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괜찮은 의뢰야…… 각자 25틸론이나 벌 수 있잖아.”
아드리안이 심통 난 표정으로 옆에서 걷고 있는 미하일을 한번 바라보고는 꺼낸 이야기였다.
“그걸로 네가 좋아하는 A 코스를 다섯 번이나 사 먹을 수 있어.”
“……겨우 다섯 번이잖아.”
왕자는 왕성에서의 풍족한 생활을 떠올리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많은 아카데미 중 하필 바사미엘에 입학한 것은 왕실의 술수임이 틀림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는 건데.”
“우선 기숙사 방으로 돌아가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어야 해.”
“그리고?”
“그리고 나서 호수로 가야 하지.”
설마, 왕자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설마 호수에 들어가야 해?”
“자, 어두워지기 전에 끝내자고.”
드래곤은 하암- 하고 작게 하품을 하면서 왕자를 대충 달랬다.
용병단을 운영했던 유희 때에는 인간들의 쓰레기 같은 의뢰들을 어쩔 수 없이 해결했어야 했다. 신생 용병단을 운영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오히려 누군가를 죽여 달라는 깔끔한 의뢰가 감사했을 지경이었다.
드래곤은 안 그래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인간들을 마음 놓고 싫어할 수 있었다.
옆에서 싫어 죽겠다는 얼굴로 걷고 있는 미하일 정도는 귀여운 수준이지.
***
아드리안과 미하일은 이제는 지겹기까지 한 아카데미의 호숫가에 다시 도착했다.
“그럼 이제 네가 해 줘야 할 일이 있어.”
“뭔데.”
미하일은 힘없이 평화로운 호수 표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작 25틸론을 위해서 여기까지 걸어왔다니. 쓸모없는 틸론 제도 때문에 요즘은 제대로 된 검술 훈련을 하기가 힘들었다.
“의뢰자가 원한 건 타드폴리 다섯 마리야. 타드폴리는 마나를 먹이로 삼으니 쉽게 부를 수 있을 거야.”
아드리안은 기숙사에서 가져온 푸른색 양동이를 우선 호숫물로 가득 채웠다. 타드폴리는 아주 유순하고 환경에 적응을 잘하는 특이한 정령이었다. 이 조그만 양동이에 임시로 옮겨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것이었다.
“난 뭘 해야 하는데?”
미하일은 적극적이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의뢰를 맡은 김에 해야 할 일은 할 생각이었다. 타드폴리라는 것을 잡으려면 아드리안의 계획에 어울려 줘야 했다.
“마나 반응이 필요해. 네가 호수 안에다 손을 집어넣어서 아무 마법이나 시전해 줘.”
“……그래.”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아드리안의 부탁에, 미하일은 오른팔의 소매를 몇 번 접어 걷어 호숫물 안으로 천천히 눌러 내렸다. 그러고는 적당한 온도의 물 안에서 몇 번 주먹을 쥐고는 눈을 감고 마법 주문을 중얼거렸다.
그러자 호수 물결이 왕자의 손을 중심으로 천천히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잔물결이 만들어지면서 호수에 넣은 왕자의 팔에 호숫물이 찰박찰박 부딪혔다.
“좋았어. 잠시만 기다려 보자.”
아드리안은 물속을 유심히 바라보고는 왕자에게 신호를 줬다. 미하일은 그 신호에 고개를 끄덕이며 물속에서 손을 꺼냈다. 뚝뚝 왕자의 손에서 호숫물이 떨어졌다. 미하일은 젖은 오른손을 공중에서 휘적였다.
왕자가 일으킨 마나 반응에 꼬리를 흔들며 헤엄쳐 올 것이었다. 그가 손을 빼낸 후, 호수 표면에 세게 일었던 잔물결이 잦아들 때였다.
“……왔다.”
아드리안이 상체를 깊게 숙여 호수 안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뭐? 어디.”
바로 옆에 서 있는 미하일이 그 이야기에 호수로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아드리안이 씁, 이라고 작게 소리 내며 입술 앞에 검지를 가져다 댔다. “조용히 해야 해.” 그는 미하일에게 아주 작게 설명해 주었다.
타드폴리가 왔어.
미하일은 아드리안의 말에 정말? 이라는 표정으로 얕은 물을 확인했다. 투명한 물속에 올챙이 같은 조그만 물고기들이 평화롭게 헤엄치고 있었다. 저게 타드폴리야? 미하일은 옆의 전문가에게 작게 중얼거렸다.
그건 잡아서 확인해 봐야지.
아드리안은 천천히 신발을 벗어 잔디에 가지런히 벗어 두고는 교복 바짓단을 몇 번 접었다. 저것들을 조심히 퍼 올려서 양동이에 담아야 했다. 그는 물소리가 최대한 나지 않게 맑은 물에 발을 담그고 어느 순간 손을 호수에 집어넣고 퍼 올렸다.
그의 흰 손바닥 안에서 올챙이 한 마리가 뻐끔거리며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아드리안은 손에 얌전히 잡혀 있는 올챙이를 움직여 배 부분을 확인했다. 푸른 반점이 있었다. 다행히 타드폴리가 맞았다.
찰박, 맑은 물소리가 양동이를 울렸다. 타드폴리 한 마리가 투명한 물 안을 꾸물꾸물 헤엄쳐 다녔다.
미하일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도 타드폴리를 잡으려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조금 전 소란에 얕은 물에 모였던 타드폴리는 전부 도망친 이후였다.
“남은 네 마리는 한 번에 잡을래.”
미하일이 자신 있게 선언했다. 마법으로 물을 크게 퍼 올리면 방금 한 짓을 네 번이나 하지 않고 한 번에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아드리안은 순순히 호숫가에서 나와 왕자가 원하는 대로 혼자 잡을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 주었다.
왕자는 호숫가에서 선 채 방금 했던 것처럼 손목까지 물에 넣고는 마법 주문을 외었다. 표면에 잔물결이 일면서 타드폴리 몇 마리가 꼬물거리며 왕자에게 헤엄쳐 왔다.
그는 타이밍을 살펴보다가 두 손을 공중에 천천히 들어 올리며 마법을 사용했다. 부양 마법이었다. 왕자의 밝은 은발이 마나 움직임에 살랑거렸다. 미하일은 아름다운 손가락을 움직여 바로 옆에 놓여 있는 양동이 위로 커다란 물 덩어리를 옮겼다.
뭔가 예감이 안 좋은걸?
그 양동이 근처에 서 있었던 골드 드래곤은 뒷걸음질로 미하일과 그 큰 물 덩어리에서 천천히 멀어졌다.
그때였다.
물 덩어리에서 타드폴리 한 마리가 세게 헤엄쳐 휙, 하고 날다가 퐁당 하고 다시 호숫물로 들어갔다. 마법에 집중하고 있던 미하일은 그 갑작스런 움직임에 윽, 하고 집중력을 잃었다.
드래곤의 예감은 바로 적중했다.
촤아아악-!
마법으로 들어 올린 물 덩어리 바로 밑에 있었던 미하일의 머리 위로 엄청난 양의 물이 쏟아졌다. 양동이에 들어간 물의 양도 상당했으나 다행히 쓰러지지는 않았다.
이래서 부양 마법 중에는 절대 집중력을 잃으면 안 된다고 하지. 아드리안은 젖은 미하일은 보지도 않은 채, 다시 걸어가 양동이 안을 살폈다.
“마법을 쓸 수 있으니까 바로 말리면 되잖아.”
그 소란에도 다행히 타드폴리는 잡혔다. 다섯 마리보다는 더 많아 보였다.
아드리안의 비웃음에 미하일의 붉은 눈동자에 이채가 돌았다. 왕자는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손을 휙, 움직였다. 마법이었다.
잠깐만, 윽! 아드리안이 인상을 찡그리며 팔로 얼굴을 가렸다. 커다란 물소리가 났다. 무슨 저딴 성격이- 골드 드래곤은 속으로 욕을 하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은 채 고개를 들었다.
“……너 진짜 짜증 난다.”
아드리안은 이를 악물고 애써 웃으면서 젖은 머리를 넘겼다. 그 꼴에 풋, 미하일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왜, 너도 마법으로 말려 줄게.”
하하하, 왕자는 자신도 잔뜩 젖은 상태로 얕은 물에 앉아 아드리안을 마주 보며 웃었다. 호수에서 둘 다 이렇게 젖은 꼴이라니. 도헤니어 화산처럼 둘이 있을 때면 이런 상황이 자주 펼쳐졌다.
“……유치한 놈.”
골드 드래곤은 투덜거리며 젖어서 무거워진 몸을 일으키고는 양동이를 챙겨 걸었다.
***
“……정말로 구해 오셨군요?”
아드리안과 미하일의 연락을 받고 나온 학생이 바닥에 놓인 파란 양동이를 보고는 놀란 목소리로 반응했다.
“확인해 봐도?”
그는 양동이 안의 맑은 물 안에서 편하게 헤엄치고 있는 것들을 관찰하듯이 바라보더니 무릎을 굽혀 아드리안에게 질문했다.
“당연하죠.”
거래의 결과물을 확인하는 것은 의뢰자의 당연한 권리였다. 드래곤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 허락에 학생은 양동이 안에서 타드폴리 몇 마리를 건져 내어 눈앞에 가져다 대었다. 모두 배 부분에 파란 반점이 선명하게 나 있었다.
“모두 확인했습니다.”
그는 모든 타드폴리의 반점을 확인한 후 고개를 끄덕이며 아드리안과 미하일에게 거래 완료를 알렸다.
“아, 틸론은 바로 드릴게요.”
그는 틸론의 계약진을 펼쳐 의뢰금을 전달했다. 그러고는 “그럼.”이라고 작별 인사하며 양동이를 소중히 들어 올려 정원을 걸어 나갔다.
그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뒷모습을 바라보던 미하일은 숨결을 손등에 살짝 불어넣었다.
금빛 마나가 일렁거리며 틸론의 문장과 숫자를 표시했다.
25틸론이었다.
미하일은 자신의 손을 얼굴 앞으로 뻗어 손등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틸론의 문양인 마름모가 미하일의 시선에 반응하듯이 살짝 빛났다가 사라졌다.
왕자가 처음 직접 벌어 본 돈이었다. 미하일은 잠시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힘들게 벌어 낸 틸론을 바라보았다.
“뿌듯해?”
아드리안의 부드러운 갈색빛 눈동자가 미하일을 바라보았다. 왕자의 붉은 눈동자가 반짝거리며 빛나고 있었다.
……이럴 때에는 제 나이대로 보인단 말이지.
아드리안은 갓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온 새끼 새를 바라보는 듯한 눈빛을 빠르게 정리했다. 미하일은 그 눈빛을 받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
왕자는 이런 부분에서 은근히 눈치가 빨랐다.
“그 짜증 나는 표정은 뭐야.”
“이게 내 원래 표정인데.”
아드리안은 어깨를 으쓱이며 “이제 밥이나 먹으러 가자.”라고 말했다. 미하일은 그제야 바사미엘 호수를 뒤지느라 놓친 저녁이 생각났다. 동시에 잊고 있었던 공복감이 치고 올라왔다.
“젠장, 생각해 보니 이걸론 식사 몇 번이면 다 쓰겠군.”
후에 왕자는 그 사실을 알아채곤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25틸론은 솔직히 너무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