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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가용-151화 (151/184)

151화

마차 끝에 걸터앉아 있는 왕자의 얼굴에는 혼란이 가득했다.

루스는 그를 향해 걸어가며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평화로운 숲속에서 별다른 이상 징후를 발견할 수 없었다.

“왜? 무슨 일 있었나?”

미하일은 루스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양옆으로 살짝 저으며 대답했다.

“……그냥 잠시 생각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 그러면 다행이고.”

루스는 심드렁한 얼굴로 반응한 뒤, 곧바로 본론을 꺼내 들었다. 드래곤은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표정으로 엄지로 자신의 등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의 손가락이 가리킨 방향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관 하나가 바닥에 놓여 있었다.

“저기 있어.”

“…….”

“아드리안의 시신 말이야.”

마차에 앉아 루스를 올려다보던 미하일은 관을 확인한 후 입술을 약하게 깨물었다. 루스는 빨리 저 관이 놓여 있는 쪽으로 와 보라는 듯이 한 팔을 뻗었다. 그 팔을 잡고 일어나라는 뜻이었다. 지금 그들을 단단하게 엮고 있는 이 용언 계약을 말끔히 끝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루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에 몇 가지 더 덧붙이려 입을 열었다.

“절벽의 아래에서 발견하자마자 여기로-”

“그것보다…… 이 짐마차에 무엇이 실려 있는지 궁금하시지 않습니까?”

루스의 말을 끊고 미하일이 질문했다.

그 질문에 루스는 미하일이 걸터앉은 짐마차를 슥 둘러보았다.

“여기?”

마차의 한쪽 문이 열려 있던 터라 밖에서도 내부가 잘 보였다.

“……여기에 뭐가 실려 있‘었’던 게 아니고?”

그도 그럴 게 짐마차 안쪽은 텅 비어 있었다. 루스가 심드렁한 얼굴로 되묻자, 그 얼굴을 올려다보던 미하일이 마차에 걸터앉은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그가 움직이자 안쪽이 더 잘 보였다.

그러나 여전히 어두운 마차 안은 아무것도…… 왜 이런 얘길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 마차 안을 훑어보던 루스의 눈가가 움찔, 떨렸다.

미하일이 가리고 있던 햇빛이 짐마차 안으로 쏟아지면서 그 안의 어떤 것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

마차는 비어 있던 것이 아니었다.

자신을 봐 달라는 듯이 붉은색 표면을 반짝이고 있는 작은 돌멩이 하나가 짐마차의 바닥에 놓여 있었다.

“…….”

젠장.

루스는 그 돌멩이를 보자마자 최악의 상황에 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의 등 뒤를 찌를 듯이 날카롭게 바라보고 있는 미하일의 눈빛이 느껴지는 듯했다. 그 눈빛에서 미하일이 저 ‘꿰뚫어 보는 눈’으로 어떤 정보를 얻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서 있기만 하면 확인할 수 없잖아. 더 자세히 봐야 하지 않겠어?”

등을 돌린 상태로도 미하일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지금까지의 말투와 아주 약간 달랐다. 마치 바사미엘 아카데미에서 들었던 것 같은 가벼운 말투였다. 그러니까 드래곤을 대하는 왕족의 정중한 말투가 아니라, 아드리안의 룸메이트였던 미하일의 것처럼 들렸다.

그 변화를 눈치챈 드래곤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고는 짐마차에 한 발을 올렸다.

“‘꿰뚫어 보는 눈’이라니…… 이름 짓는 센스하고는.”

안 그래도 직접 확인하고 싶기는 했다.

불만스럽게 투덜거리는 루스의 목소리가 어두운 짐마차 안을 가득 채웠다. 그는 그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 마차 바닥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돌멩이를 들어 올렸다.

음? 예상보다 훨씬 가벼운 무게에 루스의 눈이 슬쩍 가늘어졌다. 지금 이 무게는 그가 바사미엘에서 미하일에게 펠렌 디프스의 검을 쥐여 주었을 때보다 훨씬 가벼웠다.

“……그래. 이래야지.”

씨익, 루스는 얇은 입술 양 끝을 끌어 올리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오르디나스의 그 높으신 기준을 이제야 통과한 듯했다.

루스는 꿰뚫어 보는 눈을 손에 쥐고는 가볍게 허공으로 던졌다가 탁, 하고 쉽게 잡아챘다. 그 상태로 짐마차의 문 쪽으로 몸을 돌렸을 때였다.

“제일 중요한 걸 확인 안 했잖아.”

기분 좋아 보이는 루스를 향해 마차의 문가에 기대 선 미하일이 툭, 말을 내뱉었다.

루스는 그 말에 손에 쥐고 있는 돌멩이를 내려다보았다. 미하일은 여기에 숨결을 불어넣어 돌멩이의 주인을 확인해 보라는 뜻일 거였다. 그러나 굳이 그러지 않아도 이미 결과는 뻔했다.

“…….”

“뭐 해? 숨을 불어넣지 않고.”

또렷한 미하일의 목소리가 루스를 질책하듯이 귓가를 찌르며 들어왔다.

“아니면…….”

미하일은 일부러 말꼬리를 길게 늘이며 웃었다. 그러나 그는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굳이 확인 안 해 봐도 이미 알고 있어서인가?”

드래곤이 있는 마차 안쪽으로 미하일이 들어왔다.

그러고는 지금까지 아무 말 하지 않고 있는 루스의 손에서 미하일이 꿰뚫어 보는 눈을 탁, 하고 낚아채 갔다.

후우우-

미하일이 루스 대신 붉은 돌 표면에 자신의 숨을 아주 길게 내뱉었다. 그러는 중에도 미하일의 눈은 루스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곧이어 숨결이 닿은 꿰뚫어 보는 눈에 이름이 스르륵 떠올랐다.

미하일은 루스에게 그 글씨가 보이지 않도록 돌멩이를 비스듬하게 쥐었다.

“안 그래?”

미하일은 꿰뚫어 보는 눈을 들어 올려 루스에게 보여 주었다. 원래대로라면 ‘아드리안 헤더’라고 쓰여 있어야 했던 돌이었다. 그러나 그가 손에 들고 있는 돌 표면에는 전혀 다른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루스 페니건.”

“…….”

루스는 자신의 얼굴 바로 앞까지 들이밀어진 그것을 확인하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꿰뚫어 보는 눈의 표면 위에는 정말로 ‘루스 페니건’이 휘갈겨 써진 필체로 써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긴, 입학식에서 과연 저 돌 위에 ‘아드리안 헤더’가 새겨질지 아닐지 궁금했었지. 어디까지 꿰뚫어 보는지는 몰라도 돌은 언제나 주인을 확실히 가리키고 있었다.

“아니면, 아드리안 헤더라고 불러 주는 것이 더 편하겠어?”

냉기가 뚝뚝 떨어지는 듯한 차가운 목소리였다.

저 꿰뚫어 보는 눈은 처음부터 드래곤에게 도움이 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아…….”

루스는 아니, 미하일과 함께 바사미엘에서 일 년을 보냈던 아드리안 헤더는 감탄사를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들킨 것을 이제 와서 무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미하일은 그렇게 놀란 것 같지도 않아 보였다. 맨드레이크를 가지러 레어에 들른 짧은 시간 동안 알아낸 것치고는 무척 침착해 보였다. 아드리안은 짧게 코웃음 치며 자신의 금발을 대충 흩트리며 미하일에게 질문했다.

“언제부터 알았지?”

괜히 피차 불편하게 연기하고 있었군. 별것 아니라는 듯한 아드리안의 말투에 미하일의 눈동자가 일렁였다.

미하일은 아드리안을 빤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끊어 말했다.

“지금 넌 그게 중요한가 봐?”

“…….”

“한참 전부터 알고 있었어. 사실, 나는 네가 먼저 나에게 그 사실을 알려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지.”

미하일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의 첫마디에서는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드리안을, 심지어 드래곤에게 소원으로까지 말했던 그가 사실은 지금껏 나와 함께 있었다니. 그것도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그러나 미하일이 말을 이어 갈수록, 지금 그를 가득 채운 분노가 피부에 닿았다. 아드리안은 묵묵히 침묵을 지키며 미하일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도대체!”

미하일이 쿵! 하고 마차 벽면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그의 격앙된 감정이 그 소음에서 곧장 느껴졌다. 겉으로는 침착해 보였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도대체 네가 가져온 저 관 안에 있는 시신은 뭐야? 내가 그걸 보고 인정하면? 그냥 또 이렇게 넘어갈 생각이고?”

“……네가 내게 말했던 소원을 들어주려 한 것뿐이야.”

그동안 입을 열지 않던 아드리안이 조용히 대답했다.

나쁜 의도는 아니었다. 미하일이 원했던 것은 아드리안 헤더의 시신이었고, 그걸로나마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된다면 그에게는 좋은 일일 것이었다.

“그래서 처음 네가 그 소원을 말했을 때 분명히 후회할 거라 말했었지.”

“아니.”

미하일은 아드리안의 이야기에 단번에 반응했다.

“그 소원을 말한 것을 지금도 후회하지는 않아. 왜인 줄 알아? 내가 그 소원을 빌지 않았다면 난 영원히 이 진실을 알 수 없었을 거거든. 안 그래?”

“미하일, 진실은 때로 그냥 모르고 넘어가는 것이 훨씬 더 좋을 수 있어.”

지금 상황만 봐도 그렇지.

아드리안은 골치 아픈 듯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그 말에 미하일이 짧게 숨을 내뱉었다.

“그냥 모르고 넘어간다, 라……. 그게 어떻게 가능해?”

미하일은 입속을 짓씹었다. 그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속으로 삼키며 중얼거렸다.

“네 계획이 겨우 그거야? 그래, 시신을 확인하고 소원을 들어주는 일을 끝내는 게 네가 원하는 거였지.”

떨어지지 않는 미하일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럼 어디 한번 확인해 볼까?”

마차를 박차고 나가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아드리안은 미하일이 자신의 옆을 스쳐 지나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미하일은 루스가 레어에서 가져온 관 앞까지 빠르게 걸어갔다.

달칵, 미하일이 차가운 눈으로 관의 뚜껑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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