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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가용-56화 (56/184)

56화

등 뒤에서 커다란 불기둥이 동굴 전체를 잡아먹을 듯이 크게 솟아올랐다. 아드리안은 문틈에 한 발을 걸친 채 그 광경을 두 눈동자로 집어삼켰다.

엄청난 양의 용암에 절반을 뒤덮었던 검은 마나가 흔적도 없이 타들어 갔다. 그 바람에 솟아오르는 불기둥의 사이사이는 수증기가 가득 채웠다. 끼이익- 하고 저택 하나 크기의 바위가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동굴 천장에서 서서히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골드 드래곤은 그 찰나의 순간을 천천히 바라보다가- 나머지 발을 문틀에서 떼어 냈다. 물론 뛰어내린 후 손짓으로 문을 곧바로 닫는 것은 잊지 않았다.

수면에서 한참 위에 생긴 문이었다.

풍덩, 커다란 물보라를 만들어 내며 골드 드래곤이 아주 매끄럽게 호수로 다이빙했다. 수면을 경계로 온몸에 차가운 호숫물이 닿는 것이 느껴졌다. 뒷목이 잠깐 서늘할 정도의 온도였다.

골드 드래곤은 깊은 호수에서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먼저 떨어진 왕자를 찾아야 했다. 곱게 자라서 그런지 수영도 못 하는 모양이었다. 아드리안은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이쪽도 오랜 시간 호숫물 안에 있으려면 눈속임을 위해 이걸 사용해야 했다. 아드리안의 검지손가락이 두 번 뺨 위를 지나갔다.

후우우- 입에서 기포가 나와서 하나씩 차례로 수면을 향해 불규칙적으로 움직였다. 아드리안의 눈동자가 호수 아래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푸른빛의 물속에서 몇 마리의 작은 물고기 몇 마리가 그를 스쳐 지나갔다.

다행히, 정말 다행히도 골드 드래곤이 얼마 전에 와 본 곳이었다. 아드리안은 저 너머 흐린 인영을 확인하고는 슬쩍 웃으며 물살을 헤치고 두 발을 힘차게 저었다.

골드 드래곤은 재빠르게 왕자를 찾아냈다.

그는 호수 밑바닥에 가라앉아 이쪽을 뚱하니 노려보고 있었다. 푸른 염료 덕분에 숨을 쉴 수 있었지만, 도저히 수면 위로 헤엄칠 수는 없었던 것 같았다. 그게 푸른 물속에서 왕자의 붉은 눈동자만 번뜩이고 있는 이유였다.

보글보글 입술에서 가끔씩 작게 거품을 흘려 내면서 아드리안은 유려하게 물을 헤치며 왕자를 향해 헤엄쳤다. 그러고는 미하일의 팔을 대충 어깨로 둘러매고 수면을 향해 능숙하게 수영했다. 가끔 왕자의 은발이 호숫물에 부유하여 넘실넘실거리며 아드리안의 뺨을 간질였다. 아드리안은 미하일과 어깨동무를 한 상태로 가끔씩 자신의 뺨을 손바닥으로 훑었다. 그러다 옆에서 잠자코 팔에 매달려 있는 왕자를 힐끔 확인했다. 지금껏 본 적 없이 아주 고분고분했다.

푸하-!

물속에서도 숨을 쉴 수는 있었지만, 호수 수면 위로 얼굴을 내밀어 진짜 공기를 들이마시자 그제야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바사미엘 아카데미의 호수는 깊은 숲속에서 시작하여 본관 뒤의 온실까지 걸쳐 있는 아주 커다란 호수였다.

미하일은 몇 번 상쾌한 숨을 들이쉬었다. 왕자는 젖은 얼굴로 하늘을 한번 바라보고, 숲의 나무를 잠시간 바라보더니 입술을 열었다. 이 속도로 호수 끝까지 가려면 한참은 더 헤엄쳐야 할 듯했다.

“……이게 제일 빠른 거야? 달리기보다 못 하잖아.”

“당연히 더 빨리 갈 수 있지.”

아드리안은 애써 웃으며 거의 업다시피 데려가고 있는 짐 덩어리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아드리안의 팔에 매달려 있는 짐도 자신을 향한 눈빛을 알아채곤 뚱한 표정으로 마주 보아 왔다.

“그럼 전속력으로 가 볼까?”

응? 아드리안은 왕자의 어깨를 잡고 있는 손에 힘을 천천히 풀면서 중얼거렸다. 스륵- 아드리안과의 어깨동무가 풀리자 왕자의 몸이 천천히 호숫물 아래로 가라앉았다. 윽, 미하일은 고개를 번뜩 들어 올렸다. 간신히 수면 밖으로 얼굴을 꺼낸 자세였다.

아니-

미하일은 짜증스레 후, 하고 짧게 한숨을 내뱉었다.

“아니, 이 속도로도 괜찮아.”

“그렇지?”

아드리안은 왕자의 재빠른 태세 전환에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활짝 웃었다.

“진작에 그랬어야지.”

드래곤은 왕자의 어깨를 감싸고 있는 팔을 다시금 고쳐 안았다. 점점 가라앉던 왕자의 몸이 그제야 안정적으로 수면 밖으로 떠오를 수 있게 되었다.

아드리안은 조용해진 왕자를 다시 호수 끝으로 데려가는 데에 집중했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아카데미의 숲에 청량한 물소리만 들렸다.

미하일은 자신의 어깨를 감싸 안고 있는 놈의 팔이 불편했다. 너무 붙어 있잖아. 왕자는 속으로 불평하며 안겨 있는 몸을 조금 틀었다. 그는 어깨를 비틀어 둘 사이의 간격이 조금 벌렸지만, 불편함이 조금 가신 것도 잠시였다.

“힘 빼, 데려가기 힘들어.”

아드리안은 왕자가 물에 빠진다고 생각했는지 수영을 하다말고 멈춰 서서 다시 왕자를 고쳐 안았다.

윽, 미하일은 작게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등 뒤로 왕자가 피하려 했던 아드리안의 탄탄한 상체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최대한 빨리 이놈이 수영하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아드리안과 맞닿은 어깨에서 다른 곳으로 신경을 돌리려던 왕자는 “아!” 하고 작게 신음했다. 잊고 있었던 손바닥의 상처가 그제야 욱신거리며 존재감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아드리안이 이 상처를 뭐라고 했더라?

“…마나흔…….”

열심히 수영을 할 필요가 없는 왕자는 자신의 손바닥을 빤히 바라보았다. 검을 잡던 손이라 원래도 희고 깨끗한 손은 아니었다. 검을 잡고 알맞는 검식을 구사하기까지 수천수만 번 검을 휘두르다 보면, 손바닥은 언제나 물집이 잡히고 터져 핏물이 배어 나왔다.

그러나 검을 잡는 데에 익숙해지고 나선 그런 상처조차도 아주 가끔 났다.

이렇게 손바닥 정체가 엉망진창이 된 채 검을 잡았다니. 그리고 그 커다란 동굴의 언덕을 손쉽게 잘라 낸 게 나라고?

아주 잠깐이었지만 소드 마스터의 영역에 들어갔었다. 아쉽네. 왕자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 느낌을 기억하고 있다면 훈련을 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지금 당장이라도 아무 검이나 붙잡고 휘둘러보고 싶어졌다. 미하일의 붉은 눈동자가 일렁이며 요동쳤다.

왕자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보였다. 아드리안은 자신의 손바닥에 정신 팔려 있는 왕자를 살펴보았다.

고대의 정령이 그들의 마나를 써 가면서까지 데려간 인간이었다. 비록 정령들답게 시간 개념이 부족해서 날짜를 착각하긴 했지만 말이다. 그 바람에 아카데미의 다른 학생들도 그 문을 보기는 했지만 그건 아주 사소한 문제였다.

도헤니어 화산이 폭발할 것은 이미 알고 있었고, 그 폭발은 저 왕자가 한 것이었다.

“그 손으로 한동안 검은 못 잡겠네.”

휙, 수영하는 데에 전념하고 있는 줄 알았던 아드리안이 먼저 말을 걸자 미하일이 손바닥에서 시선을 뗐다.

“……보기보다는 아프지 않아.”

미하일은 엉망인 자신의 손바닥을 애써 외면했다. 이미 그의 머릿속은 검을 잡아 볼 생각으로 꽉 차 있었다. 드래곤은 그 말투에서 왕자의 생각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몸 관리도 기사의 소양이다만.”

아드리안이 흰 팔로 수면을 조용히 앞으로 밀어내면서 왕자에게 충고했다. 마나흔을 가볍게 생각하고 방치했다간 오히려 상처가 더 오래 남을 것이었다. 그러나 미하일은 특유의 ‘네가 기사에 대해서 뭘 안다고.’라는 의미의 표정을 짓고는 대답하지 않았다.

탁, 이제야 호수 바닥에 발이 닿았다.

미하일은 그것을 알아차리자마자 아드리안의 팔을 빠르게 풀었다. 아드리안 또한 별로 어깨동무를 오랫동안 하고 싶을 이유가 없었으므로 왕자를 바로 풀어 주었다.

터벅터벅 호수 면으로 점점 걸어가면 갈수록 젖은 아카데미 교복이 몸 전체에 느껴졌다. 흠뻑 젖어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고, 머리칼도 마찬가지였다.

그때였다.

댕-댕-댕-

바사미엘 아카데미의 커다란 시계탑에서 세 시를 알려 왔다. 해가 머리 위에 떠 있으니 아마 오후 세 시일 것이었다.

“……오늘이 무슨 요일일까.”

미하일이 시계탑이 있을 방향에 시선을 둔 채 중얼거렸다. 바사미엘 아카데미 본관과 거리가 있어 시계탑은 눈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 이상한 문에 들어간 것은 주말이었는데, 부디 지금이 수업이 있는 날이 아니기를 빌어야 했다.

“무슨 요일인지는 몰라도 우선은 조금 쉬어야겠어.”

아드리안은 또다시 흠뻑 젖은 채로 기숙사 방으로 들어가기 싫었다. 그래서 호숫가의 잔디밭에 털썩 몸을 눕혔다. 따뜻한 햇볕이 잔디밭에 누운 아드리안을 데워 주고, 교복을 말려 줄 것이었다.

며칠 정도야 수업은 째지 뭐. 수업을 빠지는 것 정도는 아무 일도 아니었다. 겨우 수업 한번 빠졌다고 아카데미가 학생을 쫒아낼 필요도 없고 말이다.

드래곤은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스스로 깨우친 연륜을 발휘해 수업에 들어가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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