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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가용-49화 (49/184)

49화

새끼 샐러맨더를 한동안 뒤따라가면서 아드리안 헤더가 입을 열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지?”

“뭐가.”

“지금 저 샐러맨더를 따라가면 우리가 처음에 봤던 용암 호수가 나오지 않을까-하는 생각.”

미하일이 고개를 스윽 옆으로 돌렸다.

“했지. 그런데…… 그러기엔 너무-”

“너무?”

왕자는 꺼림칙한 표정을 짓고는 아드리안의 반응에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나 둘은 여전히 새끼 샐러맨더를 천천히 뒤따라가고 있었다.

“너무 인위적이잖아. 마치 누가 이렇게 될 것을 알고 미리 짜 놓은 것처럼 말이야.”

아드리안은 왕자의 말에 멈칫 발걸음을 멈췄다. 드래곤은 미하일이 방금 말한 그 꺼림칙한 느낌을 처음부터 느꼈었다. 아카데미 중앙 정원에서 왕자와 지진을 기다리던 그때부터, 저 새끼 샐러맨더를 발견한 것까지.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이 그들을 어떤 곳으로 거부할 수 없게 유혹하고 있는 것 같았다.

“…….”

마하일은 옆의 아드리안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힐끔 보고는 자신의 느낌에 더 확신을 느꼈다.

그때였다.

취이익-! 가장 앞에서 씰룩거리며 길을 안내하던 새끼 샐러맨더가 불을 뿜으며 뒤를 돌았다. 그러고는 가던 길을 다시 돌아 뒤따라가던 두 청년에게로 기어 왔다.

“뭐야?”

미하일은 샐러맨더가 하는 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샐러맨더는 그 눈빛에 휙, 고개를 돌리더니 곧장 아드리안에게로 걸어가 아카데미 교복의 바짓단을 발톱으로 콱 눌렀다.

어쭈, 왕자는 왠지 모르게 말이 통하는 것 같은 샐러맨더가 가소로웠다. 그것은 왕자의 노려보는 눈에도 아랑곳 않고 나머지 발을 콱 올려 아드리안의 바짓단을 엉망으로 만들면서 다리를 올라오려 낑낑거렸다. 아드리안은 그제야 샐러맨더가 원하는 것을 눈치채곤 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샐러맨더의 몸통을 손으로 잡았다. 파충류 특유의 낮은 온도와 서늘한 비늘이 손바닥에 느껴졌다. 샐러맨더는 원하던 것이 그게 맞았던지 아드리안 헤더가 자신을 안아 올리자 들기 편하게 몸을 둥글게 말았다.

“갑자기 왜 그래.”

아드리안은 품 안의 샐러맨더를 바라보곤 고개를 들어 올려 가던 길의 끝을 살폈다.

“아-”

골드 드래곤은 샐러맨더를 고쳐 안으며 중얼거렸다. 그제야 숲속의 길을 세차게 끊어 놓은 넓은 강물이 보였다. 느리고 평화롭게 흘러가고 있는 물소리가 들렸다. 드래곤은 별것 아니라 생각했으나 뜨거운 용암과 불 속에서 서식하는 새끼 샐러맨더에게는 마치 절벽과도 같았을 것이다.

“강이네. 물도 마실 겸, 잠시 쉬었다 갈까?”

미하일은 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갈 길이 멀기는 했으나 어쨌든 왕자는 기약 없는 시간이 매우 많았다.

***

아주 깨끗한 강이었다. 투명한 강바닥의 매끄러운 돌들이 보였고, 그 틈 속에서 아주 깨끗한 물에서만 서식하는 물고기들이 유영하고 있었다. 촤아악- 아드리안은 그것을 확인하고는 손바닥으로 크게 물을 떠 올렸다. 꿀꺽꿀꺽 시원한 물이었다.

미하일 또한 몇 번 손바닥으로 강물을 떠서 목을 축였다. 그러자 여태까지 잠깐 잊고 있었던 갈증이 치밀어 올랐다. 하- 왕자는 몇 번을 마신 후 소매로 입가를 닦아 냈다. 두 사람이 강가에서 목을 축이는 동안 새끼 샐러맨더는 커다란 바위 위에서 빨리 출발하자는 듯이 꼬리로 탁탁 바위를 내려쳤다. 왕자는 그 불만 어린 행동을 눈치챘음에도 아드리안을 향해 고개를 돌려 제안했다.

“간단하게 씻을래. 찝찝했는데 타이밍이 좋군.”

아침에 일어날 때는 별생각 없었지만, 시원한 강물에 손을 담근 순간 왕자는 이곳을 그냥 지나칠 생각이 없었다.

“그래.”

아드리안은 바위 위에서 꼬리를 내리치고 있는 샐러맨더를 힐끔 바라보고는 대답했다. 길을 보채는 샐러맨더에게는 미안하지만, 인간 못지않게 드래곤도 꽤나 깔끔 떠는 생명체였기 때문이다.

아드리안은 샐러맨더가 앉아 있는 바위 위에 겉옷을 벗어 가지런히 올렸다. 그는 교복의 소매 단추를 하나 끌렀다. 슥- 소매를 접어 올리려다가 손가락을 멈췄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바짓단을 접고 있는 미하일을 바라봤다. 왕자는 이미 상의를 벗어 두고 물에 젖지 않게 교복 바지를 정리하고 있었다. 매일 훈련은 꼬박꼬박 나가더니 왕자의 커다란 상체는 균형 잡힌 몸의 잔근육으로 차 있었다.

문득 왕자는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아드리안을 확인했다.

“좀 더 떨어져서 씻지?”

왕자는 까칠한 말투로 셔츠를 바위에 올려 두며 한마디 했다. 아무리 룸메이트라 해도 서로 생활하는 시간이 달라 방에서 붙어 있었던 시간은 별로 없었다. 그래도 왕자가 매일 아침마다 기숙사 방 안에서 기초 훈련을 어쩔 수 없이 봐 왔던 아드리안이었다. 다시 말해, 그의 맨몸이야 매일 봤다는 것이다.

“왜, 부끄러워?”

아드리안은 비죽 입술을 끌어올려 왕자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는 소매를 걷던 손을 멈추고 셔츠를 가볍게 벗었다. 커다란 장신에 적당히 짜임새 있는 상체가 그 바람에 훤히 햇볕 아래에서 드러났다.

밝은 금발 머리칼과 아주 잘 어울리는 완벽한 모습이었다. 푸른 강과 울창한 숲, 맑은 하늘에 이 광경을 누군가 보았다면 당장이라도 화가에게 그림 의뢰를 넣고 싶었을 것이다. 미하일도 예외는 아니었다. 교복에 가려져 있었던 흰 어깨와 목덜미를 내놓고 가볍게 손을 씻는 아드리안에게 주의를 빼앗긴 미하일은 눈길을 조금씩 아래로 옮겼다. 그러자 한가롭게 식물이나 키우는 학생의 것이라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날렵하고 탄탄한 벗은 몸이 더 자세히 드러났다.

그리고 왕자가 시선을 더 아래로 움직이는 순간,

“응?”

아드리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미하일을 향해 고개를 기울여 그와 눈을 마주했다. 그 시선에 미하일이 퍼뜩 정신을 차려 빠르게 입술을 열었다. 저놈이 아까 뭐라고 말했지?

“……미쳤어? 전혀.”

미하일은 별소리를 다 들었다는 듯이 두 손을 차가운 물 안에 넣어 깨끗한 물을 퍼 올렸다. 그러고는 얼굴을 가볍게 닦았다. 겨우 웃통을 까고 걸어 다니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그것도 사내놈이 셔츠를 벗었다고 부끄러울 리가 없잖아. 미하일은 짜증스레 손을 움직여 물을 튕겼다.

왜 저래?

골드 드래곤은 어깨를 으쓱이며 차가운 강물에 얼굴을 씻었다. 한동안 숲을 걸어온 둘에게 이 강이 나타난 것은 쉬어 가기에 딱 좋은 타이밍이었다.

그때였다. 새끼 샐러맨더의 꼬리가 휙, 크게 움직였다. 그리고 그 꼬리는 바로 옆에 놓여 있는 옷더미를 지이익 끌었다. 그 광경이 세수를 끝마치고 고개를 들어 올리던 미하일의 눈에 들어왔다. 왕자는 곧바로 빠르게 샐러맨더가 앉아 있는 바위로 걸어오며 입을 열었다.

“야!!”

손을 뻗었다.

미하일이 크게 소리쳤다. 새끼 샐러맨더는 반질반질한 눈망울로 소리치는 왕자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샐러맨더는 그 자세 그대로 꼬리를 천천히 스르륵 내렸다.

첨벙,

커다란 바위 위에 올려 둔 바사미엘 아카데미 교복 두 벌이 맑은 강물에 스르륵 가라앉았다.

“이런.”

아드리안이 팔을 아래로 뻗어 강물에 흘러 떠내려가던 교복을 낚아챘다.

“휴식 시간이 생각보다 더 길어지겠는걸.”

뚝뚝, 그가 들어 올린 옷에서 강물이 떨어졌다.

“이 자식이?”

왕자는 감히 바로 앞에서 주인의 옷을 강물 밑으로 떨어트린 샐러맨더의 목덜미를 한 손으로 잡아 올렸다. 취이익- 샐러맨더는 콧방귀라도 뀌듯이 왕자의 이를 악문 소리에 입에서 불꽃을 뿜어냈다.

“사고 칠 줄 알았어. 하-”

미하일은 전혀 반성하지 않는 샐러맨더와 아드리안을 노려보았다.

“이제 어쩔 거야.”

주르륵- 골드 드래곤은 묵묵히 젖은 옷들을 비틀어 물기를 조금이라도 짜냈다.

“……다행히 날이 좋으니 빨리 마를 거야.”

“지금 우리가 소풍이라도 나온 줄 알아?”

“그래도 젖은 옷을 입고 움직일 순 없잖아.”

저벅저벅, 아드리안은 옷을 주워 들고 미하일에 팔을 크게 뻗었다. 미하일은 짜증스레 들고 있는 샐러맨더를 아드리안에게 넘겼다. 샐러맨더는 목덜미를 잡아 들고 있는 것보다 품 안에 안겨 있는 것이 훨씬 편했던지 아드리안의 품에 안기자마자 왕자에게 작게 콧김을 내뿜었다.

철퍽철퍽, 아드리안은 바위에 올려 둔 샐러맨더와 젖은 옷을 안아 들고 강을 건넜다. 접어 올린 바지가 물살에 부딪혀 밑단이 살짝 젖었다.

“어? 저건.”

옆에서 세찬 물살에도 잠잠히 걷고 있던 미하일이 무언가 발견하고는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는 곧이어 빠르게 그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 바람에 왕자가 물결을 커다랗게 일으켰다. 첨벙첨벙 미하일의 커다랗게 움직일 때마다 옆에서 걷고 있는 아드리안의 바지가 젖어 들었다. 왕자의 바지도 안전하지는 않았다.

“아, 천천히 가라고 천천히…….”

골드 드래곤은 눈살을 찌푸리며 단번에 흠뻑 젖은 교복을 쓸쓸하게 확인했다. 결국 그나마 멀쩡했던 아드리안과 미하일의 바지마저 전부 젖고 말았다.

그때였다.

으악, 하는 소리와 함께 강 중심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던 미하일의 모습이 물속으로 풍덩 잠겼다. 뭔가 미끄러운 돌을 밟은 것이 틀림없었다. 인간이 호흡하지 않고 물속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쪽의 수심이 깊은지 미하일은 한동안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지 않았다.

별짓을 다하는군. 아드리안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에 뛰어들어 미하일의 팔을 빠르게 낚아챘다. 푸핫-! 아드리안의 팔에 이끌려 나온 미하일은 수면 위로 올라오자마자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워낙 물이 맑아서 깊이가 잘 가늠이 안 되나 본데, 조심 좀 해.”

아드리안의 충고에 아랑곳 않고 미하일은 방금 발견한 것을 빠르게 들어 올렸다.

“이거 봐! 안내 표시야.”

글이 조각된 커다란 나무 판자였다. 아드리안의 갈색 눈동자가 번뜩였다.

“도헤니어.”

아드리안은 양각으로 새겨진 조각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장인의 끌이 지나간 조각이 손바닥에 날카롭게 느껴졌다.

맙소사.

둘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그 조각을 바라보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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