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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가용-148화 (148/184)

148화

“저쪽에서 우리의 위치를 알아냈어.”

쯧, 루스는 짜증스레 혀를 짧게 차고는 말했다. 미하일은 곧바로 손목에서 루스타바란 왕가의 단검을 다시 꺼내 들었다. 위치를 알아냈다면 당장이라도 이곳으로 치고 들어 올 수 있었다.

“……얼마나 걸릴까요.”

미하일의 질문에 루스가 하아- 하고 한숨을 깊게 내쉬며 대답했다.

“글쎄…….”

루스는 제 꼴을 내려다보며 지금 현재 상황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살펴보았다.

둘 다 방금 강물에서 나온 터라 여전히 홀딱 젖은 상태였다. 이 상태로는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든 들통날 것이 뻔했다. 아까 사용했던 어설픈 기척 지우기 마법 정도는 숙련된 마법사의 추적 마법에 걸릴 것이다.

게다가 이쪽은 무기라고는 달랑 단검 한 자루밖에 안 든 기사 지망생과…… 마법 하나 못 쓰는 드래곤이었다.

“넉넉잡아도 몇 분 안이겠지?”

최악이었다. 루스는 입술을 비틀어 올리며 젖은 머리를 손가락으로 대강 빗어 넘겼다. 어설프게 이동하는 것보다는 지금 서 있는 넓은 공간이 나을 것 같았다. 미하일 또한 그렇게 생각했던지 갑자기 날아올 공격에 대비해 두 발을 넓게 벌리고 섰다.

둘의 생각을 어디서 듣기라도 한 것처럼, 마치 기다렸다는 듯 옆쪽에서 나뭇잎이 서로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 있었군요.]

어두운 색의 로브를 뒤집어쓴 남자가 그곳에서 나왔다. 그가 추적 마법을 시전한 마법사인 것 같았다.

그는 눈앞의 청년 둘을 확인하고는 검지와 엄지를 맞부딪쳐 소리를 한 번 냈다. 추적 마법을 사용해 사냥감을 찾았다는 사실을 동료들에게 알리는 것이었다. 숲에서 나눠졌던 괴한 무리들은 저 신호를 따라 곧 이곳으로 모여들 것이었다.

미하일은 마법사를 향해 단검의 날을 세우며 물었다.

[……도대체 목적이 뭐지.]

[목적이라.]

미하일의 질문에 로브를 쓴 남자가 대답했다. 이미 잡은 고기라 생각하고 안일하게 구는 것일 게 뻔했다. 물론 대치 상황이라고 해도 나머지 동료가 도착하기만 하면 루스와 미하일을 잡은 것이나 다름없긴 했다.

마법사는 미하일의 밝은 은발과 붉은 눈동자를 직접 확인하고는 비열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 정도로 순혈에 가까워 보이는 상품이라면 아마 의뢰인이 최상급으로 쳐줄 것이었다.

[루스타바란 왕가의 피에는 옅게나마 드래곤의 피가 섞여 있다는 이야기가 있거든.]

[그런 허무맹랑한 소리에 루스타바란 국민들을 납치하려 한다? 참으로 어리석은 짓 아닌가. 이건 자칫하면 전쟁으로도 번질 수도 있는 큰 죄목이다.]

미하일이 한 발 앞으로 내디디며 말했다.

[전쟁?]

로브를 쓴 남자는 웃긴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이 턱을 들어 올려 하하! 크게 웃고는 말을 이었다.

[전쟁이 뭐 별건가? 드래곤을 소환하면 대륙을 가질 수 있는데. 전쟁 따위 드래곤의 손짓 한 번이면 모두 끝나 있을 거다.]

“…….”

미하일은 마법사의 이야기를 듣고 인상을 찡그리며 기억을 되새겼다. 분명히 전에 들어 본 적 있는 이야기였다.

왕족의 피를 원하는 무리들.

고급 마차를 습격한 암살자.

납치…… 그리고 드래곤.

그래, 미하일은 이 모든 단어들을 바시미엘의 에드윈 교수에게 들었었다. 그는 아카데미에서 외출을 자제할 것을 권하며 이렇게 말했었다.

“미하일 님의 피에는 특별한 것이 섞여 있지 않습니까. 비밀스레 열리는 암흑 시장에서는 왕족의 피를 최고의 상품으로 친다고 합니다…… 왕족의 피에 조금이라도 섞인 드래곤의 피를 추출해 보려는 실험들이 성행하고 있으니까요.”

미하일은 검을 잡고 있는 손에 꾹 힘을 줬다. 그냥 낭설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교수가 걱정했던 부분이 맞았다. 아무래도 이 납치는 암흑 시장에서 왕족의 피를 팔려는 놈이 의뢰한 것 같았다. 미하일은 이대로 끌려가 평생 피나 뽑히며 살고 싶지 않았다. 이쪽이 진짜 루스타바란 왕국의 왕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더 곤란해질 것이 분명했다.

[……아마 그런 건 아무 소용 없을 거다.]

루스타바란 왕족들은 고대부터 드래곤이라는 종족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드래곤의 피로 뭘 어쩌겠다는 것인지는 몰라도, 왕족인 미하일이 모르는 이야기라면 이들이 꾸미는 일이 허무맹랑한 일이라는 것일 터였다. 물론, 드래곤의 비늘로 얼결에 루스를 소환했던 걸 생각하면 미하일도 확신할 순 없었다.

[뭐, 소용없을지 있을지는 네가 판단할 일이 아니지.]

미하일의 말을 마지막 발악이라 생각했던지 로브를 두른 마법사는 픽, 비웃으며 말했다.

이곳을 향해 뛰어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이내 아까보다 배는 더 많은 괴한들이 미하일과 루스를 둘러쌌다. 이제 끝인 건가?

괴한들을 하나씩 훑어보던 루스의 눈동자에 이채가 번뜩였다.

“저 검은…….”

그의 시선이 괴한 중 하나의 허리춤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펠렌 디프스의 검이었다. 납치를 하면서 저놈이 미하일의 검을 손에 넣은 것이었다. 저건 고작 납치 의뢰나 하는 용병 끄나풀의 손에 들어갈 검이 아니었다.

루스의 눈썹 하나가 움찔 떨렸다.

이건…… 미하일이 물에 빠져 죽을 뻔했을 때 느꼈던 그 감정이었다.

그래, 그때도 이상했다. 분명 미하일은 허접한 응급조치로 다시 살아난 것이 아니었다. 무언가 그의 목숨에 특별한 작용을 했다.

미하일의 운명에 기꺼이 끼어들기로 다짐했던 그 순간에.

“하.”

루스의 짧은 한숨에 미하일의 눈이 힐끔, 이쪽을 향했다 다시 앞으로 돌아갔다. 미하일의 의문 따위야 드래곤이 알 바 아니었다. 루스는 방금 깨달은 것에 어이가 없었다. 그래, 고룡이 말했던 것처럼 지금 그가 느끼는 이런 감정들이 이 세계의 흐름에 합류하게 만드는 장치였다.

기꺼이 끼어들어 주지. 네 운명에.

“미하일.”

“……예?”

갑작스런 부름에 미하일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아드리안의 얼굴과 완벽히 같은 얼굴에 따뜻한 갈색 눈동자가 미하일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옅게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걱정 마. 넌 여기서 죽지 않는다.”

내가 그렇게 만들 거거든.

그게 바로 이 세계에서의 내 역할이야.

루스는 그 말을 끝낸 후 두 눈을 천천히 감았다.

사아아, 스산한 바람이 루스의 이야기에 화답하듯이 인간들이 서 있는 숲을 느리지만 차갑게 스치고 지나갔다.

그 바람이 지나가자마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시작은 미하일과 마주 보고 있던 괴한이었다.

그는 갑자기 고통스러운 듯 목 졸리는 소리처럼 윽, 하고 신음하며 허공을 향해 턱을 쳐들었다. 남자의 눈동자가 데루룩 뒤로 넘어가 흰자만 보이는 것이 미하일의 시야에 들어왔다.

“무슨……?”

마하일이 고개를 기울이며 중얼거렸다. 방금 저 남자를 공격한 이는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유일하게 위협이 될 만한 루스와 미하일은 지금 이 거리에서 고급 암살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두목!]

미하일의 의문과는 관계없이 남자는 그 상태로 속절없이 무너졌다.

탁, 타악! 두목이라 불린 남자의 무릎이 한쪽씩 지면 위로 떨어졌다. 그의 입에서 부글거리며 잔거품이 일고 있었다. 그는 선 채로 기절해 버렸다.

[괜찮으십니까?]

옆의 남자 하나가 다급하게 달려와 뒤로 쓰러지는 남자의 몸을 두 팔으로 받았다. 아니, 받으려 했다. 그의 눈동자도 조금 전 두목의 것처럼 천천히 뒤로 굴러갔다. 그리고는 더 말하려는 듯 입술이 벌어졌다. 그러나 그 틈으로 나오는 목소리는 없었다. 두목과 마찬가지로 잔거품이 흘러내렸기 때문이었다.

그의 등 뒤에서 마법으로 의뢰인과 소통하려던 마법사가 퉁명스레 중얼거렸다. 하여간, 용병들이란. 그는 보수를 더 받기 위해 꾀병을 부리는 것으로 생각하며 짜증을 냈다.

[저건 또 왜 저래?]

두목을 팔로 받으려 앞으로 뛰쳐나온 남자 또한 그 자세 그대로 흙바닥에 쓰러졌다. 남자의 몸이 천천히 옆으로 기울어지자, 마법사는 그제야 자신의 눈앞이 천천히 점멸하는 것을 느끼고는 바보 같은 목소리를 냈다.

[……어?]

시야가 한 바퀴 빙글 돌면서 옆으로 쓰러지며 보이는 풍경이 천천히 마법사의 눈앞을 스쳐 갔다. 로브부터 스르륵 지면에 끌리는 소리가 나더니, 마법사마저 허공을 바라보다가 뒤로 털썩 넘어갔다.

괴한 열 명이 순서 상관없이 바닥에 쓰러지는 소리가 숲을 채웠다. 모두 정신 공격 마법이라도 당한 듯 기절한 것이었다.

이윽고 그곳에는 미하일과 루스만 멀쩡하게 서 있는 묘한 풍경이 만들어졌다.

“……?”

이게 무슨 상황이지?

미하일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잘게 눈을 떨며 자신의 뒤에 서 있는 루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한낮의 숲에서도 그 빛이 느껴지도록 빛나고 있는 금색의 눈동자를 한 루스가 서 있었다. 금을 갈아 넣은 듯 밝게 반짝이는 눈동자였다. 루스는 미하일의 시선을 확인하고는 입술 한쪽을 비틀어 올리며 중얼거렸다.

“이런…….”

루스의 나직한 목소리가 고요한 숲을 울렸다. 담담한 목소리였지만, 그 탓에 신의 전음처럼 고고하게 들렸다.

“살짝 과했나본데.”

힘을 쓴 게 너무 오랜만이라 말이야. 그렇게 말하는 루스의 목소리에는 즐거움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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