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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가용-79화 (79/184)

79화

미하일은 아드리안이 시키는 대로 방문에 두 손을 짚고 마나를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살랑- 닫힌 기숙사 방 안에 한 줄기의 바람이 불었다.

은발 머리칼이 조금씩 살랑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부웅- 조금씩 따뜻한 바람이 그의 몸을 감싸듯 피부에 닿아 왔다. 아지랑이 같은 것이 그의 몸을 감싸 안고 흐르듯이 요동쳤다.

“내가 아까 말한 거 기억하지? 아주 조심히, 세심하게, 살짝만 공중에 띄워서…….”

드래곤은 집중한 미하일 바로 옆에서 대놓고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집중하느라 눈을 감고 있던 미하일의 미간은 아드리안이 내뱉는 한 마디 한 마디마다 조금씩 찌푸려졌다. 그러나 전에 시도했을 때와는 달리 마나 컨트롤이 조금 더 쉬웠다. 뭔가 원하는 방향으로 원하는 만큼의 마나만 움직일 수 있게 된 느낌이었다. 미하일은 참다못해 결국 옆에서 호들갑 떠는 아드리안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정신 사나우니까 그만 말해.”

눈을 감고 방 밖에 집중한 상태로 미하일은 공중 부양 마법의 시전어를 중얼거렸다. 문 밖의 바닥을 가장 먼저 상상했다. 복도에 깔린 자줏빛 고급 카펫의 질감을 상상하고, 그리고 이어서 카펫에서 마나를 천천히 모아 위로 움직이는 마법이었다.

왠지 모르게 평소 사용할 수 있었던 마나보다 더 많은 양이 몸 안에서 샘솟았다. 아드리안의 말대로 원래 사용할 수 없었던 마나까지 사용할 수 있게 된 탓인지는 몰라도 제법 효과가 있었다.

미하일은 공중으로 띄웠던 묘목을 천천히, 아주 세심하게 조금 옆으로 옮긴 후 끌어 올렸던 마나를 천천히 다시 몸으로 가져왔다. 문에 손을 대고 있는 왕자의 손바닥으로 마나 알갱이들이 빛을 내며 돌아왔다.

스윽- 잠깐 중력을 무시하고 떠올랐던 미하일의 머리카락이 천천히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아드리안은 미하일이 눈을 뜨기도 전에 빠르게 질문했다. 그의 관심사는 온통 문 너머의 케비쉬 묘목뿐이었다.

“어때? 잘 옮겼지?”

“…….”

그러나 미하일은 스스로도 결과물을 확신할 수 없는 탓인지 고개를 기울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드리안은 방문 앞을 비켜 주는 미하일을 잠깐 바라보다가 문고리를 덥석 잡았다. 그러고는 천천히 문을 열었다.

방문 밖은 온통 초록색이었다.

차례로 줄지어 복도를 꽉 채우고 있는 케비쉬 묘목들이 눈에 들어왔다.

“……생각보다…… 묘목치고는 크네?”

저걸 묘목이라 불러도 되나? 물론 열매를 맺을 정도로 자라지는 않았지만 드래곤이 하는 것보다 크기가 두 배는 더 컸다. 방문이 열리지 않을 만했군.

아드리안은 빠른 걸음으로 복도로 나가 묘목들을 하나하나 세심히 살폈다. 다행히 왕자의 마나 컨트롤 실력이 타드폴리 의뢰 때보다는 훨씬 좋았던지 몇 그루가 아주 살짝 삐뚤어진 것 외에는 모두 최상급이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묘목을 관찰하고 있자, 어딘가에서 퉁명스런 목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그렇게 하루 종일 나무만 보고 있을 건가 봐? 잊은 게 있을 텐데.”

미하일이었다. 그는 어느샌가 다시 셔츠를 꿰어 입고 왔는지 말끔한 모양새로 방문가에 편하게 몸을 기댄 채였다. 응? 아드리안은 왕자의 이상한 화법에 눈가를 찡그렸다.

“……내가 뭘 잊었는데?”

곧바로 짜증 난다는 눈빛이 대답으로 돌아왔다. 아드리안은 이쪽을 향해 치켜뜬 눈동자를 잠시간 조용히 바라보다가 그제야 왕자가 원하는 것을 알아채곤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고맙다는 말을 잊었었네. 됐지?”

미하일은 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마나 컨트롤 수련이라는 뜻밖의 수확이 있었으나…… 온전히 저 나무를 안전하게 옮기고 싶다는 저놈의 소원을 들어준 것뿐이었으므로 이쪽은 고맙다는 인사를 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대신 궁금한 것이 하나 있었다.

“아까 그건 얼마 간격으로 피워야 하지?”

“한 달에 한 번 정도. 룸메이트에게는 싸게 3틸론에 팔게.”

“……마음대로 해.”

차마 안 살 거라는 말은 하지 못하는 미하일이 새초롬한 표정을 짓고는 훽 몸을 돌렸다. 동시에 아드리안도 양손에 묘목 하나씩 집어 들고 몸을 일으켰다. 이렇게 옮기면 한 번에 두 그루씩이니까.

“열다섯 번이나 왔다 갔다 해야 되겠다.”

무식한 방법이었으나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인간 아드리안 헤더에게는 방법이 없었다. 후, 작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든 순간 마주친 미하일의 날카로운 눈동자에 아드리안은 몸을 굳혔다. 먼저 걸어갔는데 언제 여기를 보고 있었지?

“……왜? 뭐 놔두고 갔어?”

복도에 아무도 없을 때에 몰래 마법을 쓰려 했던 아드리안은 도둑이 제 발 저린 듯이 물었다. 미하일은 복도에 덩그러니 남아 양손에 묘목 두 그루를 들고 마주 선 아드리안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째려보고 있었다.

“3틸론.”

“뭐?”

“도와 달라고 하면 3틸론에 해 주겠다고.”

“……”

귀찮은데. 아드리안은 왕자의 변심에 미간을 조금 찌푸렸다. 이제 와서 갑자기 왜 착한 척을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입장에선 그냥 가던 길 가 주는 것이 사실 훨씬 더 편했다.

“3틸론이면 아까 그 마나 중화제랑 바꾸자는 이야기지? 그러면…… 그래. 도와줘.”

……네 도움 따위 필요 없다고. 그러나 왕자의 도움을 거절할 건덕지가 없었다. 미하일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입가에 슬쩍 비웃음을 걸고는 몇 걸음 만에 다시 방 앞으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양손에 묘목을 들고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아드리안을 향해 대강 고갯짓을 했다. 온실로 안내하라는 뜻이었다.

터벅터벅, 두 청년의 발걸음 소리가 조용한 기숙사 복도를 채웠다.

***

“유시! 어때? 부모님께 편지 쓸 정도는 받았어?”

“……아슬아슬해.”

가넷의 신입생들이 본관 건물의 게시판에 모여 있었다. 유시는 자신의 몫의 종이를 받아 들고 강아지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파티를 위한 드레스는 물 건너 간 것처럼 보였다.

“몇 등급이 목표였는데?”

“A등급.”

“그리고 실제 성적은?”

“B 마이너스.”

“……밥이나 먹으러 가자! 내가 살게!”

옆의 친구는 의기소침해진 유시의 등을 턱! 치면서 호탕하게 외쳤다.

모든 학부 시험이 마무리 된 후 일주일 만이었다. 바사미엘은 다시 원래의 평화로웠던 분위기를 빠르게 되찾았는데, 이는 이제 곧 방학이라는 것도 크게 작용했다. 몇 번 남은 수업을 빨리 끝내고 모두들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붕 뜬 주간이었다. 교수들도 그런 학생들의 마음을 잘 아는지 수업 진도는 느슨했다.

아드리안은 그런 아이들과 인사를 하며 기숙사로 향했다. 그는 본관 온실을 막 들렸다 나오는 참이었다. 엊그제 심었던 케비쉬 묘목들은 오르디나스가 준비한 고급 토양에 잘 적응한 상태였다. 이대로만 자란다면 최상급의 열매를 맺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는 속으로 콧노래를 부르며 기숙사 방문을 열었다.

그때였다.

방문을 열자마자 왕자가 아닌 다른 인간의 인기척이 중심에 서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아드리안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잘 단련된, 그리고 옅은 마나가 느껴지는 남자였다. 그의 바로 앞에 선 미하일은 언제나처럼 거만한 자세로 서 있었는데, 그들의 자세에서 대충 상하관계가 느껴졌다.

“……그래. 잘 알아들었다고 가서 전해.”

“네. 저하.”

슥, 아드리안은 그들의 대화에 방해가 되지 않게끔 매끄럽게 방문을 닫고 조용한 발걸음으로 자신의 침대로 걸어갔다. 무슨 이야기를 전했는지는 몰라도 두 사람의 분위기는 심각해 보였으므로 굳이 눈에 띄고 싶지 않았다.

존대를 자연스럽게 하고, 말을 전하겠다는 대화를 보아 루스타바란 왕가의 전령인 듯했다. 그는 미하일에게 전달했어야 했던 말을 모두 끝낸 참이었는지 절도 있게 궁중 예법에 맞는 인사를 한 후 휙, 몸을 돌렸다.

무심하지만 날카롭게 상대방을 관찰하는 눈길이 방금 방에 들어온 아드리안을 향했다. 전령은 잠깐 동안 왕자와 같은 방을 쓰는 학생을 관찰하더니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그리고 전달드릴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만…….”

“뭐지?”

미하일은 갑자기 다른 용건을 꺼내려는 전령에게 물었다. 그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망토 안에 손을 넣어 어떤 것을 꺼냈다. 그러고는 한 손은 허리 뒤로 한 채 정중한 자세로 그것을 아드리안에게 내밀었다.

“친구분께 드리는 루스타바란 왕가의 편지입니다.”

그것은 진줏빛 편지지였다.

저요? 대화에 갑자기 끼게 된 아드리안은 미하일쪽을 힐끔, 바라보았으나 그도 몰랐던 눈치였던 지 “편지?”라고 말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받아 주시지요.”

전령은 편지를 내민 자세를 유지하며 아드리안을 재촉했다. 아드리안은 “……네, 받았습니다.”라고 중얼거리며 편지를 향해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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