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마차는 식당 바로 앞에 서 있었다.
미하일은 마차 옆에 멈춰 숨을 몇 번 골랐다. 그는 창의 유리에 얼굴을 비춰서 자신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임을 확인한 후에야 마차 문을 열었다. 왜 이렇게 늦었느냐고 드래곤이 한마디 할 것이 뻔했기에 미하일은 먼저 말을 꺼냈다.
“조금 늦었-”
통신이 생각보다 오래 걸린 터라 아마 한참을 지루하게 기다렸을 것이다. 미하일이 마차에 타며 사과하려는 순간이었다.
“-습니다?”
그는 마차 안에서 자신을 기다리다 잠든 루스를 발견하자마자 눈동자를 크게 떴다. 뒤로 갈수록 그의 목소리는 점점 작게 줄어들어 끝내는 속삭이듯이 흘러나왔다. 그 문장을 끝으로 미하일은 작게 열었던 입을 꾹 닫았다.
그리고는 혹시라도 루스가 소리를 듣고 깰까 조심하며 조용히 마차의 문을 닫았다. 루스의 아주 옅은 숨소리가 햇빛 아래에 서 있느라 따끈해진 마차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달칵, 작은 소리만 나도 미하일은 루스부터 살폈다.
다행히 깨지는 않았다.
“…….”
많이 피곤했나?
미하일은 소리 없이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잠들어 있는 루스의 얼굴을 보는 순간, 아드리안과 함께 다니던 바사미엘으로 돌아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창밖에서는 평화로운 새소리가 들렸고, 잠든 루스의 얼굴을 햇살이 밝게 비추었다. 그는 자는 중에도 눈이 부시는지 미간을 슬쩍 찌푸리고 있었다. 미하일은 그 얼굴을 잠시간 바라보다가 천천히 손을 뻗었다.
미하일은 저도 모르게 아주 천천히 입술을 움직여 무언가를 말했다. 이 움직임을 느끼고 루스가 잠에서 깨면 곤란해질 것은 미하일 본인이었으나, 묻지 않고서는 참을 수 없는 질문이었다.
……당신의 진짜 이름은 뭡니까?
미하일의 손이 햇볕을 가려 주자 루스의 구겨진 미간이 천천히 펴졌다. 그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맑은 표정으로 잠을 즐기고 있었다.
“루스 페니건? 아니면…….”
미하일은 입술 안쪽을 씹으며 그다음에 하려던 말을 속으로 삼켰다.
만약 이 드래곤의 이름이 루스 페니건이 아니라면…… 미하일은 남자의 잠든 얼굴을 유심히 내려다보았다. 인간의 몸이 되고 난 후, 배고픔도 처음 겪어 보더니 잠도 제대로 안 잔 모양이었다. 마차 안에서 자는 것은 좀 불편하지 않나? 미하일은 마음속으로만 궁금해했다. 불편해 보이지만 잘 잠들어 있는 그를 깨우고 싶지는 않았다.
어차피 마부는 미하일이 출발하라 말하기 전까지는 움직이지 않을 것이었고, 루스를 이대로 재워도 될 만큼 시간은 충분했다.
***
금빛 속눈썹이 꿈틀 움직이더니 천천히 올라갔다. 눈꺼풀 아래의 눈동자가 천천히 드러나고 공들여 만든 조각상처럼 한동안 멈춰 있던 루스 페니건의 몸이 움직였다.
아, 마차 안에서 잠깐 잠들었군. 그럴 것 같더라니.
루스는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손바닥으로 휘휙 대강 정리하며 차창에 기댔던 얼굴을 떼어 냈다.
이렇게 햇빛이 뜨거웠는데, 잘만 잤네. 루스는 속으로 생각하며 뺨을 손등으로 슬쩍 매만졌다. 날씨가 좋은 탓에 햇볕이 오랫동안 그의 얼굴을 내리쬐었을 텐데 웬일인지 손등에 닿는 체온은 그리 뜨겁지 않았다.
슬쩍 눈을 떠 보니 바로 맞은편에 미하일이 앉아 책을 읽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언제 왔어? 이렇게 인기척도 하나 없이.”
루스는 기지개를 켜며 퉁명스럽게 이야기했다. 힘을 잃은 이 보잘것없는 인간의 몸은 마차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지 못할 정도로 피곤했던 것 같았다.
미하일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책장을 한 장 넘기며 대답했다.
“조금 전에 들어왔습니다.”
“그래?”
마차 밖의 풍경은 멈춰 있었고, 심지어 그가 잠들기 전과 동일한 위치에 서 있었다. 응? 루스는 그것을 알아챈 후 이상하다는 듯 질문했다.
“그런데 왜 출발은 안 하고.”
“마부가 잠시 자리를 비웠습니다. 그리고…… 피곤하면 그냥 편하게 누우셔도 괜찮습니다.”
그러라고 있는 마차니까요.
미하일은 루스와 눈도 마주치지 않은 자세로 말했다. 루스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됐어. 충분히 잤으니까.”
몇 시간을 졸았는지 감은 오지 않지만 제대로 자려고 다시 누울 정도는 아니었다.
미하일은 그런 루스의 얼굴에서 진심을 읽었던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바로 출발할 수 있겠군요.”
그는 등으로 기대고 있는 마차의 벽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러자 신호를 기다리던 마부가 출발하겠다고 말하며 말을 움직였다.
방금 마부는 잠시 자리를 비웠다고 하지 않았나? 루스는 미하일의 말에서 모순을 발견하고는 멈칫, 머리를 헝클던 손을 멈췄다. 그러나 미하일은 질문 같은 건 받지 않겠다는 듯 이미 책에 시선을 고정한 상태였다.
뭔가 사정이 있겠지. 루스는 차창 밖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한동안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루스는 마차 밖을 바라보고, 미하일은 책을 읽었다. 말발굽이 규칙적으로 단단한 지면을 두드리는 소리와 그 박자에 맞추어 마차의 몸체가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미하일의 말이 그 침묵을 깨트리기 바로 전까지. 그는 여전히 책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책장을 한 장 넘기며 말을 이었다.
“제가 왜 아드리안 헤더의 시신을 찾고 있는지 아십니까?”
드래곤의 비늘로 소환당하고, 소원을 묻자마자 들었던 이야기잖아. 저것 때문에 이 고생을 하고 있는데 그 이유 정도야 당연히 알고 있었다.
“장례를 치러 주고 싶다며?”
퉁명스러운 말투였다.
미하일은 그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은지 고개를 슬쩍 옆으로 기울였다. 곧은 시선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짓고 있는 루스를 찔러 왔다.
“그러니까 왜 제가 그의 장례를 치러 주고 싶은지는 들으신 적 없을 텐데요?”
“……그렇긴 하지.”
루스는 정말로 궁금하지 않았기 때문에 솔직히 대답했다.
“내가 네 소원을 들어주는데, 왜 그런 사소한 것까지 궁금해 해야 하나?”
“사소한 것?”
루스가 고른 단어에 미하일의 눈이 번뜩였다.
“제가 그의 시신을 찾고 있는 이유는 절대 사소하지 않습니다.”
아, 단어 선택이 이상했나? 루스가 다시 입을 떼려던 순간이었다. 미하일의 나직한 목소리가 마차 안을 가득 채웠다.
“아드리안을 좋아했습니다.”
“…….”
이렇게 갑자기?
루스는 말하려던 입을 곧바로 꾹 다물었다. 힐끔, 맞은편의 미하일을 확인했으나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루스는 관자놀이를 검지로 슬쩍 긁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나 그런 티를 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아드리안도 제가 그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죠.”
“…….”
“그래서 찾는 겁니다.”
드래곤에게는 전혀 흥미롭지 않은 이야기였다.
“아하. 그랬군.”
루스의 영혼 없이 미적지근한 반응에 미하일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맞은편의 미하일은 루스가 어떤 표정과 반응을 하는지 모조리 확인할 기세로 한순간도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가끔 상상을 해 보곤 했습니다. 제가 자신의 시신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아드리안은 과연 어떤 반응일까.”
미하일은 루스가 대답할 시간을 주지 않고 곧바로 다시 말을 이었다.
“유일하게 저라도 그의 장례를 치러 준다는 것에 감동하려나요? 아니면…….”
그의 붉은 눈동자가 일직선으로 루스의 시선을 마주해 왔다. 대륙 끝까지 끈질기게 먹잇감을 추격할 사냥꾼의 눈빛처럼 진득했다. 만약 루스가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저도 모르는 새에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을 눈빛이었다. 하지만 몸이 인간일 뿐, 알맹이는 드래곤인 루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아니면 그가 정말로 드래곤이라면 그냥 상황을 이렇게까지 만든 저를 귀찮아할지도 모르죠.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한테 왜 그런걸 물어.”
루스는 그가 살아온 억겁의 시간만큼 쌓인 두꺼운 낯으로 재차 발뺌했다. 미하일은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 피식,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저는 아무리 상상해 봐도 아드리안이 어떤 반응을 할지 알 수가 없었는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궁금해졌거든요.”
“……왜 하필 내 의견이지?”
“흠, 글쎄요.”
미하일은 옅게 미소 지은 채 팔짱을 꼈다.
“그냥?”
“싱겁긴.”
루스는 이상했던 대화가 끝날 분위기에 그제야 안심하며 속으로만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 대화는 끝난 것이 아니었다.
미하일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그가 아드리안 이야기를 시작해서 말하고 싶었던 진짜 본론이었다.
“뭐, 어차피 아드리안은 퇴학이니까…… 그가 살아 있더라도 같이 바사미엘을 다니지는 못했겠죠.”
응? 미하일의 이상한 말에 루스는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퇴학?”
내가 퇴학을 당했다고? 고작 아카데미 일 학년에?
그러나 미하일에게 대놓고 물을 수는 없는 질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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