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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가용-75화 (75/184)

75화

20틸론으로 시작된 경매가 198.5틸론에 마감된 것이었다. 곧 있으면 오르디나스 클럽 회원들에게 나눠 주는 100틸론도 입금된다. 마침 내일은 강의가 없는 수요일이었다.

햇살이 따뜻하게 내리쬐어 고급스러운 유리창을 통과해 대리석 바닥에 창문 모양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흰색의 대리석 바닥을 규칙적으로 두드리는 구둣발 소리가 복도를 채웠다.

골드 드래곤이 머릿속으로 가지고 있는 틸론을 계산하며 아카데미 본관을 걷고 있을 때였다. 복도 끝에서 누군가 그를 불러 세웠다.

“헤더, 잠깐 시간 괜찮나요?”

정령학 수업의 교수인 올리비아 리네이였다.

“안녕하세요. 괜찮습니다만 무슨?”

아드리안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올리비아는 웃으며 바로 옆의 창가를 손가락을 톡톡 두드렸다. 오라는 뜻인가? 아드리안은 교수가 서 있는 창가에 성큼성큼 걸어갔다.

“아드리안, 방학에도 아카데미에 있나요?”

“네. 그럴 것 같습니다.”

“아, 우리 오르디나스 클럽원이라고는 전해 들었어요.”

교수가 인자하게 웃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거지? 아드리안은 겉으로만 웃으면서 올리비아가 더 이야기하기를 기다렸다. 흠, 올리비아는 의뭉스러운 표정으로 눈앞의 신입생을 잠시간 바라보다 입술을 열었다.

“오르디나스는 정령 학부와 연금술 학부, 두 개의 학부의 통합 사교 클럽인 것을 알고 있죠?”

굳이 ‘우리 오르디나스’ 라고 말하는 이유가 있었군. 아드리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교수의 질문에 대답했다.

“……네.”

“아, 저 말을 하려던 게 아니라…… 우선 자랑하고 싶으니 이거 보세요. 이거-”

그러자 올리비아는 인자하게 웃으며 검지와 엄지를 이용해 뭔가를 둘 사이에 척, 꺼내 들었다. 그녀의 손가락 사이에 자리 잡은 것은 바사미엘 아카데미 교복 소매의 단추였다.

“이거 제가 입찰받았답니다.”

“아…… 네…….”

교수님이 바로 198.5틸론에 저 단추를 구매하신 큰손이시군요. 아드리안은 ‘그래서 나한테 뭐 어쩌란 거지’라는 표정으로 떨떠름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축하드립니다……?”

“얼마나 치열한 경매였는지 아시나요? 에드윈 교수와의 가격 경쟁에서 하마터면 제가 질 뻔했답니다.”

교수는 그러고는 ‘……완전 배은망덕한 놈이 아닐 수 없지.’라고 중얼거렸다. 아주 작은 목소리였으나 안타깝게도 드래곤의 아주 뛰어난 청력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아드리안은 능숙한 솜씨로 교수의 욕을 모른척했다.

그때였다.

“그래서 에드윈에게 전해 들었는데-”

웃고 있던 올리비아의 표정이 천천히 평상시의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이제 본론을 말할 것이 틀림없었다.

“어디서 이 마나를 묻혀 왔는지 말할 수 없다고 했다면서요? 정말인가요?”

그녀는 눈을 가늘게 접어 웃으며 눈앞의 학생을 바라보며 질문했다. 본래의 인간 아드리안 헤더가 마주했다면 지레 겁먹으며 바로 도헤니어산에 대해 이야기했을 것이나, 드래곤에게는 어림도 없었다.

“네.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바사미엘 잡화점>에서는 판매자의 이름을 모두 공개하는군요?”

굳이 판매자의 이름을 알려 줄 필요는 없지 않나? 아드리안은 귀찮은 일에 얽힐 것 같은 분위기에 불만스레 눈썹을 들어 올렸다.

“당연하죠. 아카데미의 경매가 무슨 암흑의 루트도 아니고 비밀로 할 리가 없잖아요?”

흐음, 올리비아는 아드리안의 불만을 귀엽다는 듯이 반응해 주고는 잠시간 고민하듯이 턱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이 단추에서 느껴지는 이 마나에 대해…… 지금 연구하고 있는 학생이 있어요. 이 학기에는 그 연구의 조수로 일해 보는 건 어때요?”

“제안은 감사하지만-”

아드리안이 대충 거절하려고 입을 열었다. 그러나 올리비아는 그의 거절보다 더 빠르게 말을 이었다.

“연구 조수에도 보상이 있으니 들어 보고 결정하는 게 어때요. 한 학기는 세 달이니, 모두 다 해서 1,000틸론.”

골드 드래곤은 곤란했다. 어차피 매달 오르디나스에서 회원비를 주고 있으니…… 원래라면 신경 쓰지도 않을 제안이었다.

그러나…… 그의 눈앞에 아카데미 본관 유리 장식장 안에서 위풍당당하게 놓여 있는 검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아니,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한다고? 아드리안은 질끈 눈을 감았다.

심지어 1,000틸론이라면 열 달치 월급이었다. 교수가 하는 제안이라 그런지 아카데미 시세보다는 훨씬 보수가 좋았다.

금액을 듣고 눈앞의 학생이 고민하는 표정을 짓자, 교수는 씨익 웃으며 턱! 하고 한 팔을 그의 어깨 위에 털털하게 내려놓았다.

“그리고! 학기가 시작되는 날 절반을 선입금해 드리죠!”

그리고 비장의 카드를 당당하게 내밀었다. 밖을 바라보며 고민하던 아드리안의 눈이 번뜩 뜨였다. 그는 천천히 아카데미 복도로 고개를 돌렸다.

유리창 밖에는 햇빛이 따스하게 들어와 마치 올리비아의 뒤에 후광이 번지는 것처럼 밝게 빛났다. 아드리안이 올리비아를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잘 생각했어요. 지금은 시험 기간이니 다음 주 정도에 다시 이야기해 봐요.”

올리비아는 용건이 끝났던지 “그럼-”이라고 말하며 그들이 서 있던 창가에서 방향을 틀어 바로 옆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창가에 남은 아드리안은 작게 한숨을 쉬며 자신의 머리칼을 대강 헝클었다.

***

기숙사 방문을 열자 침대에 앉아 마나 훈련을 하고 있는 미하일이 보였다.

“…….”

마나 훈련이란 눈을 감고 주변에 떠다니는 마나를 인식하고 의도적으로 그 흐름을 조절하는 방식이었는데, 소드 마스터가 되려면 그 능력이 탁월해야 했다. 아드리안은 속으로 그를 비웃었다.

한 발짝 앞도 모르고 멸망 전날에 나무 한 그루를 심으려고 하는 꼴이었다.

지금 왕자에게 중요한 것은 십 년 뒤에나 필요할 소드 마스터 훈련법이 아닌, 1만 틸론이었다.

“미하일.”

아드리안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울렸다. 작은 목소리였지만 미하일의 마나 훈련을 방해하는 데에는 충분했다. 꿈틀, 감고 있는 왕자의 눈가가 움직였다.

일반적으로 집중이 생명인 마나 훈련을 하는 중인 사람을 건드리거나 주변에서 떠드는 것은 금기시했다. 하지만 아드리안은 어차피 아무것도 모르는 평민 인간이었으므로 그런 일반 상식 따위는 모른 척 다시 입을 열었다.

“뭐 해? 왜 대답도 안 해.”

아드리안은 실실 웃으며 미하일의 침대 앞으로 걸어갔다.

펠렌 디프스의 검 때문에 골치 아프게 만드는 왕자에게 드래곤 나름의 복수를 하는 중이었다.

미하일은 눈을 감고 있어 아드리안의 표정을 볼 수 없었기에 망정이지, 드래곤의 삐죽 올라간 입꼬리를 직접 봤다면 진검을 빼 들었을 것이다.

미하일은 이미 다 잃은 집중력을 다시 끌어 올리려 노력하려 눈을 질끈 감았다가 하- 하고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왕자는 그러고는 짜증스레 눈을 치켜떴다.

피처럼 붉은 눈동자가 또렷하게 불청객을 쫓았다.

“……훈련 중에는 건들지 않는다는 예의도 몰라?”

기숙사 방 안의 아드리안은 순진무구한 얼굴로 고개를 기울였다.

“그래? 몰랐어. 미안.”

그러고는 “다시 해. 다시.”라고 말하면서 대충 손을 휘적거려 주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왕자의 훈련을 방해하는 데에는 성공했으므로 볼일은 그게 다였다.

미하일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 모습을 보다가, 앉아 있던 몸을 천천히 기울여 털썩하고 침대에 누웠다.

저놈이 방에 온 순간부터 마나 훈련은 어차피 끝난 것이었다. 집중하느라 참고 있던 숨을 의식하며 크게 뱉었다가 들이마셨다. 그 움직임에 따라 왕자의 몸통이 부풀었다가 잦아들었다.

“그런데 넌 시험공부는 안 해?”

낙제는 아카데미의 자유로운 방침과는 별개로 아무튼 귀족과 왕족에게는 불명예스러운 일이기는 했다. 그러나 미하일은 그런 것 치고는 지나치게 공부에 관심이 없었다.

“난 안 해도 돼.”

“……뭐? 그런 게 어딨어.”

“시험은 대충 칠 거야.”

“모범을 보여야 하는 왕족이 그래도 돼?”

아드리안은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침대에 편하게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미하일을 향해 말했다.

“오히려 낙제하길 바라고 있을걸? 내가 평생 왕성에서 놀고먹는 것을 반길 분들이시지.”

“…….”

거짓말이나 과장하려는 말투는 아니었다. 미하일은 담담하게 이야기하고는 아무 말도 않는 아드리안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에 붉은 눈동자도 함께 아드리안의 반응을 관찰하려는 듯이 작게 움직였다.

“……그래도 아카데미에서 퇴학당하는 걸 바라시진 않을 거 아니야.”

드래곤은 은근슬쩍 하고 싶은 이야기를 끼워 넣었다. 왕자는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하냐는 듯이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지나치게 자신만만한 모습이었다. 입학식 때 직접 들어 보았던 꿰뚫어 보는 눈의 무게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인 듯했다.

“학비로 왕가에서 내는 기부금이 얼마인데 날 퇴학시킨다고? 바사미엘이 미친 게 아니고서야 그럴 리 없잖아.”

아드리안은 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미하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왕자에게 하고 싶은 말은 넘쳐났으나, 할 수 없는 말들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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