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같이가용-35화 (35/184)

35화

아드리안과 미하일이 앉아 있는 테이블에 식당 직원이 미니 카트를 끌고 다가왔다.

“A 코스 두 분 맞으시죠?”

“네.”

테이블에 앉아 팔을 괴고 있던 아드리안이 가볍게 웃으며 직원에게 대답했다. 직원은 웃으며 코스요리의 에피타이저와 손수건을 테이블에 올렸다.

흐음. 아드리안은 주위의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다들 웃으며 고급스러운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다들 저 정도 추가금 정도는 가지고 다니는 것 같았다. 그게 아니라면 충분한 틸론이 없는 학생들은 아카데미 식당이 아닌 다른 곳에서 식사를 하든지.

골드 드래곤이 에피타이저에는 손도 대지 않고 식당의 창밖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아무리 그래도 적당한 품위는 유지할 정도의 틸론은 필요하겠어.”

미하일이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었다.

“아아주 동감해.”

하아, 아드리아이 앓는 소리를 내며 테이블 위로 상체를 내려 드러누웠다. 그 자세로 고개만 들어 올리자 쨍한 갈색 밀빛 눈동자가 빤히 드러났다.

“왕자님.”

“뭐야 갑자기.”

미하일이 눈가를 찡그리며 입가에 컵을 가져다 댔다. 같잖은 왕자 대우는 원래부터 바라지도 않았다. 그러나 아드리안은 실실 웃으며 고귀한 신분에게 사용하는 어투로 말했다.

“혹시 지금껏 용돈은 직접 벌어서 사용하셨는지요.”

“…….”

입가에 댄 컵이 잠시간 떨어지지 않았다. 얼굴만큼은 봐 줄 만한 왕자의 은빛 속눈썹이 깜빡였다. 아드리안은 그 침묵에서 답을 읽어 냈다. 그리고 드래곤 또한 지금 당장은 뾰족한 수가 없었다.

“이제 어쩌지?”

그때였다.

“A 코스 메인 요리 나왔습니다.”

식당의 직원이 미니 카트를 다시 끌고 와 먹음직스럽게 구워진 티본스테이크를 하나씩 두 사람 앞에 올려 두었다. 큼지막한 크기와 질 좋은 고기는 눈으로 보아도 아주 고급스럽고 비싼 요리처럼 보였다.

맛있게 드십시오.

직원은 가볍게 웃고는 테이블을 벗어났다. 아드리안이 자신의 앞에 놓인 스테이크를 빤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왕자는 이 식사 한 끼에 그의 전 재산을 썼다.

“그 고민을 할 거였다면…… 적어도 얼마 없는 틸론을 아꼈었어야지.”

“어떻게든 되겠지. 겨우 10틸론 정도 없다고 죽기야 할까.”

“수중에 남은 건 하나도 없는 주제에.”

피식, 아드리안는 왕자를 비웃고는 티본스테이크를 우아하게 나이프로 잘라 냈다.

어차피 둘 모두 세세한 것을 걱정하고 신경 쓰는 꼼꼼한 성격은 아니었다.

***

아카데미 식당을 나서는 아드리안과 미하일의 옆을 교복을 입은 다른 학생들이 지나갔다.

둘 중 하나가 이야기를 꺼냈다.

“올해의 상품이 등록됐다던데?”

행정학 교수가 말했던 ‘올해의 상품’이었다.

상품이라는 단어에 아드리안과 미하일이 고개를 홱 돌렸다. 비록 둘이 합쳐 20틸론도 없는 빈털터리였으나 매우 흥미로운 대화 주제였다.

“벌써? 올해는 뭔데?”

“나도 아직은 안 봤는데, 예술 학부에서 난리가 났더라고.”

눈을 반짝이며 질문했던 학생은 에이, 라고 말하며 고개를 기울였다. 예술 학부에서 난리가 났다는 말에 김이 팍 샌 것처럼 보였다. 자유분방하고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감성을 가진 예술가 놈들이 난리가 난 거라면 뻔했기 때문이다.

“이등 상품이 무슨…… 유명한 바이올린이라고 했어.”

“바이올린? 유명한 연주가의 바이올린인가?”

“나도 자세히는 몰라.”

“바이올린 같은 거에는 전혀 관심 없으니, 중앙 현관 말고 다른 출구로 나가자.”

“당연히 그래야지.”

학생 두 명이 그렇게 오른쪽 복도 계단을 향해 걸어갔다.

그때였다.

“안녕하세요, 바사미엘 아카데미 학생 여러분. 즐거운 점심시간이 되셨나요?”

점심 식사를 마치고 하나둘씩 식당을 벗어나고 있던 학생 몇 명이 처음 듣는 목소리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식당과 이어진 복도의 천장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그중에 특히 올해 신입생분들에게 안내드립니다! 평화로운 바사미엘의 일주일을 보내고 이제 진정한 바사미엘에 한 발짝 더 다가오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지금은 아마 무척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울 거라 예상되지만요!”

교내 방송처럼 들렸다. 신입생들을 제외한 선배들은 편하게 방송을 들으며 이야기하거나 식사를 이어 나갔다. 아드리안은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천장 조각들 사이에서 대리석으로 조각된 조그마한 새 조각상 몇 개를 발견했다. 그 새 조각상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틸론 시스템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상품 공개 시간이에요!”

아주 발랄한 목소리였다. 아드리안은 복도의 창틀에 턱, 걸터앉았다. 미하일은 팔짱을 낀 채 벽에 몸을 기댔다. 다른 신입생들도 저마다 하던 일을 멈추고 방송에 집중한 모습이었다.

“아주 따끈따끈한 소식을 듣자마자 방송을 켰답니다. 아, 왜 일주일 동안은 방송이 없었냐구요? 원래 신학기에 첫 일주일은 빼먹는 게 좋으니까요. 신입생 여러분 이런 선배의 팁은 잘 기억해 두세요.”

굉장히 말이 많은 인간이었다. 그러니 저런 교내 방송을 하는 거겠지. 아드리안은 시니컬한 미소를 지으며 창틀에 앉은 채 새파란 하늘을 바라보았다.

“무슨 이야기 중이었더라? 아, 맞다 올해의 상품! 신입생 여러분, 지금 당장 본관 중앙 현관으로 가 보세요. 중앙 복도의 전시장에 올해의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답니다. 틸론을 열심히 모을 필요가 없다? 아니죠, 아니죠, 상품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걸요?”

수정으로 조각된 새 조각상이 흐릿한 푸른빛으로 반짝였다. 교내 방송은 처음 시작될 때처럼 끝나는 것도 제멋대로였다.

“지금까지 바사미엘의 이야기꾼, 피냐타였습니다. 다음번에도 오늘처럼 아무런 예고 없이 만나요. 안녕!”

마침 본관 아카데미 식당에 있었던 아드리안과 미하일은 방송이 끝나자마자 벽과 창틀에 기대어 있던 몸을 일으켰다. 정갈한 대리석 복도를 두 사람의 아카데미 구두가 경쾌하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

방금 전 식당에서 나오면서 들었던 학생들의 말처럼, 건물 밖을 나가려면 다른 출구를 이용하는 것이 나아 보였다. 중앙 현관으로 향하는 길목은 학생들로 가득 찼다.

신입생, 재학생 관계없이 학생들은 저마다 기대감을 숨기지 못한 채 떠들고 있었다.

“와, 진짜 올해 상품 괜찮은데?”

“그래도 솔직히 일 년만에 저 틸론을 모으려면 얼마나 힘들겠냐.”

“너희 벌써 보고 왔어? 뭔데?”

“말로 듣는 것 보다 가서 보는 게 좋을걸? 빨리 가 봐!”

아드리안과 미하일도 잠시 후 중앙 현관의 장식장에서 상품들을 볼 수 있었다. 몇 가지 물건들이 투명하고 고풍스러운 장식장 안에 얌전히 자리하고 있었다. 그것들 앞에는 이름표처럼 태그들이 붙어 있었고, 아래에서 위에 있는 장식장에 순서대로 정리되어 있었다.

아카데미의 화폐, 틸론으로 구매할 수 있는 상품들이었다. 아드리안은 장식장 옆에 붙은 간략한 설명을 소리 내 읽었다.

“……‘태그에 쓰여 있는 금액만큼의 틸론을 모아 와 장식장 위에 틸론의 계약을 진행한 손을 올리면 상품을 받아 갈 수 있습니다’라고 쓰여 있는데.”

각 태그들에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가격이 쓰여 있었다. 아까 그 학생들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두 번째 열에 있는 것은 바이올린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등 상품이었다. 바이올린 위에는 진열 칸이 하나 더 있었다. 일등 상품이 있는 곳이었다.

“아카데미에서 내놓는 상품이면 당연히 별 볼 일 없는…….”

미하일이 비웃으며 말하던 목소리가 갑자기 중간에서 멈추었다.

“오…….”

왕자의 입에서 나지막이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왕자라는 신분을 집어던지고 제 나이에 걸맞게 보였다. 아카데미에 들어온 이후 처음 보는 모습에 아드리안은 그가 들여다보는 검을 빤히 바라보았다.

날개 문양이 아름답게 검의 손잡이를 감싸고 있었다. 그간 좋은 검은 두루 접해 본 적 있는 골드 드래곤도 감탄할 수밖에 없는 검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검을 골드 드래곤이 이미 본 적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아드리안의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장면이 있었다. 터무니없는 숫자의 마물들과 마주 보고 선 인간들. 그리고 그 무리의 가장 앞에 서 있었던 미하일의 모습이었다. 그때 기사 미하일 루스 이네하트는 자신 앞으로 날아온 골드 드래곤을 바라보고는 싱긋 밝게 웃었었다.

……그냥 평범한 꿈은 아니었어.

아드리안이 미간을 찌푸렸다. 꿈속에서 미하일이 들어 올렸던 검이 바로 지금 이 바사미엘 아카데미의 장식장 안에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었다.

“……좋은 검이군.”

아드리안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펠렌 디프스의 검.”

아드리안이 갑자기 튀어나온 사람 이름에 어? 라고 반응했다. 검이 보관되어 있는 투명한 장식장에 두 손바닥을 가져다 댄 후 지금까지 눈을 떼지 않고 있는 왕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테마리아를 만든 장인이 만들었던 명검 열세 개 중의 하나야.”

“교장의 검을 만든 장인 이름이 펠렌 디프스야?”

미하일은 아드리안의 질문 같은 건 들리지도 않는 듯했다.

“대단해.”

왕자의 붉은 눈동자에 무언가 일렁거렸다. 그의 검대를 채우고 있던 멋들어진 검 하나가 사라진 지 채 며칠도 되지 않았다. 많이 허전했을 것이다.

“이거야.”

그는 투명한 유리에 흰 이마를 대고 열의를 불태웠다.

“……내가 가져야 해.”

“그래?”

골드 드래곤은 옆의 어린 인간이 멋모르고 의지를 불태우는 모습에 떨떠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무척이나 허황된 목표였으나 저 검을 가지고 있는 미하일의 모습을 꿈에서 이미 봤던 아드리안으로서는 그 방법이 궁금할 뿐이었다.

“……1만 틸론을 어떻게 벌려고.”

아드리안은 그것을 보고는 중얼거렸다. 틸론 따위는 쓸 곳이 없다고 서로 저녁에 나눴던 대화는 왕자의 머릿속에서 모두 사라진 듯 보였다.

그러나 왕자는 1만 틸론을 가지는 데에 성공할 것이다. 아드리안은 그 과정은 알지 못해도 결과는 이미 알고 있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