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주말이라 많은 학생들이 외출을 나간 탓이었는지, 아카데미의 식당은 평소보다 한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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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코스 ✧ 텐더로인 스테이크와 시금치 크림 (+추가금 5틸론)
B 코스 ✧ 랍스타와 버터 관자 (+추가금 3틸론)
C 코스 ✧ 오일 파스타 (+추가금 1틸론)
오늘의 메뉴 ✧ 햄&치즈 샌드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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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리안은 미하일보다 먼저 식당에 들어선 후 메뉴판을 확인하고 있었다. 식당 입구에서 만난 사람은 왕자의 지인처럼 보였는데, 느낌상 인사만 하고 들어올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를 기다려야 할지, 먼저 주문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A 코스.”
의사 전달에만 충실한 말투였다. 어쩐지 익숙해진 그 말투에 아드리안은 메뉴판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입을 열었다.
“……뭐야, 왜 이렇게 빨리 왔어? 오래 이야기할 것처럼 보였는데.”
“빨리 주문이나 해.”
“…….”
아드리안은 얻어먹는 주제에 당당한 왕자를 잠시간 바라보다, 식당의 점원에게 주문서를 내밀었다. 오늘은 왠지 모르게 버터가 당겨서 아드리안이 A 코스와 B 코스를 주문할 때까지 미하일은 팔짱을 낀 채 옆에 서 있었다.
“그렇게 급하시면 자리나 잡고 있는 게 어때.”
아드리안은 그런 미하일에게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으나, 왕자는 들은 척도 않았다. 어차피 식사를 할 공간은 충분했다.
두 사람은 적당한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드리안은 테이블에 팔꿈치를 댄 채 미하일을 빤히 바라보았다. 답지 않게 고민에 빠진 듯한 표정이라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심통 나 있어. 방금 그 사람이 뭐라고 했길래?”
이거였군. 미하일이 특유의 오만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궁금해?”
“……아니, 딱히.”
아드리안은 왕자의 사생활에 깊이 관련되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관심 없다는 것을 온몸으로 피력하려 직원이 식전에 가져다주는 물컵을 입가에 가져가는 것으로 말을 아꼈다.
그러나 왕자는 그런 아드리안의 노력을 알아주지 않았다.
“‘친구를 사귀실 때에는 좀 더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겠다-’라고 하던데.”
맞은편에 앉아 있는 왕자의 붉은 눈동자가 눈에 띄었다. 탐색하는 눈빛이었다. 아드리안은 왕자의 눈동자를 정면으로 마주 볼 때마다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으므로 순간 마음속으로만 식은땀을 흘렸다. 그렇지 않아도 아드리안은 침대 밑에 바사미엘을 일 년 이상 다닐 수 없다는 퇴학 사유를 숨기고 있는 터였다.
“넌 어떻게 생각해?”
왕자의 시선이 아드리안의 반응을 확인하려는 듯 따갑게 느껴졌다. 아드리안은 마지못해 입가에 가져다 댔던 물컵을 탁, 하고 가볍게 내려놓으며 입술을 열었다.
“……그래? 좋은 충고라고 생각하는데.”
“주제넘은 참견이지.”
미하일이 차갑게 일갈했다.
“그리고 난 바사미엘에 고작 친구를 사귀러 온 것이 아니야.”
흠, 아드리안은 왕자의 말에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팔꿈치를 괴었다.
“나랑 생각이 다르네. 친구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주의라.”
“거짓말.”
단호한 왕자의 말투에 아드리안의 눈동자가 일순 번뜩 움직였다.
“거짓말이라니.”
아드리안이 겉으로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너도 친구 사귈 마음은 전혀 없잖아.”
“……그렇게 말한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은데?”
“왕족과 같은 방을 쓰면서 태도를 굽힐 줄 모르고, 다른 애들이랑 외출도 안 나가고 아카데미 온실에만 처박혀 있는 걸 보면 말 안 해도 알 수 있지.”
“…….”
아드리안은 떨떠름한 얼굴로 반박 한마디 하지 못했다. 저 어린놈에게 들킬 정도로 허술하게 굴었던 자신을 돌아보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둘이 앉은 테이블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드르륵, 식당의 서버가 도착했다. 그가 끌고 온 트레이에서 스테이크 접시를 들어 올리자, 아드리안은 웃으며 맞은편을 가리켰다. 그에 서버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스테이크와 관자를 각자의 앞에 능숙하게 내려놓았다.
아드리안과 미하일이 식기를 집어 드는 순간이었다.
“안녕하세요, 바사미엘 아카데미 학생 여러분. 벌써 즐거웠던 주말이 끝나 가네요.”
식당과 이어진 복도의 천장에서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한 방송 멘트가 들려왔다. 피냐타였다.
“카메론 해리스가 신청한 메시지를 바로 지금, 일요일 점심에 특별히 아직 아카데미에 남아 있는 분들에게 알려 드립니다. 아시다시피 교내 방송에 제보하는 것은 제보비를 받는데, 귀족이라 그런지 역시 통이 크네요. 이 자리를 빌려 인사드립니다. 카메론, 제보 고마워. 아, 이번에 하운즈의 신입 훈련생들을 축하하기 위한 파티군요?”
아드리안은 심드렁한 얼굴로 포크와 나이프를 우아하게 움직였다. 파티 따위는 관심도 없는 사안이었다.
그것은 미하일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보였다. 왕자는 차가운 표정으로 자신의 스테이크를 정갈하게 가르며 ‘조금 전 용건은 저것이었나 보군.’이라고 생각했다. 파티란 것은 왕성에서 지겹도록 열렸고, 억지로 참여해야 했던 기억밖에 없었다.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다르게 생각할 테지.
같은 아카데미에 있는 지금이 아니라면 간소한 연회장에서 열리는 생일 파티 따위에서는 절대 얼굴 볼 일 없는 왕족이었다. 그들은 그 기회를 십분 활용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
두 청년이 관심 없어 하는 것과 별개로 주변에 앉아 있던 학생 몇은 방송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파티에 참가하는 것은 바사미엘을 다니는 몇 안 되는 이유이자 꽃이었다. 돈 많고 명망 있는 자제들 간의 사교 활동을 아카데미에서도 장려하고 있는 바이기도 했다.
“아무튼, 카메론 해리스가 주최한 축하 파티에 대한 소식입니다. 시험 기간 직전에 아카데미의 연회장에서 열리는 파티인데요, 자세한 정보는 교내 신문에서도 안내드리고 있으니 참고해 주세요.”
학생 몇은 아드리안과 미하일이 앉은 테이블을 힐끔거렸다. 그들은 손에 든 조금 커다란 종이의 어떤 부분을 손가락으로 짚어 가며 읽고 있었다. 저것이 교내 신문인 것처럼 보였다.
아드리안은 피냐타의 이야기 중,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는 듯이 고개를 기울이며 랍스터의 하얀 살을 나이프로 가볍게 잘랐다. 그러고는 입술을 살짝 벌려 랍스터를 입안에 넣고는 우물거렸다.
“바사미엘의 이야기꾼, 피냐타였습니다. 다음번에도 오늘처럼 아무런 예고 없이 만나요. 안녕!”
방송이 끝나자, 아드리안은 우물거리는 입을 멈추었다. 그는 꿀꺽, 먹던 것을 마저 삼킨 다음 중얼거렸다.
“도대체 교내 신문은 뭐길래 저런 소식까지 싣는 거지.”
아무래도 왕족과 귀족 가문의 아이들이 다니는 기관이라 그런지 각종 가십거리가 올라오는 모양이었다. 저 방송만으로는 부족했나 보지?
“별 쓸데없는 것들만 가득할 것 같은데.”
“……넌 지금 그 쓸데없는 것들로 가득 찬 교내 신문도 구독 못 하잖아.”
“…….”
미하일이 가지고 있는 틸론은 여전히 하나도 없었다.
반박할 말이 없어 심기 불편한 미하일의 시선이 아드리안을 향했다. 미하일은 스테이크를 다시 잘라 입안으로 넣고는 우물거렸다. 맞은편에 앉은 아드리안이 조용했다. 미하일은 그런 아드리안을 할 수 있는 최대한 무시하다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하고 싶으면 해. 그렇게 고민만 하지 말고.”
미하일이 퉁명스럽게 말을 이었다. 왕자도 교내 신문이라는 것이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10틸론이나 쓰는 것이라면, 뭔가 유용한 점이 있기는 할 것이었다.
“우선 한 달만 신청해 볼 수 있잖아.”
“10틸론…….”
아드리안은 그의 잘생긴 눈썹을 찌그러트렸다.
104틸론. 지금 아드리안의 수중에 있는 돈이었다.
아무리 아카데미에서만 통용되는 가짜 화폐라 해도 돈이었다.
드래곤의 핏속에는 언제나 보물에 대한 욕심이 몇 방울씩 함께 흘렀다. 손에 쥔 것이 무척이나 많으면서도 최대한 그것을 놓지 않으려는 것이 드래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카데미에 오느라 비워 둔 골드 드래곤의 레어에는 온갖 보물들과 금화 그리고 반짝거리는 보석들이 쌓여 있었다.
“……진짜 해 볼까?”
“해 보든지. 나도 궁금해.”
“너도? 아니 그러면 한 명이 신청해서 같이 보면 될 텐데, 왜 각자 구독하는 걸까.”
“읽어 보면 알겠지.”
“좋아. 오늘 당장 신청할 거야.”
아드리안은 열의에 찬 눈빛으로 식사를 마저 했다. 식당에 앉은 학생들이 여전히 신문을 뒤적이고 있었다. 친구였거나 얼굴만 아는 사이였더라도 잠깐 빌려서 보고 싶었으나 아주 좁은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는 아드리안과 미하일은 그럴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