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푸른 수면 사이로 밝은 햇빛이 들어왔다. 루스는 그곳을 향해 빠르게 헤엄쳤다. 정신을 잃은 미하일을 옆구리에 매단 채였다. 움직이는 데에 걸리적거렸으나, 수영도 못하는 주제에 같이 뛰어든 놈을 버리고 갈 수는 없었다.
다행히 거센 물결을 따라 다리를 몇 번 움직이자 강가에 다다를 수 있었다. 루스는 그제야 수면 위로 머리를 들어 숨을 내쉴 수 있었다.
“……푸흡! 하아, 하.”
얼굴에 와 닿는 차가운 공기가 눈물 나도록 반가울 지경이었다. 드래곤일 적에는 단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산소의 소중함을 온몸으로 체험해 보니 공기가 왜 필요한 건지도 모르고 살아왔던 그 세월들이 새삼 신기했다.
루스는 젖은 몸을 일으키면서 미하일도 수면 위로 끌어 올렸다. 드래곤은 가쁘게 숨을 내쉬는 와중에 정신을 잃은 미하일까지 챙기느라 죽을 맛이었다.
쯧, 짧게 혀 차는 소리와 함께 루스는 잠깐 상체를 들어 주변을 휙 둘러보았다. 혹시나 꼬리가 붙었을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
다행히 인기척은 없었다.
그들이 떨어졌던 절벽은 몰라도 이쪽까지 따라잡기는 힘들 것이었다. 루스는 그제야 후, 하고 한 번 한숨을 쉬고 미하일을 바위가 있는 강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둘 다 완전히 푹 젖었기 때문에 평소보다 훨씬 무거웠다. 드래곤의 힘을 잃은 루스는 이 나이대의 일반적인 인간과 같은 신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힘든 것도 당연했다. 스윽, 슥 발밑에서 강가의 자갈들이 서로 긁히는 소리가 났다.
미하일은 그때까지도 움직임 하나 없이 루스의 한쪽 어깨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었다. 루스는 인간이 누워도 괜찮을 것 같은 바위를 발견하고는 그곳에 미하일을 눕혔다. 그러고는 툭, 손등으로 미하일의 뺨을 두드리며 말했다.
“어이.”
굳게 감긴 미하일의 눈꺼풀은 미동도 없었다. 루스는 그것을 확인한 후 “흐음.” 하고 나직하게 앓는 소리를 냈다. 아무래도 이놈은 수영을 못하니 산소가 모자라 그런 것 같았다.
딱히 관심 있는 분야는 아니었으나, 인간들의 몸에 대해서 대강은 주워들은 상식이 있었다. 루스는 미하일의 머리를 약간 뒤로 젖혀 턱을 허공으로 들어 올려서 숨을 쉴 수 있도록 기도를 열어 주었다.
“…….”
그래도 미하일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루스는 별수 없이 미하일의 코를 한 손으로 가볍게 잡고는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셨다. 그러고는 미하일의 입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 댔다. 자신의 숨결을 넘겨주는 것이었다. 루스는 후우- 하고 깊게 숨을 불어넣으며 미하일의 밝은 속눈썹을 유심히 관찰했다. 여전히 흔들림 하나 없었다.
루스는 천천히 입술을 떨어트려 미하일이 스스로 숨 쉴 수 있도록 거리를 벌려 주었다.
“미하일?”
젖은 머리카락에서 뚝, 물방울이 하나 떨어졌다. 강가의 마른 돌에 물이 떨어져 동그란 자국이 하나둘씩 생겼다. 루스는 숨을 고르면서 고개를 천천히 옆으로 기울였다. 그러고는 미하일의 코 부근에 손을 가져갔다. 숨결 하나 느껴지지 않았다.
죽은 건가?
이렇게?
루스는 손을 거두며 눈가를 찌푸린 채 자갈밭에 누워 있는 미하일을 내려다보았다.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천천히 고개를 내려 미하일의 움직이지 않는 가슴에 귀를 대 보았다. 살아 있는 것이라면 응당 내야 할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고작 이렇게 죽으려고 이 모든 사달을 냈단 말이야? 왜?”
루스는 고개를 하늘로 들어 올려 누군가에게 말하듯이 속삭였다. 드래곤은 그 위대하신 오르디나스가 이 상황을 보고 있는지가 정말로 궁금했다.
“이놈으로 정한 것 아니었어?”
루스의 손가락은 바닥에 누워 있는 미하일을 가리켰다.
“이 세상을 구할 용사 뭐, 그런 거 아니었냐고.”
혹시라도 오르디나스의 계시나, 미하일의 목숨을 구해 줄 누군가가 있는 걸지도 몰랐다. 그런 게 있지 않던가. 갑자기 주변을 지나가던 신관이라든가 마법사 같은 존재가 위험에 빠진 용사를 구해 주는 그런 유치한 이야기들. 오르디나스는 그런 극적인 순간을 만들어 주려 모든 것을 꾸민 것일지도 몰랐다.
루스는 입술을 꾹 다물고 잠시간 침묵했다.
그러나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미하일의 목숨을 살릴 수 있는 사람이나 징조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은 조금 전까지 쫒기는 중이었으므로 소리쳐서 누군가를 부를 상황도 아니었다.
루스는 그제야 다시 한 번 외쳤다.
“무슨 생각인지는 몰라도 이러다간 세상이 끝장날지도 몰라. 이 주위에는 아무도 없어. 아무도!”
오르디나스의 계시를 무작정 기다리고 있자니 한시가 급했다.
루스는 힐끔, 시선을 돌려 미하일의 거친 손바닥을 확인했다. 세상을 구할 용사의 것치고는 아직 작았다. 미하일에겐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 말고는.”
나 말고는 아무도 없어.
“젠장.”
루스는 그 사실을 깨닫고, 미하일의 몸 위에 가볍게 올라탔다. 미하일의 가슴 아래쪽 부위에 깍지 낀 두 손을 가져다 댔다.
뚝, 뚝. 루스의 젖은 머리카락에서 물이 떨어졌다. 별수 없었다. 이게 마법도 사용할 수 없는 인간의 몸으로 루스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이었다.
그는 팔을 쭉 편 상태로 체중을 한껏 실어 미하일의 가슴을 압박했다.
“하나, 둘, 셋…….”
그러고는 숫자를 셌다.
쯧, 루스는 규칙적으로 미하일의 가슴을 압박하면서 짧게 혀를 찼다. 미하일이 같이 절벽에 떨어지면서 ‘이딴 게 운명이라면 따르지 않겠다’고 외쳤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홧김에 저지른 것치고는 자신의 목숨이 달린 일이었다.
“열여덟, 열아홉.”
상체에서 손을 떼어 내고 루스는 다시 한 번 미하일의 고개를 젖혔다. 그러고는 입을 벌려 숨을 크게 불어넣었다. 미하일의 가슴이 조금씩 부푸는 것이 보였다. 루스는 그것을 바라보며 눈썹을 찡그렸다. 그가 어딘가에서 주워들은 지식으로 응급 처치를 하고는 있지만, 제대로 잘 하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입술을 살짝 떨어트린 후 루스는 숲의 맑은 공기를 입안에 한껏 머금었다. 그러고는 다시 한 번 미하일의 붉은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완벽히 맞대어 후우, 자신의 숨을 깊게 밀어 넣어 나눠 주었다.
그러나 미하일은 눈을 뜨지 않았다.
“…….”
진짜 죽은 건가?
루스는 다급하게 움직이던 팔을 천천히 멈췄다. 이해할 수 없었다. 미하일이 이렇게 죽는 것이 오르디나스가 정한 운명이라면 바사미엘에서 꿨던 꿈은 뭐였지? 분명히 그 꿈에서 미하일은 완전한 성인 남자의 모습으로 펠렌 디프스의 검을 들고 마물들과 맞서는 전선에 있었는데. 이놈은 여기서 죽을…… 그런 운명이 아니었다. 그건 분명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활로를 찾을 수 없었다.
“제기랄!”
그는 미하일 옆의 바위를 주먹으로 내리치며 짜증스레 외쳤다. 마법만 쓸 수 있었다면 간단히 해결될 일이었다. 하필 인간의 몸에 갇힌 지금 이런 상황이 되다니. 루스는 욕을 짓씹으며 질끈 감은 눈꺼풀 위를 손가락으로 세게 문질렀다.
고개를 깊게 숙인 루스의 머릿속에 고룡의 이야기가 맴돌았다.
[강요하지는 않아. 그러나 어느 순간 너도 모르게, 이 세계의 흐름에 합류하게 될 거다.]
바위 위에 놓인 루스의 주먹이 분노로 잘게 떨었다.
“이게 세계의 흐름인가? 도대체 나한테 원하는 게 뭐야? 이럴 거면 왜 내 힘을 빼앗은 거지?”
만약 미하일이 이렇게 죽는다면…….
꾹 눌러 감은 루스의 눈꺼풀이 잘게 떨리다가 우뚝 멈췄다. 무겁게 내려앉았던 눈꺼풀이 천천히 올라갔다. 그러자 평범한 갈색 눈동자가 드러났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평범한 인간의 몸이라는 증거였다.
더 이상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지금 미하일을 살릴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는데……!”
그때였다.
살랑- 실낱같은 바람 한 자락이 루스의 앞머리를 흔들며 지나갔다. 동시에 루스의 갈색 눈동자 안에서 밝게 반짝이는 금색 알갱이가 움직였다. 그 금색 가루는 루스의 눈동자 안을 슥, 회오리치듯 움직이며 일렁였다.
그러나 정작 루스 본인은 순간의 그 반짝임을 눈치채지 못했다. 루스가 다시 몸을 일으켜 두 손바닥으로 몇 번이나 미하일의 가슴을 압박하려 할 때였다.
“컥, 크흡!
“미하일?”
지금껏 반응 하나 없었던 미하일이 기침을 토해 냈다. 그는 폐에 들어간 물을 뱉듯 몇 번이나 거친 숨을 내쉬었다.
“미하일! 정신이 든 거야?”
루스가 다급하게 미하일의 뺨에 손을 가져다 대어 고개를 한껏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