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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가용-45화 (45/184)

45화

8. 초대받지 못한 손님

그래서 일요일 아침부터 두 청년은 아카데미의 중앙 정원의 벤치에 앉아 지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미하일 루스 이네하트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벤치에 앉아 있던 몸을 일으켰다. 매일 훈련을 하던 소년에게 몇 시간이고 한 곳에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한 것은 조금 가혹한 처사였다.

왕자는 굳어 있던 몸을 조금씩 움직였다.

“더 구체적인 가정은 없어? 오늘이라는 건 알겠는데. 하루 종일 기다릴 수는 없잖아.”

“바쁘면 다른 볼일 봐. 나중에 알려 줄게.”

팔랑- 아드리안 헤더는 정원의 벤치에 앉아 읽고 있는 책장을 한 장 넘겼다. 그는 왕자의 불만 어린 투정에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눈치로 독서를 이어 갔다.

왕자는 그 모습을 잠시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보더니 짜증 난다는 듯이 팔짱을 꼈다. 정원의 대리석 조각에 등을 턱- 기대는 순간이었다.

그때였다.

왕자가 조각에 몸을 기댄 채 순간, 고개를 들어 올렸다. 뭔가 느껴졌다. 무언가 잘게 떨리는 진동이 온몸을 훑어 내렸다. 아드리안은 읽던 책을 천천히 덮으며 벤치에서 일어났다.

“……지진이다.”

“그래.”

미하일이 아카데미 본관 건물을 빤히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드드드득- 잘게 대지가 떨렸다. 미하일은 못 박힌 듯 정원에 서 있던 몸을 빠르게 움직였다.

“지금이야! 빨리!”

왕자가 먼저 중앙 정원을 가로질러 뛰었다. 아드리안은 왕자가 달려가는 모습을 보고는 잠깐 고민했다. 어제 생각했던 대로였다. 정말로 지진이 왔군. 골드 드래곤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일이 너무 생각대로만 흘러가도 문제였다.

드드드드-

잘게 떨리던 대지가 조금 더 세게 요동쳤다. 마치 빨리 같이 달려가라는 듯이.

“알았어.”

아드리안은 마지못해 바닥에 붙어 있던 발을 떼어 냈다. 우선은 그를 부르는 곳으로 움직였다.

터벅터벅.

좁은 지하 돌계단에 학생 두 명분의 구두 소리가 울렸다.

“진짜로 그 검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아?”

왕자의 옆을 걷고 있는 아드리안이 물었다. 왕자가 엄청난 행운으로 그 샐러맨더를 찾는다 해도 그는 정령을 붙잡고 검을 토해 내게 만들어야 할 것이었다.

“내 검이야. 검을 잃어버리는 놈은 기사가 될 자격이 없어. 실수를 만회해야지.”

그건 그래. 아드리안은 속으로 왕자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무척이나 현실성 없고 대책 없는 자세이긴 했다. 어떻게 샐러맨더를 찾고, 검을 토해 내게 만들지 그런 구체적인 계획은 저 작은 머리통에 없을 테니.

차라리 1만 틸론을 벌어서 펠렌 디프스의 검을 손에 넣는 것이 더 빨라 보였다. 훨씬 안전하기도 하고.

드드드득-!

대화하며 걸어가는 둘을 재촉하듯이 지진이 한 번 더 땅을 뒤흔들었다.

돌계단을 걸어 아래로 내려가자, 이전에 연금술 교수를 따라갔던 강의 건물의 지하가 나왔다. 연금술사의 방 바로 옆. 그곳에는 철제문이 있었다.

그 문이었다.

미하일은 문손잡이에 손을 올린 채 뒤에 서 있는 아드리안을 한번 확인했다. 아드리안은 어서 문을 열라는 듯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왕자는 그것을 확인하고 손잡이에 힘을 줘 단번에 철제문을 열었다.

문 너머는 울창한 숲이었다.

철제문이 열리면서 닿은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바람에 앉아 있던 새 한 마리가 푸드덕- 날아갔다. 경쾌한 새소리가 아드리안과 미하일의 정적을 메워 주었다.

“이번엔 숲이네.”

아드리안이 중얼거렸다. 그는 성큼성큼 문을 넘어 울창한 숲으로 들어갔다. 미하일도 그 모습을 보고는 천천히 문 안으로 들어갔다. 왕자가 문을 모두 넘어오려는 참이었다.

“잠깐.”

흰 손에 가로막힌 왕자는 의문 섞인 표정으로 아드리안을 바라봤다.

“위험할 수도 있어. 우선 문이 갑자기 생겼던 것처럼 갑자기 사라질 수 있으니…….”

아드리안은 온실에서 챙겨 온 상자를 흔들었다. 매일 온실에서 사용하는 터라 가지고 다니고 있었다. 달칵, 상자를 열자 푸른 염료가 가득했다.

“표시를 해 두자.”

“좋은 생각이야.”

왕자는 아드리안이 푸른 염료를 검지로 크게 덜어 내어 문 앞의 땅에 지익- 긋는 것을 기다려 주었다. 까악- 까악- 저 멀리서 까마귀가 음산하게 우는 소리가 들렸다. 나무가 너무 울창하고 빼곡하게 서 있어 어딘가 모르게 소름 끼치는 숲이었다. 미하일은 눈을 조금 가늘게 좁혀 저 멀리 지평선을 보았다.

“숲이긴 한데. 저 멀리 산이 있네. 여기가 어디지?”

“글쎄.”

슥- 아드리안은 표시를 마친 후 손가락에 남은 염료를 옷에 아무렇게나 닦았다. 그는 숙였던 몸을 천천히 일으키며 왕자가 바라보고 있는 방향을 응시했다.

“그건 이제 알아봐야지.”

미하일은 그가 표시했던 바닥의 선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들이 들어왔던 문은 여전히 열려 있었다. 그 문 너머로 바사미엘 아카데미의 연금술사의 방이 보였다.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후우- 하아-

미하일은 눈을 감고 몸통을 크게 부풀렸다가, 꺼트렸다. 숲의 산소를 듬뿍 들이마신 것이었다. 그 행동에 왕자의 아름다운 은색 속눈썹이 도드라졌다. 아드리안은 왕자가 저렇게 호흡하는 의미를 아까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골드 드래곤은 이곳에 발을 내딛자마자 온몸으로 느꼈다.

“……이상해.”

“뭐가?”

아드리안의 얼굴이 옆으로 살짝 기울어졌다. 그는 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디 말해 보라는 듯이.

“원래 이렇게 대기에 마나가 많았던가?”

미하일의 속눈썹이 삽시간에 올라가 번뜩- 왕자의 붉은 눈동자가 보였다.

“이곳은…… 이상해.”

골드 드래곤은 왕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조금 전까지 그들이 있었던 바사미엘 아카데미의 대기와는 완전히 달랐다. 분명 대기에 마나가 희박해 소수의 인원들만 마법을 구사할 수 있었는데, 이 숲의 마나는 과할 정도로 풍부했다. 피부에 느껴지는 마나에 골드 드래곤은 오랜만에 참았던 숨을 내뱉듯이 상쾌하게 호흡했다.

왕자의 말이 맞았다. 이 숲은 이상했다.

어?

아드리안은 조금 과장된 소리를 내며 상체를 숙였다. 그는 바닥의 무언가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래.”

미하일이 그 모습을 확인하고 질문했다.

“이 톱날 모양 잎을 봐.”

왕자는 짜증스레 고개를 다른 쪽으로 고개를 획 돌렸다.

“아, 지금 그깟 풀이 뭐라고.”

아드리안은 한껏 심각한 표정을 하고는 왕자에게 말했다.

“톱날 모양 잎과 땅까지 올라와 있는 잔뿌리…… 이건 폴리렙이야.”

골드 드래곤의 심각한 표정에 덩달아 왕자가 무언가 느꼈던지 바닥의 풀을 향해 상체를 함께 숙였다. 왕자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뭔데.”

갑자기 약초 채집을 하자는 것은 아닐 테고 말이야. 미하일이 중얼거렸다. 아드리안의 시선은 여전히 그 풀에 고정되어 있었다.

“폴리렙은 마나를 먹고 자라나는 식물로 예전에는 길거리에서 아주 쉽게 볼 수 있었지. 하지만 요즘은 희귀한 식물들 중에 하나야. 요즘은 대기 중에 마나가 많이 옅어져서 따로 조성한 인공적인 환경이 아니라면 자연에서 발견하는 것은 사막에서 물의 정령을 발견하는 것만큼…….”

제기랄, 아드리안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이상할 정도로 익숙한 마나로 가득 찬 공기와 폴리렙. 처음부터 알아차렸어야 했다. 골드 드래곤은 속으로 욕을 하며 그들이 넘어왔던 문이 있는 곳을 확인했다.

다행히 여전히 철제문 너머로 바사미엘 아카데미의 지하가 보였다.

“지금이라도 아카데미로 돌아가야 해.”

아드리안이 옆에 서 있던 미하일의 팔을 세게 손으로 쥐어 문 쪽으로 당겼다. 왕자는 “왜?”라고 대답하며 아드리안의 거센 손힘에 어쩔 수 없이 그쪽으로 몇 걸음 걸었다. 제멋대로 팔을 잡아끄는 것은 불쾌했으나 그의 표정을 봤을 때 무슨 심각한 일이 있는 듯했다.

그때였다.

끼이익-

“……어?”

미하일은 손을 뻗으려다가 멈칫, 몸을 굳혔다. 이상한 소리였다. 철로 만들어진 문이 닫히는 소리처럼.

쾅!

그리고 문이 닫혔다.

“안 돼!”

왕자가 크게 소리치자, 그 소리에 놀란 새 몇 마리가 푸드득- 하고 날아올랐다. 철제문은 닫히자마자 처음부터 이곳에 없었다는 듯이 단번에 사라졌다. 미하일은 비어 있는 자리에 손을 휘적여 보았다. 마나의 흔적은 당연하게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건 계획에 없었는데.”

아드리안이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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