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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가용-37화 (37/184)

37화

“그래 무슨 볼일이야?”

카일 드바이시가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자 커다란 몸이 드러났다. 그는 엉망으로 구겨진 아카데미 교복에 넥타이를 착용하고 있지 않았다.

아카데미의 교복 특성상 넥타이의 색으로 각자의 학년을 구분했는데, 일 학년은 노란색, 이 학년은 파랑, 삼 학년은 붉은색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 학년은 초록색 넥타이를 착용하는 것이 아카데미의 학칙이었다.

그중 일 학년의 노란색 넥타이는 아카데미에서 고안해 낸 넥타이 색의 의미도 나름 있었으나, 학생들끼리는 햇병아리로 불렸다.

아무튼 카일은 학년을 나타내는 넥타이를 착용하고 있지 않았는데, 한스와 친한 것을 보니 아마 이 학년일 거라 예상되었다.

“안녕하세요. 한스 선배한테 들었는데…….”

“와, 한스! 네가 이제 선배야?”

갑자기 카일이 무척 밝은 얼굴로 한스의 등을 퍽! 하고 두드렸다.

“아, 선배는 빨리 졸업이나 하세요.”

한스는 귀가 아프다는 듯이 미간을 찡그리고 대답했다. 둘이 무척 친해 보였다. 아드리안은 이 학년이라 예상했던 카일의 학년을 한스의 말에서 짐작할 수 있었다. 졸업 학년이 이렇게 클럽 부실에서 잠이나 자고 있다고?

잠시간 카일을 한심하게 바라보던 아드리안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약속을 잡은 이유는 그 이상한 문 때문인데요.”

아드리안의 말에 카일의 눈에 순간 이채가 돌았다. 오? 그의 입에서 감탄사가 나왔다. 카일은 소파에 대충 기대 있던 몸을 일으켰다.

“이상한 문……. 본관 지하의 그?”

그는 중얼거리며 천천히 팔짱을 꼈다. 흠- 그는 고민하듯이 잠시간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너희도 봤구나.”

“네, 선배는 어떠셨습니까?”

“다른 애들과 별로 다를 건 없어…… 혹시 그 문으로 들어갔나?”

“네.”

“……뭐?”

카일이 당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문에 진짜 들어간 사람이 있다니. 겁도 없는 놈들이었다.

“그 숲에 얼마 동안 머물렀지?”

카일의 질문에 아드리안이 고개를 기울였다.

“저희가 들어간 곳은 숲이 아니었습니다.”

“그래? 그러면 어디였어.”

“용암 호수요.”

용암 호수? 카일이 한스를 향해 고개를 돌려 그의 표정을 확인했다. 신입생들이 말한 것이 진짜인지 확인하는 절차였다. 한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카일은 그것을 확인하고는 씨익 웃었다.

“와- 이거 신입생들이 아주 배짱이 크구만?”

그냥 숲이어도 선뜻 들어가기 꺼림칙했던 문이었다. 그런데 용암 호수를 보고도 들어갔다고?

“이상한 문이라…… 우리 오르디나스와 그 문은 악연이 아주 깊지…….”

카일은 팔짱을 낀 채로 손가락을 두어 번 두드렸다. 곧이어 고개를 휙, 돌렸다.

“어이, 그거 어디에 놔뒀었지?”

그러자 반대쪽 벽의 창가에 편하게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던 남자가 후우- 하고 연기를 내뿜으며 대답했다.

“뭐?”

“우리 약초밭 일지 말이야.”

“아 그거?”

그는 반대편 손을 들어 어떤 곳을 가리켰다. 그러고는 카일을 도와주려 몸을 일으키려 했다.

“저기 있을걸? 아마.”

“좋았어. 아냐. 내가 찾을게 넌 네 볼일 봐.”

카일은 고개를 가볍게 좌우로 흔들어 남자를 말렸다. 남자가 가리킨 곳은 너저분하게 널려 있는 양피지 조각들이 불규칙적으로 모여 있는 한쪽 구석이었다.

“자, 찾아볼까?”

그는 아카데미 교복 소매를 걷어붙이며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아드리안과 미하일에게 눈짓했다.

“뭐 해. 돕지 않고.”

“……네.”

멍하니 서 있던 아드리안이 가장 먼저 몸을 움직였다. 미하일은 마지못해 그를 뒤따라 먼지 구덩이로 걸어 들어갔다.

한스만 덩그러니 남겨져 있는 방향으로 카일이 ‘넌 안 움직이고 뭐 하냐.’라는 눈빛을 보냈다.

“……뭐? 나도? 난 그냥 소개만 시켜 주러 온 거야.”

한스가 소심하게 중얼거렸지만 카일은 더 설명하기도 귀찮다는 듯이 손을 가볍게 움직였다.

“너도 궁금해했잖아. 이리 와서 빨리 도와.”

한숨을 쉬며 마지막으로 한스까지 손을 보탰다.

***

잠시 후, 한스가 투덜거렸다.

“뭐가 더 있기는 해?”

그는 손에 들고 있는 양피지 하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다 결국 다른 내용인 것을 알고 쓸모없는 내용의 양피지를 모아 놓은 곳으로 던졌다. 네 명은 먼지가 굴러다니는 카펫 바닥에 앉아 있었다.

그들의 옆에는 수북이 쌓인 양피지 더미가 있었는데 그것들은 양쪽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이상한 문과 관련이 조금이라도 있는 것과 없는 것. 당연히 관련 없는 것의 종이 더미가 훨씬 높았다.

관련이 있다는 것은 몇 장 정도였다. 처음에 이야기 나왔던 ‘약초밭 일지’ 외에는 메모처럼 휘갈겨 써 놓은 양피지 조각들이 다였다.

“아까부터 궁금한 점이 있었는데.”

아드리안은 보던 것을 관련 없는 것들이 모여 있는 더미에 던졌다. 이번에도 꽝이었다.

“이상한 문이랑 지금 찾은 약초밭 일지가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아, 내가 설명을 안 했나?”

양피지를 뒤적이던 학생 세 명이 ‘네가 설명도 안 해 주고 바로 이걸 시켰잖아.’라는 눈으로 카일을 노려보았다. 아드리안과 미하일도 마찬가지였다.

“그 이상한 문. 다들 그 너머는 달랐지만 말이야.”

카일은 찾아낸 것들을 모아 바닥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는 “이리 와 봐.”라고 말하며 오르디나스의 중심에 있는 커다란 테이블로 걸어갔다.

쿠당탕탕!

그러고는 테이블에 이미 놓여 있었던 컵과 서류들을 한 팔로 크게 쓸어 바닥에 떨어트렸다.

“으악! 또 웬 지랄이야?”

클럽의 구석에서 자기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던 학생 하나가 몸을 벌떡 일으키며 불만을 표시했다.

“야! 내 컵 깨졌잖아. 미쳤냐?”

심지어 다른 창가에 앉아 있던 학생은 보던 책을 이쪽을 향해 집어 던졌다. 턱, 책은 크게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오다가 바닥에 떨어졌다. 카일은 아무렇지도 않게 별일도 아니란 듯이 두 사람에게 고개를 가볍게 흔들고 말았다.

“어, 미안. 미안.”

아드리안은 자신의 발치까지 굴러온 유리 조각을 툭 하고 건드렸다. 아까 이 클럽에 들어올 때 땅에 밟혔던 유리 조각이 어떤 식으로 생겼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카일은 테이블 위를 완전히 비운 후, 방금 찾았던 조각들을 그 위로 휙 하고 던졌다. 그는 그중 가장 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 ‘약초밭 일지’라는 것을 손에 들었다. 얇은 책 같은 일지를 팔락, 팔락 넘기며 카일은 고개를 가끔씩 끄덕였다. 그는 일지를 넘기며 테이블 근처에 서 있는 아드리안과 미하일, 한스에게 어서 의자에 앉으란 듯이 손짓했다. 그들은 그 손짓에 의자를 하나씩 차지해 앉았다.

그는 혼자 읽던 일지의 어떤 면을 탁! 하고 테이블 위에 펼쳐 놓았다. 아드리안은 테이블에 조금 상체를 기울여 그 내용을 확인했다.

“우리 클럽이 아카데미의 약초밭과 온실을 관리하고 있는 건 알지?”

“네.”

“그 약초밭이랑 온실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클럽을 운영하고 있는데 말이야. 부원들 활동비도 주고.”

그런데요? 아드리안이 약초밭 일지에 향해 있던 고개를 위로 들어 올렸다.

“너희도 그 문에 들어가기 전에 지진을 느꼈지? 문이 열릴 때마다 바사미엘 아카데미에는 크고 작은 지진이 있어. 그 망할 지진!”

쾅! 카일이 일지의 어떤 부분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그 소란에 주변에서 놀고 있던 부원들이 작게 욕을 했다. 소년들은 카일이 내리친 곳을 바라보았다.

그날의 일지가 무척이나 성질 급한 필체로 쓰여 있었다.

· ──── ·????· ──── ·

7월 9일(수)

지진 때문에 올해 수확하려 했던 케비쉬 묘목이 모두 쓰러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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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비쉬 묘목이 얼마나 섬세한 줄 알아?”

카일은 거대한 몸에 걸맞지 않게 ‘섬세함’이라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그의 투박한 손가락을 유려하게 자신의 앞에 펼쳤다.

“그리고 그 묘목이 얼마나 비싼지? 케비쉬 묘목의 열매는 우리 클럽의 주 수입원인데…… 지진 때문에 버석버석하게 말라 가고 있다고. 그 모습이 얼마나 안타까운지…….”

그는 곰 같은 손에 얼굴을 파묻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때였다.

아드리안이 팔을 번쩍 들었다. 골드 드래곤은 케비쉬 묘목 따위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것보다 더 궁금한 점이 있었다.

“……왜?”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지금 이 대화에서 질문할 것은 없었을 텐데? 의아해하며 말을 멈춘 카일에게 아드리안이 입을 열었다.

“선배님. 혹시 오르디나스의 활동비는 얼마인가요.”

아드리안의 따뜻한 밀빛의 눈동자에 이채가 돌았다. 인간들이 드문 온실에서 유유자적하며 이상한 문에 대한 연구도 하고, 약초도 키우면서…… 심지어 틸론도 벌 수 있는 기회였다. 골드 드래곤은 이 중요한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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