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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가용-72화 (72/184)

72화

드래곤은 밤새 침대에서 뒤척이며 고민했으나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도 다음 날의 해는 뜨고 있었다. 카메론 해리스의 파티가 있는 일요일이었다. 차가운 새벽의 공기와 함께 푸르스름한 하늘에 아침에 일찍 일어난 새들의 지저귐이 들렸다.

그때였다. 똑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아드리안은 잠도 안 오는 김에 그 소리를 듣고 몸을 단번에 일으켰다. 오늘은 신문보다 더 기다리고 있는 게 있었다.

방문을 열어 보니, 어깨 정도까지 닿는 이동식 행거가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다. 행거에는 한눈에 봐도 고급 원단으로 만들어진 정장 한 벌이 잘 접혀 걸려 있었다. 진줏빛 카드가 상아 옷걸이에 집게로 꽂혀 있었다.

부디 마음에 드시기를.

옷을 만든 테일러의 이름과 함께 상표가 쓰여 있었다. 시착해 본 후, 문제가 있으면 알려 달라는 뜻이었다. 아드리안은 어깨를 으쓱이며 카드를 대충 손에 들었다. 어차피 드래곤은 그렇게 까탈스럽게 굴 생각은 전혀 없었다.

멋들어진 서체로 써져 있는 글을 읽은 후, 아드리안은 행거를 방 안으로 끌고 들어왔다.

드르르륵- 행거를 거울 앞에 놓고, 옷걸이에 걸린 정장을 꺼내 펼쳐 보았다. 어제 골랐던 부자재들이 모두 의논했던 대로 정확히 달려 있었고, 모든 부분이 세심한 바느질로 마감되어있었다.

요즘 세상 진짜 좋아졌다.

드래곤은 노친네 같은 생각을 하며, 입은 옷을 벗고 하나씩 걸쳤다. 흰 셔츠를 먼저 입고, 검은 바지를 입은 후 준비된 베스트 위에 재킷을 걸치는 방식이었다.

괜찮군. 아드리안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새 정장을 입고 거울 앞에서 소매 커프스를 잠갔다. 이름을 간판에 거는 자부심 있는 테일러답게 솜씨가 제법 괜찮았다.

그때였다.

드래곤이 기숙사 방에서 옷을 입어 보는 소리에 미하일이 침대에서 뒤척이며 천천히 눈을 떴다.

“…….”

미하일의 눈이 교복이 아닌 정장으로 갈아입은 아드리안을 향했다. 거울에 자신을 비춰 보던 아드리안이 미하일의 시선을 느끼고는 옷깃을 정리하며 입을 열었다.

“어때?”

“……돌아봐.”

사 준 사람에게 예의상 어떤지는 물어본 것뿐인데, 미하일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갯짓을 했다. 돌아보라고? 아드리안은 이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미하일이 옷의 전체를 볼 수 있도록 거울 앞에서 대강 한 바퀴를 천천히 돌아 주었다. 미하일은 침대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켜 편하게 앉아 그 모습을 훑어보았다.

“……흠.”

그러나 심사역을 맡은 왕자가 내보인 것은 미적지근한 반응이 다였다.

“뭐야. 별로라는 거야, 잘 어울린다는 거야?”

아무 말도 없는 미하일의 답을 기다리던 아드리안이 바짓단을 정리하며 “내가 보기에는 괜찮은데-”라고 중얼거렸다.

“테일러 샵에 다시 보낼까?”

아드리안이 어깨를 으쓱였다. 어차피 저쪽이 돈을 냈으니 판단도 왕자가 하는 게 맞았다.

미하일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

“……그럴 필요는 없지.”

“잘 어울린다는 거군?”

미하일의 입에서 긍정의 반응을 억지로라도 들은 드래곤이 씨익 웃었다. 솔직히 이 외모에 체격이면 어떤 거적때기를 입혀 놔도 다 어울릴 것이었다.

옷을 입어 봤으니 됐겠지. 아드리안은 재킷을 젖혀 휙, 벗어 우선 행거에 널어 두었다. 파티는 저녁이었으므로 아직 한참이나 남았다. 그래서 다시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 때였다.

“욕실 앞의 드레스 룸은 장식이야?”

그런 아드리안을 향해 룸메이트의 짜증 한마디가 날아왔다. 미하일은 자다 일어난 머리칼을 흩트리며 몸을 완전히 일으켰다.

“……옷도 편하게 못 갈아입냐?”

“그러니까…… 편하게 갈아입으라고 드레스 룸이 있잖아. 멍청아.”

그쪽은 막 벗고 많이 돌아다녔잖아.

“…….”

아드리안은 어이없다는 듯이 한번 웃고는 탁탁 옷을 낚아채어 드레스 룸으로 들어갔다. 아침부터 말싸움으로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저녁에 파티를 가기 전에 온실에 어제 심어 둔 약초 몇 그루를 확인해야 했다.

***

온실에 다녀온 아드리안은 기숙사로 돌아와 아침에 걸쳐 봤던 옷으로 다시 갈아입었다. 미하일은 이미 준비를 마친 채 재킷만 벗어 두고 테이블에 앉아 어제 산 검을 손질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아카데미 본관 쪽 시계탑에서 오후 여섯 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렸다. 재킷의 단추를 잠그던 아드리안이 고개를 들어 올려 여전히 검을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는 미하일에게 말했다.

“이제 갈까?”

“아니.”

그러자 미하일이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이 와그작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일곱 시까지 갈 거니까 네 볼일 보고 있어.”

“……분명히 파티 초대장에는 여섯 시부터라고 적혀 있던데.”

기억이 잘못되었을 리도 없었다. 드래곤의 기억은 정확했다.

“내가 전에 말했지? 초대장에 적혀 있는 시간은 지키지 않는 게 왕족의 배려야. 그 전까지 편하게 놀고 있으라는 미덕이지.”

“아하.”

말 되는군. 아드리안은 왕자의 그럴듯한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자신의 의자에 앉았다.

아드리안은 의자 등받이에 두 팔을 올린 채 반대편 테이블에 앉은 미하일이 검을 손질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의 손에 들린 검을 보니 어제 알아낸 엄청난 사실이 다시 생각났다.

아드리안의 집요한 시선에 스윽- 슥 움직이던 미하일의 팔이 우뚝 멈췄다. 그는 시선은 검에 고정한 채 중얼거렸다.

“할 일 없어?”

“응.”

드래곤은 당당하게 대답했다. 온실을 다녀왔으니 오늘 더 해야 할 일은 없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그는 편하게 의자 등받이에 몸 전체를 기댄 채 고개를 기울였다.

“만약에 펠렌 디프스의 검이랑 그 검이 둘 다 있으면 뭘 사용할 거야?”

“……뭐?”

이상한 질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드리안은 간절했다. 드래곤이 내년에도 이 아카데미를 다니려면 왕자가 다시 펠렌 디프스의 검에 관심을 갖도록 만들어야 했다.

당연히- 미하일이 뭘 그런 걸 묻냐는 표정으로 비웃었다.

“용사의 검이지. 펠렌 디프스가 누군지 모르는 것도 아니고…….”

아드리안은 등받이에 올린 팔에 얼굴을 기댄 채 뚱한 표정을 지었다. 드래곤은 당연히 펠렌 디프스가 누군지 몰랐다. 그냥 검을 만든 장인의 이름인 줄 알았는데…… 용사였군? 그는 인간들이 정한 용사 같은 거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당연했다.

“……당연히 그렇지?”

어쨌든 왕자의 펠렌 디프스의 검에 대한 미련은 쉽게 없어질 것 같지는 않았다. 아드리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충 대답했다. 당연히 저 검보단 펠렌 디프스의 검을 쓰겠다니 우선은 다행이었다.

미하일은 검을 들어 올려 평행으로 세우고 날이 휘지 않았는지, 칼날 중 마모된 부분이 있는지 꼼꼼히 살폈다.

아드리안은 잠시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 열심히 검을 손질하는 미하일을 바라보았다. 엄청 열심히 하네. 내가 매일 아침마다 약초에게 물을 주는 모습이 이렇게 보이려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긴 했다.

힐끔, 아드리안은 자신의 침대를 곁눈질로 확인했다. 침대 아래의 틈을 가리고 있는 이불보를 치우면 얌전히 놓여 있는 두 개의 꿰뚫어 보는 눈을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냥 저놈한테 다 말해 봐?’

음…… 드래곤은 두 눈을 가늘게 좁혀 그렇게 했을 때 미하일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지에 대해 상상해 보았다.

첫 번째로 상상한 것은 미하일의 싸늘한 얼굴이었다.

- 분명히 입학식 때는 가벼웠는데? 왜 이렇게 무거워진 거지?

그러게, 그건 나도 몰라. 꿰뚫어 보는 눈은 갑자기 무거워져 있었으니까. 드래곤도 그런 질문에는 대답해 줄 수 없었다. 아드리안이 다음으로 상상한 반응은 의심이었다.

- ……네가 왜 저 돌을 가지고 있어?

대답을 하려면 분수대의 마법을 따라가 되찾아 왔다는 말을 해야 했다.

아드리안의 마법을 전혀 사용할 수 없는 평민 설정이 단번에 날아가기 때문에 이 반응은 최악이었다.

마지막으로 상상한 것은 드래곤의 말을 전혀 믿지 않고 빈정거리는 왕자였다.

- 꿈에서 내가 펠렌 디프스의 검을 가지고 있었다고? 네가 예언가라도 되나 보지?

골드 드래곤 스스로도 그 꿈의 진위 여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었다. 흠, 전부 최악의 결말이었다.

아드리안은 한숨을 크게 내쉬며 의자를 빙글- 돌렸다.

어차피 이 상황에서 고작 검 휘두르는 걸 잘하는 미하일이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어떻게든 해 봐야지. 골드 드래곤은 다시 어제 새벽부터 이어진 1만 틸론을 도대체 어떻게 벌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가자.”

손질하던 검을 내려놓고 왕자가 준비해 둔 외투를 걸쳤다. 드디어 파티에 갈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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