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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가용-111화 (111/184)

111화

키이이이—이익!

미하일은 오른손으로는 허리춤에 매단 검 손잡이를 잡고서, 다른 손으로는 한쪽 귀를 틀어막았다. 한 손으로만 귀를 막은 탓에 괴상한 소음은 완벽히 차단할 수 없었다. 그 찢어질 듯한 울음소리가 몸 전체를 잘게 흔들고 지나갔다.

“아드리안, 뒤로 물러서!”

미하일은 아드리안을 세게 뒤로 밀었다. 아드리안은 멍한 표정으로 “어, 어.” 하고 중얼거리며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스릉-

쇠 마찰음이 들렸다. 아드리안은 눈동자를 데루룩 굴렸다. 검을 뽑아 든 채 정면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살피는 미하일이 보였다. 미하일의 손에 들린 흰 검신은 달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그 하얀 빛은 어두운 숲속과 대조되어 자신의 존재를 위풍당당하게 드러냈다.

쯧, 이럴까 봐 혼자 확인하러 오려던 거였는데. 하필 미하일과 함께 왔을 때 진짜 검은 마나를 발견할 줄이야. 아드리안은 미하일의 등을 바라보며 코를 한 번 찡긋 움직였다.

“이런……. 그사이에 어디로 간 거지?”

검을 바투 잡으며 미하일이 중얼거렸다. 숲속이 너무 어두워 시각을 제외한 감각을 믿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아드리안의 눈동자에는 괴생물체의 행적이 또렷하게 보였다. 저건…… 검은 마나에서 나온 마물인가? 드래곤의 시선이 이쪽을 관찰하고 있는 검은색 덩어리의 시선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지금 이 상태로는 이쪽에 위협적인 존재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마물 역시 같은 생각인지 저 멀리서 이곳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마물과 드래곤에게는 지금이 훤한 낮이나 다름없었으나, 미하일에게 그 사실을 알려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드리안은 몸을 슬쩍 낮추며 옆의 미하일을 힐끔 바라보았다. 미하일은 금방이라도 검을 휘두를 수 있도록 검을 두 손으로 꽉 붙잡고 있었다. 아드리안은 그런 그에게 조용한 목소리로 질문했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어둠 속 검은 덩어리와 마주 본 상태였다.

“호위 기사들은?”

당연히 없다고 말하겠지만.

숙소에서 나올 때부터 뒤따라오는 기척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미 답을 알고 있으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미하일에게 물었다.

“없지.”

미하일은 힐끔, 바로 옆의 아드리안의 안색을 살피곤 대답했다. 그에 아드리안은 “그래? 네 호위 기사는 아주 땡잡았군.”이라고 중얼거렸다. 일을 이렇게 해도 보수를 챙겨 주다니, 미하일은 최고의 의뢰자가 아닐까. 한때 용병 생활을 해 본 만큼 아드리안은 태평하게 감탄할 따름이었다.

그런 아드리안의 생각이 표정으로도 드러났는지, 미하일은 이 다급한 상황에서도 짜증스레 속삭였다. 그는 짧은 산책에까지 호위 기사를 대동하는 취미는 없었다.

“네가 분명히 산책 나가는 거라고 말했잖아!”

이를 악물고 화를 꾹꾹 눌러 담은 목소리였다.

미하일은 지금 숙소에서 가만히 대기 중일 호위 기사 셋을 떠올리며 혀를 찼다. 짧은 시간이나마 아드리안과 둘만의 시간을 원했던 것이 실수였던 듯했다. 미하일은 아드리안이 겁도 없이 이 숲에 발을 디딜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크아이이—익!

그때였다. 괴상한 생명체가 다시 한 번 괴상한 소리로 울부짖으며 어두운 풀숲에서 나와 자신의 몸을 드러냈다. 커다란 마차만 한 크기의 정체불명의 생명체였다. 그것은 네발로 달음질해 단번에 거리를 좁혀 왔다.

“……온다!”

미하일은 이쪽을 향해 빠르게 달려오고 있는 그것을 눈치채자마자 뒤의 아드리안에게 알려 주었다. 그리고는 그 방향으로 몸을 휙, 틀어 검을 허공으로 확 치켜들었다.

휘익-

미하일이 날카로운 검을 횡으로 재빠르게 그었다. 그 위협이 통했던지 검은 덩어리가 끄에에에엑-! 하고 비명을 지르며 슬쩍 뒤로 피했다.

미하일은 그제야 그와 대치 중인 것의 정체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저건…… 뭐지?”

방금 나무 뒤로 자신의 몸을 숨긴 생명체는 밝은 달빛 아래에서도 마치 칠흑같이 어두운 구멍처럼 새카맸다. 후욱-! 후훅! 검은 덩어리는 위쪽에 새빨간 눈동자 두 개만 번뜩이며 거센 숨을 내쉬었다.

미하일의 등 뒤에 서 있던 아드리안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단호한 목소리였다.

“마물이야. 저것들은 검은 마나를 마시며 살아가지.”

“……마물?”

대륙에 마물이 아직도 있단 말이야?

미하일의 눈동자가 믿기지 않는 단 듯이 잘게 떨렸다. 마물은 기록이나 전래 동화에서만 보았던 존재였다. 루스타바란 왕국의 건국 신화에 나온 것처럼 초대 왕 카를로가 마물 토벌을 하면서 마물은 이 대륙에서 전부 사라진 줄 알았는데……. 미하일은 눈을 치켜뜬 채 몸통을 크게 부풀려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마물은 벌건 눈동자만 드러낸 채 미하일과 아드리안이 서 있는 반경을 맴돌았다. 그리고는 원을 그리듯 점점 포위망을 좁혀 오기 시작했다. 마물이 움직일 때마다 풀숲의 이파리들이 서로 비벼지며 소란스럽게 부스럭거렸다. 마치 여기에 아드리안과 미하일이 찾는 것이 다녀갔다는 것을 알리는 것처럼.

마물은 원을 그리다 어느 정도 이쪽을 파악한 것인지, 방향을 빠르게 틀어 미하일과 아드리안을 향해 달려왔다.

“……미하일! 오른쪽이야!”

뭐?!

아드리안의 외침에 미하일이 휙, 고개를 돌렸다. 어느샌가 사라졌던 마물이 이쪽으로 향해 발을 굴려 달려오고 있었다. 그것은 입을 활짝 벌려 검을 들고 있는 미하일의 팔을 물어뜯으려 했다.

윽, 미하일은 마물의 이빨이 닿지 않게 검으로 세게 쳐 냈다.

날카로운 쇳소리가 숲을 크게 울렸다. 동시에 미하일은 검을 빠르게 위에서 아래로 그어 마물의 이마 언저리에 커다란 흔적을 남겼다. 그러나 그 상처에서 살아 있는 것이라면 마땅히 흘려야 할 붉은 피 대신 검은 연기가 피어났다. 그 검은 연기는 몇 초간 피어오르더니 곧이어 벌어진 상처가 회복되었다.

미하일의 공격에 놀랐는지 마물은 몸을 크게 부풀리며 뒷걸음질 쳐 거리를 벌렸다. 미하일은 검 면에 달라붙은 마물의 검은 진물을 발견했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 얼룩을 노려보았다. 그러고는 검을 공중에 휙휙 털어 낼 때였다.

“……음? 이거 왜 이래?”

마물에 닿았던 흰 검신이 천천히 검게 물들고 있었다. 아드리안은 옆에서 그 현상을 확인하고 표정을 굳혔다. 소드 마스터만이 저 마기를 정화하면서 마물을 상대할 수 있었다. 지금은 소량이라 멀쩡하지만, 계속해서 싸운다면 검 손잡이를 타고 기사의 손과 팔 그리고 몸 전체를 뒤덮을 것이다.

마기 덩어리인 마물을 상대하려면 적어도 검기를 다룰 줄 알아야하므로, 아직 검기를 제대로 다룰 줄 모르는 미하일은 마물에게 유의미한 타격을 줄 수 없을 것이다.

마물은 상처를 처음 입어 봤는지, 이미 회복이 된 뒤에도 짧은 앞다리로 자신의 이마 부근을 마구 긁어 대고 있었다.

“미하일, 지금이라도 도망가야 해!”

아드리안이 미하일의 어깨를 짚어 세게 뒤로 잡아당기며 말했다. 그러나 미하일은 그 자리에서 우뚝 선 채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정면에서 잠깐 대치하고 있는 마물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중얼거렸다.

“……그래. 빨리 너부터 숲을 나가 있어.”

네가 있어도 도움이 안 되니까- 미하일은 턱짓으로 대강 오른편 길을 가리켰다. 그들이 이 숲으로 걸어 들어온 길이었다. 일반적인 사람이었다면 미하일의 배려가 무척 멋있다고 느끼겠지만, 아드리안은 겨우 아카데미 일 학년 주제에 저딴 말을 하는 미하일에게 짜증을 느낄 뿐이었다.

“아니, 미하일.”

아드리안은 단호한 목소리로 고집부리는 미하일을 말렸다. 그는 미하일을 억지로라도 데려가려고 팔을 들어 올렸다. 아드리안이 미하일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하는 순간이었다.

“지금 네 실력으론 마물을 죽일 수 없으니까 같이-”

어?

말을 이어 가던 아드리안의 동공이 순간 크게 확장되었다. 어둠 너머로 향한 시선이 멈칫, 굳었다.

쇄애애액-!

한동안 멀리 떨어져 회복에 집중하던 마물로부터 기다란 촉수가 어마어마한 속도로 뻗어 나오기 시작했다.

갑자기 자신의 어깨를 뒤로 휙, 세게 잡아 끌어당기는 힘에 미하일이 몸을 돌렸다.

콰아아앙!

바로 다음 순간, 미하일이 서 있던 자리에 촉수가 땅을 내리쳤다. 엄청난 힘에 지면의 돌이 바스라지며 땅에 긴 자국이 생겼다.

그것이 매우 아슬아슬할 정도의 간격으로 몸을 스쳐 지나간 탓에 미하일은 몸을 뒤로 물리자마자 자신의 상체를 확인했다. 저것에 닿았던 펠렌 디프스의 검처럼, 상의 위쪽에 검은 재 같은 것이 묻어 있었다. 미하일은 무심결에 마물의 흔적에 손을 가져갔다. 이건…… 아까 검에도 달라붙었던…….

윽, 미하일은 갑자기 손을 세게 잡히는 바람에 인상을 찡그렸다. 엄청난 악력이었다.

“……손대지 마. 그건 마기야.”

아드리안이 말리려 움켜쥔 것이었다. 그는 미하일이 아파하는 것을 확인하고는 천천히 손의 힘을 풀었다. 그 힘에 미하일의 눈초리가 샐쭉 길어졌다. 약초에만 관심 있는 연구벌레치고 지나치게 센 힘이었다.

아드리안은 미하일의 그런 의심을 꿈에도 모른 채 어둠 너머의 마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침착하게 옆의 길을 가리키며 말했다.

“셋을 세면, 저기로 뛰는 거야, 알았어?”

“어떻게 해야 하는데?”

“응?”

정면을 바라보던 아드리안이 미하일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저 마물을 쓰러트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알려 줘.”

미하일의 붉은 눈동자가 어둠속에서 새빨갛게 타오르고 있었다. 아드리안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한순간의 치기로 죽어 갔던 인간이야 수도 셀 수 없이 많이 봐 온 탓이었다.

“넌 못해. 검기로 마물의 마기를 정화해야 한다고.”

“잠깐 검기를 씌우는 것 정도야…… 할 수 있어. 매일 훈련도 하고 있고.”

멀리서 재정비를 하던 마물이 몸통을 천천히 크게 부풀리고 있었다. 곧 다시 덤벼 올 것이다. 아드리안은 어둠 속을 확인하면서 입술을 한 번 세게 물고는 다시 한번 설득했다.

“훈련은 말 그대로 훈련이지. 실전에선 삐끗하면 죽는 거야, 미하일.”

“우리가 지금 도망가면, 마물이 마을로 들어오게 되잖아.”

“…….”

그건 그렇겠지?

아드리안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기울였다. 타마힐드 마을에 검기를 피워 낼 수 있는 소드 마스터가 있을 리가 없었다. 소드 마스터는 현재 대륙 전체를 통틀어도 없었으니. 저것은 머지않아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무법자가 되어 대륙을 활개 치며 돌아다닐 것이다.

“우리는 저게 마을로 들어오기 전에 도망치면 되는걸?”

“아드리안.”

미하일은 달빛을 받아 드러난 아드리안의 흰 얼굴에 대고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곧은 시선이었다. 드래곤은 그 눈빛을 보자마자, 미하일이 무슨 말을 할지 단번에 예상할 수 있었다.

“내가 도망가기 싫다고 말하면, 도와줄 거야?”

“…….”

그 말을 들은 아드리안은 입을 비죽였다.

이쪽을 좋아한다면서, 좋아하는 사람을 이렇게 사지를 몰아도 되나? 아까는 위험하니까 돌아가자며?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지금의 미하일이 마물을 쓰러트릴 수 있을 확률은…… 아드리안의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장면이 있었다. 그가 이후 용사로 성장하여 당당히 전쟁터로 나가는 모습이었다.

아드리안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하여간, 고집만 세서는.”

그는 투덜거리면서도 어둠 너머의 마물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래, 미하일은 오늘 여기서 죽지 않을 테니.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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