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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가용-47화 (47/184)

47화

아드리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동안 모닥불이 타오르는 것을 지켜보았다. 미하일은 건너편에서 누워 눈을 감은 채 조용히 잠든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자?”

드래곤이 다시 한 번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미하일, 자는 거지?”

골드 드래곤이 기다렸던 순간이었다. 미하일은 눈을 감은 채 미동이 없었다. 그의 밝은 속눈썹이 차분하게 내려앉아 훤한 달빛이 그의 얼굴을 도드라지게 강조하고 있었다.

흐음, 아드리안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에는 밝게 빛나는 금색의 눈동자가 아름답게 자리하고 있었다.

아드리안은 본체의 마력을 조금 끌어왔다. 그 부름에 부드러운 금색의 마나 결정들이 골드 드래곤의 주위로 반짝이며 모여들었다. 그는 앉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오른손을 움직였다. 마치 허공을 쓰다듬는 것 같은 움직임이었다.

골드 드래곤의 오른쪽 손으로 모여든 금빛 마나들이 그 자리를 잠시간 맴돌았다. 그것들은 드래곤이 손을 움직일 때마다 무언가 형체를 만들어 내며 제자리를 찾아갔다. 손 바로 아래에 짐승의 얼굴이 생겨나더니, 그 목 아래에 네 발이 생겨났다.

곧이어,

아드리안의 손 아래에는 늠름한 자세의 금빛 늑대가 눈을 감고는 골드 드래곤의 손길에 꼬리를 작게 흔들고 있었다.

헥헥.

넘실거리는 아드리안의 금색 눈동자와 똑같은 색으로 빛나는 늑대가 눈을 감았다. 골드 드래곤이 이마와 목을 시원하게 긁어 줬기 때문이다.

쉿, 골드 드래곤이 검지를 입가에 대어 작게 주의를 주었다. 왕자가 깨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아드리안은 주의를 주던 검지를 왕자를 향해 뻗었다. 곧이어 미하일이 누워 있는 자리를 금색의 가루들이 에워싸 침묵의 마법을 만들어 냈다.

주인의 손짓에 금빛 늑대는 천천히 네발로 걸어가 모닥불 맞은편에 잠들어 있는 왕자 바로 옆에 툭, 주저앉았다. 늑대는 오랜만에 만난 주인을 바라보며 주저앉은 채로 꼬리를 살짝씩 흔들었다.

아드리안은 잘했다는 듯이 늑대를 향해 고개를 몇 번 끄덕였다.

늑대는 그 움직임을 알아들었다는 듯이 주둥이를 크게 벌렸다가 쩝, 하고 닫았다. 그러고는 앞발을 핥으며 아름다운 금빛 털을 정리하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일반적인 늑대와 비슷한 행동이었으나, 왕자의 근처에 누군가 발을 딛는다면 누구보다 빠르게 몸을 일으켜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듬직한 소환수였다.

드래곤은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몸을 공중으로 띄웠다. 어두운 밤하늘에 닿을 듯이 높은 위치에서 아드리안이 발아래의 숲을 한눈에 담았다. 아래에서 봤던 것처럼 울창한 숲이었다. 그리고…… 골드 드래곤은 공중에서 고개를 들어 올렸다. 저 멀리 높은 산이 있었다.

이렇게 눈으로만 봤을 때에는 여기가 무슨 산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골드 드래곤은 산을 향해 몸을 틀어 그곳을 향해 날아갔다. 밝은 금발 머리칼이 그 움직임에 하늘하늘 움직였다.

왕자에게는 어물쩡 모르는 척했지만 생각보다 더 대단한 힘이었다.

풍족한 마나와, 아주 옛날에 길에서 많이 자랐던 폴리렙.

이곳은 아주 오래전의 원시림과 똑같은 환경이었다.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적어도 몇백 년 전의 환경과 아주 유사했다. 골드 드래곤은 툭, 하고 가볍게 높은 나무의 꼭대기에 한 발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나머지 한 발도 천천히 내려 마치 땅 위에 서 있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섰다.

“그래…… 정말 이 산 주위로 마을은 없는데…….”

그런데 왜 이렇게 익숙하지? 아드리안은 팔짱을 낀 채 깊게 공중에서 고민했다. 그는 이 산의 정체가 몹시 궁금해졌다.

드래곤은 반짝이는 금색 눈동자를 슬쩍 감았다. 그러나…… 그의 부름에 열려야 할 레어로 향하는 문이 보이지 않았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이 몸으로는 레어를 열 수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시간대가 정확히 얼마나 될까? 이 시간대에서 나는 뭘 하고 있었지. 본체의 마력을 끌어오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는데. 골드 드래곤이 잠시 생각에 잠겼을 때였다.

왕자의 옆에서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금빛 늑대의 귀가 살짝 움직였다. 저 너머의 울창한 숲의 덤불이 움직였다. 그 움직임에 풀과 덤불이 흔들리며 소리가 났다. 늑대는 무언가 점차 다가오는 소리에 남았던 눈을 슬쩍 떴다. 그러고는 킁! 하고 작게 짖었다. 아주 작았으나 소환사에게는 바로 귀 옆에서 짖은 것처럼 또렷하게 들렸다.

골드 드래곤은 멀리 있는 산을 바라보다 혀를 차며 조금 전 여기까지 날아온 것처럼 빠르게 다시 돌아갔다. 작은 모닥불 바로 옆에서 다행히 왕자는 눈을 감고 아직 잠들어 있었다. 늑대는 골드 드래곤이 천천히 몸을 지면에 내려놓자 몸을 벌떡 일으켜 네발로 걸어왔다.

무슨 일이야.

아드리안은 자신에게 다가온 늑대의 머리 위를 툭툭 무심하게 두드렸다. 늑대는 헥헥거리며 주둥이로 덤불 한쪽을 가리켰다. 골드 드래곤은 그 움직임에 응? 하고 덤불 너머를 빤히 바라보았다. 정말로 덤불 안쪽에 뭔가 있는지 흔들거리며 풀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는 그 덤불로 걸어가 풀숲의 가지 몇 개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그 안에 있던 것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어?

골드 드래곤은 가만히 상체를 숙여 그것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것도 덩달아 조그맣게 까만 눈동자로 빤히 드래곤을 바라보고 있었다. 취이익- 그러고는 입을 조금 벌려 아주 조그마한 불꽃을 뿜어 댔다.

컹! 금빛 늑대가 드래곤의 옆에서 작게 짖었다.

아드리안은 그 소음에 순간 놀라 뒤쪽의 왕자를 바라보았으나 다행히 걸어 둔 침묵의 마법 덕분에 그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였다. 늑대가 낸 위협에 풀숲에서 고개를 쭈욱 내밀고 있던 작은 생명체가 슬쩍슬쩍 길게 뺀 목을 집어넣으며 뒷걸음질 쳐 댔다. 몸집이 아주 작은 것이 새끼인 듯했다.

쓰읍.

골드 드래곤이 옆의 늑대에게 주의를 주면서 턱, 하고 늑대의 머리에 흰 손을 가볍게 올렸다. 스윽스윽- 그 손은 천천히 늑대의 부드러운 털을 쓰다듬었다. 골드 드래곤은 샐러맨더에게 눈을 떼지 않으면서 입을 열었다.

“그래, 잘 찾았다.”

늑대의 머리에 올렸던 두 번 토닥였다.

그가 손을 움직일 때마다, 점점 금빛 늑대의 형체가 금빛으로 흩어졌다. 곧이어 늑대가 있던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골드 드래곤은 그것을 확인한 후 다시 그 어린것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이전에 이렇게 대기에 마나가 많았을 때에는 운이 조금만 좋으면 정령들을 찾을 수 있었다. 그래, 특히 야영할 때면 샐러맨더들이.

자신을 위협하던 늑대가 사라지자, 풀숲에서 웅크리고 있던 샐러맨더가 끔뻑끔뻑 커다란 눈을 감았다 떴다. 그 작은 생명체는 그래도 정령이랍시고 드래곤을 알아본 모양이었다. 새끼 샐러맨더는 신기하다는 듯이 골드 드래곤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취이이익-

조그만 주둥이에서 다시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그러고는 주변을 의식하며 비척비척 풀숲에서 네발로 기어 나왔다. 아드리안은 샐러맨더가 풀숲을 편하게 나올 수 있도록 들고 있던 덤불 가지를 좀 더 높이 들어 올려 주었다.

“아카데미에서 봤던 정령은 아닌데.”

응? 넌 어디서 왔지? 골드 드래곤은 새끼 샐러맨더가 풀숲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자 그것의 머리통을 슬쩍 쓰다듬으며 혼잣말을 했다.

그러자,

취익-!

새끼 샐러맨더가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드래곤의 말에 대답하듯이 짧게 불을 내뿜었다. 샐러맨더는 왕자가 옆에서 잠들어 있는 모닥불로 천천히 기어갔다. 그것은 모닥불이 활활 타오르는 것을 잠시 바라보더니 모닥불을 둘러싼 돌멩이들을 힘겹게 넘어갔다.

“……뭘 하려고.”

골드 드래곤은 여느 나이 많은 것들과 같이 연약한 새끼에게 아주 물렀다. 그는 샐러맨더가 하는 꼴을 뒤에서 바라만 보며 한마디 할 뿐이었다.

투둑, 샐러맨더의 투박한 발길질에 모닥불 가장자리의 돌 몇 개가 무너졌다. 그러나 샐러맨더는 신경도 쓰지 않고 네발을 움직였다. 그것은 결국 활활 불타고 있는 모닥불 한가운데에 꼬리를 말고 자리를 잡았다. 샐러맨더는 용암 속을 헤엄치는 정령이었으므로 모닥불만큼 안락해 보이는 침대는 없었을 것이다.

골드 드래곤은 흠, 하고 한숨을 쉬며 갑자기 쳐들어온 불청객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바로 옆에서 잠잘 때만큼은 아주 천사가 따로 없이 누워 있는 왕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어이, 너희 무리는 어디에 있어?”

퓌이익- 샐러맨더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모닥불 안에서 용을 바라보더니, 곧이어 눈을 감았다.

아무튼 일어나자마자 아주 난리를 치겠구만. 둘 다.

졸지에 어린 것들을 양쪽에 끼고 다니게 생겼다. 골드 드래곤은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모닥불 바로 앞에 앉아 나무에 등을 기댔다. 그는 잘 필요가 없었으니 왕자를 푹 자게 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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