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같이가용-99화 (99/184)

99화

피냐타가 다시 한 번 팔을 높게 쳐들었다.

우우웅-

그러자 대량의 마나가 삽시간에 경기장 중심으로 몰려들었다. 그 바람에 관람석에 앉은 학생들의 머리칼이 모두 휘날렸다.

“결투는 경기장 중앙의 실드 마법이 풀릴 때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실드 마법은 이 분 동안만 유지됩니다.”

원형 경기장 중심에 피냐타가 서 있는 단상과 함께 휘익 공중으로 치솟았다.

단상이 위로 올라가면서 약간 불투명한 실드 마법이 경기장 중심부터 올라가 마치 장막처럼 원형 경기장을 절반으로 나누었다. 단상이 있던 자리에는 마법으로 만들어 낸 거대한 모래시계 하나가 우뚝 서 있었다. 사르르륵, 그 안의 모래가 천천히 떨어지면서 경기장의 모든 학생이 이 분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저렇게 공중에 떠서 중계를 할 셈이군? 아드리안은 하늘을 바라보던 고개를 다시 내려 실드를 중심으로 미하일과 캐서린이 곧은 자세로 서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때였다.

“그런데…… 왜 이 분이나 뒤에 시작하는 거야? 바로 시작하면 될 텐데.”

관람석 뒷줄에 앉아 잔뜩 긴장하고 있던 학생 하나가 경기장 중심의 모래시계를 바라보며 속삭였다. 마땅히 궁금할 수 있는 규칙이였다.

“마법사와 검사의 결투에서는 첫 수가 가장 중요하거든.”

누군가의 목소리가 그 질문에 대한 정답을 단호한 목소리로 알려 주었다. 휙, 주변 좌석에 앉아있던 학생들의 고개가 모두 그쪽으로 향했다.

“결투 시작과 동시에 마법사는 무조건 거리를 벌리고, 검사는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거리를 좁히는 게 정석 중의 정석이야. 대개 본선쯤까지 오면 첫 움직임에 누가 원하는 만큼의 간격을 만드는 것인지가 승패를 가르지.”

-라고 예선에서 홀랑 떨어진 조나단이 진지한 표정으로 양옆의 학생들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들은 조나단의 설명에 그제야 이해가 되었던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사이, 모래시계가 거의 다 떨어져 가고 있었다. 시험 개시를 코앞에 두고, 캐서린은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마법 술식 하나를 읊었고, 실드 반대편의 미하일은 가볍게 검을 휘두르며 스트레칭을 했다.

정확히 이 분 뒤, 커튼이 걷히듯 경기장 중앙을 막고 있던 실드가 사라지면서 마법으로 만들어진 모래시계도 마나 알갱이가 되어 흩어졌다.

미하일은 손에 쥔 검을 바투 고쳐 잡으며 망설임 하나 없이 전진했다. 맞은편에 선 캐서린의 무심한 표정이 멀리서도 잘 보였다. 미하일의 움직임에 캐서린의 눈빛이 조금 달라졌다. 일반적으로 결투에서 권장하는 ‘상대의 기량을 조금이라도 파악하기 위해 잠시간 검을 든 채 기다린다.’라는 관념을 미하일은 철저하게 무시하고 있었다.

“이런, 왕자님은 최대한 빠르게 이 경기를 끝낼 셈이군요. 캐서린, 빨리 반격 준비하지 않으면 단 일격에 경기가 끝나 버리겠어요!”

미하일은 피냐타의 말을 들으며 눈앞의 캐서린을 향해 차갑게 비웃으며 진검을 높게 쳐들었다. 쇄액- 날카로운 검날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캐서린을 위협하듯이 날아왔다. 동시에 캐서린의 어두운 머리칼이 붕 떠오르며 손가락이 움직였다.

“솟아나라!”

캐서린이 서 있는 자리 바로 앞에 모래로 만들어진 커다란 병사가 순식간에 생겨났다. 그것은 두 팔 뻗어 미하일의 검을 손목으로 받아 냈다.

흠? 미하일의 검을 뒤로 물렸다가 다시 횡으로 검을 날렸다. 모래 병사가 지닌 쇠붙이들이 긁히며 불쾌한 소리가 났다. 대기 시간에 준비한 것이 이 모래 병사인 것 같았다.

“겨우 이걸로 나를 막겠다는 거야?”

둘의 힘 차이가 조금 나는 탓에 캐서린이 불러낸 모래 병사의 몸이 미하일의 힘에 천천히 뒤로 밀렸다. 음, 캐서린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 모습을 확인했다.

“……그러면 좋겠지만……. 역시 이것들만으로는 안 되겠지? 솟아나라!”

그녀의 주문에 새로운 모래 병사 하나가 무릎을 꿇은 상태로 소환되었다. 새로운 모래 병사는 뚜벅뚜벅 경기장을 가로질러 미하일이 캐서린에게 다가가지 못하도록 진입로를 막았다.

그간 멀리서 보기만 했던 미하일의 검술 실력을 철저하게 느끼는 동시에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 경기를 이길 수 있을지 캐서린이 고민하는 순간이었다. 그것을 눈치챈 미하일이 고개를 기울이며 크게 도약했다. 그를 막으려 모래 병사가 내뻗은 팔을 칼로 베어 넘겼다. 미하일의 검에 잘린 모래 병사의 팔이 깔끔하게 떨어지기가 무섭게 스르륵 다시 새로운 팔이 생겼다. 하지만 그사이 미하일은 한달음에 캐서린 옆까지 도달한 뒤였다.

“당연하지. 아쉽겠지만 검사에게 이 정도 거리를 허용한 순간 시합은 끝이야.”

숨소리 하나 변하지 않은 말끔한 미하일의 목소리였다.

언제 여기까지?

캐서린은 짜증 난다는 듯이 이를 갈면서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러자 모래 병사가 그들 사이로 빠르게 뛰어와 미하일의 검날을 세게 밀어 간격을 벌리려 했다. 곧바로 거리를 좁혀 들어오는 시퍼런 칼날 탓에 캐서린이 고개를 뒤로 젖히려는 순간- 원형 경기장 내부의 모든 것이 멈추었다.

마법이었다.

경기장에 서 있는 두 참가자 모두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미하일은 눈동자를 도르륵 굴려 경기장 공중으로 향하게 했다.

피냐타가 올라가 있는 단상이 스르륵 움직여 멈춰 있는 미하일과 캐서린에게 바짝 다가왔다. 그는 미하일의 검날이 있는 부분을 확인하더니 입을 열었다.

“네에! 여기서 잠시 멈춥니다. 결승 경기에서 참가자는 세 번의 기회를 받습니다. 유효타를 날리면 점수를 얻을 수 있고, 점수를 얻지 못한 쪽은 그때마다 결투를 계속할지 아니면 항복할지 선택하게 됩니다. 여기서 209번 도전자에게 승점 일 점! 아, 당연히 먼저 3점을 얻는 쪽의 승리입니다. 38번, 항복하시겠습니까?”

경기장 내부는 물론 마법이 닿지 않은 관람석 구석까지 38번의 답변을 기다리며 모두 침묵을 유지했다. 캐서린은 자신의 목에 바짝 붙어 있는 날카로운 검날을 힐끔 바라보고는 잠시간 고민했다. 왼쪽 목에 닿아 있으니 마법이 풀리자마자 오른쪽으로 최대한 빠르게 몸을 돌리면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완벽하게 피하는 것은 무리지만.

“……계속할 겁니다.”

캐서린의 대답에 피냐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십 초 뒤에 경기가 재개됩니다.”라고 말하며 다시 경기장 공중으로 떠올랐다. 오오오! 관람석에서는 피냐타의 경기 재개 안내에 캐서린을 응원했다.

그로부터 정확히 십 초 뒤에 경기장의 두 명의 참가자에게 걸린 시간 마법이 스르륵 풀렸다. 캐서린은 마법이 풀리는 것을 몸으로 느끼자마자 눈을 질끈 감으며 최대한 빠르게 오른쪽으로 몸을 비틀어 미하일의 검에서 멀어졌다. 그러고는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가 들이마시며 목에 손바닥을 가져다 대었다.

예상대로 완벽하게 피하지는 못했다. 주륵, 어느샌가 피가 흘러 캐서린의 목덜미를 적시고 있었다.

“회복.”

캐서린의 나직한 목소리를 들으며 미하일은 가볍게 목을 양옆으로 살짝 꺾었다. 어차피 저건 시간 벌기용 수작이었다. 그는 코웃음을 치며 다시 한 번 더 “솟아나라!”라고 외치는 캐서린을 향해 달려갔다.

“……무슨 수작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 의미 없어!”

미하일은 정면에서 여전히 팔을 높이 들어 올린 채 우뚝 서 있는 캐서린을 향해 몇 걸음 만에 뛰어갔다. 그러나 그런 움직임에도 캐서린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눈을 감은 채 입술을 움직였다.

“솟아나라!”

스륵, 모래 병사 하나가 경기장 중앙에 두 개 더 소환되었다. 캐서린은 고개를 번뜩 들어 올려 경기장 안에 총 다섯의 모래 병사가 소환된 것을 확인했다. 그녀의 눈빛에 이채가 돌았다. 드디어 조건을 만족했다!

“흩어지는 것들이여!”

캐서린의 외침에 부응하듯이 그녀를 중심으로 마법진이 옅게 빛을 내었다. 쿠웅-! 그와 동시에 마나 파동이 순식간에 요동쳤다.

“이런, 미하일…….”

관람석에 앉아 한동안 집중해서 둘의 움직임을 관찰하던 아드리안이 작게 중얼거렸다. 느껴지는 마나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잊으면 안 되지. 시간은 언제나 마법사의 편이라는 걸.”

그는 팔짱을 낀 채 씨익 웃으며 다리를 편하게 꼬았다. 이렇게 되면 승패를 확신할 수 없겠는데? 아드리안은 경기장에서 캐서린에게 잠깐 틈을 보인 미하일을 살펴보았다. 미하일의 머리카락이 캐서린이 움직이는 마나 움직임에 맞추어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서로를 삼키고 새롭게 솟아나라!”

우웅- 경기장 바닥 전체가 삽시간에 밝게 빛을 내뿜었다.

캐서린이 여태껏 소환했던 모래 병사 다섯이 그와 동시에 모래가 흩어지듯 푸스스- 땅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것들은 마나의 움직임에 따라 하나의 커다란 모래 소용돌이를 만들어 냈다.

이것은 본선이었다. 바사미엘 전투 인원 중 최고의 이 인이 경합을 벌이는. 그녀의 힘을 얕보아서는 안 될 일이었다. 캐서린의 차가운 눈동자가 번뜩- 위로 치켜떠졌다.

하하, 미하일은 입으로만 웃으며 그의 이글거리듯 타오르는 붉은 눈동자를 허공의 모래 소용돌이에 고정했다.

“아주…… 작정하고 나왔군.”

캐서린의 효과 발생은 오래 걸리지만 정교한 마법의 준비 시간이 끝난 것이었다.

아직도 요동치는 마나의 흐름에 맞춰 그녀의 로브가 거세게 나부꼈고…… 그 뒤에는 작은 성 크기의 모래 드래곤이 미하일을 향해 콧김을 내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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