 아드리안은 지금 이 요구에 담긴 미하일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상한 부탁이군.”

“괜찮아. 내 마음을 알아 달라고 억지 부릴 생각은 없으니까.”

“…….”

“다만 이 이상한 부탁에 네가 조금이라도 흥미가 있다면 좋겠어.”

카일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미하일의 모습이 눈앞을 스쳐 갔었다.

흥미가 전혀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아드리안은 미하일의 상태가 궁금해져서 이곳으로 찾아오긴 했으니 말이다. 물론, 여기에 있어 달라는 부탁을 들을 줄은 몰랐다. 그의 마나 컨트롤 문제를 빠르게 해결해 주고 레어로 돌아가려 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이었다.

여기에 남아서 미하일을 지켜보든 그냥 레어로 돌아간 다음 나중에 찾아보든, 아드리안에게는 어느 쪽이든 나쁠 게 없었다.

“뭐.”

아드리안은 여러 가지 가정들로 뒤엉킨 머릿속을 단번에 잘라 냈다.

어차피 그는 드래곤이었다. 손안에 가지고 있는 선택지를 고르는 기준은 오로지 본인의 흥미가 전부였다. 다른 것들은 아무런 장애물이 되지 않았으니. 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흥미가 떨어질 때까지라면.”

그때까지는 여기에 머물러도 괜찮을 것 같았다.

아드리안의 미적지근한 수긍에 지금껏 드래곤의 결정을 궁금해하던 미하일의 얼굴이 서서히 펴졌다. 그는 괜히 거기서 멍청이같이 진짜냐고 되묻지 않았다.

“그거면 충분해.”

또렷한 목소리였다. 미하일이 하하, 가볍게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심심하지 않게 해 주지. 약속할게.”

“…….”

드래곤인 지금은 쉽게 약속할 수 없었다. 드래곤의 힘을 빼앗겼을 때, 미하일과 약속했던 그 순간이 아드리안의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아드리안은 미하일의 약속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입술을 꾹, 다물었다.

서서히 해가 떠오르고 있는지, 얇은 천으로 지어진 막사 안으로도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새벽에서 아침으로 넘어가며 새들이 맑게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진지 내의 인간들이 하나둘씩 잠에서 깨어나 움직이기 시작하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아드리안은 막사 안에서도 밖의 움직임을 전부 느끼고 있었다.

협탁의 작은 촛불에 의지해서만 볼 수 있었던 아드리안의 얼굴도 이제야 아침 햇살에 밝게 드러났다.

미하일의 붉은 두 눈동자도 그에 반응하듯 울렁거리듯 빛나고 있었다. 전부터 생각했지만 여전히 자신감 하나는 높이 사 줘야 했다.

여전히? 미하일을 만났던 것은 모두 통틀어 십 년도 되지 않았다. ‘여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그래.”

아드리안은 그 시선을 마주한 채 입술을 움직였다. 한참 동안 굳었던 입술 끝이 천천히 올라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레어에서 혼자 지내는 동안에는 이렇게 웃었던 적이 없었다.

역시 이상한 인간이야. 그렇지만 여전히 이렇게 자신을 웃게 만든다는 점에서 아드리안은 이 의외성이 불쾌하지는 않았다.

아드리안은 양쪽 입술 끝을 완전히 끌어 올려 가볍게 웃었다. 오랜 시간에 바랜 듯 희미한 웃음이었다.

그 웃음을 마주 보고 있던 미하일의 두 눈동자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커져 갔다.

그때였다.

댕- 댕-

커다란 종소리가 진지 전체를 울렸다. 그 진동에 막사의 천막도 함께 흔들리는 것 같았다.

“……뭐지?”

음? 아드리안은 고개를 슬쩍 밖으로 돌려 눈을 가늘게 좁혔다. 저 종소리가 끝나자마자 모든 인간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미하일은 둘만의 시간이 방해받은 것에 짜증스레 손으로 머리를 헝클였다. 무척 귀한 웃음을 볼 수 있는 기회였는데. 그 순간을 저 망할 종소리가 깨트려 버렸다.

“벌써 아침 점호 시간인가 보군.”

귀찮다는 듯 말한 것 치고는 미하일은 침대에서 빠르게 휙, 일어났다. 그러고는 막사 한곳에 늘어놓은 윗옷 하나를 꺼내 꿰입는 것으로 나갈 준비를 마친 것 같았다. 이리저리 헝클어진 머리칼을 대강 쓸어 넘기자 그럭저럭 밖으로 나갈 모양새가 완성되었다.

아드리안은 침대에 걸터앉아 턱을 괸 채 그런 미하일을 바라보고 있었다.

점호.

미하일이 지금 머물고 있는 이 막사는 마물의 침입을 막고 있는 최전선이라 했다.

먼발치에 둔 군화를 신던 미하일이 그런 아드리안의 가라앉은 눈빛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옆으로 슬쩍 기울였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점호를 다녀오는 동안 아드리안이 심심하다며 레어로 돌아가는 일은 없어야 했다. 미하일의 이야기에 아드리안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거야 모르는 거지. 전장에서 돌발 상황이야 일상이니까.”

전쟁은 어차피 뻔했다.

누군가는 그것에서 승리하고, 패배하겠지만 결국에는 모두가 패자가 되는, 그런 이상한 현상이었다. 물론 지금 인간들이 싸우고 있는 것은 마물들이라 조금 다르긴 했다. 그러나 이 전쟁 역시도 많은 목숨을 앗아 갈 거라는 것은 동일했다.

드래곤에게 다시 돌아올 거라 약속한 후, 그 뒤로 영영 볼 수 없게 된 인간들은 손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그들은 약속한 것을 지킬 수도 없는 주제에 언제나 진심으로 불가능한 것을 약속하고는 했다.

이래서 내가 인간에게 큰 관심을 두려 하지 않는 거였는데.

아드리안의 미간이 짜증스레 찌푸려 들었다. 그런 그를 향해 미하일이 성큼성큼 다가가며 생각했다.

‘무슨 생각을 하길래…….’

미하일의 고개가 옆으로 기울어졌다. 그는 밤새 침대 맡에 올려 두었던 펠렌 디프스의 검을 들어 올리며 잠시간 고민했다. 아드리안이 뭐라고 했더라? 전장에서의 돌발 상황? 이러다간 드래곤이 마음을 확 뒤집어서 레어에 돌아갈 것만 같았다. 미하일은 마침내 좋은 방법 하나를 떠올렸다.

“……아드리안.”

미하일의 부름에 아드리안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아무 말 없는 아드리안 앞에 미하일의 팔이 휙, 하고 비집고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펠렌 디프스의 검이 들려 있었다.

“정말로 오래 걸리지 않을 거니까…… 그동안 이걸 가지고 있어.”

“…….”

아드리안은 그 검을 찬찬히 훑어보다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미하일을 올려다보았다. 분명 아끼는 검일 것이 분명한데도 이렇게 남에게 맡기다니. 그 정도로 자신의 말에 확신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 적어도 그 미래의 예지된 상황에서 미하일은 이 검을 들고 전장에 서 있었다. 아드리안은 천천히 손을 뻗어 미하일이 내민 검을 잡았다. 그는 잘했다는 듯 옅게 미소 지으며 펠린 디프스의 검을 쥐고 있는 손의 힘을 툭, 풀어냈다. 그러자 아드리안의 두 손에 적당히 무게감 있는 검 하나가 온전히 들려 있게 되었다.

“내가 이 검을 목숨보다 아끼는 건 알지?”

“……그런 걸 나한테 맡겨 놔도 되겠어?”

아드리안은 퉁명스럽게 말하면서도 받은 검을 미하일에게 돌려주려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불안했던 마음이 이 검을 받아 들자마자 스륵, 사그라드는 것처럼 녹아 없어졌다.

미하일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막사의 천을 휙 들어 올렸다. 점호 시간에 더 늦고 싶지 않았던 미하일은 고개만 뒤로 돌려 “그럼, 다녀올게.”라고 중얼거린 후 빠르게 뛰어 나갔다.

“……다녀올 수 있길 바라지.”

아드리안은 검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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