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
미하일은 우물거리며 뜨뜻미지근한 표정을 지었다. 어제의 가짜 감자도 그랬지만, 간이 안 된 고기를 먹는 것도 고역이었다. 그러나 미하일은 그래도 지금 둘이 이런 식량을 구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왕자는 모닥불 바로 맞은편에서 역시 우물거리고 있는 아드리아 헤더를 바라보았다. 그의 다리 옆에서 새끼 샐러맨더가 금방이라도 모닥불에 뛰어들 자세로 장난을 치고 있었다. 그것은 불 위에 놓인 사슴 고기가 깨나 궁금한 모양으로 가끔씩 아드리안의 손에 쥐여 있는 사슴 고기 꼬치를 애타게 바라보기도 했다.
“왜? 이것도 별로야?”
아드리안이 그 눈빛에 입가를 닦으며 왕자에게 질문했다.
“아니. 어제 먹었던 것보다는 훨씬 나아.”
미하일은 재빠르게 대답하고는 사슴 고기 꼬치를 어금니로 뜯었다.
“만약 지금이 아카데미였다면 오늘의 메뉴를 먹었겠지.”
“난 오늘의 메뉴가 좋아. 그건 매일 바뀌어서 메뉴를 고를 스트레스가 줄어들잖아.”
“무슨…… 그런 노친네 같은.”
촌스럽다는 듯한 눈빛에 아드리안은 아무렇지도 않게 씨익 웃었다.
“노친네라니. 이런 걸 연륜이라고 해. 합리적인 거지.”
“……우린 나이 차이라고는 다르펑의 뿔만큼도 안 나는 동갑이다만.”
글쎄. 아드리안은 웃던 얼굴을 그대로 유지하며 사슴 고기를 우물거렸다. 너도 나이를 조금 먹게 되면 알 거야. 오늘 점심은 뭘 먹을지 두근거릴 나이는 한참 전에 지난 골드 드래곤이 입안의 고기를 씹었다.
“다르펑 중에서도 가끔 뿔이 난 채로 태어나는 것들이 있어.”
뭐? 왕자는 한동안 고기를 먹던 아드리안이 꺼낸 이야기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세상에는 네가 모르는 것도 있다는 이야기야.”
“정령학 수업 시간은 아직 며칠이나 남은 걸로 아는데.”
“이런, 왕자님에게는 너무 유익한 정보였나 보군.”
“하- 진짜.”
미하일이 어이없다는 듯 입술을 삐죽 올려 웃었다. 그러고는 “말을 말자.”라고 중얼거리며 모닥불 위에 올려 둔 사슴 고기를 힐끔 확인했다.
“남은 건 훈제해서 육포로 만들어 두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래.”
아드리안은 먹던 꼬치의 고깃덩어리를 옆에 있는 샐러맨더에게 나눠 주었다. 샐러맨더는 검은 눈망울로 고기를 한동안 관찰하더니 커다란 고깃덩어리를 합- 하고 한입에 넣었다가, 곧이어 퉤, 하고 뱉었다. 아드리안은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때 먹었던 맛있는 미하일의 검이랑은 맛이 완전히 다르지?”
골드 드래곤은 나뭇가지를 땅에 휙 던지면서 웃었다. 그러게 처음 보는 걸 아무렇게나 넙죽넙죽 받아먹으면 안 되지. 새끼 샐러맨더가 퓌이익- 하고 작은 불꽃을 내뿜었다.
육포를 만들 수 있도록 기다란 나뭇가지 하나를 찾던 왕자가 그 장면을 멀리서 확인하고는 물었다.
“……다 먹은 거야?”
그의 룸메이트는 식사량이 항상 들쭉날쭉했다. 어떨 때에는 엄청난 양을 한 번에 먹기도 하는 동시에, 또 다른 날은 수프 몇 스푼으로도 식사를 끝냈다. 마치 본인의 정량을 모르는 것처럼.
미하일이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아드리안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응, 다 먹었어.”
애초에 배가 고프지도 않았다고. 골드 드래곤은 몸을 가볍게 일으켜 바지에 묻은 흙과 잡초를 툭툭 털었다. 그러고는 바로 옆의 나무에 널어 두었던 옷을 손가락으로 스윽 훑었다.
“오.”
아드리안이 가늘게 눈을 접으며 왕자를 향해 웃었다.
“정리만 되면 바로 출발할 수 있겠다.”
그 말에 샐러맨더가 취익-! 하고 입을 열어 반응했다. 왕자는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며 “너 때문에 늦어진 거잖아.”라고 핀잔을 주었다.
평화로운 점심시간이 끝나갔다.
***
“저건 목적지가 있는 거겠지? 도헤니어산인가.”
미하일이 샐러맨더를 손짓하며 말했다. 두 사람이 뒤뚱뒤뚱 기어가는 샐러맨더를 따라 다시 걸은 지 몇 시간 뒤였다. 샐러맨더는 둘을 도헤니어산으로 이끌고 있었다. 어느덧 멀리서 솟아 있던 산이 고개를 들어야 꼭대기를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그렇겠지.”
미하일이 눈을 가늘게 좁혀 산을 찬찬히 관찰했다.
“……폭발할 산이라 그런지 으스스한데.”
샐러맨더는 그런 왕자를 향해 잔소리 말고 따라오라는 듯이 취익- 하고 짧게 소리 냈다.
골드 드래곤은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도헤니어산으로 다가갈수록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겉으로는 티끌 하나도 나타나지 않았지만, 현재 드래곤의 옷 밖으로 나와 있는 모든 피부가 아우성치고 있었다. 윽, 드래곤은 속으로 신음했다. 샐러맨더를 따라 걸어가면 걸어갈수록 몸 전체가 비명을 지르는 것이 더 시끄러워졌다. 마나 때문이었다.
드래곤은 옆에서 투덜거리면서 걷고 있는 미하일을 힐끔 바라보았다. 다행히 인간의 몸은 이 마나를 느낄 정도로 예민하지 않았다. 그만큼 순수하고 깨끗한 마나였다.
젠장, 그동안 더러운 공기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군.
드래곤은 슬쩍 손을 목 뒤로 가져다 뒷머리를 약간 헝클었다. 옆의 왕자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연기하는 것도 힘들 정도로 순수한 마나들이 온몸을 따끔따끔 찌를 듯이 닿아 왔다. 후- 하- 골드 드래곤은 몸이 좀 더 익숙해지기를 바라며 숨을 크게 내쉬다가,
크헉……! 큽! 켁-
마나를 급하게 들이마신 죄로 마른기침을 해 댔다. 그러자 왕자가 쓱- 별짓을 다 한다는 눈빛으로 아드리안을 바라봤다.
“고작 몇 시간 벗고 있었다고 감기에 걸렸어?”
“……갑자기 신경 쓰는 척하지 마시지.”
아드리안이 손으로 입가를 스윽 닦았다. 와, 순간 폐까지 깊숙이 순도 높은 마나가 들어가는 바람에 죽을 뻔했네.
드래곤은 천천히 들숨과 날숨을 반복하다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떠서 그들이 향하고 있는 방향 저 끝을 바라보았다. 한참 남은 것인지, 거의 다 도착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지금 이 마나가 어디까지 더 정제될지 알 수 없다는 뜻이었다.
“멈춰.”
먼저 걸어가던 미하일이 무의식적으로 따라가는 아드리안의 몸통을 팔로 막았다. 아드리안은 골치 아픈 마나에 눈가를 찌푸리다가 왕자의 팔에 몸을 우뚝 멈췄다. 미하일은 바로 앞의 샐러맨더에 시선을 고정한 채였다. 한동안 앞서 걸어가던 샐러맨더가 발걸음을 멈춘 것이었다.
휘이이이익!
샐러맨더가 고개를 공중에 쳐들고 지금까지 낸 소리 중 가장 높은 음역대의 소리를 내었다. 윽, 아드리안과 미하일은 눈을 찡그리며 자신의 귀를 손으로 막았으나 소리는 손바닥을 뚫고 들어왔다.
그때였다.
그들과 함께 있는 샐러맨더가 낸 소리와 정확히 똑같은 높은 소리가 어딘가에서 들려왔다.
‘휘이이이익!’
그러나 그 소리는 하나의 샐러맨더가 낸 소리처럼 들리지 않았다.
‘휘이이이익!’
굉장히 많은 수의 다른 샐러맨더들이 동시에 낸 듯한 그런 소리 같았다. 마치 거기에 다시 대답이라도 하는 듯이 새끼 샐러맨더가 그 자리에서 다시 고개를 위로 쳐들고 주둥이를 열었다.
휘이이이익!
새끼 샐러맨더의 입에서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크기의 커다란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나무 몇 개쯤은 집어삼킬 정도로 큰 불꽃이었다. 윽, 미하일은 커다란 불꽃에 얼굴이 뜨거워지자 팔로 얼굴을 가리며 뒷걸음질 쳤다. 그러자 그가 팔로 막고 있던 아드리안도 덩달아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취익-!
주둥이의 불꽃이 점차 사그라들자, 커다란 불꽃이 넘실대었던 자리에는 커다란 문 하나가 비현실적으로 우뚝 서 있었다.
바사미엘 아카데미에서 봤던 그 이상한 문과 소름 끼칠 정도로 똑같은 모양이었다. 문이 만들어질 때 겨우 느꼈던 순도 높은 마나의 움직임이 점차 사라졌다. 인간들이 아카데미 문에서 마나를 느낄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골드 드래곤은 표정을 굳힌 채 그 광경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이 힘은-
샐러맨더의 주둥이가 천천히 닫혔다. 드래곤조차도 느낄 수 없는 정도로 무거운 마나라면 저 샐러맨더도 다룰 수 없음이 맞았다. 무언가 있었다. 드래곤의 힘을 넘어서는 무언가였다. 그러나 그 힘은 불의 정령들을 돕고 있었다.
스윽- 아드리안을 막고 있던 미하일의 팔에서 점차 힘이 빠졌다. 그도 이 광경에 놀란 것이 틀림없었다. 아드리안은 그 팔을 살짝 잡고는 멈춰 서 있는 왕자보다 한 발짝 더 가까이 문에 다가갔다.
새끼 샐러맨더는 바닥에 주저앉아 휙, 고개를 위로 쳐들었다.
너희를 돕고 있는 그것은 뭐지? 온몸이 저릿저릿하게 만드는 순도 높은 마나가 느껴졌다. 샐러맨더는 그 시선에 검은 눈망울을 꿈뻑 크게 감았다가 다시 뜰 뿐이었다.
아드리안의 티 없이 깔끔한 흰 손이 커다란 철제문의 손잡이를 붙잡았다.
“……잠깐!”
그 움직임에 잠시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미하일이 한 발짝 앞으로 나오며 아드리안을 말리려 했다.
철제문을 열자, 아드리안은 그 안을 한번 확인하고는 크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뒤로 고개를 돌려 당황한 왕자를 향해 입을 열었다.
“괜찮아.”
예상대로 문 뒤에는 어두운 계단이 있었다.
“안전할 거야. 우리가 이미 와 본 적 있는 곳이니.”
이 계단의 끝에 어떤 용암 호수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아직 내려가지도 않았지만 예상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