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문 앞에 뭔가가 있어서 안 열리는 것 같은데?”
“……”
미하일은 방문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는 아드리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방금까지 잠들어 있었던 것치고 무척 멀끔한 모양새였다. 그의 뒤통수의 금발 머리칼만이 살짝 헝클어져 있었다.
아드리안은 문틈을 살짝만 열어 밖을 확인한 후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몇 번 끄덕이며…… 다시 문을 닫았다. 왜 닫아? 왕자는 짜증스레 입가를 비틀었다.
“시간 낭비 하지 말고 비켜 봐.”
방문을 이리저리 살펴본다고 뭐가 나오지? 그냥 문을 부숴서 나가는 것이 맞을 것 같은데?
미하일의 차가운 말투에 아드리안이 방문에서 시선을 떼어 왕자에게 돌렸다.
짜증이 났군.
아드리안은 미하일의 바라보며 뺨을 가볍게 검지로 긁으며 입을 열었다. 그는 자신이 지은 죄는 순순히 털어놓는 진실된 드래곤이었다.
“일단 원인부터 말해 주자면 나 때문이야.”
“뭐?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지금 우리 방문 앞에 케비쉬 묘목 서른 그루가 배송되어 있거든.”
미하일은 아드리안의 말에 훽, 고개를 돌려 등 뒤의 창가를 확인했다. 그가 특별히 뭔가를 키우는 데에 허락한 공간이었다. 그곳은 이미 아드리안이 즐겁게 온갖 잡초들을 키우는 선반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상상해 봐도 나무 서른 그루가 들어갈 공간은 없어 보였다.
“……저기에 나무를 키울 수 있어?”
“뭐? 아니.”
드래곤은 식물에 대해서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왕자를 위해 웃으며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온실에 가져가서 심을 거야. 잘 키운 케비쉬 묘목의 열매는 아주 고급으로 쳐 주…….”
“케비시인지 카비쉬인지는 관심 없고.”
미하일이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묘목의 열매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려고 하는 드래곤의 말을 끊었다. 저기에 심는 게 아니라면 그가 알 바 아니었다.
“그럼 그냥 나무라는 거지? 마법으로 치운다?”
대충 부양 마법을 써서 옆으로 치우면 방문이 열리겠군.
문이 고장 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한 왕자는 고개를 대강 끄덕였다. 그러고는 몸을 훽 틀어 방문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가는 미하일의 발걸음 소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아드리안은 그 발소리에 기겁을 하며 외쳤다.
“그냥 나무라니!”
무려 300틸론짜리인데! 아드리안은 그런 왕자의 팔을 간절한 모양새로 턱, 하고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 케비쉬 묘목을 잘 길러서 열매를 수확하면 적어도 5천이라고.
골드로 치면 얼마 되지도 않을 금액이었으나, 아카데미에 처박힌 드래곤은 1틸론 1틸론이 보석같이 소중한 것들이었다. 300틸론은 오르디나스 활동을 석 달은 해야 모을 수 있는 금액이었다.
그러나 그런 아드리안의 마음을 미하일은 전혀 알아주지 않았다.
“……손 안 치워?”
미하일의 차가운 눈동자가 자신의 팔을 잡고 있는 룸메이트의 손을 향했다. 몸에 멋대로 손대지 말라고 했던 것이 조금 전인데 아무래도 학습 능력이 조금 부족해 보였다. 그의 룸메이트는 허구한 날 방에 틀어박혀 아무 쓸모없는 잡초들 이름만 외우지 말고 다른 사람들의 말을 열심히 들을 필요가 있었다.
아드리안은 미하일의 팔을 붙잡고 있던 손을 단번에 떼어 내고는 아무것도 안 했다는 듯이 손바닥을 미하일 쪽으로 들어 보였다. 까다로운 놈. 드래곤은 마음속으로만 투덜거리며 입을 열었다.
“어떤, 어떤 마법으로 치울 건데?”
유희 중만 아니었었더라도…… 아니, 이건 너무 나갔고. 새벽에 먼저 일어나서 몰래 방문만 열어 봤어도 이런 소동은 없었을 텐데. 드래곤은 속으로 온통 욕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웃는 얼굴을 했다. 그러고는 미하일의 짜증 난 눈빛을 알아챘음에도, 최대한 애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하일…….”
미하일의 몸이 우뚝 멈췄다.
그간 들어 본 것 중 가장 낯간지러운 목소리였다. 물론 한스와의 거래에서 흥정을 할 때에도 저런 목소리긴 했지만 이것이 이번 것은 비교 불가였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 봐도 배송 사고였다. 지금껏 잡화점에서 서른 그루를 한 번에 구매한 고객이 없었을 거라지만 아드리안은 무척 왕자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이 상황이 무척 억울했다.
“지금 문 앞에 있는 건 케비쉬 나무야…… 케비쉬……. 진동에 아주 민감한 나무라고. 너도 들어 본 적 있잖아? 오르디나스 클럽의 카일 드바이시랑 같이 이야기했던.”
“……그래서 어쩌라는 거야.”
미하일은 아드리안의 간절한 목소리에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주 아주 조심히, 세심하게, 살짝만 공중에 띄워서 바로 옆에 안전하게 놔둬야 해.”
왕자는 그 말에 방문에 향해 있던 얼굴을 아드리안 쪽으로 돌려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어디 마법협회 소속 마법사인 줄 아나 본데.”
그는 코웃음을 치며 손가락 세 개를 들어서 아드리안의 얼굴 앞에서 하나씩 접으며 설명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조심히’, ‘세심하게’, ‘살짝’ 이 세 개 다 못해.”
“뭐?”
“……너도 그때 봤잖아? 그 이상한 정령을 잡을 때.”
“내가 언제? 이상한 정령이 뭐…… 아.”
왕자가 말한 정령은 타드폴리었다. 그러고 보니 타드폴리를 잡을 때 부양 마법 컨트롤 실력이 영 별로였다. 드래곤은 간절한 표정을 짓고 있던 낯을 순식간에 바꾸고는 허탈하게 투덜거렸다.
“소드 마스터가 되겠다는 놈이 겨우 그것도 못해? 마나 수련은 하나도 안 하나 봐.”
“야, 너는 아예 못하잖아!”
마나 수련은 바로 미하일의 가장 아픈 부분이었다. 왕자는 마나 컨트롤을 세심하게 해 보려 해도 매번 실패로 끝났는데, 마법사들에게 아무리 조언을 구해 봐도 모두 그 이유를 정확히는 설명하지 못한 채 말꼬리를 흐릴 뿐이었다.
아드리안은 크게 발끈하는 미하일의 얼굴을 잠시간 바라보더니 하- 하고 작게 한숨을 쉬며 머리칼을 거칠게 헝클었다. 그러고는 고민하던 뭔가를 결정한 건지, 한결 후련한 표정으로 왕자를 향해 손을 뻗으며 입을 열었다.
“알았어. 도와주면 되잖아.”
“뭐?”
아드리안의 말에 미하일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반문했다.
“내가 마나 컨트롤을 도와줄게.”
“……네가 어떻게 도와준다는 건데. 필요 없어.”
“아하, 이제야 그 소드 마스터에 대한 허무맹랑한 꿈을 버렸군? 잘했어. 내가 전에 말했잖아. 너무 높은 목표는…….”
드래곤은 진심으로 위로했으나, 미하일은 그 말에 빡친 표정으로 이를 악물었다.
“헛소리하지 말고 어떻게 도와줄 거냐고. 넌 마나를 다룰 수 없잖아.”
“다룰 수 없어도, 다루는 방법에 대해서는 알 수 있지.”
“……누구한테 배운 건데.”
평민들은 마법 자체를 접하기 힘든 환경이었다.
미하일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지우지 않았다. 마법학 개론 수업시간도 열심히 참여하지 않은 놈이 마법에 관심이 많았다는 거짓말을 당당하게 하지는 않겠지. 왕자는 어디 들어 보자는 식으로 팔짱을 낀 채 아드리안과 똑바로 마주했다.
“그게 중요해?”
인간들은 마법을 배웠다는 말만하면 언제나 저걸 질문했다. 아드리안은 어깨를 으쓱이며 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미하일은 드래곤의 대답에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중요하지. 마법에서는.”
“…….”
살아 있는 마법의 역사 그 자체인 골드 드래곤은 왕자의 진지한 얼굴을 마주 보면서 흐음, 하고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였다.
“마나 컨트롤에 관한 조언은 주로 누구에게 들었지?”
“……주로 궁정 마법사들이나 소드 마스터 수련을 해 주는 기사들이었지.”
“그래, 이런 경우에 대한 전문가들은 아니군.”
“뭐? 궁정 마법사가 전문가가 아니면 누가 전문가인데?”
왕자는 진지한 얼굴을 단번에 지우고는 어이없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나 그 반응에도 아드리안은 아무렇지 않게 미하일과 마주 본 자세로 나른한 미소를 지으며 턱, 하고 벽에 편하게 기댔다. 잠시간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아드리안이 입술을 열었다.
“그들이 무슨 이유인지 말해 줬어?”
“…….”
미하일의 붉은 눈이 순간 번뜩 빛을 발했다. 이유? 그냥 마나 컨트롤 수련이 부족해서가 아니었어? 그는 아드리안의 두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상태로 입술을 열었다. 왕자의 나직한 목소리가 두 청년의 사이를 가득 채웠다.
“왜 그런 건데?”
“검증해 보기 전까지는 말 안 해. 확인해 본 뒤 말해 주지.”
아드리안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
아드리안은 왕자가 고민하는 시간을 주려는 듯 아무 말도 않고 미하일을 바라보고 있었다.
왕자의 고민은 짧았다. 그는 굳게 다문 입술을 살짝 열고는 방어적으로 끼고 있던 팔짱을 가볍게 풀었다.
“해 봐. 확인이라는 거.”
우선 해 보고, 놈이 별것도 없이 아는 척만 했던 거라면 한 방 먹일 준비를 마쳤다. 물론 그의 가설이 맞는 것이 이쪽도 바라던 바였다. 마주 보면서 벽에 기대어 있던 아드리안이 씨익 미소 지으며 미하일을 향해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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