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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가용-36화 (36/184)

36화

수업이 모두 끝난 화요일 오후였다. 한스와 이상한 문에 대한 약속이 잡혀 있었기 때문에 아드리안과 미하일은 본관 건물에서 빠르게 나와 중앙 정원으로 향했다.

그들은 방금 전까지 올해의 상품에 대한 방송을 듣고 있었다.

“1만 틸론…….”

미하일 루스 이네하트가 정원을 걸으며 중얼거렸다. 골드 드래곤은 그런 왕자를 힐끔 바라보고는 물었다. 애써 믿을 수 없는 현실을 외면하려는 시도였다.

“그 검은 하나밖에 없겠지?”

“진품이 맞다면 당연히 하나밖에 없어.”

“……그래, 그렇겠지.”

시도는 바로 실패했다.

그리고 왕자가 가품을 가지고 다닐 리가 없었다. 그것도 중요한 전쟁터에 출전하면서 가지고 간 검이었다.

……진짜 예지몽이라고?

아드리안은 마음의 한쪽에서 꺼림칙한 느낌을 떨쳐 내지 못했다. 마치 진짜 현실에서 맞닥뜨린 장면처럼 실감 나는 꿈이었다.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이는 미하일의 은발과 붉은 눈이 떠올랐다.

이번 유희는 이상했다. 카를로 데 이네하트와 다녔던 그 유희처럼 이상한 일투성이였다. 아무래도 저 가문의 인간들과 상성이 좋지 않은 것 같았다. 정말로 그 꿈이 예지몽이었는지 확인하는 방법은 직접 왕자를 지켜보는 방법밖에 없었다.

“일등이랑 이등 상품 차이가 왜 그렇게 크지?”

“그러니까 말이야. 그 쓸모없는 바이올린은 겨우 5천 틸론밖에 안 하던데.”

“……잊은 것 같은데, 너 겨우 1틸론도 없다 지금?”

아드리안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배짱이 큰 것과 별개로 현실 감각이 뒤떨어진 것은 별로였다.

***

한스는 약속을 잘 지키는 편인지, 시간에 딱 맞추어 중앙 정원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좋았어. 틸론은 확인했어.”

그는 만나자마자 약속된 3틸론을 받아 갔다. 아드리안은 손등에서 잠시 떠올랐다가 사라진 숫자를 확인했다. 순식간에 12틸론이 남았다. 그래도 옆의 왕자보다는 12틸론이나 많다는 것에 마음에 위안을 받았다.

“내가 소개해 줄 녀석의 이름은 카일 드바이시야. 바로 가 볼까?”

한스는 씨익 웃으며 본관 옆의 작은 건물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직 신입생들은 가 본 적 없는 건물이었다.

“아, 너희 아직 사교 클럽에는 안 들어갔지?”

“네.”

아드리안과 미하일이 동시에 대답했다. 사교 클럽까지 들어갈 여유가 없었다. 무엇보다 둘은 클럽이라는 제도 자체에 관심이 없었다. 열심히 설명해 준 일리야 하이네어에게는 미안하지만 마법학 수업이 끝나고 들었던 마법 학부의 사교 클럽 앰버에 대한 인상도 별로였다.

“신기하네. 미하일은 당연히 하운즈에 들어갈 줄 알았는데.”

“하운즈?”

미하일이 조용히 걸어가다가 반문했다. 한스는 왕자의 질문에 곧바로 대답해 주었다.

“하운즈를 아직 모르는구나? 기사 학부생들의 사교 클럽 이름이야.”

“클럽 이름이 왜 그 모양입니까?”

“하하, 웃기지? 그런데 기사 학부 놈들은 싫어하는 척하면서 은근히 좋아하더라고. 이상한 놈들이야.”

미하일은 검을 좋아하는 것이지 사교 클럽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라 고개를 저었다. 한스는 그 반응에 “하긴, 하운즈에 들어가면 귀찮을 것 같긴 하더라.” 하고 대답했다. 옆을 걷던 아드리안이 한스에게 물었다.

“선배님은 클럽에 들어가셨나요?”

“나?”

한스가 웃으며 아드리안을 바라보았다.

“당연하지. 예술 학부의 사교 클럽 빈야드에 들어가있는데…… 딱히 별 활동은 없어. 각자 플레이가 원칙이라.”

“특이하네요.”

예술가들이라 그런가. 아드리안은 지극히 편협한 판단을 내렸다. 한스는 그 뒤로 “꼭 예술 학부가 아니어도 들어올 수 있으니 빈야드도 일 학년 때 들어올 클럽으로 추천해.”라고 주절거렸고, 아드리안은 선배의 열정적인 설명에 대충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셋은 어떤 건물의 앞에 도착했다.

“이게 사교 클럽들이 사용하는 공간이야. 카일 드바이시가 오늘만 딱 시간이 난다 그래서…… 직접 찾아오라 그러더라고.”

한스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뒷목을 쓰다듬었다. 그는 슬쩍 다른 곳을 바라보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두 신입생들에게 말했다.

“이런 일에는 제일 믿을 만해서 소개해 주기는 하는데…… 워낙 이상한 놈이라…….”

어떤 인간이길래 저렇게 뜸을 들이는 거지?

“네, 괜찮습니다. 가시죠.”

아드리안이 한스의 머뭇거림을 단칼에 잘라 냈다.

***

한스가 데려간 그 건물의 커다란 문을 열자, 중앙 현관을 중심으로 각 클럽으로 향하는 커다란 계단들이 다섯 방향으로 나 있었다. 셋이 그 건물로 들어가자 커다란 문이 조용히 등 뒤에서 닫혔다. 그들이 들어간 중앙 현관에는 부드러운 자줏빛 러그가 바닥 전체에 깔려 있었다.

“바사미엘에 정식 등록된 클럽은 이렇게 다섯 개야. 대신 비공식 클럽은 셀 수도 없이 많으니까 천천히 생각해 보는 게 좋을걸.”

아드리안과 미하일은 로비의 한편에 마련되어 있는 클럽 하우스의 지도를 바라보았다. 저 커다란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각 사교 클럽의 공간으로 이어지는 방식이었다.

“어느 클럽이죠?”

아드리안이 한스에게 질문했다.

“바로 오른편이야. 오르디나스. 정령 학부와 연금술 학부의 사교 클럽이지.”

오르디나스라면…….

“이름이 특이하군요.”

“고대어를 잘 아나 봐. 무슨 질서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나도 무슨 뜻이었는지 자세히는 기억 안 나.”

그렇군요, 아드리안은 별것 아니라는 듯이 말하며 슬쩍 웃어 주었다.

한스의 기억이 맞았다.

오르디나스. 고대어로는 ‘자연의 질서’라는 뜻이었다. 인간들에 걸맞게 세계를 멋대로 나누는 오만한 단어였다. 그리고 고작 아카데미의 사교 클럽 이름으로 쓰일 단어는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더 무겁고…… 드래곤의 눈앞에 대륙의 근원을 움직이는 알 수 없는 힘을 느꼈던 순간이 스쳐 지나갔다. 천장의 아름다운 벽화와 소름 끼치는 천사 그림이 갑자기 떠오른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골드 드래곤은 어깨를 으쓱이며 걷는 것에 집중했다. 아무리 그가 노력해 보아도 인간들의 생각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지도에서 표시된 것처럼 로비의 오른쪽에 있는 커다란 계단을 올라가자 ‘오르디나스’ 라고 유려하게 쓰여진 문이 보였다. 한스는 그 문을 당당하게 열었다.

커다란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윽, 미하일은 문이 열리자마자 풍겨 오는 이상한 냄새에 코를 소매로 막았다. 이게 무슨 냄새지? 왕자는 눈을 찌푸리며 내부를 둘러보았다.

오르디나스의 클럽실에는 몇 명의 학생들이 있었다. 클럽의 내부는 난장판이었다. 원래는 아주 클래식한 분위기였을 격식 있는 벽지와 높은 천장의 샹들리에는 더러워지고 깨진 지 오래였다.

저벅, 아드리안은 눈썹을 들어 올리며 아카데미 구두를 살폈다. 구두의 밑창에 깨진 유리 조각이 박혀 있었다. 클럽의 중앙의 테이블은 텅 비어 있었다. 대신 클럽의 부원들은 각자 다른 자리에 앉아서 제 할 일을 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너저분한 테이블 위에서 확대경으로 무언가를 관찰하고 있던 학생 하나가 고개를 들어 올려 방금 들어온 셋을 보고는 아는 척을 해 왔다.

“카일 찾아?”

그녀는 한스의 볼일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한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 학생은 자리에서 일어나 구석으로 걸어갔다. 그녀가 걸어간 곳은 구석의 커다란 소파였다. 거기에는 책 한 권을 펼쳐 얼굴 위에 얹고 잠들어 있는 학생이 하나 있었다. 그녀는 귀찮다는 듯이 소파를 툭툭 발로 찼다.

음…… 아, 좀만 더 잘게. 제발…….

웅얼거리는 남자의 말이 소파에 파묻힌 채 들렸다. 소파를 발로 차던 학생은 애원 어린 목소리에도 아랑곳 않고 한 번 더 발로 찼다.

“어디서 애교야. 지랄 말고 일어나라.”

퍼억, 학생이 세게 소파를 발로 찼다. 그 힘에 못 이겨 툭, 얼굴에 얹혀 있던 책이 떨어졌다.

“……무슨. 뭐야.”

부스스한 머리칼을 정리하며 소파에 누워 있던 남자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책이 떨어지는 바람에 갑자기 눈 안에 들어오는 빛에 눈을 찌푸린 채였다. 방금 억지로 깨어난 터라 멍한 상태인 남자의 코앞에 소파를 발로 차대던 학생이 딱, 하고 손가락을 부딪쳐 청량한 소리를 냈다.

“정신 안 차려? 누가 찾아왔다.”

“……하암, 누구?”

남자는 말을 하다 말고 중간에 하품을 하면서 클럽의 입구를 바라보았다. 그제서야 카일 드바이시의 눈에 한스가 들어온 모양이었다. 카일은 기다란 팔을 크게 들어 올려 반갑게 소리쳤다.

“어, 한스.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냐니. 내가 어제 설명했잖아.”

“짜식. 오랜만에 만났는데, 만나자마자 성질이냐?”

“오랜만? 어제…… 아 됐다. 아무튼 어제 말한 애들이야.”

한스는 지긋지긋하다는 얼굴로 뒤쪽에 서 있는 아드리안과 미하일을 손짓했다. 카일은 눈을 꿈뻑거리며 뒤의 신입생들을 주욱 훑었다. 신입생들이 무슨 볼일이지? 그는 눈가를 손바닥으로 긁적거리며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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