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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가용-101화 (101/184)

101화

우승을 한 뒤 밝게 웃으며 즐거워하는 미하일의 얼굴을 아드리안은 관람석 제일 앞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평소의 차가운 표정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미하일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드리안은 마주 보며 최대한 웃어 주려 노력했다.

‘뭐, 진짜 일등을 했으니 기분이 좋겠지. 평소 훈련 결과를 몸소 느낄 수 있으니 말이야. 그나저나 이 기분은…….’

평소에는 습관적으로 잘만 미소 지었던 입꼬리가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이미 미하일이 우승하리란 건 알고 있어서 놀랍지도 않았고, 결국 오르디나스가 원하는 방향대로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 미하일에게 측은한 마음뿐이었다.

그런 아드리안의 묘한 표정을 알아차린 미하일의 얼굴이 점차 의아함으로 가득 찼다. 그는 경기장 중앙에 우뚝 선 채 관람객 중 유일하게 가라앉은 아드리안을 바라보며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우와와아!

관람석의 학생들은 미하일과 아드리안이 서로 얼굴을 마주한 채 굳은 것은 전혀 모르는지 서로 어깨동무를 하거나, 휘파람을 불며 세리체인 축제의 첫날을 축하하고 있었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아드리안이 몸을 빠르게 일으켰다. 그러고는 우승자가 나온 것을 소란스럽게 축하하는 학생들을 지나 관람석을 가로질렀다.

“뭐야.”

아드리안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던 미하일이 갑자기 학생들 틈을 헤치고 경기장을 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때, 옆에서 관람석의 한스를 향해 크게 팔을 흔들던 캐서린이 고개를 돌렸다.

“미하일, 일등을 하고도 이렇게 시큰둥하기야?”

그녀는 호쾌하게 웃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재미있는 결투를 할 수 있었으니, 캐서린은 이등으로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하일은 무려 일등을 차지한 주제에 저런 반응이라니. 이 무투대회의 우승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 줄 알지 못하기 때문이 분명했다.

미하일은 캐서린의 핀잔에 고개를 기울이며 입술을 열었다. 그는 좀처럼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 듯이 눈썹을 찡그렸다.

“그게 아니라…… 좀 거슬리는 게 있어서.”

아드리안의 뒷모습이 학생들 틈에 가려져 완전히 미하일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

경기장에서 빠져나와 어느새 중앙 정원에 이르렀다. 바사미엘의 거의 모든 학생들이 무투대회 본선을 관람했기 때문에 중앙 정원에는 학생이라곤 아드리안뿐이었다.

‘그래, 지금 당장 방으로 돌아가서 꿰뚫어 보는 눈을 확인해야겠어.’

어제까지는 무릎 높이까지 들어 올릴 수 있을 정도로 가벼웠으니, 미하일이 승리한 오늘은 분명 허리 정도까지는 들어 올릴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다른 생각에 집중하느라 아드리안이 하나 놓치고 있는 것이 있었다. 누군가 아드리안을 바짝 뒤쫓고 있었다. 아드리안을 따라 빠르게 발을 옮길 때마다 허리춤에 찬 검대가 흔들렸다.

미하일이었다.

그는 이내 중앙 정원의 깔끔하게 손질된 높은 덤불 벽 뒤로 사라지는 아드리안의 등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드리안.”

그러나 어디에 정신을 팔아치운 건지 아드리안은 뒤를 한 번 돌아보지도 않은 채 걷기에만 열중할 뿐이었다. 미하일은 이를 악물며 덤불 벽 사이로 뛰어들어 갔다. 어디를 저렇게 급하게 가는 거지?

이제는 팔을 뻗으면 잡힐 거리였다. 미하일은 그의 이름을 외치면서 팔을 뻗었다.

“아드리안!”

탁, 미하일의 손이 아드리안의 팔을 잡아챘다. 예전부터 느꼈던 거지만, 손에 닿은 아드리안의 팔에서 평균보다 서늘한 체온이 전해졌다. 동시에 아드리안은 팔에 닿은 손바닥의 뜨거운 온도에 상념에서 빠져나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경기장 한가운데에 서 있었는데, 언제 이렇게 따라왔지? 아드리안은 미하일의 손을 천천히 밀어내려 하면서 입을 열었다. 팔까지 붙들린 이상, 무시하고 기숙사로 향할 수도 없었다.

“미하일? 왜 여기에 있어.”

“……왜? 있으면 안 돼?”

아드리안의 평소와 다르지 않는 목소리와 표정에, 미하일의 눈동자가 뾰족하게 날이 섰다. 미하일은 곧바로 자신의 손을 떨쳐 내려는 아드리안의 손을 먼저 쳐 내더니 날카로운 어투로 그를 질책했다.

“할 말이 그게 다야?”

“……아, 우승 축하해.”

그가 축하한다는 한마디를 툭 던지고 ‘이제 됐지?’라는 듯이 어깨를 으쓱이곤 기숙사 쪽으로 몸을 돌리려는 순간이었다. 아드리안의 팔을 여전히 꾹 움켜쥔 미하일의 손이 잘게 떨렸다.

“……축하?”

윽, 아드리안은 갑자기 등 뒤로 덤불 벽이 닿자 미간을 찡그리며 눈을 치켜떴다. 미하일이 아드리안의 팔을 잡은 채로 덤불 벽으로 세게 밀쳤기 때문이었다. 미하일은 다른 곳으로 도망갈 수 없도록 덤불 벽과 몸 사이에 아드리안을 세워 두고 짜증스레 말을 이어 갔다.

“누가 축하를 그딴 표정으로 하는데?”

왜 밀치냐고 따지려던 아드리안이 멈칫했다. 그딴 표정? 잠시 자신이 짓고 있을 표정을 떠올렸다. 나름대로 노련하게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미하일은 아드리안의 묘한 표정을 코앞에서 관찰하면서 다시 한 번 입술을 열었다. 멀리서 봤을 때는 한없이 따뜻하게 보였는데, 이렇게 가까이에서 마주하자 아드리안의 밀빛 눈동자가 왠지 모르게 차갑게 느껴졌다.

“너는…….”

미하일의 입술이 슬쩍 열렸다가, 다음에 이어질 단어를 고르려는 듯이 삐죽거렸다.

나는 뭐.

아드리안은 입을 다물고 미하일이 빨리 문장을 완성하길 기다렸다. ‘일단 뭐라고 말하는지 들어나 보자.’라는 것이 지금 그의 심정이었다.

“넌, 이상해.”

“…….”

아드리안은 조용히 고개를 들어 올려 미하일의 찌푸린 얼굴을 응시했다. 그 눈빛에 미하일 스스로도 본인이 이상한 말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시선을 피했다.

이거 봐라? 우선 이것부터 놓고 말하라고 해야지.

아드리안은 미하일에게 아직까지 잡혀 있는 팔을 살짝 흔들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뭐, 알았으니까 우선 잠깐만-”

“아직 내 말 안 끝났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미하일이 이를 악물고 다시 손아귀에 힘을 주는 순간이었다. 음? 이러다가는…… 아드리안이 기대어 있는 건 단단한 벽이 아닌 덤불을 얽어 만든 성긴 벽이었다. 미하일은 그 사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 같았다.

어?

미하일이 벽으로 아드리안을 밀어붙인 만큼 자신의 몸도 그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느꼈을 때에는 이미 늦었다. 물론 아드리안은 슬쩍 제 몸을 옆으로 빼낼 수도 있었지만, 그랬다간 충분히 부자연스럽게 보일 것 같아 미하일의 힘에 못 이기는 척 함께 쓰러졌다.

“윽!”

둘의 몸이 쿵, 소리를 내며 덤불 벽 사이로 굴러 반대편으로 넘어졌다. 바사미엘의 정원사가 매일 새벽마다 정성스럽게 손질하는 덤불 벽에 구멍이 숭 뚫렸다.

아드리안은 속으로 한숨을 쉬며 얼떨결에 자신의 몸 위로 쓰러진 미하일을 살폈다. 평소 교복에 감춰져 쉽게 예상되지 않는 근육 덕에 단단한 몸이 느껴졌고, 그래서인지 생각보다 좀 무거웠다. 그래서 미하일이 위에서 빨리 좀 비켜 줬으면 했다.

“미하일, 괜찮아?”

“……응.”

미하일은 고개를 들지 않은 상태로 잠시 동안 숨을 고르는 중이었다. 지금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무척 당황한 가운데에서도 불현듯 아드리안의 체향이 느껴졌다. 같은 욕실에 비치된 물품을 쓰는데도, 뭔가 다른…… 다른 향기가 나네.

갑자기 사고의 회로가 이상한 방향으로 이어진 미하일의 어깨를 아드리안이 슬쩍 흔들었다.

“그럼 좀 비켜 줄래?”

“어, 어. 잠깐만.”

미하일은 말을 조금 더듬으며 빠르게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아드리안의 위에서 빠르게 두 팔로 지면을 밀어 일어났다. 미하일은 “……미안.”이라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하며 흠, 하고 목을 가다듬었다. 그의 은발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귀 끄트머리가 이번에도 붉어져 있었다.

그제야 자유의 몸이 된 아드리안은 무심한 얼굴로 일어나선 교복에 붙은 잔디를 툭툭 털었다. 아드리안은 창피해하는 미하일을 곁눈질하며 생각했다.

‘그러니까 힘은 적당히 조절해야지. 마음에 안 든다고 상대방을 무작정 벽으로 밀치는 게 아니라.’

그때였다.

-“이 벤치에 앉아서 이야기하자고. 그래서, 왕실의 연구에 자네도 간다는 건가?”

데클레어 교장의 목소리가 덤불 벽 너머에서 들렸다. 아드리안과 미하일은 그녀의 목소리에 휙, 하고 고개를 옆으로 틀었다. 그들이 얼결에 뚫고 지나온 덤불 벽 너머의 대화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이었다.

-“네, 그래서 내년 수업은 제가 못 맡을지도 모르겠네요. 아무래도 시급한 문제라 왕실에서도 강하게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교장과 이야기 중인 사람은 정령 학부 교수인 올리비아 리네이였다. 내년 수업을 못 한다고? 아드리안은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 대며 미하일을 향해 쉿- 하고 속삭였다. 저들이 나누는 대화는 드래곤에게 아주 중요한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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