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같이가용-113화 (113/184)

113화

카일은 눈앞의 후배들을 보면서 굳은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골치 아프단 듯 검지를 관자놀이에 대고는 입을 열었다.

“……미하일, 우선 아드리안을 여기에 앉혀.”

그는 로비의 소파 하나를 가리켰다.

미하일은 입을 꾹 다물고는 소파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무릎을 굽혀 아드리안을 내려놓았다. 아드리안은 소파에 앉는 순간 밀려온 통증에 윽, 하고 인상을 슬쩍 찌푸렸다. 치료 마법을 쓸 수 있는데도 쓰지 않고 굳이 상처를 내버려 둬야 하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드래곤은 유희를 위해 모습을 바꾼 상태가 아니라면 그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는 존재가 없었고, 설령 상처를 입는다 해도 그 누구보다 빠르게 마법으로 완벽하게 치료했으므로 의외로 고통에 약했다.

그때, 로비로 뛰어오는 다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왕자님! 괜찮으십니까?”

“아니, 산책을 나가신다더니 어디서 이렇게?”

“맙소사! 게다가 친구분도 많이 다치셨네요!”

숙소에서 대기 중이었던 호위 기사 셋이었다. 그들은 아드리안과 카일, 미하일이 있는 로비에 나와 호들갑을 떨어 댔다. 미하일의 옷에도 아드리안을 업고 걸어오느라 여기저기 피가 묻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많이 다치셨습니까?”

“멀쩡해, 나는.”

미하일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는 대신 소파에 누워 있는 아드리안을 보여 주며 명령했다.

“동네의 실력 좋은 의원이나 치료 마법이 가능한 마법사를 불러와.”

“네.”

왕자의 명령에 호위 기사 하나는 결연한 표정으로 건물을 나섰다.

“…….”

그리고 남은 청년들은 기나긴 침묵에 잠겼다.

“저기, 선배님.”

아드리안은 소파에 엉거주춤한 자세로 누운 채 입을 열었다. 무사히 숙소로 돌아왔고, 마물을 처리하기까지 했으니 이렇게 심각할 것은 없는데……. 아무래도 아까 있었던 일의 정황을 카일에게 설명을 해 줘야겠다는 판단에서였다.

아드리안의 부름에 카일의 차가운 눈빛이 향했다. 그 시퍼런 눈빛에도 굴하지 않고 아드리안이 딱딱한 분위기를 풀어 보려 했다.

“피를 좀 많이 흘려서 그렇지, 이게 눈으로 보이는 것만큼 크게 다친 건 아닌…….”

“아드리안, 일단 조용히 치료받아. 이야기는 그 다음에 들을 거니까. 그때 말해.”

아드리안이 카일의 날카로운 반응에 잠시간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아직 할 말이 더 있는데? 이쪽의 끝까지 들어 보면 이해해 줄지도 몰랐다. 아드리안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하지만?”

“…….”

카일은 아드리안의 대답에 눈을 치켜떴다.

다친 후배한테 화내고 싶지 않아 최대한 참으려 했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괘씸한 탓이었다. 오늘 낮 그들은 분명히 검은 마나에 대한 확인을 다음 날 아침에 함께 하기로 결정했었다. 아드리안과 미하일은 그 결정을 싸그리 무시한 것이었다.

심지어 심하게 다쳐 오기까지 했다.

“이렇게 제멋대로 굴 거란 생각은 안했는데, 너한테 실망이다.”

“…….”

아드리안은 말을 꺼낸 본전도 못 찾은 채, 단번에 입을 다물었다.

겨우 이런 걸 가지고 뭘…… 실망까지. 그는 속으로 투덜거리며 소파에 누워 천장을 유심히 관찰했다. 미하일은 바로 옆 소파에 앉아 카일과 아드리안을 보며 풀 죽은 표정을 지었다.

“아드리안은…… 절 도와준겁니다. 다리는…….”

미하일은 자신을 도와주려다 아드리안이 크게 다쳤다는 사실을 그제야 실감했다. 미하일은 속으로 크게 한숨을 내쉬며 아드리안의 피 범벅된 발목을 힐끔 확인했다. 숲으로 들어간 것은 아드리안이었지만, 마물과 싸우고자 한 것은 온전히 자신의 고집이었다. 카일은 손바닥을 들어 올려 스스로의 잘못을 고백하는 미하일을 막았다.

“미하일, 너도 마찬가지야.”

“…….”

의사를 부르러 갔던 호위 기사가 노인 한 명과 함께 돌아올 때까지 로비에 있는 모두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상태로 쥐 죽은 듯이 고요한 분위기가 한참을 이어졌다.

“……치료 마법을 할 수 있는 마법사가 이 마을에는 없다고 합니다.”

기사는 막중한 임무를 실패하고 돌아온 패잔병처럼 우울한 표정으로 상황을 설명했다.

“그래도 여기서 오랫동안 의원을 하신 분을 모셔 왔습니다.”

“아, 거참. 옛날에는 마법으로 치료 안 해도 다 잘 살았는데, 요즘에는 조금만 다쳐도 다들 마법사부터 찾고 난리야.”

의원이 앞에 선 기사를 옆으로 밀며 꼬장꼬장하게 말했다.

그러고는 소파에 누운 아드리안을 향해 터벅터벅 빠르게 걸어왔다. 자다 깼는지 엉망인 차림이라 누가 보면 괴짜 마법사로 착각할 것 같았다.웬일인지 카일도 옆에서 노인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아, 마법으로 치료받는 게 더 깔끔한데.’

아드리안은 의원을 바라보며 불만을 떠올리는 사이, 의원이 다가와 피로 젖은 바짓단을 투박한 손길로 걷어 올렸다.

“……!”

그 탓에 옷감에 상처가 닿으면서 잠깐이나마 잊고 있었던 고통이 스물스물 올라왔다.

아드리안은 의원의 배려 없는 손길에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때였다. 바로 옆의 소파에 앉아서 그를 유심히 바라보던 미하일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잠깐.”

“뭐야?”

“……너무, 상처를 너무 막 잡는 거 아닌가 해서.”

아파하지 않습니까. 미하일의 말에 의원은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인상을 와그작 구겼다. 의료 행위를 하는 의원에게 지나친 참견이었다. 이런 시골 동네에서는 보기 드문 잘생긴 청년들이었으나 의원에게는 그저 꿀 같은 밤에 문을 두드린 불청객이었을 뿐이었다.

“……뭐라고?”

“아닙니다.”

“참 나, 눈물겨운 친구 사이라도 되나 봐? 그렇게 친하면 대신 다치지, 보고만 있으면 쓰나.”

의원은 삭제 왕진 가방을 촥- 펼치며 혼잣말을 했다. 그러나 미하일의 마음에는 그 말의 단어 하나하나가 콕콕 박혀 왔다. 미하일이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소파에 다시 주저앉았다.

의원은 상처를 증류수로 씻어 낸 뒤, 그 위에 약초를 짓이겨 만든 연고를 덕지덕지 발랐다.

“……으으윽?!”

아드리안은 발목의 상처를 불로 지지는 듯한 고통이 느껴지자, 앓는 소리를 냈다. 발목을 세게 잡은 의원의 악력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의원은 연고 하나를 전부 비우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거친 손길로 붕대를 감았다. 아드리안은 입술을 악문 상태로 속으로 욕을 이것저것 내뱉었다.

“뼈가 부러진 건 아니야. 근육이 다친 것뿐이니 휴식만 취해 주면 대강은 괜찮겠어. 나머지는 자잘한 외상이고.”

심드렁한 얼굴로 치료 결과를 알려 주던 의원은 호위 기사가 치르는 치료비를 받고선 친절하게 설명 한마디를 덧붙였다.

“상처에 물 닿지만 않게 관리 잘 하면 빨리 나을 거다, 그럼.”

의원은 왕진 가방을 든 채 손을 흔들며 숙소를 떠났다.

카일은 새벽에 자다 말고 갑자기 일어났던 호위 기사들에게 이제 상황이 정리되었으니, 방에서 대기하고 있어도 좋다고 말했다.

그러자 조용한 로비에 카일과 미하일, 아드리안만 남게 되었다. 아드리안과 미하일은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잘잘못을 따지자면 한도 끝도 없었다. 치료 받느라 누웠던 몸을 일으켜 발목에 감긴 붕대를 매만지고 있는 아드리안에게 카일이 말했다.

“아드리안, 통신 마법도구는 어떤 걸 쓰고 있지?”

“네?”

“본가의 마도구 말이야. 다쳤는데 부모님께 연락은 드려야 하잖아.”

하아, 카일은 골치 아프다는 듯 인상을 구기며 대답했다. 그는 제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문지르면서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

“귀찮겠지만 할 건 해야지. 빨리 말해. 웬만한 마도구는 다 구비하고 있으니까.”

여전히 거슬린다는 듯 발목의 붕대를 매만지고 있는 아드리안을 향해 카일이 살짝 짜증을 냈다. 그때였다. 미하일이 먼저 입을 열었다.

“선배. 굳이 연락까지-”

“미하일, 아직 학생이라면 당연한 거야. 아드리안의 부모님이 얼마나 걱정하시겠어?”

카일은 아무렇지 않게 미하일의 말을 바로 틀어막았다. 이건 아드리안의 개인사였고, 미하일이 관여할 바가 아니었다.

“아, 그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아드리안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연락받을 사람이 없거든요.”

“……그게 무슨 소리야.”

카일이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기울였다. 아드리안은 맑은 눈동자를 움직여 그런 카일을 천천히 올려다보았다. 언제나처럼 따뜻한 색이었으나, 왠지 모르게 차가운 기운이 느껴지는 눈빛이었다. 아드리안은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부모님이 안 계신다고요.”

그것을 끝으로 아드리안은 미지근한 미소를 지었을 뿐이었다. 딱히 더 덧붙일 말 같은 게 생각나지 않아서였다.

“…….”

카일은 잠시간 아드리안의 표정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후 카일은 끄응, 하고 앓으며 소파에 앉은 채 상체를 숙였다. 제기랄, 화도 못 내게 하네- 카일은 속으로 고민하다 눈을 번쩍 떴다.

“그럼 넌 지금부터 답사에서 제외야. 그 다리로 힐데케 절벽은 무리니까.”

“……네? 그게 무슨…….”

여태 무심한 표정으로 대답하던 아드리안의 표정에 그제야 조금 균열이 갔다. 이제 와서 힐데케 절벽으로 가는 답사에서 빠지게 되면 그의 모든 계획이 어그러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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