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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가용-57화 (57/184)

57화

9. 친구란 무엇인가

두 학생은 아카데미의 숲 호숫가에 편하게 드러누워 바사미엘 아카데미의 본관으로 고개를 돌렸다. 종소리가 들렸다.

“…….”

미하일은 본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편하게 잔디밭에 누운 아드리안을 잠시간 아무 말 없이 바라보았다. 고민하는 눈치였다.

“……수업 중일지도 모르는데?”

만약 오늘이 월요일이라면 행정학 수업이, 아니면 다른 날이라면 다른 수업을 알리는 종일 수 있었다. 미하일은 흠뻑 젖은 채로 편하게 누운 아드리안에게 말했다. 그 중얼거림에 아드리안은 두 팔을 뒤로 받쳐 살짝 눈꺼풀을 들어 올려서 머뭇거리는 왕자를 바라보았다.

“뭐든 지금은 쉴 거야. 이 꼴로 수업에 들어갈 수는 없잖아.”

“그렇긴 하지…….”

“수업에 들어가고 싶으면 먼저 들어가.”

주저하는 미하일과는 다르게 아드리안은 할 말을 다했다는 듯이 다시 눈을 감았다. 뜨거운 용암 동굴에서 한바탕 뛰고, 샐러맨더들을 쫒아다녔더니 지금의 이 평화로운 숲이 그리웠었다. 눈을 감은 아드리안의 귀에 조용한 물소리와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누군가가 옆에 털썩 눕는 인기척도 느껴졌다.

좋은 선택이군.

아드리안은 땡땡이 동지에게 굳이 소리 내어 말하지 않고, 입가를 늘려 슬쩍 미소를 지었다.

아드리안과 미하일은 그렇게 잔디밭에 누워 시계탑에서 다시 한번 정각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릴 때까지 평화로움을 흠뻑 만끽했다.

***

날씨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교복을 말리는 겸 잠들지 않고는 도저히 배길 수 없었다. 골드 드래곤이 눈을 뜬 것은 한 시간이 지난 이후였다. 아드리안은 가볍게 기지개를 켜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젖은 채 잠들어 제멋대로 헝클어진 머리칼을 한 손으로 정리하며 옆을 바라보자, 잠들어 있는 미하일이 눈에 들어왔다.

훈련하는 것을 몇 번 지켜봤지만, 분명 좋은 검사가 될 것이기는 하나 ‘소드 마스터’의 영역에 도달할 수 있는지는 장담할 수 없는 인간이었다. 용암 동굴에서의 장면이 아드리안의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루비처럼 붉게 타오르는 미하일의 빛나는 눈동자와, 인간은 물론 드래곤조차 다룰 수 없는 순수한 마나로 휘몰아쳤던 용암 동굴이 있었다.

아드리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눈가를 살짝 찡그린 채 왕자를 보고 있을 때였다.

“……뭐야.”

잠들어 있던 미하일이 그 시선에 잠에서 깨어났다. 왕자는 순간 고귀한 왕족의 자세를 집어 던진 채 잔디밭에서 잠들었다는 사실을 잊고서 멍한 상태였다. 평상시 일어나던 좋은 침대와 이불이 아니었기 때문에 몸이 찌뿌둥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절대 눕지도 잠에 들지도 않았을 테지만 도헤니어에서의 야영이 이렇게 만든 것 같았다.

“일어났어?”

아드리안은 묘하게 정신이 다른 곳으로 가 있는 미하일에게 인사를 했다.

“…….”

미하일은 밝은 은발이 이리저리 뻗쳐 헝클어진 상태로 뺨과 관자놀이를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왕자는 고개를 작게 끄덕거린 후, 작게 한숨을 한번 쉬고 몸을 일으켰다.

“기숙사로 돌아가야겠어.”

교복도 거의 말랐겠다, 더 쉴 거라면 샤워를 한 후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싶어서였다. 골드 드래곤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그도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하암- 아드리안은 작게 하품을 하며 왕자를 뒤따라 걸어갔다.

두 사람이 아카데미의 숲을 막 벗어난 참이었다.

“어?”

누군가 두 사람을 발견하고는 반갑다는 듯이 팔을 흔들었다. 유시와 가넷의 다른 신입생들이 아카데미 본관의 중앙 정원에 모여 있었다. 아카데미 식당에서 식사와 디저트를 테이크아웃해서 정원의 대리석 테이블에 올려 둔 것을 보아 늦은 브런치 시간인 듯 보였다.

“안녕, 어디에 갔다가 오는 거야?”

유시가 인사하면서 입을 열자, 그녀의 덧니가 귀엽게 살짝 보였다. 아드리안은 그 덧니가 유시의 매력이라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유시의 질문에 대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던 순간이었다.

“비밀이야.”

응? 아드리안은 옆의 왕자의 대답에 고개를 휙 돌렸다. 비밀로 해야 하는 건가?

왕자는 아드리안의 시선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물론 겪었던 이상한 일들을 떠들고 다닐 생각은 없었지만 미하일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줄은 몰랐던 아드리안은 그의 말에 장단을 맞춰 주었다.

“……맞아, 비밀. 뭐 별일 없었지?”

아드리안은 주말인 것을 확인하기 위해 유시에게 가볍게 물어보았다. 만약 두 사람이 수업을 몇 번 빠졌다면, 무슨 일이라도 있는지 물어볼 것이었다.

“응, 뭐 그렇지. 미하일도 안녕.”

유시는 아드리안의 바로 옆에서 고개를 살짝 끄덕여 인사를 건네 오는 미하일을 바라보고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덩치 커다란 왕자는 자신의 뒷머리가 헝클어져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무심한 표정이었다. 그 표정과 헝클어진 머리의 괴리가 무척 컸다.

다행히 수업이 있는 날은 아니었군.

미하일은 대충 인사를 마무리한 후, 얼른 기숙사 방으로 들어가고 싶은 티를 팍팍 냈다. 왕자가 다시 발걸음을 떼고, 아드리안이 그 뒤를 비척비척 따라가려는 참이었다.

“저기…….”

유시와 함께 앉아 있던 학생 한 명이 아드리안을 조심스레 불렀다. 골드 드래곤은 그 부름에 고개를 휙, 돌려 “응?” 하고 반응했다. 정확히 누구를 부르는 것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왕자 또한 마지못해 고개를 돌린 상태였다.

“혹시 쿠키 좋아해?”

급조된 브런치 테이블 위에는 다양한 디저트들과 찻잔이 놓여 있었는데, 그중에는 포장된 쿠키도 몇 종류가 있었다. 아드리안을 부른 학생은 그중 하나를 조심스레 들어 올려 그에게 건넸다. 살짝 덧니가 보이도록 웃고 있는 유시와 그 학생을 한 번씩 확인한 후, 골드 드래곤은 살짝 미소 지었다.

“응, 좋아해. 나 주는 거야?”

그 웃음에 금발 머리의 여학생도 안심한 듯이 마주 보며 웃었다. 그녀의 뺨이 불그레하게 물들었고, 쿠키를 건네주는 손에서 약간의 떨림이 느껴졌다.

뻔하군. 미하일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는 묘한 표정으로 아드리안과 그 학생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왕자의 생각에 아마 이 브런치 테이블에 앉아 있는 학생 모두가 동의해 주었을 것이다.

“어, 응, 응. 어제 외출에서 샀어. 가져가.”

“고마워.”

아드리안은 쿠키 하나를 가볍게 받아 들고 인사를 했다. 상대편에서 잠시간 아드리안의 얼굴만 멍하게 바라보고 있자, 유시가 팔꿈치로 툭, 그 학생의 등을 찔렀다. 그러자 금발의 학생이 아, 하고 정신을 차리곤 입을 열었다. 아드리안은 정원에 멈춰 선 채 눈썹을 들어 올렸다.

“케이지 리타나라고 해.”

금발의 여학생이 뺨을 붉힌 채 자신을 소개했다.

“그래, 나는 아드리안 헤더. 같은 가넷이니 자주 인사하자.”

아드리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매너 있게 어린 인간 소녀의 자기소개를 받아 주었다. 금발의 학생은 그것만으로 충분히 만족하는지 고개를 과하게 끄덕거렸다. 아드리안은 “……그럼.”이라고 말하며 기숙사로 향하던 길을 다시 걸었다. 둘을 바라보던 미하일 또한 다시 발을 뗐다.

부스럭-

아드리안이 걸을 때 가끔씩 쿠키 포장지가 움직이며 소리를 냈다.

골드 드래곤은 기숙사 방에 들어서자마자 툭, 그것을 자신의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 그의 책상 위는 여러 권의 책과 양피지, 화분이 놓여 있었는데 쿠키를 책상 위에 놔두자 물건들에 파묻혀 구별을 하기 힘들어 보였다.

미하일은 아드리안의 책상 위에 덩그러니 놓인 쿠키를 잠시간 바라보았다. 마치 저렇게 놔두고 신경도 쓰지 않을 것 같은 태도였다.

“왜? 먹을래?”

아드리안은 젖었던 아카데미 교복을 벗다가, 왕자의 시선을 확인한 후 가볍게 질문했다. 미하일은 이상한 질문을 들었다는 듯이 표정을 찡그렸다.

“내가 저걸? 됐어. 너나 먹어.”

“싫으면 말고.”

골드 드래곤은 어깨를 으쓱이며 대강 반응했다.

평소라면 그냥 넘어갔을 것이나, 레이디의 소극적인 데이트 신청을 그냥 저런 식으로 넘겨선 안 될 일이었으므로 미하일은 조언을 조금 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방금 분위기를 보면 거의 고백이던데. 설마 그 정도 눈치도 없는 건 아니겠지?”

아드리안은 벗어 둔 교복을 정리하고는 욕실로 먼저 향했다. 미하일의 빈정거림에 그는 그 자세로 고개만 뒤로 돌려 왕자를 바라보았다.

“미하일.”

따뜻한 갈색빛의 눈동자가 빤히 왕자를 향했다. 아드리안은 입가를 살짝 늘려 웃고 있었는데도, 미하일은 그의 눈동자가 가끔씩 소름 끼친다고 생각했다.

“……어?”

그 탓에 미하일은 반 박자 늦게 대답했다.

“안 씻을 거면 내가 먼저 씻는다?”

아드리안은 질문이라기보다는 선언처럼 말한 후 쾅, 하고 욕실 문을 닫았다.

건방진 놈.

한발 늦은 미하일은 자신의 책상에 털썩, 하고 앉았다가 헝클어진 제 머리를 발견하곤 인상을 팍 찡그렸다.

이 꼴로 정원을 돌아다녔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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