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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가용-41화 (41/184)

41화

뭐지 이게?

갑자기 언덕에 혼자 남겨진 아드리안 헤더는 정신을 차릴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골드 드래곤의 양쪽 눈 아래에 푸른 염료가 빛나고 있었다. 손가락에 남은 염료를 지그시 바라보던 아드리안은 어깨를 으쓱이며 손가락을 입안에 가져다 댔다. 마나가 느껴졌다.

호흡과 관련된 마법이었다.

아드리안은 카일이 했던 것처럼 상자의 옆면을 눌러 납작하게 만들었다. 아카데미 교복 재킷의 주머니에 보관하기 딱 좋은 크기였다.

골드 드래곤은 멈춰 있던 발을 바닥에서 뗐다.

그러고는 가볍게 달려 폭포 아래로 뛰어들었다. 풍덩! 커다란 물보라를 일으키며 아드리안이 온실 속 호수에 떨어졌다. 시원한 물이 얼굴과 몸 전체를 스치는 것이 느껴졌다. 오랜만의 수영이었다.

온실의 실내에 있는 것 치고 호수는 아주 깊었다. 호수가 아니라 거의 바다 수준인데? 골드 드래곤의 부드러운 금발이 물속에서 넘실거렸다. 저 멀리 온실의 경계선이 보였다. 그때 걸었던 호수는 인공 호수였군. 아드리안은 호수의 저 끝 지점을 바라보려 눈을 좁게 떴다. 이 온실을 건설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골드가 들었을 것이다.

흥, 드래곤은 인간들의 돈지랄을 슬쩍 비웃었다.

아드리안은 시험 삼아 후우- 하아- 호흡을 해 보았다.

뛰어들기 전에 발랐던 염료 덕분인지 물속에서도 호흡이 가능했다. 물론 이 정도 호흡 안 한다고 죽지는 않았지만 카일의 눈에 평범해 보이려면 필요한 절차였다.

그때였다.

호수의 바닥에서 누군가가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카일이였다. 그는 호수 바닥에 있는 식물 앞에서 손짓하며 아드리안을 부르고 있었다. 아드리안은 귀찮은 표정을 가까스로 숨긴 채 더 깊은 호수로 헤엄쳐 내려갔다.

부글부글, 카일이 무언가 말하려고 입을 움직였다. 그때마다 기포가 볼썽사납게 그의 입에서 뿜어져 나왔다.

카일은 손과 발을 모두 사용하며 수중에서 몸짓으로 표현했다. 아드리안은 눈앞의 인간이 말하려고 하는 바를 이해하려 애썼다. 그는 바닥의 식물을 몇 번 검지손가락으로 가리키고, 그의 손바닥으로 정성스럽게 쓸었다.

이. 식물들을. 돌봐야 해- 라는 뜻 같았다.

별로 쓸모는 없는 내용이었다. 아드리안은 성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골드 드래곤은 고개를 들어 수면 위를 바라보았다. 밝은 햇살이 푸른 호수 아래까지 뚫고 들어왔다. 보기 좋기는 하네. 스윽- 골드 드래곤의 다리를 물고기 한 마리가 몸통 전면을 부비고 스쳐 지나갔다. 그것은 어느새 호수 바닥 저 멀리까지 헤엄치고 있었다.

카일은 아드리안에게 호수 바닥의 이곳저곳을 보여 주었다. 햇볕이 들어오는 곳에 있는 해양 식물들과 산호 숲에는 사람 머리통만 한 해파리가 조용하게 떠다니고 있었다. 둘은 해파리 떼 사이를 헤엄쳐 폭포가 떨어지고 있는 부분의 언덕으로 이동했다. 호수에 잠겨 있는 언덕의 밑 부분에는 작은 동굴이 있었다.

동굴 안에는 어두운 곳에서 살아가는 동식물들이 서식하고 있었다. 카일은 ‘이제 다 봤지?’라는 표정을 한번 짓고는 검지손가락을 까딱였다.

아드리안은 그 손짓에 카일에게 다가갔다. 그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눈 아래에 그려진 염료를 가리켰다. 그것은 어느새 빛을 약간 빛을 잃어 연한 푸른색 빛을 띠었다.

이거. 삼십.

삼십 분 정도 효과가 지속된다는 말이었다. 아드리안은 그가 전해 주는 지식을 대강 주워 삼켰다. 그러자 카일은 똑똑한 신입생이 마음에 든다는 듯이 씨익- 웃었다.

그곳에는 아까 그들이 올랐던 계단이 있었다. 그것은 어두운 호수 바닥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호수에 잠긴 계단은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푸른 물과 동화되어 식물들에게 자리를 내어 준 상태였다. 둘은 계단을 따라 수면 위를 향해 물살을 가르며 헤엄쳤다.

푸하-

카일은 호수 위로 올라오자마자 상쾌한 산소를 세차게 들이마셨다.

적당한 온도의 호숫물이 젖은 머리칼과 교복에서 뚝- 뚝 떨어졌다. 아드리안도 마찬가지로 호수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는 젖어서 엉망이 된 금발을 짜증스레 손가락으로 빗어 넘겼다.

“선배.”

아드리안이 먼저 입을 열었다. 몸을 말리는 마법 장치가 마련된 건가?

그는 함께 걸어 나온 호수 밖을 휙휙 살펴보았다. 장치가 아니라면 마법이라도 걸어 주는 건가? 대외적으로는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평민으로 행세 중인 드래곤이 고개를 기울였다. 카일은 젖은 머리칼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물을 뚝뚝 짜내고 있었다.

그는 친절하게 몸을 말릴 주문을 걸어 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다 젖었는데요? 이러고 어떻게 기숙사로 돌아갑니까.”

읏차, 카일은 몸을 일으켜 얕은 호수 밖으로 걸어 나갔다.

“엉?”

그는 아직 발목 높이의 호수에 서 있는 아드리안을 뒤돌아 바라봤다. 뭔가 또 장치가 있을 것이었다. 이 온실을 관리해야 한답시고 호수에 뛰어들어야 하는데, 매번 이런 상태로 기숙사 방으로 돌아가는 것은 최악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드리안은 아직 카일을 믿고 있었다.

“괜찮아. 그러고 가도 돼. 오르디나스 회원이라고 말하면 다 이해할 거다.”

뚝, 뚝 교복과 젖은 머리에서 물이 떨어졌다.

이런 개-

아드리안은 속으로 욕을 하며 차마 선배를 때릴 수는 없어 조용히 교복을 비틀어 물을 짜냈다. 오르디나스 회원이라고 하면 다 이해하긴. 바사미엘에서 이 사교 클럽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 대강 이해가 됐다.

끼익-

기숙사 방문이 열렸다. 침대에 앉아 검술 서적을 읽고 있던 미하일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저벅, 저벅. 룸메이트의 발소리가 이상했다. 왕자는 이상한 발걸음에 기숙사 바닥을 봤다가, 고개를 들어 룸메이트의 얼굴을 확인했다.

아드리안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푹 젖어 있었다.

“……?”

미하일은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냐는 눈빛을 했다.

그러나 흠뻑 젖은 아드리안이 더는 묻지 말라는 표정으로 터벅터벅 기숙사 방으로 들어왔다. 그가 걸을 때마다 아카데미 기숙사의 고급 러그가 젖었다. 뚝뚝 머리칼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왜 그래?”

“묻지 마.”

아드리안은 짜증 난다는 듯이 대꾸하고는 욕실로 들어갔다. 왕자는 사교 클럽의 신고식이 꽤 거창하군-이라고 넘겨짚었다.

***

아드리안은 애써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수업이 시작되고 나서부터 연금술 교수인 에드윈 놀런이 수상쩍은 눈빛을 계속 보내왔기 때문이다. 왕자가 조용하게 중얼거렸다.

“교수가 계속 이쪽을 보는데? 나한테서 좀 더 떨어져 앉아.”

연금술 수업에는 관심 없는 왕자가 적당히 뒤쪽에 함께 앉은 아드리안의 다리를 책상 밑으로 툭툭 쳤다. 교수가 하도 이쪽을 바라보는 바람에 수업을 열심히 듣는 척해야 하는 것이 고역이었을 것이다.

“……왜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왕자에게 아드리안이 약간 고개를 숙여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럼 나를 보는 거겠냐.”

“…….”

미하일의 말이 맞았다. 에드윈은 아까부터 이쪽에 이상한 눈짓을 하고 있었다. 뭐지? 잘못한 것은 없을 텐데. 골드 드래곤은 그간의 행적을 돌아보았으나 에드윈이 저런 눈빛을 보낼 정도의 짓을 한 기억은 없었다.

그러나 교수는 수업 중에는 그 이유에 대해 말해 줄 생각이 없던 모양이었다. 에드윈은 특별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수업을 끝까지 이어 갔다.

연금술 학부 수업이 끝나고, 아드리안이 한숨을 쉬며 책을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아드리안.”

에드윈이 강의실 가장 앞의 교단에서 아드리안을 불렀다. 지금껏 들어 본 교수의 말투 중 가장 화사하고 온화한 목소리였다.

“……예?”

당황한 음색으로 대답하는 아드리안에게 교수가 손짓으로 불렀다. 아드리안은 책을 정리하다가 마지못해 교단 앞까지 걸어갔다.

“오르디나스의 회원이 되었다면서요. 새 학기가 시작하자마자 이 주밖에 되지 않았는데 신입생이 들어오다니. 신기록이에요!”

교수가 크게 웃었다. 그는 여전히 잔뜩 구겨진 셔츠를 입고 있었다. 아드리안은 술 냄새에 표정을 약간 찡그렸다. 에드윈 교수는 아드리안 헤더의 등을 세게 퍽, 하고 두드렸다.

“모르는 것 있으면 편하게 물어보세요. 알겠죠?”

“……네. 감사합니다.”

설마 오르디나스의 회원이 된다는 게 에드윈의 수제자가 된다는 뜻은 아니겠지? 아드리안은 최악의 가정을 해 보다가 고개를 작게 휙휙 저었다.

아닐 것이었다.

아니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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