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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가용-145화 (145/184)

145화

화살이라니, 포획할 대상이 다쳐도 상관 않겠다는 뜻이었다. 당연히 미하일과 루스에게는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미하일은 루스의 팔을 세게 붙잡고 앞서 달리기 시작했다. 그 속도에 맞추어 그들을 둘러싼 숲의 풍경이 빠르게 지나갔다. 미하일이 뒤따라 뛰어오는 루스를 확인했다. 루스는 눈가를 찡그린 채 힘겹게 뛰고 있었다.

그래도 강을 발견한다면 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도주를 끝낼 수 있을 것이다. 미하일은 루스가 가리켰던 방향을 살폈다. 눈앞의 나무들 사이로 맑고 푸른 하늘이 보였다.

“잠깐!”

뒤에서 루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미하일은 달리고 있는 다리를 멈추지 않으면서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러나 루스의 경고는 한발 늦고 말았다. 미하일이 다음으로 내디딘 발이 허공에서 헛발질을 했다. 더 이상 앞으로 디딜 땅이 없었다.

이런…….

미하일은 전속력을 낮추지 못하고 그대로 공중으로 기울어지는 몸을 느끼며 눈을 질끈 감았다. 절벽이었다. 물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뛰어왔으니 이 밑은 강일 것이 분명했다.

그때였다.

기울어지는 몸을 지탱하는 팔 하나가 있었다. 당연하게도 루스의 것이었다. 짧게 혀 차는 소리가 들린 후, 비틀거리던 몸을 다시 끌어당기는 힘이 느껴졌다. 공중에 잠시간 떴던 미하일의 발이 단단한 지면에 닿았다.

“……감사합니다.”

미하일은 비틀거렸던 상체를 일으키고는 루스를 향해 옅게 웃어 주었다. 루스는 귀찮다는 듯 고개를 양옆으로 저으며 대답했다.

“그러게 잘 좀 보고-”

-뛰어다녀야지, 라고 말하려던 루스의 눈높이가 천천히 기울어졌다.

음, 지면이 불안정하긴 여기도 마찬가지였군. 루스는 미하일에게 인생의 교훈을 가르쳐 주려다 멈추고 말았다. 똑같은 실수를 한 주제에 누굴 가르칠 자격은 없으니까.

루스는 떨어지는 그 짧은 순간에도 절벽 밑을 흐르고 있는 세찬 강물을 힐끗 곁눈질했다.

죽는 건가? 겨우 이런 꼴로? 루스는 불만스럽게 입술을 깨물었다. 아니, 인간이라도 수영 정도는 할 수 있는 거니, 이 절벽에서 떨어져도 헤엄쳐 살아 나갈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이 기회로 미하일의 소원을 모른 척하고 사라질 수 있을지도.

흠, 루스가 고개를 내려 아래의 강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루스!”

둘의 손이 다급하게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루스는 갑작스레 팔에 실린 자신의 무게에 인상을 와그작 구겼다. 팔의 근육이 어서 빨리 붙잡고 있는 것을 놔달라고 아우성쳐 댔다.

윽, 루스는 눈가를 찡그리며 신음을 뱉었다.

“잡았, 잡았습니다. 위로 올라오세요.”

미하일은 절벽 위쪽에서 루스의 손을 끌어 올리려 하면서 말했다. 그러나 미하일과 맞잡고 있는 루스 손에서 힘이 점점 빠지고 있었다. 둘 다 한참을 달려온 탓에 지쳤기 때문이었다. 절벽 아래에는 폭포가 여전히 엄청난 소음을 내며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들이 뛰어왔던 길목 쪽에서 다른 언어로 말하는 남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쪽에서 소리가 났어!]

[거기로 가면 절벽일 텐데? 막다른 길목이니 다 잡은 거나 마찬가지야.]

절벽 위의 상황이 보이지도 않고 그들의 말을 이해할 수도 없는 루스는 눈가를 찡그렸다.

미하일이 무릎을 대고 있는 땅 부분의 돌멩이가 매달려 있는 루스 옆으로 툭, 하고 떨어졌다. 그에 루스의 눈초리가 가늘어졌다. 그가 잡고 있는 절벽 끝부분의 지반이 약한 탓이었다. 이러다가는 둘 다 절벽으로 떨어지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다행히 절벽 바로 밑으로 강이 흐르고 있으니 죽지는 않을 것이다. 절망적이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괜찮은 상황이었다. 루스는 고개를 들어 미하일을 향해 입을 열었다.

“미하일.”

“조용히.”

미하일은 루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단번에 알아차린 듯 빠르게 끊어 냈다. 미하일의 눈가는 잘게 떨리며 간신히 루스를 붙잡고 있는 것이 한계라는 것을 보여 주고 있었다.

루스는 조용히 하라는 미하일의 말을 무시하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이러다간 둘 다 떨어져. 차라리-”

“그만 말하라고…… 했을 텐데요.”

루스는 말을 이어 하려다 미하일의 분노에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는 붉은 눈동자를 활활 불태우며 짓씹듯이 말했다.

“약속했잖아.”

그의 눈가에서부터 뺨을 타고 눈물이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곧이어 미하일의 눈물이 그의 손을 잡고 매달려 있는 루스의 뺨에 떨어졌다. 그 뜨거운 물방울이 마치 루스의 것처럼 눈가를 타고 내렸다. 그 온도에 미하일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고 있던 루스의 얼굴이 기울어졌다. 미하일이 울고 있었다. 아니, 저게 우는 표정이 맞나? 울고 있다기보다는…….

“그딴 말 할 힘으로 올라와!”

화난 것 같은데.

풍덩!

미하일의 외침에 대답하듯 절벽의 커다란 바위가 떨어져 폭포 아래로 사라졌다. 바위가 수면에 부딪히는 소리는 커다란 물보라 소음에 덮였다.

“……나도 그러고 싶지만, 팔에 힘이 안 들어가.”

루스는 미하일의 팔에 매달린 채 힘없이 중얼거렸다.

미하일은 그 대답에 이를 악물며 아래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이 긴급한 상황에서마저 일련의 변화도 없는 루스의 무표정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윽, 짓씹은 입술에서 비릿한 피 맛이 느껴졌다. 루스의 팔을 잡고 있는 손의 힘이 점점 풀리고 있었다. 미하일은 힐끔 그들이 달려왔던 길을 눈짓했다. 괴한들의 말소리가 들린 것으로 보아 무척 가까운 거리까지 따라붙었을 확률이 컸다.

미하일은 그 길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절벽 아래로 고개를 내렸다.

“그때 그 상황을 다시 맞닥뜨리는 걸 상상했습니다. 아주 많이요.”

물론 말도 안 되지만…… 미하일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나직하게 말했다. 아드리안 헤더가 실종된 날부터 계속해서 미하일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가정이었다. 그때 내가 그렇게 했다면-으로 시작되는 지독한 후회와 자책들이었다.

그의 붉게 달아오른 눈가가 절벽 아래의 루스에게는 무척 잘 보였다.

“……”

미하일의 중얼거림에 루스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조금 전 그의 뺨에 닿은 미하일의 뜨거운 눈물이 여전히 뺨과 턱 부근에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길래 저런 표정이지? 그때 그 상황이란 말은 또 뭐고.

루스는 미하일의 잘게 떨리는 손을 힐끔 바라보고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잠시간 말을 멈추고 고민하더니 결심한 듯 입술을 한 번 질끈 깨물고 말을 이어 가는 미하일의 얼굴이 보였다.

“그래, 당신은 원하지 않았겠지만.”

일순 미하일의 얼굴이 차가운 웃음을 지어냈다. 루스는 절벽 아래에서 그런 미하일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오르디나스가 정한 운명을 따르지 않는 인간들을 ‘욕심 많은’이란 단어로 표현했던 루스가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미하일은 입술을 비틀어 올렸다. 그래, 이런 마음을 욕심이라 부르고 싶다면 마음껏 불러.

미하일은 닫았던 입술을 다시 열어 다음 말을 툭 던지면서-

“그딴 게 운명이라면 난 따르지 않을 거야.”

천천히 몸을 움직여 절벽 쪽으로 미끄러져 내려왔다.

“뭐?”

그 짧은 순간, 루스는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미하일이 스스로 절벽 위에서 떨어진 것이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음 순간, 미하일의 뜨거운 체온이 그의 몸을 감싸 안는 것이 느껴졌다. 공중에서 미하일이 루스를 끌어당긴 것이었다.

왜? 루스는 어깨를 감싼 미하일의 팔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기울였다. 하지만 그가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짧았다.

풍덩! 둘이 수면에 닿으며 커다란 물보라가 쳤다. 그러나 그 소음은 세찬 강물 소리에 이내 묻혔다.

[뭐야? 여기도 없잖아.]

[다른 길이 없는지 더 찾아봐.]

[분명히 이 근방에서 목소리를 들었는데…….]

미하일과 루스가 떨어진 절벽 위에 도착한 남자들이 두리번거리며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제 괴한들은 루스의 관심 밖이었다.

부글부글, 루스는 강물 속에서 뿌연 시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미하일의 품에 안겨 떨어진 탓에 그는 충격을 거의 느끼지도 못했다. 루스는 저 멀리 물속에서 힘없이 부유하고 있는 미하일을 발견하고는 그쪽으로 헤엄쳤다.

이미 죽었거나, 기절한 것이 틀림없었다.

미하일은 수영을 전혀 못했으니까. 그러나 루스 또한 마법을 힘을 쓰지 않는 한 제 몸 하나 겨우 건사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먼저 숨이 모자라 오는 것이 느껴졌고, 그다음으로는 오랫동안 절벽 끝에 매달린 탓에 팔다리가 굳어 왔다.

옆에 있는 미하일의 몸에 점차 힘이 빠지더니만 이내 축 늘어졌다. 루스는 숨을 멈춘 상태로 품 안에 있는 미하일의 얼굴을 힐끔 확인했다. 그는 눈을 감은 채 강의 세찬 물살에 힘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수영도 못하는 주제에 왜.’

냉기가 서린 무표정을 하고서 루스는 품 안에 죽은 듯 안겨 있는 미하일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의 입에서 아주 작은 공기 방울이 수면을 향해 올라왔다.

일단은 이런 고민을 할 시간이 없었다. 루스는 잠시간 멈춰 있던 다리를 움직여 차가운 물을 박차고 수면 위로 빠르게 헤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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