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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가용-34화 (34/184)

34화

한스는 가격을 파격적으로 흥정해 주었다. 이번 주 내로 3틸론에 ‘이상한 문’을 열었던 학생 한 명을 알려 주기로 약속했다.

아드리안과 미하일은 그 약속을 받아 내고는 마법학 수업을 향하던 발걸음을 다시 옮겼다.

“지금 무슨 생각해?”

옆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 듯해 보이는 왕자에게 아드리안이 말을 걸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틸론 활용처가 많을 수도 있다는 생각.”

“같은 생각을 하고 있군. 나는 여기서 더 늘어나지만 않기를 바랄 뿐이야.”

아드리안은 걷느라 조금 흐트러진 머리칼을 답답하다는 듯이 손가락으로 거칠게 정리했다. 지금 미하일의 것까지 합한다면 전부 25틸론이었다. 그래, 최대한으로 만나 본다면 여덟 명 정도는 만나 볼 수 있겠네. 아드리안은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애썼다.

그는 순간 멈칫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언제부터 저 녀석과 경제 공동체가 되었지? 골드 드래곤은 속으로 혀를 찼다.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바닥에 굴러다니는 먼지처럼 가벼운 주머니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천만다행인 것은 이 정도 금액이라면 충분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마법학 수업에 도착한 둘은 이전의 수업에서 습득했던 배움으로 강의실 중앙에서 살짝 뒷줄에 자리를 잡았다. 그들이 저번 수업에서 배운 유일한 지식이었다.

곧이어 시그리드 오웬이 강의실에 들어와 가장 앞에 있는 교단에 섰다. 그는 지난번에 했던 마나에 대한 강의에 이어서 조금 더 깊은 담론을 가져와 신입생 앞에서 수업을 했다. 물론 아드리안과 미하일은 눈만 교수에게 고정한 채, 각자 다른 생각에 잠겼다.

교수는 다행히 수업을 하면서 강의실 뒤쪽에 앉은 학생들까지 신경 쓸 시간이 없는 것 같았다. 그는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지 않는 둘을 발견하지 못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마법학 강의가 끝난 강의실에 누군가가 자신감 있는 발걸음으로 들어왔다. 넥타이의 색으로 봤을 때 선배였다.

“그래요. 무슨 볼일…… 아.”

시그리드가 학생들의 머리 위를 살펴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학생들의 머리 위에 올라간 틸론의 문양이 그제야 교수의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벌써 그럴 시기가 되었군.”

마법학 수업 교재를 정리한 시그리드가 갑자기 들어온 여학생에게 교단 자리를 비켜 주었다. 시그리드는 마법 학부 교수였기 때문에 같은 학부가 운영하고 있는 사교 클럽에 관심이 아주 많았다. 그는 그래서 매년 신입생들에게 입부 홍보하는 것을 허락해 주고는 했다.

“수고하세요.”

“네, 교수님.”

시드리드는 “그럼.” 하고 말하며 강의실을 나섰다. 강의실에 여전히 앉아 있던 학생들은 모두 ‘저 사람은 누구지?’라고 생각했다.

교수가 강의실을 나가자마자 교단을 차지한 선배가 입을 열었다.

“마법 학부 사교 클럽 ‘앰버’의 일리야 하이네어입니다. 시그리드 오웬 교수님께 이 자리를 부탁드렸어요. 우리 앰버에서 하는 일들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사교 클럽 앰버의 장, 일리야 하이네어가 가볍게 웃었다.

***

아드리안과 미하일은 조금 지친 표정으로 아카데미 식당에 들어섰다. 수업이 끝난 후 앰버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덧 식사를 할 때가 되었다. 어차피 두 사람 모두 마법 학부의 사교 클럽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아카데미의 식당에 들어서자 식당 직원이 친절하게 두 학생을 맞았다.

“무슨 메뉴로 드릴까요?”

“A 코스로.”

“네.”

왕자는 아카데미 교복에서 식권을 한 장 꺼내 내밀었다.

그러고는 잠시간 직원과 왕자가 마주 보고 있는 채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미하일은 의문 섞인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아카데미 식당의 직원이 왕자의 결정에 대답만 한 후 주문서를 주방에 올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직원이 웃으며 말했다.

“죄송하지만, 이제 식권은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그래? 왕자는 꺼내 들었던 종이를 다시 아카데미 상의의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식권이 필요 없다면 그냥 주문만 하는 건가? 미하일이 고개를 다시 들어 올렸을 때였다.

“그리고 A 코스에는 추가금이 있습니다.”

“……뭐?”

미하일은 직원의 말을 이해할 수 없어서 곧바로 반문했다. 아드리안도 궁금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잘 주문해 왔던 A 세트였다. 그런데 갑자기 추가금이라니…….

“……추가금이 얼마지?”

왕자는 조금의 기대감을 가지고 직원에게 나직하게 물었다. 아드리안도 마찬가지였다. 직원의 답이 예상되었으나…… 추가금을 골드로 받을 수도 있지 않는가.

“5틸론입니다.”

아카데미 식당의 직원은 가볍게 둘의 기대감을 산산조각 냈다. 그와 동시에 아드리안과 미하일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말이 있었다.

‘아카데미에서 사용하는 화폐는 루스타바란 왕국의 통화인 골드가 아닙니다. 바사미엘에서 생활하는 데에 최소한으로 필요한 물품과 식사는 아카데미가 제공하고 있지만…… 그 이외의 서비스와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아카데미의 통화인 ‘틸론’을 사용하게 됩니다.’

행정학 수업 시간에서 교수가 했던 이야기였다.

‘바사미엘에서 생활하는 데에 최소한으로 필요한 물품과 식사.’

골드 드래곤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잠깐. 뭔가 걸리는 단어가 있었다.

“최소한으로 필요한.”

이런…….

아드리안은 “제기랄.” 하고 중얼거렸다. 미하일이 고개를 휙, 돌려 욕을 내뱉는 아드리안을 바라보았다.

“아카데미는 말 그대로 ‘최소한’으로 필요한 것만 제공하나 본데.”

그러고는 식사 주문을 받는 직원에게 질문했다.

“추가금이 없는 메뉴는 뭐죠?”

여전히 부드럽게 웃으며 학생들의 주문을 기다리고 있던 직원이 곧바로 대답했다.

“오늘의 메뉴를 기본적으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뭐? 오늘의 메뉴?”

미하일은 그런 메뉴는 처음 들어 본다는 듯이 매일 바뀌는 식당의 메뉴판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정말로 처음 들어 보는 메뉴였다. 미하일은 메뉴판을 채우고 있는 메뉴들을 하나씩 읽어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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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코스 ✧ 티본스테이크 (+추가금 5틸론)

B 코스 ✧ 살짝 익힌 대구 (+추가금 3틸론)

C 코스 ✧ 바질 파스타 (+추가금 1틸론)

오늘의 메뉴 ✧ 토마토 라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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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는 메뉴를 읽던 채로 몸을 굳혔다. 틸론? 지금까지 식권을 사용해 온 터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단어가 그제야 보였다.

직원이 말하는 ‘오늘의 메뉴’라는 것은 메뉴판에서 제일 밑의 메뉴였다. 메뉴판은 친절하게도 오늘의 메뉴는 토마토 라자냐라는 것을 알려 주고 있었다. 유일하게 그것만 추가금이 없었다.

라자냐라니. 왕자는 이를 악물었다. 미하일은 그 메뉴를 싫어해서 화를 참을 수 없는 것이 아니었다. 원하는 스테이크를 먹으려면 전 재산의 절반을 써야 해서도 아니었다.

그는 겨우 식사 메뉴를 정하는 것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는 이 상황이 정말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미하일은 한참을 메뉴판을 보고 서 있었다. 평균보다 훨씬 큰 신장의 신입생 두 명을 지나쳐 몇 명의 학생들이 식당에 주문을 넣었다.

아드리안은 망연자실하게 서 있는 왕자의 어깨를 툭 쳤다. 각별하게 아이를 키우는 왕가에 태어난 왕자는 이런 상황에 처한 것이 아주 당황스러워 보였다. 아드리안이 위로하듯이 말했다.

“뭐가 먹고 싶은데, 내가 살게.”

그러자 왕자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옆에 선 아드리안을 바라봤다.

“너나 나나 주머니가 가벼운 건 마찬가지인데, 네가 사긴 뭘 사.”

“너도 캐서린에게 숙제를 같이 돌려줬잖아.”

아드리안은 어떻게든 틸론을 벌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가 살아온 세월이 얼마인데, 아카데미에서 겨우 점심 사 먹을 돈도 없어서 허덕이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왕자는 아드리안이 한턱내는 것을 쉽게 허락해 주지 않았다.

미하일은 고귀한 핏줄로 동정을 받는 것보다는 대접하는 입장이 훨씬 더 익숙했다. 왕자는 그래서 자신에 찬 아드리안을 바라보며 팔짱을 낀 채 퉁명스레 대답했다.

“됐어, 내가 살 거야. A 코스 두 개.”

미하일은 자신의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뭐? 지금 교수가 준 전 재산을 다 써 버린다고? 아드리안이 충격받은 표정으로 왕자를 말리려 했지만, 미하일의 고집은 엄청났다.

결국 직원이 손등의 문양을 확인하고는 검지로 툭 건드린 후에 웃으며 주문 두 건을 주방으로 보냈다.

“네, 식사 준비가 되면 자리로 가져다드립니다.”

순식간에 10틸론을 다 썼다. 우선 이 화폐와 아카데미 물가에 대해 익힐 필요가 있었다.

“난 B 코스가 마음에 들기는 했는데…… 잘 먹을게.”

스테이크도 뭐 나쁘진 않지.

골드 드래곤은 왕자와 함께 테이블로 걸어갔다. 바사미엘 아카데미의 격에 맞는 테이블들이 수십 개 놓여 있었고, 몇 개의 테이블에는 학생들이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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