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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가용-95화 (95/184)

95화

미하일은 심통 난 얼굴로 즐겁게 서로 이야기하고 있는 아드리안과 카일을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그저 팔짱을 낀 채 둘을 노려보기만 했다. 할 말이 생각보다 많은지 둘의 대화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저번에 힐데케 절벽 주위에서 발견했던 그거 때문에 답사를 나가려고.”

“아, 마침 그 시약이 다 떨어져 가던 참이었는데 잘됐네요.”

“답사 때문에 그러는데…….”

언제나 그랬듯이 미하일의 인내심은 금세 바닥났다.

툭, 툭 미하일은 적당히 하고 끝내라는 듯이 구두 뒤축을 바닥에 몇 번 두드렸다. 그의 잘생긴 미간이 살짝 찌푸려진 채였다.

“안 갈 거야? 나한테는 늦게 왔다고 뭐라고 한 주제에, 여기서 하루 종일 이야기할 기세네.”

매일 만나서면서도 할 이야기가 그렇게 많나? 미하일은 입술을 삐죽거렸다.

카일과 이야기하던 아드리안이 말을 멈추고 미하일을 바라보았다. 아, 밥 먹으러 가던 길이었지? 아드리안은 저놈이 지금껏 조용히 기다려 준 것만 해도 대단하다고 생각하며 카일에게 말했다.

“선배. 그런데, 저희가 점심을 먹으려던 참이었어서요.”

나중에 오르디나스 클럽실에 들리겠다는 이야기를 하며 대화를 끝내려 했다. 그러자 카일이 눈을 반짝이며 손뼉을 가볍게 쳤다.

“그래? 잘됐다. 나도 아직 점심 안 먹었는데. 같이 가자.”

“같이요?”

아드리안은 곧바로 바로 옆의 미하일을 확인했다. 점심을 사겠다는 사람이 정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할까? 미하일.”

“싫어.”

“…….”

어쩌면 당연한 대답이 곧바로 미하일의 입에서 나왔다. 저럴 줄 알았는데 왜 굳이 물어본 걸까.

“에이, 싫긴 뭐가 싫어. 가자! 선배가 맛있는 거 사 줄게.”

카일은 미하일의 대답에 푸하하 크게 웃었다. 그러고는 뚱한 표정인 미하일의 등을 퍼억, 하고 손바닥으로 크게 내리쳤다. 그는 미하일의 진심이 가득 담긴 저 대답을 무척 재미없는 농담이라고 오해하는 게 분명했다. 미하일은 그런 카일을 짜증 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묘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아드리안을 확인하고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오늘 식사를 살 수 있을 만큼의 틸론을 모으기 위해 보잘것없는 의뢰를 몇 개나 해야 했는지 아드리안은 모를 것이었다. 바사미엘에서 골드를 쓸 수 있었다면 매일 식사를 사 주면서 생색낼 수 있었을 텐데. 아니, 아드리안은 음식보다는 온실이나 과수원 몇 개를 사 주는 것을 더 좋아할 것이다. 혼자 살고 있다는 이시스는 건조한 날씨로 유명한 도시였으니 온실과 과수원이 생기면 더 다양한 종의 식물을 기를 수 있겠지.

“미하일.”

식당 메뉴판 앞에서 생각에 잠긴 미하일을 깨운 것은 아드리안의 또렷한 목소리였다. 미하일은 단번에 머릿속을 채우고 있던 생각을 몰아냈다.

“네가 주문할 차례야. 아, 넌 당연히 A 코스였나?”

아드리안은 식당의 메뉴판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미하일은 심드렁한 얼굴로 메뉴판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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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코스 ✧ 안심스테이크 (+추가금 5틸론)

B 코스 ✧ 로즈마리 가자미 구이 (+추가금 3틸론)

C 코스 ✧ 크림 새우 파스타 (+추가금 1틸론)

오늘의 메뉴 ✧ 시저 샐러드와 완두콩 수프

━━━━⊱⋆⊰━━━━

바로 그 옆에서 카일이 씨익 웃었다.

“마음껏 시켜. 내가 살게.”

그렇단 말이지? 미하일은 그런 카일을 바라보며 한쪽 입술을 삐뚜름하게 끌어 올렸다. 그러고는 검지손가락을 들어 식당의 메뉴판을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훑다가 두 개를 골랐다.

“A 코스랑 B 코스.”

“……미하일. 우리 둘은 이미 다 주문했는데?”

아드리안이 떨떠름한 목소리로 미하일의 이상한 주문을 지적했다. 미하일은 식탐이 있는 것과는 전혀 먼 성격이었고, 언제나 우아하게 적당량의 식사를 즐겼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코스 두 개를 먹을 거야.”

미하일은 강경했다.

카일은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며 미하일이 말한 메뉴를 모두 주문했다. 후배가 먹고 싶다는데 이 정도는 선배가 사 줘야지 뭐-라는 표정이었다.

“요새 훈련을 많이 해서 배고픈가 보다. 많이 먹어. 괜찮아.”

‘……틸론이 많다 이거지.’ 미하일은 카일의 저 자신만만한 표정이 더 싫었다. 하필 이쪽이 식사를 사려고 한 날에 끼어들어서 저렇게 굴다니, 번지르르한 얼굴로 히죽거리는 저 성격도 마음에 안 들고 말이다. 그래서 미하일은 주문을 끝마치려는 참인 카일과 식당 직원을 향해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그러면 C 코스도 추가해야겠네요.”

“뭐?”

옆에서 아드리안이 중얼거렸으나, 미하일은 모른 척 무시했다.

주문을 받던 직원은 미하일의 추가 주문에 번뜩 고개를 들어 올려 계산을 할 학생인 카일의 동의를 구했다. 카일은 듬직한 선배의 표정으로 왼쪽에는 아드리안을, 오른쪽에는 미하일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미하일은 곧바로 자신의 어깨 위에 허락도 없이 얹어진 손을 툭, 하고 쳐 냈다.

종업원은 무척 사무적인 미소로 카일의 손등에서 17틸론을 긁어 갔다.

“코스 다섯 개 모두 주문되었습니다. 테이블에 앉아 서버를 기다려 주세요.”

미하일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먼저 휙 걸어갔다. 아드리안은 여전히 실실거리며 웃고 있는 카일을 한 번 쳐다본 후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 뒤를 따랐다.

***

“주문하신…… 식사를 앞에 놔 드리려 하는데요. 먼저, 제가 테이블을 잘 찾아온 게 맞는지 확인해야겠네요.”

트레이를 끌고 걸어온 서버가 세 명만 앉아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붙어 있는 주문서를 유심히 눈앞으로 가져갔다. 아드리안은 그런 서버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주며 말했다.

“저희 것 맞습니다. 여기 제 옆 사람 앞에 A, B, C 모두 놔 주시면 됩니다.”

그에 서버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아, 네. 다행이군요.”이라고 말한 후, 트레이를 테이블 옆에 촤악 멈춰 세웠다. 그러고는 트레이를 가득 채운 접시를 하나씩 내려놓기 시작했다.

“…….”

미하일은 자신 앞에 하나둘씩 놓이는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을 내려다보기만 했다. 식기를 들어 올리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질린 것 같았다.

“그럼, 좋은 식사 시간 되시길.”

“네.”

아드리안과 카일만 서버의 인사에 답했다. 그들은 동시에 아무 말 없이 제 앞의 접시를 내려다보고 있는 미하일을 힐끔 확인했다.

“훈련을 얼마나 했길래, 그거 진짜 다 먹을 수 있어?”

카일은 웃음을 꾹 참는 표정으로 미하일에게 물었다. 그는 이제 막 아드리안과 미하일의 미묘한 사이를 눈치챘다. 둘의 시간을 방해받은 것에 잔뜩 약이 올라 있는 저 표정만 봐도 카일은 알아챌 수 있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이미 식사를 시작한 아드리안의 얼굴을 확인했다. 아무래도 아드리안은 이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 둘을 도와줄지 놀려 줄지는 명확했다. 엄연한 바사미엘의 사 학년 선배로서 곤경에 빠진 신입생의 풋사랑을 도와주는 것이 맞겠지.

그렇지만…… 카일은 금방이라도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최선을 다해 내리눌렀다. 물론 도와줘야지. 조금만 더 놀린 후에!

그는 맞은편에서 조용히 식사 중인 아드리안을 유심히 바라보며 한쪽 손에 턱을 괴었다.

“아까 하던 이야기를 이어서 하자면, 이번에 힐데케 절벽으로 답사를 나갈 거거든.”

아드리안은 식사를 하다가 카일의 이야기에 옆의 찻잔을 들어 올려 입가에 가져다 댔다. 그런데요?라는 표정이었다. 그 바로 옆에서 영혼 없는 표정으로 느릿느릿 스테이크를 먹고 있는 미하일의 한쪽 눈썹이 올라갔다.

“너도 관심 있으면 같이 가. 물론, 신입생에게 어려운 주제이긴 하지만…… 검은 마나의 근원을 좀 더 깊게 조사하고 싶다고 말했었잖아?”

“……검은 마나?”

미하일의 나직한 목소리가 카일의 말이 끝나자마자 따라붙어 왔다. 왠지 모르게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다.

“아드리안. 지금껏 검은 마나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었어?”

“응.”

“……그런 거라면 나한테도 알려 줬어야지.”

“그런가? 난 네가 카일 선배의 연구 주제에는 전혀 관심 없을 줄 알았거든.”

내가 키우는 식물이나 케비쉬 묘목에 대한 이야기는 재미없어 하길래- 아드리안의 덧붙은 설명에 미하일의 눈에 번뜩 이채가 돌았다.

“당연히 그런 거에는 관심 없지! 그런데 저 검은 마나라는 건 우리 왕국과 관련된 거잖아. 왕성에서 함께 들었으니 나도 알 자격이 있어.”

“아, 그러니까…….”

아드리안은 옆자리에 앉은 미하일의 얼굴을 힐끔 확인했다. 미하일이 원하는 것을 빨리 들어주고 끝내자는 심정이었다.

“너도 카일 선배의 조수가 되고 싶다는 거야?”

“그게 아니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둘의 대화를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카일에게서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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