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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가용-110화 (110/184)

110화

미하일은 창밖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 시간이 몇 신데. 바사미엘도 아니고 이런 마을은 혼자 돌아다니면 위험해.”

“애도 아니고 됐어.”

“검 한 자루도 안 들고 다니는 주제에, 혼자 어딜 간다는 거야.”

“……이 시골 마을에 위험할 게 뭐가 있겠어.”

기껏해 봤자 도둑 정도?

아드리안은 별것 아니라는 듯이 실실 웃었으나, 눈앞의 미하일은 아주 단호했다. 그는 길을 막고 서서는 같이 간다고 하기 전까지는 아드리안을 절대 내보내지 않을 기세였다. 그러나 아드리안은 당당했다. 어디가 되었든 그에게 위험이 될 만한 것이 있을 리가 없었다.

아드리안은 속으로 작게 한숨을 쉬며 미하일을 빤히 바라보았다.

“미하일, 궁금한 게 있는데. 지금 이렇게 나를 걱정하는 건 친구라서야, 아니면 나를 좋아해서야?”

그는 미하일에게 이럴 수 있는 권리를 준 적이 없었다. 아드리안은 차갑게 식은 표정으로 미하일의 대답을 기다렸다.

미하일은 아드리안의 시선을 슬쩍 피하며 중얼거렸다.

“당연히, 당연히 친구라서 걱정하는 거지…….”

젠장, 미하일은 속으로 울컥 나오려던 대답을 꾹 눌러 담았다.

그제야 자신이 고백한 상대에게 구질구질하게 굴고 있다는 것이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걱정되는 것은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물론 아드리안의 검술 실력이 일반 학생보다 뛰어나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학생인 데다 지금 그는 검 한 자루도 들고 다니지 않는 허술한 차림이었다.

“……내가 정 부담스러우면 다른 호위 기사라도 데려가든가.”

아드리안은 묘한 표정으로 자신을 걱정하는 미하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솔직히 부담스럽기보다는 귀찮았다. 그러니 굳이 다른 호위 기사를 부르기보단 그냥 미하일을 데리고 나가기로 결정했다. 그는 어깨를 가볍게 으쓱이며 말했다.

“하아, 알았어. 빨리 준비하고 나와.”

“……!”

미하일은 같이 나가자고 말할 줄 몰랐던지, 마지못해 나온 아드리안의 대답에 눈동자를 반짝였다.

“뭐? 나랑 나갈 거야?”

“응. 단, 네가 십 분 만에 준비하고 나올 수 있다면.”

“당연하지. 기다려. 먼저 나가지 말고.”

“……알았다니까.”

아드리안은 눈가를 찌푸리며 투덜거렸다.

그는 문을 열어 둔 채로 잠깐 방으로 다시 들어가더니 편안한 차림 위에 외투 하나와 검 한 자루를 들고 걸어 나왔다. 아드리안은 미하일의 허리춤에 매여 있는 펠렌 디프스의 검을 힐끔 바라보곤 입을 열었다.

“잠시 나갔다 오는 건데 검까지 필요할까?”

“혹시 모르는 일이잖아.”

“……그래. 마음대로 해. 가자.”

그 검이 그렇게 좋은가 보지? 아드리안은 미하일을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고는 숙소 건물을 나섰다. 기척을 탐지해 보니 호위 기사를 물린 걸 보아 미하일은 자신 하나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뻔했다.

처음 와 보는 마을이었지만, 숲이 어느 방향에 있는지는 너무 명확했다. 아드리안은 숲의 향기를 따라 길을 걸었다. 미하일은 그런 아드리안을 바라보랴, 주위에 혹시 이상한 기척이 없는지 살피랴 눈코 뜰 새도 없이 뒤따라가기 바빴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린 미하일이 눈썹을 찡그리며 눈앞에 있는 아득히 큰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그런데, 산책을 어디까지 가게? 여긴…… 숲인 것 같은데.”

아드리안은 미하일의 질문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잠이 안 오는 김에 낮에 검은 마나가 나온다던 그 부근에 다녀와 보려고.”

“뭐?”

미하일이 잊었다고 생각했던지 아드리안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오늘 발견한 게시판 메모에 적힌 곳. 기억 안 나?”

“그건 당연히 기억나지. 제일 먼저 내일 아침에 확인하러 가자고 말한 건 너였잖아!”

그러면서 정체불명의 검은 마나를 어두운 저녁에 관찰하러 가기는 위험하다고 말했었다.

미하일의 화난 목소리에 풀숲에서 쉬고 있던 새가 날개를 펼쳤다가 퍼덕이는 소리가 났다. 그 너머로 멀리서 늑대의 하울링이 이어졌다. 아드리안은 검지를 자신의 입가에 가져다 대면서 작게 속삭였다.

“쉿, 숲 주위에서 그렇게 큰 소리를 내면 어떡해. 미하일. 맹수들을 다 여기로 모을 셈이야?”

그와 동시에 미하일 쪽을 노려보는 아드리안에게서는 단 한 점의 죄책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미하일은 그 표정에 어이가 없다는 듯이 하! 하고 헛웃음을 뱉었다. 아드리안은 카일의 짐에서 슬쩍 가져온 타마힐드 마을의 지도를 크게 펼쳐 들었다.

어디 보자.

“지금 여기서 숲의 초입으로 가려면…….”

“애초에 넌 여기를 혼자 와 볼 생각이었던 거네.”

미하일이 불쑥 아드리안의 생각의 흐름을 뚝 끊어 냈다.

아드리안은 지도에서 고개를 들어 올려 바로 앞에 서 있는 미하일을 바라보았다. 차가운 표정이었다. 아드리안이 겁도 없이 들어가려고 하는 곳은 깊은 산속이었다. 인적도 드물고 그는 손에 장비 하나 없는 상태였다.

“…….”

“내가 위험하다 걱정하면서 억지로 따라 나오지 않았으면 그냥 혼자 여기로 왔을 거라고?”

그의 날카로운 말투에 아드리안은 눈가를 슬쩍 좁혔다.

“…….”

그러나 딱히 할 말은 없었다. 아드리안은 화난 것처럼 보이는 미하일을 스쳐 지나 더 깊은 숲으로 걸어 들어가려 발을 뗐다. 조금만 더 숲으로 들어가면 검은 마나가 나왔다고 적혀 있었던 그 부근이었다.

그러나 그런 아드리안을 턱, 미하일이 빠르게 손을 뻗어 팔을 낚아챘다. 동시에 아드리안은 불만스레 눈을 치켜떴다.

“아드리안. 네가 말한 건 지켜. 지금은 다시 숙소로 돌아가고, 내일 아침에 다 같이 살펴보는 거야.”

아드리안은 미하일이 잡고 있는 팔을 앞뒤로 짜증스레 흔들어 빼냈다.

“내일 다 같이 다시 여기까지 걸어오는 시간 낭비를 꼭 해야겠단 말이야? 그리고 다 같이 와서 확인해 봤는데, 검은 마나가 아니면? 아닐 확률도 높거든. 정말로 그냥 아무것도 아닌 색만 검은 액체일 수도 있어.”

“…….”

“그걸 굳이 다시 와서 보겠다고?”

미하일은 비꼬듯이 이야기하는 아드리안을 빤히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기까지 왔는데 보고 가도 괜찮잖아. 나 혼자도 아니고 너랑 같이 왔으니까. 여차하면 네가 도와줘-”

“아니.”

아드리안의 말을 미하일이 끊어 냈다. 아드리안은 말을 하다가 멈춘 채 어두운 숲을 배경으로 스산한 분위기를 만드는 미하일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어두운 밤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붉은 눈동자가 마치 불타오르고 있는 것처럼 붉게 보였다.

“우린 다시 숙소로 돌아가야 해.”

흐음? 아드리안은 미하일의 말에 옅게 웃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손에 들고 있는 지도를 접지도 않은 채 손을 까닥였다. 그 자세에서 그가 미하일의 말은 귓등으로 듣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왜? 왕자님도 의외로 카일 선배가 무섭나 봐?”

그러나 미하일은 그런 도발에 넘어가지 않았다. 저런 말을 받아치면, 덩달아 싸우다가 은근슬쩍 같이 숲으로 들어가려는 속셈일 것이 뻔했다.

미하일은 아무 말없이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러면 도대체 왜? 난 네가 낮에도 빨리 가 보고 싶어 하길래…… 그래서 당연히 살짝만 확인하고 오자고 제안하면 동의할 줄 알았어.”

아드리안은 뒷목을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말했다.

그는 귀찮다는 듯 눈을 감은 채, 괜히 미하일을 데리고 왔다는 생각을 했다. 곧 이 유희를 끝낼 터라 너무 마음을 놓았는지, 안일하게 대처한 탓이었다. 만약 좀 더 아드리안 헤더로 제대로 머물 생각이었다면, 숙소 전체에 기척을 숨기는 마법을 써 놓고 출발하는 것이 정석이었다. 어쨌든 빈틈을 보인 것은 이쪽이 맞았다.

그리고 미하일은 아드리안의 마음속 좁은 빈틈을 비집고 들어오려 애쓰고 있었다.

“그때는…… 위험한 줄 몰랐으니까.”

미하일은 주먹을 질끈 세게 쥐며 아드리안을 향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위험한 걸 알면서도 널 숲에 들여보낼 수 없어!”

어쭈? 자신을 향해 크게 소리치는 미하일을 보던 아드리안의 눈이 샐쭉 접혔다.

그때였다.

정면을 향해있던 아드리안의 몸이 순간 움칠, 떨렸다.

어?

아드리안은 천천히 고개를 어떤 방향으로 돌렸다. 젠장…… 그는 곤란하다는 듯 머리칼을 휙휙 털며 입을 열었다.

“미하일…… 큰 소리 내지 말라고 했잖아.”

그는 어두운 숲속 칠흑 같은 공간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키이이이익-! 무언가 야생 동물의 울음소리가 아닌, 소름끼치는 소리가 떨리듯이 땅을 울렸다.

미하일의 고개가 천천히 그 방향으로 돌아갔다.

이 최악의 상황에서 아드리안이 그나마 다행인 점을 찾아냈다.

“그래…… 우선 그 메모에 적힌 게 검은 마나가 맞다는 걸 몸소 확인했군.”

그의 이야기에 응답하듯이 끼이이아—아아! 어둠속의 무언가가 끓는 소리를 냈다. 그 괴기한 울음소리에 쉬고 있던 숲속의 새들이 푸드덕! 하고 스산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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