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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가용-150화 (150/184)

150화

아드리안 헤더의 시신.

그 말을 듣자마자 미하일의 표정이 차가워졌다. 음? 루스는 잠시간 그의 대답을 기다려 주었으나 곧 미하일이 못 들은 것이 분명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드리안의-”

“네, 시신이요. 들었습니다.”

“…….”

들었던 것이 맞군. 그런데 왜? 루스는 예상 밖의 반응에 관자놀이를 긁적였다. 생각보다 반응이 무척 별로였다. 아니, 더 자세히 말하자면 약간 화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드리안은 드래곤이 아니었습니까?”

“뭐, 시신이 있는걸 보면…… 아니겠지.”

“‘드래곤이 아니다’라는 말씀이시군요.”

나직한 목소리가 둘 사이의 바닥에 내리깔렸다.

바닥을 바라보고 있는 탓에 속눈썹의 그늘에 가려진 미하일의 두 눈동자가 뾰족하게 빛났다. 미하일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아드리안의 피가 떨어진 곳에 미르킨트가 핀 것은 그냥 우연이었다…….”

“그렇겠지.”

나라고 모든 걸 아는 건 아니라니까.

루스는 어깨를 으쓱이며 속으로만 생각했다. 어차피 그 단서 하나만 가지고는 미하일이 진실을 알아내려 한들, 어차피 그 단서 하나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할 터였다. 미르킨트가 언제 피어난 것인지 그리고 어떤 드래곤의 피인지 인간이 알아낼 수 있을 리 없을 테니까.

그때였다.

“정말로 그가 맞습니까?”

고개를 번뜩 들어 올리며 미하일이 다시 한 번 물었다.

그러자 정면을 바라보고 있던 루스의 두 눈동자와 완벽히 마주하게 되었다. 비현실적으로 반짝이는 금안이 미하일의 시야를 한가득 채웠다. 샛노란 눈동자 안에 금빛 마나 알갱이들이 천천히 강처럼 흐르고 있는 광경이었다.

“내가 확인한 것이 진짜 아드리안 헤더가 맞냐는 질문인가?”

미하일의 되물음에 루스의 입꼬리가 한쪽만 삐죽 비틀렸다. 파충류의 것처럼 가로폭이 줄어든 드래곤의 동공에서 그의 불편한 심기가 드러났다.

그 표정에서 눈치 빠르게 자신의 잘못을 알아차린 미하일이 입술을 한 번 질끈 깨물곤 빠르게 입을 열었다. 다급한 목소리에서 그의 원래 의도가 여실히 느껴졌다.

“죄송합니다. 당신의 능력을 의심하는 것은 절대-”

“……됐어.”

루스가 짧게 혀를 차며, 손을 몇 번 휘적여 미하일의 사과를 막았다.

바로 앞에 있는 인간이 채 몇십 년도 살지 않은 놈이란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곧이어 바람 빠진 듯 빈 웃음소리를 몇 번 내던 루스가 상체를 곧게 폈다. 차갑게 내려앉아 날카로웠던 둘 사이의 분위기가 그 웃음에 바로 녹아내렸다. 어차피 사소한 일에 화내 보았자 이쪽만 손해였다.

미하일의 눈동자가 루스를 향해 있었다. 마치 웃는 것처럼 두 눈은 살풋 접혀 있으나, 루스의 표정에서는 따뜻함 하나 느껴지지 않았다.

“산의 절벽 아래에 특이한 흔적이 느껴져서 마법으로 확인해 보았지. 한 가지 먼저 알아둬야 할 점은 이미 그가 사망하고 시간이 한참 지났다는 거다.”

“…….”

루스의 나직한 목소리가 둘 사이를 채웠다.

그가 실종된 날을 기점으로 적어도 두 달은 지났다. 미하일의 눈동자가 천천히 빛을 잃으며 바닥을 향해 움직였다. 만약 아드리안이 정말 인간이었다면 그의 시신이 온전히 남아 있을 거란 멍청한 생각은 해 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들으니 입안이 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미하일의 표정이 가라앉든 말든 어차피 루스의 관심사는 비늘을 매개로 한 소원을 끝마치는 것뿐이었다. 소환으로 맺어진 계약에 달린 제약이 귀찮았기 때문에 소원부터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미하일을 용사로 만들어 주는 것은 그다음이었다.

“우선 가져와 볼까? 여기서 조금만 기다리면 될 거다.”

확인은 그 이후에 해 보면 되니까.

루스는 눈으로만 웃으며 미하일의 의중을 떠보았다. 만들어 낸 시신을 받은 미하일이 그것을 확인하고 소원이 완벽히 수행되었음을 납득해야 용언 계약이 종료된다. 그렇기 때문에 저놈의 반응이 제일 중요했다.

드래곤의 힘을 되찾은 후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 바로 자신의 레어에 들리는 것이었다. 드래곤에게 레어는 단순한 보금자리 그 이상의 의미였다. 맨드레이크를 캐낼 겸 오랜만에 레어에 들러 화분들에 물도 좀 줘야 할 것 같았다. 느슨해졌을 레어의 각종 마법들도 새로 새겨 줄 필요가 있었다.

“……네. 부탁드립니다.”

미하일은 그런 루스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

턱에 검지를 가져다 대곤 눈앞에 있는 것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루스가 입을 열었다.

“흐음. 어때? 이게 나랑 똑같이 생겼나?”

루스는 늠름하게 발치 옆을 지키는 늑대에게 턱짓하며 혼잣말을 했다. 본래 드래곤들은 혼잣말하는 데에 매우 익숙했다. 상대가 늑대가 아닌 식물이라 해도 드래곤에게는 좋은 대화 상대였다.

드래곤의 말에 회색빛의 털을 가진 늑대가 콧잔등을 혀로 핥았다. 그러다가 주둥이를 처들더니 컹! 하고 짧게 짖었다.

그 소리에 루스가 잘했다는 듯 늑대의 머리를 투박하게 쓰다듬어 주며 중얼거렸다.

“똑같다고?”

그런가.

루스는 심드렁한 얼굴로 방금 갓 캐낸 맨드레이크를 주욱 훑었다.

눈을 굳게 감고 있는 금발 머리 인간 남자의 몸으로 보였다. 식물의 흔적이라고는 머리 위에 살짝 돋아 있는 풀 이파리 몇 장이 다였다. 저 정도야 깔끔하게 정리하면 저 몸이 맨드레이크로 만들어졌다는 걸 알아볼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천천히 손을 뻗어 맨드레이크의 이마를 건드렸다. 이마 위의 머리칼을 살짝 치우자, 이 몸과 동일한 위치에 옅은 점 하나가 드러났다. 루스는 그 점을 확인하고는 짧게 픽 웃었다.

“……뭐, 똑같은 것 같기는 하네.”

검지를 이마에서 떼어 내자 슬쩍 올라가 있던 머리카락이 살랑, 제자리로 내려왔다.

흠, 루스는 맨드레이크로 만들어 낸 탓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을 바라보며 고민했다. 미하일에게 주려면 필요한 게 좀 많겠군.

드래곤은 두 손가락을 빠르게 퉁겨서 소리를 냈다. 그러자 힐데케 답사 기간에 걸쳤던 옷이 맨들레이크에게 입혀졌다. 급조한 아드리안 헤더의 시신이 한층 더 그럴싸해졌다.

마침 레어에 나무로 만든 관 하나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걸 레어에 두게 된 것인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어쨌든 있으니 다행이었다.

루스는 맨드레이크를 그 안에 담고 내려다보았다. 관에 담겨 있으니 정말로 죽은 인간의 시신 같아 보였다. 뭔가 더 해야 할 것 같아서 우선은 멋대로 놓인 팔과 다리를 툭툭 정리했다.

옆을 묵묵히 지키던 늑대는 지루했던지 그새를 못 참고 하암, 하고 주둥이를 쩍 벌리고 하품한 뒤 그 자리에 천천히 엎드렸다. 루스는 그런 늑대를 바라보다가 입을 살짝 벌렸다.

“아.”

아드리안 헤더가 드래곤이 아닌 인간이라면 이렇게 온전한 시체가 아직까지 남아 있을 리가 없었다.

제일 중요한 것을 잊을 뻔했군. 루스의 두 눈동자가 밝게 빛났다. 지금 관 속에 누워 있는 이 정갈한 모습은 몇 달 동안 절벽 아래에서 버려진 시체 같지 않았다.

루스는 한 손바닥을 맨드레이크의 상체에 가져다 댄 채 시간의 주문을 중얼거렸다. 죽은 것에만 시전할 수 있는 간단한 마법이었다. 그 마법에 맨드레이크로 만들어진 시신은 빠르게 썩어 들어 갔다.

이제야 맨드래이크는 완벽하게 두 달 전에 죽은 아드리안 헤더의 시신이 되었다.

“그럼 가 볼까.”

루스는 마음에 든다는 듯 입술 양쪽 끝을 천천히 끌어당겼다. 소원을 마무리하는 데에 별 문제가 없어 보였다.

***

금빛 가루들이 허공을 맴돌다가 어느 한 지점에 모여 남자의 인영을 만들어 냈다. 장소 이동 마법이었다.

금을 갈아 넣은 듯한 금발과 금안을 가진 루스였다.

바람 한 점 없는 숲속에서 마나가 일으킨 바람에 머리카락이 흐트러졌다. 곧이어 힐데케산에 도착한 루스가 레어에서 나무 관도 꺼내 가져왔다. 허공에 둥실 떠 있던 관이 툭, 하고 바닥에 닿아 안정적으로 자리 잡았다.

루스는 그것을 확인한 뒤 주변을 확인했다. 이 관을 가져갈 주인은 따로 있었다.

“미하일.”

관을 가져갈 주인의 이름을 불렀으나, 반응이 없었다.

숲속으로 조금 걸어가자 그 앞의 마차에 걸터앉아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는 미하일이 눈에 들어왔다. 왕자가 앉아 있는 곳은 그들이 타고 온 마차가 아닌, 그 뒤에 어느새 고정되어 있는 짐마차였다. 저게 언제부터 있었지. 루스는 짐마차의 등장에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저놈은 또 왜 저러고 앉아 있어.

루스는 그 모습에 의아했지만, 인간의 감정이란 워낙 종잡을 수 없는 것이었으므로 굳이 질문하지 않았다.

“미하일?”

마차를 향해 걸어간 루스가 미하일을 부르자, 고개를 숙이고 고민하고 있던 듯한 미하일이 고개를 번뜩 빠르게 들어 올렸다. 그 얼굴에 이상하다는 듯 루스가 천천히 고개를 기울였다.

왕자의 얼굴에는 혼란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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